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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4. 7. 22. 16:16

   S의 심연을 휩싸고 있는 불안한 기분의 분위기를 묘사했으니 잠시 작가의 집필 의도에 대해서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겠다. 고품격에 이골이 나는 독자들에게까지 불친절한 작자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삶도 인생도 그 무엇도 더 이상 재미없어 할텐데 소설까지 신물나면 그러면 안되니까, 보다 더 정확한 기획의도는 끝부분에 나오겠지만, 지금 즉흥적으로 떠오른 '왜 쓰는가'의 답은 이와 같다. 환상 소설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는 없고 다만 독자를 골탕 먹일 의도는 전혀 없다는 점 그리고 소설은, 소설이란, 모름지기 이야기란 이렇게 쓰면 안된다는 그 말을 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누군가는 크게 불만을 표시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쯤이면 누군가는 아니 아마 상당수는 (몰입도는 처음부터 없었고) 슬슬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고 혼잣말을 하실꺼다. 작가도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들을 읽으면서 '뭔가 있어, 뭔가 있어, 이제 뭐가 나올꺼 같아. 그러다 끝나'라면서 나가 떨어졌으니 일반 독자들은 당연히 그보다 훨씬 저급한 수준의 이와 같은 소설은 읽는 중 집어던질만 하다는 결론이 쉽사리 나온다. 참 얇은 독자층의 평균 연령도 점점 내려간다. 처음부터 청소년용 하이틴 모험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소설 제목에 대해 쓰거나 고민해보지 않은 작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이 책도 여지없이 그 과정을 거쳤다.
그래도 나름 소설이라고 것 참. 이거 저거 요거... 엄~청 생각했다. 그러다 i envy you. 어 이거 괜찮네. 그런데 또 생각이 바뀌었다. 블로그,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냐면 왠지 모르게 어디선가 또 누군가 다급하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애원하는 듯한 환영을 꿈꾸듯이 타의적으로 언제부터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이 안 써진다는 얘기 만큼이나 만인에게 공통되는 인간적인 주제다. 하지만 이 얘기는 길어지면 재미없으니까 이만 줄여야겠다.

   오 드디여 사무치도록 안타깝게 사건이 없는 이 가여운 소설에 이제야 그 발단을 이어갈 매치 포인트가 생겨났다. 자생했든 따라했든 삘 받았든 어쨌든 하나의 실마리가 생겼다는 것은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을 품고 있던 가운데 S 본인이 궁금해하던 시간의 구부러짐 현상을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발견했다. 그 믿을 수 없는 미스테리는 아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과연 그게 무엇인고 하니 어느날 S가 기분전환 삼아 들렸던 어느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아담하고 조용한, 산뜻하지는 않지만 천장이 낮은 서점에서 본인이 집필했던 이야기가 단행본으로, 어엿한 한 권의 책으로 출판가의 유명한 과장된 찬사들과 함께 월계관을 포함한 조잡해 보이는 여러 마크가 덕지덕지 붙여진 책으로 출판되어 지금 이 순간 팔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 뭐뭐뭐... 마치 거짓으로 보이는 그 마크들은 믿음직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멀더와 스컬리 요원이 부럽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가 캘리포니케이션 주인공을 따라하는 모습을, 행위예술이라는 교향곡을 작곡한다는 착각과도 같은 환영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히 몹시 흥분해서 곧바로 그 서점을 뛰쳐나와 호텔까지 질주해 줄곧 내달렸다. 
   시간의 구부러짐을 확실하게 또박또박한 목소리와 차분한 어조로 설명해 주었던 바텐더와의 일화 뒤로 자신이 쓴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되어 나온 기적을 보고 나니 그는 순간 다잡을 것 같았던 대물을 눈앞에서 놓친 그 허망함이라는 감정을 느꼈을리 없다. SF 영화나 소설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건 개인의 타인화라고 해야 할까, 살아 있는 실존 인간의 DNA 표본 화석 박물화라고 불러야 하나, 도무지 믿을래야 믿을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급기야 S는 그 무수한 감정을 뒤로 한 채 어떤 오로라와도 같은 모험과 꿈과, 이상, 초록색 정치함과 로맨틱한 기분에 둘러 쌓여 지구 끝까지, 우주 저 너머까지 가고 싶은 본심과 가봐야 겠다는 이상한 의무감이 심연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을 스스로에게 숨길 수 없었다. 그 불가해한 불가사의 사건을 보고 나니 일단 자신의 착각이 아닌가 의심하며, 자기 자신이 혼자 만들어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혼잣말을 주문처럼 되뇌이면서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난 미치지 않았어. 저는 미치지 않았어요.
   일순간 파닥하고 안도감을 느꼈다. 어찌되었든 그 놈의 수준은 낮지만 자위 행위, 섹스, 탈출, 도망, 살인, 추격, 모험, 액션, 저격, 암살, 성애의 묘사, 흔들기 같은 젊은이들이 조금 더 솔깃해 하는 주제를 다루지 않았던 게, 되려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재주가 없는 무능력에 대해 예전과는 다르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알싸한 테마들에는 이런 이야기도 포함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비성년용) 동화를 주로 썼던 JK 롤링이 발표한 탐정 스릴러에 나오는 내용이랄지 영화 크래쉬 (1996)의 모티브와 딱 하나만 닮은 어느 미스 유니버스 지역 수상자의 교통사고와 체념과 뒤이은 결혼이라는 여정. 그리고 스포츠 튜닝카를 모는 터프가이가 무수히 많은 그 첫만남들에서 여자를 태우고 먼 고속도로까지 가서 어떤 선택형 질문을 건넸을 때 딱히 묘사하기는 까다로웁게 그곳에서 도시까지 걸어가는 여자는 거의 없었다는 일화 같은 이야기들. 어느 시골 마을 꼬마가 방바닥에 몸을 밀착시켜 엎드린 후 약간의 움직임을 반복하던 찰나 꼬마의 엉덩이를 아빠가 지긋이 발로 밟았던 일과 꼬마가 그 행위를 페니스(그땐 모국어만 알았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운동이라 불러서 온 동네 아줌마들을 웃겼던 일(이건 퍼포먼스 아니다), 그 꼬마가 성장하면서 그리고 성장해서 어떻게 인생을 살았는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앞으로 소설을 더 쓰게 된다면 따라하기, 흉내내기, 장점 본뜨기, '만일 이 이야기가 영화나 드라마로 나오게 된다면'이라는 가정등을 재차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그런 쌈박한 내용을 집어넣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런 상황에 그런 안심이라니 참 안 어울린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S의 이야기가 신기하게 책으로 벌써 나와 버렸던 것일까? 혹시 잘못 보았을까? 그 쇼크는 마치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하다가 마주 오는 사람과 머리를 빡하고 부딪히는 충격과도 비슷하다. 당사자에게는 경악스러운 일이 틀림없을 것이다. 당사자가 아닌 이 소설의 독자는, 거리에서 길을 걷다 마주오는 샤넬 넘버 파이(π) 향기가 나는 상큼한 이성과 (누군가에게는 동성) 맞닥드려 한 7번 이상 한켠으로 비켜줄려다 계속 똑같은 방향으로 마주했을 때의 상황과 아주 약간 닮은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대가 말이다. 아무래도 희망사항 같다.
   제조사에서 노트북에 프로그램을 심은 채로 판매했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경로에 의해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일까? 또는 너무 오버해서 지나친 억측으로 만들어낸 일시적인 조현병 초기 증상일까. 시간의 구부러짐 현상도 아직 온전히 받아들이기 버겨운데 자신이 썼던 노트북 안에만 존재했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다니, 결국 다시 그 서점으로 가서 확인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같아서 바쁜 일도 없으니까 그 서점으로 갔다. 그런데 가는 도중 또 버럭 겁이 나기 시작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그 서점이 없어져 버렸으면 어떡하지? 그 서점에 갔는데 그 서점 주인은 없고 그의 딸이 그 서점을 운영하고, 그 주인은 10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해서, 되물어 볼 수 밖에 없다면?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히 S가 오해했던 그 책은 S와 이름이 비슷하고 약력이 아주 일부 유사한 데다 저자의 사진도 없고, 내용도 상당히 판타지와 흡사해서 결코 자신이 기록했던 내용이 외부로 유출된 후 책으로 나왔다고 볼 수 없었다. 사건 전후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보기 보다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지금 이대로 안심하는 편이 더 좋을 듯 했다. 본인도 어떻게 보면 그걸 간절히 바랬다. 

   이 소설의 학술적 가치가 어떻고, 달달한 로맨스처럼 얼마나 은근하고, 평범하지 않은 정도에 필사적으로 천착하는 것도 중요할 테지만 좀 더 쉽게 펼쳐질 이야기의 기대감이라 부를 수 있는 마음을 잘 구술할 수 있느냐의 관건은 그 전대미문의 핵심은, 마초의 스팀을 선한 의미로 얼마나 뽑아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가벼운 입맞춤 하나에 두꺼운 책 한 권이 몽땅 소요되는데 누군가 그 책을 다 읽었어, 권태나 결혼생활, 예전 연인 사이였는데 지금은 그 연인을 가족이라 부르는 걸 설명하는데도 상상하기 힘든 기다란 설명이 필요한 글을 누군가가 묵묵히 꾹 눌러 참고 모두 봤어, 그러한 스팀이 모이면 커피 두잔을 위한 티포트를 끊일 열기가 아닌 거대한 규모의 빌딩, 바로 그곳의 난방 시스템을 가동시킬 수 있을 정도의 스팀이 된다. 오렌지 빛 얼굴의 단발머리 소녀나 와일드한 빨간색 숏컷 주근깨 아가씨가 한숨을 이마로 불어 앞머리를 올린다면 그건 누군가의 미소를 덥히는 정도의 매직 버블이다. 현실과 드라마에서는 후자가 멋지고, 재미나면서 진중하고 괜찮은 소설을 쓰는 데는 전자가 요긴하다. 물론 바꿔도 된다. 적도의 태양, 지하 세계의 마그마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더 이상 뭘 바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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