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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5. 5. 9. 17:42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당신의 꿈은 뭐였소? 그대가 사랑했던 하나의 그림과 음악과 글, 그것은 무엇이었냔 말이오!
   표현주의와 상징주의, 염세주의등을 잘 거론하지는 못하여도 지금 또는 근래, 오랜 과거에 공부하거나 읽거나 들어보기는 했던 친구가 있다면 부담없이 가볍게 얘기 나눌 수 있는 흔한 대화의 소재로 쓰일 수 있는 질문이다. 예를 들면, "내가 요즘 쓰고 있는 글은 이래.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라는 음악과 드 쿠닝의 그림, 인지심리학과 사회경제학을 융합한 이론을 통찰하고 아름답게 포장하여 모두 한아름에 품어 안은 듯한 시적인 이야기. 옛날에 시를 쓰고 싶어서 딱 한 편의 시를 썼던 적이 있었어. 많이도 말고 단 한 편. 그 때 펜팔해서 만났던 목소리가 이쁜 어느 소녀에게 내가 쓴 딱 한 편의 시, 그걸 선물했지. 그런데 그건 거의 낙서였어. 지금 생각해도 아무 의미없는 끄적거림, 그것이었지.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희망을 품게 한다는 책무도, 헛바람이든 환상이든 뭔가를 불어넣는다는 수법도 모르는 단순한 백일몽 같은, 그래도 나름 순진한 아주 약간 순수한 장난. 아마도 그 분야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나봐. 어쩌면 그래서 지금 한 편의 소설을 쓰고 있지지도 몰라. 아 꿈이 뭐였냐고? 어떻게 꼽겠어, 날마다 바꼈는 걸."
   '어떻게 질문하라' 를 수십 년 가르치는 심문 전문가, 30년 경력의 베테랑 심문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어 보면 자기가 추궁받는 것 같은 심정이 드는지 안 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날 사랑해, 사랑하지 않아?' 라는 선택형 대사처럼 '예'와 '아니오'로만 답하라고 직업병처럼 말하는 손꼽히게 잘 나가는 변호사, 영화에서만 그런지 실제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위의 질문은 그런 심문 전문가와 변호사보다는 놀이터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즐겁게 놀고, 웃으며, 별 이유없이 좋아라 하는, 언제나 기쁨이라는 순수한 상태에 어렵지 않게 안착해 있는 아이들의 물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복잡하고 어렵게 셈하며 추론하고 연역하여 몇 가지 답을 미리 예측하여 물어보는 질문이 아닌 매우 막연한 물음표, 그것이다. 깊고 멀리 다각도로 그리고 복합적으로 짱구를 굴린 다음에 꺼내는 용건, 또는 1차적 직관 즉 그 1차적을 위해 선천적인 재능과 평생의 노련미가 담겨진 블링킹에 따라 즉흥적으로 붇는 시비? 그 모든 것을 게다가 제깍 순식간에 해치워서 계산한 다음에 묻는 문장이 아닌 느낌과 생각과 마음이 툭 튀어나와서 상대방이 탁 하고 듣는 과정, 그것의 시작, 닮고 싶지만 결코 닮을 수 없는 따라하기 어려운 그 무엇, 어린이의 그 궁금증을 억지로 흉내내어 본 것에 불과하다.
   이 챕터의 첫 문장을 왜 이렇게 썼는고 하니 그것은 J가 예전 썼던, 나는 어떠한 스타일의 글을 쓰고 싶다, 나도 어떤 글을 쓰고 싶다, 이런 느낌으로 베스트셀러 취향이 아닌 단 몇 명의 (초)극소수의 정신줄을 그야말로 완벽하게 놓아 버리게 할 수 있는 그런 혼돈의 마성과도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앞서의 기억을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1인칭 소설은 아니지만 일단은 챕터에 따라서 부분적으로 그가 주인공이니까 그가 지금 하는 생각, 외부에서 주어진 모험과 우연과 행운이 아닌, 그 인간의 내부적인 심리에 촛점을 맞추어 보면 결국 지금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방금 전 문장에서 그렇게 예언했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열광과 갈채를 포지셔닝한다, 그것은 십대의 마음과 상당히 유사하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유명인을 남들이 친구들이 좋아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즉 나는 특별해 나는 이래 나는 어때, 라고 말하고 표현하지 않아도, 갈고 닦아서 후천적으로 뛰어날 수 있는 자질이 아닌 선천적으로 1차적으로 곧 취향만으로 검은 백조이고 싶은 느낌, 아름다운 건 아름답다고 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건 못되니까 내 능력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안목에 대해서 얘기 듣고 싶은 마음, 괜찮아라 하는 작가의 책이 인기없고 도서관 종합자료실에서 냉대를 받고 독서 웹사이트에서 숫자 자체가 극히 낮으면 십대의 기분이 어떻겠나? 날아갈 듯 하겠지. 그래서 어떤 열광의 주체가 극소수에서 다수로 바뀐다면 그건 비명이라는 하나의 명사로 축약할 수 있고, 그 단어 앞에 당연히 상반되는 꾸밈어 '행복한'이 붙게 된다.
   지금의 순서와 과정에서 하는 생각, 그 생각이라는 것은 이렇다. (내가) 또 다시 최근에 썼던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예전처럼 밑줄 긋는 수준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쓰고 싶다는 황당무계한 그런 한소리 듣기에 딱 적합한 바램은 지난 어리석은 소망이었고, 그냥 최근에 썼던 쓰고 있는 그 만큼으로만 (제가) 무리없이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던 일을 계속 하는 일상처럼, 회사에서 짤릴까 봐 벌벌 떨면서 일하지 않고 적당히 하루하루 놀면서 즐겁게 사는 듯 그렇게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처럼 어렵지 않게 일 하듯이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제가 감히? 어떻게 또 다시? 또 다시 그렇게 글을 쓸 수 있을까? 대충 규칙적으로 블로그 포스팅 남기는 게 전부였는데, 또 뭔가를 업데이트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이라는 것은 이랬다. 꽤 우습고 썩 겸손하게 건방져 보일 수도 있지만 달리 보자면 그건 1) 바라는 기준선과 2) 현실과 타협하는 기대치가 낮아졌다는 말이다. 그 커트라인이 낮춰지는 동안 도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그리도 염원했던 글쓰기 레벨을 스스로 폭탄 세일하게 된 것이냐 하면, 달리 큰 일은 없었고 다만 그것은 단순한 변덕에 가까운 현실과 크레파스 그림이나 어린이가 그린 수채화와 쏙 닮은 이상의 타협이었을 것이다. 그 기간 동안에 걸친 변화의 양질과 성격이 대관절 뭔 말을 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뜻 하는지, 정녕 왜 그랬는지─왜라니, 모리스 콘키스에게 물어보는 게 훨씬 빠르겠다─그건 몰이해하고 불확실하지만 그 부여된 동기가 비상하고, 명철한 이유가 상당히 이상한 것 하나는 확실하다.
   자,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는 예전 어느 때 19세기 20세기 21세기 글 가운데 (자기가 마음에 들어라 하는) 최고의 밑줄을 압축하여 그것만을 모아 놓은 듯한 말도 안 되는, 꿈도 야무진 새롭고 신선한 별종의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다, 어떻게? 그냥 최근에 썼던 정도로만 근근히 블로그 포스트만 쓰고 싶어라, 이렇게. 뭔 조짐인가는 몰라도 사실이 그랬다. 엄연한 실측이 그렇다. 그러면, 그러면 앞으로 다가올 변화의 바람은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에 물음표를 붙이기엔 뭔가 재수없다. 그것이 수수께끼라면 다행이고, 보통은 넌센스 게임이며, 만일 악수로 예상된다면 누구에게나 아무에게나 별다른 관심사가 아니라서 큰 흥행 요소는 아니기 때문에 1번 읽거나 1번 듣고 잊어버릴 이야기이기 때문에 영리를 목적으로 연극, 영화, 서커스, 소설 따위를 요금을 받고 대중에게 보여주기엔 부적절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니까 그 인간 상태가 멀쩡할 리가 없다. 안 그래도 뭐한 상태가 말이다. 사연은 그러했다. 뭐야 잠깐, 누군가 밑줄을 그을 만한 글이 나왔나? 안 나왔다. 이런 개뿔. 그럼 그렇지.
   다음은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짧고 툭툭 던지는 대화체가 나온다. 일상적인 남자들의 대화와 비슷해서 가장 현실에 가깝지만 결코 현실과 같지는 않다.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에 나오는 대화는 전부 완전 과장된 거다. 백프로 미화됨! 현실과 비슷하고 살짝 다른 이야기들과 몇몇 사연과 정담을 대화에 포함시켜서 소개한다. 목적 불문하고 논리보다 직관에 따라 감각적으로 일단 읽고 나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게 지금 급하게 결정한 권장할 만한 독서법이다.
   「얘 옛날에 놀이공원에 가서 바이킹 처음 탈 때, 바이킹에서 기절했자나.
   「왜 하필 바이킹이야?
   「원래 인생이 다 그렇잖아.
   「원래 인생이 그렇다? 바이킹에서 기절 하는 일이 인생이구나.
   「그게 뭐야?
   「뭐긴 뭐야 인생이라니깐.
   「아휴 증말 놀고들 있네.
   「너는 관상을 보니... 음, 구강학적으로 아니 가족력 때문에 내분비계적으로 유난히 침샘이 건강한 듯한 그래서 놀이공원에서 바이킹 탈 때 건너편에 앉아 있는 미녀들에게 침을 많이 바람에 띄워 보냈을 것 같아. 마치 연애편지처럼. 그것도 한가득.
   「아니야. 난 바이킹 탈 때 고개 팍 숙여. 눈도 감어. 완전 움츠리고 앞에 손잡이 꽉 잡고 있어. 하지만 오줌은 안 싸.
   「바보같은 녀석.
   「펠리컨 같은 놈.
   「밥통.
   「미련 곰탱이.
   「반사.
   「거울.
   「자충수.
   「너가 얘 때렸지? 애가 왜 이래? 안 그래도 상태가 안 좋은데 말야.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 거야?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맨날 똑같은 레파토리 식상한 멘트, 이젠 지겹지도 않아.
   「아니, 난 재밌는데.
   「아니, 난 재밌는데. 말 따라하기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뭔 소리야?
   침묵. 대화가 끊겼다. 새소리 효과음이 들리는 것 같다. 꺅~ 꺅~ 대답없는 메아리. 원래 말로 확인하는 건 남자들이 선호하는 특징이지만, 서로들 속으로 딴생각을 하고 겉으로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상황 즉 다른 주파수의 라디오 방송을 말하는 DJ들로 전이되어 각자 독립된 말하기를 주로 하는 것 또한 남자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혼돈과 소란을 즐기는 것처럼 이러면서 노는 거다. 그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말을 받아준다.
   「뭐야? 늬가 카피라이트 작가냐?
   「어, 어떻게 알았어? 새로운 광고 카피라이트인데.
   「그냥 찍었어.
   갑자기 그들 앞으로 주인이 있을 것도 같고 없을 것도 같은 강아지 한마리가 지나간다.
   「항상 킁킁거리고, 아무거나 핥아대고, 내력없이 짓고, 난데없이 배를 까며 아무나 좋다며 꼬리 흔들고 달라들어 험핑하는 착해 빠진 녀석. 그 이름도 다의적인..
   「뭐? 내가 그렇다고?
   「아니. 개가 그렇다고.
   「아니. 개가 그렇다고. 또 말 따라하기다. 어렸을 때 그러다 고약한 어른을 만났다면 된통 혼났을지도 모른다.
   「호도하기는.
   「뭐 호도? 이 녀석이 어디서 어려운 말을 쓰고 그래?
   「호도하다 몰라? 아니 나이가 몇인데 그런 말도 모르냐? 한술 더 뜨기. 부족한 듯 해서 화자가 다시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을 이어서 말한다.
   「어, 그럼 완상하다는 뭔 뜻이야? 방금 전 상황에서는 완상할 줄 알아야 하는 거야.
   「설마 모르기야 하겄어(하겠어)? 말 보다는 글에서 간혹 쓰이니까 쟤가 잠시 쫄았나 봐.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그런 불안 심리가 깔린거지. 봐봐 얼굴 빨개지네.
   「나 원래 얼굴 빨갛거든. 그 말하니까 옛날 생각난다. 예전 대학교 1학년 때 우리 과에 나보다 얼굴 더 빨간 친구가 있었잖아. 어느 날 강의실에서 교수님이 강의 중에 갑자기 그 친구 보고 그러시는 거야. '자네는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갛나? 혹시 술 먹고 들어온 거 아닌가?' 그래서 그 후로 걔는 그 강의가 종강할 때까지 항상 강의에 참석하기 전에 술을 꼬박꼬박 한 병씩 마시고 강의실에 들어갔잖냐. 지성의 전당인 대학교에 낭만파가 아닌 코메디언도 한 명 필요하다. 무언의 퍼포먼스로 알아달라, 그 말을 하고 싶었나 봐. 큰 인기는 없었지만 독특한 녀석이었어.
   「그 친구 그래도 재미있었을 거야. 처음엔 오기였지만 나중엔 즐겼을 게 틀림없어. 아 나도 재미난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나도. 아아 뭔 일을 해도, 뭘 해도 재미없다.
   「그럼피캣 같은 놈 같으니라고. 넌 회복탄력성이 없는 게 문제야. 그러니까 일도 노는 것도 게다가 일상까지 모두 다 재미없지.
   「뜬금없이 뭔 회복탄력성?
   「그냥 어제 책에서 본 단어인데 한 번 써먹고 싶었어. 오랫만에 인문-교양서를 읽었다는 거 아냐.
   「그게 다야? 싱거운 놈.
   「넌 날 몰라.
   「남자는 관심 없어.
   「너는 일 재밌냐?
   「세상에 일이 재밌는 사람이 어딨냐? 아니 조금 있기는 있을 꺼야. 그러면 세상에 공부가 재밌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그것도 조금이나마 없지는 않을 테고. 그런 머저리들 같으니라고. 아무튼 난 그런 천재도 아니고, 난 일 재미없어.
   「일도 재미없고, 노는 것도 재미없고, 말장난하는 것도 재미없고, 대화하는 것도 수준 하고는... 에이 뭘 해도 재미없어.
   「어? 그거 명대사 같은데. 뭘 해도 재미없어. 뭘 해도 재미없다. 음, 기분이 이상한데.
   잠깐 침묵. 캔맥주 한 모금.
   「명대사 아는 거 있음 하나씩 말해 봐.
   「손만 잡고 잘께.
   「그냥 해 보는 건 없어. 하냐 안 하냐, 둘 중 하나야.
   「더(The) 빼버려.
   「인생은 짧지만 인생을 막 살지는 말자.
   「뭐야 그거 명대사야? 이상한데, 아닌.. 것 같은데? 어디에 나오는 거야?
   「아무데도 안 나와. 그냥 해 본 말이야.
   「이런~.
   「개 풀 뜯어 먹는 소리하고 있구먼(만). 개가 풀을 어쩌다 한 번 뭐 때문에 풀을 뜯어 먹는다고 이미 밝혀졌지만, 개가 풀 뜯어 먹으면 뭔가 좀 신기해, 웃겨.
   「그럼 눈치 깠으면 즉시 말을 바로 따라했어야지~ 박자를 못 맞추고, 눈치도 없고, 연애도 못해. 그러니 여자 마음을 알 수가 있나.
   「그 얘긴 그만해. 머리 아프니까.
   「일단 여자는 잘 맞춰 주는 게 중요해. 늬 말하는 속도가 안 빨라도 돼. 너의 속도 자체는 안 중요해. 하지만 상대방과 말하는 속도를 맞추란 말야. 행동도 그렇고. 너만 혼자 앞서가고 뒤쳐지고 하지 말고, 상대방과 맞춰, 하모니, 몰라? 보통의 균등한 음절과 운이 이어지다가 말이 점점 빨라진다~ 느려진다~, 목소리가 커진다~ 작아진다~, 말수가 많아졌다~ 적어졌다~, 기본적인 몇 가지 무엇. 너무 늦지 않게 말하는 속도의 비율을 맞추어야지. 맥락과 리듬을 듣는 것처럼 대화가 약간은 악보로 시각화되지 않으면 곤란해. 날 이끌어 줘, 라고 말하는 듯한 끌리는 눈빛도 읽어야 해. 일부러 반대되는 유형에 내 의식을 결부시키는 건 회사에서 프로모션 회의하고 바깥으로 나가 신제품 영업하는 거랑 똑같다구. 한마디로 피곤한 일이지. 경이로운 신비를 찾지 못한다면 말이야. 혹시 그 카피라이트 기억나니? 사랑도 일이다! 당연히 기억나지 않겠지. 안 팔렸거든. 내가 지었어. 팔 생각도 없었으니까 시장에 나오지도 못했지. 세일즈도 연애도 원래 힘든거야. 
   「그만 하라니까 이 자식이, 나도 알기는 알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덥다 춥다 그런 날씨 말고, 우리 내면의 일기예보. 아는 데.. 아는 데... 잘 안 돼.
   「늬 말마따나 실천이 중요하지. 세상일이 그렇잖아. 1년 후를 예측하고, 지금 최근의 성과를 따져 그리고 지난날의 결과를 말하지. 간혹 그런..게 떠올라. 자꾸 이론과 경험을 얘기하고 싶어지는 거 말야. 왜 자꾸 이러는 거지, 하면서. 어차피 지난 날의 얘기라면, 실은 그런 걸 다 몰랐을 때의 얘기가 더 재미있는데 말이다.
   「그러게 말이야.」
   「너네들 그거 아니? 꼭 트위터에서 해쉬태그(#) 달고 머머를 해보자, 그런 거 있잖아, 모든 말 앞에(뒤에) 삐─를 붙여 보자. 지금 이런 거랑 비슷해져 가고 있어. 이제 그만 하렴.」
   「그래, 완전 초딩 같아. 꼭 어느 세일즈맨의 초상 같아. 초상 맞나? 세일즈맨이 아니라 예술가던가. 우린 뭐지.
   연애코치를 하는 친구와 받는 친구를 놓고서 갑자기 한 친구가 불쑥 진지한 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게 뭔지 알아? 이게 뭔지 알기나 해? 모를거야 왠지 알아? 낙인을 찍지 않고는 이게 뭔지를 보지 못하니까. 바로 이어서 또 다시 말한다.
   「보이스카웃 때 잔디에 누워 바라보았던 별똥별. 집 앞 도로에 늘어선 노란 빛깔의 단풍잎. 메마른 종이결 같던 할머니의 손과 살결. 사촌 토니의 신형 화이어버드를 처음 구경했던 순간. 그리고 제인, 나의 공주. 그리고 캐롤린.
   「와 뭐야, 얘 갑자기 왜 이래. 약 먹었나?
   「오 제법인데~
   「와 사람이 달라보인다야. 맨날 헛소리 한 번, 개소리 한 번 하는 줄만 알았드니만 (짝짝짝). 간지러운 박수 받는 걸로는 부족했는지 명대사 또 나온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가슴이 벅찰 때가 있다, 터질듯이 부푼 풍선처럼.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걸 깨달으면 희열이 몸 안에 빗물처럼 흘러 오직 감사의 마음만이 생긴다. 소박하게 살아온 내 인생의 모든 순간들에 대하여... 오늘은 나의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
   「뭐야? 그걸 다 외웠단 말야? 오 이런~
   「그러게 와우~ 여기서 써먹긴 아깝지만 와 대단하다.
   「아직 안 끝났어. 쉬지 않고 이어서 말한다.
   「바로 그거야! 크고 시끄럽고 빠르게 펑펑 터뜨려, 사람들의 눈을 보라고!! 반짝 거리잖아. 이런 걸 좋아하지, 피와 액션을 좋아한다고! 말 많고 우울한 철학 따위엔 관심이 없어.
   「기다려. 하나 더 있어. 또 이어서 말한다.
   「이 연극이 중요한건 아빠 혼자에요 다들 신경도 쓰지 않는다구요. 연극이 끝나고 어디서 커피를 마실지가 그들의 문제일 뿐이에요.
   「아주 영화 찍네 영화 찍어. 너 사람 감동시키기로 작정했냐?
   「미안 미안. 나 요즘 쉬고 있잖아. 호르몬 변화 때문인지 무슨 신드롬 때문인지 이상하게 요즘 대사 외우는 취미가 생겼어. 나도 잘 모르겠어. 왜, 언제, 어떻게 그런 취미가 생겼는지 말이야.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했다면, 음 더 말해 뭘 하겠니. 예전에 아는 여자애 꼬실려고 외웠는데, 중요한 건 말이야, 그걸 써먹을려다가 써먹지도 못하고 끝났다는 거. 슬픈 추억도 뭣도 아닌 추억이 있다. 그 대사 써먹을려고 마음 먹었던 아가씨가 나에게 아주 마음이 없지는 않았는데, 그것참, 데면데면하진 않았는데 그냥 시시하고 멋쩍게 끝났버렸지만 이런 말을 했던 걸 보면 완전 싫지는 않았단 말이야. 언젠가 그녀와 정담을 나누는데 이러더라구. 다른 얘기는 다 생략하고 이 말만 하께. 딱 이랬어. 만약 자기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막 여자들 다 따먹고 다녔을거라는 거야. 정말 웃고 좋아하면서 말하는 걸 즐기더라니까. 진심이었나 봐. 만일 그랬다면 진짜 그랬을 꺼 같아. 정말로. 말 그대로. 어라~ 그렇다면 지금 현재 잘 나가는 어디 어디 카사노바들과 불세출의 호색한 돈주앙들이 혹시 여자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남자로 잘못 태어난 것은 아닐까? 잘 모르겠군. 알게 뭐야. 낚시꾼과 난봉꾼들은 뻥이 너무 쎄. 그러니 도통 믿을 수가 있어야지. 하여튼 거짓말쟁이들 하고는. 짜장 어업 종사자들도 그들처럼 그럴까? 어림없어. 당연히 물고기 잡고 나서 호들갑 떨지 않지. 그런데 문제는 여자들이 순정파와 로맨티스트 그리고 바람둥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거야. 바꿔 말하자면 원래 그 구분이 어려울 만큼 그 특성들이 혼재된 건지도 모르지. 달리 해석하자면 남녀 사이는 당사자들만이 아는 비밀과 정 아니면 그냥 헤프닝이나 일방적인 구애가 있는 것 뿐이지. 그건 그렇고 그 대신 칵테일 빠에서는 언니들에게 긴 명대사 읊어서 인기 좀 얻었어. 막 띄워주니까 술값은 좀 나왔지만. 좀 많이 나왔어. 막 옆에서 오페라 단원 합창하듯이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쭉쭉쭉쭉~...' 하니깐, '쩍쩍쩍쩍, 쩍쩍쩍쩍, 쩍쩍쩍쩍~' 하니까 정신 못차린 거지. 아 맞다. 그녀가 이 말도 했다. 남자들이 막 집에서 이상한 걸 보니까 그래서 요즘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대시를 하지 않는다는 거야. 뭘 보는데~ 그렇게 물어보니까 막 뭘 본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다시 남자들이 대체 뭘 보느냐고 물어보니까 또 알려주지를 않아. 살살 설득을 했지, 그래도 너가 보는 건 아니잖냐, 아 네가 아닌 남자들이 뭔가를 보지 않냐, 그러니 진짜 그들이 보는 게 뭐냐, 이렇게 달랬다니까. 속마음을 살살 긁었어. 그런데 그녀의 눈빛이 좀 이상했어. 내가 눈치가 너무 없었나? 참나~ 그러더니 하는 말이 그래. 그래도 여자들도 너무 그렇다는 거야. 뭐가 그러냐고 하니까 뉴욕이나 파리, 로마, 어디 어디를 가면 사람 많은 거리에서 남자들이 지나가는 여자를 가만 놔두질 않는데. 며칠 굶은 것처럼. 그럼 여자들은 약간은 즐기면서 흘리면서 현지 사정에 맞춰 정서를 읽고 적응해야지 그게 뭐냐는 거지. 또 런던 어느 거리에 갔는데 남자들이 모두 무반응이라는 거야, 전부 석남과 돌부처인줄 알았데. 도대체 중간이 어디냐면서. 다른데는 안 가봤다는 거야. 말하는 게 정말 웃겼어.
   말을 마치고 이 친구가 왠지 모르게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곧이어 다시 말을 잇는다.
   「엉아가 긴 명대사 얘기를 해줄께. 긴 명대사를 읊으면 짧은 대사를 말하는 것보다 뭔가 있어 보여. 따라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테고. 긴 거 외우는 게 어려우니까 아예 해볼 생각 자체를 안 한다니까. 사람들 따라하고 흉내내는 거 봐봐, 전부 다 짧은 거야. 긴 명대사에서 성대모사? 목소리 안 비슷해도 상관 없어~. 좀 틀려도, 좀 까먹어도, 좀 생략해도 대사 쭉쭉 빼기만 하면 눈치 채는 사람 또한 별로 아니, 거의 아니, 한 명도 없다니까. 긴 대사 모두 외우고 있는 사람이 일절 없거든. 다만 대사칠 때 이런 손동작, 제스춰는 이렇게, 고개 각도는 이처럼, 어조에 신경 쓰고, 시선 처리 어떻게, 전체적인 태도와 기색을 가장하고, 특히 눈꺼풀을 파르르 떨어, 그럼과 동시에 말만 하면 돼. 대사 까먹지만 않으면 돼. 생각보다 사람들은 굉장히 예절-발라, 빠져들기를 좋아한단 말이야, 최면을 걸어주란 말이지, 무척 착~해! 대사 끝나면 뭔 줄 알아? 일단 감탄사야. 백프로. 삐── , 라고 말하거나 입만 벌리거나 입을 벌리고 혼자만 들을 수 있게 속삭이는 거지, 아뿔싸, 라고. 멈칫 하면서 뭔줄 몰라 하는 표정. 하지만 대충 눈치는 채. 절반은 어 그 영화인가, 절반은 가슴이 찡한데, 하는 인상을 띄우지. 어쩌다 한 명은 완전 천진난만하게 웃거나 그냥 쓰러져. 그게 여자라면 홀딱 넘어온 거야. 속으로, 뭐야 그걸 다 외웠단 말야? 또는, 와 오빠 멋있다, 이렇게 생각하게 돼. 완전 작업의 정석이지. 즉 뽀너스로 독심술까지 겸비하게 되는 거야. 긴 명대사의 특징이 뭔 줄 아니? 그 비밀? 바로 가슴 속의 응어리야. 그걸 축약한 거야. 내면에 깊숙이 침잠해 있던 그 잔잔했던 태풍의 눈을 모두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야. 그럴려면 그만한 서사가 있어야 하고, 살아왔던 현실과 모순되는 사정들이 커다랗게 쌓여야 하겠지. 그 긴 명대사를 읊어대는 당사자의 가슴에 말야. 가슴 속의 응어리, 긴 명대사,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를 떠올려 봐. 그러니까 시와 소설과 인문-교양서에 나오는 불꽃 같은 문장이 아니어도 별로 어려워 보이거나 멋져 보이지 않아도 쉬운 말만 모았어도 딱 장면이 나오는 거라니까. 긴 명대사는 긴 세월의 응어리를 압축해서 쏟아내기 때문에 밑줄 그을만한 수준이 아니어도, 별 내용 없어도, 직업도 별로고 꾀죄죄한 모습의 볼품과 비전 모두 없는 주인공이 말할지라도, 아무런 쓰잘데기 없는 말일지라도 그 긴 대사를 들을면, 그 청각과 시각을 기본으로 하는 경험을 겪고 나면 내 공감각이 흔들려. 심하게. 아무 쓸데없는 말일지라도 가슴이, 떨-려, 뭔가가, 뭉클~하다구. 바로 그거야. 정말 인상깊게 느껴진다고, 짠한 감정 찡한 무엇이, 그게 저 밑에서 솟구쳐 올라와 그럼.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 뒤돌아 서서 내 일상으로 돌아오겠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동안 그 경험 때문에 틈틈이 기분이 좋아, 이따금씩 말이야. 그래서 요즘 영화 볼 때는 그런 장면을 자꾸 만나고 싶다니까. 이젠 짧은 명대사로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모르긴 몰라도 그런 사춘기 소녀도 있을 꺼야. 결단코 어딘가엔 있을 꺼야, 미래에라도 있을 꺼야. 없다면 최면을 걸어야지. 막 이제 화장하기 시작하느라 친구들과 수다를 나누는 소녀들 가운데 자기의 꿈은, 백마 탄 왕자와 결혼하는 게 아니라, 온 신경이 짜릿하게 목소리가 기막히게 마음에 쏙 들지 않아도 괜찮다, 막 잘 생기지 않아도 좋고, 억수로 돈이 많지 않아도 상관없다, 다만, 둘 중 하나는 꼭 갖추었으면 하는 바램. 그걸 가슴 깊이 간직한 소녀. 글을 잘 쓰거나 아니면 말을 잘 하는 사람. 글이나 말 말야. 자기 아빠는 둘 다 못하니까, 자기는 커서 꼭 그런 남자와 사랑을 하고 싶다는 청아한 꿈을 잉태한 소녀, 그런데 둘 중에 하나가 아니라 둘 다라면... 오오 아~찔하다, 그런 소녀 분명 어딘가에 있을 꺼야. 햄버거값, 아니 더 쓴다, 고급 피자값 걸겠어 음. 아, 긴 명대사가 나오는 영화 또 보고 싶다. 그 인상적인 장면들. 음음. 그게 바로 연기력이고 상황 설정이야. 안 좋은 얘기지만 사기도 원래 그렇게 치는 법이야. 나는 사기 쳐 보지 않았지만. 완벽한 상황 설정에 물오른 또는 미리 계산된 어줍짢은 연기력, 빵-, 후~! 원리는 간단해. 이런 거야. 어때, 한 번 해볼 생각 있어? 사기 말고 긴 명대사 말이다.
   「와우~
   「오 이런 삐─삐─삐─ 말발 끝내주는데. 늬 말이 딱 긴 명대사 같다. 완전 멋져! 그런데 왜 네 영업 실적이 안 나오는 거지? 이상하네.
   「야 너 말발로 절세미녀를 꼬시는 단 한 가지 방법, 뭐 그런 책이라도 읽었냐?
   「와 어떻게 알았어? 그런데 그런 책을 읽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게 어떤 방법인가는 안 가르쳐 줘. 세상 일이 원래 그래.
   「그래 맞아. 인생에 정답은 없어.
   「지금 휴직중이라서 그랬단 말이지. 음. 음 그럴 수 있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아까 말한 기나긴 명대사가 어디에 나오냐고 뭔 영화인지 물어볼려다가 갑자기 안 궁금해지네. 괜히 슬퍼진다야.
   「그래. 힘내 짜샤.
   「우리 회사로 와라. 먹고 살만한 연봉은 맞춰줄 수 있어. 나도 이제 넘버 쓰리니까 너 하나 꼽아주는 건 일도 아니야.
   「언니들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서 별로 반응이 좋지 않구나. 이런~ 괜히 힘뺐다.
   「그래도 나름 감동했다. 격렬하게 완상하고 있다구~.」
   「목마르겠다. 맥주 한 모금 마셔라.
   「완상? 딴은 난 중혼이란 말을 최근에 처음 들었어.
   「실상 말하자면 난 우행이란 단어를 처음 읽었고.
   「솔직하기는. 이 친구가 얼굴만 좀 받춰줬더라면... 머리가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말발이 약간만 더 그럴싸했더라면... 목소리가 약간만 더 도톰하고 착 감겼더라면... 아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가 아니래.
   「아 완전 우울하다.
   「조금만 더 뭐라고? 뭐야, 듣기에 따라서 썩 슬픈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데로 괜찮다는 뜻 같기도 하고, 아니면 여러가지 모두 이도저도 아니고 아예 바닥이라는 얘기를 돌려서 하는 건가? 이거 매기는 거야 쓸만하다는 거야?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은데...
   「뭘 또 그렇게 비꼬고 그러냐? 너 집에서 아침에 거울 안 봐? 마스크 괜찮자나. 이성이 좋아하는 인사와 태도와 에티켓, 빠삭하잖아? 너 운동 좀 하잖아? 여기서는 연봉킹에 차 괜찮은 거 타, 운전 잘해, 안 그래? 늬 전성기를 떠올려 봐, 한 번에 몇 명의 여자가 대쉬했다고? 제7의 전성기가 기다리고 있다니까. 에이 왜 그래~
   「너 아주 사람을 들었다 놨다, 뭉겠다 로켓에 태웠다가 어쭈, 언변이 많이 늘었는데? 요즘 누구랑 어울리는데 그래? 이건.. 내가 봤을 때 이건 절대 책으로 독학해서 도달할 수 있는 레벨은 아니야. 인터넷으로도, 학원에서 배운 것도 아니라구. 딱 보니까 최고의 웅변가 옆에 한동안 착 달라붙고 따라다녀서 약간이나마 그 비법을 전수받고,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연마한 끝에 몸에 익은 형국 같은데. 뭔가 수상해.
   「생각이 많은 걸 보니 너도 요즘 힘든가 보구나. 다 아니고 그냥 웃자고 한 얘기야.
   「아 명대사, 나는 아는 명대사 짧은 걸로 괜찮은 거 하나 있었는데 말 안 할래. 괜히 먼저 말했으면 완전 챙피할 뻔 했다야. 지금 여자가 안 끼어 있어서 다행이지 뭐냐.
   「나도 딱 그랬다니까. 저 녀석 왠지 아~주 잠깐만 멋져 보였어. 그러면 뭐해, 고독한 청춘, 아니 뭐 꺾인 거나 마찬가진데.
   「그런데 있잖아. 이상하게 지금 이 상황 어딘가 모르게 어느 찌질한 소설가 지망생이 Ctrl+C Ctrl+V 하면서 막 영화 대사를 복사해서 때려 붙여넣기로 만든 소설 나부랭이 같지 않냐? 나만 그런가? 그냥 그런 느낌이 없잖아 있단 말야. 하긴 그런 미친 놈이 어딨겠어. 있다고 해도 그런 소설을 누가 사서 읽겠어. 신경쓰지는 말자고. 하던 얘기나 계속 하자.
   「명대사? 난 그딴 거 생각 안 나.
   「그래 명대사 많이 알아서 뭐하겠니. 남자들끼리 만나서 명대사 얘기라. 아아 그럼 이제 사랑 노래를 불러야 하나?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 꺼야.
   「그래 그 얘기는 그만 하자꾸나. 음.
   「뭐 재미난 일 없냐?
   「그게 명대사야?
   「그만하자니까.
   「아니. 뭐 재미난 일 없냐구?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그것도 명대사야?
   「명대사에 환장했냐? 명대사 타령 그만해.
   「특히 너.
   「그게 아니라, 재미난 일이 떠올랐다고.
   「뭔데? 동시에 같은 톤 똑같은 어조와 길이로 들리는 두명의 목소리. 정말 기다려온 애타게 듣고 싶었던 한마디였던 듯 전혀 그렇지 아니한 듯, 그렇게 이구동성으로 되묻는다.
   「재미난 일이라니까. 음...
   「아 뭐냐고?
   「그런 게 있어.
   「아 뭐냐니깐, 이 자식이...
   「용건만 얘기해.
   「낚시 가자.
   「낚시?
   「왜? 뭐가 잘못 됐어?
   「아니 그건 아닌데...
   「추접스럽게 그게 뭐하는 짓이야?
   「뭐? 낚시가 추접스럽다고?
   「얘 통화중이야. 통화가 끝나고 잠깐의 여운과 침묵 그리고 미묘한 감정의 오고감이 있었다.
   「낚시 말고 딴 건 없냐?」
   「딴 거 뭐?」
   「밑도 끝도 없이 누가 우리를 쫓고 추격하지는 않잖아. 일단 뛰어, 일단 뛰고 계속 뛰어. 이젠 그런 거 힘들어. 흠뻑 젖고는 싶지만 몸이 안 따라 줘. 술도 옛날에 3병 마셨는데 이젠 2병 반 아니 2병도 힘들어. 지갑 사정도 좋지 않아. 마냥 요행을 바랄 수만은 없어. 어느 날 하루 딱 그런 날이 있다고 치자. 한 번 상상을 해보자고. 어느 날 낮에 커피숍에 들어가서 커피값을 계산할려는데, 점원이 그래, 뒷사람이 당신의 커피값을 미리 계산했다는 거야. 말로만 들어봤던 그 뒷사람 음료수 값 지불하기, 를 당했네? 진짜로. 그래서 마시게 된 레모네이드의 맛은 천국행 열차에서 파는 설탕물 같았어. 그러다 나와서 거리를 지나가는데 누가 차를 타고 가면서 돈을 뿌려, 어느 빌딩 옥상에서도 누가 돈을 뿌려, 동전은 아니고 지폐 말야. 바쁘지 않은 척, 많이 줍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척, 하면서 조금만 많이 주웠어, 횡재한 거지. 그런데 그날 따라 고기가 먹고 싶은 거야. 그래서 고기집에 들어갔지. 혼자서. 그런데 무슨 가게 창립 기념일이라고 모두 공짜라는 거야, 이런~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는 거지. 그곳에서 음식 왕창 먹고 나와서 집 근처에 있는 빠에 간거야. 해가 아직 지지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입가심만 하고 들어가자, 이런 생각으로. 그런데 또 누가 골든벨을 울리네? 아 너무 행운이 하루에 몽땅 생기면 뭐랄까, 뭔가 불안하달까? 그래서 땀 흘리고 운동하고 친구랑 얘기하고 그럴려고 연락해서 친구를 만나. 술 한잔 하면서 얘기나 할려고. 그래서 그 날 밤에 그 친구들이랑 회포를 풀면서 열심히 이빨 깠어. 그 술집에서 갖은 험담과 욕설과 저주와 불만과 아주 엄한 얘기들을 마구마구 해댄 거야. 원래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뭔가에 씌었나 봐. 그러고서 술집에서 나갈려고 계산을 할려는데 주인장이 그러시는 거야. 옆 테이블에 계셨던 손님께서 계산 하시고 나갔다는 거야. 다만 이 말을 전해달라는 거지.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나 시골 이름)도 살만 하다고 전해 주래. 그날 그 술집 옆에 술집 가서 외상이나 긁을까 하다가, 외상이란 걸 한 번도 해보질 않아서 왠지 한 번은 해보고 싶었거든, 그러다가 자중하고 좀 더 착하게 살자고 다짐하는 거지. 뭐 이런 걸 바라겠냐? 어?」
   이 말이 끝나고 또, 잠깐의 여운과 침묵 그리고 미묘한 감정의 오고감이 있었다.
   「갈까?
   「가는 건 문제가 아닌데. 단지... 잘 잡힐까?
   「퍽이나 잡히겠다.
   「안 잡히면 어때?
   「바닷가에서 술 마시고 고기 구워 먹고 오는 거지.
   「그렇지. 그럼 고래를 잡으러 가야겠어? 그냥 낚시하러 가자.
   「그럴...까?
   「그래?
   「월척특급. (제일 기본) 낚시대 이름이다.
   「허송세월. (제일 값싼) 낚시대 이름이다.
   하이파이브. 짝짝.
   몸개그. 쩍쩍.
   「이게 만일 소설이라면 완전 싸구려 삼류 소설이겠다. 잘하면 그럭저럭 심심한 코메디 영화일 수도 있고. 원래 그런 영화가 집에서 뒹굴면서 보기엔 딱 좋은데 말야. 사실 그럴 때만 나오는 딱히 설명하기 어려운 웃음의 포인트는 다른데서는 막상 찾기 힘들단 말야. 장르는 코메디, 실없는 코메디 영화인데 사실 별로 안 웃겨. 살면서 따분한 권태의 늪에 빠지면 이게 뭐가 코메디 영화야? 그러면서 성질부리면서 안 봐.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웃기단 말야. 정말 웃겨. 허를 찌르는 거지. 보면서 잠자도 돼, 그만 봐도 돼, 누워서 보고 서서 보고 앉아서 봐도 돼. 딴생각도 할 수 있어. 아이디어 하나 챙겨, 쓸 얘기를 건져 올려, 마음껏 허탈하고 편하게 영화를 보다가 딱 한두 번 진짜 웃고 한 번 어이없이 웃고.
   「너 어제 영화봤냐? 재밌는 영화 아니면 얘기하지 마라.
   「그나저나 아휴 뭐냐 이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참을 수 없기는, 다 살게 돼. 꽃은 꽃이고, 사람은.. 사람이야.
   「미안하다. 결론낼려고 한 얘기는 아니야.
   낚시 외에 그들에게는 경우의 수가 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꽃 저 꽃 보이는 데로, 닥치는 데로 벌꿀을 채집하러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뭔 바람이 불었나. 이 얘기 저 얘기 대화의 맥락이 영 울퉁불퉁 뚱딴지 마냥 정신이 없는데, 실제로 마초의 대화는 이렇게 그 모양과 성격이 예쁘지가 않은 법이다. 남들도 다 이렇게 바보처럼 대화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일단 그들은 그렇다. 완전 바보 같다.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라는 노래 제목을 실천하는 사람처럼. 그들이 말하는 가운데 유명한 희곡의 주인공 이름을 연상시키면 햄릿의 대사를 읊을 수 있을런지 자못 의심스럽다. 햄릿뿐이겠는가 셰익스피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인 로미오와 줄리엣, 오셀로, 템페스트, 맥베스, 리어왕, 베니스의 상인, 십이야, 한 여름 밤의 꿈, 헛소동 등등. 과연 몇 명이나 이 작품들을 읽고 감상했으며 알고 있고 게다가 여러 이름들과 장면들을 외우고 있는지, 왠지 모르게 궁금해 하면 안될 것 같고, 어딘지 모르게 그걸 내색해도 분명 어떤 예법에는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그 의구심의 옅은 은막을 냅다 겉어내고 싶다. 삶이란 자고로 기쁘고, 즐겁고, 신나고, 마냥 재미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게 바로 인생의 모진 측면이라면 잠깐 아주 잠깐만 생각 좀 해 보고 감내하며 그 다음으로 나아가자는 거다. 난 태어나서 거의 40년 살았지만 지금껏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나 경구와 명대사를 풍자하는 식의 대화를 나눠 본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다. 뭐뭐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는 표현은 자주 쓰면 안되는데 멀지 않았던 때에 쓴 거 같아서 지금 두번째 거짓말을 한 양치기의 심정과 비슷하다. 최대한 많은 어휘와 단어와 표현들을 쓸려고 노력하는 마당에 말이다. 그건 무시하고, 셰익스피어 관련 얘기를 나눠 본 기억이 일평생 단 한 번도 없다, 까지 했다. 음, 그건... 뭔가 잘못된 거 같다. 내 인생은 그렇다쳐도 내가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 그 끕은 없었다는 뜻일까? 아닐까? 아니면 남들도 대체로 그러할까, 누가 속시원히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도무지 알 수가 있나. 그냥 그런 건 말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법이라는 어른 세상의 불문율인가 보다 하면서 사는 거지. 하긴 나도 남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지 못했으니 쌤쌤이다. 완전 피장파장이지. 얘기가 곁가지로 잠시 샜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들의 의견을 나누는 방식, 대화법을 살며시 조금만 과장해 보자면 이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가장 일상적인 경험, 즉 고개를 언뜻 돌려서 아날로그 시계를 바라봤는데 갑자기 시침이 일순간 정지했다가 1초가 아니라 10초, 는 너무했고 1초와 10초 사이의 어느 즈음 정도로 느껴질 만큼 그렇게 시침이 느려진 경험을 살면서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았을 것 같은, 1초면 1초고 10초면 10초지 그렇게 어중간하게 늘어진, 왔다 갔다 그네 같은 주관적 시간이 어딨냐는 듯한 친구들의 대화같다고나 할까, 약간 그런 감흥이 느껴지게 만드는 사람들의 어울림 같다. 그들도 언젠가 오랜 옛날에는 아기 향기를 풍기고, 비누 냄새를 많이 좋아했을 텐데, 아니 아기 향기만 맞고 비누 냄새는 아닌가, 아무튼 조금은 그랬을 테다. 때문에 독자들이 이런 혼잣말을 하게 되는 절호의 찬스 아닌 찬스가 되었다. 내가 지금 이 소설을 왜 읽고 있지!
   이들의 대화를 듣고 나서 중요한 얘기는 없으니 또 웃기는 내용도 아니니까 그냥 흘려버리겠지만 누군가 어떤이는 하나 떠오르는 게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아이디어나 사건, 동물, 물건, 기능, 심상이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 말이다. 간혹 주변에서 어느 허름한 주거용 2층집이나 낡고 아담한 건물 같은 건축물의 2층 외벽에 유리창이 아닌 문이 달려있는 모습. 창문이 아닌 여닫이 문이 왜 그곳에 달려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드물게 그런 사례가 있긴 있다. 설계와 시공이 일치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인지 누가 알겠나. 하지만 묘하게도 보통의 설치 미술 작품보다 오히려 더 눈길을 끄는 장면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우연성 때문에 말이다. 일부러 그 반응을 감안한 실수나 패러독스치고는 아주 약간 신비감이나 웃음을 좀 색다르게 선사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다. 지으면서 잔금을 못받아서 괘씸하니까 장난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당신이 대화의 이상한 방식에 억울하게도 딱 빠졌다면 몇 명의 친구들이 모였나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친구들은 인도 영화 제목처럼 세 얼간이들이었다. 세 명의 친구들이 하던 얘기로는 정교한 구조와 치밀한 구성에 따른 틀에 절대 들어맞지 않는다. 거의 막 갖다 맞춘 조립식도 아닌 TV 홈쇼핑에서 선전하는 반자동 기기, 그것을 선전하는 MC의 화법 같다. TV 홈쇼핑에서 파는 상품과 그 MC의 말은 훌륭하지만 그걸 흉내내는 소설. 그것은 전통적인 소설 작법과 문학상의 기준에 따른 소설론에 따르면 완벽한 불량품이다. 이 말 한 사람이 딴 말 하고 성격도 안 맞고 뭐 하고 뭐 하고, 완전 이를테면 삐─삐─ 이런 거다. 하지만 세밀하게 첫 번째 아해가 어떻고, 두 번째 아해가 어떻고, 세 번째 아해가 어떻고, 그걸 모두 먼저 정하고 구조도와 설계도 만들고 글쓰기에 돌입하면 이렇게 내용이 나올 수는 없을 것 같다. 최소한 여기서는. 또한 대부분의 독자는 A가 말하는 내용이 모두 일관되게 A가 말하는지, B가 하는 행동 모두가 전부 B가 하기에 적절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인지, 그리고 A와 B 사이에서 번민하고 괴로워하는 C의 마음에 대한 설명이 그게 모두 C에게 알맞는 설명인지, 그 다음에 사건 D의 개요, 상징성 E, 반전 F, 숨겨진 행동 G, 완독을 최소 3번 해야만 어렴풋이 이해 가능한 흐름 H 등등을 대부분의 독자는 잘 알지 못하고, 지나간 내용 역시 왜 그랬는지, 뭘 어쨌는지 그다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는 읽는 순간의 경험이 중요하다. 다른 모든 일은 똑똑하고 또 똑똑하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은 썩 그렇게 똑똑하지 않으면서도 똑똑하다. 뭔 말이냐면 소설 한 권 읽으면 끝이지, 그 하나의 소설을 날이면 날마다 얘기하지도 않고, 영화처럼 전시회처럼 유행가처럼 향유하는 소비재 성격에 경험 재화의 가치가 더해진 거다. 아무리 복선을 깔고 어쩌고 저쩌고 해도 1년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1년이 뭐야 1주일이면 감사하지, 또 다른 재미난 일들을 찾고 또 찾는다. 즉 그 경험을 하는 독자가 주인공이지 소설 책 한 권이, 소설 책이나 작가 한 명이 주인공은 아니란 말이다. 이번 챕터에 나온 대화도 역시 셋 중 누가 어떤 말 하고, 누가 어떤 말 하고? 별 관심 없다. 완전 관심 없다. 읽는 동안의 경험이 중요하지. 앞뒤 안 맞는 것 또한 당연히 별 문제될 거 없다. 그런데 학교나 학회, 문학상 시상 기준은 그런 걸 제일의 기준으로 꼽는다. 그래서 거기 맞혀서 모범적으로 쓰면 대부분은 한마디로 책이 많이는 안 팔린다. 이미 옛날에 다 듣거나, 읽거나, 봤거나, 경험해버린 내용이 담겨져 있을 뿐이다. 맙소사 엄한 얘기를 해버렸지만 다시 돌아와서 보자면, 그렇게 나온 내용물에서 가장 중요한 주안점을 하나 뽑는다면 그건 경험이라는 거다. 경험. 글을 읽는 경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처럼. 영화 한 편 보면 남는 게 뭐가 있어, 뭘 먹는 거도 아니고 사진이 남는 거도 아니고, 옷이나 가방처럼 박스도 없어, 어디 멋진 곳에 갔다 오는 것도 아니고 시컴한 구석에 앉아 있다만 나오는 거야, 옆에서 바스락 바스락 시끄럽게 하고, 앞에서 안고 쓰다듬고 속삭이고 막 그래, 돈만 쓰고 나와, 데이트 할려고 좌석 2개와 가방 놓을 좌석 하나 이렇게 3자리 표를 샀는데 바람 맞었어, 영화도 재미없었어, 그렇게 영화를 보는 경험처럼, 그것처럼 말이다. 그럼 그 경험을 누가 하나? 대학교수도 아니고 평론가도 어떤 전문가도 아니다. 일반 독자다. 전문가가 독자인 경우는 그건 교집합도 되고 지금의 논리에도 맞지 않으니 열외로 한다. 글을 읽는 경험을 파는 거다. 이 경험이면 어떻겠소, 돈이 되겠소, 인기를 얻겠소, 가치가 있나요, 교훈이라도 간접적으로나마 하나 획득하길 바라오. 이런 심정과 그런 이유로 어떤 풍경의 장소에서 대화를 나누고, 무슨 상황에서 이동하고, 어떤 차를 타고, 무슨 옷을 입고, 어디서 자고, 누가 말하고 누가 듣고 나머지 한 명은 뭔 생각을 하고, 작가는 이걸 생각하고 독자는 저걸 떠올리는 그런 설명을 서술자는 잘 못한다. 대부분의 소설은 그런 단정한 설명으로 전체 분량의 반틈을 할애한다. 대부분에 해당하지 않는 스릴러, 추리소설이 재미있다면 그건 어느 정도 스피디하고 깔끔한 전개 때문이다. 그래서 베테랑 시나리오 작가가 발표한 소설을 보면 전체 분량이 무거운 소설처럼 길지 않다. 절대로. 뻔하지만 변명 잠깐 하자면 인기 가수의 노래들처럼 그건 하나의 유행이라고도 볼 수 있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철지난 노래, 가끔 들으면 괜찮다. 그런데 날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듣는다면... 음 그렇다. 젊은 친구들이 옛날 노래를 들으면 박자도 안 맞고, 멜로디도 그렇고, 뭘 얘기하는지는 가사 전체가 듣는 그 즉시 머리 속에 통채로 핑 하고 떠올라 버린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은 철지난 노래를 날마다 들을 수 없고, 신곡도 몇 번 듣고만 말거나 다른 신곡을 기다리고, 기실 노래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경우도 많다. 가끔 옛날 노래를 들으면 완전 좋다. 그 뭐지 OST가 아니라 잠깐씩 TV 프로그램에 쓰이는 음악들, 그거 전부 다 철지난 옛날 노래들이다. 옛날 유행가들. 그런데 지금 유행하는 음악과 달리 그건 그 때의 유행가였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은 요즘 음악을 주로 듣고, 또 바쁘니까 클래식도 많이 듣지는 않는다. 빈부나 계층, 사랑의 온기와 감정 표현과 정서가 조금씩 미묘하게 다른 많은 이름들이라는 주체가 노래외에 영화와 소설과 미술 등등의 X, Y축 명칭에 따라 그래프상에서 위치가 다를테지만 <노래와 세대 차이> 하나만 보면 어쩔 수 없는, 그냥 자연스러운 사실이고 현상이다. 노래가 그렇다면 소설은 안 그럴까? 안 그렇다. 물론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 그건 그렇고 그런 유행가처럼 여기 소설에서는 그래서 그건 지금 생략되는 것이다. 각색의 예술 영역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정통적인 길을 걷고 싶다. 원래 대체로 그게 낫다, 훨씬 낫다. 메트로놈만 보면 질겁을 하거나 또는 메트로놈을 태어나자 마자 아니 어머니 자궁에서부터 껴안고 자듯이 엄마와 아빠 모두가 최고의 음악가나 예술가였듯이 그렇게 자란 천재의 생애처럼. 처음 악기를 배울 때 부터 돈을 받고 연주하는, 상업적으로 정당하게 돈을 받고 연주하는 음악 인생의 초반까지는 메트로놈이 기본일 텐데, 기본은 많이들 생략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뭐 아마추어인데 그러면서. 정통의 길이 비교할 필요없이 훨씬 낫다. 그런데 그걸 못해, 하면 할 수 없지. 그렇게 여기서는 이번 챕터에서는 바로 대화가 그 암흑의 핵심이다. 이런 또 나와버렸다. 조셉 콘래드의 소설 제목. 매번 이런 식이다. 뭔 말만 하면 그건 다 어디서 쓰이고, 어디에 나왔고, 누가 말했고, 뭘 따라한 게 된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다. 그냥 가는 거다. 막 쓰는 거다. 닥치고 써야 한다. 메트로놈없이 정통으로 배우지도 독학하지도 못하고 급하게 무대에 섰어. 그런 것이다. A를 말하면 웅성웅성, B를 말하면 쏙닥쏙닥, C를 말하면 쫑알쫑알 그런 거 다 생각하면 소설 못 쓴다. 그러니 꼭 소설이 사고뭉치 같다. 어차피 사고뭉치니까 중요한 표현이 나왔으니 좀 더 지면을 늘려야겠다. 한 문단을 서술자가 독자에게 말하듯이 대화체로 말이다.
   당연히 여기서 <읽는 경험>이 대두되면 <쓰는 경험> 또한 따라와야지. 바늘가는데 실이 빠져서야 쓰나. 쓰는 경험, 그걸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작가 이름을 하나 꺼내면 말하기가 쉬워.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싫어하는 것은 아니야. 그 매니아분들께 뭔 험담을 얻어들으라고, 그냥 취향의 차이를 내가 뭐라고 평가하겠어. 세상에서는 그래, 좋아하지 않는다는 싫어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어리버리하지 않아야 직장에서 돈을 많이 벌고, 제 때 결혼하고 애를 낳고 정규적으로 궤도권의 인생을 살아간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건 큰 차이가 있지. TV 코메디 프로그램에서는 가장 안전빵으로 절대 식상하지 않는 방법이지만 말이야. 예를 들면 표도르 도스도예프스키, 프란츠 카프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즐겁게 또는 꾹 참고서라도 읽을 수 없는 사람은 절대 현대 작가들 누구 누구를 좋아할 수 없어. 그런데 도스도예프스키와 카프카와 나보코프를 좋아하는, 매우 좋아하는 남자가 연애를 잘 할까~? 멋진 사랑을 할까~? '아니오'를 예상하셨나? 틀렸다. 당연히 잘 할 수 있지, 왜 못하겠어. 얼마나 똑똑하고 예술사에서 지대한 영역을 구축하셨는데 그 분들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당연히 고급스러운 선호도라고 할 수 있지. 단지 그럴지라도 그건 적어도 얇은 종이 한 장 두께 만큼은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야. 물론 과장법이지만 이것도 종이 한 장 차이야, 주관적이란 뜻이지. 그 외에도 또 많아, 누구 누구 누구. 하지만 그 계층의 신사들은 여자의 감정을 매우 잘 알고 이해하겠지만 결코 같지는 않아. 그것 하나는 완벽하게 그렇지. 그러면 역으로도 똑같은 설명도 나올 꺼야. 그 가운데 현대 작가이면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소설가 한 명을 거론하겠어. 
딱 한 명! 뭔가 있어, 로 시작했다가 색정과 도색과 모험에 침윤되는 기색이 점점 약간 짙어지는, 그런 느낌의 작품을 말할 수는 없어. 언어, 어학의 한계성을 따져야지. 그때 그 남자는 날 사랑하지 않았어, 그 남자와의 뭐가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라는 에세이? 오 이런. 들쑥날쑥 정신없다. 아멘. 왜냐하면 지금 <쓰는 경험>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까. 바로 폴 오스터 경. 내가 완벽한 마초였다면 즉 더 근육빵빵하고, 잘 생기고, 키 크고, 목소리 완~전 저음에 더없이 남성적인 마초였다면 그 사람을 좋아했을 꺼야. 내가 만일 ...... 이 말줄임표에 뭔 글이? 무슨 말이 생략되었는지 잘 가늠하는 사람은 그보다 눈치가 없는 사람보다 아무래도 쪼매 더 즐거운 삶을 사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보디빌딩 대회와도 관계가 있는 그 무엇. 내가 만약 그랬다면, <다비드는 다비든데 어디산 다비드>였다면, 그 유명인을 좋아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쓰는 경험에 대해서 심하게 부러운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지. 쓰는 경험,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꼬박꼬박 매해 변함없이 항상 새로운 자동차 모델을 양산하는 것처럼, 공장에서 자동차 만들듯이 그렇게 규칙적으로 인생을 통채로 장편소설을 양산해 내. 쓰고 발표하고, 쓰고 발표하고, 쓰고 발표하고. 완전 멋져. 자동차 만들어서 잘 팔리면 세계 3대 자동차 실내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와 공장 노동자와(몇몇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 주식 보유자들은 당연히 기분 좋겠지. 그런데 쓰는 게 고통스럽다고? 구상이나 어떤 단계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쓰는 경험>에 대해서는 아니겠지. 공장 노동자나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표현으로는 딱 이런 표현을 쓸 꺼야. <엿 먹으라고!>. 즉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동화의 세계에서 날아다니는 기분이야, 그렇게 창작을 하는 기분은 말야. 그러니까 계속 또 계속 하고 싶은거지, 마치 운동 중독된 사람들처럼 말야. 도파민 분수, 엔돌필 불꽃 놀이를 생각해 봐. 비슷한 작가 또 누구 누구 있겠지만 그래도 그 양반이 장편 위주로, 거의 장편 위주로만, 자기가 사용하는 언어로는 거의, 내가 봤을 때는 그 언어로는 거의 쓰기 불가능에 가깝게 쓴다고나 할까. 난 재미없어서 한 편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지만, 문장만 보면~ 문장만 보면 딱 보면 알 수 있어. 난 그것 하나는 잘해. 그것 하나만은 자존심을 세울 꺼야. 난 그렇다는 데 누가 뭐라 그래, 딴 거 전부 다 바닥이지만 그것 딱 하나만은, 그것 딱 하나만은 내가 세계 제일이라는 데, 누가 뭐라할 꺼야. 숫자 나이 꺾일라 그러니까 이제야 알았어, 프라이드의 중요성. 그것만 보면 나는 인생 말짱 잘못 살았어. 완전 헛살았어, 그걸 이제야 알았으니까, 뭔 진정한 비밀도 아닌데 말이야. 왜 이제야 알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좀 그런 게 있어. 어찌 보면 눈꼽만큼은 억울해, 그 생각하면 요즘 간혹 눈물이 핑 돌라 그래. 그래도 애써 참지. 1초 울컥 했다가 딱 그쳐. 아 또 이렇다니까. 말 시작하면 갑자기 어느 때는 섬에서 탈출한 것처럼, 깊은 산중에서 내려온 것처럼 술술, 술술 계속 말하게 돼. 그러니까 말이 자꾸 삼천포로 샌단 말야. 어디까지 말했드라, 그래, <읽는 경험>이 있으면 <쓰는 경험> 쓰는 행위도 그래, 독자의 삶의 인생의 초자아의 귀중한 절대 자산, 읽는 경험은 그렇다니까. 읽는 경험은 그런거라구. 
   이젠 그들은 낚시를 하고 있다. 번쩍 하고 도착해서 이미 그것을 신출귀몰하게 하고 있다. 그들의 대화를 잽싸게 기록하여 여기 옮기지 않고 서술자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가, 커피 타고 우유 마시느라 늦장을 피우지는 않는가. 이런 서술자는 대학교 1학년 때 나도 이 세상의 절반인 아버지들처럼 목소리가 굵고 거칠어야 하나, 변성기를 지나서도 미성을 간직한 선척적으로 좋은 목소리의 소유자보다 후천적으로 담배 피고 술 마시고 말 많이 하고 노래 많이 불러서 목소리를 굵고 거칠게 튜닝한 남자의 목소리가 아주 가끔은 어딘가 모르게 멋져 보인 적도 있긴 한데, 라면서 십대 시절 말수 없는 주인공이 멋져 보여 따라했던 기억을 떠올릴 타입이다. 아, 이 세상의 절반인 아버지, 이 말은 그런 강의를 즉각 떠올리게 만든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름다운 단어에 대한 설문 조사,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름다운 단어가 무엇인가 어딘가에서 조사를 했는데 1위가 무엇일까요? 글쎄 1위는 어머니였답니다 엄마, 그럼 2위는 무엇일까요? 2위가 아버지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2위는 '뭐'였답니다, 그럼 3위는 무엇이었을까요? 이것도 아빠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3위는 '뭐'입니다. 그런 강의 동영상 말이다. 생일날이나 어린이날에 애들과 놀아주느라 찐이 빠져 그날 저녁 녹초가 되는, 뼈-빠지게 돈을 버는, 그러다 할아버지가 되는, 가족을 사랑하는 아빠들, 썰을 다른데 풀거나 씨를 엄한데 뿌려서 무관인지는 몰라도 비록 Top3에 보이지는 않지만 순위에 관계없이 전방위적으로 아름다운 단어이고, 그 아빠들도 나-아빠 이전에 그분들의 엄마가 계신다. 소방관, 경찰, 군인, 산악구조대, 건설현장 노동자, 외벽 바깥으로 여닫이 문이 달린 허름한 주거용 2층집 공사장의 십장과 보통 일꾼 기타등등 어려운 일도 아빠들이 하신다. 앗, 참고로 이런 소설은 읽는 동안 절대 웃으면 안 된다. 딱 한 번 웃음이 나올려 그래도 입술을 꼭 깨물고 있어야 하며, 성마른 표정으로 심각한 분위기를 가장하고서 읽어야 제맛이다. 옆에서 뭐라 할 테니까.
   넌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냐?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담배 피고, 커피 마시고, 사람들 만나고, 퇴근해. 씻고 TV 좀 보다가, 담배 한대 피우고 그리고 자.
   「뭐야 그게?
   「집이랑 회사가 5분 거리도 안돼. 그리고 집에 아무도 안 살아.
   「나는 그거랑 똑같은데 다만 집에 와서 매일 술을 먹어.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 피곤해.
   「꼭 다람쥐 챗바퀴 돌듯이 사는 거네.
   「그럼 늬는 다람쥐 챗바퀴 돌리는 사람처럼 사냐?
   「아니. 나도 똑같아. 해놓은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네 일상은 어떤데?
   「아침에 일어나서 아 일단 아침에 의식이 먼저 깨, 눈을 먼저 뜨는 게 아니라. 식상한 표현을 살면서 하도 많이 보고 들어서 하는 소리야, 상쾌한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가 시작되면 싱그러운 아침 햇살과 눈맟춤하고 그대를 떠올린다는 그런 얘기들. 절대 눈을 먼저 뜨는 게 아니지, 그럼. 의식이 깰 때 남자라면 당연히... 그래, 그렇단 말야. 그런데 어른만 그런 게 아니야, 어린이도 그래, 애들도 그렇다고. 그렇게 일어나서 씻고 컴퓨터 켜서 이것 저것 하고, 커피 마시고 물 마시고 뭐 있으면 주워 먹고, 집에서 점심 먹고, 동네 한 바퀴 돌고, 그러면서 동네 개들 잘 있나 둘러보고, 고양이도 구경하고, 다시 집에서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하루가 지나가. 간혹 도서관 갔다 오든가 서점에 갔다 오든가. 주말에 극장에 가고. 미술관에 들리고. 그게 다야.혼자 일하는 이 친구가 말을 이어서 한다. 다음 문장이 그것이다.
   「혼자 일하면, 어, 음, 외로워. 그래 외롭지. 나 혼자 달랑 있는데 덩그렁 하고. 그렇지만 그보다 더 진정으로 외로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람은 원래 고독한 것이고, 또 쓸쓸하면 뭔가 멋져 보이자나. 군중이나 그 어떤 행복한 환경에 둘러쌓여 있는 사람도 정말 가끔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이고, 왕족들 가운데도 매우 드물게 왕족의 신분을 탈피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지금 세상에 왕 얘기하면 왠지 모르게 기이하면서도 아름답고 또 한편으로는 웃기지만 옛날 왕 얘기 하자면 또 르몽드 세계사 이런 책 보면 짠하니까 안 보지만 공룡이 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것보다 더 밝고 행복한 미래에 희망을 거니까 여자들보다 월등히 남자들이 완벽하게 우월한 분야가 있는 것이고, 그 뭐지, 가장 행복한 순간에 제일 외로운 때를 동경..이나 회고 뭐 그런 건 아니고, 뭐라 해야 하지, 약간은 그렇게 완전 깨는 어이없는 반대편의 그 뭔가의 이미지를 때로는 내 의지가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그런 심상이 떠오른다고나 할까, 그렇다니까. 뭔가 설명을 잘 못하겠어. 말이 꼬였어. 내가 예술가라면 그걸 아름다운 예술로 잘 승화시키겠지만 바랄 껄 바래야지. 방금 한 얘기가 소설에 쓰여지는 글이라면 논리적으로 써야겠지만 지금 난 말을 하고 있다고. 앞뒤 안 맞아도 들쑥날쑥 해도 괜찮아. 원래 평소에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게 말해. 말은 글과 다르지, 완전 달라.」
   그들은 지금 술-먹기와 낚시-하기를 동시에 하고 있다. 게다가 방금 말한 이 작자는 술 마시면서 말하기, 그 어려운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왜 어려운, 이냐하면 그는 주량이 세지 않기 때문이다. 주량이 약해서 술값이 적게 들고, 금방 취해서 나름 자부심을 느껴도 되는 정도다. 그러니 혀가 꼬이고, 게다가 말하는 내용도 꼬이기 마련이었다.
   「뭐야, 그게 뭐야?
   「고기 안 잡힌다고 그러기야?
   「그럼 뭐 특별한 일이라도 있어야 하냐? 뭐, 클럽에서 죽치고 놀까? 매일 학생들 등교할 때 집에 들어갈까? 내가 청춘이냐?
   「것 봐. 너도 그렇잖아. 다 그렇다니까.
   「그래~ 다른 사람도 다 그럴 꺼야.
   「한숨 쉬지마. 물고기 도망간다.
   「한숨 쉬면 물고기 도망간다는 말, 처음 듣는다.
   「난 집에서 혼자 TV 보면서 혼잣말 하는 게 제일 좋아. 기뻐. 이런 걸 말하는 게 부끄럽지 않아. 전혀. 이젠 예전처럼 게임도 별로 하지 않아. 그러다 혼자 노는 게 지루해지지. 그래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해. 심심함과 신남 사이의 균형이 약간 기울었나 봐.
   「나도 집에서 일할 때 혼자니까, 모니터랑 대화해. 꼭 그 뭐냐, 개 주인들이 직장에서 개랑 어플리케이션으로 말하고 핸드폰 화면으로 뭐하고 있나 지켜보는 거 같다니까. 그러다 심심하면 재미있는 일을 찾지. 그런데 그런 게 별로 없어.
   「그래. 많이들 그렇다니까. 어떻게 학교 다닐 때랑 똑같냐. 학기중엔 방학 기다리고, 방학중엔 학교 가고 싶고.
   「그래, 맞아.
   「지루한 일상. 누군 뭐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매사에 감사하고, 새롭고 즐거운 일을 찾기 싫은 줄 알아? 없는데 어쩌란 거야.
   「아~ 권태로운 인생.
   「따분해. 이런 얘기를 듣고서 재밌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있기는. 퍽이나 재밌다고 하겠다. 그런 이상한 인간들이 어딨겠어? 난 안 들어봐서 잘 몰라. 또 모르지 들어보고 나서 조금..은 재미있을 수도 있겠지. 말 나온 김에 도메인 하나 사고, 실시간으로 모든 걸 방송해 볼까? 인생 전 과정을? 에이 재미없겠다. 인기 없을 테니까.
   「어쩌면 인간 유형 가운데는 그런 변태들도 있을 거야. 또 인간의 내재적인 특징 가운데 매우 작게 그런 성질도 있다고는 하던데, 전문 용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내 전공도 아니고, 잘 모르겠어. 아, 전에는 인문-교양서에 있는 얘기들 막 갖다가 써먹고, 변형하고, 새로 만들어서 말하고 그랬는데. 말발이 많이 약해졌어. 이런. 어쨌든 그런 사람이 어딨겠어? 아마도 없을 거야. 있으면 돌아이지.
   「물론 없을 거야. 우리들이 코메디언도 아니잖아. 그러니 재밌을 리가 없지. 아니면 우리가 걸물이야? 그것도 아니야. 예술가, 기업가, 정치인, 영화배우, 전문가, 뭐뭐, 에잇 너무 많아, 한마디로 유명인. 다 아니야. 뭔 기밀이 있어 비밀이 나와, 다 아니야. 그냥 흔한 부류인데 재밌기를 해 뭘 얻기를 해? 아무 의미 없어. 그럼.
   「그래. 옳소.
   「당연히 재미도 없고, 우리를 엿듣는? 그냥 라디오 방송처럼 우리 대화를 듣거나 보는 사람은 없지. 없어. 여기 우리 세 명 뿐이잖아.
   「그렇지.
   「말발. 나도 말발이 많이 약해졌어. 이 세상에 말발 센 사람은 많고도 많지만, 하지만 나는 좀 더 희귀한 말발을 추구했지. 그랬다니까. 어떤 형식으로 글을 써도, 기계식 타자기로 써도 되지만 일부러 수기로만, 차분하게, 살짝 멋쩍지만 완전 멋지게, 꼭 평일에는 카페나 바닷가나 공원에서 주말에는 집에서만 글을 쓰는, 수기로만 글을 쓰는 그럼 느낌의 말발, 바로 그것을 추구했는데, 뭔 말 같지도 않은 어리광 부리는 개꿈이었지. 뭔 광대나 쪼커도 아니고 말야.
   「그런데 너 입고 있는 옷이 뭐냐?
   「어 이거? 과-점퍼. 어때? 대학생 같지 않냐? 기분이 새록새록하다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렇게 미래를 보자, 현재를 즐겨라, 그러면서 자꾸 만나면 옛날 얘기를 하지. 나도 나이 들었나 봐.
   「과-점퍼?
   「어. 후배 술 한잔 사주고 하나 얻었어. 술을 좀 과하게 사가지고 완전 비싼 옷 하나 산 거 같아. 많이 비싼 옷 있잖냐.
   「음... 뒷모습은 대학생 같은데, 뒷모습은 대학생 같다야.
   「뭐야? 그럼 이거 입으니까 교수님처럼 보인단 말야?
   「왜? 교수면 어때? 교수가 왜 나빠?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야.
   「너 때문이야.
   「뭐가 나 때문이야? 교수처럼 보인다는 거 아니면 고기 안 잡히는 거?
   「그렇게 노니까 재밌냐? 뭔 시덥잖은 얘기를 그리 많이도 하냐? 낚시나 해라.
   그렇게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아무 얘기하지 않고 심각하게 또는 그저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며 그들은 낚시를 하는 게 아니라 세월을 낚고 있었다. 마치 낚시대 이름처럼.
   뭐야 이야기가 이게 다야? 여기서 끝나? 진짜? 에이~ 설마, 그럴리가. 뭐 사건 없어?
   진짜 여기서 끝난다. 아아 허무하다. 특급 액션 시나리오라도 쓰고 싶다. 이쯤에서 서글서글하지만 자글자글한 컨버터블에 이들을 태워서 어디라도 떠나 보내야 하는데, 영화처럼 "몇 년 후" 그러고 스무스하게 이어져야 하는데, 그런 건 없다. 얄짤없다. 이 양반들이 사건 없이 조용한 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르고 있군. 그런 건 남자들 가운데 학자들이 잘 안다. 인문-교양서를 보면 어느 지역에서는 인사말이 식사했냐, 식사 즉 끼니는 어떻게 잘 또는 겨우 해결했냐를 완곡히 돌려서 말 하는 건가, 어디에서는 별 일 없냐, 어디에서는 또 뭐, 먹고 살기가 어떻다, 자연재해가 어떻다, 그래서 인사말이 그렇다, 그런 걸 문화적으로 잘 설명하는 학자들, 정말 유식하다. 빈정대는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유식하다. 까놓고 말해서 존경스러워. 그 어떤 불순한 감정 단 하나도 없이. 다만 점진적으로 약간씩만 배워갔으면 좋겠다. 매우 천천히, 슬로우 슬로우 또 슬로우, 그렇게. 또 어딘가를 보면 인사말이 그거 아닌가, 뭐 재미난 일 없냐?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다. 그 미지의 인물은 정말 바다에는 늘 더 많은 물고기가 있다며 가난이 아닌 헤어진 친구를 달래는데 익숙한 연애계의 포세이돈일까(가난과 실연처럼 결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 어?), 세상의 반은 여자라며(남자라며) 쓰디쓴 독배를 습관적으로 마시는 사랑의 미로에서 줄곧 살아가는 순애보일까. 하이브라우(고상한 사람)도 있겠고, 기계적인 뜸 들이기를 무척 반겨하는 타입도 있을 것이며, 지금 듣는 말에 허풍이 얼마나 섞였는지 즉시 간파하는 젊은이도 당연히 있으면 좋겠고, 모든 대화의 시작을 거짓으로 그리고 단초는 뻥으로 푸는 최면술사도 있겠지만, 뭐랄까, 듣는 질문에 반문하거나 교묘히 말을 돌린다고 할까, 순진하게 대답을 생각하는 단순한 (나이와 관계없이) 학생과 간단히 그 물음을 음미하는 누군가의 이상형 역시 미미하게 존재하기를 바란다면 그건 너무 동화같기를 바라는 과한 소망이자 성적인 금욕주의다.
   그렇다면 이 소설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둘 중 하나다.
   첫째, 놀라웁게도 기막히게 모든 것을 다 맞춰 버리는 심령술사. 소름 돋는 전설의 심령술사, 진짜 이런 사람이 있다면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어떻게 생겼는지, 목소리는 어떤지, 정말로 그렇게나 다 맞춰 버리는지 정말로 궁금하니까. 이런 타입은 귀신같이 모든 것을 다 맞춘다. 이미 당신이 뭔 타로카드를 뽑을지 사전에 다 알고 있다. 그래서 당신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대의 심정을 병렬로 똑같이 실시간으로 감지하기 때문에 당신 속마음을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계속 보이는 그대로 말한다. 당신의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가 다 보여. 그는 초능력자다. 영화에 나오는 그런 날아다니고 염력을 쓰고 레이저를 쏘는 뭔 맨이 아니라 진짜 초능력자. 여기서, 첫째에서 또 들어간다. 1-1) 전지적으로 전능한 주술사 타입 (고타율 고효율). 모든 걸 꿰뚫어봄. 능력치 최대. 모든 것이 보여, 모든 것이. 게다가 당신의 미래가 진짜 밝아 보여. 당신의 앞날은 번창할 것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하고 기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계속 예언을 해, 줄곧 최면을 건다. 진짜 그렇게 보이니까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만 속삭여 주고 다독거려 주면 된다. 그 다음 1-2) 좋은 얘기 위주 & 세심한 충고를 하는 타입 (승패에 관계없이 쉬어 가는 경기-고효율). 모든 걸 꿰뚫어 봄. 능력치 만빵. 당신의 미래가 음 좀 마냥 맑고 쾌청할 것 같지는 않아.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다 얘기해 줄 수는 없다. 마음 아프다. 어떻게 상대방 가슴 아픈 말을 약간 섞어서 또는 계속, 그것도 많이 하겠나. 그런 말 하는 사람은 기분 좋겠나. 그래도 소곤소곤 마음을 헤아려서 격려하고, 요술로 나타난 거인이 불어넣는 호-호- 입김처럼 희망의 언사와 긍정적인 말을 주입시키는 거다. 언제 조심하라, 무엇을 유의해라, 누구를 주시하라, 동쪽을 조심하고 물을 경계하라, 정 어려우면 부적을 하나 만들어주겠다 등등. 모든 일이 좋지는 않지만 어려움을 타개하게 도와줘야 함. 어쩔 수 없다. 그러면 또 모른다. 미래가 바뀔지도. 바뀌면 좋은 거고 안 바껴도 더 좋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동기를 마련하는 거다. 최면이 걸리면 미래가 밝게 바뀐다. 어느 소설처럼. 그리고,
   둘째, 둘째는 용했지만 매출이 끝없이 하향세를 타는 점쟁이. 여기 둘째에서도 또 들어간다. 2-1) 좋은 반응이 나올 안전한 말을 던지는 타입 (고타율 저효율). 용했을 때야 식은 죽 먹기, 땅 짚고 헤엄치기였지만 이젠 영험한 능력이 쇠퇴해서, 아주 바닥을 쳐서 당신의 앞날이 잘 보이지 않아. 그래도 막 던져본다. 하지만 진짜 밑도 끝도 없이 막 던지는 건 초짜나 할 일이다. 그래서 쑥 밑밥을 던지고 반응을 본다. 오, 반응이 좋아 괜찮아. 그럼 계속 던지는 거다. 계속. 알아차리기 어렵게 들이대. 당신의 미래는 오~ 너무 창대하다, 너~무 아름답다, 이루 말 할 수 없이 멋져, 그렇게. 미래에 실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던져, 주사위를 던지듯이. 나도 내 앞날을 모르는데 그 사람 미래를 내가 뭔 수로 읽어? 속마음은 그렇지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가장하고 연기하는 게 중요하다. 뭔 놈의 점쟁이가 이 모양이겠냐 말이지만 어쩔 수 없다. 한창이던 전성기가 지나가 버렸는데 할 수 없지. 그래도 좋은 얘기잖아. 사람 기운을 북돋아 주고, 도움되는 말이니까. 그러면서 중간에 하나 패를 섞는다. 그 어떤 소설도 재미있을 것이다, 재미있을 것이다. 어떤 사건이 없어도 소설은 재미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최면이 걸린다. 딱 걸린다. 찰칵. 그리고 2-2) 어떤 반응이 나올지 잘 몰라서 계속 떠보면서 들이대는 타입 (저타율 저효율). 그래프가 이 모양인데 어쩌겠나. 그래도 막 던져본다. 부딪혀 보는 거야. 아마추어처럼 막 튀어나가면 안되고, 일단 던지고 반응을 보는 거야. 자, 용하냐 안 용하냐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시겠나? 극명한 차이점. 그래 바로 그거다. 반응을 보기 전에 직관적으로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다. 그래 블링킹 즉 1차적 직관이란 말이다. 여자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뛰어난 능력 그것 말이다. 더 진귀하게 갈고 닦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은 그렇다. 이 돌팔이 점쟁이는 막 던져서 반응을 본다. 오, 이런, 함바터면 손님 갈 뻔한다. 한 대 얻어 맞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아까 그 아리따운 아가씨가 아닌 이 우락부락하신 분은 얼굴도 무섭게 생겼는데 그럼, 등과 이마에 식은 땀 쭉 났다가 식었다. 어느 정도 무섭게 생긴 클라이언트냐 하면 대면하면 딱 2가지 생각 밖에 나지 않는 정도? 친해지거나 말거나. 말거나? 친해져서 같이 돌아다니면 왠지 듬직한 기분이 들 꺼야,그럼, 누가 건들 엄두나 내겠어? 이따 저녁에 술 약속 있는데, 정신이 빠짝 든다. 맨날 장사 안 되다가 왜 하필 간만에 술 마시려니까 갑자기 뭔 일이냐, 이거다. 그래도 쫄면 안 된다. 또 던진다. 음 감이 온다. 반응을 보고 능동적으로 바꿔 던진다. 살며시 들이댄다. 자구 바꿔 던진다. 또 반응을 본다. 또 던져. 들이대. 또 반응을 본다. 또 던져. 그러다 최면의 슬로건으로 하나 툭 집어 넣는다. 어떤 소설은 재미있을 것이다, 어떤 소설은 재미있어질 것이다. 살다 살다 이렇게 재미없는 소설은 평생 처음 읽어본다, 그렇지만 도저히 읽는 걸 멈출 수 없다, 마치 요술 구두를 신은 동화 속 소녀처럼, 내가 구두 한 짝으로 팔자를 고치는 신데렐라도 아닌데, 이거 환각이야 뭐야, 침을 흘리고 환청과 환시와 환영 그리고 환상, 솔직히 더럽게 재미없지만 그래도 읽다 보면 혹시 모른다고, 재미있어질지, 그 알 수 없는 기대감과 정체를 모르는 믿음을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으니, 그럴테니까, 그러니 계속 읽으라고. 이렇게 슬로건을 스윽(쓱) 집어 넣고, 슬로건이 조금 길지만 그걸 잘 나누어서 눈치 채지 못하게 집어 넣는 게 기술이다. 그렇게 던지고 반응보고, 던지고 반응 보고를 계속한다. 그럼 결국 이게 뭐냐? 딱 손님 말 들어주는 거다. 정중한 태도로 상냥히 들어주는 사람, 바로 그 역할을 하는 거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점집을 차려서는 안 되는, 절대로 점집을 차려서는 안 되는 바로 그런 허풍쟁이 역술가-꽈다. (초)극소수는 고맙게도 이 소설 쓰는 사람을 첫번째, 신통한 심령술사로 보아주실 것이다. (예언이다) 그렇지만 본질은 두번째, 맹탕-점쟁이-꽈다. 기승전결 없는 제멋대로표 소설, 안무 없는 막춤처럼, 정해진 각본도 없는 맹목적인 소설과 사랑에 빠지는 부류. 그 설탕물 안에서 허우적대며 나올 생각을 안 하는 (상)남자.
   여러분, 작가는 독자이고, 독자는 작가다. 당신은 나이고, 나는 당신이다. 지금, 이제, 숫자 셋을 세면 그대의 최면이 깬다. 숫자 하나, 둘, 셋을 세고, 딱-소리가 나면 당신은 최면에서 깨어날 것이다. 자, 숫자를 세겠다. 하나─ 둘─ 셋─ 빡─(한 손으로 소리내기, 이걸 뭐라 부르지?). 오 당신은 깨어났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 일상은 어떤가, 어땠으면 좋겠나? 그래, 그렇다. 자, 읽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나왔으니 그러므로, 쓰는 사람에 대한 설명이 나왔으니 따라서 다음 질문을 슬쩍 옆사람에게 조심스럽게 사용해 보기를 간곡히 권한다. 권한다? 아니-아니야, 권하면 안 돼. 예언을 해야 돼. 당신은 다음과 같이 어느 순간에 옆사람에게 질문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려서 뭐가 되고 싶었소? 어떻게 살고 싶었냔 말이오! 그대가 좋아했던 문학과 음악과 미술, 그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푹 빠져있는 좋아하는 뭔가가 있나요? 질문이 별로라면 이건 어떤가, 2차적 직관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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