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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4. 7. 22. 15:09

   A는 오래전 한때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를 꼽으라면 1초의 주저하는 몸짓이나 표정, 의구심 없이 즉각 극동의 어떤 소설가를 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극동식 이야기만의 장점이 있고 묘한 분위기가 있으며 뚜렷한 컬러와 명료한 전개, 고정팬 외에도 뭐라 설명하기 곤란한 그런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에 대해 도대체 그 매력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함을 풀어내지는 않고 그냥 그렇게 외적 나이에 맞는 책을 읽고 내적 취향에 따른 소설에 대한 컬럼을 쓰고 적절히 자타의 기호에 부합하는 책들을 번역하는 가운데 본인이 앞으로 소설이라는 것을 쓴다면 어떻게든 극동식 소설의 비밀이랄지 장점이랄지 뭐라 부르기 애매한 그 뭔가를 꼭 포함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람들은 거의 자기 이름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물론 자기 이름이 마음에 안들어 바꾸고도 싶어하고 영화처럼 다른 이름의 여권이 여러 장 있다거나 정체성이 다른 여러명의 '나'로 살고도 싶어한다. 그러면서 인터넷 검색창에 자기 이름을 입력해서 검색해 보는 것을 썩 싫어하지는 않고 또한 질문을 받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 이야기를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면 매우 흡족해한다. 책에서도 자주 나오는 게 그거다. 당신은 행복한 편인가?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먹고 싶은 것은? 어디에 가고 싶나요?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예요? 하고 싶은 일은요? 나중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나요? 이야기속에서 A가 B에게 묻더래도 독자는 A나 B로 자신을 대입시켜본다. 일상 생활에서 친구들이, 술집에서 남자들이 하는 얘기도 그렇다. 어떤 멋진 영화에 나오는 차를 타고 싶다. 그 차를 갖고 싶다. 으으으! 언제는 영화에 나오는 허름한 볼보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으리으리한 차 이름들? 이 소설의 전체 독자 가운데 반틈은 남자다. 남자들은 럭셔리카 이름만 들어도 좋아한다. 라디오헤드처럼 팬들이 자유롭게 가격을 매겨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여건도 네임밸류도 없다. 물론 독자 수요 예상이 틀릴지도 모르지만 가상 독자와 인세를 놓치면 아마도 슬플 것 같다. 상심이 크겠지.

빠에서 마담이 손님에게 묻는다. 

  • 마담: 오빠 왜 결혼 안 해요?
  • 손님: 음 그냥 돈 좀 더 벌고 나서, 좋은 차 몰고 돌아다니다 놀면서, 여러 이성을 좀 더 만나보고, 나중에 정착해야지.
  • 마담: (함박웃음) 이봐, 이봐. 남자들 다 이런다니까.

극동식 소설의 장점으로 되돌아와서 그 가운데 하나를 들자면 내 욕구에 충실하다는 것과 여러 규격의 다중적 공동체 가운데 속해 있는 개인의 의무와 질서에 대한 미묘한 역동성을 잘 다룬다는 점이다. 전자는 그러한 거 같고 후자는 다른데도 다 그런가 아니면 그냥 평면적이고 수평적이라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전자, 하긴 그게 뭐가 나쁜가. 스누핑은 어디, 어디가 낫다. 스케일과 표현은 또 어디는 어떻고 어디는 어떻다. 개인적 취향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추리소설과 대작 온라인 게임은 닮았을까? 그런 대작 온라인 게임 광고를 보면 완전 꿈과 이상, 모험, 사랑, 인생, 우주... 뭐든 다 있을 것 같지만 실제 해보면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린다.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젊은이라면 드물지 않게 유명 화가의 화보를 간직하거나 학교 도서관에서 보기는 했을 것이고, 유독 어떤 가수나 작곡가를 좋아했을 것이며, 특정 브랜드에 꼿혀 있을 것이다. 매장을 기웃거린다든지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에 전화를 걸어 카달로그를 받아본 일들이 1인칭 소설의 밀도에 포함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와 같은 일은 중년에게는 덜 흥미로울 수 있으니 결국 정말 중요한 주제는, 시점은 2인칭이라고 생각했다. A도, J도, S도. 그리고 당신도, 오 그대도. 너와 그대 사이 그리고 삿대질과 골-세러모니.
   한편 S는 최신형 레몬 노트북이 왠지 진부해 보여 글이 안 써지니까 도구를 탓해야 하니까, 뭔가 변화가 필요해서 매니아들만 로망으로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한다던 수동식 타자기를 하나 마련했다. 그가 섬에 내려와서 글을 쓰겠다고 마음 먹고 행동에 옮겨 실행한지 거의 시간이 몇 달 정도 상당히 지나간 것 같고 틈틈히 무인도에도 갔다가 산 꼭대기에도 올라가고 비밀 클럽은 물론 마라톤도 뛰고 인근의 여러 작은 섬에도 놀러갔다가 조금 멀리 떨어진 섬으로 가서 싸이클 대회에도 참가했었다. 그런데 이렇다 할 성과가 없길래 마음을 편히 먹고 뭐 안 써지면 어떠냐고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휴양생활에도 더욱 편안히 전념해야겠다고 스스로 본인을 다독거리던 차에 어느덧 월드컵 시즌이 찾아왔다. 그래서 가벼운 대화도 할 겸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올라가서 칵테일을 한잔 하면서 바텐더로부터 얘기를 듣고 보니 본인이 그 호텔에 묵은지 벌써 수년이 되어 간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호텔의 여러 직원들과 사장과 이사단은 물론 근방에 상당히 유명한 인물로 소문이 났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공간 이동을 하고, 시간을 리셋하며, 장자 사상이며 나비효과도 있고, 현실에서 초일류 과학자가 시간의 구부러짐에 대해 학설을 내놓아 학계를 발칵 뒤집었다가 다시 학계를 세계 3대 후라이팬에 올리기도 한다지만 지금 이 순간, 어떻게 그런 일이 바로 이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지 의아해 하면서 하나하나 꼬치꼬치 차분하게 참을성 있게 이것저것 확인하고 검토해 보았다. 그러던 중 아주 기가 막히게 신기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 팔자 좋은 파라다이스 생활을 하고 있으니 더 믿기 어렵겠지만 그 불가사의한 현상이 일순간 환하고도 분명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즉, 시간의 구부러짐. S의 개념상 1년이 객관적 세상의 몇 년과 대충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아련히 유추해 볼 수 있는 근거가 셀 수 없이 많은 가운데 과거의 그 비개인성이 점점 탈개인성으로 바뀌어져 가는 서사를 어렴풋이 조금조금씩 깨닫고 놀라면서 어쩔 수 없이 발아들이면서 좀 전의 흥분이 가라앉고 태연하게 그 비상식의 여정을 모두 인정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우주여행도 아니고 가당키나 한 일일런지 참 어이없는 깨달음이었다.
   잠을 안자는 또는 못자는 사람이라거나 영화 주인공과도 같은 초인도, 만화에서나 나오는 괴물이 아니라 남들과 똑같이 아니 남들보다 덜 뛰어나지만 완전 똑같이 살고, 일상을 겪어 나가고, 음식을 먹고, 도시에 살고, 사람을 구경하고, 사람과 대화하고, 바다를 바라보지만 하루나 한달이라는 기간에는 깨닫지 못하는 하지만 몇 년이 흐른 후에는 알게 되는, 마치 스토리의 반전, 학문 이론의 역설과도 같은 무척이나 설명하기 까다로운 그런 시간의 구부러짐 현상이었다. 혹시 S는 그가 쓴 소설에서 J가 받았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제의가 역으로 자신의 현실로 옮겨져 지금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아닐까 하는 당연한 의혹과 얼어붇은 의심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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