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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5. 6. 17. 17:03

   무엇을 쓸 것인가.
   질문에는 2가지가 있다. 아니다. 단 2가지만 있는 것도 아니고 딱 종류를 확정하기 어려운 성질의 물음도 많아서 단 2개, 라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어떤 글의 서두에 그리고 말의 초입에는 이런 정형화되고 많이 쓰이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야 일단 귀를 기울여 듣고 산문을 읽기에 몰입이라는 그래프의 기울기가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뭐에는 2가지가 있다, 이렇게 시작하는 대사, 모르거나 안 들어본 사람은 없다. 흡사 인사말처럼. 아차, 위 질문은 2가지 가운데 하나인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이제 문단을 나누어 위 질문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본다. 신들린 듯 재미난 이야기를 쭉쭉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쭉쭉 쓸 것 같다면야 그런 문장을 왜 썼겠나. 당연히 글이 안 써지니까 썼지. 요즘 왜 그리 다른 글이 멋져 보이는지 하다못해 낙서하는 것조차 분명코 하나의 재능이라는 사념이 커진다. 그런데 최근에 느낀 거지만 '글이 안 써진다', 이 말은 저저저번 맞나? 저저저번 챕터에서 썼던 <뭘 해도 재미없다> 이 말과 닮았다. 썩 유사하다. 누군가 개처럼 무슨 냄새가 나나 킁킁거리고 그 다음에 이건 뭐지 생각하고 그 너머에 있는 뭔가를 예상하고, 결국 계속 고민하다가 종내 주인님은 고양이를 편애해, 나보다 고양이 녀석을 더 귀여워 한단 말이야, 아무튼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 생각의 진행 과정은 뭐 재미난 일 없나, 뭘 어떻게 써야 재미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보통 열에 아홉은 아니 아니 열에 하나는 (쓸데없는 일이지만) 잡다한 생각을 그 변화를 글이라는 문자 체계로 옮겨 보면 그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뭔가가 발생한다. 자기도 몰랐던 생각 못 했던 뜻 밖의 그것. 그 뭔가가 재미있으면 상품을 세일즈 하는 것이고, 재미없다면 카드 마술도 엉망이여, 마술쇼 표도 안 팔리고, 마술사 평판에도 먹칠하게 되어 은퇴 날자를 앞당겨서 슬슬 푸드트럭을 알아볼까, 어떤 신비의 영약을 팔러 다닐까, 아니면 나와 같은 유랑 생활과 뜻을 같이 하는 동반자를 찾아 볼까, 하면서 몇 년도 뭐뭐 즉 자신의 연감을 새로 써야 할 것이다.
   익히 알려진 탐정물에 보면 사건이 나온다.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사건이 요상하다. 아무나 해결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모인다. 탐정을 부르자고 제안하며 제청하고 모두 동의한다. 탐정을 부른다. 그것도 명탐정. 신출내기가 아닌, 외도 전문 탐정이 아닌. 명탐정이 온다. 사건 현장에 있던 편지를 본다. 읽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알아채지 못 했던 전보의 메시지나 가상 피의자의 좌우명, 살까 말까 망설이게 만드는 브랜드 선전 문구 같은 하나의 의제를 그 편지에서 발견해 낸다. 기발한 표어 그런 거. 1행, 2행, 3행... 가로로 씌여진 편지의 각 행 첫 문자나 첫 단어를 이으면 하나의 문장이 된다. 자, 여기서, 여기서 그 비문은 이 소설이다. 탐정은 그대, 독자다. 범인은 서술자다. 편지는 그의 수많은 생각들이다. 편지가 보내어진 계기와 그 전말도 그 번잡한 잡념이자 쓰잘데기 없는 번뇌다. 논리 아니다, 비유는 그럴싸했다만 은유는 형편없다. 뭔 놈의 은유? 탐정. 인자하고 성격 좋으며 능력도 뛰어난 탐정. 그가 괜히 안 먹는 술 먹고 깽판 부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명성이 자자한 명탐정이 일순간 진상으로 바뀌는 거다. 하루아침에. 소설을 쓸 때 생각 하나 하나, 글 한 자 한 자 매우 신중하게 심사숙고해서 써야 한다. 꼭 그래야 한다. 완전 잘 써지지 않는다면 글이 안 써지는 게 오히려 낫다.
   음 생각을 하고, 생각하다가 또 딴 생각하고, 시선을 먼 곳으로 옮겨도 보고, 타인의 생각에 대해서도 떠올려 보다가 이게 글이 잘 써진다는 게 그냥 들이댄다고, 으아~ 하면서 들이댄다고, 그냥 해, 해버려, 왜 안 해, 그런다고 잘 씌여지는 것이 아니란 걸 절감한다. 왜 그런 것일까, 도 이미 많이 생각해 봤지만 쓸 데 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러니까 다음에 뭐가 써질지 냅두고 지켜보는 방법을 한 번 구사해 보는 공상을 헛되이 날려버리지 말고, 직접 그리고 지금 시도해 보기로 한다. 실패한다고 해도 글이 안 써지는 거 말고 다른 불이익은 아무 것도 없다. 손해볼 일 없다. 밑져야 본전이다. 일단 다음 문단에서는 전혀 딴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미리 선언하고 넘어간다. 그렇게 먼저 알리고 건너가면 어떤 부담감이 덜 할 것이다.
   남자는 허풍에 능하다. 물론 명대사와 명강연과 자잘한 웅변도 가능하다. 요리조리 쥐었다 폈다 휘두르고 능변을 일삼고 이성의 이성과 감성을 설득하는 것은 분명 남아의 중대한 인생사 가운데 하나다. 곧 남자는 모두 재담가이자 입담꾼이다. 여자는 꾀병에 일가견이 있다. 귀재다. 아예 타고 났다. 당연히 생활 연기의 마녀다. 오만과 편견도 예술이다. 허지만 착하다. 감정 자체가 풍요롭다. 울었다 웃었다, 화냈다가 쾌활했다가, 장르를 바꾸고 또 바꾸고. 제발 비여 내리소서, 라고 기우제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소문의 신을 연기하면 그만이니까. 둘 다 거짓말쟁이네 심술쟁이네 뭐네, 라며 부를 수도 있지만 교집합도 있지만 그렇게 두 영역이 가지는 장점이 다른 것만은 분명코 사실이다. 극명한 딴 세상. 그럼 이제 그 둘을 합해 보자. Y─XX. 합집합으로. 머머해 보자, 그래봅시다, 라고 독자를 꼬드기지는 않겠다. 독자를 군주이자 왕이자 기사에 백작과 공작이라고 상정하는 본인은 그대에게 조아리고 굽신거리며 또 볼품없고 품격없이 마냥 값싼 아양만 일삼지는 않을 것이며 고귀한 모습으로 그대의 녹을 받는다고 가정하여야 한다. 때문에 한 번 그렇게 해 보겠다. 남과 여, 그 둘의 장점, 그것을 합해 보겠다, 허락해 주소서. 부디. 그 시험을, 무모한 실험을 해보는 것을 슬쩍 눈감아 주옵소서. 만약······
   만일 그대가 그 악흥의 간청을 들어주시기만 하신다면, 그대는, 당신은 앞으로 늙지 않고 영원히 기쁘고 즐거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물론 몸은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겠지만 획기적인 젊음의 기운이 무척 오랜 기간 영속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마법에 의해 탄생한 신비의 생명수를 마시지 않아도, 엄청 비싼 동기부여 세미나에 찾아가지 않아도, 이 요사스런 술책을 일단 들어보기만 한다면 그러면 당신은 삶이 더 없이 재미나고 산다는 게, 이승에서 숨쉰다는 것이 이렇게 흥겹고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고 아~차 하는 깨달음의 환희를 겪게 될 것이다. 오 즐거워라! 아 재미있어! 이야 놀라워라! 권태와 지겨움과 심심함은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그 자리에 사랑과 정렬과 젊음이 당신의 간택을 애타게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당신은 지금 현재의 사랑이 지겨운가? 그런가? 곧 그 사랑이 다시 제 2의 제 3의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당신은 지금 가난한가? 비루한 생활 형편이라고? 점차 점차 당신은 돈을 모으고 재산을 불리고 사기를 당하지 않고, 머지 않아 재력가의 반열에 올라갈 것이다. 재계에 알려지지 않아서 순위권에 보이지 않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당신은 그런 부자가 될 것이다. 일단 마음만이라도 그렇게 꼭 될 것이다. 할 수 있다. 못할 것 없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럼. 당신은 거울을 보니 괜히 슬퍼지는가? 우울해진다고? 당신은 날로 날로 거듭하여 예뻐질 것이다. 아름다워질 것이다. 꽃보다 아름답고 친구보다 귀엽고 어느 유명인보다도 성적 매력이 풍만해질 것이다. 왜? 순 거짓말이라고? 아니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당신은 진짜로 이뻐질 것이다. 이뻐질 것이다. 자, 거울을 본다. 보라. 보시라. 거 봐라. 내 말 맞자나. 뭐랬나? 이뻐진다고 하지 않았나. 벌써 이뻐졌다 벌써. 아까보다 좀 더 이뻐졌다. 이뻐지기를 멈추지 않는다. 어머 미쳤어. 오늘은 화장 별로 안 해도 되겠다. 벌써 그 만큼 이뻐졌으니까. 그 누가 당신을 보고 반하지 않으리. 미약하나마 당신의 천상의 미모에 대해 의심쩍은 눈길을 보내는 미소년이나 괴수가 있다면 소신에게 말하라. 꼭 내게 직접 알리든 두더지나 그림자 없는 사나이를 통해 알리든 반드시 알리긴 알려야 한다. 일단 알려라. 앞뒤 보지 말고 알려라. 뒷일일랑 생각지 말아라. 그리고 당신은 진짜 예쁘다. 화장품 브랜드의 선전 문구가 바로 당신에게서 실현된다. 맑고 화사한 피부, 장밋빛 수분 생기, 시간을 초월한 엘레강스, 고상한 관능미, 이런 뭐야 이거, 아니 이럴 수가, 식물이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 풍운아라면 어느 누가 위 속옷과 아래 속옷을 맞춰 입었고, 어떤이는 그러지 않았는지-까지 속 시원히 들여다 보일 것이다. 대양 너머로 당신에 대한 칭찬과 험담도 들린다. 지구 내부의 핵과 지하 세계가 들여다 보인다. 향취에선 개코 저리 가라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당신은 원래 예뻤던 것인지도 모른다. A는 잘 생겼고 B는 못생겼다, 심지어 당신은 아직 관례 상 가려서 말해야 하는 어법을 잘 모르는 꼬마 숙녀처럼 이런 얘기도 잘 하지 않는다. 어머나 마음도 예뻐졌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끝간데 없이 아름다워지고 있지 않나. 아마도 당신은 전생에, 전전생에 동화의 나라에 사는 숲 속의 잠자는 공주였는지도 몰라, 누가 부인하겠나. 그렇게 당신은 내일은 더, 내일은 더 더 예뻐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이 얼마나 눈부시게 신기한 세상이란 말인가. 그럼 이제 설을 많이 풀었으니 이야기를 이어 간다. 너무 오래 쉬면 안 된다. 채널 돌아가고 읽던 책 덮인다. 뜸을 너무 들이면 뺨 맞게 될 수도 있다. 변죽만 올릴 수는 없는 일이고, 깐족은 고품격 소설의 실질적 감격을 위한 미끼일 뿐이다. 자, 시작한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요? 정답, (버튼 누름) 뛰. 마음이 조급하시군요. 구호를 외쳐주세요. 네. (구호) 신비주의자! 네, 정답을 말씀해 주시죠. 여자를 만족시키는 것! 아이고~ 이 일을 어쩌나, 이 문제는 객관식 문제입니다. 물론 연습 문제는 아니구요. 객관식 보기 서술에 앞서 힌트를 하나 드리죠. 바로 질문을 아니 에잇 퀴즈쑈 식상하다, 집어치우고 방금 말씀하신 서투른 답변에 맞추어 질문을 바꾸어 보는 게 어떨까요? 여자를 만족시키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요? 하지만 어딘가에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군가 그런 진짜 신비주의자가 있을 것도 같고, 존재했던가 하면서 일부러 궁금함을 자아내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자꾸 사람 마음을 뒤흔들고 들뜨게만 만드는 꾸러기 낭만주의자의 팡파레가 들리는 것도 같구료. 잘 들어보세요. 들리는군요. 빰빠라바~ 빰빠빠빰빠바~ 좌우지간 몸풀기 문제이기는 하지만 선뜻 이야기 구술이 잘 안 된다고 늘상 시간 끌고, 서론만 늘이고, 하나 마나 한 소리만 되새겨서 내놓을 거라곤 허탕과 맹탕과 공갈 뿐이 없다고는 고백하지는 않겠소이다. 그래 봤자 더 이상 믿지는 않으시겠지만 요는 심쿵-하도록 판도를 바꿀, 놀라운 그 다음─그 다음─그래서─그래서─뭔가 있어─뭔가 있어─결국 뭔가가 있어야만 해─끝내, 끝끝내 어떻게 됐다, 를 극적으로 내놓고야 말겠다는 그 이야기 전개에 대한 애착과 탐닉과 열의와 애련은 이래 봬도 변치 않고 가슴 속에 굳건히 남아 있다는 걸 알려드리는 바이오. 하이 개그? 어디서 싸구려 농담, 언제 적 수작이야, 그런 반응 다 내다보고 있단 말입니다.
   카프카의 소설 성에 나왔던 K가 끝까지 당도하지 못하던 성, 그곳은 바라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원하지 않아도 당신의 마음에 흡족하게 주변 정황이 돌아갈 것이며, 도통 모르는 게 없는 이곳 지상 세계가 아니라 모든 게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어떤 낙원이자 요원한 천국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성은 그늘진 신천지이자 재미없는 천국, 그래야 하지 않을까. 왠지 그럴 것 같다.    
   하루 아침에 불멸의 소설을 쓸 수 없다는 진리를 J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나 그 불가능의 작업을 언제부턴가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고 어쩌다 보니 계속 그 알 수 없는 것을 갈구하고 있었다. 소설 쓰기. 소설은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일까. 간혹 가다 아주 가끔 약간의 생각들을 글로 옮겨서 블로그에 남겨보기도 하지만 이건 성실성만으로 절대 포장할 수 없다는 텅빈 관념만 재확인하게 된다. 그리하여 24개의 인격들이 교대로 번갈아 가며 하나의 육신을 공유한 다중인격장애 정신이상자 빌리 밀리건의 협잡꾼 캐릭터와도 약간은 비슷한 그 녀석이 저번에 고급 호텔에서 팔자 좋게 살다가 어딘가를 탐색하다가 그가 살았던 도시로 되돌아왔다는 폐장된 놀이공원에도 가 보았다. 그곳에 들리면 다시 다시? 다시 없는 재능이 생기고 부족함이 없는 환경, TV 브라운관 안으로 쏙 들어갔다 빠져나와서 글을 쓰고 또 심심하면 쏙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에 그곳에 가 보았지만 아무런 이상 징후나 기운이나 어떤 징조나 영감, 착상, 소설 플롯의 착안 같은 새로운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흠, 아흐, 하면서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그런 일상을 보내던 그가 블로그에 비공개로 쓴 일기는 이렇다. 공개된 더 나은 정도의 연습 소설은 생략한다. 누가 댓글을 달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다. 자, 공개한다. <오늘 동물원에 갔다. 사슴을 보고 모여 있는 사슴 떼를 보고 우-우-우- 단음절로 소리를 내었더니 그들이 막 쳐다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손가락질을 했다. 사슴에게 미안하다. 사슴을 보면서 골세러모니가 왠 말인가. 그건 그냥 바디랭귀지였다. 사슴들이, 저 인간이 뭔 말 하는거야, 뭐하는 작자야, 하는 표정으로 응시하길래 잠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말이다. 동네를 산책할 때 저 사슴과 그 사슴을 보는 구경꾼의 눈빛을 보았던 것 같다. 기억난다. 어쩌면 아마도 자주 보는지도 몰라. 가끔 어느 집 대문 너머로 보는 강아지의 시선도 그렇고, 날 보는 사람들의 언뜻 스치는 그윽한 찰나의 쳐다봄 또한 사슴을 보는 나와 비슷하다. 매우 비슷하다. 완전 똑같다. 마치 유령처럼. 흡사 탐정같이. 허깨비가 아니라 백발백중 그 사람이 그 사람일 것이다. 그 때는 좋았는데 지금 뭔가 소름 돋는 분위기가 엄습한다. 매치 포인트다. 누군가가 보내는 신호다. 틀림없다. 직감이다. 이 일기가 어느 소설에 쓰이는 플래시백 기법이 될 것만 같다. 그냥 찍었다. 브라보!> 이 수필은 꼭 광인의 무슨 일기 같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거리에서 지포라이터를 하나 발견했다. 대단한 기호학자의 도움을 받을 만한 정도는 아니고, 공원에 있는 의자에 놓여 있던 지포라이터를 보니 마초들이 애용하는 유행처럼 이용하는 그 멋들어진 모션이 떠오르고, 첩보 용어 램프라이터도 생각났다. 그런데 그 지포라이터에는 그가 사는 도시의 놀이공원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놀이공원? 음 놀이공원. 그래 놀이공원. 회전목마, 대관람차, 롤러코스터, 마술의 집, 마법의 성, 환상의 숲, 바이킹 등등. 날씨 좋고 코스모스 꽃밭도 어여쁘고 어린이도 젊은 친구들도 많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괜히 가슴이 뛰어 즉시 시내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갔다. 도시의 행정 시스템은 잘 갖추어져 있다. 버스타고 핑, 도착. 그러고 보면 어지간 한 건 도시 안에 다 있다. 사람들은 모두 로빈슨 크루소고 그들이 사는 섬은 도시다. 완전 사이즈만 다를 뿐이지 딱 맞는 얘기다. 지포라이터는 버렸다. 선택받지 못했다. 녀석. 버스를 타기 전 예전부터 한 번 마셔보고 싶었던 에너지 음료를 사서 마셨다. 유체이탈 하는 생명수는 아니지만 마시면 행복해진다는 설탕물과 더불어 가장 짧은 시간에 활력을 가져다 주는 음료수라고 생각해서 한 번 마셔보고 싶었다. 음료수에 몬스터란 글씨가 씌여 있다. MONSTER!
   놀이공원에 도착함. 이곳의 브랜드가 새롭게 변했다. 로고 디자인, 텍스트 로고, 기호 로고, 슬로건 모두 옛날 옛적 구형과 다르게 변했다. 남들은 모두 웃고 친구나 연인들끼리 왔는데 그만 혼자 왔다. 홀가분하고 걸리적거리는 거도 없고 자유롭고 좋았다. 잔디밭에 푸르른 나무들, 알록달록한 조형물과 신나는 음악과 서커스 분장 인형들이 보인다. 지난 기억도 떠오르고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파릇파릇해지는 것 같으면서 왠지 센티멘탈-해진다. 전에 이곳에 들려 다른 건 다 타봤는데 그건 안 타봤다. 딱히 재미없을 듯 하고 유치한 것 같아서. 오글거리지는 않지만 좀 간지럽달까. 딱 봐도 인공 하천과 모양만 비슷한 해적선을 타고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어두컴컴한 하마인지 괴물인지 지옥문인지 모를 그곳으로 들어갔다가 여기저기 돌고 몇 가지 보여 주고 물 튀기고 나오면 끝. 그게 뭐야. 초딩도 애들 장난 같으니까 안 타고 유치원생들이나 탈 것 같지만 그래서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문득 갑자기 이걸 타고 싶다는 욕구가 발동한다. 괜한 이유로 발동이 걸렸다. 정말 뭔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과 꼭 뭘 해야겠다는 의지가 원래는 그리 확실하게 자아를 움직이거나 잘 뒤흔들지 않았지만 그 이름이 불확실한 놀이기구를 보던 순간 퍼뜩 '아 타고 싶다' 라는 의욕이 솟구쳤다. 의구심, 불안감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 드디여 탔다. 배가 움직인다. 좀 낡았지만 괜찮다. 물결이 인다. 사람들이 쳐다본다. 다른 곳에서 환호성 소리도 들리고 비명과 웃음과 잡담 소리도 들린다. 영차 영차 배가 저 어두운 구멍으로 들어간다. 프랑켄슈타인의 식도를 탐색할 것이다. 그는 이 순간 고대 전설 속 탐험가다. 영웅이자 신화 속 비중 있는 주연이다. 조연이 아니다. 다른 배에는 사람들이 연인이나 친구나 모르는 사람이래도 몇 명씩 같이 탔는데 그가 탄 배는 J 혼자다. 평균 연령이라는 아킬레스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멈칫하며 같이 탈려다 말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뭐 괜찮다. 상관없다. 혼자인 게 좋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고 흉보는 위인도 없다. 동경하는 소년도 반한 모습의 소녀도 보이지 않는다. 드디여 괴수의 입안으로 배가 들어간다. 슥 들어간다. 다 들어갔다.
   뭐야 이거. 시커멓고 까맣고 어둡고 뭔가 칙칙하고 음습한 데다가 조짐이 좋지 않다. 앞 배와 뒷 배와의 간격도 보통과 다른 듯 하다. 약간 덜컥거리고 빨라졌다 멈췄다 다시 가고 공포 영화 분위기 다음으로 물 좀 튀기고 딱히 색다른 건 없다. 역시나 그렇다. 그러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별안간 그가 탄 배가 쑥 꺼진다. 정상 뱃길을 이탈한 느낌이다. 누군가 뭔 버튼을 눌러서 그 배만 특수 협곡으로 빠진 것 같다. 그냥 그런 것 같다. 조금 가다가 배가 멈춘다. 이상하게 내려야 할 것 같다. 그곳은 바람과 소리와 향기와 자기장 등으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것 같다. 형세는 어두운 지하철 역 같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더 들어가니 왠 자동문이 있다. 지금은 도보다. 기분이 쌔 한게 계속 뭘 탈 것만 같다. 일단 걷는 것으로 힘을 뺄려나. 힘을 평소에 쓸 데가 없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의 앞에는 자동문이 있다. 자동문에는 질문이 하나 씌여 있다. <환상 특급 열차를 타시겠습니까?> 딱 보니 YES or NO 순서도처럼 어떻게 어떻게 해도 짜여진 각본대로 하나의 결론으로 도출될 수 밖에 없는 상황 같다. 거리에서 설문 조사 의뢰를 받고 설문 조사하는 아가씨와 급한 사랑에 빠져 1박2일 단둘이 밀월 여행을 떠날 일이 생기는 일상도 아닌데 이 정도 모험 쯤은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 결정했어. 가는 거다. 환상 특급? 좋아, 환상 특급. 환상 특급 아니기만 해 봐? 아니어도 괜찮다. 퇴로는 차단한다. 후퇴는 없다. 진격만이 있을 뿐이다. 행진, 전진, 앞으로!
   환상 특급 열차에 입장 완료. 열차에 타긴 탔는데 열차 안에, 놀이기구의 일종으로 보이는 열차 안에 또 열차가 있다. 그래서 뭐 그냥 어쩔 수 없지, 하면서 그 놀이기구 열차를 탄다. 뭐야 또 놀이기구? 뭔가 이상하다. 타고 보니 이건 열차가 아니라 배 같다. 이름만 환상 특급 열차였나? 대체 몇 번을 들어간 거지. 수십 번은 아니고 단 몇 번인데 벌써 마구 헷갈리기 시작한다. 덜컹대는 덜렁이 배가 비밀통로로 들어간다. J가 내림. 터널로 들어간다. 아 보인다. 저 앞에 환상 특급 열차가 있다. 그럼 그렇지. 깜짝 놀랐다. 단계별로 조금씩 나왔다가 이제 진짜가 나오는 거구나, 하면서 조금 실망했다가 기운을 차렸다. 자 이제 탑승한다. 탑승. 간단하다.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 시간이 정지하는 것. 시간이 거꾸로 가지도 않고 정지하지도 않고 다 아니고, 신기하게 모든 게 슬로우 모션으로 진행되는 것, 시간이 느려진다고, 브~~아 음악 테이프나 동영상이 늘어진 게 아니라 시간이 느려지는 것. 그리고 시간이 앞으로 뒤로 옆으로 자유자재로 빨리 움직이는 것, 패스트 모션? 항간에서는 이걸 타임머신이라고 부른다. 멀쩡히 째깍째깍 부지런히 제 속도로 움직이는 거북이 같은 시간을 놓고 괜히 토끼처럼 이랬다 저랬다. 그리고 굉장히 희귀한 병 조로증. 그것에 대해 당신은 전혀 천연기념물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이에 해당하지 않은 것 하나만으로 천혜의 행운아인 셈.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이 얼마나 큰 차이인지, 어떤 건 전자가 좋고 때로는 후자가 더 나은지. 당신은 모르는 게 없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다. 물론 미래 인류는 덜 명석하지는 않을 테고. 지금이 10년 전보다 훨씬 경기가 안 좋고 엉망이며 힘들다는 얘기도 하지만 반대로 주가와 물가등 시장 지수는 계속 완만하게 올라간다. 10년 전보다 뭐하다는 말, 뻔하고 빤한 말 같다. 그 말대로라면 무덤에서 요람까지 그 말만 하고 그 말만 듣고 살란 말인 거다. 문제는 아는 게 너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식의 양도 다다익선이기는 해서 꼭 문제될 것은 없다. 어떤 엑스터시 알약에 의해서 경험하기도 한다는 놀랍도록 시간이 느리게 슬로우 슬로우 모션으로 느리게 느리게 흐른다는 직접 경험, 환각! 그걸 아무런 악마의 부작용없이 건전하게 경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방법은 이런 이벤트나 퍼포먼스일 것이다. 큰 광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즉시 멈추고 커다란 시계의 시침과 분침과 초침도 정말 멈추거나, 시간이 뒤로 가는 컨셉이라면 사람들이 지나온 행적대로 뒤로 움직여, 딱 당신 혼자만 빼고. 그럼 예상할 수 있는 반응, 상상만 해도 즐겁다. 이 놀이공원이 한동안 이걸 준비했었나 아니면 애초에 처음 만들 때 설계한 것일까. 하긴 거의 모든 고대 성에는 비밀 통로가 있다. 비싼 일반인 주택에도 있는 곳이 있으며 군사시설에는 당연히 있고, 도시에도 상수도와 하수도, 가스, 전기, 전화, 인터넷 등등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 모든 나라 단위 궁에도 음, 그렇다. 아니라면 엉터리다. 고대 로마의 도시 설계 구조, 세계 유수의 문화 유산, 피라미드는 대략 전세계에 약 10만개가 지어져 있다. 크고 작게. 큰 거는 한 1만개? 확인은 안 해봤다. 이런 놀이공원의 전례는 한마디로 매우 흔한 일이다. 영화에서도 그간 단골 메뉴였다. 앞으로도 단골 메뉴다. 거의 모든 아동들의 몽상이자 공상이며 새파란 작은 꿈, 아니 이젠 오히려 어른 마초들이 동화를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왠지 모르게 고료 얼마짜리 환상문학상 같은 상투에서 멀어져만 가는 느낌이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오오 아득하다, 이런 저 멀리 떠내려간다. 고료 얼마, 등대가 까마득히 멀어 보인다. 이런~ 곰발바닥 같은 일이 다 있다니, 아 이게 아닌데, 오오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슬며시 들며 뒷목을 잡고 한숨을 내쉰다. 안 그럴 수가 없다. 차라리 환상-문학을 모르고 소설을 쓰지 말걸 그랬나. 간절한 열망만을 간직한 채 돌아서기는 너무 아쉬워. 뭐야 이건 꼭 노래 가사 같잖아. 흔한 유행가 가사 말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만 같다. 뭐지 뭐지. 고료! 고료를 받는다면 음 근사한 옷을 살까.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그대로 모두. 그 옷을 입고 어디를 가지? 어딘가 가겠지. 가서 이질적인 기분을 느낄 테고 그렇다면 뭘 해야겠다 떠나야겠다는 생각도 할 테야. 또는 뭐 맛난 걸 값비싼 음식을 폼나게 사 먹을까 라며 계획을 세울 거라구. 남성 잡지를 뒤적이다가 '어 이거' 라면서 그걸 즉시 살 꺼야. 기계식 키보드도 사야 돼 아니 노트북도 한 번 가져보고 싶었어. 고작 고료를 받는다면 이런 사소한 소비 말고는 할 게 없었나, 라는 생각을 할 꺼라고. 세상만사가 그리 간단한가? 허무하잖아. 할 게 없다니. 뭘 할지 모른다니. 원하고 좋아서 한 일이라지만 결과물을 만들고 상과 함께 대단한 고료를 받았는데 그렇다니. 돈을 쓸 줄 모르는 거야 아니면 고료가 작은 거야? 뭔가에 홀린 듯 속은 것 같은 상실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낭만적 미스테리 공간을 헤매다 길을 잃어버린 듯한 비애. 억장이 무너지는 건 안 어울리고, 뭐랄까 완전 허탈해. 그러면서 속담 하나가 생각나. 속담은 때론 전혀 예상치 못한 웃음과 당혹감을 팍팍 안겨줘. 정말 그래. 그러다 푸른색과 다홍빛 카네이션을 마지막으로 사고 나서 돈이 떨어져. 그 다음에 글이 안 써져. 그럼 상황이... 상황이 매우 어둡네. 그렇다. 고료를 받더라도 돈을 아껴 써야 할 것이다. 적어도 다음 작품이 번듯하게 하나 탄생할 때까지. 고료를 누가 준단 언지도 없었는데 벌써 받을, 받아서 돈 쓸 잔머리를 굴리다니 오 이런 메흐드!
   J가 탄 열차, 그것은 열차라고 했지만 환상 특급 열차라서 그런지 뭔가 수상하다. 바닥이 움직인다. 마치 큰 공항에 가면 탈 수 있는 평면의 단면의 거의 수평으로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 그런 느낌이다. 감지되는 기운은 뭐랄까. 지구의 자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이동한다고 할까. 게다가 관성에도 영향을 받는 듯 하다.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잘 모르겠다. 꼭 우주장과 달의 장력도 느껴지는 것 같다. 삼투압이 뭔지는 까먹었지만 아마 관계가 있을 것이다.
   바닥은 처음과 지금 모두 그대로지만 이동이 멈춘다. 그건 주변에 보이는 일종의 증강 현실, 가상 현실, 빛의 마술, 화려한 영상 때문에 알 수 있다. 당신의 앞에는 하나의 자동문이 있다. 당신은 이제 J다. 당신은 지금 J다. 당신은 지금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뒤를 돌아보면 돌이 되지는 않을 테지만 뭔가 불길한 감이 없잖아 있다. 자 따라한다. 절대 뒤돌아보지 마. 당연히 뒤로 가서도 안 된다. 선행 학습은 무수히 했다. 당신은 그간의 노고와 피와 땀을 허망하게 리셋하고 싶지 않다.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지치고 힘들 때 기운이 되고 도움주는 건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하지만 달래주고 다독이고 얼레고 토닥이며 구슬리고 설득하는 어조와 어투와 몸짓과 표정과 포옹과 진심 어린 눈빛은 말이나 글에서도 반드시 엿보여야만 한다. 그런 게 보인다면 그런 게 있다면 그 말이 티끌만큼이라도 먹힌다면 마음이 풍덩하고 빠지는 거다. 오케이~ 당신이 공중부양하고 있다. 아차 시간이 오바됐다. 미안하오, 낭자. 지존이여, 마초 후작이여, 드라큘라 백작이여 미안하오이다. 평소보다 조금 힘겨운 감이 있는 것 같소. 정말 그게 다요. 자 이제 붕 떴으니 가던 길 가고 하던 일을 합시다. 뭘 했드라, 어딜 만지고 있었지? 여기? 저기? 아니 한 번 더 더듬어 봐야 기억날 듯 하오. 아차 그대의 둔부가 아니라 요술램프를 쓰다 듬고 있었소. 잠깐 딴 생각을 하느라, 것 봐라, 웃자나, 일부러 무리한 노림수를 던졌지만 웃겼지 않는가, 아 힘들다. 솔직히 옛날에는 꿈에도 몰랐단 말이네. 난 정말 끈적끈적한 시선은 싫었지만 어느 날 내가 그렇게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단 말일세. 그러나 그것과 예술혼은 기실 같은 것이라오. 여자? 여자도 똑같소. 완전 똑같단 말이오. 방식은 다르죠. 그게 사람이 공룡처럼 멸종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해온 이유 가운데 핵심적인 크나 큰 이유라오. 멸종 오 멸종. 그랬다면 청춘이니 사랑이니 예술에 학문과 오락과 여흥과 작업과 여행 그리고 TV와 인터넷도 뭣도 없을 일. 다! 그게······ 이거로 연결되다니 나 원 별 요란한 요설이야, 왕자로 변할 청개구리 울음소리도 아니고 별의 별 얘기 다 듣겠네. 오늘 하루 프란츠 카프카만 물고 늘어져야겠소. 잠깐 카프카가 체코? 폴란드? 우크라이나? 오스트리아? 어디 태생이드라, 한 번 떠 본 거요. 체코요 체코. 미안하오. 살다 보니 이 머머 <하오-체>를 도저히 쓸 기회가 없었단 말이오. 드라마에서나 봐서 다행이지. 머머하는 걸로, 그런 <걸로-체>처럼. 카프카의 변신, 음. 뭔 이야기를 할려 했드라, 별 얘기는 아닌 것 같아 그냥 넘어가리다. 이제 그만 문어체에게 성화를 넘기겠소.
   자동문. 당신은 지금 자동문 앞에 서 있다. 자동문이 열린다. 어렸을 때 동화에서 봤던 이야기는 어른이 되면 모두 거짓이 아니라 아는 사람들만 아는 현실이라는 걸 깨닫는 시기가 온다. 그 마법의 실현과 마주치면 당신은 임기응변에 능할지 행동이 굼뜰지 모르겠지만 변수가 너무 많다. 당신은 그 시기가 지났을 수도 있고 지금일 수도 있으며 아직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즉 일단 어떻게 해서 만난다 할지라도 그게 그건지 그 순간에는 잘 모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마치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처럼.
   자, 자동문을 통과한다. 당신은 레테의 강을 건넜다. 각 단계의 중간에 뭔 문제를 풀어야 하는 퀴즈 같은 단락은 없다. 픽션과 현실의 차이다. 비밀 또한 현실에서는 없다. 레테, 개나 줘버리라고? 미천하지만 저와 같은 미물의 환상을 실망시키지는 말지어다. 자 당신은 전설의 소프라노, 그녀가 부르는 아리아를 듣는다. 그 음악을 들으니 오오 당신은 내게 조금 미안해 해야 하는 측은한 마음을 지녀야 하리라. 안 그러면 안 된다. 지금은, 지금은 무조건 성선설이다. 다른 거 다 필요없다. 지금은!
   너는 자동문 안으로 들어왔다. 너의 앞으로 미술교과서에서나 보았던 명화에 나오는 곡선의 계단이 있다. 너무 우아하다. 완전 고상해. 바로 이게 너에게는 딱이다. 정말 적합한 조합이다. 황홀한 하모니. 너는 동화 속 공주로 태어났어야 진정 어울릴 텐데, 음, 남자라면 그냥 소탈하게 몇 백년 전 귀족?
   계단을 올라간 후 딱 드는 느낌은 한 단어로 상쾌함. 왜냐하면 이곳은 바깥이다. 그런데 약간 반지하 원룸 같기도 하고 애매하다. 지금껏 한 번도 아나운서를 만나지 못했던 사람이 처음 아나운서를 대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느끼는 기분. 뭔가 정형화된 틀에 갖혀서 자신이 풀 수 있는 대화 주제나 형식에 대해 한계를 느끼는 것. 고루함은 아닌데 좀 이상해, 나 갇혔어 그런. 오랜 경력의 뛰어난 영화배우가 한 번도 소설가와 대화해 본 적이 없다가 처음 원숙함이 탄탄해질 대로 탄탄해진 소설가와 '소설의 영화화' 작업을 하면서 대화하고 자문받을 때 첫경험의 느낌. <와, 소설가는 원래 이런가, 우리와 말하는 방식이 아예 다른데, 일상적인 대화들과 달리 글이 머리 속에 씌여지자마자 그걸 구술하는 것 같다는 느낌? 완전 딴판이야> 그런 생경함에서 뛰쳐나오는 것과도 비슷하였다. 그렇게 싱숭생숭하고 들떠 있는데 너에게 무섭게 생긴 늑대들, 하이에나들, 개 떼들과 더 크고 무서운 동물들이 마구 뛰어온다. 하이에나의 악력 익히 봐왔다. 깊숙히 각인된 지식이다. 야수들의 정글 법칙. 호러. 킬리만자로의 표범. 너는 체신머리없이 교양은 저리 날려버리고 값싼 상스런 감탄사를 연발한다. 삐─ 삐─ 이거야? 이거였어? 이럴려고 여기까지 나를 끌고 온거야? 그렇지만 이 또한 딱 3초 무섭다 말았다. 모험의 전 과정에 단거리 전력질주 항목이 추가되었다. 가짜였다. 뭔 요상한 방법이었나. 술수. 비책. 그런 거. 신종 예술, 10년이나 더 지나서 유행할 것이다, 꼭! 지금 이전에는 드물게 곳곳에서 실험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같이 보자고. 재미있으니까. 
   '당신'을 '너'로 대치했다. 좀 더 직설적으로. 언어에 따라서 '당신'과 '너'가 같아서 구분이 따로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미묘한 차이를 달리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국어 사용자나 언어학자가 아니니까 뭔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추론해도 어른의 짠밥으로 찍어도 안 그럴 것이라고 내다볼 수는 없다. 교통 신호는 도로교통법에 따라 운영되지만 말은 꼭 문법에 따라서만 말하지도 않고 가끔 주위에 보면 1개국어만 쓰는 사람인데 꼭 1개국어를 자막이 필요하게 말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말은 알아 듣겠는데 글은 읽겠는데 자막이 필요해. 내일 아침이 되어야 아하~ 한단 말이야. 머리 속으로 생각해야 돼 자막을. 외국 영화처럼. 1개국어인데 꼭 이상하게 말을 한다. 웃음의 코드가 다른가 봐. 아차, 지금 웃으면 안 된다. 참아라. 꾹 참자. 내일, 내일 더 크게 웃어라. 지금 웃으면 이 소설이 고급이 아닌 것만 같아서 언짢다. 머머 해라, 잠시만 머머 해라-체를 쓰겠다. 참아주시라. 문법과 틀리게 말을 하거나 전혀 새롭게 글을 쓴다고 해서 경찰이 잡아가거나 민법에 기반해서 고소를 당하지는 않는 법이다. 시도 때론 그렇다. 시, 문학 옆에 있는 시. 소설도 드물게는 그럴 수 있다. 괴짜 작가가 쓰는 그런 소설.
   이제 당신, 아니 너의 앞으로는 대형 제철소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웃기고 거대한 트럭이 있다. 지금껏 계속 옆은 없었다. 있었지만 갈 수 있는 교차로도 아니고 들어갈 수 있는 골목도 아니었다. 앞에 있는 것이 아니면 모든 것은 오직 너를 앞으로 가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듯 했다. 속도는 늦출 수 있지만 진행 방향은 바꿀 수 없다. 너는 일단 트럭에 탄다. 트럭이기는 한데 꼭 커다란 연회장에 들어온 것 같다. 아무래도 탱고를 춰야하지 않나, 그렇게 착각하게 만든다. 이 연회장인지 트럭인지도 멈추는 법이 없다. 처음의 진행 방향과 동일하게 또한 지구의 자전과 반대되게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움직이는 모든 이동 수단이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덜컥 겁이 난다. 너는 꼭 겁이 난 건 아니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너는 이렇게 생각한다. 딴 생각하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라. 어서. 난 소설을 읽고 있는데, 나는, 내가 놀이공원의 비밀 통로를 탐험한다고? 맞다. 그렇다. 너는 지금 뭐해서 뭐해서 지금 여기까지 왔다. 자, 이제 너의 앞에는 모노레일이 있다. 모노레일이 있다.
   모노레일. 딱히 특별한 일 없이 계속 쉬지 않고 움직인다는 느낌만으로 너는 지금까지 왔다. 마치 너의 인생과도 같이 태어나서, 아장아장 걷다가 뛰었다가, 학교에 다니고, 더 성장하여 사람들을 만나고 그 중에 곱디 고운 연분과 함께 도달한 사랑에 빠져 살다가, 권태기를 거쳤으며, 갱년기는 아직이고, 지금 여기 모노레일 앞에 있다. 그럼 여기에 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할 것 없다. 심려할 필요조차 없다. 왜냐하면 이미 너는 모노레일에 타버렸기 때문이다.
   오오 모노레일이 움직인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지하에서 반지하로, 환영에서 실재로, 꿈에서 현실로, 트로이의 목마에서 켄타우루스로, 경마장 마권 업소 말단 삥발이 직원에서 거대 나이트클럽 사장으로, 꿈 없는 무색무취한 청춘에서 <다음에 뭐할까─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까─사랑 그거 한번 해볼까>라는 철학하기를 일단 날마다 원 없이 할 수 있는 카페 사장으로, 뭐에서 뭐로 그렇게 너는 모노레일을 탔다. 이제 소설 한 챕터를 읽은 후에는 학교 졸업 앨범을 보면서 지난 노래를 들으며 달콤한 언젠가를 떠올려 볼 것이다.
   자, 너는 모노레일에 탔다. 계속 탔다 내렸다 탔다 내렸다, 중간에 잠시 뛰고, 또 탔다 내렸다 탔다 내렸다, 이제는 곧 내릴 차례네, 이렇게 너는 생각하고 있다. 뭔 생각을 하는지 다 노출된다. 지금 현재 무슨,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이 마주치면 모두 아낌없이 전부 다 읽힌다. 그래서 너는 때로 누군가의 눈빛을 피하게 된다.
   일관된 잘 짜여진, 매우 논리적인 따라서 단정하며 읽기 쉽고 일목요연한 일정 분량의 글을 쓸 수 없다면 그건 태생적인 한계에 따른 불가능의 영역이지만 그러므로 그와 같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하나의 방법은 수없이 많은 독립된 긴밀히 연결되지 않는 생각이나 아포리즘을 기록해 놓았다가 나중 적절히 짜맞추고 편집하여 구성하는 방식, 바로 그것이다. 그 일례로 다음 문단은 지금 나와야 알맞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나온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난 이랬어, 뭐는 뭐다, 너도 뭐뭐 해야 해, 그런 말들. 하지만 그렇게 폼나게 굉장히 몸에 밴 그리고 농익은 또한 아들 아닌 누구라도 따르고 빠져들게 만드는 화술과 바디 랭귀지를 겸비한 아빠는 드물다. 아마 상당히 드물 것이다. 하나 더, 드문 데다가 그렇게 명대사를 적절하게 구사할 의지와 상황이 딱 들어맞기 역시 어렵다. 실은 찾기 힘들다고 예상하지만 남의 경우는 모르겠고, 내 경우는 어떻지? 라고 생각해 볼 딱 하나는 자기가(너가) 자기(네) 아빠가 그런가 아닌가 그거다. 가령 다음과 같은 말을 들 수 있다. '너도 이젠 여자를 알 나이가 되었다. 이 점을 명심해라. 형편없는 바보들이나 여자와 맞서거나 논리적으로 따지려고 한단다.' 이 문장이 어느 소설에 나오는지 아는 남자가 주위에 있나 찾아보자.
   모노레일. 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있을지도 모르는 모노레일에 혼자 외롭게 앉아 있으려니 너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 너는 놀이공원에 들어올 때 구입한 입장권을 꺼낸다. 자동적으로 손이 자석처럼 입장권에게로 간다. 입장권을 다시 보니 거기에는 지포라이터에서 봤던 옛날 놀이공원 브랜드 로고가 찍혀 있다. 이곳 놀이공원에 이십 몇 년 전에 와서 헤비메탈 공연을 스탠딩으로 제일 앞에서 두어 번째 줄에서 보며 바로 옆에 나시를 입고 곱게 화장한 소녀의 부드러운 살결과 한동안 맞닫아 있던 그 때의 놀이공원 로고. 새로운 브랜드 로고가 아닌. 드물게 비밀 통로에 들어가게 될 사람만 구-로고가 새겨진 표를 받게 되는 것인가? 거울을 봐도 뒤통수에 666 바코드가 찍혀 있는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너는 거울을 보면서 더 작은 거울로 자신의 뒷모습과 옆모습을 확인해 본 적이 있다. 정수리도 비춰 봤다. 그런가 안 그런가. 너는 그렇다. 딱 맞췄다. 뭐 대단한 거라고. 막 그래. 사후의 세계가 궁금하지 않은가? 우주의 시작, 빅뱅 이전은 어떻고.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는 지구와 거의 똑같은 별도 있을 텐데 그곳에 사는 생명체에겐 우리가 외계인일 것이다. 것 봐라, 넌 특별하다, 너는 외계인란 말이다. 그들이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고 연구하는 어마어마하게 큰 천체 망원경을 운영하는 천문관에도 비밀 통로나 비밀 신분, 비밀 문서, 불문율, 역대 특이한 사건이 없을 수가 없다. 신이 있다면 신은 누가 만들었을까. 표로 정리하면 종교라는 그 분야 업계 1위부터 100위까지 신과 종교론이 다 다르다. 1위 몇 명, 2위 몇 명, 3위 몇 명의 신자가 있는데 그 신이 다 달라. 그럼 그 신은 모두 언제부터 존재한 거야? 누가? 왜, 어째서? 서로 딴 얘기하는 과학과 종교 사이에 그것을 아우르는 예술이 있다. 그것은 더 현대적이라서 더 대중적이어서 영역이 더 넓다. 또 그것은 소비재와 산업, 그 논리로 연결된다. 그러면 모든 철학도 어학도 국사도 세계사도 종목도 다 나오고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게 된다. 안 그래도 원래 말이 많은 사람도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나는, 너는, 너는. 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도 있고 북유럽 신화는 기본이고 나라마다 고장마다 신화는 없는 곳이 없다. 반복한다. 너는 외계인이다. 머나 먼 지구와 비슷한 곳에 외계인, 너가 도착한다면, 그곳에서 랭보처럼 한 철을 보낸다면, 그렇다면 너는 그곳에서 선택할 게 너무 많을 것이다. 모든 분야 업계 1위만 선택할 수도 없고, 새로운 걸 만들기도 귀찮고, 진입 장벽 그래프도 생각나고. 그래서 나는 아무 것도 고르지 않겠어, 그냥 다양성을 존중할 거야, 하고 싶은 일을 할꺼야, 뭐가 되고 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면 그걸 고심하고 장고를 거듭할 꺼야, 그게 다다. 외계인인 너가 그 별의 여러 곳을 둘러보다가 어느 한적한 곳에 도착했는데 그곳의 외교부 관광과의 (옛)슬로건이 마음에 안 든다. 침략을 한 번도 어쩌고 저쩌고... 거 그거 좀 그러네, 그건 절대 관광 당사자를 위한 게 아니야... 코카콜라 슬로건의 변천사(1886 to 2015 / 나라마다 약간 다름)만 봐도 그건 명백히 소비자를 위한 거다. 그것이 충족되니까 기업 이윤도 따라가는 거고. 그런데 저건 뭔가 이상해 딱 이상해 막 이상해, 외계인인 너가 보면 여러 기준과 강자와 약자와 좌와 우와 다각적 시각과 기치관과 문화와 세계관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안이냐 밖이냐 그 차이인데 말야, 국사만 따지면 다 비슷해, 언제적 프레임이야. 주제 사라마구의 허구 양식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에 나오는 단어, 그건 픽션이나 작품에만 나와야 하지 않을까? 지금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단어, 옛날에는 엄연한 현실이었던 단어, 엄밀하고 냉혹하며 역사적인 암울한 단어. 그리고 이곳의 소설가들이 저곳의 소설가들을 만나서 담화를 나눈 내용에서 잊혀지지 않는 한 가지, 당신들께서는 (근현대사에서) 환멸적인 일이 너무 많아서, 격동의 시대상이 존재했기 때문에─말이 좋아 격동이지 잘 알거나 겪는다면 답은 안 나오고 한숨만 나올 것이다. 게다가 그곳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나'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사람 사는 데는 다 마찬가지다. 단지 몇몇 여건과 민감한 화제의 분야가 다를 뿐─쓸 소재와 주제와 사건들이 많아서 좋겠다는(정확한 동사는 잘 모름), 과장하자면 언어와 문화와 외모를 포함한 거의 모든 것이 다르다고도 할 수 있는, 지구 반대편 이웃에게 건네는 사람됨의 소명과 동료이자 직업인으로서의 그들끼리 통하는 친교의 기본이 되는 어른스러운 교우감, 전문가로서 가지는 최소한의 직분 그리고 현대인으로서 알고는 있어야 하는, 싫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지구와 시간은 무엇인가'까지 나아가기 전의 물음들, 바로 이런 기나긴 설명이 지칭하는 대표적인 단어, 외계인이 사는 도시의 지역 신문이 시기마다 무한정 규칙적으로 다룰 수 밖에 없는 단어, 그것이 알칼리성이든 산성이든 또 언제까지나 또 재조명이라지만 그건 책무고 달리 말하면 역할인 단어. 그럼 그 단어가 대체 무엇이냐? 그것은 "계엄령"이다. 따옴표 안에는 (대충 말해서 5번이든 12번이든 긍정적인 말을 할 때, 그 가운데 최소한 한 번은 부정적인 언급이 있어야 어떠어떠하다는 인문학 이론에 따른 논리로 보면) 다른 단어들을 집어 넣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원치 않는 악연이던가 지울 수 없는 오점이나 단절된 사랑, 원하지만 지금은 바라는 걸 아마도 뜻하지 않을 태어나지 않은 아이 같은. 현재와 과거의 즉 미래와 현재의 기준이 다를 테니까. 또한 (1)청춘이라는 꽃밭에 존재하는(존재했던) 수줍은 처녀이자 미숙한 청년인 당신과 (2)정보와 시간과 경험의 확장만으로는 설명이 불충분한 더도 덜도 말고 지구라는 별에 살고 있는 더 나중의 그 사람, 비로소 어른이 되어버린 그대, 원숙해지거나 미성숙한 채로 당도하게 된 연로한 청춘의 사적이거나 공적인 지금 생각 또한 (1 : 2) 다를 것이고, (1)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이름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 였다면 (2)미래의 엄마 이름은 '엄마 인생도 소중해, 엄마도 여자다.' 그래야 할 것이기 때문이, 비교적 과거보다는 포장과 형식이 더? 덜? 중요해진 지금이자 미래일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가 어떻든 미래는 아무래도, 적어도 더 낙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한다. 외계인이 당도한 행성의 어느 별천지에서의 일인 그것은 그 지역 안에서 시대를 두고 반복되었다고 한다. 1392년과 1980년 그렇게. 전자는 자세히 들어가면 정정하고 훨씬 확장해야 하며 장편으로도 감당 안 되니까 생략하고, 후자는 연좌제니 뭐니 달콤한 영화와 정반대. 포장하고 화장하는 이면에는 이처럼 어디나 누구나 민낯이 있게 마련이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날듯이. 이런 말 해도 된다면, (까놓고 말해서)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차이는 뭐냐─어떻게 다르냐왜 어느 역사는 상징 인물이 있고 또 다른 건 막 흐릿하냐고 꼬마 신사가 또는 어린이 자녀가 당신께 묻는다면 과연 뭐라 말해 줘야 하는지, 그것에 대한 도대체 뭐라 답해 줘야 하는지, 좀 더 솔직히 말해서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쪽 지역의 패전국? 전쟁종료국?의 주변을 보면 모두 쟁쟁하니까 그쪽에서는 화합과 관현악이 연주되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다른 지역에서는 피해 입은 그 주변을 보면 모두 쟁쟁하지 않고 화합과 관현악이 연주되지 않았다? 그건, 절대, 아니다. 온도나 지역과 시대와 정세의 미묘한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예술은 그것을 다뤘다. 그럴 것이다. 또한 이념, 이제는 이런 거 잘 말하지 않지 않나. 작품에는 많이 나왔지. 다만 뉴스는 반복되고, 의견은 분분하며, 소비자와 기업─능력자와 문맹─부자와 거렁뱅이의 입장과 처지가 다르니까 다각적인 시각을 알고서 세상을 살아가면 된다. 겁낼 거 없다. 과거는 챙피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바로 알고 직시하며, 배우거나 읽은 후에 예술을 감상하면 그만이다. 옛날에는 미국도 영국 식민지였다. 1776년 7월 4일에 독립을 선언하고, 1783년 파리 조약으로 독립을 인정받은 나라도 옛날에는. 이게 뭐 어때서, 말하면 누가 잡아가나, 이게 음모론인가, 왜 이런 얘기를 하겠나? 전공했거나 업이 아니라면 건조하게 알아 지식을 쌓고 현재를 살면 그만이다. 빠르고 느리고 좀 더디거나 그런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알아야 하는 역사. 재밌는데 웃지 말라는 말을 듣는, 재밌는데 언제 반복될지 모른다며 되새기는, 섬뜩하지만 재밌는 역사, 거북한 과목이지만 피하지 말고 대놓고 공부해버리면 그냥 여러 번 말해버리면 부담을 덜게 되는 역사,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고 공부도 학교 다닐 때 잘하는 게 낫다? 공부란 정말 놀랍도록 재미있는 것이구나? 내가 이걸 왜 이제야 알았지? 라고 예를 들어 설명하기엔 애매한 과목, 오히려 알고 나면 이제는 마음 편하고 말발이든 학식이든 지혜든 뭔가에 도움이 되는 주제, 다양함, 다양함을 가르치고 배우고 알고 싶고 존중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되는 그것, 다른 과목도 알고 보면 다 그렇고 모든 단어마다 또 다 역사가 있다. 그 무엇보다 당신의 인생사가! 여자들은, 이 세상을 많이 알면 알게 될수록 세계사? 아니 세상사를 불미스러워 하지 않을까? 아마도? 혹여나. 게다가 거울을 보면, 흠, 남의 떡은 왜 그렇게 커 보이는지. 짧지 않은 한마디로 줄이면 현실에 관한 현안들과 세상에 관심을 갖고 알아가면서, 삶을 사랑하고 재미없는 일도 견디며(어쩜 이게 정말 중요한지도 몰라!), 지구의 지난 일에 대해 한발짝 떨어져 학문의 과목에서 더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외계인이 볼 것이라는 관점, 신이 주사위 놀이든 하든 죽었든 오! 신이시여~하지만 내 삶 따로 신 따로든 오직 거룩하든 누가 진짜든 어쨌든 다른 차원에 알려질 것이라는 시점. 즉 하나하나의 사실과 결과도 중요하지만 의식의 화폭을 넓혀서 왜? 왜? 왜 그렇게 되었나, 라는 흐름과 초정말 현미경과 세계 최대 망원경을 다 아는 바로 당신과 타인의 인생보다, 그것만큼 소중한 당신의 삶. 그러할 리는 없겠지만, 만일 일반인이기 때문에 예술인인 그대들 그래프선의 지난 기록이 불운이나 비운에 가까웠을지라도,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의 앞날은 길운일 것이다. 좀 더 간추리면, 태어나 보니 지구야, 하필 남극이야, 나고 보니 왕이고 태어나 보니 거지야? 괜찮아 괜찮아. 탄생 선택권은 없으니까. 서쪽에서 살리에리로 태어나건 북쪽에선 평민으로 태어나건. 난 안 돼, 뭘 해도 재미없어, 이번 생은 틀렸어, 그걸 뒤집어 보자. 이승에 소풍 왔으면 웃기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라구, 밝고 자신있게, 즐기란 말이야. 누가 알아요? 어쩜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지. 지금 행복하자. 당신은 그래야 한다. 이제부터 남을 행복하게 해 주자. 우리도 행복해지자. 미래 세대에게 행복한 환경을 물려주자. 나만 행복하고 예술가는 불행해선 안 된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떼창보다 생활이 우선이다. 기본권이 최우선이다. 난 십자군 전쟁이니 뭐니 광활한 종교사를 더 알고 싶지 않다. 이처럼 저치 생각의 근간은 이렇다. 그럼 그렇지. 그 인간은 딱 요 모양 요 꼴이다. 한 발자국 내딛기가 그렇게 버겹지. 이와 같은 내용들은 곧 남자들이 한눈에 훤히 꿰뚫는 분야들이다. 그야말로 방대한 지식을 쌓은 남자들은 총(무기), 균(병균), 쇠(금속), 소금, 향신료, 척력, 인력, 환경, 뭐, 뭐 할 얘기가 많다. 그쪽으로 넘어가면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는 물 건너 간다. 배 떠나! 아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하긴 우리 별도 장수하시는 할아버지 세대 때만 해도 금주법에 신분과 노예제도도 있었고, 동성연애하면 어떻게 됐고, 여자가 뭘 해야 하는지는 엄한 인습으로 굳건히 정해져 있었으며, 뭐했고 뭐했고, 유럽의 멋지고 아름다운 관광 명소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데 말이야, 그러니 하면서. (노신사도 때로는 친구분들과 농담을 하신다. 내가 요즘 세상에 태어났다면 핸드폰이 있잖나, 핸드폰, 그걸로 여자들 다 꼬시고 다녔을 꺼야, 애석하게도 그땐 그런 물건이 없었어, 라면서) 초딩도 이런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너무 각박하게 돌아가는 건가. 알 것 같기도 하며 하나도 모르겠고 알쏭달쏭한 세상이다. 말이나 글이 길면 짧은 것보다는 당연히 허점이나 빈틈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게다가 좀 민감한 주제라면, 말 다 했다. 괜히 가만 있는 뭘 긁어 부스럼 만든다, 본전도 못 찾는다, 는 속담도 있다. 흔히 쓰는 성적인 단어, 마찬가지다. 어디서 인문-교양을 넘 봐, 귀가 간지럽다. 하지만 해박한 지식과 지혜를 갖춘 신화적인 거성이자 대학자라면 딱 보고선 한 눈에 문맥을 짚는다. 보통 조용히 사는 여자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비슷하구나, 하면서. 그래, 이건 두루뭉실한 얕은 간추림이자 얕은 얼버무림이라는 비판 역시 감수해야 하는 실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안 해도 될 말인데 수준 떨어지는데 왜 꺼낸거야, 왜냐하면 멀어지니까, 저만치 가니까, 아련히 떠나가네, 고료를 앞에 두고서, 그러니까! 그러나 이것 하나는 똑 부러지게 말 할 수 있다. 어린이가 커서 어른이 되면 그 가운데 돌아이가 있을 테고 이런 생각 아마 해 볼 것이다. 뭐야 이런~ 이 세상은 <물 반 신 반>이구만, 세상사가 뭐 그리 복잡해, 누구 말을 들어야 해, 네 말이 맞다 그래 네 말도 맞아 에고나 줏대가 없나니, 어느 세월에 신기한 소설을 쓰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놀라운 교향곡을 지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너가 탄 모노레일은 정지한다. 움직이는 줄 모르게 움직이다가 얼마 후에 멈췄다. 너는 모노레일에서 내린다. 그곳은, 그곳은 네가 살고 있는 도시의 박물관이다. 어른이 되면 잘 방문하지 않는 박물관. 놀이기구를 탔는데 정작 도착한 곳은 박물관, 왜 박물관이지, 뭔 뜻이 뭔 깊은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지, 여기 박물관의 입장권을 산다면 건물에 새겨진 로고와 입장권의 로고를 비교해 봐야겠네, 뭐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어른들은 아는 게 너무 너무 많아서 박물관에는 잘 안 간다. 다른 먼 곳으로 관광을 떠나면 그곳의 박물관은 보겠지만 자기가 살았거나 살고 있는 박물관은 좀체로 애들을 위해서가 아닌 이상 잘 보지 않는다. 모르는 게 없거든. 정말 지겹게 봐 왔거든. 그걸 한마디로 전형성이라고 한다. 그것 때문에 어떤 사람은 꼿히는 5분 짜리 음악 한 곡만 한 달 내내 듣고, 10년에 딱 한 명과 영혼의 대화를 나누고, 집에서는 육식 위주로 밖에서는 채식을 하고, 자기는 두가지 일은 못하고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한다거나, 소설은 오직 SF만 읽고, 사람이 많은 장소에는 어느 주기에 한 번 그리고 어느 시간만 그렇게 머무르고, 어디 좀-좀-좀 이상한 곳에 들릴 때면 혼자만 간다거나 그것도 규칙적이라나 그런 패턴이 형성되어 고정화된다. 그런 어떤 전형성 때문에 자기는 그게 좋거나 싫어서 그렇게 한다, 이와 같은 의견과 행동은 자기는 부모의 유전자를 타고 나서 가족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난 아빠와는(엄마와는) 다르게 살아갈 꺼야, 하면서도 나중 살아보니 그건 다른 게 아니었다고 또는 다르게 살려니까 정말 힘들었다고 하는 그런 자신의 경험에 대해 딸이나 아들에게 얘기해 주거나 글이나 다른 여러 형식의 예술을 통해서 후세에 전하게 된다. 그건 뭔가? 인─생. 너의 인생이다.
   누구나 읽었던 그림이나 글. 많이들 했던 공상. 즉 A에서 B까지 간다. A와 B는 멀다. A에서 열차를 탄다. 주인공은 1명, 너다. 열차를 타자마자 B에 도착한다. 너가 탄 열차는 거의 A에서 B까지 닫을 만큼 길다. 오오 그러니 어이없어 안 웃을 턱이 없고 아무나 생각 못 했을 리 없다. 여기서 그 말이 생각난다. 저저저저..번 챕터에 나왔던 어떤 상황에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알고 있고, NO.1을 발언하라는. 이 이야기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아는 허무맹랑하게 우낀 게 컨셉이구나. 그런 허무함을 만끽하다 너는 어른이 되었다. 너가 아직 초딩을 지나 중딩이라면 곧 어른이 될 것이다. 예언이다. 꼭 된다. 딱 된다. 막 훌륭하게 성장할 거다. 어르신이라면 만인에게 존경심을 받을 것이다. 절반쯤 그러할 것이다. 그래도 그분들도 아이를 보시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너는 아마도 놀이기구에서 박물관에 도착할 때까지 대충 몇 단계는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한두 개만 해도 이게 현실이면 완전 뚱딴지 같은 일인데 그게 여러 번 반복되었으니까. 몇 가닥 모험 이야기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수줍어 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초딩과 백수와 마초가 흔쾌히 그냥 뭐 겨우 범작은 턱걸이 하겠네, 시간 때우기 킬링 타임용으로 뭐, 라는 한줄평을 얻어 낼려면 이런 일설이 가장 어울린다. A부터 Z까지 차례로 탔다가 다시 Z부터 A까지 순서대로 내려서 도착하는 것. 앞과 뒤, 좌와 우, 너와 나 등등 낙서나 우낀 인터넷 GIF 파일에 걸맞는 균형미. 킬러가 권총을 들고 어딘가를 급습할려고 문 옆에 착 달라붙어 있다가 장전 하자마자 몸을 안으로 들이미는데 권총 피스톨이 총열 뒤로 빠져. 난감하지만 그래야 나중을 기약할 수 있다는 균등한 고조감. 그것이다. 기억의 조작과 왜곡, 과학적인 선진화된 방법, 그것 때문에 당신의 부정확한 서술은 유야무야 넘어가리라.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 스탠퍼드 선형 가속기 센터,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 계획과 구상 단계에 있을 또 다른 그런 연구소. 가 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너도 아직 안 가봤지만 가 봤다는 사람을 너는 아직 한 명도 못 만나 봤다. 나 이런,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어!, 이런 말이 나올만한 장소다. 비슷한 예로 어른이 되어 처음 들었다면 몰라도 어른들 말을 곧이 곧대로 찰떡같이 믿고 신봉하는 개구장이 약간 그 이전의 어린이라면 어른이 오존층에 관한 얘기만 해 줘도 뭐지 뭐지 뭐지, 정확하게 그러게 된다. 영특한? 영악한? 아이라면 하품 나와 시시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입자물리학에 중이온 가속기에... 뭐하는 곳인지 친절하게 말을 들어도 차분히 글로 읽어도 뭐가 뭔지 깜깜하다. 대개는 그렇다. 안 그럼 비정상이다. 진짜 그곳이 있기는 있는 걸까? 있다. 효용가치가 있나? 있다. 거기 취직할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너가 거기 입사하겠다는 실질적인 의사는 없을지라도 그냥 한번 가져 볼만한 생각이다. 그렇지만 그런 곳의 광대한 실험 장비가 이 이야기와 상당히 흡사하다. 너는 지금 목이 마른다. 물을 마신다. 차를 마신다. 잠깐 생각해보니까······ 아까부터 얘가 어디서 반말이야? 메아리가 들린다. 어디서 반말이야? 그 말을 듣기 위해서······ 일부러? 오오 놀랍군. 제법 빨라. 너 사람 너무 쉽게 감동시킨다. 뭘 좀 아네, 베테랑이야. 뭐야 이거, 의식의 흐름 기법도 아니고 뭔 수작이지. 이건 아인슈타인이 부정했던 그 과학이론의 응용이다. 그건 정통 과학 이론 이건 모략. 허나 너, 당신 드디어 그대의 마음은 지면으로 내려올 줄을 모른다. 어찌하면 좋겠소.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구료.
   소생(小生)은 정녕 무엇을 써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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