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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5. 4. 1. 16:46

   당신은 살면서 그대와 가장 비슷한 사람을 만나본 일이 있는가?
   이 물음은 소설이 시작함과 동시에 이미 수없이 반복되어 나오지만 왜, 도대체 왜, 알면서도 계~속 그 이야기를 쓰는지 모르겠고, 본인이 더 궁금하다. 사람 환장할 일이다. 그냥 계속 맨몸으로 부딪혀 보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끝까지 간다. 별 뜻 없이 써 봤다. 끝까지 간다. 왜냐하면 1.카피라이터 같잖아. 어떤 작품 제목으로 이미 많이 씌였을 테고. 이 소설 가운데 저기 여기가 어디 어디에 나와, 라고 그렇게 딱 꼬집는 말 이전에 집단 지성을 모아 보면 그 꼬집기보다 앞선 예시는 차마 셀 수가 없다. 하늘 아래 뭐가 없다는 말처럼. 2.즉답성에 최적이다. 브랜드 슬로건을 보고서 개그나 욱-하는 말발이든 인문-교양설이든 간혹 뭐라 뭐라 하니까. 예를 들어 보자. Just do it: 뭘 그냥 해?, Because I’m worth it: 누가 뭐래?, Yes: 뭐가 그래. Open Happiness: 말은 근사해.  3.잘못 건드렸어, 그런 말 같으니까. 벌집이야? 뭘 잘못 건드려? 가가멜 제조 스프 뽀글뽀글, 머리 위 주전자 스팀 부글부글. 꼭 그렇게.. 곡해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하지만 시비조의 푸념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는 것이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사람 잘못 건드렸어' 같은 말이 쓰이는 것보다 어찌 보면 뭐-한다. 습관되면 곤란하지만. 세상사와 브랜드 슬로건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나 호응 또는 무관심, 반관심, 적당한 온정, 중용, 내 관심사에 집중. 바로 그 말이다. 워 이런. 세계관, 인생관, 너무 멀리 갔다.
   자, 왜...는 저리 치우고, 당신과 비슷한 사람이 누가 누가 있을까? 도플갱어나 평행이론까지는 몰라도 대충 비슷한 사람은 많이 만나 봤을 것이다. 그리고 완전 비슷한 사람은 거의 만나 보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을 얼마 만큼 닮아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게 정해지지 않았으니 상당히 애매한 말이지만 이심전심이나 DNA 기준으로 생각해 볼 것까지는 없고, 쉽게 던지는 그런 질문에서 상대방이 질문하는 의도를 가만히 추측해 본다면 어떤 사람들이 너와 가장 잘 맞고 어울리느냐 그걸 물어본 것일 게다. 꼭 교수님이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몇마디 먹밥으로 던지시는 가벼운 서두 같지만 일단 사람들이 평생 가장 궁금해 하는 화두, 즉 나를 객관화해 보자면 꼭 필요한 화제다.
   A.무작위로 어느 한 명의 현대인을 뽑아서 그를 분석해 보면 대개 그의 광범위한 분석표가 나 자신과 근소하게 일치하지 않을지라도 어느 범주 안에서는 거의 일치한다. 비최적, 영향력 편향, 상관 없다. 왜? 스파이가 아니고 일반인이니까. 기준점에 내가 있고 그곳에서 사방으로 각 차원으로 퍼져나가는 링크를 가능한 한 적당히 공개하고 감추더라도 다른 블럭의 링크를 살펴보면 거의 비밀이 없다는 점이 나의 즉 그들의 특징이다. 그들이라고 하니까 꼭 특별한 세대의 일부 사람들을 가르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는 않다. 말만 그렇다 뿐이지 그들은 곧 나, 바꿔 말하면 당신 및 그대이다. 어느 시대, 어떤 그룹에 속하든 무소속이든 말이다. (과거의) 전 세계 첩보 기법의 원칙, 나의 앞뒤와 전후 연결 고리를 가능한 한 다른 고리에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속이는 능력이 삶의 표준이 되는 그쪽 세계와 정반대 세상에 사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법칙이다. 하지만 그건 다분히 옛날 얘기다. 일반인과 스파이를 단순히 왕과 거지로 또는 거지 같은 왕과 왕 같은 거지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인간은 맑아져서(?) 어떻게 보면 (반)투명인간과도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조사하면 다 나와, 라는 말은 영화에서도 많이 나온다. 인생 별 거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을 분석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친해지고 싶어할 마음이 드냐 안 드냐는 어떤 믿음의 근거는 속는 셈 치고 판돈을 걸고 패를 받겠다는 결단력과 동등하거나 때로는 (많은 경우) 직관적으로 그보다 앞서야 한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쉽지 않다. 때문에 그렇게 알게 되고 함께 살게 된 사람을 사전적으로 친구라거나 아내와 남편 및 동료 그리고 아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나와 굉장히 궁짝이 잘 맞고 비슷한 경우도 있을 테고, 완전 딴판이어서 항상 부딪히고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겠고 보통은 그 중간, 어중간한 어느 범위에 있을 것이다. 이것을 굳이 짧게 부르자면 인연이라고 한다. 즉 위에 쓴 얘기는 말짱 도루묵이다. 다 불필요한 말이다. 인연은 어떻다, 라고 하면 될 걸 가지고 어쩌고저쩌고, 이러쿵저러쿵, 구시렁구시렁 거린 데에 당신은 딱 걸려들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사랑과 우정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대답할 시간을 많이 주지 말고, 잠깐 생각하는 찰나에 뭔가 아는 것처럼 말 해준다. 너는 사랑을 골라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 마음은 풀어지게 되어 있으니까, 시간이 가면 사람 마음은 아이스크림처럼 녹게 되니까, 라고 말하면 뭔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사람 마음 풀어지는 게 어디 쉽나, 뭘 모르고 하는 소리지만 답할 여유를 주지 않고 읊는다면 뭔가 있어 보이게 마련이다. 즉 틈을 주지 않고, 헷갈려 할 때, 긴가민가 할 때 딱 뭐는 뭐다, 인연은 무엇이다, 라고 말하면 뭐지? 이거 뭐지?, 이렇게 된다. 하지만 그건 말이고 다시 글로 돌아와서, 사람들이 거만한 자세로 최대한 편안히 TV를 보면서 피로를 풀고, 놀기 아니면 일하기, 뭐 아니면 뭐, 무조건 뭐, 처럼 시간을 보내는 이유 같이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딱 얘기하면 재미없다. 벌써 옛날에 과학으로 증명되었다. 광고 다 빼고 본편만 틀 경우, 시청률 폭삭 곤두박질 친다는 정확한 실험으로. 본론만 말하는 보통 그런 경우는 굉장히 화가 나 있거나 사태가 심각한 경우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이유가 없다. 뭘 속이자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같이 웃자는 얘기다. 그래서 광고도 필요하고 전주곡과 추천사, 행사가 다 필요한 것이다. 이 글도 오페라 전체가 아닌 오페라의 서곡과 전주곡과 간주곡, 유명 아리아만 모아 듣고 탄생한 것이다. 그냥 영문도 모른체 툭 튀어나왔다기 보다는 50명 중 한 명꼴로 확인되는 전혀 드문 현상이 아닌 상당히 흔한 동반감각을 지니지 않았더래도 연습이나 추측, 의심, 상상, 뜻과 방향을 모를 헤아림과 호기심만으로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보통의 지능과 강력한 내-외적인 동기로 최고의 지성과 적당한 의도나 노력보다 더 나은(?), 뭔가 특이한 설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은유. 겉으로는 무관해 보이는 개념과 생각을 잇는 것. 말로만이 아닌 진짜 소리를 보고, 정말 향기를 읽고, 놀랍게도 색깔을 듣는, 의지가 아닌 태생적인 신체의 자연 기능으로써 공감각을 글과 그림과 음악으로, 그에 앞서 느낌과 인지와 생각 자체가 은유적인 것. 그것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가 있다. 훨씬 드물다는 영화에도 나오는 그 무엇. 레인 맨. 그리고 은유를 평소에 태생적으로, 습관적으로 항상 쓰는 정상의 생활. 그것을 동반감각이라고 한다. 화가나 시인이나 소설가 등에게서 8배나 많다는 능력. 당연히 본인이 연구한 건 아니다. 만류인력처럼 학계에 정설로 되어 있고, 책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굳이 출처나 인용문을 밝히는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내가 그 학설의 최초 발명자라면 이렇게 내 이름을 정확히 알리지 않고, 은근히 한술 더 떠서 콕 건드린다면 꽤 기쁠 것 같다. 적어도 "저런~" 하면서 화내지는 않을 거란 말이다. 만일 아니라면 그 예상이 틀렸다면 어쩌겠나, 점집을 차리지 않은 게 다행일 테지. 어설프게 동반감각은 없는데, 친구1이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똑같이, 그대로, 완전 짧지만, 게다가 싫지는 않지만 제법 건방진 채로 뭘 잘 외운다거나 습관적으로 그러하면 그 친구 컨셉 자체가 그렇고 캐릭터가 그렇다면, 친구2는 그런다. 원래 자폐증있는 애들이 뭐라 뭐라... 이러면 친구3은 물론 모두 재미있어 한다. 이게 친구들 사이에서라면 완전 재밌는 유머의 방식이다. 하지만 그 범위가 아니라면 다큐멘터리를 기억해야 한다. 사석이 아니니까. 공중파라면 반응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어떠한 말을 듣게 되리라는 것을. 또한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은 자폐증, 하면 자연스럽게 즉각적으로 천재를 떠올리지만 고기능-자폐-천재-서번트는 그 가운데서도 매우 드물다. 그 때문에 더 엄청 웃기고, 뭔가 더 잠시 슬프다. 당사자도 당사자지만 보호자와 주변인과 직업인들이 더 어떠한, 달력에도 보면 몇 월 며칠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이라고 나와 있다. 종이 한 장 차이의 크기가 매우 넓직한 케이스다. 단어 하나 까딱 잘못 써서 누구 하나, 많은 사람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닌가, 당연히 걱정이 앞서게 되지만 나무와 함께 숲 안에는 장애와 그 보호자와 천재가 게다가 유머와 해학까지 함께 있는 법이다. 말 한마디는 몰라도 단어를 억수로 많이 모아서 책으로 쓰면 처지는 그와 같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욕을 얻어 듣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자질을 재능으로 변모시키고 에티켓을 배우는 수 밖에 없다. 우끼는 헤드라인과 아무 내용 없는 뉴스 기사는 대부분 글이 아닌 말에서 뽑는다. 그걸 뭐라 부르나? 해프닝이라고 한다. 이거다. 해프닝의 옆자리에 있는 종이 한 장 차이, 그거다. 액자 갈아 끼우기. 내 인생이 그럼 그렇지, 라고 어른이 말하면 뭐랄까, 한마디로 아무래도 식상하다. 하지만 초딩이 그 말을 한다면, 썩 차갑지 않은 코메디다. 초딩의 동생이 이렇게 말하면 더 재미있다. "이딴거 말고 아이폰을 내놓으라고. 나도 이제 다 컷어." 글쓴이가 독자에게 그래, 나랑 한 판 떠. 그러면 아마 그 말을 내뱉고 나서 금방 후회하게 될 것 같다. 견적 보고 두어번은 안 그럴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초딩이 어른에게 하는 말이라면, 유머에 남다른 소질을 지닌 아동이라고 칭찬받을 것이다. 물론 액자 틀 바꾸기는 원하지 않았는데 쌩뚱맞게 스스로 찾아오기도 한다. 설정은 친한 남자친구들 으쌰으쌰. 그 가운데 한참 후배 한 명 동참. 그는 주로 듣는 상황. 남자들 모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악의-없이 편하게 뒷담화나 험담하는 분위기, 그분이 왔다. 급히 주제가 잡힘. 주제는 경찰! 뭐라 뭐라, 뭐라 뭐라. 후배 표정이 안 좋음. 친구들 가운데 하나 왈. "왜? 너네 아버지 경찰이야?", "네." ... ... (효과음) 윙~윙~윙~위. 그 누군가는, 자기는 은유도 뭣도 싫고 진정한 새로움만, 그 놈의 새로움만 원한다면, 이도 저도 아니라면 직유법을 기본으로 하는, 직유법만 쓰다 지겨우면 비유법을 남용하고 구어체를 남발하는 소설을 쓰게 될 것이다. 뭔 이야기 하다가 여기까지 온거야, 누가 끼어들었길래.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면 어딘가로부터 뇌파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 문단의 요점은 은유다. 50명당 1명은 동반감각 그리고 49명이 노력해서 사용 가능한 은유.
   B.평범한 삶의 소중함, 소중하고 하찮은 일상에 대한 익숙함, 익숙하고 편안한 또 소박하고 변화롭지 않지만 묵묵히 자기 일에 정진하고 그것을 계속하는 어른스러움. 지루함을 잘 참고 끝내는 그것과 화해하든 평생 불화를 겪든 주어진 삶을 끈기 있게 살아가기. 천수를 누리기. 인류 문명의 구성원으로 세계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의식이 없어도 삶은 계속된다는 담담한 인간성. 인간성? 글을 읽을 수 있게 되고, 말귀를 알아 듣고, 춤도 춰 보고, 예술을 알고, 사람과 사귀고, 일을 하며, 사랑 비슷한 것도 하다가 그렇게 성장하면서 무수히 많은 일들을 접하고 체득하는 것들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사는 것, 자기 일을 하는 것, 직업을 새로 찾거나 직장을 옮기는 일, 삶을 살고 그것을 이어 하나의 인생으로 만드는 장구한 여정. 그냥 그 모든 것을 잘 생각하고 정리해서 글로 쓰면 그것이 한 편의 소설이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은 곧 광활한 대하소설이다. 참 쉽다. 말은 간단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한 단계 위에 있는 삶의 여건을 바란다. 좀 더 괜찮은 옷, 좀 더 쾌적한 생활 여건, 좀 더 괜찮은 주말 생활, 직장에서 승진하고, 푸조 세일즈맨은 차를 좀 더 많이 팔고, 학교를 졸업하고, 술과 음식을 팔고, 서비스를 제공하며 가게 매상을 올리는 일. 그러면서 보람을 느끼는 일. 그것의 현재 단계에서 다음 스텝 정도를 바란다. 그럼 그렇게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 하면 최종 단계에 가면 간혹 실직이나 폐업을 하기도 하지만 게임으로 치면 대마왕과 싸우게 된다. 그렇게 끝판왕이 되어 공주를 구하던가 아니면 다스바이더가 되는 것이다. 이게 인생의 코스다. 바로 그것이 삶의 정규화 단계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아직도 고전적인 수법을 그 기법과 향수와 철학을 포기하지 못하는 스파이와 그의 친구 역스파이가 있다. 시대가 바꼈지만 극중에서 그들은 일반인의 뻔하고 재미없는 삶을 언젠가 살리라고 바란다. 최고의 슈퍼스타, 도저히 내려갈 수가 없어서 평범한 삶을 아주 간혹 그리워한다. 재계 몇 위, 순위권 밖이면 좋은데 완전 딱 좋은데 괜히 유명해서 빼도 박도 못하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빌 게이츠처럼 정상급, 아니 넘버 1이라면 착한 일도 해야 한다. 글쓴이는 그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불법으로 사용하고, 그는 사회에서 존경 받는다. 격이 많이 올라가면 그렇게 살아야 하지 친구들과 어울려 으쌰으쌰, 술집을 전전하고, 말썽을 부리고 기행을 일삼는다? 그러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들을 게 뻔하다. 즉 평범했던 보통의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를 순위권에 넣지 말고 바깥으로 밀려보내 달라는 주문도 간혹 심심치않게 나온다. 곧 이 말은 100의 1명은 기발한 재능이 없는, 주당 몇 시간 일하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보름이나 한달이나 일년을 일하여 그 시간을 벌어 그 기간을 살아가는, 집에서 청소하고 밥하고 애보는 바로 당신의 삶을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부럽다고 대놓고 말을 안 해도 적어도 인터뷰 질문을 받게 된다.
   그러면 굳이 유명해질 필요가 없다는 뜻일까? 그건 아니다. 그건 그냥 덤으로 따라오는 부록일 뿐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지도 모르는 별책 부록. 그건 초기에 겪게 되는 현상이고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 할, 익숙해지게 되는 삶의 편린이다. 보통 아이들의 낙서와 그림이 시대적인 화가의 작품과 닮았다고 한다. 아니 반대로 얘기한다. 몇 십년 일하고 평생 동안 재능을 발휘하고 노력하니 꼭 그 대가들의 그림이 애들 그림과 비슷해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이 대가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 당연히 못한다. 화폐 가치로 크게 매겨지지 못한다. 그 말은 그래프의 어느 지점이 비슷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당한 수업료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신동이 위대한 예술가가 되려면 말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당신을 부러워하거나 그리워하듯이 그쪽 세계도 그렇게 커다란 원이 그려진다.
   C.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다 그런 이유가 있다. 뭔가 있는 듯이 길게 글이 이어진 이유. 뭘 설명하려고 했냐, 그 의도보다 인문-교양적으로 가장 중요하다는, 보통 제목으로 쓰면 일단 혹 할 수 밖에 없는 <왜?>보다 <방법>이 더 극진히 대접받고 있다. 바로 지금. 그건 이 다음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다. 앞에 나온 A 다음에 B가 나와서는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논리에 맞지 않다. 이야기가 안 된다. 반은 인간, 반은 말이 되니까. 인어가 공주라니, 어-머-나! 저 푸른 하늘의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보다 뽀송뽀송하고, 쳄발로 소리가 가미된 요술의 음악이 울리는 회전목마보다 더 달콤하겠지만, 글쎄올시다. 그건 글이 아니라 말이다. 횡성수설, 이러쿵저러쿵. 그 중간을 어디다 잃어버린 거다. 하지만 A와 B를 잇는 노력, 그럴려는 시도, 이게 주제라고 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래서 C가 필요한 것이다. 난세의 영웅과 태평천하의 예술은 몰라도 이 쯤의 친절은 그 상황에 긴요한 법이다. 대게 남자는 현실을 말한다. 스냅스도 많고 뇌용적도 크니까 과거도 말하고 미래도 예견한다. 그런데 여자는 보통 꿈을 얘기한다. 목마와 숙녀, 희망의 찬가도 좋아한다. 소녀가 아니어도 동경심은 기본이다. 그렇게 꿈을 얘기하다 엉킨다. 많이 엉킨다. 아예 생활이다. 그래서 수다가 나온다. 그걸 글로 표현하면, 1번 문장 다음에 2번 문장이 나오면 안 된다, 가 된다. 절대 안 된다, 가 된다. 1번 문장 다음에 2번 문장, 난감하다. 그런데 그게 계속된다. 계속, 계속, 끝까지. 그러다 끝난다. 그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생명력을 결속시키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 뭔가는 대체 무엇일까? 정체는 몰라도 이름은 있다. 드림위버! 말은 기가 막힌다. 은유로써 결코 그려낼 수 없는 이상함을 직유를 통해 누군가의 마음에 그 마법을 스며들 수 있게 하는 것, 누군가는 그 길을 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오랜 일반인 생활의 열매이자 결실이고 코메디이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면 4지선다형 문제를 옛날에 많이 풀어 봤을 것이다. 학생들은 지금 한창 신물..이 아니라 미래를 떠올리며 진득히 풀고 있다. 그게 그거다. A와 B를 잇는 교각을 예술적으로 잘 만드는 방법. 그 방법의 하나, 4지선다형 문제. 쪽지 시험이나 중간고사 말고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경험하는 대입시험의 4지선다형 문제가 어떻게 만들어지나. 호텔 같은데에 출제 위원이 갇혀서 탄생한다. 영화처럼 갇혀서! 출제위원이 남자라면 술-놀궁리-미녀-오빠 믿지-낚시-게임-여자를 떠올리면서 (출제 위원이 지금보다 훨 젊었을 때 그랬을 것이라고 가정), 드물지만 여자라면 바다-요트-면세점-해외 여행-드라마-영화-남자-운명같은 남자를 상상하면서, 간간히 끽연하면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정해진 식단만 먹어가면서, 외부와 연락을 해서는 안되고, 일정한 생활의 제한을 받으면서, 나가면 뭐 하겠다, 뭐 하고 싶다, 라면서 그렇게 만들어지는 시험 문제, 그것을 만드는 출제 위원. 완전 영화 같다. 그런데 이런 건 영화로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소재로 쓰이기에 별로 재미없을 것 같나 보다. 그렇게 출제 위원에 의해 만들어지는 4지선다형 문제의 틀린 또는 딱 맞는 연결 찾기 문제. 뭔가와 완전 똑같다. 매우 비슷하다. 우연이란 말인가? 누구도 모를 일이다.
   남자가 자주 말하는 현실이라는 X축과 여자가 애원하거나 그저 웃음짓고 대화하는 꿈이라는 Y축은 사람마다 모두 그 기울기가 다르다. 나는, 내일 좀 더 행복하겠다, 그러고 싶다, 나는 어떻게 살기를 바라지만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나는 그런 거 다 상관 안 해, 까지는 몰라도 말과 생각과 느낌을 글로써 최대한 정제하여 구체화시키는 일. 읽기에, 단돈 몇 푼짜리 음료수 병에 씌여진 그 음료수의 표어와 성분과 함량과 효능에 대해 읽는 것처럼 단촐한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그것이 쉽고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면,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하여, 그 단숨함을 위해서라면 글이 어떻게든 길어지고 말도 안 되게 이상해지며 계속 또, 계속 또, 또 계속 다른 다음의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해지더래도 괜찮다. 바로 여기서는 그렇다. 뭐는 뭐다, A는 B다, 라는 단숨함을 말하려면 때에 따라 C라는 단순한(?) 설명이 필요하다. 또는 A와 B라는 오늘에 내일이라는 C를 서로 합하는 일, 지금 그 일에 대해 쓰고 있다. 무책임하게 그것을 시도라고 부르련다. 수준 이하, 부적합, 실패, 해도 괜찮으니까.
   사람들은 어떤 영화, 책, 휴양지가 어떻다는 글을 읽고 나서, 별로~라는 뭐할 거라는 조언을 듣고 나서, 난 괜찮아, 하면서 능히 감행한다. 재미없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일단 겪어 보고, 살아 보고, 체험하고, 나중에 얘기하겠다는 것이다. 부자가 되어 봐야 별 거 없어, 유명해져 봤자 쓸 데 없다니까, 한 번 뜬 뒤에 다시 내려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줄 왜 젊은 친구들은 모르는지, 라는 말을 들어도 자기도 그 허상을 논하고 무상함에 대해 노래 부르고 싶어한다. 적어도 노인에 비해 젊은이는 말이다. 즉 인문-교양학과는 정반대가 인간의 본성이고, 인간의 그 타성을 뒤집으면 인문-교양학이 된다. 뭐 이렇게 쉽지? 체화된 인지, 알아야 말을 하니까 일단 간접 경험은 기본이고 직접 경험은 필요하거나 생각 좀 해 봐야 한다는 의미다. 미리 직접 경험한 사람의 말을 듣고, 인문-교양서에 나온 데로 행동하고 살면 되지만 사람들은 먼 길 돌아가는데에 제법 너그롭다는 뜻이다. 영화와 드라마와 잡지를 보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모두 담겨 있다. 전부 다 사진을 찍어서 보여준다. 마음이 살살 녹는다 같은 덜 멋진 감상기와 문학적인 미사여구도 곁들여진다. 심미주의, 유미주의, 퇴폐주의? 모르겠고, 언젠가는 촌스러워지겠지만 그 세상이 그래프 선의 제일 앞 단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장소에 실제 가보면 안개가 심하게 끼어 있거나 시끌벅적 사람이 너무 많거나─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하지만 가끔 분위기 잡고 관조적으로 외로운 기분을 느껴 보고 싶은 순간이 누구나 있다. 고독한 도시 남자 뭐 이런, 쓸쓸한 섬 처녀 이렇게. 어느 유명 미술관에 가서 모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그 그림을 볼려고 시도한 사람들 많을 것이다. 안 가본 사람은 말만 들었을 테지. 수많은 인파 때문에 모나리자는 커녕, 사람들 뒤통수만 원-없이 봤다고. 그 인파면 그림은 몰라도 쟁쟁한 인물들과 미녀들이 상당수 있었을 텐데, 오직 뒤통수만! 숭고하다, 장엄하다, 아름답다, 무섭다, 도저히 말이나 글로는 표현 불가능 하다, 하나의 매체로는 설명이 안 된다, 뭐라 하지만 그건 모두, 전부 모나리자라는 알맹이에 대한 얘기만 하는 것 같다. 책 한 권이든 한 사람이 그리고 한 인간의 평생 걸려 만든 저작물들과 전 작품이 또 그리고 거의 모든 수많은 예술가들이 평생을 들여 다듬고 형상을 만들어내는 실체는 어떻게 보면 거의 모두 모나리자다. 달과 6펜스와 한 예술가의 초상과 그의 작품들. 모나리자를 보러 갔는데 멀리서 그 액자는 고사하고 사람들 뒤통수만 맘껏 봤다는 일이 거의 전부일 텐데 대중 예술의 꽃, 진정한 유머는 진지한 예술 세계에서는 약간 가치가 폄하되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분위기가 별로거나 생각보다 멋지지 않거나, 딱 그 성곽만 멋지거나 영화를 볼 때와 잡지에서 봤을 때의 기분이 안 난다. 그래서 직접 가보니 맑고 조용할 때 또 내가 쾌적한 상태로 그렇게 최적의 상황일 때 보면 괜찮겠네, 라는 경험담을 얘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가 봐야 별 거 없어, 라는 말발만 듣고 평생을 살았으니까. 멋진 광고에 나온 차를 타고 옷을 입었어. 그런데 그 들뜬 마음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아. 그래서 적응의 관점에서 보는 행복지수의 미묘한 균형을 살피라고 얘기하지만 딱 그대로만 살면 답답하고 재미없고 그럴 수도 없다. 소설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소설을 써야 하겠지. 그렇다. A에서 말한 삶의 비밀, 인연의 연속. B에서 말한 반드시 누군가는 당신의 삶을 동경하고 궁금해 하고 부러워한다는 믿음. 그 바보같지만 결코 어리석지 않은 맹신 아니 그냥 그런 것일 뿐이라는 이치. 그대가 아무리 현재 자신의 삶이 따분하고, 심심하고, 답답하고, 재미없을지라도! A와 B의 중간, 그 연결 고리에 대한 해석 즉 직유법. 억지 매칭이라는 퍼즐 풀기와 두 그림의 다른 점 찾기. 삶을 대놓고 보기. 잠깐 비유하고, 책상 다리인지 코끼리 뒷다리인지 낙원에 있는 궁전의 기둥인지 몰라도, 잭과 강남콩은 집에서 키우는 화분이라고 은유로 슥 던져보기. 지금 그대는 그리고 J는 바로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심하고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하고 1인칭으로 유난스레 너스레를 잘 부리지 못하는, 아첨과 아양의 기술이 부족한 그와 당신은 그러고 있다. 살면서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텐데 그런 고민을 한 번쯤 해 봐야 하지 않겠냐는 논지다. 아니면 나중 수많은 작품의 힌트로 쓰인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 탱크에 사람이 아바타처럼 들어가 있는 인체-냉동-보존-센터를 견학하자는 것이다. 기술과 학술적으로 어떻다, 그건 몰라도 알아도 머리 아프고, 재미로 둘러보면 좋겠다는 것일 게다. 뭐야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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