그녀는 보통 말을 하는 기회가 거의 없다.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과 배우 케빈 클라인이 먼 친척뻘일까, 소설가 더글라스 케네디가 그 케네디 가문과 동일한 성씨인가. 이런 아무렇지 않은 스몰톡을 나눌 수 있는 기회 말이다. 혼자 살고 있고 혼자 일하고 또 혼자 거의 대부분의 여가를 즐기기 때문에, 그런 생활이 오래 되었기 때문에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현대인으로써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쓸쓸함을 의심할 단계는 이미 옛날에 지나가 버렸다. 가끔 살고 있는 도시 인근의 대학교에 출강할 때 학생들과 몇 마디 말을 섞을 때를 제외하고는 TV나 극장에서 그리고 카페에서 말소리를 드는 것으로도 크게 생활 소음의 부족함을 별로 탓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보통은 친구처럼 언니처럼 스스럼없이 편하게 지내는 어느 사설 미술관장의 외부 손님 접견실을 틈틈히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곤 하였지만 그날은 강변에 위치한 카페의 창가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카페에 들렸다. 지금 번역하는 책은 줄리언 반스의 Arthur & George다. (섬이름을 무명 표기하기로 한 원칙에 따르자면 한쪽에서는 미국식 영어로 번역한다고 해도 될려나) 그런데 그 카페에서 말로만 듣던, 읽기만 했던 뒷사람 음료값 지불하기라는 황당무계한 사건의 주인공으로 본인이 당첨되고 말았다. 뭐랄까 좀 더 선진화된 창업에 최적인 도시라면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테지만 이런 회색도시에서 그것도 여자 로빈슨 크루소 같은 일이 자신에게 닥치고 나니 드라마에서만 보았던 일순간 외부 소음이 차단되고 지난 기억이 소중한 추억이 거리의 드라이브 중인 차안의 사람이 바라보는 가로수처럼 스르륵 스르륵 스쳐 지나갔다. 이건 겸연쩍다고 해야 하나 기쁘면서도 슬픈 낭만이라고 해야 하나, 부끄러움이나 창피한 그런 단순한 감정이 아닌 중학생이 버스나 지하철에서 선뜻 나서서 자리 양보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그 안절부절한 떨림의 기분에 그나마 가깝다고도 짐작할 수 있는 감정을 느꼈다.
그렇지만 이럴 때도 뾰로통하면서도 세련되게, 절제된 미니멀한 그리고 의연한 태도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뭐에 뭐를 타서 어떻게 꼭 머그 컵으로 주세요.' 라며 평소와 다름없이 주문했다. 그날 따라 카페 창 밖의 풍경은 왠지 더더욱 다정해 보였고 모든 사람들은 무척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으며 어떤 알 수 없는 활력과 자신감마저 파릇파릇 돋아 올라 나비가 나풀거리며 주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성생활은 울트라마린 빛깔의 베일에 감싸여 있다.
삶은 어떤 우연의 연속인가 보다. 그 뒷사람 음료값 지불하기의 의뢰인은 다름 아닌 A가 대학생 때 단 4명이 전부였던 독서 클럽에 속해 있던 한 남자였다. 그의 이름은 토머스. 그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에 능통하다. 런던, 파리, 베를린, 뉴욕, 몰타 섬을 오가며 살고 있다. 그는 한때 극단을 운영하며 직접 희곡을 쓰기도 했고, 이야기체의 여행 책자를 쓰다가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부터 시작해 파타고니아, 서사모아, 베트남, 이집트, 인도네시아 등 세계 30여 개 나라를 여행했다. 별명은 페이지 터너다.
다음은 J의 고백. 이런 그러고 보니 개연성도 없고 재미도 없고 말도 안되는 데다가 아무래도 참고했던 실존 인물들로부터 거액의 소송을 당하는 일은 절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에는 팔자 한 번 고쳐 볼려고, 짭잘한 여비 한 번 마련해 보려고, 나름 Gap Year라고 폼 한 번 제대로 잡아볼려다가 쫄딱 망하는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불안에 휩싸였다. 토마스의 약력은 알랭 드 보통과 더글라스 케네디의 약력을 혼합해서 요약한 것이다. 원래는 A와 토마스를 재회시켜서 공동 작곡, 공동 작사처럼 공동으로 소설을 집필하게 할려는 의도였다. 남자 또한 저명한 문학 및 철학 교수인데 유독 소설을 못쓰는 인물로 설정하고.
J는 하다 하다 여기까지 왔다. 그는 왜 사람들이 1인칭으로 소설을 쓰는지 이제는 아주 조금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어차피 초반의 분량은 조금 뽑았으니 1인칭으로 이어서 쓰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고 우선 조금 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