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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5. 6. 17. 17:03
무엇을 쓸 것인가. 질문에는 2가지가 있다. 아니다. 단 2가지만 있는 것도 아니고 딱 종류를 확정하기 어려운 성질의 물음도 많아서 단 2개, 라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어떤 글의 서두에 그리고 말의 초입에는 이런 정형화되고 많이 쓰이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야 일단 귀를 기울여 듣고 산문을 읽기에 몰입이라는 그래프의 기울기가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뭐에는 2가지가 있다, 이렇게 시작하는 대사, 모르거나 안 들어본 사람은 없다. 흡사 인사말처럼. 아차, 위 질문은 2가지 가운데 하나인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이제 문단을 나누어 위 질문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본다. 신들린 듯 재미난 이야기를 쭉쭉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쭉쭉 쓸 것 같다면야 그런 문장을 왜 썼겠나. 당연히 글이 안 써지니까 썼지. 요즘 왜 그리 다른 글이 멋져 보이는지 하다못해 낙서하는 것조차 분명코 하나의 재능이라는 사념이 커진다. 그런데 최근에 느낀 거지만 '글이 안 써진다', 이 말은 저저저번 맞나? 저저저번 챕터에서 썼던 <뭘 해도 재미없다> 이 말과 닮았다. 썩 유사하다. 누군가 개처럼 무슨 냄새가 나나 킁킁거리고 그 다음에 이건 뭐지 생각하고 그 너머에 있는 뭔가를 예상하고, 결국 계속 고민하다가 종내 주인님은 고양이를 편애해, 나보다 고양이 녀석을 더 귀여워 한단 말이야, 아무튼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 생각의 진행 과정은 뭐 재미난 일 없나, 뭘 어떻게 써야 재미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보통 열에 아홉은 아니 아니 열에 하나는 (쓸데없는 일이지만) 잡다한 생각을 그 변화를 글이라는 문자 체계로 옮겨 보면 그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뭔가가 발생한다. 자기도 몰랐던 생각 못 했던 뜻 밖의 그것. 그 뭔가가 재미있으면 상품을 세일즈 하는 것이고, 재미없다면 카드 마술도 엉망이여, 마술쇼 표도 안 팔리고, 마술사 평판에도 먹칠하게 되어 은퇴 날자를 앞당겨서 슬슬 푸드트럭을 알아볼까, 어떤 신비의 영약을 팔러 다닐까, 아니면 나와 같은 유랑 생활과 뜻을 같이 하는 동반자를 찾아 볼까, 하면서 몇 년도 뭐뭐 즉 자신의 연감을 새로 써야 할 것이다. 익히 알려진 탐정물에 보면 사건이 나온다.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사건이 요상하다. 아무나 해결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모인다. 탐정을 부르자고 제안하며 제청하고 모두 동의한다. 탐정을 부른다. 그것도 명탐정. 신출내기가 아닌, 외도 전문 탐정이 아닌. 명탐정이 온다. 사건 현장에 있던 편지를 본다. 읽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알아채지 못 했던 전보의 메시지나 가상 피의자의 좌우명, 살까 말까 망설이게 만드는 브랜드 선전 문구 같은 하나의 의제를 그 편지에서 발견해 낸다. 기발한 표어 그런 거. 1행, 2행, 3행... 가로로 씌여진 편지의 각 행 첫 문자나 첫 단어를 이으면 하나의 문장이 된다. 자, 여기서, 여기서 그 비문은 이 소설이다. 탐정은 그대, 독자다. 범인은 서술자다. 편지는 그의 수많은 생각들이다. 편지가 보내어진 계기와 그 전말도 그 번잡한 잡념이자 쓰잘데기 없는 번뇌다. 논리 아니다, 비유는 그럴싸했다만 은유는 형편없다. 뭔 놈의 은유? 탐정. 인자하고 성격 좋으며 능력도 뛰어난 탐정. 그가 괜히 안 먹는 술 먹고 깽판 부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명성이 자자한 명탐정이 일순간 진상으로 바뀌는 거다. 하루아침에. 소설을 쓸 때 생각 하나 하나, 글 한 자 한 자 매우 신중하게 심사숙고해서 써야 한다. 꼭 그래야 한다. 완전 잘 써지지 않는다면 글이 안 써지는 게 오히려 낫다. 음 생각을 하고, 생각하다가 또 딴 생각하고, 시선을 먼 곳으로 옮겨도 보고, 타인의 생각에 대해서도 떠올려 보다가 이게 글이 잘 써진다는 게 그냥 들이댄다고, 으아~ 하면서 들이댄다고, 그냥 해, 해버려, 왜 안 해, 그런다고 잘 씌여지는 것이 아니란 걸 절감한다. 왜 그런 것일까, 도 이미 많이 생각해 봤지만 쓸 데 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러니까 다음에 뭐가 써질지 냅두고 지켜보는 방법을 한 번 구사해 보는 공상을 헛되이 날려버리지 말고, 직접 그리고 지금 시도해 보기로 한다. 실패한다고 해도 글이 안 써지는 거 말고 다른 불이익은 아무 것도 없다. 손해볼 일 없다. 밑져야 본전이다. 일단 다음 문단에서는 전혀 딴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미리 선언하고 넘어간다. 그렇게 먼저 알리고 건너가면 어떤 부담감이 덜 할 것이다. 남자는 허풍에 능하다. 물론 명대사와 명강연과 자잘한 웅변도 가능하다. 요리조리 쥐었다 폈다 휘두르고 능변을 일삼고 이성의 이성과 감성을 설득하는 것은 분명 남아의 중대한 인생사 가운데 하나다. 곧 남자는 모두 재담가이자 입담꾼이다. 여자는 꾀병에 일가견이 있다. 귀재다. 아예 타고 났다. 당연히 생활 연기의 마녀다. 오만과 편견도 예술이다. 허지만 착하다. 감정 자체가 풍요롭다. 울었다 웃었다, 화냈다가 쾌활했다가, 장르를 바꾸고 또 바꾸고. 제발 비여 내리소서, 라고 기우제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소문의 신을 연기하면 그만이니까. 둘 다 거짓말쟁이네 심술쟁이네 뭐네, 라며 부를 수도 있지만 교집합도 있지만 그렇게 두 영역이 가지는 장점이 다른 것만은 분명코 사실이다. 극명한 딴 세상. 그럼 이제 그 둘을 합해 보자. Y─X─X. 합집합으로. 머머해 보자, 그래봅시다, 라고 독자를 꼬드기지는 않겠다. 독자를 군주이자 왕이자 기사에 백작과 공작이라고 상정하는 본인은 그대에게 조아리고 굽신거리며 또 볼품없고 품격없이 마냥 값싼 아양만 일삼지는 않을 것이며 고귀한 모습으로 그대의 녹을 받는다고 가정하여야 한다. 때문에 한 번 그렇게 해 보겠다. 남과 여, 그 둘의 장점, 그것을 합해 보겠다, 허락해 주소서. 부디. 그 시험을, 무모한 실험을 해보는 것을 슬쩍 눈감아 주옵소서. 만약······
만일 그대가 그 악흥의 간청을 들어주시기만 하신다면, 그대는, 당신은 앞으로 늙지 않고 영원히 기쁘고 즐거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물론 몸은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겠지만 획기적인 젊음의 기운이 무척 오랜 기간 영속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마법에 의해 탄생한 신비의 생명수를 마시지 않아도, 엄청 비싼 동기부여 세미나에 찾아가지 않아도, 이 요사스런 술책을 일단 들어보기만 한다면 그러면 당신은 삶이 더 없이 재미나고 산다는 게, 이승에서 숨쉰다는 것이 이렇게 흥겹고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고 아~차 하는 깨달음의 환희를 겪게 될 것이다. 오 즐거워라! 아 재미있어! 이야 놀라워라! 권태와 지겨움과 심심함은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그 자리에 사랑과 정렬과 젊음이 당신의 간택을 애타게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당신은 지금 현재의 사랑이 지겨운가? 그런가? 곧 그 사랑이 다시 제 2의 제 3의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당신은 지금 가난한가? 비루한 생활 형편이라고? 점차 점차 당신은 돈을 모으고 재산을 불리고 사기를 당하지 않고, 머지 않아 재력가의 반열에 올라갈 것이다. 재계에 알려지지 않아서 순위권에 보이지 않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당신은 그런 부자가 될 것이다. 일단 마음만이라도 그렇게 꼭 될 것이다. 할 수 있다. 못할 것 없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럼. 당신은 거울을 보니 괜히 슬퍼지는가? 우울해진다고? 당신은 날로 날로 거듭하여 예뻐질 것이다. 아름다워질 것이다. 꽃보다 아름답고 친구보다 귀엽고 어느 유명인보다도 성적 매력이 풍만해질 것이다. 왜? 순 거짓말이라고? 아니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당신은 진짜로 이뻐질 것이다. 이뻐질 것이다. 자, 거울을 본다. 보라. 보시라. 거 봐라. 내 말 맞자나. 뭐랬나? 이뻐진다고 하지 않았나. 벌써 이뻐졌다 벌써. 아까보다 좀 더 이뻐졌다. 이뻐지기를 멈추지 않는다. 어머 미쳤어. 오늘은 화장 별로 안 해도 되겠다. 벌써 그 만큼 이뻐졌으니까. 그 누가 당신을 보고 반하지 않으리. 미약하나마 당신의 천상의 미모에 대해 의심쩍은 눈길을 보내는 미소년이나 괴수가 있다면 소신에게 말하라. 꼭 내게 직접 알리든 두더지나 그림자 없는 사나이를 통해 알리든 반드시 알리긴 알려야 한다. 일단 알려라. 앞뒤 보지 말고 알려라. 뒷일일랑 생각지 말아라. 그리고 당신은 진짜 예쁘다. 화장품 브랜드의 선전 문구가 바로 당신에게서 실현된다. 맑고 화사한 피부, 장밋빛 수분 생기, 시간을 초월한 엘레강스, 고상한 관능미, 이런 뭐야 이거, 아니 이럴 수가, 식물이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 풍운아라면 어느 누가 위 속옷과 아래 속옷을 맞춰 입었고, 어떤이는 그러지 않았는지-까지 속 시원히 들여다 보일 것이다. 대양 너머로 당신에 대한 칭찬과 험담도 들린다. 지구 내부의 핵과 지하 세계가 들여다 보인다. 향취에선 개코 저리 가라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당신은 원래 예뻤던 것인지도 모른다. A는 잘 생겼고 B는 못생겼다, 심지어 당신은 아직 관례 상 가려서 말해야 하는 어법을 잘 모르는 꼬마 숙녀처럼 이런 얘기도 잘 하지 않는다. 어머나 마음도 예뻐졌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끝간데 없이 아름다워지고 있지 않나. 아마도 당신은 전생에, 전전생에 동화의 나라에 사는 숲 속의 잠자는 공주였는지도 몰라, 누가 부인하겠나. 그렇게 당신은 내일은 더, 내일은 더 더 예뻐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이 얼마나 눈부시게 신기한 세상이란 말인가. 그럼 이제 설을 많이 풀었으니 이야기를 이어 간다. 너무 오래 쉬면 안 된다. 채널 돌아가고 읽던 책 덮인다. 뜸을 너무 들이면 뺨 맞게 될 수도 있다. 변죽만 올릴 수는 없는 일이고, 깐족은 고품격 소설의 실질적 감격을 위한 미끼일 뿐이다. 자, 시작한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요? 정답, (버튼 누름) 뛰. 마음이 조급하시군요. 구호를 외쳐주세요. 네. (구호) 신비주의자! 네, 정답을 말씀해 주시죠. 여자를 만족시키는 것! 아이고~ 이 일을 어쩌나, 이 문제는 객관식 문제입니다. 물론 연습 문제는 아니구요. 객관식 보기 서술에 앞서 힌트를 하나 드리죠. 바로 질문을 아니 에잇 퀴즈쑈 식상하다, 집어치우고 방금 말씀하신 서투른 답변에 맞추어 질문을 바꾸어 보는 게 어떨까요? 여자를 만족시키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요? 하지만 어딘가에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군가 그런 진짜 신비주의자가 있을 것도 같고, 존재했던가 하면서 일부러 궁금함을 자아내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자꾸 사람 마음을 뒤흔들고 들뜨게만 만드는 꾸러기 낭만주의자의 팡파레가 들리는 것도 같구료. 잘 들어보세요. 들리는군요. 빰빠라바~ 빰빠빠빰빠바~ 좌우지간 몸풀기 문제이기는 하지만 선뜻 이야기 구술이 잘 안 된다고 늘상 시간 끌고, 서론만 늘이고, 하나 마나 한 소리만 되새겨서 내놓을 거라곤 허탕과 맹탕과 공갈 뿐이 없다고는 고백하지는 않겠소이다. 그래 봤자 더 이상 믿지는 않으시겠지만 요는 심쿵-하도록 판도를 바꿀, 놀라운 그 다음─그 다음─그래서─그래서─뭔가 있어─뭔가 있어─결국 뭔가가 있어야만 해─끝내, 끝끝내 어떻게 됐다, 를 극적으로 내놓고야 말겠다는 그 이야기 전개에 대한 애착과 탐닉과 열의와 애련은 이래 봬도 변치 않고 가슴 속에 굳건히 남아 있다는 걸 알려드리는 바이오. 하이 개그? 어디서 싸구려 농담, 언제 적 수작이야, 그런 반응 다 내다보고 있단 말입니다. 카프카의 소설 성에 나왔던 K가 끝까지 당도하지 못하던 성, 그곳은 바라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원하지 않아도 당신의 마음에 흡족하게 주변 정황이 돌아갈 것이며, 도통 모르는 게 없는 이곳 지상 세계가 아니라 모든 게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어떤 낙원이자 요원한 천국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성은 그늘진 신천지이자 재미없는 천국, 그래야 하지 않을까. 왠지 그럴 것 같다. 하루 아침에 불멸의 소설을 쓸 수 없다는 진리를 J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나 그 불가능의 작업을 언제부턴가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고 어쩌다 보니 계속 그 알 수 없는 것을 갈구하고 있었다. 소설 쓰기. 소설은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일까. 간혹 가다 아주 가끔 약간의 생각들을 글로 옮겨서 블로그에 남겨보기도 하지만 이건 성실성만으로 절대 포장할 수 없다는 텅빈 관념만 재확인하게 된다. 그리하여 24개의 인격들이 교대로 번갈아 가며 하나의 육신을 공유한 다중인격장애 정신이상자 빌리 밀리건의 협잡꾼 캐릭터와도 약간은 비슷한 그 녀석이 저번에 고급 호텔에서 팔자 좋게 살다가 어딘가를 탐색하다가 그가 살았던 도시로 되돌아왔다는 폐장된 놀이공원에도 가 보았다. 그곳에 들리면 다시 다시? 다시 없는 재능이 생기고 부족함이 없는 환경, TV 브라운관 안으로 쏙 들어갔다 빠져나와서 글을 쓰고 또 심심하면 쏙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에 그곳에 가 보았지만 아무런 이상 징후나 기운이나 어떤 징조나 영감, 착상, 소설 플롯의 착안 같은 새로운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흠, 아흐, 하면서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그런 일상을 보내던 그가 블로그에 비공개로 쓴 일기는 이렇다. 공개된 더 나은 정도의 연습 소설은 생략한다. 누가 댓글을 달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다. 자, 공개한다. <오늘 동물원에 갔다. 사슴을 보고 모여 있는 사슴 떼를 보고 우-우-우- 단음절로 소리를 내었더니 그들이 막 쳐다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손가락질을 했다. 사슴에게 미안하다. 사슴을 보면서 골세러모니가 왠 말인가. 그건 그냥 바디랭귀지였다. 사슴들이, 저 인간이 뭔 말 하는거야, 뭐하는 작자야, 하는 표정으로 응시하길래 잠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말이다. 동네를 산책할 때 저 사슴과 그 사슴을 보는 구경꾼의 눈빛을 보았던 것 같다. 기억난다. 어쩌면 아마도 자주 보는지도 몰라. 가끔 어느 집 대문 너머로 보는 강아지의 시선도 그렇고, 날 보는 사람들의 언뜻 스치는 그윽한 찰나의 쳐다봄 또한 사슴을 보는 나와 비슷하다. 매우 비슷하다. 완전 똑같다. 마치 유령처럼. 흡사 탐정같이. 허깨비가 아니라 백발백중 그 사람이 그 사람일 것이다. 그 때는 좋았는데 지금 뭔가 소름 돋는 분위기가 엄습한다. 매치 포인트다. 누군가가 보내는 신호다. 틀림없다. 직감이다. 이 일기가 어느 소설에 쓰이는 플래시백 기법이 될 것만 같다. 그냥 찍었다. 브라보!> 이 수필은 꼭 광인의 무슨 일기 같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거리에서 지포라이터를 하나 발견했다. 대단한 기호학자의 도움을 받을 만한 정도는 아니고, 공원에 있는 의자에 놓여 있던 지포라이터를 보니 마초들이 애용하는 유행처럼 이용하는 그 멋들어진 모션이 떠오르고, 첩보 용어 램프라이터도 생각났다. 그런데 그 지포라이터에는 그가 사는 도시의 놀이공원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놀이공원? 음 놀이공원. 그래 놀이공원. 회전목마, 대관람차, 롤러코스터, 마술의 집, 마법의 성, 환상의 숲, 바이킹 등등. 날씨 좋고 코스모스 꽃밭도 어여쁘고 어린이도 젊은 친구들도 많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괜히 가슴이 뛰어 즉시 시내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갔다. 도시의 행정 시스템은 잘 갖추어져 있다. 버스타고 핑, 도착. 그러고 보면 어지간 한 건 도시 안에 다 있다. 사람들은 모두 로빈슨 크루소고 그들이 사는 섬은 도시다. 완전 사이즈만 다를 뿐이지 딱 맞는 얘기다. 지포라이터는 버렸다. 선택받지 못했다. 녀석. 버스를 타기 전 예전부터 한 번 마셔보고 싶었던 에너지 음료를 사서 마셨다. 유체이탈 하는 생명수는 아니지만 마시면 행복해진다는 설탕물과 더불어 가장 짧은 시간에 활력을 가져다 주는 음료수라고 생각해서 한 번 마셔보고 싶었다. 음료수에 몬스터란 글씨가 씌여 있다. MONSTER! 놀이공원에 도착함. 이곳의 브랜드가 새롭게 변했다. 로고 디자인, 텍스트 로고, 기호 로고, 슬로건 모두 옛날 옛적 구형과 다르게 변했다. 남들은 모두 웃고 친구나 연인들끼리 왔는데 그만 혼자 왔다. 홀가분하고 걸리적거리는 거도 없고 자유롭고 좋았다. 잔디밭에 푸르른 나무들, 알록달록한 조형물과 신나는 음악과 서커스 분장 인형들이 보인다. 지난 기억도 떠오르고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파릇파릇해지는 것 같으면서 왠지 센티멘탈-해진다. 전에 이곳에 들려 다른 건 다 타봤는데 그건 안 타봤다. 딱히 재미없을 듯 하고 유치한 것 같아서. 오글거리지는 않지만 좀 간지럽달까. 딱 봐도 인공 하천과 모양만 비슷한 해적선을 타고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어두컴컴한 하마인지 괴물인지 지옥문인지 모를 그곳으로 들어갔다가 여기저기 돌고 몇 가지 보여 주고 물 튀기고 나오면 끝. 그게 뭐야. 초딩도 애들 장난 같으니까 안 타고 유치원생들이나 탈 것 같지만 그래서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문득 갑자기 이걸 타고 싶다는 욕구가 발동한다. 괜한 이유로 발동이 걸렸다. 정말 뭔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과 꼭 뭘 해야겠다는 의지가 원래는 그리 확실하게 자아를 움직이거나 잘 뒤흔들지 않았지만 그 이름이 불확실한 놀이기구를 보던 순간 퍼뜩 '아 타고 싶다' 라는 의욕이 솟구쳤다. 의구심, 불안감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 드디여 탔다. 배가 움직인다. 좀 낡았지만 괜찮다. 물결이 인다. 사람들이 쳐다본다. 다른 곳에서 환호성 소리도 들리고 비명과 웃음과 잡담 소리도 들린다. 영차 영차 배가 저 어두운 구멍으로 들어간다. 프랑켄슈타인의 식도를 탐색할 것이다. 그는 이 순간 고대 전설 속 탐험가다. 영웅이자 신화 속 비중 있는 주연이다. 조연이 아니다. 다른 배에는 사람들이 연인이나 친구나 모르는 사람이래도 몇 명씩 같이 탔는데 그가 탄 배는 J 혼자다. 평균 연령이라는 아킬레스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멈칫하며 같이 탈려다 말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뭐 괜찮다. 상관없다. 혼자인 게 좋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고 흉보는 위인도 없다. 동경하는 소년도 반한 모습의 소녀도 보이지 않는다. 드디여 괴수의 입안으로 배가 들어간다. 슥 들어간다. 다 들어갔다. 뭐야 이거. 시커멓고 까맣고 어둡고 뭔가 칙칙하고 음습한 데다가 조짐이 좋지 않다. 앞 배와 뒷 배와의 간격도 보통과 다른 듯 하다. 약간 덜컥거리고 빨라졌다 멈췄다 다시 가고 공포 영화 분위기 다음으로 물 좀 튀기고 딱히 색다른 건 없다. 역시나 그렇다. 그러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별안간 그가 탄 배가 쑥 꺼진다. 정상 뱃길을 이탈한 느낌이다. 누군가 뭔 버튼을 눌러서 그 배만 특수 협곡으로 빠진 것 같다. 그냥 그런 것 같다. 조금 가다가 배가 멈춘다. 이상하게 내려야 할 것 같다. 그곳은 바람과 소리와 향기와 자기장 등으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것 같다. 형세는 어두운 지하철 역 같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더 들어가니 왠 자동문이 있다. 지금은 도보다. 기분이 쌔 한게 계속 뭘 탈 것만 같다. 일단 걷는 것으로 힘을 뺄려나. 힘을 평소에 쓸 데가 없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의 앞에는 자동문이 있다. 자동문에는 질문이 하나 씌여 있다. <환상 특급 열차를 타시겠습니까?> 딱 보니 YES or NO 순서도처럼 어떻게 어떻게 해도 짜여진 각본대로 하나의 결론으로 도출될 수 밖에 없는 상황 같다. 거리에서 설문 조사 의뢰를 받고 설문 조사하는 아가씨와 급한 사랑에 빠져 1박2일 단둘이 밀월 여행을 떠날 일이 생기는 일상도 아닌데 이 정도 모험 쯤은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 결정했어. 가는 거다. 환상 특급? 좋아, 환상 특급. 환상 특급 아니기만 해 봐? 아니어도 괜찮다. 퇴로는 차단한다. 후퇴는 없다. 진격만이 있을 뿐이다. 행진, 전진, 앞으로! 환상 특급 열차에 입장 완료. 열차에 타긴 탔는데 열차 안에, 놀이기구의 일종으로 보이는 열차 안에 또 열차가 있다. 그래서 뭐 그냥 어쩔 수 없지, 하면서 그 놀이기구 열차를 탄다. 뭐야 또 놀이기구? 뭔가 이상하다. 타고 보니 이건 열차가 아니라 배 같다. 이름만 환상 특급 열차였나? 대체 몇 번을 들어간 거지. 수십 번은 아니고 단 몇 번인데 벌써 마구 헷갈리기 시작한다. 덜컹대는 덜렁이 배가 비밀통로로 들어간다. J가 내림. 터널로 들어간다. 아 보인다. 저 앞에 환상 특급 열차가 있다. 그럼 그렇지. 깜짝 놀랐다. 단계별로 조금씩 나왔다가 이제 진짜가 나오는 거구나, 하면서 조금 실망했다가 기운을 차렸다. 자 이제 탑승한다. 탑승. 간단하다.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 시간이 정지하는 것. 시간이 거꾸로 가지도 않고 정지하지도 않고 다 아니고, 신기하게 모든 게 슬로우 모션으로 진행되는 것, 시간이 느려진다고, 브~~아 음악 테이프나 동영상이 늘어진 게 아니라 시간이 느려지는 것. 그리고 시간이 앞으로 뒤로 옆으로 자유자재로 빨리 움직이는 것, 패스트 모션? 항간에서는 이걸 타임머신이라고 부른다. 멀쩡히 째깍째깍 부지런히 제 속도로 움직이는 거북이 같은 시간을 놓고 괜히 토끼처럼 이랬다 저랬다. 그리고 굉장히 희귀한 병 조로증. 그것에 대해 당신은 전혀 천연기념물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이에 해당하지 않은 것 하나만으로 천혜의 행운아인 셈.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이 얼마나 큰 차이인지, 어떤 건 전자가 좋고 때로는 후자가 더 나은지. 당신은 모르는 게 없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다. 물론 미래 인류는 덜 명석하지는 않을 테고. 지금이 10년 전보다 훨씬 경기가 안 좋고 엉망이며 힘들다는 얘기도 하지만 반대로 주가와 물가등 시장 지수는 계속 완만하게 올라간다. 10년 전보다 뭐하다는 말, 뻔하고 빤한 말 같다. 그 말대로라면 무덤에서 요람까지 그 말만 하고 그 말만 듣고 살란 말인 거다. 문제는 아는 게 너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식의 양도 다다익선이기는 해서 꼭 문제될 것은 없다. 어떤 엑스터시 알약에 의해서 경험하기도 한다는 놀랍도록 시간이 느리게 슬로우 슬로우 모션으로 느리게 느리게 흐른다는 직접 경험, 환각! 그걸 아무런 악마의 부작용없이 건전하게 경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방법은 이런 이벤트나 퍼포먼스일 것이다. 큰 광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즉시 멈추고 커다란 시계의 시침과 분침과 초침도 정말 멈추거나, 시간이 뒤로 가는 컨셉이라면 사람들이 지나온 행적대로 뒤로 움직여, 딱 당신 혼자만 빼고. 그럼 예상할 수 있는 반응, 상상만 해도 즐겁다. 이 놀이공원이 한동안 이걸 준비했었나 아니면 애초에 처음 만들 때 설계한 것일까. 하긴 거의 모든 고대 성에는 비밀 통로가 있다. 비싼 일반인 주택에도 있는 곳이 있으며 군사시설에는 당연히 있고, 도시에도 상수도와 하수도, 가스, 전기, 전화, 인터넷 등등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 모든 나라 단위 궁에도 음, 그렇다. 아니라면 엉터리다. 고대 로마의 도시 설계 구조, 세계 유수의 문화 유산, 피라미드는 대략 전세계에 약 10만개가 지어져 있다. 크고 작게. 큰 거는 한 1만개? 확인은 안 해봤다. 이런 놀이공원의 전례는 한마디로 매우 흔한 일이다. 영화에서도 그간 단골 메뉴였다. 앞으로도 단골 메뉴다. 거의 모든 아동들의 몽상이자 공상이며 새파란 작은 꿈, 아니 이젠 오히려 어른 마초들이 동화를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왠지 모르게 고료 얼마짜리 환상문학상 같은 상투에서 멀어져만 가는 느낌이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오오 아득하다, 이런 저 멀리 떠내려간다. 고료 얼마, 등대가 까마득히 멀어 보인다. 이런~ 곰발바닥 같은 일이 다 있다니, 아 이게 아닌데, 오오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슬며시 들며 뒷목을 잡고 한숨을 내쉰다. 안 그럴 수가 없다. 차라리 환상-문학을 모르고 소설을 쓰지 말걸 그랬나. 간절한 열망만을 간직한 채 돌아서기는 너무 아쉬워. 뭐야 이건 꼭 노래 가사 같잖아. 흔한 유행가 가사 말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만 같다. 뭐지 뭐지. 고료! 고료를 받는다면 음 근사한 옷을 살까.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그대로 모두. 그 옷을 입고 어디를 가지? 어딘가 가겠지. 가서 이질적인 기분을 느낄 테고 그렇다면 뭘 해야겠다 떠나야겠다는 생각도 할 테야. 또는 뭐 맛난 걸 값비싼 음식을 폼나게 사 먹을까 라며 계획을 세울 거라구. 남성 잡지를 뒤적이다가 '어 이거' 라면서 그걸 즉시 살 꺼야. 기계식 키보드도 사야 돼 아니 노트북도 한 번 가져보고 싶었어. 고작 고료를 받는다면 이런 사소한 소비 말고는 할 게 없었나, 라는 생각을 할 꺼라고. 세상만사가 그리 간단한가? 허무하잖아. 할 게 없다니. 뭘 할지 모른다니. 원하고 좋아서 한 일이라지만 결과물을 만들고 상과 함께 대단한 고료를 받았는데 그렇다니. 돈을 쓸 줄 모르는 거야 아니면 고료가 작은 거야? 뭔가에 홀린 듯 속은 것 같은 상실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낭만적 미스테리 공간을 헤매다 길을 잃어버린 듯한 비애. 억장이 무너지는 건 안 어울리고, 뭐랄까 완전 허탈해. 그러면서 속담 하나가 생각나. 속담은 때론 전혀 예상치 못한 웃음과 당혹감을 팍팍 안겨줘. 정말 그래. 그러다 푸른색과 다홍빛 카네이션을 마지막으로 사고 나서 돈이 떨어져. 그 다음에 글이 안 써져. 그럼 상황이... 상황이 매우 어둡네. 그렇다. 고료를 받더라도 돈을 아껴 써야 할 것이다. 적어도 다음 작품이 번듯하게 하나 탄생할 때까지. 고료를 누가 준단 언지도 없었는데 벌써 받을, 받아서 돈 쓸 잔머리를 굴리다니 오 이런 메흐드! J가 탄 열차, 그것은 열차라고 했지만 환상 특급 열차라서 그런지 뭔가 수상하다. 바닥이 움직인다. 마치 큰 공항에 가면 탈 수 있는 평면의 단면의 거의 수평으로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 그런 느낌이다. 감지되는 기운은 뭐랄까. 지구의 자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이동한다고 할까. 게다가 관성에도 영향을 받는 듯 하다.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잘 모르겠다. 꼭 우주장과 달의 장력도 느껴지는 것 같다. 삼투압이 뭔지는 까먹었지만 아마 관계가 있을 것이다. 바닥은 처음과 지금 모두 그대로지만 이동이 멈춘다. 그건 주변에 보이는 일종의 증강 현실, 가상 현실, 빛의 마술, 화려한 영상 때문에 알 수 있다. 당신의 앞에는 하나의 자동문이 있다. 당신은 이제 J다. 당신은 지금 J다. 당신은 지금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뒤를 돌아보면 돌이 되지는 않을 테지만 뭔가 불길한 감이 없잖아 있다. 자 따라한다. 절대 뒤돌아보지 마. 당연히 뒤로 가서도 안 된다. 선행 학습은 무수히 했다. 당신은 그간의 노고와 피와 땀을 허망하게 리셋하고 싶지 않다.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지치고 힘들 때 기운이 되고 도움주는 건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하지만 달래주고 다독이고 얼레고 토닥이며 구슬리고 설득하는 어조와 어투와 몸짓과 표정과 포옹과 진심 어린 눈빛은 말이나 글에서도 반드시 엿보여야만 한다. 그런 게 보인다면 그런 게 있다면 그 말이 티끌만큼이라도 먹힌다면 마음이 풍덩하고 빠지는 거다. 오케이~ 당신이 공중부양하고 있다. 아차 시간이 오바됐다. 미안하오, 낭자. 지존이여, 마초 후작이여, 드라큘라 백작이여 미안하오이다. 평소보다 조금 힘겨운 감이 있는 것 같소. 정말 그게 다요. 자 이제 붕 떴으니 가던 길 가고 하던 일을 합시다. 뭘 했드라, 어딜 만지고 있었지? 여기? 저기? 아니 한 번 더 더듬어 봐야 기억날 듯 하오. 아차 그대의 둔부가 아니라 요술램프를 쓰다 듬고 있었소. 잠깐 딴 생각을 하느라, 것 봐라, 웃자나, 일부러 무리한 노림수를 던졌지만 웃겼지 않는가, 아 힘들다. 솔직히 옛날에는 꿈에도 몰랐단 말이네. 난 정말 끈적끈적한 시선은 싫었지만 어느 날 내가 그렇게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단 말일세. 그러나 그것과 예술혼은 기실 같은 것이라오. 여자? 여자도 똑같소. 완전 똑같단 말이오. 방식은 다르죠. 그게 사람이 공룡처럼 멸종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해온 이유 가운데 핵심적인 크나 큰 이유라오. 멸종 오 멸종. 그랬다면 청춘이니 사랑이니 예술에 학문과 오락과 여흥과 작업과 여행 그리고 TV와 인터넷도 뭣도 없을 일. 다! 그게······ 이거로 연결되다니 나 원 별 요란한 요설이야, 왕자로 변할 청개구리 울음소리도 아니고 별의 별 얘기 다 듣겠네. 오늘 하루 프란츠 카프카만 물고 늘어져야겠소. 잠깐 카프카가 체코? 폴란드? 우크라이나? 오스트리아? 어디 태생이드라, 한 번 떠 본 거요. 체코요 체코. 미안하오. 살다 보니 이 머머 <하오-체>를 도저히 쓸 기회가 없었단 말이오. 드라마에서나 봐서 다행이지. 머머하는 걸로, 그런 <걸로-체>처럼. 카프카의 변신, 음. 뭔 이야기를 할려 했드라, 별 얘기는 아닌 것 같아 그냥 넘어가리다. 이제 그만 문어체에게 성화를 넘기겠소. 자동문. 당신은 지금 자동문 앞에 서 있다. 자동문이 열린다. 어렸을 때 동화에서 봤던 이야기는 어른이 되면 모두 거짓이 아니라 아는 사람들만 아는 현실이라는 걸 깨닫는 시기가 온다. 그 마법의 실현과 마주치면 당신은 임기응변에 능할지 행동이 굼뜰지 모르겠지만 변수가 너무 많다. 당신은 그 시기가 지났을 수도 있고 지금일 수도 있으며 아직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즉 일단 어떻게 해서 만난다 할지라도 그게 그건지 그 순간에는 잘 모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마치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처럼. 자, 자동문을 통과한다. 당신은 레테의 강을 건넜다. 각 단계의 중간에 뭔 문제를 풀어야 하는 퀴즈 같은 단락은 없다. 픽션과 현실의 차이다. 비밀 또한 현실에서는 없다. 레테, 개나 줘버리라고? 미천하지만 저와 같은 미물의 환상을 실망시키지는 말지어다. 자 당신은 전설의 소프라노, 그녀가 부르는 아리아를 듣는다. 그 음악을 들으니 오오 당신은 내게 조금 미안해 해야 하는 측은한 마음을 지녀야 하리라. 안 그러면 안 된다. 지금은, 지금은 무조건 성선설이다. 다른 거 다 필요없다. 지금은! 너는 자동문 안으로 들어왔다. 너의 앞으로 미술교과서에서나 보았던 명화에 나오는 곡선의 계단이 있다. 너무 우아하다. 완전 고상해. 바로 이게 너에게는 딱이다. 정말 적합한 조합이다. 황홀한 하모니. 너는 동화 속 공주로 태어났어야 진정 어울릴 텐데, 음, 남자라면 그냥 소탈하게 몇 백년 전 귀족? 계단을 올라간 후 딱 드는 느낌은 한 단어로 상쾌함. 왜냐하면 이곳은 바깥이다. 그런데 약간 반지하 원룸 같기도 하고 애매하다. 지금껏 한 번도 아나운서를 만나지 못했던 사람이 처음 아나운서를 대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느끼는 기분. 뭔가 정형화된 틀에 갖혀서 자신이 풀 수 있는 대화 주제나 형식에 대해 한계를 느끼는 것. 고루함은 아닌데 좀 이상해, 나 갇혔어 그런. 오랜 경력의 뛰어난 영화배우가 한 번도 소설가와 대화해 본 적이 없다가 처음 원숙함이 탄탄해질 대로 탄탄해진 소설가와 '소설의 영화화' 작업을 하면서 대화하고 자문받을 때 첫경험의 느낌. <와, 소설가는 원래 이런가, 우리와 말하는 방식이 아예 다른데, 일상적인 대화들과 달리 글이 머리 속에 씌여지자마자 그걸 구술하는 것 같다는 느낌? 완전 딴판이야> 그런 생경함에서 뛰쳐나오는 것과도 비슷하였다. 그렇게 싱숭생숭하고 들떠 있는데 너에게 무섭게 생긴 늑대들, 하이에나들, 개 떼들과 더 크고 무서운 동물들이 마구 뛰어온다. 하이에나의 악력 익히 봐왔다. 깊숙히 각인된 지식이다. 야수들의 정글 법칙. 호러. 킬리만자로의 표범. 너는 체신머리없이 교양은 저리 날려버리고 값싼 상스런 감탄사를 연발한다. 삐─ 삐─ 이거야? 이거였어? 이럴려고 여기까지 나를 끌고 온거야? 그렇지만 이 또한 딱 3초 무섭다 말았다. 모험의 전 과정에 단거리 전력질주 항목이 추가되었다. 가짜였다. 뭔 요상한 방법이었나. 술수. 비책. 그런 거. 신종 예술, 10년이나 더 지나서 유행할 것이다, 꼭! 지금 이전에는 드물게 곳곳에서 실험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같이 보자고. 재미있으니까.
'당신'을 '너'로 대치했다. 좀 더 직설적으로. 언어에 따라서 '당신'과 '너'가 같아서 구분이 따로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미묘한 차이를 달리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국어 사용자나 언어학자가 아니니까 뭔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추론해도 어른의 짠밥으로 찍어도 안 그럴 것이라고 내다볼 수는 없다. 교통 신호는 도로교통법에 따라 운영되지만 말은 꼭 문법에 따라서만 말하지도 않고 가끔 주위에 보면 1개국어만 쓰는 사람인데 꼭 1개국어를 자막이 필요하게 말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말은 알아 듣겠는데 글은 읽겠는데 자막이 필요해. 내일 아침이 되어야 아하~ 한단 말이야. 머리 속으로 생각해야 돼 자막을. 외국 영화처럼. 1개국어인데 꼭 이상하게 말을 한다. 웃음의 코드가 다른가 봐. 아차, 지금 웃으면 안 된다. 참아라. 꾹 참자. 내일, 내일 더 크게 웃어라. 지금 웃으면 이 소설이 고급이 아닌 것만 같아서 언짢다. 머머 해라, 잠시만 머머 해라-체를 쓰겠다. 참아주시라. 문법과 틀리게 말을 하거나 전혀 새롭게 글을 쓴다고 해서 경찰이 잡아가거나 민법에 기반해서 고소를 당하지는 않는 법이다. 시도 때론 그렇다. 시, 문학 옆에 있는 시. 소설도 드물게는 그럴 수 있다. 괴짜 작가가 쓰는 그런 소설. 이제 당신, 아니 너의 앞으로는 대형 제철소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웃기고 거대한 트럭이 있다. 지금껏 계속 옆은 없었다. 있었지만 갈 수 있는 교차로도 아니고 들어갈 수 있는 골목도 아니었다. 앞에 있는 것이 아니면 모든 것은 오직 너를 앞으로 가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듯 했다. 속도는 늦출 수 있지만 진행 방향은 바꿀 수 없다. 너는 일단 트럭에 탄다. 트럭이기는 한데 꼭 커다란 연회장에 들어온 것 같다. 아무래도 탱고를 춰야하지 않나, 그렇게 착각하게 만든다. 이 연회장인지 트럭인지도 멈추는 법이 없다. 처음의 진행 방향과 동일하게 또한 지구의 자전과 반대되게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움직이는 모든 이동 수단이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덜컥 겁이 난다. 너는 꼭 겁이 난 건 아니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너는 이렇게 생각한다. 딴 생각하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라. 어서. 난 소설을 읽고 있는데, 나는, 내가 놀이공원의 비밀 통로를 탐험한다고? 맞다. 그렇다. 너는 지금 뭐해서 뭐해서 지금 여기까지 왔다. 자, 이제 너의 앞에는 모노레일이 있다. 모노레일이 있다. 모노레일. 딱히 특별한 일 없이 계속 쉬지 않고 움직인다는 느낌만으로 너는 지금까지 왔다. 마치 너의 인생과도 같이 태어나서, 아장아장 걷다가 뛰었다가, 학교에 다니고, 더 성장하여 사람들을 만나고 그 중에 곱디 고운 연분과 함께 도달한 사랑에 빠져 살다가, 권태기를 거쳤으며, 갱년기는 아직이고, 지금 여기 모노레일 앞에 있다. 그럼 여기에 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할 것 없다. 심려할 필요조차 없다. 왜냐하면 이미 너는 모노레일에 타버렸기 때문이다. 오오 모노레일이 움직인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지하에서 반지하로, 환영에서 실재로, 꿈에서 현실로, 트로이의 목마에서 켄타우루스로, 경마장 마권 업소 말단 삥발이 직원에서 거대 나이트클럽 사장으로, 꿈 없는 무색무취한 청춘에서 <다음에 뭐할까─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까─사랑 그거 한번 해볼까>라는 철학하기를 일단 날마다 원 없이 할 수 있는 카페 사장으로, 뭐에서 뭐로 그렇게 너는 모노레일을 탔다. 이제 소설 한 챕터를 읽은 후에는 학교 졸업 앨범을 보면서 지난 노래를 들으며 달콤한 언젠가를 떠올려 볼 것이다. 자, 너는 모노레일에 탔다. 계속 탔다 내렸다 탔다 내렸다, 중간에 잠시 뛰고, 또 탔다 내렸다 탔다 내렸다, 이제는 곧 내릴 차례네, 이렇게 너는 생각하고 있다. 뭔 생각을 하는지 다 노출된다. 지금 현재 무슨,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이 마주치면 모두 아낌없이 전부 다 읽힌다. 그래서 너는 때로 누군가의 눈빛을 피하게 된다. 일관된 잘 짜여진, 매우 논리적인 따라서 단정하며 읽기 쉽고 일목요연한 일정 분량의 글을 쓸 수 없다면 그건 태생적인 한계에 따른 불가능의 영역이지만 그러므로 그와 같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하나의 방법은 수없이 많은 독립된 긴밀히 연결되지 않는 생각이나 아포리즘을 기록해 놓았다가 나중 적절히 짜맞추고 편집하여 구성하는 방식, 바로 그것이다. 그 일례로 다음 문단은 지금 나와야 알맞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나온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난 이랬어, 뭐는 뭐다, 너도 뭐뭐 해야 해, 그런 말들. 하지만 그렇게 폼나게 굉장히 몸에 밴 그리고 농익은 또한 아들 아닌 누구라도 따르고 빠져들게 만드는 화술과 바디 랭귀지를 겸비한 아빠는 드물다. 아마 상당히 드물 것이다. 하나 더, 드문 데다가 그렇게 명대사를 적절하게 구사할 의지와 상황이 딱 들어맞기 역시 어렵다. 실은 찾기 힘들다고 예상하지만 남의 경우는 모르겠고, 내 경우는 어떻지? 라고 생각해 볼 딱 하나는 자기가(너가) 자기(네) 아빠가 그런가 아닌가 그거다. 가령 다음과 같은 말을 들 수 있다. '너도 이젠 여자를 알 나이가 되었다. 이 점을 명심해라. 형편없는 바보들이나 여자와 맞서거나 논리적으로 따지려고 한단다.' 이 문장이 어느 소설에 나오는지 아는 남자가 주위에 있나 찾아보자. 모노레일. 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있을지도 모르는 모노레일에 혼자 외롭게 앉아 있으려니 너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 너는 놀이공원에 들어올 때 구입한 입장권을 꺼낸다. 자동적으로 손이 자석처럼 입장권에게로 간다. 입장권을 다시 보니 거기에는 지포라이터에서 봤던 옛날 놀이공원 브랜드 로고가 찍혀 있다. 이곳 놀이공원에 이십 몇 년 전에 와서 헤비메탈 공연을 스탠딩으로 제일 앞에서 두어 번째 줄에서 보며 바로 옆에 나시를 입고 곱게 화장한 소녀의 부드러운 살결과 한동안 맞닫아 있던 그 때의 놀이공원 로고. 새로운 브랜드 로고가 아닌. 드물게 비밀 통로에 들어가게 될 사람만 구-로고가 새겨진 표를 받게 되는 것인가? 거울을 봐도 뒤통수에 666 바코드가 찍혀 있는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너는 거울을 보면서 더 작은 거울로 자신의 뒷모습과 옆모습을 확인해 본 적이 있다. 정수리도 비춰 봤다. 그런가 안 그런가. 너는 그렇다. 딱 맞췄다. 뭐 대단한 거라고. 막 그래. 사후의 세계가 궁금하지 않은가? 우주의 시작, 빅뱅 이전은 어떻고.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는 지구와 거의 똑같은 별도 있을 텐데 그곳에 사는 생명체에겐 우리가 외계인일 것이다. 것 봐라, 넌 특별하다, 너는 외계인란 말이다. 그들이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고 연구하는 어마어마하게 큰 천체 망원경을 운영하는 천문관에도 비밀 통로나 비밀 신분, 비밀 문서, 불문율, 역대 특이한 사건이 없을 수가 없다. 신이 있다면 신은 누가 만들었을까. 표로 정리하면 종교라는 그 분야 업계 1위부터 100위까지 신과 종교론이 다 다르다. 1위 몇 명, 2위 몇 명, 3위 몇 명의 신자가 있는데 그 신이 다 달라. 그럼 그 신은 모두 언제부터 존재한 거야? 누가? 왜, 어째서? 서로 딴 얘기하는 과학과 종교 사이에 그것을 아우르는 예술이 있다. 그것은 더 현대적이라서 더 대중적이어서 영역이 더 넓다. 또 그것은 소비재와 산업, 그 논리로 연결된다. 그러면 모든 철학도 어학도 국사도 세계사도 종목도 다 나오고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게 된다. 안 그래도 원래 말이 많은 사람도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나는, 너는, 너는. 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도 있고 북유럽 신화는 기본이고 나라마다 고장마다 신화는 없는 곳이 없다. 반복한다. 너는 외계인이다. 머나 먼 지구와 비슷한 곳에 외계인, 너가 도착한다면, 그곳에서 랭보처럼 한 철을 보낸다면, 그렇다면 너는 그곳에서 선택할 게 너무 많을 것이다. 모든 분야 업계 1위만 선택할 수도 없고, 새로운 걸 만들기도 귀찮고, 진입 장벽 그래프도 생각나고. 그래서 나는 아무 것도 고르지 않겠어, 그냥 다양성을 존중할 거야, 하고 싶은 일을 할꺼야, 뭐가 되고 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면 그걸 고심하고 장고를 거듭할 꺼야, 그게 다다. 외계인인 너가 그 별의 여러 곳을 둘러보다가 어느 한적한 곳에 도착했는데 그곳의 외교부 관광과의 (옛)슬로건이 마음에 안 든다. 침략을 한 번도 어쩌고 저쩌고... 거 그거 좀 그러네, 그건 절대 관광 당사자를 위한 게 아니야... 코카콜라 슬로건의 변천사(1886 to 2015 / 나라마다 약간 다름)만 봐도 그건 명백히 소비자를 위한 거다. 그것이 충족되니까 기업 이윤도 따라가는 거고. 그런데 저건 뭔가 이상해 딱 이상해 막 이상해, 외계인인 너가 보면 여러 기준과 강자와 약자와 좌와 우와 다각적 시각과 기치관과 문화와 세계관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안이냐 밖이냐 그 차이인데 말야, 국사만 따지면 다 비슷해, 언제적 프레임이야. 주제 사라마구의 허구 양식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에 나오는 단어, 그건 픽션이나 작품에만 나와야 하지 않을까? 지금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단어, 옛날에는 엄연한 현실이었던 단어, 엄밀하고 냉혹하며 역사적인 암울한 단어. 그리고 이곳의 소설가들이 저곳의 소설가들을 만나서 담화를 나눈 내용에서 잊혀지지 않는 한 가지, 당신들께서는 (근현대사에서) 환멸적인 일이 너무 많아서, 격동의 시대상이 존재했기 때문에─말이 좋아 격동이지 잘 알거나 겪는다면 답은 안 나오고 한숨만 나올 것이다. 게다가 그곳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나'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사람 사는 데는 다 마찬가지다. 단지 몇몇 여건과 민감한 화제의 분야가 다를 뿐─쓸 소재와 주제와 사건들이 많아서 좋겠다는(정확한 동사는 잘 모름), 과장하자면 언어와 문화와 외모를 포함한 거의 모든 것이 다르다고도 할 수 있는, 지구 반대편 이웃에게 건네는 사람됨의 소명과 동료이자 직업인으로서의 그들끼리 통하는 친교의 기본이 되는 어른스러운 교우감, 전문가로서 가지는 최소한의 직분 그리고 현대인으로서 알고는 있어야 하는, 싫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지구와 시간은 무엇인가'까지 나아가기 전의 물음들, 바로 이런 기나긴 설명이 지칭하는 대표적인 단어, 외계인이 사는 도시의 지역 신문이 시기마다 무한정 규칙적으로 다룰 수 밖에 없는 단어, 그것이 알칼리성이든 산성이든 또 언제까지나 또 재조명이라지만 그건 책무고 달리 말하면 역할인 단어. 그럼 그 단어가 대체 무엇이냐? 그것은 "계엄령"이다. 따옴표 안에는 (대충 말해서 5번이든 12번이든 긍정적인 말을 할 때, 그 가운데 최소한 한 번은 부정적인 언급이 있어야 어떠어떠하다는 인문학 이론에 따른 논리로 보면) 다른 단어들을 집어 넣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원치 않는 악연이던가 지울 수 없는 오점이나 단절된 사랑, 원하지만 지금은 바라는 걸 아마도 뜻하지 않을 태어나지 않은 아이 같은. 현재와 과거의 즉 미래와 현재의 기준이 다를 테니까. 또한 (1)청춘이라는 꽃밭에 존재하는(존재했던) 수줍은 처녀이자 미숙한 청년인 당신과 (2)정보와 시간과 경험의 확장만으로는 설명이 불충분한 더도 덜도 말고 지구라는 별에 살고 있는 더 나중의 그 사람, 비로소 어른이 되어버린 그대, 원숙해지거나 미성숙한 채로 당도하게 된 연로한 청춘의 사적이거나 공적인 지금 생각 또한 (1 : 2) 다를 것이고, (1)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이름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 였다면 (2)미래의 엄마 이름은 '엄마 인생도 소중해, 엄마도 여자다.' 그래야 할 것이기 때문이, 비교적 과거보다는 포장과 형식이 더? 덜? 중요해진 지금이자 미래일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가 어떻든 미래는 아무래도, 적어도 더 낙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한다. 외계인이 당도한 행성의 어느 별천지에서의 일인 그것은 그 지역 안에서 시대를 두고 반복되었다고 한다. 1392년과 1980년 그렇게. 전자는 자세히 들어가면 정정하고 훨씬 확장해야 하며 장편으로도 감당 안 되니까 생략하고, 후자는 연좌제니 뭐니 달콤한 영화와 정반대. 포장하고 화장하는 이면에는 이처럼 어디나 누구나 민낯이 있게 마련이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날듯이. 이런 말 해도 된다면, (까놓고 말해서)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차이는 뭐냐─어떻게 다르냐─왜 어느 역사는 상징 인물이 있고 또 다른 건 막 흐릿하냐고 꼬마 신사가 또는 어린이 자녀가 당신께 묻는다면 과연 뭐라 말해 줘야 하는지, 그것에 대한 도대체 뭐라 답해 줘야 하는지, 좀 더 솔직히 말해서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쪽 지역의 패전국? 전쟁종료국?의 주변을 보면 모두 쟁쟁하니까 그쪽에서는 화합과 관현악이 연주되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다른 지역에서는 피해 입은 그 주변을 보면 모두 쟁쟁하지 않고 화합과 관현악이 연주되지 않았다? 그건, 절대, 아니다. 온도나 지역과 시대와 정세의 미묘한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예술은 그것을 다뤘다. 그럴 것이다. 또한 이념, 이제는 이런 거 잘 말하지 않지 않나. 작품에는 많이 나왔지. 다만 뉴스는 반복되고, 의견은 분분하며, 소비자와 기업─능력자와 문맹─부자와 거렁뱅이의 입장과 처지가 다르니까 다각적인 시각을 알고서 세상을 살아가면 된다. 겁낼 거 없다. 과거는 챙피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바로 알고 직시하며, 배우거나 읽은 후에 예술을 감상하면 그만이다. 옛날에는 미국도 영국 식민지였다. 1776년 7월 4일에 독립을 선언하고, 1783년 파리 조약으로 독립을 인정받은 나라도 옛날에는. 이게 뭐 어때서, 말하면 누가 잡아가나, 이게 음모론인가, 왜 이런 얘기를 하겠나? 전공했거나 업이 아니라면 건조하게 알아 지식을 쌓고 현재를 살면 그만이다. 빠르고 느리고 좀 더디거나 그런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알아야 하는 역사. 재밌는데 웃지 말라는 말을 듣는, 재밌는데 언제 반복될지 모른다며 되새기는, 섬뜩하지만 재밌는 역사, 거북한 과목이지만 피하지 말고 대놓고 공부해버리면 그냥 여러 번 말해버리면 부담을 덜게 되는 역사,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고 공부도 학교 다닐 때 잘하는 게 낫다? 공부란 정말 놀랍도록 재미있는 것이구나? 내가 이걸 왜 이제야 알았지? 라고 예를 들어 설명하기엔 애매한 과목, 오히려 알고 나면 이제는 마음 편하고 말발이든 학식이든 지혜든 뭔가에 도움이 되는 주제, 다양함, 다양함을 가르치고 배우고 알고 싶고 존중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되는 그것, 다른 과목도 알고 보면 다 그렇고 모든 단어마다 또 다 역사가 있다. 그 무엇보다 당신의 인생사가! 여자들은, 이 세상을 많이 알면 알게 될수록 세계사? 아니 세상사를 불미스러워 하지 않을까? 아마도? 혹여나. 게다가 거울을 보면, 흠, 남의 떡은 왜 그렇게 커 보이는지. 짧지 않은 한마디로 줄이면 현실에 관한 현안들과 세상에 관심을 갖고 알아가면서, 삶을 사랑하고 재미없는 일도 견디며(어쩜 이게 정말 중요한지도 몰라!), 지구의 지난 일에 대해 한발짝 떨어져 학문의 과목에서 더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외계인이 볼 것이라는 관점, 신이 주사위 놀이든 하든 죽었든 오! 신이시여~하지만 내 삶 따로 신 따로든 오직 거룩하든 누가 진짜든 어쨌든 다른 차원에 알려질 것이라는 시점. 즉 하나하나의 사실과 결과도 중요하지만 의식의 화폭을 넓혀서 왜? 왜? 왜 그렇게 되었나, 라는 흐름과 초정말 현미경과 세계 최대 망원경을 다 아는 바로 당신과 타인의 인생보다, 그것만큼 소중한 당신의 삶. 그러할 리는 없겠지만, 만일 일반인이기 때문에 예술인인 그대들 그래프선의 지난 기록이 불운이나 비운에 가까웠을지라도,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의 앞날은 길운일 것이다. 좀 더 간추리면, 태어나 보니 지구야, 하필 남극이야, 나고 보니 왕이고 태어나 보니 거지야? 괜찮아 괜찮아. 탄생 선택권은 없으니까. 서쪽에서 살리에리로 태어나건 북쪽에선 평민으로 태어나건. 난 안 돼, 뭘 해도 재미없어, 이번 생은 틀렸어, 그걸 뒤집어 보자. 이승에 소풍 왔으면 웃기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라구, 밝고 자신있게, 즐기란 말이야. 누가 알아요? 어쩜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지. 지금 행복하자. 당신은 그래야 한다. 이제부터 남을 행복하게 해 주자. 우리도 행복해지자. 미래 세대에게 행복한 환경을 물려주자. 나만 행복하고 예술가는 불행해선 안 된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떼창보다 생활이 우선이다. 기본권이 최우선이다. 난 십자군 전쟁이니 뭐니 광활한 종교사를 더 알고 싶지 않다. 이처럼 저치 생각의 근간은 이렇다. 그럼 그렇지. 그 인간은 딱 요 모양 요 꼴이다. 한 발자국 내딛기가 그렇게 버겹지. 이와 같은 내용들은 곧 남자들이 한눈에 훤히 꿰뚫는 분야들이다. 그야말로 방대한 지식을 쌓은 남자들은 총(무기), 균(병균), 쇠(금속), 소금, 향신료, 척력, 인력, 환경, 뭐, 뭐 할 얘기가 많다. 그쪽으로 넘어가면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는 물 건너 간다. 배 떠나! 아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하긴 우리 별도 장수하시는 할아버지 세대 때만 해도 금주법에 신분과 노예제도도 있었고, 동성연애하면 어떻게 됐고, 여자가 뭘 해야 하는지는 엄한 인습으로 굳건히 정해져 있었으며, 뭐했고 뭐했고, 유럽의 멋지고 아름다운 관광 명소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데 말이야, 그러니 하면서. (노신사도 때로는 친구분들과 농담을 하신다. 내가 요즘 세상에 태어났다면 핸드폰이 있잖나, 핸드폰, 그걸로 여자들 다 꼬시고 다녔을 꺼야, 애석하게도 그땐 그런 물건이 없었어, 라면서) 초딩도 이런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너무 각박하게 돌아가는 건가. 알 것 같기도 하며 하나도 모르겠고 알쏭달쏭한 세상이다. 말이나 글이 길면 짧은 것보다는 당연히 허점이나 빈틈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게다가 좀 민감한 주제라면, 말 다 했다. 괜히 가만 있는 뭘 긁어 부스럼 만든다, 본전도 못 찾는다, 는 속담도 있다. 흔히 쓰는 성적인 단어, 마찬가지다. 어디서 인문-교양을 넘 봐, 귀가 간지럽다. 하지만 해박한 지식과 지혜를 갖춘 신화적인 거성이자 대학자라면 딱 보고선 한 눈에 문맥을 짚는다. 보통 조용히 사는 여자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비슷하구나, 하면서. 그래, 이건 두루뭉실한 얕은 간추림이자 얕은 얼버무림이라는 비판 역시 감수해야 하는 실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안 해도 될 말인데 수준 떨어지는데 왜 꺼낸거야, 왜냐하면 멀어지니까, 저만치 가니까, 아련히 떠나가네, 고료를 앞에 두고서, 그러니까! 그러나 이것 하나는 똑 부러지게 말 할 수 있다. 어린이가 커서 어른이 되면 그 가운데 돌아이가 있을 테고 이런 생각 아마 해 볼 것이다. 뭐야 이런~ 이 세상은 <물 반 신 반>이구만, 세상사가 뭐 그리 복잡해, 누구 말을 들어야 해, 네 말이 맞다 그래 네 말도 맞아 에고나 줏대가 없나니, 어느 세월에 신기한 소설을 쓰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놀라운 교향곡을 지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너가 탄 모노레일은 정지한다. 움직이는 줄 모르게 움직이다가 얼마 후에 멈췄다. 너는 모노레일에서 내린다. 그곳은, 그곳은 네가 살고 있는 도시의 박물관이다. 어른이 되면 잘 방문하지 않는 박물관. 놀이기구를 탔는데 정작 도착한 곳은 박물관, 왜 박물관이지, 뭔 뜻이 뭔 깊은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지, 여기 박물관의 입장권을 산다면 건물에 새겨진 로고와 입장권의 로고를 비교해 봐야겠네, 뭐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어른들은 아는 게 너무 너무 많아서 박물관에는 잘 안 간다. 다른 먼 곳으로 관광을 떠나면 그곳의 박물관은 보겠지만 자기가 살았거나 살고 있는 박물관은 좀체로 애들을 위해서가 아닌 이상 잘 보지 않는다. 모르는 게 없거든. 정말 지겹게 봐 왔거든. 그걸 한마디로 전형성이라고 한다. 그것 때문에 어떤 사람은 꼿히는 5분 짜리 음악 한 곡만 한 달 내내 듣고, 10년에 딱 한 명과 영혼의 대화를 나누고, 집에서는 육식 위주로 밖에서는 채식을 하고, 자기는 두가지 일은 못하고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한다거나, 소설은 오직 SF만 읽고, 사람이 많은 장소에는 어느 주기에 한 번 그리고 어느 시간만 그렇게 머무르고, 어디 좀-좀-좀 이상한 곳에 들릴 때면 혼자만 간다거나 그것도 규칙적이라나 그런 패턴이 형성되어 고정화된다. 그런 어떤 전형성 때문에 자기는 그게 좋거나 싫어서 그렇게 한다, 이와 같은 의견과 행동은 자기는 부모의 유전자를 타고 나서 가족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난 아빠와는(엄마와는) 다르게 살아갈 꺼야, 하면서도 나중 살아보니 그건 다른 게 아니었다고 또는 다르게 살려니까 정말 힘들었다고 하는 그런 자신의 경험에 대해 딸이나 아들에게 얘기해 주거나 글이나 다른 여러 형식의 예술을 통해서 후세에 전하게 된다. 그건 뭔가? 인─생. 너의 인생이다. 누구나 읽었던 그림이나 글. 많이들 했던 공상. 즉 A에서 B까지 간다. A와 B는 멀다. A에서 열차를 탄다. 주인공은 1명, 너다. 열차를 타자마자 B에 도착한다. 너가 탄 열차는 거의 A에서 B까지 닫을 만큼 길다. 오오 그러니 어이없어 안 웃을 턱이 없고 아무나 생각 못 했을 리 없다. 여기서 그 말이 생각난다. 저저저저..번 챕터에 나왔던 어떤 상황에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알고 있고, NO.1을 발언하라는. 이 이야기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아는 허무맹랑하게 우낀 게 컨셉이구나. 그런 허무함을 만끽하다 너는 어른이 되었다. 너가 아직 초딩을 지나 중딩이라면 곧 어른이 될 것이다. 예언이다. 꼭 된다. 딱 된다. 막 훌륭하게 성장할 거다. 어르신이라면 만인에게 존경심을 받을 것이다. 절반쯤 그러할 것이다. 그래도 그분들도 아이를 보시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너는 아마도 놀이기구에서 박물관에 도착할 때까지 대충 몇 단계는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한두 개만 해도 이게 현실이면 완전 뚱딴지 같은 일인데 그게 여러 번 반복되었으니까. 몇 가닥 모험 이야기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수줍어 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초딩과 백수와 마초가 흔쾌히 그냥 뭐 겨우 범작은 턱걸이 하겠네, 시간 때우기 킬링 타임용으로 뭐, 라는 한줄평을 얻어 낼려면 이런 일설이 가장 어울린다. A부터 Z까지 차례로 탔다가 다시 Z부터 A까지 순서대로 내려서 도착하는 것. 앞과 뒤, 좌와 우, 너와 나 등등 낙서나 우낀 인터넷 GIF 파일에 걸맞는 균형미. 킬러가 권총을 들고 어딘가를 급습할려고 문 옆에 착 달라붙어 있다가 장전 하자마자 몸을 안으로 들이미는데 권총 피스톨이 총열 뒤로 빠져. 난감하지만 그래야 나중을 기약할 수 있다는 균등한 고조감. 그것이다. 기억의 조작과 왜곡, 과학적인 선진화된 방법, 그것 때문에 당신의 부정확한 서술은 유야무야 넘어가리라.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 스탠퍼드 선형 가속기 센터,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 계획과 구상 단계에 있을 또 다른 그런 연구소. 가 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너도 아직 안 가봤지만 가 봤다는 사람을 너는 아직 한 명도 못 만나 봤다. 나 이런,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어!, 이런 말이 나올만한 장소다. 비슷한 예로 어른이 되어 처음 들었다면 몰라도 어른들 말을 곧이 곧대로 찰떡같이 믿고 신봉하는 개구장이 약간 그 이전의 어린이라면 어른이 오존층에 관한 얘기만 해 줘도 뭐지 뭐지 뭐지, 정확하게 그러게 된다. 영특한? 영악한? 아이라면 하품 나와 시시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입자물리학에 중이온 가속기에... 뭐하는 곳인지 친절하게 말을 들어도 차분히 글로 읽어도 뭐가 뭔지 깜깜하다. 대개는 그렇다. 안 그럼 비정상이다. 진짜 그곳이 있기는 있는 걸까? 있다. 효용가치가 있나? 있다. 거기 취직할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너가 거기 입사하겠다는 실질적인 의사는 없을지라도 그냥 한번 가져 볼만한 생각이다. 그렇지만 그런 곳의 광대한 실험 장비가 이 이야기와 상당히 흡사하다. 너는 지금 목이 마른다. 물을 마신다. 차를 마신다. 잠깐 생각해보니까······ 아까부터 얘가 어디서 반말이야? 메아리가 들린다. 어디서 반말이야? 그 말을 듣기 위해서······ 일부러? 오오 놀랍군. 제법 빨라. 너 사람 너무 쉽게 감동시킨다. 뭘 좀 아네, 베테랑이야. 뭐야 이거, 의식의 흐름 기법도 아니고 뭔 수작이지. 이건 아인슈타인이 부정했던 그 과학이론의 응용이다. 그건 정통 과학 이론 이건 모략. 허나 너, 당신 드디어 그대의 마음은 지면으로 내려올 줄을 모른다. 어찌하면 좋겠소.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구료. 소생(小生)은 정녕 무엇을 써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단 말이오.
from 소설
2015. 5. 30. 00:01
비엔나 블러드 왈츠. 그들은 지금 요한 쉬트라우스 2세의 음악을 듣고 있다. 12살 소년이라면, 약간 단순하면서 웃긴 초딩이라면 비엔나 피 왈츠? 피? 흡혈귀? 이상한데, 뱀파이어가 춤을 춰? 이런 젠장, 세상은 요지경이라더니 살다 보니까 별의별 일이 다 있구먼. 이럴 수 있다. 그들 가까이에는 바순과 자코메디 조각상이 놓여 있다. 그들이 음악 감상실이나 콘서트 홀에서 굳은 표정에 경직된 자세로 살짝 포멀하고 한껏 클래식한 옷을 입고서 이 춤곡을 듣는 것이 아니라 어느 카페에서 듣고 있다.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DJ~, 같은 노래 가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이다. 이 카페는 당연히 그 카페에 들리면 뭔가 즐거운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 그런 카페다. 도대체 그런 예감이 드는 카페란 어떤 카페를 말하는 것인가. 그 대답은 이거다. 그런 카페에 한 번 가서 느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아 그렇구나, 라고 깨닫게 된다. 백번 말해야 소용없다. 대개 카페에 가면 손님을 위한, 카페 사장이 좋아하는, 점원이 듣고 싶은 음악이 나온다. 그걸 들어보면 주로 현대 음악이다. 또 그것은 거즘 2박자다. 하지만 지금은 3박자 왈츠가 흐른다. 이 음악을 들으면서 말다툼을 한다거나 딴짓할 궁리를, 뭔가 수작을 꾸미고, 음란한 끼를 부리는 것은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고, 작심삼일은 내일도 또 내년에도 할 일이겠지만 적어도 나도 모르게 너의 아름다웠던 시절과 그대의 하늘에서 내려준 고결한 무엇을 떠오르게도 만드는 마술의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왈츠가! 물론 이해하기 어려운 터프가이라면 흥분을 가라앉히려면 무얼 듣거나 상상해야 하는지 그런 멜로디를 떠올리면 한결 이해가 쉬워진다. 무슨 멜로디인지 아시죠? 자, 그들이란 누군인가. 새삼스럽지만 아니, 새삼스럽지 않지만 이름들을 적어 본다. 그 이름들은 잊혀질만 하면 환기시키는 퇴물 주술사의 구호만 같다. 조니, 케빈, 알렉스, 마크, 하워드, 닉, 제임스. 어, 내 이름과 같다고? 나와 닮았다고? 누구를 닮았다거나 어느 유명인과 이름이 같다고 해서 몹시 지겨워, 그런 단계를 지나버려서 아예 체념하고 달관하며 살아갈지라도 그런 원치 않는 매우 앙증맞고 작디 작은 유명세도 하나의 장점이 있다. 정말 하찮지만 남에게 웃음을 선사한다는 장점. 건전한 삶을 살아간다거나 적당히 음흉한 플라토닉이 침체된 사랑을 지향하든 어쩌든 애틋한 감정이 꽃피기 시작하는 연애의 초기 단계에서나 만인의 일상에서 매번 그리고 잊혀질만 하면 어떤 유머의 방식을 한 번씩 언급하고 떠올리고 말하면서 달력은 넘어간다. 당신에게도 어떤 별명이 있을 것이다. 없거나 마음에 안 든다면 하나 만들어보자. 그렇게 불러 주거나. 하다못해 타인의 핸드폰에 어떤 명칭으로 저장되기도 한다. 본인이 썩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 친구들이 도대체 왜 우아한 왈츠를 카페에서 듣고 있을까. 그것은 하워드의 집으로 각기 가지고 와서 낭만적으로 흐르는 냇물에 띄워 보냈던, 청초한 소망을 담았을지도 모르는 일곱개의 부유물, GPS를 부착해 놓은 부유물, 위치 파악하며 뒤따라갈 부유물, 따라가다 언젠가 따라가기를 포기할 부유물, 그것을 냇가에 띄워 보내고 나서 그들도 자신들의 동심이 실린 그것을 따라가기로 마음을 모아서 슬금슬금 따라가다가 길가의 어느 찾집에 들려 쉬었다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부유물을 따라가 보니 조금 지겹기도 하고, 그 지루함을 겉으로 표현하기는 뭣 하고, 그래서 쉬었다 가자, 정확히 의견의 일치를 보고, 합심해서 허먼 멜빌의 모비딕 등장인물 이름이 보이길래 딱 들어갔다. 여기까지는 별 일 없다. 재미난 일이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원래 흥미로운 일은 잔잔한 심심함이 일정 시간 전주곡을 울려야지만 그 기쁨의 화사함이 극도로 뭔가가 없어도 뭔가 있어 보이게 된다. 충분히 지금까지 단정했다. 많이 외로웠다. 더없이 따분했다. 재미난 일은 항상 없었다. 뭘 해도 재미없었다. 더럽게 재미없었다. 잠깐 재밌다 말았다. 늘 그랬다. 뭐 재미난 일 없을까, 라는 발상도 한없이 진부해졌다. 인생의 2막이든 보잘 것 없는 막간극이든 애들 인형극이든 꿈은 멀리, 저 멀리 아득히 날아가 버렸다. 훠이 훠이. 생각도 안 난다. 꿈이 있기는 있었던가. 그렇다면, 그럼 이제는 뭔가가 나타나야 한다. 안 그러면 뭔가 억울하다. 많이 답답허다. 행운의 리듬이 어긋난다. 묘수의 운을 타야한다. 그들이, 그 친구들이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절대 어떤 말로하기 어려운 소년의 탐험욕을 표출하지는 않았지만─어찌 촐랑대며 그런 감정을 말할 수 있으랴, 왠지 모르게 지금 이 순간 어떤 귀족의 품위를 드러내야 하는데, 그런데 깐죽? 말도 마라─은밀히 뭔가 마음이 맞았나 보다. 오케이, 거짓말처럼 사건이 발생한다.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처럼, 모사꾼의 감언이설처럼, 완전 (개)구라 같이. 거의 모든 사람이 경험해 봤을 일. 그 가운데 하나로 이런 경험이 순위권에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쓱, '쓱'은 좀 음험한 뉘앙스를 풍긴다. 정중한 기분이 드는 '넌지시'로 바꾸자, 넌지시 마술 모자에서 하나 꺼내자면 이런 거다. 침대 밑이나 책상 옆, 의자 뒤로 뭔가를 떨어트렸는데 그걸 찾을 수 없어. 아무리 찾아도 없어. 찾고 또 찾고 계속 찾아도 없단 말이야. 많이 찾아봐야 10분 찾고 포기하겠지만 고집 센 사람이면 1시간이나 1일, 더 고집 센 사람이면 지금도 찾고 있을 것이다. 즉 귀신이 곡할 노릇. 혹시 그것이 4차원으로 가버린 걸까, 도저히 갈래야 어딘가로 갈 데가 없는데 하면서, 또는 부모님이 알면 안 돼, 절대 안 돼 하면서, 그런데 그게 뭐지? 그렇게 카페에서 말도 안 되는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맙소사, 이런 요상한, 삐─, 워워, 이런 수전증 초기 증상 같으니라고, 뭐야 이거! 그들이 들어왔던 카페 문이 없어졌다. 몇몇 있던 손님들도 사라졌다. 점원도 사라졌다. 그들만 남았다. 스릴러도 아니고 SF도 아니고 이거 뭔 장르야. 누가 장난치는 거야, 내가 꿈꾸고 있는 거야, 아닌데 일곱 명이 모두 일곱 난장이처럼 공주 같은, 인기 없는 동화 같은, 물고기면 물고기고 사람이면 사람이지 뭔 말만 들어도 웃긴 인어 공주 같은 일이 다 있냔 말이야. TV로 보거나 극장에서는 좋았어, 진짜 재미있어서 좋았거나 하나도 재미없어서 투덜거리면서 불평하며 평온하니까 다음, 더 넥스트를 기대할 수 있었다구. 그런데 이게 뭐야. 내가, 우리가 주인공이라니, 이게 말이 돼? 말도 안 돼.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삐─삐─. 현실인데 한참을 기다려도 실감이 안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입장했던 문만 사라진 게 아니라 창문도 사라졌다. 그쪽 면이 온통 벽으로 바껴 버린 거다. 거짓말처럼 그리고 영화처럼. 사실 남자들 눈길 돌리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 아니라지만 그냥 눈길 돌리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미인계도 아니고. 이 친구들 가운데 두엇은 이런 생각을 품지 않았을런지 모른다. 혹시 아까 <뒷사람 음료수 값 지불하기>를 실행하지 않아서 갇힌 것일까, 라고. 골든벨 안 겪어 봤다고 어느 때던가 푸념해서 벌 받았나? 내가 골든벨을 골 때리게 울려본 적이 없으니 당연지사고 또 그게 정상이다. 하늘에서 돈이 쏟아져, 나도 그렇게 멋진 컨버터블을 타고 다리 위를 달리면서 베르디의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을 들으면서 또 따라 부르면서 지폐를 뿌려보지 않았으니까, 어디선가 쏟아지는 동전-벼락을 퍼맞지 않았으니 그걸로 됐고, 딱 됐고, 참 다행인 거다. 막 모르는 사람 술값 멋있는 척 내주다가 괜히 오해를 사서 자기 여자친구 꼬실려 그랬다고 무슨 수작이냐는 그런, 그런 난데없는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고, 재수없다고, 어디서 오바냐고, 누굴 거지로 아냐는 야유를 받을 수도 있으니 엄한 선행은 어떻게 보면 무리수에 가깝다. 즉 이런 난처한 상황이 닥치면 이렇게 엉뚱한 생뚱맞은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냐 하면 막 어떻게 뚝딱 뭔가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마치 노름판이든 어느 놀이에서든 옷 벗기 게임하는데 한꺼번에 홀딱 다 벗는 경우도 없고, 그러면 재미도 없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잘 분간은 안 되지만 특이하고 신기한 일과 만나게 된다면 일단은 그것을 즐겨야 하는 법이다. 난데없이 해가 서쪽에서 뜬 것도 아니고, 남반구에서는 해가 서쪽에서 뜰까 안 뜰까, 난데없이 불세출의 영웅이 아니라 오즈의 마법사가 되어 버렸다. 어떡하지, 그들은 어떡하고 또 서술자는 어떡하고. 일단, 그들은 우선 카페를 둘러보았다. 뭐가 설치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뜬금없이 생긴 벽을 손으로 만져보고, 발로 툭툭 건드려 보고,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 보고, 슬랩스틱 코메디를 펼치는 흑백 TV 시대 연예인처럼 아무리 찾아봐도 특별한 게 없었다. 위협되는 거도 없고, 누가 나타나지도 않고, 온도 변화도 없다. 음악은 멈추었다. 뭔가 움직여야만 할 것 같았다. 달리 할 일은 없었다. 핸드폰도 모두 대기 모드로 바뀌었다. 이따 챕터 후반부에 가면 자동으로 대기 모드가 해제될지도 모른다. 그럴 것이다. 급박한 분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영화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이미 선행 학습이 잘 되어 있었다. 이쯤 되면 시소 건너편에 앉아 있는 자와 무언의 교신을 할 수 밖에 없다. 상황이 주어지면 그렇게 하게 된다. 무대 체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카페의 옆문과 후문을 찾는다. 자, 옆문과 후문이 있다. 삶은 곧 선택이다. 그래 결정했어. 뒷문이다. 옆문은 왠지 느낌이 안 좋아. 이유는 모른다.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진, 전진! 그렇게 카페의 뒷편으로 나가 보니 그곳은 큰 쇼핑몰의 내부 같았다. 바로 앞에 보이는 어느 방에는 조그만 강아지들이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면서 고상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개들이 여럿 모인다고 바로 난장판이 되지는 않는다. 개들이 비록 고요하게 잠을 자고 있지만 벨리니의 노르마, 롯시니, 푸치니, 베르디와 폰 키엘리 그리고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듣는데 어찌 그 풍경을 개판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조금 이동해서 그들은 교차로에 이르렀다. 그곳에 우뚝 서보니 그 교차로가 움직인다. 자연재해 아니면 놀이공원에서 인기가 한물 간 타가 디스코다. 후자이기를 바래야지. TV에서 안 좋은 뉴스가 나오면 영화 토네이도랑 똑같네, 더 하네, 그러면서 입을 떡 벌리거나 이젠 그런가 보다 하지만 집이 떠내려가고 공중 분산되고 다치고 그런 피해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괜히 내가, 내 안의 어떤 인간성의 일부가 죄를 짓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게 인간이다. 인간 본성이 광범위하고 유동적이라서 인류는 그동안 어두운 일도 많았고 그러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고, 또 그래서 앞으로 더 나은 미래를 바랄 수도 있는 것이다. 매스컴의 뉴스든 인터넷에서 개별적으로 사용하는 소셜 네트워크든 슬픔이라는 것은 거리나 어떤 기준에 따라 체감되는 면적이 다르다는 어쩔 수 없는 옴짝달싹 못하는 누구에게나 공통된 인간 본성, 그것을 알고 또 경험하며 살아가는 그래야만 하는 죄스러움, 평생 동안 희노애락과 함께 가슴 한구석에 어딘가 모르게 끙하고 사라지지 않는 어떤 불가해한 죄책감이든 무엇이든 그것을 일단은 밑바닥에 깔고 가야만 하는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부득불 그럴 수 밖에 없는 인간애, 최종적으로 원래 그렇구나, 결국 나는 절대 극장에서 펑펑 울 수 없는 유형이로구나, 찔금이 아닌 펑펑, 인형극에서 쓰이는 특수 튜브 장치나 자동차 와이퍼 액 분사 노즐 장치와 같이 펑─펑! (나란 놈은) 소설을 읽으며 시를 외우며 노을을 보면서 친한 동료들과 헤어지면서 어찌하지 못하여 드라마 눈물-연기용 안액을 사용해야만 하는, 정녕 그런 존재로구나! 그것은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태어나기 때문에 나중 절대 바꿀 수 없는 일이로구나, 라는 사실을 처음에 또 되풀이 되어 틈틈이 깨닫는 순간들. 그래서 나이 들면 또는 철이 들면 사람들은 때론 굳이 나는 나중에 타임머쉰을 타지 않겠다, 사람의 두뇌를 다른 육신으로 갈아 타게 되면 어떤 종교에서 말하는 윤회란 무의미하게 되는 것일까, 에이 모르겠다 이저 저도 모르고 난 그냥 미래에서 <더 나은 미래 주식회사>에서 현재 세계로 이미 와서 살고 있다, 그렇게 살아 가는 인생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더냐, 이 얼마나 찬연한 깨달음이란 말인가, 그렇게 약간 소탈한 생각을 하게 된다 해도 뭐 하나 이상할 것 없는 일이다.
더 앞으로 나아가니 요염한 모습의 길고양이 몇이 보이고, 그 쇼핑몰의 규모가 짐작되는 뭔가 가늠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길 양편이 번화가로 보이는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상점은 모두 문이 닫혀 있다. 또 다른 골목은 상점의 문이 모두 열려 있고 불이 켜져 있다. 그런데 사람은 없다. 이상하다. 어디가든지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런 거리의 모습이다. 그런데 사람이 없다. 옷 가게, 화장품 숍, 우체국, 서점, 빵집, 음식점, 찾집, 레코드 숍, 속옷 가게, 소극장, 중극장, 대극장은 안 보인다, 편의점, 약국, 미용실, 파출소, 패스트푸드점, 기타 등등.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인지 참 희한한 일이다. 개미도 없고, 파리도 없다. 뭔가 수상하다. 게다가 이건 움직이는 미로 같다. 대형 트럭이 길을 막고 있었는데 눈길을 돌렸다가 다시 그쪽을 보니 트럭이 이동해져 있고, 트럭 안에 사람은 없고, 벽이 없었는데 생겼으며, 길이 있었는데 없어졌다. 막 그런 현상이 있는 듯 하다. 아까 분명 저기 저 건물과 건물 사이에 공중에 두 건물을 잇는 다리가 있었는데 다시 보니 없다. 사라졌다. TV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사람이 서 있기 힘들 정도의 바람이 잠시 불었다가 그쳤다. 때락 큰 송풍기는 안 보이는데 태풍도 아니고 의아하다. 레드 제플린 앨범 커버에서 보았던 열기구가 현대식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하늘에 떠 다닌다. 완-전 크다. 하나도 우습지 않다. 말도 안 나온다. 도시에 사람들이 모두 4차원으로 피서를 떠난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이게 뭔가, 미스테리다. 「어쭈.」
「이것 봐라.」
「뭐냐 이거.」 「미션 컴플리트.」 「언빌리버블.」 「판타스틱.」 「어디서 어설프게 탄을 날리고 있어?」 「네스프레소?」 「지아니 베르사체.」 「꼬꼬 샤넬.」 「본 아프 띠.」 「텍사스 카우보이스.」 「D I double G dot com.」 「카사블랑카.」 혀짧은 음성. 「모나코.」 굵직한 육성. 「흥.」 앙큼한 교태 섞인 비음. 「씨아오지에 피아오리앙 야.」 잘 한 번역인지 잘 모르겠지만 뜻은 이렇다. 아가씨 아름답소. 「워가 아이오 오오사메 구다사이.」 외국어를 잘 하는 사람들 보면 멋있어 보여. 번역하면, 내 사랑을 받아주오.
「본 조르노, 마담 무슈, 그라시아스 로 시엔또, 아스타 루에고.」 「번역기 돌린 거 외웠냐?」 「그 작업 멘트가 먹혀? 철 지난 거 아니야, 구닥다리 아니냐구. 그래도······ 나도 한 번 해볼까. 낭자, 아름답소. 내 사랑을 받아주오. 바닷 바람을 맞는 해변가라면 한 번쯤...하긴 자발적으로 여쭙는 홀려서 언급되는 말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지. 누구냐 또 어떤 상황이냐 그게 관건이야. 옷이 날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아무나 잡고 나 잡아봐라,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구. 암 그렇고 말고. 두 말하면 잔소리지. 그러나 아 이런, 참 웃끼네.」
「폴 퍼니 스미스, 인테르밀란, 달레산드로.」 「아직 뻑 가기엔 일러.」 아직은 이 친구들이 여유 있다. 살면서 새로운 일을 포용하고, 도전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완충의 지대, 그 언저리가 자기도 모르게 어떤 넉살과도 같이 희미하게 넓혀졌다. 그래서 본 게임을 보고 싶다는 제스춰? 이따 바지에 오줌이나 누지 말아야 할 텐데, 만에 하나, 걱정이다. 남자는 모른다. 여자들이 평생 얼마나 많은 시간을 화장과 몸치장에 시간 소비와 금전과 노력의 투자를 하는지를. 여자들이 화장을 하면서 대체 뭔 생각을 하는지를 말이다. 여자는 안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남자들이 모이면 무슨 얘기를 하고 어떻게 노는지를. 남자와 여자 모두, 서로를 잘 알면서도 모른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면서 꿈을 꾸기는 꿨는데 꿈이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것처럼. 개운하기도 하고 부시시하기도 하지만, 나 나이 들었나 봐, 그러는 것처럼. 남자는 여자들이 어떤 얘기를 가장 많이 하는지가 궁금하면 여성 잡지를 보면 된다. 간단하다. 아가씨면 아가씨들이 보는 잡지, (기품 있는) 중년 여성이면 중년 여성들이 보는 월간지를 보면 된다. 완벽하고 완벽하고 또 완벽하다. 남자들에게 이건 비밀리에 공짜로 알려주는 거다. 여자들은, 여자들은 말이다, 남자들이 어떤 얘기를 나누고, 뭘 원하고, 뭘 바라고, 뭘 생각하면 가슴 뛰는지와 '으쌰으쌰'의 정체가 궁금하면 남성 잡지를 보면 된다. 그대에게 선물하는 뽀너스. 남성 잡지도 종류가 많지만 여기서 말하는 그것에는 크게 2종류가 있다. 그 가운데 세계적인 남성잡지에 보면 앞 부분에 편집장의 글이라고 있다. 간혹 그런 글을 보면, 와~우 이 양반 글 잘 쓰네, 난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식으로는 못 쓰겠다, 그러니까 난 막 쓰고 닥치는 데로 써야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잡지가 뭐 볼 게 있냐고, 자기는 평생 잡지와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라며 그렇게 또 다른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잡지 하면 여성 월간지, 여성 월간지 하면 여자, 여자 하면 예술로 자연스럽게 생각이 옮겨 간다. 위대한 예술이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면 여성 예술가는 시간 많이 들여 화장도 해야 해, 했으면 나중에 지워야 해, 칼로리도 체크해야 돼, 시시콜콜 막 수다떠는 길로 빠져서도 안 돼, 어떤 편견도 신경쓰지 말아야 해, 여류..라는 말에도 기분 나빠해선 안 돼, 어머 미용실이랑 네일 샵도 가야지, 사랑을······ 그래 받아야 해 게다가 애도 낳아야 돼, 피임 오 피임, 낳으면 끝인가 또 길러야 한단 말이야. 오 이런 말하기 숨차다. 여성 월간지 보기와 위대한 예술, 두가지를 동시에? 그럴 순 없다. 누가 그래, 둘 다 할 수 있다고. 어렵겠지만 둘 다 할 수 있다. 비단 어렵다 뿐이야. 어느 만큼 삶을 살다 보면 알게 된다. 깨닫는다. 뭔가 도저히 연결될 것 같지 않게 보이지만 이어져 있는 기묘한 물상. 애티가 있어 어려 보이는, 앳된 처자들과 순수한 아가씨와 왈가닥 톰보이들이 읽는 잡지, 그들이 읽는, 그들을 위한 월간지 A. 그리고 우아한 중년 여성들이 보는 잡지 B. 그 둘이 얼만큼 다른가. 현격한 차이. A에서 B로 가는 동안 정말 뭔 일이 어떤 어마어마한 인생사가 있었던 것일까. 남자는 A와 B로 나눌 필요 없다. 그딴 구분 필요 없다. 그런데, 그런데 여자는, 여자는. 오빠는 뭘 몰라, 남자는 항상 왜 그런 거야 왜 그러냐구, 의 정물화에서 빠져 나와 넓은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어느새 나이든 거다. 자, 공주님. 그대여 거울을 보시죠. 거울 속에는 어여쁜 그대도 있지만 잘 보면 잘 들여다 보면 당신의 엄마가 보입니다. 거울을 보는 사람은 당신이고 거울 속에 있는 사람은 엄마. 완전 똑같습니다. 이제 하나, 둘, 셋을 세고 딱-하면 당신은 최면에서 깨어납니다. 하나, 둘, 둘 반, 둘 반의 반, 에잇 그냥 깨어나지 맙시다. 그럽시다. 그럽시다. 꿈결 같은 몽롱한 의식의 안쪽에는 잠재된 거인이 잠들어 있습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에서 야한 꿈을 꾸며 잠들어 있는 거인. 그리고 당신은 바로 이곳, 세상에서 가장 크고 특이한 비밀 결사 단체의 요새이자 성지인 이 소설 속의 가상의 공간에 와 있습니다. 마술의 정령은 살아있습니다. 전설 속에서 그 명맥을 유지해 온 것입니다. 동화 속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었습니다. 거짓이 아니라구요. 자, 동기부여가 되고 있나요? 아직 부족하다구요, 잘 모르겠다구요? 그냥 고개를 끄덕거려 보세요. 왜 그렇게 생각이 많습니까? 뭐가 그렇게 복잡하나요? 고민은 저 멀리 날려버리고, 골칫거리는 모두 잊어버리세요. 그리고 그리고 이 말을 따라해 보세요. 나는 할 수 있다. 더 크게. 나는 할 수 있다. 더 세게. 나는 할 수 있다. 다 같이. 나는 할 수 있다. 자 이젠 이 신비의 생명수를 마시면 당신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온갖 행복과 쾌락을 맞 볼 것입니다. 준비됐나요? 고개를 끄덕거리세요. 나는 할 수 있다. 한 번 더. 해야 할 일일랑은 날려버리는 겁니다. 소원은 이루어질 꺼에요. 꿈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 꿈은 실현되라고 있는 것이다. 꿈이 절대 좌절하고 슬퍼하라고 포기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자 하늘을 보라. 인생찬가를 불러보시라. 느껴지는가, 저 거룩한 동기부여의 신이 천상에서 날개를 펴고 당신을 부르고 있다. 자 날아오르라 날아오르라. 그대여 날아오르라. 날아오르란 말이다. 오 드디어 공중에 떴다. 그대는 지금 공중에 떴다. 붕 떴네요 그대여. 날개를 펼치세요. 당신은 당신은 바로 웨딩드레스를 입은 순백의 천사입니다. 어딘가 아기 요정들의 나팔소리가 들리는군요. 뭐가 보이는가. 뭐가 보이는가. 아직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그럼 더 가야 한다. 더 가야 한다. 자 계속 날아올라서 저기 저 동기부여의 신에게로 간다. 간다. 간다. 만났다. 만났다. 당신은 지금 동기부여의 신을 만났다. 만났다. 당신은 지금 몹시 흥분된다 흥분된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들었다~! 맙소사, 이런,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군. 자 덥다 덥다. 옷을 벗는다 벗는다. 안는다 안는다. 키스한다 키스한다. 자 그 다음 그 다음. 오오 오오. 이런~ 젠장~ 스탠드업 코메디 따라해봤는데 순전 사기꾼 말발 같다. 남과 여 그리고 영화 남과 여 (1966). 세상사에 통달한 박사님들도 좀처럼 쉽게 답해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무언가. 그 음악을 틀어주세요, DJ. 멘델스존의 무언가 교향시 9번 3악장을. 삼천포는 답이 없다. 다시 돌아와서, 즉 당신은 이 밑도 끝도 없는 상황에 처한 이 친구들의 심정을 알 것도 같고 모를 듯 하기도 할 것이다. 알쏭달쏭,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마치 그런 물음처럼.
이게 왠 일인가. 뭔 사태야. 이건 일종의 퍼포먼스일까, 다시 돌아온 플래시 몹이란 말인가. 저 앞으로 100m 전방에서 얼만큼 많은 사람들이 벼개 싸움을 하고 있다. 뉴스에서 봤던 해외토픽, 그런 대규모 벼개 싸움은 아니지만 대충 구색은 갖췄다. 딱 보니 비상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그러니가 뛰어가서 촌스럽게 우리가 여기 갇혔는데 혹시 어떻게 된 일인지 뭔가 아는 게 있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어쩌면 물어본다고 해도 가르쳐 주지 않거나 모를 게 뻔하다. 그 사람이 뻔뻔하거나 불한당은 아니겠지만 중간 정도의 연기력은 갖췄으리라 능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 구경을 하고 나서 즉시, 즉시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양떼가 저쪽에 보이는 로터리를 지나간다. 그 떼거지 양떼 사이로 간혹 망아지도 보인다. 망아지와 양은 사이가 좋은 것 같다. 그러나 양치기는 안 보인다. 양떼몰이 개도 안 보인다. 어, 그럼······ 그렇다면······ 그렇다. 한마디로 경이로운 장관이다. 게다가 BC 480년 당시의 전투를 흉내낸 코스프레가 오른편에 보이고, 왼편에는 공포 영화 매니아들이 분장한 채로 몇몇 걸어다닌다. 멀리 있지만 공포 음악도 약하게 들린다. 이건 그와 비슷하다. 놀이공원 비밀의 집이나 비엔날레나 엑스포 공원에서 볼 수 있는 대기줄이 매우 길게 늘어선 검은 집, 막상 들어가 보면 왜 여기는 줄이 이렇게 길게 늘어선 것일까, 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뭔가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드러나면 실망할 테니 끝까지 가면을 벗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밀담이 존재하는 그런 곳. 고대 도시, 바빌론, 아틀란티스, 막 그런 느낌도 들고 대강 견적을 보니 쇼핑몰 이벤트 수준이 아니다. 놀이공원에 있는 검은 집 대리점 수준이 아니라 검은 집이 하나의 도시로 확장된 것만 같다. 그게 아니면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공포 영화는 영화로 볼 때만 오싹하고, 여름에만 메뚜기도 제철이지 현실로 부닥치면 그건 더 이상 장난이 아니다. 사회-과학이나 인문-교양 서적을 보면 그런 글이 있다. 어디는 대학에 들어가기가 쉬운데 졸업은 힘들다, 어디는 입문은 어려운데 그 다음은 그냥 도서관일 뿐이다, 대학 생활에서 낭만을 찾다니, 그 들어가고 나오는 프로세스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들이 이 거대한 흐름 가운데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누구는 대학 다닐 때 자기의 좌우명이 이럴 것이다, <후회하지 않토록 놀자>, <딱 하나만 잘 하자>, <뭐에 꼿힐지 모르지만, 괴상한 것에 꼿힐지 모르지만, 느낌 딱 오는, 거의 오지 않지만, 꼿히는 것만 잘 하자> 그런 어떤 청춘의 무슨 관문에 들어온 것만 같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꽃피는 봄날 같은 청춘이라지만 공부도 어렵고, 취업도 힘들고, 평범한 연애는 커녕 럭셔리 카도 노땅들만 모는 것 같아서 왠지 모르게 기운 빠지고 슬퍼져서 친구끼리 자꾸만 술을 찾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인생을 논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청──춘! 딱 그와 같다. 하지만 지금만 그런 것도 아니고 누구나 그런 것도 아니다. 방법은 있다. 인문-교양서나 소설, 일단 둘 중에서 하나, 어딘가에는 있다. 꼭, 기필코 있다. 퍼포먼스고 플래시 몹이고, 왜 남이 나에게 음료수 값을 지불하지 않느냐, 왜 내가 가는 술집은 골든 벨이 없느냐, 왜 남자들은(여자들은) 내게 대쉬하지 않느냐, 같은 푸념에 앞서 내가 남에게 그런 경험을 먼저 선사해 보자, 컨버터블 자동차처럼 보는 사람의 눈이 더 행복한 그런 찬란한 의제를 먼저 던지는 수동적인 성격이지만 온건한 적극성의 화자가 되라, 는 간접적 교훈도 다, 모두 다 좋단 말이다. 지금 다 좋아, 괜찮아. 왜 '왜······ 뭐뭐 할까?'라는 의문문에는 혹 하게 되는가, 그럴 수 밖에 없는가, 라는 질문을 받지만 말고, 속으로 생각해서 고민하고 연구하여 책으로 내라는 그런 내면을 자극하는 충고와 주제도 좋단 말이야, 다 좋아.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여기서 어떻게 나가, 이제 우린 어떡하냐구?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또 거기서 다음 단계로 진화한다. 생각의 속도는 가끔 빛과 같다. 뭐 꼭 나갈 필요 있어? 어? 그치만 이 친구들은 더 들뜨지 않고 절제하는 멋쟁이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피리부는 사나이가 나타나서 피리를 불면 자기들이 생쥐로 변해버릴지도 모르는 모종의 불안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떨림은 약 10% 이와 비슷하다. 여자 친구가 여행을 간데, 해외 여행. 그런데 행선지가 이탈리아래. 이탈리아? 왜······ 하필······ 거기야? 좌불안석이다. 내 여자친구가 아닐지라도 남자들은 할 말이 있다. 아니다. 많다. 아주 많다. 뭔 말인지는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그렇게 가슴이 떨린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완전 좋았다. 딱 좋았다. 행복한 몽유도요 포근한 단꿈이었다. 나중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말이야, 하면서 좀 가끔 얘기해도 전혀 물리지 않을 만한 신선한 경험이다. 그만한 너스레는 용서가 아니라 간청이라 불러야 마땅할지어다. 다음 일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갑자기, 갑자기, 갑자기 그들 전방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로 집채만한 물, 걸리버와 걸리버 패밀리가 조작한 듯한 거대한 물이 쏟아져서 그들에게로 오고 있었다. 삐─삐─삐─ 욕이든 감탄사든 그걸 내뱉을 겨를이 없다. 슬로우 모션도 뭣도 폼도 모두 다 필요없다. 냅다 뛰는 수 밖에. 기겁을 하면서. 바지에 오줌을 싸도 상관없다. 뭐 그게 대수란 말인가. 이 위급한 상황에. 그런데 딱 이 분위기가 3초만에 끝났다. 쏟아져 오던 입 떡 벌어지는 물-폭탄이 그들이 그것을 봤을 때의 4시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서 가버린 것이다. 「뭐야 이거.」 「뭐야 이거.」 「아까 1시간 전에 4시 방향 보라고 했잖아. 초절정 미녀가 지나가니까 알려준건데, 나 혼자 보기 미안하니까, 그 말이 화근이 된 걸까.」 「누가 알겠어.」 「이거... 장난이 아닌데.」 「메두사.」 「마구스.」 「뭐지 이거.」 「그래 진짜 뭐야.」 「이런.」 「이런 젠장할.」 「오오 뭐야, 왜, 어떻게 이런 일이.」 「살찌는 것은 죄가 아니다.」 절반쯤 젠체함. 「달팽이 요리 먹고 싶다. 아직 한 번도 안 먹어 봤어. 오─내─인─생!」 절반과 반에 반, 제정신으로 돌아왔음. 「정신나갔네, 아주.」 시간의 구부러짐, 딱 걸려들었다. 「내가,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지.」 지금 단계에서는 수틀려도, 몸에 마음이 흔쾌히 따라가지 않아도, 마음에 몸이 흡족히 절제하며 합일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층위에 도달했다. 여기서는 저-저번 챕터의 <뭘 해도 재미없다>가 많이 나왔던 것처럼 뭐야 이거, 이거 뭐지, 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안 나오게 생겼나. 이제는, 이제는 점점 나가고 싶어진다. 여기가 세트장인지 4차원 공간인지 그런 거 알고 싶지도 않고, 그래 단어가 생각났다. 탈출.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정말 1시간 전에 4시 방향에서 슈퍼 모델과 에르메스 친구들이 지나가기 전에 그들은 베스킨 라빈스 31 같은 아이스크림 가게에 있었다. 심심해서 베스킨 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 먹고, 목 말라서 카페에 들어갔다가 이렇게 된 거다. 그런데 에르메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과 같은 이름의 사람들이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알고 보니 어디에 가면 나이트 클럽 웨이터도 에르메스, 교수도 에르메스, 정육점 사장도 카페 사장도 거물 로비스트도 에르메스라고 한다. 또 어디가면 2명중 한 명은 머머-스키야, 어디는 뭔 놈의 로페즈가 그리도 많아. 코메디언 에르메스씨가 어느 날 에르메스 매장에 들린다면, 음 특종감이다. 그 에르메스가 그 에르메스다. 어쨌든 그 아이스크림 가게도 뭔가 이상했다. 그냥 보통 아이스크림 가게가 아니라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작은 상점이었다. 일단 천장이 낮아서 허리를 꾸부정하고 들어가야 하고, 점원들도 모두 작고 귀여워, 완전 애 어른이야, 내숭이면 어때, 완전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어, 덥─석, 포옹은 안돼, 겁탈은 범죄야, 어디라도 언제나 주머니에 넣고 가방에 넣고 데리고 다니고 싶어져, 그 뿐만이 아니야. 컵, 테이블, 포커 카드, TV, 기타 등등 모든 것이 다 작아. 완전 작아. 그렇다고 완구품은 아니고 실사용 가능해. 다만 사이즈만 미니야. 거울도 이상해. 쇼윈도우 바깥으로 보이는 투명한 정경도 특이해, 뭔가 있어, 뭔가 있어. 모두 다 미니 사이즈야. 진짜 여기는 소인국이다. 그래 딱─! 바로 그거다. 자신들을 걸리버 여행기 주인공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매우 과학적인 고도의 기법임에 틀림없다. 딱 1시간 전에 그들은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또 건물 만한 초대형 하프가 보인다. 그 옆으로 놓여진 커다란 하이힐도 보인다. 심지어 그 옆에는 집채만한 푸른색 반지 케이스가 있다. 그 옆에는 대형 케익 풍선이 있다. 대형 컴퓨터용 마우스, 노트북도 때락 커, 건물이다. 그 옆에는 초대형 선그라스가, 초초대형 후라이팬이 보인다. 그렇다. 여기는 대인국이고 일곱 친구들은 이젠 일곱 난쟁이도 뭣도 아니고 딱 소인이다. 덩치가 아니라 차라리 어려졌으면? 이미 쫄았으니까 소심해졌고 안 그래도 순진한 사람들이다. 이게 대체 뭐하는 설정이냐고! 난들 알아? 흑마술도 아니고 술책도 아니고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 그걸 어떻게 아냐고. 아니면 그냥 장난? 아니야, 꿈일 꺼야. 맞아. 꿈이야.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만족을 지연시키는 능력을 최대로 극대화시켜야 하고, 맨딩(맨땅에 헤딩하기)이든 뭐든 모두 동원하여 부딪혀 보는 수 밖에 없다. 어찌 보면 반쯤은 몹쓸 모험이다. 나중엔 그땐 말이야, 하겠지만 일단은 그렇다. 이젠 빠졌다. 홀딱 빠졌다. 지금은, 이제, 몰입. 그것만 남았다. 클리어. 이런 상상을 해본다. 공원에서 애들과 개와 고양이와 어른들의 웃는 모습이 보이고, 그 공원은 무작위로 10명에게 물어봐도 어딘지 1명도 모르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공원이고, 앞에 보이는 호수에서 알록달록한 카약이 왔다 갔다 하고, 산들 바람도 불고, 푸른 하늘에는 솜사탕 같은 구름이, 꽃 내음도 여인네들의 향수도, 물-풍선과 진짜 풍선도 공기 중에 떠 다니고, 누구는 책을 읽고, 누구는 풀밭에 누워 잠을 자고, 누구는 악기를 연주하고, 누구는 그 모습에 반하고, 누구는 글을 쓰고, 누구는 염문을 뿌리고, 누구와 누구는 염문과 추문과 연정의 차이에 대한 담소를 나누며, 누구는 맛난 음식을 먹고 마시고, 누구는 <연약한 여인의 초상에 신기한 불꽃을 일으키지는 못할지언정 주군의 태양을 가리지는 말아다오> 라면서 시 한 수 읊을려다 질질 끌면서 얼른 포기하고, 잔디밭에 마주 앉아 눈싸움을 하는 연인, 술 취해서 흐느적대며 몸싸움 하시려고 폼만 잡고 계시는 어르신, 주변에는 나비가, 멀찍이 까마귀와 더 멀리 올빼미 한두 종류. 직장인 조정부들과 1.5인용 소형 요트도 보인다. 그 요트 이름은 신드바드(Sindbad) 그리고 윈드 서핑과 함께. 존 업다이크는 책 표지만 닳아져도 마냥 좋은, 그렇게 좋은 날에 내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라, 라는 사랑 노래를 부르는 그렇게 평온한 무~사건의 일상. 그것의 잔잔한 소중함이 더없이 격조 높게 그리워지는 상황이다. 딱 그랬다. <해변에서 일출을 바라보며 요가를 하고 코코넛 주스를 마시는 것. 게으름의 끝까지 간 나머지 너무 지루해져서 이제는 제발 그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성공한 여행> 눈도 크고 손도 크고 발도 크고 골반도 크고, 게다가 키도 훤칠한, 그냥 키 커, 이거면 끝나지만 그럼 뭔가 아쉽다, 짠하단 말이야, 어느 금발? 아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자 운동선수의 이런 바램까지는 꿈도 꾸지 마라. 지금 이 순간에는. 이건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영락없이. 평생 딱 1번 겪을 것 같은. 하지만 대부분 평생 단 한 번도 체험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환상. 「나가고 싶어.」 「나가자.」 「어디로?」 「아무데나.」 원래 보통의 대화는 일정 길이의 단문이 가장 자연스럽다. 너무 짧은 것 말고. 완전 짧은 대사가 중심이라면 그건 속도가 빨라야 한다. 긴 대사라, 거기에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개그 컨셉이라면 생방송 코메디 쇼 프로그램, 얼마 못 가서 사람들이 있었는지조차 기억도 못 하고 없어지기 딱 좋다. 마술은 편집이 부리는 거다. 앗 넘어갈 뻔 했다. 나왔다. 속도.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여기서 말하는 일정한 속도를 인생과 비유하면 어려워짐. 그걸 말하면 너무 사람 외모나 그런 걸 말하는 것 같고. 인문교양 그래프도 3차원은... 3차원은 머리 아퍼. 속도에 관한 괜찮은 인문-교양서를 1,000권 읽고 나서 단 몇 줄의 밑줄만을 압축하여 말하고 싶지만 그건 어렵고, 다만 속도의 묘미 가령 존 르 카레의 소설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 에서 첫 제일 처음의 1~2페이지 그런 거? 쉬운 예는 영화 예고편? 그런 게 왜 멋지냐면 느림의 미학이 혼돈과 겹쳐져서 뭔가 새로운 기분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본편에서는 말하고, 듣고, 기다리고, 화면 전환과 이야기의 속도에 따라 장르가 바뀌기도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거다. 생각의 속도, 는 젊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 오 정말, 진짜 그래. 무조건 빠르고 느리고 완급 조절하는 거 말고, 노래하듯이 유기적인 거 말야. 분석적으로 멋진 얘기를 꺼내야 하는데 예시와 '난 뭐가 좋아', '느-껴' 그 말 밖엔 할 말이 없네. 「꼭 나갈 필요가... 있구나.」 「난... 아직 인데.」 그 단어. 객-기. 「뭐가 아직이야?」 「그런데 왜 우리 중엔 욕 잘하는 녀석이 하나도 없지?」 「왜긴 왜겠어. 그냥 그런거지. 그게 다야.」 「뭐 꼭 그걸 잘 할 필요가 있나? 있기는.. 해.」 「이 마당에 별 게 다 궁금하네.」 「아니 이 사람이, 그래 쓰잘 데 없는 얘기야. 나도 알아.」 「그런데 아직 별로 돌아다니지도 않았잖아.」 「또 뭐가 나올까?」 「뭔가 나오겠지. 뭐든 말야.」 「무슨 뾰족한 수 없을까? 없을 것 같다. 확실히 없다.」 「이거 미친 거 아냐. 우리...는 아니니까 로봇이 미쳤나. 정말 뭔 일이야.」 「하긴 아직 규칙도 몰라. 황금률의 비밀, 기본적인 패턴, 아무 것도 몰라.」 「맞아. 정말 그래.」 「그럼 어떡하지?」 「모르겠다.」 「나 원 참.」 「이런 제길슨.」 「어이 없어.」 그렇다고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거나 시간이 정지되거나 시간을 여행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스스로 이곳을 찾아왔나?」 「우리가 정말 모험을 바랐던 것일까?」 「우린 평소에 재미난 일이 없다고 너무 투정부린 건 아닐까?」 「여기 이곳은 대체 어디인가,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 「알 수 없는 미련과 방랑 속에 우린 헤메고 있구나.」 「끝이······ 있을려나.」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그래, 그러나.」 「너 바지에 그게 뭐냐?」 「어 진짜, 뭐야 그거?」 「설마······?」 「아니 아니야, 아까 어딘가에서 튀었을 거야.」 「오 신이시여.」 소설을 읽을 때, 일견에서는 한 소설을 왜 꼭 이해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작품해석과 감상평이 많이 비슷할까. 아닐 수도 있고, 일종의 역피라미드 분포일 테지만. 아, 그대는 예외다. 읽는 속도나 면밀한 주의력과 딴 생각과 외부 여건도 많아. 그런데 소설 내용과 정확한 대사와 플롯, 주제, 복선이 모두 머리 속에 파다닥 떠올라야 한다고? 오 이런, 그러면,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대관절 누가 피서지나 휴양지에서 책을 읽겠나. 유원지에서는 잘 안 읽어 책. 멀리 장기 휴가를 떠나야 책이든 잡지든 뭔가를 펼쳐 볼 확률이 높다. 시를 누가 읽어, 왜 읽어? 다 알면서 읽나, 시를 읽으면 뭔 말인지 알아? 아냐고? 시 쓰는 사람을 얼간이라 불러야 돼, 시인이라 칭해야 돼? 초딩이 어려운 철학서를, 할아버지가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읽을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순 가짜가 아니야, 순문학이 아닌 게 아니야, 그렇게 떼쓴다고 그리 되지도 않고 그럴꺼 같으면 날마다 뭐든지 우기면 장땡이게? 응에 응에 들이대 들이대 하면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들으면 진짜 봄의 전조가 느껴져? 정말로? 진짜? 구스타프 홀스트의 음악은? 긴장 풀어, 딱 풀어, 아직 안 끝났어. 마크 로스코나 다른 추상파, 추상파가 다 뭐야, 제일 유명한 그림들만 봐도 뭘 말하는지, 매번 볼 때마다 설레고 새롭고 가지고 싶고 빠져 들고, 그림 1점에 대해 1줄 감상평으로 시작해서 미술평론가와 대담도 하고, 젊은 친구들에게 강의할 수 있냐고! 미술 평론가도 그래, 진짜 어려운 작품이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와, 말을 걸어오냐고.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란 말이야, 나와, 나오셔, 나오라구. 누가 못 나오게 막는 거야? 그 인간 누구야, 남의 인생을 책임지지도 못할 꺼면서, 뭘 훈수 놓고 아끼면서 보필하는 흉내를 낼려고? 나오란다고 진짜 나오다니, 같은 그런 뭐한 말은 하지 않겠어. 제발 부탁하오니 은근 허당이래도 괜찮으니 나온다면 돌연 고마워할 테니 살며시 윙크라도 보내주세요, 자~ 나와 주시죠, 컴옹 컴온, 왜 못 나와? 어째서? 소신이 짐에게 아뢰옵나이다. 간곡한 소청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절대 천박한 유혹은 아니옵나이다. 하지만. 하지만, 만에 하나, 나온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건 딱 1가지다. 그분은 안다-박수 너머에 계신 분이다. 나 알아, 하지만 내가 눈치가 없나 봐, 나 보고 말귀를 잘 못 알아 듣는데.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돈 주고 사기 어려운, 사지 않아도 되는, 그래야 하는, 무엇보다 소중한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매사 심각하고, 진중하고, 맨날 찡그려 누가 못 건들게 또 날마다 할 말씀이 많으셨으면. 이 거짓말 진짜야? 왜 그대는 지금 소설 읽다 이유도 모르고 혼나고 있는데, 그렇게 씩 웃고 있어, 어째서? 인생이 그렇게 쉽나, 세상이 만만하냐고. 지금 이게 시간 낭비줄 아냐고. 세상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누군줄 아냐고. 왜 그 사람은 아들 이름을 2세로 지었어 것 참. 호통 개그를 뭘로 아냔 말이야. 단, 이렇게 말해도 글을 써도 된다면, 아마도 당신이 기꺼이 허락해 주신다면! 부디 이와 같은 비천한 표현을 용서하소서. 어쩌면 좋아 이 일을. 피터팬도 메피스토 펠레스도 그들 이름이 붙은 콤플렉스도 없다. 지금 있는 것은 이 친구들 뿐이다. 조니, 케빈, 알렉스, 마크, 하워드, 닉, 제임스. 7인의 무엇. 간헐적으로 뭔가로 분장한 분명 사람일 것 같은 움직이는 물체나 사람이 타고 있을 듯한 캐릭터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온전히 악수하고 눈빛을 마주치다 한눈 팔 수 있는, 미모를 칭송할 수 있는 보통의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배고프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잠이 오지도 누가 아프지도 굉장히 피곤하지도 않다. 그냥 덤덤할 뿐이다. 거짓말 같이 덤덤해졌다. 이유는 모른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귀결되는 행동은 하나다. 행진, 행진. 아무 생각없이 한 블럭을 걸어가니 스핑크스와 스타워즈 괴물들과 로봇들, 맘모스가 있다. 계속 갔더니 사람보다 몇 배 큰 다람쥐, 큰 사과, 대형 바나나, 하룩 선장, 아톰, 우주복 입은 곰이 보인다. 없는 게 없다.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배 수십대를 운반하는 배의 경적 소리 같다. 세계에서 제일 큰 트럭도 저 너머에는 있을 듯 하다. 히포크라테스도 있고, 법의 신 디케─유스티티아도 있고, 오리도 있고, 다이아몬드─클로버─하트─스페이스 문양이 그려진 킹과 퀸과 잭과 조커의 3차원 조각상도 있다. 뭔 말만 하면 뭐가 떡 하니 타나날 것만 같다. 또한 라이르, 헥토르, 오지에르, 란슬롯, 유딧, 라헬, 아테네, 아르기나, 카를 대제, 율리우스 카이사르, 다윗 왕,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리고 (손잡이만) 18K 도금한 대형 황금 호박마차까지. 건물도 유리 세정제나 콜라병처럼 생겼다. 믿을 수가 없는데 진짜다. 그들이 취한 것도 아니다. 약 먹고 환각에 빠지지도 않았다. 헛것을 본 것도 아니다. 웃기고 자빠질 일이지만 진짜다. 즉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거나 기괴한 수준의 장르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잘 찾아보면 실존하는 것들이 한 데 모여있다는 것 뿐이었다. 물론 그런 하나 하나의 존재마저도 사람이 살면서 일평생 한-두번 보는 게 어떻게 보면 평균이라서 좀 불가사의하달 수도 있다지만 딱히 놀라자빠질 것까지야. 아무래도 도시 자체 컨셉이 초─뭐, 이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만 하다. 차라리 이 친구들이 동남아시아 15개국 순방, 남아메리카 주요 도시 일주, 전-유럽 특급 열차 여행 뭐 이런 일정을 떠날 걸 그랬을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믿거나 말거나, 는 아니다. 절대 절대 절대. 여기서 끝나면 재미없지, 김샌다. 서운해서라도 막을 내려서는 안 된다. 이제야 정말로,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질려고 한다, 까지는 아니지만. 의젓하게 걸어간다. 마치 위풍당당이나 라데츠키, 젓가락 행진곡이 들리는 것만 같다. 아니 백조의 호수, 발레음악이 매우 작게 어디선가 울려퍼지는 소리가 잠시 들렸던 듯 하다. 잘 들어보니 대위법 멜로디 같기도 하고. 친구들끼리 각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고, 대화를 나누지 않은 채로 뭔가에 홀린 듯 걸어가니 넓지 않은 통로가 나온다. 한쪽 면은 명화들이 쭉 그려져 있고, 한쪽은 보통 가게들이 있다. 바로 앞에, 꽃집. 불이 켜져 있고 영업중인 듯 하다. 지나친다. 사람이 있겠나. 서점. 유아용 서점. 역시 장사하는 것 같은데 사람이 없다. 증발했나? 전진. 햄버거 집. 여기도······ 처음에는 그랬는데 의자에 사람이 앉아 있다. 오케이. 뭐야 이거. 이 친구들이 짧고 간략한 대화만 나눠서 그 말을 옮기는 건 생략한다. 잠시의 호기심이 확신으로 굳어진다. (얘네들 의식의) 1단계.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이 경기를 일으켰나. 얼음 땡, 놀이 하나, 아니다. 시간이 정지한 거다. 벽면의 시계도 정지해 있다. 살짝 녹아서 꼬부라져서 막 흘러내린다. 2단계. 착각이다. 시간이 정지한 게 아니라 마네킹들이다. 완전 정밀한 마네킹. 또는 실제 사람이 모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똑같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고~고~. 그 다음은 미술관이다. 구부러진 시계가 그려진 그림이 바깥으로 보이고, 르네 마그리트와 여러 그림들이 보인다. 사람은 없다. 큐레이터도 없고, 안전 요원도 없다. 그런데 한족 면 전체에 어떤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가만 보니 그들이다. 약 1시간 전 쯤의. 이건 아마 과거를 뜻하는 건가. 모를 일이다. 지나친다. 가전 제품 판매소. 여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역시 내부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그대로 비쳐진다. 여기는 현재다. 실시간으로 그 모습 그대로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치 거울과 같이 심령술사의 요술 구술이 가전 제품 판매소에서 파는 스크린에 펼쳐져서 보여지는 거다. 별로 특이하거나 신기한 일이 아니지만 즐겁고 우끼고 어떤 환영 같다. 자, 여기도 패스. 막다른 골목에 가게가 둘 있다. 하나는 아까 그 카페. 모비딕 등장 인물 이름의 간판. 왠지 불길하다. 여긴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 이유는 필요없다. 직감에 따라야 한다. 단지 이런 직관 외에도 또 다른 어떤 깜이 언뜻 스쳐 지나간다. 바로 이런. 누군가, 누군가 우리를 조져줬음 좋겠다. 오 젠장. 마지막 하나. NC. 나이트 클럽. 하나같이 입을 벌리고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모두 서로를 쳐다본다. 말없이. 후진은 없다. 후퇴라고 해야 하나. 모르겠다. 뭐 고도의 기법 어쩌고저쩌고도 아니고 동화 수준으로 글쓰기 스타일이 변했다. 그래도 문학을 내심 콩알만하게 생각했지만 쇼 비스니스 같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지금 머뭇거린다. 당연히 고민될 테지. 계속 머뭇거린다. 들어갈까 말까. 그래 나이트 클럽 이름을 보고 결정하자.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간판을 쳐다본다. 간판이 부분 공사중이다. 이런. 나이트 클럽은 나이트 클럽인데 이름을 알 수 없는 NC. 망했나? 아닌데 쿵쾅 쿵쾅 박자가 들려오는데... 들어갈까 말까. 안 들어가면 어디로 가지? 다른 곳을 헤매? 그러기는 싫다. 지금 우리는 소년이다. 그럼 들어가야지. 그렇다. 들어갈 수 밖에 없었나 보다. 조금은 무섭지만 슬금슬금 그곳, NC로 그들은 들어간다. 오오 초조하다.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알 수 없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러나 이게 뭔가. 미래는 그렇게 쉽게 찾아 오는 것이 아닌가? 나이크 클럽의 바로 옆 건물에 무슨 비밀 클럽 같기도 하고, 사설 슬롯머신이나 카드 게임장 같기도 하며, 뭔가 음산한 분위기를 전해오는 커다란 정육각면체가 있고, 문이 하나 달려있다. NC에 어렵게 마음 정해서 딱 들어갈려다 말았다. 거의 들어갈 뻔 했다. 여기는 안 큰 게 없다. 다 커. 그게 기본이야. 그 문에는 어디서 많이 봤던 글이 씌여 있다. <TIME MACHINE> 뭐야 이거. NC에 들어가기로 힘겹게 마음을 굳혔는데 갑자기 선택의 기로가 하나 더 나타났어. 선택지가 많으면 사람들은 힘겨워 한다는 학설이 맞는 얘기구나. 그들은 그렇게 느꼈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Time Machine에 들어가 말아? 그들끼리 몇몇 얘기가 오갔다. 침착허니 몇가지 경우의 수를 나눠보았다. <들어간다>의 경우의 수. (가정) 들어갔다. 1.<타임 머신이 작동하지 않는다.> 조작 자체가 안 된다. 생 고물, 순 엉터리다. 세계 8대 불가사의는 커녕 입담만 험해질 것이다. 2-1.<작동되어 떠난다. 미래로.> 과학적으로 이론상 불가능하단 얘기도 있지만 수많은 예술 작품을 봤을 때, 엄청난 소란이 발생하고, 사단이 일어나며, 말도 아니게 떠들석하게 난리가 난다. 따라서 이 친구들은 그런 떠들석한 어느 유쾌하지 않은 모험에는 빠져들기 싫었다. 또 굳이 시간 여행을 떠나야 할 만한 급박한 이유도 없고, 큰 사기를 쳐서 인터폴에 긴급 수배된 것도 아니고, 밑도 끝도 없이 뜬금없이 악당들에게 쫓기지도 않았으며, 괜히 무슨 사소한 일에 호언장담을 해서 길거리에서 빨가 벗고 춤을 추거나 어느 생방송에 나체로 뛰어들어 방송 사고를 내는 벌칙을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보통 시간 여행에 관한 작품에 보면 희생이 따른다. 슬프단 말이야. 게다가 찬란한 그리고 평범한 미래는 미래인이나 (시간 여행에 성공한) 과거인, 외계인이 아닌 현대인에 의해, 보통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시간 여행 영화를 만들거나 보거나 관심없는 사람들의 묵묵한 삶에, 보통 사람들의 끈기와 땀과 열정과 생활에 기반해서 미래가 온다는 것. 그래, 2번은 아니다. 영 아니다. 그 다음에, 2-2.<작동되어 떠난다. 과거로 돌아간다.> 만일 돌아갈 수 있다면 누군가는 지난 꿈을 살리고 싶다, 실수를 되돌리겠다, 실패한 사랑을 바꾸고 싶다, 아니야 나는 증권 시세표를 가지고 가서 부자가 될 꺼야, 거기서 과거에서 돌아오지 않고 살 테야, 라고 하겠지만 상식적으로 돌아가면 안 될 것 같지 않나? 이 또한 이미 수없이 여기저기서 많이 나온 얘기다. 그래 이것도 아니다. 남은 패는 이거다. <들어간다>의 1번, 타임머신이 작동되지 않는다. 알고 봤더니 그건 고물이다. 고물일 꺼야. 고물이어야만 해. 그건 미완성이다. 장난하냐, 장난해, 순 허당이네, 개수작이군, 라고 실망하는 것 보다는 그냥 들어가지 말자, 이렇게 결론낸다. 그렇게 해서 정말 딱히 큰 사건이 없었는데도 힘들게 NC에 그들은 들어가게 된다. NC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짜잔~ NC에 입장 완료. 드디어 들어왔다. 오 이런, 뭔 놈의 사람들이 이리도 많아. 아까 바깥에는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이 동네, 이 도시 사람들이 여기 전부 다 집결했나 보다. 그런 것 같다, 가 아니라 진짜 그랬을 꺼야. 바깥 거리와 가게에는 개미 새끼, 파리 한 마리도 없었으니까. 이건 뭔가 음모가 있는 것 같다. 일단 표면적으로 그렇고 굳은 농밀한 약속? 뭔가 그런 게 있을 것만 같다. 비싼 티켓 값을 내고 도시인 모두가 일상과 생업을 팽개치고 입장? 그럴 리 없다. Invitation Only, 전 도시인 모두가 이 클럽의 회원? 이것 또한 설득력 없는 얘기다. 자, 견적 나왔다. NC, 나이트 클럽 사장이 꾸민 일이다. 일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이권을 제공하고 도시 사람들을 불러들인 거다. 옛날에 성주가 어떤 특별한 날에 성대한 수평적인 잔치를 열었던 것처럼. 그 사람의 어려서 꿈이 NC 사장이었는지, 사기꾼에게 빌려준 거액의 부채를 못 받아서 이곳의 전-사장이 운영권을 넘기고 튀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NC 사장, 그 인간의 계략이거나 그 똘만이 불량배들의 작당임에 틀림없다. 그나저나 뭐 사건의 개요가 대충 가닥 나왔으니 이젠 잔치를 즐기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말이다, 왜 지금까지 그들은 하워드에게 지금껏 일어난 일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을까. 「하워드, 너 뭔 일인지 알고 있지?」 「그래, 하워드. 왜 지금까지 하워드에게 이 일을 물어볼 생각을 안 했지?」 「그러게 말야.」 「우리가 시간을 즐겼으니까. 그거야. 이유는.」 「그렇게 불쌍한 표정 짓지마, 하워드.」 「얘 원래 표정이 좀 이래.」 「그래도 지금 좀 이상한데.」 「여기 봐봐. 턱수염 이거 이상하잖아. 가짜 같아. 만져 봐.」 한 친구가 그의 턱수염을 만졌는데 턱수염 전체가 살짝 움직이길래 좀 더 잡아 당겼더니 그것이 모두 떨어졌다. 가짜 턱수염이. 「뭐야 이거.」 「이게 뭐야.」 「그래 정말.」 「그런데 하워드 치고는 좀 뭔가 얼굴 균형이 틀어진 것 같지 않냐?」 「어 정말.」 「목소리도 좀 달라. 아니 말을 거의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몸짓과 태도 또한 평소랑 조금 달라.」 「얘 볼 꼬집어 봐.」 하워드의 볼을 꼬집은 그 순간 모두들 깜짝, 완전 깜딱 놀란다. 그건 매우 정교한 마스크였다. (예산이 매우 풍족하게 많은 그런) 영화 찍을 때나 쓰는 마스크. 가짜 하워드가 마스크를 슥 벗는다. SF 영화처럼 자연스럽고 그래서 뭔가 못 볼 걸 본 듯이 다들 깜짝 놀란다. 어안이 벙벙하다. 가면을 벗고 가짜 하워드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실은 제가 하워드님 대역이에요. 얘기 듣기로는 저번에 케빈님 댁에서는 케빈님과 똑같이 생기신 분이 대역을 맡았다고 하였는데, 오늘은 수소문 끝에 하워드님과 딱 닮은 단역을 찾지 못하여서 피치 못하게 제가 대역을 서게 된 거죠. 아까 거리에서 진짜 하워드님과 선수교체했어요. 놀라셨으면 죄송하지만 좀 놀래켜 드리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사실 저는 이곳 나이트 클럽의 주인이에요. NC 사장. 어릴 적 꿈을 이뤘죠. 일명 NC 사장. 같은 부락에서 어쩌다가 하워드님과 알게 되어 형-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죠. 이곳 도심지에 들르시니 재미있으신가요 아니면 지겨우신가요, 그것도 아니면 무서우셨는지. 그 오묘한 감정은 나중 시간이 지나면 더 정확해지겠죠. 그럼요. 하워드님은 멀리 계시지 않아요. 그리고 이 지역은 일종의 예술가 마을 그런 셈이구요. 오늘은 그 기념일이구요.」 이 친구의 얘기가 끝남과 동시에 그 순간, 어느 영화 배우처럼 잘 생기고 한 눈에 봐도 카리스마 넘치는 웨이터가 그들에게 다가온다. 꼭 걷는 게 슬로우 모션 같다. 그런 걸음걸이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정말 신기한 동화에서 막 튀어나온 사람의 걸음걸이 같다. 게다가 바지의 그 부분은 지퍼가 아니라 단추가 달려있다. 마치 성우와 같은 음성으로 실례한다, 어디로 모시고 싶다, 그러면서 그들을 안내한다. 커다란 나비 넥타이를 매고 연미복을 입었는데 상당히 멋져보인다. 남자라서 아쉬울 정도다. 이 친구를 따라서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실내의 복도를 요리저리 오르락 내리락 지난 뒤에 도착한 곳은 NC, 나이트 클럽 사장실이었다. (여기서 잠깐, 독자님 가운데 나이트 클럽, NC 사장실에 가보신 분? 아마 많이 잡아도 1,000명중 1명 아닐까? 그냥 노파심이다. 이 소설의 핵심적인 어떤 맥락의 하나는 가역성의 폭과 희소성 그것과 관련되어 있다) 노크 후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상 너머로 어떤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는데 의자의 등부분이 보인다. 의자의 팔걸이에는 까맣고, 전체적으로 까만데 약간 흰털이 섞인 고양이가 펑크락 악세서리를 하고서 앉아 있다. 이 작자가 하워드일까 아닐까? 잘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딱 맞춰 돌아서야 하는데, 암만 보아도 뭔가 어설프다. 또한 의자가 고장나서 돌아서지 않고 살짝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그뿐이다. 「이런 하워드, 자는 거야?」 「이러기가 어딨어?」 「이 친구 정말 팔자 한번 좋네.」 「우릴 그렇게 뻑 가게 만들어놓고 이러기야?」 「난 이 친구가 진공관 오디오에 LP로 명테너의 아리아를 틀어 놓고, 시가 한 대 피우면서, 꼬냑 한 잔을 모셔 놓고, 트럼펫 주자와 의상 디자이너 그렇게 2명의 아리따운 아가씨와 함께 우릴 환영해 줄줄로만 알았지 뭐야. 그러면서 우리에게 보여줄 무슨 초청장을 들이밀거나 아니면 보물섬 지도라도 내놓아야 하는 거 아냐? 그래야 폼나잖아. 응당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들이 댈 땐 들이 대야지.」 「아무렴, 누가 아니래. 이 친구 말 한 번 잘하네. 우리 생각이 그거야. 바로 그거라구~ 트럼펫 주자가 여자면 플루트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그럼 음. 그 있잖아. 지금 말이야, 왠지 모르게 착 감기는, 살짝 끈적한 느낌이 들어도 좋으니 괜찮은 블루스 한 곡 듣고 싶지 않니?」 「
블루스가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블루스 추고 싶은 거겠지.」 「
오 하워드. 잠이나 깨 이 친구야. 그 중절모는 또 어디서 났나?」 「그래 그만 막을 내려야지. 가제트 형사 흉내 그만 좀 내고. 아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가제트 형사야. 이거 원~.」 이렇게 분위기가 살갑고 평온한 찰나 이 친구들에게 핸드폰 메세지가 도착한다. 도합 여섯개의 신호음이 띠리릭 띠리릭... 순서대로 울리니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것만 같은 멜로디인 듯 느껴진다. 엘리제를 위하여? 그건 아니다. 터키 행진곡? 그것도 아니다. 아무튼 그렇다. 그들끼리 쓰는 어플인지 기계적 메세지인지 그것을 6명이 모두 확인해 본 후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이 이상하다. 그게 뭐냐는 거지. 「너네들도 알파벳 한 문자야?」 「음, 너도?」 「자네도?」 「나도.」 「나도.」 「모두 다 한 문자의 메시지를 받았군.」 「저 앞에... 등 돌리고 앉아있는 사람 말이야. 하워드가 아닌 것 같은데.」 「맞아. 수상해. 아닐 꺼야.」 한 친구가 겁을 먹은 골든 리트리버나 그레이트 데인처럼 좀 쫀 듯한 몸짓으로 가짜 하워드로 의심되는 사람이 앉아있는 의자를 돌릴려는데 의자가 안 돌아간다. 의자가 고장난 거다. 의자는 딱 봐도 정말 비싼 건데, 보통 사람들은 99.9%는 평생 살아도 그런 의자 한 번도 구경 못하는 그런 의자. 그래서 그들이 그쪽으로 간다. 가서 확인한다. 모두들 의자에 앉혀진 모자 쓴 인형을 확인한 후에 그들을 데려온 웨이터와 하워드 대역을 찾는다. 하워드 대역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기생오라비 같은 웨이터만 남아 있다. 재빨리 팔을 비튼다든가 험한 말로 겁주고 물어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6명 모두 가만히 그 웨이터를 쳐다본다. 뭔가 아는 게 있으면 실토하라고, 다소곳이 정답게 속삭여주라고. 「오 저는 하나도 아는 게 없습니다.」 이 대답으로 만족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다시 한마디 더한다. 「실재 모르는 일이지만 만약 안다고 해도 저는 그 내막을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7인의 사나이에서 한 명 빠진 이 친구들, 이래도 만족을 못하다니. 웨이터가 또 한마디 덧붙인다. 「카이저 소제는 악마인데 어떻게 악마의 뒤를 쏘죠?」 얘네들 완전 식겁한 표정이다. 「신을 믿지 않지만 전 신이 두렵습니다. 그런거와 마찬가지로 전 카이저소제를 믿진 않지만 카이저소제가 두려워요.」 이젠 그가 웨이터처럼 보이지 않는다. 「놀고 있네~. 농담이고, 아저씨, 완전 멋져! 우리랑 같은 꽌~데. 영화 많이 보셨네.」 「연기력... 괜찮아. 이 친구, 믿음직한데.」 「그래, 그러게 말이야.」 「방금 온 문자나 검토해보자.」 「휴~ 그래야지. 웨이터 아저씨도 다른데 가시면 귀하신 몸일 텐데, 딱보니 여자들한테 인기도 많을 것 같아. 완전 카사노바야. 아니 그 스승쯤 되겠어. 완전 선수 타입이야. 절대 호구는 아니야. 국가대표. 아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그래 뭔가 우리들 스스로 풀어가야만 할 듯한 느낌이 드는군.」 「난 O.」 「난 M.」 「T.」 「O.」 「I.」 「J.」 「이게 뭐야?」 「이건 뭐지?」 「누구 암호 공부했던 사람 있어?」 「뭐야 뭔 뜻이야?」 「뭐하라는 거야? 뭐 하자는 거냐구?」 「혹시······ 우리들 이름 철자와 관계 있나?」 「아~ 알겠다.」 「뭔데?」 「그래, 뭐야, 궁금해서 오줌이 다 마려우네.」 「이건, 이건 말이야. 알렉스가 먼저니까 M, 그 다음이 제임스 O, 조니는 J, 케빈 I, 마크가 받은 문자는 T, 그 다음 닉은 O. 음, 그거야, 모─히─토!」 「그게 뭔데?」 「와우, 그거 칵테일 이름인데. 그게 왜?」 「모히토. 여자들이 첫사랑과 첫키스를 하는 날 그리고 첫날 밤에 마시고 싶어하는 칵테일이라는 엄한 낭설이 한 때 유행한 적이 있었지만 그건 그냥 잡설이고, 이건 뭐냐면.. 음...」 첫날 밤에? 선생님 첫날 밤 얘기해주세요?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소신은 선생님이 아니라 소설가이옵나이다. 성은이 만극합니다.
「에이 꼭 중요한 순간에 뜸을 들여 이 친구.」 「하하하 그건 뭐냐면 바로 하워드의 요트 이름이야.」 「홀리 쉣.」 「삐─.」 「삐─삐─. 하워드는 못 말려.」 「카이저 쏘제는 키튼이였어!」 「오 멋진데. 기발해.」 「짜식 놀래켜 줄려고 스토리 좀 짰어.」 「그러게. 뭐 반전까진 아니지만 나름 그럴 싸 했어.」 「나쁘지 않아. 나 쌍코피 터질 꺼 같아.」 「괜찮았어. 죽이는데.」 「와우, 다시 기분이 좋아졌어.」 「가보자.」 「그래, 가보자.」 「웨이터 아저씨한테 태워달래자.」 「그래, 그러자. 가짜 하워드는 여자 꼬시러 갔나 봐.」 「순 바람둥이 NC 사장 같으니라고.」 그 뒤로 어떻게 되었다 라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흔한 열려 있는 결말이었으니까.
이와 같은 일이 있은 후 두가지 기억할 일이 생겼다. 잊혀질 것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지만, 유행을 타는 건가 아닌가도 불필요한 얘기지만, 그건 두뇌가 할 일이지만 혹시나 아차 하면서 웃을 만한 사실을 놓치고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차원에서 기록하고 지나간다. 첫째, 마지막 나이트 클럽에서 친구들에게 접근하여 한편으로는 느끼한 달리 보면 기품있는 정중한 말을 건넸던 친구, 커다란 가방만한 나비 넥타이를 맸던 웨이터의 가슴에는 뭔가가 달려 있었다. 뭔가가. 그 뭔가는 바로 명찰이었다. 나 명찰, 하고서 턱하니 붙어 계셨던 명찰. 명찰에는 어떤 글씨가 적혀 있었고. 그 글씨는 이랬다. 에-르-메-스! 둘째, 그 다음날 메이저 일간지나 널리 알려진 언론사 사이트가 아닌 조그만 지역 신문과 지역 방송, 그 웹사이트에는 작은, 매우 작은 토막 기사가 실리고 TV로 라디오로 방송되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이와 같다. <어제 걸리버시에서는 보름달이 가장 밝고 커다랗게 떠있는 시간 전후로 다음과 같은 지역 행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 참고로 보름달은 수퍼문이라서 낮에도 떠있었다고 합니다. 어제 있었던 스폐셜 데이는 이름하여 샌드위치 데이. 그곳의 여러 상점에는 상점의 이름과 같은 이름의 사람이 방문하고, 여러 사인회 또한 열렸다고 합니다. (사인은 무척 피곤한 일이다. 평생 멋진 사인 없이 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사인하는 게 싫어서 두려워서 유명해지기 싫은 사람 또한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유명인을 볼 기회가 있으면 연예인을 뭔 봉으로 아나, 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인을 해달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뭐랄까 사인은 무섭다. 특히 사인펜과 종이가 마찰 할 때의 소리, 윽 고통이다) 보통 이런 일이 하나, 둘 열리면 뉴스라고 할 수 없지만 어제 걸리버시 행사에서는 모두 비밀리에 약속하여 한날 한시에 이와 같은 이벤트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가령, 에르메스씨가 에르메스 매장을 방문하고, 애플 매장에 백설공주 복장을 한 아가씨가 방문해서 사과를 선물하고, 맥도날드 매장에서 맥도날드씨가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디즈니라는 본명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 코스플레 행진을 하고, 어느 나이트 클럽에는 드레스 코드가 매우 특별했다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브랜드의 대형 상징물을 그날 걸리버시에 건립하거나 플래시몹을 진행하고 NC에 입장하는 손님은 입장료와 모든 사용료가 무료였고, 지역 주민은 모두 걸리버 뱃지를 차거나 걸리버 복장 또는 걸리버와 털끝 만큼이라도 관계되는 뭔가가 있으면 이 역시 NC 무료 입장에 모든 사용료가 무료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그날의 47번째 손님을 골탕먹이는 일을 실시간으로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고 합니다. 참 재미난 일도 다 있죠?>
from 소설
2015. 5. 9. 17:42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당신의 꿈은 뭐였소? 그대가 사랑했던 하나의 그림과 음악과 글, 그것은 무엇이었냔 말이오! 표현주의와 상징주의, 염세주의등을 잘 거론하지는 못하여도 지금 또는 근래, 오랜 과거에 공부하거나 읽거나 들어보기는 했던 친구가 있다면 부담없이 가볍게 얘기 나눌 수 있는 흔한 대화의 소재로 쓰일 수 있는 질문이다. 예를 들면, "내가 요즘 쓰고 있는 글은 이래.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라는 음악과 드 쿠닝의 그림, 인지심리학과 사회경제학을 융합한 이론을 통찰하고 아름답게 포장하여 모두 한아름에 품어 안은 듯한 시적인 이야기. 옛날에 시를 쓰고 싶어서 딱 한 편의 시를 썼던 적이 있었어. 많이도 말고 단 한 편. 그 때 펜팔해서 만났던 목소리가 이쁜 어느 소녀에게 내가 쓴 딱 한 편의 시, 그걸 선물했지. 그런데 그건 거의 낙서였어. 지금 생각해도 아무 의미없는 끄적거림, 그것이었지.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희망을 품게 한다는 책무도, 헛바람이든 환상이든 뭔가를 불어넣는다는 수법도 모르는 단순한 백일몽 같은, 그래도 나름 순진한 아주 약간 순수한 장난. 아마도 그 분야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나봐. 어쩌면 그래서 지금 한 편의 소설을 쓰고 있지지도 몰라. 아 꿈이 뭐였냐고? 어떻게 꼽겠어, 날마다 바꼈는 걸." '어떻게 질문하라' 를 수십 년 가르치는 심문 전문가, 30년 경력의 베테랑 심문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어 보면 자기가 추궁받는 것 같은 심정이 드는지 안 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날 사랑해, 사랑하지 않아?' 라는 선택형 대사처럼 '예'와 '아니오'로만 답하라고 직업병처럼 말하는 손꼽히게 잘 나가는 변호사, 영화에서만 그런지 실제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위의 질문은 그런 심문 전문가와 변호사보다는 놀이터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즐겁게 놀고, 웃으며, 별 이유없이 좋아라 하는, 언제나 기쁨이라는 순수한 상태에 어렵지 않게 안착해 있는 아이들의 물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복잡하고 어렵게 셈하며 추론하고 연역하여 몇 가지 답을 미리 예측하여 물어보는 질문이 아닌 매우 막연한 물음표, 그것이다. 깊고 멀리 다각도로 그리고 복합적으로 짱구를 굴린 다음에 꺼내는 용건, 또는 1차적 직관 즉 그 1차적을 위해 선천적인 재능과 평생의 노련미가 담겨진 블링킹에 따라 즉흥적으로 붇는 시비? 그 모든 것을 게다가 제깍 순식간에 해치워서 계산한 다음에 묻는 문장이 아닌 느낌과 생각과 마음이 툭 튀어나와서 상대방이 탁 하고 듣는 과정, 그것의 시작, 닮고 싶지만 결코 닮을 수 없는 따라하기 어려운 그 무엇, 어린이의 그 궁금증을 억지로 흉내내어 본 것에 불과하다. 이 챕터의 첫 문장을 왜 이렇게 썼는고 하니 그것은 J가 예전 썼던, 나는 어떠한 스타일의 글을 쓰고 싶다, 나도 어떤 글을 쓰고 싶다, 이런 느낌으로 베스트셀러 취향이 아닌 단 몇 명의 (초)극소수의 정신줄을 그야말로 완벽하게 놓아 버리게 할 수 있는 그런 혼돈의 마성과도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앞서의 기억을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1인칭 소설은 아니지만 일단은 챕터에 따라서 부분적으로 그가 주인공이니까 그가 지금 하는 생각, 외부에서 주어진 모험과 우연과 행운이 아닌, 그 인간의 내부적인 심리에 촛점을 맞추어 보면 결국 지금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방금 전 문장에서 그렇게 예언했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열광과 갈채를 포지셔닝한다, 그것은 십대의 마음과 상당히 유사하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유명인을 남들이 친구들이 좋아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즉 나는 특별해 나는 이래 나는 어때, 라고 말하고 표현하지 않아도, 갈고 닦아서 후천적으로 뛰어날 수 있는 자질이 아닌 선천적으로 1차적으로 곧 취향만으로 검은 백조이고 싶은 느낌, 아름다운 건 아름답다고 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건 못되니까 내 능력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안목에 대해서 얘기 듣고 싶은 마음, 괜찮아라 하는 작가의 책이 인기없고 도서관 종합자료실에서 냉대를 받고 독서 웹사이트에서 숫자 자체가 극히 낮으면 십대의 기분이 어떻겠나? 날아갈 듯 하겠지. 그래서 어떤 열광의 주체가 극소수에서 다수로 바뀐다면 그건 비명이라는 하나의 명사로 축약할 수 있고, 그 단어 앞에 당연히 상반되는 꾸밈어 '행복한'이 붙게 된다. 지금의 순서와 과정에서 하는 생각, 그 생각이라는 것은 이렇다. (내가) 또 다시 최근에 썼던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예전처럼 밑줄 긋는 수준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쓰고 싶다는 황당무계한 그런 한소리 듣기에 딱 적합한 바램은 지난 어리석은 소망이었고, 그냥 최근에 썼던 쓰고 있는 그 만큼으로만 (제가) 무리없이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던 일을 계속 하는 일상처럼, 회사에서 짤릴까 봐 벌벌 떨면서 일하지 않고 적당히 하루하루 놀면서 즐겁게 사는 듯 그렇게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처럼 어렵지 않게 일 하듯이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제가 감히? 어떻게 또 다시? 또 다시 그렇게 글을 쓸 수 있을까? 대충 규칙적으로 블로그 포스팅 남기는 게 전부였는데, 또 뭔가를 업데이트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이라는 것은 이랬다. 꽤 우습고 썩 겸손하게 건방져 보일 수도 있지만 달리 보자면 그건 1) 바라는 기준선과 2) 현실과 타협하는 기대치가 낮아졌다는 말이다. 그 커트라인이 낮춰지는 동안 도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그리도 염원했던 글쓰기 레벨을 스스로 폭탄 세일하게 된 것이냐 하면, 달리 큰 일은 없었고 다만 그것은 단순한 변덕에 가까운 현실과 크레파스 그림이나 어린이가 그린 수채화와 쏙 닮은 이상의 타협이었을 것이다. 그 기간 동안에 걸친 변화의 양질과 성격이 대관절 뭔 말을 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뜻 하는지, 정녕 왜 그랬는지─왜라니, 모리스 콘키스에게 물어보는 게 훨씬 빠르겠다─그건 몰이해하고 불확실하지만 그 부여된 동기가 비상하고, 명철한 이유가 상당히 이상한 것 하나는 확실하다. 자,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는 예전 어느 때 19세기 20세기 21세기 글 가운데 (자기가 마음에 들어라 하는) 최고의 밑줄을 압축하여 그것만을 모아 놓은 듯한 말도 안 되는, 꿈도 야무진 새롭고 신선한 별종의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다, 어떻게? 그냥 최근에 썼던 정도로만 근근히 블로그 포스트만 쓰고 싶어라, 이렇게. 뭔 조짐인가는 몰라도 사실이 그랬다. 엄연한 실측이 그렇다. 그러면, 그러면 앞으로 다가올 변화의 바람은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에 물음표를 붙이기엔 뭔가 재수없다. 그것이 수수께끼라면 다행이고, 보통은 넌센스 게임이며, 만일 악수로 예상된다면 누구에게나 아무에게나 별다른 관심사가 아니라서 큰 흥행 요소는 아니기 때문에 1번 읽거나 1번 듣고 잊어버릴 이야기이기 때문에 영리를 목적으로 연극, 영화, 서커스, 소설 따위를 요금을 받고 대중에게 보여주기엔 부적절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니까 그 인간 상태가 멀쩡할 리가 없다. 안 그래도 뭐한 상태가 말이다. 사연은 그러했다. 뭐야 잠깐, 누군가 밑줄을 그을 만한 글이 나왔나? 안 나왔다. 이런 개뿔. 그럼 그렇지. 다음은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짧고 툭툭 던지는 대화체가 나온다. 일상적인 남자들의 대화와 비슷해서 가장 현실에 가깝지만 결코 현실과 같지는 않다.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에 나오는 대화는 전부 완전 과장된 거다. 백프로 미화됨! 현실과 비슷하고 살짝 다른 이야기들과 몇몇 사연과 정담을 대화에 포함시켜서 소개한다. 목적 불문하고 논리보다 직관에 따라 감각적으로 일단 읽고 나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게 지금 급하게 결정한 권장할 만한 독서법이다. 「얘 옛날에 놀이공원에 가서 바이킹 처음 탈 때, 바이킹에서 기절했자나.」 「왜 하필 바이킹이야?」 「원래 인생이 다 그렇잖아.」 「원래 인생이 그렇다? 바이킹에서 기절 하는 일이 인생이구나.」 「그게 뭐야?」 「뭐긴 뭐야 인생이라니깐.」 「아휴 증말 놀고들 있네.」 「너는 관상을 보니... 음, 구강학적으로 아니 가족력 때문에 내분비계적으로 유난히 침샘이 건강한 듯한 그래서 놀이공원에서 바이킹 탈 때 건너편에 앉아 있는 미녀들에게 침을 많이 바람에 띄워 보냈을 것 같아. 마치 연애편지처럼. 그것도 한가득.」 「아니야. 난 바이킹 탈 때 고개 팍 숙여. 눈도 감어. 완전 움츠리고 앞에 손잡이 꽉 잡고 있어. 하지만 오줌은 안 싸.」 「바보같은 녀석.」 「펠리컨 같은 놈.」
「밥통.」
「미련 곰탱이.」 「반사.」
「거울.」
「자충수.」 「너가 얘 때렸지? 애가 왜 이래? 안 그래도 상태가 안 좋은데 말야.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 거야?」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맨날 똑같은 레파토리 식상한 멘트, 이젠 지겹지도 않아.」 「아니, 난 재밌는데.」 「아니, 난 재밌는데.」 말 따라하기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뭔 소리야?」 침묵. 대화가 끊겼다. 새소리 효과음이 들리는 것 같다. 꺅~ 꺅~ 대답없는 메아리. 원래 말로 확인하는 건 남자들이 선호하는 특징이지만, 서로들 속으로 딴생각을 하고 겉으로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상황 즉 다른 주파수의 라디오 방송을 말하는 DJ들로 전이되어 각자 독립된 말하기를 주로 하는 것 또한 남자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혼돈과 소란을 즐기는 것처럼 이러면서 노는 거다. 그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말을 받아준다. 「뭐야? 늬가 카피라이트 작가냐?」 「어, 어떻게 알았어? 새로운 광고 카피라이트인데.」 「그냥 찍었어.」 갑자기 그들 앞으로 주인이 있을 것도 같고 없을 것도 같은 강아지 한마리가 지나간다. 「항상 킁킁거리고, 아무거나 핥아대고, 내력없이 짓고, 난데없이 배를 까며 아무나 좋다며 꼬리 흔들고 달라들어 험핑하는 착해 빠진 녀석. 그 이름도 다의적인..」 「뭐? 내가 그렇다고?」 「아니. 개가 그렇다고.」 「아니. 개가 그렇다고.」 또 말 따라하기다. 어렸을 때 그러다 고약한 어른을 만났다면 된통 혼났을지도 모른다. 「호도하기는.」 「뭐 호도? 이 녀석이 어디서 어려운 말을 쓰고 그래?」 「호도하다 몰라? 아니 나이가 몇인데 그런 말도 모르냐?」 한술 더 뜨기. 부족한 듯 해서 화자가 다시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을 이어서 말한다. 「어, 그럼 완상하다는 뭔 뜻이야? 방금 전 상황에서는 완상할 줄 알아야 하는 거야.」 「설마 모르기야 하겄어(하겠어)? 말 보다는 글에서 간혹 쓰이니까 쟤가 잠시 쫄았나 봐.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그런 불안 심리가 깔린거지. 봐봐 얼굴 빨개지네.」 「나 원래 얼굴 빨갛거든. 그 말하니까 옛날 생각난다. 예전 대학교 1학년 때 우리 과에 나보다 얼굴 더 빨간 친구가 있었잖아. 어느 날 강의실에서 교수님이 강의 중에 갑자기 그 친구 보고 그러시는 거야. '자네는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갛나? 혹시 술 먹고 들어온 거 아닌가?' 그래서 그 후로 걔는 그 강의가 종강할 때까지 항상 강의에 참석하기 전에 술을 꼬박꼬박 한 병씩 마시고 강의실에 들어갔잖냐. 지성의 전당인 대학교에 낭만파가 아닌 코메디언도 한 명 필요하다. 무언의 퍼포먼스로 알아달라, 그 말을 하고 싶었나 봐. 큰 인기는 없었지만 독특한 녀석이었어.」 「그 친구 그래도 재미있었을 거야. 처음엔 오기였지만 나중엔 즐겼을 게 틀림없어. 아 나도 재미난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나도. 아아 뭔 일을 해도, 뭘 해도 재미없다.」 「그럼피캣 같은 놈 같으니라고. 넌 회복탄력성이 없는 게 문제야. 그러니까 일도 노는 것도 게다가 일상까지 모두 다 재미없지.」 「뜬금없이 뭔 회복탄력성?」 「그냥 어제 책에서 본 단어인데 한 번 써먹고 싶었어. 오랫만에 인문-교양서를 읽었다는 거 아냐.」 「그게 다야? 싱거운 놈.」 「넌 날 몰라.」 「남자는 관심 없어.」 「너는 일 재밌냐?」 「세상에 일이 재밌는 사람이 어딨냐? 아니 조금 있기는 있을 꺼야. 그러면 세상에 공부가 재밌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그것도 조금이나마 없지는 않을 테고. 그런 머저리들 같으니라고. 아무튼 난 그런 천재도 아니고, 난 일 재미없어.」 「일도 재미없고, 노는 것도 재미없고, 말장난하는 것도 재미없고, 대화하는 것도 수준 하고는... 에이 뭘 해도 재미없어.」 「어? 그거 명대사 같은데. 뭘 해도 재미없어. 뭘 해도 재미없다. 음, 기분이 이상한데.」 잠깐 침묵. 캔맥주 한 모금. 「명대사 아는 거 있음 하나씩 말해 봐.」 「손만 잡고 잘께.」 「그냥 해 보는 건 없어. 하냐 안 하냐, 둘 중 하나야.」 「더(The) 빼버려.」 「인생은 짧지만 인생을 막 살지는 말자.」 「뭐야 그거 명대사야? 이상한데, 아닌.. 것 같은데? 어디에 나오는 거야?」 「아무데도 안 나와. 그냥 해 본 말이야.」 「이런~.」 「개 풀 뜯어 먹는 소리하고 있구먼(만). 개가 풀을 어쩌다 한 번 뭐 때문에 풀을 뜯어 먹는다고 이미 밝혀졌지만, 개가 풀 뜯어 먹으면 뭔가 좀 신기해, 웃겨.」 「그럼 눈치 깠으면 즉시 말을 바로 따라했어야지~ 박자를 못 맞추고, 눈치도 없고, 연애도 못해. 그러니 여자 마음을 알 수가 있나.」 「그 얘긴 그만해. 머리 아프니까.」 「일단 여자는 잘 맞춰 주는 게 중요해. 늬 말하는 속도가 안 빨라도 돼. 너의 속도 자체는 안 중요해. 하지만 상대방과 말하는 속도를 맞추란 말야. 행동도 그렇고. 너만 혼자 앞서가고 뒤쳐지고 하지 말고, 상대방과 맞춰, 하모니, 몰라? 보통의 균등한 음절과 운이 이어지다가 말이 점점 빨라진다~ 느려진다~, 목소리가 커진다~ 작아진다~, 말수가 많아졌다~ 적어졌다~, 기본적인 몇 가지 무엇. 너무 늦지 않게 말하는 속도의 비율을 맞추어야지. 맥락과 리듬을 듣는 것처럼 대화가 약간은 악보로 시각화되지 않으면 곤란해. 날 이끌어 줘, 라고 말하는 듯한 끌리는 눈빛도 읽어야 해. 일부러 반대되는 유형에 내 의식을 결부시키는 건 회사에서 프로모션 회의하고 바깥으로 나가 신제품 영업하는 거랑 똑같다구. 한마디로 피곤한 일이지. 경이로운 신비를 찾지 못한다면 말이야. 혹시 그 카피라이트 기억나니? 사랑도 일이다! 당연히 기억나지 않겠지. 안 팔렸거든. 내가 지었어. 팔 생각도 없었으니까 시장에 나오지도 못했지. 세일즈도 연애도 원래 힘든거야. 」 「그만 하라니까 이 자식이, 나도 알기는 알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덥다 춥다 그런 날씨 말고, 우리 내면의 일기예보. 아는 데.. 아는 데... 잘 안 돼.」 「늬 말마따나 실천이 중요하지. 세상일이 그렇잖아. 1년 후를 예측하고, 지금 최근의 성과를 따져 그리고 지난날의 결과를 말하지. 간혹 그런..게 떠올라. 자꾸 이론과 경험을 얘기하고 싶어지는 거 말야. 왜 자꾸 이러는 거지, 하면서. 어차피 지난 날의 얘기라면, 실은 그런 걸 다 몰랐을 때의 얘기가 더 재미있는데 말이다.」 「그러게 말이야.」 「너네들 그거 아니? 꼭 트위터에서 해쉬태그(#) 달고 머머를 해보자, 그런 거 있잖아, 모든 말 앞에(뒤에) 삐─를 붙여 보자. 지금 이런 거랑 비슷해져 가고 있어. 이제 그만 하렴.」 「그래, 완전 초딩 같아. 꼭 어느 세일즈맨의 초상 같아. 초상 맞나? 세일즈맨이 아니라 예술가던가. 우린 뭐지.」 연애코치를 하는 친구와 받는 친구를 놓고서 갑자기 한 친구가 불쑥 진지한 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게 뭔지 알아? 이게 뭔지 알기나 해? 모를거야 왠지 알아? 낙인을 찍지 않고는 이게 뭔지를 보지 못하니까.」 바로 이어서 또 다시 말한다. 「보이스카웃 때 잔디에 누워 바라보았던 별똥별. 집 앞 도로에 늘어선 노란 빛깔의 단풍잎. 메마른 종이결 같던 할머니의 손과 살결. 사촌 토니의 신형 화이어버드를 처음 구경했던 순간. 그리고 제인, 나의 공주. 그리고 캐롤린.」 「와 뭐야, 얘 갑자기 왜 이래. 약 먹었나?」 「오 제법인데~」 「와 사람이 달라보인다야. 맨날 헛소리 한 번, 개소리 한 번 하는 줄만 알았드니만 (짝짝짝).」 간지러운 박수 받는 걸로는 부족했는지 명대사 또 나온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가슴이 벅찰 때가 있다, 터질듯이 부푼 풍선처럼.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걸 깨달으면 희열이 몸 안에 빗물처럼 흘러 오직 감사의 마음만이 생긴다. 소박하게 살아온 내 인생의 모든 순간들에 대하여... 오늘은 나의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 「뭐야? 그걸 다 외웠단 말야? 오 이런~」 「그러게 와우~ 여기서 써먹긴 아깝지만 와 대단하다.」 「아직 안 끝났어.」 쉬지 않고 이어서 말한다. 「바로 그거야! 크고 시끄럽고 빠르게 펑펑 터뜨려, 사람들의 눈을 보라고!! 반짝 거리잖아. 이런 걸 좋아하지, 피와 액션을 좋아한다고! 말 많고 우울한 철학 따위엔 관심이 없어.」 「기다려. 하나 더 있어.」 또 이어서 말한다. 「이 연극이 중요한건 아빠 혼자에요 다들 신경도 쓰지 않는다구요. 연극이 끝나고 어디서 커피를 마실지가 그들의 문제일 뿐이에요.」 「아주 영화 찍네 영화 찍어. 너 사람 감동시키기로 작정했냐?」 「미안 미안. 나 요즘 쉬고 있잖아. 호르몬 변화 때문인지 무슨 신드롬 때문인지 이상하게 요즘 대사 외우는 취미가 생겼어. 나도 잘 모르겠어. 왜, 언제, 어떻게 그런 취미가 생겼는지 말이야.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했다면, 음 더 말해 뭘 하겠니. 예전에 아는 여자애 꼬실려고 외웠는데, 중요한 건 말이야, 그걸 써먹을려다가 써먹지도 못하고 끝났다는 거. 슬픈 추억도 뭣도 아닌 추억이 있다. 그 대사 써먹을려고 마음 먹었던 아가씨가 나에게 아주 마음이 없지는 않았는데, 그것참, 데면데면하진 않았는데 그냥 시시하고 멋쩍게 끝났버렸지만 이런 말을 했던 걸 보면 완전 싫지는 않았단 말이야. 언젠가 그녀와 정담을 나누는데 이러더라구. 다른 얘기는 다 생략하고 이 말만 하께. 딱 이랬어. 만약 자기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막 여자들 다 따먹고 다녔을거라는 거야. 정말 웃고 좋아하면서 말하는 걸 즐기더라니까. 진심이었나 봐. 만일 그랬다면 진짜 그랬을 꺼 같아. 정말로. 말 그대로. 어라~ 그렇다면 지금 현재 잘 나가는 어디 어디 카사노바들과 불세출의 호색한 돈주앙들이 혹시 여자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남자로 잘못 태어난 것은 아닐까? 잘 모르겠군. 알게 뭐야. 낚시꾼과 난봉꾼들은 뻥이 너무 쎄. 그러니 도통 믿을 수가 있어야지. 하여튼 거짓말쟁이들 하고는. 짜장 어업 종사자들도 그들처럼 그럴까? 어림없어. 당연히 물고기 잡고 나서 호들갑 떨지 않지. 그런데 문제는 여자들이 순정파와 로맨티스트 그리고 바람둥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거야. 바꿔 말하자면 원래 그 구분이 어려울 만큼 그 특성들이 혼재된 건지도 모르지. 달리 해석하자면 남녀 사이는 당사자들만이 아는 비밀과 정 아니면 그냥 헤프닝이나 일방적인 구애가 있는 것 뿐이지. 그건 그렇고 그 대신 칵테일 빠에서는 언니들에게 긴 명대사 읊어서 인기 좀 얻었어. 막 띄워주니까 술값은 좀 나왔지만. 좀 많이 나왔어. 막 옆에서 오페라 단원 합창하듯이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쭉쭉쭉쭉~...' 하니깐, '쩍쩍쩍쩍, 쩍쩍쩍쩍, 쩍쩍쩍쩍~' 하니까 정신 못차린 거지. 아 맞다. 그녀가 이 말도 했다. 남자들이 막 집에서 이상한 걸 보니까 그래서 요즘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대시를 하지 않는다는 거야. 뭘 보는데~ 그렇게 물어보니까 막 뭘 본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다시 남자들이 대체 뭘 보느냐고 물어보니까 또 알려주지를 않아. 살살 설득을 했지, 그래도 너가 보는 건 아니잖냐, 아 네가 아닌 남자들이 뭔가를 보지 않냐, 그러니 진짜 그들이 보는 게 뭐냐, 이렇게 달랬다니까. 속마음을 살살 긁었어. 그런데 그녀의 눈빛이 좀 이상했어. 내가 눈치가 너무 없었나? 참나~ 그러더니 하는 말이 그래. 그래도 여자들도 너무 그렇다는 거야. 뭐가 그러냐고 하니까 뉴욕이나 파리, 로마, 어디 어디를 가면 사람 많은 거리에서 남자들이 지나가는 여자를 가만 놔두질 않는데. 며칠 굶은 것처럼. 그럼 여자들은 약간은 즐기면서 흘리면서 현지 사정에 맞춰 정서를 읽고 적응해야지 그게 뭐냐는 거지. 또 런던 어느 거리에 갔는데 남자들이 모두 무반응이라는 거야, 전부 석남과 돌부처인줄 알았데. 도대체 중간이 어디냐면서. 다른데는 안 가봤다는 거야. 말하는 게 정말 웃겼어.」 말을 마치고 이 친구가 왠지 모르게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곧이어 다시 말을 잇는다. 「엉아가 긴 명대사 얘기를 해줄께. 긴 명대사를 읊으면 짧은 대사를 말하는 것보다 뭔가 있어 보여. 따라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테고. 긴 거 외우는 게 어려우니까 아예 해볼 생각 자체를 안 한다니까. 사람들 따라하고 흉내내는 거 봐봐, 전부 다 짧은 거야. 긴 명대사에서 성대모사? 목소리 안 비슷해도 상관 없어~. 좀 틀려도, 좀 까먹어도, 좀 생략해도 대사 쭉쭉 빼기만 하면 눈치 채는 사람 또한 별로 아니, 거의 아니, 한 명도 없다니까. 긴 대사 모두 외우고 있는 사람이 일절 없거든. 다만 대사칠 때 이런 손동작, 제스춰는 이렇게, 고개 각도는 이처럼, 어조에 신경 쓰고, 시선 처리 어떻게, 전체적인 태도와 기색을 가장하고, 특히 눈꺼풀을 파르르 떨어, 그럼과 동시에 말만 하면 돼. 대사 까먹지만 않으면 돼. 생각보다 사람들은 굉장히 예절-발라, 빠져들기를 좋아한단 말이야, 최면을 걸어주란 말이지, 무척 착~해! 대사 끝나면 뭔 줄 알아? 일단 감탄사야. 백프로. 삐── , 라고 말하거나 입만 벌리거나 입을 벌리고 혼자만 들을 수 있게 속삭이는 거지, 아뿔싸, 라고. 멈칫 하면서 뭔줄 몰라 하는 표정. 하지만 대충 눈치는 채. 절반은 어 그 영화인가, 절반은 가슴이 찡한데, 하는 인상을 띄우지. 어쩌다 한 명은 완전 천진난만하게 웃거나 그냥 쓰러져. 그게 여자라면 홀딱 넘어온 거야. 속으로, 뭐야 그걸 다 외웠단 말야? 또는, 와 오빠 멋있다, 이렇게 생각하게 돼. 완전 작업의 정석이지. 즉 뽀너스로 독심술까지 겸비하게 되는 거야. 긴 명대사의 특징이 뭔 줄 아니? 그 비밀? 바로 가슴 속의 응어리야. 그걸 축약한 거야. 내면에 깊숙이 침잠해 있던 그 잔잔했던 태풍의 눈을 모두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야. 그럴려면 그만한 서사가 있어야 하고, 살아왔던 현실과 모순되는 사정들이 커다랗게 쌓여야 하겠지. 그 긴 명대사를 읊어대는 당사자의 가슴에 말야. 가슴 속의 응어리, 긴 명대사,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를 떠올려 봐. 그러니까 시와 소설과 인문-교양서에 나오는 불꽃 같은 문장이 아니어도 별로 어려워 보이거나 멋져 보이지 않아도 쉬운 말만 모았어도 딱 장면이 나오는 거라니까. 긴 명대사는 긴 세월의 응어리를 압축해서 쏟아내기 때문에 밑줄 그을만한 수준이 아니어도, 별 내용 없어도, 직업도 별로고 꾀죄죄한 모습의 볼품과 비전 모두 없는 주인공이 말할지라도, 아무런 쓰잘데기 없는 말일지라도 그 긴 대사를 들을면, 그 청각과 시각을 기본으로 하는 경험을 겪고 나면 내 공감각이 흔들려. 심하게. 아무 쓸데없는 말일지라도 가슴이, 떨-려, 뭔가가, 뭉클~하다구. 바로 그거야. 정말 인상깊게 느껴진다고, 짠한 감정 찡한 무엇이, 그게 저 밑에서 솟구쳐 올라와 그럼.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 뒤돌아 서서 내 일상으로 돌아오겠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동안 그 경험 때문에 틈틈이 기분이 좋아, 이따금씩 말이야. 그래서 요즘 영화 볼 때는 그런 장면을 자꾸 만나고 싶다니까. 이젠 짧은 명대사로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모르긴 몰라도 그런 사춘기 소녀도 있을 꺼야. 결단코 어딘가엔 있을 꺼야, 미래에라도 있을 꺼야. 없다면 최면을 걸어야지. 막 이제 화장하기 시작하느라 친구들과 수다를 나누는 소녀들 가운데 자기의 꿈은, 백마 탄 왕자와 결혼하는 게 아니라, 온 신경이 짜릿하게 목소리가 기막히게 마음에 쏙 들지 않아도 괜찮다, 막 잘 생기지 않아도 좋고, 억수로 돈이 많지 않아도 상관없다, 다만, 둘 중 하나는 꼭 갖추었으면 하는 바램. 그걸 가슴 깊이 간직한 소녀. 글을 잘 쓰거나 아니면 말을 잘 하는 사람. 글이나 말 말야. 자기 아빠는 둘 다 못하니까, 자기는 커서 꼭 그런 남자와 사랑을 하고 싶다는 청아한 꿈을 잉태한 소녀, 그런데 둘 중에 하나가 아니라 둘 다라면... 오오 아~찔하다, 그런 소녀 분명 어딘가에 있을 꺼야. 햄버거값, 아니 더 쓴다, 고급 피자값 걸겠어 음. 아, 긴 명대사가 나오는 영화 또 보고 싶다. 그 인상적인 장면들. 음음. 그게 바로 연기력이고 상황 설정이야. 안 좋은 얘기지만 사기도 원래 그렇게 치는 법이야. 나는 사기 쳐 보지 않았지만. 완벽한 상황 설정에 물오른 또는 미리 계산된 어줍짢은 연기력, 빵-, 후~! 원리는 간단해. 이런 거야. 어때, 한 번 해볼 생각 있어? 사기 말고 긴 명대사 말이다.」 「와우~」 「오 이런 삐─삐─삐─ 말발 끝내주는데. 늬 말이 딱 긴 명대사 같다. 완전 멋져! 그런데 왜 네 영업 실적이 안 나오는 거지? 이상하네.」 「야 너 말발로 절세미녀를 꼬시는 단 한 가지 방법, 뭐 그런 책이라도 읽었냐?」 「와 어떻게 알았어? 그런데 그런 책을 읽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게 어떤 방법인가는 안 가르쳐 줘. 세상 일이 원래 그래.」 「그래 맞아. 인생에 정답은 없어.」 「지금 휴직중이라서 그랬단 말이지. 음. 음 그럴 수 있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아까 말한 기나긴 명대사가 어디에 나오냐고 뭔 영화인지 물어볼려다가 갑자기 안 궁금해지네. 괜히 슬퍼진다야.」 「그래. 힘내 짜샤.」 「우리 회사로 와라. 먹고 살만한 연봉은 맞춰줄 수 있어. 나도 이제 넘버 쓰리니까 너 하나 꼽아주는 건 일도 아니야.」 「언니들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서 별로 반응이 좋지 않구나. 이런~ 괜히 힘뺐다.」 「그래도 나름 감동했다. 격렬하게 완상하고 있다구~.」 「목마르겠다. 맥주 한 모금 마셔라.」 「완상? 딴은 난 중혼이란 말을 최근에 처음 들었어.」 「실상 말하자면 난 우행이란 단어를 처음 읽었고.」 「솔직하기는. 이 친구가 얼굴만 좀 받춰줬더라면... 머리가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말발이 약간만 더 그럴싸했더라면... 목소리가 약간만 더 도톰하고 착 감겼더라면... 아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가 아니래.」 「아 완전 우울하다.」 「조금만 더 뭐라고? 뭐야, 듣기에 따라서 썩 슬픈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데로 괜찮다는 뜻 같기도 하고, 아니면 여러가지 모두 이도저도 아니고 아예 바닥이라는 얘기를 돌려서 하는 건가? 이거 매기는 거야 쓸만하다는 거야?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은데...」 「뭘 또 그렇게 비꼬고 그러냐? 너 집에서 아침에 거울 안 봐? 마스크 괜찮자나. 이성이 좋아하는 인사와 태도와 에티켓, 빠삭하잖아? 너 운동 좀 하잖아? 여기서는 연봉킹에 차 괜찮은 거 타, 운전 잘해, 안 그래? 늬 전성기를 떠올려 봐, 한 번에 몇 명의 여자가 대쉬했다고? 제7의 전성기가 기다리고 있다니까. 에이 왜 그래~」 「너 아주 사람을 들었다 놨다, 뭉겠다 로켓에 태웠다가 어쭈, 언변이 많이 늘었는데? 요즘 누구랑 어울리는데 그래? 이건.. 내가 봤을 때 이건 절대 책으로 독학해서 도달할 수 있는 레벨은 아니야. 인터넷으로도, 학원에서 배운 것도 아니라구. 딱 보니까 최고의 웅변가 옆에 한동안 착 달라붙고 따라다녀서 약간이나마 그 비법을 전수받고,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연마한 끝에 몸에 익은 형국 같은데. 뭔가 수상해.」 「생각이 많은 걸 보니 너도 요즘 힘든가 보구나. 다 아니고 그냥 웃자고 한 얘기야.」 「아 명대사, 나는 아는 명대사 짧은 걸로 괜찮은 거 하나 있었는데 말 안 할래. 괜히 먼저 말했으면 완전 챙피할 뻔 했다야. 지금 여자가 안 끼어 있어서 다행이지 뭐냐.」 「나도 딱 그랬다니까. 저 녀석 왠지 아~주 잠깐만 멋져 보였어. 그러면 뭐해, 고독한 청춘, 아니 뭐 꺾인 거나 마찬가진데.」 「그런데 있잖아. 이상하게 지금 이 상황 어딘가 모르게 어느 찌질한 소설가 지망생이 Ctrl+C Ctrl+V 하면서 막 영화 대사를 복사해서 때려 붙여넣기로 만든 소설 나부랭이 같지 않냐? 나만 그런가? 그냥 그런 느낌이 없잖아 있단 말야. 하긴 그런 미친 놈이 어딨겠어. 있다고 해도 그런 소설을 누가 사서 읽겠어. 신경쓰지는 말자고. 하던 얘기나 계속 하자.」 「명대사? 난 그딴 거 생각 안 나.」 「그래 명대사 많이 알아서 뭐하겠니. 남자들끼리 만나서 명대사 얘기라. 아아 그럼 이제 사랑 노래를 불러야 하나?」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 꺼야.」 「그래 그 얘기는 그만 하자꾸나. 음.」 「뭐 재미난 일 없냐?」 「그게 명대사야?」 「그만하자니까.」 「아니. 뭐 재미난 일 없냐구?」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그것도 명대사야?」 「명대사에 환장했냐? 명대사 타령 그만해.」 「특히 너.」 「그게 아니라, 재미난 일이 떠올랐다고.」 「뭔데?」 동시에 같은 톤 똑같은 어조와 길이로 들리는 두명의 목소리. 정말 기다려온 애타게 듣고 싶었던 한마디였던 듯 전혀 그렇지 아니한 듯, 그렇게 이구동성으로 되묻는다. 「재미난 일이라니까. 음...」 「아 뭐냐고?」 「그런 게 있어.」 「아 뭐냐니깐, 이 자식이...」 「용건만 얘기해.」 「낚시 가자.」 「낚시?」 「왜? 뭐가 잘못 됐어?」 「아니 그건 아닌데...」 「추접스럽게 그게 뭐하는 짓이야?」 「뭐? 낚시가 추접스럽다고?」 「얘 통화중이야.」 통화가 끝나고 잠깐의 여운과 침묵 그리고 미묘한 감정의 오고감이 있었다. 「낚시 말고 딴 건 없냐?」 「딴 거 뭐?」 「밑도 끝도 없이 누가 우리를 쫓고 추격하지는 않잖아. 일단 뛰어, 일단 뛰고 계속 뛰어. 이젠 그런 거 힘들어. 흠뻑 젖고는 싶지만 몸이 안 따라 줘. 술도 옛날에 3병 마셨는데 이젠 2병 반 아니 2병도 힘들어. 지갑 사정도 좋지 않아. 마냥 요행을 바랄 수만은 없어. 어느 날 하루 딱 그런 날이 있다고 치자. 한 번 상상을 해보자고. 어느 날 낮에 커피숍에 들어가서 커피값을 계산할려는데, 점원이 그래, 뒷사람이 당신의 커피값을 미리 계산했다는 거야. 말로만 들어봤던 그 뒷사람 음료수 값 지불하기, 를 당했네? 진짜로. 그래서 마시게 된 레모네이드의 맛은 천국행 열차에서 파는 설탕물 같았어. 그러다 나와서 거리를 지나가는데 누가 차를 타고 가면서 돈을 뿌려, 어느 빌딩 옥상에서도 누가 돈을 뿌려, 동전은 아니고 지폐 말야. 바쁘지 않은 척, 많이 줍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척, 하면서 조금만 많이 주웠어, 횡재한 거지. 그런데 그날 따라 고기가 먹고 싶은 거야. 그래서 고기집에 들어갔지. 혼자서. 그런데 무슨 가게 창립 기념일이라고 모두 공짜라는 거야, 이런~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는 거지. 그곳에서 음식 왕창 먹고 나와서 집 근처에 있는 빠에 간거야. 해가 아직 지지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입가심만 하고 들어가자, 이런 생각으로. 그런데 또 누가 골든벨을 울리네? 아 너무 행운이 하루에 몽땅 생기면 뭐랄까, 뭔가 불안하달까? 그래서 땀 흘리고 운동하고 친구랑 얘기하고 그럴려고 연락해서 친구를 만나. 술 한잔 하면서 얘기나 할려고. 그래서 그 날 밤에 그 친구들이랑 회포를 풀면서 열심히 이빨 깠어. 그 술집에서 갖은 험담과 욕설과 저주와 불만과 아주 엄한 얘기들을 마구마구 해댄 거야. 원래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뭔가에 씌었나 봐. 그러고서 술집에서 나갈려고 계산을 할려는데 주인장이 그러시는 거야. 옆 테이블에 계셨던 손님께서 계산 하시고 나갔다는 거야. 다만 이 말을 전해달라는 거지.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나 시골 이름)도 살만 하다고 전해 주래. 그날 그 술집 옆에 술집 가서 외상이나 긁을까 하다가, 외상이란 걸 한 번도 해보질 않아서 왠지 한 번은 해보고 싶었거든, 그러다가 자중하고 좀 더 착하게 살자고 다짐하는 거지. 뭐 이런 걸 바라겠냐? 어?」 이 말이 끝나고 또, 잠깐의 여운과 침묵 그리고 미묘한 감정의 오고감이 있었다. 「갈까?」 「가는 건 문제가 아닌데. 단지... 잘 잡힐까?」 「퍽이나 잡히겠다.」 「안 잡히면 어때?」 「바닷가에서 술 마시고 고기 구워 먹고 오는 거지.」 「그렇지. 그럼 고래를 잡으러 가야겠어? 그냥 낚시하러 가자.」 「그럴...까?」 「그래?」 「월척특급.」 (제일 기본) 낚시대 이름이다. 「허송세월.」 (제일 값싼) 낚시대 이름이다. 하이파이브. 짝짝. 몸개그. 쩍쩍. 「이게 만일 소설이라면 완전 싸구려 삼류 소설이겠다. 잘하면 그럭저럭 심심한 코메디 영화일 수도 있고. 원래 그런 영화가 집에서 뒹굴면서 보기엔 딱 좋은데 말야. 사실 그럴 때만 나오는 딱히 설명하기 어려운 웃음의 포인트는 다른데서는 막상 찾기 힘들단 말야. 장르는 코메디, 실없는 코메디 영화인데 사실 별로 안 웃겨. 살면서 따분한 권태의 늪에 빠지면 이게 뭐가 코메디 영화야? 그러면서 성질부리면서 안 봐.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웃기단 말야. 정말 웃겨. 허를 찌르는 거지. 보면서 잠자도 돼, 그만 봐도 돼, 누워서 보고 서서 보고 앉아서 봐도 돼. 딴생각도 할 수 있어. 아이디어 하나 챙겨, 쓸 얘기를 건져 올려, 마음껏 허탈하고 편하게 영화를 보다가 딱 한두 번 진짜 웃고 한 번 어이없이 웃고.」 「너 어제 영화봤냐? 재밌는 영화 아니면 얘기하지 마라.」 「그나저나 아휴 뭐냐 이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참을 수 없기는, 다 살게 돼. 꽃은 꽃이고, 사람은.. 사람이야.」 「미안하다. 결론낼려고 한 얘기는 아니야.」 낚시 외에 그들에게는 경우의 수가 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꽃 저 꽃 보이는 데로, 닥치는 데로 벌꿀을 채집하러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뭔 바람이 불었나. 이 얘기 저 얘기 대화의 맥락이 영 울퉁불퉁 뚱딴지 마냥 정신이 없는데, 실제로 마초의 대화는 이렇게 그 모양과 성격이 예쁘지가 않은 법이다. 남들도 다 이렇게 바보처럼 대화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일단 그들은 그렇다. 완전 바보 같다.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라는 노래 제목을 실천하는 사람처럼. 그들이 말하는 가운데 유명한 희곡의 주인공 이름을 연상시키면 햄릿의 대사를 읊을 수 있을런지 자못 의심스럽다. 햄릿뿐이겠는가 셰익스피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인 로미오와 줄리엣, 오셀로, 템페스트, 맥베스, 리어왕, 베니스의 상인, 십이야, 한 여름 밤의 꿈, 헛소동 등등. 과연 몇 명이나 이 작품들을 읽고 감상했으며 알고 있고 게다가 여러 이름들과 장면들을 외우고 있는지, 왠지 모르게 궁금해 하면 안될 것 같고, 어딘지 모르게 그걸 내색해도 분명 어떤 예법에는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그 의구심의 옅은 은막을 냅다 겉어내고 싶다. 삶이란 자고로 기쁘고, 즐겁고, 신나고, 마냥 재미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게 바로 인생의 모진 측면이라면 잠깐 아주 잠깐만 생각 좀 해 보고 감내하며 그 다음으로 나아가자는 거다. 난 태어나서 거의 40년 살았지만 지금껏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나 경구와 명대사를 풍자하는 식의 대화를 나눠 본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다. 뭐뭐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는 표현은 자주 쓰면 안되는데 멀지 않았던 때에 쓴 거 같아서 지금 두번째 거짓말을 한 양치기의 심정과 비슷하다. 최대한 많은 어휘와 단어와 표현들을 쓸려고 노력하는 마당에 말이다. 그건 무시하고, 셰익스피어 관련 얘기를 나눠 본 기억이 일평생 단 한 번도 없다, 까지 했다. 음, 그건... 뭔가 잘못된 거 같다. 내 인생은 그렇다쳐도 내가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 그 끕은 없었다는 뜻일까? 아닐까? 아니면 남들도 대체로 그러할까, 누가 속시원히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도무지 알 수가 있나. 그냥 그런 건 말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법이라는 어른 세상의 불문율인가 보다 하면서 사는 거지. 하긴 나도 남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지 못했으니 쌤쌤이다. 완전 피장파장이지. 얘기가 곁가지로 잠시 샜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들의 의견을 나누는 방식, 대화법을 살며시 조금만 과장해 보자면 이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가장 일상적인 경험, 즉 고개를 언뜻 돌려서 아날로그 시계를 바라봤는데 갑자기 시침이 일순간 정지했다가 1초가 아니라 10초, 는 너무했고 1초와 10초 사이의 어느 즈음 정도로 느껴질 만큼 그렇게 시침이 느려진 경험을 살면서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았을 것 같은, 1초면 1초고 10초면 10초지 그렇게 어중간하게 늘어진, 왔다 갔다 그네 같은 주관적 시간이 어딨냐는 듯한 친구들의 대화같다고나 할까, 약간 그런 감흥이 느껴지게 만드는 사람들의 어울림 같다. 그들도 언젠가 오랜 옛날에는 아기 향기를 풍기고, 비누 냄새를 많이 좋아했을 텐데, 아니 아기 향기만 맞고 비누 냄새는 아닌가, 아무튼 조금은 그랬을 테다. 때문에 독자들이 이런 혼잣말을 하게 되는 절호의 찬스 아닌 찬스가 되었다. 내가 지금 이 소설을 왜 읽고 있지! 이들의 대화를 듣고 나서 중요한 얘기는 없으니 또 웃기는 내용도 아니니까 그냥 흘려버리겠지만 누군가 어떤이는 하나 떠오르는 게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아이디어나 사건, 동물, 물건, 기능, 심상이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 말이다. 간혹 주변에서 어느 허름한 주거용 2층집이나 낡고 아담한 건물 같은 건축물의 2층 외벽에 유리창이 아닌 문이 달려있는 모습. 창문이 아닌 여닫이 문이 왜 그곳에 달려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드물게 그런 사례가 있긴 있다. 설계와 시공이 일치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인지 누가 알겠나. 하지만 묘하게도 보통의 설치 미술 작품보다 오히려 더 눈길을 끄는 장면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우연성 때문에 말이다. 일부러 그 반응을 감안한 실수나 패러독스치고는 아주 약간 신비감이나 웃음을 좀 색다르게 선사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다. 지으면서 잔금을 못받아서 괘씸하니까 장난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당신이 대화의 이상한 방식에 억울하게도 딱 빠졌다면 몇 명의 친구들이 모였나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친구들은 인도 영화 제목처럼 세 얼간이들이었다. 세 명의 친구들이 하던 얘기로는 정교한 구조와 치밀한 구성에 따른 틀에 절대 들어맞지 않는다. 거의 막 갖다 맞춘 조립식도 아닌 TV 홈쇼핑에서 선전하는 반자동 기기, 그것을 선전하는 MC의 화법 같다. TV 홈쇼핑에서 파는 상품과 그 MC의 말은 훌륭하지만 그걸 흉내내는 소설. 그것은 전통적인 소설 작법과 문학상의 기준에 따른 소설론에 따르면 완벽한 불량품이다. 이 말 한 사람이 딴 말 하고 성격도 안 맞고 뭐 하고 뭐 하고, 완전 이를테면 삐─삐─ 이런 거다. 하지만 세밀하게 첫 번째 아해가 어떻고, 두 번째 아해가 어떻고, 세 번째 아해가 어떻고, 그걸 모두 먼저 정하고 구조도와 설계도 만들고 글쓰기에 돌입하면 이렇게 내용이 나올 수는 없을 것 같다. 최소한 여기서는. 또한 대부분의 독자는 A가 말하는 내용이 모두 일관되게 A가 말하는지, B가 하는 행동 모두가 전부 B가 하기에 적절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인지, 그리고 A와 B 사이에서 번민하고 괴로워하는 C의 마음에 대한 설명이 그게 모두 C에게 알맞는 설명인지, 그 다음에 사건 D의 개요, 상징성 E, 반전 F, 숨겨진 행동 G, 완독을 최소 3번 해야만 어렴풋이 이해 가능한 흐름 H 등등을 대부분의 독자는 잘 알지 못하고, 지나간 내용 역시 왜 그랬는지, 뭘 어쨌는지 그다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는 읽는 순간의 경험이 중요하다. 다른 모든 일은 똑똑하고 또 똑똑하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은 썩 그렇게 똑똑하지 않으면서도 똑똑하다. 뭔 말이냐면 소설 한 권 읽으면 끝이지, 그 하나의 소설을 날이면 날마다 얘기하지도 않고, 영화처럼 전시회처럼 유행가처럼 향유하는 소비재 성격에 경험 재화의 가치가 더해진 거다. 아무리 복선을 깔고 어쩌고 저쩌고 해도 1년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1년이 뭐야 1주일이면 감사하지, 또 다른 재미난 일들을 찾고 또 찾는다. 즉 그 경험을 하는 독자가 주인공이지 소설 책 한 권이, 소설 책이나 작가 한 명이 주인공은 아니란 말이다. 이번 챕터에 나온 대화도 역시 셋 중 누가 어떤 말 하고, 누가 어떤 말 하고? 별 관심 없다. 완전 관심 없다. 읽는 동안의 경험이 중요하지. 앞뒤 안 맞는 것 또한 당연히 별 문제될 거 없다. 그런데 학교나 학회, 문학상 시상 기준은 그런 걸 제일의 기준으로 꼽는다. 그래서 거기 맞혀서 모범적으로 쓰면 대부분은 한마디로 책이 많이는 안 팔린다. 이미 옛날에 다 듣거나, 읽거나, 봤거나, 경험해버린 내용이 담겨져 있을 뿐이다. 맙소사 엄한 얘기를 해버렸지만 다시 돌아와서 보자면, 그렇게 나온 내용물에서 가장 중요한 주안점을 하나 뽑는다면 그건 경험이라는 거다. 경험. 글을 읽는 경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처럼. 영화 한 편 보면 남는 게 뭐가 있어, 뭘 먹는 거도 아니고 사진이 남는 거도 아니고, 옷이나 가방처럼 박스도 없어, 어디 멋진 곳에 갔다 오는 것도 아니고 시컴한 구석에 앉아 있다만 나오는 거야, 옆에서 바스락 바스락 시끄럽게 하고, 앞에서 안고 쓰다듬고 속삭이고 막 그래, 돈만 쓰고 나와, 데이트 할려고 좌석 2개와 가방 놓을 좌석 하나 이렇게 3자리 표를 샀는데 바람 맞었어, 영화도 재미없었어, 그렇게 영화를 보는 경험처럼, 그것처럼 말이다. 그럼 그 경험을 누가 하나? 대학교수도 아니고 평론가도 어떤 전문가도 아니다. 일반 독자다. 전문가가 독자인 경우는 그건 교집합도 되고 지금의 논리에도 맞지 않으니 열외로 한다. 글을 읽는 경험을 파는 거다. 이 경험이면 어떻겠소, 돈이 되겠소, 인기를 얻겠소, 가치가 있나요, 교훈이라도 간접적으로나마 하나 획득하길 바라오. 이런 심정과 그런 이유로 어떤 풍경의 장소에서 대화를 나누고, 무슨 상황에서 이동하고, 어떤 차를 타고, 무슨 옷을 입고, 어디서 자고, 누가 말하고 누가 듣고 나머지 한 명은 뭔 생각을 하고, 작가는 이걸 생각하고 독자는 저걸 떠올리는 그런 설명을 서술자는 잘 못한다. 대부분의 소설은 그런 단정한 설명으로 전체 분량의 반틈을 할애한다. 대부분에 해당하지 않는 스릴러, 추리소설이 재미있다면 그건 어느 정도 스피디하고 깔끔한 전개 때문이다. 그래서 베테랑 시나리오 작가가 발표한 소설을 보면 전체 분량이 무거운 소설처럼 길지 않다. 절대로. 뻔하지만 변명 잠깐 하자면 인기 가수의 노래들처럼 그건 하나의 유행이라고도 볼 수 있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철지난 노래, 가끔 들으면 괜찮다. 그런데 날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듣는다면... 음 그렇다. 젊은 친구들이 옛날 노래를 들으면 박자도 안 맞고, 멜로디도 그렇고, 뭘 얘기하는지는 가사 전체가 듣는 그 즉시 머리 속에 통채로 핑 하고 떠올라 버린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은 철지난 노래를 날마다 들을 수 없고, 신곡도 몇 번 듣고만 말거나 다른 신곡을 기다리고, 기실 노래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경우도 많다. 가끔 옛날 노래를 들으면 완전 좋다. 그 뭐지 OST가 아니라 잠깐씩 TV 프로그램에 쓰이는 음악들, 그거 전부 다 철지난 옛날 노래들이다. 옛날 유행가들. 그런데 지금 유행하는 음악과 달리 그건 그 때의 유행가였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은 요즘 음악을 주로 듣고, 또 바쁘니까 클래식도 많이 듣지는 않는다. 빈부나 계층, 사랑의 온기와 감정 표현과 정서가 조금씩 미묘하게 다른 많은 이름들이라는 주체가 노래외에 영화와 소설과 미술 등등의 X, Y축 명칭에 따라 그래프상에서 위치가 다를테지만 <노래와 세대 차이> 하나만 보면 어쩔 수 없는, 그냥 자연스러운 사실이고 현상이다. 노래가 그렇다면 소설은 안 그럴까? 안 그렇다. 물론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 그건 그렇고 그런 유행가처럼 여기 소설에서는 그래서 그건 지금 생략되는 것이다. 각색의 예술 영역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정통적인 길을 걷고 싶다. 원래 대체로 그게 낫다, 훨씬 낫다. 메트로놈만 보면 질겁을 하거나 또는 메트로놈을 태어나자 마자 아니 어머니 자궁에서부터 껴안고 자듯이 엄마와 아빠 모두가 최고의 음악가나 예술가였듯이 그렇게 자란 천재의 생애처럼. 처음 악기를 배울 때 부터 돈을 받고 연주하는, 상업적으로 정당하게 돈을 받고 연주하는 음악 인생의 초반까지는 메트로놈이 기본일 텐데, 기본은 많이들 생략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뭐 아마추어인데 그러면서. 정통의 길이 비교할 필요없이 훨씬 낫다. 그런데 그걸 못해, 하면 할 수 없지. 그렇게 여기서는 이번 챕터에서는 바로 대화가 그 암흑의 핵심이다. 이런 또 나와버렸다. 조셉 콘래드의 소설 제목. 매번 이런 식이다. 뭔 말만 하면 그건 다 어디서 쓰이고, 어디에 나왔고, 누가 말했고, 뭘 따라한 게 된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다. 그냥 가는 거다. 막 쓰는 거다. 닥치고 써야 한다. 메트로놈없이 정통으로 배우지도 독학하지도 못하고 급하게 무대에 섰어. 그런 것이다. A를 말하면 웅성웅성, B를 말하면 쏙닥쏙닥, C를 말하면 쫑알쫑알 그런 거 다 생각하면 소설 못 쓴다. 그러니 꼭 소설이 사고뭉치 같다. 어차피 사고뭉치니까 중요한 표현이 나왔으니 좀 더 지면을 늘려야겠다. 한 문단을 서술자가 독자에게 말하듯이 대화체로 말이다. 당연히 여기서 <읽는 경험>이 대두되면 <쓰는 경험> 또한 따라와야지. 바늘가는데 실이 빠져서야 쓰나. 쓰는 경험, 그걸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작가 이름을 하나 꺼내면 말하기가 쉬워.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싫어하는 것은 아니야. 그 매니아분들께 뭔 험담을 얻어들으라고, 그냥 취향의 차이를 내가 뭐라고 평가하겠어. 세상에서는 그래, 좋아하지 않는다는 싫어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어리버리하지 않아야 직장에서 돈을 많이 벌고, 제 때 결혼하고 애를 낳고 정규적으로 궤도권의 인생을 살아간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건 큰 차이가 있지. TV 코메디 프로그램에서는 가장 안전빵으로 절대 식상하지 않는 방법이지만 말이야. 예를 들면 표도르 도스도예프스키, 프란츠 카프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즐겁게 또는 꾹 참고서라도 읽을 수 없는 사람은 절대 현대 작가들 누구 누구를 좋아할 수 없어. 그런데 도스도예프스키와 카프카와 나보코프를 좋아하는, 매우 좋아하는 남자가 연애를 잘 할까~? 멋진 사랑을 할까~? '아니오'를 예상하셨나? 틀렸다. 당연히 잘 할 수 있지, 왜 못하겠어. 얼마나 똑똑하고 예술사에서 지대한 영역을 구축하셨는데 그 분들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당연히 고급스러운 선호도라고 할 수 있지. 단지 그럴지라도 그건 적어도 얇은 종이 한 장 두께 만큼은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야. 물론 과장법이지만 이것도 종이 한 장 차이야, 주관적이란 뜻이지. 그 외에도 또 많아, 누구 누구 누구. 하지만 그 계층의 신사들은 여자의 감정을 매우 잘 알고 이해하겠지만 결코 같지는 않아. 그것 하나는 완벽하게 그렇지. 그러면 역으로도 똑같은 설명도 나올 꺼야. 그 가운데 현대 작가이면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소설가 한 명을 거론하겠어. 딱 한 명! 뭔가 있어, 로 시작했다가 색정과 도색과 모험에 침윤되는 기색이 점점 약간 짙어지는, 그런 느낌의 작품을 말할 수는 없어. 언어, 어학의 한계성을 따져야지. 그때 그 남자는 날 사랑하지 않았어, 그 남자와의 뭐가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라는 에세이? 오 이런. 들쑥날쑥 정신없다. 아멘. 왜냐하면 지금 <쓰는 경험>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까. 바로 폴 오스터 경. 내가 완벽한 마초였다면 즉 더 근육빵빵하고, 잘 생기고, 키 크고, 목소리 완~전 저음에 더없이 남성적인 마초였다면 그 사람을 좋아했을 꺼야. 내가 만일 ...... 이 말줄임표에 뭔 글이? 무슨 말이 생략되었는지 잘 가늠하는 사람은 그보다 눈치가 없는 사람보다 아무래도 쪼매 더 즐거운 삶을 사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보디빌딩 대회와도 관계가 있는 그 무엇. 내가 만약 그랬다면, <다비드는 다비든데 어디산 다비드>였다면, 그 유명인을 좋아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쓰는 경험에 대해서 심하게 부러운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지. 쓰는 경험,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꼬박꼬박 매해 변함없이 항상 새로운 자동차 모델을 양산하는 것처럼, 공장에서 자동차 만들듯이 그렇게 규칙적으로 인생을 통채로 장편소설을 양산해 내. 쓰고 발표하고, 쓰고 발표하고, 쓰고 발표하고. 완전 멋져. 자동차 만들어서 잘 팔리면 세계 3대 자동차 실내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와 공장 노동자와(몇몇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 주식 보유자들은 당연히 기분 좋겠지. 그런데 쓰는 게 고통스럽다고? 구상이나 어떤 단계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쓰는 경험>에 대해서는 아니겠지. 공장 노동자나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표현으로는 딱 이런 표현을 쓸 꺼야. <엿 먹으라고!>. 즉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동화의 세계에서 날아다니는 기분이야, 그렇게 창작을 하는 기분은 말야. 그러니까 계속 또 계속 하고 싶은거지, 마치 운동 중독된 사람들처럼 말야. 도파민 분수, 엔돌필 불꽃 놀이를 생각해 봐. 비슷한 작가 또 누구 누구 있겠지만 그래도 그 양반이 장편 위주로, 거의 장편 위주로만, 자기가 사용하는 언어로는 거의, 내가 봤을 때는 그 언어로는 거의 쓰기 불가능에 가깝게 쓴다고나 할까. 난 재미없어서 한 편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지만, 문장만 보면~ 문장만 보면 딱 보면 알 수 있어. 난 그것 하나는 잘해. 그것 하나만은 자존심을 세울 꺼야. 난 그렇다는 데 누가 뭐라 그래, 딴 거 전부 다 바닥이지만 그것 딱 하나만은, 그것 딱 하나만은 내가 세계 제일이라는 데, 누가 뭐라할 꺼야. 숫자 나이 꺾일라 그러니까 이제야 알았어, 프라이드의 중요성. 그것만 보면 나는 인생 말짱 잘못 살았어. 완전 헛살았어, 그걸 이제야 알았으니까, 뭔 진정한 비밀도 아닌데 말이야. 왜 이제야 알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좀 그런 게 있어. 어찌 보면 눈꼽만큼은 억울해, 그 생각하면 요즘 간혹 눈물이 핑 돌라 그래. 그래도 애써 참지. 1초 울컥 했다가 딱 그쳐. 아 또 이렇다니까. 말 시작하면 갑자기 어느 때는 섬에서 탈출한 것처럼, 깊은 산중에서 내려온 것처럼 술술, 술술 계속 말하게 돼. 그러니까 말이 자꾸 삼천포로 샌단 말야. 어디까지 말했드라, 그래, <읽는 경험>이 있으면 <쓰는 경험> 쓰는 행위도 그래, 독자의 삶의 인생의 초자아의 귀중한 절대 자산, 읽는 경험은 그렇다니까. 읽는 경험은 그런거라구.
이젠 그들은 낚시를 하고 있다. 번쩍 하고 도착해서 이미 그것을 신출귀몰하게 하고 있다. 그들의 대화를 잽싸게 기록하여 여기 옮기지 않고 서술자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가, 커피 타고 우유 마시느라 늦장을 피우지는 않는가. 이런 서술자는 대학교 1학년 때 나도 이 세상의 절반인 아버지들처럼 목소리가 굵고 거칠어야 하나, 변성기를 지나서도 미성을 간직한 선척적으로 좋은 목소리의 소유자보다 후천적으로 담배 피고 술 마시고 말 많이 하고 노래 많이 불러서 목소리를 굵고 거칠게 튜닝한 남자의 목소리가 아주 가끔은 어딘가 모르게 멋져 보인 적도 있긴 한데, 라면서 십대 시절 말수 없는 주인공이 멋져 보여 따라했던 기억을 떠올릴 타입이다. 아, 이 세상의 절반인 아버지, 이 말은 그런 강의를 즉각 떠올리게 만든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름다운 단어에 대한 설문 조사,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름다운 단어가 무엇인가 어딘가에서 조사를 했는데 1위가 무엇일까요? 글쎄 1위는 어머니였답니다 엄마, 그럼 2위는 무엇일까요? 2위가 아버지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2위는 '뭐'였답니다, 그럼 3위는 무엇이었을까요? 이것도 아빠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3위는 '뭐'입니다. 그런 강의 동영상 말이다. 생일날이나 어린이날에 애들과 놀아주느라 찐이 빠져 그날 저녁 녹초가 되는, 뼈-빠지게 돈을 버는, 그러다 할아버지가 되는, 가족을 사랑하는 아빠들, 썰을 다른데 풀거나 씨를 엄한데 뿌려서 무관인지는 몰라도 비록 Top3에 보이지는 않지만 순위에 관계없이 전방위적으로 아름다운 단어이고, 그 아빠들도 나-아빠 이전에 그분들의 엄마가 계신다. 소방관, 경찰, 군인, 산악구조대, 건설현장 노동자, 외벽 바깥으로 여닫이 문이 달린 허름한 주거용 2층집 공사장의 십장과 보통 일꾼 기타등등 어려운 일도 아빠들이 하신다. 앗, 참고로 이런 소설은 읽는 동안 절대 웃으면 안 된다. 딱 한 번 웃음이 나올려 그래도 입술을 꼭 깨물고 있어야 하며, 성마른 표정으로 심각한 분위기를 가장하고서 읽어야 제맛이다. 옆에서 뭐라 할 테니까. 「넌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냐?」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담배 피고, 커피 마시고, 사람들 만나고, 퇴근해. 씻고 TV 좀 보다가, 담배 한대 피우고 그리고 자.」 「뭐야 그게?」 「집이랑 회사가 5분 거리도 안돼. 그리고 집에 아무도 안 살아.」 「나는 그거랑 똑같은데 다만 집에 와서 매일 술을 먹어.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 피곤해.」 「꼭 다람쥐 챗바퀴 돌듯이 사는 거네.」 「그럼 늬는 다람쥐 챗바퀴 돌리는 사람처럼 사냐?」 「아니. 나도 똑같아. 해놓은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네 일상은 어떤데?」 「아침에 일어나서 아 일단 아침에 의식이 먼저 깨, 눈을 먼저 뜨는 게 아니라. 식상한 표현을 살면서 하도 많이 보고 들어서 하는 소리야, 상쾌한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가 시작되면 싱그러운 아침 햇살과 눈맟춤하고 그대를 떠올린다는 그런 얘기들. 절대 눈을 먼저 뜨는 게 아니지, 그럼. 의식이 깰 때 남자라면 당연히... 그래, 그렇단 말야. 그런데 어른만 그런 게 아니야, 어린이도 그래, 애들도 그렇다고. 그렇게 일어나서 씻고 컴퓨터 켜서 이것 저것 하고, 커피 마시고 물 마시고 뭐 있으면 주워 먹고, 집에서 점심 먹고, 동네 한 바퀴 돌고, 그러면서 동네 개들 잘 있나 둘러보고, 고양이도 구경하고, 다시 집에서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하루가 지나가. 간혹 도서관 갔다 오든가 서점에 갔다 오든가. 주말에 극장에 가고. 미술관에 들리고. 그게 다야.」혼자 일하는 이 친구가 말을 이어서 한다. 다음 문장이 그것이다. 「혼자 일하면, 어, 음, 외로워. 그래 외롭지. 나 혼자 달랑 있는데 덩그렁 하고. 그렇지만 그보다 더 진정으로 외로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람은 원래 고독한 것이고, 또 쓸쓸하면 뭔가 멋져 보이자나. 군중이나 그 어떤 행복한 환경에 둘러쌓여 있는 사람도 정말 가끔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이고, 왕족들 가운데도 매우 드물게 왕족의 신분을 탈피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지금 세상에 왕 얘기하면 왠지 모르게 기이하면서도 아름답고 또 한편으로는 웃기지만 옛날 왕 얘기 하자면 또 르몽드 세계사 이런 책 보면 짠하니까 안 보지만 공룡이 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것보다 더 밝고 행복한 미래에 희망을 거니까 여자들보다 월등히 남자들이 완벽하게 우월한 분야가 있는 것이고, 그 뭐지, 가장 행복한 순간에 제일 외로운 때를 동경..이나 회고 뭐 그런 건 아니고, 뭐라 해야 하지, 약간은 그렇게 완전 깨는 어이없는 반대편의 그 뭔가의 이미지를 때로는 내 의지가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그런 심상이 떠오른다고나 할까, 그렇다니까. 뭔가 설명을 잘 못하겠어. 말이 꼬였어. 내가 예술가라면 그걸 아름다운 예술로 잘 승화시키겠지만 바랄 껄 바래야지. 방금 한 얘기가 소설에 쓰여지는 글이라면 논리적으로 써야겠지만 지금 난 말을 하고 있다고. 앞뒤 안 맞아도 들쑥날쑥 해도 괜찮아. 원래 평소에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게 말해. 말은 글과 다르지, 완전 달라.」 그들은 지금 술-먹기와 낚시-하기를 동시에 하고 있다. 게다가 방금 말한 이 작자는 술 마시면서 말하기, 그 어려운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왜 어려운, 이냐하면 그는 주량이 세지 않기 때문이다. 주량이 약해서 술값이 적게 들고, 금방 취해서 나름 자부심을 느껴도 되는 정도다. 그러니 혀가 꼬이고, 게다가 말하는 내용도 꼬이기 마련이었다. 「뭐야, 그게 뭐야?」 「고기 안 잡힌다고 그러기야?」 「그럼 뭐 특별한 일이라도 있어야 하냐? 뭐, 클럽에서 죽치고 놀까? 매일 학생들 등교할 때 집에 들어갈까? 내가 청춘이냐?」 「것 봐. 너도 그렇잖아. 다 그렇다니까.」 「그래~ 다른 사람도 다 그럴 꺼야.」 「한숨 쉬지마. 물고기 도망간다.」 「한숨 쉬면 물고기 도망간다는 말, 처음 듣는다.」 「난 집에서 혼자 TV 보면서 혼잣말 하는 게 제일 좋아. 기뻐. 이런 걸 말하는 게 부끄럽지 않아. 전혀. 이젠 예전처럼 게임도 별로 하지 않아. 그러다 혼자 노는 게 지루해지지. 그래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해. 심심함과 신남 사이의 균형이 약간 기울었나 봐.」 「나도 집에서 일할 때 혼자니까, 모니터랑 대화해. 꼭 그 뭐냐, 개 주인들이 직장에서 개랑 어플리케이션으로 말하고 핸드폰 화면으로 뭐하고 있나 지켜보는 거 같다니까. 그러다 심심하면 재미있는 일을 찾지. 그런데 그런 게 별로 없어.」 「그래. 많이들 그렇다니까. 어떻게 학교 다닐 때랑 똑같냐. 학기중엔 방학 기다리고, 방학중엔 학교 가고 싶고.」 「그래, 맞아.」 「지루한 일상. 누군 뭐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매사에 감사하고, 새롭고 즐거운 일을 찾기 싫은 줄 알아? 없는데 어쩌란 거야.」 「아~ 권태로운 인생.」 「따분해. 이런 얘기를 듣고서 재밌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있기는. 퍽이나 재밌다고 하겠다. 그런 이상한 인간들이 어딨겠어? 난 안 들어봐서 잘 몰라. 또 모르지 들어보고 나서 조금..은 재미있을 수도 있겠지. 말 나온 김에 도메인 하나 사고, 실시간으로 모든 걸 방송해 볼까? 인생 전 과정을? 에이 재미없겠다. 인기 없을 테니까.」 「어쩌면 인간 유형 가운데는 그런 변태들도 있을 거야. 또 인간의 내재적인 특징 가운데 매우 작게 그런 성질도 있다고는 하던데, 전문 용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내 전공도 아니고, 잘 모르겠어. 아, 전에는 인문-교양서에 있는 얘기들 막 갖다가 써먹고, 변형하고, 새로 만들어서 말하고 그랬는데. 말발이 많이 약해졌어. 이런. 어쨌든 그런 사람이 어딨겠어? 아마도 없을 거야. 있으면 돌아이지.」 「물론 없을 거야. 우리들이 코메디언도 아니잖아. 그러니 재밌을 리가 없지. 아니면 우리가 걸물이야? 그것도 아니야. 예술가, 기업가, 정치인, 영화배우, 전문가, 뭐뭐, 에잇 너무 많아, 한마디로 유명인. 다 아니야. 뭔 기밀이 있어 비밀이 나와, 다 아니야. 그냥 흔한 부류인데 재밌기를 해 뭘 얻기를 해? 아무 의미 없어. 그럼.」 「그래. 옳소.」 「당연히 재미도 없고, 우리를 엿듣는? 그냥 라디오 방송처럼 우리 대화를 듣거나 보는 사람은 없지. 없어. 여기 우리 세 명 뿐이잖아.」 「그렇지.」 「말발. 나도 말발이 많이 약해졌어. 이 세상에 말발 센 사람은 많고도 많지만, 하지만 나는 좀 더 희귀한 말발을 추구했지. 그랬다니까. 어떤 형식으로 글을 써도, 기계식 타자기로 써도 되지만 일부러 수기로만, 차분하게, 살짝 멋쩍지만 완전 멋지게, 꼭 평일에는 카페나 바닷가나 공원에서 주말에는 집에서만 글을 쓰는, 수기로만 글을 쓰는 그럼 느낌의 말발, 바로 그것을 추구했는데, 뭔 말 같지도 않은 어리광 부리는 개꿈이었지. 뭔 광대나 쪼커도 아니고 말야. 「그런데 너 입고 있는 옷이 뭐냐?」 「어 이거? 과-점퍼. 어때? 대학생 같지 않냐? 기분이 새록새록하다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렇게 미래를 보자, 현재를 즐겨라, 그러면서 자꾸 만나면 옛날 얘기를 하지. 나도 나이 들었나 봐.」 「과-점퍼?」 「어. 후배 술 한잔 사주고 하나 얻었어. 술을 좀 과하게 사가지고 완전 비싼 옷 하나 산 거 같아. 많이 비싼 옷 있잖냐.」 「음... 뒷모습은 대학생 같은데, 뒷모습은 대학생 같다야.」 「뭐야? 그럼 이거 입으니까 교수님처럼 보인단 말야?」 「왜? 교수면 어때? 교수가 왜 나빠?」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야.」 「너 때문이야.」 「뭐가 나 때문이야? 교수처럼 보인다는 거 아니면 고기 안 잡히는 거?」 「그렇게 노니까 재밌냐? 뭔 시덥잖은 얘기를 그리 많이도 하냐? 낚시나 해라.」 그렇게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아무 얘기하지 않고 심각하게 또는 그저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며 그들은 낚시를 하는 게 아니라 세월을 낚고 있었다. 마치 낚시대 이름처럼. 뭐야 이야기가 이게 다야? 여기서 끝나? 진짜? 에이~ 설마, 그럴리가. 뭐 사건 없어? 진짜 여기서 끝난다. 아아 허무하다. 특급 액션 시나리오라도 쓰고 싶다. 이쯤에서 서글서글하지만 자글자글한 컨버터블에 이들을 태워서 어디라도 떠나 보내야 하는데, 영화처럼 "몇 년 후" 그러고 스무스하게 이어져야 하는데, 그런 건 없다. 얄짤없다. 이 양반들이 사건 없이 조용한 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르고 있군. 그런 건 남자들 가운데 학자들이 잘 안다. 인문-교양서를 보면 어느 지역에서는 인사말이 식사했냐, 식사 즉 끼니는 어떻게 잘 또는 겨우 해결했냐를 완곡히 돌려서 말 하는 건가, 어디에서는 별 일 없냐, 어디에서는 또 뭐, 먹고 살기가 어떻다, 자연재해가 어떻다, 그래서 인사말이 그렇다, 그런 걸 문화적으로 잘 설명하는 학자들, 정말 유식하다. 빈정대는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유식하다. 까놓고 말해서 존경스러워. 그 어떤 불순한 감정 단 하나도 없이. 다만 점진적으로 약간씩만 배워갔으면 좋겠다. 매우 천천히, 슬로우 슬로우 또 슬로우, 그렇게. 또 어딘가를 보면 인사말이 그거 아닌가, 뭐 재미난 일 없냐?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다. 그 미지의 인물은 정말 바다에는 늘 더 많은 물고기가 있다며 가난이 아닌 헤어진 친구를 달래는데 익숙한 연애계의 포세이돈일까(가난과 실연처럼 결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 어?), 세상의 반은 여자라며(남자라며) 쓰디쓴 독배를 습관적으로 마시는 사랑의 미로에서 줄곧 살아가는 순애보일까. 하이브라우(고상한 사람)도 있겠고, 기계적인 뜸 들이기를 무척 반겨하는 타입도 있을 것이며, 지금 듣는 말에 허풍이 얼마나 섞였는지 즉시 간파하는 젊은이도 당연히 있으면 좋겠고, 모든 대화의 시작을 거짓으로 그리고 단초는 뻥으로 푸는 최면술사도 있겠지만, 뭐랄까, 듣는 질문에 반문하거나 교묘히 말을 돌린다고 할까, 순진하게 대답을 생각하는 단순한 (나이와 관계없이) 학생과 간단히 그 물음을 음미하는 누군가의 이상형 역시 미미하게 존재하기를 바란다면 그건 너무 동화같기를 바라는 과한 소망이자 성적인 금욕주의다. 그렇다면 이 소설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둘 중 하나다. 첫째, 놀라웁게도 기막히게 모든 것을 다 맞춰 버리는 심령술사. 소름 돋는 전설의 심령술사, 진짜 이런 사람이 있다면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어떻게 생겼는지, 목소리는 어떤지, 정말로 그렇게나 다 맞춰 버리는지 정말로 궁금하니까. 이런 타입은 귀신같이 모든 것을 다 맞춘다. 이미 당신이 뭔 타로카드를 뽑을지 사전에 다 알고 있다. 그래서 당신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대의 심정을 병렬로 똑같이 실시간으로 감지하기 때문에 당신 속마음을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계속 보이는 그대로 말한다. 당신의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가 다 보여. 그는 초능력자다. 영화에 나오는 그런 날아다니고 염력을 쓰고 레이저를 쏘는 뭔 맨이 아니라 진짜 초능력자. 여기서, 첫째에서 또 들어간다. 1-1) 전지적으로 전능한 주술사 타입 (고타율 고효율). 모든 걸 꿰뚫어봄. 능력치 최대. 모든 것이 보여, 모든 것이. 게다가 당신의 미래가 진짜 밝아 보여. 당신의 앞날은 번창할 것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하고 기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계속 예언을 해, 줄곧 최면을 건다. 진짜 그렇게 보이니까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만 속삭여 주고 다독거려 주면 된다. 그 다음 1-2) 좋은 얘기 위주 & 세심한 충고를 하는 타입 (승패에 관계없이 쉬어 가는 경기-고효율). 모든 걸 꿰뚫어 봄. 능력치 만빵. 당신의 미래가 음 좀 마냥 맑고 쾌청할 것 같지는 않아.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다 얘기해 줄 수는 없다. 마음 아프다. 어떻게 상대방 가슴 아픈 말을 약간 섞어서 또는 계속, 그것도 많이 하겠나. 그런 말 하는 사람은 기분 좋겠나. 그래도 소곤소곤 마음을 헤아려서 격려하고, 요술로 나타난 거인이 불어넣는 호-호- 입김처럼 희망의 언사와 긍정적인 말을 주입시키는 거다. 언제 조심하라, 무엇을 유의해라, 누구를 주시하라, 동쪽을 조심하고 물을 경계하라, 정 어려우면 부적을 하나 만들어주겠다 등등. 모든 일이 좋지는 않지만 어려움을 타개하게 도와줘야 함. 어쩔 수 없다. 그러면 또 모른다. 미래가 바뀔지도. 바뀌면 좋은 거고 안 바껴도 더 좋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동기를 마련하는 거다. 최면이 걸리면 미래가 밝게 바뀐다. 어느 소설처럼. 그리고, 둘째, 둘째는 용했지만 매출이 끝없이 하향세를 타는 점쟁이. 여기 둘째에서도 또 들어간다. 2-1) 좋은 반응이 나올 안전한 말을 던지는 타입 (고타율 저효율). 용했을 때야 식은 죽 먹기, 땅 짚고 헤엄치기였지만 이젠 영험한 능력이 쇠퇴해서, 아주 바닥을 쳐서 당신의 앞날이 잘 보이지 않아. 그래도 막 던져본다. 하지만 진짜 밑도 끝도 없이 막 던지는 건 초짜나 할 일이다. 그래서 쑥 밑밥을 던지고 반응을 본다. 오, 반응이 좋아 괜찮아. 그럼 계속 던지는 거다. 계속. 알아차리기 어렵게 들이대. 당신의 미래는 오~ 너무 창대하다, 너~무 아름답다, 이루 말 할 수 없이 멋져, 그렇게. 미래에 실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던져, 주사위를 던지듯이. 나도 내 앞날을 모르는데 그 사람 미래를 내가 뭔 수로 읽어? 속마음은 그렇지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가장하고 연기하는 게 중요하다. 뭔 놈의 점쟁이가 이 모양이겠냐 말이지만 어쩔 수 없다. 한창이던 전성기가 지나가 버렸는데 할 수 없지. 그래도 좋은 얘기잖아. 사람 기운을 북돋아 주고, 도움되는 말이니까. 그러면서 중간에 하나 패를 섞는다. 그 어떤 소설도 재미있을 것이다, 재미있을 것이다. 어떤 사건이 없어도 소설은 재미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최면이 걸린다. 딱 걸린다. 찰칵. 그리고 2-2) 어떤 반응이 나올지 잘 몰라서 계속 떠보면서 들이대는 타입 (저타율 저효율). 그래프가 이 모양인데 어쩌겠나. 그래도 막 던져본다. 부딪혀 보는 거야. 아마추어처럼 막 튀어나가면 안되고, 일단 던지고 반응을 보는 거야. 자, 용하냐 안 용하냐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시겠나? 극명한 차이점. 그래 바로 그거다. 반응을 보기 전에 직관적으로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다. 그래 블링킹 즉 1차적 직관이란 말이다. 여자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뛰어난 능력 그것 말이다. 더 진귀하게 갈고 닦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은 그렇다. 이 돌팔이 점쟁이는 막 던져서 반응을 본다. 오, 이런, 함바터면 손님 갈 뻔한다. 한 대 얻어 맞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아까 그 아리따운 아가씨가 아닌 이 우락부락하신 분은 얼굴도 무섭게 생겼는데 그럼, 등과 이마에 식은 땀 쭉 났다가 식었다. 어느 정도 무섭게 생긴 클라이언트냐 하면 대면하면 딱 2가지 생각 밖에 나지 않는 정도? 친해지거나 말거나. 말거나? 친해져서 같이 돌아다니면 왠지 듬직한 기분이 들 꺼야,그럼, 누가 건들 엄두나 내겠어? 이따 저녁에 술 약속 있는데, 정신이 빠짝 든다. 맨날 장사 안 되다가 왜 하필 간만에 술 마시려니까 갑자기 뭔 일이냐, 이거다. 그래도 쫄면 안 된다. 또 던진다. 음 감이 온다. 반응을 보고 능동적으로 바꿔 던진다. 살며시 들이댄다. 자구 바꿔 던진다. 또 반응을 본다. 또 던져. 들이대. 또 반응을 본다. 또 던져. 그러다 최면의 슬로건으로 하나 툭 집어 넣는다. 어떤 소설은 재미있을 것이다, 어떤 소설은 재미있어질 것이다. 살다 살다 이렇게 재미없는 소설은 평생 처음 읽어본다, 그렇지만 도저히 읽는 걸 멈출 수 없다, 마치 요술 구두를 신은 동화 속 소녀처럼, 내가 구두 한 짝으로 팔자를 고치는 신데렐라도 아닌데, 이거 환각이야 뭐야, 침을 흘리고 환청과 환시와 환영 그리고 환상, 솔직히 더럽게 재미없지만 그래도 읽다 보면 혹시 모른다고, 재미있어질지, 그 알 수 없는 기대감과 정체를 모르는 믿음을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으니, 그럴테니까, 그러니 계속 읽으라고. 이렇게 슬로건을 스윽(쓱) 집어 넣고, 슬로건이 조금 길지만 그걸 잘 나누어서 눈치 채지 못하게 집어 넣는 게 기술이다. 그렇게 던지고 반응보고, 던지고 반응 보고를 계속한다. 그럼 결국 이게 뭐냐? 딱 손님 말 들어주는 거다. 정중한 태도로 상냥히 들어주는 사람, 바로 그 역할을 하는 거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점집을 차려서는 안 되는, 절대로 점집을 차려서는 안 되는 바로 그런 허풍쟁이 역술가-꽈다. (초)극소수는 고맙게도 이 소설 쓰는 사람을 첫번째, 신통한 심령술사로 보아주실 것이다. (예언이다) 그렇지만 본질은 두번째, 맹탕-점쟁이-꽈다. 기승전결 없는 제멋대로표 소설, 안무 없는 막춤처럼, 정해진 각본도 없는 맹목적인 소설과 사랑에 빠지는 부류. 그 설탕물 안에서 허우적대며 나올 생각을 안 하는 (상)남자. 여러분, 작가는 독자이고, 독자는 작가다. 당신은 나이고, 나는 당신이다. 지금, 이제, 숫자 셋을 세면 그대의 최면이 깬다. 숫자 하나, 둘, 셋을 세고, 딱-소리가 나면 당신은 최면에서 깨어날 것이다. 자, 숫자를 세겠다. 하나─ 둘─ 셋─ 빡─(한 손으로 소리내기, 이걸 뭐라 부르지?). 오 당신은 깨어났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 일상은 어떤가, 어땠으면 좋겠나? 그래, 그렇다. 자, 읽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나왔으니 그러므로, 쓰는 사람에 대한 설명이 나왔으니 따라서 다음 질문을 슬쩍 옆사람에게 조심스럽게 사용해 보기를 간곡히 권한다. 권한다? 아니-아니야, 권하면 안 돼. 예언을 해야 돼. 당신은 다음과 같이 어느 순간에 옆사람에게 질문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려서 뭐가 되고 싶었소? 어떻게 살고 싶었냔 말이오! 그대가 좋아했던 문학과 음악과 미술, 그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푹 빠져있는 좋아하는 뭔가가 있나요? 질문이 별로라면 이건 어떤가, 2차적 직관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from 소설
2015. 4. 17. 15:19
밤에 잠들기 전에 누우면 천장이 보인다. 잠을 자기 시작할 때 급하게 잠에 빠져드는 방식이 아니라면, 일부러 엎어져서 또는 옆으로 누워 자기 시작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바로 누워서 자기 시작하고, 그렇게 누우면 당연히 천장이 보인다. 천장, 원시시대 사람들은 그렇게 잠들기 시작할 때 누우면 동굴의 천장이 보이거나 밤 하늘의 별이 보였겠지. 당신은 밤에 잘 때 무슨 생각을 하는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하루 종일 기분의 그래프는 어땠는지 모두 다 다르지만 밤에 잠들 때 천장을 쳐다본다는 점은 모두 같다. 똑같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와서 씻고 쉬고 밥 먹고 차를 마시며 책도 보다가 TV도 보다가 때로는 음악도 듣다가, 그렇게 하다 하다 모두 다 마치고 밤에 사람들은 잠자리에 든다. 뒤통수를 벼개에 대자마자 코고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꼭 누군가 옆에 있어야만, 하다 못해 인형이라도 있어야만 잠드는 사람도 있다. 아니면 알콜이 없으면 잠을 못자는 사람도 있다. 수면제의 도움을 받아 잠자리에 드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그렇게 잠들 때 하루 일과를 돌이켜 보는 경우도 있고, 일기를 쓰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그냥 골아떨어진다. 그렇게 잠을 자고, 꿈을 꾸고, 어쩌다 자다 깨서 화장실에 갔다 오거나 냉수를 마시기도 하고, 아직 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라면 이불에 지도를 그리기도 하고, 오줌은 가리지만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어른이라면 술에 취해서 깊이 잠든 경우 간혹 깨어나서 또는 자기 직전에 TV 뒤에, 컴퓨터 뒤에, 의자 옆에, 옷장 옆에, 그리고 허무맹랑한 공상과 함께 부처님 손가락이나 어느 성당 담벼락에 오줌을 누기도 한다. 그 다음 날 심정은 몹시 괴롭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다. 이렇게 실수를 혼자 하는 상황에 반해 회사에서 실수를 하기도 한다. 신입 여직원이 워드 문서를 3~4시간 동안 정신없이 신입의 열정으로 작업하고 있다가 어떤 기능 하나를 몰라 고심하고 있는데, 고참 남직원이 지나가다가 한마디 툭 던진다. "Alt F4 눌러." 신입 여직원은 그렇구나 라면서 Alt F4를 누른다. 순간 몇 시간 작업했던 워드 문서가 모조리 날아간다. 그 뒤로 신입 여직원과 고참 남직원은 영영 말을 안 하는 사이가 된다. 미래에 복식 테니스를 칠 수 있도록 넷 이상의 자녀를 낳아 기르며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극히 미세한 남녀 호감의 불씨는 있었는데 말이다. 안타깝게도 명백한 실화다. 이런 얘기는 어제의 일이다. 어제의 일과다. 그러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일을 한다. 실업률이 몇 퍼센트이고, 세계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든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한다. 노는 사람은 노는 게 일이다. 그렇게 일하면서 자기 능력의 100%를 발휘하기도 하고, 매우 드물게 무슨 운수에 기막힌 비법과 드라마틱한 준비 기간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 100%에 0을 하나 더 붙이는 세일즈맨도 있다. 없지는 않다. 한 번에 개 1,000마리를 보는 것처럼 0이 두개 붙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런 사람은 직장에서 이 달의 보험왕, 어디 대륙 사업부의 전설, 당신이 말하는 단 하나만 빼고 뭐든지 팔 수 있는 사나이, 라는 타이틀이 붙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자기 능력치를 극대화하고, 밑도 끝도 없이 수치를 올리고, 게임의 법칙을 새로 쓰고, 판을 키우고 판을 계속 키우고 판을 끝까지 키우고, 시장 자체를 새롭게 형성해 버리는 아주아주 드문 예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예로 들면 3대 SF 작가, 머머, 머머 또 다른 분야에서도 예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확률은 모르겠지만 이런 부류는 어린 시절 꿈이 카페 사장은 아닐 테고, 아마도 최소한 (초대형) 나이트 클럽 사장, NC 사장 정도는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되기는 어렵지만 그냥 친구에게 지나가듯이 말만 꺼내도, 꿈 깨라, 고 한다. 즉 보통은 능력이나 연륜, 여건, 시장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 일에 대해 성취 가능한 영역대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자기의 100%보다 10%, 15% 높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면 몰입이라는 상태에 근접하기가 쉽다고 한다. 일에 대한 열정이 어느 정도 있고 매너리즘으로 돌입하지도, 주색이라는 적절함이 애매한 늪에 빠지지도 않는다면 그렇게 100%에서 115% 찍고서 몰입하여 도파민이나 다른 용어의 물질이 나오는 거다. 찍어? 돈을 찍어 아니면 성과를 찍어? 그렇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혹하다. 얄짤없다. 공짜도 없다. 그래서 그만한 궤도의 운을 타지 못하면 100% 밑으로 내려간다. 막 심하게 60%, 50%, 40% 내려가면 스스로 직장을 때려치우든, 완곡한 회유를 받든, 울분을 어딘가에 토해내야 할 정도로 꾸지람을 받거나, 다른 업계나 동종 업계 타 회사로 이직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술이 늘고 맷집도 또한 살아가는 요령도 늘며, 능청도 그리고 기분 풀고 기분 전환하는 재주도 늘기 때문에 오늘도 어제처럼 웹사이트를 만들고, 월요일엔 카페에서 일하고 화요일엔 집에서 수요일에 오피스텔에서 목요일은 출장 금요일은 핑계대고 드라마 주인공 흉내를 내기도 한다. 내일도 오늘 같이 월간지 마케팅을 하고, 디자인 부서에 있다가 특판 촉진팀으로 발령나기도 한다. 아니면 보통 술집, 단골 술집에 들러 매우 찰진, 살가운 그리고 현명한 조언을 듣는다. 누구로부터? 술집 마담에게서! 몽테뉴의 수상록과 옥타비오 파스의 시상 그리고 MBA 용어들과 페르퀸트 조곡의 감상 포인트를 곁들인 즉 어려운 얘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 갖다 붙인 함축적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굉장히 빈약하고 없어 보인다면 무척 실용적인 해법을 얻는다. 평범한 회사원이 카페 마담으로부터 말이다. 마담이 어떤 향수를 뿌리고 지성은 어느 정도며 마티니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좋아한다면 왜 호감을 갖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퍼센티지에 대한 매우 간결하고도 효율적인 조언을 건네는 게 보통이다. 아무리 밤에 일하고, 밤에 피는 장미, 가시가 있기 때문에 장미, 또는 너무 항상 꽃이 피어 있어서 조화인지 제라늄인지 백일홍인지 도저히 분간하기 어려운 한 송이 어두운 음지에 피는, 같은 동성의 여자들이 반겨하지 않는 축축한 분위기일지라도, 혹여 정반대로 그 어떤 분야의 예술가와도 지성을 겨루고 시대를 논하며 그윽한 꽃의 향기에 고혹적으로 취하게 만들고 매우 고급스런 실내장식에 알아-알아서, 건너-건너서 추천에 의해서만 겨우 출입이 가능한 신비스런 카페일지라도, 항상 진지하고 어렵고 따분한 얘기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쯤의 비즈니스맨을 위한 이런 조언은 어렵지 않게도 크게 황망(慌忙)한 주제는 아니면서 동시에 조금은 황망(荒亡)한 의견일 것이다. 오, 누군가 간곡히, 그러나 깜짝 놀라게도 이와 같은 말을 부드럽게 넌지시 건네는 듯 하다. 이런 삐─삐─삐─삐─, 삐~ 닥치고 빨리 말하라고, 그 조언이 대체 뭐냐고. 오, 후덜덜. 와우 속 시원하시겠다. 가상이 아니라 진짜 상황으로 적절한 캐릭터가 육성으로 들려준다면. 오케이, 공개한다. 실토하겠다. 그건 무엇이냐면, 그게 무엇이냐 하면, 자기 능력치의 70%만 드러내라는 것이다. 딱 고-정도만 발휘하라는 말이다. 생각해 보니 고급 살롱의 영화배우 빰치는 지성파 마담이 할 얘기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단, 지성파 마담이 맨-정신이라면 즉 술취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100%에서 70%로 내려왔다. 추상적인 의도의 모호한 이미지가 나름 우스꽝스럽게 전위적으로 풀이 된다. 중간에 1,000%와 115%도 있었고, 150% 하면 부장, 200% 하면 사업본부장, 250%? 너무 과도하면 탈 날 수 있다. 아무튼 70%에서 50%로 또 내려간다. 그러면 뭘 해도 안되니까 "너 맛 좀 볼래?", "뭐가 어째?" 같은 드라마식 대본 설정 상황에 빠지는 일을 겪을 수도 있다. 험악하게 붙을 듯 하다 맥주 빨대로 빨리 마시기 같은 게임으로 넘어가면 장르가 바뀌는 거다. 또 그 다음 달도 겨우 50% 한다. 어쩌다 한 번은 30%로 곤두박질친다. 그때는 지난 날을 떠올린다. 영업의 절대 고수였던 짧은, 자신의 행복했던 전성기를. 그때는 영업 스킬이 물이 오른 시절이었다. 완전 만빵으로. 사람들의 속마음을 내 지갑처럼 들여다 보고, 편안한 그리고 궁금한 마음을 갖게 하고, '예'라고 대답할 질문을 계속 던지고, '예'라는 대답이 습관이 되도록 최면을 걸고, 막판에, 바로 이게 최적인 거~죠, 라고 주문을 외우면 모두 다 넘어왔는데, 테이블 밑에서 그 찰나에 초음파도 틀었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이래도 사지 않을꺼야? 안 살 동기, 이유 타당해? 논리적으로 구입할 명분이 없다면 전혀 없다면, 인정에 호소하지 말고 감화되도록 날 설득해 봐. 내 그럼 응당 그대의 의견에 맞장구를 치겠소, 정녕 말이오.' 이 어법을 완곡 화법으로 바꾸어 말만 하면 딱 상황 끝났는데... 그건 모두 아 옛날이여, 그런 시절이었다. 간혹 '아니오'가 나왔어도 '그럼요~ 그러면 안되죠, 저런~ 그러면 곤란한 일이죠.', 하면서 다음을 얘기하면 그도 빠지고 나도 어느새 내 환상을 믿게 되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야, 이렇게! 그래도 그나마 50%가 나았던 것일까? 거기서 다시 쭉쭉 또 계속 내려온다면, 둘 중 하나다. 보통은 쭉쭉 올라갈려면 어떻게 하라, 머머 해야 한다, 이런 얘기 일색이지만 여기에서는 그 반대의 길을 간다. 인문-교양서에 정답이 나온다면 여기서는 그 질문의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어느 과학자가 그랬나, 사람은 일평생 자기 두뇌의 5%도 채 쓰지 못한다고, 그 가설에 숨겨진 비밀일까, 영화에도 나온다. 파란 알약을 먹으면 먹을수록 두뇌 수치가 계속 계속 올라만 가는 이야기. 영화와 달리 여기서는 여자는? (바람둥이 1세대가 바람둥이 주니어에게 전하는 비법의 관점으로) 원래 이상하고 답이 없다는 궤변에 기초한, 원래 그냥 그런 거라는 빈틈 많은 옹호 논리가 이어진다. 때문에 업무 능력 수치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계속 내려가는 것이다. 150%, 100%, 50% 그렇게 쭉쭉 또 계속 내려온다면, 둘 중 하나다. 미련한 사랑처럼 어설프게 어중간한 그룹 짓기지만 단락을 이어갈려면 필요한 얘기다. 첫째는 다 아는 것처럼 업종을 바꿔 새 인생을 살던가 잠시 푹 쉬던가 또는 죽을 힘을 다해 성과를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 길이 보이게 되어 있다. 둘째는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하워드가 YAHOO에서 옛날 새로운 여사장이 들어오기 전에 자기 일을 아웃소싱으로 먼 곳에 싼 금액으로 외주 맡기고, 그 에너지를 소설 쓰기와 종잣돈 굴리기에 쏟아 부어 마련한 훨씬 더 큰 종잣돈, 완전 듬직한 비자금, 그런 든든한 뒷-빽. 어떻게 이자만으로 그럭저럭 취미 생활하면서 새로운 도전과 여행과 연애를 하며 삶을 즐겁게 살아가기, 그것에 알맞는 것, 둘째가 이거다. 조니, 케빈, 알렉스, 마크, 하워드, 닉, 제임스 이렇게 7인방이 정확히 걷고 있는 인생 행로가 바로 이 멜로디였다. 100, 70, 50, 30, 20, 10%...3,2,1 그리고 0에 황홀하게 도달. 이 친구들이 최근에 둘이나 셋이는 가끔 만난 적이 있어도 딱히 모일 기회가 없었다. 모두 자기 삶이 바쁘거나, 사는 거 자체가 재미있으니까 '난 행복해'라고 말하기 귀찮거나, 애써 말 할 겨를도 없거나, 그것보다는 이런 걱정이 앞섰을 수도 있다. 일단 다 같이 모이면 모두의 컨디션과 기분이 최적에 최고가 아닐 텐데, 한자리에 같이 함께 하게 된다면 어떻게든 2파로 나뉠 수 있는데, 말을 하다 보면 어쩌다가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앉은 자리에 따라, 원래 보이지 않게 끌고 당기는 인력에 따라 3~4명이 가장 얘기 흐름에 알맞다거나 2명이서 짝지어 핑퐁으로 말을 주고 받는 게 어쩜 편할 수도 있는데, 그런 기우들. 하지만 그들은 남자였다. 색다른 상남자, 신사같은 마초. 때와 장소를 가려 가며 으쌰으쌰. 고급의 지적 유희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상상의 다음 칸에, 공상의 아래층에, 몽상이라는 쇼핑백에 들어 있는 언어 도단 박스는 시침이 역방향으로 도는 바람개비처럼 칙칙폭폭 뭔가를, 정체도 모르는 뭔가를 계속 만들어낸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친구들은 이런 글을 쓰는 부류는 아니다. '고상한 여자가 흔히 갖는 속일 수 없는 본능, 그러니까, 남의 돈으로 살아야 정말 체면이 선다고 여기는 그 본능'. 그렇다고 허풍이 무지 쎈 타입 또한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어봤어 덤빌테면 덤벼, 대신 파이트 머니를 내라구, 이거 찍고 있는 거 알지, 촌스럽게 애들처럼 길바닥에서 싸우지 말자구. 프로모터 비즈니스 세계를 배우고 싶지 않아? 멋진 차 타고 싶지 않냐고? 섹시한 여자는? 그것도 한트럭으로. 모든 것들의 최고 말일세. 말만 해. 난 지금 네 뒤통수도 보여. 굴곡진 그 목선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곡선. 그런 목선 라인의 소유자를 지금까지 살면서 딱 한 명 봤지. 내 평생 단 한 명 말야. 바로 마이크 타이슨이었어. 오 영보이, 넌 모를 수도 있겠다. 그럼 UFC 헤비급 친구들과 계약한 소속사가 대체로 어딜까? 왜, 느낌 안 와? 넌 딱 보니 가능성이 농후해. (발바닥으로 바닥을 쿵) 넌 재목이야. 들어봐, 넌 가히 챔피언감이라는 말이야. 왜? 자신이 소심하다는 게 걸려? 헤이, 구기쪽으로 종목 전환도 가능해. 운동 스타가 될 꺼야 아니면 그 스타의 프로모터가 될 꺼야?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형 프로모터. 파파라치도 따라붙어. 지금 결정해 지금. 어서. 빨리. (웃음) 개념치마. 강요하는 건 아니야, 아까워서 그렇지. 너에게만 카운트다운은 패스할께. 음 감이 좋아. 뭔가가 보여. 초기의 목표의식이 확고하다면 그 꿈은 절반은 이룬거나 다름없어." 이런 인물이라면 상대방의 눈동자 움직임까지 파악한다. 동공이 커지고 안구가 흔들려. 계속 바람을 주입해야겠어, 하는 거다. 듣는 사람이 할 말을 잊고 이게 과연 명대사인지 허접한 발언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는 낌새가 보이면 조이기는 계속된다. 지금 동반되는 바디랭귀지는 한손으로 소리내기다. 엄지가 중지에서 검지로 이동, 딱! 당연히 듣는 사람은 몸이 덜컥 멈칫하리라. "내 약점이 뭔 줄 알아? 바로 가족이야, 가족. 가족 빼고는 모든 걸 다 이뤘거든. 주객이 바뀐거지. 기회를 놓친건지 타고난 성미가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 오른쪽에 다리(머머대교) 보이지. 그거도 팔 수 있어, 다 팔 수 있어. 뭐든지 팔 수 있단 말야. 물 위를 걷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지. 빌딩으로 시작해서 땅, 바다, 산, 화성은 노세일이야. 상도덕이 있으니까 그 너머는 취급 안해. 지금..은 그러하오. 뭔들 안되겠어? 어때? 생각있어? 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지. 기회는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는 그래, 사람은 살면서 평생 3번의 기회가 온다고. 눈치가 빠르고 행운의 여신이 함께 한다면 3번이든 30번이든 올꺼야. 하지만 그건 숫자 놀음일 뿐이야. 기회는 만들어야 하는 거야. 지금이 바로 그런 기회일지도 모르지. 기차가 떠났는데 영영 아쉽다면 같은 방향으로 뛰어서는 그 기차에 절대 탈 수 없는 법이야. 기존의 법칙을 거부해야지. 룰을 바꾸면 되지. (침묵) 어떤가? 뭔가 멋지지 않나? 명대사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지. 긴 명대사와 짧은 명대사. 방금 한 말은 긴 명대사라고 할 수 있지. 비록 그렇다는 정평을 얻을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와 같은 치기도 없고, 있다면 극히 희박하지만 만에 하나 '넌 말이 너무 많아.' 라면서 튀어 나온 입이 타격당할지도 모르지만 아마 다행히도 무서운 상대와 싸울 뻔한 위험한 순간은 모면하고 자리를 피했을 듯 하다. 또 지금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며 너스레를 떠는 친구들도 아니다. 지금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니? 아마도 따져 보면 안 해본 일, 엄청 많을 것이다. 약간만 많다면 어느 일들을 진득하게 오래 해보지 않은 것일 뿐이다. 게다가 이들은 10분 또는 반나절 지나면 왠지 속은 듯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그런 말 역시 잘 못한다. 이 친구들이 주로 하는 말은 거의 참말이다. 즉 나이 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말발이 약간 약해졌다. 그 있지 않나, 아이스하키 선수가 선수 생활이 오래되어 허겁지겁 필사적으로 퍽을 뺏으러 달려드는 상대팀 선수를 맞닥드리면 시간이 일순간 느리게 흐르면서, 미화하자면 슬로우모션에 음악 틀고, 에잇 그냥 공(퍽) 줘버려? 이런 느낌이 들면 은퇴할 시기가 가까이 왔다는 그런 뉘앙스와 얼마간 비슷할 수도 있지만 좀 더 정확하게 보자면 그들은 각자 일이든, 소설 쓰기든, 동화 구상이든, 새로운 모험 찾기든, 투자 포트폴리오 리뉴얼이든 그렇게 에너지를 불균형하게 한 곳에 투입함과 동시에 대화를 자주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뿐이었다. 곧 그들은 언제라도 말발이 살아날 것이다. 누구라도 말만 하면 구워삶는 건 시간 문제일 테지. 그래서 설을 좀 풀기 위해 모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날은 모두 하워드의 집에 모였다. 저번에 하워드가 카약으로 천에서 천으로, 강에서 강으로 그러다 바다로 나갈 때처럼 자기 자신만의 목적지도 동기도 불분명한 상징적이라고 오해할 만한 물건들을 자기를 대신해서 그렇게 유유히 떠나보내겠다고 그것들을 가지고 모두들 참석했다. 그 가지각색의 대리 모험 장난감을 보고 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차차 알아가기로 한다. 그들이 모인 날은 누군들 크게 관심 갖지 않겠지만 우연의 일치와도 같이 다음과 같은 일이 발생한 날이었다. 첫째, 달과 지구 사이 거리가 평소보다 많이 좁혀져 '슈퍼문'을 관측할 수 있는 날이었다. 똑같은 달이지만 이름만 다른 그것은 평소보다 14% 크고 30% 밝다고 한다. 게다가 개기월식까지 겹쳐서 발생한다고 한다. 많은 어른들은 월식과 개기일식이 어떻게 다른지, 달이 자전을 하는지 안 하는지, 달이 왜 저 모양인지, 달이 어디서 뜨고 어디서 지는지, 몇 시에 뜨고 지는지를 잘 모르고, 옛날에 알았는지 배웠는지 조차 가물가물하다. 별 관심이 없다. 이젠 썩 그렇게 궁금하지도 않게 되버린 건지도 모른다. 호기심과 웃음의 빈도가 어린이에 비해서 크게, 상당히 크게 낙차 큰 커브볼처럼 뚝 떨어져버린 어른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두번째는 수컷 판다 '루루'가 (소식을 들으니 유명한 인기 동물인가 보다) 아주 성실하게 교미계의 세계 신기록을 갈아 치웠다는 사건이었다. 별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스몰톡 주제로 톡톡히 한 몫 하는 웃음의 소재로는 제 역할을 하는 얘기 거리였다. 이 친구들이 가져온 물건들은 이랬다. 1.소형 보트 프라모델. 완전 몇 대 몇 축소-초정밀-슈퍼 실사판 프라모델. 사람은 탈 수 없음. 2.과자봉지로 만든 보트. 과자봉지를 접착 테이프로 모두 붙여 만듬. 과자봉지 99%에 접착 테이프 1%. 과자봉지가 질소 포장되어 물에 잘 뜸. 섬에서 섬으로 사람타고 횡단은 기본, 날씨만 좋으면 중거리도 가능. 장거리는 불가능. 과자 약200개를 테이프로 붙인 뗏목을 타고 900m를 건너, 강 맞은편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는 일화가 있음. 3.투평한 포도주병. 쉽게 누구나 상상 가능. 가족용 판타지 영화에도 엄~청 많이 나왔고, 더 설명하면 입 아프고 손가락 볼펜에 눌림. 4.척키 인형. 이걸 가지고 온 사람은 옷도 그렇게 입고 왔음. 마스크 쓰고 화장도 하고 완전 똑같음. 섬뜩함. 처음엔 완전 쫄고 다음부터는 은근히 시선을 땡김. 5.종이배. 표면이 특수처리 되어 있는 색종이로 만든 커다란 종이배. 사람은 탈 수 없음. 특징은 아는 초딩에게 선물 주고 잘 구슬리고 부탁하여 초딩이 직접 만들어 완성한 종이배라는 것. 6.운동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운동화는 사소하면서도 특별하고 익숙함. 패션의 시작과 끝. 편안함 또 편안함 계속 편안함. 새 운동화를 사고 싶은데 신발이 닳아지지 않아 고민하다 가죽을 훼손시켜본 경험이 있는 청소년도 있을 수 있음. 간혹 기자 회견장 같은 엉뚱한 장소에서 사용이 될지도 모름. 7.케이스. 악세사리나 화장품, 보석, 핸드폰 등등을 담았던 전직 케이스. 내용물보다 케이스를 보면 기분이 더 좋기도 하지만 애써 버리게 됨. 굉장히 아까움. 안 버릴 수도 없음. 흠, 브랜드는 케이스도 이쁨.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날 한 번만 속여주세요, 거짓임을 알고서도 흔쾌히 속고 싶어요, 라는 혼잣말을 그런 내면의 울림을 적어도 사는 동안 몇 번은 들었을 것 같은, 지금도 가끔은 상대방 말 똑같이 따라하기를 하는 이 친구들이 왜 애들처럼, 왜 애들 가운데서 요즘이 아닌 옛날 시대극에 나오는 소녀들처럼 그런 물건들을 가지고 모였을까? 왜긴 왜겠나, 당연히 하워드 집 앞 또랑에서 배를 띄워 바다까지 보내 큰 세계를 만나는 퍼포먼스 놀이가 목적이겠지만, 왜 하필 애들처럼 이런 방식을 고집했는가, 그것이 그나마 조금은 궁금하다. 그럼 누가 먼저 모두를 웃겨줄 책무를 절감하고선 압축 밸브를 틀었을까, 누가 과연 뻠프를 사뭇 함부로 신중하지 못하게 작동시켰을까? 케빈은 아니다. 알렉스도 아니다. 속 빈 강정-허당-제임스는 더더욱 아니다. 이들 가운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콧노래를 부르고 이어서 오페라 아리아나 최신 가요를 흥얼거리며 줄곧 싱글벙글거리며, 오늘 하루는 어떤 신나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오 나의 태양, 돌아오라 소렌토로, 하면서 마냥 쾌활하고 들뜬 조증 타입이 있다면 모를까, 아무래도 제8의 시크리트 멤버가 의심된다. 누가 주동했나 그 시초는 알 수 없고, 왜 그 유치한 방식을 고집했나 하면, 그 이유야 나도 모르지. 누군가 선동했겠지 아니면 누군가 지나가는 말에 딱 한마디 요정의 바람 같은 추임새만 살짝 덧붙였는데 그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는지도 모른 테지. 원체 죽이 잘 맞으니까 같이 애들처럼 놀기에 더없이 쉽고 편하고 재미난 건가 보다. 아, 혹시 이 때문은 아니었을까? 무엇을 안다는, 경험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지식 외적인 면이 어딘가 모르게 더 가치 있을 것이라는 막연히 형성된 신뢰감, 아닌 것 같다. 다만 하나 그들은 이와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서술자는 그것을 이렇게 추리하고 있다. 그 공통점이란 이거다. 공통점 두가지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들은 무언가에 쉽게 꼿히는 기질이 아니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작품을 보고 그에 대한 반향이 절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곧 전자와 후자 모두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특징인데, 전자, 무언가에 쉽게 꼿히지 않는다는 말은 뭘 해도 재미가 없고, 주변에 자신의 흥미를 끄는 관심사가 항상 하나도 없고, 짜릿하고 기분 끝내주는 일이 없이 일상이 계~속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술이든 여자든 운동이든 낚시든 도박이든 경마든 뭘 해도 재미없고, 뭘 해도 맹숭맹숭하고 대충 시간만 때우는 것 같고 허무하기만 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재미없다'는 그 말을 뒤집으면, 그 말을 뒤집으면, 하나에 꼿히면 끝장나게 황홀하고 기똥차게 날아갈 듯 즐겁다는 뜻이다. 오예~하면서 빠져드는 격정의 소용돌이, 몰입하여 빛조차 빨아들이는 블랙홀 그 너머 화이트홀. 막 뭘 부수고, 탈출하고, 인생을 허비하고, 밑도 끝도 없이 도망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일단 '재미없다'는 짧은 글을 긴 말로 바꾸면 이런 거다. "진짜 뭘 해도 재미없는데 어떡하면 좋을까? 누군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냐고. 열정이 없는데 정신과에라도 찾아가란 말야? 어? 그래? 옛날에는 뭘 해도 재미없지 않았어. 남들이 웃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내 기분이 좋지. 지금도 그래. 여전히 그렇다구. 그러니까 이 일을 지금도 계속 하는거구. 사회적 소양과 인간미도 갖췄어, 보통이야. 정상이란 말이지. 꿈으로 가득찬 설레이는 몽실몽실한 가슴의 소녀가 아니지만 내 가슴에 니코틴과 고지방만 쌓인 것만은 아냐. 말끔하게 건강하고 적당히 건전해. 굉장히 희귀한 케이스는 아니란 말야. 그런데 이상하게 끙하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응어리라고나 할까, 그런 게 없잖아 있는 거 같아. 오래 살면 다 그럴 꺼야. 누구나 다 그런거 같아. 하지만 아직 한창이지. 게다가 활력있고 새로움에 대한 열의와 에너지는 있는데 말야. 희한한 거지. 재미없다는 말하는 것조차 지긋지긋했는데, 그 뭘해도 재미없다고 말하는 악취미도 나름 취미였는데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게 참 웃겨. 지금 날마다 이렇단 말이야. 술을 마셔도 재미없어, 운동을 해도 재미없어, 영화도 별로야, 여행도 별로야, 나이 먹고 연애? 그것도 더 이상 안 돼, 애완동물은 예외야, 결국 삶은 곧 권태란 말인가? TV 코메디 프로를 봐도 재미없어, 드라마를 봐도 재미없어. 예전에는 욕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이젠 욕도 잘 안해, 재미없으니까. 난 지쳤어, 그런 것 같아. 그래 속 시원히 말 해줄께. 이번주 토요일에는 동기부여 세미나에 갈 꺼야, 다음주 월요일에는 유명한 정신병원 원장 앞으로 예약 잡아놨어, 아 재미없어. 몇 십년 젊어져서 스포츠카 몰고 대학생이 된다면 또 몰라." 딱 이런 말이다. '뭘 해도 재미없어.'라는 글을 읽는 당신의 기분과 느낌은 어떨까? 정말 궁금하다. 정말로 그대도 재미없을지, 이도 저도 아닐지. 그나마 무모하지만 재미없다는 말을 100번 읽으면 재미있어지는지 한 번 시험해보자. 공짜에다 명예도 안 깎여. 혹시 모르자나, 실은 이건 '나는 당신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 또는 '난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책략으로 완전 뻥뻥 터트릴지도. 과연 정말 '재미없다'는 글을 100번 들으면 재미있어지는지 한 번 해보자는 말이다. 괜히 오기가 생긴다. 나도 모르게 느닷없이 결심한 거다. 그래 꼿힌거네. 삘 받았어. 제대로 받았어. '뭘 해도 재미가 없다'의 반대말에. 와, 이거라니까 이거라구. 절반의 성공이다, 서술자가 꼿혔으니까. 왜 절반인가 하면 '정말 기쁘냐' 라는 감정을 느끼는 메인 요리는 당신께 양보했기 때문이다. 정말.. 재미있는가 없는가? 어? 그래, 재미없다. 이런 삐─. 악마는 새로움이란 옷을 입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새로운 디테일, 허접한 악마는 재미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리고 후자. 그들의 공통점 두가지 가운데 뭔가에 잘 안 꼿힌다는 전자 다음의, 후자, 어떤 작품을 보고 나서 그에 대한 반향이 절대 크지 않다는 것. 이건 영화로 치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 뭔 얘기하는지 잘 모르겠어, 라고 말하지도 않고, 즉 핵심을 즉각 짚어내고, 재미없는 영화라도 딱-딱 어렵지 않게 기획 의도를 추측하지만 대신에 그 짧은 댓글 분량 이외에는 할 말이 전혀, 전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댓글 분량의 의견 만큼은 살면서 축척된 데이터베이스에서 가장 끌어당기는 무엇을 콕 뽑아내서 그 분량이면 됐지 긴 글은 절대 못 쓰겠다, 한마디면 충분하다니까, 긴 말 필요없어, 집어치우라구, 딱 이거다. 영화 한 편 보고 나서 토론이라니, 평론이라니, 영화로 치면 그렇고, 소설로 설명하자면 책 한 권 읽고 독서 토론이나 가벼운 독서평을 전혀 못하고, 범생이처럼 훈련받지도 습관되지도 당연히 생활화 조차 안 되어 할 얘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학구적으로, 교습법으로 보면 매우 열등하고 참담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또 이 후자를 미술관 관람으로 보자면 한 전시회를 보고 나서 엽서 한 장에 상당히 수준 높은 감상평을 쓰는 재간이 전혀 없고, 그런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크게 부끄러워 하지는 않지만, 그냥 데이트 코스의 하나일 뿐이라구, 주로 이런 생각이고, 그 예술에 대한 해석과 분석도 짧게나마도 못 하지만 그 직관적인 느낌과 감흥은 모두 차곡차곡 무의식에 쌓아 두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말은 못하고 글은 못써도 전부 저장해. 그게 뭔지도 모르고 저장되었는지도 모르지만 프로세스는 그렇다. 그들이 원해서 그런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로 타고난 것이다. 게다가 전시회를 보고 나서 방명록에 짧은 문장 하나랄지, 나 다녀갔다, 그런 말도 못쓴다. 수줍어서 그런 걸까, 잘 모르겠다. 뛰어난 상업 작품과 비상업 예술은 모두 이렇게 묻혀 있는 야생의 잠재 상태를 잘 건드려서 사람 가슴 먹먹하게 만든다. 밋밋하다, 평이하다, 그저 그래, 모두 그걸 안 건드려서 그렇다. 잠자고 있는 거인의 코털을 건드리든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든가 그게 관건이다. 즉 10명 중 8명이 딱 이 꽈다. 그리고 1명은 창작자, 1명은 평론가 또는 전문가나 능력자. 그러므로 그들은 '낯설게 하기'라는 용어를 정말 낯설어 하고, 익숙한 예술을 낯설게 해석할 용기나 재능도 없을 뿐더러, 편하고 쉽고 익히 봐 왔던 시각을 특별히 포장하고 개선하기 보다는 '낯설게 하기'가 아닌 새로움 찾기, 신선한 자극과 날 꼿히게 만드는 그 강렬하고 무딘 그러나 순진한 하지만 단순한 그 무엇에 더 열광한다는 점이 그들의 특징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학교 즉 교육적으로는 2명에, 회사 곧 상업적으로는 8명에 집중하기 때문에 그 분포도가 바뀌고 사람이 변할 수 있고, 신기한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교육과 브랜드, 알고 보면 노는 물과 추구 성향이 다르다. 하지만 그 경계는 불분명하고 무의미하다. 현재로서는 그게 최상의 가치를, 가격대 성능비를 도출하여 체계화된 제도와 문명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데 이런 순간 몇몇 단어나 몇몇 표현이 부적절해 보일 수 있지만, 즉 멋진 말이거나 그냥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을 할 때는 대략 그 즈음의 단어와 표현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크게 엇나가지만 않으면 목적은 이룬 거다. 말과 글을 길게 하는 비법에는 논리와 함께 이게 꼭 포함된다. 초딩이 동요를 부르다 언제 대중가요로 넘어가는지, 왜 청소년 권장도서는 청소년의 실재 구미와 들어맞지 않는지 그 시기와 원인에 앞서서, 7인방 그 친구들이 잊고 지나쳐왔던, 감내하고 살아왔던 헛된 기대와 동심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에, 1회성이라도 좋으니 동심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었기 때문에 바로 그 모습으로 모였다고 추정한다면 그건 너무 뭐랄까 이상, 꿈, 낭만, 환상 그리고 억측에 가까웁게 되는 것일까? 그건 아닐게다. 그렇다면 사람 사는 일이, 이 세상이 너무 모질지 않냐는 반문이, 그 이상한 에코가 발생하는 것이 그 이유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이 10명중 8명을 창의적인 아름다운 인간으로 동화시키는 하나의 다리는 아닐까, 하는 게 바로 그 다음 이유다. 8명은 1~2명이 생산한 컨텐츠를 평생 보고 듣고 읽는다. 그러니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의견이 많은 사람 대 생각이 일정한, 기본적으로 관조적이고, 어찌 보면 방어적이며 약간 수동적인 즉 그래서 생각이 사유로 그 다음에 사상으로 꽃피지 않은 사람의 대립이다. 전시회 관람 후 훌륭한 엽서를 잘 쓰는 사람은 전자다. 공부 잘 하는 사람과 돈 많은 사람과 지식의 양이 많은 사람도 전자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를 자주 사용하고, 사진 많이 찍고, 노래 잘 부르는 사람도 전자다. 복잡한 생각을 어떻게든 140자로 잘 줄이고, 그걸 책의 분량으로 재주껏 잘 늘리는 사람, 전자다. 말이 많은 사람은 전자다. 다국적 성장 환경에서 자라서 평생의 업과 취미를 모조리 연애 상담에 쏟고 수필을 10권 20권 30권 취미로 쓰며 내 생각과 내 모든 것을 바깥으로 드러내어 외부에 알리지 않으면 절대 못 견디는 사람, 전자다. 학교 다닐 때만 지저귀는 애완용 새를 어깨에 얹고 다니거나 집에서만 강아지나 고양이와 노는 일반인에 반해서 직업적으로 예술적으로 어깨에 가짜 고양이를 얹어 놓고 어디든지 돌아다니고 항상 꿈을 모두 그림으로 그리며 야한 사진을 찍고 공개하며 예술 인생을 추구하며 약간이 아닌 (여자들끼리 봤을 때) 상당히 공주병 타입의 난 특별해 나는 나는 특별해 하는 사람, 전자다. 나는 다른 남자들이 좋아하는 차와 시계와 뭐와 뭐든 다 관심없고 오로지 평생 음악 인생만을 추구하며 살고 있으며 내 일을 위하여 내 일을 평생토록 하기 휘해서 내 회사 주식도 태반은 내 명의로 되어 있고 다른 작곡가를 만나면 95%를 말하고 5%만 듣고 나는 나는 클럽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노는 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모두 전자다. 깔끔하게 논리적이고 정연한 독서 감상문 1편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후자다. 어린이도 후자다. 어른은 전자다. 생각과 행동이 어리숙한 사람, 후자다. 수다스럽고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사람, 후자다. 술버릇으로 하나의 얘기를 자주 계속 하는 사람은 그걸로는 분간하기 힘들다. 전자였다가 난봉의 나락에 빠진 사람, 후자다. 전문가는 전자고 일반인은 후자다. 아쉬움과 후회, 인과관계와 상관관계, 흑과 백. 혁신적인 작품이나 상품을 만들거나 본인이 물건이 되어 전자가 되기도 하지만 후자에서도 그런 상품을 사기 위해 길바닥에서 줄지어 텐트치고 잠을 잤다가 그 다음 날 물건을 구입했다면 그들도 전자다. 전자 안에 또 계속 전자와 후자가, 후자 안에도 계속 전자와 후자가 있다. 그렇게 전자에만 집중해서, 후자에만 파고들어서 아주 많이 들어가면 월드 클래스 유명인의 이름이 나온다. 지금 눈꺼풀을 깜빡깜빡, 생각을 껌벅껌벅 하고 있는 사람은 뭐가 전자이고, 뭐가 후자인지, 왜 전자와 후자로 나뉘어야 하는지 겁나 헷갈려 하신다. 예스! 벽을 허물었다. 최면이 걸렸다. 친한 친구들 7명의 특징인 후자, 이러한 성격을 짧게 줄이면 요컨데, 창작이 아닌 논평과 해설에는 약하고, 물론 창작에도 막대한 소질은 없지만 우선 창작품에 대한 그럴싸한 감상과 해석, 그것을 꽤 평이한 그것을 참을성이 매우 부족할 정도로 진부하게 받아들인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쓰고 보니 뻔한 얘기 같다. 괜히 했다, 누구나 아는 얘기, 괜히 길게 썼어. 중요한 내용도 아닌데 쯧쯧쯧. 청기 내려─백기 올려─청기 내리지 말고 백기 올리지 마─청기 가만히 있어─백기 내리고 청기 내리지 마─청기 백기 모두 올려... ... 정말 이렇게 초딩 따라하기를 하면 곤란하다. 하지만 참이든 거짓이든 그 친한 친구들이 모인 이유를 어떻게든 있어 보이게 살을 붙이고 말을 만드는 게 폼나지, 대충 할 일 없이 모여서 반갑지도 않고 말도 없고 술만 까무러치게 퍼마신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게 끝이면, 이게 다면, 세상 일이 그렇게 간단하다면야 얼마나 좋으랴. 아니다. 나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살면서 최면에 걸리든 걸든, 뭔가에 꼿히든, 뭘해도 재미없어 라고 하든, 남도 돕고 나도 기뻐하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단순히 너무 단순한 거 보다야. 소형 프라모델 보트와 고무보트 크기의 과자봉지 배, 포도주병, 처키 인형, 종이배, 운동화, 상품 케이스를 들고 모인게 그들 딴에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였다. 어려운 말 나왔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라틴어로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쓰인 무대 기법의 하나를 말한다. 기중기와 같은 것을 이용하여 갑자기 신이 공중에서 나타나 위급하고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는 수법이다. 남이 뭐라 그러든 그곳에서는 그랬다. 남자들끼리 봄꽃놀이를 갈 수도 없고, 못 갈 것 까지야 없지만, 이렇게 모인 것도 약간 설명하기 어려운데 어려운 이름이라도 근사하게 하나 붙이는 게 타당한 일이다. 아무렴. 장난감 갖고 부푼 마음으로 꽃피는 봄날에 모였으니 자기들 알아서 놀라 그래. 신경쓰지 말자구. 그들에게도 자유시간을 줘야할 거 아냐. 직장인이 퇴근하면 집에 가야 할 거 아냐. 그러다 중간에 사건이든 사고든 새로운 만남과 사랑이든 뭔 일인가 일어나겠지. 아니래도 상관 없어. 언제까지 뭐했다, 뭐했다, 뭐뭐했다 일일이 소설가가 가르켜주기만 해야 하지? 영화 업계에서는 4DX로 영화 볼 때 물도 뿌리고 향기도 풍기고 의자 들썩들썩 바람도 부는데 게다가 3D라고 이상한 안경쓰고 보면 막 손으로 멍청하게 앞에 있는 허상을 만져볼려고 손을 가져간다니까. 콘서트에서는 평생의 연인을 만나고, 나는 앤디 워홀을 너무 일찍 팔았다며 그림도 주식과 교집합이 이미 옛날에 생겼는데, 다른 업계는 또 어떤데? 소설도 뭔가 신조가 생겨나야할 꺼 아닌가 말이다. 자, 이제 틀린 부분과 말이 안 되는 문장 연결, 엉뚱한 문맥, 지나친 비약에 대해 능동적인 독서를 위하여 읽는 분, 특히 뭘 해도 재미없다는, 정말 뭘 해도 재미없다는 독자님이 자아가 뚜렷이 선명하지 않은 듯한 개성이 언제 어디서나 일관되지 않는 것 같은 다른 독자와 함께 검토해 보는 시간이다. 아주아주 극소수 뭘 해도 재미없다는 독자께 대단히 송구스럽다. 뭘 해도 재미없다는 말을 100번 못 채운 것 같아서 말이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부족해 보인다. 억지로 쓴다면 모를까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네. 뭔 소설이 이래? 하여간 더럽게 재미없네.
from 소설
2015. 4. 1. 16:46
당신은 살면서 그대와 가장 비슷한 사람을 만나본 일이 있는가? 이 물음은 소설이 시작함과 동시에 이미 수없이 반복되어 나오지만 왜, 도대체 왜, 알면서도 계~속 그 이야기를 쓰는지 모르겠고, 본인이 더 궁금하다. 사람 환장할 일이다. 그냥 계속 맨몸으로 부딪혀 보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끝까지 간다. 별 뜻 없이 써 봤다. 끝까지 간다. 왜냐하면 1.카피라이터 같잖아. 어떤 작품 제목으로 이미 많이 씌였을 테고. 이 소설 가운데 저기 여기가 어디 어디에 나와, 라고 그렇게 딱 꼬집는 말 이전에 집단 지성을 모아 보면 그 꼬집기보다 앞선 예시는 차마 셀 수가 없다. 하늘 아래 뭐가 없다는 말처럼. 2.즉답성에 최적이다. 브랜드 슬로건을 보고서 개그나 욱-하는 말발이든 인문-교양설이든 간혹 뭐라 뭐라 하니까. 예를 들어 보자. Just do it: 뭘 그냥 해?, Because I’m worth it: 누가 뭐래?, Yes: 뭐가 그래. Open Happiness: 말은 근사해. 3.잘못 건드렸어, 그런 말 같으니까. 벌집이야? 뭘 잘못 건드려? 가가멜 제조 스프 뽀글뽀글, 머리 위 주전자 스팀 부글부글. 꼭 그렇게.. 곡해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하지만 시비조의 푸념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는 것이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사람 잘못 건드렸어' 같은 말이 쓰이는 것보다 어찌 보면 뭐-한다. 습관되면 곤란하지만. 세상사와 브랜드 슬로건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나 호응 또는 무관심, 반관심, 적당한 온정, 중용, 내 관심사에 집중. 바로 그 말이다. 워 이런. 세계관, 인생관, 너무 멀리 갔다. 자, 왜...는 저리 치우고, 당신과 비슷한 사람이 누가 누가 있을까? 도플갱어나 평행이론까지는 몰라도 대충 비슷한 사람은 많이 만나 봤을 것이다. 그리고 완전 비슷한 사람은 거의 만나 보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을 얼마 만큼 닮아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게 정해지지 않았으니 상당히 애매한 말이지만 이심전심이나 DNA 기준으로 생각해 볼 것까지는 없고, 쉽게 던지는 그런 질문에서 상대방이 질문하는 의도를 가만히 추측해 본다면 어떤 사람들이 너와 가장 잘 맞고 어울리느냐 그걸 물어본 것일 게다. 꼭 교수님이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몇마디 먹밥으로 던지시는 가벼운 서두 같지만 일단 사람들이 평생 가장 궁금해 하는 화두, 즉 나를 객관화해 보자면 꼭 필요한 화제다. A.무작위로 어느 한 명의 현대인을 뽑아서 그를 분석해 보면 대개 그의 광범위한 분석표가 나 자신과 근소하게 일치하지 않을지라도 어느 범주 안에서는 거의 일치한다. 비최적, 영향력 편향, 상관 없다. 왜? 스파이가 아니고 일반인이니까. 기준점에 내가 있고 그곳에서 사방으로 각 차원으로 퍼져나가는 링크를 가능한 한 적당히 공개하고 감추더라도 다른 블럭의 링크를 살펴보면 거의 비밀이 없다는 점이 나의 즉 그들의 특징이다. 그들이라고 하니까 꼭 특별한 세대의 일부 사람들을 가르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는 않다. 말만 그렇다 뿐이지 그들은 곧 나, 바꿔 말하면 당신 및 그대이다. 어느 시대, 어떤 그룹에 속하든 무소속이든 말이다. (과거의) 전 세계 첩보 기법의 원칙, 나의 앞뒤와 전후 연결 고리를 가능한 한 다른 고리에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속이는 능력이 삶의 표준이 되는 그쪽 세계와 정반대 세상에 사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법칙이다. 하지만 그건 다분히 옛날 얘기다. 일반인과 스파이를 단순히 왕과 거지로 또는 거지 같은 왕과 왕 같은 거지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인간은 맑아져서(?) 어떻게 보면 (반)투명인간과도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조사하면 다 나와, 라는 말은 영화에서도 많이 나온다. 인생 별 거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을 분석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친해지고 싶어할 마음이 드냐 안 드냐는 어떤 믿음의 근거는 속는 셈 치고 판돈을 걸고 패를 받겠다는 결단력과 동등하거나 때로는 (많은 경우) 직관적으로 그보다 앞서야 한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쉽지 않다. 때문에 그렇게 알게 되고 함께 살게 된 사람을 사전적으로 친구라거나 아내와 남편 및 동료 그리고 아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나와 굉장히 궁짝이 잘 맞고 비슷한 경우도 있을 테고, 완전 딴판이어서 항상 부딪히고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겠고 보통은 그 중간, 어중간한 어느 범위에 있을 것이다. 이것을 굳이 짧게 부르자면 인연이라고 한다. 즉 위에 쓴 얘기는 말짱 도루묵이다. 다 불필요한 말이다. 인연은 어떻다, 라고 하면 될 걸 가지고 어쩌고저쩌고, 이러쿵저러쿵, 구시렁구시렁 거린 데에 당신은 딱 걸려들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사랑과 우정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대답할 시간을 많이 주지 말고, 잠깐 생각하는 찰나에 뭔가 아는 것처럼 말 해준다. 너는 사랑을 골라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 마음은 풀어지게 되어 있으니까, 시간이 가면 사람 마음은 아이스크림처럼 녹게 되니까, 라고 말하면 뭔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사람 마음 풀어지는 게 어디 쉽나, 뭘 모르고 하는 소리지만 답할 여유를 주지 않고 읊는다면 뭔가 있어 보이게 마련이다. 즉 틈을 주지 않고, 헷갈려 할 때, 긴가민가 할 때 딱 뭐는 뭐다, 인연은 무엇이다, 라고 말하면 뭐지? 이거 뭐지?, 이렇게 된다. 하지만 그건 말이고 다시 글로 돌아와서, 사람들이 거만한 자세로 최대한 편안히 TV를 보면서 피로를 풀고, 놀기 아니면 일하기, 뭐 아니면 뭐, 무조건 뭐, 처럼 시간을 보내는 이유 같이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딱 얘기하면 재미없다. 벌써 옛날에 과학으로 증명되었다. 광고 다 빼고 본편만 틀 경우, 시청률 폭삭 곤두박질 친다는 정확한 실험으로. 본론만 말하는 보통 그런 경우는 굉장히 화가 나 있거나 사태가 심각한 경우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이유가 없다. 뭘 속이자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같이 웃자는 얘기다. 그래서 광고도 필요하고 전주곡과 추천사, 행사가 다 필요한 것이다. 이 글도 오페라 전체가 아닌 오페라의 서곡과 전주곡과 간주곡, 유명 아리아만 모아 듣고 탄생한 것이다. 그냥 영문도 모른체 툭 튀어나왔다기 보다는 50명 중 한 명꼴로 확인되는 전혀 드문 현상이 아닌 상당히 흔한 동반감각을 지니지 않았더래도 연습이나 추측, 의심, 상상, 뜻과 방향을 모를 헤아림과 호기심만으로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보통의 지능과 강력한 내-외적인 동기로 최고의 지성과 적당한 의도나 노력보다 더 나은(?), 뭔가 특이한 설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은유. 겉으로는 무관해 보이는 개념과 생각을 잇는 것. 말로만이 아닌 진짜 소리를 보고, 정말 향기를 읽고, 놀랍게도 색깔을 듣는, 의지가 아닌 태생적인 신체의 자연 기능으로써 공감각을 글과 그림과 음악으로, 그에 앞서 느낌과 인지와 생각 자체가 은유적인 것. 그것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가 있다. 훨씬 드물다는 영화에도 나오는 그 무엇. 레인 맨. 그리고 은유를 평소에 태생적으로, 습관적으로 항상 쓰는 정상의 생활. 그것을 동반감각이라고 한다. 화가나 시인이나 소설가 등에게서 8배나 많다는 능력. 당연히 본인이 연구한 건 아니다. 만류인력처럼 학계에 정설로 되어 있고, 책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굳이 출처나 인용문을 밝히는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내가 그 학설의 최초 발명자라면 이렇게 내 이름을 정확히 알리지 않고, 은근히 한술 더 떠서 콕 건드린다면 꽤 기쁠 것 같다. 적어도 "저런~" 하면서 화내지는 않을 거란 말이다. 만일 아니라면 그 예상이 틀렸다면 어쩌겠나, 점집을 차리지 않은 게 다행일 테지. 어설프게 동반감각은 없는데, 친구1이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똑같이, 그대로, 완전 짧지만, 게다가 싫지는 않지만 제법 건방진 채로 뭘 잘 외운다거나 습관적으로 그러하면 그 친구 컨셉 자체가 그렇고 캐릭터가 그렇다면, 친구2는 그런다. 원래 자폐증있는 애들이 뭐라 뭐라... 이러면 친구3은 물론 모두 재미있어 한다. 이게 친구들 사이에서라면 완전 재밌는 유머의 방식이다. 하지만 그 범위가 아니라면 다큐멘터리를 기억해야 한다. 사석이 아니니까. 공중파라면 반응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어떠한 말을 듣게 되리라는 것을. 또한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은 자폐증, 하면 자연스럽게 즉각적으로 천재를 떠올리지만 고기능-자폐-천재-서번트는 그 가운데서도 매우 드물다. 그 때문에 더 엄청 웃기고, 뭔가 더 잠시 슬프다. 당사자도 당사자지만 보호자와 주변인과 직업인들이 더 어떠한, 달력에도 보면 몇 월 며칠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이라고 나와 있다. 종이 한 장 차이의 크기가 매우 넓직한 케이스다. 단어 하나 까딱 잘못 써서 누구 하나, 많은 사람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닌가, 당연히 걱정이 앞서게 되지만 나무와 함께 숲 안에는 장애와 그 보호자와 천재가 게다가 유머와 해학까지 함께 있는 법이다. 말 한마디는 몰라도 단어를 억수로 많이 모아서 책으로 쓰면 처지는 그와 같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욕을 얻어 듣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자질을 재능으로 변모시키고 에티켓을 배우는 수 밖에 없다. 우끼는 헤드라인과 아무 내용 없는 뉴스 기사는 대부분 글이 아닌 말에서 뽑는다. 그걸 뭐라 부르나? 해프닝이라고 한다. 이거다. 해프닝의 옆자리에 있는 종이 한 장 차이, 그거다. 액자 갈아 끼우기. 내 인생이 그럼 그렇지, 라고 어른이 말하면 뭐랄까, 한마디로 아무래도 식상하다. 하지만 초딩이 그 말을 한다면, 썩 차갑지 않은 코메디다. 초딩의 동생이 이렇게 말하면 더 재미있다. "이딴거 말고 아이폰을 내놓으라고. 나도 이제 다 컷어." 글쓴이가 독자에게 그래, 나랑 한 판 떠. 그러면 아마 그 말을 내뱉고 나서 금방 후회하게 될 것 같다. 견적 보고 두어번은 안 그럴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초딩이 어른에게 하는 말이라면, 유머에 남다른 소질을 지닌 아동이라고 칭찬받을 것이다. 물론 액자 틀 바꾸기는 원하지 않았는데 쌩뚱맞게 스스로 찾아오기도 한다. 설정은 친한 남자친구들 으쌰으쌰. 그 가운데 한참 후배 한 명 동참. 그는 주로 듣는 상황. 남자들 모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악의-없이 편하게 뒷담화나 험담하는 분위기, 그분이 왔다. 급히 주제가 잡힘. 주제는 경찰! 뭐라 뭐라, 뭐라 뭐라. 후배 표정이 안 좋음. 친구들 가운데 하나 왈. "왜? 너네 아버지 경찰이야?", "네." ... ... (효과음) 윙~윙~윙~위. 그 누군가는, 자기는 은유도 뭣도 싫고 진정한 새로움만, 그 놈의 새로움만 원한다면, 이도 저도 아니라면 직유법을 기본으로 하는, 직유법만 쓰다 지겨우면 비유법을 남용하고 구어체를 남발하는 소설을 쓰게 될 것이다. 뭔 이야기 하다가 여기까지 온거야, 누가 끼어들었길래.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면 어딘가로부터 뇌파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 문단의 요점은 은유다. 50명당 1명은 동반감각 그리고 49명이 노력해서 사용 가능한 은유. B.평범한 삶의 소중함, 소중하고 하찮은 일상에 대한 익숙함, 익숙하고 편안한 또 소박하고 변화롭지 않지만 묵묵히 자기 일에 정진하고 그것을 계속하는 어른스러움. 지루함을 잘 참고 끝내는 그것과 화해하든 평생 불화를 겪든 주어진 삶을 끈기 있게 살아가기. 천수를 누리기. 인류 문명의 구성원으로 세계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의식이 없어도 삶은 계속된다는 담담한 인간성. 인간성? 글을 읽을 수 있게 되고, 말귀를 알아 듣고, 춤도 춰 보고, 예술을 알고, 사람과 사귀고, 일을 하며, 사랑 비슷한 것도 하다가 그렇게 성장하면서 무수히 많은 일들을 접하고 체득하는 것들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사는 것, 자기 일을 하는 것, 직업을 새로 찾거나 직장을 옮기는 일, 삶을 살고 그것을 이어 하나의 인생으로 만드는 장구한 여정. 그냥 그 모든 것을 잘 생각하고 정리해서 글로 쓰면 그것이 한 편의 소설이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은 곧 광활한 대하소설이다. 참 쉽다. 말은 간단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한 단계 위에 있는 삶의 여건을 바란다. 좀 더 괜찮은 옷, 좀 더 쾌적한 생활 여건, 좀 더 괜찮은 주말 생활, 직장에서 승진하고, 푸조 세일즈맨은 차를 좀 더 많이 팔고, 학교를 졸업하고, 술과 음식을 팔고, 서비스를 제공하며 가게 매상을 올리는 일. 그러면서 보람을 느끼는 일. 그것의 현재 단계에서 다음 스텝 정도를 바란다. 그럼 그렇게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 하면 최종 단계에 가면 간혹 실직이나 폐업을 하기도 하지만 게임으로 치면 대마왕과 싸우게 된다. 그렇게 끝판왕이 되어 공주를 구하던가 아니면 다스바이더가 되는 것이다. 이게 인생의 코스다. 바로 그것이 삶의 정규화 단계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아직도 고전적인 수법을 그 기법과 향수와 철학을 포기하지 못하는 스파이와 그의 친구 역스파이가 있다. 시대가 바꼈지만 극중에서 그들은 일반인의 뻔하고 재미없는 삶을 언젠가 살리라고 바란다. 최고의 슈퍼스타, 도저히 내려갈 수가 없어서 평범한 삶을 아주 간혹 그리워한다. 재계 몇 위, 순위권 밖이면 좋은데 완전 딱 좋은데 괜히 유명해서 빼도 박도 못하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빌 게이츠처럼 정상급, 아니 넘버 1이라면 착한 일도 해야 한다. 글쓴이는 그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불법으로 사용하고, 그는 사회에서 존경 받는다. 격이 많이 올라가면 그렇게 살아야 하지 친구들과 어울려 으쌰으쌰, 술집을 전전하고, 말썽을 부리고 기행을 일삼는다? 그러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들을 게 뻔하다. 즉 평범했던 보통의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를 순위권에 넣지 말고 바깥으로 밀려보내 달라는 주문도 간혹 심심치않게 나온다. 곧 이 말은 100의 1명은 기발한 재능이 없는, 주당 몇 시간 일하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보름이나 한달이나 일년을 일하여 그 시간을 벌어 그 기간을 살아가는, 집에서 청소하고 밥하고 애보는 바로 당신의 삶을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부럽다고 대놓고 말을 안 해도 적어도 인터뷰 질문을 받게 된다. 그러면 굳이 유명해질 필요가 없다는 뜻일까? 그건 아니다. 그건 그냥 덤으로 따라오는 부록일 뿐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지도 모르는 별책 부록. 그건 초기에 겪게 되는 현상이고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 할, 익숙해지게 되는 삶의 편린이다. 보통 아이들의 낙서와 그림이 시대적인 화가의 작품과 닮았다고 한다. 아니 반대로 얘기한다. 몇 십년 일하고 평생 동안 재능을 발휘하고 노력하니 꼭 그 대가들의 그림이 애들 그림과 비슷해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이 대가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 당연히 못한다. 화폐 가치로 크게 매겨지지 못한다. 그 말은 그래프의 어느 지점이 비슷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당한 수업료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신동이 위대한 예술가가 되려면 말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당신을 부러워하거나 그리워하듯이 그쪽 세계도 그렇게 커다란 원이 그려진다. C.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다 그런 이유가 있다. 뭔가 있는 듯이 길게 글이 이어진 이유. 뭘 설명하려고 했냐, 그 의도보다 인문-교양적으로 가장 중요하다는, 보통 제목으로 쓰면 일단 혹 할 수 밖에 없는 <왜?>보다 <방법>이 더 극진히 대접받고 있다. 바로 지금. 그건 이 다음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다. 앞에 나온 A 다음에 B가 나와서는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논리에 맞지 않다. 이야기가 안 된다. 반은 인간, 반은 말이 되니까. 인어가 공주라니, 어-머-나! 저 푸른 하늘의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보다 뽀송뽀송하고, 쳄발로 소리가 가미된 요술의 음악이 울리는 회전목마보다 더 달콤하겠지만, 글쎄올시다. 그건 글이 아니라 말이다. 횡성수설, 이러쿵저러쿵. 그 중간을 어디다 잃어버린 거다. 하지만 A와 B를 잇는 노력, 그럴려는 시도, 이게 주제라고 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래서 C가 필요한 것이다. 난세의 영웅과 태평천하의 예술은 몰라도 이 쯤의 친절은 그 상황에 긴요한 법이다. 대게 남자는 현실을 말한다. 스냅스도 많고 뇌용적도 크니까 과거도 말하고 미래도 예견한다. 그런데 여자는 보통 꿈을 얘기한다. 목마와 숙녀, 희망의 찬가도 좋아한다. 소녀가 아니어도 동경심은 기본이다. 그렇게 꿈을 얘기하다 엉킨다. 많이 엉킨다. 아예 생활이다. 그래서 수다가 나온다. 그걸 글로 표현하면, 1번 문장 다음에 2번 문장이 나오면 안 된다, 가 된다. 절대 안 된다, 가 된다. 1번 문장 다음에 2번 문장, 난감하다. 그런데 그게 계속된다. 계속, 계속, 끝까지. 그러다 끝난다. 그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생명력을 결속시키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 뭔가는 대체 무엇일까? 정체는 몰라도 이름은 있다. 드림위버! 말은 기가 막힌다. 은유로써 결코 그려낼 수 없는 이상함을 직유를 통해 누군가의 마음에 그 마법을 스며들 수 있게 하는 것, 누군가는 그 길을 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오랜 일반인 생활의 열매이자 결실이고 코메디이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면 4지선다형 문제를 옛날에 많이 풀어 봤을 것이다. 학생들은 지금 한창 신물..이 아니라 미래를 떠올리며 진득히 풀고 있다. 그게 그거다. A와 B를 잇는 교각을 예술적으로 잘 만드는 방법. 그 방법의 하나, 4지선다형 문제. 쪽지 시험이나 중간고사 말고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경험하는 대입시험의 4지선다형 문제가 어떻게 만들어지나. 호텔 같은데에 출제 위원이 갇혀서 탄생한다. 영화처럼 갇혀서! 출제위원이 남자라면 술-놀궁리-미녀-오빠 믿지-낚시-게임-여자를 떠올리면서 (출제 위원이 지금보다 훨 젊었을 때 그랬을 것이라고 가정), 드물지만 여자라면 바다-요트-면세점-해외 여행-드라마-영화-남자-운명같은 남자를 상상하면서, 간간히 끽연하면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정해진 식단만 먹어가면서, 외부와 연락을 해서는 안되고, 일정한 생활의 제한을 받으면서, 나가면 뭐 하겠다, 뭐 하고 싶다, 라면서 그렇게 만들어지는 시험 문제, 그것을 만드는 출제 위원. 완전 영화 같다. 그런데 이런 건 영화로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소재로 쓰이기에 별로 재미없을 것 같나 보다. 그렇게 출제 위원에 의해 만들어지는 4지선다형 문제의 틀린 또는 딱 맞는 연결 찾기 문제. 뭔가와 완전 똑같다. 매우 비슷하다. 우연이란 말인가? 누구도 모를 일이다. 남자가 자주 말하는 현실이라는 X축과 여자가 애원하거나 그저 웃음짓고 대화하는 꿈이라는 Y축은 사람마다 모두 그 기울기가 다르다. 나는, 내일 좀 더 행복하겠다, 그러고 싶다, 나는 어떻게 살기를 바라지만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나는 그런 거 다 상관 안 해, 까지는 몰라도 말과 생각과 느낌을 글로써 최대한 정제하여 구체화시키는 일. 읽기에, 단돈 몇 푼짜리 음료수 병에 씌여진 그 음료수의 표어와 성분과 함량과 효능에 대해 읽는 것처럼 단촐한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그것이 쉽고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면,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하여, 그 단숨함을 위해서라면 글이 어떻게든 길어지고 말도 안 되게 이상해지며 계속 또, 계속 또, 또 계속 다른 다음의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해지더래도 괜찮다. 바로 여기서는 그렇다. 뭐는 뭐다, A는 B다, 라는 단숨함을 말하려면 때에 따라 C라는 단순한(?) 설명이 필요하다. 또는 A와 B라는 오늘에 내일이라는 C를 서로 합하는 일, 지금 그 일에 대해 쓰고 있다. 무책임하게 그것을 시도라고 부르련다. 수준 이하, 부적합, 실패, 해도 괜찮으니까. 사람들은 어떤 영화, 책, 휴양지가 어떻다는 글을 읽고 나서, 별로~라는 뭐할 거라는 조언을 듣고 나서, 난 괜찮아, 하면서 능히 감행한다. 재미없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일단 겪어 보고, 살아 보고, 체험하고, 나중에 얘기하겠다는 것이다. 부자가 되어 봐야 별 거 없어, 유명해져 봤자 쓸 데 없다니까, 한 번 뜬 뒤에 다시 내려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줄 왜 젊은 친구들은 모르는지, 라는 말을 들어도 자기도 그 허상을 논하고 무상함에 대해 노래 부르고 싶어한다. 적어도 노인에 비해 젊은이는 말이다. 즉 인문-교양학과는 정반대가 인간의 본성이고, 인간의 그 타성을 뒤집으면 인문-교양학이 된다. 뭐 이렇게 쉽지? 체화된 인지, 알아야 말을 하니까 일단 간접 경험은 기본이고 직접 경험은 필요하거나 생각 좀 해 봐야 한다는 의미다. 미리 직접 경험한 사람의 말을 듣고, 인문-교양서에 나온 데로 행동하고 살면 되지만 사람들은 먼 길 돌아가는데에 제법 너그롭다는 뜻이다. 영화와 드라마와 잡지를 보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모두 담겨 있다. 전부 다 사진을 찍어서 보여준다. 마음이 살살 녹는다 같은 덜 멋진 감상기와 문학적인 미사여구도 곁들여진다. 심미주의, 유미주의, 퇴폐주의? 모르겠고, 언젠가는 촌스러워지겠지만 그 세상이 그래프 선의 제일 앞 단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장소에 실제 가보면 안개가 심하게 끼어 있거나 시끌벅적 사람이 너무 많거나─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하지만 가끔 분위기 잡고 관조적으로 외로운 기분을 느껴 보고 싶은 순간이 누구나 있다. 고독한 도시 남자 뭐 이런, 쓸쓸한 섬 처녀 이렇게. 어느 유명 미술관에 가서 모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그 그림을 볼려고 시도한 사람들 많을 것이다. 안 가본 사람은 말만 들었을 테지. 수많은 인파 때문에 모나리자는 커녕, 사람들 뒤통수만 원-없이 봤다고. 그 인파면 그림은 몰라도 쟁쟁한 인물들과 미녀들이 상당수 있었을 텐데, 오직 뒤통수만! 숭고하다, 장엄하다, 아름답다, 무섭다, 도저히 말이나 글로는 표현 불가능 하다, 하나의 매체로는 설명이 안 된다, 뭐라 하지만 그건 모두, 전부 모나리자라는 알맹이에 대한 얘기만 하는 것 같다. 책 한 권이든 한 사람이 그리고 한 인간의 평생 걸려 만든 저작물들과 전 작품이 또 그리고 거의 모든 수많은 예술가들이 평생을 들여 다듬고 형상을 만들어내는 실체는 어떻게 보면 거의 모두 모나리자다. 달과 6펜스와 한 예술가의 초상과 그의 작품들. 모나리자를 보러 갔는데 멀리서 그 액자는 고사하고 사람들 뒤통수만 맘껏 봤다는 일이 거의 전부일 텐데 대중 예술의 꽃, 진정한 유머는 진지한 예술 세계에서는 약간 가치가 폄하되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분위기가 별로거나 생각보다 멋지지 않거나, 딱 그 성곽만 멋지거나 영화를 볼 때와 잡지에서 봤을 때의 기분이 안 난다. 그래서 직접 가보니 맑고 조용할 때 또 내가 쾌적한 상태로 그렇게 최적의 상황일 때 보면 괜찮겠네, 라는 경험담을 얘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가 봐야 별 거 없어, 라는 말발만 듣고 평생을 살았으니까. 멋진 광고에 나온 차를 타고 옷을 입었어. 그런데 그 들뜬 마음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아. 그래서 적응의 관점에서 보는 행복지수의 미묘한 균형을 살피라고 얘기하지만 딱 그대로만 살면 답답하고 재미없고 그럴 수도 없다. 소설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소설을 써야 하겠지. 그렇다. A에서 말한 삶의 비밀, 인연의 연속. B에서 말한 반드시 누군가는 당신의 삶을 동경하고 궁금해 하고 부러워한다는 믿음. 그 바보같지만 결코 어리석지 않은 맹신 아니 그냥 그런 것일 뿐이라는 이치. 그대가 아무리 현재 자신의 삶이 따분하고, 심심하고, 답답하고, 재미없을지라도! A와 B의 중간, 그 연결 고리에 대한 해석 즉 직유법. 억지 매칭이라는 퍼즐 풀기와 두 그림의 다른 점 찾기. 삶을 대놓고 보기. 잠깐 비유하고, 책상 다리인지 코끼리 뒷다리인지 낙원에 있는 궁전의 기둥인지 몰라도, 잭과 강남콩은 집에서 키우는 화분이라고 은유로 슥 던져보기. 지금 그대는 그리고 J는 바로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심하고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하고 1인칭으로 유난스레 너스레를 잘 부리지 못하는, 아첨과 아양의 기술이 부족한 그와 당신은 그러고 있다. 살면서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텐데 그런 고민을 한 번쯤 해 봐야 하지 않겠냐는 논지다. 아니면 나중 수많은 작품의 힌트로 쓰인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 탱크에 사람이 아바타처럼 들어가 있는 인체-냉동-보존-센터를 견학하자는 것이다. 기술과 학술적으로 어떻다, 그건 몰라도 알아도 머리 아프고, 재미로 둘러보면 좋겠다는 것일 게다. 뭐야 이거?
from 소설
2015. 3. 16. 16:08
망작이다, 왜 이렇게 만들었지, 답답하다 순수한 사랑이, 보기 전으로 되돌아 가고 싶다, 뭐지?, 예매해놓고 못 봄... 사람들이 흔히들 마음에 안 든 영화를 보고 사석에서 하는 말이거나 혼자 남기는 댓글이다. 세간의 얘기를 너무 많이 접하면 즉 사전에 겁을 먹으면 또는 너무 모범적인 예시를 현실에서 많이 봐 왔다면 어떤 시작에 대한 망설임과 두려움이 커지는 법이다. 따라서 생각이 너무 많다면 그걸 어떻게든 덜어내고 비워 놓고 가는 것도 하나의 새로움에 대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규칙적으로 일을 하고 이렇게 아마추어는 그 글쓰기 매커니즘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 하는 것이다. 때때로 동시대 작가의 소설은 독서를 시도하다 마저 완독에 이르지 못하지만 작가의 트위터는 재미나게 읽다 보면 '말로 모든 걸 날려버리지 마라'는 보존에 관한 문제에 절실히 공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때로는 일단 저질러야 한다. 가끔은 안 그러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이 얘기를 도대체 몇 번째 하는 것인지 이젠 무감각하다) 그래서 이와 같은 기본 마인드를 가지고 사는 하워드 때문에 친한 친구들은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정말 가운데는 아니고 어느 언저리 즈음, 어떤 찻집에서 모이게 되었다. 독자의 나이가 좀 되셨다면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떠올릴 수도 있고, 좀 더 활동적인 젊은이라면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보는 수많은 사진들 가운데 하나를 생각할 수도 있다. 앞서 왜 자신에게는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느냐고 하면서 평소에 잔잔하게 엉뚱한 일을 자기 삶에 색칠하며 사는 사람에 대해 잠깐 언급했다. 자기 차에 탈 때 뒷자리를 살피고, 퇴근하면서 꼬불꼬불 빙빙 돌아 집에 가고, 집에서 방문에 테이핑 처리를 하며 007 가방을 사 모으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 기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영화나 소설로 소개되지 않았다 뿐이지 이 세상에는 기상천외한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하지만 그런 우연이나 행운이 또는 특별한 일이 그들을 찾아오는 일이 좀체로 없기에 친한 친구들은 나이 먹고 철없이 추리소설 흉내를 내기 위해서, 그것이 바로 사는 재미지 뭐겠냐는 철학이라도 품은 것처럼 모이게 되었다. 그러나 진짜 평범한 스릴러와 같이 익히 알려진 내용이나 기법, 흐름을 보이며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뭐랄까,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예술의 한 영역을 넓히는 의미로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나가면서, 실시간으로 남기고, 약간 다르게 변형해서 여러 형태로 분산하고 살피고 반응을 보면서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다가 그건 그냥 흥미롭게 만나서 즐기기 위한 준비에 불과했다는 듯이 흐뭇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즐거운 기분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그 사막에 있는 찻집에서 그러고 있었다. 일단 조니는 노트북을 켜놓고 트위터 계정을 하나 만들어서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듬성듬성 단문으로 기록했다. 케빈은 만년필로 녹음을 하고, 알렉스는 단편 영화 공부를 위해서 녹화를 하고, 마크는 부모님의 재능을 물려받은 그림에 소질을 발휘하여 살바도르 달리처럼 그림을 그렸다. 하워드는 고전적으로 노트를 펴고 중요하다 싶은 것 위주로 몇가지 볼펜으로 끄적거리고 있었다. 닉은 전화 통화로 누군가에게 그들의 행적과 뭔가를 암시하고 상징하는 정황에 대해 다정하게 속삭이는지 은밀히 보고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제임스는 그냥 뭔가를 생각하고 듣고 커피도 마시며 주로 대답과 추임새를 넣고 짧은 말 한두 마디 정도가 전부였다. 참 놀고들 있다. 그 놈의 퍼포먼스, 어지간히 좋아하시네. 그 카페에서 그들이 앉은 테이블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다양하게 있었는데 조용한 사람, 슬픈 연인, 쉬고 있는 친구들 옆으로 말 잘하시는 사람들이 있었다. 진짜 말 잘하시는 사람들, 일단 기본으로 평균 분당 얼마의 말수가 받쳐 주고, 차림새나 내용과 목소리등의 전체 제반 조건이 어떤 분위기를 형성하는 결코 흔하지 않은 모사꾼과 대형 브로커 기질까지 모두 연기 가능한 베테랑 언변가들 말이다. 그 분들은 굉장히 그 정도가 고차원인 것 같았다. 보통 수다라고 하면 듣지 않고 막 말하는 건 초보자다. 그것에서 좀 더 나아가면 할 얘기 못 할 얘기 다 하고 나서 헤어질 때, 끝인사로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하자고 한다. 그와는 다르게 어떤 경지에 이른 만담가들은 술을 전혀 못하는 대신 녹차나 커피를 술처럼 마시면서 장소를 옮겨 가면서 잠을 안자고 하루나 이틀쯤 대화를 나눈다. 그 다음으로 신기한 부류는 이렇다. 대화 중간에 릴레이로 양치질을 하러 갔다 온다. 구강 청정제도 사용하고 잇몸 관련 약도 먹는다. 간혹 백태가 끼는 중년 아저씨가 손수건을 사용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말하는 직업군에서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 다음으로 저 멀리 드높은 단계에 이르면 치과에 가서 스켈링을 받고 다시 돌아와서 쉴 새 없이 수다를 푸는 차원에 이르게 될 것이다. 항간에 퍼진 풍문에 의하면 그 계통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그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이 기본이라고 한다. 젖꼭지 옆에 손톱만한 파스를 붙이고 나서 얘기를 하면 어떤 상황에 어떤 말을 하는가, 무엇에 반응하고 심장이 달리 뛰는가 체크하고, 하루 몇 마디 몇 문장, 시간, 속도, 칼로리, 심리 분석, 거짓말 탐지든 뭐든지 다 분석해 준다고 한다. 물론 유료 서비스이고, 아직 아마도 상용화 전-단계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극비이면서 고급 정보다. 그 정도 경지에 이르면 목소리 변조용 수소인가 뭔가를 입에 품었다가 말하고, 핸드폰에 하고 싶은 말을 녹음했다가 들려주기도 하며, 딱 할 말만 글로 써서 보여주고, 최근에 익힌 수화와 모스 기호 전달 및 암호 분석, 의사 표현을 예술적으로 바꾸어 표현하게 된다. 그 친구들도 약간 그 단계에 근접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렇게 쉽지 않도록 대화를 나누는 그네들의 화제 가운데 오늘은 하워드가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하워드, 소설은 잘 써지니?」 「그럴 리 있겠니. 그랬다면 너네들 만나서 즐겁게 놀지도 못하고, 골방에 틀어박히든 어느 한적한 휴양지의 호텔에서, 호텔 안에서만 집필 작업을 하든, 호텔 바깥으로 일절 나가지는 않겠지만 바깥에 나가기만 하면 둘러보고 싶은 경치와 건물과 문화와 사람들이 많겠지만 쓰고 싶은 의욕과 쓸 수 있는 능력과 써야 하는 호기 그리고 하고 싶은 말과 들려 줘야 할 이야기에 셈여림표처럼 붙여진 절실함이 정확히 최대치로 일치하는 순간에 그럴 수는 없으니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완성하고 나가는 그 순간을 기다린다는 일종의 기대 심리의 고조와 긴장감을 형성하려면 그게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그럴만한 착상의 발단은 찾아오지 않았으니 이렇게 여유롭고 잔잔히 너희들과 놀고 있지. 당연히 질문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일 꺼야. 그렇다고 그게 기분 나쁘다는 뜻은 아냐. 난 너희들과 노는 게 제일 편해.」 「나도 그래, 어 조니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니긴, 나보다는 닉이 아주 심각하게 골똘히 딴생각하고 있는데, 쟤는 항상 속으로 뭘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라. 야 닉, 니키, 닉스.」 「조니, 너가 제일 으뭉스럽다고 이미 옛날에 결론 났어. 하워드 오랜만에 말하고 있는데 자꾸 그렇게 리듬을 끊어야겠니? 계속 하렴, 하워드. 얘기 잘 듣고 있으니 말야.」 「하워드가 좀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 보구나. 우린 항상 언제 어디서나 친구 얘기 듣는 것을 좋아하지. 그니까 최근 글이 잘 안 써진다, 그 말이구나.」 「아무 것도 아냐, 별다른 문제도 무거운 주제도 없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편하니까 자꾸 딴생각이 드는 것 뿐이라네. 정말 편하냐 안 편하냐의 기준은 정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니까. 사람들이 사람들을 만날 때 항상 잊어버리지만 한번쯤은 생각해 봐도 나쁘지 않은 팁이지.」 「그렇지. 글이 잘 써진다면 약속을 잡지도 못하고, 일류 작가도 아니니 그 작흥의 순간을 건너뛸 수도 없고, 생각해 보니 이만저만 손해를 볼 뿐만 아니라 상당히 불편할 것 같드란 말이야. 글이 잘 써진다면 나중 혹시 안 써지게 되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어디서 듣거나 많이 읽어 봤을 거야.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오히려 멀어지고 이루어지지 않는데 뭔가를 그렇게 애타게 갈망하지 않으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바라던 이상이 실현되드라. 마치 지금의 상황이 그와 비슷한 것 같아. 딱히 원한 건 아닌데 알고 보니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아. 물론 너무 길어지면 안 되겠지. 하지만 요즘 어느 책에서 그 말을 읽었어. 빅토르 위고는 영감을 믿었다고! 빅토르 위고를 읽어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다음에 시도해 볼 테지만, 그의 말이 알맞게 적용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내게도 통하는 것 같아. 영감을 단순히 믿음의 대상으로 본다면 감히 평생 상상도 못 할 사용할 수 없는 수사적인 표현이야 제쳐 두고 라도 간단히 살짝 바꾼 관용구나 낯선 단어의 어울림만으로도 영감의 전 단계 즉 착상이나 짧게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는 아이디어를 얻고 메모하는 습관이 반복되고, 그러다 보면 그 명대사처럼 한쪽 성별의 눈앞에서 부적절한 현장을 보지 않는 이상 끝끝내 뭔가를 믿지 않으려 하는 성질과는 다르게 말하는 문장이 문법에 어울리게 목적어와 동사를 잘 매칭되도록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관습을 깨는데서 영향을 받기도 하는 것 같아. 나는 주입식 교육을 믿는다. 어떤 느낌이 드니? 그래 멈칫!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했어. 내가 예전에 블로그나 텀블러에 남겼던 주옥 같은 글들, 과연 그 글은 어떻게 탄생할까 라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두 가지 요점이 스치듯 잡념이 이어지는 가운데 뭔가를 뇌리에서 읽었어. 그 글들은 주로 상업적으로 인기가 없다는 거였어. 일례로 소설을 보면 가장 많이 책이 팔리고 영화로 만들어지는 글에서는 내 경우엔 밑줄 긋고 싶은, 몰입하게 만드는 뭔가가 없기 때문에, 전혀 없으니까 다른 곳에서 그 찾을 수 없는 뭔가를 찾아 헤맸던 것 같아. 와 이런 감정을 이렇게 글로 옮길 수 있는 것이구나, 이렇게 경외감과 더불어 어느 애사가도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 있는, 그래서 더욱 극소수를 놀랠 수 있는 밑줄들 말이야. 생각이 이것에 이르니 당연히 '나도 그와 같은 글을 쓰고 싶다'라고 느꼈지만 한 발짝 더 나아가니 그건 그 다음으로 미뤄야겠다고 문득 떠올린 거야. 즉 먼저 1단계를 하자 라고. 왜 많이 팔리는 책은 인기가 있을까 라고. 기록할 만한 생각들을 모으고 계속 모으는 작업, 일단 그걸 지속하다 보면 또 그 다음이 보일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어. 사람에 따라서 모두 제각각이겠지만 소설 쓰기를 연애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의외로 재미나거든. 항상 움직여야 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뭔가에 집중하고, 바쁘고, 하고 싶은 일들이 많고 자주 바뀌며, 지속되든 짧든 활기가 넘치고, 어떤 신선함과 생동감이 겉으로 돋보이는 청춘이 아니라면, 그 시기를 지나왔다면, 가만히 자기 자신의 과거의 작업과 연애사를 또는 말하기 부끄러운 수줍고 챙피한 일들과 어떤 단어를 떠올려 보면 좋을 거야. 그 얼마되지 않는 두셋의 그것 만의 공통점, 간추려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하고 유일한 특징은 이것이었던 것 같아. 첫째, 좋아한다. 둘째, 자고 싶지 않다. 당연히 첫째에는 서로 같이 공감하고 능동적이어야 할 것이고 둘째는 아예 그런 수를 내다 볼 엄두를 내지 못하겠지만 그런 일념일랑은 먼 나라 얘기 같고 오래되고 길어지면 나이들면 달라지겠지만 처음부터 딱 좋을 시기까지 즉 애매모호한 중간까지를 봤을 때 그래야 할 꺼야. 그런 사람도 있을 꺼야. 사람에 따라 많이들 다르겠지. 남에게 잘 보이고 싶고, 타인으로부터 관심을 끌고, 의견을 말로 마음을 무언으로 서로 교차시키는 이유가 뭐겠니? 그건 아마도 적어도 말이야, 1과 2에서 경멸할 만큼 멀리 떨어진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사석에서는 많이들 그런 얘기 하지 않나? 저기는 1번, 저기는 2번, 어? 여기는 근거리인데 제일 자주 마주치는데 해당사항 없음, 뭐지? 이상한데, 라고. 그래도 사람은 공룡이 아니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만나고 시도를 해야 할 꺼야. 그래야 나중에 결실이 있고 통계가 나와서 어딘가에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든 글이나 곡을 쓰든 그림을 그릴 수 있겠지. 이와 함께 모두 알면서도 암암리에 거론하지 않는 또 하나의 신비스러운 인간 특징도 참 놀라워. 천년의 사랑을 하고 있는 여자일지라도 그 상대와 같이 두 손 꼭 잡고 다정한 정감을 나누고 가만히 있을지라도 그 상대와는 다른 어떤 이성에게 자신을 잘 보이고 싶어하는 습관과 무의식적으로 조심스러워지는 본능, 그것은 남자에게도 똑같이 나타나, 다른 방식으로. 친지의 장례식이든 본인 결혼식이든 지금 현재 자기 자신이 최고의 장르를 초월한 사랑, 천국으로 이르는 그 세계를 새로 정의내려 버리는 바로 그것의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항상 언제나 여성들이 청각에 빠지고 직관력이 뛰어난 것처럼 남자들은 시각과 두뇌 회전이 비상하다는 점 말이야. 남자들이 항시 주의해서 살피는 그분들의 심리는 인간은 모두 이방인이면서 특별한 존재지만 그에 앞서 사람은 누구나 별종이 아니란 얘기지. 때문에 나의 평균을 기억해 달라, 나를 잊지 말아요, 그것은 곧, 당신의 최상을 잊지 않고 싶다, 아름다운 추억의 별자리를 간직하기를 원한다, 그대의 멋진 모습을 어쩌다 한번 떠올리며 살게 해줘, 그거란 말이야. 평균과 최상의 위치가 바꼈나, 아닌가? 그 실수는 마음에 들게 편집하도록 알아서 생각할 수 있는 매듭짓기의 묘수라고 해두지. 기가 막힐만큼 맛나지 않아도 괜찮을 달콤한 케익이나 안에 아마도 반지나 목걸이일 것이라는 예상으로 마음을 부풀리게 만드느 푸르스름한 선물 상자의 리본을 풀면서 경험하는 콩콩거리는 마음이 그 매듭을 푸는 두근거림과 엇비슷하다고 억지로 단정해도 된다면. 그리하여 나의 흐트러진 자태가 아닌 또 평범한 보통의 상태가 아닌 자신의 가장 예쁘고 귀여운 이미지를, 끌어 올린 더 나아지는 시간상의 기울기를 타인의 심상에 남기고 싶은 것일 꺼야. 인간이 분명 꽃보다 아름다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인간은 반드시 공룡보다 뛰어나고 위대하고 놀라운 만큼 신비로워. 영원한 연구 대상이지. 참 유감스러운 세상이야.」 정말 오늘 하워드는 작심한 듯 하였다. 반드시 맹세코 그래야겠다고 길게 말할 것이라고 다짐하지는 않았겠지만 어느새 듣고 보니 그럼 셈이었나 보다. 「참 설명하기 곤란하지만 이렇게 대강의 이야기 거리만 남겨 놓으면 정확하고 단순한 걸 좋아하고 어중간한 거 싫어하는 사람들은 참 답답하고 거북할 것 같아. 나는 잘 모르지만 책에 보니 독일쪽이 그렇다고 하더라고. 인문-교양서도 아니고 소설에서 짧게 나온 걸 읽었을 뿐이야.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경향이 전반적으로 있다는 뜻이겠지.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나도 아침과 저녁 생각이 다르고 너네들도 어제와 오늘이 또 다르잖아. 아무리 정확한 걸 좋아하는 어른일지라도 음악의 즉흥성이나 그 어떤 불분명함 그리고 현대 미술까지도 모두 다 정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지. 나는 초밥을 좋아해. 하지만 날마다 초밥만 먹고 살 수는 없어. 매일 그런다면 애호가에서 전문가가 되겠지. 유난히 어떤 날은 뭔가가 먹고 싶은 날이 불규칙적으로 있어. 꼭 자기가 원하지 않더래도 원래 사람일이란 게 변수가 많기 때문에 본인은 딱 떨어지는 대답을 하고 싶어도 평생 그럴 수 없는 일이 많거든. 누가 내게 이렇게 물어본다고 하자. 고향이 어디세요? 난 <어디예요>라고 하면 끝인데, 몇 문장 더 입 아프게 말을 해야 해. 어디서 태어났지만 그곳 말은 못하고 어디서 주로 자라고 어디 어디로 옮겨 다니면서 자랐다. 그래서 실질적인 내 고향은 어디라고 말 할 수 있다. 뭐야 이게? 그렇지만 이 말을 평생 반복하겠지. 다른 예를 들어 볼까? 생애 당신의 첫 자가용은 무엇이었나요? 그건 포드 퓨전이죠! 이렇게 딱 끊어지면 좋은데 여기서도 답변이 간단하지가 않아. 예를 들면 이렇지. 처음에 포드 포커스를 샀어요. 폐차장 넘기기 직전의 차였지만 전 기분 좋았죠. 그런데 이 차를 딱 3일 타고 제가 직접 폐차했어요. 생활고나 이런 저런 문제 때문에요. 그래서 나중 구입한 BMW E30 M3 에보2를 생애 첫 자동차라고 해야 하는데 이게 또 사연이 있죠. 아는 형의 싸게 구입해준다는 말발에 속아 딱 반나절 타 보고 돈만 주고 사기 당했어요. 그래서 나중에 한창 카드 돌려막기 하던 시절에 중고로 싸게 구입한 혼다 레전드 첫 모델 흰색이 제 첫 차가 됐죠. 그런데 그 흰색 레전드가 많이 아픈 차였어요. 엔진이 오바이트 하는 바람에 군청색 레전드로 바꾸게 되었죠. 그러나 이것 마저 한달도 채 못갔어요. 그때 집의 빚이 많았는데 아버지가 더 큰 걸로 하나 얹으셔서 형네 돈까지, 형네 집까지 또 형의 친구의 돈까지 끌어 쓰는 바람에 군청색 레전드를 형에게 넘기고, 형의 머스탱을 건네 받았죠. 그래서 머스탱이 제 첫 애마가 되었죠. 그게 저의 정식 첫 애마죠. 별로 원하지 않았던 첫키스였죠! ...(침묵)... 이게 뭐야, 이런 말도 안되는 연설이 다 뭐냔 말이야, 뭔 상황이 이래? 이 뿐만이 아니야. 그 친구 앤디 있잖아. 그 녀석 아버지가 또 옛날에 대사던가 영사던가 그러셨잖아. 그래서 그 친구 태생이 저 머나 먼 어디야. 지금은 또 어디 산다고 하더라. 얘는 여권이 꼭 다이어리 같아. 국적도 3중 국적이라나. 말도 기본으로 7개국어에 일상 대화까지 하면... 음 그렇다니까. 그런데 그 친구가 사는 곳의 풍습은 연도를 옛날 셈으로 환산해서 생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따진다고 하드라고. 그러니 그 녀석도 그곳에서 누가 나이를 물어 보면 딱 떨어지게, 몇 살이에요, 이렇게 대답하지 못한데. 생일이 빠르다 느리다, 미묘한 뭐가 있데. 또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누가 물어 봐도 귀찮아서 대충 얼버무릴 꺼 같아. 원래 세상 일이 이런다니까. 이런 애매함이 좀 많은 사람의 경우 어려서 그런 얘기를 들었겠지. '넌 애가 왜 그렇게 매사 결단력이 없고 결정을 못 내리고 흐리멍텅하면서 똑 떨어지는 맛이 없니? 라고. 이런 얘기를 수없이 듣고 어른이 된다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아. 그런데 특이하게도 완전 똑똑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우에는 한 번 물어봤던 사실을 기억도 못하고 만날 때마다 또는 주기적으로 물어본다니까. 일부러 그러는 척 할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어쩜 그런 신공을 지녔는지 어떻게나 그리 무심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 맞다. 또 있다. 병원에 입원한 사람도 그래. 10명이 차례로 병문안을 와. 차근차근 인사하고 얘기를 하겠지. 그런데 100명이 오거나, 1000명이 와. 그러면 매번 똑같이 어떻게, 왜, 무엇 때문에 언제 입원했다고 다 얘기할려면... 생각만 해도 힘들겠지. 영화에서 스케치북 넘겨서 프로포즈 하는 거 나오잖아. 그건 프로포즈할 때 쓸 게 아니라 병원에서 입원한 환자가 써야 돼! 그래야 한다니까.」 정말 하워드는 작심했나 보다. 아니면 섬에서 탈출한 게 틀림없다. 「뭔 얘기했드라. 음 그런 남녀간의 연애처럼 나도 소설에 대해서, 소설 쓰기에 관하여 지금 그저 가만히 좋아하고 생각하고 자주 고민하는 딱 그런 과정에 있는 것 같아. 그래서 그 부담감이 왠지 이상하게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니까. 나도 모르게 기존의 시간 관념을 다르게 인식하게 만들고, 그 알 수 없는 미지의 항속성을 유지하게 만든단 말야. 딱히 잘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지금 그냥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오 이런 분위기 무거워졌다. 내가 산에서 내려왔나, 수도원에서 도망쳤나 아니면 땅에서 솟았을까? 왜 이러지. 아, 입 아프다. 누가 가라앉은 흥을 띄워보시게.」 「다 그렇지 사람 사는 게, 그래도 하워드 네 목소리와 어조가 좋으니 그걸로 된 거야. 내용도 괜찮았고. 어, 그럼 넌 요즘 어떤 책을 읽는데?」 「음 난 요 근래... 중고등학생이 쓴 소설을 찾아 읽고 있어. 전문가이면서 어른이 쓴 책 말고, 아마추어이자 청소년, 그분들이 쓴 이야기 말이야. 굉장히 신선한 구석이 있단 말야. 음 그래.」 「게다가 한가하게 평일 낮에 미술관에 들렀다가 잔디밭에서 노는 친구들, 비둘기에게 과자 부스러기를 나눠주는 엄마와 아들, 가위바위보 해서 한발짝 가기를 하는 또 다른 엄마와 딸, 아빠는 아마도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시면서 돈을 버시겠지, 모여서 만담을 푸시는 노인장들 사이로 레트라도 리트리버를 몰고 오셔서 목줄을 잡고 분위기도 쥐었다 폈다 입담을 푸시며 좌중을 휘어잡으시는 어르신과 다른 행인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어. 딱 100년 후의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자고. 0을 하나 더 붙여도 괜찮고. 지금 현재만 가만히 살펴봐도 자명하게 답이 나오더란 말이야. 다른 사람들에게 100년이나 훨씬 전에 씌여진 소설을 읽으면 재밌냐고 물어보면 10명중 9명은 그렇게 답을 하지, 그렇게 말야. 뭔 말인줄 알지? 그 가운데 괜찮은 책도 물론 있지만 그다지 많지는 않아. 간혹 많지 않은 그런 책에서 보면 분명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했다고 나오지 않았는데 어느새 읽다 보면 부부이고 고인으로 내용이 이어지는 글이 있어, 신기하게도 말이야, 놀라운 경험이지, 절대 결혼했다거나 돌아가셨다는 표현이나 평이하거나 어려운 암시가 없었는데 읽다 보면 이미 그랬다는 거야, 그런 기이한 글 같은 경우는 읽는 사람을 혼잣말하면서 붕 뜨게 만든다니까! 이건 옛날 책이지만 지금 봐도 괜찮은 사례지. 그렇게 옛날 책은 옛날 사람들만 재미있었나 봐. 지금도 그렇자나. 현재 사람들이 제일 많이 읽고 가장 잘 팔리는 소설은 최근에 씌여진 소설이야, 모두 다, 전부 말이야. 그럼 그 책들도 나중 시간이 오래 지나 100년 후가 되어 미래인들이 그 책을 읽게 된다면 어떨까? 지금처럼 티슈 한 상자가 필요하네, 사탕을 먹어치우듯 순식간에 읽었네, 뻔뻔스럽게 로맨틱하다... 라고 할까? 아닐 테지. 당연히 재미없다며 중간에 읽기를 포기하겠지. 다수는 아예 근처에도 안 갈 껄. 그러고 보면 동화는 참 대단하지 않니? 어쩜 어떤 때 생각하면 참으로 기막힌 사연이야. 봐봐, 닉 저 친구가 왜 동화를 쓸려고 하겠니? 그런데 지금 닉은 11시 방향에 보이는 후광이 비추는 아가씨를 그리고 있군. 기특한 녀석, 어느새 이젠 미술가? 게다가 마크와는 다른 화파야. 이따 어떻게 꼬시나 내기 해야겠어. 다시 돌아와서, 그래 이거야, 이거란 말이야. 미래의 사람들, 그들을 모셔와서 만족시키는 것! 말로만 <난 달라!>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무엇이 얼마나 왜 다른지 미래의 인류를 아늑한 최면의 꿈에 포끈히 빠트리는 것, 모두 알면서 안 하는 것. 속속들이 확실하게 그 방법과 원리를 알면서 핵심을 꿰뚫고 있는데 왜 안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게 바로 내가 찾던 그 무엇이야. 애타게 찾던 마법의 거울이 여기 있었네. 어 정말 있었어. 어영부영 동네 산책하다가 보물섬 지도를 줍고, 당장 보물을 찾으러 떠나고, 미지의 섬에 도착해서 착한 괴물의 도움을 받아 나쁜 괴물을 물리친 후에 마법사를 만나 판도라의 상자 열쇠를 얻고, 그 열쇠를 들고 집으로 오다가 열쇠를 바다에 빠트려, 그 빠트린 열쇠를 찾으러 바다 속으로 들어가, 그렇게 물속에서 숨을 쉬면서 어떻게 어떻게 찾으러 돌아다니는데 영 속도가 안 나와, 갑자기 나타난 커다란 거북이를 만나고 그 거북이 등에 타서 바다속 용궁에 도착해, 드디어 열쇠가 숨겨져 있는 트로이의 목마를 코앞에서 보는 순간,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고, 강아지가 혀로 핥아서 얼굴에 자기 침을 잔뜩 묻혀 놓고 있을 때─이런 때 어떤 견종이 어울릴까? 결정은 독자의 취향에 맡기는 게 좋겠다─눈부신 햇살에 찡그리면서 겨우 눈을 뜨며 깨닫게 되는 것. Welcome to the Future World가 아니라 Back to the Future 즉 미래인을 영접해서 이 글을 읽어보라고, 재미있냐고, 흥미롭냐고, 감흥으로 도취하냐고, 혹시 지금 술 취한 상태는 아니냐고, 정신이 혼미해서 기절할 것 같으냐고 물어보는 상상을 하면서 그렇게 가정하고 그와 같이 가상의 몽상 속 환각 상태에서 글을 쓸 생각이야. 곰곰히 공상하며 고민하다가 글이 잘 안 써져서 좋은 점에 대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이유 한가지를 억지로 찾긴 찾았는데 거.. 왜... 좀.. 너무 거창하지? 나도 알아. 너무 황당하고 거창해. 그럼.」 한사람의 말이 길어져도 그들은 그것에 익숙하고 습관됐고, 또 원래 남자들은 집중과 한눈팔기에 여자들의 멀티태스킹과는 또 다르게 능하니까, 그들 나름의 온전한 듣기와 관심 기울이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심지어 자기들끼리 애들 놀이와 똑같이 영화 속 탐정처럼 녹음하고, 녹화하고, 실시간으로 웹에 올리고, 그림 그리고, 적고, 전화해서 누군가에게 보고하며 별 머시기를 다 하면서 동시에 카푸치노와 칵테일과 유기농 고급 수제 요구르트도 마시고 있었다. 꼭 벅벅 기다가 겨우 일어서고 가까스로 걷는 아이를 키우며 돌보는 엄마와 같이 그들도 초인인 것이었다. 별거 아닌데 또 적고 보니 그럴싸 해, 진짜 그런 거 같아. 참 이상하단 말이야. 몹시 수상해. 잠시 마크가 대화중에 화장실에 간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 없지만 그가 화장실 문을 열려는 순간 안에서 나오는 사람이 문을 험하지는 않을 정도로 급작스럽게 팍 여는 바람에 마크는 문에 이마를 찧였다. 엉겹결에 문에 박치기를 해버렸다. 그러니 눈물이 찔끔하고 앞이 캄캄하며 머리 위로는 새들이 짹짹거렸지만, 그 문을 열었던 사람이 단정한 차림새의 노신사로 정중히 사과하고 그때 옆을 지나가던 아가씨들의 차림새가 적잖이 어떠해서 아무렇지 않게 해프닝은 마무리되었다. 문을 열었던 사람이 가죽점퍼를 입은 뺀질뺀질한 풋내기 고딩 무소속 기타리스트였다고 해도 그는 표정 관리 잘 하고, 상대방이 좀 터프하게 훅 지나가도 별로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성숙한 애어른 마크니까. 단, 마크의 이마엔 애들이 보는 만화 주인공처럼 혹이 생겼을 뿐이다. 그리고 가까운 테이블의 소녀들과 여인들이 대놓고는 아니지만 엄청나게 즐거워하며 고맙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남에게 기쁨을 주었다는 호혜주의의 동전 뒷면에는 살짝 기분이 나빠질듯 말듯한 뒤통수를 뭔가 어떤 부적의 기운이 잡아끄는 것 같은 쌔한 느낌이 남아있었지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아무렇지도 않은 정도로 망가지고 여러 사람 기분 좋았으니 그걸로 된 거였다. 「아주 좋은 생각과 시도 같은데. 다양한 예술 작품을 즐기고 삶의 영역을 다채롭게 넓히면서도 놓치기 쉬운 방법인데 뭔가 하나 새로운 걸 찾은 것 같다야. 좀전에 굉장히 심도있는 이야기였는데 그걸 말로 할 게 아니라 곧대로 글로 쓰면 어떠니? 방금 썩 멋있는 말인 것 같아서 잠시 뭔가 청랑한 호감을 약간, 사람들을 톰과 제리로 만드는 듯한 강력한 마법의 느낌을 받고, 요술램프를 문지르는 그 오묘한 촉감을 감지했단 말이야. 마침 케빈이 녹음하고 있어서 다행이네. 아까 만든 도메인으로 나가고 있는데.. 어 그러면 알려져 버렸으니까 새로운 건 아니네. 또 다른 거 떠올리면 되지, 뭐 그게 대수겠어. 우리들 모여서 만나고 놀고, 먹고 마시며 돌아다닌 얘기와 나눈 대화만 잘 살려도 한편의 소설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지금까지 그걸 몰랐네. 정말 고맙다야. 아무래도 난 꾸중을 들어야 되나 봐. 그렇다고 영화와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학대받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약간의 그런 그석이 있어. 나만 그런 게 아니야. 슈퍼스타도 모두 그래. 그들이 악역 전문 배우를 만나자나? 그럼 그런다니까. 욕 해주라고! 바로 그들과 우리는 꼭 같은 인간이라는 증명이지. 얘들아, 날 좀 혼내줘. 제발 그래다오. 자학도 이젠 질리고 색다른 뭔가 속을 후련하게 만드는 가슴의 응어리를 훵 날려버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 엉망이든 실패하든 일단 시도는 해봐야지.」 「이 자식이 딱 딱, 딱-딱-딱! 뭔 말인 줄 모르겠어? 아휴 이걸 그냥 콱, 왓 더 헬... 이거 욕인가, 영화에서 많이 봤는데. 하던 거 마져 해야지. 생각을 해보란 말야 생각을, 왜 생각을 안 하니? 대체 뭔 생각하면서 사는 거야? 왜 한 번에 이거 저거 딴거 모두 한꺼번에 못 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가르쳐 줘야만 해? 아름다운 인생의 비법을, 그 절대절명의 신비를 알려주지 못할 바에야 수학 문제를 풀어야지 문학을, 문학이 아닌 놀이를 하고 있어, 너가 시를 알아? 이런 덜떨어진 표정으로 잠꼬대하다가 자는 중에 일어나 벽으로 달려가서 벽에 부딪히는, 그래서 대낮에 주인이 헤드기어를 머리에 씌워주는 강아지 같으니라고. 도대체 뭔 벌을 받고 싶은 거니? 원숭이 벽타기 한 번 해볼까? 말만 해, 어떻게 다뤄줄까? ... ... 어때? 좀 약하지? 난 천상 나쁜 남자는 아닌가봐. 아무래도 이쪽엔 소질이 없는 것 같다야.」 그들이 적당한 분위기에서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마크로 인해 즐거워하던 여인네들은 계속 웃고 있었고, 그러다 갑자기 친구들 표정이 하나둘 조금씩 점점 더 변해가더니 급기야 아주 황당한 반응을 보인다. 왜 그런 변화를 보였냐 하면 카페 안의 창 밖의 풍경이 믿을 수 없는 화면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들이 그 카페에 들어올 때는 분명 그곳은 사막에 인접해 있고 사막이 보이는 장소였다. 그런데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리스 자킨토스의 나바지오 해변의 푸르름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볼터스 해변의 펭귄, 멕시코 어디에 있는 해변 바로 옆에 뽀짝 붙어 있는 마야 유적, 호주 화이트헤븐의 금빛 은빛 모래, 폴 고갱이 2년간 살면서 60점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산호초로 둘러싸인 영감의 발산지, 모네가 화폭에 담았던 노르망디 해변, 또 어디 어디 그런 경치가 유리창 바깥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10시 방향 직사각형 창문, 2시 방향 정사각형 창문, 계단의 막대기형 장식용 창문, 심하게 굽어진 타원형 유리창, 어디를 보더래도 이거 바깥에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그들은 새 노트북이 발표된 소식을 보고 들은 브랜드 애호가의 "으앙 새 맥북이 나왔어! 아...얇아... 가...가벼워. 그.. 그리고... 비싸ㅜㅜ" 같은 열광과 찬사로 으스러지고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눈이나 바다를 못 본 사람, 자국 바깥으로 여행가보지 못한 사람 만큼이나 아니면 더 한 놀라움과 감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마법과도 같은 창문들은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중견의 화가가 그린 그림 같으면서 굉장히 뭔가 어떤 포근한 뭔지 모를 포근한 감정을 먼저 느낀 후, 그 다음으로 풍덩 빠져버린 기이함에 대해 확인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그런 일련의 단계를 거쳐가게 만드는 분위기를 말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창문1은 도로 터널인데 완전 내가 지금 멋진 스포츠카를 운전하고 있고, 앞에 어떤 차가 가고 있고, 터널 내부의 조명이 멋지며, 도로가 비스듬히 약간 굴곡져 있고, 계속 운전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빠진다. 창문2는 정지 화면이 아니라 움직이는 영상이다. 토끼 100마리가 내쪽으로 달려들고 있다. 모두 이런 식이다. 그런데 어떤 정해진 규칙이 약간은 불확정성의 원리로 바뀌면서 때로는 그게 창문이 아닌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그림을 언젠가 미술관에서 본 것도 같고, 안 본 것도 같지만 중학교 미술 시간에 어느 엉뚱한 친구가 그렸던 그림이지 않았나, 그런 골똘한 몽상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남자-라면 한 번쯤 '뭐야 이 사람'하고, 여자-라면 '뭐지 이 인간?'할테고, 교집합은 '음 허풍이 쎄지만 나쁘지 않아, 괜찮아, 멋져, 말발을 좀 배워볼까?', 방대한 작품량이 아니라 단 한 줄의 인물 소개에 대해서라도 의문에 빠지게 만드는 궁금증의 베일에 휩싸인 조르주 심농의 비밀스런 인생과도 같은 믿을 수 없는 창 밖의 화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틀릴 셈 치고,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한 번 들어나 보자, 라는 녹여 주는 한마디 농으로 살짝 표현하자면 이런 말과도 비슷할 것 같았다. 여자들은 말이야, 어디만 가면 돼, 거기 다 있어, 미술관, 극장, 백화점, 서점, 번화가 즉 남자들은 모두 어디가고 여긴 왜 여자들만 북적대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볼만한 장소에만 가면 돼, 꼬시는 방법은 나중에 가르쳐 줄께, 한 번에 다 보여주면 재미 없잖아, 이런 말 말이다.
「이런, 핫도그야 햄버거야? 저거 저번에 케빈 집에서 봤던 그런 눈속임 아니야? 요즘은 퍼포먼스 전성시대야 뭐야?」 「영화 시리즈물 2야?」 「또 속아야 돼?」 언제는 감동했으면서! 「연기 시작할까?」 「아무래도 나가서 직접 확인해보는 게 어때?」 「그래 그러자, 몇걸음이 아니라 몇 날 며칠이라도 가야지. 문만 열면 되자나.」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은 신기해 하지 않는 거지? 이거 뭔가 수상한데?」 「그건 둘중 하나 아니겠어? 첫째, 이미 경험했거나 둘째, 우리를 위해 동원된 인력이다. 저분들이 모두 완전 곰탱이는 아니실 거 아냐.」 「하지만 이게 진짜이면 어떡하지? 공간 이동 뭐 그런 거라면... 누가 커피에 약 탄 건 아닐까? 저거 환상 아니냔 말야?」 「글쎄다. 지금까지 약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알 수가 있어야지. 그렇지만 영화에서 보면 그러자나. 약을 하면 옆에 있는 사람의 머리가 말로 보이고 하반신은 코끼리 그리고 자기는 벽을 뚫고 하늘로 날아 올라서 지구를 세바쿠 반 돌고 오며 사람과 얘기하듯 동물과 대화한다는 얘기. 그거 좀 뻥인 거 같아.」 「옆에 있던 사람 얼굴이 혹시 말상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일어섰으니 나가서 확인해 보자.」 조니, 케빈, 알렉스, 마크, 하워드, 닉, 제임스. 그들이 카페 바깥으로 나갈 때 보니 아까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웃던 그녀들은 아직가지도 웃고 있었다. 어지간히들 하신다. 그들의 심정은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마크, 큰 기쁨을 주어서 너무 감사해요. 사랑해요, 영보이! 오, 심지어 너무 웃어서 살이 조금 빠진 것 같아요. 몸무게 한 번 쟤봐야겠어요. 저 친구가 문에 이마를 박치기하지 않았다면 서운해서 어쩔 뻔 했겠어. 호호호. 아마 이랬을 것이다. 문에 이마 부딪힌 게 뭐 그리 특이하고 기특한 일이라고 비웃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저리도 호들갑이 지속될 수 있단 말인가. 젊음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이 바깥에 나와 보니 그들 뿐이 없었다. 카페 안에 그대로 앉아서 대화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미래에서 온 사람들인가? 그건 그렇고 바깥의 풍광은 진짜였다. 조그만 꼬마였을 때 TV로 보던 사막의 오아시스가 어느새 훌쩍 커버린, 몸의 부피와 뇌의 용적과 저장되고 형성된 외부에 알릴 수 있는 추억만 그러한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어른이 되어서 이젠 이런 곳에 들르는구나, 모두들 이러한 눈빛과 안색 그리고 눈치를 숨기지는 않고 있었다. 정직한 친구들, 어떻게 갑자기 한켠에 오아시스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 모조리 전체가 바껴 버릴 수 있는 거지, 그런 안색을 하고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감탄은 채 1분을 넘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진짜라고 입이 떡 벌어지고 오줌 쌀 뻔 했지만 자세히 보니 그건 그림이었다. (조각, TV, 대형 스크린, 전광판, 조형물, 판토마임, 행위 예술과 그림등 다양하게 겹쳐진 크로스 오버 모형들을 모두 그림으로 통칭한다.) 그 큰 그림으로 카페를 중심으로 반원의 원뿔로 즉 커다랗게 반구 형태로 둘러싸고도 어둡지 않은 건 자연 채광 시스템 덕분이었다. 과학의 힘. 그들의 감동이 채 1분을 넘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타고 내리고 의자에 앉은 30초 동안의 타임머신 시승감, 그것으로 충분했다. 진짜 이웃 은하계에 가지 않아도 초신성으로 놀러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거면 된 거다. 기분전환이면 그뿐, 진짜로 현실에서 지표면 꼬부라지기? 알게 뭐야. 진짜라면 당장이야 좋고 신기하겠지만 집에도 못 가고 고립되고 난리나는 거지. 시간여행이, 우주여행이 가능하다면 30년 전으로 젊어지고 1년 후 이맘때를 미리 체험하고 오고, 안드로메다든 어디든 우주에서 제일 큰 별, 천체 망원경이 없어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행성에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떠나지 않을 사람, 아마 적지 않을 것이다. 왜냐? 지금 현재, 바로 여기가 좋거든. 남들이 겪는 인생, 많은 걸 읽고 보고 먹고 듣고, 예술과 사랑을 알았거든. 그거면 난 괜찮아, 굳이 떠나지는 않을 거야, 라고 반응할 것이라는 예상, 크게 빗나가지 않은 추측일 꺼 같다. 휠체어든 목발이든 몸이 불편한 사람만 봐도 어떤 느낌이 드느냔 말이야. 아 좀 더 현실에 만족하고, 대의롭게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 이전의 느낌, 그 물고기처럼 팔딱거리는 생동하는 느낌, 그것으로 보면 건너편의 불편함이 나 때문은 아니지만 왠지 숙연해진다, 막연하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쉽게 말해 골상학적으로 머리 꼭대기를 위로 끌어올리듯 하면서 턱을 앞으로 쭉 내밀지는 않는다. 누구도 말이다. 골상학적으로? 게다가 몸이 아닌 마음이 불편한 사람도 있다. 그에 비하면 난 아직도 사춘기란 말인가? 병원 응급실이나 시골 시장, 묘지나 공원에만 가보아도 자아는 살짝 쪼그라들거나 아주 잠깐이래도 마음을 새로이 한다. 사람들은 깨끗하고 밝고 즐겁고 친절한 요건이 너무 풍족하니 여러가지로 무뎌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빛이 지구를 1번 도는데 얼마나 걸리지? 그럼 때락 큰 행성까지 가려면 빛보다 얼마나 빨라야 하나, 축지법이나 웜홀 아니면 못가겠네. 바라는 게 많지 않아서 행복한 사람, 삶의 속도가 너그로운 지역, 보통 도시보다 시골이, 발달한 지역보다 자연에 가까운 곳이 더 그런다. 모두 제각각 장단점과 특징이 있다니까. SF나 액션 스릴러가 영화가 아닌 현실이라면 그렇다면, 그런 상상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이 영화 같은 현실 때문에, 드라마틱한 일상의 생활과 사이즈 때문에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여권 자체가 필요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철 지난 추리소설처럼 다 옛날 얘기겠지만 말이다. 아지트에 친구들끼리 모여서 게임하고 칵테일 마시고 놀아. 그러다 친구집에 놀러가. 얘기가 나와. 어, 어디? 갈까? 가자! 대문 열고 10미터 가서 차 타고 출발, 끝. 운전대만 잡고 A에서 B까지 또는 갈아 타든 히치하이킹을 하든 어쩌든 이런 퍼포먼스를 평생 볼 수 있는데, 그럴 만도 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한 지역에 공존하면 기적이자 풍요로움이다. 이 친구들이 보고 있는 그림도 사실 따지고 보면 절대 공상과학영화가 아니다. 문에 이마를 부딧혔던 마크가 간만에 교수님처럼 차근차근 문화재나 예술작품을 안내하듯이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1501년과 1504년 사이에 조각해서 완성한 다비드상만 해도 높이가 5.17미터(17피트)래. 어디산 다비드, 도처에 드문드문 심심치 않게 있잖나, 이 말은 불필요한 얘기지만, 그래도 또 말해도 재밌어. 굳이 세계 몇대 불가사의 그런 거 떠올리지 않아도 충분해. 1937년에 라울 뒤피가 완성한 '전기의 요정'만 봐도 10X60미터야. 그 작품이 소장된 파리 시립 미술관을 벗어나면 어떨까? 지금은 그로부터 100년 가까이 흐르고 있고 화성으로 이사갈 계획도 세운다는데, 중학교 문학 선생님도 요즘엔 교향시와 오페라와 영화를 종합한 판타지를 쓰고,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도 그림을 몇 평방미터로 그린다니까. 따라서 이 일이 결코 황당한 설정이나 어이없는 사건이 아니란 말일세. 한번 생각해 봐. 정리해 보면, 어떤 대작품이 있고, 우리들이 좀전에 앉아 있던 카페가 있어. 그 둘이 만나서 이런 일을 보여줘. 딴 게 아니라 바로 이게 비즈니스 모델이야. 엘리베이터 피치, 인터넷 기업 우량주, 코메디언 넉담, 전설적인 사기꾼의 미스테리... 모두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지. 그럼! 하나의 경이로움은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도시로 또는 그냥 내방에서 데스크탑에 몇 글자 끄적끄적, 그렇게 시작되고 발화되어 퍼져 나가서, 카더라식 입소문이 된 다음에 산불 현장에서 발견된 수중 잠수부가 되나 봐. 그저 어쩌다가, 그저 얼렁뚱땅 말이야.」 「그나저나 꼭 영화 촬영장처럼 볼만한데. 그 뭐랄까, 유명하고 비싼 그림들을 미술관이 아니라 궁전과 대성당의 천장에서 보는 느낌이 들어.」 닉은 이렇게 말했다. 닉이 이렇게 말했다, 라고 씌여진 다음에 바로 대사가 나오면 소설가가 아닌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틈틈히 헷갈려 하신다. 닉이 그 설명문의 앞말을 했다는 거야 아니면 뒷말을 했다는 거야? 하기는 출연진 이름 가지고도 독자는 때때로 어리둥절 한다. 해외소설일 경우 언제는 이름을, 어느 때는 성이 나오는데 간혹 별명도 나온다. 그러면 각각 다른 사람으로 알아 먹기도 한다. 독자들은 대개 천재가 아니다. 앤디 워홀도 아이큐가... 말 나온 김에 밝히자면 그림값과 안 어울리게 90 미만이었다고 한다. 정확한 조사는 안 해봤다. 이런 때에 그다지 많은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대개 사람들 가운데는 두가지 타입이 있는 것 같아. 먼저 어떤 말을 듣거나 사안을 인식할 때 무의식적으로 컴퓨터의 0과 1처럼 참인가 거짓인가를 가장 먼저 판단하는 부류, 다른 하나는 그와는 다르게 무얼 받아들이는 순간 무조건 그 내용이 그 사람에게만 개인적인가 또는 공통적인가를 구분하는 타입, 조금 덧붙이면 사람에 따라 자기는 재미있냐 아니냐를 제일 먼저 본다, 자기는 내 일 즉 나의 직업과 관련성이 있는가 아닌가를, 시간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사람도 있겠지. 지금... 이 설치 예술의 경우는 음, 그 모두를 아우르는 느낌을, 포근히 그리고 다정하게 감싸 안는 안정감을 준다는 게 참 괜찮은 것 같아." 이렇게 제임스는 말했다. '대개' 부터 '같아' 까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보통 소설의 첫 문장을 다시 쓴다. 첫 문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개작도 아니고 미완성인데 뭐 어때 라면서. 「상당히 고급스러운 의견인 것 같은데, 누가 들으면 외웠던 대사를 말하는 줄 알겠다. 꼭 소설인 것처럼 어떻게 유려하고 막힘없이 그 대사가 자연스럽게 정제되어 평소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처럼 말 할 수 있니? 오우, 멋~져!」 알렉스는 이와 같은 말을 소설이 안 써지는 사람은 글을 반드시 구어체로 써볼 것을 권하는 듯한 어조로 얘기했다. 곧이어 알렉스는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면도한지 1일쯤 지난 듯한 턱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다음 말을 이어서 했다. 「모두들 쟁쟁한 주인공감이야. 도저히 한 편의 영화에 모두 같이 캐스팅할 수 없는 정도로 말이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퍼포먼스 또한 그렇고. 오, 아름답다. 난 말이야, <오, 아름다워!> 이 말을 하게 되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아. 그 말을 하면 기분이 끝내 줘. 꼭 말이 먼저고 중간이고 나중인 거와는 상관없이 기분이 배가되는 감이 없잖아 있어. 왜냐하면 첫째, 그런 장면을 살면서 만나기가 거의 힘들어. 둘째, 그렇게나 만나기 힘든데 딱 그 세팅으로 필름이 돌아가, 소설가가 나를 소설 주인공으로 미친듯이 글을 쓰고 있어, 그러면, 그렇다면 <오, 아름다워!> 라는 말을 내 입으로 소리내어 남이 듣게끔, 그림 나오도록 읊는다는 게 사실 쉽지가 않단 말야. 작품을 연기력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점이지. 그래서 실지 현실에서는 평상시에 그 단어보다 뭐랄까, 일부러 더 약한 상황에서도 발성을 하고, 거짓 웃음을 짓고, 그건.. 결코 나쁘지 않으니 따라서 연습이 필요하다고나 할까. 왠지 그런 것 같아. 단지 그렇게 탄성을 내지르는 인상적인 모습을 자주 써먹으면 양치기가 되니까, 정말 긴요한 합치점은 아무래도 우연성에 의지하는 측면이 강하니까 그 균형점을 찾는 건 개인의 몫이겠지. 그 과정 가운데 조용한 옵저버도 토닥거리면서 그들 내면의 소리도 읽고 말야.」 이런! 알렉스가 남몰래 어느 대학에서 철학과 박사 과정을 밝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쉬지 않고, 딱 부러지게 조리에 맞는 완벽한 논리와 새로운 감성을 아주 정확하게 말로 하지 않고, (이게 중요해) 뭔가 멋있는 말을 그런 느낌이 드는 말을, 상대방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치밀한 이미 짜여진 대사가 아니라 약간 부족한 듯하지만 마음에 다가오는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것이지? 아니면 꼭 누군가 알렉스를 조종해서 그가 자기도 모르게 로봇 연기를 하듯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도 초딩처럼 신비주의 컨셉을 항상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광경을 대하게 되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되는 법이다. 다만 그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곧 로보트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면 케빈은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는 로보트 춤을 못추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구경만 하였을까? 아니다. 케빈은 조이스틱을 사용하는 시늉을 하면서 알렉스를 조종하는 연기를 펼쳐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제임스는 그들과 같은, 그들을 닮은 친구들이 나왔던 철 지난 쇼, 그래서 특별하게 아주 드물게만 떠올리고 기억하는 Diggnation의 팬이었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언제나.
from 소설
2015. 2. 24. 17:14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위대하고 훌륭한 역사상의 인물이 있어, 그렇다면 그건 100% 남자다, 왜 그런가, 왜 위대한 여자 예술가는 없는가, 여성의 자의식은 어떠한가, 바로 이 문제에 대해 이번 챕터에서 J는 블로그에 포스트를 쓰듯이 세간의 평가가 조금 상당히 문학과 철학, 인문학에 뒤떨어지는 하나의 수필을 작성한다. 꼭 말은 생전 처음 수필을 쓰는 것인 양 설명했는데 그건 설명이 과장된 것이다. 설명보다는 그가 무엇에 대해 쓰는가, 이 문제에 집중하는 성숙함을 발휘하자. 제목은 무제로 빈칸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빈칸을 마우스로 Drag&Drop 해보았드니 딱 글씨가 드러났다. 뭘 어설프게 숨기고 싶다고 그랬을까. 그 문장은 이렇다. <왜 위대한 예술가들은 모두 남자인가?> 뭔가 궁금증을 유발하는 또 막상 읽어보면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을 듯한 제목으로 아무래도 그 글은 1인칭 객관적 시점으로 쓰였으니까 글을 조금 읽다보면 약간 뭐랄까 장터에서 구경꾼을 모아 놓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웅변가나 거리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바람을 잡는 사기꾼이나 약장수를 대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일부러 그런 효과를 노린 것이니까 딱히 중간에 불합리한 정중함으로 시작해서 기분이 고조되어 뭐야 이거 라고 흥분하시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미리 사전에 그 약효를 밝혀두는 바이다. 자, 그럼 시작한다.
순수 미술계에서 작품량 어쩌면 1위, 작품 금액의 총합 아마도 1위 파블로 피카소. 자상하고 인기있는 남자라면 그에 대한 많은 얘기는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전에 그의 주변에는 항상 무엇보다 죽음이, 다른 사람들의 죽음과 파란이 끊이지 않고 일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 대화의 소재로 쓰이게 되면 그냥 파란 줄무늬 티셔츠 정도만 떠올리고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람이 뭔가를 더 듣고 싶어 한다, 그랬을 때 드라마적으로 말한다 하면 이 정도가 괜찮다. "잭슨 폴락이 이렇게 말했지. 나쁜 놈, 단 한 가지도 건드리지 않은 게 없어." 그렇지 않는 사람이라면 브랜드 로고와 마크, 가격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날 좀 알아주라고 보채는 상남자가 된다. 격식을 갖추어 말해도 다 티가 난다. 그래서 결혼 전후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것이다. 드라마가 아니라면 통찰이 아니라 지식과 사실만, 오직 지식과 사실만 따따부따 쫑알쫑알 듣게 되는 경우가 현실에서는 많다. 도표, 그래프, 현존 작가 최고가, 기록, 1등, 뉴스, 최고, 최선, 최대... 그러면 그렇다면 많은 것을 말하고 싶고 알아야 할 미술계 이야기가 많을 테지만 아마 가만히 듣고 있는 고상한 그대와 안 맞을 꺼야. 수퍼스타 쿼터백이 아닌 먼데이 쿼터백, 운동화..는 스티브 잡스, 기쁜 일이 아니다. 뭔가 발언을 유발하면 정확하게 나도 어디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하는 듯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 그대는 모르지 않을 거야. 그리고 어떤 의중을 완벽히 감추지 못하고 낯빛의 변화를 드러내는 실수, 그것에 대한 무시 다음에 건너편에서 이어지는 조용히 흔적이 묘연해지는 이런 모모스의 속삭임을. 그거 아세요? 피카소라는 대명사를 남발하는 사람 가운데 90퍼센트는 ...라는 거! 그러면 아인슈타인이 태어나던 해에 누가 고인이 되었는지는 아세요? 피카소가 세상을 떠났을 때 누가 태어난 줄은 아시냐구요? 난 몰라요! 끝까지 비밀로 할래요. 우리 귀여운 달마시안에게는 말해주었지만. 품위라는 단어에 빈정상하신 기억이 있으실까. 그러지 마시고 자주 가시는 카페 피카소에(카페 이름이 '카페 피카소') 밀린 외상값이나 값으시죠, 좋은 말 할 때!
(누구는 그랬다, 어느 책에서 누가 어떤 말을 했드라, 왜 그랬을까, 왜 갑자기 그의 말이 생각났을까, 라고 자연스럽게 품위를 갖추어 인용문을 쓰면 뭔가 있어 보이는데─도대체 뭐가 있어 보인다고 맨날 그 타령이야─따옴표로 정확한 인용문을 제시하는 건 인문-교양서 때문인지 사람들이 요약문과 헤드라인, 결론, 본론, 용건, 목적, 성과, 성적, 요점, 목적, 방법, 효과, 효율등을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걸 보아왔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버릇을 예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이 자라서 위인이 되면 괜찮아. 항상 화법이 거들먹거려도 그래도 평판이 괜찮고 먹고 살만하면 또한 괜찮아. 그분들이 고약한 성미의 늙은이로 나이 들어도 상관없어. 개개인의 인생이니까. 다만 극중에서 보는 게 낫지 그분들이 직장 옆자리 동료라거나 처제의 남편이야, 어떻게든 얼굴을 보는 관계라면... 오오 이런. 만약 평생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같이 산다면 어떨까? 같이 사는 사람은 말발이 절대 늘지 않을 것이다. 절대. 이론은 빠삭한데 아는 것도 너무 많아, 그래서 그걸 반드시 말로 해야 해. 걷으로 꼭 표출해야만 해.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계속 들으면 피곤해. 얼굴이 잘 생기면 배우라도 하고, 운동신경이 뛰어나면 그 길로 나가고,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처럼 동성애 감성과 능력을 지녔다면 예술가가 되고, 노래를 잘 부르면 가수라도 꿈꿔 볼 텐데 단지 말발에만 발군의 재주를 보인다면 거 참 애매한 일이다. 폴 그레이엄의 비즈니스 강의 동영상을 보니 Microsoft도 Facebook도 모두 작게 시작했다고 하는데 항상 공룡이라도 때려 잡을 듯, 은하계를 저글링, 말로는 쥬라기 공원 이미 접수. 앞모습 정중앙 가운데 부분이 뽈록. 그렇지만, 하지만 주로 위대한 예술가라면 100% 남자다. 물이 끓는 정확한 온도처럼 99.몇 퍼센트도 아니다. 딱 떨어지게 100%. 위대한 예술가 사전 같은 책을 보면 더러 여성도 등장하지만 그건 그곳 기준이고 여기서는 깔끔하게 100, 완벽하게 100, 더도 덜도 없이 100이다. 정말 왜 그런 것인지 그리고 아니라면 말들이 있겠지만 그런 얘기를 왜 쉬쉬하는지 또는 어쩌다 지금 이 마당에 불문율이 되었는지 조금은 의문이다. 그러나 그건 명확한 답을 필요로 하는 궁금증은 아니다. 약간 이상하게 만인의 공감과 태도와 생활 방식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여지를 남겨주는 일종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DJ 멘트와 흡사한 짧은 생각이다. 왜 레이디 레이디 하는지, 따라서 100%에 직접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포함되는 남자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 물음을 굳이 해소하고 싶지는 않고 아는 듯 모르는 듯 아는 체 하기 싫어하는 것이 뭔가 원만할 것 같다. 새가슴 맞네, 혹시 이게 블로그 포스트 제목의 답일까? 아닌 것 같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나 어느 기인이나 유명인의 집과 동네를 구경한다면 쟁쟁한 배경과 호화 생활이 지겨워서 어딘가를 떠도는 상류층 뿐만 아니라 삶에 허덕이는 보통 사람도 대개는 걷으로 드러내지 않는 속마음은 그렇게 썩 볼거리는 없다고 느낄 것이다. 실제 그런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중 크게 될 또는 딱히 별 꿈이 없는 친구라면 달리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말야. 이 사람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이곳도 다른 곳과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구나, 이런 생활 반경에서 성장했다고, 이 환경에서 이런 인생을 살았다고. 관점의 차이, 그래 이거다! 이런 설명이 <주로 위대한 예술가라면 왜 100% 남자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는 당연히 없다. 남자 누드 모델이 어려운 포즈를 취하고, 위대한 여자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 어딘가 불안정한 구도 같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은 조금 심심하고 다소 지루하며 얼마간 어렵고, 너무 진중하고 재미없다. 그래서 잠이 오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은 딴생각이 난다. 그 이유 때문에 일부러 여자들은 대중 작품에 더 치중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만 짧게 생각해 보고 더 들어가는 피곤한 일은 벌이지 않는 게 편하다. 남들처럼 TV보고, 운전하고, 여행가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운동하면서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삶, 그걸로 그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심각한 어른, 인기는 보장되지 않는다. 비즈니스 세계에도 철칙이 있다. 주로 수컷들이 모여 야생의 형태에서 학문과 상업을 모두 종합해서 담판이 나는 정확한 공식이 통용되는 비즈니스 세계. 무언가를 잘 보여야 하는 자리에서라면 자기의 취향을 알릴 수 있는 미술이나 문학가와 사상가 이름이나 제품 브랜드를 거론할 때는, 격식있는 모임에서 접대 목적으로 노래를 부를 때는, 우량주식을 사야 한다면, (때때로 희소성이 필요하거나 사전 정보가 있다는 예외도 있지만) 누구나 다 아는 종목을 사고, 누구나 다 아는 노래를 부르고, 모두가 다 아는 이름을 먼저 거론하라는 것이다. 남자들 세계에서 또는 어른들 세상에서 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실이다. <여자가~, 여자가 말이야, 어디 여자가, 여자 아니랄까 봐>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비즈니스맨도 철저히 신봉하는 상식이다. 존 커린, 매우 값비싼 제품을 파는 곳에서 단 몇마디 대화로 어울리는 브랜드다. 죄르지 리게티, 고급스러운 사교 모임에서 짧게 언급할 때 적절히 유용하다. 헬무트 뉴튼, 20세기 3대 패션 사진작가로 손꼽히는데 그 이름을 듣게 되면 반기면서 되묻는 사람은 실상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외 작가 누구, 행위예술가 누구, 감독이나 배우 누구를 말하면 단 몇 단어만으로 내가 특별해 보이고 남과 나의 차이점을 극명히 알릴 수 있지만 그건 친구나 연인에게 그리고 블로그나 집에서 그리고 혼자 예술할 때나 적합한 것이다. 그렇게 말했다가는 비즈니스 말아먹겠다는 베짱인 것이다. 친구에게 말했는데 아무도 모르는 주식 종목, 말하기 곤란하다. 물론 반대의 상황이나 사석에서라면 최고-최대-최선-최상-최단이나 TOP 10만을 말한다면 그 친구가 최고이며 특별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난 촌스러운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것과 아주 동떨어진 얘기는 아니다. 하기는 레스토랑에서 그놈의 은은한 고개 각도와 아이 컨택으로 항상 점원을 부르고 싶어하지만 그 어느 개패를 가든지 이상하게 점원들이 자신과는 눈빛을 마주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렁차게 목소리를 높여야만 하는 그다지 운이 잘 따르지 않는 사람도 있긴 있다. 그런데 정말 눈에 잘 띄는 그 분의 눈빛은 도대체 왜 웨이터와 웨이트레스의 시선과 만나지 않는 것일까? 왜 굳이 두성과 청각을 원시적으로 사용하게 만드느냔 말이다. 정말.. 그 정도란 말인가? 웃자고 한 얘기다. 안 좋게만 볼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럼 여성이 강한 분야는 뭘까? 뭔가 있겠지. 이런 글을 읽고 흥분하지 않는 여자들이, 그들의 횡성수설을 잘 제어하고 조정하고 뭔가로 승화시킬 줄 아시는 여자들이 잘 하는 어떤 분야. 그 종목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알면서 모른 척 하는 게 아니라 진짜 퍼뜩 떠오르지 않지만 잘 생각해보면 있겠지만 아마도 골프는 아닐 것이다. 골프는 기본적으로 거리와의 싸움이고 무엇보다 자신과의 승부인 멘탈 스포츠이면서 경쟁하지 않는 친교의 행위 즉 신사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나 봐봐. 골프장 필드를 단 1번도 안 밟아 봤는데 골프에 대해서 이렇게 아는 체 하잖아. 실내 골프장에서만 골프채를 부러트리기나 하고 말이야. 그것도 백스윙으로. 다른 구기 종목도 뭔가 말썽이 발생할 소지가 많다. 인생에서 잠이 중요하듯 백스윙도 중요하다. 그러면서 골프는 뭐다, 장비발이 어떻다... 이렇게 아는 척! 아는 체 하는 모습이 가장 뭐해 보일 때가 언제일까? 그건 바로 어렸을 때다. 원래 지식과 사실을 주로 말하는 타입이 아니었던 사람이 뭔가 모르게, 왠지 이상하게, 어딘가 궁금하게 자신도 아는 체를 하고 싶어지기 시작한다면 그건 이런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첫째, 생각이 어려진 거다. 둘째, 그러고 싶은 거다. 셋째, 그냥 대화를 바라거나 멍멍 하면서 짓고 싶은 것이다. 또는 둘이나 셋 다 일 수도 있다. 여자들은 이런 말을 매우 드물게 한다. 똑같이 글로도 어떻게 잘 표현하기도 한다. "남편은 지금가지 내가 쓴 책(들)을 단 한 번도 읽지 않았다." 하나 더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꿈을 많이 꾼다. 잠잘 때 꾸는 꿈 말이다. 그리고 꿈꾸는 것을 좋아한다. 꿈꾸면 행복하다. 안 그런가?" 그리고 그런 글을 말로 똑같이 자주 계속 되풀이 한다. 꼭 멋진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어떤이처럼. 출처는 밝힐 수 없다.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 그래야지만 특별하고 고고한 그러나 희귀한 무엇, 알 수 없는 신비로움 그것에 가까와지니까. 이와 같은 성격으로 <나는>으로 시작하는 짧은 소설 도입부를 예시로 잠깐 써보겠다. 포스트의 주제에 대해 상당히 어색한 방법으로 그 답을 짐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글이다.
나는 잠깐 할 얘기가 있다. 지금껏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왠지 모르게 그럴 기회가 없었고,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른 것 같다. 즉 찻집의 수다가 (찻집) 창 밖의 여자의 글이 되 버린 것이다. 내가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보지 않아서 지금 내가 할려는 얘기가 나만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남들도 모두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내 분야가 아니다. 하지만 일단은 나만 그렇다고 가정하고 시작한다. 그래야 구술이 가능하다. 이게 내 전공이다. 막 던지는 거. 어느 인문-교양서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연애는 두번째가 오히려 멋질지도 모르지만 어느 누구도 북대서양을 두번째로 단독 비행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어쩌면 두번째 사람이 더 뛰어난 비행사였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내게는 두번째도 의미가 있었다. 게다가 나는 에베레스트급 심해를 첫번째로 잠수한 사람을 이 나이 먹도록 그가 누군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두번째로 그 깊은 바다에 들어간 사람은 누군인지 얼굴은 거리에서 만나면 몰라 볼 수 있지만(잡지나 TV, Internet으로 잘 안봤으니 기억에 안 남는다. 다만 이름은 각인됐다) 이름은 제대로 알고 있다. 정확한 기록은 모르지만 최저 깊이라면 첫번째일 수도 있지만 달에서 직립 보행을 해본 사람처럼 에베레스트급 심해에 갔다온 기록으로는 두번째, 사람으로는 세번째다. 마초라면 이런다. "11,000미터? 그거.. 단위를 바꾸면 11km잖아, 에이 이런 뭐야 그게." 11km가 지구에서 가장 깊은 수중 바닥인데 무슨 물밑으로 땅 뚫고 마그마까지 들어갈 기세다. 지구가 얼마나 큰 줄 아시나 보다. 그건 그렇고 첫인상을 만들 기회는 한 번 뿐이라지만 이 세상은 살아보니까 처음이 다가 아니다! 뻔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얘기지만 정말 그런 것 같다. 아 두번째를 얘기하고 있었다. 두번째도 의미가 있다고. 내가 십대에 처음으로 산 콤팩트 디스크는 TESLA였다. 생애 처음으로 산 CD가 두번째의 대명사 TESLA였다. 알고 보면 뛰어난 과학자이자 록그룹 그리고 전기 자동차 회사 이름인 TESLA. 어떻게 전기 하면 에디슨이고 TESLA는 덜 알려졌는지 영화나 소설이나 항간의 이야기로 더 이름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옛날 이야기나 소문은 그렇다. 그렇게 CD 수집과 음악듣기라는 맹목적이며 개인적인 동시에 그 나이라면 누구나 거쳐가는 중독에 빠져들었다. 지금은 CD구입이나 콘서트에 잘 안 가지만 옛날에 CD와 TAPE, RECORD를 구입하느라 부은 돈 엄청 많았다. 옛날에는 닥치는 대로 샀으니 음악 산업에 (그때는) 일조한 거다. 그리고 몇~년 후 처음으로 구입한 소형 CD 플레이어는 P로 시작하는 브랜드의 제품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10몇년 지나서 더 나이가 든 어른이 되어, 어른의 기준이 모호하지만, 구입한 첫번째 디지털 카메라의 브랜드도 고민하다가 어쩌다 사고 보니 똑같은 브랜드였다. 곧 그것이 두번째 대문자 P다. 물론 나중 P로 시작하는 차도 타고 싶은 것은 우연의 일치다. 사람들은 모두 기억한다. 언제 처음 P를 보았는지도. 막 갖다 붙여서 우연, 한 번 더 우연, 계속 우연. 그렇게 이어진 우연 때문인지 그 시절 음원의 환상 때문인지 그래서 나는 최근 크리스찬 디올 광고에, 이니셜 또한 CD라서 그것에 감명 받고 초단편 소설을 썼다. 알아주는 사람은 없지만 명백한 하나의 독립 또는 작은 하나의 작품이다.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 나 혼자 인정하니까. 솔직히 옛날에는 몰랐다. 프라이드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최소한의 자뻑? 바꿔 말하면 자존감이 최소한으로 있긴 있어야 뭔가 유지하고 이어서 나아가는, 지금 잘 생각나지 않는 단어, 그런 단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듣긴 들었겠지만 영화 대사처럼 멋지지 않았거나 책에서도 읽었겠지만 딱히 와 닿지는 않았나 보다. 그땐 몰랐겠지. 바로크 메탈의 거봉,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거성 잉위 맘스틴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날 아끼는데 어떻게 남을 존중하지 않으리, 그 말이 그 말이라는 걸. 또한 크리스찬 디올 남성복을 입고 싶은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연의 서사를 거슬러 오르면 한도 끝도 없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약어와 알파벳, 철자, 숫자에 관한 기억은 당연히 사랑과도 연관된다. 아니라면 서운하겠지. 내 첫사랑의 이름은 한 문자로 알파벳 J다. 그리고 첫 경험에 대해서는 언제던가 수줍게 의학적으로 밝혔다. 첫 뭐? 언제가 처음이냐고? 이런 젠장~ 삐─삐─ 미치고 까무러치겠네. 허나 이런 얘기 못 할 이유도 없지. 흔히 말하는 블로그 수준이니까. 운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이름의 이니셜도 J로 시작한다. 그 뒤로 만나는 이성의 이름에 무의식적으로 연연했었던 듯 하다. 마치 거짓말처럼 나중 보니까 그 알파벳 J가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사례들이 매우 많았다. 꼭 당시에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나중 생각해보니 말이 되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제일 나중에 종착되는 J가 있었다. 그 제일 나중의 J는 미들 네임 또한 S로 시작했다. 19세기 소설 주인공들처럼 편지를 오래도록 낭만적으로 주고 받았던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어느 동화 속 섬나라에 살았던 연담의 귀인 이름의 이니셜 첫문자인 S. 그렇게 JS, 약자로 진상? 그건 아니고. 불러보고 싶은 이름, 보고파지는 얼굴 J. 마지막이라고 후세엔 재수없게 기억될 수도 있지만 충분히 유난떨면서 유일하고, 영원한, 하나의 그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는 어려서는 J라는 사랑 노래를 들으면서 성장했다면 J라는 소설을 읽고 나도 그처럼 멋진 소설을 쓰고 싶어, 그와 같은 삶을 인생을 살고 싶어 라고 느낀다. 나만 그렇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직 번역이 안되서 그 책은 안 읽어봤다. 특수부대에서 누나에게 소포로 받아 그곳에서 한 번도 듣지 못하고 구경만 했던 CD 두개 가운데 하나도 가수 이름이 J였다. 비밀번호도 여러개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가장 많이 쓰고 있는 유서 깊은 비밀번호도 J로 시작한다. 사람들과 말을 하거나 어떤 글을 읽을 때 <나는> 으로 시작해서 <나는> 으로 끝마치게 되는 상황에 맞닥드리면 나는 아주 잠시 숨이 턱 막힌다. 그게 우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떡하다 우연처럼 나만 그런 경우가 살면서 좀 많았던 듯 하다. 마치 사람들이 자기 의지에 반해서 일상적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아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지?>, 의무적으로 어딘가에 가서 어느 식에 참석하는 가운데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음 물론 알지만 모르고 싶네.> 라고 불현듯 의식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감정을 나는 자주 느낀다. 모든 사람들이 숱하게 그런 경우를 겪고 뭔가 세상에 많이 닳아진다면 또 그럭저럭 세상은 원래 그렇구나 라면서 잘 살아가게 된다. 그런 사람을 인간계에서는 어른이라고 부른다. 어른. 그리고 나는 운동화에 구멍이 나면 자꾸 왼편 운동화의 왼쪽 앞부분에 구멍이 나고, 교통사고가 날 때도 이상하게 그냥 우연일 뿐이겠지만 자동차의 왼쪽 뒷부분이 들이받혔던 것은 오직 나만 간직하는 징크스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내 이야기니까 내 얘기를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보통 <나는 뭐뭐 했다>를 틈틈히 나레이션으로 깔아주는 제작 기법의 영화를 보면 괜찮은데 그 정도를 넘어서는 글을 읽거나 말을 듣는 데 힘이 들지 않는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다만 그것을 종이 한 장 차이로 교묘히 푸는 것은 말발이다. 처음의 기억은 강렬하다. 짜릿한 법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많은 처음을 다 기억한다. 또한 처음이 나중보다 더 강렬하기도 하다. 독자여 그대의 기억을 떠올려보시라. 처음 술에 취해서 천장이 그리고 하늘이 빙빙 돌던 때를. 그 뒤로 술을 마실 때도 그렇게 천장이 하늘이 똑같이 빙빙 돌던 때가 몇 번이나 있었는지를, 솔직히, 정말 그만큼 환상적으로 빙빙 돌 때가 있었는가? 어딘가에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평생 동안, 지금껏 살면서, 그렇게나 뇌리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읽었던, 봤던> 그 단어를 만나서 그 실체와 함께 살지라도, 그 단어가 희망인가? 만족인가? 아니면 몰입인가? 발언은 그에 비해 많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앞서 더 솔직해야 할 단 한 사람, 바로 스스로에게만 조용히 말해보자. 처음과 나중이 어떻게 다른지를. 처음 담배를 피우던 때를, 약을(감기약을) 섭취했던 순간을 그리고 또 다른 처음들을. 나중이 처음보다 나은 과목도 있는데 또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물론 뭐가 더 낫고 덜 낫고, 나으면 뭐해 라고 따지지 않는 게 알맞거나 더 좋은 수도 있다. 생각해 보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친구와─어디 친구 뿐이겠나─그 단어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고 듣고 얘기한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다. 단 한 번도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냐마는 그게 사실인 걸! 이게 말이야 고백이야 글이야? 다 아니고 정확한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진짜 그렇다. 그럼 난 아마도 평균이니까, 물론 평균이라는 허들을 뛰어넘는 게 훨씬 고귀하겠지만, 여자의 평균은 다르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는 말 아닌가? 그게 정상이다. 순수든 대중이든 예술이 아닌 현실에서는 그렇게 낯부끄러운 일이다. 예술 작품과 상업 상품들은 현실과의 괴리가 어쩌다 그렇게 창대해졌는지 원래 그랬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모두 과장된 것이다. 물론 한편으로만. 나는 그것에 대해 대화해 본 적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없는데, 그것에 대한 얘기는 정말 물과 진짜 공기와 딱 의식주 같은 존재였어, 그렇다면 그 만큼 핵심적으로 삶에 중요한 요소였다는 얘기인데, 어쩜 그럴 수 있지? 난 그 동안 헛살았단 말인가? 그걸 어떻게 이제야 깨달았지? 생각해 보니 이것도 신기한 일이다. 반올림 40년을 산 사람의 평균이 이 모양이니 뭔가 억울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남에게 알리지 않고 소문내지 않고 조용히 정말 조용히 오랫동안 단 하나만 오직 하나만 끈질기게 태양처럼 바라보며 나아가는 그 뭔가, 그 뭔가와 소설 10권 분량의 연애사를 장황하게 소문낼 것인가, 둘 중에서 고르라면 지금도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전자를 고르겠다. 못 다한 말이 뭐 그리 많다고, 이걸 꼭 알려야겠다 라는 사명감이 뭔지도 모르고, 사람들의 삶에 무슨 큰 영향을 미치겠다고, 뭔 제품 가격과 브랜드가 그렇게나 중요하다고, 난 10억명 가운데 1명이라고 노래를 부를 것까지야 있겠냐마는 그냥 예전부터 이것을 세상에서는 천성이나 성정 또는 개인차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그걸 권하는 바는 아니다. 자, 이제부터 다른 사람들의 습관과 우연과 운명 그리고 징크스에 대한 소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준비되셨나? 지금부터 나는 남을 위해 설을 풀어놓겠다.
글을 이런 식으로 쓰면 한마디로 B급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을 많이 쓰니까 불편하고 습관될까 봐 무섭다. 이 세상에 글이 A와 B 단 두가지만 있다고 했을 때, 대개 상은 그랑프리는 A에게 주어지지만 인기는 B가 나을 수도 있다. 간혹 A가 그 둘을 독식한다면 상 받는 배우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A는 B에게 그 무엇과 은공을 돌려야 하리라. 물론 서로 뒤바뀔 수도 있다. 별 의미 있는 얘기는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동전의 양면처럼 상반되는 두가지 생각을 하며 산다.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서 <왜 사람들은 이와 같은......>라는 생각의 사각지대에는 짐짓 (득의양양하게) 뭔가 안심하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 완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마치 유명인이 자신의 시시콜콜한 일상이 어떻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기사 1위에 오를 수 있나, 그게 뭐 중요한 일이라고 하면서도 그냥 무덤덤해지거나 유머로 돌리거나 하는 일과도 약간은 비슷하다. 시간만 나면 뉴스를 읽고 보거나 어느 책을 읽고 고르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유명한 조각상과 '그런 책 좋아하시는구나' 라고 짐작하는 모습, 똑같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는 뉴스 기사,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 그리고 희소성을 좋아하고 독점에 대한 욕구, 어느 날 거리에 나갔는데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타고 싶어하는 차만 모두 다 타고 다니며,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다 연예인에 유명인이고 세상이 단지 말이 아니라 진짜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 또한 달의 앞면과 뒷면이 있는 것이다. 그와 가장 흡사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세상에서는 슈퍼스타라고 부른다. 지나가는 아가씨도 그러신다. I don't actually like superstar. 누구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인간의 본성일 뿐이다. 같은 이유로 고품격 소설 전성시대가 온다면 완전 피곤해질 것 또한 뻔하다. 오면 안 된다. 꼭 안될 것 까지야 없지만. 글을 이런 식으로 쓰면 어쩌다 베스트셀러에 등장할 수도 있지만─위도와 경도에 따라서는 완전 안 먹히거나, 정확하게 사장되기 딱 좋을 수도 있지만─그런 글을 쓴 지은이가 여자라면 또 결혼했다면 남편은 그녀의 글을 읽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읽겠나! 어른들은 독사과를 먹고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도, 입맞춤으로 변신 마법을 풀어주길 바라며 공주를 기다리는 개구리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 큰 어른이 되었는데 어린이처럼 그림을 그리고, 동요를 부르고, 동화를 읽고 살 수는 없다. 그러면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다. 다만 아이에게 알려주고 대화하며 가르칠 뿐이다. 직장에 출근하고, 공중도덕을 지키며, 어른의 삶을 살면서 유치원 학예회에 어린이 연극을 관람하러 가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위에 씌여진 잘못된 운명과도 같은 놀라운 우연의 예는 그 글을 쓴 사람 뿐만 아니라 만인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전혀 신기하지 않는 과학이기 때문이다. 과학, 과학, 과학이라고! 그것은 딱 떨어지는 통계니까, 알고 나면 알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뭔가 슬픈 것 같은 데이터 기법인 까닭이다. 언제인가는 알게 될 테니 살면서 한동안 모르는 게 더 속편하거나 혼자 두근거려서 좋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 연구 결과는 책으로 논문으로 쇼와 예술로 이미 까마득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P가 어떻고 J를 뭐한다고? 어른들 나가떨어질 일이다. 남편 환장할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룡처럼 멸망하지 않고 의연하게 종족번식이 잘 되어 지금의 지구 문명에 이르러서 안심이라고 생각하지만 젊은이들이 결혼을 꺼려한다는 뉴스를 보면 또 꼭 뭐가 원인이네 남자 어쩌고 여자 어쩌네, 다 부질없는 얘기 같다. 방대하게 쌓인 기존 연구에 더해 일평생 이것만 연구하고 몰두하며 사는 학자도 있고, 지금도 TV 채널을 돌리면 고대 방식으로 살고 있는 부족이 나오니 말이다. 어느 나이가 되면 옷차림이나 주변을 꾸미는 것이 취향 기준에서 돈이나 여건 위주로 바뀌는 것처럼 인류의 확실한 미스테리, 남과 여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게 된다. 젊은이의 마음처럼 왔다 갔다 한다. 그러나 그건 한편이고 본편은 작가인 부인의 글을 읽지 않은 남편이 실제로 있을 것이다. 당사자가 알면 기분 별로겠지만, 그래서 비밀은 지켜야겠지만 그리고 난 결혼을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기혼자라면 아마 누구나 뭔 말인지 즉시 알아먹고 씩 웃을 만한 일이다. 어딘가에는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허나 어딘가에는 몇 명 웃게 만들었다, 패스는 성공한 거다, 손쉬운 기습 키스 같은 숏 패스. 뭐 땅 짚고 헤엄치기 라고? 퍽! 추측컨데 그건 셋 중 하나가 아닐런지 조심스럽게 내다본다. 1.부부싸움을 흉내내는 앵무새(앵무새는 그야말로 기가 막힌 재주를 지녔다) 2.쉽게 말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부부 3.그 중간. 대부분은 3번인데 간혹 1번의 불순물(?)이 섞이는 것일까? 결혼을 안 해 봐서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럼 대여섯번 하신 분들은 1번을 무척 꺼려해서 사전에 미리 차단한 케이스인가. 정답은 없다. 결혼생활은 무한한 세상일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라는 건 분명한데, 그런데 할아버지-할머니 싸우시는 거 오오 앵무새라도 어디서 데려오고 싶다. 그렇지만 하던 얘기를 계속 하자면 도형과 그래프와 리포트로 얼마의 기간 동안 몇 명을 조사해 보니 어떻드라, 데이터가 말을 해주는데 어떻게 신사답고 마냥 호의로운 남편이 부인의 책을 신경 빡 세운 체 고도로 집중하면서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겠는가? 다정한 남편으로써 부인의 작품을 안 읽거나 또는 부인의 책을 읽고 근엄하고 무뚝뚝하다거나, 아니면 둘 다? 맙소사 어렵다. 하지만 초조하게 기다리며 읽고 싶어하는, 애틋함을 아는 남편도 드물게 있다. 그 남편 같은 작자라면 다른 여자의 글은 앞으로 아예 읽지 않더래도 부인의 글은 반드시 읽고 싶어할 것이다. 아니면 부인이 글을 많이 쓰지 않기를 바라거나? 자기는 앞으로 이 세상에서 여자의 글이라면 단 한 명의 여자 글만 읽겠다, 바로 그런 다짐이나 몽상을 하는 듯 어벙하게 입술을 앙-벌리고, 그렇다면 100에서 99.9무한대로 낮춰졌으니 그거면 된거라고, 뭘 더 바라겠어~, 나도 내 마음대로 할 꺼야! 언제까지 남 눈치만 보고 살란 말이야! 누군 뭐 남의 말만 듣고 살란 법 있어? 라면서 어딘가를 쳐다보며 표정짓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또 모른다. 나중 살아보니 어떻드라, 생각처럼 그게 잘 안되드라, 그럴지도, 하지만 현재가 중요하다. <왜 여자는 과학을 숙명과 우연으로 보는 것일까?> 알면서 모르는 체 애써 그러고 싶어하는 것일까? 왜 그저 그런 인간사를 로맨틱 코메디로 보고 싶어 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그냥 여자이니까! 오오 여자여. 의학이 지금처럼 발달했기에 <때로는 당신 생각에 잠 못 이룬 적도 있었죠,,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향기로운 꽃보다 진하다고.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바보들의 이야기라고~> 그러지 옛날에는 다 목숨 걸고 애를 낳았을 것 아닌가. 동굴이나 움막이나 그런,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그런데서. 간혹 자기는 알에서 태어났다, 자기는 외계에서 왔다 그런 돌아이도 있지만, 사람이 오리나 돌고래, 캥거루도 아니고 어디 사람이 사람을 낳는다는 게 보통 일이겠나. 아무튼 남편은 슈퍼맨이 아니다. 아내는 남편이 슈퍼맨이 아닌 것과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하나도 모르는 아내도 있다. 나는 그와 같은 글을 쓸 수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난 남자이니까! 더 나아가 과학이라는 학문이 우연성을 만나고, <나는, 나는, 나는>에 신경쓰면 다룰 수 있는 분야가 제한되고 화폭이 작아지니까, 수필보다는 인문-교양서와 소설의 사이에 세워진 담벼락 위에서 외줄타기 서커스를 선보이는 게 어쩌면 하나의 새로움일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가 생각의 생각에, 느낌의 느낌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가만 보니까 남자만 난 게르니카야, 뭐가 1등이야, 나는 켄타우루스야, 난 유니콘이야(알고 보면 이 글처럼 팝콘이지만) 이러는 줄 알았는데 여자들도 방정식이 달라서 그렇지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업적과 삶이야 그렇다 쳐도 취향이나 기호는 2명중 1명의 일반인들과 별로 맞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이 발명한 새로운 방정식은 많아야 백 년에 한 번인지도 모른다. 날마다 상대성 이론이 쏟아진다, 그러면 혁신의 가치도 떨어지고 뭔가가 탈 나게 되며 그럴 수도 없다. 행복이 뭐 별건가, 인생 별거 있나,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의 우유만 마셔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럼 자랑을 친구에게 하지 대체 누구에게 하겠냐마는 성격에 따라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내 속마음을 사람에게 하거나 동물에게 애정을 쏟거나 글로 쓰거나 음악으로 만들고 상업용 제품에 열의를 바치는 차이인 것 같다. 즉 난 나야, 그대는 그대고, 우리는 우리야 라는 의식에 있어서는, 사실 <우리>라는 말을 잘 사용하는 일은 딱히 드물다거나 일부러 언급을 피하는 어린이거나 변신 같은 카프카적 작품을 쓰는 모두들 드디어 한 어른일 뿐인 것이다. 그 말은 나는 몸도 마음도 어른이지만 결국 난 아이처럼 살고 싶다, 난 늙지 않았어, 몸은 지치고 병들고 쇠약해질지라도 마음은 그러기 싫다, 그런 구석과도 조금 비슷하다. 많이도 안 바란다. 사는 동안, 바흐와 헨델과 하이든이 좋은 건 죄다 해먹어 버렸잖아! 라고 투덜대지 않았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처럼 간결함만으로 완벽했던 K.545같은 쉬운 C-메이저 소설을 쓰고 싶다. 많이도 안 바란다?
별 볼 일 없는 남자, 여자가 아닌, 그저 블로그 쓰는 남자 J의 블로그 포스트는 이랬다. 뭔 탐정소설에 나오는 편지도 뭣도 아니고 정~말 허무하게 마무리된다. 자신은 베토벤의 트리플 콘체르토의 악흥의 순간과 유럽 중세 시대의 도시와 시골을 떠올리면서 상당히 도회적인 인상을 풍길려고 노력했지만 노력만 하다 끝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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