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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2

from 소설 2014. 7. 22. 11:54

   어느 봄날, 날씨가 어떠한 기분이 뭐한 상태로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강아지나 고양이와 약속된 것처럼 눈빛을 맞추고 싶은 어느 봄날, 먼지 쌓인 책상에 놓여진 시집을 펼쳐 보면 미세한 감정의 동요를 느낄 수 있다. 바다코끼리, 버찌, 무지개...같은 단어 만으로도. 하지만 J는 긴장을 풀 수 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독자를 꼴보기 싫은 직장 상사라고 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걸 알아야 하는데?" 독자가 이 문장을 응용하지 않게 해야만 독자와 작가 모두 불이익을 감소할 수 있다.
   J는 집에서 집필에 또는 집필 구상에 열중하고 있으면서 소셜 네트워크에 가뭄에 콩나듯 컨텐츠를 업데이트한다. 어느 날 Instagram에 '좋아하는 축구 선수의 이미지를 인쇄한 사진'을 사진 찍어서 올려놓았다.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달았다. "아이마르, 프리메가에서 멋졌는데... 이 친구 나중에 이쪽에서 잠시 뛰어 주면 좋겠다!" 그런데 어느날 거짓말처럼 아이마르가 그곳 축구팀으로 이적하여 활약을 할 것이라는 스포츠 뉴스가 발표되었다. 물론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또 꼭 기적과도 같은 일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SF에 사는 어느 축구팬이 캔맥주를 야금야금 마시면서 트위터에 첼시 누구 우리팀으로 오시는 게 어떨까..라고 글을 남겼는데 그 일이 진짜 그냥 우연히 벌어졌어. 옛날 베컴 사례도 있고 원래 스포츠 업계의 속성이 그러니까 전혀 문제될 소지는 없다. 선수들이 벤치 멤버보다는 주전으로 뛸 수 있도록 나이와 비례해서 몸값이나 장소를 바꾸는 게 보통이지만 다만 그 행선지가 약간만 쌩뚱 맞은 것만 이상할 뿐이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아니겠지 하고 그냥 넘어갔다.
   소설은 강아지다. 깨물어 주고 싶도록 귀여울 때도 있지만 혼수상태에 빠질 만큼 몰입하도록 소설이 당신을 깨물기도 한다. 심지어 그것도 퍼포먼스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J가 틈틈히 구독하는 블로그를 통해서 그 블로그 운영자가 새 손그림 기념엽서를 발간한다는 소식을 보았다. 그래서 곧바로 그 기념엽서를 주문했다. 제품 주문 방식은 e메일이었다. J는 메일을 보냈다. "머머머 엽서 주문합니다. (입금액, 입금자, 입금일)"라고. 그런데 주문상의 착오가 있었다. 곧 제품을 보낸다는 답신 후에 제품을 보낼 주소가 적혀있지 않았다는 e메일이 다시 왔다.

블로그 운영자: 어? 보내려고 했더니, 주소를 안적으셨어요
저도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알았네요
혹시 메일 일찍 보신다면 제게 문자로 넣어주시겠어요?
어차피, 나가는 길이라.

(전화번호) xxx-xxx-xxxx

J가 보낸 답신은 이랬다. "ㅎㅎ 죄송 일부러 그런건 아니었는데 우스운 상황이 연출됬군요. 네 문자보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그림 많이 그려주세요, 감사합니다." 딱히 별 사건은 아니지만 이런 주제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써볼까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또한 평범한 듯 해서 다른 구상을 떠올려 보려고 Tumblr와 Blog, Flickr, Twitter, Facebook등을 더 살펴보았다.
   여태 J의 행적에 대해서만 썼는데 왜 S가 J를 만들어 냈는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잠시 알아볼 필요가 있다. 보통 남자들은 이상향을 썰로 푼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원래 그렇기 때문에 평생 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환경에서 살다 보면 정말 돌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껴서, S는 그 이상향을 말 할 상대가 없어서 글로 적기로 한 것이다. 남 얘기만 듣다가 소셜 네트워크만 읽다가 고품격 소설만 선정하다가 인생이 급작스레 종칠 것 같다는 절박감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달라스 3대 말빨,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내 이야기를 써 봐야겠다고 퍼뜩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S는 자신의 소설에 왜 구체적인 지명을 밝히지 않고 그냥 섬이라고만 했을까? 뭐하고 뭐한 어떤 섬, 그냥 섬. 그건 왜 그러냐면 거의 모든 독자를 주인공으로 착각하게끔 홀리기 위한 전략이기 때문일 것이다. 발음도 비슷하다. 섬, 썸. 그런 건 어디서 배웠냐면 어딘가에서 정확한 스킬을 전수받거나 터득한 것이 아니라 침착하게 세상을 관찰하니까 그냥 여기저기서 보인 것이다. 남자가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물론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뒤바뀌는 경우도 허다하고 실제 대부분은 여자쪽에서 먼저 미끼를 던진다, 95%― 말빨로 여자를 꼬시는 것이 아니라 말빨로 여자의 정신을 어지럽게 하여 세뇌시켜서 결국엔 마취되어 넘어오는 연애사가, 그 모든 사랑 타령의 시초가, 드라마가 전개될 내용을 예상하는 어른들도 그렇다. 설령 "여자는..."이라는 독백을 시작하시는 독자가 있다면 세상을 썩 그렇게 오래 사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고매하신 독자의 관심을 S의 직업으로 옮겨본다. 왜 S의 직업을 그렇게 설정했냐 하면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직업이 변호사라거나 수의사, 큐레이터, 서점 주인, 개패 사장, 동사무소 직원인 것 보다는 작가 또는 소설가 지망생, 시나리오 작가 겸 주부, 창의력 개발연구소 소장, 영화감독, 학생, 강사, 백수, 예술가, 탐정, 탐정에게 쫓기는 사람, 요원으로 설정하는 것이 훨씬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풀어가기에 쉽고 편리하면서 유리하다. 즉 소설가 초년생이 1인칭으로 소설을 쓰는 게 더 낫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막 쓰는데도 적절한 쓰기의 패턴이 있는 것이다. 치밀하고도 숨막히게 그런 설정을 만든 게 아니라 그냥 쓰다보니 일상생활에서 여행지로, 주거지에서 휴양지로 가뿐히 공간이동한 것 뿐이다. 글쓴이든 누구든 절대 그걸 싫어하지 않는다.
   J는 자신이 쓰고자 하는 소설에서 주인공의 직업 외에 글이 잘 안 써진다고 고민하는 소설가의 모습을 떠올리면 뭔가 자기도 모르는 웃음의 숫간이 찾아오기 때문에 또 왜 그런가에 집중했다. 웃는 표정이 참 희한했다. 마치 여배우가 그 부위를 가리는 테이프를 손에 들고서 "감독님, 그냥 이거 떼고 하면 안되요?"라고 말하면, 그 핀잔을 듣는 사랑씬 촬영장에 있는 에로영화계 추장의 안면 근육의 꿈틀거림과도 닮았다. 다른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연기, 연출, 창작, 영감등의 단어를 떠올리는 가운데 불현듯 필연을 우연으로 바꾸는 그 놀랍도록 이상하게 이어지는 연속성에 대한 화두를 잡고 늘어지면 뭔가 이야기가 나올 것도 같은 예감이 들었다.
   멋진 영화배우가 말한다. 청소년들이, 젊은 친구들이 스타의 영향을 얼마나 받는지, 어느 정도나 쉽사리 따라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가끔씩 때로는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도 조심하고 생각하게 된다고. 슈퍼스타들이 그렇듯 당신이 리처드 브랜슨이 아니더래도,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때려 잡아 주라는 클라이언트에게 복제 분신으로 가장한 인형을 꽂고 찔러서 괴롭히는 주술사가 아니더래도 자신이 쓰고 적고 말하고 바라만 보아도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면, 그렇다면 글이 잘 안 써진다고 고뇌하며 인상 찌푸리고 골방에 틀어박혀 혼자 술 한잔 하는거도 그리 처량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겠지.
   참고로 S는 J에게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를 읊게 했지만 그가 정작 20여 년 전 현실에서 외웠던 시는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 가운데 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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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1

from 소설 2014. 7. 22. 11:22

   주인공의 블로그에 이상한 댓글이 하나 달렸다. 그게 뭐 그리 대수겠냐마는 왜 그런고 하니 나중 그것이 그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S도 또 S에 의해 글을 쓰고 있는 J도 여름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런지 거리에서, 서점에서, 호텔에서 또한 집에서나 어디에서나 눈이 막 돌아가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원래 그랬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뭐랄까, 의도적인 전술이랄까, 그들의 인기와 품위를 그리고 인격과 인생 격조의 X스팟을 고양시키기 위한. 피노키오의 코는 참 뭔가를 연상시킨다. 일시적이 아니고 줄어들지 않는다면 큰일나겠지만.
   블로그에 어떤 글이 달렸는가는 밝힐 수 없다. 추리초설의 기법과는 관련이 없고 약간의 궁금함은 남겨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일은 모른다고 나중 고도로 치밀한 전략으로 짜여진 미끼로 던져진 말장난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아무튼 그 블로그에 씌여진 대강의 짧은 뜻은 그와 같은 포스팅을 꾸준하게 지속하고 점진적으로 그 수준을 올려달라는 주문과도 같았다. 그러니까 J는 그냥 하던 데로, 살던 데로 지내면 되는 것이다. 뭔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차피 J는 억만금 원고료 환상문학상 같은 거창한 덕목을 바라지도 않고, 도전할 깜냥도 안되고, 솔직히 그 스타일의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로 보는 것을 훨씬 좋아하기 때문이다. 강한 남성들은 그 반대일까? 고품격 소설 대신에 (쉬는 날 TV로 시작해서 TV로 끝나는 하루 가운데) 강연, 뉴스, 토론, 스포츠를 보고, iPad로 읽는 이야기도 환상, 추리, 스릴러, SF를 선호하는 것인가. 환상, 추리, 스릴러, SF 소설도 좋은데 그것에 빠지지 못하는 사람은 뭔가 두뇌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하드보일드와 (값비싼 우황청심원, 녹차, 세계 항산화 10대 음식이 성장제로 쓰여진 재료만으로 만든) 수제 햄버거 문체, 극동 스타일 문장(장소 기준이 안 밝혀졌으니 어느 동쪽을 가르키는지 모호하지만)들이 대부분 훌륭한 환상, 추리, 스릴러, SF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이건 킨제이 보고서나 다른 무슨 보고서에서 이미 밝혀낸 내용일 것이다.

   TV는 스타게이저풍 주인이 잠드는 순간에도, 주인이 꿈나라에 가있는 시간에도 쉴 수 없다. 불쌍하다. 초갑부와 빈자가 오랜 세월 우정을 유지하는 경우가 드물게 존재한다. 그 드문 사례 가운데 빈자가 초갑부에게 맞추는 경우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결혼식 날 당일에도 신랑은 평소와 다름없이 눈이 돌아간다. 연로하신 할아버지도 강하다. 남성은 평생 강한 남자다. 험담은 그칠 날이 없다. 알겠다. 닥치겠다.

   어느 소설들에 보면 시와 소설의, 시인과 소설가의 비교가 드문드문 나온다. 멋진 설명을 인용하기는 너무 기니까 짧은 문장만 이용하자면 어느 여고생 배역의 대사가 있다. 그 소설은 읽어보지 않았으나 영화로 만들어져서 그것만 보았다. 그 대사는 이것이다. '시가 소설보다 높은 거야?' 소설가들이 방대한 양의 글을 써야 하니까 책을 덜 읽는 것일까? 양으로만 봐도 소설가들이 고된 업무에 시달린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치만 소설가들이 책을 덜 읽기는 뭘 덜 읽겠나. 그냥 요리 환경과 요리사들 스타일, 요리 재료등 식재료를 비롯한 나머지가, 사람이,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지. 고급 레스토랑 손님의 까탈스러운 취향, 검소하고 낙천적인 소비자의 기호와 게다가 장소, 기분, 상황들 하며 세상에는 왠 변수가 그렇게나 가난하면서도 많단 말인가, 나 원 참. 은유란 무엇인가? 시원하게 설명하는 사람조차, 어른조차 별로 없다. 옆사람 눈치보는 게 당연하다.
   J의 혼잣말, 남이 알고 있을지라도 본인이 새로 알게 되는, 새롭게 깨닫는 것을, 궁금한 것을 주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공상을 하였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어차피 전 유럽 서점가의 판을 새로 짜는 조명을 받는 건 불가능하고, '왠지 모르게 이건 꼭 써야만 할꺼 같다'하는 그 감정을 순도 높은 초티타늄 핀셋으로 잘 잡어서 그것에 '왜 그런 것인가?'라는 마술의 조명을 Film Riot의 기교를 본따 흉내내어 비춰보면서 그려볼려고 하는 그 행위가 거의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닐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J는 대단치 않은 자신의 창작 능력이 고갈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잠을 충분히 자서 모공수축과 피로 회복을 하고, 반나절이면 충분한 깜작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바다를 본다는, 바다를 보면서 캔맥주를 벌컥벌컥 마신다는 낭만도 있지만 그곳까지 가는 기차에서만 즐길 수 있는 행위예술을 오랜 만에 시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퍼포먼스의 자세한 내막을 공개하기는 차마 껄끄럽다. 그가 진짜 기차 여행을 다녀왔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단락을 넘겨야 하니까, 그날 J는 자기 전에 YouTube에서 동영상을 보고 잤다. 검색창에 쓴 글씨는 이랬다. dog vib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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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0

from 소설 2014. 7. 19. 16:35

   그의 뇌를 열고, 까고, superMRI로 찍을 수는 없으니까 쭉쭉 그의 의식을 S가 파헤치고 있다. 그 기법이 의심된다면 마르셀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를 놓고 이 소설과 동시에 읽어보시길 바란다. 당장 J의 생각은 이렇다. 1인칭으로 쓰지 않겠다. 머머 했다, 머머 했다, 머머 했다... 아니야. 완전 재미난 스토리를 직접 체험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았고, 좀 웃긴 일도 많았지만 모두 그저 단편적인 것이었던 데다가 요즘 독자들은 풋내기도 아니고 수준도 그렇고 최소한 비교에 능하다. 요즘 독자들은 이런다, 옛날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제 책은 외국에서는 잘 안 팔립니다.'라는 중견 작가의 글을 읽고 '안 팔리게 썼네'라고 그러고 책 뒤 표지에 마치 누구+누구 같다는 평이 있으면 적당히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도 서로들 모른 체 하지 않을 만큼은 순진하지 않다. 겉으로 표출되지 않는 혼자의 다듬어지지 않는 유약한 생각은 다소 냉정하고 영악한 면이 없잖아 있다. 일상에서 너무 솔직해도, 드라마에서 연기를 너무 잘 해도 탈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일반 독자와 프로페셔널 장사꾼은 놀랍게도 상당히 닮아 있다. 어떤 점은 까무라치게 빼다 박았다. 다음은 한켠의 짧은 생각에 반하는 모든 소음을 종료시키는 전문가의 한마디다.

  • 익명의 프로모터: "현재 가치로 봤을 때 최고는 U2거든요... 떼창 만으로 뮤지션의 자존심을 충족시킬 수 없죠..."
  • 어느 무대전문가: "장난해요? 폴은 세 번 공연 만으로 25만명을 모으는 레전드입니다."

   대개는 일반 기업체가 남의 다리 피나게 긁는 자선구호 단체가 아니듯 가려운 자기 다리를 열심히 긁는 보통의 소설 독자들은 자신의 시간 자원을 소중하게 사용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J는 시점이고 주제고 플롯이고 다 필요없고 앞서 생각한 것처럼 막쓰기로 작정했다. SF 주인공처럼 또 원점에 왔나? 아무튼 보도 듣도 못한, 밑도 끝도 없는, 전무후무한 누보로망 스타일로 쓰기로 했다. 누보로망을 잘 아는 사람, 0.1%는 될려나. 보통의 독자는 여자들이 생각하는 남자들처럼 그렇게 친절하지가 않아서 틈틈히 주의를 환기해주고 조금은 격이 떨어지는 솔깃한 얘기도 집어 넣고 웅변가 같은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독서에 집중하게끔 끊임없이 유도하고 다그치고 다독이면서 독자의 정신을 마취시켜야 한다. 그 놈의 유난떠는 수준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고품격 소설을 일일이 오른손이나 될 수 있으면 양손으로, 이왕이면 몽블랑 한정판 몇 주년 기념 만년필로, 의식의 진화를 위해서 꼬박꼬박 필사하는 게 필요하지만 세상엔 속성 마스터 방법이란 게 비밀스럽게 존재한다.
   안되겠으니 하드보일드든 아마존 베스트셀러 스타일이든 뭐든 흉내 내서 막 쭉쭉 빼야겠다. 일단 주인공이 한명 있어야 한다. 주인공은 남성이고 실업자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남들처럼 아이폰이나 데스크탑으로 트위터, 인스터그램, 페이스북을 본다. 그리고 데스크탑으로 뉴욕 타임스와 Revision3도 본다. 옛날에는 Diggnation을 봤지만. 그가 하루 화장실을 몇 번 가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데 돈이 없어서 그냥 대충 때우는지, 취미나 기호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도 당연히 남성이니까 고급 자동차를 좋아한다. 다만 소리와 디자인이 좀 더 섬세한 타입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는 본인 만의 차도 없고, 노트북도 없고, 애인도 재산도 이성 친구도 게다가 비밀이란 자산까지 단 하나도 없다. 없는 게 뭔 자랑이라고 말이다. 그런 그를 어느 여자가 좋아하겠는가? 완전 가난한 얼간이, 탕아, 국가대표 호구다. 재산목록 1호, 2호, 3호... 그런 거 당연히 없다. 나이도 있는데 소설 제목만으로 끝말 잇기도, 자동차 이름 끝말 잇기도 못한다. 수많은 자동차들 옵션은 물론 가격의 제일 끝자리 단위까지 모두 꿰고 있는 남성은 신기한 경탄의 대상이다. 존경스럽다. 또 말빨도 시원찮고 영화배우 같은 외모도, 든든한 재산도 없이 몸만 썽썽하다. 하긴 그게 한밑천이다. 답답허다. 커서 뭐가 되겠다는 것인지. 아 이미 다 컸다. 그래도 원래 이런 삐리한 인물을 내세워야 독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흥미를 느낀다.
   원래는 수식어가 필요없는 최고 만을 좋아하는 그였지만 어디 그만, 어디 상남자들만 그러겠나. 최고를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말한다면, 거의 모두 최고를 좋아하지만 귀찮아서 잘 움직이지를 않는다. 세계 대도시의 번화가 빌딩 위에서 돈다발을 뿌린다면 막 우르르 몰려 들겠지만. 최고를 싫어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런다면, "이 자식이 나꾸 나와라 마라 하고 있어." 또 그런 식이다. 하여튼 최고라, 최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대충 얼추 때려 잡아도 10억명이다. 나 10억명 가운데 1명이야, 나 10억명 가운데 1명이야 그런다면 초딩도 아니고 그 이전 단계라는 뜻이다. 대니얼 길버트의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330페이지 지문fingerprints에 대한 신화를 읽어본다면 누군가는 뜨끔하면 괜찮은데 그마저도 힘들면 곤란하다.
   하여튼 의뭉스러운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지적 욕구가 풍부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지적 욕구가 풍부하다. 어떤 지적 취향인가는 좀 의심스럽다. 그런 그는 개인 블로그를 하나 운영하고 있다. 꼭 탐 피터스가 '블로그가 내 인생을 바꿨다'라고 해서도 아니고 게리 바이너척의 "내 영혼을 걸겠다."는 조언 때문도 아닌 그냥 그런 지식을 알기 전부터 기록도 남기고 재미난 이야기와 궁금한 것들 정리해 적어 놓고 심심풀이 땅콩으로 가지고 있는 거다. 다만 굳이 한가지 장점을 꼽아보자면 포스팅의 수준이 가파르게는 아니고 아주 미미하게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블로그에 이상한 댓글이 하나 달렸다. 누가 장난하는 것으로 여기고 아무렇지 않게 넘겨 버렸는데 그게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앗 어디선가 리드미컬한 하품 소리가 들린다. 이쯤에서 요점을 반복하고 단락을 넘겨야겠다. 주인공의 블로그에 이상한 댓글이 하나 달렸다. 누가 장난하는 것으로 여기고 그냥 넘겼는데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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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9

from 소설 2014. 7. 19. 12:05

   지극히 교양스럽고 단정하며 꼬셔주기를 바라는 표정의 처자들과 최고급 음식과 실크 팬티에 벤틀리든 잡지에서만 볼 수 있는 클래식카든 요트든 초호화 문명의 이기들도 많았지만, 시원한 바닷 바람이 살결을 간지럽히는 것만으로도 S는 그냥 이대로 J를 1인칭 서술이라는 안타까운 그 길로는 마지못해 보내버릴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감독님도 여배우들과 막 자고 그러세요?" 같은 말장난을 듣는 에로 영화의 거장과도 같은, 전성기의 알파치노의 카리스마와도 같은, 초대형 로또에 담첨되어 비밀 로또 패밀리에 처녀 참석한 것과도 같은 더없이 격앙되면서도 고조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으니 J가 다시 3인칭 소설을 어떻게든 쓰도록, 어떻게든 발로 쓰든 손으로 쓰든 말빨로 구술하여 속기사가 초딩처럼 기술하도록 만들든, 3인칭으로 소설을 완성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J는 마티니를 한잔 하면서 슈베르트의 실내악을 들으면서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그게 또 그렇게만 어려운 일도, 절대 불가능한 난공불락의 철옹성도 아닐 것으로 보였다. 엇그제 초안을 작성할 때 잡았던 '뒷사람 음료값 지불하기'를 잡고 끝까지 늘어지는 방법도 있었다. 어차피 구성과 플롯, 대화 그런거는 초짜 삥바리에게는 어려운 것이니까 주제 사라마구처럼 그 도시 시리즈를 만들어 보기로 하는 게 좋을 듯 했다. 주제 사라마구도 정통적인 보통의 소설 방식이 아닌 스타일로 연작을 발표해서 노벨상을 철커덕 덥썩 거머 쥐었다. 거의 절대 아닌 것 같아도 소설가들 다수는 노벨상에 대한 욕심이 있다. 그 말을 기억하자. "나 차 욕심 없어." 유사한 대사도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인다. "...안 부러워.", "난 행복해.", "못 생겼네.", "죽어야겄다."... 왜 그게 나쁜가? 아니다. 적당하면 당연히 좋은 것이고 자연스러운 드라마 대사와도 비슷하다. "좀 더 솔직해지자꾸나... 너도 그렇게 야망이 있는 애다. 야망이 뭐가 나쁘니. 늬가 그걸 인정해야 편할꺼다..." 그게 동기부여고 뻠프질이 되어 점점 좋은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는 법이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 모두 발단은 if 코딩문으로 시작한거다.
   그렇게 뒷사람 음료값 지불하기로 바톤을 넘기는 이어달리기 옴니버스로 이야기를 만들면 뭔가 작품이 나올 것도 같았다. S는 마음을 가다듬고 조급해 하지 않고 J에게 마법의 공기를 불어 넣고 어떤 풍경, 연상되는 대상들, 의미 있는 지옥의 묵시록 같은 심연을 마주칠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해서 뻗어버리게끔 아니면 지구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게끔 만들기로 결정했다. 또한 예전 기록했던 Friendfeed, Facebook page, Blog와 다른 소셜 네트워크 포스트들도 참고해 보기로 했다.

   의욕을 고취시키다 절망하고 다시 시도했다 절망하고 오뚜기처럼 일어났다 좌절하고 그러다가 새벽과 아침에 신체적으로 일어서기를 반복했지만 J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반 고흐 같은 예술혼은 없지만 베토벤 같은 불굴의 의지는 부족하지만 뉴 키즈 온 더 블럭의 노래 제목처럼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고품격 소설 읽기, 찾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글이 써진다는 촉은 어떻게 보면 성기를 맞으면 발끈하는 울버린처럼 욕이 가미된 비꼬고 떠보는 식의 탄을 날리는 화법의 빌미 어린 말이 기폭제가 되는 것도 같지만 항상 그런거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다른 예술 분야보다는 주로 책이 가장 형태가 비슷하니까 촉매제가 되는 느낌이다.

   책. 그래 책. 그 가운데 괜찮은 녀석을 만나게 되면 그는 마치 관록미를 숨길 수 없는 원숙한 기량의 생활 노름꾼과도 같은 몸짓을 보인다. 달걀이 아닌 메추리 알을 쥐는 듯 손을 오므려 쥐고서 가운데 손가락만 손바닥 안쪽으로 약간 덜 당긴 채 책 표지에 대고 노크를 한다. '괜찮은데..'라면서 취한 그 포즈가 꼭 자신에게 패를 주라는 신호처럼 보인다. 똑똑 그리고 똑똑. 첫번째 똑똑 뒤에 두번째 똑똑. 왜 두 번 일까? 세 번도 아니고. 사이클 대회에서 1등의 모든 스포츠 선수들의 세러모니도, 샤워실에서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몸매와 얼굴을 감상하는 미남도, 술을 마시기 전에 술이 차 있는 술잔을 테이블에 두드리는 마초도 모두 2번 두드린다. 그렇다고 굳이 오랑우탄인가 고릴라인가가 가슴을 몇 번 두드리는가를 구글이나 야후에서 검색해 보고 싶은 열성까지는 없다. 그런데 수컷만 그러나. 그 궁금함은, 호기심은 고이 모셔 놓고 나중에 천천히 알아가는 게 좋겠다. 남자는 3가지 부류가 있다. 첫째, 세상 모든 여자를 단 10분 안에 꼬실 수 있는 남자. 둘째, 말빨로 꼬시기는 하는데 10분이 아니라 10일, 1달, 1년이 걸리거나 돈을 그냥 일확천금을 들여야 꼬시는 타입. 셋째, 나머지 남자.
   책. 그래 책. 뭐랄까 여러 책 가운데서 품위 있는 소설을 읽으면 자기도 모르게 자극 받는다고나 할까, 괜히 잘 살고 있는 일반인의 마음을 마구 뒤흔들어 놓는다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괜히 생트집을 잡도록 사람을 광인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바로 이렇게 말이다. 아니 이 인간은 생긴거는 전혀 딴 판인데 어떻게, 어떻게... 이거봐 이거봐. 부모가 뭐 있네, 성장 환경이 기가 막히군, 작가라는 사람이 소설가라는 작자가 변호사 자격증을 그냥 운전면허증 획득 하듯이 따고, 원래 허벌라게 겁나게 징그럽게 똑똑한 인간이구먼, 이 인간이 소설가가 되어서 다행이지 만약 그 업계로 나갔으면... 어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까마득하다-아주 아득하다, 저 양반은 원래 돈이 많아서 취미가 책 내기야, 얘는 인생 자체가 파란만장하니까 개인적 체험 만으로 쓸거리가 넘쳤네, 오 이런... 이러다가 욕만 하다가, 험담만 하다가 소설 끝나겠다. 그만 자중하고 우아하게 기품 있는 작품을 정말 쓰기 시작하겠다고 J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범죄자는 범죄 현장에 다시 출몰한다는 정설처럼 결심했다.
   안 중요할 수도 있지만 일단 혹시 모르니 하나를 던져본다. J는 방금 최고를 질투해서 상위 클래스만 헐뜯었다. 하지만 S가 경험한 세상에서는 최고 뿐만 아니라 위 아래, 앞 뒤, 이쪽 저쪽 그 모두를 가리지 않고 물어 뜯는, 오빠라는 단어를 어떤 목소리에 뭐한 어조로 듣게 된다면 미쳐버리는 위인들은 상위 클래스만 헐뜯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은 현실의 공간에서 그들끼리 진짜 물어뜯기도, 뜯기기도 한다. 세상 참 웃기다. 험담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잠시 쉬어간다. 엉덩이가 완전 납짝한 어떤 젊은 가수는 이 세상에 비밀이란 없으니까 남의 험담을 할 때는 자기 집에서 혼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정말 시원스레, 시원스레 막 소리 지르면서 해소한다고 한다. 이거도 일종의 퍼포먼스인가. 그러고서 나중 그 험담의 대상을 만나면 괜히 미안해진다나. 그런데 약간 다르긴 하지만 이런 험담을 대놓고 공개적으로 퍼트린다면 그건 또 유머가 된다. 귀가 막힌 채로 웅변만 하는 남성의 얘기도 텔레비전 코메디 방송에서 편집되면 유머다. 완전 재미있다. 정말 미세한 차이다. 극도로 유명하고 불세출의 개그감으로 코메디의 화신 급인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어떤 개그맨은 다른 동료 개그맨에게 방송 중에 이런다, 대놓고. "나는 늬가 못 우끼면 기분이 좋아."
   J가 나중 미안하고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애틋한 감정을 점잖게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드러내야 할 사람이 소설가만 있을려나. 그러나 그런 걱정은 아무 쓸모가 없는 사서 걱정하는 오지랖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만날 일도 없을 것이고, 아예 없는 얘기는 하지도 않은 데다가, 그 험담은 반어법이었으며, 또한 이건 S가 쓰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 분들을 존경하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지 잘 예측은 안되지만 그런 일은 명백히 인간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가능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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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8

from 소설 2014. 7. 19. 11:43

   그녀는 보통 말을 하는 기회가 거의 없다.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과 배우 케빈 클라인이 먼 친척뻘일까, 소설가 더글라스 케네디가 그 케네디 가문과 동일한 성씨인가. 이런 아무렇지 않은 스몰톡을 나눌 수 있는 기회 말이다. 혼자 살고 있고 혼자 일하고 또 혼자 거의 대부분의 여가를 즐기기 때문에, 그런 생활이 오래 되었기 때문에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현대인으로써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쓸쓸함을 의심할 단계는 이미 옛날에 지나가 버렸다. 가끔 살고 있는 도시 인근의 대학교에 출강할 때 학생들과 몇 마디 말을 섞을 때를 제외하고는 TV나 극장에서 그리고 카페에서 말소리를 드는 것으로도 크게 생활 소음의 부족함을 별로 탓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보통은 친구처럼 언니처럼 스스럼없이 편하게 지내는 어느 사설 미술관장의 외부 손님 접견실을 틈틈히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곤 하였지만 그날은 강변에 위치한 카페의 창가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카페에 들렸다. 지금 번역하는 책은 줄리언 반스의 Arthur & George다. (섬이름을 무명 표기하기로 한 원칙에 따르자면 한쪽에서는 미국식 영어로 번역한다고 해도 될려나) 그런데 그 카페에서 말로만 듣던, 읽기만 했던 뒷사람 음료값 지불하기라는 황당무계한 사건의 주인공으로 본인이 당첨되고 말았다. 뭐랄까 좀 더 선진화된 창업에 최적인 도시라면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테지만 이런 회색도시에서 그것도 여자 로빈슨 크루소 같은 일이 자신에게 닥치고 나니 드라마에서만 보았던 일순간 외부 소음이 차단되고 지난 기억이 소중한 추억이 거리의 드라이브 중인 차안의 사람이 바라보는 가로수처럼 스르륵 스르륵 스쳐 지나갔다. 이건 겸연쩍다고 해야 하나 기쁘면서도 슬픈 낭만이라고 해야 하나, 부끄러움이나 창피한 그런 단순한 감정이 아닌 중학생이 버스나 지하철에서 선뜻 나서서 자리 양보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그 안절부절한 떨림의 기분에 그나마 가깝다고도 짐작할 수 있는 감정을 느꼈다.
   그렇지만 이럴 때도 뾰로통하면서도 세련되게, 절제된 미니멀한 그리고 의연한 태도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뭐에 뭐를 타서 어떻게 꼭 머그 컵으로 주세요.' 라며 평소와 다름없이 주문했다. 그날 따라 카페 창 밖의 풍경은 왠지 더더욱 다정해 보였고 모든 사람들은 무척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으며 어떤 알 수 없는 활력과 자신감마저 파릇파릇 돋아 올라 나비가 나풀거리며 주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성생활은 울트라마린 빛깔의 베일에 감싸여 있다.
   삶은 어떤 우연의 연속인가 보다. 그 뒷사람 음료값 지불하기의 의뢰인은 다름 아닌 A가 대학생 때 단 4명이 전부였던 독서 클럽에 속해 있던 한 남자였다. 그의 이름은 토머스. 그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에 능통하다. 런던, 파리, 베를린, 뉴욕, 몰타 섬을 오가며 살고 있다. 그는 한때 극단을 운영하며 직접 희곡을 쓰기도 했고, 이야기체의 여행 책자를 쓰다가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부터 시작해 파타고니아, 서사모아, 베트남, 이집트, 인도네시아 등 세계 30여 개 나라를 여행했다. 별명은 페이지 터너다.
   다음은 J의 고백. 이런 그러고 보니 개연성도 없고 재미도 없고 말도 안되는 데다가 아무래도 참고했던 실존 인물들로부터 거액의 소송을 당하는 일은 절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에는 팔자 한 번 고쳐 볼려고, 짭잘한 여비 한 번 마련해 보려고, 나름 Gap Year라고 폼 한 번 제대로 잡아볼려다가 쫄딱 망하는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불안에 휩싸였다. 토마스의 약력은 알랭 드 보통과 더글라스 케네디의 약력을 혼합해서 요약한 것이다. 원래는 A와 토마스를 재회시켜서 공동 작곡, 공동 작사처럼 공동으로 소설을 집필하게 할려는 의도였다. 남자 또한 저명한 문학 및 철학 교수인데 유독 소설을 못쓰는 인물로 설정하고.
   J는 하다 하다 여기까지 왔다. 그는 왜 사람들이 1인칭으로 소설을 쓰는지 이제는 아주 조금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어차피 초반의 분량은 조금 뽑았으니 1인칭으로 이어서 쓰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고 우선 조금 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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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7

from 소설 2014. 7. 19. 11:29

   S는 J가 비록 가상 인물이긴 하지만 어느새 정도 들고 배우들 메쏘드 연기처럼 감정이입도 어느 정도 되고 게다가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아스라이 어떡하다가 얼렁뚱땅 그가 본인의 분신이 되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은 J에게 비공개 자유시간을 주고, 그동안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보고, 서점과 도서관, 동물원에도 들릴 수 있는 아주 바람직한 여가 생활을 내어주었다. 그 즉시 S는 자신이 좀 그럴싸 하고 썩 나쁘지 않은 어떻게 아주 잠깐 0.5초만 (절대 1초를 넘기지 않게) 흘낏 보면 자상하게도 (안 좋게 말하면 호구?) 생긴 것 같은 안도감과 약간의 흥분감 그리고 무엇보다 가끔씩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부담감을 떨쳐 버린 내면의 안정감을 맞이한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하드-보일드 문체에 대한 존경심이 부쩍부쩍, 새록새록―스멀스멀은 적절한 표현이 아닌 듯 하다―샘솟아 오르는 마음을 짐짓 모른 채 할 수 만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 직장 동료가 해준 얘기가 생각난다. '이쪽 친구들은 꽈배기 문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배배 꼬는 화법, 원래 남자들은 싫어한다. 원래 그런지 어울려 살아야 해서 그런지 여자들은 보통 나이가 들면서 드세지고 다혈질이 된다. 좀 더 계몽적으로 쓸 껄 그랬나 하는 허황된 생각도 들지만 계몽... 위험한 단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만 전설에나 살고 있는 신들을 제외한 누군가가 지금 이 모든 상황을 엿보는 게 아닌가, 아니 그냥 대놓고 전지적 시점으로 내려보고 감상하고 재미있어 하면서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비웃기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데로 생각이 옮겨졌다. 그 생각이란 녀석은 가만히 있는 적이 없다. 이게 영화야? 왠 뚱딴지 같이 막 어딘가에서 불규칙적으로 미세한 소음도 들려오는 것 같다. 이젠 정말 미친걸까? 그건 아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단 J를 잠시 풀어줬드니 S도 한동안 여행자도 꼬시고 호텔 여직원들의 눈총을 더 애달프게 만들어서 뭐라도 이끌어내 보고 낚시와 그리고 인근 무인도 기행, 미술관 유람등을 하면서 창작의 부담감을 조금씩 덜고 있는 듯이 보였다.
   실 생활에서는 방학 기간이 한두달이고 취업 준비 기간이 어느 정도 되며 큼직큼직한 특종이 유명 웹사이트들에 공개되는 대충의 기간이 짧으면 얼마, 길면 어느 정도 된다고 알려져 있다. 정작 요점은 무엇이냐면 그곳에선 그렇지만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는 단 몇 초면 충분하다. 너무 빠르니까 스토리를 요약하고 넘어가야겠다. 벌써 하품하고 나가 떨어진 독자가 보인다. 머리털이 빠싹 선다. 우선 S라는 인간이 있는데 S가 시간과 자본의 여유가 생겨 어느 섬으로 소설을 쓰러 갔다. 초특급 호텔에서 팔자 좋은 생활을 하면서 J라는 인물을 소설로 만들어낸다. 그 J라는 인물이 글이 안 써진다고 또 이빨만 엄청 까드니만 이제는 진중하게 뭔가 무서운 표정으로 혼자 나름 구상이란 것을 하기 시작했다. 짧으니까 굳이 요약하지 않아도 되는데 괜히 썼다.
   참고로 글의 수준이 왜 이렇게 낮아졌냐 하면 가벼운 소설을 좋아하는 중고딩과 젊은 친구들을 위해서다. 어 그런데 이 말은 어패가 있다. 나이 어리면 모두 높은 수준의 글을 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이 글은 이미 애초부터 (수준 자체를 거론할 깜은 안되지만) 고품격을 지향했으니까. 아무튼 J가 하고 싶어하는 얘기가 구상 단계를 지났다.

   J는 주인공을 하나 만들었다. 이니셜 A로. A의 성별은 여자다. A는 여대생이나 중년의 나이가 아닌 그 중간에 위치한 매우 지성적인 삶을 살아왔을 것 같은 외모의 소유자로 일단 겉모습부터 눈물 겨운 사랑을 한두 번 해본 듯한 막연한 호기심을 품게 만드는 여인이다. 어렸을 때는 다소 아니 매우 머슴아이처럼 생겨서 곧잘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곁눈질과 함께 5m 가다가 한 번, 10m에 또 한번 뒤돌아 보았고 어쩌다 집에 들린 여자 외판원이 남자로 오해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3:3 미팅에서 남자들이 갸우뚱 하면서 여자가 맞나 오해하는 일까지 있었다. 젋었을 때는 일순간 또는 길지 않았겠지만 상류층 젊은이들이 그 눈을 마주보면 사랑의 열병이 계절 동안은 간다고 해서 그녀는 선글라스 매니아가 되었다. 즉, 상류층 여사님들이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나름 그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쪽에서는 어떻게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의 핸드폰은 2대다. 첫째, 갤럭시 라운드. 최근 아마존 폰으로 바꿀까 생각 중이다. 갤럭시는 공적으로만 사용하고 오픈된 소셜 네트워크와 사진, 메모등 몇가지 기능만 이용한다. 둘째, 아이폰. 사적으로 사용하는데 전화번호부에 등록된 사람의 숫자가 적을 때는 24 많을 때는 30 초반까지만 등록된다. 아, 첫째-둘째... 그거 자제하겠다. 만일 A가 남자라면 정말 까탈스러운 재수 없는 까고 싶은 도시의 남자일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그녀는 지갑 속에 들어있는 지폐를 항상 앞뒤, 얼굴 모양, 구겨진 정도를 정렬하기 좋아하는 여자다. 다행이다. 그녀는 거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피곤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한 번 읽은 글, 전부 다 기억하는 포토그래픽 메모리. 한 번 엿들은 말, 모조리 완벽하게 재생할 수 있다. 엿들을 의도는 없을 테지만. 전생에 공주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알려진 그녀의 직업은 좀 재수 없는 번역가다. 그것도 초일류로 알려져 있어서 모국어를 제외한 5개국어에 능통하다. 보통 정상급 번역가가, 최정상급 동시통역자가 다루는 수준으로 그 5개국어를 떡 주무르듯이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번역량도 어마어마해서 제 몇 회 (당신이 살고 있는 국가명) 번역대상도 받았다. 글재주도 상당해서 시대와 대륙을 넘나드는 정도인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목표했던 첫 소설의 완성이 계속 늘어지고 연기되어서 업계 차원에서까지 상당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점이다. 그녀의 단문 만을 꼬박꼬박 챙겨 읽고 기다리는 팬들이 있는 반면에 너무 고품격 수준, 소설의 층위를 따지다 보니까, 자꾸 소설 '여자를 안다는 것'에서 존 르 카레의 신작을 정보 요원들이 돌려가며 즐겨 읽던 장면이 떠올라 쉽게 작업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번역한 책이 몇 권이고 읽은 소설은 얼마이며 쓴 글은 물론 삶의 경력으로 따져도 책 몇 권이 필요할 텐데 말이다. 유령작가라는 영화도 감명 깊게 봤다. 그러면서도 에세이 책만 내고 소설은 발표하지 모한 채로 시간이 너무너무 흘러가 버렸다. 설사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어떤 독자들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어감의 격을 너무 못 견디게 사무치도록 민감하게 느끼는 것 때문은 아닐까 하고. 커트라인에 관한 좋은 인용문이 있다. 

안나 카레니나/톨스토이
p.1-265 얘기는 품위 있게 시작되었으나 너무 지나치게 품위 있었기 때문에 이내 또 막히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결코 바뀔 일이 없는 확실한 방법인 험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p.1-368 그는 언제나처럼 프랑스어로 말을 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못 견디게 냉정한 느낌이 드는 러시아어의 당신(브이)이라는 말과 너무 친밀해서 위험한 너(트이)라는 말을 피하기 위해서. 

   참고로 이 글은 완전 허구다. 만일 사실과 우연히 일치하는 부분이 있을 경우 그것은 완벽한 우연이며 작가의 책임은 없다는 것을 밝힌다. 어 느낌이 신종 파파라치 소설인가. 이 책이 안 팔려도 기분이 그렇겠지만 잘 팔려도 것 참 썩 좋은 일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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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6

from 소설 2014. 7. 19. 11:04

   보통 뉴스와 다큐멘터리와 소셜 네트워크에서 좀 더 비중을 늘려서 다루어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 J에게는, 청소년과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잖아 있다. 실은 비중이 문제가 아니라 잘 찾아보기 귀찮고 힘들고 지나쳐 가는 경우가 맞겠지만 말이다. 영화감독, 방송국 프로듀서, 패션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은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위조 여권, 이중 스파이, 정보단체 남미 지국장 같은 경우는 아니다. 그래서 영화가 있는 것일까. 항상 그 실존 인물을 직접 만나보라, 까레라와 레인지로버 롱휠베이스와 마칸을 모두 굴리며 사는 사람의 얘기에 귀 기울여 보고 싶지만, 책에서 "너무 일찍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지 마라. 스무 살에 평생 너를 묶어 둘 어떤 일을 시작하지 마라." 이런 문장을 읽지만 많은 사람들은 청소년들도 어른들도 좀 덜 신중하게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까 언제 어느 때나 행복이 어쩌네, 무엇이든 미쳐야 하네, 인생을 뭐해라...라는 책들이 서점가 베스트셀러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사람들이 돈, 돈, 돈 하는 이유가 그것이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말빨에 민감하고 절대 주의해야 하는 게 다름아닌 이 세상의 여러 속도들이다. 결혼을 이혼을 또는 연애를 한 번, 두 번, 세 번...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아무튼 소설 쓰느라 책을 읽지 않으니까 글의 수준이 이 모냥이다.
   소설 쓰기. 어떻게, 왜, 무엇을? 그냥 막 쓰는 게 정답이다. 보통은 그래야 하지만 때로는 (가끔만) 부모 말은 듣지 않아야 인생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대략 소설가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치밀한 구상과 방대한 자료 조사 후 정교하고 섬세한 집필 과정에 어마어마한 시간을 들인 후 다시 뒤돌아 보고 퇴고에 퇴고에 퇴고의 과정을 거치는 타입. 둘째, 영감이 떠올랐을 때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일사천리) 쭉 써가는 부류. 나중에야 그것이 영감이라고는 하겠지만 그건 단지 실마리 라거나 사소한 궁금함, 초딩 같은 호기심, 보잘 것 없는 몽상인 경우도 많을 테지만 그 영감은 어쨌든 두번째 가지에 속한다. 어찌됐든 바흐의 초기 작품을 듣는 사람, 거의 없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1번 교향곡? 안 들어봤지만 형편없을 게 뻔하다. 아니 예상한다. 실은 그랬으면 좋겠다.
   그 전망 좋은 어느 날 S는 어느 전기차를 타고 호텔 건너편 이름 모를 파라다이스로 드라이브를 갔다 와서는 잠시 어렸을 적 옛 생각에 빠져보았다. 그 때는 TV 단막극을 보고 혼자 단꿈에 빠져 제빵 학원에 다니면서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데서 쉐프를 하고 있을 먼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고(실은 동네에서 빵집 사장을 하고 살면 흥미로울 듯 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나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대개 이런 공상에 대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던 게 기억났다. 많이들 서로 딴 얘기하는 듯이, 각자 모두 한꺼번에 말하고 듣는 사람은 결국 하나도 없이, 우선 술집 사장을 할꺼야, 그래서 돈을 좀 벌면 건물을 하나 사는거지. 그 후 1층엔 서점을 내고 2층엔 뭐, 3층엔 뭐... 제일 꼭대기 층엔 당연히 자신의 집무실이 위치 하고. 실제로 이 꿈을 적당한 스케일로 실현한 사람들이 드문드문 존재한다. 남자들에게는 이런 게 로망일까. 그 가운데 상위 몇 퍼센트 남자들도 보통 사람들과 하나도 안 다르다. 예쁜 부인과 사랑스러운 아이들 하며 모든 것을 다 갖추었어도 끊임없이 외로움을 타고, 2세의 덜 명민한 IQ의 원인에 대해 분석하기도 한다. 마초성 또한 당연히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완벽히 간직한 채로. 사람 사는데도 거의 많이들 비슷하지만 사람도 그렇다. 
   소설가들이 왜 옛날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 같다. 왜 소설가들이 첫 작품에 자신의 경험을 쓰는지, 거장들이 직접 경험한 것을 그렇게들 쓰라고 하는지 알듯 모를 듯 하였다. 이건 더 쓰지 않아야겠다. 재미없다. 여기서 잠깐, 읽는 중간 S와 J를 잘 구별하시기 바란다. 언젠가 그 둘이 합체 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뭔 얘기하다 여기에 이르렀지. 아 그렇게 S는 J가 뭔가 좀 더 새로운 일을 체험하게 만들고 싶은 데로 집필 의욕에 대한 촛점이 옮겨감을 느꼈다. 이 글의 화자는 꼭 지팡이를 짚으신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노신사를 닮았다. 평생 남장을 하고 다녔던 어느 여류 소설가처럼. 왜 그녀가 평생 남장을 하고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는 실존 인물이었다. 이거 이거 소설의 수준이 별 1개나 가능할런지 의문이다. 아무래도 어떤 독자께서는 1인칭 소설의 어떤 단어처럼 여기에서는 유독 그 단어가 많구나 하시면서 눈을 게슴츠레 뜨며 변죽을 올릴 것이 뻔하니 이마에 땀을 쭉나고 호흡이 가빠진다.
   J는 이렇게 생각했다. 해외에는 안 먹히지만 국내용으로 출판사와 독자들 모두 함께 흐뭇하게 만족할 만한 베스트셀러는 남들이 모두 쓰고 있다. 문학적으로 널리 공인 받고 알려져서 만인의 존경까지 받는 문학 작품 또한 전업 작가들이 독점한다. 그렇다면 색다르게 영혼 체이지를 주제로 이 소설을 풀어 가볼까? 사람은 그냥 타고난 데로, 생긴 데로 사는 게 낫다. 그래서 일단 닥치는 데로 써서 분량만 채우리라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 고품격 소설에서 삘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통속 소설도 B급 소설도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훌륭한 인문 교양서의 고도로 순수하고 극도로 집약된 밑줄 긋기를 모아, 모아, 모아서 소설체로 승화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일단 모토는 정해졌다. 닥치고 쓰기, 일명 닥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J는 일단 소셜 네트워크 업계에서 조금 일해 보았던 경험을 살려 본인이 부러워하고 멋져 보이고 공인으로 인정받으면서도 뭔가 도전적인 인생 행보를 보여 주고 있는 인물을 설정해서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여기 주인공이 있다. 실제 이름도 교우 관계도 출신에 대한 기본 정보도 세간에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의 고급 리크루터들 사이에서는 이미 불세출의 기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간단히 P라고만 불리며 그의 최근 경력에 대해서만 노출되어 있다. 아니야, 아니야. J는 이거도 별로 재미있지도 않고 몰입하게 만드는 그 어떤 요인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잠자코 곰곰히 의자에 앉아서 TV에서 봤던 사색하는 듯한 꽤 괜찮은 포즈를 취하고서 드립 커피를 커피 광고에 나오는 배우처럼 자세를 잡고 한 잔 하면서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생각해봤다. 계속 생각만 해. 꼭 그 실마리가 약속된 것처럼 풀릴 것이란 듯이.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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