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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9

from 소설 2014. 8. 25. 15:50

   S는 최근 타고 다니는 파나메라의 꼬투리를 고급스럽게 그러면서도 상대방 기분 나쁘지 않게 넌지시 돌려서 그 측에 알린 결과 차를 잠시 바꾸게 되었다. 차 이름이 나오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어딘가의 지구 반대편 독자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보인다. 지가 먼 천리안이라고.
   차 차 차, 자동차 자동차 자동차. 그 업계에 있다면 어쩔 수 없거나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른들은 어떤 적당함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다. 정치? 예를 들어보자. 함부르크에 사는 어느 남편은 M 얘기를 달고 산다. 어쩌고저쩌고, 이러쿵저러쿵, 뭐라 뭐라, 누구 누구 누구. 그 남편의 부인은 M은 그냥 M이고 모종의 적당함과 끕과 격과 품위를 덜 못 견뎌 하는 듯 보이는 1차 양육자이며 존 르 카레나 본 시리즈 같은 작품을 소설이 아닌 영화로 즐겨 보는, 매니아라 불리면 무척이나 부끄러워하는 빈곤한 저급 매니아다. 남편은 뉴스, 토론, 강의, 스포츠, 작업(작업?) 그리고 TV를 좋아한다. TV는 완전 최신품 최고가 상품이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한달 두달 세달, 5년 10년 15년... 우아한 부인은 뒷목을 잡지 않더래도 수다가 늘면서 그 우아함을 처음에 또는 나중 지녔을지 추구하기나 했을지 의심하면서 그렇게 삶을 즐긴다기 보다는 적응해 가면서 나이가 든다. 정치는 어렵다. 하긴 세상사가 쉽지 않다는 것쯤은 초딩도 안다. 이쯤 되면 고급 독자라면 골 세러모니 표적으로 당첨되기 싫다면 그 바디랭귀지 한번 해보시라. 직접 해보면 완전 재미있다. 조금 어중간한 코메디언의 손가락과는 차원이 다른 그런 고품격 웃음을 안겨준다.
   그래프 기울기가 시원한 좋은 주식도 직선처럼 보이는 곧게 뻗은 선을 자세히 보면 계단식이거나 우락부락 울그락불그락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양새를 비쳐 준다. 페이스북의 영특한 직원들이 하루 종일 똑똑한 주커버그 이야기만 할까? 그렇다면 그건 직업을 잘못 고른 것이다. 뉴스 앵커가 딱인데 말이다. 뉴스 앵커를 꿈꾸는 청소년을 탓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럴리 없겠지만 혹시 모를 우주 미아의 희박한 가능성으로 이 소설이 명성을 얻는다면 그 이름값은 그저 우연에 의한 것이고 인류를 위한 것이며 발빠르게 지금 미리 기록해놔야겠다. "좋은 말 할 때 리스트에서..."
   음 삼천포에서 다시 돌아와서 S는 그렇게 차를 맡기고 돌아다닐 일도 별로 없으니까 다른 자동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다시 호텔의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침대에 훌쩍 몸을 던져 찍 뻗은 채로 온 몸의 긴장을 풀려고 했다. 그러다 생각했다. 카프카와 페스트 그리고 카뮈가 "나는 이 책을 읽고 뭐를 썼다."라고 말한 그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어차피 마초적으로, 강한 남자 스타일로, 냉철한 초록색 피를 지닌 뱀파이어 특급 변호사식으로 보자면 카프카와 카뮈 작품군은 참 한동안이나 재탕되고 판박이로 인기가 끊이질 않고 있기 때문에 뭔가 삘 받아서 귀신들린 듯이 글이 써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처음 읽은지 약 20년은 되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한번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호텔에 숨겨진 미스테리한 전설을 밝혀내려는 의도로 여러 사람들에게 건네는 S의 말빨은 고품격 상류층 인사들의 화술과 습관과 예법에는 어울리지도 먹히지도 않고 '상태가 좀 안 좋은 거 아니야?'라는 의중을 파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눈빛을 받는 것도 지치고, 본인 스스로도 따분하고 권태롭던 와중에 그래도 인근에 꽤 유명함을 으시대는 경치, 그런 장경을 연출하는 협곡이 있다하여 어느 날 S는 그곳에 놀러가기로 결심했다. 근처에 바람 쐬러 가거나 가까운 곳으로 여행가는 데도 뭐 굳은 결심이 필요한지 의뭉스럽지만 말이다. 굳이 그 명승지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안해도 그것만 전문적으로 캐내시는 직업이 있다.
   그렇게 하여 그날 S는 택시를 탔다. 차는 몇년형 뭐였는데 외형은 특별할 게 없었지만 실내가 더없이 기품이 느껴지도록 꾸며져 있었다. 뭐랄까 꼭 그 실내공간에 앉기라도 한다면 우디 앨런의 어느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은밀한 환상에 빠지게 되는 우연처럼 (음슴하게나 축축히는 아니고) '오 사랑이, 반한다는 게 이런 거였어?'라는 기분과 흡사하게 휘말려 들 것만 같다는 느낌? 아무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잠시 후 목적지로 가는 도중 S는 그야말로 바지에 오줌을 쌀 뻔 했다. 실제 조금 저린 것도 같다. 나중 호텔로 가서 확인해 볼 것이다. 뭔고 하니 그 운전기사 양반이 운전을 F1 선수 뺨을 치는 듯 한다는 거였다. (요즘은 왜 이렇게 영화배우나 전문가를 뺨 치는 사람이 많은건지..) 이를테면 유머도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을 때나, 시간을 두고 드문드문 떠오르는 유머가 각별하듯이 나중 가끔 그 기사님, 영화 택시에 나오는 배우와 닮지는 않았지만, 지금 살아 계실까? 그런 느낌. 성질 좀 죽이고 사시질 그러시나...와 같은 잡념을 불러일으키는 마성을 지닌 그런 정도의 운전 스타일, 살면서 딱 1번이라도 직접 만나 보기는 힘들다. 남자들이 아무리 자기가 운전 잘 하는 줄 알더래도.
   그렇게 경치 좋은 관광지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햄버거 패드를 빠싹 구우고 달걀 후라이를 세계 3대 후라이팬에 지져야겠다. S는 그곳에 있는 폭포와 정원과 성지들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다가 왠 토끼인지 족제비인지 담비인지 모를 어딘가로 몹시 서둘러 가고 있는 어느 이름 모를 귀여운 동물을 짐짓 흘겨보다가 그 친구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계속 따라가다 보니 뭔가 일이 잘못되어 간다는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길을 잘못 들게 되어 계속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오솔길을 지나가야 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안개가 워낙 자욱했던 탓에 음산한 분위기 때문에 그곳이 동굴 같기도 하고 또 그 인근을 계속 빙빙 챗바퀴 도는 것만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서 어느 창고에 다다랐다. 그 창고의 내부로 가보니 그곳은 어느 도시의 외곽 야트막한 산 중턱에 위치한 폐허화된 놀이공원이었다. 한때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신나는 음악과 솜사탕이 가득하고 남녀 혹은 어느 동성 사이의 우정과 사랑을 싹티우던 놀이기구들이 우람하게 포즈를 취하며 묵묵히 땀흘리며 일하던 디즈니랜드였던 장소였을 텐데 지금은 거의 황무지에 가까운 녹이 슨 시소와 그네들이 외로이 위치한 한적하고 을씨년스러운 동네 놀이터 같았다. 그 분위기의 한켠에는 멀리 도시의 풍광이 보였다.

   곧바로 S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런 뭐야. 여기는 어디지... 그 ..."

  그곳은 바로 S가 옛날 살던 도시를 닮았고 그가 쓰고 있는 소설 속의 J가 살고 있는 도시인 것 같았다. 완전 투덜투덜하며 겁인지 무엇인지 모를 감정에 빠져서 허겁지겁 왔던 행로를 되돌아 갔다. 그렇게 관광지로 그렇게 다른 리무진 버스를 타고 호텔로 되돌아왔다. 그날 S는 멍하니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귀신에 홀린 듯 환상을 보고 환청을 듣는 사람처럼 얼이 빠진 채로 시무룩해 있다가 잠이 들었다.
   그 다음날 파나메라 수리가 늦어져 예비로 기록해 놓았던 Ford 슈퍼 듀티 한정판 7.4 가솔린 차량이 S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사람이 이상해져 버린 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고 너무 궁금하면서도 암담하면서도 거대한 어떤 겁, 겁 때문에 그 호기심을 풀어낼 수 없어서 궁금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뭐야 이건, 시간의 구부러짐 다음에 이제 공간의 꺾임이야?"

  까마득한 옛날에 지구는 평평하다고 알려졌다가 갈릴레오 갈릴레이로 시작하여 현대 과학에 이르기까지 지구는 둥글다고 밝혀졌다. 그러다가 저기 저 서쪽에 사시는 어떤 분이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을 펴내셨다. 미래에는 무언가가 빛보다 빠를려면, 외계인을 만날려면 찾아갈려면 그분(어린이)들처럼 생각이 유연해야 하나.
   음 그렇다. 극히 일부 독자의 호평 후에 이어진 앙칼진 황당함, 즉 지금껏 극사실주의를 고수하다가 문체의 변형과 장르의 혼합은 뭐 그냥 그렇다지만 이게 도대체 뭐냐 이거지. 하지만 적재적소라면 그 과장이나 사건 사고, 초현실주의가 때로는 먹히는 법이다. 거의 대부분의 소설과 드라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액션이나 전개가 아니라 대사 한마디 한마디도 실상 생활에서 똑같이, 비슷하게 하는 사람들을 찾기는 (좋게 말해서) 무척이나 힘들다. 사람들도 현실에서 알면서 속아주고 스크린을 보면서 하는 말 "말도 안 돼!"는 거의 하품이나 작은 웃음과 동격이다. 십중팔구 모든 연인들의 사랑도 연애도 인생도 정말 드라마틱한 경우, 별로 없다. 어떻게 보면 그런 게 소설의 드라마의 영화의 의무다. 왜 그런 영화 있지 않나. 도저히 딱 1번 봐서는 도무지 모르는 영화. 절대 절대 절대!
   지금의 흐름은 그것이다.
   이 시점에서는 잠시 필름을 빠르게 돌려야 한다. 약간 얍삽하고 잽싸게. 둥둥둥둥... (7.4 가솔린 엔진 소리는 참 특색있다) S는 Ford를 몰고 그 문제의 장소로 갔다. 구부러진 공간을 지나서 J가 살아 왔고 J가 지금 사는 것 같은 그 도시의 외곽지역에 도착했다. 철지난 폐허된 놀이기구의 녹슨 정도가 좀 더 심해진 것 같아 보였다. 그러면 이제 S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가? 응 그렇다. 이제 그렇다면 S는 J가 되는 것인가? 응 그렇다. S가 타인이 되고 싶었던 남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방금 작가도 독자도 '중요하지 않다'가 나올 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 사실 S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누가 그랬나 행복은 뭐라고, 어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마치 쉽게 말해 '행복의 지도'의 행복론이랄까 '빅 픽처'류의 전이...는 맞는데 어떻게 보면 밍밍하고 언짢은 퇴보라거나 어설픈 증후군 같은 느낌이라면 그나마 조금은 이 마음을 설명해 주는데 썩 불친절하지는 않을 듯 하다. 당신은 천재다. 딱 내다보셨구나. 어쩜 그렇게나 책읽기에 적극적인 발군의 능력을 지녔을까. S가 J로 바뀌었으니 이제 다음 차례는 A라고. 곧 저 저 앞장에서 언뜻 비춘 합체는 아닐지라도 신분이랄지 환경은 대략 얼추 뒤집은 셈이 되었다.
   미안하지만 애처롭지만 틀렸다. 실존 인물이나 매우 닮은 사람이 릴레이 소설을 또는 처녀작을 발표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그러다 책을 계속 읽으면서 다시 삘이 꼿히는 순간을, 그 은하수의 섬광이 반짝거리고 천상의 음악이 울려퍼지는 화사한 외계의 꽃향기에 감싸인 그 영감의 찰나를 기다릴 것이다.
   삘 받아서 글 쓰는 건 이게 문제다. 조금 모냥 빠진다. 이 글을 지금 열심히 달리는 지하철 안에 앉아서 그리고 서서, 지하철에서 내려 바로 앞 의자에서 쪼그리고 쓰다니. 수첩에 볼펜으로. 훌륭한 군인의 준비성, 이상하거나 정상인 여자의 상시성. 다른 수많은 명작가들처럼 작업실이나 여기 저기 어딘가에서 레몬 노트북을 어느 광고처럼 펼쳐 놓고 폼나게 규칙적으로 쓰고 싶은데 말이다. 지금 볼펜 근처에서 모기님 한마리가 깐죽깐죽 얼쩡대신다. 그놈의 삘, 뻑하면 삘.
   독서 리스트에 새로운 서적을 올려놓았다. 그러고 보니 또 이런 문장은 일기체다. 홀리 쉣! 

  • 지구의 미스터리/내셔널 지오그래픽 편집위원회 편
  • 소스필드/데이비드 윌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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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8

from 소설 2014. 8. 25. 14:46

   썩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글쓴이가 수줍게도 어린이의 몸짓을 보여 가면서 까지 손가락 오그라드는, 엉덩이 가려운 부분을 긁적거리고 싶은 욕구를 꾹 참고서 어른스럽게 독자에게 고백해야만 하는 일이 딱 하나 있다. 정말 사람 좋은 솔직함을 꼭 지니고 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이런 내면의 묵직한 짐을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내내 안고 있기에는, 오줌 마려운데 주인 눈치를 살펴가며 어떡하지 못하는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기에는 인품이 고결하지 못하기에 나 편하자고 독자 괴롭히자고 소설의 SF 볼륨을 높여보기 위해 완성판 소설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소설 작법 구성을 비트는 이런 시도가 어느 정도 그리 볼품없는 모습은 아닐 것으로 예상한다. 마음은 이미 정해졌으니까 질질 끌지 않고 딱 고백하겠다.
   글쓴이는―작가는 이라고 쓰면 덜 겸손할 것 같아서 글쓴이라고 쓴다기 보다는 그럴 깜냥이 안되니까 대놓고 말하자면 창피해서―소설의 결말을 이미 써 놓았다. 이 소설의 결말을 진작 써 놓았다. 스토리의 결말이 아닌 소설 전체를 끝마치는, 오케스트레이션을 마무리하는 약간 오페라의 막장 음악 같은 느낌의 대단원이라고나 할까. 아직도 당연히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지, 재미있게 꼬일지, 흥미진진하게 쭉쭉 나아갈지 잘 모른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약간의 비관조의 감정을 드러내놓지 않더래도 그냥 그래프 기울기를 보니 대충 이상한 이야기는 나올 것 같다. 손님을 감탄시키는, 연인의 데이트 분위기를 감동의 퍼펙트 스톰에 몰아넣는, 옆사람을 기쁘게 만들고 가족과 친구, 친지와 동료를 웃고 감탄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아닌 그냥 이상한, 이상한 이야기.
   자, 미리 써 놓은 결론은 이렇다. 다음과 같다. 이런 시도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지는 않아도. 하지만 털 건 숨김없이 털어놓고 가야 한다. 그래야 홀가분하다.
   혹시 진짜 만에 하나, 십억명 중에 한 명 꼴로 어떻게 그런 톡톡 튀는 완전 투명하게 하얀 빛의 강아지 털 같은 영감을 생각해 낼 수 있냐고 궁금해 하시는 호인이 있다면 그 사랑스러운 큐피트 황태자를 위해 비밀스러운 힌트를 약간 언뜻 내비출 수 있다. 왜냐하면 본인도 그게 특수 비법인지 개떡 같은 억측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기에, 그렇게 자신이 없기 때문에 툭 먼저 트럼프 도신 영화 세트장에 원카드를 던져보는 것일 뿐이다.
   그건 바로 중력의 방향을 트는 것이다. 중력을 어떻게 트냐고, 그건 불가능하다고? 불가능하다니, 지금 이 순간 그냥 대충 잡아 수천만 명의 백수들이 자기 집, 자기 방에서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생활하고 있는 것인데. 그래도 감이 오지 않는다면 정말 당신은 눈치도 감도 신사도도 그 무엇도 없는 굉장히 멀찍이서 봤을 때의 미남일 뿐이다. 참 소화불량이나 만성피로라는 부작용은 주의해야 한다. 중력은 뭔 중력, 그냥 어쩌다 우연찮게 얻어걸려서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거다. 이제 그만 앞서 말한 결론을 적어야겠다.
   독자의 험담은 (배부르지만) 무섭다. 허나 사양하지는 않겠다.

   이게 뭐가 소설이냐고? 작가 마음이다. 그것도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했다. 게다가 고품격으로. 요즘엔 무슨 개나 소나 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 그런다고 누군가 험담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그 기법도 광고 문구처럼 동네 북이다. 비록 당신의 마음을 완벽하게 훔치지는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최소한, 그럭저럭 당신의 시간은 훔쳤다. 원래 언제 어디에서나 베스트셀러의 95%는 이런 식이다. 그럼 영화는? 영화도 비슷하다.
   본인의 젖가슴에 늠름하게 손을 얹고 평소보다 얼마 더 솔직해지기는, 타인의 (이성의) 맨 가슴에 다소곳이 시선을 떨군 채 진솔하고 정직해지기는, 빵이든 밥이든 면을 걸든 인생을 걸든 그 어느 판돈을 걸든지 어른의 마음과 모공이 어린이의 피부처럼 맑고 고결해지기는 어딘지 모르게 적잖이 어려운 법이라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별 10개 만점을 주는 영화는 아예 없다. 대부분 그냥... 별로... 뭐... 고개는... 표정은... 어조는... 모두 다 그런다. 심지어 어떤 우락부락한 아저씨들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저주와 험담을 퍼붓기까지 한다. 하물며 상대방이 그렇게 느끼고 생각한다면 굉장히 흡족해 하고 좋아한다던 '위대한 유산'의 변호사인 재거스도, 큰 영화제의 상 받은 작품들도 모두 대동소이하다.
   어떤가, 내일부터 당장 소설을 써보는 것은? 만일 잘 안 써진다면 일단 고품격 소설을 읽는 생활을 시작하는 것도 괜찮다. 살면서 당신은 깨달은 게 하나 있을 것이다. 좀 찔리지만 그냥 대놓고 설명하자면 창작의 고통은 너무 고평가 받고 있다는 것이다. 책? 그냥 쓰면 된다. 소설을 쓸려면, 첫 소설을 쓸려면, 시도해서 안되면 나중으로 미뤄도 되고 일단 시작하면 된다. 그게 절반이다.
   중간에 살짝 언급했지만 이 소설엔 왜 유독 특정 단어가 그렇게도 신물나도록 많이 나올까? 설마 아직도 그 단어가 뭔지 모르시는 분이? 아마도 그건 당신의 인생 경험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정말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왕창 먹고 또 먹어본 적이 있나요?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가? 그렇다. 퀘스천 마크는 이렇게 없애야 한다. 지금 누군가와 이 글을 같이 읽었다면 혹시, 만에 하나 반박자 늦게 웃는 사람이 있으면 꼭 기억해 두시라. 그가 다음에 큰 일 낼지도 모르니까.
   청년 시절에 존 업다이크의 그 책을 들고서 표지가 너덜너덜하게 돌아다니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살다 살다 메모용 수첩을 애지중지 꼭 끼고 다니면서 잠잘 때도 매트 바닥에 넣어 놓고 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러다가 누가 보든 말든 신경 꺼버리고 누가 관심이나 가져주겠어라고 포기하게 될 줄이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무협극에서 보자기로 아무리 비밀병기를 싸매서 등에 지고 다녀봐야 그건 그냥 광고의 한 기법일 뿐이다. 거리에서 콘트라베이스 케이스를 메고 다니는 사람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거창하게 집필 기간이라 부르기는 거추장스럽고 속 보이는 처사지만 기간을 셈하면 그래도 급하게 뽑은 거 치고는 어쩌다가 한 권 분량이 나오고야 말았다. 어차피 충분한 시간을 들여봤자 더 잘 나오기는 어려울테니 짧은 시간에 효율은 챙겼다고 할 수 있다.
   자, 이제 막판이니까 허심탄회하게 까놓고, 완전 뚝 까놓고 내면의 독백으로 자신에게만 고백해보자. 다음 객관식 보기에서 어떤 작품이 가장 재미있는가? 

  1. 마르셀 프루스트
  2. 제임스 조이스
  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4. 이탈로 칼비노 
  5. 블로그 

   ... 이런 이런 이런. 당신은 그러니까 안되는 거다. 당연히 주관식으로 답해야지 어찌 나이 먹고 그렇게 순진하게 답을 고르고 있는가? 5번 빼고 다 재밌다가 B급 정답이다. 거의 모든 게임에는 연습 게임이란 게 있다. 판돈을 돌려주겠다. 다시 잘 생각해 보시라. 그렇다. 당신은 천재다. 당신도 할 수 있다. 보이스 비 앰비셔스! 당신은 영화배우 뺨을 때릴 자격이 있다. 소설은 인생이다. 인생은 코메디다. 고로 소설은 코메디다.

   그건 그렇고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안 끝났다. 작가를 의심하고 누군가를 믿지 말라고 하는 사람에게 속아줄 때는 삶의 여유와 연기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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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7

from 소설 2014. 7. 31. 15:58

   통상 이런 인과 과정과 플롯, 체스와 바둑이나 여타 스포츠의 진행 상황을 참고하지 않아도 이 흐름을 대충 보자면 다음에 펼쳐질 이야기는 어느 정도 가닥이 나온다. 완전히 일치하는 작품은 찾기 어렵겠지만 조사해 보면 이미 시도했던 몇 가지 흐름이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 초보자일수록 그 정형화의 길로, 대가라면 혹시 안전한 통로로, 중견 전문가라면 적합한 순번을 골라 진행한다고 볼 수도 있다. 즉 지금 어떻게 어떻게 진행했는데 S가 거주 공간을 이동했어, 새 호텔로. 그럼 대개는 그 호텔에 비밀이 있다거나 자신의 또는 자신과 관계된 실체가 밝혀지거나 또는 제 3의 인물이나 단체 혹은 그 장소에 얽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사건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그 호텔은 엘리베이터가 총 12개 있다. 그 가운데 시간이나 요일별로 또는 다른 이유로 특정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해진 어느 한층에 내리면 그 층은 기존 호텔의 그 층과는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만들어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그렇게 해서 사건이 쭉쭉 이어질 수도 있다. 또 다른 설정은 단 하나의 방의 비밀이 서서히 호텔 전체 투숙객에게 알려져 나가는 일고의 과정 혹은 호텔의 모든 인원이 새로운 투숙객 S를 상대로 단 1개의 수상한 점에 대해―호텔 별채의 특정 구조물, 폐쇄된 스카이라운지, 기타 등등―일고의 언급도 없이 그 물음이나 주제 또는 그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대화 내용에 대해서만 이상하게 숨기고, 말을 돌리고, 못 들은 척하고, 낯빛이 변해서 섬찟 놀란다든가 매우 두려운 표정을 짓거나, 갑자기 약속이 있다면서 떨리는 어조로 말한 후 급히 그 자리를 피하는 일을 들 수 있다. 또는 쫓기거나, 배타고 섬으로 가서 수상 비행기를 타고 더 먼 섬으로 갔다가 헬기 타고 그 섬의 인근 별장으로 갔다가 다음 날 쥬라기 공원을 보는 설정, 새 친구와 갑자기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 특정 호실의 공포 장르, 존 말코비치라는 이름의 중간 층계 분석등 조심스러운 흐름을 보일 가능성은 그야말로 그 다양성이 다채롭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그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이상한 기류와 특이한고 놀라운 의심스러운 구석이 하나 없이 지극히 평범한 (그 당시)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의 음악이 유독 많이 나오던 호텔이었다는 점과 그 호텔의 투숙객들은 오로지 클럽원의 추천에 의해서만 출입과 숙박, 이용등 모든 서비스가 가능하고 보안에 매우 놀라울(특급 호텔 업계 보통의 8배) 만큼의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 정도만 특색이라면 특색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S는 안심하는 마음 한켠에 앞으로 이어질 호텔 생활이 신비스러운 면이 부족할 듯한 예감에 다소 실망하는 시무룩한 몸짓을 보이면서도 뭔가 새로운 꿍꿍이를 벌일려는 의도를 티내는, 그와 같은 준비를 하는 것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여태껏 이야기가 너무 안일하게 후다닥, 따라하기 어이없게도 멜로드라마처럼 완전 외부와 우연에 기댄 흐름을 보여 왔다.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고 그냥 뚝딱 원맨쇼를 하면서 놀고 먹고만 있으니 앞에서 밝힌 설정에 대한 추가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영화나 드라마나 TV 코메디 프로와 최소한 현실에서 슈퍼스타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팬들도 있다. 팬은 팬인데 무척 애매한 팬이다. 팬에도 층위가 있나 보다.
   신종 증후군은... 맞다. 원래 사람 개개인은 모두 비슷한 인간종이지만 또 모두 특별하고 신기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미스테리 재단의 거액 스카우트, 이걸 수정하자면 이렇다. S는 그가 그동안 썼던 주인공 J처럼 실업자가 되면서 남겨진 자산에 기대어 섬으로 갔다. 자산이 썩 많지 않으면 데면데면하겠지만 딱 얼마 안된다면 오히려 시도하기에 마음 편한 법이다. 그게 젊음이다. 그런다고 무턱대고 따라하지는 말기 바란다. 그렇게 섬으로 가게 된 계기는 미스테리 재단이 아니라 허접한 텔레마케팅에 낚여서 안그래도 원래 갈려고 했던 섬에서 할인 프로모션 이벤트를 하는 호텔이 낙찰된 것 뿐이다. 즉 밑도 끝도 없는 거액의 유산상속, 아니다. 실업급여를 포함해 딱 1년 동안 (또는 평생) 모아둔 돈 몽땅 털어 그곳에서 전부 다 써버리고 올라오자. 올라올 때 거액 고료 환상문학상을 탈 만한 작품을 완성해오자. 이런 마음으로 내려간 거다. 초특급 호텔에 입이 떡벌어지는 호화 생활과 브랜드들 뭐뭐뭐. 그 스키장의 뇌진탕 때문이다. 신종 증후군에 의한 자기 최면일 수도 있다. S가 J를 괜히 만든 게 아니다.

   자, 이제 마초 독자와의 오해는 풀렸다. 개수작이 아니란 것을 공인받은 것이다. 다만 존 파울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의뭉스러운 재단은 나중 뒤늦게 나오던가 반전을 위해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괜히 길거리 캐스팅으로 대단한 특수 실험 대상에 얼빵하고 멍청한 놈이 뽑혔다고 하면 안된다. 식상하다. 어떤가? 혹시 모르겠지만, 그럴리는 없겠지만 따라할 수 있지 않는가? 그것도 쉽게? 자, 당신도 할 수 있다. 1588-XXXX. www.airbnb.com도 있다. 한달에 돈 얼마면 구할 수 있는 하숙집 쑤두룩-하다. 도시 행정 프로그램도 있다. 세계 거의 모든 도시는 자매 결연 도시가 있다. 거즘 완벽하게 촘촘하고 평평하며 아름다우면서 불완전한 세상이다. 안 좋은 일들은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건 꼭 국제기호기구 광고멘트 같다. 작가도 TV에 세뇌된 삶을 살았다. 그래서 인터넷 셀레브리티들을 좋아한다. 그녀를 만난다면 악수하고 싶다. 기념 사진이라도 찍고 싶다. 실은, 안아보고 싶다. 여기까지만! '따라하지마!'는 명대사나 카피라이트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만인이 쓰는 자연어다. 유행을 안 타는데 어찌 따라하라, 따라하지 말라 하겠나. 주제넘은 소리다. 아무튼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다행이다.
   그렇게 S는 이제 없던 일도 만들고 사람들을 꼬시고 세뇌시키면서 (일부러 허접하고 허름해 보이는) 초특급 호텔 멤버들 간의 불화는 아닐지라도 적당한 긴장감과 깨알 같은 스릴과 서스펜스를 살면서 잊지 않게끔 아무도 모르는, 없을 수도 있는 그 호텔에 얽힌 비밀을 항상 사람들에게 묻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 뻔한 장면들과 자세한 대화는 생략한다.
   상어가 파도를 아직 안 뛰어 넘었으면 좋겠는데 어째 상어가 파도 근처에나 접근했는지 의심스럽다. 급조한 느낌이라고? 역시 독자는 똑똑하다. 셜록 홈즈도 울고 갈 판이다. 급조, 급조가 뭔 뜻이지. 급히 조작한다? 이 떨떠름한 기분은 알 수 없는 기쁨에 근거한 적당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TV를 보면 1차적인 코메디는 재미있다. 드라마에서 잘생긴 주인공이 그곳을 가격당해, 으으으. 주인공만 나타나면 모두 자리를 피해, 으으으. 그런데 너무 유치한 말장난은 어른이 하면 안 웃겨. 그런 1차적인 유머는 진짜 초딩이 해야 웃긴다. 그런 미세한 차이가 관건이다. 1차적인 유머는 원래 쉽지 않은 개그 코드다. 초딩 개그도 썩 다양하다. 앞뒤, 화음, 리듬 없이 미는 개그에 대해서는 그분들(초딩)끼리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줄임말이 있다. NDJM(나대지마). 만화 장면 전환식으로 고급스럽게 웃기기는 참으로 힘들다. 10분간 쉬지 않고 마이크를 독점하며 마구 털어서 웃기기 보다는 먼저 얼굴로 웃겨야 한다. 천마디 말보다 표정으로 웃겨야 격이 산다. 그것 만을 살피는 독립 기관이 두뇌에 있어서 그런지 표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문학이 존재한다. 

두 도시 이야기/찰스 디킨스
p.36 그의 시선이 작고 가냘프고 예쁜 얼굴과 풍성한 금발, 미심쩍은 듯 그를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 그리고 당혹스러움과 호기심, 두려움이나 총명한 집중력을 주름으로 한 번에 표현하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이마에(그 이마가 얼마나 싱그럽고 부드러운지 떠올리면서) 잠깐 머물렀다. 

몸이나 마음이나 말이든 자동차든 간에 무조건 일단 들이 밀고 보는 삶으로 생애 후반부에 "사는 동안 인생이 당신에게 친절을 베풀었길 바랍니다. ¹ "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일 근사치가 있다면 그건 헛점이 섞인 액면일 뿐이거나 끕이 뭐한 코메디일 것이다.
   당신은 TV를 너무 많이 봤다. 그대는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다. 영화보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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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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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4. 7. 23. 12:20

   S는 침착하게 한숨을 쉬고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매번, 매일, 항상 그렇듯이 책을 읽었다. 새로운 창작의 영감을 색다른 곳에서 찾지 못하는 평범한 보통내기인지라 그것 하나는 일상 가운데서 꼬박꼬박 쉬지 않는 일과의 하나였다. 또 다른 이유를 하나 꼽자면 아이디어도 있지만 책 한권을 정독하거나 대충 보더래도 틈틈히 써먹고 싶은, 사용하고 싶은 표현이 하나 둘 눈에 띄인다는 것이다. 꼭 고급스러운 기법이나 어휘, 문구는 아니더래도 오히려 흔하면서도 괜찮은 그러면서도 짧은 말. 더없이 좋은 손쉬운 본보기다. 땀 흘리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쓰는 것도 좋지만 본인이 그런 타입의 작가였다면 이렇게 나이 먹고 뒤늦게 휴양지에 와서 거창하게 소설 쓴다고 폼 잡지 않고 이미 옛날에 책 여러 권 냈을 것이다. 그것도 스테디셀러로.
   최근 S가 읽은 책에서 꼿힌 표현은 이거다. 뭐하며 뭐. 일상 대화에서 응용하면 A하면 B, B하면 A, A는 B 빼면 시체다. 또 빡빡하다는 말. 이 글이 빡빡하거나 글쓴이가 빡빡하거나, 혹은 독자? 이렇게 쓰이는 말은 핸드메이드 최고급 햄버거 문체로 씌여진 소설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또 최근 소설 제목만 보고 기를 받았다. 아무래도 서점에서의 그 일이 자꾸 신경에 거슬리기 때문에 아주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은 채로 서서히 기억 속에서 색이 옅어지기를 기다려야 할 것만 같다. 그 책은 호텔리어에 관한 아마존 베스트셀러였다. S는 그랬다. 왜 작가는 그 책을 소설로 쓰지 않았을까? 그건 작가 맘이니까 더 궁금해 하지는 않고 책 제목을 보고 힌트를 얻어서 지금 기거하고 있는 호텔을 옮겨 보기로 했다. 사람은 한곳에 진득이 머무르는 것도 좋지만 공간 이동도 적절히 필요한 법이다. 또 혹시 모른다. 새로 옮긴 호텔이 미스테리인지. 해저 대륙간 망의 엄청난 데이터를 세계 각처의 거물들에게 규칙적으로 베스트오퍼로 넘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위장 호텔이라거나 무슨 단체에 속한 올드보이들을 주로 상대하는 목적의 호텔일지도 모를 일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렇게 S는 바로 짐을 싸서 일단 호텔을 옮겼다.

   뚝딱, 시간도 금새, 어떤 사건 사고도 없이 신기하고도 특이한 우연이 여러 번 연속으로 일어나는, 완전 희박한 드문 확률인 일련의 해프닝은 호텔 이동 중에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중간에 딱 한 번 본인의 불확실한 기억력이 되살아나는 순간이, 겉으로는 모른 채 자연스럽게 무시하면서도 속으로는 걷잡을 수 없게 슬픔의 의식이 확연해지는 우연이 있었다. 첫째, 옛날에 친구들과 놀러갔던 스키장에서 가벼운 뇌진탕을 겪고 나서 시나브로 본인의 기억을 왜곡시키는 (혼자 추측할 수 있는) 신종 증후군에 걸렸다는 것. 둘째, 존 파울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괴상한 단체가 의뭉스러운 재단이 실재 명맥을 유지하며 시대를 건너왔다는 사실과 본인이 어찌어찌하여 그곳의 실험 대상에 뽑혔다는 점, 그것도 과거 사례가 없는 매우 이례적으로 초장기적 실험 및 분석, 퍼포먼스 천연기념물 대상이 되었다는 점. 셋째, 두번째의 집단에 의해 거대한 유산을 상속 받고 첫번째의 원인에 의해 가족이랄지, 친구, 주거지, 과거의 모든 굴레로 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는 일. 어디선가 갑자기 음산한 효과음이 더해진 합창이 들리지 않는가? "절대 뒤돌아보지마."

   그 짧은 몇 초 사이에 악몽과도 같은 울버린의 불완전한 일시적 망령을 떨쳐버리기 위해 새로운 환경에 대한 탐사와 구경을 뒤로 하고 S는 당분간 독서에 몰두하였다. 그러면서 텀블러에 올리기에는 약하지만 몇몇 괜찮은 문장들을 포스트 잇에 옮겨 적어 거울과 TV와 옷장 등에 붙여 놓았다. 그 밑줄 긋기는 다음과 같다.

찰스 디킨스/어려운 시절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더 좋아하는 게 없습니다. 어떤 의견이든 조금치의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는다고 확언합니다. 이제까지 다양한 권태를 겪은 결과, 어떠한 의견이든 다른 의견과 마찬가지로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는 확신(확신이란 단어가 이런 문제에 대해 내가 품고 있는 게으른 감정에 비해 지나치게 부지런한 느낌을 주는 단어가 아니라면 말입니다)을 갖게 되었습니다. 될 대로 되라는 멋진 이딸리아 표어를 가훈으로 삼고 있는 영국인 집안이 있습니다..."

D.H.로렌스/아들과 연인 그녀는 과거에는 〈그대〉라고 불렸던 적이 전혀 없었다. 다음해 크리스마스에 그들은 결혼했고 세 달간 그녀는 완벽하게 행복했다. 다음 여섯 달 동안은 대단히 행복했다.

세스 노터봄/의식 p.66 "그리고 자네는 직장을 그만두게나. 내 생각에 그 일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자네는 일 년가량 그냥 책을 읽거나 여행을 하게나. 자네는 누구 밑에 예속되는 게 어울리지 않아." 

오 그대 신비로운 주술사의 요술 수정과도 같은 판타지와 신화에만 존재하는 블루&핑크 드래곤의 여의주와 동급의 그것도 아니라면 기네스 캔맥주와 시세이도 선크림 안에 잇는 구슬 만큼은 영롱한 영혼을 지닌 고귀하고 아름다운 그대 독자는, 왜 작가가 첫째 둘째 셋째 같은 억지를 막 갖다 붙였을지 궁금해 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우연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이건 소설 초반에 밝혔듯이 명백히 섬이름을 확정하여 기록하지 않은 것처럼 독자 한명, 한명, 한명이 주인공이 된 것 같은 환영을 주입하기 위한 목적과도 같다. 지금 시대 사람들은 영화의 명대사, 드라마의 웃기거나 감동적인 장면들을 무수히 기억하고 즉시 대화에 인용하면서 관련된 자동차를 마주하고 살아간다. 폭스바겐 투아렉...? 벤츠 E클래스 왕눈이...? 또 뭐 뭐 뭐. 보통 사람들은 모두 예리한 기억력의 소유자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설 속의 절대절명의 순간이나 기막힌 반전, 명문장, 꼭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마음 속에 담아두었다가 일상의 대화에서 써먹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마도 거의 없다. 양철북 초반에 나오는 커다란 드레스에 숨겨진 도망자, 드라마로 응용만 된다. 누군가가 끝까지 읽지 못한 어느 소설에 나오는 가슴골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여자 또 어느 영국 소설에 나오는 열기구, 비행기 조종사가 태양을 2번 연이어 보는 장면이나 적절한 예를 (능력껏) 들지는 못하지만 그런 경향이 많다. 반면 영화나 드라마와 텔레비전에서는 싱크대에 오줌 누는 외과 의사, 세면대에 오줌 누는 청년, 영화 The Master (2012)의 세면대 그것도 아니면 자동차 엔블럼에 오줌 누기는 못봤고 자동차 타이어에 오줌 누는 장면은 어느 상 받은 영화에서 봤다.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 드라마틱한 장면들은 활자 예술에 비해서 영상 작품이 더 사람들의 전두엽에 각인되게 만들 수 있는 최대 장점이다. 그래서 묵직한 소설에 비해서 스토리 위주의 소설들은 사건을 죽 나열해서 우연 + 우연 + 우연...같은 (실현 확률과는 좀 거리가 있는) 기법과 스토리를 많이 선보인다. 그래야 흥미롭다.
   그러면, 그렇다면, 그러니까 일반 독자들은 소설과 영화를 보고 그걸 따라할 수가 없다. 기억하기 힘들다. 흉내내어선 안되는 것 투성이다. 똑같이 재현했다가는 큰일 난다. 그래서 억지를 막 갖다 붙이지는 않더래도 간혹 그 억지가 필요한 이유는 따라하기, 모방, 흉내내기, 귀감, 알리고 싶은 것, 재미난 것, '이런 거 사람들이 다 아는 얘기야', '이런 글 나도 쓰겠다' 같은 질투에만 기반하지 않는 감수성이라는 인간 본능에 근거한 이타심 자극하기, 상상력 넛지, 창작 욕구 발화, 진짜 공유할 만한 것, 신기하고 특이한 그 무엇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왜 최근 들어 여성작가의 글을 그렇게 안 내켜하는지 그만 생각해야 하니까 음악을 들어야겠다. 그래도 남성 작가 소설도 처음 읽을 때가 기분이 가장 좋다. 처음의 감동 그건 재차 만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일회성 때문에 더더욱 감동의 섬광이 타오르는 것일까? 젊은이에게는 감추고 싶은 어른의 솔직한 속마음이 그렇지 않은 고매한 인격을 지니신 분은 이와 다를 수도 있다. 나중에 읽으면 더 좋다, 시간을 두고 여러 번 읽어야 한다, 나중 다시 봤드니 어떻드라, 고전이란 그런 것이다 등등등. 그런 거짓말은 못 하겠다. 다른 사람들은 진짜 그런가 보다. 곧 본인의 사상이 더없이 고상했으면 좋겠고 다시 읽으면 또 다르고 좋지만 그 대상은 무척 드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 기간은 상당히 소원해야 하지 않나, 첫느낌은 (어쩌면) 각별하다? 그냥 그렇게만 생각한다. 이 다음엔 스토리 중간 중간에 어떤 절규가 이어질려나. 자메 드 라비! 이 말랑말랑하고 간질간질한 기분에 동조하지 않으려면 얼른 디베르티멘토를 듣던가 땀을 흠뻑 흘리고 운동을 하면 좋을 것이다. 쇼핑이나 다른 무엇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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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5

from 소설 2014. 7. 22. 16:16

   S의 심연을 휩싸고 있는 불안한 기분의 분위기를 묘사했으니 잠시 작가의 집필 의도에 대해서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겠다. 고품격에 이골이 나는 독자들에게까지 불친절한 작자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삶도 인생도 그 무엇도 더 이상 재미없어 할텐데 소설까지 신물나면 그러면 안되니까, 보다 더 정확한 기획의도는 끝부분에 나오겠지만, 지금 즉흥적으로 떠오른 '왜 쓰는가'의 답은 이와 같다. 환상 소설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는 없고 다만 독자를 골탕 먹일 의도는 전혀 없다는 점 그리고 소설은, 소설이란, 모름지기 이야기란 이렇게 쓰면 안된다는 그 말을 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누군가는 크게 불만을 표시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쯤이면 누군가는 아니 아마 상당수는 (몰입도는 처음부터 없었고) 슬슬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고 혼잣말을 하실꺼다. 작가도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들을 읽으면서 '뭔가 있어, 뭔가 있어, 이제 뭐가 나올꺼 같아. 그러다 끝나'라면서 나가 떨어졌으니 일반 독자들은 당연히 그보다 훨씬 저급한 수준의 이와 같은 소설은 읽는 중 집어던질만 하다는 결론이 쉽사리 나온다. 참 얇은 독자층의 평균 연령도 점점 내려간다. 처음부터 청소년용 하이틴 모험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소설 제목에 대해 쓰거나 고민해보지 않은 작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이 책도 여지없이 그 과정을 거쳤다.
그래도 나름 소설이라고 것 참. 이거 저거 요거... 엄~청 생각했다. 그러다 i envy you. 어 이거 괜찮네. 그런데 또 생각이 바뀌었다. 블로그,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냐면 왠지 모르게 어디선가 또 누군가 다급하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애원하는 듯한 환영을 꿈꾸듯이 타의적으로 언제부터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이 안 써진다는 얘기 만큼이나 만인에게 공통되는 인간적인 주제다. 하지만 이 얘기는 길어지면 재미없으니까 이만 줄여야겠다.

   오 드디여 사무치도록 안타깝게 사건이 없는 이 가여운 소설에 이제야 그 발단을 이어갈 매치 포인트가 생겨났다. 자생했든 따라했든 삘 받았든 어쨌든 하나의 실마리가 생겼다는 것은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을 품고 있던 가운데 S 본인이 궁금해하던 시간의 구부러짐 현상을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발견했다. 그 믿을 수 없는 미스테리는 아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과연 그게 무엇인고 하니 어느날 S가 기분전환 삼아 들렸던 어느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아담하고 조용한, 산뜻하지는 않지만 천장이 낮은 서점에서 본인이 집필했던 이야기가 단행본으로, 어엿한 한 권의 책으로 출판가의 유명한 과장된 찬사들과 함께 월계관을 포함한 조잡해 보이는 여러 마크가 덕지덕지 붙여진 책으로 출판되어 지금 이 순간 팔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 뭐뭐뭐... 마치 거짓으로 보이는 그 마크들은 믿음직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멀더와 스컬리 요원이 부럽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가 캘리포니케이션 주인공을 따라하는 모습을, 행위예술이라는 교향곡을 작곡한다는 착각과도 같은 환영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히 몹시 흥분해서 곧바로 그 서점을 뛰쳐나와 호텔까지 질주해 줄곧 내달렸다. 
   시간의 구부러짐을 확실하게 또박또박한 목소리와 차분한 어조로 설명해 주었던 바텐더와의 일화 뒤로 자신이 쓴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되어 나온 기적을 보고 나니 그는 순간 다잡을 것 같았던 대물을 눈앞에서 놓친 그 허망함이라는 감정을 느꼈을리 없다. SF 영화나 소설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건 개인의 타인화라고 해야 할까, 살아 있는 실존 인간의 DNA 표본 화석 박물화라고 불러야 하나, 도무지 믿을래야 믿을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급기야 S는 그 무수한 감정을 뒤로 한 채 어떤 오로라와도 같은 모험과 꿈과, 이상, 초록색 정치함과 로맨틱한 기분에 둘러 쌓여 지구 끝까지, 우주 저 너머까지 가고 싶은 본심과 가봐야 겠다는 이상한 의무감이 심연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을 스스로에게 숨길 수 없었다. 그 불가해한 불가사의 사건을 보고 나니 일단 자신의 착각이 아닌가 의심하며, 자기 자신이 혼자 만들어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혼잣말을 주문처럼 되뇌이면서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난 미치지 않았어. 저는 미치지 않았어요.
   일순간 파닥하고 안도감을 느꼈다. 어찌되었든 그 놈의 수준은 낮지만 자위 행위, 섹스, 탈출, 도망, 살인, 추격, 모험, 액션, 저격, 암살, 성애의 묘사, 흔들기 같은 젊은이들이 조금 더 솔깃해 하는 주제를 다루지 않았던 게, 되려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재주가 없는 무능력에 대해 예전과는 다르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알싸한 테마들에는 이런 이야기도 포함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비성년용) 동화를 주로 썼던 JK 롤링이 발표한 탐정 스릴러에 나오는 내용이랄지 영화 크래쉬 (1996)의 모티브와 딱 하나만 닮은 어느 미스 유니버스 지역 수상자의 교통사고와 체념과 뒤이은 결혼이라는 여정. 그리고 스포츠 튜닝카를 모는 터프가이가 무수히 많은 그 첫만남들에서 여자를 태우고 먼 고속도로까지 가서 어떤 선택형 질문을 건넸을 때 딱히 묘사하기는 까다로웁게 그곳에서 도시까지 걸어가는 여자는 거의 없었다는 일화 같은 이야기들. 어느 시골 마을 꼬마가 방바닥에 몸을 밀착시켜 엎드린 후 약간의 움직임을 반복하던 찰나 꼬마의 엉덩이를 아빠가 지긋이 발로 밟았던 일과 꼬마가 그 행위를 페니스(그땐 모국어만 알았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운동이라 불러서 온 동네 아줌마들을 웃겼던 일(이건 퍼포먼스 아니다), 그 꼬마가 성장하면서 그리고 성장해서 어떻게 인생을 살았는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앞으로 소설을 더 쓰게 된다면 따라하기, 흉내내기, 장점 본뜨기, '만일 이 이야기가 영화나 드라마로 나오게 된다면'이라는 가정등을 재차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그런 쌈박한 내용을 집어넣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런 상황에 그런 안심이라니 참 안 어울린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S의 이야기가 신기하게 책으로 벌써 나와 버렸던 것일까? 혹시 잘못 보았을까? 그 쇼크는 마치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하다가 마주 오는 사람과 머리를 빡하고 부딪히는 충격과도 비슷하다. 당사자에게는 경악스러운 일이 틀림없을 것이다. 당사자가 아닌 이 소설의 독자는, 거리에서 길을 걷다 마주오는 샤넬 넘버 파이(π) 향기가 나는 상큼한 이성과 (누군가에게는 동성) 맞닥드려 한 7번 이상 한켠으로 비켜줄려다 계속 똑같은 방향으로 마주했을 때의 상황과 아주 약간 닮은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대가 말이다. 아무래도 희망사항 같다.
   제조사에서 노트북에 프로그램을 심은 채로 판매했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경로에 의해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일까? 또는 너무 오버해서 지나친 억측으로 만들어낸 일시적인 조현병 초기 증상일까. 시간의 구부러짐 현상도 아직 온전히 받아들이기 버겨운데 자신이 썼던 노트북 안에만 존재했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다니, 결국 다시 그 서점으로 가서 확인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같아서 바쁜 일도 없으니까 그 서점으로 갔다. 그런데 가는 도중 또 버럭 겁이 나기 시작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그 서점이 없어져 버렸으면 어떡하지? 그 서점에 갔는데 그 서점 주인은 없고 그의 딸이 그 서점을 운영하고, 그 주인은 10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해서, 되물어 볼 수 밖에 없다면?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히 S가 오해했던 그 책은 S와 이름이 비슷하고 약력이 아주 일부 유사한 데다 저자의 사진도 없고, 내용도 상당히 판타지와 흡사해서 결코 자신이 기록했던 내용이 외부로 유출된 후 책으로 나왔다고 볼 수 없었다. 사건 전후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보기 보다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지금 이대로 안심하는 편이 더 좋을 듯 했다. 본인도 어떻게 보면 그걸 간절히 바랬다. 

   이 소설의 학술적 가치가 어떻고, 달달한 로맨스처럼 얼마나 은근하고, 평범하지 않은 정도에 필사적으로 천착하는 것도 중요할 테지만 좀 더 쉽게 펼쳐질 이야기의 기대감이라 부를 수 있는 마음을 잘 구술할 수 있느냐의 관건은 그 전대미문의 핵심은, 마초의 스팀을 선한 의미로 얼마나 뽑아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가벼운 입맞춤 하나에 두꺼운 책 한 권이 몽땅 소요되는데 누군가 그 책을 다 읽었어, 권태나 결혼생활, 예전 연인 사이였는데 지금은 그 연인을 가족이라 부르는 걸 설명하는데도 상상하기 힘든 기다란 설명이 필요한 글을 누군가가 묵묵히 꾹 눌러 참고 모두 봤어, 그러한 스팀이 모이면 커피 두잔을 위한 티포트를 끊일 열기가 아닌 거대한 규모의 빌딩, 바로 그곳의 난방 시스템을 가동시킬 수 있을 정도의 스팀이 된다. 오렌지 빛 얼굴의 단발머리 소녀나 와일드한 빨간색 숏컷 주근깨 아가씨가 한숨을 이마로 불어 앞머리를 올린다면 그건 누군가의 미소를 덥히는 정도의 매직 버블이다. 현실과 드라마에서는 후자가 멋지고, 재미나면서 진중하고 괜찮은 소설을 쓰는 데는 전자가 요긴하다. 물론 바꿔도 된다. 적도의 태양, 지하 세계의 마그마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더 이상 뭘 바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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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4

from 소설 2014. 7. 22. 15:09

   A는 오래전 한때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를 꼽으라면 1초의 주저하는 몸짓이나 표정, 의구심 없이 즉각 극동의 어떤 소설가를 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극동식 이야기만의 장점이 있고 묘한 분위기가 있으며 뚜렷한 컬러와 명료한 전개, 고정팬 외에도 뭐라 설명하기 곤란한 그런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에 대해 도대체 그 매력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함을 풀어내지는 않고 그냥 그렇게 외적 나이에 맞는 책을 읽고 내적 취향에 따른 소설에 대한 컬럼을 쓰고 적절히 자타의 기호에 부합하는 책들을 번역하는 가운데 본인이 앞으로 소설이라는 것을 쓴다면 어떻게든 극동식 소설의 비밀이랄지 장점이랄지 뭐라 부르기 애매한 그 뭔가를 꼭 포함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람들은 거의 자기 이름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물론 자기 이름이 마음에 안들어 바꾸고도 싶어하고 영화처럼 다른 이름의 여권이 여러 장 있다거나 정체성이 다른 여러명의 '나'로 살고도 싶어한다. 그러면서 인터넷 검색창에 자기 이름을 입력해서 검색해 보는 것을 썩 싫어하지는 않고 또한 질문을 받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 이야기를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면 매우 흡족해한다. 책에서도 자주 나오는 게 그거다. 당신은 행복한 편인가?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먹고 싶은 것은? 어디에 가고 싶나요?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예요? 하고 싶은 일은요? 나중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나요? 이야기속에서 A가 B에게 묻더래도 독자는 A나 B로 자신을 대입시켜본다. 일상 생활에서 친구들이, 술집에서 남자들이 하는 얘기도 그렇다. 어떤 멋진 영화에 나오는 차를 타고 싶다. 그 차를 갖고 싶다. 으으으! 언제는 영화에 나오는 허름한 볼보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으리으리한 차 이름들? 이 소설의 전체 독자 가운데 반틈은 남자다. 남자들은 럭셔리카 이름만 들어도 좋아한다. 라디오헤드처럼 팬들이 자유롭게 가격을 매겨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여건도 네임밸류도 없다. 물론 독자 수요 예상이 틀릴지도 모르지만 가상 독자와 인세를 놓치면 아마도 슬플 것 같다. 상심이 크겠지.

빠에서 마담이 손님에게 묻는다. 

  • 마담: 오빠 왜 결혼 안 해요?
  • 손님: 음 그냥 돈 좀 더 벌고 나서, 좋은 차 몰고 돌아다니다 놀면서, 여러 이성을 좀 더 만나보고, 나중에 정착해야지.
  • 마담: (함박웃음) 이봐, 이봐. 남자들 다 이런다니까.

극동식 소설의 장점으로 되돌아와서 그 가운데 하나를 들자면 내 욕구에 충실하다는 것과 여러 규격의 다중적 공동체 가운데 속해 있는 개인의 의무와 질서에 대한 미묘한 역동성을 잘 다룬다는 점이다. 전자는 그러한 거 같고 후자는 다른데도 다 그런가 아니면 그냥 평면적이고 수평적이라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전자, 하긴 그게 뭐가 나쁜가. 스누핑은 어디, 어디가 낫다. 스케일과 표현은 또 어디는 어떻고 어디는 어떻다. 개인적 취향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추리소설과 대작 온라인 게임은 닮았을까? 그런 대작 온라인 게임 광고를 보면 완전 꿈과 이상, 모험, 사랑, 인생, 우주... 뭐든 다 있을 것 같지만 실제 해보면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린다.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젊은이라면 드물지 않게 유명 화가의 화보를 간직하거나 학교 도서관에서 보기는 했을 것이고, 유독 어떤 가수나 작곡가를 좋아했을 것이며, 특정 브랜드에 꼿혀 있을 것이다. 매장을 기웃거린다든지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에 전화를 걸어 카달로그를 받아본 일들이 1인칭 소설의 밀도에 포함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와 같은 일은 중년에게는 덜 흥미로울 수 있으니 결국 정말 중요한 주제는, 시점은 2인칭이라고 생각했다. A도, J도, S도. 그리고 당신도, 오 그대도. 너와 그대 사이 그리고 삿대질과 골-세러모니.
   한편 S는 최신형 레몬 노트북이 왠지 진부해 보여 글이 안 써지니까 도구를 탓해야 하니까, 뭔가 변화가 필요해서 매니아들만 로망으로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한다던 수동식 타자기를 하나 마련했다. 그가 섬에 내려와서 글을 쓰겠다고 마음 먹고 행동에 옮겨 실행한지 거의 시간이 몇 달 정도 상당히 지나간 것 같고 틈틈히 무인도에도 갔다가 산 꼭대기에도 올라가고 비밀 클럽은 물론 마라톤도 뛰고 인근의 여러 작은 섬에도 놀러갔다가 조금 멀리 떨어진 섬으로 가서 싸이클 대회에도 참가했었다. 그런데 이렇다 할 성과가 없길래 마음을 편히 먹고 뭐 안 써지면 어떠냐고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휴양생활에도 더욱 편안히 전념해야겠다고 스스로 본인을 다독거리던 차에 어느덧 월드컵 시즌이 찾아왔다. 그래서 가벼운 대화도 할 겸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올라가서 칵테일을 한잔 하면서 바텐더로부터 얘기를 듣고 보니 본인이 그 호텔에 묵은지 벌써 수년이 되어 간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호텔의 여러 직원들과 사장과 이사단은 물론 근방에 상당히 유명한 인물로 소문이 났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공간 이동을 하고, 시간을 리셋하며, 장자 사상이며 나비효과도 있고, 현실에서 초일류 과학자가 시간의 구부러짐에 대해 학설을 내놓아 학계를 발칵 뒤집었다가 다시 학계를 세계 3대 후라이팬에 올리기도 한다지만 지금 이 순간, 어떻게 그런 일이 바로 이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지 의아해 하면서 하나하나 꼬치꼬치 차분하게 참을성 있게 이것저것 확인하고 검토해 보았다. 그러던 중 아주 기가 막히게 신기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 팔자 좋은 파라다이스 생활을 하고 있으니 더 믿기 어렵겠지만 그 불가사의한 현상이 일순간 환하고도 분명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즉, 시간의 구부러짐. S의 개념상 1년이 객관적 세상의 몇 년과 대충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아련히 유추해 볼 수 있는 근거가 셀 수 없이 많은 가운데 과거의 그 비개인성이 점점 탈개인성으로 바뀌어져 가는 서사를 어렴풋이 조금조금씩 깨닫고 놀라면서 어쩔 수 없이 발아들이면서 좀 전의 흥분이 가라앉고 태연하게 그 비상식의 여정을 모두 인정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우주여행도 아니고 가당키나 한 일일런지 참 어이없는 깨달음이었다.
   잠을 안자는 또는 못자는 사람이라거나 영화 주인공과도 같은 초인도, 만화에서나 나오는 괴물이 아니라 남들과 똑같이 아니 남들보다 덜 뛰어나지만 완전 똑같이 살고, 일상을 겪어 나가고, 음식을 먹고, 도시에 살고, 사람을 구경하고, 사람과 대화하고, 바다를 바라보지만 하루나 한달이라는 기간에는 깨닫지 못하는 하지만 몇 년이 흐른 후에는 알게 되는, 마치 스토리의 반전, 학문 이론의 역설과도 같은 무척이나 설명하기 까다로운 그런 시간의 구부러짐 현상이었다. 혹시 S는 그가 쓴 소설에서 J가 받았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제의가 역으로 자신의 현실로 옮겨져 지금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아닐까 하는 당연한 의혹과 얼어붇은 의심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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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3

from 소설 2014. 7. 22. 14:31

   J는 클림트, 뭉크, 마티스, 뒤피, 쉴레, 피카소, 앙리 제르벡스, 조반니 볼디니, 모네 같은 그 이름을 열거하기 곤란한 미술계 거장들의 그림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현장에서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자기 고장에서만 살면서 여권에 도장 한번 못찍고 20년 내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면 앞서 열거한 사람들 수준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는다. 재고할 가치가 없는 일이다. 자크 루지에나 바흐 스폐셜리스트의 음반을 굳이 틀어 놓지 않아도 사람들은 누구나 약간의 힌트만으로 능히 비슷하게 또는 다른 패턴으로 변주를 할 수 있다. 다음은 앞서 나왔던 외모로 사람 이름 늘어놓기에 대한 응용 놀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줄리언 반스, 밀란 쿤데라, 오르한 파묵, 하워드 제이콥슨, 찰스 디킨스... 그 다음에 갑자기 (______)! 괄호 안에는 그 누구의 이름을, 당신의 이름을 넣을 수 있다. 넣지 말라는 현행법도 없고 그 어떤 관습이나 풍속도 없다. 그런데 당신의 이름을 이 괄호 안에 넣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판이하게 산성과 알칼리성처럼, 홍해의 기적처럼 구분하기 순쉬운 2가지로 나뉜다. 이런 식의 유치하고 꺼벙한데다가 상태가 몹시 의심스러운 말장난에 대한 반응은 사람에 따라, 성별에 대해, 혈중 알콜 농도의 영향에 의해, 뭐에 근거해, 뭐에 따라 왜 그렇게 다른 것인지 참으로 신기해 보인다. 초딩이 아닌 어른들이 봤을 때도. 이 단순한 유머가 게으른 변명이 더해지는 글쓰기 중압감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일단 S가 그리고 J가 글을 막 쓰게 만드는 얼마간은 불흉한 화근이 되었다. 블로그 검색어는 물귀신이다.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을 읽다가 옛날에 극장에서 동성 친구와 '빠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1996)'를 보고 나오던 낮 시각의 뭔지 모를 어지러움을 떠올리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런 낯선 느낌을 소설에 적는 게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일런지... 모차르트 K.183번을 듣고 있는데 어, 갑자기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공기보다 가벼운 수소가 잔뜩 담긴 여러 개의 풍선을 한가득 들고 지면에서 발이 떨어질락 말락하는 기분 같다고나 할까. 아마도 그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겠지만, 감정의 기복 때문에라도 누구나가 그러하겠지만, 어쩌면 그래서 그러한 감정이 증폭되고 배가 되는지도 모른다.

   때는 바야흐로 2014년 왠지 모르게 기분 좋은 어느 날, 누가 무엇을 발표하고, 어디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왜 어떤 동물이 자다가 개꿈을 꾸고 몽유병자가 된 날이 언제였는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정말 마침내 거짓말처럼 S는 믿을 수 없는 유레카의 순간을 맞이했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팔자 좋게 낮잠 자다가 진짜 번개를 맞은 건지도 몰랐다. 소설의 구상이 딱 떠올랐다. 제목은 '소설가가 된 여자, 개가 된 남성' 살다보니 이렇게 놀랍고도 기이한 그럼과 동시에 찬란한 경험을 하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흐뭇한 어떻게 보면 음흉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읽는 중에 쌍코피 터질 정도로 뛰어난 그런 놀라운 연애소설을 쓰고 싶은 여자들과 신종 느와르 영화를 보거나 만들거나 연기하고 싶어하는 남성들처럼. 그런데 다음날 도서관에 들러서 보니 그와 비슷한 제목과 내용으로 이미 발표된 소설이 있었다. 삶이 참 허무하다. 이런 제길슨. 그렇지만 이로써 한가지 깨달았다. 제목을 먼저 뽑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확정은 아니더래도 말이다. 하지만 제목 먼저 뽑고 글을 써내려가기에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나 재즈계의 거장들도 까무러치는 즉흥연주의 귀재 만큼의 능력과 가망성이 없어서 제목 짓기는 차차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름답고, 문학적이고, 희귀하고도 재미있는, 애달프게 눈길을 책으로 잡아 끄는 뭔가 빠져들 것만 같은 그런 제목... 어디 없나?
   그래서 J는 하는 수 없이가 아니라 흡사 상류층 귀부인들이 견적을 자동으로 계산해 내는 반사 신경과도 같은 직관력으로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여자 주인공 A가 기필코 소설을 쓰게끔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알파벳 A는 주홍글자를 연상시키고 동시에 해치(시비와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 컬러 텍스트로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한 이름이자 너글러운 문자다. 지금껏 소설에서 이름을 이니셜로 표기한 예는 까마득히 많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비록 많지 않을지라도, 단 4명일지라도 어쩌면 매우 지성적인 전문가일 것이라는 것을 쉽사리 예측할 수 있다. 설마 앞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당신의 지성을 굳건히 믿는다.
   A는 번역일을 하는 중 틈틈히 연애소설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 원래는 신종 추리소설을 계획했는데 추리소설은 이제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게다가 어지간히 써서는 눈에 띄기도 힘들다. 그리고 꼭 연애소설이 아니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대사가 포함되는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런 대사는 다음과 같다. 청소년은 잠시 두 귀를 막는 게 좋겠다. 아, 이건 드라마가 아닌 소설이니까 단락을 잠시 건너뛰는 게 낫겠다. 

  • '유난떨다' 구글링 검색결과 첫빠 (순위가 하락했을지도 모름)
  • 째가 이쁜 척 하고 있어.
  • 저 잘난 체 하는 모습이라니.
  • 지금 속으로 뭔 생각해? 내가 맞혀볼까?
  • 레슬링 선수 출신 어느 유부녀의 인생이 담긴 말 "임자 있는 남편한테 꼬리치는 년들은 허리를 그냥 확 접어브러야 돼."
  • 내 남편한테 껄떡대지마 이년아!  :  뭐 껄~떡?
  • 내 인생에 달라붙어 단물 쪽쪽 빨아먹는 낙지 빨판 같은 년!
  • 돼지뽄드 같은 년!
  • catty behavior에 충실한 어떤 여자의 경우 옥타곤에 직접 올라가지 않고 마술피리를 불어서 남자친구를 대신 올려 보내는 일.

그녀는 이 시대의 예술가와 전문가, 일반인은 물론 다음 시대의 지성인에게도 잊혀지지 않을 널리 읽혀질 고품격 소설로 기억될 만한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여자는 그래요. 외모? 잘생기면 좋죠. 말빨? 여자는 그런 거 중요하게 생각치 않아요. 여자는 남자의 사소한 모습에 반한답니다. 능력? 그 다음 구구절절. 순진한 하이틴 로맨스라... 어디 잡지에 애독자 엽서를, 어느 라디오 방송에 애청자 편지를 보낼 일 있나? 멜로드라마적인 케미컬한 요소는 살짝 품어 한켠에 놔두고 더없이 모던하고 격조 높게, 코스모폴리탄이란 단어를 떠올리면서 감탄사를 유도하는 그런 소설. '나는 뭐뭐 한다'라는 대사나 묘사와 설명을 읽는 독자가 적어도 '너만 그러니'라고 느끼지 않게끔 만드는,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우리'라는 말을 제일 나중에 쓰는 그런 소설.

   소설은 뭐다, 또 그렇게 쓸줄 아셨는가. 소설은 뭐다라는 소설계의 불문율을 그만 쓸려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해야겠다. 소설은 상심이다. 왜냐하면 비밀이다. 일단 광대한 독서 경험을 거치고 수없는 상심을 경험한 후에나 무슨 얘기인지 더 잘 알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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