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뇌를 열고, 까고, superMRI로 찍을 수는 없으니까 쭉쭉 그의 의식을 S가 파헤치고 있다. 그 기법이 의심된다면 마르셀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를 놓고 이 소설과 동시에 읽어보시길 바란다. 당장 J의 생각은 이렇다. 1인칭으로 쓰지 않겠다. 머머 했다, 머머 했다, 머머 했다... 아니야. 완전 재미난 스토리를 직접 체험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았고, 좀 웃긴 일도 많았지만 모두 그저 단편적인 것이었던 데다가 요즘 독자들은 풋내기도 아니고 수준도 그렇고 최소한 비교에 능하다. 요즘 독자들은 이런다, 옛날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제 책은 외국에서는 잘 안 팔립니다.'라는 중견 작가의 글을 읽고 '안 팔리게 썼네'라고 그러고 책 뒤 표지에 마치 누구+누구 같다는 평이 있으면 적당히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도 서로들 모른 체 하지 않을 만큼은 순진하지 않다. 겉으로 표출되지 않는 혼자의 다듬어지지 않는 유약한 생각은 다소 냉정하고 영악한 면이 없잖아 있다. 일상에서 너무 솔직해도, 드라마에서 연기를 너무 잘 해도 탈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일반 독자와 프로페셔널 장사꾼은 놀랍게도 상당히 닮아 있다. 어떤 점은 까무라치게 빼다 박았다. 다음은 한켠의 짧은 생각에 반하는 모든 소음을 종료시키는 전문가의 한마디다.
- 익명의 프로모터: "현재 가치로 봤을 때 최고는 U2거든요... 떼창 만으로 뮤지션의 자존심을 충족시킬 수 없죠..."
- 어느 무대전문가: "장난해요? 폴은 세 번 공연 만으로 25만명을 모으는 레전드입니다."
대개는 일반 기업체가 남의 다리 피나게 긁는 자선구호 단체가 아니듯 가려운 자기 다리를 열심히 긁는 보통의 소설 독자들은 자신의 시간 자원을 소중하게 사용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J는 시점이고 주제고 플롯이고 다 필요없고 앞서 생각한 것처럼 막쓰기로 작정했다. SF 주인공처럼 또 원점에 왔나? 아무튼 보도 듣도 못한, 밑도 끝도 없는, 전무후무한 누보로망 스타일로 쓰기로 했다. 누보로망을 잘 아는 사람, 0.1%는 될려나. 보통의 독자는 여자들이 생각하는 남자들처럼 그렇게 친절하지가 않아서 틈틈히 주의를 환기해주고 조금은 격이 떨어지는 솔깃한 얘기도 집어 넣고 웅변가 같은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독서에 집중하게끔 끊임없이 유도하고 다그치고 다독이면서 독자의 정신을 마취시켜야 한다. 그 놈의 유난떠는 수준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고품격 소설을 일일이 오른손이나 될 수 있으면 양손으로, 이왕이면 몽블랑 한정판 몇 주년 기념 만년필로, 의식의 진화를 위해서 꼬박꼬박 필사하는 게 필요하지만 세상엔 속성 마스터 방법이란 게 비밀스럽게 존재한다.
안되겠으니 하드보일드든 아마존 베스트셀러 스타일이든 뭐든 흉내 내서 막 쭉쭉 빼야겠다. 일단 주인공이 한명 있어야 한다. 주인공은 남성이고 실업자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남들처럼 아이폰이나 데스크탑으로 트위터, 인스터그램, 페이스북을 본다. 그리고 데스크탑으로 뉴욕 타임스와 Revision3도 본다. 옛날에는 Diggnation을 봤지만. 그가 하루 화장실을 몇 번 가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데 돈이 없어서 그냥 대충 때우는지, 취미나 기호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도 당연히 남성이니까 고급 자동차를 좋아한다. 다만 소리와 디자인이 좀 더 섬세한 타입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는 본인 만의 차도 없고, 노트북도 없고, 애인도 재산도 이성 친구도 게다가 비밀이란 자산까지 단 하나도 없다. 없는 게 뭔 자랑이라고 말이다. 그런 그를 어느 여자가 좋아하겠는가? 완전 가난한 얼간이, 탕아, 국가대표 호구다. 재산목록 1호, 2호, 3호... 그런 거 당연히 없다. 나이도 있는데 소설 제목만으로 끝말 잇기도, 자동차 이름 끝말 잇기도 못한다. 수많은 자동차들 옵션은 물론 가격의 제일 끝자리 단위까지 모두 꿰고 있는 남성은 신기한 경탄의 대상이다. 존경스럽다. 또 말빨도 시원찮고 영화배우 같은 외모도, 든든한 재산도 없이 몸만 썽썽하다. 하긴 그게 한밑천이다. 답답허다. 커서 뭐가 되겠다는 것인지. 아 이미 다 컸다. 그래도 원래 이런 삐리한 인물을 내세워야 독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흥미를 느낀다.
원래는 수식어가 필요없는 최고 만을 좋아하는 그였지만 어디 그만, 어디 상남자들만 그러겠나. 최고를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말한다면, 거의 모두 최고를 좋아하지만 귀찮아서 잘 움직이지를 않는다. 세계 대도시의 번화가 빌딩 위에서 돈다발을 뿌린다면 막 우르르 몰려 들겠지만. 최고를 싫어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런다면, "이 자식이 나꾸 나와라 마라 하고 있어." 또 그런 식이다. 하여튼 최고라, 최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대충 얼추 때려 잡아도 10억명이다. 나 10억명 가운데 1명이야, 나 10억명 가운데 1명이야 그런다면 초딩도 아니고 그 이전 단계라는 뜻이다. 대니얼 길버트의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330페이지 지문fingerprints에 대한 신화를 읽어본다면 누군가는 뜨끔하면 괜찮은데 그마저도 힘들면 곤란하다.
하여튼 의뭉스러운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지적 욕구가 풍부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지적 욕구가 풍부하다. 어떤 지적 취향인가는 좀 의심스럽다. 그런 그는 개인 블로그를 하나 운영하고 있다. 꼭 탐 피터스가 '블로그가 내 인생을 바꿨다'라고 해서도 아니고 게리 바이너척의 "내 영혼을 걸겠다."는 조언 때문도 아닌 그냥 그런 지식을 알기 전부터 기록도 남기고 재미난 이야기와 궁금한 것들 정리해 적어 놓고 심심풀이 땅콩으로 가지고 있는 거다. 다만 굳이 한가지 장점을 꼽아보자면 포스팅의 수준이 가파르게는 아니고 아주 미미하게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블로그에 이상한 댓글이 하나 달렸다. 누가 장난하는 것으로 여기고 아무렇지 않게 넘겨 버렸는데 그게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앗 어디선가 리드미컬한 하품 소리가 들린다. 이쯤에서 요점을 반복하고 단락을 넘겨야겠다. 주인공의 블로그에 이상한 댓글이 하나 달렸다. 누가 장난하는 것으로 여기고 그냥 넘겼는데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