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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4. 12. 4. 16:37

토니오 크뢰거/토마스 만
   이 감정이 대체 무엇일까?... 한심한 모습으로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을 때... 나를 비웃겠지? 그래, 그럴 거야. 넌 당연히 그럴 거야! 설사 내가 혼자서 교향곡을 아홉개나 작곡하고,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쓰고,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고 하더라도 너에겐 영원히 나를 비웃을 권리가 있어.

   어느 날, 어느 하루 그대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날, 하루 1가지 착한 일 하기 룰을 지킨 날, 금연이나 금주 며칠째, 술 회사 또는 담배 회사 주식을 처음 산 날, 생애 처음으로 별똥별을 본 날, 그저 아무일 없이 당신 혼자서 온종일 거리를 정처 없이 싸돌아 다닌 외로운 당신 생일날, 다시 언젠가 천동설이나 지구 내계 미지인 생존설이 대두되어 가슴을 뻥 뚫어주는 신기한 일이 발생할 것만 같은, 그렇게 기분 이상한 날 당신이 길을 가고 있는데 누군가 당신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전직 배구선수로 활약했을 법한 액션으로─빡- 정통으로 후려치는 것과 동시에 뭐라 뭐라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반가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들이댄 후, 고개를 돌리는 당신과 그가 서로 마주보는 순간의 그 생경함!
   그것을 직접 경험한 사람은 대부분 드물고 대개는 코메디 방송으로 삶의 나이와 경험이 그러길 원하지 않을지라도 어쩔 수 없이 축척되는 동안 여러 번 보게 된다. 이것을 흔한 공통의 유머 코드라고 한다. 남녀노소, 동서고금 어떤데 갔다 놓아도 대박은 아니지만 안전하면서 아주 작게는 웃길 수 있는 정도의.
   이런 유머만을 모아서 방송하는 TV 코메디 프로그램을 인문-교양서로 비유할 수 있다면, 그래도 된다면, 그런 웃기는 장면이 간혹 예상치 못하고 불확실하게 듬성듬성 나오는 방식을 소설로 또는 영화로, 드라마로 갖다 붙일 수 있다.
   주변에서 보면 평소에 잘 웃지도 않고 맨날 무게만 잡거나, 심각하고 어려운 얘기만 하거나 날이면 날마다 작업 얘기만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분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중급 이상의 처세술이 필요하다. 또는 똑같이 행동하거나 아예 듣기만 하는 방법도 있다. 이와 같은 극명함의 건너편에는 시도 때도 없이 무조건 아무 말만 하면 항상 웃는 실없이 웃기만 하는 가짜 웃음 효과음을 트는 코메디 방송이 있다. 가짜 웃음도, 가짜 웃음 소리를 듣는 것도 또 평소에 유하고 웃기고 하이-개그 센스를 아는 사람과 가까이만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고 하지만.
   자~, 자아~ 언제 웃길 줄 모르는, 웃기는 커녕 화내고 얼굴을 찡그리게도 만들었다가 눈을 똥그랗게, 고개를 갸웃, 엉덩이에 땀을, 종아리에 힘을, 저거저거 나중 따라해야겠다고 두뇌에 생동감을 주다가, 생기를 얻고 감동도 느끼며 삘을 받다가 그러다가 갑자기, 갑자기 웃겨! 이건 뭔가? 이건 뭐랑 닮았을까? 바로 중독에 대해 둘째 가라면 서러울 낚시와 도박과 닮았다. 그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 언제 잭팟을 터트릴지 모르는 기대감과 잔잔하게 밑바닥에 납짝하게 엎드려 있는 준비된 흥분, 그런 어떤 기분들.
   그건 그렇고 이 얘기를 왜 했을까. 1.이번 챕터 뒷부분에 나오는 카더라 설명에 대한 밑밥을 위해서 2.당연히 글이 안 써지니까 했을 것이다. 꼬박꼬박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악마의 블럭 현상. 글쓴이는 간혹 글이 잘 안 써진다, 어쩌다 얻어 걸리듯 가끔 써진다, 게다가 정작 독서량도 따지고 보면 얼마 안된다, 독자는 천재다, 일반인은 행복해야 한다, 한다고 했지만 띄운다고 띄우지만 피차 부담감은 덜어야 하나 보다.
   J라는 이니셜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어딘가로 사라졌다. 감쪽같이! 숟가락을 휘는 염력을 살포시 넘어서는 지상 최대의 마술처럼. 전광석화와 같이, 희랍 신화처럼, 신출귀몰하게. 그리고 그리고 마침내 2인칭이 돌아왔다. 저저저 앞에서 얘기한 2인칭 작법을 시도한다면 당신은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 치운 유명 작가들처럼 글을 쓰고 싶어할 것이다. 뭐 고민할 필요없이, 항상 서재 안에서만 또는 기괴한 복장을 입은 상태로 타자기를 두드리며 꼭 그 상태로만 글을 써야 한다는, 그래야지만 글이 써진다는 강박관념도 없이, 지휘자처럼 제비-연미복에 최고급 이태리제 구두와 마법의 가죽장갑을 끼고 특수 제작 만년필을 손에 들지 않으면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징크스도 없이, 그냥 하루에 3번 커피 마시듯, 책상 위에 놓여진 향수를 뿌리듯, 빗으로 머리를 빗듯, 장소불문─변화무쌍─창작욕구─창의력 절정 상태로 그렇게 손쉽게 당신은 글을 쓰고 싶다. 말은 그렇게 한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거울을 몇 번 볼까? 코는 몇 번 풀까? 기침은 몇 번 하고? 남자는 평생 딱 3번 울어야 한다는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은 건너뛰고- 배꼽 빠지게 웃기거나 눈에 머가 들어갔거나 하품 자동반사까지 모두 포함해 평생 사람은 몇 번 울까? 잠은, 연애는, 사랑은... 이것을 바로 일상-인생-생계 그리고 삶이라고 부른다. 이런 날마다의 생활처럼 무심코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있다면 그는 괴물이다, 괴물 프랑켄슈타인! 그를 마주치자나? 그러면 겁먹은 표정과 어조로 감탄사를 토하며 소스라치게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으~~으~~ (발동동 발동동)
   그런데 이렇게 일하듯이, 놀듯이 글을 쓴다는 게 말이 쉽지 그게 잘 안된다. 이런 삐─삐─삐─ 글이 안 써질 때는 정말로 TV로 홈쇼핑 광고를 보다가 '어 저거 괜찮은데' 라며 혹 했다가~고민하다가~망설였다가 그래~ 하며 전화기를 들고 번호 찍고 통화 눌러서 험담 전문가와 통화가 연결되고, 이때부터 인정사정없이 그 누구에게도 아무에게도 피해 안 주고, 나 혼자─아니 당신 혼자─욕을 얻어 듣는 것이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서비스가 존재하는지, 있다면 있어도 되는지, 있다면 있어도 효과는 신통치 않아 보이지만 뭔가 방법을 찾아보고 싶고 그래서 골동품 파는 가게에 가서 요술램프를 찾는다거나 실존하는 선험자 파우스트와 가압류-근저당-설정 전문가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려면 번지수를 어디서 누가 언제 알려주나 하면서 몽환의 늪에 빠지게 된다.
   당신은 그렇게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카페 안에서 노트북을 켜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하는 것은 아마도 뉴스를 보거나 SNS를 하거나 쇼핑이나 메일 보거나 일하거나 웹서핑이 전부겠지만 왠지 저 사람이... 또 건너편 카페에서 다른 디자인의 노트북을 켜고 다리를 꼬고 혼자 중얼거리는 저 인간이 어떤 환상적이고 흥미롭고 아름다운 한 편의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얼빵한 상상을 하게 된다. 내 노트북 어딨어? 영화 노트북 나온지가 언제인데 노트북 타령이야 라면서. 이러면 사태가 심각하다. 아주 중증이다. 내가 아니라 당신이! 원래 이런 2인칭이 아니라 고품격 2인칭을 바랬었는데─말 그대로 거~의 진심이다─본의 아니게 그림이 기묘하고 분위기 어째 좀 이상하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유명 작가의 집을 털어야 하나? 혹시 붙잡히면 가디언 문학 분야에 특종감이겠다. 썩 내키지 않는다면 인디애나 존스 따라하기? 구석기 시대 방법이다. 아니면 일단 얼굴로 웃기고 말수는 적고, 절대 빠르지 않는 신중한 말투와 시적인 유머로 웃기는 어느 개그맨이─얼굴이 선천적인 팬더곰끕 다크써클에 저승사자 포스─이미 옛날에 많이 써먹었던 작업을─고전 서부극 카우보이처럼 밧줄로 만든 올가미를 이용해 한손으로 그걸 잡고 돌리다가 던져, 목에 걸렸다 치고 두손으로 영차 영차 잡아당겨, 이걸 맨손으로 저 앞의 그녀를 보고 모션만 그대로 시연하면 진짜 그녀가 당신에게 거짓말처럼 걸어온다는─따라해서 그 결과를 그대로 연애소설로 쓴다? 상황이 안 좋거나 최악의 경우 뺨을 얻어맞을 수도 있다. 싸대기 철썩. 임상실험은 완벽하지만 상용화는 글쎄-라고나 할까!
   그것도 아니면 중견 번역가의 거의 완성한 대작 처녀 작품이 저장되어 있는 노트북을 훔칠 것인가? 당신의 인생, 그동안 너무 평범했다. 그렇다고 도둑놈이 되라는 말은 아니다. 그럼 어쩌라고! 음 제법 평이한 방법도 있다. 대학교 문예창작과 수업에 몰래 참석해 청강해보는 것도 있다. 작품쓰기는 실패해도 띠동갑을 훌쩍 넘는 미남, 미녀를 만날지 누가 알겠나? 이마저도 아니라면 권하건데 썩 그럴듯한 복안도 없지 않다. 저명한 문학평론가, 그 중에서도 한 번도 소설을 발표하지 않은 학자를─왜냐하면 첫작품을 발표할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에─스토킹하고 그의 사무실을 알아내고,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철통보안을 뚫지 못했을 경우 그 사무실을 급습하여 그곳에서 버리는 쓰레기들을 뒤지는 최후의 숨겨진(쉿!) 비사 또한 있다.
   하지만 당신은 새가슴이다. 너무 평범한─평범한 게 왜 나쁘겠냐마는 적어도 특별하지는 않으니 달리 말하자면 밋밋한?─삶을 살아온 그대는 쉽게 큰 일을 터트릴 용기가 없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사기를 많이 당해서 그런지는 몰라도─만약 사기를 당했다면, 그것도 자주 당했다면 세계 최고의 말발, 사기꾼들에게 입담의 비법을 전수받지 않고 뭐했는가─꺼낼 카드가 당신께는 별로 많지 않다.
   제임스가 어떻고, 닉은 뭐하고, 하워드는 어디로, 마크가 무엇을, 알렉스는 알렉스의 친구의 전-여자친구의 사돈의 스승의 미발표 소설 보물 찾기를, 케빈은 발바닥 부상, 조니는 일주일 행방불명되었다가 51구역 서쪽 통문에서 19세기 복장으로 약 7.9년 젊어진 상태로 깨어나서 발견되고... 이 스토리를 쫓는 것도 저번에는 쉽게 풀릴 듯이 입꼬리 살짝 올라가게 뭔가 어떻게 어떻게 하면, 많이 쫑알거리지 않고 적당히 만담만 풀면 뭐 대충 쉬이 줄거리 나오겠다고 한 10% 쯤 안심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완전 어려워 보인다. 걱정이 태산이다. 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보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즐겁다고 웃긴다고 미치겠다고, 난 미치지 않았다고 하나같이 다들 흐뭇한 표정들을 짓고 있는지, 지금 세상이 기후와 무역, 통화, 기축자금, 유가, 월가, 물가, 머머가, 각종 전문용어들로 얼마나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당신은 길에서 발을 헛딛은 것처럼, 하이힐의 굽이 꺾인 것처럼, 나이가 꺾인 것처럼 명대사를 생각한다. 그렇게 명대사는 영화를 부르고, 영화 하면 원작이나 시나리오를, 원작이나 시나리오는 그 작가를, 그 작가라면 영화배우와 비교를 하게 되고, 그러면 당연히 십대 시절의 실망감을 떠올리고, 그 실망감의 왼쪽 날개는 명대사풍 뻠프질 < 동기부여식 말발 < 드라마적 말솜씨였고, 그러면 이 망상은 무엇으로 귀결되는가?
   그러므로 그들의 꼬리를 잘 살펴보자는 결론이 나온다. 당신이, 그대가 지금 즉시 결론을 내렸다. 그분들의 영혼, 철학이 아닌 꼬리는 어디에 있을까? 멀리 가지 않아도 삼천포로 빠지지 않아도 된다. 그분들의 웹사이트를 보면 된다. 보긴 봤는데 별거 없드라? 많이 보지 않아서 그렇다. 많으면 달라진다. 
   따라서 당신은 그 웹사이트 가운데 리마커블한 퍼플 카우, 핑크 잠수함을 발견할 것이다. 한 번에 하나만, 여러 할 일 가운데 하나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그렇게 발견한 웹사이트에서 압축된 의미의 황홀한 감각미가 돋보이는 당신의 두뇌를 마구 회전시키는 짧은 요약문을 찾는다.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을 것이다. 그걸 읽고 잘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 첫째, 초딩의 지적 수준이나 상상력으로 해석하기 둘째, 그것을 외국어라고 생각하고 의역이 아닌 직역하기, 원문을 외국어로 번역하고 역으로 재번역하기를 몇 번만 반복해도 배가 산으로 가다가 웜홀에 빠질 것이다.
   예를 들면, 어느 음험하지─꾸밈어는 하나로 충분하다─않은 노작가의, 아득한 관록미와 혼신의 예술혼, 파란만장한 인생이 엿보이는, 단순히 비밀과 재산을 맞바꾸지 않았을 듯한 어느 휴머니스트의 홈페이지에 이런 글이 씌여 있다. 참고로 외국어는 하나쯤은 익힐 필요가 있다. 교양에 대한 긴 말은 불필요하다. 단어의 비교로 충분하니까. 바이러스 : 균.
   오 쓰고 보니 말이 안되긴 하는데, 소설이라 하기엔 별로 어울리지 않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설득력 있어 보여. 아닌가? 아닌가? 아니야 아니야, (필름 빨리 감기) 설득력 있어- 설득력 있어- 설령 없드래도 혼자 마취되고 일단 써야 돼. (사기치고 있어, 뭔 뚱딴지 같은 말재간이야)

   "나는 전화를 싫어해요. 타이핑도 못하고 손글씨만 이용합니다... 도시에서 3일 이상 지내지 못해요. 그게 최대치죠. 번잡한 것도 싫어해서 사람들도, 미디어도, 그 어떤 사교들도 별로 반가워하지 않고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쓰고, 걷고, 수영하고, 술 마시는게 전부에요..."

   번역은 어렵다. 많이 어렵다. 약간 덜 매끄러운 번역은 근소한 차이로 읽는데 조금 힘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혼자있을 때 마구 험담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많이는 안했다. 정말이다. 해석하고 나니 생각보다 뭔가 있어 보인다. 진짜 있어 보일려면 인터뷰 같은 자료를 포함해서 엄청난 양을 번역하고 그 가운데 최고만 뽑아야 한다. 그거 언제 다해? 능력도 안된다.
   이 인용문을 보고 첫 느낌이 괜찮아서 이번 챕터의 발단이 되었지만 썰을 풀고 나니 뭔가 얘기가 돼. 이건 뭐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의식의 흐름일 것이다. 이 형세가 시나리오에서 배우의 독백을 닮았다. 시나리오─희곡─시나리오. 나이 들면서 몇몇 책을 읽고 살지만 희곡은 왜 읽기가 어려운지, 시도 자체를 하기 어렵게 악의 기운이 서려 있어서 책을 집어들기도 어려운데, 그건 한 번 빠지면 아예 풍덩 빠져버리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이골이 났다,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는 부담스러우니까 근대 희곡 뭐라고 뭐라고, 환멸을 느낀다, 고전 희곡 이러쿵저러쿵, 예상컨데 (희곡은) 일반 대사 반, 명대사 반일 텐데 왜 못 읽어? 이해할 수가 없다. 소설이 안써지니까 어떻게 하면 잘 써질까, 뭘 쓸까, 사고를 쳐? 라면서 번역으로 희곡으로 넘어왔다. 사람 환장하겠다. 누구긴, 내가 아니라 네가, 늬가, 정말로 당신이 그-대-가!
   당신은 젊었을 때를 생각한다. 눈을 감는다. 마음을 진정시킨다. 정신을 당신 몸의 영역 바깥으로 넓힌다. 숨을 내쉰다. 천천히. 숨을 들이쉰다.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은 그 상태로, 들리는 소리를 그냥 듣고, 눈을 감은 상태로 보이는 걸 그냥 보고, 우주의 에너지를 빨아들인다. 자, 나의 에너지도 일부분 당신에게로 건너간다. 하나, 둘, 셋. 자 빠져든다─빠져든다─빠져든다─에코─자아~ 빠졌다.
   어른들이여, 청년들은 아가씨들은 무모하니까 재미있다. 가끔 안 그런 이들도 있지만 그들에게도 방황의 시절이 필요하다. 그래야 시가 나오고 음악을 만들고 전문가가 되니까. 어른들은 아는 게 너무 너무 많으니까 아예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다. 다 아니까! 애들은 가위-바위-보 하고 카드 하나 뒤집고 돌고 때리고 웃고 뒤집어지고. 그리고 친구 둘이 길을 걷다가 저 앞에 보이는 전봇대까지 뛰어서 전력으로 뛰어서 내기도 안하고 그냥 뛰어서 간다. 둘이 비슷하게 도착할 수도 있고 근소한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그게 다다.
   에~이 하나도 재미없네? 좀 그렇다. 극사실주의는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것이다. 실제 현실이 전부 이런 모습이다. 백마 탄 왕자, 동화 속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 친구들도 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랑 학교를 나와 길을 걷다가, 회사에서 퇴근하고 친구와 어느 카페나 술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젊은 친구들은 모종의 사건을 꾸미기 위해 영화 같은 인연을 만들기 위해 이성에게 말을 건다. 첫눈에 반했다,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냐, 주말에 뭐 하시냐, 이렇게.
   젊음의 무모함에 그 너머의 노련미와 낭만, 멜랑콜리, 로맨스, 경탄과 심미안과 예술 그리고 믿기 힘든, 인지하기 어려운, 설명하기 까다로운 애모를 아는 젊은이는 안 그런다.
   앞서 가는 그녀에게, 옆 테이블에 있는 아가씨에게, 쓱 그렇지만 살며시 그리고 천천히 접근해서 한템포 쉬었다가 눈빛이 건너오면
   「저 친구와 제가 내기를 했는데, 혹시.. 둘 중에 누가 호감인가요?」
   또는 누가 더 슬퍼보이나요? 누가 상태가 더 안 좋아 보이나요? 그러면서 끝인사에 애매한 은근함, 따스한 미지근함을 남긴다. 함축적이면서도 다의적인 느낌의 상상에 보탬이 되는 여지를 가만히 놓아둔다.
   「아쉽지만... 다음에 우연히 마주치고 싶지만... 제 이상형에 가까웁지만 마음과 달리 연락처를 묻지 않을께요.」 1초, 2초, 3초, 4초, 4초 반. 4초 반의 반.
   「실례..했어요..」
   딱 말하고 목례를 가볍게 하고 살짝 슬로우 모션으로 돌아선다. 이때 아무 말도 하면 안돼. 절대 빨리 움직이지마. 여기까지. 뒤에서 다른 친구는 멀뚱멀뚱 보면서 생각한다. '저 자식이 대체 뭔 수작을 부리는 거야~'
   동시에 당신도 "이게 뭔 개수작이야, 이런 사기꾼 같으니라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같은 동화적 교훈도 없고, 주제도 없고 재미도 없어,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야, 에라 이런... 긁다 긁다 전혀 안 시원하니까 남의 다리 피나게 긁고 있어, 뭐야 그게~ 으이 증말~" 그러면서 험악한 말을 하며 당신은 손에 들고 있는 원고지인지 대본인지 수첩인지 그것을 구기고, 짓이기고, 찟고, 꺾고, 던지고, 물어뜯고 그런 후 벌떡 일어선다. 허리춤에 두손을 짚고서 고개를 돌리고 틀어서 올렸다 내렸다,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 "에이~ 못해먹겠네~", "에라~ 집에서 발 딱고 냉수 먹고 누워서 핸드폰으로 YouTube 켜고 검색이나 해라. 검색어는 '개 (한칸 띄고) 흥분', 'dog scared'도 괜찮아.' " 뭔가 답답하고 먹먹하다. 적당한 유행어는 당신에게로!

   인문-교양서를 많이 읽었거나 나이 들어 아는 게 많은 어른들은 독학으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분야와 절대 독학만으로 대성하기 어려운 종목을 잘 알지만, 그런 그분들에게 어떤 하나를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똑같은 대답을 듣게 된다. <많이 머머 한다, 대부분 똑같이 반응한다, 전체적인 조망과 새로운 롤모델은 어떻다>는 찰스 핸디식 비유-경험-통찰-관점의 포트폴리오 모델과 <데이터1, 데이터2, 데이터3 그래서 그래프 A와 밑줄긋기 B가 나온다>는 댄 에리얼리식 연구결과를 다 알고, 모두 읽었고, 원리 훤하고, 이미 생각했고, 기억하실 텐데, 자신만의 신이론을 곧 책으로 펴낼 텐데 하나같이 같은 답이 나온다.
   어떤 한가지가 무엇일까? 넌지시 대화 주제를 바꾸거나 갑자기 말을 꺼낸다. 단어는 큐브 퍼즐. 이 단어를 듣게 된다면 보통 어른들은 그것의 공식, 특히 공식과 방법, 종류와 경우의 수, 검색 제시어, 누가 잘해, 나는 어때, 어려워 보이지만 별거 아니야, 10초면 끝나 같은 지식이나 사례나 견적이라는 '인문-교양서'식 답변이 주를 이룬다.
   즉 태어나서 처음 본 모든 큐브퍼즐을 손쉽게 (처음 만져 보는데) 뚝딱 맞춘다는 선천성과 월등함이나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에 대한 얘기를 2명 가운데 1명에게서 듣게 되기는 아무래도 힘들다. 자동차 또한 그렇다. 뭔들 안 그럴까. 이건 마치 소셜 네트워크 프로파일에 보면 어떤 이는 포크로 콕 찍어서 뭐-뭐-뭐 구체적으로 브랜드를 고른 반면에 어떤 이는 도시, 영화, 문학, 커피, 광고, TV, 동물... 이렇게 넓은 개념을 좋아하는 차이와도 같아 보인다.
   설마 이거 모르시는 내용은 아니죠? 그럼~ 그대의 고결한 아찔한 지성은 절대 의심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오늘부터 그대는 독학으로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은 복권 당첨되듯이 거저 줘도 싫고, 왠지 기분 나쁘고, 다만 독학으로 밥은 벌어먹고 살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게 좋은 예언인지 장사 잘 안되는 점쟁이식 주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깔고 가는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안전하고 그리 나쁘지 않은 예언이라 할 만하다.
   마무리, 가제트 형사에 나오는 둔중한 저음의 악당 목소리, 의자에 앉은 뒷모습만 보이고 목에 펑크 (그걸 뭐라 부르지) 뿔 목걸이를 두른 고양이의 울음소리가─왜 고양이 소리는 다 울음소리인지, 고양이도 웃고 울고 짓고 노래부르고 다 할텐데 싸그리 다 울고 있데─잔잔히 깔린다.

   「다음번엔 반드시 명작을 쓰고 말테야. 음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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