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질문 치고는 범위가 너무 넓고 막연하며 전후 문맥이나 상황 설명 아무거도 없지만 결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한가지는 바로 의문문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첫문장으로 쓰인 간결한 의문문. 그래서 뜬금없는 엉뚱함을 감안하더래도 누구든 딱 찍어서 묻는지도 모르고 너무나 답변이 턱 막히는 말이지만, 모호함과 의뭉스러움 그 자체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다지 기분 나쁜 물음은 아니다. 그 어떤 감정이 처음으로 싹틀 때 무작정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맞다. 정말 그렇다.
다른 질문을 생각해볼까. 음 심각할 필요도 진중할 의무도 아무 부담없이 막 생각해보면 질문은 넘쳐난다. 최근 관심사는, 자주 찾는 장소는, 즐겨찾는 웹사이트는, 하루 일과는, 시간표는, 배움의 속도는, 심심할 때 하는 일은, 좋아하는 브랜드는, 즐겨듣는 음악은, 나이, 친구, 방학, 책, 학생들이 쓰는 새공책의 표지들을 보면 무슨 느낌이 드는가? 문구 코너를 구경할 때는, 스토킹 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 팬지의 꽃말이 뭔지 아니? 아는 꽃말은 있니? 별자리 싫어하니? 좀 더 알고 싶고 계속 궁금해지는 좋아지는 사람은, 놀이공원에 가본지 얼마나 되었나요? 마지막 데이트는, 선호하는 자동차 스타일은, 사랑하고 싶니? 사랑받고 싶니? 아니면 둘 다 하고 싶니? 또 아니면 사랑도 일이니? 그 카피라이트 너 혼자 만든거니 어디서 베낀거니? 왜 훔쳤어? 언제까지 남의 꺼 카피하고 흉내만 낼 꺼니?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지 아니? 사람은 어떻게 태어나는지는? 왜 태어나는지?... 등등등 물음표 계속, 모두 질문으로 시작해서 이어갈 수 있다. 단 초짜 세일즈맨이 고급 승용차 판매왕이나 다단계 사업 거물급 다이아몬드 클래스에게 멋모르고 쉽사리 맞부딪혀 의욕적으로 썰을 풀어 낚아보겠다고 어설픈 물음표 갖고 덤비다가는, 제대로 혼쭐이 나서 정신 빠짝 차리고 로봇처럼 인정사정없이 세뇌당하기 쉽상이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아니 어떻게 이리도 아무 연관 없는 문장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오직 그것만으로 말이 문단이 이야기가 되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여자들은 보통 질문을 받고 품격을 갖춘 에티켓의 분위기에서 시간을 보내고, 적당히 은근하게 고혹적으로 자신을 꾸미며 품위 유지비를 꼼꼼히 체크하면서도 미지의 대상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것을 한사코 사양하기를 여간해서는 싫어하지 않는 것처럼 독자 또한 간간히 성별의 간극을 떠나서 여자들처럼 질문받고 주인공처럼 여겨지는 것을 썩 마다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돈이나 외모나 목소리와 그 어떤 조건으로 여자를 꼬시기 힘들 수는 있지만 특유의 입담이 그보다는 덜 힘들다는 것은, 그 증명은 만인과 시대와 세상이 다 인정한다. 영원히 공인될 것이다. 그런 재담가들이 자주 써먹는 수법이 질문이다. 평범한 기술 치고는 소설에서도 제법 써먹을 만한가 보다. 왜냐하면 어떻게, 무엇을, 그리고, 어쩌면, 심지어, 왜... ... 머리 속에서 마구마구 떠오르는 딱히 풀어낼 수 없는 공상의 나래에 약간의 질서를 부여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결부시키는 초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질문은 약간, 설마 우연?을 기다리는 심정과 뭔가 비슷하다. 이런 얘기는 논리적으로 푸는 게 아닌 법이다.
먼저 발단. 어떡하지 어떡하지 수많은 목차와 주제와 소재는 이미 상당히 써먹었는데.. 게다가 반대로 그 분량이 쌓였으니 오히려 풀어나갈 방법이 수월할 수도 있는데 어딘가 막다른 골목에 딱 막힌 느낌이야, 아 답답해. 그러다가 계속 고민. 이 방법 저 수단 다 안 먹히고 속으로만 발버둥 거리다가 그러다가 생각을 계속한다. 쓸데없는 생각도 많았으며 하다 하다 생머리가 다 아프기 시작한다. 결국 낙찰. 다양한 분야의 책과 영화도 보다가 먼저 <어 이거 괜찮네>라는 광고를 보고 반나절이 지나서 <이걸 쓰자>라는 마음의 결정을 내림. 슬금슬금 이거저거 다 맞춰보고 결합하고 연결하다 그냥 무심코 쇼윈도우에서 마음에 드는 가방을 발견, 상점에 들어가 물건을 신용카드로 찍 하고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앤디 워홀처럼 꿈꾸듯, 놀듯, 어릴적 무도병을 기억하듯, 실로 드라마틱한 사건과 삶과 인생과 책을 누군가가 사랑하게 만들듯, 어떤 혼잣말처럼─젠장, 리히텐슈타인이 먼저 해냈자나!─작은 처음이라는 마법이 풀렸다. 쓰다 보니 어느 때부터인가 이야기보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태생하냐 태동하나 이게 더 중요하게 되어버렸다. 우수한 영감도 숙련된 착상도 뭣도 아닌데 말이다.
구상, 요컨데 그걸 구상이라고 하면 된다. 뭘 그렇게 어렵게 설명할 필요 있겠나. 누구에게 잘 보이겠다고, 무엇을 만족시키고 싶어서. 월척은 아니고 일단 고기가 안 잡혀서 앞바다에 담궈 놓은 낚시 바늘을 꺼내서 미끼를 갈아 끼우고 백스윙을 했는데 뒤편에서 뭔가가 걸리긴 걸렸다. 방향이 문제지만 일단 그렇다. 빈손으로 철수하기엔 그 처량함, 감당하기 힘들다.
친한 친구들은 (와! 이제 시작이다. 빨리도 시작한다) 탁 트인 푸른 바다가 앞에 보이는 야외 결혼식장에서 만났다. 모두 모였다. 조니, 케빈, 알렉스, 마크, 하워드, 닉, 제임스. 혹시 이 글을 읽는 귀인이나 향사께서 나의 이름과 같아서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하신다면 필자는 은근슨쩍 만족할 것이다. 그들이 모두 아는 지인의 결혼식인가 보다. 아니면 딱 1명만 알고 그가 다른 친구들을 모두 불렀을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떤가. 그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정말 가고 싶은, 꼭 가야 하는, 참석하면 좋은, 생각해서 슬쩍 피하는 여러 상황 가운데 이도 저도 아니고 아무래도 우연히 무엇 때문에 또 다른 우연을 불러서 모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는 그들이 그저 엑스트라로 동원된 것인지도 모른다.
맑은 하늘,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후 그리고 바람과 분위기 모두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그런데 진짜 결혼식이었다. 그들이 마음이 들뜬 걸 보니 모두들 연미복을 입고 나비넥타이를 메고 웨이터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웨딩드레스 나락을 잡고 쫄망쫄망 따라다니거나 이벤트를 보여준답시고 수영장의 스프링보드에 카누를 타고 올라가서 다이빙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초반에는 모차르트의 세레나데 G장조, K.525번 "Eine kleine Nachtmusik"를 현악 4중주단이 연주하드니 그 다음으로 비용을 많이 썼는지 스윙글 싱어즈의 음악이 흐르고 있다. 스윙글 싱어즈가 진짜왔다. 현악사중주단은 많다. 하지만 스윙글 싱어즈는 하나다. 스윙글 싱어즈의 객원 멤버와 OB도 왕창 불렀다. 다만 최고의 오디오로 AR 틀어놓고 퍼포먼스 그리고 증강현실을 적당히 조합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객원 멤버와 OB를 봉으로 불렀을 리는 없다. 봉으로? 조금 저급한 단어가 나왔으나 지우지 않는 건 그들의 음악이 워~낙 멋지니까 그 비교 효과를 노린 것 같다. 아무튼 모두 생음악이다. 쉬는 시간에 어느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약간 범생이 타입으로 생긴 웨이터가 피아노에 앉아 잠시 바흐의 이탈리안 콘체르토를 연주하기도 했다.
저기 한켠으로 보이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왠지 모르게 우수를 간직하고 어딘가 모르게 약간 슬퍼보였지만 크게 겉으로 드러나는 우울한 행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의 미모는 어느 예술 및 예능계 최고 스타보다 딱 2배 뛰어났으며 그녀의 지성과 인품, 성격은 최상의 가문의 자제나 후천적으로 빚어낸 최고의 인재보다 정확히 2배 반 그리고 그녀의 유머감각과 기타 제반 여건은 모두의 예상과 기대보다도 완전하게 3배 훌륭했다. 그런데 왜 신랑이 보이질 않는지는 알 수 없었다. 눈치없이 물어보고 다닐 수도 없고 그들은 서로들끼리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즐거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이미 물어보았는데 동문서답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저쪽에서는 커피 한 잔을 놓고 멋진 남자들끼리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커피 한 잔을 놓고 눈으로, 눈으로만 두남자가 대화를 한다. 두남자는 슬리퍼맨과 구두를 신은 남자다. 슬리퍼맨은 A, 구두를 신은 남자는 B로 약칭한다. A는 슬리퍼를 신고 있기 때문에 클래식 수트를 입고 구두를 신은 B에 비해 좀 초라해 보이지만 그는 대신 커피 한 잔을 들고 있다. A는 금방 내린 따끈따끈한 향기로운 천상의 커피 한 잔을 들고 있다. 슬리퍼맨 A가 먼저 선점한 한 잔의 커피를 양보하고, 그 대신 B의 구두를 건네받아 신는다. 약간의 안면은 있는 사이 같다. 이제 두남자가 슬리퍼와 고급 신사화를 바꿨다. A가 구두, B가 슬리퍼를 신은 채로 커피를 들고 있다. B는 사뭇 흐뭇한 표정이다. 모두를 흡족하게 만드는 비즈니스다.
그렇게 슬리퍼를 신고서 눈썹이 짙고 신수 훤한 남자 B가 어렵게 얻어낸 커피 한 잔을 마실려는 순간, 자기에게 성숙한 미인 C가 다가온다. 그녀가 다가오기 전 그러한 여인네를 유인하기 위해 B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는 않은 듯 하다. 온갖 수식어를 갖다 붙여야 하는 여성의 눈빛은 그저 그 눈빛만으로 어떤 남자의 마음도 능히 콩닥거리게 할 수 있을 듯 한다. 완전 뇌쇄적이라서 쏘아보는 그 눈빛만으로 B는 멈칫한다. 마침내 B는 그녀의 눈빛을 거부하지 못하고 C에게 커피를 건네준다. 신사인가 보다. 그 남자의 안색은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 면모를 보여준다. 포커페이스다. 커피 한 잔과 미녀와의 간밤의 데이트를 또는 그녀와의 한살림을 바꾼 것 같다. 그녀는 냉큼 떠나버렸다. B는 이제 커피와 고급 구두, 모든 것을 잃었다. 2개 잃으면 다 잃은 거나 마찬가지다. 이태리식으로 미녀의 손에 키스하거나 프랑스식으로 양볼에 뽀뽀하는 건 물건너갔고 마우스 대 마우스는 꿈도 못 꿨고 미녀와의 혼담은 커녕, 가벼운 대화 몇마디 없이 상황은 끝나버렸다. 이런 가벼운 슬리퍼 흠.
그 후로 아름다운 여인 C는 잔디밭에 있는 초대형 우산 밑에서 햇살을 받으며 바람을 느끼고 A와 다정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엘레강스 여인 C는 화이트 와인 1잔을, 마초남 A는 처음에 B의 구두와 바꿨던 커피잔을 들고 있다. 즉 정리하자면 A가 슬리퍼를 신은 채로 먼저 커피를 들고서 B에게 접근해서 커피를 건네고 구두를 얻은 후, 그 다음 여인 C가 B에게 다가가서 커피 한 잔을 양보받아 온 다음에, 먼저 와서 화이트 와인 1잔을 들고 있던 A와 서로 음료를 맞바꾼 것이다. 마초 A와 여인 C는 원하는 모든 것을 예술적으로 다 얻었다.
저~쪽에서 슬리퍼를 신고 걷다가 우연히 그 모습을 보고 B는 <뭐야 난 다 잃었잖아!> 마치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 토로하고 싶은 것 같은 쓴웃음을 짓고 있다.
두시간 후.
다시 B가 슬리퍼를 신은 채로 새로운 커피를 마시려 한다. 왜 꼭 그 커피는 한 잔씩 밖에 남지 않는 것인지 참으로 신기하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A가 그에게 다가온다. 카페인이 필요한가 보다. 카페인과 대화 나눌 상대가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또 눈으로 대화를 나눈다. 뭔 텔레파시 능력자들이다. A가 눈빛으로 당신의 커피가 탐난다고 신호를 보내자 슬리퍼를 신은 B는 저 앞의 호수, 바다같은 호수에서 쉬고 있는 요트를 가르킨다. 어떻게 보면 호수, 어찌 보면 바다로 보인다. A와 B는 그렇게 천리안으로 요트의 운전대 앞 탁자에 놓여진 한 잔의 레드 와인을 보고 있다. B는 A에게 그걸 가져다주라, 그러면 이 커피와 바꾸어주겠다 하는 듯한 눈썹 모양을 그리고 있다. 서로 흔쾌히 웃는다. 잠시 후.
온몸이 물에 흠벅 젖은 A는 커피를, 근사한 수트를 입고서 슬리퍼를 신고 있는 B는 젖지 않은 채 레드 와인을 마시고 있다. 그 포도주는 슈베르트와 멘델스존을 듣고 자란 포도를 이용해서 비밀의 피라미드 공간에서 100년간 숙성한 와인인가 보다. 또 A가 마시고 있는 커피는 부작용이 전혀 없는 환각과 환청, 환영, 환상을 가져다주는 신세기 약물이 첨가되어 있나 보다. 도대체 그 커피 브랜드는 뭐란 말인가? 아니면 일부러 A가 뭉개진 이유는 구두굽에 뭔가 신비의 물건이 숨겨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흔히들 뉴스에서만 봤던 금막대기 1,000개를 농축한 (메추리알 사이즈) 환과 그 비법이 담긴 칩이 구두굽에 내장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 A가 구두는 이미 얻었으니 너그럽게 일부러 위장 삼아 스타일 구겨준 것이다. B는 그것도 모르고... 그는 허우대만 멀쩡한 남자다. 다만 생김새가 유명 영화배우를 닮았을 뿐이다.
그건 그렇고, 친한 친구들은 온전히 그 모든 광경을 구경하고 나서 약속이나 한 듯이 이구동성으로 한마디 한다.
「광고찍고 있네!」
친구들은 모두 음식을 먹다 내용물이 입천장에 딱 달라붙은 듯, 뭔가를 할려다가 뭘 할려고 했는지 잊어버린 듯, 공놀이를 하다 공이 교장실 창문을 깨트린 듯, 주머니에 푼돈 딱 얼마 남았는데 주머니에 구멍이 나서 그 돈이 어느새 빠져서 잃어버린 듯, 특급 코메디언이 바깥에서는 항상 뻥뻥 터트리지만 집에만 오면 왜 못-우끼냐고 구박 받고 맥을 못추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위처럼 적혀진 글로 보면 1~2페이지되어 보이지만, 영상으로 보면 1분이 채 안되는 그런 에피소드일 뿐이다. 그렇지만 상당히 웃기고 또 보고 싶고 기억에 남는데다가 얼마간은 기억하고 싶게 만든다. 뜬구름 잡는 허황된 얘기지만 광고일 뿐이지만 그러하기 때문에 그것은 광고거나 로맨스, 둘 중 하나였고, 그러므로 누구는 계속 속고 싶었고, 따라서 누군가는 그 마법에서 깨어나기 싫어서 그 분야 업계에서 계속 열심히 일하며 웃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세상은 광고가 예술이다. 광고도 진짜 예술이다. 결정은 몽땅 소비자 몫이다. 책임 또한 소비자가 진다. 너무 누릴 게 많으니까 어떤 부분에선 옛날 세상의 예술혼이 지금 세상에선 살아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과거와 지금은 그냥 방법이 다를 뿐이지만 헝그리 정신은 중요하다지만 배고픈 소크라테스 뭐라뭐라 하지만 어떤 책의 그림을 보면 소크라테스, 엄청 잘 드시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도 그는 불세출의 철학자임에 틀림없다.
그곳엔 인간의 영원한 친구인 강아지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종류도 다양했다. 그레이트 데인, 셰퍼트, 잉글리시 마스티프, 나폴리 마스티프, 달마시안, 중앙아시아 오브차카, 말라뮤트, 티벳 마스티프(장오), 세인트 버나드, 피레니안 마스티프, 시베리안 허스키. 게다가 이름을 잘 모르는 언제 어디서나 여러모로 가장 무난한 여러 똥개들도 즐비했다. (귀가) 덜렁덜렁 (눈썹이 입술이) 실룩실룩. 아슬아슬하게 무질서와 대충대충의 미학을 무너뜨리지는 않고 있었다. 단지 잠깐 어떤 덩치 큰 녀석이 험핑에 몰입한 사태가 1번쯤 있을 뿐이었다. 고양이들은 번잡하다고 실내에서 나오지 않은 듯 하였다. 어! 저기 아까 험핑 때문에 웃으면서 쓰러지셨던 부인, 즐거운 대화를 나누시고 있다.
파티에서 웃고 즐기는 사이에 아름다운 신부가 아빠와 한 손을 잡고 무대로 등장한다. 모두들 그들을 향하고 웃고 그리고 박수도 치고 싱그러운 분위기 일색이다. 눈부신 꽃피는 봄날의 신부는 한 손으로 꽃 한송이를 아버지의 수트 윗주머니에 살며시 꼽는다. 신부의 그 손길은 정말 명플로리스트나 로댕을 조각한 미술가의 손길 같다. 앗, 그 조각가 이름이 로댕이었나? 어쨌든 그런데 갑자기 안개가 끼거나 저 멀리서 용오름 현상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뭔가 형언할 수 없는 미스테리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 정말 특이한 할 말을 잊게 만드는 느낌 쌔한 어떤 뭔가에 휩싸인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기분과 인상 모두 평온하게 놔둘 수 없는 기이함이 감지되고 있었다. 그건 마치 삼국지의 제갈공명 정도는 되야 감지할 수 있는 바람이었다. 제갈량은 척하고 알았겠지만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감이 떨어질 수 있는 그런 적란운 같은 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맞바람이었다. 정말 특이한 맞바람이 불고 있었다. 괴상한 맞바람.
갑자기 신부는 안개꽃 부케를 던져버리고, 아버지에게 한마디 하고는 무대 멀리로 뛰어간다. 아마도 미안하다는 말일 것이다. 나 이 결혼 못하겠다고. 드레스를 두손으로 쥐어 올리고 구두는 벗어던지고 맨발로 뛰어간다. 어디서 그렇게나 많은 카메라가 등장했는지 조명도 마술처럼 나타났다. 햇볕 쨍쨍 눈부시더래도 조명은 필요하다. 조명은 곧 마법이니까. 순간 드디어 이름값 못하고 있던 친한 친구들이 움찔한다. 조니는 바로 이거야 라는 안색으로 라이터를 꺼내든다. 그 라이터는 사실 라이터처럼 생긴 디카였다. 현재 판매중인 상품이다. 케빈은 한발 앞서 아이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다. 그는 몇 년 전에 아이폰으로 영화도 수~편 찍었다. 완성도가 떨어져서 문제지만. 알렉스는 시상이 떠올라서 수첩에 급히 글을 쓰고 있다. 알렉스의 선그라스에 내장된 초소형 카메라도 작동중이었다. 마크도 있다. 그는 자신의 차에 내장된 카메라로 이미 녹화중이었다. 행사 관계자와 처음에 잠시 마찰이 있었지만 차가 멋지고 또 이미 끝난 얘기라고 하면서 그만의 비즈니스 어법을 구사하여 행사 관계자를 한방에 거짓말로 설득시켰다. 그리고 중요한 그 장면에서 하워드는 화장실에 갔다. 전날 햄버거 먹고 급체한 경마 기수가─저번에 쓸 때는 말(horse)이 햄버거 먹고 급체한 걸로 썼는데 그냥 넘어갔다─혹시 하워드였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냥 자연스러운 신체 대사 과정일 것이리라.
할일없이 한 수 뺏긴 닉과 제임스는 뛰는 걸 원래 좋아했다는 듯이 이런 순간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이제 좀 파티가 흥미로워질려고 한다! 이제 좀 사는 게 재미있어질려고 한다! 라는 것처럼 뒤에서 그녀를 쫓아간다. 그런데 닉은 언제나처럼 멋있었지만 제임스는 폼이 엉거주춤했다. 제임스가 고래를 옛날에 잡았는데 또 잡았을 리는 없고, 그는 괜히 저번주 어느 날 아침 꿈에서 깨자마자 비몽사몽중에 어떤 실수를 하고, 어떡하나 그 기분으로 하루를 이어갈 수도 없고─털고 일어나야지, 사랑도 똑같아, 인생도 마찬가지야─정신차린 후, 케냐산 8성급 원두를 핸드 드립으로 제조해 먹고, 낮에 케냐의 최상급 마라톤 선수를 흉내낸다고 앞발 주법을 따라하다가 종아리에 알이 굳건히 박혀서 뛰는 폼이 좀 어정쩡했다. 케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애기도 아니면서 좋은 거 보이기만 하면 뭐든지 따라 할라 그래. 습관처럼 괜히 어설프게 세계 1등 따라 하다 호되게 역풍을 맞은 것이다. 장점-본뜨기,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한숨. 그들의 앞에 가는 신부는 가면서 드레스를 벗어버리고 올블랙 원피스 차림으로 뛰어간다. 그 절세미녀가 입고 있는 블랙 원피스는 투우를 연상시키는 관능적이고 섹시한 수가 은근히 들어간 어느 디자이너의 작품같았다. 아무래도 신부를 빼앗긴 신랑의 연적이 대단했나 보다. 신랑이 결혼식장에 보이지 않았던 건 미용실 갔다가 차가 막혀 늦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럼 신랑의 연적이 안 보이는 건 왜일까? 왜냐하면 그 연적이 신랑보다 외모나 재력이나 여러 방면의 재능은 비교되지 않을지라도 말발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첫째, 남의 결혼식 파토냈고 둘째, 적당히 생기고 목소리 좋았으면 나타났겠지 셋째, 재력이나 취향─동성애적 내면과 이성애적 성정체성─또 옷발이나 안목과 배경등 뭔가가 있었다면 소란 피우기 전에 정리했겠지 넷째, 봐봐 등장하지도 않고 여자를 부르지 않는가 그것도 드라마틱한 순간에 마법처럼!
그렇게 그들이 따라간 마지막 장소는 해안 절벽이었다. 신부의 스타트 폼은 하프 마라톤 코스라도 뛰어갈 것 같았지만 그곳은 무대와 가까운 바로 언덕 너머로 조금만 가면 나오는 바닷가였다. 아일랜드나 지중해 어디 같은 높다란 곳은 아니지만 첫째, 그만큼 멋지고 둘째, 물에 몸을 내던져도 전혀 위험하지 않을 것 같은 천혜의 풍광을 눈부시게 자아내는 장소였다. 해안가에 도착한 그녀가 있고 그녀의 시선 위로 알파벳 두글자가 씌여진 헬리콥터가 1대 날아와 있었다. 글씨를 보니 CD라고 적혀있었다. 뭔 암구호인가 아니면 누구 이름인가, 콤팩트 디스크? 그 헬리콥터에서 냉큼 줄사다리가 그녀 위로 내려왔다. 그녀는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주위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무수한 꽃잎이 날리고 있었다. 이런~ 누가 음악도 틀었다. 분위기 아주 죽인다. 그녀는 마침내 헬기를 탔고 어딘가로 떠난다.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향수 광고 현장이었다. 당혹감에 앞서는 재빠른 대응은 혹시 닉과 제임스 때문에 촬영 엔지가 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다.
뭐야 이거?
뭐긴 뭔가.
팝아트다!
20세기 중반에 말들이 많았다. 음료수병 몇 개 그려 놓고 작품. 또 커다란 눈의 일러스트 그림을 보고 일각에서는 10분이면 그린다지만 100분이나 10일 정도 소요될 것 같지만 어마어마한 초히트 상품이 되어 여러 나라 떠들석하게 만들고 장기간 인기 폭발. 그런 그림을 놓고 권위있는 언론의 편집장이나 명망 높은 평론가들은 대개들 짧게 언급했다고 한다. 그런 사례들은 많다. 그런 말들은 대체로 이렇다.
「그건 예술이 아닙니다... (뭐라 뭐라 뭐라)」
「쓸데없는 작가다... (뭐라 뭐라 뭐라)」
「도대체 어디까지가 미술이냐... (뭐라 뭐라 뭐라)」
지금이니까 그렇지 그 말도 그 때 당시는 완전 불합리한 평가는 아니였고 또 엉터리 말도 아니었을 것이다. OX 문제가 아니니까. 그런 평을 듣거나 읽은 사람의 말도 맞다. "괜찮아, 난 상관없어, 좋아." 미술품 경매가를 보면 도저히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금액들이 그런 작품들에, 진지한 정통 또는 신종 미술품에 매겨져 있는 게 현실이다. 제약사 창고에 있는 안 팔리는 알약 재고품 조금 구해서 적당히 배치해서 보여주고, 상어, 양, 유니콘을 수족관에 담아 전시했는데 개당 몇-백-억! 해골바가지도 작품이다. 말을 일부러 이렇게 해서 그렇지 그런 작품들은 작품성도 드높고, 그 가치도 아예 0을 하나둘 더 붙여도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뭔 예술이 장난인가? 그럼 소설은 장난 아니고? 예술은 장난이다. 아니 그걸 몰랐단 말인가? 설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 거의 천재적인이 아닌 진짜 천재인 독자께서는 그냥 모른 체, 잘 알지 못하는 척 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 소설도 장난이다. 다만 그 장난이 억겁으로 쌓이면 어쩌다 하나 걸려서 예술이 될 수도 있다.
장난이나 놀이가 되기엔 시간이 태부족한 분야, 예를 들면 야구나 탁구, 테니스 같은 젊어서 승부를 봐야하는 종목일 경우 정상을 달리고 있는 스타는 자녀가 아빠나 엄마의 길을 가고 싶다고 하면 극구 말릴 수는 없지만 일단 반대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건 인생 초장에 승부를 봐야 해서 너무 힘들게 연습하느라 장난이나 놀이로 체감되지 않아서, 그러하기 쉽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많이들 (권하기에는) 너무 힘들다는 말을 한다. 스포츠 분야가 이렇다면 수를 물리기 힘들다거나 극도로 비밀스러운 분야도 있다. 만약 당신이 진짜 정보 요원이야. 맘대로 살지도 못해, 마음껏 사랑도 못해, 어디가서 나 요원이라고 떳떳이 밝히지도 못해, 왠지 모르게 동년배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거 같아, 국제 스파이 박물관도 못 가봤어, 신분만 요원이지 첩보나 작전이나 아는 중요 기밀도 없고, 영화처럼 멋지거나 재밌지도 않아, 에잇 차라리 다른 분야 고위공무원 시험공부나 해서 한번 도전해 볼 걸 그랬어, 그렇다고 다시 일반인으로 되돌아 온다? 뭔가 모호하다. 젊음의 고지에 오르자마자 멀리 인생의 수순까지 모두 가닥이 나버리면 왠지 허전한 일이다. 그런 반면에 길게 볼 수 있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야도 있다. 음악, 미술, 과학, 소설... 전자 1과 전자 2에 비해서 후자는 약간 그렇게 말리는 경향이 조금은 덜 한 것 같다. 하지만 분명 후자 가운데 소설을 쓰레기로 보는 일반인도 없지는 않다. 생각은 자유니까. 다만 그런 의견이 너무 강했을 때 같이 사는 가족이 거북스러움을 반복적으로 오래 계속 느껴서 그렇지. 그나마 나쁘지 않은? 조금 부드러운 한 예를 들자면 이런 경우도 있다. 10권 분량의 대작 소설을 일가족에게 필사하라고 (강)권하는 일. 그건 그렇고 본인도 인정한다. 필사의 영험한 효과를. 하지만 어렸을 때 어설프게 따라하다 초장에 포기해서 효과는 보장 못한다. 그냥 의견은 천차만별이지만 약간 그런 부분들이 있다. 강한 표현이 등장했던 것은 어느 중장년 남자 어른들이 주로 인문-교양서만 읽는 이유와도 일부분 관계 있다. 소설을 펴보면 언제 그 설명 다 읽고, 언제 사건 파악하고, 또 어느 세월에 감상하냐고. 매번 내게 맞는 명작을 읽는 것도 아니냐면서, 대부분은 별로라면서. 사는 것도 그렇자나, 언제 돈 벌고 언제 부를 축척하냐고, 그럼 대관절 언제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거냐고, 세상은 얼마나 급박하게 변하는데 재깍재깍 요점을 파악해야지, 인문-교양서를 읽어서 핵심을 간파하고 모토를 수정하며 비즈니스 감각을 키워야 한다고, 브랜드의 장기 포지셔닝을 파악하고 슬로건에 감흥을 느껴야 한다고, 압축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며 발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숙녀를 만나면 자유자재로 로맨틱한 감언과 명언과 유머를, 친구들과 있을 때는 카피라이트로, 집에서는 일상어에 위트를, 아침엔 이성에 다가가고 저녁엔 감성을 도취시키고, 파티에서는 팔방미인으로 활약해야지 언제 지루한 이야기를 읽나, 긴 이야기도 물론 좋지만, 먹고 살기 급급하니까 그렇다고. 대부분 들어보면 그런 논조야. (이제 쓱~ 문어체에서 구어체로 넘어가야지) 말발에 도움이 별로 안 돼. 오히려 말발을 깎아 먹어. 가난한 것의 문제가 시간을 갉아먹는 것처럼. 소설은 직접적이지 않아. 주제의 범위가 너무 넓거나 똑같아. 거의 비슷한 패턴이야. 같은 작품이 영화로 나온 게 있으면 영화를 보지 소설을 왜 읽어. 소설 좋아하는 남자? 별로 인기 없어. 차를 좋아한다면 처음에 아무 생각없이 바라만 보면서 무심코 구경만 해, 그러다 관심을 갖고, 다음에는 재미삼아 여기저기 알아봐, 알아만 봐, 그냥 보기만 하는 거야. 그 다음에는 타고 싶어져, 몰고 싶어져, 갖고 싶어지는 거야. 그러다 나중엔 결국 차를 사게 된단 말야. 그게 순서야! 광고의 세계와 상당히 넓은 영역으로 겹쳐지지. 소설? 처음엔 뭐지 하고 읽어. 초반에는 심심해서 보다가 다음에는 재미로 봐. 그러다 계속 봐. 또 다음에는 소설에 대해 친구에게 얘기도 하고 블로그나 SNS에 글도 써. 추천도 해. 그럼 더욱 그 세계를 알고 싶어져. 더 깊이 들어가게 되는 거지. 점점 더 점점 더. 완전 흠뻑 빠지는 거지. 그러다 끝에 가서는 소설을 쓰고 싶어져. 그럼 나중에는 소설가가 되겠지. 그래 소설가가 됐어.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하지만 돈은 못 벌어. 바로 이거야! 그게 정규 코스란 말이야. 그러니까 락 콘서트에서 기타줄 물어 뜨고, 팬들 열광하고, 무대에 팬들이 던진 속옷 수북이 쌓이고, 전기 기타 불태우며 축제가 벌어지기 전에 이미 아마추어 기타리스트 인생 초반에 기타리스트의 머리카락이 잘리든가 기타 목이 부러지든가 하는 거야. 다스바이더님에 의해서! 문화권에 따라서는 집에서 후줄근한 팬티만 입은 채로 엉덩이 걷어차이고 쫓겨나거나, 헤어를 거의 스킨헤드로 밀리고 외출금지 당하는 톰보이, 비슷한 이치야. 봐봐 애들 여럿 고개 끄덕끄덕하잖아. (얘기가 여기서 그치면 뭔가 서운한 법) 하지만 그 청소년들도 커서 더나은미래주식회사에 취직하고 결혼해서 애낳고 나중 애 키우다 보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어느 정도는 또 설교를 하게 돼. 원래 그렇게 되나 봐. 거리에서 유난떨고 꽃다발을 들고 뛰어가는 남자, 여자친구와 헤어지지 않아. 운전도 잘하고 매너도 좋고, 상냥하고 착하거든. 그런 남자 놓치면 여자는 두고두고 후회할거거든. 인문-교양서에 뭐라고 적혀있는지 읽어보란 말야. 똑똑히 읽고 제대로 느껴봐. 사람들은 멀쩡히 앞에 걸어가는 연인의 앞모습을 상상하지. 누가 나아 보이네 어쩌네저쩌네. 왜 남의 일인데 그들의 객관성을 당사자도 아니면서 마음대로 이리저리로 쟤 보고 평가하냐는 말이야? 뭔가가 너무 차이가 나면 나중 힘들어지거든.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 초딩때는 시간 많자나, 크면서 점점 자유시간이 줄어들어, 핸드폰 연락처도 30살이나 적당히 언젠가를 기점으로 꺾여. 어려서는 이거저거 다 하고 싶다가도 언제쯤이 되면 통장 잔고가 보이지. 왜 엄마 아빠는 내 성년식에 주식 통장을 선물해 주지 않았냐고 징징댔는데 이제 보면 그때부터라도 스스로 버크셔 헤더웨이를 따라할 걸 그랬어. 특출난 재능이 있거나 끈기 하나는 자신 있다거나 길게 가도 괜찮다면, 조금 가난해도 상관없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좋아 죽겠다면, 문학이 정말 좋다면 그러면 그 길을 가는 거야. 뜻밖에 얻어 걸리거나 의외성과 행운과 우연은 셈하지 않았으니까 참고하고. 비록 간곡하고 사려 깊은 사근사근한 태도와 어조는 아니지만 (나도 그게 내 분야가 아닐지라도 못 가진 재주가 때로는 조금 책망스럽기도 하지만 그건 그렇고) 남자 대 남자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하는 얘기야. 자, 끝으로 음... 그렇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애절한 사랑을 너무너무 슬픈 사랑을 꼭 해야 되겠니? 그걸 진정 원해? 주인공 하고 싶어, 조연 하고 싶어? 인문-교양서야 소설이야? 내 말 들을래 쟤 말 들을래? 뭘 고를 거니? 나중 어느 업계로 가고 싶어? 강연, 뉴스, 토론이야 아니면 영화, 코메디, 드라마야? 인문-교양서냐고 소설이냐고? 뭐? 카페 사장이라고? 이런~ 크게 될 놈이구만(먼)! 조금 길어졌지만 이런 식이다. 과장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일리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비인기 종목, 순수 학문, 집안일, 필요한 악역... 모두 같은 얘기다. 쳐다보지도 마라, 인간은 백안의 신이 아니니까. 뒤돌아보지 마, 뒷모습의 환상을 깨니까. 다른 거 보고 듣고 읽고 겪고 나중에 결정하렴, 세이렌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으면 너의 온 인생은 음악 업계에 모두 바쳐야 하니까. 아무도 믿지마, 그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니까 새로운 생각을 하기 힘들어지니까. 한 분야만 파면 실은 다른 쪽에 눈길을 주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대화할 때 상대방의 전공을 파악하며 (비즈니스식 표현으로) 니즈를 해석하며 남의 생각을 읽는다. 그리고 이번 챕터 첫문장의 답에 대해 머릿속으로 상상 리포트를 작성한다. 즉 이미 초딩 즈음부터 인생 고민은 시작되고 어른들은 또 그때를 동경한다. 어렵게 살다간 옛날 위인을 보면 쫄딱 굶으면서 평생을 살든가 온갖 성병에 시달리거나 정말 기구한 삶을 살다가고 사후에 평가받는 일도 있다. 어른이 되면 모두 깨닫거나 듣고 알게 되는 사실들이다. 바로 찻집에서 하는 이야기들, TV 토크쇼에서 나오는 말들. 그건 바로 장난이나 놀이에 또는 그렇게 시작한 분야에 거의 일평생을 들여 몰두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모든 것을 걸었으니까.
이와 같은 글을 읽고 논리적이고 시각과 청각이 잘 분리되고, 고르게 여러 능력이 적당히 그리고 균등히 발달되어 있는 남자들은 마음이 움직이는 가운데 계속 생활해왔던 것처럼 말발을 키우면서 대충 놀면서 쉬엄쉬엄 읽다가 하나는 기억해서 저장하고, 두번째는 패스, 세번째는 빨리 읽고, 네번째는 챙기는 반면, 어느 극도로 감각적이면서 감정적인 뇌파가 언제 어떻게 어디로 튈지 모르시는 뇌파 매커니즘의 소유자라면 아주 잠시 조금 헷갈릴 수도 있다. 물론 반대로 거친 남자쪽에서 반문할 가능성도 있고 그렇다고 크게 낙담할 일도 아닐 것이다. 독자의 마음을 슬쩍 넌지시 들여다 보자면 이럴지도 모른다.
「이거 한도 끝도 없이 놀라는 말이야? 이성적으로 균형 잡힌 생각을 하라는 말이야? 언제는 문체가 뭐고 문학이 어떠니 하드니만 이제는 막 놀라고? 이런 돌팔이 같으니라고.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옛날에 이런 말 듣고 (읽었나?) 놀다가 지금 이렇게 됐자나! 에이 못쓰겠네. 아주 놀고 있네. 이제 그만 소설과 영화와 음악과 드라마와 미술과 예술과 온갖 아름다움과 미지의 세계에서 나와서, 뛰쳐 나와서 현실을 살란 말이야. 현실을 살라구. 언제까지 그 뒤에서 웅크리고 쪼물딱거리기만 할꺼니? 쪼물딱. 그 잔소리 이제 좀 다른 걸로, 뭐든 좋으니 다른 걸로 바꿔보렴!」
「처음엔 연애할 때 리드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는데, 오랜 시간 지나 보니 자긴 하고 싶은 데로 살고 저 인간은 다독여주고, 칭찬하고, 회유하고, 설득하고, 그러다가 평생 최면을 걸어버릴 줄이야, 평생 리드해버릴줄 누가 알았겠어. 결론은 허당인데 말은 잘해, 청산유수야. 난 바가지 긁는 집사람이고 인생, 낭만, 삶, 사랑, 품위...는 모조리 다른 사람들 얘기고 그저 그냥 살아가는 것 같아. 살림하고, 아이를 갖고, 애를 낳고, 애 키우고 또 살림하고 밥하고. 하나 더하면 돈 벌고? 그러니 내가 말발이 늘 리가 있나 말 수만 느는 거지. 이젠 늠름한 평균치 동네 아줌마야, 언젠가 할머니가 되겠지! 재미있긴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얘기야.」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 이리 저리로 흔들린다오.」
인정한다. 이런 글을 읽으면 머리가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헛바람에 상당히 심각한 부작용도 동반할 수 있다는 것을. 시간낭비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까지. 심지어 이미 어디에서는 이런 글 읽으면 멍청해진다는 피드백을 토대로 매끈한 그래프를 작성중이라는 정보도 있다. 승률은 반반이다. 막무가내로 가까운 사람을 들들 볶거나 닦달하지 말고 호흡을 가다듬자.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우주의 기를 받아들인다. 하나 둘, 하나 둘. 먼저 어쩌다 간혹 우아하고, 한편 근사하게 그리고 대개 고상하게, 행여 잊혀질만 하면 한 번쯤 기품있게 살기.
구스타프 말러가 그랬다. 언젠가 미래에 내 시대가 올 것이라고. 어디서 주워들었기 때문에 정확한 말은 검색해 봐야 알 수 있다. 앞뒤 떼고 전후좌우 모두 빼버리고 그 말만 딱 떼어내면 그건 예술가의 자존심이나 시대를 앞서가는 예언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이 장난인 시대는 <앞으로 올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옛날부터 그래왔다. 새롭지 않은 얘기, 누구나 아는 얘기. 장난인 듯 아닌 듯, 예술로 보이지 않는 것 같이 (예술로) 보인다든가, 소설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데 (환상) 소설로 느껴지거나, 소설이어야지만 읽을 수 있는 정취가 있긴 있는 것처럼 없어도 있는 것처럼, 딱 그런 애매하고 이상한 팝아트 같은 모양의 지적 자주성이 엿보이는 사색적인 기질의 소설이 있긴 있는 듯 하다. 없어서 만들어 냈다기 보다는 수많은 아마추어들이 오랜 세월 지속하고 있는 하나의 현상이 아닌 일견 생활인 것 같다.
'소설'에 해당되는 글 198건
어떤이는 술값을 벌기 위해 글을 쓰고, 누구는 노후 자금을 모으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 소설 주인공처럼 무작정 가출을 하지 않고 직장에 나가며, J같은 어정쩡한 인물이라면 어느 날 우연히 백화점에서 구경한 기계식 키포드! 고급 기계식 키보드를 갖고 싶다는 마음에 그것을 두드려서 아름다운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구에 의해 싸구려 볼펜을 쥐고 조그만 수첩에 나름 뭔가를 적는 의도를 실현할 것이다. 물론 값싼 볼펜이 제일 마음 편하다. 비싼 한정판 펜으로 글을 쓴다면 예술혼이 살아나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아마도 일부 전문가들은 손글씨로 글을 쓰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정작 기계식 키보드를 마련했는데 창작력이 바닥치면 어떡하지? 그럼 뭐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 거지. 모두 제각기 짜여진 각본에 의해 움직이듯 원인 다음에 결과가 이어지고 결실에 앞서 노력이 요구되며 북반구에서는 봄-여름-가을-겨울이 남반구에서는 겨울-가을-여름-봄 이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가보지 않아서 직접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다.
소설이 시작되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극사실주의에서 약간 영화 같은 작위적인 전개로 바뀌었다. 마구 이유도 모르고 처음부터 쫓기고 쫓고 꿈과 모험을 찾아 떠나고 우연 플러스 한 번 더 우연 그리고 계속 우연, 이 환상적인 초현실적인 방법을 처음부터 써먹지 않고 뒤로 오면서 그 분량을 조금씩 조금씩 늘려갔기 때문에 약간은 어떤 그래프 기울기가 먹혀들지 않았나, 뻔하지만 똑같은 클리쉐지만 덜 상투적으로 읽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이걸 중독이라고 하거나 서서히 덥혀진다고 말한다. 나쁜 중독은 아니니 안심하시라, 혹시 중독됐다면. J는 지금 혼자 스스로 자신이 독자라 가정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눈 감고 휘둘렀는데 장외 홈런이라고. 단, 초반의 극사실주의에 비한다면. 초반에 무던히도 얼빵하고 끝없이 한심하며 덜떨어졌다고 자인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그래프 곡선을 올리고 작법의 패턴을 바꾸는 게 긴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한다. 현재-진행형 생각하기. 고리타분한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상할 것이다 라는 의도로 쓴 우아할 것이다 라는 목표로 시도한 예언적 문체도 많이 다듬어졌다. (서사적으로) 비교적 그렇다. 자기도 모르게 간결하고 짧은 수제 햄버거 글쓰기 스타일로─아니면 피자체? 파스타체? 아무거나 갖다 붙이자면─상당히 변했다. 어떤 레벨의 수제 햄버거인가는 그 판단은 먼 미래로 무작정 미룬다. 먼저 쓰고 따라하고 여기에 더해서 언제 무엇을 했고 그것을 떠올려 소설로 쓰고 변형하고 보고 듣고 느낀 점을 뒤섞고 지금까지 그랬다면 이제는, 이제는 본인이 걸어다니는 소설이 되기 위해 저 세상으로, 아 흔히 말하는 다음 세상이라는 뜻이 아니라 굉장히 협소한 단촐한 생활 반경과 경험을 넓힌다는 의미로, 저 세상으로 나아가서 자신이 즉, 걸어다니는 소설이 거동하여 실시간으로 그의 의식을 투명인간처럼 아무대나 들이대어 걸어다니는 소설의 문학적 의미를 늘리기로 한다. 재수없게도 지는 지가 이미 걸어다니는 소설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것 같다. 애쓴다. 하지만 썩 어이없는 시도라고 쉽게 치부해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머머 사고 싶어-하고 싶어-먹고 싶어-보고 싶어-(차를) 타고 싶어 같은 1차적인 욕구보다 더 나은, 저처럼 되고 싶어-누구를 닮고 싶어-사고 싶은 상품의 모델이 되고 싶어 같은 차원보다는 조금 더 있어 보이는 살아있는 교양 소설, 걸어다니는 예술품, 처음부터 끝까지 퍼포먼스라고도 어찌보면 그럴 듯이 용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말리는 사람이 없다면 말이다. 그나마 완전 답답한 지경에 이르지 않은 게 어디란 말인가. 커오면서 꿈이 없든지 작거나 자주 변해서 그랬을까? 극 속의 공작 같은 그 상태의 세계가 궁금해서? 원래 어른을 향해 가는 사람들은 꿈이 없거나 작거나 자주 변한다. 그건 나쁜 게 아니다. 그런데 많은 예술 작품이나 TV나 인터넷이나 어른들은 너는 왜 꿈이 없냐고, 왜 되고 싶은 게 없냐고, 왜 꿈이 작냐고, 너는 어떻게 된 게 애가 그 모양이냐고, 말은 교양스럽게 돌려서 하지만 내심 그런 말을 하고 싶어 한다. 기분 좋으시면 또 꿈이 바뀌었냐고 속으로 흐뭇해 하시기도 한다. 당연히 자기 커오는 동안 행적을 아니까 그에 비추어서 도움되라고 그러시겠지만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작은 도릿에서의 귀부인의 말이나 그보다 좀 덜한 노는 데 일생을 즐기는 데 열중한 채털리 부인의 귀족 아버지 같은 말을 어디 하기 싫겠나? 그건 아니야. 글로 쓰기도 어려운데 말로 어떻게 해. 소설이나 되니까 가능한 얘기지. 어찌 보면 그래서 태도가 전부야. 대공 좋아하시네 다 공작새 같은 얘기야. 책꽂이에 가만히 있는 책이 뭔 잘못이라고 밑줄 그은 페이지들을 하루에 1장씩 초코-쿠키 먹듯 사람들 보라고 혹은 절대 따라해서는 안된다고 또는 혼자만 아는 기막힌 특수 비법이라며 비밀스럽게 밑줄 그은 종이들을 잘근잘근 깨물어 먹었다면 참 답 안 나올 것이다. 좋게 보자면 이건 멜로드라마적 사고법이다. 이건 뭐야, 지가 영화와 동격이라고? 말이 안 나온다. 어안이 벙벙하고 소설을 읽다 소설가를 때리고 싶어진다. 참~내, 언제는 문체가 변했다며...
최고로 쾌적한 본인에게 최적의 환경이 제공되는 휴양지에 가지 않아도 온갖 교통수단을 모두 이용하여 천상의 파라다이스에 초대 받아 놀러가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삶의 격을 올리는 방법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장소의 이동을 들 수 있다. 황홀한 재즈나 최신 인기곡이나 가늘고 길게 인기를 유지하는 팝송, 고전 음악이나 발레 공연을 적합한 장소에 가서 듣고 보면 기분 끝내준다. J가 자신의 의식을 좌충우돌 아무데로나 파장을 넓힌다고 했으니 아마도 이젠 몸, 의식이 아닌, 의식과 밀접한 몸을 이동할려나 보다. 그 대상 후보들 가운데 간택받은 곳은 운 좋게도 미술관이다. 미술관! 웰빙의 법칙은 정말 손쉽고 놀랍도록 간단하다. 동물원에는 나중에 놀러가자. 그럽시다. 혹시 미술관, 싫어하시나? 유머감각이 풍부하고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그대는 절대 그럴 리 없을 것이다. 미술관 가운데서도 이왕이면 고급스런 딱 그렇게 보이는 미술관으로 정하자. J는 정했다. 어 저기. 지금 간다. 출발. 음 도착했다. 너무 오랜 여정을 거치는 것도 뭐하지만 뚝딱 도착하는 것도 그러고 보니 좀 방정맞다. 하지만 일단 도착했다.
물론 그가 미술관에 가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007 가방을 구해서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 가서 무작정 기다리면 똑같은 가방을 들고 있는 멋진 사람이 접선하러 접근해 오지 않을까? 혹여 오지 않는다면 자신과 비슷한 띨띨한 생각을 갖고 그곳에 도착한 우스꽝스런 인물을 구경할지도 몰라, 그러다가 공상은 이 정도 선에서 끝낸다. 그가 초딩도 아니고 이런 혼잣말이 예상되니까. 뭔 놈의 007 가방 종류가 이렇게 많아?
대체로 미술관은 밝다. 깨끗하다. 교양미가 넘친다. 부티가 난다. 그리고 그곳에는 혼자 들른 여자들이 많으면서 뭔가 사연이 있을 듯한 여행자, 이중 국적을 추측케 하는 외국인을 볼 수 있고 동시에 서로 간 다정한 사이에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싸우고 사고 치고 미술관에 들르지는 않는다. 그가 들린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작품은 고인의 작품이다. 소설 초반에 왜 섬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가? 라는 설명을 잊지 않는 독자, 그대를 도저히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다. 바로 전시중인 작품은 독자가 살고 있는 곳에서 상당히 머나 먼 나라의 상당히 옛날에 살았던 명인의 작품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무채색 원피스와 극도로 포멀한 (보일 듯 말 듯한 스트라이프가 들어가고 버튼이 많고 꽤 모던하면서 클래식한) 수트, 익숙하지 않은 뭔가를 상기시키는 향수 내음, 이미 팔린 예약된 작품이라고 붙여진 쪽지, 같이 와서 작품을 감상중인 아이에게 건네는 엄마의 다정한 말 한마디 "이건 누구의 작품이란다. 수잔, 어떠니? 차분히 감상해보렴." 어조와 여운, 음률, 태도만 잘 어울린다면 길게 말하지 않아도 무척 준수한 미술 애호가처럼 보이는 법이다. 여간해서는 어렵지만 또한 코믹한 분위기와 정다운 세련미와 빈틈 어린 인간미와 고결한 지성이 모두 같이 뒤섞이기는 조금 어렵겠지만 말이다. 워 이런, 이 어감 꼭 말발 같다. 작문의 긴장감이 텐트를 친다. 텐트를 왜 쳐, 한 번도 안 친 남자 어디 없나. 공룡처럼 멸종 안 한 게 어딘데!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놨드니 보따리 내 놔라, 마치 이 말 같다. 누군가의 그들의 생각을 읽었어, 오케이.
"일정한 일을 해서는 그림을 별로 못 그려요. 그림 그리는 것이 제일 목적이고 다른 것은 다 부수적인 거거든요. 그러니까 살기 위해 뭔가 좋은 일이 있다고 하면 작가를 못해요." 같은 외우기 어려운 작가의 말과 암기하기 쉬운 짧은 글도 있었다. "만족하면 작가는 그만이다." 그렇게 그림과 글을, 글과 그림을 주로 그림을 보면서 뭔지 모를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 무언가는 아무래도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닮았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발검음 소리가 들린다. 아는 사람은 바로 안다. 즉시 느낀다. 청아한 구두굽 소리.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또각.
관람객이 붐비지 않아서일까? 컬러를 쏙 뺀 듯한 그리고 장신구와 옷의 모든 생산 연도와 브랜드가 근소히 차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썩 일관된 컨셉으로 흠을 잡기 힘든 차림새의 아가씨가 J에게 다가와 천천히 말을 건넨다. 반듯한 성장 환경과 이것과 저것이 예상되는 감이 든다. 아 그리고 안경줄도 하고 있다. 고풍스러운 안경줄 촌스러운 안경줄 하지만 마치 멜빵처럼 잘 매칭만 한다면 정말 괜찮은 흔하지 않게 보이는 그런 안경줄을 하고 있다. 옛날 사람과 현대인의 차이 가운데 가장 극명한 하나는 이런 것이다. 모자 같은. 하지만 모자를 항상 쓰면 갑갑하고 머리카락이 눌린다. 게다가 그런 외관과 더불어 티아라도 반짝인다. 심지어 면사포도 쓰고 있다. 미술관 가운데는 부케가 놓여있다. 뭐 마술봉? 그건 없다. 이곳이 유치원 학예회도 아니고. 그리고 결혼식장이 아니니까 최소한 장소에 맞게 웨딩 드레스는 입지 않았다.
「저.. 혹시 ( ) 교수님 제자 되시나요?」
<교수? 나는 알고 지내는 교수는 없는데 왠일이지. 아리따운 아가씨가.>
「어머 아니신가 보구나. 죄송해요. 들고 계시는 책 표지가 전시중인 작가님 제자이신 ( ) 교수님의 저서와 비슷했거든요.」
<뭐야 내가 들고 있는 이 책은... 이 아가씨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것 참 아가씨의 첫사랑을 물어볼 수도 없고 딱히 답하기 난처한 물음인데.>
화술의 기본은 듣기, 침묵, 앵무새 흉내내기, 추임새 그리고 그리고 표정이다. 표정이 그 얼마나 중요한데. 모르긴 몰라도 딱 보니 청자인 그는 오직 표정 하나 만으로 상호 대화의 전과정을 모두 소화할 거 같은 모습이다. 일단 두고 봐야 한다. 사람 목소리 너머로 잔잔히 들릴락 말락 매우 조용히 복고풍 음반 소리가 섞인 어느 명테너의 오페라 아리아가 들린다. 매우 조용히. 그녀는 베르디라면 바리톤 보다 테너의 목소리를 더 좋아하나 보다. 여기서 너무 깊게 들어가는 남자, 그다지 인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 타입이다. 아무래도 그녀는 중견 큐레이터이다 보니 눈치는 일단 귀신 같이 빠를 것이다. 상대방의 꾀죄죄한 옷차림을 보고도 그냥 무덤덤한 때문인지 최소 시간을 위해서인지 위장술인지 하나만 봐도 열을 아는 타입처럼 보인다.
「아 세간에는 교수님이 전시중인 작가님 제자라는 사실이 그리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죠.」
「추상파 좋아하시면 다음 전시도 괜찮으니.. 조금.. 기다려주세요.」
신호가 켜졌나, 켜질려다 꺼졌나. 뭐 이리 금새 깜박거리다 꺼져. 그를 가지고 논 거야? 하지만 무심히 그냥 몇마디 건네고 지나쳤을 리는 없다. 원래 이런 때 말 수는 중요하지 않는 법이다. 절대 이런 상황이라면 말 수가 많아서는 그래서는 안 되고 안 되고 또 안 된다. 애석하지만 결과가 초장에 정해진 경우가 현실 세계에서는 제법 많다. 다만 매우 놀라운 한가지는 이 아가씨는 그가 말을 하기 위해 호흡을 정확히 들이 쉬는 순간에 얘기를 꺼낸다는 것이다. 아주 정확히 딱 그 순간에. 신기하게 그 타이밍을 일부러 잡아서만 말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니면 아가씨가 말하는 찰나에 그가 저절로 말할려다 자기 말을 먹는 것일까? 그는 한마디쯤 하려다가 말을 삼키고 말을 삼키고... 참으로 이상한 들숨이다. 기분도 이상해진다. 어디에서나 썩 빠지지 않는 코메디 기법임에 분명하다.
「저기 교수님께서는 위층에 있는 연주홀 앞에서 손님들과 만나고 계실거에요. 있다.. 시간 나시면 음악회 구경하셔도 괜찮으실 꺼구요.」
아닌 걸 알면서도 교수의 제자로 끝내 상정하는 말투, 애써 미련을 버리지는 못하고 더는 다가설 수 없고 애매하고 은근하게 여지를 두는 상냥한 말씨.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듯한, 실제 아무런 일도 없었다. 원래 상류 사회든 예술계든 퍼포먼스계든 어디나 이런 미세한 감정의 교류가 존재하게 되어 있다. 좀 무디면 그런 상남자라면 몇 년 지나서 혼자 집에서 술 먹다가 그 신호의 선명함이나 빛깔과 뉘앙스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게 다행일 수도 있고.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 살며시 갸웃, 눈인사 그리고 가벼운 담소, 잠시만 눈을 마주치다가 시선을 작품으로 옮기고 그럼과 동시에 청자의 귀를 아주 약간 화자에게 기우는 듯한 몸짓,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빼고 팔짱을 끼었다 풀고 입술을, 자신의 입술을 잠시 만졌다가 손을 내리고 이거 뭐하는 짓인가. 그런데 그러다가 처음의 짐작처럼 정말로 대화가 끝났다. 듣는 사람의 말 한마디 없이 대화가 끝났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미리 내다본 대로 실현됐다. 전지적 작가 시점, 괜찮네. 그런 가운데 조용하게 작품이 관람객들에게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누가 이 상황을 좋아해야 하는지 약간 불투명 아니 반투명하고 어색한 기운이 으스스하게 감돈다.
그렇게 그는 어떤 드라마를 기억하며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즐겼으며 내심 더 멀리 상상 속으로 혼자 이런저런 장면도 여럿 그려 보고서 미술관을 나가려 한다. 그러다가 입구에 다다러서 깜짝 놀라 발을 헛딛는다. 왠 커다란 골든 리트리버 한마리가 얌전하게 가만히 앉아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미술관 안에 강아지라, 그것도 골든 리트리버 아니 비슷한 종인가, 뭐지? 이 친구에게 다가가다가 그 앞에서 그는 또 한 번 놀랜다. 뭐야 이거 실사 동상이자나. 장면 장면 시간은 짧지만 보통 삶은 놀라움, 낯섬, 생소함, 생경함, 긴장감 이런 감정들이 잊혀지지 않게 등장해야지만 지루해지지 않는 것일까? 정적이고 수동적인 생활 자세를 견지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인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런 불확실함이 오히려 무언가를 다 알아버렸을 때의 허공과 맞선 맥없는 빈가슴과 쭈삣함보다 좀 더 낭만적인 편안함에 한껏 가까웁게 그리고 따스히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아닐 수도 있다. 처음에 비해 나중에 들어 동사의 명사화가 부쩍 눈에 띄며 빈도수가 늘어나는 데 별 느낌 없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영화는 2시간 그리고 2년이나 20년 후 회상, 책은 1주일 연애는 얼마... 그런데 미술관 구경은 어떻게 보면 조금 슬프다. 인기 없는 쓸쓸한 조용한 곳이라면 좀 더, 그곳에서 처연한 모습으로 연상하고 추측하고 몽상하기와 더불어 상상을 즐기는 외로운 큐레이터와 고독한 화가, 가난한 관람객이라면 얘기는 더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한 권의 시집을 외우듯이 읽는 것처럼 두어 시간 동안 미술품을 사지도 않을 꺼면서 공짜로 구경하는 것도 뭐라 말하기 옹삭하다. 두어 시간 동안!
J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는 입장도 아니고 약속도 없고 어디 먼 곳으로 떠날 수도 없어서 2층 공연장으로 갔다. 공연장 앞에 도착했다. 그는 원래 이런 클래식 공연을 구경하고 싶어했다. 자주는 아니어도 얼마에 한 번쯤 관람하기를 좋아한다. 보아하니 연주자가 해외에서 오래 공부하고 돌아온 귀국 기념 연주회였다. 바이올린 독주회. 이 연주자는 청춘을 음악 공부와 함께 보낸 것이구나. 그럼 남자와의 연애는 많이 해보지 않았을려나. 아 팜플렛에 웃고 있는 사진은 여성이다,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연애를 바이올린과, 아니면? 여류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좋게 느낀다랄까. 남자가 애를 낳을 수는 없으니까. 롤이 다른 것 뿐이니까. 애프터 유, 얼마나 좋아! 그런데 반주자 약력이 그야말로 휘황 찬란하다. 오히려 너무 화려해서 연주자에게 미안해야 할 지경이다. 오 공연 기대되는데. 설마 힌데미트나 하차투리안 일색은 아니겠지. 연주시간 내내 가만히 서 있다가 퇴장했다는 쇤 베르크던가 그런 공연만 아니면 된다. 그는 쇤 베르크도 좋아한다. 연주 프로그램은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국민주의, 현대음악 정확히 균등하게 골고루 포함되어 짜여있다. 아쉽게도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작품 연주에 어느 유명 영화배우의 에르네스토 사바토 소설 낭독 공연은 다음 일정으로 잡혀 있다. 이 현재형 글쓰기 스타일은 어떤 화법이나 문체가 아니라 이상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보이스 레코더에 모든 떠오르는 생각들을 녹음하는 기록자의 독백 같다. 왜 그럴까? 질문형이 아닌 회의형 의문문이니 안심한다. 교수이면서 거장의 제자였으며 미술관 일도 하면서 음악회장을 간혹 찾는 큐레이터 조련술이 뛰어난 그리고 클래식 카를 타고 다니는, 그 클래식 카 돈 주고 샀냐는 푸념도 흔쾌히 감내하는, 영화 주인공처럼 그런.. 그런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이미 옛날에 체념한 그런 교수로 보이는 행색의 인물은 연주회장 주변에 보이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 다행스럽지만 보이지 않으니 또 뭔가 허전하달까.
자, 공연도 모두 끝났다. 연미복도 아름다웠고 제일 앞자리에서 주시한 연주자들의 호흡과 안색, 눈빛, 몸짓도 모두 괜찮았다. 연주중 핸드폰 벨소리도 없었고 안다 박수도 나오지 않았으며 코고는 소리도 없었고 헛기침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아서 상당히 조용했다. 바이올린은 과르네리 같았다. 음색이 1710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나 2005년산 로베르트 레가치와 아주 미세하게 비슷했지만 흥미로운 차이가 있었다.
정~말 과-르-네-리? 합리적 추론은 믿거나 말거나, 권고 사항은 믿음이 가는 걸로. 왜냐하면 한마디로 찍은 거니까. 틀릴 수는 있지만 섣불리 재미삼아 내다본 건 맞고, 어느 대도시 지하철역에서 뭔 실험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도? 일반인은 궁금해 하니까. 일반인은 그 비싼 악기를 갖고 싶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의 소소한 즐거움이라는) 가격 흥정 없이 경매에서 거액 내고 단번에 낙찰받고 싶은 마음도 없으며 번화가에서 잃어버린 비싼 악기를 주인에게 찾아주어 뉴스에서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보통 사람은 바로 이게 의문이다. 도대체 그 명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미스테리한 소리가 어떻다는 것인지. 그래서 옆에서 실제 듣고 싶은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글로 읽어서 아는 게 아니라 그 소리의 차이점을 직접 그리고 최고급 오디오로 듣고 간접으로 느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나. 무반주 파르티타를 바로 옆에서 듣고 나서 아 어떻구나, 시간이 지나서 아 어떻드라, 그런 후 나중 소설을 쓸 때 아마티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아마티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고 실신하는 줄 알았다, 라면서 직접 체험의 감동을 한껏 과장시켜 뭔가 있어 보이는 듯이 남의 청각과 공감각과 지각을 자극시키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공연에 앞서, 공연이 끝나서 그리고 공연 중에 아주 잠시 은밀히 이와 같은 얘기를 같이 관람온 친구들끼리 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거장의 연주를 들어보자나? 그럼 너네는 아마 기절할지도 몰라. 꺼뻑 정신이 혼미해진다니까. 영화에서 봤던 파가니니 연주회에서 눈 뒤집어지는 귀부인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고나 할까. 오 그 황홀경이여, 아 다시 듣고 싶다, 그 소리.」
말하는 사람 즉 화자의 꿈꾸는 듯 몽상하는 모습은 대화 장소에 드뷧시의 음악을 자동 연주시킨다. 반면 듣는 친구 즉 청자의 심상에는 어느 경지에 올라 스스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타인으로부터 부러움을 받을 상상의 나래를 타며 푸쉭푸쉭 공기 주입되고 가스밸브가 열린다. 두대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어느 오빠와 같이 협연하고 뭇남성들로부터 러브콜 폭주. 이 말발에 걸려들면 바로 카드 결재 들어간다. 바이올린 12개월 (무이자) 할부 구입 후 12년째 창고에 방치되거나 36개월 낮은 금리 할부로 끊으면 3내지 6개월 만에 중고로 내놓을 수도 있으니 주의할 일이다. K.365를 연주하는 꽃미남 실내악단에 서브 멤버로 입단하는 꿈은, 베토벤의 로망스 작품번호 50번 연주는 물 건너 아득히 멀어지겠지만 위와 같은 너스레와 직접 들어보니 그다지.. 어떻드라, 옆에서 듣고 보니 영~ 형편없드라 가운데 무엇이 더 인간적인지, 사람은 어떤 사안에 대해 때로 어때야 하는지 그 판단은 스스로 자문해 보기로 한다.
「얘 이마 짚어바. 열 있나 보게.」
「열이 아니라 보니까 유난히 헤어가 빨리 자라는 것 같은데.」
「정말인데 맞아, 저번에 컷트 했는데.. 뭔 발모제를 바를 리는 없고 어떻게 된 거지?」
「오 정말~ 왠일이니. 삼손이니 아니 삼손은 남자인데. 거장 연주를 바로 옆에서 안 들어도 정신이 혼미하다야. 털어놔. 너의 머리카락이 왜 그렇게 빨리 자라는지.」
「그래, 어서 고백해.」
「실토해.」
「어서 말하란 말이야.」
「아니야. 나 요즘 일하느라 바빠서 음악도 안 듣고 어디 신경 쓸 겨를도 없어.」
「정말이야.」
「믿어줘.」
「제발.」
「따라다니던 몇몇 남자들도 모두 예전에 자취를 감췄고 이젠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거 너네도 다 알잖아.」
「한번 만 봐줘. 원래부터 숨길 생각은 없었어.」
「깊이 반성하고 있어.」
「미안해..」
「나 요즘 이상한 그림책을.. 보는 게 아니라, 요상한 동영상을 보는 게 아니라.. 나 사랑에 빠졌나봐.」
「요염한 기집애 같으니라고.」 친구들 가운데는 멘트가 센 친구도 있다.
「응큼한 것!」 친구들 가운데는 멘트가 더 센 친구도 있다.
「음탕한 년!」 친구들 가운데는 멘트가 제일 센 친구도 있다.
「분명 엉덩이에 뿔났을 꺼야.」
「얘 가방 뒤져봐.」
「어서 지갑 꺼내봐. 넌 지금 뭔가 숨기고 있어.」
삐─ 삐─ 삐─는 모두 아는 세계니까 생략한다.
「알았으니까 다음부터는 띄엄띄엄 말하지 말고 대사 한 번에 쳐. 이게 만일 소설이라면 읽는 사람 자꾸 헷갈릴 꺼 아냐. 사람이 몇 명인데 자꾸 돌아가면서 딴소리한다고. 대체 누가 뭔 말 하는 거냐고.」
「너 혹시 귀에 뭐 꼽고 누가 지시내리는 데로 말 따라하는 거 아냐? 혹시 이 가운데 타켓이 있는 거니? 그런거야? 아니지?」
「어머 웬일이니? 너 요즘 드라마 너무 많이 봤어~ 전에도 날이면 날마다 영화만 보더니만 걱정된다 했어, 내가.」
「그래도 그렇게 말을 띄엄띄엄 뭔가 있는 듯이 드문드문 간격을 두고 얘기하는 것도 너무했어. 자꾸 귀 기울이게 만들잖아. 재주도 좋아.」
「너가 대사 한 번에 안 치니까 그러니까 유난히 헤어가 빨리 자라는 째가 잘 안 읽히는 소설을 보다가 누가 어떤 대사를 말하는지 이해하기도 어렵고 얘기도 지루하며 그래서 소설을 보기 힘들고 재미없으니까 째는 명쾌히 누가 무슨 말 하는지 확실히 구분된 희곡을 읽어. 그런데 희곡을 읽어봐. 읽어보면 어떠니? 그래서 사람들이 책보다 드라마나 영화를 더 가까이 하고 쉬운 책을 더 선호하게 돼. 생각을 할려고, 새로운 생각을 할려고, 생각을 단순화할려고, 기존의 내 생각과 다른 것을 찾고 발견하고 내 생각과 비교 할려고, 일관된 생각을 할려고, 살아온 쌓아온 인생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만 수동적으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타성과 관성에 따라 반응하고 해석하고 감상하고 내다보지 않기 위해서 책을 읽는데 그러기 위해서 책을 읽는데 그러다가 결국 에너지가 정말 많이 드는 책읽기 보다는 다른 형태의 예능과 예술과 놀이에 집중하는 것 같아. 그러고 보면 책 읽는 건 정말 어려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야. 사람들은 프라모델을 만들고 암벽 등반을 하고 바둑을 두고 운동 중독에 빠져 살면서 그게 왜 좋냐는 물음에 아무 생각도 안해서 좋다고 하지만 그 답을 더 정확히 말하자면 1가지 생각만 하니까, 사람이 단순해지니까 그래서 좋아하는 듯 해. 물론 캐셔나 공장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건 그와 달라. 그니까 그들이 많이 벌고 행복한 세상에 대해 19세기 소설들이 그렇게 얘기했지. 여러가지 생각이 아닌, 수동적인 자동적인 동화나 순응이 아닌, 딱 1가지 생각. 온전한 관심을 기울여 듣고 온전한 관심을 기울여 말하고 온전한 관심을 기울여 책을 읽고 그리고 온갖 다양한 생각이 가득한 채로 데이트 하고?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가만히 명상을 해보면 금방 알 수 있어. 아무 생각도 안 하고 1분이나 10분만 참아보는 거야. 그럼 그게 잘 안 돼.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요즘 무슨 책 읽니, 운전 많이 하지 말고 자주 움직이고 걷는 게 좋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무언가를 대충대충 하지말고 완전히 미쳐라 미쳐 같은 말에 거부감을 느끼고 피곤해 하며 슬럼프에 빠지는 건 아마도 계속 잘 해왔는데 세상일이 너무 복잡하니까 자꾸 하나만 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러는 것 같아. 애들처럼! 강아지처럼! 고양이처럼! 쉬고 놀고 또 심심해 하고 싶은 거야. 어른들은 자주 그래. 자, 많은 생각, 쉬운 생각, 없는 생각이 아닌 새로운 생각, 일관된 생각, 다채로운 생각... 그녀가 이제 1가지 생각만 한다네. 워워~ 반겨할 일이군.」
「너처럼 대사 길게 쳐도 사람들 소설 읽다가 별로 안 좋아해!」
「맞아. 정말 그래.」
「우리 얘기하는 이 시간과 공간이 소설이 아니라서 다행이다야. 소설이나 영화였어봐 어땠겠어? 책 쓴 사람은 책 안 팔린다고 난리고 작은 출판사 사장은 괜히 그 인간 말발에 속아서 출간했다가 본전도 못 뽑은다고 투덜거릴 게 뻔하고 독자들은 뭔 죄야?」
「그럼. 그러니까 상담이나 질문 같은 경우에도 답변 너무 길게 하는 거 아니야. 연애 컨설턴트도 봐봐. 성심성의껏 열심히 도와주고 싶어서 친절하게 얘기해 주면 또 그러잖아. 별로 좀 그렇다고. 다른 속 시원한, 가슴을 뻥 뚫어주는 답변 없냐고. 원래 사람들은 원하는 답을 듣고 싶어하고 또 대부분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알면서 묻고, 답이 뻔하니까 답이 없으니까 답이 하나니까 묻고, 그냥 확인할려고 묻는 경우가 대다수잖아.」
「미안. 내가 대사 한 번에 안 치니까 사람들이 책을 안 읽고, 내가 대사 한 번에 안 치니까 사람들이 쉽게 살고, 내가 대사 한 번에 안 치니까 한 친구를 교수님으로 나머지 친구들을 학생으로 만들었구나. 다음부터는 주의할께.. 그렇지만 얘 말마따나 현실에서 너처럼 대사 길게 치는 사람도 거의 없어 얘~ 너 때문에 이 생각 저 생각 머리 아프잖아.」
「그래? 그럼 정리할께. 첫째, 대사를 한 번에 안 치면 사람들이 소설을 안 읽고 쉽게 쉽게 산다. 둘째, 한 사람이 대사를 엄청 길게 독점하면 현실성이 떨어지고 융통성이 바닥나며 사회성을 내다버린 좀 부족한 사람으로 비추어져 주변에서 반겨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따라서 사람들이 소설을 읽지 않고 쉽게 쉽게 살게 된다. 그러므로 말을 띄엄띄엄 하지도 하품이 나오도록 길게 하지도 말자. 끝!」
「그러니까 사람 띄엄띄엄 볼 일 아니네.」
「오케이 정리 됐다. 박사님들 나셨네. 그녀가 이제 1가지 생각만 한다고 반겨할 일이래드니 마냥 반겨할 일 만은 아닌 것 같구나. 아무튼 이만 헤어지고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만나서 하자.」
괜히 그녀는 헤어가 빨리 자라서 이 소란을 피우게 했다. 그런데 왜 헤어가 빨리 자라는 것일까? 그냥 발육이 좋아서? 그저 기초대사가 잘 이루어져서? 그 때문은 아닐 것이고. 과학적 근거가 있는 얘기야? 왜?
삼천포 과르네리 대화에서 줄거리로 다시 돌아와서, 그가 나오면서 보니 누가 생수를 바닥에 흘렸는지 어느 좌석 밑에는 물이 흥건했다. 그는 공연장을 나온다. 주로 지인들과 은사님과 제자들이 많아서인지 바깥에는 가벼운 다과 세트가 차려져 있다. Fly me to the Moon 같은 음악이 나오는데 생음악 같다. 그런데 연주자들은 안 보인다. 오디오가 좋은가 보다. 바로 트랜지스터 앰프로 도달 가능한 최고봉에 일년에 단 1개 겨우 제작 가능한 스피커의 조합! 아마추어 일반인과 취미 동호인들의 최고의 기쁨 가운데 하나는 무엇일까? 뭐니 뭐니 해도 바로 장비발 얘기다. 마라톤 운동화도, 사이클 부품도, 야구 방망이도. 월드 클래스 축구 선수가 싸구려 축구화 신고 경기하지는 않는다. 마리아 샤라포바가 입문용 테니스채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설 리는 없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한때 최고는 타이거 우즈였다. 그도 마찬가지다. 조랑말을 타고 상금킹 선수가 경마 경기에 나선다면─경마 룰은 잘 모르겠다만 급한데로 말이 경기 전날 햄버거 먹고 체한 걸로 한다─무수한 상남자들이 울상을 지으면서 여유 자금과 마이너스 통장까지 잃겠지만─그분들의 기분 말 말자─과르네리도 마찬가지 이치다. 나는 비가 오면 SUV를 타지(마초 클럽), 나는 어쩐지 기분이 울적한 날에는 170수 울팬티를 입어(고급 울팬티 동호회일까?) 같은 얘기다. 그 재미는 당연 인정하기 싫지만 교집합에서 나는 발을 빼고 싶지만 탑클래스가 아니라고 부인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삼천포에서 진짜 돌아와서, 그는 나비 넥타이는 매지 않았지만 마치 자기 자신을 위해 그 다과상이 차려진 것처럼 손님이지만 생일 잔치 당사자인 것처럼 인식하면서 천천히 음식을 맛보며 품평하고 와인을 몇 잔 마신다. 약간 출출하던 차인데 잘 되었다는 듯이 정신없이 눈치보지 않고 먹고 있다. 그렇게 대형 슈퍼마켓의 시식 코너에서 배를 채우는 것처럼 엉겹결에 식사를 하고 나섰다. 나오는 길에 안내장을 하나 받아든다. 윗층에서 끝내주게 웃기는 토크쇼가 있는데 방청은 무료라고 한다. 무료의 힘, 대단하다.
제목하여 누구 쇼! 인기도 좋은 쇼다. 평판도 괜찮다. 방청? TV로 보는 것과는 딴 세상이다. 설마 혹시 이 빌딩도 과거 성장기에 까페 사장을 꿈꾸다가 그 꿈이 업그레이드 되어 1층에 뭐, 2층에 뭐, 3층에 뭐 그렇게 꿈을 소박하게 이룬 누군가의 건물일까? 그렇건 아니건 큰 상관없다. 있어도 관리하기 귀찮다. 없는 건 원래부터 없었다. 어딘가 다른 세상에는 또 단위나 스케일이 다르다. 빌딩? 레고 블럭이다. 그분들에게는. 어린 손과 발과 얼굴과 키가 마음이 모두 작으신 분들 말이다. 모든 어른은 그분들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던 어른은 한 명도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삶이 팍팍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실연했어도, 괴롭거나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모두 그분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아, 카페 사장! 어느 카페에 들리면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타인에게, 어딘가에 멈추기만 하면 물 좋은가 둘러보며 꼼지락꼼지락 있지도 않은 밧줄 매듭을 매는 새늉을 하는 개그맨에게 그리고 거의 모든 일반인에게 기쁨과 만족과 낭만을 안겨줄 수 있는 카페 사장. 어느 청춘들의 많은 젊은이들의 꿈 까페 사장. 어떤 까페 사장은 아무리 연이은 폐업이 계속되더래도 자영업 아니면 다른 일 못한다는, 그들끼리만 즐기려고 시트콤 아지트처럼 으시시한 찾기 어려운 장소에도 사람을 모이게 하는 카페, 그곳의 사장, 만만히 볼 게 아니다. 꿈의 이상화의 실증적 구현의 단계에서 한 번은 거쳐가야 할 중요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토크 쇼 방청석에 어느새 그가 번개처럼 도착해서 앉아 있다. 토크쇼는 카드 뒤집어서 게스트와 호스트가 서로 컵의 물 끼얹기, 평범한 만담 때로는 진지한 심도 있는 토로, 쇼 시작전 담당 PD의 막춤, 코끼리 발씨름, 가위-바위-보 해서 초딩 키 만큼 크고 두터운 손 모형을 장갑처럼 끼고서 상대방 뺨 때리기, 미스터 빈 흉내내기, 톰과 제리 연기하기, 립 싱크 배틀, 성당식 고해성사, 보드카 빨리먹기, 상대방 약 올리고 깐죽거리기, 옷벗기 게임, 야자 타임등 갖가지 볼거리가 풍성했다. 그러다가 토크쇼는 끝났다. 갑자기 저 앞에서 보도 듣도 못한 밑도 끝도 없이 막춤을 췄던 담당 PD가 다가온다. 혹시 들뜨기 좋아하는 부끄럼 잘 타는 초딩이나 말 수가 없고 매사에 소극적인 청소년이라면 내가 커서 나중 저렇게 남 앞에서 춤춰야 하거나 노래를 불러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어떡하지? 라면서 이런... 이렇게 걱정을 하실 수도 있지만 별로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때라면 못추면 못출 수록 박수는 커지고 환호성은 실로 드라마틱~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뭔가를 너무 잘 선보이면 예의에 어긋난다는 암묵적인 동의도 물밑에선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법이다. (예비) 청춘들이 내다보는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다. 아까 막춤을 신나게 선보였던 담당 PD는 사자머리에 헤비메탈 락커 스타일로 상의 밑으로 삐져나온 레이스 무늬 속옷 차림새와 고운 머리핀을 보아 하니 평소에는 고상한 아가씨인가 보다. 왼쪽 다리에는 철갑 장신구도 하고 있다. 그녀가 다가와서 J와 그 주변 인물들에게 윗층 연극 공연장에서 토크쇼 방청객 초청 이벤트가 있으니 시간 괜찮으신 분들만 잠시 재미난 공연 보고 가시라고 말한다. 수작 걸로 다가온 게 아니었다.
드디어 한 층을 또 올라갔다. 컷트 할 만 하면 공짜랜다. 한 층 올라가서 그는 연극 공연장에 들어간다. 게임에서도 레벨은 업그레이드된다. 폭삭 망하거나 사기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들은 열심히 살면서 저축하고 서점에도 들리고 일주일이나 한달, 일년 주기로 주변의 지인들과 연락하고 만나고 가끔 여행도 떠난다. 그것과 똑같이 J는 한층 한층 계속 올라가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 이러다 빌딩 끝까지 올라가는 것일까? 도시 안의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서 한층 한층 올라간다고 언짫아 하시는 독자께서는 빌딩이나 종합 유락 시설이 아닌 대부호의 거대한 섬이라고 가정하시면 된다. 이미 무수한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를 섭렵하신 독자시니까 스케일 늘리고 뭐 조이고 줄이고 다듬고 다 가능하다. 적당히 숲을 보고 큰 흐름을 읽으신다. 공연 제목은 스스로 정하기. 독자의 고품격 취향은 무척 까다롭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겹치는 연이은 행운에 따라 집중하면서 계속 예술에 빠져들어 그런지 그는 슬며시 체력이 고갈되어 간다. 당연히 그럴 만 하다. 그림 구경하고, 클래식 공연 긴장해서 내내 눈 빡 뜨고 보고, 난데없이 토크숏 보면서 웃고 긴장 풀고 그러다가 연극을 보았으니 어쩌면 막다른 함정에 제대로 걸려든 거다. 보통 사람들은 극장에서 영화 2편만 연짝으로 봐도 적잖이 피곤해 한다. 그러니 당연하지. 그래서 정작 재미있다는 연극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꿈나라로 떠나신다. 다른 사람이 최면을 걸어 말려든 게 아니라 스스로 피곤해서 곯아떨어진 거다. 어떻게 보면 혹시 모르는데 또 한 층 더 올라갈지도 모르는데 또 뭐가 기다릴지 궁금한데 연극 공연은 체력 문제 때문으로 자리만 채운 걸로 만족해야 한다. 옆에 앉은 어린 왕자 복장의 꼬마 신사와 갑자기 친해지고 그래서 그 친구 옆에 놓여 있는 적외선 카메라 B612를 써보며 가지고 놀다 잠에 빠진 게 아니라 피곤해서 아주아주 깊은 명상에 빠진다. 문체가 머머 했다 머머 한다 머머 했다 머머 한다, 오히려 안 헷갈리고 약간 재미있다.
꿈을 2개쯤 꾼 거 같은데 제대로 기억할 수 없는 추상적인 꿈이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커다란 미지의 섬에서 떠돌고 있었는데 그 섬 전체가 빌딩식으로 층층별로 구조되어 섬 위에 또 섬이 또 섬이 있는 식이었다. 한마디로 개꿈이었다. 이런 뭐야 이거, 꿈꾸다가 공연이 끝났다. 공연이 끝나니까 딱 잠이 깬다. 뭔 숲 속의 공주인가, 신데렐라인가, 오즈의 마법사인가, 사오정도 있다. 공짜 공연이기는 하지만 좀 억울하다. 잠이야 집에서 실컷 자면 되는데 왜 여기까지 와서 잠을 자는 건지 이곳이 공연장이 아니라 무슨 특급 호텔 스위트룸이야? 하긴 그런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분께서 특급 호텔 스위트룸에 묵는다면 쉽사리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위스키 몇 병 때리고 뻗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가 잠든 사이 공연은 끝나버렸다.
공연이 끝나고 그가 최면이 풀리듯이 잠에서 깬다. 주위에서 공연에 대한 찬사가 이어진다.
조명이 마술을 부리며 배우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듣고, 그 연기와 무대와 음악이 모두 공존하는 영화의 화면 안으로 내가 퐁당 빠져서 투명인간으로 직접 참여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정말 가슴 뭉클했다고, 클라이막스에서 음악 나올 때 눈빛에 말에 조명에 찡했다, 떨렸다, 마지막 반전에 소름 돋았다고 그들은 그랬지만 그는 그걸 다 놓쳤다. 무엇보다 옆에 있던 관객들은 배우와 눈빛이 마주쳤을 때 그 순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 가장 좋았다! 쫄았다! 와 이거구나! 자기는 저절로 대답을 했네, 무시하고 인상썼네, 쌩깠네, 있잖아~ 이상하게 나는 그 눈을 계속 마주보지 못하겠드라, 어머 너도 그랬니, 눈이 마주치니 그것 참 신기하데..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고 할까.. 별다른 교감이야 없겠지만 왠지 ET처럼 배우와 내가 검지 손가락을 맞다은 느낌이랄까, 나도 깜짝 놀랬어~ 시선이 내쪽으로 올 뻔 하다가 쓱~ 비켜 가드라구.. 그래서 오 살았다 그랬지, 난 순간 그런 생각을 했어.. 내가 뭘 잘못하진 않았을까.. 뜨끔하더라구, 나는 뭔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는 않는가,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이 설마 동화에 나오는 그 마법의 구두인 걸까.. 가슴이 울렁울렁..., 배우가 말하지 않는 그 눈빛은 무엇일까, 대사가 아닌 눈빛으로 내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은 것일까, 최근에... 최근에 저와 비슷한 눈빛을 본 기억이 있어 그리고.. 그리고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이런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났는데 막을 내리기 전에 특별 이벤트라는 게 있었다. 관람객 1명을 무대 위로 불러서 스타 트랙처럼 그 사람을 순간 이동시켜 4차원으로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뭔 쇼인지 뭔 상황인지 재빨리 감을 잡고 있는데 J가 공연 내내 깊숙히 주무시길래 연기자들의 주목을 받았다고 그가 지목된다. 순간 이동? 좋지. 순간 이동 하면 되지. 게다가 잠도 아직 덜 깼다. 그렇게 그는 무대 위로 올라간다. 뭐 물어보고 답하고 자시고 거두절미하고 짠 하고 순식간에 마술을 부렸다. 순간 그가 진짜 사라졌다. 사라진 그를 빼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이미 너무너무 식상하다는 듯이 관심없어 하며 공연장을 빠져나간다.
그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근처 어디로? 무대 뒤로? 과거로? 미래로? 소설 속으로? 그렇지만 뭔가 찜찜하다.
그는 무대 밑에 설치된 봅슬레이식 장거리 슬라이딩 레일를 타고 1층의 처음에 들렀던 미술관의 리셉션 룸 소파로 떨어졌다. 떨어진 즉시 감을 잡았던 것은 아니다. "Welcome to the FUTURE World!" 같은 신비스러운 목소리로 온 마음과 몸에 착 감기는 환영의 인사말과 효과음 그리고 배경음악 또한 당연히 없었다. 일단 주위를 둘러 보니 파란색 알약과 밀가루처럼 하얀가루가 담긴 투명 비닐 봉지, 짧은 빨대가 보인다. 약국인가? 아니다. 그 옆으로 가방에 들어있는 뭔 벨트도 보인다. 그는 태어나서 그 물건을 한 번도 실제 보지 못했으니 그것이 가터벨트인지 감을 잡는데 약간 반박자 늦었지만 가방 바깥으로 살며시 살짝만 삐져 나온 발레복 비슷한 옷가지를 보고 그것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옆으로 벽에 걸린 그림은 아무래도 그 뒤에 비밀 금고가 있을 듯이 말을 아끼고 있는 듯 한 앙리 마티스의 작품과 비슷했다. 그래서 더욱 마티니 칵테일을 한 잔 마시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미술관 리셉션 룸인지 관장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철가면도 놓여있고 날개 달린 에어 조던 운동화도 보이고 처음 보는 빛깔의 밍크 코트도 보인다. 약간은 미술관 분위기와 동떨어진 언발란스한 실내 정경이었다. 그래도 고가의 미술품들 거래하고 사인하며 밀담을 나누는 고급 미술관의 내실인 것 만은 분명해 보였다. 미끄러지는 동안 어디서 고양이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화면도 보이는 듯 했으며 감각이 매우 혼란스러워 어디로 가는지 왜 떨어지는지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른 채 이동했으며 약간 공룡알에 들어있다는 느낌, 자궁 속에 포근히 담긴 듯한 기분도 느꼈다. 그의 마음도 이상하고 몸도 예사롭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자고 있다가 이게 왠 날벼락인가. 미술관 구경했어. 클래식 공연을 관람했어. 토크쇼를 봤어. 연극 배우들을 비웃듯이 코골면서 잤어. 물론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그러다 갑자기 무대로 불려가서 어딘가로 떨어졌어. 정신을 차려보니 그곳은 처음의 미술관이야. 마지막에 연극 무대에서 쓱~ 미끄러져 빨려간 후에 처음에 들린 미술관에 도착했다니 이거 어떻게 된 거지? 뭐야 이거?
무작정 소파에 퍼질러 앉아 있을 수 만은 없으니까 그는 왠지 열고 싶은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새하얀 문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그 문을 열었다. 그럼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새하얀 외부의 미지의 공간을 마주하고 숨쉬면서, 숨쉬면서 수영을 하여 어느 제 3세계로 나가는 것일려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문을 여니 아까 처음의 1층 미술관이었다. 그 때 봤던 미술품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때 저만치에서 아까처럼 그 분이 걸어오신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아까는 청아한 구두굽 소리였는데 지금은 좀 뭐랄까, 괴기스럽기도 하다. 그 분은 아까처럼 그대로 면사포, 티아라, 무채색 옷차림, 안경줄, 엘레강스... 그리고 아까 만났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하다. 생전 처음 그를 본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처음처럼 그에게 말을 건넨다. 주변인물들은 조금 바뀐 듯 하다. 그 가운데는 자신이 엑스트라인지 감도 못 잡고 있는 자작과 팅커, 테일러들도 있을 것이다.
「저.. 혹시 ( ) 교수님 제자 되시나요?」
이렇게 된 마당에 J의 머리 속은 복잡하다. 이런 젠장 무한 루프에 빠지라고? 내가 그렇게 어리숙한줄 알아? 사람을 뭘로 보고 이래? 이거 어디서 개수작이야? 물론 속으로 그렇게 조금은 생각했지만 그렇게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그는 앞뒤 안 보고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와 집으로 뛰어갔다. 뒤에서 자꾸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것도 같고 미세한 기운이 자기를 잡아 끄는 것도 같았다. 이야기가 너무 평이하다, 사건이 없다, 대화도 없다, 주인공이 볼품없다, 등장인물도 없다, 없는 것 투성이다, 넘 빈약하다, 이게 뭔 소설이냐 라면서 소설 초반에 불평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주인공은 독자와 똑같은 평범한 유형이다. 그러니 오히려 독자가 몰입하기에 역으로 유리할 수 있다 이렇게 설득시키고 독려하고 토닥이듯 정중히 독자를 꾀엿던 게 이제야 빛을 보는 것일까? 뭔지 모를 의욕과 알 수 없는 활기, 믿기지 않는 사랑과도 같은 신기한 경험에 초현실주의 감각이 충만하여 그는 뛰어서 집으로 내달렸지만 집에 거의 도착해서는 반듯하게 평상심을 되찾고 평소처럼 걸어서 집에 들어갔다. 하지만 쉬이 그 경이로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 없이 배고픈 줄도 모르고, 뭔가에 집중할 수도 없고, 멍하게 그저 멍하게 한동안 가만히 서있기도 하다가 앉아도 봤다가 누워서 마음을 비울려고도 했다. 이제 슬슬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걸 쓰면 된다. 겪은 그대로, 그대로만 쓰면 되는 거야. 이제 먹고 사는 걱정 모두 끝난 거야. 장미빛 부의 예견도 예견이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이런 경탄스러움에 마음이 붕붕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믿기지 않았다. 영화에서만 봤던 일이었으니까. 혹시 설마 자기가 연극 공연장에서 갑자기 사라진 후 연극 주최 측에서 꼭 빼 닮은 사람을 객석 제일 뒤에 등장시켜 헤드라이트를 쏘았던 건 아닐까? 순간 이동 마술이라고. 적당히 어리버리하고 가장 일치하는 외모를 지녔고 뒤탈도 없을 것 같고 포섭하기 쉬운 상대로 내가 미리 선정됐고, 그렇게 하여 마술 공연이 재공연이 이어지고 더블 캐스팅 생활 연기가 실제 삶이 되는 것일까?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는 없어. 그렇게 동화 같은 일이 발생할 리는 없어. 내가 봤을 때는 아무래도 이런 시나리오가 가장 그럴듯 해. 공간 이동 봅슬레이는 프로포즈용으로 의심되는 미술관 관장의 작품이고 그 세트는 평소에는 감추어져 작동하지 않았다가 버튼을 눌러야만 세팅이 되는 거지. 즉 원래는 공연장 무대 뒤편 연습실과 연결되어야 하는데 미술관이나 공연장 직원 신입이 여기 저기 뚤레뚤레 하다가 뭔가를 잘못 건드린 거야. 그래서 연극 관계자들도 지금쯤 그를 찾고 있을 거야. 이 인간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냐고. 난리 난 거지. 실종 신고를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일을 대체 어떡하냐고. 어, CCTV에 기록도 안 남았자나? 하면서.
으하하하하하. 일단 이 일을 소설로 쓰기 전에 관장과 협상을 해야 하나. 협상? 어려운데 그런거 잘 하지도 못하고 하고 싶지도 않고 어른들이나 하는 건데. 이거 아무래도 실로 커다란 대가에 해당하는 엄청난 일을 치를 것 같은데... 어떻게든 접촉을 시도해 올 텐데, 남몰래 조용히 무덤까지 그 비밀을 가지고 가라고 압박을 해올 수도 있을 거야. 영화나 소설과 드라마에 비슷한 작품들이 뭐가 있었지. 아니야 아니야. 즉시 온라인 소설로 발표하는 거야. 조회수 대박나고 출판사와 계약하고 대형출판사가 그 계약 파기하고 위약금 다 물어주고 더 많은 판권 얹혀서 딜 하고 책 불티나게 팔려나가서 앞으로 더 벌지 않아도 될 만큼 억~수로 많은 인세를 획득할 꺼야. 기계식 키보드도 살 수 있어. 오, 너무 흥분하면 안돼. 우선, 이런 그림같은 스토리는 믿을 수 없으니 그는 일단 몇 없는 친구들의 의견을 묻기로 한다. 초장에 대박날 것 같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한템포 쉬어 가기로 한다. 전화로 어느 친구에게 연락하니 왜 그리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냐 뭐라뭐라, 다른 친구들을 만났드니 넌 왜 그리 얼굴이 못쓰게 됐냐, 아주(아조) 팍삭 맛이 갔네, 누가 널 그렇게 만들었냐, 뭔 일 있는 건 아니냐 이러쿵저러쿵. 자꾸 걷도는 이야기만 하고 도무지 본론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겨우 기회를 잡아서 드디어 말을 했다. 이렇게 이렇게 이런 일이 있었는데 신기하지 않냐고, 대단하지 않냐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 그냥 마냥 좋아해도 괜찮냐고.
「야이 멍충아~ 넌 그것도 몰랐냐? 그거 이미 파다하게 소문나서 드라마로, 영화로, 소설로, 뮤지컬로, 여행 상품으로 뭐로 뭐로 닥치는 대로 마구 쏟아지고 있는데 뭔 소리하고 있어. 설마 그걸 이제야 알았다는 건 아니지? 너 어디 깊은 산 속에서 살다가 내려온 거 아니야?」
「얘 봐라. 넌 뉴스도 안 봐? 신문은 읽자나. SNS도 안 봐? 사람들과 대화 안 해? 얘가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아예 정말 맛이 갔네 갔어.」
「지금 완전 난리 났다니까~ 이 친구 딱 로빈슨 크루소네. 제이슨 본이 따로 없구만(먼). 정말 몰랐던 거야? 솔직히 말해봐. 우리 웃겨줄려고 일부러 모른 척 한거지?」 뒷북도 적당해야 봐주지, 그만 좀 하라고 인상쓰는데 분위기 심각해진다.
「이런 누가 혹시 J를 때린 거 아냐? 멀쩡한 애가 이렇게 망가질 리가 없잖아?」 칙칙폭폭 칙칙폭폭 스팀 만빵. 우악스러운 분위기에서 이제는 비꼴 차례다.
「놀랍도록 신선한데! 잠깐 너무 핀잔주지 말아봐. 아무래도 얘 진짜 같은데. 아까 처음에 말했던 거... 오 얘 표정봐봐 표정봐봐. 워워 진짜야 진짜.」
「온몸이 오그라들어. 나는 말이야 이처럼 오글거리는데 이상하게 뭔가 이 녀석이 측은하고 안 됐다는 감정도 느낀단 말야, 대체 뭐지 이 느낌?」
「그만 해라 무안하다야. 그럼 그렇지. 늬가 하는 일이 항상 이런 식이지.」
핀잔을 듣고만 있다가는 더 상황이 안 좋아질 게 뻔하다. 그가 받아친다. 능청꾸러기. 티나도 창피해도 어쩔 수 없다.
「야 야 적당히 해. 속아주는 것 치고 너무 진지하다야. 그냥 너네들 웃길려고 한 번 해본 소리야. 애들이 소심하게 왜 그렇게 심각해. 너네들 요즘 욕구불만이야. 꼭 탐정처럼 왜 그래? 아직까지 현실 속의 영화 주인공 꿈을 버리지 못한 거야? 정신차려~ 나는 진작에 그 망상 내다 버렸으니까.」
친구들이 아직 못 믿는 눈치라서 다시 덧붙여서 한마디 더 한다.
「에이 그냥 한 번 연기해 본거야. 짜식 내가 바보냐 그것도 모르게?」
그는 확 깨버린 감정을 어떻게 다잡을 수가 없다. 참 허무한가 보다. 이런 말을 남기는 걸 보면 그도 이제 그들과 비슷해졌나 보다.
「절~대 따라하지마!」
<맞다~ 소극장에서 연극이 끝나고 잠이 깨어 무대 위로 걸어올라 갈 때 사람들이 모두 소란스럽고 걷돌고 얘기하고 핸드폰 켜고 나갈 준비만 했어. 다 안다는 듯이 무관심했어. 맞다, 그랬어. 에이 좋다 말았네.>
<그럼 연극 공연장에서 꾼 꿈은 뭐였지? 그 꿈은 쉽게 예를 들면 1층 캥거루 랜드와 사하라 사막, 아마존 강이 혼합된 공간이었고 2층은 아프리카와 남미 분위기 3층은 아틀란티스 4층이 쥬라기 공원이었는데, 애니메이션에서나 가능한 꿈이었는데 일종의 예지몽인데 꿈의 뒷부분이 생각나지 않으니 해몽도 어렵고 뭐지 이거.>
<신삥 직원이 실수로 뚤레뚤레 하다가 실수로 버튼을 건드린 지가 얼마나 오래된 거지. 도통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군. 미스테리야. 그 특수 버튼은 또 얼마나 허술하게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고. 게다가 지금까지 나는 왜 몰랐던 거야. 이런~ 뭔 이런 일이 다 있어. 어떻게 깜쪽같이 그럴 수 있냔 말이야. 잠재성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시인의 말처럼 신문이 끊기자 새들에게 둘러싸이고, 수도가 끊기자 계곡을 내려오는 물이 되고, 사람이 끊기자 해바라기에 내려앉는 비둘기가 되며 이해가 끊기자 스스로 대기권이 되면 안 된다는 말이야? 그럼 특급 요원으로 은퇴 후 평범하게 한적한 전원 생활을 하던 전설적인 요원이 어떤 지령에 의해 (이제 완전 감-떨어졌는데) 은퇴 번복하는 건 다 (개)뻥이란 얘기야? 믿을 사람 하나 없네.>
그럼 그렇지 그런 행운이 그 인간에게 안겨질 리가 없다. 어디 평범한 사람들 당첨되는 로또도 아니고. 인생이 온통 뒷북이구먼. 뒷북 전문이야. 언제까지 뒷북을 쳐야 하는지 답답한 그 심정.
시시하게 건물 층층에서 뭐하는 짓이냐는 비판이 있다면 건물 대신에 섬이나 시골 마을로 설정해서 영화 만들면 시리즈물로 딱 알맞을 수도 있다. 지금 당장 집에 있는 체스판의 2번 나이트를 잘 살펴보시라. 돌려도 보고 냄새로 맡아 보고. 사람들은 왜 그렇게 비밀을 숨기고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좋아할까. 소설을 왜 읽을까? 왜 영화나 드라마에서 뭔가를 기대하는 걸까? 참으로 알 수가 없다. 감추는 거 좋아하면 끝까지 비밀로 하든가, 꼭 남이 알아주길 캐내주길 바라는 듯 하단 말야. 그러고서 또 드러나면 그렇게 다 드러내는 법이 어딨냐며 왜 그렇게 사람이 융통성이 없냐고 시시하고 재미 하나도 없다면서 뭐라 하겠지. 정말 난세다. 그래봐야 까보면 원페어 꺽 해야 투페어인데. 하지만 인간의 삶에 이런 재미, 꼭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한다. 우울해져도 원페어를 꼭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인간이다. 개중에 진짜 숨겨진 보석을 발견하면, 우연히 찾아냈을 때 그 기분에 또 풀리는 게 사람들 삶이다. 뭔가 있어 뭔가 있어 하다가 이렇게 이번 챕터가 끝났다. 걸어다니는 소설이 어쩌고저쩌고 하드니만 결국 이렇게 마무리 된다.
최근 아이폰 메모장 글쓰기에 잠깐 심취하느라 그 길지 않은 시간의 신선한 경험 때문인지 손바닥 만한 수첩에 수기로 글을 쓰고 있으니 아무래도 기분이 평소 같지는 않다. 근래 마음의 상태나 뭔지 모를 어떤 촉에 의하면 이렇게 다음 이야기의 움직임에 대한 태동을 그 느낌을 감지해서 의견을 정리해서 <잘 읽힌다, 내용이 감긴다, 구술에 말린다> 같은 적당한 극중 전개를 느긋하게 안심하고서 콘트랄토까지 거뜬히 소화하는 전설적인 소프라노가 부르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가운데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틀어 놓고서 폼나게 글로 구현해 내지는 못할 듯한 감이 와서 무작정 단 한 번 빼고는 영감에 의해 글을 써보지 않았다는 E.M. 포스터처럼 일단 노트를 펴고 볼펜을 잡고 막 쓴 후, 나중 퇴고 할 때 음악을 듣기로 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단단한 벽을 어떻게 허물어야 하나, 타고 넘어가야 할까 아니면 그냥 무시하는 게 좋을까, 이런 막연한 감정은 도저히 설명을 할 수 없어 끝내 포기하게 만든다. 하이드 녀석 어디 숨어서 날 조종하고 있어. 지킬인가?
일단 무심코 E.M. 포스터와 반대로 처음으로 거의 처음으로 착상에 의하지 않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 초고를 작성하고 나니 많은 부분이 최근에 혼자 생각했던─대화가 거의 없는 금욕적인 생활 때문인가─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내용이 나중 덧붙여서 떠오른 것 같다. 오 이런, 약간 무인도에서 쓰는 일기 같은 느낌인데.
무전여행은 좀 철지난 영화 같지만 이런 대책없는 호기, 젊은이를 닮고 싶다. 어른은 이런 거 배워야 한다. 이면에 숨겨진 논리적 오류다. 젊지 않다는 말인가 어른이기 싫다는 뜻인가. 이처럼 무작정 직장에 출근하듯이 글을 쓰는 것은 때로는 인생 직진이라고 이건 우주적인 글쓰기라고 빡빡 우겨야 정규적인 작업이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삘 꼿힌다, 기(가) 산다, 영감을 얻는다, 열 받는다(이건 아니다. 아닌가?)... 이런 핀 포인트 같은 계기도 중요하지만 수증기가 모이고 모이고 모여서 천둥이 들리고 번개가 보이며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듯 한다는 얘기도 매우 자주 쓰이는 표현일 것이다. 서점가와 출판계의 수많은 서적들에 무수히 씌여 있을 게 뻔하다. 그대의 점을 봐 드릴까? 자 손을 한 번 펴 보자. 난 손금이 전문 분야야. 에잇, 뭐야 이거. 네일 케어 안 했잖아. 썩 물러갓. 농담이고 뭔가 작위적이란 느낌에 친한 친구들의 모임을 비밀로 해서 모였다 다시 흩어진 걸로 끝내버릴까,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다, 추리소설 처럼 밑도 끝도 없이 이유도 모르고 쫓기는 영화처럼 그들이 모이는 틈을 타서 모두들 집에 무슨 일이 생기고 다 함께 공통점을 논하고 어떻게 해결한다는 이 스토리로 전개해야 하나, 그러다가 고민 말끔히 끝내버렸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문장을 짧게 쓰니까 또렷한 그 끝맺는 맛이 느껴진다.
이곳은 케빈의 집이다. 케빈은 원래 모든 것에 대해 적당히 우아하고 굉장히 평범했는데 한동안 결벽증, 완벽주의에 시달렸다. 집 안에 액자 절대 노, 벽은 모두 흰색, 옷은 7 : 2 : 1의 비율로 검정과 회색과 흰색 계열을 주로 입었고 쟁반은, 컵은, 아침은, 구두는, 친구는... 이렇게 말이다. 극심하지는 않았으나 상당한 불편함을 안고 살았는데 그 일시적인 까탈스러움이 여자친구의 미술품 애호라는 꽤나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호사스러워 보이는 예가적인 분위기의 실내 공간 꾸미기 덕분에 말끔히 나았다. 요즘에는 애완견 인스타그램 계정도 운영한다. 취미가 사람 잡는다. 취미는 인생도 바꾼다. 인생이란 단어 좀 남발하고 있지만 그래도 될 만큼 중요한 단어다.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색깔이... 오우~ 그만. 그래야 한다. 여기서 안 멈추면 드립친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래서 이 친한 친구들이 모두 모인 케빈 집 거실에는 어디서 많이 본 듯 한 그림들이 제법 몇몇 벽에 걸려 있고, 일부러 인간적인 면모와 소탈한 허점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인지는 몰라도 누가 십자수 취미를 들였는지 뭔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실타래와도 비슷한 꼬실꼬실한 옷에서 떨어진 듯한 짧은 실도 드물게 한둘 바닥에 나돌았으며 텔레비전에서는 어린이 드라마가 방영중이었다. 식탁에는 먹다 남긴 피자가 소파 옆에는 콜라와 닭뼈, 케익 상자들이 보인다.
벽에 걸린 그림들은 어디서 많이 본 듯 한 그림이다. 세잔, 모네, 마네, 피사로, 르누아르, 앤디 워홀 등등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이 한 눈에 봐도 뭔가 익숙한 느낌을 가지기에 충분한 여러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물론 감이 둔한 사람이 보면 잘 모를 것이다. 세잔, 모네, 마네, 피사로, 르누아르, 앤디 워홀... 미술이나 문학이나 음악이나 어떤 예술이든 뭐든 고전을 빼놓고는 얘기가 안된다. 남자가 여자를 잘 모르 듯이 일반인이 유명인을 상류층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교의 원칙에 정통하기는 어려운 법이지만 무디지 않은 중간 정도의 센스만 있다면 어느 화면이든 옷발이든 말발이든 견적 산출이라는 그림이 바로 나온다. 위대한 미술가의 작품은 주로 미술관에서 볼 수 있지만 케빈 집에... 뭐야 케빈이 수표로 코 닦냐고? 그건 아니다. 그는 왕재수도 아니고 뭘 표시하기 좋아하는 타입도 아니다. 설마 그럴 리가! 쉽게 말해 고귀한 독자님 그대와 인성에서 거의 흡사한 수준이다. 그것 하나는 귀하와 거의 판박이요 거울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이견은 없는 것으로 하고 다음을 이어가자면 이렇다. 명작은 크고 으리으리하고 비싸고 그렇지만 어떤 낭만주의자를 위해 또는 재미난 일화와 전설을 위해서 위작이란 건 많지는 않지만 반드시 얼마쯤 있다. 혹시 영화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것에도 명맥이 비밀이 업계의 불문율이 명백하게 존재한다. 그럼 케빈 집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소품이면서 진품이다. 대작이 아닌 소품이며 동시에 진품. 대작이면서 진품이 당신 집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가정은 공짜다. 글쓴이가 클림트, 고흐, 피카소, 뭉크 이렇게 4개의 작품을 그대에게 선물했다고 치자. 그걸 받은 독자 십중팔구는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그날부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그것을 위해 살아야 하는 삶의 목적을 변경하기 위해서인지 당신은 그날부터 온종일 날마다 쌩-영화를 찍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당신께 닥치면 정말 미치고 환장할 일일 것이다. 억~수로 비싼 미술품을 아무 대가 없이 잘 알 수 없는 고마움의 정표로 선물 받았는데 당장 팔 수도 없어 그렇다고 마음 편히 빈집과 작별하고 순순히 외출을 감행해? 분명 뜻밖의 행운이 확실한데 가지런이 기운찬 곡선이 미간에 그려진다. 그런데 그곳에, 케빈 집에 있는 미술품들은 그게 아니다. 대작이면서 진품 그것이 아닌 진품이면서 소품, 한마디로 나쁘지 않다. 비싸지 않다. 대가의 작품이면서 진품이며 절대 비싸지 않는 정말 괜찮은 걸작 소품, 전문가들에게 딱 손꼽힌다. 그렇게 별로 비싸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작품들이 친한 친구들을 반기고 있었다.
뭔 감정평가사나 큐레이터도 아닌데 거실 세팅에 대한 썰만 한정 없이 풀고 자빠질 뻔 했다. 아차 말 나온 김에 이거 하나 알려 드리고 가야겠다. 뭔가 있어 보이는 글과 비슷한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는 솔깃한 말이다. 말발! 말발에는 기본적인 단계가 있다. 드라마가 선생님이고 영화가 교수님이다. 제 1단계. 아무도 믿지마. 절대 누구도 믿지마. 내 말만 들어. 그리고 제 2단계. 그들의 말도 저들의 논리도 우리의 이론도 모두 일리 있어. 하지만 이 말 하나는 잊지마. 내가 너를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머머할 것이라는 사실을. 어디 나 뿐이겠어? 너의 지나온 시간이 이룩한 네 명성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거, 결코 잊혀지지가 않아. 그리고 명대사 잊지마, 또 절대 뒤돌아 보지마. 제 3단계. A는 그렇고 B는 어때. 그럼 C는 어떨까? 득실을 따져봐. 상상을 해보란 말야. 궁금하지 않니? 왜 그런지 의심스럽지 않아?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생각해 보렴. 다른 잡생각을 모두 날려 버리고 이것만 생각해. 시간낭비 하지 말고 집중해. 자 만일, 만일 말이야······ 이렇게 말한다. 뉴질랜드식 후음을 섞어서. 뉴진랜드식? 스코트랜드식은 들어봤어도 뭐지 금시초문인데. 그리고 표정과 눈빛과 액션. 마지막에 악수할 때는 왼손바닥을 당신의 악수하는 팔꿈치에 가만히 살짝 붙인다. 기분 나쁘지 않은 웃음과 함께.
「뭐야 이거. 우리 오빠 예전 말투랑 똑같은데. 맞아 틀림없어. 예전에 그때 내가 분명 뭔가에 홀린 느낌이었어. 콧소리는 원래 여자가 내는 건데 뭐였지? 그 당시 내가 먼저 눈빛을 보냈나 아니야 오빠가 먼저 말발로 꼬셔서 꼬리를 흔든 것 뿐이라구. 그는 내 미모가 젊음에 기인한다는 사실에 둔감했으니까. 어쩜 그러고 보니 그러면, 그렇다면 그 인간이 이제는 도대체 말빨이 몇 단계로 올라간 거야? 오빠를 닮은 아들과 날 닮은 딸아이가 있는 이 마당에 그게 다 무슨 헛소리겠어. 그래도 추억이긴 하지. 그런데 이 사람 어지간히도 말발 좋아하시네. 약간 이거 세르반테스꽈에 지중해풍 감흥과 드라마적 기교를 크로스오버한 거 아냐? 화술의 세계가 곧 행복의 길이라는 뜻인가? 이거 이론이 거의 밑장 빼기 수준 같은데. 알쏭달쏭하단 말야. 어쨌든 미심쩍어. 아 머리 아퍼. 오 여자들도 정말 삶이 쉽지가 않아. 결코 인생살이가 녹녹치 않단 말이야.」
팔랑팔랑. 청력은 시각과 연결된다. 독서는 1차적으로 시각 능력을 발하는 행위다. 청력은 시각과 연결된다. 기본 과정 너머는 유료 클래스다.
천상의 재담가, 기막히게 화려한 혼을 빼놓는 만담꾼은 사실 만나기 힘들지만 이건 쉽다. 주변에 말 잘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생각나는 교수님, 선배, 친구, 친구 오빠, 오빠 동생, 기타 등등. 그분들의 말을 속기사를 통해 또는 녹음해서 당신이 직접 적어서 그대로 글로 옮기면, 그래서 읽어 보면 음 이건 뭐랄까 좀 많이 과장하자면 아이돌 연예인의 십대 광팬이 어느 날 스타의 무얼 보고 완전 깬다면서 팬질을 끊는 경험과도 어찌 보면 비슷할 것이다. 그렇게 깨는 과정이 예상되니까 일부는 일부러 잘 모르는 외국 연예인을 좋아하기도 한다지만 역으로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아지기도 할 것이다. 연예인도 절대 외계인이 아닌 필경 당신과 똑같은 일반인이니까. 그냥 같은 사람일 뿐이니까. 필자는 고등학생 때 정치-경제 수업 시간에 한 번 해봤다. 아주 가끔 뭔가 반듯하고 좋은 도움되는 이야기를 해주시길래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연설을 한 번 그대로 적어서 읽어 봤는데 거 왜 뭔가에 속은 느낌은 아니고 좀 이상했다. 일순간 고개를 팍 숙이고 5, 6초쯤 지나서 롱테일 그래프를 뒤집어 놓은 완만한 기울기로 천천히 고개를 살며시 쑥 들면서 앵글 즉 고개와 얼굴을 쓱 틈과 동시에 기울기는 그대로 따라가고 눈빛을 멀리 던졌던 기억이 있다. 멋지게 잘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아름다운 글은 뭔가 있어 보이는 글과 약간 다르다. 하지만 본인도 지금도 앞으로도 끝없이 혹시나 혹여나 혹 했다가 학구적으로 분석해 보고 살펴 보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대도 로버트가 아니니까 경탄할 만한 싯구절을 떠올려 보자. 이건 절대 콘서트에서 가사 까먹고 마이크를 관중석으로 들이미는 행위가 아니다. 확연히 다르다. 회의는 엄청 길었는데 문서로 정리하면 얼마 안돼. 브레인스토밍은 좋지만 중요한 회의도 있지만 불필요한 미팅, 좀 허무하다. 힘 빠져. 말과 생각, 마음, 정신, 관념, 철학, 사상, 뭐뭐뭐에서 한편의 글은 어느 차원에 위치하고 형태가 어떨지 지금 이 글은 말발과 다를 게 뭐가 있을지 자신할 수 없지만 느낀 점을 중딩처럼 고백하고 넘어간다.
어느새 나이 들어 차 조심해라, 정직하여라, 착하게 살아라 같은 성장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한없이 들었던 말처럼 또는 그런 평탄한 혹은 평화로운 가정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을 보면서 객관적으로 덜 행복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거나 정보 요원 착출 일순위인 고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촬영 스텝처럼 뭔지 모를 의연함 때문에 하워드가 먼저 말문을 연다. 왠지 이유도 모르고 뭔가 아까운 아쉬우면서도 심심한 그럼과 동시에 손해봐도 괜찮다는 대범함을 가장하면서 호탕하게 질문을 던졌다. 의례적인 인사말은 생략했다. 그들이 아니라 필자가.
「너네들 요즘 무슨 책 읽니?」 말하고 나서 즉시 하워드는 생각했다. 이건 아니야 라고.
「최근에 어떤 일화 하나를 읽었어. 내가 주로 새로운 일을 알게 되는 경로는 주로 그건가봐. 구경하며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탐미, 유미, 각종 용어들 하며 미적 가치들을 즐기고 누리면서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주로 읽어서 대부분 주로 읽어서 아하 하면서 새로운 걸 알게 된다는 점. 예전에도 쭉 그래 왔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이상하게 그게 그렇게 썩 나쁘지가 않아. 요즘 알게 된 하나의 일화는 이거야. 트루먼 커포티! 내게는 '와 이거 완전 영화 대사 교본인데' 라면서 혼잣말을 더듬거리게 만드는, 지나고 나서 더 천천히 읽을 껄 그랬네 라고 쉽사리 후회하게 만드는 서머셋 모옴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만드는 그 이름, 트루먼 커포티가 라이어넬 트릴링과 마주쳤을 때 이렇게 물어봤다는 거야. 왜 『E. M. 포스터』라는 책에서 그의 동성애는 언급하지 않았냐고. 그렇게 따졌대. 그에 대해 트릴링은 이렇게 짤막하게 대답했다고 해. [몰랐어.] 나는 이게 하하하 한 편의 영화보다 더 재미있단 말야. 너네들 생각은 어떠니?」
「오... 미안. 분위기 이상하다야. 다른 얘기하자. 자꾸 소설 작업 때문에 신경이 그쪽으로 쓰여. 다른 종류의 작업 이야기나 할까? 질문을 바꿀께. 요즘 너네들이 인터넷에서 찾아본 검색어는 뭐니?」 잠시 10초가 지나지 않아서 하나둘 답변들이 나온다.
「마세라티 잔고장」
「여자들이 좋아하는 차는 무엇인가」
「스위스 아우디」
「레인지로버 수중」
「캐딜락 요원 포드」
「자동차 이름 통계」
「자동차 가방 브랜드」
「자동차 이름 사전」
「TV 편성표」
「지휘자 아령」
「무뚝뚝한 강아지와 친해지는 법」
「고양이를 잘 따르게 하는 법」
「Top 10 funniest movie insults」
「Top 10 improvised movie moments」
「켄트주」
「유난떨다」
「Guilty Pleasure」
「쫄게 만드는 베레모」
「옷으로 상대방 기죽이는 펑키 패션」
「Why (한칸 띠고) 첫번째와 두번째 철자로 알파벳 여러개 넣어서 검색 제시어 살펴보기.」
「왜 아시아계 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뛰어난가? 언어 때문에 어디는 철학에 어디는 음악에 어디는 패션에 어디는 시에 유리하나? 미국식 영어만 봐도 인문-교양쪽과 간결성과 단순함에 굉장히 유리한 언어야. 이도 저도 아닌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한 가운데 있는 깡섬이라고? 해변가에 누워서 바텐더 초짜가 혼혈을 기울여 매우 정성을 들여 만든 마가리타 한 잔 마셔봐. 지상낙원일 테니까.」
「뭔 말이야? 그 긴말을 다 검색해봤단 말이야?」
「아니 그건 아니고. 혹시 누가 검색-엔진에 이상한 등록이나 작업을 해놨을까봐..」
「윽 촌스러워. 얘들아 정말 유치하게 왜 그래. 꼭 유치원 애들 같잖아. 물어보는 사람은 유치원 선생님 같고. 말리지 않으며 하루 종일 이 장난만 하겠네. 왜 끝말잇기라도 하고 싶은 거니? 어 맞다. 이거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어린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크다. 머리도, 덩치도, 키도, 손도, 발도, 옷도 다. 너네 요즘 무슨 재미난 일 없었어? 아니면 오면서 별 일 없었어? 이상한 일을 봤다거나 누굴 만났다던가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고?」
드리어 우리의 호프, 스마트 포투를 몰고 다니는, 삼촌의 벤틀리를 물려 받기를 호시탐탐 노리는, 말발에 남다른 발군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닉이 입을 열었다.
「오 나 있어. 최신 싸이클 복장에 모자와 헬맷, 빕숏, 양말, 신발, 장갑등을 모두 깔맞춤으로 맞춰서 입고 오는데 조금 넓은 광장에서 왠 수백 마리의 개들을 봤어. 족히 2~300 마리는 되어 보였어. 거짓말 하나도 안 하고 적어도 100 마리는 훨씬 넘어 보였다니까. 살다 살다 그런 광경은 처음 봤어. 아마 앞으로도 일평생 그런 구경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촬영중인지 아니면 인근에 개농장이 있고 개치기가 낮잠 자다가 양이 출몰한 건지 나 원 참. 0 하나 더 붙일 수도 있었는데 용케도 잘 참았다. 기네스북 기록은 모르겠지만 YouTube 동영상은 알려져 있어. 적게 잡아서 최소 100마리는 확실해. 말만해. 뭐든지 다 걸 수 있으니까. 와 어떻게 살면서 최소 100마리 개들을 때거지로 본단 말이야? 보고 나서도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니까.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어. 침흘리게 말이야. 나 험한 말 안 하는 거 않잖니. 좋아하지도 않고.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맙소사 같은 자연스러운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오는 거야. 그렇게 내뱉은 한마디가 뭔지 아니? 완~전 개판이구만. 그런데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거 있지. 그건 마치 뭐라 해야 하지, 쥬라기 공원에 나오는 공룡이나 켄타우로스를 보는 경험과 바꾸지 않을 만 하다고나 할까,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어. 왜 그런 거 있잖아. 선을 넘어가지 않는 상당히 소프트하면서 짧은 그러나 듣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을 절묘하게 웃도록 만드는, 잘 쓰이면 별로 거북하지 않은 욕. 사람에 따라 듣기에는 웃긴데 잘 쓰지는 안는 말. 그런데 그런 말을 상황이 닥쳐서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말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아닌 내 귀로 듣기가 아닌 내 입으로 말을 하게 되면... 하하하 그 뭐지 카타르시스? 그런 걸 느낀다니까! 기가 막힌 순간이었어. 이걸 딱 가르키는 어떤 전문용어가 있을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 없을 것도 같고. 오 그 천상의 희열이란 정말 놀라워!」
싸이클을 타고 케빈 집에 왔던 닉의 신기한 체험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놀라워하며 홍조를 띄고─그 홍조를 거울 보고 연습했을까? 어린이 광고 모델을 모델링 하면서─제임스가 넌지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연다.
「오 완전 놀라워, 어떻게... 지금 다시 그곳에 가보면.. 에이 맞다. 뭐니 뭐니 해도 우연히 보는 게 최고지. 지금 누가 모셔간다고 해도 가기 싫어. 우연성도 뭔 마법인지 뭔가 있긴 있나봐. 아무튼 대단해 닉. 그런데 우연성이 정말 극적인 건데 그 가치가 많이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 같아. 어느 날 또는 1년이 주어지고 갑자기 제우스나 누군가 어떤 신이 나타나서 유명한 대석학들의 지력을 모두 한번에 내게 주입하는 게 가능하다고 그렇게 내게 이입해 주겠다고 한다면 정중한 태도로 단호히 거절할 테야. 능히 가능하고 아무 것도 저당 잡지 않겠다고 할지라도, 불로소득이라서 정 내키지 않는다면 피터 드러커식 4년 주기 학습법으로 수십 년간 다방면의 학문을 연마하는 방법을 적당한 따라하기만 한다면 그 기간을 딱 10분의 1로 줄여서 완벽한 지성을─어느 독자께서는 지성을 재산? 야망? 돈!이나 명성? 명예? 인기!나 득도로 치환해서 읽어도 무방하리라─안겨줄 테니 자, 계약서에 곱게 싸인하자 라고 할지라도 다 싫다고 퇴자 놓을 테야. 천천히 그리고 우연히 또는 가장무도회처럼 대놓고 감추어도 좋으니 왈츠격으로 삶의 비밀의 요체를 알고 싶단 말이야.」
잠시 정적이 흐르고 앵무새 소리가 들렸다. 앵무새가 말했다. 삶의 비밀의 요체를 알고 싶어. 삶의 비밀의 요체를 알고 싶어. 앵무새에게 일부러 말 할 기회를 주고 잠시 쉬었다가 제임스가 이어서 얘기한다.
「음... 그건 그렇고 난 말야 마라톤 연습하면서 뛰어 오는데 도로에서 어여쁜 아가씨에게 구애하는 청년을 봤어. 이상하게 이 친구 옷 입는 스타일이 딱 스피트 메탈 락커 스타일이었단 말야. 대신 얼굴은 좀 그랬어. 여기까지는 평이한데 그 청년이 외치는 말이 아주 장관이었지. 그 말은 바로 '내 사랑을 받아주오' 였어. 그런데 그 문장을 각 시대별, 드라마 장르별, 다양한 신분과 직업과 여러 문학적 스타일로 수없이 반복하며 계속 외치고 있었어. 뭐 받아주지 않으면 콱 뭐 해버리겠네 어쩌네 하면서. 그래~ 여기까지도 충분히 그러려니 있을 만 한 일이라 하면서 지켜봤어. 그러더니 순간 도로에 냅다 드러눕는 거야. 또 뭐라 뭐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하지만 자세히 보니 도로 진행 방향과 교차되게 눕는 게 아니라 차로 구분선과 같은 방향으로 누웠던 거야. 물론 차도 거의 다니지 않고 어쩌다 등장하는 차들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경치 괜찮고 그런 곳이었어. 그렇게 그 친구가 누워서 자꾸 막 눈치를 보고 그러는 거야. 너무 티나게 말야. 그 고생하면서 쌩쑈하는데 완성도 한참 떨어졌지. 그런데 그렇게 좀 어설펐는데도 그래서 오히려 그 때문에 그런지 더욱 갑자기 빵 터진거야. 아주 엄~청 웃었어. 웃다가 울었어. 웃다 보니 왠지 그분들 얼굴이 어딘가에서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자꾸 낯이 익어서 무척 서운하고 허전하며 쌔한 느낌이 들더라고. 어디 텔레비젼에서 봤나 잡지에서 봤나. 다행히 아마도 다행히 여자분이 그 남자의 구애를 받아주지 않을 듯 했어.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으니까. 일방적으로 스토커처럼 남자가 쫓아다녔나봐. 어쩌면 남자의 마음은 그런 추억이라도 쌓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라. 끈질기게 따라다녀서 넘어가는 커플들 나중 많이들 음... 많이들 아주 연하게 회한스러웁기도 할꺼야. 남녀간의 구애는 참 오묘한 이치야. 이곳에 도착하고 나니 그냥 그랬나 보다 했는데 뭔가 그냥 평범하지는 않았던 일 같아서 기억에 남아. 신고하면 잡혀가기 딱 좋은 일이니 또 스스로도 선을 넘지 않도록 신사답게 멈출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지만 어쨌든 영화 같아 보였어. 누구... 또 다른 일 없었니?」
조니가 긴장을 하면서 엄지발가락에 힘을 잔뜩 주고 결연한 표정으로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오 이런 놀라운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난 말이야 오다가 영화 촬영에 나도 모르게 동원되었다니까. 1969 싱어 포르쉐를 몰고 오는데 도로변에 가끔 보이는 공사주의 표시물들 있잖아. 그거 따라서 속도를 줄이고 틀고 어쩌다 저쩌다 이상하게 좀 길어진다 싶더니 막판에 그것에 속았나봐. 그 있잖아, 페인트 미술 같은 거. 낭떠러지나 괴기 그림을 바닥이나 벽면, 도로에 그리는 예술! 그게 미리 설정되어 있었어. 그렇게 나도 모르게 놀라면서 궁시렁거리다가 거의 속도를 줄이며 정지했는데 멈추고 보니 왠 컨테이너 안이었어. 뒷문은 어느새 닫혀 있었고. 컨테이너 제일 안쪽에는 고급스러운 소파와 함께 가벼운 티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고 화장실까지 있었어. 최고급 최신형 초대형 텔레비전으로 액션 영화도 묵음으로 틀어져 나오고 있었어. 그리고 타자마자 그 음악이 들렸어. 징~지리-징징 징징징- 징~지리-징징 징징징······ 빠라밤~ 빰- 빰- 빰빰- ······ 뭔 OST 인지 알지? 아주, 아조 황당했지. 넋을 놓다 보니 한동안 컨테이너를 끌고 무슨 트럭이 어딘가로 가드니 얼마 후에 멈췄어. 그러다 갑자기 하늘에 붕 뜬 느낌이 드는 거야. 완전 쫄았지. 어제, 오늘, 내일, 나, 그대 그리고 인류 어쩌고 저쩌고 난생 처음 이신 저신 다 찾고 기도도 했어. 그러다 어느 큰 배에 실렸나봐. 어떻게 나올 방법이 없었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마음 편히 느긋하게 그곳에 준비된 음료를 이용해서 난생 처음 먹는 칵테일을 제조해서 마셨지. 그러다가 뱃고동이 울리네. 배가 떠난다는 신호였나봐. 정말 출렁출렁 배로 짐작되는 움직임이 느껴졌어. 그렇게 배가 항구를 떠나가는데 희한하게 허탈한 그러나 공허한 하지만 천진난만한 웃음이 나오더군. 그 웃음의 마법이 먹혔던 것일까? 그 지점이 레테의 강물이 모인 레테의 바다였나봐. 배가 다시 처음의 항구로 돌아오는 거야. 대충 진행 방향은 감 잡히니까. 방향 감각과 운동 신경은 정상이었어. 시간도 길지 않았고. 배가 아마도 어느 등대나 조그만 섬을 돌아서 다시 돌아왔나바. 뭔가 촉은 왔으니까 대충 돌아가는 정세가 보였지. 그러더니 배가 멈추고 아까 배에 컨테이너가 실리던 것과 반대로 배에서 컨테이너가 공중에 붕 떠서 어딘가에 내리는 거야. 트럭 위에 내려졌나봐. 그렇게 또 이동을 하더군. 뭐하는 상황인지 원, 이름없는 쇼였지. 티 테이블에 미니 냉장고와 위스키도 있길래, 느긋하게 데킬라도 한 잔 하고 위스키 온 더 락스를 제조해 마셨어. 그렇게 위스키를 마시고 잠깐 소파에서 낮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꿈을 또 꿈을 꾼 거야.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고 내겐 최초였어. 3중 꿈! 일타 삼피! 3중 꿈 꿔 봤어? 안 꿔 봤으면 한 번 꿔 봐. 기분 괜찮아. 첫번째 꿈에서는 여자친구와 친한 친구들과 피크닉을 갔어. 아마 너네들이었던 거 같아. 푸르른 잔디밭에서 샴페인 한 잔 하면서 물풍선 총도 쏘고, 그림도 그리고, 소설도 읽고, 가벼운 놀이도 하고 그러다가 영화 The Five-Year Engagement (2012)의 OST Cucurrucucu Paloma와 Vampire Weekend의 Ca Plane Pour Moi 그리고 Jimmy Fontana의 Il Mondo, Joao Gilberto & Stan Getz 이런 노래를 누워서 들으며 강아지들과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스르륵 잠이 든 거야. 그렇게 첫번째 꿈 안에서 두번째 꿈을 꾼거야. 두번째에서는 집에서 스파게티와 함께 포트와인을 한 잔 마시면서 TV로 영화를 보고 있는데 그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도 스파게티와 함께 포트와인을 한 잔 마시면서 TV로 영화를 보는 장면이었어. 현실이라면 또 예전이었다면 어떤 감탄사를 연발하며 욱 했을지도 모르지만 꿈 속의 꿈이라서 그러지는 않았어. 그래서 그 꿈에서 정신이 어질어질 하길래 소파에 누워 살며시 잠들었는데 또 꿈을 꿨어. 드디어 3번째 꿈이지. 3번째에서는 내가 유치원생이고 유치원에 다니는데 유치원에서 대체 졸업을 시켜주지 않는 거였어. 멜빵 바지를 입고 빵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꼬마였던 나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하면서 미치고 팔짝 뛰고 그랬나봐. 그러다 무슨 비행기 소리가 들리길래 꿈을 깼지. 꿈 속의 꿈 속의 꿈이 3중 꿈이 모두 같이 깬 거야. 결국 공항 터미널에 내려서 컨테이너가 열렸는데 수백대의 카메라와 조명발이 들이 대니까 자동으로 나도 모르게 포즈가 나오더군. 원래 화낼 생각도 없었어. 우리 스타일 알잖아. 주변에 똘만이 역할부터 닮은 사람이 참 많더군.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스터섬에 있는 모아이 석상, 스핑크스, 희대의 ... 딱 적기에 곤란한 그런 인물들도─솔직히 딱 떠오르는 사람은 없지만 왠지 그럴 여지를 주는 편이 멋져 보일 것이라 생각해─있고 말이야. 컨테이너 안에도 카메라가 수십대 세팅되어서 다 찍었나봐. 게다가 시간도 그리 길게 걸리지 않아서 괜찮았어. 그렇게 해프닝이 끝나고 나는 차를 몰고 떠났지. 그러고 보면 아까 본 모든 빛을 흡수해 버리는 것 같은 포스의 썬그라스를 끼고 가죽 점퍼에 블랙진을 입고 값싸 보이는 인조가죽 장갑에 쇠뿔 목걸이와─불독 따라하기가 유행인가, 불독들은 그걸 알까─이상한 해적 모자에 번쩍번쩍한 좀 촌스러워 보이는 롤렉스 스타일 금장 시계를 차고 술이 달린 구두인지 장화인지를 신고 있던 양반이 혹시... 뤽 베송이 아니었나 싶어. 일부러 촌티나게 입었나봐. 이거 뭔 전생에 내가 스턴트 맨이었을까? 하여간 어디 가서 돈 주고 어떻게 이런 값진 모험을 체험해 볼 수 있겠어? 귀신에 홀린 것만 같았지만 솔직히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어. 오면서 나 혼자 철지난 유행가도 불렀지. 노래 제목은 환생! 정말 짜릿한 새로운 활력을 느꼈다니까, 느낌 팍!」
「야~ 대단한데. 정말 완전 미스테리다. 기똥차. 끝짱이야! 그러고 보면 조니가 역시 말을 잘 한다니까. 재미없는 일도 완전 끝장나게 판타스틱한 사건으로 바꿔버리는데 진짜 기막힌 일을 그것도 완전 단독 주인공으로 체험했는데 어련하겠어~ 얘가 말을 시작했다 하면 사람들 관심이 급속하게 쏠리고 영혼이 홀리며 정신이 혼미해져. 그런데 하나도 지루하지도 길게 느껴지지도 않고 흥미롭기만 하단 말이야. 정말 신기해. 조니, 우리에게도 그 비법을 전수해 주지 않겠니? 그래주라. 어찌 아깝게도 혼자만 알고 있단 말이오. 후세에 길이길이 전해야 하지 않겠소. 오 신이시여!」
「난 복화술 할 때도 말발이 딸려서 틈틈히 초조한데 그때마다 자주자주 조니가, 하워드가, 알렉스가 생각난다니까~」
「에이, 지존! 말발의 지존께서 왜 그러셔. 넌 사람이 너무 겸손해서 탈이야. 어떻게 그 말발에 그 겸양의 미덕까지 갖춘거니? 정말 기가막힐 일이다. 야, 우리는 괜찮지만 어디가서 그런 말 하지마셔. 그러면 사람들이 속으로 재수없다고 그런다니까. 우리들이 만일 모두 여자였다면 넌 아마 질투받아서 하루 온종일 욕 얻어 먹어서 날마다 배불렀겠다. 이제는 보아하니 침묵와 템포를 죽이고 살리는 지휘계의 거장들 완급 조절과 동기부여까지 모조리 마스터했잖아.」
「닉의 말발도 그야말로 환상이지. 그리고 하워드 봐봐. 지성적인 말발, 거대기업의 C-레벨 특급 관리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웅장함에 플라톤적 웅변술, 전형적인 가격 흥정의 모든 기법, 영화 업계 최고의 배우들에 필적하는 드라마틱하게 상대방 감정을 풀었다 쥐었다 옷을 입혔다가 발가벌겼다가 아주 만능이잖아.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 매력을 아는 사람들만이 그를 자주 만나고 싶어하고 또 그래서 째가 일부러 말발을 잘 안 푼단 말야. 뭐야 얘들아 이거 좀 불공평하지 않니? 조니는 전성기 때 딱 10분이면 모든 상황이 끝났고 지금도 레전드고 하워드도 있고 그러고 보니 또 알렉스 빼고 어찌 말발을 논할 수 있단 말이야? 그러면 마크는, 마크는 뭐야?」
「마크는, 마크는 잘생겼잖아. 까레라 타고. 옛날에는 상냥했고 지금은 자상하고 언제나 인자해. 아침에는 이성적이고 점심에는 이지적이며 저녁엔 감상적인 로맨티스트인데 뭐가 걱정이고 누가 부럽겠니? 내가 보기엔 제임스가 걱정이다. 맨날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골방, 음침한 음험한 사무실에서 대관절 어떤 대작을 준비하고 있길래... 그곳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는지 몰라. 볼살도 쭉 빠졌어. 왜 그런거지...」
「에이 무슨 소리야. 제임스 웃기잖아. 리액션 좋고 애드립 할 줄 알고 어... 더 길게 얘기하면 사람 놀리는 거 되니까 그만할래. 나도 그리고 다른 애들도 모두 제임스 좋아하잖아. 우리가 제임스를 제임스가 우리를. 그럼 된 거야. 이런 깜빡하고 잊을 뻔 했네. 케빈은?」
「케빈? 케빈은... 어 애가 착해. 사람이 좋아. 케빈이 말을 빨리 많이 조리있게 안 해서 그렇지 이 친구가 말을 못해서 말발을 안 세우는 게 아니야. 그럼~」
대화가 까무러치게 장황하게 나오는 이유, 그 이유는 이 챕터 말미에 나온다. 이 쓰잘데기 없는 대화들, 그냥저냥 시시콜콜 소소한 일상의 대화 같지만 말이다.
「헤이 알렉스~ 자네는 별일 없었나? 뭔가 할 얘기가 있는 것도 같고 아닌 듯 하기도 한데.. 속 시원하게 우리에게 털어나봐 알렉스. 자네의 오페라 아리아처럼 유창한 얘기 한 번 들어보세.」
「난 오면서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다네. 다만, 천문대 구경하고 나서 천문대 쪽문 옆에 있는 조그만 공간에 텐트를 펼쳐 놓고 밤새 여유작작하느라 오는 동안 좀 여러 교통수단을 거친 게 그나마 특별했다면 특별했다고 할 수 있다네. 그렇다고 커다란 잠망경으로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지는 못했어. 아침에 텐트에서 일어나 먼저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온 다음, 패러글라이딩을 탔다네. 그 있잖아 새처럼 나는 패러글라이딩 말고 쪼그만하게 딱 몇 십 미터만 날아가는 미니 사이즈가 있어. 그걸 타고 나서 케이블 카를 탔어. 그날은 나도 모르게 꼭 하루 종일 뭘 계속 탈려는 사람처럼 작심한 듯 보였지. 그리고 다시 지하철을 탔지. 그런데 어딘가에서 본 듯 한, 아니면 착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를 쳐다보다가, 여자였든가 아무튼 그러다가 내릴 정거장을 지나쳤어. 그래서 지나친 곳에서 그냥 내려서 택시를 탔다네. 마침 그 근처 FEDEX 매장에서 일하는 친구네 가게로 택시 타고 가서 그곳에서 차 한잔 마시고 FEDEX 차를 타고 동물원 근처에 있는 낚시터까지 갔다네. 그래서 그날 하루 신선 노름 하면서 낚시하며 손 맞 좀 보고 아, 올 때 중간에 주류 백화점에 들려서 고급 보드카 한 병 사왔지. 그러다가 낚시터에서 마크와 통화한 후 만나서 같이 왔다네. 이것 저것 번거롭게 많이 갈아타기만 했지. 별일은 없었어. 그게 다야. 마크, 친구는 낚시터에서 우리 만나기 전에 오면서 별다른 일 없었나?」
뭔 말발 대회도 아니고, 아무래도 알렉스가 원래 입담이 끝내주는데 장난 아닌데 좀 아무래도 많이 쫀 듯한 느낌이다. 오랫 만이라 아직 몸이 안 풀렸나 보다. 조니에게 기선 제압 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몹시 피곤해서 컨디션 난조 때문에 시무룩해 보인다. 그 때문일 뿐이다.
「난 뭐, 나도 마트에서 하이네켄 5ℓ 2통 사가지고 알렉스와 만나기로 한 낚시터로 가던 중에 탑기어 프로그램 촬영중인 친구들 구경했어. 음 다른 일은 없었고 탑기어 구경만으로 충분했어. 탑기어가 반올림 안하고도 거의 전세계 모든 국가에 방영되는 TV 프로그램이니만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지. 214개국이던가. 맞나? 지구에 나라가 이렇게나 많았어? 거의 다네. 어떻게 그렇게나 많은 나라에 전파될 수 있는 거지. 미스테리가 따로 없군. 그 구경하기도 어디 쉽나.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는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지 않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가티도 보고 육체파 아가씨들도 많든데 오우 몸매 아주 끝내줬어 하하하. 옆에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울렁울렁 속으로 으쌰으쌰 억쑤로 후끈후끈 하던데. 실토하자면 살짝 흥분할 뻔 했지. 때와 장소도 구분하지 못하고 말야. 아무래도 집에다가 액자를 하나 걸어놔야 할 꺼 같아. 아시아 어느 드라마나 영화 보면 나오잖아. 글씨 써서 액자로 만들어 집에 걸어 놓거나 건물에도 엄~청 큰 플랑카드로 붙여 놓든데. 집에다가, 집에다가 말이야 액자를 들여놓을 꺼야. 글씨는 이렇게 해서. <아찔한 지성> 초씸플! 음 나쁘지 않어, 괜찮아. 아 그리고 말도 봤어. 말. 음 말근육 말벅지 꿀... 앗 아무튼 그 말이 아마도 천리마였던 거 같아. 삼국지든가 어딘가에서 읽었는데 옛날 중세의 영웅호걸 여포라는 사람이 탔다는 전설의 적토마 말이야. 두가티 소리도 완전 멋지든데. 오 그 음률들 정~말 아름다웠어. 앗~참 그리고 볼보 오픈카를 타고 가는 멋진 친구들이 꼭 SF 영화처럼 드론을 자기들 머리 위로 공중에 달고 가는 장면도 봤어. 특이하게 보였던 건 옷 입는 스타일이나 분위가가 꼭 중세 사람들 같았다는 거였어. 게다가 페라리 FF도 난생 처음 봤어. 다른 페라리 모델들이야 예전에 스쳐지나가면, 응 그래 F학점 첩보원이 몰고 가나봐 그랬는데 유독 그 매끈한 FF 모델은 언제 볼 기회가 없었어. 마침 재수 좋았던 거지. 그런데 내가 그 페라리 FF에 어떻게 시선이 간 줄 아니?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름 정교한 순서도가 있었어. 처음에는 어떤 행인을 보고 있었어. 흔히들 광고에서나 볼 법 하게 완전 놀라 까무러치는 표정 있잖아. 그 친구 표정이 그렇게 보물섬을 발견한 듯 하는 재밌는 얼굴이길래 내면-생활-연기 출중한 그 친구가 대체 뭘 보고 그리 놀라나 해서 둘러보니 새하얀 한혈마(전력질주시 땀을 흘릴 때 빨간 땀을 흘린다는)를 보고서 흐잉흐잉 교성을 내지르는 적토마를 보고 있었어. 말이 몇 마리 보였는데─어떻게 말이 명차보다 더 많은 듯 보였어. 아주 가관이었지만 정말 기분 좋드라고. 무슨 말판이었나─그 말에 붙여진 이름에 또 뻥터졌지 뭐야. 1.내 아내는 모든 걸 알고 있다 2.아내는 모른다. 말 이름이 그랬어 쿡. 경마장에서 경주 시작했을 때 해설자 말하는 걸 상상만 해도 말이야 절로 웃음이 난다니까. 1번마 발동이 늦습니다, 2번마 1번마를 비웃듯이 여유롭게 앞서 갑니다, 1번마 성났습니다 탄력이 제대로 붙었네요, 오 2번마 어제 먹은 햄버거가 탈 났을까요 뒤쳐지기 시작합니다, 설마 2번마 경주 중에 한눈파는 건 아니겠죠, 이런 식으로 해설하지는 않잔나. 1번마, 2번마 정식 이름을 다 불러줘야지. 이름을 불러주어 그 말이 꽃이 되게, 그 말이 우승하도록! 코메디언들 식은 땀 빠싹 흘리게 만들고 있드라니까. 벌이도 시원찮은데 뭐라 하며 이러쿵저러쿵 웃긴 아저씨들 쫄게 말이야. 그것참 웃기단 말야. 그렇게 내 시선은 적토마에서 한혈마로 옮겨 갔어. 주의 깊게 보니, 대충봐도 보였을 거야, 한혈마는 육체파 아가씨를 보고 있고, 육체파 아가씨는 북유럽 금년도 헤라클래스 대회 우승자를 보고 있고, 헤라클레스는 Akon을, 닮은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더라구, Akon은 비욘세를, 비욘세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엘비스는, 엘비스가 FF를 보고 있었어. 그렇게 시선 역추적을 하다가 우연히 FF를 보게 된 거야. 무슨 수사대처럼 시선 역추적을 요리조리 요리조리 하다가 겨우 도달한 거지.」
마크도 역시 가락이 있어서 화술의 비밀을 제대로 알고 있다. 딱 이쯤이다 싶으니까 남은 한마디 말을 마저 끝내기 전에 살짝 좌중을 둘러보며 분위기를 살피고-가 아니라 살리고 애를 태우며 개개인들과 아이 컨택을 시도한다. 참 내놓으라 하는 만담꾼의 여유로운 자세다. 그렇게 끝맺는 한마디를 던지며 바톤을 하워드에게 넘긴다.
「그나저나 하워드 너무 부담되겠다. 자네에게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기를 바라네.」 마크가 어느새 찰스 디킨스 소설의 주인공 흉내를 내고 있다. (그런데 디킨스의 글은 누군가에게는 시장통 사투리인가? 오, 옛날 지체 높은신 분들께서 지금의 소설을 보신다면 뭐라 하실지!)
「이 친구들 짓꿋긴. 일부러 남몰래 탐정 흉내내느라 나는 조용히 왔다네. 진짜 탐정의 본 모습 알잖나. 외롭고 정적이고 사람에 따라 좀 심심하고 따분하고 그리고 엉덩이 근질근질하고 말야. 나는 요즘 카누 타는 데 맛들였는데 집 앞에 바로 천이 흐르고 있어서 그곳에서 바로 카누를 타고 강으로 나와 계속 유유히 강과 함께 세월을 느끼면서 느껴? 음 그러면서 바다까지 계속 타고 가서 근처에 정박해둔 중고로 떰핑 가격에 싸게 구입한 요트에 도착했다네. 그렇게 요트 타고 여기까지 온 거야. 모두들 쑈하며 생영화 찍으면서 왔는데 나라도 조용히 와야 하지 않겠나.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어떻게 그렇게 되었다네. 어디 꼭 짜고 치는 고스톱 같아. 속임수 적당히 써가며 알면서 속아 주고 뭐 그게 우리네 인생이겠지. 음 딱 하나 이상했던 점. 요트 타고 오면서 상어 몇 마리 본 게 전부야. 그 상어 꼬리를 보는데 저~기 너머에 무지개가 떠 있더군. 참 운치있었지. 그게 다야. 재미난 모험 얘기를 늘어놓지 못해서 미안하네 그려.」
「방금 너네들이 했던 얘기를 말이 아닌 글로 읽었다면 고운 고운? 입술로 발성한 음성이 공기를 통해 반향을 거쳐 주파수 공명하고 간섭되며 내 뇌로 그리고 내 영혼과 마음에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온전히 애써 만든 새하얀 새로운 하나의 책이라는 성에서 그 세상을 읽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 너의 마음이 느껴져. 삐리리리 삐리리리(효과음) 이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군. 도망가고 쫓기고 치고 박고 싸우고 던지고 부수고 총쏘고 동물이 다치고 사람이 죽고 건물이 부서지고 푸르른 숲이 불에 타고,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고(슬픈 일은 슬프지만 살고 있는 사람은 주어진 삶이 주어졌으니 알몸으로 태어났다 알몸으로 떠나니 사는 동안 잘 살아가기를 그저 평화롭기를), 원인불명의 전염병이 나돌지 않아도! 엑스맨의 활약을 구경하지 않고서도, 뻑~ 가는 자연 재해를 구현해내지 않을지라도, 시간 여행을 하지 않아도─그런 영화들도 물론 나름의 흥미와 가치가 있지만─그러지 않아도 이렇게 극적으로 재미있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야. 이렇게 글을 읽고 느꼈을 꺼 같아. 이거 딱 할리우드 영화 스케일인데 왠지 청소년이나 어린이 드라마 분위기가 느껴지는군. 와 이렇게 해서도 신비스러운 SF 깜을 경험해 볼 수 있다니, 놀라운데. 색달라. 완전 새로워. 이런 느낌 처음이다. 귀중한 시간이었어. 소중한 첫경험, 영화와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시간의 체험. 그렇구나 오오. 느낌 아~니~까!」
「오 엔돌핀 빗발 치는데.」
「난 도파민.」
「이쪽은 아드레날린 할래.」
「세로토닌.」
「다이놀핀.」
「다이놀핀, 그건 뭐야?」
「나도 잘 몰라. 아무튼 있어. 찾아보기(검색해 보기) 귀찮다야.」
「에스트로겐. (잠시 얼음 땡) 너네들 표정이 안 좋군. 이건 먹는건가. 그냥 우마 써먼이라고 할 껄 그랬나.」
「약 먹을 시간이다. 여차하면 바로 초딩놀이로 빠지는군. 초딩이 그렇게 좋아? 하긴 그 말만 들어도 좋은데 정말 기쁜데 이상하게 마초적인─마초도 종류가 다양하다. 여자만 섬세하고 민감한가 마초도 섬세하고 민감... 너무 민감해. 멋진 마초가 갖추어야 할 첫번째 요건은 바로 말발이야. 자의식이 쇼맨쉽이 유머가 스케일이 성향이 품격이 있고 멤버 구성이 적절하면 마초 만큼 재미난 친구들을 만나기도 실은 쉽지 않아. 브레이크만 잘 잡힌다면─남자들은 초딩을 좋아하는 어른을 보면 꼭 그 다음을 생각해. 초딩 봐서 뭐 하냐고. 그냥 그 단어만 좋아해도 못 견더해. 초딩봐서 뭐 하냐고. 꼭 뭘 해야 돼? 뭘 해? 크라이슬러 비전 어지간히도 좋아하시네. 오오 오스틴 파워 미니미여! 항상 뭐든지 꼭 그 다음을 자동적으로 내다봐. 뭐든지 그 다음을. 기본적으로 엎어트리는 걸 먼저 (일말에라도) 가정하게 되는 게 인간의 본능이니까 어쩔 수 없어도 일단은 자동적으로 수읽기가 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임금님 귀 팔랑팔랑, 고양이 목걸이 딸랑딸랑. 수읽기의 전문가는 바둑 기사다. 육상이나 수영처럼 신체능력에 어느 정도 상응하는 두뇌 스포츠 프로 바둑기사. 세계에서 제일 수읽기를 잘하는 사람 탑클래스들은 대부분이 아니라 100% 남자다. 아 그 수읽기와 저 수읽기가 같은 수읽기가 아니구나. 사이렌이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궁금해 할 게 아니라 남자들이 어디까지를 무엇을 왜 다각적으로 내다보는지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그녀들끼리 얘기는 일단 얘기는 할 것이다. 하긴 남자나 여자나 다 그렇지. 긴 소설도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친구가 에피소드를 얘기하면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어, 또 친구가 땡기는 껀수를 얘기해 주면 그래서 그래서, 사람을 보면 자동적으로 위 아래 위 아래 견적 견적. 처음 만나고 대화하고 연락하고 다시 만나고 말하고 듣고 보고 찌릿하고 손잡고 키스하고 포옹하고······ 순서가 뒤죽박죽인 경우도, 무시되고 생략하는 일도 허다하지만 그 순서들 많은 순서들. 그래서 극한에 이른 남성 편향적인 작품─예를 들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의 평론이나 평가를 읽어보면 도무지 뭔 얘기인가 감을 잡을 수 없는 심정이 어쩌다 간혹 느껴지기도 해. 하긴 청춘 로맨스 소설의 인기도 영원하지. 생각이 안 접힌다. 롤-리-타! 존 파울즈 작품 성격과 비슷한 그분의 창작 노트만 봐도 나보코프경이 그와 다르게도 훨씬 수준 높은 작품을 능히 쓰고도 남았을 텐데 왜...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소설의 작품성을 어마어마하게 출판계와 언론들과 무수한 작가와 예술가들과 비전문가들이 함께 똑같이 인정한다는 건 좀 이해가 안돼. 오바하자면 (혼자서 스스로에게) 달려들겠어! 좀 더 완곡한 약한 표현을 쓸려다가 괜히 옹졸하게 이런다니까. 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새로운 것만 오직 그것만 찾자, 남들 다 아는 얘기는 최대한 자제 하자 항상 다짐하는데 말야. 각계 전문가와 권위자, 주부, 예술가, 박사 등등 모셔 놓고 토론이네 대표자가 그 작품을 소리내어 읽고 소리 크게 틀어서 모든 사람이 다 차리엿 하고 듣기만 하는 방송처럼 나머지 분들은 모두 조용히 경청하네 어쩌네 별의 별 얘기를 다 썼다가 지웠어. Like에만 집중해도 인생 한 시절인데 왜 이러는지... 어차피 방법론의 문제지만 강한 스매싱 펌킨스가 필요한 작품도 있지만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서 쿼터백 연봉이나 인기와 인성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는 법이야. 다른 보통의 작가들이든 대문호든 기괴한 작품이나 표현들도 아~주 흔해. 다만 단편으로만 다루거나 몇몇 만에 한정하거나 어느 극한까지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다를 뿐일 거야. 많이들 그 사진 기억할 꺼야. 멀리서 바벨탑 끕 빌딩이 영화처럼─99.99%의 사람들은 영화에서만 봤으니까─붕괴되고 있는데 강 건너 테이블에서 담소를 나누던 친구들이 믿기지 않은 일이 멀리 보이길래 놀라워 하며 전혀 슬프지 않은 분위기로 놀라워 하며 찍은 배경-인물 사진. 당연히 매정한 일이지만 그 친구들만, 그 행위만, 뭐라 할 게 아니라 누구나 표출되지 않은, 잘 하지 않는, 도덕적으로 곤란한, 그래서는 안 될 무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게 중요해. 초현실이나 액션이나 여러 장르 영화가 현실이 되잖아? 남자 친구들끼리 실제 이렇게 얘기한다니까. 재밌자나. 물론 스케일이 문제되지만. 이지스함이 두 동강 나잖아? 똑같아. 이것도 실화야. 이곳이 아닌 저곳이었지. 전에 친구와 싸이클 타며 힐클라임을 영차영차 열심히 하고 있었어. 그곳은 정확히 얘기하기는 뭐하지만 (여러 기준으로) 세계 Top 3 나라 가운데 2개 나라 사이에 낑긴 조그만 나라였어. 그 친구가 인프라스트럭처 뭐라뭐라 하면서 오면야 반가웁기는 하겠지만 오지 말라 그랬는데 나는 싫다 가겠다 그랬지. 위험하지만 않다면야 친구 사귀어서 좋고 만나서 반갑고 맛난 음식 먹고 구경하고 즐겁지 않냐 그랬지. 그렇게 그곳에 도착해서 그 친구와 투르 드 프랑스, 지로 드 이탈리아 선수들 흉내내면서 산길을 싸이클로 탔어. 힐클라임 좋아하는 친구들은 그런 산길의 헤어핀을 아주 좋아하거든. 스위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같은 곳에서 흔히 보이는 길. 솔직히 그 친구랑 친구 먹기 전에는 그곳을 잘 몰랐지. 존중하지만 잘 몰랐던 것 뿐이었지. 그 때 서로 청춘들 작업 얘기와 직장 생활과 저녁에 뭔 술을 먹을까 얘기하다가 그 말이 나왔다니까. 거대 전함이 신기하게 두 동강났데. 그런데 그러더라고. "재밌잖아." 정말 영화가 현실이랑 똑같드라니까. 그 친구도 정말 사람 좋고 호인이지만 이쪽이나 저쪽이나, 이쪽 사람이나 저쪽 사람이나, 어디나, 생김새는 다르지만 어떻게 그렇게 비슷한지.. 뭐야 그러고 보니 내가 서머셋 모옴이랑 비슷한 경험을 했네, 누군들 안 그러겠나.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실제 겪은 일을 말해 주지. 주위에 포탄 터지고 난리 날 때 실내에서 하이든을 들으면서 커피를 고전적으로 마셨다고.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작품들이 왜 그렇게 필독서로 인정받는데. 작품성? 아니야. 전쟁을 직접 체험한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이야. 조부모나 부모 세대가 전쟁을 경험한 세대라면 지금은 보통 영화와 예술 작품, 뉴스, 상업 상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잖아. 보통 덩치들 사이에서는 슬픈 영화를 보면서 울거나 자신이 결혼하면서 눈물 흘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야. 극장에서 슬픈 장면을 보고 펑펑 울어. 살짝만 확인해 봐. 거의 다 여자야. 극비의 소식통에 의하면 여러 도시에서 순회하며 동호인들 무도회가 열리는데 그곳에서도 헤어질 때 여자들은 모두 콧물 찍찍 흘리면서 펑펑 운다 그러더군. 일부는 아예 코피를 흘린다는 설도 있어. 뭐 딴 일 했을까. 그렇지만 남자까지 그러면 어떡하겠나. 받에 씨를 뿌려야지. 부지런히 썰을 풀어야지. 사랑이 무엇인지 아냐고. 여자들은 결코 사랑 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네. 인류가 공룡처럼 멸종해서야 쓰겠나.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벌이 모여들지 않으면 꽃은 시들게 마련이라네. 언젠가 외계인과 조우하게 된다면 알려야 할 것 아닌가. 이게 지구 문명이라고. 그대가 우는 동안, 내가 울지 않는 사이, 지구는, 나는 사랑과 행복을 연구했다고. 남자는 부끄러워도, 감동 먹어도 참아야 한다네. 남자들이 무식해서 무감각해서 그러지 않는다는 것, 다 알잖나. 그런 작품들을 무수히 만든 사람들 가운데 남자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데 두 말하면 잔소리지. 나도 누구도 어느 누구든 그와 같은 작품들을 창작하지는 못할 지라도 자기 뇌 속에 있는 셀 수 없는 방 가운데서 123,456,789호실에 있는 취향이나 기호에 대해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거야. 그게 인간이니까! 보통 10개 방이나 1,000호실 까지만으로 뭔가는 충분하지만. 좀 덜 과도한 예를 들자면 100호실에 있는 판도라의 상자에는 아마 이런 게 들어있을 꺼야. 요즘에는 0이 하나 떼어져서 10호실이지. 판도라의 상자도 다 옛날 말이고. 영화 Biginners (2010)에 나오는 대사,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어. 왜 사람들이 동성애자를 부자연스럽게 대하게 되냐고, 그대가, 누구나, 모든 사람이 당연히 성적인 상상을 하니까 그런다고, 그 수읽기를 하니까 자동적으로 즉시 하니까 그런다고. 많이들 프라이버시 어쩌고저쩌고 많이 거론하는 건 좋은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이런 행동을 보이지 않나. 대사로 치면 이거 아닌가. "개나 갖다 줘!" 동성애자에게 뭐라 하지 말자. 약자를 배려하자 그러지만 내 자녀가 동성애의 징후를 보여, 내 자녀가 X 머시기 증후군이야. 비슷한 이치지. <한 개인의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는 궁금함>이니까 너무 뭐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말야 그 어느 문지기 후작과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이라구. 이거 왜 이래. 음 하던 얘기를 계속하면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가 쉽지 않은 아빠 하는 걸 모두 따라하는 주니어가 안 계서서 그러나? 성인 군자 나셨네. 입바른 소리 하기, 쉬운 듯 하지만 막상 맡아 해 보면 상당히 포지션 애매할 꺼야. 왜 그런거 있잖아. 친한 사이에 나누는 대화 말야 어~ <B급 연예인 친구: 연기는 그게 아니야 어떻게 저렇게 하란 말야. 생각이 있니 없니. 너가 누구(비자의적 로봇 연기 창시자 이름)야? 뭐 로봇 연기해? 나나 되니까 소스 주고 모니터링 해주는 거지, 제임스 같으면 어림도 없다. 제임스 요즘 사는 거 봐라. 지가 무슨 대작가도 아니고 신수 훤한 슈퍼 개미 투자가도 아니고 방구석에서 그게 뭐하는 짓이야 그게~ 지가 무슨 에로 배우도 아니고 지 엉덩이 지가 만지고 느껴, 뭘 느껴? 그리고 노래! 그게 뭐니 그게 창법이 말야. 아이참, 듣는 사람 감성을 자극해야지 그게 뭐야. 삘을 실으란 말야~ 얼굴 표정은 또 왜 그래 어휴 증말~ 뭐라 뭐라. B급 연예인: 그럼 늬가 해봐 늬가!> 그런 논리라면 마르키 드 사드도 인정해야지. 완전 형평성 불균형 심각하지. 그게 옳다고 봐. 다름에 대한 존중 말고 무게감 말이야. 롤리타? 그냥 내 생각만 그래. 난 그 수많은 호들갑에 반대하는 의견일세. 그냥 의견 표명일 뿐이야. 누구나 그렇잖나. 작품은 그렇지만 내가 또는 나와 관계되는 사람이 또는 2세가 또는 대중이 그 작품의 주인공으로 현실에서 연기하는 걸, 연기되는 걸 반가워 하지 않는다는 사실, 작품에 따라서. 이게 뭔가? 알아도 다 알아도 얘기하지 말자는, 우리 그런건 서로 얘기하지 말자 하는 불문율 아닌가! 난 지금 그 불문율을 깨버렸다네. 이제 나는 어떡하지... 꼬마, 어린이를 키우는 부모이자 어른의 시각으로 냉정히 봤을 때 좀 그런 게 아니라 엄청 그래. "교리보다... 정서적 안도감"이 아닌 극한의 시각을 너무 높게 보지 않나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어. 우리 아빠가 우리 오빠가 이런 글 이런 영화를 좋아하네, 좋아했었네, 뭐야 옛날 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아버지가? 오빠가? 라는 말을 들을까 봐 소심해지는 일부 전문가도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거야. 남자의 세계가 기본적으로 그 험난함과 거친 폭풍을 포함하고 있기에 그 능력자들이 간질간질한 정물화와는 다른 역작을 만들어 내나 봐. 극장에서 펑펑 울지 못하는 어떤 여자들은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물화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해. 그러고 보면 남자를 안다는 것! 이런 제목의 작품이 있어야 하는데, 정말 남자에 대해 그들의 거대한 특징을 여자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말야. 그런 작품들은 아마도 '여자를 안다는 것'보다 작품 사이즈는, 사이즈만 클 꺼야. 어떻게 내가 이걸 깨달았냐면 어느 아마추어의 습작을 읽었기 때문이야. 제목은 니키타를 안다는 것. 그 친구가 최근에 남긴 단문은 이랬어. 자기는 최근에 완벽하게 환시를 경험한다는 거야. 저 앞에서 어느 아주머니가 검정 가죽 장갑을 벗어서 손에 쥐고 걸어오는 걸 보면 완벽하게 몇 초 간 그 장갑이 처음에는 대형 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보인다는 거야. 완벽하게. 가까이 오면 장갑으로 보인데. 또 사거리 횡단보도에 신호 대기하는 어떤 중형 승용차를 보면 중후한 대형 세단으로 보인데. 그 완벽한 상시적 환시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다는 거야. 하긴 누구나 그렇자나. 글을 읽을 때 책을 빵으로 읽고, 말을 들을 때 밥을 여자로 듣고. 아이쿠 이런~ 흥분해서 얘기하다가 습관처럼 꼭 혼자 글쓰는 것처럼 넘겨짚으며 사람 벌 세워 놓고 길게 말한다니까. 못-말-려.」
「오 이런 미안하구나 얘들아. 말하다 삼천포로 빠져 버렸지 뭐야.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하는 걸로)」
극중 대화와 현실 대화의 다른 특이점 가운데 매우 중요한 하나는 바로 삼천포다! 현실에서는 여러 명이 대화를 나눌 때 생각보다 상당히 자주 삼천포로 빠진다. 하지만 극중에서는 좀처럼 그럴 여유가 없고 시간도 부족해서 무엇보다 만능 창작자 1인이 솔로 바이올린 독주를 시켰다가 테너 색소폰을 부르게도 했다가 그러다가도 무반주 비트박스 랩을 발성하게도 하고 그렇게 마음~대로 조율하고 중재하기 때문이다.
「음 그렇구나... 괜찮아. 얘기하다 보면 흔히들 그렇지 뭘 그래. 아무튼 지금껏 우리가 얘기했던 것이 내쪽에선 행복감으로 충만된 기분이야.」
「그말을 빼놓을 수 없지. 너네들은 천재야! 그대들은 어찌 그리 똑똑한가요.」
「티파티 괜찮았어, 나쁘지 않아, 정말 훌륭해, 브라보! 인생은 인생이란 멋지고 아름답고 즐겁게 그렇게만 살기에도─당연히 그렇게만 살 수는 없지만 최대로 그리 살 수 있다면 그래도 된다면─유한하지만 혼자 가기엔 너무 외로운 법인가봐. 사회적 동물이니까. 우린 모두 로빈슨 크루소니까. 짜식들 한방 먹이는데. 사람 감동시키는 방법을 알아. 뭘 좀 안다니까.」
「이 친구 멋진 말을 혼자 독점할려고 하는데. 즉답성과 끈기, 따로 또 같이, 대놓고 보기와 돌려 말하기, 남자와 여자(이건 아닌가), 직접성과 간접성 그리고 블링킹과 씽킹. '결국은 돈이야 돈' 이게 아니라 쭉 겪고 보니 알고 보니 살아 보니까 두마리 토끼는 결국엔 한마리였어. 아니야 이랬다 저랬다 해, 시시각각 그때 그때 다른가봐. 아무래도 이거 같아. 모두 생각하기 나름인가봐.」
「모두 너네 덕분이지. 우연과 행운과 호혜의 법칙이 도와준거야.」
그렇게 이야기가 일순간 멈추고 모두들 어안이 벙벙해진 순간 갑자기 집 안에 있는 모든 창문이 까맣게 빛이 차단되면서 초저온 살균에 노출된 것처럼 모두 얼음장 상태가 되었다. 분위기에 맞는 배경음악은 읽는 사람 개인적으로 상상하자.
「혹시... 이 집이 들리워져 공중에 떠서 배에 실리는 거 아냐? 아니면 애니메이션 Up (2009)처럼 집 위에 커다란 풍선들이 달려서 하늘 위로 계속 날아서 올라가는 걸까?」
정적 그리고 정적 또 정적. 말이 필요없는 시간이다.
불현듯 실내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면서 거실의 바깥 문이 열리자 모두들─케빈 혼자 빼놓고─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누구는 울고 누구는 웃고 누구는 발과 손과 엉덩이에 미지근한 땀을 흘리고 누구는 식겁하며 경악하는 소리를 외치고, 누구는 침을 한바가지를, 누군가는 얼굴의 콧잔등 위로는 극도의 공포를 보이며 콧잔등 아래로는 뜨뜨미지근하게 살짝 차가운 미소를 살며시 짓고 있다.
문이 슬로우 모션으로 쓰윽 열리면서 부드럽고 천천히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한 사람이 들어온다. 어라, 그런데 들어온 사람은, 그 사람은, 그 남작은 다름 아닌 케빈이었다. 남작? 공작에서 강등되었나 보다. 아니 남작이 더 높나, 잘 모르겠다. 싫어, 가르켜 주지마, 계속 모를 테야. 원래 초딩, 유아에서 초딩으로 갓 넘어가기 직전의 예비 초딩은 집에 아버지 회사 직원분들이 놀러오시면 누나에게 조용히 물어보게 되어 있다. 저기 콧수염 나신 분이 회사에서 아빠보다 더 높은 사람이냐고. 아빠가 더 높냐고. 그렇게 모두들 눈이 똥그래져 그들과 같이 앉아있던 처음의 케빈이 찬찬히 설명을 해준다.
「실은 저기 방금 들어오신 저분이 진짜 케빈이에요. 저는 방송 뭐뭐 위원회에서 수소문해 찾아낸 닮은 사람이구요.」
그들의 친구 진짜 케빈이 그 설명을 도와 이야기한다.
「사실 인터넷 시대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잖아. 그래서 TV 무슨 연합회던가 무슨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단체에서 기념 삼아 닮은 사람 찾아주기 컨테스트를 한다는 거야. 물론 내가 아는 거의 대부분의 지인들을 통해 반듯한 자필 추천장과 친구들 영상 편지와 (극소수지만) 팬들 응원 메시지를 모두 준비해서 다독이고 설득하고 설명하더라고. 괜찮길래, 실망을 안겨줄 수 없기에 기대를 져버릴 수 없기에 응한다고 했지. 헨리 제임스는 영국에서 40년간 살았음에도 완벽한 영국인을 창조해 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던 어느 작가는 그랬다고 하드라. 그들이 어떤 말을 해 주길 기대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난 대답만 한거지. 잔치상 다 차려져 있고 숫가락만 얹어주라는데 좋은 일인데 마다할 수 있나. 어때? 서프라이즈.. 괜찮았어? 짜식들 쫄기는 하핫. 짦은 시간이었지만 난 바깥에서 영상 화면으로 지켜보고 있었어. 어찌나 웃기던지. 야 저거 뭐야 누가 오줌 싼 거 아니야? 아니면 술인가? 설마 침은 아닐 테지. 아무튼 모두들 기분 풀어. 느껴봐. 뻥 터져야지 어~?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 타이밍 정말 한참 늦네, 느려 터지기는. 왜, 창문? 깜짝 속았구나 하하. 창문은 그냥 커튼 시스템일 뿐이야. 녀석들 의외로 싱겁단 말야~. 초딩보다 더 진솔하고 시골 처녀보다 훨씬 순진무구하며 옛날 사람들보다 훨씬 담백해. 영혼이 맑고 깨끗해. 정말 순수해. 아주 웃겨 푸하하하핫!」
그때 누가 비밀스럽게 리모콘을 눌렀는지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온다.
Oh-a oh
You were the first one
Oh-a oh
You were the last one
Video killed the radio star
Video killed the radio star
...
Video kill the Radio Star~♬
Video kill the Radio Star~♪
누가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록되지 않은 건 좋게 말하면, 좋게 표현하자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아 이건 누구 캐릭터의 말이겠구나 / 그 누구의 대사일 수도 있어 / 그냥 우리들 개개인의 의사를 대변한 거야 / 다른 독자의 수준을 높게 책정한 건 괜찮지만 내게는 좀 불친절한 처사로군.' 그렇지만 보통 다른 소설을 읽을 때도 정확히 누가 어떤 대사 치는지 다 알고 보는 사람이 또 실상 그렇게 많치는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영화 볼 때도 그러니까. 영화에서 스토리 엄청 꼬이고 몇 개로 나눠져. 그러면 대개는 그거 잘- 못 알아먹고 못 따라가고, 그냥 세부적인 거 포기하고 큰 흐름이나 다른 요소들에 집중하게 된다. 어쩌다 몇몇은 꿈나라로 떠나시지. 전문가들도 한 번에 대번에 아는 사람들, 전문가 중의 전문가,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많지 않다니까. 열에 아홉은 읽을 상황이 아니야. 또 열에 아홉은 드라마를 아예 안 봐, 내 스타일 아니라고, 시간도 없어. 열에 아홉은 책을 읽어도 누가 어떤 말하고 누가 어떤 말하는지 거의 구분 잘 못해. 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지. 그건 만든 사람 입장이니까. 그러므로 딱 빠지는 컨텐츠 만나면 오바해서 기뻐하고 즐거워 해도 돼. 그런 개연성 떨어지는 비판을 모두 모두 안고서 삶의 자세 자체가 언제라도 웃을 준비가 되어있는 독자님 1과 "자 한번 웃겨봐!"라는 뚱한 안색의 독자님 2의 작위와 지성을 의심할 수는 없으니 시간 분배도 일부러 생략했다. 안 될 것도 없잖아! 뭐타고 뭐타고 갈아타서 어떻게 어떻게 시간이 걸려서... 꼭 하루라는 일정 안에 다 집어 넣어야 된다는 제한도 없으니까. 아주 자유롭게!
완성도와 수준이 한~참 떨어지지만 살면서 위에 나온 저런 대사를 실제 말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당연히 없지. 듣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니까. 무엇보다 왜냐하면 어쩌다 한번은 몰라도 계속 그러면 사람들이 슬슬 피할 테니까. 단 최고의 배우들은 빼놓고. 그 양반들 암기력 끝내주겠군. 근사치는 쌔고 쌨어. 외우는 거 싫어해서 배우의 꿈을 포기하는 청소년들도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게 세상의 이치지만. 전에 대화체가 안 써지네, 그걸 잘 못하겠네, 정말 흔하고 쉬워보이지만 그게 어려운 거 같아 라고 했지만 이제 어렴풋이 이런 생각이 든다. 거창하게 깨달은 건 아니고. 영화에서 명대사가 잊혀지지 않듯이 소설에서는 주로 서술 부분에다 밑줄을 그었다는 사실! 종내 뽀송뽀송한 눈이 고요하게 쉬지 않고 한동안 내리듯이 심상이 종이로 옮겨지면서 마법을 일으키나봐. 요술램프가 없어도 원래 그런 것일 뿐이라며 귓속말을 속삭여 주는 연인처럼. (최고의) 인문-교양서도 거즘 서술체야. 이제 알겠네.
J는 마땅히 급한 일도 없었고, 달리 힘써 볼 사건도 없었으며 딱히 매달릴 사안 또한 없었다. 당연히 자금 사정 또한 그리 넉넉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큰 당첨금이 주어지는 복권을 정기적으로 그리고 즉흥적으로 덜 큰 당첨금이 걸린 즉석 복권을 사서 틀린 번호를 혼자 고치는 철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블로그와 소셜 네트워크를 둘러 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Notice라는 조그맣게 달린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친한 친구들 이야기 연재는 유감스레 송구스럽고 애석하지만 잠정적으로 중단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그것은 좀 얘기가 기니까 포스트로 따로 작성했습니다.' 라는 간단한 블로그 한 줄 뉴스를 (그것을 누가 본다고) 작성한 후에 다음과 같은 포스트를 블로그에 업데이트했다. 그가 그 포스트를 의자에 앉자 마자 단번에 뚝딱 써내려가지는 못했고 몇 번의 퇴고와 수십 번의 업데이트와 수백 번의 메모 작성에 힘입어 겨우 작성했다. 그 포스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목: 나는 글이 안 써질 때 어떻게 하는가?
최근에 읽은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의 어느 소설 첫 도입부 감동이 잊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무난한 험담으로 시작하여 그래프 기울기를 완만히 올렸으면 어땠을까 라면서 틈나면 사람을 추측하게 만드는 가슴 두근거리는 콩닥거리는 그런 도입부. 그래서 그 처음 때문에, 그 청량한 음조 때문에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오토매틱으로 1단 2단 3단 올라가지 않고 기어 비율이 오류난 건지도 모른다. 몰래 딱 그런 부분들만 훔쳐다가, 그런 데이터들을 모아서 몇 년 작업한다면 약간은 그렇게 영향 받고 착상을 얻고 발표되는 2000년 전후의 무수히 많은 작품들이나 3류 소설들과는─밀란 쿤데라가 아니라 '그에게는 암말도 못하면서'라는 말을 기억하자, 3류면 어떤가, 그 타이틀만으로 남에게 충분히 이타적일 수 있는데 타이틀만 해도 어디야, 누군가에겐 3류가 누군가에게는 초특급이거늘─다른 1900년 전후 소설의 느낌에 얼마 만큼은 살며시라도 근접하여 그저 변두리에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상상하고 예측하고 마음에 작은 불씨를 번갯불 같은 (쨉이 생략된 급작스런) 어퍼컷을 날리는 단 몇, 단 몇 줄의 문장들. 하지만 이건 글이 잘 써지는 예술가들에 해당하는 얘기고 보통은 이렇게 글이 안 써진다고 고요 속 외침이나 소란스럽게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알고 보면 '글이 안 써진다'는 주제만 가지고도 세계 최고로 물고 늘어지면 이야기가 나오는 사례도 있다. 극히 희박하긴 하지만 있긴 있다. 그것을 역으로 과장하면 '나는 왜 이렇게 글이 잘 써지지?' 같은 주제만 가지고도 "나는 어떻게 일하는가"라는 직접 (현재) 시제형 의문문이 제목인 인문-교양서로, "나는 어떻게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나? (스티브 헬리)" 같은 회상 (과거) 시제형 의문문으로 쓰인 제목의 소설로 만들어질 수 있다. 이 주제만 가지고도 즉 평범한 보통 사람이 한순간에 유명한 작가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럼 너는 정녕 대체 어떤 유형의 소설을 쓰고 싶은 것인게냐? 바로 이런 글. 많이도 안 바래. 그냥 남들 다 아는 거, 사람들 마음 속으로 모두 생각하는 것, 그들이 자주 겪는 것, 인간의 공통된 감정 그것, 사람이라면 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생각하고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고 깨닫는 것.
캥거루/D.H. 로렌스
p.1-64 서민 출신인 서머즈에게는 서민 특유의 이심전심의 본능이 있었다. 이웃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p.1-65 이야기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이것이 상류사회의 사교의 원칙이다. 한편 진짜 서민의 경우는 반대로 이야기되지 않는 것만이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p.1-67 그 모습이 빅토리아를 매료시켰다... 빅토리아는 황홀해 하고 있다... 여자들에게 있어 서머즈가 아주 매력적인 것은 누구와도 결코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신경에는 친구라는 것은 속임수 냄새가 나서 역겨운 것이다. p.2-15 빅토리아는 자크와 정반대였다. 알고 싶어, 보고 싶어, 이해하고 싶어서 애쓰고 있는 의식의 권화였다. 인색을 응시하고 그 안쪽을 그 속의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어. 기선의 여객 담당자, 호텔의 메이드,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 간호사 등 무엇이든 다 해 보고 싶어, 인생의 신비로움에 접할 수 있다면...
딱 이 느낌으로만 이런 문장으로 시작해서 이런 문장으로 이어지고 이런 문장으로만 계속 나아가고 이런 문장들로만 완벽하게─완벽이란 말은 절대 자주 사용되면 서운한 법이다. 바로 이런 때 사용되어야 하니까─구성되며 이런 문장으로 끝맺는 것. 많이 바라는 거 아니잖아. 그냥 갈 때까지 가보는 것. 절대 많이 원대한 걸 바라는 게 아니라고. 별로 어려운 글도 아니야, 사람들이 몰랐던 내용도 어른들이 놀랄 만한 문장도 어려운 얘기도 전혀 아니야, 맞자나! 그리스 로마 신화─초딩이 혹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하신다면 그분께 한번 여쭙고 싶다. 다른데서는 오직, 나만, 하나 이러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신들이 물 반 고기 반으로 나오니까 좋아하냐고? 여사, 숙녀, 마담 또는 어른 남자분이 혹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하신다면, 사용하는 하고 싶은 그저 일상적인 용품이 Hermès처럼 그 이름이니까 결코 싫어하지는 않느냐고? 남이 아닌 자기 가슴? 가슴에 손을 얻고 답해주라고. 다시 한 번 까놓고 그대에게 묻는다. 이 세상 모든 철학이나 종교나 각계 인사 유명인들이 당신 말을 듣는다면 당신 글을 읽는다면 당신이 발표한 책이 대박을 터트릴 거라면 만일 그렇다면, 범신론을 얘기하겠나 하나에 대해서만 아모스 오즈보다도 더 헤르만 헤세보다도 더 앙드레 지드보다도 더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와 비슷하리만치 성서보다도 더 언제까지나 그 얘기만 하고 또 하고 밑도 끝도 없이 계속하겠나─적당함은 괜찮아. 좋아. 그래─아니면 왜 세상이 오른손잡이 위주냐 왜 남성 위주냐고 하겠나 신과학론을 주장하겠나?─에 청력의 신이나 독심술의 신이 있나? 몰라서 그대에게 물어보는 것은 아니고 생각이 아주 잠시 나질 않아서... "많이도 안 바래? 음 참 많이도 안 바란다. 소망 한번 참 소박하다. 늬가 진짜 어떤 3류의 거침없는 말발에 한번 거칠게 휘둘려 봐야 정신을 차리지, 아휴 이걸 그냥..." 옛날에는 꿈에도 몰랐다. 이런 글들을 쓰며 살 줄이야.
규칙적으로, 도저히 규칙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규칙적으로 곡을 쓰고 규칙적으로 예술을 연기하는 사람처럼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 영감을 얻으려면 무작정 기다리기만 해야 하나, 그 풀리는 패턴이 상당히 정형화되었을 텐데 왜 방정식의 공식이 안 먹히는지, 그 상대성 원리가 어떻게 바뀌고 변했는지, 왜 하필 지금인지, 왜 약발이 일시적으로─그랬다면, 그렇다면─떨어졌는지, 왜 단물이 빠졌는지, 어떻게 하면 수월하게 잘 풀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 하다가 존 파울즈의 '나의 마지막 장편 소설' 처럼 아무 쓸모 없는 단상들을, 자신이 써보지 않은 쓸 수 없는 문구들이나─예를 들면 관심사와 무관심이 뭐뭐한, 기묘하게 반투명한 표정, 틀리고 틀리고 틀린 것이었다─몰랐던 중요한 상식들을─예를 들면 이탈리아를 먼저 보고 유럽을 둘러 보면 시시해 보일 수 있으니 그 반대로 둘러보라던 괴테 아버지의 말이나 유럽은 아침이 괜찮은데 호주는 해질녁이 멋지다는 서머즈의 대사들을─일단 기록하고 또 기록하고 그것을 반복하다 보면 정체는 알 수 없겠지만 뭔가 나타나지 않을까, 아마추어니까 부담이 없어 라면서 그 의지를 놓아버리지만 않다 보면 어떻게 형언하기 곤란하고 불편한 정말 이상한 소소한 감정들을 어떻게든 다듬고 고치고 짜맞추다 보면─세상에는 이거 딱 하나만 잘(?) 하는 재주를 지닌 사람들도 있다. 많다. 널렸다─대충이나마 연재물이 나오고, 그리하여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뭔 말도 안 되는 글을 쓰고 있어 / 뭔 말 같지도 않은 걸 가지고 이거 뭐하는 짓이야 / 아휴 증말 뭔 헛소리를 또 그 얘기야 / 놀고 있네~ 이런 머저리 같은 놈" 같은 딱 원하는 답을 얻게 된다. 때문에 이렇게 단어나 문법이나 수사 어구를 기록하여 다음 이야기의 착상을 얻는 방법은 쉽게 말해 극히 약간 유치한 초보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한 작품을 몇 년 또는 몇 십년 개작하고 고치고 다듬고 하면서 그 누군가 그분들께서 그 장구한 기간 동안 무얼 하시겠나.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 신동을 오랜 기간 가르친 스승들이 제자들을 떠나 보낼 때 하는 말씀이 그동안 배웠던 익혔던 연습했던 들었던 모든 걸 잊으라는 장면과 정확히 반대쪽에서 벌 서고 있는 어떤 인상과 몸짓이 보여진다.
여행을 떠나거나 낚시를 하거나 연애를 한다 같은 세련된 방법이 아닌 이것이 글이 안 써질 때 필자가 기대는 첫째 방법이고, 둘째는 현대 소설과 통속 소설을 읽는 것이다. 어차피 완독하는 작품들이 별로 없지만 특히나 글이 안 써질 때는 젊은 친구들이 즐겨 읽거나 대중이 좋아하는 대부분의 근대, 현대 작품들을 펼쳐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착상이 떠오르는 삘을 받거나 딱히 영감이 떠오르지 않더래도 누군가가 끝까지 못 읽는 읽을 수 없는 소설의 공통점을 보게 된다. 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이렇다. 너무 쉽다. 몇 년에 나는 뭐뭐 했다, 몇 살 때 나는 어디 있었다, 누구를 어떻게 만났고 알았고 같이 무엇을 했고, 어떤 대화를 나눴으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흔히들 말하는 사랑과 가까운 듯 했고 왜 그랬었고 그 다음에 계속 과거형. (한 번 시험 삼아 이걸 따라 해 보시라. 나는 옛날에 무엇을 했다 라면서) 1911년 런던 메이페어에 근사한 주택을 구입한다 1915년 정보국에 발탁되어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첩보 활동을 한다 1917년 정보국의 중대 비밀 임무를 맡고 러시아에 간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의 고장에 가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무리한 부탁을 맡은 것이다 1939년 요트로 프랑스에서 탈출을 기도 1940년 카누를 타고 영국으로 탈출. 약 100년 전 쯤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명작가의 연보와도 같이 몇 년 뭐뭐, 몇 년 뭐뭐 그리고 브랜드 이름들 또 그리고 한 소설을 통틀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Top 10, 가장 많이 나오는 명사와 동사 Top 10,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면 Top 10, 자극적인 말초적인 단어나 표현 Top 10 그렇게 회상조의 연속. 이 경우엔 소설보다는 그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작가 노트, 역자 후기, 심사위원의 말, 심사평, 수상 소감등등. 조롱하거나 비꼬거나 빈정대거나 가치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모파상 따라하기 초급 단계─정말 그렇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 "이걸 쓰는 동안 매일 아침 죽과 삶은 달걀을 먹었다. 그게 이제서야 기억이 난다... 어느 날인가 새벽 맥모닝을 먹고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인 후 이걸 쓰기 시작했다. 그게 조금 먼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희곡을 좋아하는데 이걸 읽고 나니 한 번 더 읽고 싶어졌다. 셰익스피어나 이오네스코도. 다시 전부 다 읽고 싶다." 삶이란 원래 이렇게 단편적이다. 그게 정상이고 이걸 엮는 건 기술이다.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어떤 짜릿한 소설은 어떻게 된 일인지 신기하게도 선정성과 정확히 일치하고, 선정성에 반비례되는 신물나게 말하는 재수없게 유난 떠는 어떤 고급스러움에도 정확히 역대응한다. 오 이런 기분 뭐지, 그냥 나이드심인가. 그런 화사한 글을 읽으면 잔상이 오래 남아 한동안 뭘 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듯 한다. 물론 십대는 다소 다르겠지만. 십대에는 그런 글도 읽었다. 하이네, 자크 라캉, 하이데커, 브라우닝, 칼 포퍼, 데카르트, 프로이트, 헤겔, 앨런 블룸, 셸리, 바이런, 로트레아몽 뭐 뭐 뭐와 함께 그냥 닥치는 대로. 무식하게 뭔 말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공부하기 싫으니까 뭔가는 해야 하니까 그랬지. 너트에 볼트를 찾아서 맞추고 끼우고 조이고 물총을 쏘고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지금은 못 읽어. 지금 이 시간에 이 군번에 그걸 어떻게 읽을 수 있어. 그런 이야기는 공구를 펼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 는 직접 가르쳐주지 않고 시작은 어쩌다 우연히 항상 어쩌다 우연히 계속 어쩌다 우연히 끝까지 어쩌다 우연히, (볼트를) 넣다 뺐다 넣다 뺐다 (너트로) 들어왔다 나갔다 들어왔다 나갔다, 언뜻 스치듯 봤는데 왕자 표식이 보여 王자 복근이, 오 신이시여 감사하나이다 이로써 왜 그동안 제 삶이 그토록 고난의 연속이었는지 모두 환하게 변증적으로 설명이 되고 이제 앞으로 나에게 어떤 찬란한 인생이 펼쳐질지 기대되나이다 오오 신이시여 지금까지 저는 기도를 전혀 해보지 않았지만 해봤어도 지금처럼 진심이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저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오오 이제 이제는 맑게 개인 날이 흐려도 기분이 좋은 날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행복과 사랑과 낭만? 뭐 이런 얘기를 해볼까, 하다보니 빠지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이런 삐──!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뭔가 진취적이고 한걸음 한걸음 발전하는 측면이 있어야 되건만, 이건 뭐 아흐 이런 젠장! 단, 소설의 경우에만 어떤 삶을 살았던 사람의 경우에만 한 개인은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어느 정도 비슷하다. 더군다나 어른이 되기 전에는 더욱, 공감각이 예민한 자는 더더욱. 라디오 다음에 TV 다음에 인터넷 다음에 다시, 1차적인 어떤 수공업으로, 그건, 절대, 복고가 아니다. 전문가가 만드는 드라마와 영화와 일반인이 만드는 동영상 그것을 매체만 글로 바꾸는 일은 예술보다 상업에만 치우친 건축이요 무용이다. 경제와 여러 학문은 일정 영역을 공유하지만 문학과 상업이 동일한 건 아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당연한 얘기를 뭣 하러, 그러게 말이야. 이제는 또는 이런 때는 꼰대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것인가? 어쩌겠나 정말 그런데 다른 일에 계속 영향을 미치는데 일이 도무지 손에 잡히질 않는데, 무엇보다도 더 이상 10대가 아님이 분명한데. 잔상? 오 부끄러워. 지금 쯤 무척 혼란스러울 거야. 아 그대는 아니야.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글을 조금 읽는다면 그날 밤에는 정말 무서운 기분 꿀꿀한 악몽을 꾸게 된다. 누구나 영화를 보는 건 괜찮지만 실제 그 주인공이 되는 건 글쎄 하는 게 있잖아. 13일의 금요일 뭐 뭐 뭐, 영화 제목은 독자들이 전문가다.
거의 모든 사람들의 모든 일에 대한 처음이 각별하듯이 예술계에서도 작가들의 첫 작품이 그 가운데 빠질 수 없다. 찰스 디킨스는 후기 작품들이 압권이야, 나는 E.M. 포스터나 토마스 만은 중반기 글이 마음에 들어... 이처럼 아닌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단연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나중 작품의 개별 주인공들에 대해서도 무수히 어떤 처음이 다뤄진다. 인문-교양서에서는 이걸 비즈니스 업계의 진입 장벽이라고도 한다. 그래프 딱 짠. 픽션을 통해 남의 처음을 끝없이 알아보고 탐구해 나가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경험, 세계에서 단 하나 뿐인 자신의 경험도 충분히 그 픽션 만큼의 값어치가 있다.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언제나 예술로 승화되지 않은 무한대의 처음들이 있다. 극히 희박하게 아닌 경우도 있지만 남자의 어떤 처음은 대개 성공한다. 그리고 음 그렇다. 처음은 대개 고정되어 있지만 끝은 항상 유동적이다. 끝은 지금이고 지금은 항상 끝이다. 움직이는 끝, 뭔지 잘 모르는 끝, 왠지 머릿 속을 잠깐 텅비게 만드는 단어 끝, 어딘지 모르게 미심쩍은 느낌의 말 끝, 허망함과 신비함과 찬란함을 모두 내포하는 음운 끝 그 단어로 나와 나─옛날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어떻다─남과 나를 비교해 보는 색다름의 선물을 안겨주는 그 친절함이라니. 그러니까, 그래서 당신은 먼 미래에 바로 지금을 회상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나중의 어떤 회상으로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로 탄생할 지금의 현재를 아름답게 만들어 보겠다는 것인가? 거의 비슷하지만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아니 확실히 있다. 지금 생활에 따라 당신이 미래에 쓸 수 있는 소설의 장르와 방식과 스타일이 달라질 것이다. 그에 따라 제한적으로 특정 기법을 구사하지 못할 지도 모르고 '머머 했었다'는─나는 사랑을 아직 몰라, 나는 사랑을 알아도 잘 몰라 같은─낭만적인 과거형 연애 소설이 아닌 '머머할 것이다' 라는 이상한 미래형 점쟁이 말발식 예언적 문체를 선보일지도 모른다. 그럴 것이다.
젊은 친구여, 무작정 얼굴도 모르고 대뜸 친구라 불러서 미안하지만 멋진 소설을 쓰고 싶으신가? 그렇다면 그저 지금을 열심히 살면 된다. 너무 간단하지만 그렇지만 적어도 브랜드 슬로건 보다는 좀 덜 인색하다. 그러므로 그대가 삶을 지금을 헛되이 살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이상한 논리로 자명해진다.
고고한 명대사는 원래 이렇게 탄생하는 것일까. 정답은 불투명하다. 명대사 다음에 "XX아 사랑해" 카피라이트 다음에 나를 잊지 말아요 다음에 뒷모습 다음에 그리고 다시 명대사, 절대 뒤돌아 보지마! 무지하게 우려 먹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안 질려, 거 참 희한하고 신기한 일일세. 안 질려, 많이들 소박한 사람들에게 꿈은 커도 된다고 말하니까, 정말 많이 잡아서 초등 1학년 수에 해당하는 읽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쓰는 사람은.
「정말 뻔질나게도 반복하는군.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그 얘기야. 그럼 읽고 있는 난 뭐야? 혹 해서 표 사고 객석에 앉아서 졸다 보다, 졸다 보다, 졸다 깜짝 놀라 '내게 다시 돌아와줘' 라면서 잠꼬대 대사를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면서 깨어나기야? 남자에게 막연히 신사의 품격을 바라는지 그저 매끈하고 정갈한 네일케어를 권유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어리버리한 양반 진짜 정체가 뭐야 정체가. 아제, 당신 설마 무슨 음지에서만 활동하는 미스테리 대필 작가 뭐 이런거야? 소설을 쓰라니까 영화찍고 있어.블로그 쓰고 있어. (와, 어떻게.. 이렇게 발라버리냐. 그거 하나는 놀라워. 인정.」
「네일 케어? 음 네일 케어. 입담이 과격하고, 손이 투박하며 손톱이 거칠고, 품행도 거칠고, 밥도 빨리 먹고, 사랑은 잠시 인생은 으쌰으쌰 때문인지 또는 여자들의 어떤 완곡한 그래프 기울기도 있는데 남친의 덤벙대고 서두르고, 급하고, 피부 거칠고, 무드 없고, 말발 타율 답 안 나오고, 이 걱정 저 걱정에 담배 냄새 술 냄새 그리고 손톱 발톱 손끝이 까칠까칠 꺼끌꺼글 뾰족뾰족하니 포옹을 넘어서는 육체적 사랑이 처음에 초반에 좋을 리가 없지. 그런데 소설 쓰기는, 소설 읽기는, 소설 취향은.. 음 그래. 이런 뉴스 헤드라인, 틈틈히 어딘가에서 옛날에나 언제나 계속 쓰일 꺼야. 네일 샵 유부남 고객 폭발적 증가, 왜?」
「나도 때로는 밥을 천천히 먹어. 진짜 특수 부대 나온 친구들 앞에서는 암말도 못하지만 분위기 봐서 거들먹거리고 그 때 생각하며 나도 식사를 우아하게 할 줄 알아. 그렇게 식사를 천천히 할 때 누가 방해하면 뭔 일 있냐 그러면 바로 버럭이야. 객관적으로 봐도 촌닭도 그런 촌닭이 없지. 나도 잘 알아. 반면 여자들은 유리 섬유로 만들어진 다루기 어려운 파란 장미나 악기와 흡사해.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연습을 해야만 예쁜 그래프 장기 곡선이 나오는. 어쩌면 태반은 그런 그래프 선이 나오지 않으니까 밥을 먹듯이, 옷을 입듯이, 잠을 자듯이, 출근 하듯이 함께-해야 한다는 굴레 때문에 악기 취미를 그만둘 꺼야. 아마 99%야. 깊이 들어가면 같은 얘기지만 어차피 용불용설이지만 화초 키우기나 농사처럼 생명력의 유지나 섬세함의 극치라는 관점─1.어딜 쳐다봐 눈 안 깔어 2.날 걸리버 보는 듯 하는데 익숙하지만 왠지 좋아 3.내게.. 반했나?─으로 봤을 때 악기 연주는 수영, 자전거 타기, 저글링, 당구, 스키, 놀기와는 약간 성격이 달라. 먹기, 영화 감상, 읽기, 쓰기, 낚기등 엄청 많겠다. 그런데 여자가 바로 딱 그런 꽈라니까. 그만두는 편이 나가떨어지는 쪽이 남자라면 여자는 악기야.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팬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양들. 처음엔 좋지만 중간도 괜찮지만 이거 사람 아니 남자 환장할 노릇이지! 솔직히 애송이도 아니고 견적 안 나오는 일이야. 그런데 어쩌겠어 이게 인생인데. 몇몇 남자는 안 그러는데 또 몇몇 남자는 나는 내가 봐도 완전 왕재수 응애응애 소장파(?) ♬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 갓난아기야. 만일 유부남이라면 의무 방어전이 싫은 챔피언이지. 좋을 때도 있는데 그땐 또 이런 말 하게 만들어. "지 피곤하면 안 할라 그래. 내가, 내가 원하는데." 카더라~ 인지는 모르겠지만 옛날 옛적에 동방의 어딘가에 있었데. 그런 글 위키피디아에서 읽었어. 삼천궁녀 으하하하하하. 그것도 재미있었는데 나중에 다른 걸 발견했지, 사만궁녀. 그 때 표정이란. 뭐야 그러고 보니 네로 황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운 역사상 인물인데. 아 복잡해. 나라고 남의 싫은 표정과 꺼리는 기색을 감지 못하겠어 아니면 그런 게 보이는데 좋겠어? 남자가 어떻고 여자가 어떻고 보다 극명하게 그 차이를 잘 알아야만 인생이라는 장기전에 현명하게 대처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거야. 그 교훈을 깨우쳐 주려고 내가 일부러 더 그러는 거야. 나름 큰 뜻이 있는 거지. 왜 "처음"이 길게 다뤄 이야기되겠어, 피임도 중요하고 어쩌다가 신비스러운 무한한 가능성의 베일에 싸인 인생이 그저 그런 뻔한 인생길로 뒤바뀔 수도 있으니 하는 말이겠지. 사근사근한 목소리는 아니니까 알아서 들어줘. 전초전은 전야제로, 장기전은 기나긴 축제로. 남편(남자친구나 애인)과 아내라는 단어의 느낌과 엄마와 아빠라는 말의 어감이 다르잖아? 유명 축구선수나 발레리나의 발이나 어느 전문가의 손을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면 감동 먹는데 까까이서 어머니 아버지의 손과 발만 봐도 돼. 인생은 짦고 예술은 길다지만 멀리 길게 봐야지, 인생 자체가 예술인데. 뭐야 이거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맙소사. 이 블로그 양반 터프가이 모양새 완전 구기고 있군. 소설이나 영화에서 일장연설 횡설수설 대사가 끼어들면 매우 훌륭하지 않다면야 찌푸둥 하겠지만 이건 뭐랄까, 꼭 희대의 사기꾼이 뜬구름 잡는 언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장기간에 걸쳐 (합법적으로) 축적한 거액의 돈다발들을 알 수 없는 구덩이로 모조리 몽땅 빠트리는 것처럼 블로그 포스트로 포장하니 이거 원 교묘한 건지 우낀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래 무슨 얘기인지 알아. 잘 안단 말이야. 그렇게 타고 나서 수컷들끼리 그렇게 평생을 어울리는데 안 그러면 이상하지. 수컷들은 모이면 어쩔 수 없어, 일단 으쌰으쌰 하고 계속 으쌰으쌰 해야 돼. 난 싫은데 그만 하려 하는데 모이면 더 한다니까, 그럼. 왜 여자들은 그리 까다롭고 섬세하고 복잡해? 왜 그리 세상 일은 어려운거야. 그런데, 시원섭섭하지만 그런데 뭐야 이거 내 얘기야? 이런 삐─ 삐─ 삐─ 이런 거 안 할 꺼야. 그러나 아예 안 하지도 않을 꺼야. 다만 좀 덜 하고 그걸로 뻥뻥 터트릴 꺼야. 화내지 말고 대인배처럼 웃을 거야. 내 삶은 내 소관이고 내 인생이면서 동시에 온전히 나의 것만도 아니야. 칭송받겠어. 누군가 환호해줬으면 좋겠어. 나도 인기있는 남자가 되고 싶단 말야. 평생 돈과 싸우지 않고 거시 경제와 친해지겠어. 교양을 갖추고 성숙해지고 좀 더 나아질 테야. 그냥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웰빙에 중간만 가면 돼. 속전속결도 묘미가 있지만 주위 사람들을 보든 TV나 스크린을 보든 인생이나 연애나 무엇이든 결국 장기전이 드라마틱 하고 더 멋지단 말야. 아~ 남자의 세상은 곧 정글인데 이 세상도 그러한데, 남자의 삶은 정말 고달프고도 침울하며 험난하도다! Volkswagen 주식 팔아서 BMW나 한 대 살까, 자동차 회사들 타회사 주식 보유량도 거미줄처럼 엉켜 있는데 중고차 값 생각 좀 해 보고. 그런데 말이야, 내 친구 불멸의 카사노바, 밥 사주고 커피 사주고 술 사주고 같이 좋은데도 가고 그랬는데 왜 아직까지 내게 그 마법의 비법을 가르쳐 주질 않는 거야?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 특수 기술을 전수해 줄 진정한 스승, 새로운 고수를 애타게 찾아야 하나? 안 되겠어. 지존을 찾아 헤맬 필요없이 내가 스스로 불멸의 카사노바 아니 불멸의 쾌남이 되야겠어. 나이키 슬로건으로 한 번 호응해줘. 내가 가장 잘 하는 무모한 도전, 독학을 꾸준하게 계속 할 테니. 아~ 맞다. 오케이, 깨달았어! 의외로 쉽네. 바로 이거야. 모든 걸 반대로 하는 반대로 맨이 되는거야. 남자와 여자는 왜 정반대냐, 왜 그럴까 라고 울컥할 필요 없어, 오히려 잘 된 거야. 친구들과 으쌰으쌰 할 때는 그대로 원래대로 하고, 이성을 마주할 때는 개성을 유지하면서 상황을 봐 가면서 정반대로 하는 거야, 이 쉬운 걸 왜 그동안 몰랐지? 기분 끝짱이야. 누구처럼 돈이 많지 않아도, 누구처럼 잘 생기지 않아도, 누구처럼 말을 잘하지 않아도, 누구처럼 천재적인 예술적인 다재다능함을 갖추지 않아도 돼.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라는 말발 업그레이드 부흥회에 쫓아다니지 않아도 돼. 카사노바? 아니야. 텐미닛? 애완견 정식 이름 또는 별명일 뿐이야. 만인의 연인도 아니야, 그저 정상적인 연애나 사랑 그거 충분히 가능한 얘기야. 로맨틱한 백허그 부럽지 않아. 지금까지는 무조건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깨닫고 말하는 게 제일 중요했어. 앞으로는 그것과 함께 남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깨닫고 말하는 걸 예측하고 보고 듣고 읽고 이걸 정말 중요하게 생각할 거야. 때로는 아주 가끔씩만 상대의 마음을 떠보고 말을 돌리겠어. 오 간단하네!」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길다랗게 뭔가 있어 보이고 뭔가 중요해 보이는 길다란 말을 대사를 굉장히 진중한 분위기에서 멋지게 말해. 그런데 말이야, 현실에서 이렇게 이 정도의 또는 이것보다 훨씬 한 100배쯤 1000배쯤 뻑~하고 넘아가게 멋진 말을 하는 걸 실제 본 사람이 있으면 내가 이뻐해줄께. 그러니까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가 재미있는 것이고, 뉴스나 인문-교양서나 다큐멘터리와 함께 그 시장도 존재하는 거야. 오 뭐야 이거, 나 반대로 맨이 이런 걸 생각해낼 줄이야. 와우 뭐야 이거. 오 정말 들린다 그 말.」
「와, 멋지다~」 그렇지만 뭐랄까······ 살짝 불완전하다고나 할까. 더 좋은 얘기를 해 줄래야 해 줄 수가 없다.
'첫눈에 반한다'는 태어나서 절대 믿지 않았던 믿을 수 없었던 신념? 조금은 상업적인 표어를 깨트린 1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미녀 또는 완전 백발 노신사가 고급스런 베레모를 쓰고 비싼 오픈카를 멋지게 몰고 가는 모습을 보고 "Get the Car!"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아가씨를 보고 그림을 그려서 아~주 손쉽게 이성을 꼬시는 좀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남자를 보고 "어? 나도 그림 그려야겠다. 그 무엇보다 이게 제일 급한 일이야. (인생이란 마법을 이해하기 위해서)" 공연장에 갔는데 기타리스트의 솔로 연주에 언니들 소리 지르고 미치고 난리야, 저쪽에서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왠 속옷을 들고 누군가는 머리 위로 돌리고 흔들거나 무대로 던지고 아주 웃겨 "이런 젠장~ 내일 당장 나도 기타 배워야지. (삶의 공허함을 메우고 권태를 물리치고 미친 사랑이 기다리니까)" 텔레비젼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 한 명의 멀티 직업으로 나오는 특파원, 작가, 운동화 디자이너, 세계 3대 자동차 실내 디자이너, (진짜 전문) 탐험가 완전 멋져 보여 "카페 사장? 때려치워. 그건 뭘 몰랐을 때 얘기였어. 이제 내 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영화나 드라마 볼 때마다 매번 꿈이 바뀐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 없어)"
책을 읽으면서 밑줄 또 밑줄 그리고 계속 밑줄. 소설을 보면서 명사, 동사, 형용사, 감탄사, 수사적인 표현 그리고 고품격 어법 "아 나도 이런 문구를 쓰고 싶다. 사용하고자 한다. 그럴 수 있다면. 솜씨나 의식까지는 아니고 얄팍하게 차용과 모방과 그 무엇하기. 사람들 일부는 많이들 자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이 세상은 특별하다.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있다. 그러므로 나도 덩달아 가끔 특별하다고 혼자, 대화를 나눌 친구가 있다면 같이 그렇게 카페에서 소근거린다, 집에서 조용히 생각한다, 사람의 비개인성에 대해서." 만일 그 일이 숙명과 운수와 예감의 도움을 받지 못할지언정, 멀지 않아 단숨에 포기할 게 거즘 확실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거 다 뻥이고 구라고 설정이고 허세에 헛된 기대며 실망할 단꿈일 뿐이라며 투덜거리고 자신을 스스로 다독거릴지라도. 독학을 위해 의욕적으로 파고 들어 연구하던 책이 (점보 사이즈) 한트럭이었던 것처럼.
토니오 크뢰거/토마스 만
이 감정이 대체 무엇일까?... 한심한 모습으로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을 때... 나를 비웃겠지? 그래, 그럴 거야. 넌 당연히 그럴 거야! 설사 내가 혼자서 교향곡을 아홉개나 작곡하고,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쓰고,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고 하더라도 너에겐 영원히 나를 비웃을 권리가 있어.
어느 날, 어느 하루 그대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날, 하루 1가지 착한 일 하기 룰을 지킨 날, 금연이나 금주 며칠째, 술 회사 또는 담배 회사 주식을 처음 산 날, 생애 처음으로 별똥별을 본 날, 그저 아무일 없이 당신 혼자서 온종일 거리를 정처 없이 싸돌아 다닌 외로운 당신 생일날, 다시 언젠가 천동설이나 지구 내계 미지인 생존설이 대두되어 가슴을 뻥 뚫어주는 신기한 일이 발생할 것만 같은, 그렇게 기분 이상한 날 당신이 길을 가고 있는데 누군가 당신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전직 배구선수로 활약했을 법한 액션으로─빡- 정통으로 후려치는 것과 동시에 뭐라 뭐라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반가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들이댄 후, 고개를 돌리는 당신과 그가 서로 마주보는 순간의 그 생경함!
그것을 직접 경험한 사람은 대부분 드물고 대개는 코메디 방송으로 삶의 나이와 경험이 그러길 원하지 않을지라도 어쩔 수 없이 축척되는 동안 여러 번 보게 된다. 이것을 흔한 공통의 유머 코드라고 한다. 남녀노소, 동서고금 어떤데 갔다 놓아도 대박은 아니지만 안전하면서 아주 작게는 웃길 수 있는 정도의.
이런 유머만을 모아서 방송하는 TV 코메디 프로그램을 인문-교양서로 비유할 수 있다면, 그래도 된다면, 그런 웃기는 장면이 간혹 예상치 못하고 불확실하게 듬성듬성 나오는 방식을 소설로 또는 영화로, 드라마로 갖다 붙일 수 있다.
주변에서 보면 평소에 잘 웃지도 않고 맨날 무게만 잡거나, 심각하고 어려운 얘기만 하거나 날이면 날마다 작업 얘기만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분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중급 이상의 처세술이 필요하다. 또는 똑같이 행동하거나 아예 듣기만 하는 방법도 있다. 이와 같은 극명함의 건너편에는 시도 때도 없이 무조건 아무 말만 하면 항상 웃는 실없이 웃기만 하는 가짜 웃음 효과음을 트는 코메디 방송이 있다. 가짜 웃음도, 가짜 웃음 소리를 듣는 것도 또 평소에 유하고 웃기고 하이-개그 센스를 아는 사람과 가까이만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고 하지만.
자~, 자아~ 언제 웃길 줄 모르는, 웃기는 커녕 화내고 얼굴을 찡그리게도 만들었다가 눈을 똥그랗게, 고개를 갸웃, 엉덩이에 땀을, 종아리에 힘을, 저거저거 나중 따라해야겠다고 두뇌에 생동감을 주다가, 생기를 얻고 감동도 느끼며 삘을 받다가 그러다가 갑자기, 갑자기 웃겨! 이건 뭔가? 이건 뭐랑 닮았을까? 바로 중독에 대해 둘째 가라면 서러울 낚시와 도박과 닮았다. 그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 언제 잭팟을 터트릴지 모르는 기대감과 잔잔하게 밑바닥에 납짝하게 엎드려 있는 준비된 흥분, 그런 어떤 기분들.
그건 그렇고 이 얘기를 왜 했을까. 1.이번 챕터 뒷부분에 나오는 카더라 설명에 대한 밑밥을 위해서 2.당연히 글이 안 써지니까 했을 것이다. 꼬박꼬박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악마의 블럭 현상. 글쓴이는 간혹 글이 잘 안 써진다, 어쩌다 얻어 걸리듯 가끔 써진다, 게다가 정작 독서량도 따지고 보면 얼마 안된다, 독자는 천재다, 일반인은 행복해야 한다, 한다고 했지만 띄운다고 띄우지만 피차 부담감은 덜어야 하나 보다.
J라는 이니셜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어딘가로 사라졌다. 감쪽같이! 숟가락을 휘는 염력을 살포시 넘어서는 지상 최대의 마술처럼. 전광석화와 같이, 희랍 신화처럼, 신출귀몰하게. 그리고 그리고 마침내 2인칭이 돌아왔다. 저저저 앞에서 얘기한 2인칭 작법을 시도한다면 당신은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 치운 유명 작가들처럼 글을 쓰고 싶어할 것이다. 뭐 고민할 필요없이, 항상 서재 안에서만 또는 기괴한 복장을 입은 상태로 타자기를 두드리며 꼭 그 상태로만 글을 써야 한다는, 그래야지만 글이 써진다는 강박관념도 없이, 지휘자처럼 제비-연미복에 최고급 이태리제 구두와 마법의 가죽장갑을 끼고 특수 제작 만년필을 손에 들지 않으면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징크스도 없이, 그냥 하루에 3번 커피 마시듯, 책상 위에 놓여진 향수를 뿌리듯, 빗으로 머리를 빗듯, 장소불문─변화무쌍─창작욕구─창의력 절정 상태로 그렇게 손쉽게 당신은 글을 쓰고 싶다. 말은 그렇게 한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거울을 몇 번 볼까? 코는 몇 번 풀까? 기침은 몇 번 하고? 남자는 평생 딱 3번 울어야 한다는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은 건너뛰고- 배꼽 빠지게 웃기거나 눈에 머가 들어갔거나 하품 자동반사까지 모두 포함해 평생 사람은 몇 번 울까? 잠은, 연애는, 사랑은... 이것을 바로 일상-인생-생계 그리고 삶이라고 부른다. 이런 날마다의 생활처럼 무심코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있다면 그는 괴물이다, 괴물 프랑켄슈타인! 그를 마주치자나? 그러면 겁먹은 표정과 어조로 감탄사를 토하며 소스라치게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으~~으~~ (발동동 발동동)
그런데 이렇게 일하듯이, 놀듯이 글을 쓴다는 게 말이 쉽지 그게 잘 안된다. 이런 삐─삐─삐─ 글이 안 써질 때는 정말로 TV로 홈쇼핑 광고를 보다가 '어 저거 괜찮은데' 라며 혹 했다가~고민하다가~망설였다가 그래~ 하며 전화기를 들고 번호 찍고 통화 눌러서 험담 전문가와 통화가 연결되고, 이때부터 인정사정없이 그 누구에게도 아무에게도 피해 안 주고, 나 혼자─아니 당신 혼자─욕을 얻어 듣는 것이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서비스가 존재하는지, 있다면 있어도 되는지, 있다면 있어도 효과는 신통치 않아 보이지만 뭔가 방법을 찾아보고 싶고 그래서 골동품 파는 가게에 가서 요술램프를 찾는다거나 실존하는 선험자 파우스트와 가압류-근저당-설정 전문가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려면 번지수를 어디서 누가 언제 알려주나 하면서 몽환의 늪에 빠지게 된다.
당신은 그렇게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카페 안에서 노트북을 켜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하는 것은 아마도 뉴스를 보거나 SNS를 하거나 쇼핑이나 메일 보거나 일하거나 웹서핑이 전부겠지만 왠지 저 사람이... 또 건너편 카페에서 다른 디자인의 노트북을 켜고 다리를 꼬고 혼자 중얼거리는 저 인간이 어떤 환상적이고 흥미롭고 아름다운 한 편의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얼빵한 상상을 하게 된다. 내 노트북 어딨어? 영화 노트북 나온지가 언제인데 노트북 타령이야 라면서. 이러면 사태가 심각하다. 아주 중증이다. 내가 아니라 당신이! 원래 이런 2인칭이 아니라 고품격 2인칭을 바랬었는데─말 그대로 거~의 진심이다─본의 아니게 그림이 기묘하고 분위기 어째 좀 이상하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유명 작가의 집을 털어야 하나? 혹시 붙잡히면 가디언 문학 분야에 특종감이겠다. 썩 내키지 않는다면 인디애나 존스 따라하기? 구석기 시대 방법이다. 아니면 일단 얼굴로 웃기고 말수는 적고, 절대 빠르지 않는 신중한 말투와 시적인 유머로 웃기는 어느 개그맨이─얼굴이 선천적인 팬더곰끕 다크써클에 저승사자 포스─이미 옛날에 많이 써먹었던 작업을─고전 서부극 카우보이처럼 밧줄로 만든 올가미를 이용해 한손으로 그걸 잡고 돌리다가 던져, 목에 걸렸다 치고 두손으로 영차 영차 잡아당겨, 이걸 맨손으로 저 앞의 그녀를 보고 모션만 그대로 시연하면 진짜 그녀가 당신에게 거짓말처럼 걸어온다는─따라해서 그 결과를 그대로 연애소설로 쓴다? 상황이 안 좋거나 최악의 경우 뺨을 얻어맞을 수도 있다. 싸대기 철썩. 임상실험은 완벽하지만 상용화는 글쎄-라고나 할까!
그것도 아니면 중견 번역가의 거의 완성한 대작 처녀 작품이 저장되어 있는 노트북을 훔칠 것인가? 당신의 인생, 그동안 너무 평범했다. 그렇다고 도둑놈이 되라는 말은 아니다. 그럼 어쩌라고! 음 제법 평이한 방법도 있다. 대학교 문예창작과 수업에 몰래 참석해 청강해보는 것도 있다. 작품쓰기는 실패해도 띠동갑을 훌쩍 넘는 미남, 미녀를 만날지 누가 알겠나? 이마저도 아니라면 권하건데 썩 그럴듯한 복안도 없지 않다. 저명한 문학평론가, 그 중에서도 한 번도 소설을 발표하지 않은 학자를─왜냐하면 첫작품을 발표할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에─스토킹하고 그의 사무실을 알아내고,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철통보안을 뚫지 못했을 경우 그 사무실을 급습하여 그곳에서 버리는 쓰레기들을 뒤지는 최후의 숨겨진(쉿!) 비사 또한 있다.
하지만 당신은 새가슴이다. 너무 평범한─평범한 게 왜 나쁘겠냐마는 적어도 특별하지는 않으니 달리 말하자면 밋밋한?─삶을 살아온 그대는 쉽게 큰 일을 터트릴 용기가 없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사기를 많이 당해서 그런지는 몰라도─만약 사기를 당했다면, 그것도 자주 당했다면 세계 최고의 말발, 사기꾼들에게 입담의 비법을 전수받지 않고 뭐했는가─꺼낼 카드가 당신께는 별로 많지 않다.
제임스가 어떻고, 닉은 뭐하고, 하워드는 어디로, 마크가 무엇을, 알렉스는 알렉스의 친구의 전-여자친구의 사돈의 스승의 미발표 소설 보물 찾기를, 케빈은 발바닥 부상, 조니는 일주일 행방불명되었다가 51구역 서쪽 통문에서 19세기 복장으로 약 7.9년 젊어진 상태로 깨어나서 발견되고... 이 스토리를 쫓는 것도 저번에는 쉽게 풀릴 듯이 입꼬리 살짝 올라가게 뭔가 어떻게 어떻게 하면, 많이 쫑알거리지 않고 적당히 만담만 풀면 뭐 대충 쉬이 줄거리 나오겠다고 한 10% 쯤 안심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완전 어려워 보인다. 걱정이 태산이다. 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보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즐겁다고 웃긴다고 미치겠다고, 난 미치지 않았다고 하나같이 다들 흐뭇한 표정들을 짓고 있는지, 지금 세상이 기후와 무역, 통화, 기축자금, 유가, 월가, 물가, 머머가, 각종 전문용어들로 얼마나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당신은 길에서 발을 헛딛은 것처럼, 하이힐의 굽이 꺾인 것처럼, 나이가 꺾인 것처럼 명대사를 생각한다. 그렇게 명대사는 영화를 부르고, 영화 하면 원작이나 시나리오를, 원작이나 시나리오는 그 작가를, 그 작가라면 영화배우와 비교를 하게 되고, 그러면 당연히 십대 시절의 실망감을 떠올리고, 그 실망감의 왼쪽 날개는 명대사풍 뻠프질 < 동기부여식 말발 < 드라마적 말솜씨였고, 그러면 이 망상은 무엇으로 귀결되는가?
그러므로 그들의 꼬리를 잘 살펴보자는 결론이 나온다. 당신이, 그대가 지금 즉시 결론을 내렸다. 그분들의 영혼, 철학이 아닌 꼬리는 어디에 있을까? 멀리 가지 않아도 삼천포로 빠지지 않아도 된다. 그분들의 웹사이트를 보면 된다. 보긴 봤는데 별거 없드라? 많이 보지 않아서 그렇다. 많으면 달라진다.
따라서 당신은 그 웹사이트 가운데 리마커블한 퍼플 카우, 핑크 잠수함을 발견할 것이다. 한 번에 하나만, 여러 할 일 가운데 하나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그렇게 발견한 웹사이트에서 압축된 의미의 황홀한 감각미가 돋보이는 당신의 두뇌를 마구 회전시키는 짧은 요약문을 찾는다.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을 것이다. 그걸 읽고 잘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 첫째, 초딩의 지적 수준이나 상상력으로 해석하기 둘째, 그것을 외국어라고 생각하고 의역이 아닌 직역하기, 원문을 외국어로 번역하고 역으로 재번역하기를 몇 번만 반복해도 배가 산으로 가다가 웜홀에 빠질 것이다.
예를 들면, 어느 음험하지─꾸밈어는 하나로 충분하다─않은 노작가의, 아득한 관록미와 혼신의 예술혼, 파란만장한 인생이 엿보이는, 단순히 비밀과 재산을 맞바꾸지 않았을 듯한 어느 휴머니스트의 홈페이지에 이런 글이 씌여 있다. 참고로 외국어는 하나쯤은 익힐 필요가 있다. 교양에 대한 긴 말은 불필요하다. 단어의 비교로 충분하니까. 바이러스 : 균.
오 쓰고 보니 말이 안되긴 하는데, 소설이라 하기엔 별로 어울리지 않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설득력 있어 보여. 아닌가? 아닌가? 아니야 아니야, (필름 빨리 감기) 설득력 있어- 설득력 있어- 설령 없드래도 혼자 마취되고 일단 써야 돼. (사기치고 있어, 뭔 뚱딴지 같은 말재간이야)
"나는 전화를 싫어해요. 타이핑도 못하고 손글씨만 이용합니다... 도시에서 3일 이상 지내지 못해요. 그게 최대치죠. 번잡한 것도 싫어해서 사람들도, 미디어도, 그 어떤 사교들도 별로 반가워하지 않고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쓰고, 걷고, 수영하고, 술 마시는게 전부에요..."
번역은 어렵다. 많이 어렵다. 약간 덜 매끄러운 번역은 근소한 차이로 읽는데 조금 힘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혼자있을 때 마구 험담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많이는 안했다. 정말이다. 해석하고 나니 생각보다 뭔가 있어 보인다. 진짜 있어 보일려면 인터뷰 같은 자료를 포함해서 엄청난 양을 번역하고 그 가운데 최고만 뽑아야 한다. 그거 언제 다해? 능력도 안된다.
이 인용문을 보고 첫 느낌이 괜찮아서 이번 챕터의 발단이 되었지만 썰을 풀고 나니 뭔가 얘기가 돼. 이건 뭐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의식의 흐름일 것이다. 이 형세가 시나리오에서 배우의 독백을 닮았다. 시나리오─희곡─시나리오. 나이 들면서 몇몇 책을 읽고 살지만 희곡은 왜 읽기가 어려운지, 시도 자체를 하기 어렵게 악의 기운이 서려 있어서 책을 집어들기도 어려운데, 그건 한 번 빠지면 아예 풍덩 빠져버리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이골이 났다,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는 부담스러우니까 근대 희곡 뭐라고 뭐라고, 환멸을 느낀다, 고전 희곡 이러쿵저러쿵, 예상컨데 (희곡은) 일반 대사 반, 명대사 반일 텐데 왜 못 읽어? 이해할 수가 없다. 소설이 안써지니까 어떻게 하면 잘 써질까, 뭘 쓸까, 사고를 쳐? 라면서 번역으로 희곡으로 넘어왔다. 사람 환장하겠다. 누구긴, 내가 아니라 네가, 늬가, 정말로 당신이 그-대-가!
당신은 젊었을 때를 생각한다. 눈을 감는다. 마음을 진정시킨다. 정신을 당신 몸의 영역 바깥으로 넓힌다. 숨을 내쉰다. 천천히. 숨을 들이쉰다.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은 그 상태로, 들리는 소리를 그냥 듣고, 눈을 감은 상태로 보이는 걸 그냥 보고, 우주의 에너지를 빨아들인다. 자, 나의 에너지도 일부분 당신에게로 건너간다. 하나, 둘, 셋. 자 빠져든다─빠져든다─빠져든다─에코─자아~ 빠졌다.
어른들이여, 청년들은 아가씨들은 무모하니까 재미있다. 가끔 안 그런 이들도 있지만 그들에게도 방황의 시절이 필요하다. 그래야 시가 나오고 음악을 만들고 전문가가 되니까. 어른들은 아는 게 너무 너무 많으니까 아예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다. 다 아니까! 애들은 가위-바위-보 하고 카드 하나 뒤집고 돌고 때리고 웃고 뒤집어지고. 그리고 친구 둘이 길을 걷다가 저 앞에 보이는 전봇대까지 뛰어서 전력으로 뛰어서 내기도 안하고 그냥 뛰어서 간다. 둘이 비슷하게 도착할 수도 있고 근소한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그게 다다.
에~이 하나도 재미없네? 좀 그렇다. 극사실주의는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것이다. 실제 현실이 전부 이런 모습이다. 백마 탄 왕자, 동화 속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 친구들도 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랑 학교를 나와 길을 걷다가, 회사에서 퇴근하고 친구와 어느 카페나 술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젊은 친구들은 모종의 사건을 꾸미기 위해 영화 같은 인연을 만들기 위해 이성에게 말을 건다. 첫눈에 반했다,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냐, 주말에 뭐 하시냐, 이렇게.
젊음의 무모함에 그 너머의 노련미와 낭만, 멜랑콜리, 로맨스, 경탄과 심미안과 예술 그리고 믿기 힘든, 인지하기 어려운, 설명하기 까다로운 애모를 아는 젊은이는 안 그런다.
앞서 가는 그녀에게, 옆 테이블에 있는 아가씨에게, 쓱 그렇지만 살며시 그리고 천천히 접근해서 한템포 쉬었다가 눈빛이 건너오면
「저 친구와 제가 내기를 했는데, 혹시.. 둘 중에 누가 호감인가요?」
또는 누가 더 슬퍼보이나요? 누가 상태가 더 안 좋아 보이나요? 그러면서 끝인사에 애매한 은근함, 따스한 미지근함을 남긴다. 함축적이면서도 다의적인 느낌의 상상에 보탬이 되는 여지를 가만히 놓아둔다.
「아쉽지만... 다음에 우연히 마주치고 싶지만... 제 이상형에 가까웁지만 마음과 달리 연락처를 묻지 않을께요.」 1초, 2초, 3초, 4초, 4초 반. 4초 반의 반.
「실례..했어요..」
딱 말하고 목례를 가볍게 하고 살짝 슬로우 모션으로 돌아선다. 이때 아무 말도 하면 안돼. 절대 빨리 움직이지마. 여기까지. 뒤에서 다른 친구는 멀뚱멀뚱 보면서 생각한다. '저 자식이 대체 뭔 수작을 부리는 거야~'
동시에 당신도 "이게 뭔 개수작이야, 이런 사기꾼 같으니라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같은 동화적 교훈도 없고, 주제도 없고 재미도 없어,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야, 에라 이런... 긁다 긁다 전혀 안 시원하니까 남의 다리 피나게 긁고 있어, 뭐야 그게~ 으이 증말~" 그러면서 험악한 말을 하며 당신은 손에 들고 있는 원고지인지 대본인지 수첩인지 그것을 구기고, 짓이기고, 찟고, 꺾고, 던지고, 물어뜯고 그런 후 벌떡 일어선다. 허리춤에 두손을 짚고서 고개를 돌리고 틀어서 올렸다 내렸다,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 "에이~ 못해먹겠네~", "에라~ 집에서 발 딱고 냉수 먹고 누워서 핸드폰으로 YouTube 켜고 검색이나 해라. 검색어는 '개 (한칸 띄고) 흥분', 'dog scared'도 괜찮아.' " 뭔가 답답하고 먹먹하다. 적당한 유행어는 당신에게로!
인문-교양서를 많이 읽었거나 나이 들어 아는 게 많은 어른들은 독학으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분야와 절대 독학만으로 대성하기 어려운 종목을 잘 알지만, 그런 그분들에게 어떤 하나를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똑같은 대답을 듣게 된다. <많이 머머 한다, 대부분 똑같이 반응한다, 전체적인 조망과 새로운 롤모델은 어떻다>는 찰스 핸디식 비유-경험-통찰-관점의 포트폴리오 모델과 <데이터1, 데이터2, 데이터3 그래서 그래프 A와 밑줄긋기 B가 나온다>는 댄 에리얼리식 연구결과를 다 알고, 모두 읽었고, 원리 훤하고, 이미 생각했고, 기억하실 텐데, 자신만의 신이론을 곧 책으로 펴낼 텐데 하나같이 같은 답이 나온다.
어떤 한가지가 무엇일까? 넌지시 대화 주제를 바꾸거나 갑자기 말을 꺼낸다. 단어는 큐브 퍼즐. 이 단어를 듣게 된다면 보통 어른들은 그것의 공식, 특히 공식과 방법, 종류와 경우의 수, 검색 제시어, 누가 잘해, 나는 어때, 어려워 보이지만 별거 아니야, 10초면 끝나 같은 지식이나 사례나 견적이라는 '인문-교양서'식 답변이 주를 이룬다.
즉 태어나서 처음 본 모든 큐브퍼즐을 손쉽게 (처음 만져 보는데) 뚝딱 맞춘다는 선천성과 월등함이나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에 대한 얘기를 2명 가운데 1명에게서 듣게 되기는 아무래도 힘들다. 자동차 또한 그렇다. 뭔들 안 그럴까. 이건 마치 소셜 네트워크 프로파일에 보면 어떤 이는 포크로 콕 찍어서 뭐-뭐-뭐 구체적으로 브랜드를 고른 반면에 어떤 이는 도시, 영화, 문학, 커피, 광고, TV, 동물... 이렇게 넓은 개념을 좋아하는 차이와도 같아 보인다.
설마 이거 모르시는 내용은 아니죠? 그럼~ 그대의 고결한 아찔한 지성은 절대 의심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오늘부터 그대는 독학으로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은 복권 당첨되듯이 거저 줘도 싫고, 왠지 기분 나쁘고, 다만 독학으로 밥은 벌어먹고 살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게 좋은 예언인지 장사 잘 안되는 점쟁이식 주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깔고 가는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안전하고 그리 나쁘지 않은 예언이라 할 만하다.
마무리, 가제트 형사에 나오는 둔중한 저음의 악당 목소리, 의자에 앉은 뒷모습만 보이고 목에 펑크 (그걸 뭐라 부르지) 뿔 목걸이를 두른 고양이의 울음소리가─왜 고양이 소리는 다 울음소리인지, 고양이도 웃고 울고 짓고 노래부르고 다 할텐데 싸그리 다 울고 있데─잔잔히 깔린다.
「다음번엔 반드시 명작을 쓰고 말테야. 음하하하하하」
척하면 척, 자신의 온 감각과 주변과 시간, 무언가의 연결 지점등에 모두 명민하고 민감한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면 다음에 주로 나와야 할 이야기는 그것이다. 허당 시리즈! 허당, 가끔 나와야 재미나지 계속 나오면 텔레비젼 채널 돌아간다.
우선 친한 친구들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으니 그들의 삶을 예측할 수 있고 지나온 행적을 예상할 수 있는 몇가지 그들만의 철학에 대해 간출여 본다. 철학에 대해 파고 들어가면 남자의 경우엔 자발, 여자의 관점으로는 과한 수다나 바가지 형세에 빠질 수 있으니 마치 알맞게 적당한, 읽기에도 말하기에도 그리고 듣기에도 또한 생각해 보기에도, 차용해 보기에도 괜찮은 정도의 분량과 깊이로만 줄여본다.
제임스에게 어떤 모토가 있다면 그것은 이러했다. <자고로 인생은 재미있게 살아야 해!> 그의 친구들도 물론 하나씩 뚜렷이 때로는 연상되듯 내비추는 신조랄지 성향 같은 게 있었다. 닉은 바로 <당신 일생의, 그대 생애에 대한, 정녕 사랑을 위한 포지셔닝은 행복이다> 라는 부류의 사람이다. 하워드는 아니나 다를까 <영혼을 건 희극을, 풍성한 아름다움과 새로움 그리고 사랑> 이라면서 어딘가 멀리 있을 것만 같은 세상이랄지 관념이랄지 외계 생명체나 그냥 한 명의 지구인 같은 존재를 그 하나만을 겨냥하는 듯 보였다. 옛날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다음 세상에서도 까레라만을 또는 까레라를 주로 편애하는 마크의 풍조는 <열정과 모험과 감수성과 색다름에 목마르다. 끊임없이!> 좀 단조롭지만 그랬다. 그들끼리 함께할 때나 혼자서는 까에엔 하이브리드를, 그 외에는 포드 소형 중고차를 모는─역으로 그의 여유로움을 알거나 짐작하는 사람들 또한 그 어떤 차이에 대해 다른 감정들 보다 제일 앞서는 그것은 바로 즐거움, 타는 주인이 아닌 오픈카를 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망을 훨 앞서는 눈요기하는 기쁨을 선사하는─알렉스는 <새로움과 익숙함, 젊음과 경험 두마리 토끼가 스스로 걸어온다면, 음 그렇다면 가끔은 때로는 최고봉-최대한-최신형으로, 때때로만!> 알렉스는 뭔가 고대 그리스적(아니면 로마인가?) 신념과 꼬마 장난꾸러기 같은 이상을 지녔다. 케빈은 그야말로 범생이 스타일이다. 보이스카웃 최고 레벨,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장미십자단, 잘 알려지지 않은 진짜배기 결사단체 등등 딱 귀족적인 집안에서 태어나서 <인생은 무릇 현실적이되 판타지와 SF를 추구해야만 해. 그래서 나는 지금 SF에 살고 있어> 라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조니. 너무 콧물이 나올 정도로 진짜 비명이 나올 만큼(?) 낭만적인 명언처럼 보인다. 그냥 무작정 추켜올려주면 또 그 나름대로 재미있다. <여하튼 삶은 로맨스가 거의 전부야!>
또 그들은 나름 장르도 정해져 있다. 제임스는 코메디, 닉은 낭만주의, 하워드는 고전주의, 마크는 로코코 스타일-신고전주의 인상주의자, 알렉스는 판타지, 케빈은 당-연-히 SF 그리고 라스트 맨 조니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게 시간을 멈출 수 있는, 시간을 물로도 열광로의 쇳물로도 빛으로도 만들어버리는 초현실주의다.
물론 이런 모토나 장르는 당연히 고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그들끼리 재미로 하는 말들을 옆에서 들어봤을 때 약간 어느 때 자주 들리는 말들에 불과했고, 그들끼리도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항상, 자주 남의 모토와 장르를 부러워하고 초딩처럼 월화수목금토일 시시각각 변하고 바꾸고 변경하고 그랬다. 먹고 사는 걱정이 없어서 그래 보일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생활 형편에 앞서 삶의 자세와 태도가 비뚤어지거나 케케묵지 않게 유연한 바른 밝은 그리고 귀여운 어린이의 천진함에 기인하고 있었다.
"뭐야 이거, 뭐랑 뭐 합치고 어디서 하나 때어 저기로 갔다 붙이고 그럭저럭 짜집기 한거 아냐. 뭐야 이게, 에이 이런 모토는 나도 만들겠다." 사실 모토가 뭐냐,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또 살면서 자기만의 신념을 꽉 붙잡고 힘빠져서 손아귀 힘이 근육 떨리면서 풀릴 것 같지만 그걸 놓치면 모두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으로 하나의 문장이나 다짐을 딱 하나나 둘 가지고 사는 사람이 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몇 번쯤 말하면 왠지 모르게 있어 보이고 남달라 보이겠지만 그 짧은 표어를 매번 ─ 계속 ─ 언제까지 반복하기엔 사람들은 그리 썩 지루함을 반겨하거나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나이 들어 말발의 기반이 바뀌게 된다. 온갖 전문가와 천재와 수재들을 만나서 앞에 세워놓고 멋들어진 명언만을 읊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럴 때는 말을 아예 하지 않는 게 멋져 보인다. 헛기침은 괜찮다. 아무 때나 나설 수는 없으니까. 꼭 이건 뭐랄까 어릴 때 흔히 말하는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엄마랑 아빠 가운데 누가 더 좋으니, 물에 빠지면 A와 B에서 누구를 먼저 구할거니, 여행가서 누구에게 먼저 안부 전화를 거니...와 같은 무척 흔한 모두 경험해 본, 들어 본, 뭐뭐 해본 그런 익숙한 물음일 뿐이다. 다만 이번 참에 한번 더 차분히 혼자 속으로 이미 아는 그것을 되새겨 보면 자신의 다음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손해는 안 볼 것이다.
주인공이 많으면 얘기를 함축적으로 풀기가 힘들다. 그래서 영화와 장편 소설, 대하 드라마, 시트콤, 서정시들이 모두 주인공이 때거지로 나오지는 않고 등장 인물의 비중과 출연과 중량감이 다 다르다. 멀티 캐스팅의 장점이 나왔으니 몇가지 더 그들 이야기를 풀어놓자면 이렇다.
책. 한 사람이 이룩한 업적보다 그가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이해하는데 슬쩍 아는데 꽤 도움이 된다. 책도 그 가운데 아주 중요한 하나다. 꼭 옷을 홀라당 벗어야지만 직접적으로 확실하게 의사 표명을 해야지만 나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책은 하워드가 제일 많이 읽었다. 너무 많이 읽어서 약간 머리 숱이 줄어들어서 그의 헤어스타일은 파마, 어떻게 보면 약간 아줌마 파마 같기도 하지만 나름 한창 어딘가 유명 클럽이나 패션쇼에서 유행하고 있을 듯한 그런 볶음 머리를 하고 있다. 작품들도 그 작가들 이름을 말하기엔 보통 사람들이 쭈삣하는 미세한 감정의 떨림이 안스러워 보이는 그런 어려운 작품들까지 즐겨 읽고 있다. 평생 그랬다. 게다가 모르는 게 없다. 분야도 다양하다. 예전에 Yahoo에서 일할 때도 그는 감당 못할 우주적인 지식욕 때문에 회사에서 자기 일을 다른 컨설팅 회사에 상당한 턴키 금액으로 떠 넘기고 그 결과물을 받아 거의 90%의 회사일을 처리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눈 영양제를 먹어 가면서 시와 소설과 인문 교양서를 읽어 나갔다. 그러니 필명으로 작품을 남겨서 아마도 세계 3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를 받아냈을 것만 같은 비밀스런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인물이다. 아무래도 그는 걸출한 격식 있는 그랑프리가 아닌 소박한 문학상이라도 특이하게 미완성 작품으로 특별 선정 인기상 같은 왠지 덤으로 첨부된 듯한 인상의 트로피 정도는 원했을 것이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도 아니고 일단은 한 작품만 계속 밀고 나가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왜 멈추지 않는지도 모르며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도 당연히 모르는 채로 그렇게. 참 Yahoo에서 회사 CEO가─노랑 머리의 시니컬한 별로 친한 친구들이 많을 것 같지 않은, 평생 지독하게 일만 하며, 일이 뭐 그렇게 재미있다고, 남성 직원들 괴롭히는 재주와 재미가 남달리 뛰어났을지도 모르는, 그렇지만 뜨네기 소문에 바탕을 둔 일설의 추측만 그러한 여성으로─바뀌는 바람에 회사 주차장에 뭐 이렇게 빈자리가 많냐며 재택근무를 근절시켜 회사에 머물며 일해야 할 시간이 늘어나는 바람에, 얄팍한 비정상 턴키 업무가 회사의 비밀 특수 감사팀에 들통나는 바람에 그는 YAHOO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가 회사를 그만두기 전 그곳에서 하워드의 단짝 친구 누구는 본인 스스로 회사 업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 착상을 소설로 펴내기 위해서 스스로 회사를 때려 치웠다. 그래서 그 친구는 단숨에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모두 충족시키는 인기 작가가 되었다. 그가 YAHOO에서 배웠던 아양과 애교와 자의식과 앙탈 가운데 3번 타자를 잘 키워서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얼마나 잘 키웠으면 그랬을까마는 그는 멋지게 회사를 박차고 나가서 인기와 부를 얻었지만 하워드는 회사에서 엉덩이를 냉큼 걷어차이는 것처럼 모냥 빠지게 짤렸다. 그것이 성과고 측정 결과다. 수많은 회사 여직원들이 엄청나게 슬퍼했다는 소문이 있다그래서 위안은 삼았지만. 그렇게 YAHOO는 그때 회사의 중차대한 초핵심 인력 두명을 한순간에 잃고 말았던 것이다.
제반 여건을 놓고 봤을 때 절대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 그러면 너무 언발란스 할 것 같은 아디다스 매니아 마크는 사실 뉴발란스 광인이다. 왜냐하면 SF 소설을 좋아하니까 그렇다. 마치 사람들이 쉽게 덥썩 사지 못하는 큰 집을 사듯이 아디다스를 사드니만 이젠 뉴발란스 양말과 옷을 사들이고 있다. 다른 곳에는 검소한 면모를 보이지만 이런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선호하는 작가들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필립 K. 딕, 이언 (M) 플레밍, 샬레인 해리스, 댄 시먼스, 이언 뱅크스, 닐 게이먼, 로버트 해리스 같은 사람들이다. 실은 이 친구가 프로그래밍 기술은 말만 천재가 아니라 진짜 천재다. 거의 세계적인 잘 알려지지 않은 해커들도 두 손 두 발 한... 들고 내뺄, 그는 진정한 해커 세계의 지존이다. 그가 지금 남는 시간에 놀면서 개발하고 있는 웹 서비스가 있는데, 잘 얘기해 주지는 않지만 앞으로 아마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숨기고 있다. 얘도 풍족한 집안 환경에서 자랐고 지금도 더 말할 수 없이 풍요롭지만 또 수많은 아르바이트와 인생과 사회 경험도 쌓았지만 이상하게 긱 중의 긱처럼 맨날 아디다스 츄리닝만, 지금은 뉴발란스 슬리퍼만 찍찍 끌고 다닌다. 그러고 보면 초부자들은 참 이상하다.
요즘 왠 바람이 불었는지 복화술을 공부하고 있는 닉은, 그가 어려서도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도 읽는 책들은 오로지 동화다. 오직 동화 하나만. 그는 글로 된 이야기라면 오직 동화만 읽는다. 뭐 뭐 뭐, 어른들은 어쩌다 자녀와 가끔 극장에서만 보는 잭과 콩나물 같은 동화도 오로지 책으로만 읽는다. 나중 동화 작가로 데뷔할 것 같다. 유명 판타지 작가의 작품도 정작 동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왜 많은 어른들이 판타지 소설을 못 읽는데, 왜 (극히) 일부 성년들이 극장에서 판타지 영화를 보면 졸음을 참다 참다 중간에 한 번이 아닌 두세 번까지 (깊이) 잠을 자는데. 정신분석을 해보면 알겠지만 그도 그만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동화를 좋아하다 보니 저번엔 동화 전문 출판사에서 일하는 상냥하고 청초한 아가씨를 만나더니 영화 'GONE GIRL (2014)'에 조연으로 출연했다는 소문이 있다. 예상과 달리 영화 업계로 진출할려는 소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쉽게 말해 그는 인생 후반부를, 정작 초라하지 않아야 할, 평소에 사람들에게 심각하게 저평가 된 정말 멋진 인생 후반부를 어려서부터 침묵 속에서 차근차근 준비해가고 있는 것이다.
알렉스는 스릴러를 좋아한다. 그가 읽는 책들은 주로 스티븐 킹, 제프리 디버, 사라 워터스, 가끔 폴 오스터, 에드거 앨런 포, 메리 W. 셸리, 때때로 필립 로스, 스티그 라르손,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요 네스뵈, 1년에 1번 버트란트 러셀, 댄 브라운, 베로니카 로스다. 이런 스릴러 소설을 읽을 때 그는 기분이 좋으면 모차르트 레퀴엠을 마음이 이상하게 침울할 때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뭔가 색다른 감상에 빠져드는 바램이나 요인이 있다면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를 전곡 감상한다. 클라이막스나 5분이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눈썹에 힘 빡 주고! 때로는 이유를 아무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그는 요상스럽게 종아리에 힘을 빡 준다. <종아리에 힘 빡 준 남자> 알렉스, 왜 그런 것일까? 그 빡섬이 스릴러나 판타지, 낭만, 썸을 바라지 않아도 되는, 오히려 그들을 자동으로 불러들이는 고즈넉한 삶의 넉넉한 만족스러운 다채로움, 풍요로움 그것인가? 다방면으로 너무 인생 내내 재미나게 살고 있다. 정말 그는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 당연히 그 뭇사람 리스트는 어지간해서는 잘 공개되지 않는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또 풍족하고 부유하고 그러면서 근사히 행복하게, 알렉스 보다는 덜 재미나게 자란 케빈은 옛날에 New Trolls, Jethro Tull, Triumvirat를 듣고 자란 뒤부터 조지 오웰, 조셉 콘래드, 새무엘 베게트, 윌리엄 골딩, 올더스 헉슬리, 힐러리 맨틀, 센치한 날에는 트루먼 카포티를, 도무지 부족한 게 없는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어딘가 궁금하게 혼자 침잠한 날에는 파트리크 라페르의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를, 조지 버나드 쇼를 즐겨보고 있다. 최근에는 차츰 하는 일이 많다 보니 독서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요즘에 일에 치여 살면서도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라는 책을 절대 손에서 놓치 않다보니 책 표지가 조금 닳아졌다. 이 친구도 너무 바쁘다. 동명이인의 다른 인물이 이와 약간 아니 많이 공통점이 없을 수 있지만 독서는 곧 삶이다.
젠틀맨 조니는 그의 찬란한 독서 취향은 아주 균형 잡히고 고르고 다채로우면서도 남몰래 오랜 세월 추리와 판타지에 대한 짝사랑 또는 외사랑에 빠져 있다. 당연히 나중 추리소설가로 데뷔를 기대하게 만든다. 존 르 카레의 모든 작품, 제임스 패터슨, 마이클 코넬리, 수잔 콜린스, C.S. 루이스, 조지 R.R. 마틴, 테드 창, 베르나르 베르베르, 조나단 스위프트, J.R.R. 톨킨, 크리스티 골든, 루이스 캐럴, 더글러스 애덤스, 조앤 K. 롤링, 크리스토퍼 프리스트, 여행 전후에는 이탈로 칼비노, 브램 스토커를 즐겨 읽는다. 그러고 보니 균형이 딱 잡혀 있지는 않고 많이 쏠려있다. 그리고 요즘 그는 바순이라는 악기 배우기에 새롭게 빠져있다. 뭔가를 배우라, 새로움을 잃지 말라, 늙는다는 건 결코 슬픈 일이 아니다는 그런 명언들, 억수로 무진장 많다. 새로운 학습과 늙는 것에 관한 명언들 말이다.
이 친한 친구들 가운데 가장 덜 부유한, 극명하게 안 부유한 제임스의 취향은 이렇다. 소설에서는 킹슬리 에이미스, 마틴 에이미스, 오노레 드 발자크, 줄리언 반스, 이탈로 칼비노, 알베르 카뮈, 존 르 카레, J.M. 쿠체, 윌리엄 윌키 콜린스, 조셉 콘래드, 짐 크레이스, 찰스 디킨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로렌스 더럴, 귀스타브 플로베르, 포드 매덕스 포드, E.M. 포스터, 존 파울즈, 쥘리앙 그라크, 귄터 그라스, 토머스 하디, 헤르만 헤세, 제임스 힐턴, 페터 회, 프란츠 카프카, 로버트 홀드스톡, 닉 혼비, 빅토르 위고, 가즈오 이시구로, 하워드 제이콥슨, 헨리 제임스, 더글라스 케네디, 밀란 쿤데라, D.H. 로렌스, 토만스 만, 스티브 마틴, 서머셋 몸, 이언 매큐언, 허먼 멜빌, V.S. 네이폴, 세스 노터봄, 아모스 오즈, 오르한 파묵, E.M. 레마르크, 주제 사라마구, 레오 톨스토이, 이반 투르게네프를 인문-교양 분야에서는 게리 바이너척, 그레고리 번스, 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 & 제임스 파울러, 대니얼 길버트, 대니얼 코일, 댄 애리얼리, 데이비드 브룩스, 말콤 글래드웰, 매트 리들러, 샘 고슬링, 셰리 터클, 쉬나 아이엔가, 스터즈 터클, 스티븐 핑거, 스피로스 마크리다키스 - 로빈 호가스 - 애닐 가바, 에릭 와이너, 엘리어트 애런슨, 올리버 제임스, 제레드 다이아몬드, 잭 트라우트 & 앨 리스, 찰스 핸디, 카림 라시드, 케빈 로버츠, 클로테르 라파이유, 톰 피터스, 댄 히스 - 칩 히스,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로부트 핵스트롬, 리처드 도킨스, 리처드 탈러 - 캐스 선스타인, 리카이푸, 애덤 그랜트, 에릭 퀄먼, 제러미 시겔, 조나 레너, 칙센트미하이, 테모시 페리스, 피터 드러커, 헨리에트 앤 클라우를 좋아한다. 특히 인문-교양 분야의 책들은 출판된 기간이 약 10년 안쪽 터울로 대부분 비슷하다. 시사점, 있다.
이 친구들의 공통점은 첫째, 선호 작품이 모두 특정 분야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앞으로는 좀 더 다양한 분야와 폭넓은 언어권, 문화권의 작품들까지 사랑하기로 마음 먹었다. 둘째, 그들은 현재 음악을 잘 듣지 않고 산다. 너무 즐길 대상이 광대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조금 덜 듣다가 어쩌다 보니 요즘 통 음악을 듣지 않고 살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빈둥지 증후군의 그래프 곡선과 연관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음악을 즐기면서 사는 것은 달리 말하면 젊게 사는 것이다. 우선은 최신곡과 최고전곡으로 시작해서 차츰 음악을 듣는 것도 신경쓰기로 하면서 어느 때 부터인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위에 씌여진 글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일까? 사람 이름 브랜드가 잔뜩 열거된다는 점이다. (개인 브랜드 선정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는 못하고 조금 성급하게 뽑은 감이 없잖아 있다. 그렇다, 완전 뚝딱 골랐다) 보통은 위에 씌여진 알렉스 또는 케빈 한 명이 좋아하는 사람 이름으로도 소설 하나 쯤에 해당한다. 멀티 주인공이라서 챕터 하나가 뚝딱이다.
제임스는 귀가 얇고, 닉은 걸으면서 얘기하는 것을, 하워드는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을, 마크는 걸으면서 상상을, 알렉스는 걸으면서 듣기를, 케빈은 걸으면서 보기를, 조니는 걸으면서 공감각으로 느끼기를 좋아한다. 이런 방식의 표현은 남발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을 하고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막 연이어 비슷한 게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까도 까도 파도 파도 광산 몇몇몇 곱절이 계속 나오게 된다. 제임스는 콧물을(꼬마야?), 닉은 걸으면서 눈물을, 하워드는 코피를, 마크는 땀을, 알렉스는 침을(알렉스...가 강아지인가?), 케빈은..., 조니는... 심지어 모두 다 쏟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량이 자동으로 나온다. 그렇다고 이 방식이 꼭 글쓰기에 유리한 건 아니고 또 그렇다고 가볍다거나 웃기거나 시리즈 위주에만 편중되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면 왜 이렇게 이번 챕터에는 사람 이름 브랜드를 이렇게 몽땅 무더기로 덕지덕지 도배를 했을까? 똑똑한 독자님들, 누군가 여기저기서 행복도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예측하신다. 맞다, 행복도다. 혼자 있으면 개인의 역량을 높일 수 있고 근사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외롭거나 뭐하다는 단점도 있다. 적당한 상대들과 적당한 긴밀도로 적당히 친밀하게 적당히 변칙적으로 미스테리함을 잃지 않는다면 하루를 한달을 또는 평생을 당신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첨언하면 욕 얻어 먹은 유명인 이름을 몽땅 한가득 풀어놓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경험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개미와 배짱이처럼 일장일단이 있듯이 친구들이 많으면, 친한 친구들이 적당히 있으면 친구들이 덜 많은 사람들보다는 비교적 덜 재미없고 덜 단조롭다는 잇점(?)이 분명 있다. 희망과 포부를 포함한 가능성이란 측면에서 나이가 어린 학생들은 高가능성에 많은 친구들을 대하고 산다. 반면 연로하신 분들은 중년이 넘어가면 대체로 이 부분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처음 만나서도 쉬이 말을 트고 친숙한 대화를 나눈다. 인생을 몇 십년 살았다면, 노하우와 경험이 모두 축척된 방대한 지식과 지혜라면 거즘 모두 천재가 된다. 말발은 좀 딸릴 수 있다. 물론 부작용으로 사기를 당할 위험의 확률도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독서 리스트에 철지난 책을 하나 업데이트했다.
나는 젊음을 그리워하지 않는다/찰스 핸디 · 엘리자베스 핸디
이렇게 해서는 써도 써도, 읽어도 읽어도, (험담을) 들어도 들어도, (만만한 걸) 따라해도 따라해도, 해도 해도 끝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건 독서, 운동, 담소, 여행이나 사람들과의 교감과 사랑등 사는 동안 묵묵히 이유 생각하지 않고 즐겁게 때로는 슬픈지 좋은지도 모르게 끝끝내 떨구지 못할 어떤 숙명과도 같이 숙원을 이룬지 근처에도 못갈지 모른 체 평생 같이 가야만 하는 평행성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건실하고 겸양있고 건전하고도 살짝 건조한 그들이 어느 날 케빈의 집에서─마침 케빈의 여자친구가 과거 모험인 대서양과 남극에 이어 이번에는 북극 탐험 중이라서 즐겁게 그들끼리 총각파티하는 기분을 만끽해 보자는 암시와 묵계가 있긴 있었지만 아무도 먼저 말은 하지 않았다─모이는 날이 있었다. 시간과 장소, 이유에 구애받지 않고 자주 모이는 그들이지만 이날은 약간 고전적인 느낌에 취하면 어떨까 라는 누군가의 의견으로 트위터나 페이스북, 앱 메시지가 아닌 www.eventbrite.com 초대장을 이메일로 발송해서 정식이라는 정중한 제의,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며 금번 미팅의 보배로운 존재다 그러니 꼭 참석하여 행사를 빛내주시는 자봉(자원봉사)과도 같은 행차를 베풀어주시라는 초청의 글을 공유하여 모이게 되었다. 대부분 이메일을 많이 거북하게 생각하고 사용하지만 거의 안 알려지게 쓰고 매우 가끔만 쓴다면 이처럼 효용 있고 굉장히 쓸 만한 툴도 드물다.
한편 위도, 경도 몇에 고도 얼마, 습기, 전자파, 자기장 어떤 조건의 상태와 위치에서 누군가 클래식카를 몰며 몇번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운전자는 그 친한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인 조니였다. 그의 애마는 1969년식 싱어였다. 일부러 안전 운전과 기분을 위해 후덜덜한(?)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는 차에 탈 때 뒷자리에 누가 없나, 배기통에 뭐가 부착된 건 아닌가, 흡기쪽 소리와 엔진 리듬과 음악 재생시 타악기에 동조되거나 간섭이 일어나는 진동을 체크하고, 세심히 확인했다. 조수석에는 왠 곰인지 강아지인지 잘 분간하기 어렵지만 그런대로 귀엽게 생긴, 그래서 묘하게 잠시 시선을 끌어당기는 인형이 안전벨트를 자기가 직접 결착했다는 듯이 안전벨트를 매고 앉아 있었다. 그냥 평범한 인형이지만 전혀 사이보그처럼은 안 보이지만 저 안구에는 초고감도 카메라가, 귀에는 초정밀 센서와 전두엽에는 슈퍼 컴퓨터가 내장되어 있어 실시간으로 어느 비밀 센터와 데이터를 공유하고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아무튼 그는 케빈 집으로 가는 길인데 운전을 하다가 옆을 보니 왠 기린을 태운 커리어를 몰고 누가 운전하면서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차는 오픈카였다. 시원스레 외치는 소리와 행색이 꼭 조니 들으라고 그의 귀에 입을 바~짝 대고 소리지르는 듯 하였다. 스페인어인지 태국어인지 아니면 고대 라틴어인지 잘 모르겠지만 정황과 낌새를 봤을 때는 이런 말을 하는 듯이 보였다.
"My Life is so Perfect!"
그 차의 운전자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낯익어 보이는데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쉬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렇게 조니는 그 차를 추월해 가면서 아지트에 뭘 사들고 갈까 심각한 고민을 하는 순간 뒤에서 크게 퍽-하고 굉음이 일었다. 무슨 일인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그는 못 들은 듯 하였다. 혹시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었나? 아니면 진짜 사고라도? 요즘 세상은 하도 기가 막힌 장비들도 많고 기인들도 넘치고 풍요롭고 평평한 세상이라 별에 별 일이 다 있는 신천지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인터넷 뉴스를 코 앞에서 보는 것이라 생각했다. 조니는 못 들었으니 그 주위의 운전자들과 독자들 말이다.
하긴 조니는 현존하는 몇 안되는 거의 달에 갔다온 우주 비행사에 맞먹는, 앞으로 우주 여행을 할 선구자들에 버금갈 경험의 산 증인이었다. 그가 정한 세계 3대 해수욕장, 탁월하고 신기한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그런 곳에서 피냐 콜라다를 마시며 구글글래스가 아닌 일반인이 모르는 군기술이 적용된, 지상 과학이 아닌 우주 문명으로 제조된 슈퍼 기기를 착용하고, 초절정 미녀들과 안락한 고급 휴양지 분위기 속에서 세계 3대 해수욕장 풍경을 직접 겪은 희귀한 인물이었다. 그 리스트는 첫째, 바다 멀리 토네이도를 보면서 일광욕하기 둘째, 비치 발리볼을 하면서 머리 위로 저 건너 편으로 비행기 뜨고 내리는 걸 코 앞에서 보기 셋째,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동그란 우주 비행선이 아니라 저 앞에 뜬금없이 거대한 잠수함이 수면 위로 떠오른 모습을 놀라지 않은 척 쳐다보며 감상하기. 그 크기는 실제로 보면 거의 SF 영화가 실현되어 직접 보는 느낌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는 다른 해수욕장에서 400m 넘는 화물선들을 많이 봤으니까 태연자약할 수 있었다. 그 리스트는 그것이었다.
화면이 전환되어 중세 어느 후작풍으로 차려 입은 알렉스의 움직임이 면밀히 관찰되어 어딘가에 기록된다. 그는 우선 어느 신제품 판매 1일 전 가게 앞에 줄지어 늘어서 텐트치고 자는 것처럼 어느 천문대 옆에서 텐트 치고서 날밤을 깠다. 예전에는 그도 많이 애플 매장 앞 땅바닥에서 잠을 잤었다. 그가 좋아하는 소설이 무엇인가? 스릴러다. 밤새─진짜 밤새는 아니고─그는 스릴러를 읽었다. 언론사의 찬사가 진짜인가 아닌가 확인할려는 의도도 살짝은 있었다. 이 정도는 되야 진정한 준-매니아 끕으로 인정받는다. 아침에 일어나 먼저 탄 건 모노레일이었다. 그는 패러글라이딩이나 X-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가 안전 플러스 직간접 체험이다. 그 다음에 탄 건 케이블카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하다 내려서 지하철을 탔다. 그랬는데 지하철에서 완전 섹시한 여성이 보이길래 자기도 모르게 무언가에 홀린 듯 내릴 정거장을 지나쳤다. 그렇다고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 많은데 텐트를 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텐트를 왜 쳐? 그는 그 다음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친구가 일하고 있는 FEDEX 매장에 도착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알렉스도 유니폼을 좋아한다. 난데없이 갑자기 Fedex 유니폼을 입고 Fedex 차를 타고 도시 근교 동물원 입구에서 400m 떨어진 어느 낚시터로 향했다.
아시나요? 서머셋 몸도 작가 인생 초중반에는 아찔한 문체를 위해 식은 땀을 흘리며 필력을 갈고 닦다가 끝끝내 포기했다는 것을. 의기양양하게 그랬는지 두려워하며 자포자기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는 언젠가 늠름히 고백했다. 꼭 그렇게 억지로 문공을 익히지 않아도 된다고, 다른 데 힘쓰겠다고 (겁먹지 말고 소신을 가지고 당신의 길을 가라고) 실토했다. 서머셋 몸도 포기했는데 그것이 대세인데, 더한 미래의 향수와 즐거운 슬픔, 처절한 환희를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아도 된다. 그 옛날 1874년 1월 25일에 태어나셨던 그분께서 그렇게 깊은 뜻을 품고 후세에 뜻밖의 신비감을 전달하다니, 형언하기 힘든 우연이다.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다면, 그것이 전부라면 이 세상일이 얼마나 단조로울까?
그는 가면서 쉼 없이 누가 따라오지 않나, 어느 빌딩 꼭대기에서 누가 추적하지는 않을까 주위를 살피면서 마치 FEDEX 직원─근속 연수가 길고 우수한 사원─인 것처럼 행동하며 그곳에 잘 도착하였다. 중간에 어느 마트에 들려 하이네켄 5ℓ는 마크가 사오기로 했으니 자신은 다른 색다른 술을 한병 사들고 갔다. 참 알렉스는 가는 도중 어디에선가 슬쩍 어떡하다 DHL 차량과 아주 잠깐 신경전이 있을 뻔 했지만 슬기롭게 잘 대처해서 고이 보내고 목적지에 잘 도착하였다.
때마침 마크는 약간만 한적한 교외와 시내의 중간쯤에 위치한 어느 가로수길을 드라이빙하고 있었다. 하이네켄 5ℓ를 2통 실은 채로. 음악을 키지 않아도, 조수석에 대학생들이 만나고 싶은 사람 1위, 20-30대 남자들이 데이트하고 싶은 사람 1위에 선정된 사람이 타지 않았어도, 그날 왠지 모르게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듯한 예감이 들지 않아도, 최근 작은 소원 성취가 하나 들어맞지 않았어도, 얘기할 화제의 에피소드로 딱 맞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지라도 그냥 드라이빙 그 자체만으로 괜찮은 그의 애마를 타고서 누군가와 접선하러 가는 길이었다. 만날 사람이 어이없는 첩보영화 속 주인공은 아니고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핸드폰 기기 교환 물망자였다.
최근 마크는 핸드폰을 바꿨다. 신제품이 나왔을 때 속으로 상당히 바랬지만 충동구매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다 소용없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자꾸 그 최신형, 남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그렇지만 나중에 구매하기로 미루는, TV에서 인터넷에서 거리에서 매일 광고되고 날마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아마 최근 제일 잘나가는 그 최신 아이폰을 구매했는데, 그래서 흡족하고 처음에는 기뻤는데 불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자꾸 그 녀석이 너무 덩치가 커 보이고, 사용이 불편하고, 어딘가 모르게 얄미워 보이고, 왠지 모르게 꼴보기 싫어지는 일말의 감응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별 희한한 웃음소리를 내며 방정맞게 킥킥대며 좋아하드니 말이다. 그래도 사람이 아닌 기기를 두고 손바닥을 성큼 뒤집었으니 다행이지 안 그랬다면 어이쿠.
처음에는 자기의 6버전을 다른 사람의 6+ 버전과 교환 할려 했는데 그건 좀 난위도가 있는 애매한 문제라서 다시 생각한 게 가진 걸 팔고 다시 사기 였다. 하지만 이 번거로움을 감수하기는 인생이 그리 친절하지 못해서 지인을 통해 믿음직한 분을 소개 받아 만나서 교환하기로 약속했다.
핸드폰도 마크는 그의 스타일로 노-악세사리, 오로지 공장에서 나온 그대로의 원 상태만을 고집했다. 액정-필름 완전 답답하다. 밀가루와 오렌지, 사과, 바나나, 키위, 브로콜리를 섞은 천연 얼굴팩을 얼굴에 바른 후 클린싱하지 않고 계속 살 수는 없다. 피부와 기기의 표면이 닫을 때의 그 오싹하고 짜릿하며 소름끼치는 오소독스함, 소설(1973)과 영화(1996) 크래쉬, 브라부스-하만-갬발라-처럼 타고난 튜닝은 예외에 해당한다.
그날 아침 마크는 아침에 잠꼬대를 하면서 운전도 비행도 하면서 단꿈을 꾸고 있는데 느닷없이 걸려오는 문자와 전화 소리에 잠을 깨고 말았다. 여러 통화을 놓쳐버린 후 딱 눈을 뜨고 받은 전화에는 왠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동네 슈퍼마켓 아저씨의 얼굴로 그가 웃으면서 말을 걸고 있었다. 그가 잘 사용하지 않는 페이스 타임으로 그렇게 여러번 다양한 게임 캐릭터들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애매한 기기 교환에 대한 글을 보고서 연락을 취해온 것이다. 인터넷 카페 게시판 글을 내린 후 커피를 타고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이런 저런 일을 마친 후 소개 받은 당사자를 만나러 집에서 출발했다.
대상이든 장소든 시간이든 매한가지로 기다리는 즐거움은 어떻게 보면 가장 풍성하게 멋지고 우아하고 불가능의 영역이란 없는 것처럼 그 기쁨이 무한한 법이다. 그건 정말 근사히 독보적이고 치명적인 매력을 지녔다. 분신, 반인반마, 이상형은 그렇게 사람들 마음속에 꿈속에, 어딘가에 살고 있다. 그는 본인과 만인의 특기인 상상을 하고 있다. 딱 봐도, 자세히 뜯어 봐도 도저히 단점을 찾을 수 없는 상대 즉 얄밉지 않으리만치 귀적적인 이성이 물품 교환자로 나와서 접선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약간도 아니고 한 끗발도 아니고 거의 동급의 어찌보면 더 고결한 품위와 고상한 여성미를 지녔을 듯한 친구와 같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저 혹시...」 초반 말트임은 독자가 전문가니 건너뛴다.
「설마 사기꾼은 아니시죠?」 두 여인네가 웃는다. 그들도 호감이 없지는 않은 듯 한 눈에 봐도 호감이 있다고, 많이 있다고 이마와 바알간 볼에 큼직하고 선명하게 씌여 있다. 아아폰 교환하고 켜 보고 써 보고 몇가지 간단한 걸 확인하기 위해 앞에 보이는 카페에 같이 들어갔다. 마크가 말했다. 드시고 싶은 거 아무거나 여러 잔 드셔도 괜찮다면서 얘기하시라고 말했다. 그렇게 주문하고 계산후 조금 있다가 갑자기 이거 이상하게 제가 손해보는 기분이 드니 둘이 합해 딱 1,000원을 받겠다고 하면서, 그렇게 돈을 받은 후에, 그 사례는 나중에 제가 뜻하지 아니하게 심각한 결례와 무례와 실례에도 불구하고 빚을 지게 되었으니, 나중에 반드시 갚겠다, 제발 그러한 불순하지 않은 의도를 사양하지 말고 너그러이 받아주신다면 저에게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을 테니 부디 거절을 생각하는 의혹일랑은 감추어주시라,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들은 친해지고, 아이폰6 플러스와 아이폰 6를 교환하고, 영화 줄 앤 짐 (1961)이나 다른 트리오가 나오는 소설들처럼 소중한 인연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소설은 소설이다. 뭔 놈의 소설을 쓴다고 그것도 소설이라고, 상상 같지도 않은 상상을, 마크 혼자만의 그만의 드러나지 않아야 더 귀하고 아름다울 그 공상이 만천하에 뚱딴지 같은 몽상으로 드러난 것으로 모자라 실제 접선 장소에 나타난 사람은 왠 전직 헤비급 복서, 현직 무술 전문 엑스트라 배우 포스의 한 남성이 검정색 가죽 잠바와 소리 끝내주는 오토바이, 펑크 악세사리로 꾸미고 분위기 무겁게 만드는, 무섭지만 이상하게 잘 생긴 마초가 나와 있었다. 집에서 밤에 잠을 잘 때도 헤비메탈을 들으면서 잠들 것 같은 백작형 락커 스타일의 그 아저씨도 대화를 나눠 보니 나쁜 사람이 아니고 바른 가치관과 착한 인생관을 가졌고 의외로 그의 진솔하고 선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의외성이 사람을 아니 미인을 잡는다. 잡는다 이상하다, 얻는다. 그렇게 아이폰 물물교환을 마치고 마크는 케빈의 집으로 떠났다.
스산한 바람이 만인의 연인처럼 누구에게는 센치함을 누구에게는 멜랑콜리를 매혹적으로 선물하는 그 때다. 이 흐름이 꼭 액션, 스릴러, 추격, 첩보 영화의 카메라 전환 기법과 닮았다. 이 때 하워드는 최근 새로 생긴 취미인 카누를 집 창고에서 꺼냈다. 굳이 카누를 RV차에 실어서 운반할 필요도 없이 바로 근처에 있는 실개천으로 가지고 가서 배를 띄었다. 배낭에는 약 45년 경력 베테랑 쉐프가 어제 만든 따끈따끈 조각 케익과 최고급 포도주 약 200ml와 테너 아리아 음악을 포함해 간단히 챙길 건 챙겨서 출발했다. 그렇게 그는 실개천에서 좀 더 큰 천으로, 천에서 강으로, 강에서 바다로 나가 그의 전 사업 파트너가 떰핑으로 넘긴 요트가 정박된 장소에 이르렀다. 가는 동안 위기나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요트에 다다르다가 상어 꼬리를 잠깐 보면서 이상하게 쫄지 않고 뭔가 의심을 품고서 혹시 누가 아래서 산소통 메고 잠영하면서 꼬리만 상어인 보조물을 들고 움직이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차분히 해보았다. 아마도 진짜 그랬다면 참 한심한 놈이거나 대단히 창의적인 두뇌를 돌리며 사는 인간이 틀림없겠지만 정말 죠스였다면 옛날 옛날 영화처럼 큰 일 날 뻔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상어는 그렇게 공격적이지 않고 대단히 유순하며 숨을 쉬지 않는다─아, 이건 아니겠구나─그랬나 잠을 자지 않는다 그랬나, 상어는 그런 영물이라고 들었는데 아무튼 오는 동안 하워드는 좀 서운하게도 별 일 없었다. 그렇지만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긴가민가 더 은밀하고 전위적인 퍼포먼스로 지금 세상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닉은 열기구는 생각도 못하고 무섭기도 해서 싸이클을 타고 갔으며, 제임스는 오직 마라톤으로만, 그들은 그렇게 개고생을 해서 케빈의 집에 도착하였다. 케빈은 도대체 뭐하는 인간인가, 케빈이 카이저 소제야, 아니면 12살이야? 케빈의 집이 무슨 오버 더 레인보우야, 이런~
그냥 대륙 횡단 특급열차, 위스키 스트레이트, 초딩 때 학교에서 배운 직렬 건전지 연결과 다르지 않게 쓸껄 그랬나. 괜히 이제 스텝 좀 밟아질 거 같으니 추운 날에 마음만 들뜬 볼이 붉은 어린아이 마냥 겁-없이 미리 안해도 될 고백처럼 병렬로 쓰겠다고 멋을 부렸을까, 감을 좀 잡았다 싶었는데 잡을 듯 하다 놓쳐 버린 파랑새, 애타게 담아둘 수 밖에 없는 가슴 아린 연정이나 수많은 여자들이 일생의 소원이나 희망으로 여기는 한 편의 소설 집필─이미 해냈다면 그 너머로 보이는 앨리스와 거북이와 신기루를 잡고 싶은 비련─에 대한 슬픔은 이렇듯 이리 꼬고 저리 돌리고, 아무리 알아 먹기 힘들게 글을 쓴다고 해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의─아니면 그저 발목이나 발─모습을 상상하는 남아 또는 상남자, 토실토실 새하얗고 찰싹하며 손바닥으로 착 감기듯 때리면 소리와 손맛이 제법 나쁘지 않을 것 같은 연기자의 희멀건 엉덩이처럼(어느 영화배우들이여,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릴께요, 전 아니에요), 모든 팬레터에 정성스레 손편지 답장을 보내 독자를 평생지기로 감응하도록 만들었던 어느 여류 작가와도 비슷하게 그 속내를 단 하나도 숨길 수 없다.
일단 글씨를 좀 더 반듯하고, 선명하고, 정확하고, 직접적이고, 간략하며, 간단하고 복잡하지 않게 쓰려고 노력해 봐야겠다. 그 반대의 또는 그와의 다른 모습의 글을 쓰고 싶으니까 글씨는 그렇게 고급 만년필이 아닌 펜글씨 학원에서 제일 값싼 나무펜으로 잉크를 묻혀 또박또박 힘있게 그러면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써내려고 시도는 해볼테다.
앞서 이런 걸 적었다. 그러고 보면 사소한 거나 중요한 걸 자꾸 반복하게 된다. 사람들 사는 삶도 하루하루가 이와 똑같다. 앞서 적은 것은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사랑하고 연애하며 사는 사람은 거의, 아예 없다는 그럴꺼라는 진단.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울려퍼지는 연주회는 그 일회성은 이 우주에서 단 한 번이다. 연주자가 연습을 꺼~뻑 넘어가도록 하고, 관객이 억~수로 모이지만, 팬들이 YouTube로 잡지로 뉴스로 엄~청나게 몰릴 테지만 그 일회성은 한 번이다. 그렇다고 서운하다거나 가슴 한켠이 찡해온다면 앞으로 살아가기가 종종, 왕왕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 그러지는 말자. 인간미는 잃지 않되 천진한 꼬마에게 존대말을 사용할 줄 알고, 낭만과 대화 주도권을 독점하지 않을지라도 무언가에 불문률에 빈말과 인사말에 철든 모습을 보여야 하리라.
또 시작했다. 글이 안 써진다. 그러다 슬슬 풀려서 다시 어쩌다가 쓰기 시작했다.
이것과 더불어 J는 반복되는 일상과 똑같이 '뭐 재미난 일 없나' 라는 널리 쓰이는 안녕이라는 질리지 않는, 그럴 수 없는 반복어 느낌이 나면서도 뭔가 특별한 여운과 생소하면서 멋진 감동이 조금은 약간 깃든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것이 그가 생각한 두가지 엉뚱한 자기 현재 삶의 스스로의 과제 가운데 첫째 덕목이었다.
둘째는 소설, 영화, 드라마와 같이 사는 사람들은 왜 없는 것이며 혹시 있다면 어디에, 과연 그들은 어디에 짱박혀 있을지 생각하고, 왜 도대체 왜 일반인들은 그와 같이 로맨틱한 삶을 살면 안되는지,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고민하는 가운데 보통 사람들의 잠재된 꿈, 연예 감각, 초의식등을 금광을 케듯이 노크 하면서 탐색해 보기로 작정했다. 아주 그냥 맘 먹고 작정했다.
잘만 되어 행운이 첨가 되고 어떻게 어떻게 실제 키스가 아닌 영화 속의 키스처럼 그 시간에 대한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면, 그 비밀을 알게 된다면 몇 개국에 책이 얼만큼 팔린 바이런적 유명세를 그 친구 녀석들이 꺼려하고 도외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때때로 무관심은 어느 정도 필요하고 유익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께서도 신문이나 TV, 인터넷에서 유명하신 분과의 친분을 과거의 과오나 한낱 낯부끄러움으로 여기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독자께서 그런 친구분이 없을지도, 그런 친구가 있어도 살가와하지 않을 확률도 조금은 있다. 불운의 미덕.
J는 그래서 본인 집에서 해오던 생활을 그대로 쭉 그대로 똑같이 이어서 생활하면서 몇몇 가정을 해보고 실재 테스트를 하거나 그런 정황들을 찾아 떠나거나 그들─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배역처럼 사는 사람들─을 앞으로 정말 만나게 된다면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악수를 해야할지 아니면 호통을 처야할지 그것으로 그의 생각이 쓱 옮겨갔다.
해도 해도 안되면 누가 그랬듯이 모든 걸 기록하리라.
내가 만일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라면 상류층, 예술가, TED 관객석에 앉는 사람들, VVVIP 고객 리스트, 고품격 어른들만을 위한 그 범주만을 만족시키는 옷이나 시계와 기타 제품들을 디자인 하고 싶지는 않다. 초딩도 중딩도 고딩도 Starbucks 주고객도 노학자와 그 배우자까지 모두 다 만족시키는 옷을 만들고 싶다. 저는 바로, 나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 '요즘 젊은 것들...'이 주-레파토리인 분께 걸리면 어떡하지, 하긴 어쩔 수 없겠다. 음, 만인을 위한 소설이라... 정말? 지금 그러고 있을까? 놀고 있네. 뭔 말 같지도 않는 말을. 새빨간 보라색 거짓말. 웬걸 딱 보니 기준이 모호한 상류층 중년 여성과 남성 남자가 메인 타켓이구먼(만). 아니면 머더 쇼크를 겪은 1차 양육자가 나중에 바가지 득득 긁는 전형성에 덜 빠지도록 옆에서 잘 뭐 한다거나 사고만 치지 않기를 바래야 하는 강한 남성이 잠재적인 고객일까.
혹시 그 팬층으로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성향의 상류층까지 포섭할려는지도 모른다. 팬? 팬층? "떡 줄 사람 의향은 아랑곳없이 김칫국부터 먼저 마신다는 얘기가 있지 왜" 어쨌든 그런 드라마에 나오는 상류층의 모습을 그려본다.
중후한 검정색 최신-대형-최고급-세단이, 바깥도 블랙, 실내도 블랙, 큰 빌딩 앞으로 들어선다. 차 안에는 어느 거대 기업의 회장님과 그의 비서가 타고 있다. 회장님 캐릭터는 그만큼의 비즈니스 성과는 이뤘는데, 앞만 보고 전력질주하며 인생을 살아왔는데 객관적으로 봐서 성미는 약간, 약간 고약한 주인공. 속물스럽고 (애매한 표현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두 비범 안 한 통속이지만, 속물스러우면서 매력적인 사람 쌔고 쌨다) 탐욕적인 혼자 늙어가는 70대 회장님.
그 순간 중후한 검정색 대형 세단 옆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온 듯 보이는 멋쟁이 중장년 유명인 노신사분이 어느 젊고 밝고 명랑하고 아리따운 아가씨와 다정하게 그리고 숨길 것 없이 편안히 걸어가신다. 이를 보고서,
- 비서: 야~ 스타일 죽이시네. 저러니 스캔들이 끊이질 않지.
- 회장: 저게 무슨 짓이야 저게~ 나이 먹고 추접스럽게.
판타지 드라마는 그 회장님을 30대 청년으로 젊게 만들어서 진행한다.
불만스런 표정을 많이 짓지 않는 사람에게 사용 빈도가 낮고 퍽이나 긍정적인 단어라 하기 어려운 표현, 추첩하다. 희미한 웃음의 잔상이 잊혀질 듯 하면서도 어느 때인가 환기되어 나도 모르게 떠올려보곤 하게 만든다. 보는 사람 뿐만 아니라 만드는 사람들과 연기하는 사람들 모두 한참 웃었음이 틀림없다. 저게 무슨 짓이야 저게~
첫번째 행동 양식 다짐에서 떠오른 걸 하나 응용하자면 이렇다.
- ( )가 그럴 수 있을까?
- ( )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괄호 안에는 일반 명사도, 그대의 이름도 넣을 수 있다. 또는 둘 다 넣어도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의 이름이 제인이라면,
- 여자인 제인이 그럴 수 있을까?
- 여자인 제인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있구나).
1과 2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놀지 않기를, 한 사람의 마음에서 그저 공존할 수만 있기를 바라는 사색에서 다음과 같은 상상을 J는 하고 있다. 아니 그는 상상이 아니라 먼저 천재 작가처럼 일단 쓰고 그 다음 따라하는 이런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 느슨해지면서 제 기능을 못한다는 진단이 나온 이상 그 모래시계를 뒤집기로 했다.
아무래도 상당히 생뚱맞은 감이 있지만 약간 술술 풀릴 기미가 보이다가, 감이 눈앞에 아른아른하면서 딱 잡힐랑 말랑 하다가 미꾸라지 마냥 쏙 빠져나가니까 새로운 기법을 도입해 볼 적절한 시기라 판단했다. 요약하자면 대타!
J는 어느 날 왠지 본인의 옷차림이나 말발이나 분위기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카페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시골 동네가 아닌 사람이 제법 많이 사는 도시라면 썩 떠들썩한 국제적 도시─가령 싱가폴, 홍콩, 뉴욕, 런던─가 아니더래도, 가본 것 만으로도 교양이나 학식이 나도 몰래 남달라질 것 같은 대도시─즉 익히 아는 나라별 대도시들─가 아닐지라도 신비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만 드물게 대하는 후광, 명-조명 디자이너가 설계한 마술적인 간접 조명,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가 아니라 오른쪽 종아리에 살짝 1초쯤 짜릿한 정도의 감동이 느껴지는 카페들이 군데군데 구석구석 숨겨진 보석처럼 숨어 있다. 정말 있긴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면 그런 카페는 대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나 다른 동화에 나오는 그림처럼 한동안 운영되지 않다가 어떤 날 갑자기 활성화된다. 키 2m, 얼굴 UFC, 검정 블랙 무광택 2버튼 수트와 모든 빛을 흡수할 것만 같은 세무 구두, 벨트는 폭이 넓은 거 말고 얇은 타입에 음악을 듣는지 귀에다 뭘 꼿고 있는 차림새의 무시무시한 포스를 감추지 못하는 문사들과 그 수장 또는 팀장이 보인다. 운동인이 유식하지 않다는 편견은 버리자. 카페 주변으로 보이는 번쩍번쩍한 대형 차량들과 클래식, 수제 자동차들이 그림을 받춰 주는데 이런 풍광은 보통 중소 도시에서는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J는 느닷없이 덥썩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게 생겨난 주관이라는, 그놈의 주관이라는 녀석 때문에 그냥 어떡하다가 여기 저기 좀 돌아다닌 끝에 딱 감이 오는,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뜬금없이 잘 나가는 유명인을 거기서 처음 보고─인사 나누고─급하게 친해지고─코 삐뚤어지게 같이 취하고─바로 단짝 친구하기로 약속하고─전화번호 교환하고─SNS 친구 맺고─다음 번 만날 때는 그 친구집에 놀러도 가는 그런 요행을 경험할 듯한 기운이 느껴지는 카페를 발견했다. 마치 '아니 어떻게 이런데 이런 카페가 있었지', '오 이런 아니 내가 이런데를 왜 몰랐던거지.' 같은 혼잣말이 자동으로 나올 것 같은, 일단 출입문 문짝이 입 쩍 벌어지게 크고 육중하고 자세 딱 나오는 그런 카페 말이다.
그렇지만 키 2m, 얼굴 UFC······ 클래식, 수제 자동차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떠들석한 분위기, 소란스럽고 시끄럽고 머리 아프다.
여기서 그가 그 카페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운명의 문은 조용히 그리고 굳건히 닫혀버리는 것이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아무에게나 오는 게 아니다. (근로마, 지능마, 교육마, 재능마, 취미마, 지리마, 대중마, 제품마, 창발마, 타인마, 파트너마, 부부마, 가족마등 말타기 인문교양서 주변에 선물하기) 들어가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 들어갔드니 왠 은은한 컬러의─중저가 브랜드 의류에서는 결코 구경할 수 없는 그런 색감─원피스와 노매니큐어, 이상한 보도 듣도 못한─읽기는 했다─장갑, 한 분야가 아닌 여러 분야를 파고 들었을 듯한 지적 모험이 엿보이는 교양미, 태어나서 처음 맡아 보는 향수가 살짝만 감도는 묘령의 아가씨가 그를 반겼다. 또 그곳의 의자들은 어찌나 크던지 J는 살면서 그렇게 큰 푹신한 구름처럼, 구름보다 더 푹신하고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보다 더 달콤한, 완~전 거대한 의자는 정말 살면서 처음 봤다. 자주 쓰이는 말 랭킹 만년 최상위권, 지금껏 보고 듣고 먹고 읽고 만나고 가보고... 것 중에서 제일 카더라.
들어가자마자 마치 일부러 튼 것만 같은 음악, 그 음악은 고전음악가 누구의 미발표 작품일 것만 같고 실내 디자인? 괜찮아. 무서운 사람들? 없어. 기괴함? 약간 있어. 한마디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은근히 감 제대로 와서 너무 와서 오히려 섬찟할 딱 그 정도. 이러다 어디 잡혀가는 거 아냐 하는.
그래서 J는 속으로는 안절부절 했지만 의례 익숙하다는 듯이, 항상 생활이었다는 듯이 말투와 어조, 억양, 단어 선정에 무척 신경을 쓰고 그것의 연출이 드러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거동하면서, 문득 왠지 갑자기 지금 이 순간 예쁘고 앙증맞은 고급 찻잔에 너무 취하지 않을 향을 담은 에스프레소 한 잔과 위스키 스트레이트 한 잔을 같이 내어 주실 수 있는지 넌지시 부드러운 표정과 단정한 눈빛으로 시대를 혼미하게 뒤흔들었던 옛 영화배우를 흉내 내어 물어보았다. 이런 걸 생활 연기라고 하는 것일까.
카페 하나 발견 ─ 들어가 ─ 차 시켜 ─ 끝! 참 거쳐야 할 과정이 많고 설명이 한숨 나오게 길다. 문을 열고 닫을 때, 눈빛 하나 핑, 타인에게 건네는 실례한다는 말 한마디... 이와 연관되는 부분이 없잖아 있다.
J는 그 아가씨와 몇 마디 대화를 통해서 짧은 순간 그것 만으로 삶의 기쁨을 만날 것처럼 처음 만났는데 10년을 안 듯한, 10년을 교제해 왔는데 처음 만난 것처럼 그런 기대감에 가슴 모두는 아니고 부교감 신경 한자락 정도만 흥분하였다. 그렇다고 교성을 안주머니에서 꺼내놓지는 않았다. 그도 신중함이란 어느 때 절실히 필요한지 아는 나이가 되어버린 거다. 그걸 잘 모르면 좋은데, 마치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정거장에 제 때에 그 목적지에 간혹 내리지 못하는 그분들, 그분들의 뭔지 모를 심오한 사정처럼.
「혹시... (이 짧은 여운, 무척 중요하다) 산타페에 가보신 적 있나요?」 그가 물었다.
「네? 여기가.. 산타페인데요.」
딱 감이 온다. 동네 뮌헨 호프, 시애틀 빠 같은. 하지만 아직 실망할 단계는 아니다.
「혹시 말라르메의 시를 읽어 보신.. 왜 학창 시절이나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는 한 번쯤 시를 읽긴 읽자나요. 말라르메─순간 그는 아가씨의 표정을 읽는다─는 옛날 사람이죠. 고리타분한. 흠... 그런 책 아예 읽을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아는 남자가 그런 책을 좋아한다, 피곤하죠. 그럼요. 연락하지 마세요. 헤어지자고 하면서 슬쩍 마음을 떠봐야죠. (들릴락 말락하게 조용히) 잠수타, 도망가, 잊어, 가버려, 꺼져, 내 인생에서 사라져.」
그는 바로 은근슬쩍 직접화법으로 넘어왔다. 템포가 다시 고품격 화법을 건넬 시점이다.
「······」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아무 얘기나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어제 심각하게 수면 시간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 어제 잠 안 자고 뭐했어, 무슨 수면 관련 증후군이라도 있는 여자인가?
「마담, 이 개패는 어떤 연유로 이름이 산타페라고 지어진거죠?」
그는 아마도 이런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는 나에게 산타페를 아느냐고 물었다.' 또는 못 알아들어도 좋으니 유창한, 상당히 유창한 외국어로 혹은 교포 스타일로 더듬거리는 혀짧은 모국어를 발성하는 것을 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왜 그랬을까요?」
「······」 이 남자의 진솔한 쥐어 짜는 듯한 들키지 않을 정도의 포커 페이스가 약간 잠시 흔들렸다. 아니 지금 앵무새 따라하기를 구사하면 어떡하냐는 고개에서 목덜미로 이어지는 미세한 움직임.
아, 대답이 완전 짧다. 복잡하고 어렵고 따분한 건 좋아하지 않는 교양이라는 단어 자체를 어색해 하는 보그 걸인 것 같다. 그래도 사람은 매사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된다. 삶의 자세는 기본적으로 비관적이되 끊임없이 달의 뒷면을 음의 기운을 손 놓아버리면 곤란한 법이다. 그 반대도 괜찮다. 둘 다 좋다.
「오, 여기 스피커 B&W네요. 앰프는 아마도 진공관...」 진공관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다.
딴청까지는 아니더래도 너무 순진한 구석도 엿보이고 헛기침이나 냉소가 슬슬 자신을 잠식해 오길래 J는 혼잣말을 시작한다.
「오페라 얘기는 쉽게 화제로 올리기 쉽지 않죠. 드라마에서 오페라 원작 책을 들고 있는 한 사람과 그걸 매개체로 말을 트는 이성을 만나 이어지는 우연, 순전히 개뻥이죠. 여자들이 그냥 대놓고 말하는 게 현실에 그리고 합격점에 가깝죠.」
이제는 거의 일인극이다.
「오페라, 음 오페라... 하품난다. 하지만 알고 싶다. 보고 싶다. 살면서 한 번쯤은 길지는 않겠지만 빠져보고 싶다. 그 아리아는 너무 좋으니까, 황홀하니까, 절대 싫어할 수 없으니까, 도저히 좋아하는 마음을 외면할 방법이 없으니까. 나... 언제 오빠랑 같이 보러 가고 싶다.」
대화를 문어체로 이끌고 이끌리고 이어가는 기술과 센스, 현실을 탈출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불멸의 카사노바가 주로 애용한다는. 사랑의 미로에 빠진다는. 어쩔 수 없이 유혹하게 만들고, 꼬리치도록 원격 버튼을 누르고 그렇게. 이 소설에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단어와 자주나 가끔 나오는 낱말들까지.
「그거 있잖아 그거. 영화에서 킬러나 요원, 올림픽 선수처럼 한 손으로 드는 안경. 그거 뭐라 부르지? 안경은 내가 아니 오빠가 쓰고 있는 게 안경인데. 아무튼 그거 말야. Flickr에서 제일 괜찮은 사진 찾아서 가면도 하나 준비해 볼까? 귀찮겠다. 콘서트장 가는 날 낮잠이나 많이 자 둬야겠어, 그치?」
이 혼잣말을 상대방 들으라고 했는지 그냥 영화의 나레이션처럼 그의 머리 속에서 필름을 돌렸을지는 산타페에 가 보아도 잘 모를 것이다. 도대체 산타페는 어디 붙어있는 동네야, 껌딱지야 아니면 근처에 개미 한마리 얼씬거리지도 못하는 부촌이야? 설마 산타페에 살고 있는 주민이 이 글을 읽을리는 없을 테고.
<아이고, 그 머시기 그랑께 완전 허당이구만>
어, 사투리를 넣으니 하디 느낌이 나는데, 이런 왠 떡이야.
<김샜다. 에이 좋다 말았네.>
하지만 이건 온전한 관심에 친절을 얹혀 배팅했는데 전자에서 후자를 빼니 결례라고, 그렇다고, 그러니 이제 당신에게 실례를 만회할 기회를 쉽게 허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꼭 그런 속삭임 같다. 뭐 탐정 수업, 메쏘드 연기 연습, 명장면 따라하기는 아닐지라도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이 아저씨가 발길을 옮긴 곳은 락카페다. 지가 무슨 겨울 남자야 알랑 드롱이야, 국제 요양원에라도 가본거야, 국제 요양원이 아니라 국제 정신병원이 더 어울리겄다. 그려~ 그라제.
1980년대 경음악과 1970년대 아트락, 프로그레시브락, 1960년대 재즈와 지금 유행하는 최신곡에 바로크 메탈과 고전 음악까지 가리지 않고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곳이다. 그가 입장할 때 나오는 노래는 프랭크 시나트라!
그곳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영상과 관객과 DJ가 있는 곳 그리고 캐쥬얼한 바와 테이블과 당구대가 있는 곳. 두 영역은 전면 유리로 구분되어 있다. 투명한 유리로 개나 고양이와 새도 그 투명함을 잘 알아차리지 못할 듯한 그런 경계.
마침 철지난 노래지만 1년에 1번 들으면 썩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가 라이브 영상과 함께 들리길래 그는 마음이 살짝 흔들려서 덥썩 그곳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다짜고짜.
쾅!
특수 방탄 유리였을까? 그 경계, 투명한 유리에 그는 얼굴을 정면으로 박았다. 파란색 트위터 새들이 짹짹 짹짹 짹짹. 코피가 나나 손으로 코밑을 스쳐보니 다행히 쌍코피가 아닌 콧물이 묻었는데 눈물이 핑돌고 완전 웃음거리가 됐다.
<아니 이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 웃기다고, 왜 사람들이 이리도 가벼워, 진중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단 말이야. 인생이 얼마나 심각한데 말이야.
괜히 어설프게 개 카페니 고양이 라운지니 여기저기 돌아다녀 봐도 별다른 썸씽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장르가 일반인 세계에 어딨어? 하기는 대번에 너무 손쉽게 작품 소재를 찾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결론났다. 뚝딱 한 번에 희한하고 특이한 주제와 사건은 만나기 힘들다.
이제야 그 비밀을 조금이나마 '그렇지 않을까' 하면서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판타지, SF, 스릴러 영화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알약을 먹거나 주사 맞거나, 뱀파이어에게 물리거나 어딘가에 감염되거나 해서 좀비가 된다. 그렇게 세상이 좀비화 된 상황에서 좀비 아닌 척 했다가는 훅 간다. 일반인과 이종이 키스하면 스파크가 튀고 기가 빠지면서 떡실신 한다. 돌연변이 미스틱이 변신하는 모습을 보고 보통 사람들은 무서워하고 기절하면서 공포에 빠진다. 당신도 나도 그대도 좀비가 되어야지, 그렇게 연기를 해야지, 사람의 의중을 읽고 다음 행동과 말을 예측하고 눈치를 살펴야지, 그대는 지금 행복할까? 나는 현재 행복한가? 라고 자문 하게끔 매너리즘에 대한 견고한 둔중함의 마취를 깨워야지, 그래야지 현실 세계에서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다. 안 그러면 영화에서는 훅 간다. 안 그러면 이도 저도 다 놓친다. 운 좋으면 어쩌다 하나 걸릴 수도 있다.
인간적인 인간, 인간적인 좀비, 좀비스런 인간, 좀비스런 좀비, 곧 본질보다 액션 즉 좀비주의!
따라서 소설 먼저 쓰고 나중 체험하고 따라하고 흉내 내는 게 어쩌면 백번 나을 수 있다. 모래시계는 다시 원위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