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블러드 왈츠. 그들은 지금 요한 쉬트라우스 2세의 음악을 듣고 있다. 12살 소년이라면, 약간 단순하면서 웃긴 초딩이라면 비엔나 피 왈츠? 피? 흡혈귀? 이상한데, 뱀파이어가 춤을 춰? 이런 젠장, 세상은 요지경이라더니 살다 보니까 별의별 일이 다 있구먼. 이럴 수 있다. 그들 가까이에는 바순과 자코메디 조각상이 놓여 있다. 그들이 음악 감상실이나 콘서트 홀에서 굳은 표정에 경직된 자세로 살짝 포멀하고 한껏 클래식한 옷을 입고서 이 춤곡을 듣는 것이 아니라 어느 카페에서 듣고 있다.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DJ~, 같은 노래 가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이다. 이 카페는 당연히 그 카페에 들리면 뭔가 즐거운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 그런 카페다. 도대체 그런 예감이 드는 카페란 어떤 카페를 말하는 것인가. 그 대답은 이거다. 그런 카페에 한 번 가서 느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아 그렇구나, 라고 깨닫게 된다. 백번 말해야 소용없다. 대개 카페에 가면 손님을 위한, 카페 사장이 좋아하는, 점원이 듣고 싶은 음악이 나온다. 그걸 들어보면 주로 현대 음악이다. 또 그것은 거즘 2박자다. 하지만 지금은 3박자 왈츠가 흐른다. 이 음악을 들으면서 말다툼을 한다거나 딴짓할 궁리를, 뭔가 수작을 꾸미고, 음란한 끼를 부리는 것은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고, 작심삼일은 내일도 또 내년에도 할 일이겠지만 적어도 나도 모르게 너의 아름다웠던 시절과 그대의 하늘에서 내려준 고결한 무엇을 떠오르게도 만드는 마술의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왈츠가! 물론 이해하기 어려운 터프가이라면 흥분을 가라앉히려면 무얼 듣거나 상상해야 하는지 그런 멜로디를 떠올리면 한결 이해가 쉬워진다. 무슨 멜로디인지 아시죠?
자, 그들이란 누군인가. 새삼스럽지만 아니, 새삼스럽지 않지만 이름들을 적어 본다. 그 이름들은 잊혀질만 하면 환기시키는 퇴물 주술사의 구호만 같다. 조니, 케빈, 알렉스, 마크, 하워드, 닉, 제임스. 어, 내 이름과 같다고? 나와 닮았다고? 누구를 닮았다거나 어느 유명인과 이름이 같다고 해서 몹시 지겨워, 그런 단계를 지나버려서 아예 체념하고 달관하며 살아갈지라도 그런 원치 않는 매우 앙증맞고 작디 작은 유명세도 하나의 장점이 있다. 정말 하찮지만 남에게 웃음을 선사한다는 장점. 건전한 삶을 살아간다거나 적당히 음흉한 플라토닉이 침체된 사랑을 지향하든 어쩌든 애틋한 감정이 꽃피기 시작하는 연애의 초기 단계에서나 만인의 일상에서 매번 그리고 잊혀질만 하면 어떤 유머의 방식을 한 번씩 언급하고 떠올리고 말하면서 달력은 넘어간다. 당신에게도 어떤 별명이 있을 것이다. 없거나 마음에 안 든다면 하나 만들어보자. 그렇게 불러 주거나. 하다못해 타인의 핸드폰에 어떤 명칭으로 저장되기도 한다. 본인이 썩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 친구들이 도대체 왜 우아한 왈츠를 카페에서 듣고 있을까. 그것은 하워드의 집으로 각기 가지고 와서 낭만적으로 흐르는 냇물에 띄워 보냈던, 청초한 소망을 담았을지도 모르는 일곱개의 부유물, GPS를 부착해 놓은 부유물, 위치 파악하며 뒤따라갈 부유물, 따라가다 언젠가 따라가기를 포기할 부유물, 그것을 냇가에 띄워 보내고 나서 그들도 자신들의 동심이 실린 그것을 따라가기로 마음을 모아서 슬금슬금 따라가다가 길가의 어느 찾집에 들려 쉬었다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부유물을 따라가 보니 조금 지겹기도 하고, 그 지루함을 겉으로 표현하기는 뭣 하고, 그래서 쉬었다 가자, 정확히 의견의 일치를 보고, 합심해서 허먼 멜빌의 모비딕 등장인물 이름이 보이길래 딱 들어갔다.
여기까지는 별 일 없다. 재미난 일이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원래 흥미로운 일은 잔잔한 심심함이 일정 시간 전주곡을 울려야지만 그 기쁨의 화사함이 극도로 뭔가가 없어도 뭔가 있어 보이게 된다. 충분히 지금까지 단정했다. 많이 외로웠다. 더없이 따분했다. 재미난 일은 항상 없었다. 뭘 해도 재미없었다. 더럽게 재미없었다. 잠깐 재밌다 말았다. 늘 그랬다. 뭐 재미난 일 없을까, 라는 발상도 한없이 진부해졌다. 인생의 2막이든 보잘 것 없는 막간극이든 애들 인형극이든 꿈은 멀리, 저 멀리 아득히 날아가 버렸다. 훠이 훠이. 생각도 안 난다. 꿈이 있기는 있었던가. 그렇다면, 그럼 이제는 뭔가가 나타나야 한다. 안 그러면 뭔가 억울하다. 많이 답답허다. 행운의 리듬이 어긋난다. 묘수의 운을 타야한다. 그들이, 그 친구들이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절대 어떤 말로하기 어려운 소년의 탐험욕을 표출하지는 않았지만─어찌 촐랑대며 그런 감정을 말할 수 있으랴, 왠지 모르게 지금 이 순간 어떤 귀족의 품위를 드러내야 하는데, 그런데 깐죽? 말도 마라─은밀히 뭔가 마음이 맞았나 보다. 오케이, 거짓말처럼 사건이 발생한다.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처럼, 모사꾼의 감언이설처럼, 완전 (개)구라 같이.
거의 모든 사람이 경험해 봤을 일. 그 가운데 하나로 이런 경험이 순위권에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쓱, '쓱'은 좀 음험한 뉘앙스를 풍긴다. 정중한 기분이 드는 '넌지시'로 바꾸자, 넌지시 마술 모자에서 하나 꺼내자면 이런 거다. 침대 밑이나 책상 옆, 의자 뒤로 뭔가를 떨어트렸는데 그걸 찾을 수 없어. 아무리 찾아도 없어. 찾고 또 찾고 계속 찾아도 없단 말이야. 많이 찾아봐야 10분 찾고 포기하겠지만 고집 센 사람이면 1시간이나 1일, 더 고집 센 사람이면 지금도 찾고 있을 것이다. 즉 귀신이 곡할 노릇. 혹시 그것이 4차원으로 가버린 걸까, 도저히 갈래야 어딘가로 갈 데가 없는데 하면서, 또는 부모님이 알면 안 돼, 절대 안 돼 하면서, 그런데 그게 뭐지?
그렇게 카페에서 말도 안 되는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맙소사, 이런 요상한, 삐─, 워워, 이런 수전증 초기 증상 같으니라고, 뭐야 이거! 그들이 들어왔던 카페 문이 없어졌다. 몇몇 있던 손님들도 사라졌다. 점원도 사라졌다. 그들만 남았다. 스릴러도 아니고 SF도 아니고 이거 뭔 장르야. 누가 장난치는 거야, 내가 꿈꾸고 있는 거야, 아닌데 일곱 명이 모두 일곱 난장이처럼 공주 같은, 인기 없는 동화 같은, 물고기면 물고기고 사람이면 사람이지 뭔 말만 들어도 웃긴 인어 공주 같은 일이 다 있냔 말이야. TV로 보거나 극장에서는 좋았어, 진짜 재미있어서 좋았거나 하나도 재미없어서 투덜거리면서 불평하며 평온하니까 다음, 더 넥스트를 기대할 수 있었다구. 그런데 이게 뭐야. 내가, 우리가 주인공이라니, 이게 말이 돼? 말도 안 돼.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삐─삐─. 현실인데 한참을 기다려도 실감이 안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입장했던 문만 사라진 게 아니라 창문도 사라졌다. 그쪽 면이 온통 벽으로 바껴 버린 거다. 거짓말처럼 그리고 영화처럼. 사실 남자들 눈길 돌리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 아니라지만 그냥 눈길 돌리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미인계도 아니고.
이 친구들 가운데 두엇은 이런 생각을 품지 않았을런지 모른다. 혹시 아까 <뒷사람 음료수 값 지불하기>를 실행하지 않아서 갇힌 것일까, 라고. 골든벨 안 겪어 봤다고 어느 때던가 푸념해서 벌 받았나? 내가 골든벨을 골 때리게 울려본 적이 없으니 당연지사고 또 그게 정상이다. 하늘에서 돈이 쏟아져, 나도 그렇게 멋진 컨버터블을 타고 다리 위를 달리면서 베르디의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을 들으면서 또 따라 부르면서 지폐를 뿌려보지 않았으니까, 어디선가 쏟아지는 동전-벼락을 퍼맞지 않았으니 그걸로 됐고, 딱 됐고, 참 다행인 거다. 막 모르는 사람 술값 멋있는 척 내주다가 괜히 오해를 사서 자기 여자친구 꼬실려 그랬다고 무슨 수작이냐는 그런, 그런 난데없는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고, 재수없다고, 어디서 오바냐고, 누굴 거지로 아냐는 야유를 받을 수도 있으니 엄한 선행은 어떻게 보면 무리수에 가깝다. 즉 이런 난처한 상황이 닥치면 이렇게 엉뚱한 생뚱맞은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냐 하면 막 어떻게 뚝딱 뭔가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마치 노름판이든 어느 놀이에서든 옷 벗기 게임하는데 한꺼번에 홀딱 다 벗는 경우도 없고, 그러면 재미도 없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잘 분간은 안 되지만 특이하고 신기한 일과 만나게 된다면 일단은 그것을 즐겨야 하는 법이다. 난데없이 해가 서쪽에서 뜬 것도 아니고, 남반구에서는 해가 서쪽에서 뜰까 안 뜰까, 난데없이 불세출의 영웅이 아니라 오즈의 마법사가 되어 버렸다. 어떡하지, 그들은 어떡하고 또 서술자는 어떡하고.
일단, 그들은 우선 카페를 둘러보았다. 뭐가 설치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뜬금없이 생긴 벽을 손으로 만져보고, 발로 툭툭 건드려 보고,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 보고, 슬랩스틱 코메디를 펼치는 흑백 TV 시대 연예인처럼 아무리 찾아봐도 특별한 게 없었다. 위협되는 거도 없고, 누가 나타나지도 않고, 온도 변화도 없다. 음악은 멈추었다. 뭔가 움직여야만 할 것 같았다. 달리 할 일은 없었다. 핸드폰도 모두 대기 모드로 바뀌었다. 이따 챕터 후반부에 가면 자동으로 대기 모드가 해제될지도 모른다. 그럴 것이다. 급박한 분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영화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이미 선행 학습이 잘 되어 있었다. 이쯤 되면 시소 건너편에 앉아 있는 자와 무언의 교신을 할 수 밖에 없다. 상황이 주어지면 그렇게 하게 된다. 무대 체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카페의 옆문과 후문을 찾는다. 자, 옆문과 후문이 있다. 삶은 곧 선택이다. 그래 결정했어. 뒷문이다. 옆문은 왠지 느낌이 안 좋아. 이유는 모른다.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진, 전진!
그렇게 카페의 뒷편으로 나가 보니 그곳은 큰 쇼핑몰의 내부 같았다. 바로 앞에 보이는 어느 방에는 조그만 강아지들이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면서 고상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개들이 여럿 모인다고 바로 난장판이 되지는 않는다. 개들이 비록 고요하게 잠을 자고 있지만 벨리니의 노르마, 롯시니, 푸치니, 베르디와 폰 키엘리 그리고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듣는데 어찌 그 풍경을 개판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조금 이동해서 그들은 교차로에 이르렀다. 그곳에 우뚝 서보니 그 교차로가 움직인다. 자연재해 아니면 놀이공원에서 인기가 한물 간 타가 디스코다. 후자이기를 바래야지. TV에서 안 좋은 뉴스가 나오면 영화 토네이도랑 똑같네, 더 하네, 그러면서 입을 떡 벌리거나 이젠 그런가 보다 하지만 집이 떠내려가고 공중 분산되고 다치고 그런 피해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괜히 내가, 내 안의 어떤 인간성의 일부가 죄를 짓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게 인간이다. 인간 본성이 광범위하고 유동적이라서 인류는 그동안 어두운 일도 많았고 그러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고, 또 그래서 앞으로 더 나은 미래를 바랄 수도 있는 것이다. 매스컴의 뉴스든 인터넷에서 개별적으로 사용하는 소셜 네트워크든 슬픔이라는 것은 거리나 어떤 기준에 따라 체감되는 면적이 다르다는 어쩔 수 없는 옴짝달싹 못하는 누구에게나 공통된 인간 본성, 그것을 알고 또 경험하며 살아가는 그래야만 하는 죄스러움, 평생 동안 희노애락과 함께 가슴 한구석에 어딘가 모르게 끙하고 사라지지 않는 어떤 불가해한 죄책감이든 무엇이든 그것을 일단은 밑바닥에 깔고 가야만 하는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부득불 그럴 수 밖에 없는 인간애, 최종적으로 원래 그렇구나, 결국 나는 절대 극장에서 펑펑 울 수 없는 유형이로구나, 찔금이 아닌 펑펑, 인형극에서 쓰이는 특수 튜브 장치나 자동차 와이퍼 액 분사 노즐 장치와 같이 펑─펑! (나란 놈은) 소설을 읽으며 시를 외우며 노을을 보면서 친한 동료들과 헤어지면서 어찌하지 못하여 드라마 눈물-연기용 안액을 사용해야만 하는, 정녕 그런 존재로구나! 그것은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태어나기 때문에 나중 절대 바꿀 수 없는 일이로구나, 라는 사실을 처음에 또 되풀이 되어 틈틈이 깨닫는 순간들. 그래서 나이 들면 또는 철이 들면 사람들은 때론 굳이 나는 나중에 타임머쉰을 타지 않겠다, 사람의 두뇌를 다른 육신으로 갈아 타게 되면 어떤 종교에서 말하는 윤회란 무의미하게 되는 것일까, 에이 모르겠다 이저 저도 모르고 난 그냥 미래에서 <더 나은 미래 주식회사>에서 현재 세계로 이미 와서 살고 있다, 그렇게 살아 가는 인생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더냐, 이 얼마나 찬연한 깨달음이란 말인가, 그렇게 약간 소탈한 생각을 하게 된다 해도 뭐 하나 이상할 것 없는 일이다.
더 앞으로 나아가니 요염한 모습의 길고양이 몇이 보이고, 그 쇼핑몰의 규모가 짐작되는 뭔가 가늠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길 양편이 번화가로 보이는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상점은 모두 문이 닫혀 있다. 또 다른 골목은 상점의 문이 모두 열려 있고 불이 켜져 있다. 그런데 사람은 없다. 이상하다. 어디가든지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런 거리의 모습이다. 그런데 사람이 없다. 옷 가게, 화장품 숍, 우체국, 서점, 빵집, 음식점, 찾집, 레코드 숍, 속옷 가게, 소극장, 중극장, 대극장은 안 보인다, 편의점, 약국, 미용실, 파출소, 패스트푸드점, 기타 등등.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인지 참 희한한 일이다. 개미도 없고, 파리도 없다. 뭔가 수상하다. 게다가 이건 움직이는 미로 같다. 대형 트럭이 길을 막고 있었는데 눈길을 돌렸다가 다시 그쪽을 보니 트럭이 이동해져 있고, 트럭 안에 사람은 없고, 벽이 없었는데 생겼으며, 길이 있었는데 없어졌다. 막 그런 현상이 있는 듯 하다. 아까 분명 저기 저 건물과 건물 사이에 공중에 두 건물을 잇는 다리가 있었는데 다시 보니 없다. 사라졌다. TV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사람이 서 있기 힘들 정도의 바람이 잠시 불었다가 그쳤다. 때락 큰 송풍기는 안 보이는데 태풍도 아니고 의아하다. 레드 제플린 앨범 커버에서 보았던 열기구가 현대식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하늘에 떠 다닌다. 완-전 크다. 하나도 우습지 않다. 말도 안 나온다. 도시에 사람들이 모두 4차원으로 피서를 떠난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이게 뭔가, 미스테리다.
「어쭈.」
「이것 봐라.」
「뭐냐 이거.」
「미션 컴플리트.」
「언빌리버블.」
「판타스틱.」
「어디서 어설프게 탄을 날리고 있어?」
「네스프레소?」
「지아니 베르사체.」
「꼬꼬 샤넬.」
「본 아프 띠.」
「텍사스 카우보이스.」
「D I double G dot com.」
「카사블랑카.」 혀짧은 음성.
「모나코.」 굵직한 육성.
「흥.」 앙큼한 교태 섞인 비음.
「씨아오지에 피아오리앙 야.」 잘 한 번역인지 잘 모르겠지만 뜻은 이렇다. 아가씨 아름답소.
「워가 아이오 오오사메 구다사이.」 외국어를 잘 하는 사람들 보면 멋있어 보여. 번역하면, 내 사랑을 받아주오.
「본 조르노, 마담 무슈, 그라시아스 로 시엔또, 아스타 루에고.」
「번역기 돌린 거 외웠냐?」
「그 작업 멘트가 먹혀? 철 지난 거 아니야, 구닥다리 아니냐구. 그래도······ 나도 한 번 해볼까. 낭자, 아름답소. 내 사랑을 받아주오. 바닷 바람을 맞는 해변가라면 한 번쯤...하긴 자발적으로 여쭙는 홀려서 언급되는 말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지. 누구냐 또 어떤 상황이냐 그게 관건이야. 옷이 날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아무나 잡고 나 잡아봐라,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구. 암 그렇고 말고. 두 말하면 잔소리지. 그러나 아 이런, 참 웃끼네.」
「폴 퍼니 스미스, 인테르밀란, 달레산드로.」
「아직 뻑 가기엔 일러.」
아직은 이 친구들이 여유 있다. 살면서 새로운 일을 포용하고, 도전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완충의 지대, 그 언저리가 자기도 모르게 어떤 넉살과도 같이 희미하게 넓혀졌다. 그래서 본 게임을 보고 싶다는 제스춰? 이따 바지에 오줌이나 누지 말아야 할 텐데, 만에 하나, 걱정이다.
남자는 모른다. 여자들이 평생 얼마나 많은 시간을 화장과 몸치장에 시간 소비와 금전과 노력의 투자를 하는지를. 여자들이 화장을 하면서 대체 뭔 생각을 하는지를 말이다. 여자는 안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남자들이 모이면 무슨 얘기를 하고 어떻게 노는지를. 남자와 여자 모두, 서로를 잘 알면서도 모른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면서 꿈을 꾸기는 꿨는데 꿈이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것처럼. 개운하기도 하고 부시시하기도 하지만, 나 나이 들었나 봐, 그러는 것처럼. 남자는 여자들이 어떤 얘기를 가장 많이 하는지가 궁금하면 여성 잡지를 보면 된다. 간단하다. 아가씨면 아가씨들이 보는 잡지, (기품 있는) 중년 여성이면 중년 여성들이 보는 월간지를 보면 된다. 완벽하고 완벽하고 또 완벽하다. 남자들에게 이건 비밀리에 공짜로 알려주는 거다. 여자들은, 여자들은 말이다, 남자들이 어떤 얘기를 나누고, 뭘 원하고, 뭘 바라고, 뭘 생각하면 가슴 뛰는지와 '으쌰으쌰'의 정체가 궁금하면 남성 잡지를 보면 된다. 그대에게 선물하는 뽀너스. 남성 잡지도 종류가 많지만 여기서 말하는 그것에는 크게 2종류가 있다. 그 가운데 세계적인 남성잡지에 보면 앞 부분에 편집장의 글이라고 있다. 간혹 그런 글을 보면, 와~우 이 양반 글 잘 쓰네, 난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식으로는 못 쓰겠다, 그러니까 난 막 쓰고 닥치는 데로 써야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잡지가 뭐 볼 게 있냐고, 자기는 평생 잡지와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라며 그렇게 또 다른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잡지 하면 여성 월간지, 여성 월간지 하면 여자, 여자 하면 예술로 자연스럽게 생각이 옮겨 간다. 위대한 예술이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면 여성 예술가는 시간 많이 들여 화장도 해야 해, 했으면 나중에 지워야 해, 칼로리도 체크해야 돼, 시시콜콜 막 수다떠는 길로 빠져서도 안 돼, 어떤 편견도 신경쓰지 말아야 해, 여류..라는 말에도 기분 나빠해선 안 돼, 어머 미용실이랑 네일 샵도 가야지, 사랑을······ 그래 받아야 해 게다가 애도 낳아야 돼, 피임 오 피임, 낳으면 끝인가 또 길러야 한단 말이야. 오 이런 말하기 숨차다. 여성 월간지 보기와 위대한 예술, 두가지를 동시에? 그럴 순 없다. 누가 그래, 둘 다 할 수 있다고. 어렵겠지만 둘 다 할 수 있다. 비단 어렵다 뿐이야. 어느 만큼 삶을 살다 보면 알게 된다. 깨닫는다. 뭔가 도저히 연결될 것 같지 않게 보이지만 이어져 있는 기묘한 물상. 애티가 있어 어려 보이는, 앳된 처자들과 순수한 아가씨와 왈가닥 톰보이들이 읽는 잡지, 그들이 읽는, 그들을 위한 월간지 A. 그리고 우아한 중년 여성들이 보는 잡지 B. 그 둘이 얼만큼 다른가. 현격한 차이. A에서 B로 가는 동안 정말 뭔 일이 어떤 어마어마한 인생사가 있었던 것일까. 남자는 A와 B로 나눌 필요 없다. 그딴 구분 필요 없다. 그런데, 그런데 여자는, 여자는. 오빠는 뭘 몰라, 남자는 항상 왜 그런 거야 왜 그러냐구, 의 정물화에서 빠져 나와 넓은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어느새 나이든 거다. 자, 공주님. 그대여 거울을 보시죠. 거울 속에는 어여쁜 그대도 있지만 잘 보면 잘 들여다 보면 당신의 엄마가 보입니다. 거울을 보는 사람은 당신이고 거울 속에 있는 사람은 엄마. 완전 똑같습니다. 이제 하나, 둘, 셋을 세고 딱-하면 당신은 최면에서 깨어납니다. 하나, 둘, 둘 반, 둘 반의 반, 에잇 그냥 깨어나지 맙시다. 그럽시다. 그럽시다. 꿈결 같은 몽롱한 의식의 안쪽에는 잠재된 거인이 잠들어 있습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에서 야한 꿈을 꾸며 잠들어 있는 거인. 그리고 당신은 바로 이곳, 세상에서 가장 크고 특이한 비밀 결사 단체의 요새이자 성지인 이 소설 속의 가상의 공간에 와 있습니다. 마술의 정령은 살아있습니다. 전설 속에서 그 명맥을 유지해 온 것입니다. 동화 속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었습니다. 거짓이 아니라구요. 자, 동기부여가 되고 있나요? 아직 부족하다구요, 잘 모르겠다구요? 그냥 고개를 끄덕거려 보세요. 왜 그렇게 생각이 많습니까? 뭐가 그렇게 복잡하나요? 고민은 저 멀리 날려버리고, 골칫거리는 모두 잊어버리세요. 그리고 그리고 이 말을 따라해 보세요. 나는 할 수 있다. 더 크게. 나는 할 수 있다. 더 세게. 나는 할 수 있다. 다 같이. 나는 할 수 있다. 자 이젠 이 신비의 생명수를 마시면 당신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온갖 행복과 쾌락을 맞 볼 것입니다. 준비됐나요? 고개를 끄덕거리세요. 나는 할 수 있다. 한 번 더. 해야 할 일일랑은 날려버리는 겁니다. 소원은 이루어질 꺼에요. 꿈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 꿈은 실현되라고 있는 것이다. 꿈이 절대 좌절하고 슬퍼하라고 포기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자 하늘을 보라. 인생찬가를 불러보시라. 느껴지는가, 저 거룩한 동기부여의 신이 천상에서 날개를 펴고 당신을 부르고 있다. 자 날아오르라 날아오르라. 그대여 날아오르라. 날아오르란 말이다. 오 드디어 공중에 떴다. 그대는 지금 공중에 떴다. 붕 떴네요 그대여. 날개를 펼치세요. 당신은 당신은 바로 웨딩드레스를 입은 순백의 천사입니다. 어딘가 아기 요정들의 나팔소리가 들리는군요. 뭐가 보이는가. 뭐가 보이는가. 아직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그럼 더 가야 한다. 더 가야 한다. 자 계속 날아올라서 저기 저 동기부여의 신에게로 간다. 간다. 간다. 만났다. 만났다. 당신은 지금 동기부여의 신을 만났다. 만났다. 당신은 지금 몹시 흥분된다 흥분된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들었다~! 맙소사, 이런,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군. 자 덥다 덥다. 옷을 벗는다 벗는다. 안는다 안는다. 키스한다 키스한다. 자 그 다음 그 다음. 오오 오오. 이런~ 젠장~ 스탠드업 코메디 따라해봤는데 순전 사기꾼 말발 같다. 남과 여 그리고 영화 남과 여 (1966). 세상사에 통달한 박사님들도 좀처럼 쉽게 답해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무언가. 그 음악을 틀어주세요, DJ. 멘델스존의 무언가 교향시 9번 3악장을. 삼천포는 답이 없다. 다시 돌아와서, 즉 당신은 이 밑도 끝도 없는 상황에 처한 이 친구들의 심정을 알 것도 같고 모를 듯 하기도 할 것이다. 알쏭달쏭,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마치 그런 물음처럼.
이게 왠 일인가. 뭔 사태야. 이건 일종의 퍼포먼스일까, 다시 돌아온 플래시 몹이란 말인가. 저 앞으로 100m 전방에서 얼만큼 많은 사람들이 벼개 싸움을 하고 있다. 뉴스에서 봤던 해외토픽, 그런 대규모 벼개 싸움은 아니지만 대충 구색은 갖췄다. 딱 보니 비상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그러니가 뛰어가서 촌스럽게 우리가 여기 갇혔는데 혹시 어떻게 된 일인지 뭔가 아는 게 있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어쩌면 물어본다고 해도 가르쳐 주지 않거나 모를 게 뻔하다. 그 사람이 뻔뻔하거나 불한당은 아니겠지만 중간 정도의 연기력은 갖췄으리라 능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 구경을 하고 나서 즉시, 즉시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양떼가 저쪽에 보이는 로터리를 지나간다. 그 떼거지 양떼 사이로 간혹 망아지도 보인다. 망아지와 양은 사이가 좋은 것 같다. 그러나 양치기는 안 보인다. 양떼몰이 개도 안 보인다. 어, 그럼······ 그렇다면······ 그렇다. 한마디로 경이로운 장관이다.
게다가 BC 480년 당시의 전투를 흉내낸 코스프레가 오른편에 보이고, 왼편에는 공포 영화 매니아들이 분장한 채로 몇몇 걸어다닌다. 멀리 있지만 공포 음악도 약하게 들린다. 이건 그와 비슷하다. 놀이공원 비밀의 집이나 비엔날레나 엑스포 공원에서 볼 수 있는 대기줄이 매우 길게 늘어선 검은 집, 막상 들어가 보면 왜 여기는 줄이 이렇게 길게 늘어선 것일까, 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뭔가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드러나면 실망할 테니 끝까지 가면을 벗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밀담이 존재하는 그런 곳. 고대 도시, 바빌론, 아틀란티스, 막 그런 느낌도 들고 대강 견적을 보니 쇼핑몰 이벤트 수준이 아니다. 놀이공원에 있는 검은 집 대리점 수준이 아니라 검은 집이 하나의 도시로 확장된 것만 같다. 그게 아니면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공포 영화는 영화로 볼 때만 오싹하고, 여름에만 메뚜기도 제철이지 현실로 부닥치면 그건 더 이상 장난이 아니다.
사회-과학이나 인문-교양 서적을 보면 그런 글이 있다. 어디는 대학에 들어가기가 쉬운데 졸업은 힘들다, 어디는 입문은 어려운데 그 다음은 그냥 도서관일 뿐이다, 대학 생활에서 낭만을 찾다니, 그 들어가고 나오는 프로세스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들이 이 거대한 흐름 가운데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누구는 대학 다닐 때 자기의 좌우명이 이럴 것이다, <후회하지 않토록 놀자>, <딱 하나만 잘 하자>, <뭐에 꼿힐지 모르지만, 괴상한 것에 꼿힐지 모르지만, 느낌 딱 오는, 거의 오지 않지만, 꼿히는 것만 잘 하자> 그런 어떤 청춘의 무슨 관문에 들어온 것만 같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꽃피는 봄날 같은 청춘이라지만 공부도 어렵고, 취업도 힘들고, 평범한 연애는 커녕 럭셔리 카도 노땅들만 모는 것 같아서 왠지 모르게 기운 빠지고 슬퍼져서 친구끼리 자꾸만 술을 찾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인생을 논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청──춘! 딱 그와 같다. 하지만 지금만 그런 것도 아니고 누구나 그런 것도 아니다. 방법은 있다. 인문-교양서나 소설, 일단 둘 중에서 하나, 어딘가에는 있다. 꼭, 기필코 있다. 퍼포먼스고 플래시 몹이고, 왜 남이 나에게 음료수 값을 지불하지 않느냐, 왜 내가 가는 술집은 골든 벨이 없느냐, 왜 남자들은(여자들은) 내게 대쉬하지 않느냐, 같은 푸념에 앞서 내가 남에게 그런 경험을 먼저 선사해 보자, 컨버터블 자동차처럼 보는 사람의 눈이 더 행복한 그런 찬란한 의제를 먼저 던지는 수동적인 성격이지만 온건한 적극성의 화자가 되라, 는 간접적 교훈도 다, 모두 다 좋단 말이다. 지금 다 좋아, 괜찮아. 왜 '왜······ 뭐뭐 할까?'라는 의문문에는 혹 하게 되는가, 그럴 수 밖에 없는가, 라는 질문을 받지만 말고, 속으로 생각해서 고민하고 연구하여 책으로 내라는 그런 내면을 자극하는 충고와 주제도 좋단 말이야, 다 좋아.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여기서 어떻게 나가, 이제 우린 어떡하냐구?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또 거기서 다음 단계로 진화한다. 생각의 속도는 가끔 빛과 같다. 뭐 꼭 나갈 필요 있어? 어? 그치만 이 친구들은 더 들뜨지 않고 절제하는 멋쟁이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피리부는 사나이가 나타나서 피리를 불면 자기들이 생쥐로 변해버릴지도 모르는 모종의 불안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떨림은 약 10% 이와 비슷하다. 여자 친구가 여행을 간데, 해외 여행. 그런데 행선지가 이탈리아래. 이탈리아? 왜······ 하필······ 거기야? 좌불안석이다. 내 여자친구가 아닐지라도 남자들은 할 말이 있다. 아니다. 많다. 아주 많다. 뭔 말인지는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그렇게 가슴이 떨린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완전 좋았다. 딱 좋았다. 행복한 몽유도요 포근한 단꿈이었다. 나중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말이야, 하면서 좀 가끔 얘기해도 전혀 물리지 않을 만한 신선한 경험이다. 그만한 너스레는 용서가 아니라 간청이라 불러야 마땅할지어다. 다음 일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갑자기,
갑자기,
갑자기 그들 전방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로 집채만한 물, 걸리버와 걸리버 패밀리가 조작한 듯한 거대한 물이 쏟아져서 그들에게로 오고 있었다. 삐─삐─삐─ 욕이든 감탄사든 그걸 내뱉을 겨를이 없다. 슬로우 모션도 뭣도 폼도 모두 다 필요없다. 냅다 뛰는 수 밖에. 기겁을 하면서. 바지에 오줌을 싸도 상관없다. 뭐 그게 대수란 말인가. 이 위급한 상황에. 그런데 딱 이 분위기가 3초만에 끝났다. 쏟아져 오던 입 떡 벌어지는 물-폭탄이 그들이 그것을 봤을 때의 4시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서 가버린 것이다.
「뭐야 이거.」
「뭐야 이거.」
「아까 1시간 전에 4시 방향 보라고 했잖아. 초절정 미녀가 지나가니까 알려준건데, 나 혼자 보기 미안하니까, 그 말이 화근이 된 걸까.」
「누가 알겠어.」
「이거... 장난이 아닌데.」
「메두사.」
「마구스.」
「뭐지 이거.」
「그래 진짜 뭐야.」
「이런.」
「이런 젠장할.」
「오오 뭐야, 왜, 어떻게 이런 일이.」
「살찌는 것은 죄가 아니다.」 절반쯤 젠체함.
「달팽이 요리 먹고 싶다. 아직 한 번도 안 먹어 봤어. 오─내─인─생!」 절반과 반에 반, 제정신으로 돌아왔음.
「정신나갔네, 아주.」 시간의 구부러짐, 딱 걸려들었다.
「내가,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지.」 지금 단계에서는 수틀려도, 몸에 마음이 흔쾌히 따라가지 않아도, 마음에 몸이 흡족히 절제하며 합일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층위에 도달했다. 여기서는 저-저번 챕터의 <뭘 해도 재미없다>가 많이 나왔던 것처럼 뭐야 이거, 이거 뭐지, 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안 나오게 생겼나.
이제는, 이제는 점점 나가고 싶어진다. 여기가 세트장인지 4차원 공간인지 그런 거 알고 싶지도 않고, 그래 단어가 생각났다. 탈출.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정말 1시간 전에 4시 방향에서 슈퍼 모델과 에르메스 친구들이 지나가기 전에 그들은 베스킨 라빈스 31 같은 아이스크림 가게에 있었다. 심심해서 베스킨 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 먹고, 목 말라서 카페에 들어갔다가 이렇게 된 거다. 그런데 에르메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과 같은 이름의 사람들이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알고 보니 어디에 가면 나이트 클럽 웨이터도 에르메스, 교수도 에르메스, 정육점 사장도 카페 사장도 거물 로비스트도 에르메스라고 한다. 또 어디가면 2명중 한 명은 머머-스키야, 어디는 뭔 놈의 로페즈가 그리도 많아. 코메디언 에르메스씨가 어느 날 에르메스 매장에 들린다면, 음 특종감이다. 그 에르메스가 그 에르메스다.
어쨌든 그 아이스크림 가게도 뭔가 이상했다. 그냥 보통 아이스크림 가게가 아니라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작은 상점이었다. 일단 천장이 낮아서 허리를 꾸부정하고 들어가야 하고, 점원들도 모두 작고 귀여워, 완전 애 어른이야, 내숭이면 어때, 완전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어, 덥─석, 포옹은 안돼, 겁탈은 범죄야, 어디라도 언제나 주머니에 넣고 가방에 넣고 데리고 다니고 싶어져, 그 뿐만이 아니야. 컵, 테이블, 포커 카드, TV, 기타 등등 모든 것이 다 작아. 완전 작아. 그렇다고 완구품은 아니고 실사용 가능해. 다만 사이즈만 미니야. 거울도 이상해. 쇼윈도우 바깥으로 보이는 투명한 정경도 특이해, 뭔가 있어, 뭔가 있어. 모두 다 미니 사이즈야. 진짜 여기는 소인국이다. 그래 딱─! 바로 그거다. 자신들을 걸리버 여행기 주인공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매우 과학적인 고도의 기법임에 틀림없다. 딱 1시간 전에 그들은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또 건물 만한 초대형 하프가 보인다. 그 옆으로 놓여진 커다란 하이힐도 보인다. 심지어 그 옆에는 집채만한 푸른색 반지 케이스가 있다. 그 옆에는 대형 케익 풍선이 있다. 대형 컴퓨터용 마우스, 노트북도 때락 커, 건물이다. 그 옆에는 초대형 선그라스가, 초초대형 후라이팬이 보인다. 그렇다. 여기는 대인국이고 일곱 친구들은 이젠 일곱 난쟁이도 뭣도 아니고 딱 소인이다. 덩치가 아니라 차라리 어려졌으면? 이미 쫄았으니까 소심해졌고 안 그래도 순진한 사람들이다. 이게 대체 뭐하는 설정이냐고! 난들 알아?
흑마술도 아니고 술책도 아니고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 그걸 어떻게 아냐고. 아니면 그냥 장난? 아니야, 꿈일 꺼야. 맞아. 꿈이야.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만족을 지연시키는 능력을 최대로 극대화시켜야 하고, 맨딩(맨땅에 헤딩하기)이든 뭐든 모두 동원하여 부딪혀 보는 수 밖에 없다. 어찌 보면 반쯤은 몹쓸 모험이다. 나중엔 그땐 말이야, 하겠지만 일단은 그렇다. 이젠 빠졌다. 홀딱 빠졌다. 지금은, 이제, 몰입. 그것만 남았다. 클리어.
이런 상상을 해본다. 공원에서 애들과 개와 고양이와 어른들의 웃는 모습이 보이고, 그 공원은 무작위로 10명에게 물어봐도 어딘지 1명도 모르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공원이고, 앞에 보이는 호수에서 알록달록한 카약이 왔다 갔다 하고, 산들 바람도 불고, 푸른 하늘에는 솜사탕 같은 구름이, 꽃 내음도 여인네들의 향수도, 물-풍선과 진짜 풍선도 공기 중에 떠 다니고, 누구는 책을 읽고, 누구는 풀밭에 누워 잠을 자고, 누구는 악기를 연주하고, 누구는 그 모습에 반하고, 누구는 글을 쓰고, 누구는 염문을 뿌리고, 누구와 누구는 염문과 추문과 연정의 차이에 대한 담소를 나누며, 누구는 맛난 음식을 먹고 마시고, 누구는 <연약한 여인의 초상에 신기한 불꽃을 일으키지는 못할지언정 주군의 태양을 가리지는 말아다오> 라면서 시 한 수 읊을려다 질질 끌면서 얼른 포기하고, 잔디밭에 마주 앉아 눈싸움을 하는 연인, 술 취해서 흐느적대며 몸싸움 하시려고 폼만 잡고 계시는 어르신, 주변에는 나비가, 멀찍이 까마귀와 더 멀리 올빼미 한두 종류. 직장인 조정부들과 1.5인용 소형 요트도 보인다. 그 요트 이름은 신드바드(Sindbad) 그리고 윈드 서핑과 함께. 존 업다이크는 책 표지만 닳아져도 마냥 좋은, 그렇게 좋은 날에 내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라, 라는 사랑 노래를 부르는 그렇게 평온한 무~사건의 일상. 그것의 잔잔한 소중함이 더없이 격조 높게 그리워지는 상황이다. 딱 그랬다.
<해변에서 일출을 바라보며 요가를 하고 코코넛 주스를 마시는 것. 게으름의 끝까지 간 나머지 너무 지루해져서 이제는 제발 그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성공한 여행> 눈도 크고 손도 크고 발도 크고 골반도 크고, 게다가 키도 훤칠한, 그냥 키 커, 이거면 끝나지만 그럼 뭔가 아쉽다, 짠하단 말이야, 어느 금발? 아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자 운동선수의 이런 바램까지는 꿈도 꾸지 마라. 지금 이 순간에는.
이건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영락없이. 평생 딱 1번 겪을 것 같은. 하지만 대부분 평생 단 한 번도 체험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환상.
「나가고 싶어.」
「나가자.」
「어디로?」
「아무데나.」
원래 보통의 대화는 일정 길이의 단문이 가장 자연스럽다. 너무 짧은 것 말고. 완전 짧은 대사가 중심이라면 그건 속도가 빨라야 한다. 긴 대사라, 거기에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개그 컨셉이라면 생방송 코메디 쇼 프로그램, 얼마 못 가서 사람들이 있었는지조차 기억도 못 하고 없어지기 딱 좋다. 마술은 편집이 부리는 거다. 앗 넘어갈 뻔 했다. 나왔다. 속도.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여기서 말하는 일정한 속도를 인생과 비유하면 어려워짐. 그걸 말하면 너무 사람 외모나 그런 걸 말하는 것 같고. 인문교양 그래프도 3차원은... 3차원은 머리 아퍼. 속도에 관한 괜찮은 인문-교양서를 1,000권 읽고 나서 단 몇 줄의 밑줄만을 압축하여 말하고 싶지만 그건 어렵고, 다만 속도의 묘미 가령 존 르 카레의 소설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 에서 첫 제일 처음의 1~2페이지 그런 거? 쉬운 예는 영화 예고편? 그런 게 왜 멋지냐면 느림의 미학이 혼돈과 겹쳐져서 뭔가 새로운 기분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본편에서는 말하고, 듣고, 기다리고, 화면 전환과 이야기의 속도에 따라 장르가 바뀌기도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거다. 생각의 속도, 는 젊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 오 정말, 진짜 그래. 무조건 빠르고 느리고 완급 조절하는 거 말고, 노래하듯이 유기적인 거 말야. 분석적으로 멋진 얘기를 꺼내야 하는데 예시와 '난 뭐가 좋아', '느-껴' 그 말 밖엔 할 말이 없네.
「꼭 나갈 필요가... 있구나.」
「난... 아직 인데.」 그 단어. 객-기.
「뭐가 아직이야?」
「그런데 왜 우리 중엔 욕 잘하는 녀석이 하나도 없지?」
「왜긴 왜겠어. 그냥 그런거지. 그게 다야.」
「뭐 꼭 그걸 잘 할 필요가 있나? 있기는.. 해.」
「이 마당에 별 게 다 궁금하네.」
「아니 이 사람이, 그래 쓰잘 데 없는 얘기야. 나도 알아.」
「그런데 아직 별로 돌아다니지도 않았잖아.」
「또 뭐가 나올까?」
「뭔가 나오겠지. 뭐든 말야.」
「무슨 뾰족한 수 없을까? 없을 것 같다. 확실히 없다.」
「이거 미친 거 아냐. 우리...는 아니니까 로봇이 미쳤나. 정말 뭔 일이야.」
「하긴 아직 규칙도 몰라. 황금률의 비밀, 기본적인 패턴, 아무 것도 몰라.」
「맞아. 정말 그래.」
「그럼 어떡하지?」
「모르겠다.」
「나 원 참.」
「이런 제길슨.」
「어이 없어.」 그렇다고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거나 시간이 정지되거나 시간을 여행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스스로 이곳을 찾아왔나?」
「우리가 정말 모험을 바랐던 것일까?」
「우린 평소에 재미난 일이 없다고 너무 투정부린 건 아닐까?」
「여기 이곳은 대체 어디인가,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
「알 수 없는 미련과 방랑 속에 우린 헤메고 있구나.」
「끝이······ 있을려나.」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그래, 그러나.」
「너 바지에 그게 뭐냐?」
「어 진짜, 뭐야 그거?」
「설마······?」
「아니 아니야, 아까 어딘가에서 튀었을 거야.」
「오 신이시여.」
소설을 읽을 때, 일견에서는 한 소설을 왜 꼭 이해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작품해석과 감상평이 많이 비슷할까. 아닐 수도 있고, 일종의 역피라미드 분포일 테지만. 아, 그대는 예외다. 읽는 속도나 면밀한 주의력과 딴 생각과 외부 여건도 많아. 그런데 소설 내용과 정확한 대사와 플롯, 주제, 복선이 모두 머리 속에 파다닥 떠올라야 한다고? 오 이런, 그러면,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대관절 누가 피서지나 휴양지에서 책을 읽겠나. 유원지에서는 잘 안 읽어 책. 멀리 장기 휴가를 떠나야 책이든 잡지든 뭔가를 펼쳐 볼 확률이 높다. 시를 누가 읽어, 왜 읽어? 다 알면서 읽나, 시를 읽으면 뭔 말인지 알아? 아냐고? 시 쓰는 사람을 얼간이라 불러야 돼, 시인이라 칭해야 돼? 초딩이 어려운 철학서를, 할아버지가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읽을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순 가짜가 아니야, 순문학이 아닌 게 아니야, 그렇게 떼쓴다고 그리 되지도 않고 그럴꺼 같으면 날마다 뭐든지 우기면 장땡이게? 응에 응에 들이대 들이대 하면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들으면 진짜 봄의 전조가 느껴져? 정말로? 진짜? 구스타프 홀스트의 음악은? 긴장 풀어, 딱 풀어, 아직 안 끝났어. 마크 로스코나 다른 추상파, 추상파가 다 뭐야, 제일 유명한 그림들만 봐도 뭘 말하는지, 매번 볼 때마다 설레고 새롭고 가지고 싶고 빠져 들고, 그림 1점에 대해 1줄 감상평으로 시작해서 미술평론가와 대담도 하고, 젊은 친구들에게 강의할 수 있냐고! 미술 평론가도 그래, 진짜 어려운 작품이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와, 말을 걸어오냐고.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란 말이야, 나와, 나오셔, 나오라구. 누가 못 나오게 막는 거야? 그 인간 누구야, 남의 인생을 책임지지도 못할 꺼면서, 뭘 훈수 놓고 아끼면서 보필하는 흉내를 낼려고? 나오란다고 진짜 나오다니, 같은 그런 뭐한 말은 하지 않겠어. 제발 부탁하오니 은근 허당이래도 괜찮으니 나온다면 돌연 고마워할 테니 살며시 윙크라도 보내주세요, 자~ 나와 주시죠, 컴옹 컴온, 왜 못 나와? 어째서? 소신이 짐에게 아뢰옵나이다. 간곡한 소청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절대 천박한 유혹은 아니옵나이다. 하지만. 하지만, 만에 하나, 나온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건 딱 1가지다. 그분은 안다-박수 너머에 계신 분이다. 나 알아, 하지만 내가 눈치가 없나 봐, 나 보고 말귀를 잘 못 알아 듣는데.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돈 주고 사기 어려운, 사지 않아도 되는, 그래야 하는, 무엇보다 소중한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매사 심각하고, 진중하고, 맨날 찡그려 누가 못 건들게 또 날마다 할 말씀이 많으셨으면. 이 거짓말 진짜야? 왜 그대는 지금 소설 읽다 이유도 모르고 혼나고 있는데, 그렇게 씩 웃고 있어, 어째서? 인생이 그렇게 쉽나, 세상이 만만하냐고. 지금 이게 시간 낭비줄 아냐고. 세상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누군줄 아냐고. 왜 그 사람은 아들 이름을 2세로 지었어 것 참. 호통 개그를 뭘로 아냔 말이야. 단, 이렇게 말해도 글을 써도 된다면, 아마도 당신이 기꺼이 허락해 주신다면! 부디 이와 같은 비천한 표현을 용서하소서. 어쩌면 좋아 이 일을.
피터팬도 메피스토 펠레스도 그들 이름이 붙은 콤플렉스도 없다. 지금 있는 것은 이 친구들 뿐이다. 조니, 케빈, 알렉스, 마크, 하워드, 닉, 제임스. 7인의 무엇. 간헐적으로 뭔가로 분장한 분명 사람일 것 같은 움직이는 물체나 사람이 타고 있을 듯한 캐릭터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온전히 악수하고 눈빛을 마주치다 한눈 팔 수 있는, 미모를 칭송할 수 있는 보통의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배고프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잠이 오지도 누가 아프지도 굉장히 피곤하지도 않다. 그냥 덤덤할 뿐이다. 거짓말 같이 덤덤해졌다. 이유는 모른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귀결되는 행동은 하나다. 행진, 행진.
아무 생각없이 한 블럭을 걸어가니 스핑크스와 스타워즈 괴물들과 로봇들, 맘모스가 있다. 계속 갔더니 사람보다 몇 배 큰 다람쥐, 큰 사과, 대형 바나나, 하룩 선장, 아톰, 우주복 입은 곰이 보인다. 없는 게 없다.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배 수십대를 운반하는 배의 경적 소리 같다. 세계에서 제일 큰 트럭도 저 너머에는 있을 듯 하다. 히포크라테스도 있고, 법의 신 디케─유스티티아도 있고, 오리도 있고, 다이아몬드─클로버─하트─스페이스 문양이 그려진 킹과 퀸과 잭과 조커의 3차원 조각상도 있다. 뭔 말만 하면 뭐가 떡 하니 타나날 것만 같다. 또한 라이르, 헥토르, 오지에르, 란슬롯, 유딧, 라헬, 아테네, 아르기나, 카를 대제, 율리우스 카이사르, 다윗 왕,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리고 (손잡이만) 18K 도금한 대형 황금 호박마차까지. 건물도 유리 세정제나 콜라병처럼 생겼다. 믿을 수가 없는데 진짜다. 그들이 취한 것도 아니다. 약 먹고 환각에 빠지지도 않았다. 헛것을 본 것도 아니다. 웃기고 자빠질 일이지만 진짜다. 즉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거나 기괴한 수준의 장르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잘 찾아보면 실존하는 것들이 한 데 모여있다는 것 뿐이었다. 물론 그런 하나 하나의 존재마저도 사람이 살면서 일평생 한-두번 보는 게 어떻게 보면 평균이라서 좀 불가사의하달 수도 있다지만 딱히 놀라자빠질 것까지야. 아무래도 도시 자체 컨셉이 초─뭐, 이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만 하다.
차라리 이 친구들이 동남아시아 15개국 순방, 남아메리카 주요 도시 일주, 전-유럽 특급 열차 여행 뭐 이런 일정을 떠날 걸 그랬을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믿거나 말거나, 는 아니다. 절대 절대 절대.
여기서 끝나면 재미없지, 김샌다. 서운해서라도 막을 내려서는 안 된다. 이제야 정말로,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질려고 한다, 까지는 아니지만.
의젓하게 걸어간다. 마치 위풍당당이나 라데츠키, 젓가락 행진곡이 들리는 것만 같다. 아니 백조의 호수, 발레음악이 매우 작게 어디선가 울려퍼지는 소리가 잠시 들렸던 듯 하다. 잘 들어보니 대위법 멜로디 같기도 하고. 친구들끼리 각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고, 대화를 나누지 않은 채로 뭔가에 홀린 듯 걸어가니 넓지 않은 통로가 나온다. 한쪽 면은 명화들이 쭉 그려져 있고, 한쪽은 보통 가게들이 있다. 바로 앞에,
꽃집. 불이 켜져 있고 영업중인 듯 하다. 지나친다. 사람이 있겠나.
서점. 유아용 서점. 역시 장사하는 것 같은데 사람이 없다. 증발했나? 전진.
햄버거 집. 여기도······ 처음에는 그랬는데 의자에 사람이 앉아 있다. 오케이. 뭐야 이거. 이 친구들이 짧고 간략한 대화만 나눠서 그 말을 옮기는 건 생략한다. 잠시의 호기심이 확신으로 굳어진다. (얘네들 의식의) 1단계.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이 경기를 일으켰나. 얼음 땡, 놀이 하나, 아니다. 시간이 정지한 거다. 벽면의 시계도 정지해 있다. 살짝 녹아서 꼬부라져서 막 흘러내린다. 2단계. 착각이다. 시간이 정지한 게 아니라 마네킹들이다. 완전 정밀한 마네킹. 또는 실제 사람이 모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똑같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고~고~.
그 다음은 미술관이다. 구부러진 시계가 그려진 그림이 바깥으로 보이고, 르네 마그리트와 여러 그림들이 보인다. 사람은 없다. 큐레이터도 없고, 안전 요원도 없다. 그런데 한족 면 전체에 어떤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가만 보니 그들이다. 약 1시간 전 쯤의. 이건 아마 과거를 뜻하는 건가. 모를 일이다. 지나친다.
가전 제품 판매소. 여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역시 내부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그대로 비쳐진다. 여기는 현재다. 실시간으로 그 모습 그대로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치 거울과 같이 심령술사의 요술 구술이 가전 제품 판매소에서 파는 스크린에 펼쳐져서 보여지는 거다. 별로 특이하거나 신기한 일이 아니지만 즐겁고 우끼고 어떤 환영 같다. 자, 여기도 패스.
막다른 골목에 가게가 둘 있다. 하나는 아까 그 카페. 모비딕 등장 인물 이름의 간판. 왠지 불길하다. 여긴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 이유는 필요없다. 직감에 따라야 한다. 단지 이런 직관 외에도 또 다른 어떤 깜이 언뜻 스쳐 지나간다. 바로 이런. 누군가, 누군가 우리를 조져줬음 좋겠다. 오 젠장.
마지막 하나. NC. 나이트 클럽. 하나같이 입을 벌리고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모두 서로를 쳐다본다. 말없이. 후진은 없다. 후퇴라고 해야 하나. 모르겠다. 뭐 고도의 기법 어쩌고저쩌고도 아니고 동화 수준으로 글쓰기 스타일이 변했다. 그래도 문학을 내심 콩알만하게 생각했지만 쇼 비스니스 같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지금 머뭇거린다. 당연히 고민될 테지. 계속 머뭇거린다. 들어갈까 말까. 그래 나이트 클럽 이름을 보고 결정하자.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간판을 쳐다본다. 간판이 부분 공사중이다. 이런. 나이트 클럽은 나이트 클럽인데 이름을 알 수 없는 NC. 망했나? 아닌데 쿵쾅 쿵쾅 박자가 들려오는데... 들어갈까 말까. 안 들어가면 어디로 가지? 다른 곳을 헤매? 그러기는 싫다. 지금 우리는 소년이다. 그럼 들어가야지. 그렇다. 들어갈 수 밖에 없었나 보다. 조금은 무섭지만 슬금슬금 그곳, NC로 그들은 들어간다. 오오 초조하다.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알 수 없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러나 이게 뭔가. 미래는 그렇게 쉽게 찾아 오는 것이 아닌가? 나이크 클럽의 바로 옆 건물에 무슨 비밀 클럽 같기도 하고, 사설 슬롯머신이나 카드 게임장 같기도 하며, 뭔가 음산한 분위기를 전해오는 커다란 정육각면체가 있고, 문이 하나 달려있다. NC에 어렵게 마음 정해서 딱 들어갈려다 말았다. 거의 들어갈 뻔 했다. 여기는 안 큰 게 없다. 다 커. 그게 기본이야. 그 문에는 어디서 많이 봤던 글이 씌여 있다. <TIME MACHINE> 뭐야 이거. NC에 들어가기로 힘겹게 마음을 굳혔는데 갑자기 선택의 기로가 하나 더 나타났어. 선택지가 많으면 사람들은 힘겨워 한다는 학설이 맞는 얘기구나. 그들은 그렇게 느꼈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Time Machine에 들어가 말아? 그들끼리 몇몇 얘기가 오갔다. 침착허니 몇가지 경우의 수를 나눠보았다. <들어간다>의 경우의 수. (가정) 들어갔다.
1.<타임 머신이 작동하지 않는다.> 조작 자체가 안 된다. 생 고물, 순 엉터리다. 세계 8대 불가사의는 커녕 입담만 험해질 것이다.
2-1.<작동되어 떠난다. 미래로.> 과학적으로 이론상 불가능하단 얘기도 있지만 수많은 예술 작품을 봤을 때, 엄청난 소란이 발생하고, 사단이 일어나며, 말도 아니게 떠들석하게 난리가 난다. 따라서 이 친구들은 그런 떠들석한 어느 유쾌하지 않은 모험에는 빠져들기 싫었다. 또 굳이 시간 여행을 떠나야 할 만한 급박한 이유도 없고, 큰 사기를 쳐서 인터폴에 긴급 수배된 것도 아니고, 밑도 끝도 없이 뜬금없이 악당들에게 쫓기지도 않았으며, 괜히 무슨 사소한 일에 호언장담을 해서 길거리에서 빨가 벗고 춤을 추거나 어느 생방송에 나체로 뛰어들어 방송 사고를 내는 벌칙을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보통 시간 여행에 관한 작품에 보면 희생이 따른다. 슬프단 말이야. 게다가 찬란한 그리고 평범한 미래는 미래인이나 (시간 여행에 성공한) 과거인, 외계인이 아닌 현대인에 의해, 보통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시간 여행 영화를 만들거나 보거나 관심없는 사람들의 묵묵한 삶에, 보통 사람들의 끈기와 땀과 열정과 생활에 기반해서 미래가 온다는 것. 그래, 2번은 아니다. 영 아니다. 그 다음에,
2-2.<작동되어 떠난다. 과거로 돌아간다.> 만일 돌아갈 수 있다면 누군가는 지난 꿈을 살리고 싶다, 실수를 되돌리겠다, 실패한 사랑을 바꾸고 싶다, 아니야 나는 증권 시세표를 가지고 가서 부자가 될 꺼야, 거기서 과거에서 돌아오지 않고 살 테야, 라고 하겠지만 상식적으로 돌아가면 안 될 것 같지 않나? 이 또한 이미 수없이 여기저기서 많이 나온 얘기다. 그래 이것도 아니다.
남은 패는 이거다. <들어간다>의 1번, 타임머신이 작동되지 않는다. 알고 봤더니 그건 고물이다. 고물일 꺼야. 고물이어야만 해. 그건 미완성이다. 장난하냐, 장난해, 순 허당이네, 개수작이군, 라고 실망하는 것 보다는 그냥 들어가지 말자, 이렇게 결론낸다.
그렇게 해서 정말 딱히 큰 사건이 없었는데도 힘들게 NC에 그들은 들어가게 된다. NC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짜잔~
NC에 입장 완료. 드디어 들어왔다. 오 이런, 뭔 놈의 사람들이 이리도 많아. 아까 바깥에는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이 동네, 이 도시 사람들이 여기 전부 다 집결했나 보다. 그런 것 같다, 가 아니라 진짜 그랬을 꺼야. 바깥 거리와 가게에는 개미 새끼, 파리 한 마리도 없었으니까. 이건 뭔가 음모가 있는 것 같다. 일단 표면적으로 그렇고 굳은 농밀한 약속? 뭔가 그런 게 있을 것만 같다. 비싼 티켓 값을 내고 도시인 모두가 일상과 생업을 팽개치고 입장? 그럴 리 없다. Invitation Only, 전 도시인 모두가 이 클럽의 회원? 이것 또한 설득력 없는 얘기다. 자, 견적 나왔다. NC, 나이트 클럽 사장이 꾸민 일이다. 일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이권을 제공하고 도시 사람들을 불러들인 거다. 옛날에 성주가 어떤 특별한 날에 성대한 수평적인 잔치를 열었던 것처럼. 그 사람의 어려서 꿈이 NC 사장이었는지, 사기꾼에게 빌려준 거액의 부채를 못 받아서 이곳의 전-사장이 운영권을 넘기고 튀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NC 사장, 그 인간의 계략이거나 그 똘만이 불량배들의 작당임에 틀림없다. 그나저나 뭐 사건의 개요가 대충 가닥 나왔으니 이젠 잔치를 즐기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말이다, 왜 지금까지 그들은 하워드에게 지금껏 일어난 일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을까.
「하워드, 너 뭔 일인지 알고 있지?」
「그래, 하워드. 왜 지금까지 하워드에게 이 일을 물어볼 생각을 안 했지?」
「그러게 말야.」
「우리가 시간을 즐겼으니까. 그거야. 이유는.」
「그렇게 불쌍한 표정 짓지마, 하워드.」
「얘 원래 표정이 좀 이래.」
「그래도 지금 좀 이상한데.」
「여기 봐봐. 턱수염 이거 이상하잖아. 가짜 같아. 만져 봐.」 한 친구가 그의 턱수염을 만졌는데 턱수염 전체가 살짝 움직이길래 좀 더 잡아 당겼더니 그것이 모두 떨어졌다. 가짜 턱수염이.
「뭐야 이거.」
「이게 뭐야.」
「그래 정말.」
「그런데 하워드 치고는 좀 뭔가 얼굴 균형이 틀어진 것 같지 않냐?」
「어 정말.」
「목소리도 좀 달라. 아니 말을 거의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몸짓과 태도 또한 평소랑 조금 달라.」
「얘 볼 꼬집어 봐.」
하워드의 볼을 꼬집은 그 순간 모두들 깜짝, 완전 깜딱 놀란다. 그건 매우 정교한 마스크였다. (예산이 매우 풍족하게 많은 그런) 영화 찍을 때나 쓰는 마스크. 가짜 하워드가 마스크를 슥 벗는다. SF 영화처럼 자연스럽고 그래서 뭔가 못 볼 걸 본 듯이 다들 깜짝 놀란다. 어안이 벙벙하다. 가면을 벗고 가짜 하워드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실은 제가 하워드님 대역이에요. 얘기 듣기로는 저번에 케빈님 댁에서는 케빈님과 똑같이 생기신 분이 대역을 맡았다고 하였는데, 오늘은 수소문 끝에 하워드님과 딱 닮은 단역을 찾지 못하여서 피치 못하게 제가 대역을 서게 된 거죠. 아까 거리에서 진짜 하워드님과 선수교체했어요. 놀라셨으면 죄송하지만 좀 놀래켜 드리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사실 저는 이곳 나이트 클럽의 주인이에요. NC 사장. 어릴 적 꿈을 이뤘죠. 일명 NC 사장. 같은 부락에서 어쩌다가 하워드님과 알게 되어 형-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죠. 이곳 도심지에 들르시니 재미있으신가요 아니면 지겨우신가요, 그것도 아니면 무서우셨는지. 그 오묘한 감정은 나중 시간이 지나면 더 정확해지겠죠. 그럼요. 하워드님은 멀리 계시지 않아요. 그리고 이 지역은 일종의 예술가 마을 그런 셈이구요. 오늘은 그 기념일이구요.」
이 친구의 얘기가 끝남과 동시에 그 순간,
어느 영화 배우처럼 잘 생기고 한 눈에 봐도 카리스마 넘치는 웨이터가 그들에게 다가온다. 꼭 걷는 게 슬로우 모션 같다. 그런 걸음걸이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정말 신기한 동화에서 막 튀어나온 사람의 걸음걸이 같다. 게다가 바지의 그 부분은 지퍼가 아니라 단추가 달려있다. 마치 성우와 같은 음성으로 실례한다, 어디로 모시고 싶다, 그러면서 그들을 안내한다. 커다란 나비 넥타이를 매고 연미복을 입었는데 상당히 멋져보인다. 남자라서 아쉬울 정도다.
이 친구를 따라서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실내의 복도를 요리저리 오르락 내리락 지난 뒤에 도착한 곳은 NC, 나이트 클럽 사장실이었다. (여기서 잠깐, 독자님 가운데 나이트 클럽, NC 사장실에 가보신 분? 아마 많이 잡아도 1,000명중 1명 아닐까? 그냥 노파심이다. 이 소설의 핵심적인 어떤 맥락의 하나는 가역성의 폭과 희소성 그것과 관련되어 있다) 노크 후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상 너머로 어떤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는데 의자의 등부분이 보인다. 의자의 팔걸이에는 까맣고, 전체적으로 까만데 약간 흰털이 섞인 고양이가 펑크락 악세서리를 하고서 앉아 있다. 이 작자가 하워드일까 아닐까? 잘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딱 맞춰 돌아서야 하는데, 암만 보아도 뭔가 어설프다. 또한 의자가 고장나서 돌아서지 않고 살짝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그뿐이다.
「이런 하워드, 자는 거야?」
「이러기가 어딨어?」
「이 친구 정말 팔자 한번 좋네.」
「우릴 그렇게 뻑 가게 만들어놓고 이러기야?」
「난 이 친구가 진공관 오디오에 LP로 명테너의 아리아를 틀어 놓고, 시가 한 대 피우면서, 꼬냑 한 잔을 모셔 놓고, 트럼펫 주자와 의상 디자이너 그렇게 2명의 아리따운 아가씨와 함께 우릴 환영해 줄줄로만 알았지 뭐야. 그러면서 우리에게 보여줄 무슨 초청장을 들이밀거나 아니면 보물섬 지도라도 내놓아야 하는 거 아냐? 그래야 폼나잖아. 응당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들이 댈 땐 들이 대야지.」
「아무렴, 누가 아니래. 이 친구 말 한 번 잘하네. 우리 생각이 그거야. 바로 그거라구~ 트럼펫 주자가 여자면 플루트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그럼 음. 그 있잖아. 지금 말이야, 왠지 모르게 착 감기는, 살짝 끈적한 느낌이 들어도 좋으니 괜찮은 블루스 한 곡 듣고 싶지 않니?」
「
블루스가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블루스 추고 싶은 거겠지.」
「
오 하워드. 잠이나 깨 이 친구야. 그 중절모는 또 어디서 났나?」
「그래 그만 막을 내려야지. 가제트 형사 흉내 그만 좀 내고. 아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가제트 형사야. 이거 원~.」
이렇게 분위기가 살갑고 평온한 찰나 이 친구들에게 핸드폰 메세지가 도착한다. 도합 여섯개의 신호음이 띠리릭 띠리릭... 순서대로 울리니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것만 같은 멜로디인 듯 느껴진다. 엘리제를 위하여? 그건 아니다. 터키 행진곡? 그것도 아니다. 아무튼 그렇다. 그들끼리 쓰는 어플인지 기계적 메세지인지 그것을 6명이 모두 확인해 본 후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이 이상하다. 그게 뭐냐는 거지.
「너네들도 알파벳 한 문자야?」
「음, 너도?」
「자네도?」
「나도.」
「나도.」
「모두 다 한 문자의 메시지를 받았군.」
「저 앞에... 등 돌리고 앉아있는 사람 말이야. 하워드가 아닌 것 같은데.」
「맞아. 수상해. 아닐 꺼야.」
한 친구가 겁을 먹은 골든 리트리버나 그레이트 데인처럼 좀 쫀 듯한 몸짓으로 가짜 하워드로 의심되는 사람이 앉아있는 의자를 돌릴려는데 의자가 안 돌아간다. 의자가 고장난 거다. 의자는 딱 봐도 정말 비싼 건데, 보통 사람들은 99.9%는 평생 살아도 그런 의자 한 번도 구경 못하는 그런 의자. 그래서 그들이 그쪽으로 간다. 가서 확인한다. 모두들 의자에 앉혀진 모자 쓴 인형을 확인한 후에 그들을 데려온 웨이터와 하워드 대역을 찾는다. 하워드 대역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기생오라비 같은 웨이터만 남아 있다. 재빨리 팔을 비튼다든가 험한 말로 겁주고 물어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6명 모두 가만히 그 웨이터를 쳐다본다. 뭔가 아는 게 있으면 실토하라고, 다소곳이 정답게 속삭여주라고.
「오 저는 하나도 아는 게 없습니다.」 이 대답으로 만족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다시 한마디 더한다.
「실재 모르는 일이지만 만약 안다고 해도 저는 그 내막을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7인의 사나이에서 한 명 빠진 이 친구들, 이래도 만족을 못하다니. 웨이터가 또 한마디 덧붙인다.
「카이저 소제는 악마인데 어떻게 악마의 뒤를 쏘죠?」 얘네들 완전 식겁한 표정이다.
「신을 믿지 않지만 전 신이 두렵습니다. 그런거와 마찬가지로 전 카이저소제를 믿진 않지만 카이저소제가 두려워요.」 이젠 그가 웨이터처럼 보이지 않는다.
「놀고 있네~. 농담이고, 아저씨, 완전 멋져! 우리랑 같은 꽌~데. 영화 많이 보셨네.」
「연기력... 괜찮아. 이 친구, 믿음직한데.」
「그래, 그러게 말이야.」
「방금 온 문자나 검토해보자.」
「휴~ 그래야지. 웨이터 아저씨도 다른데 가시면 귀하신 몸일 텐데, 딱보니 여자들한테 인기도 많을 것 같아. 완전 카사노바야. 아니 그 스승쯤 되겠어. 완전 선수 타입이야. 절대 호구는 아니야. 국가대표. 아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그래 뭔가 우리들 스스로 풀어가야만 할 듯한 느낌이 드는군.」
「난 O.」
「난 M.」
「T.」
「O.」
「I.」
「J.」
「이게 뭐야?」
「이건 뭐지?」
「누구 암호 공부했던 사람 있어?」
「뭐야 뭔 뜻이야?」
「뭐하라는 거야? 뭐 하자는 거냐구?」
「혹시······ 우리들 이름 철자와 관계 있나?」
「아~ 알겠다.」
「뭔데?」
「그래, 뭐야, 궁금해서 오줌이 다 마려우네.」
「이건, 이건 말이야. 알렉스가 먼저니까 M, 그 다음이 제임스 O, 조니는 J, 케빈 I, 마크가 받은 문자는 T, 그 다음 닉은 O. 음, 그거야, 모─히─토!」
「그게 뭔데?」
「와우, 그거 칵테일 이름인데. 그게 왜?」
「모히토. 여자들이 첫사랑과 첫키스를 하는 날 그리고 첫날 밤에 마시고 싶어하는 칵테일이라는 엄한 낭설이 한 때 유행한 적이 있었지만 그건 그냥 잡설이고, 이건 뭐냐면.. 음...」 첫날 밤에? 선생님 첫날 밤 얘기해주세요?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소신은 선생님이 아니라 소설가이옵나이다. 성은이 만극합니다.
「에이 꼭 중요한 순간에 뜸을 들여 이 친구.」
「하하하 그건 뭐냐면 바로 하워드의 요트 이름이야.」
「홀리 쉣.」
「삐─.」
「삐─삐─. 하워드는 못 말려.」
「카이저 쏘제는 키튼이였어!」
「오 멋진데. 기발해.」
「짜식 놀래켜 줄려고 스토리 좀 짰어.」
「그러게. 뭐 반전까진 아니지만 나름 그럴 싸 했어.」
「나쁘지 않아. 나 쌍코피 터질 꺼 같아.」
「괜찮았어. 죽이는데.」
「와우, 다시 기분이 좋아졌어.」
「가보자.」
「그래, 가보자.」
「웨이터 아저씨한테 태워달래자.」
「그래, 그러자. 가짜 하워드는 여자 꼬시러 갔나 봐.」
「순 바람둥이 NC 사장 같으니라고.」
그 뒤로 어떻게 되었다 라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흔한 열려 있는 결말이었으니까.
이와 같은 일이 있은 후 두가지 기억할 일이 생겼다. 잊혀질 것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지만, 유행을 타는 건가 아닌가도 불필요한 얘기지만, 그건 두뇌가 할 일이지만 혹시나 아차 하면서 웃을 만한 사실을 놓치고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차원에서 기록하고 지나간다.
첫째, 마지막 나이트 클럽에서 친구들에게 접근하여 한편으로는 느끼한 달리 보면 기품있는 정중한 말을 건넸던 친구, 커다란 가방만한 나비 넥타이를 맸던 웨이터의 가슴에는 뭔가가 달려 있었다. 뭔가가. 그 뭔가는 바로 명찰이었다. 나 명찰, 하고서 턱하니 붙어 계셨던 명찰. 명찰에는 어떤 글씨가 적혀 있었고. 그 글씨는 이랬다. 에-르-메-스!
둘째, 그 다음날 메이저 일간지나 널리 알려진 언론사 사이트가 아닌 조그만 지역 신문과 지역 방송, 그 웹사이트에는 작은, 매우 작은 토막 기사가 실리고 TV로 라디오로 방송되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이와 같다.
<어제 걸리버시에서는 보름달이 가장 밝고 커다랗게 떠있는 시간 전후로 다음과 같은 지역 행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 참고로 보름달은 수퍼문이라서 낮에도 떠있었다고 합니다. 어제 있었던 스폐셜 데이는 이름하여 샌드위치 데이. 그곳의 여러 상점에는 상점의 이름과 같은 이름의 사람이 방문하고, 여러 사인회 또한 열렸다고 합니다. (사인은 무척 피곤한 일이다. 평생 멋진 사인 없이 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사인하는 게 싫어서 두려워서 유명해지기 싫은 사람 또한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유명인을 볼 기회가 있으면 연예인을 뭔 봉으로 아나, 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인을 해달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뭐랄까 사인은 무섭다. 특히 사인펜과 종이가 마찰 할 때의 소리, 윽 고통이다) 보통 이런 일이 하나, 둘 열리면 뉴스라고 할 수 없지만 어제 걸리버시 행사에서는 모두 비밀리에 약속하여 한날 한시에 이와 같은 이벤트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가령, 에르메스씨가 에르메스 매장을 방문하고, 애플 매장에 백설공주 복장을 한 아가씨가 방문해서 사과를 선물하고, 맥도날드 매장에서 맥도날드씨가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디즈니라는 본명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 코스플레 행진을 하고, 어느 나이트 클럽에는 드레스 코드가 매우 특별했다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브랜드의 대형 상징물을 그날 걸리버시에 건립하거나 플래시몹을 진행하고 NC에 입장하는 손님은 입장료와 모든 사용료가 무료였고, 지역 주민은 모두 걸리버 뱃지를 차거나 걸리버 복장 또는 걸리버와 털끝 만큼이라도 관계되는 뭔가가 있으면 이 역시 NC 무료 입장에 모든 사용료가 무료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그날의 47번째 손님을 골탕먹이는 일을 실시간으로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고 합니다. 참 재미난 일도 다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