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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4. 11. 14. 15:32

   그냥 대륙 횡단 특급열차, 위스키 스트레이트, 초딩 때 학교에서 배운 직렬 건전지 연결과 다르지 않게 쓸껄 그랬나. 괜히 이제 스텝 좀 밟아질 거 같으니 추운 날에 마음만 들뜬 볼이 붉은 어린아이 마냥 겁-없이 미리 안해도 될 고백처럼 병렬로 쓰겠다고 멋을 부렸을까, 감을 좀 잡았다 싶었는데 잡을 듯 하다 놓쳐 버린 파랑새, 애타게 담아둘 수 밖에 없는 가슴 아린 연정이나 수많은 여자들이 일생의 소원이나 희망으로 여기는 한 편의 소설 집필─이미 해냈다면 그 너머로 보이는 앨리스와 거북이와 신기루를 잡고 싶은 비련─에 대한 슬픔은 이렇듯 이리 꼬고 저리 돌리고, 아무리 알아 먹기 힘들게 글을 쓴다고 해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의─아니면 그저 발목이나 발─모습을 상상하는 남아 또는 상남자, 토실토실 새하얗고 찰싹하며 손바닥으로 착 감기듯 때리면 소리와 손맛이 제법 나쁘지 않을 것 같은 연기자의 희멀건 엉덩이처럼(어느 영화배우들이여,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릴께요, 전 아니에요), 모든 팬레터에 정성스레 손편지 답장을 보내 독자를 평생지기로 감응하도록 만들었던 어느 여류 작가와도 비슷하게 그 속내를 단 하나도 숨길 수 없다.
   일단 글씨를 좀 더 반듯하고, 선명하고, 정확하고, 직접적이고, 간략하며, 간단하고 복잡하지 않게 쓰려고 노력해 봐야겠다. 그 반대의 또는 그와의 다른 모습의 글을 쓰고 싶으니까 글씨는 그렇게 고급 만년필이 아닌 펜글씨 학원에서 제일 값싼 나무펜으로 잉크를 묻혀 또박또박 힘있게 그러면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써내려고 시도는 해볼테다.
   앞서 이런 걸 적었다. 그러고 보면 사소한 거나 중요한 걸 자꾸 반복하게 된다. 사람들 사는 삶도 하루하루가 이와 똑같다. 앞서 적은 것은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사랑하고 연애하며 사는 사람은 거의, 아예 없다는 그럴꺼라는 진단.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울려퍼지는 연주회는 그 일회성은 이 우주에서 단 한 번이다. 연주자가 연습을 꺼~뻑 넘어가도록 하고, 관객이 억~수로 모이지만, 팬들이 YouTube로 잡지로 뉴스로 엄~청나게 몰릴 테지만 그 일회성은 한 번이다. 그렇다고 서운하다거나 가슴 한켠이 찡해온다면 앞으로 살아가기가 종종, 왕왕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 그러지는 말자. 인간미는 잃지 않되 천진한 꼬마에게 존대말을 사용할 줄 알고, 낭만과 대화 주도권을 독점하지 않을지라도 무언가에 불문률에 빈말과 인사말에 철든 모습을 보여야 하리라.
   또 시작했다. 글이 안 써진다. 그러다 슬슬 풀려서 다시 어쩌다가 쓰기 시작했다.
   이것과 더불어 J는 반복되는 일상과 똑같이 '뭐 재미난 일 없나' 라는 널리 쓰이는 안녕이라는 질리지 않는, 그럴 수 없는 반복어 느낌이 나면서도 뭔가 특별한 여운과 생소하면서 멋진 감동이 조금은 약간 깃든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것이 그가 생각한 두가지 엉뚱한 자기 현재 삶의 스스로의 과제 가운데 첫째 덕목이었다.
   둘째는 소설, 영화, 드라마와 같이 사는 사람들은 왜 없는 것이며 혹시 있다면 어디에, 과연 그들은 어디에 짱박혀 있을지 생각하고, 왜 도대체 왜 일반인들은 그와 같이 로맨틱한 삶을 살면 안되는지,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고민하는 가운데 보통 사람들의 잠재된 꿈, 연예 감각, 초의식등을 금광을 케듯이 노크 하면서 탐색해 보기로 작정했다. 아주 그냥 맘 먹고 작정했다.
   잘만 되어 행운이 첨가 되고 어떻게 어떻게 실제 키스가 아닌 영화 속의 키스처럼 그 시간에 대한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면, 그 비밀을 알게 된다면 몇 개국에 책이 얼만큼 팔린 바이런적 유명세를 그 친구 녀석들이 꺼려하고 도외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때때로 무관심은 어느 정도 필요하고 유익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께서도 신문이나 TV, 인터넷에서 유명하신 분과의 친분을 과거의 과오나 한낱 낯부끄러움으로 여기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독자께서 그런 친구분이 없을지도, 그런 친구가 있어도 살가와하지 않을 확률도 조금은 있다. 불운의 미덕.
   J는 그래서 본인 집에서 해오던 생활을 그대로 쭉 그대로 똑같이 이어서 생활하면서 몇몇 가정을 해보고 실재 테스트를 하거나 그런 정황들을 찾아 떠나거나 그들─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배역처럼 사는 사람들─을 앞으로 정말 만나게 된다면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악수를 해야할지 아니면 호통을 처야할지 그것으로 그의 생각이 쓱 옮겨갔다.
   해도 해도 안되면 누가 그랬듯이 모든 걸 기록하리라.
   내가 만일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라면 상류층, 예술가, TED 관객석에 앉는 사람들, VVVIP 고객 리스트, 고품격 어른들만을 위한 그 범주만을 만족시키는 옷이나 시계와 기타 제품들을 디자인 하고 싶지는 않다. 초딩도 중딩도 고딩도 Starbucks 주고객도 노학자와 그 배우자까지 모두 다 만족시키는 옷을 만들고 싶다. 저는 바로, 나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 '요즘 젊은 것들...'이 주-레파토리인 분께 걸리면 어떡하지, 하긴 어쩔 수 없겠다. 음, 만인을 위한 소설이라... 정말? 지금 그러고 있을까? 놀고 있네. 뭔 말 같지도 않는 말을. 새빨간 보라색 거짓말. 웬걸 딱 보니 기준이 모호한 상류층 중년 여성과 남성 남자가 메인 타켓이구먼(만). 아니면 머더 쇼크를 겪은 1차 양육자가 나중에 바가지 득득 긁는 전형성에 덜 빠지도록 옆에서 잘 뭐 한다거나 사고만 치지 않기를 바래야 하는 강한 남성이 잠재적인 고객일까.
   혹시 그 팬층으로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성향의 상류층까지 포섭할려는지도 모른다. 팬? 팬층? "떡 줄 사람 의향은 아랑곳없이 김칫국부터 먼저 마신다는 얘기가 있지 왜" 어쨌든 그런 드라마에 나오는 상류층의 모습을 그려본다.

   중후한 검정색 최신-대형-최고급-세단이, 바깥도 블랙, 실내도 블랙, 큰 빌딩 앞으로 들어선다. 차 안에는 어느 거대 기업의 회장님과 그의 비서가 타고 있다. 회장님 캐릭터는 그만큼의 비즈니스 성과는 이뤘는데, 앞만 보고 전력질주하며 인생을 살아왔는데 객관적으로 봐서 성미는 약간, 약간 고약한 주인공. 속물스럽고 (애매한 표현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두 비범 안 한 통속이지만, 속물스러우면서 매력적인 사람 쌔고 쌨다) 탐욕적인 혼자 늙어가는 70대 회장님.
   그 순간 중후한 검정색 대형 세단 옆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온 듯 보이는 멋쟁이 중장년 유명인 노신사분이 어느 젊고 밝고 명랑하고 아리따운 아가씨와 다정하게 그리고 숨길 것 없이 편안히 걸어가신다. 이를 보고서,

  • 비서: 야~ 스타일 죽이시네. 저러니 스캔들이 끊이질 않지.
  • 회장: 저게 무슨 짓이야 저게~ 나이 먹고 추접스럽게. 

   판타지 드라마는 그 회장님을 30대 청년으로 젊게 만들어서 진행한다.
   불만스런 표정을 많이 짓지 않는 사람에게 사용 빈도가 낮고 퍽이나 긍정적인 단어라 하기 어려운 표현, 추첩하다. 희미한 웃음의 잔상이 잊혀질 듯 하면서도 어느 때인가 환기되어 나도 모르게 떠올려보곤 하게 만든다. 보는 사람 뿐만 아니라 만드는 사람들과 연기하는 사람들 모두 한참 웃었음이 틀림없다. 저게 무슨 짓이야 저게~

   첫번째 행동 양식 다짐에서 떠오른 걸 하나 응용하자면 이렇다. 

  1. (     )가 그럴 수 있을까?
  2. (     )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괄호 안에는 일반 명사도, 그대의 이름도 넣을 수 있다. 또는 둘 다 넣어도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의 이름이 제인이라면,

  1. 여자인 제인이 그럴 수 있을까?
  2. 여자인 제인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있구나). 

   1과 2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놀지 않기를, 한 사람의 마음에서 그저 공존할 수만 있기를 바라는 사색에서 다음과 같은 상상을 J는 하고 있다. 아니 그는 상상이 아니라 먼저 천재 작가처럼 일단 쓰고 그 다음 따라하는 이런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 느슨해지면서 제 기능을 못한다는 진단이 나온 이상 그 모래시계를 뒤집기로 했다.
   아무래도 상당히 생뚱맞은 감이 있지만 약간 술술 풀릴 기미가 보이다가, 감이 눈앞에 아른아른하면서 딱 잡힐랑 말랑 하다가 미꾸라지 마냥 쏙 빠져나가니까 새로운 기법을 도입해 볼 적절한 시기라 판단했다. 요약하자면 대타!

   J는 어느 날 왠지 본인의 옷차림이나 말발이나 분위기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카페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시골 동네가 아닌 사람이 제법 많이 사는 도시라면 썩 떠들썩한 국제적 도시─가령 싱가폴, 홍콩, 뉴욕, 런던─가 아니더래도, 가본 것 만으로도 교양이나 학식이 나도 몰래 남달라질 것 같은 대도시─즉 익히 아는 나라별 대도시들─가 아닐지라도 신비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만 드물게 대하는 후광, 명-조명 디자이너가 설계한 마술적인 간접 조명,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가 아니라 오른쪽 종아리에 살짝 1초쯤 짜릿한 정도의 감동이 느껴지는 카페들이 군데군데 구석구석 숨겨진 보석처럼 숨어 있다. 정말 있긴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면 그런 카페는 대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나 다른 동화에 나오는 그림처럼 한동안 운영되지 않다가 어떤 날 갑자기 활성화된다. 키 2m, 얼굴 UFC, 검정 블랙 무광택 2버튼 수트와 모든 빛을 흡수할 것만 같은 세무 구두, 벨트는 폭이 넓은 거 말고 얇은 타입에 음악을 듣는지 귀에다 뭘 꼿고 있는 차림새의 무시무시한 포스를 감추지 못하는 문사들과 그 수장 또는 팀장이 보인다. 운동인이 유식하지 않다는 편견은 버리자. 카페 주변으로 보이는 번쩍번쩍한 대형 차량들과 클래식, 수제 자동차들이 그림을 받춰 주는데 이런 풍광은 보통 중소 도시에서는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J는 느닷없이 덥썩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게 생겨난 주관이라는, 그놈의 주관이라는 녀석 때문에 그냥 어떡하다가 여기 저기 좀 돌아다닌 끝에 딱 감이 오는,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뜬금없이 잘 나가는 유명인을 거기서 처음 보고─인사 나누고─급하게 친해지고─코 삐뚤어지게 같이 취하고─바로 단짝 친구하기로 약속하고─전화번호 교환하고─SNS 친구 맺고─다음 번 만날 때는 그 친구집에 놀러도 가는 그런 요행을 경험할 듯한 기운이 느껴지는 카페를 발견했다. 마치 '아니 어떻게 이런데 이런 카페가 있었지', '오 이런 아니 내가 이런데를 왜 몰랐던거지.' 같은 혼잣말이 자동으로 나올 것 같은, 일단 출입문 문짝이 입 쩍 벌어지게 크고 육중하고 자세 딱 나오는 그런 카페 말이다.
   그렇지만 키 2m, 얼굴 UFC······ 클래식, 수제 자동차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떠들석한 분위기, 소란스럽고 시끄럽고 머리 아프다.
   여기서 그가 그 카페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운명의 문은 조용히 그리고 굳건히 닫혀버리는 것이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아무에게나 오는 게 아니다. (근로마, 지능마, 교육마, 재능마, 취미마, 지리마, 대중마, 제품마, 창발마, 타인마, 파트너마, 부부마, 가족마등 말타기 인문교양서 주변에 선물하기) 들어가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 들어갔드니 왠 은은한 컬러의─중저가 브랜드 의류에서는 결코 구경할 수 없는 그런 색감─원피스와 노매니큐어, 이상한 보도 듣도 못한─읽기는 했다─장갑, 한 분야가 아닌 여러 분야를 파고 들었을 듯한 지적 모험이 엿보이는 교양미, 태어나서 처음 맡아 보는 향수가 살짝만 감도는 묘령의 아가씨가 그를 반겼다. 또 그곳의 의자들은 어찌나 크던지 J는 살면서 그렇게 큰 푹신한 구름처럼, 구름보다 더 푹신하고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보다 더 달콤한, 완~전 거대한 의자는 정말 살면서 처음 봤다. 자주 쓰이는 말 랭킹 만년 최상위권, 지금껏 보고 듣고 먹고 읽고 만나고 가보고... 것 중에서 제일 카더라.
   들어가자마자 마치 일부러 튼 것만 같은 음악, 그 음악은 고전음악가 누구의 미발표 작품일 것만 같고 실내 디자인? 괜찮아. 무서운 사람들? 없어. 기괴함? 약간 있어. 한마디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은근히 감 제대로 와서 너무 와서 오히려 섬찟할 딱 그 정도. 이러다 어디 잡혀가는 거 아냐 하는.
   그래서 J는 속으로는 안절부절 했지만 의례 익숙하다는 듯이, 항상 생활이었다는 듯이 말투와 어조, 억양, 단어 선정에 무척 신경을 쓰고 그것의 연출이 드러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거동하면서, 문득 왠지 갑자기 지금 이 순간 예쁘고 앙증맞은 고급 찻잔에 너무 취하지 않을 향을 담은 에스프레소 한 잔과 위스키 스트레이트 한 잔을 같이 내어 주실 수 있는지 넌지시 부드러운 표정과 단정한 눈빛으로 시대를 혼미하게 뒤흔들었던 옛 영화배우를 흉내 내어 물어보았다. 이런 걸 생활 연기라고 하는 것일까.
   카페 하나 발견 ─ 들어가 ─ 차 시켜 ─ 끝! 참 거쳐야 할 과정이 많고 설명이 한숨 나오게 길다. 문을 열고 닫을 때, 눈빛 하나 핑, 타인에게 건네는 실례한다는 말 한마디... 이와 연관되는 부분이 없잖아 있다.
   J는 그 아가씨와 몇 마디 대화를 통해서 짧은 순간 그것 만으로 삶의 기쁨을 만날 것처럼 처음 만났는데 10년을 안 듯한, 10년을 교제해 왔는데 처음 만난 것처럼 그런 기대감에 가슴 모두는 아니고 부교감 신경 한자락 정도만 흥분하였다. 그렇다고 교성을 안주머니에서 꺼내놓지는 않았다. 그도 신중함이란 어느 때 절실히 필요한지 아는 나이가 되어버린 거다. 그걸 잘 모르면 좋은데, 마치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정거장에 제 때에 그 목적지에 간혹 내리지 못하는 그분들, 그분들의 뭔지 모를 심오한 사정처럼.
   「혹시... (이 짧은 여운, 무척  중요하다) 산타페에 가보신 적 있나요?」 그가 물었다.
   「네? 여기가.. 산타페인데요.」
   딱 감이 온다. 동네 뮌헨 호프, 시애틀 빠 같은. 하지만 아직 실망할 단계는 아니다.
   「혹시 말라르메의 시를 읽어 보신.. 왜 학창 시절이나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는 한 번쯤 시를 읽긴 읽자나요. 말라르메─순간 그는 아가씨의 표정을 읽는다─는 옛날 사람이죠. 고리타분한. 흠... 그런 책 아예 읽을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아는 남자가 그런 책을 좋아한다, 피곤하죠. 그럼요. 연락하지 마세요. 헤어지자고 하면서 슬쩍 마음을 떠봐야죠. (들릴락 말락하게 조용히) 잠수타, 도망가, 잊어, 가버려, 꺼져, 내 인생에서 사라져.」
   그는 바로 은근슬쩍 직접화법으로 넘어왔다. 템포가 다시 고품격 화법을 건넬 시점이다.
   「······」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아무 얘기나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어제 심각하게 수면 시간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 어제 잠 안 자고 뭐했어, 무슨 수면 관련 증후군이라도 있는 여자인가?
   「마담, 이 개패는 어떤 연유로 이름이 산타페라고 지어진거죠?」
   그는 아마도 이런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는 나에게 산타페를 아느냐고 물었다.' 또는 못 알아들어도 좋으니 유창한, 상당히 유창한 외국어로 혹은 교포 스타일로 더듬거리는 혀짧은 모국어를 발성하는 것을 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왜 그랬을까요?」
   「······」 이 남자의 진솔한 쥐어 짜는 듯한 들키지 않을 정도의 포커 페이스가 약간 잠시 흔들렸다. 아니 지금 앵무새 따라하기를 구사하면 어떡하냐는 고개에서 목덜미로 이어지는 미세한 움직임.
   아, 대답이 완전 짧다. 복잡하고 어렵고 따분한 건 좋아하지 않는 교양이라는 단어 자체를 어색해 하는 보그 걸인 것 같다. 그래도 사람은 매사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된다. 삶의 자세는 기본적으로 비관적이되 끊임없이 달의 뒷면을 음의 기운을 손 놓아버리면 곤란한 법이다. 그 반대도 괜찮다. 둘 다 좋다.
   「오, 여기 스피커 B&W네요. 앰프는 아마도 진공관...」 진공관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다.
   딴청까지는 아니더래도 너무 순진한 구석도 엿보이고 헛기침이나 냉소가 슬슬 자신을 잠식해 오길래 J는 혼잣말을 시작한다.
   「오페라 얘기는 쉽게 화제로 올리기 쉽지 않죠. 드라마에서 오페라 원작 책을 들고 있는 한 사람과 그걸 매개체로 말을 트는 이성을 만나 이어지는 우연, 순전히 개뻥이죠. 여자들이 그냥 대놓고 말하는 게 현실에 그리고 합격점에 가깝죠.」
   이제는 거의 일인극이다.
   「오페라, 음 오페라... 하품난다. 하지만 알고 싶다. 보고 싶다. 살면서 한 번쯤은 길지는 않겠지만 빠져보고 싶다. 그 아리아는 너무 좋으니까, 황홀하니까, 절대 싫어할 수 없으니까, 도저히 좋아하는 마음을 외면할 방법이 없으니까. 나... 언제 오빠랑 같이 보러 가고 싶다.」
   대화를 문어체로 이끌고 이끌리고 이어가는 기술과 센스, 현실을 탈출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불멸의 카사노바가 주로 애용한다는. 사랑의 미로에 빠진다는. 어쩔 수 없이 유혹하게 만들고, 꼬리치도록 원격 버튼을 누르고 그렇게. 이 소설에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단어와 자주나 가끔 나오는 낱말들까지.
   「그거 있잖아 그거. 영화에서 킬러나 요원, 올림픽 선수처럼 한 손으로 드는 안경. 그거 뭐라 부르지? 안경은 내가 아니 오빠가 쓰고 있는 게 안경인데. 아무튼 그거 말야. Flickr에서 제일 괜찮은 사진 찾아서 가면도 하나 준비해 볼까? 귀찮겠다. 콘서트장 가는 날 낮잠이나 많이 자 둬야겠어, 그치?」
   이 혼잣말을 상대방 들으라고 했는지 그냥 영화의 나레이션처럼 그의 머리 속에서 필름을 돌렸을지는 산타페에 가 보아도 잘 모를 것이다. 도대체 산타페는 어디 붙어있는 동네야, 껌딱지야 아니면 근처에 개미 한마리 얼씬거리지도 못하는 부촌이야? 설마 산타페에 살고 있는 주민이 이 글을 읽을리는 없을 테고.
   <아이고, 그 머시기 그랑께 완전 허당이구만>
   어, 사투리를 넣으니 하디 느낌이 나는데, 이런 왠 떡이야.
   <김샜다. 에이 좋다 말았네.>
   하지만 이건 온전한 관심에 친절을 얹혀 배팅했는데 전자에서 후자를 빼니 결례라고, 그렇다고, 그러니 이제 당신에게 실례를 만회할 기회를 쉽게 허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꼭 그런 속삭임 같다. 뭐 탐정 수업, 메쏘드 연기 연습, 명장면 따라하기는 아닐지라도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이 아저씨가 발길을 옮긴 곳은 락카페다. 지가 무슨 겨울 남자야 알랑 드롱이야, 국제 요양원에라도 가본거야, 국제 요양원이 아니라 국제 정신병원이 더 어울리겄다. 그려~ 그라제.
   1980년대 경음악과 1970년대 아트락, 프로그레시브락, 1960년대 재즈와 지금 유행하는 최신곡에 바로크 메탈과 고전 음악까지 가리지 않고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곳이다. 그가 입장할 때 나오는 노래는 프랭크 시나트라!
   그곳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영상과 관객과 DJ가 있는 곳 그리고 캐쥬얼한 바와 테이블과 당구대가 있는 곳. 두 영역은 전면 유리로 구분되어 있다. 투명한 유리로 개나 고양이와 새도 그 투명함을 잘 알아차리지 못할 듯한 그런 경계.
   마침 철지난 노래지만 1년에 1번 들으면 썩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가 라이브 영상과 함께 들리길래 그는 마음이 살짝 흔들려서 덥썩 그곳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다짜고짜.
   쾅!
   특수 방탄 유리였을까? 그 경계, 투명한 유리에 그는 얼굴을 정면으로 박았다. 파란색 트위터 새들이 짹짹 짹짹 짹짹. 코피가 나나 손으로 코밑을 스쳐보니 다행히 쌍코피가 아닌 콧물이 묻었는데 눈물이 핑돌고 완전 웃음거리가 됐다.
   <아니 이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 웃기다고, 왜 사람들이 이리도 가벼워, 진중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단 말이야. 인생이 얼마나 심각한데 말이야.
   괜히 어설프게 개 카페니 고양이 라운지니 여기저기 돌아다녀 봐도 별다른 썸씽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장르가 일반인 세계에 어딨어? 하기는 대번에 너무 손쉽게 작품 소재를 찾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결론났다. 뚝딱 한 번에 희한하고 특이한 주제와 사건은 만나기 힘들다.
   이제야 그 비밀을 조금이나마 '그렇지 않을까' 하면서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판타지, SF, 스릴러 영화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알약을 먹거나 주사 맞거나, 뱀파이어에게 물리거나 어딘가에 감염되거나 해서 좀비가 된다. 그렇게 세상이 좀비화 된 상황에서 좀비 아닌 척 했다가는 훅 간다. 일반인과 이종이 키스하면 스파크가 튀고 기가 빠지면서 떡실신 한다. 돌연변이 미스틱이 변신하는 모습을 보고 보통 사람들은 무서워하고 기절하면서 공포에 빠진다. 당신도 나도 그대도 좀비가 되어야지, 그렇게 연기를 해야지, 사람의 의중을 읽고 다음 행동과 말을 예측하고 눈치를 살펴야지, 그대는 지금 행복할까? 나는 현재 행복한가? 라고 자문 하게끔 매너리즘에 대한 견고한 둔중함의 마취를 깨워야지, 그래야지 현실 세계에서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다. 안 그러면 영화에서는 훅 간다. 안 그러면 이도 저도 다 놓친다. 운 좋으면 어쩌다 하나 걸릴 수도 있다.
   인간적인 인간, 인간적인 좀비, 좀비스런 인간, 좀비스런 좀비, 곧 본질보다 액션 즉 좀비주의!
   따라서 소설 먼저 쓰고 나중 체험하고 따라하고 흉내 내는 게 어쩌면 백번 나을 수 있다. 모래시계는 다시 원위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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