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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26

from 소설 2014. 9. 30. 14:19

   선호하는 문학의 소재가 너무 신중하거나 진중한 것을, 그건 마치 평소 일상생활에서 진지하고 격식있는 무거운 대화만 고집하는 재미없고 엄숙한 교수님 인물상으로 빗대어 봐도 괜찮다면, 시소의 무게 중심을 바꾸어 너무 코믹한 소재만 선호한다거나 딱 영화에 알맞는 소설만 고집하는 것도 읽는이 사고의 굴레를 멀찌감치 제한하는 모습이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소설 한 편이 나오기까지는 작가가 직간접적으로 수없이 많은 참고서적을 볼 것이다. 안 보는 사람도 있을거니까 그럴 것이다 라고 여운을 남긴다. 뭔 얘기를 하면 그대를 실망시키지 않을까, 어찌해야 글이 잘 써질까, 바로 그것을 한시라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읽을 책을 고르는 시간과 기준과 그리고 정독과 완독, 속독, 읽다 그만두기에 대하여 자못 조심스러우면서 또한 들뜨기도 하거니와 약간은 뭔가 뜻모를 그리움이나 가물가물한 추억과 연결지어진다고, 어떤 꽃 한송이가 연상된다고 추정되는 향수 같은 것에 쫓기는 기분도 느낀다. 이 상황에 적절한 명대사는 각자 마음 속으로!

   J는 떠나기로 마음 먹은 감정이 갈대 마냥 바뀌기 전에 낼름 결행했다. 뭐 챙기고 뭐 준비하고 그럴 필요 없이 냅다 결행했다. 어차피 째깍째깍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하루에도 수십 번 만나 달라고 조르는 팬클럽이나 추종 세력도 없으니, 주말마다 찬란한 약속 12개 가운데 선별하고 순서 정하는 귀찮음은 남의 일이니, 값싼 술이라도 먹으면 기분이야 좋고 신간 편하겠지만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가버릴 테니까, 시간과 공간, 지금 그 자리에서 가는 시간을 잡을 수는 없기 때문에 공간을 조금 멀리 옮긴다면 시간이 느리게 가는 효과까지 노린 것이다.

   당신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가 천천히 어른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이미 어른이라면 맛있는 음식을 먼저 먹나 나중에 먹나? 또는 나이와 관계없이 뭔가 아껴두고 싶은 것은, 조심히 진귀하게 다루는 물체는, 소중한 형체가 없는 대상은... 없지 않기 바란다. 소설을 줄곧 2인칭으로 쓸 능력은 없으니 이렇게 틈틈히 묻고 혼자 마침표를 찍는 것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앞서 저 앞 장에서 소설을 2인칭으로 쓰겠다고 했던 때와 지금의 저자는 지능이나 예능등에 별 차이가 없이 한달 또는 몇달 쯤 나이만 먹었다. 꼭 구석기 시대와 현재는 성의 기술이 그다지 변한 게 거의 없다는 어느 성의학자의 설명과도 같이.
   비행기는 몇분의 몇, 우주선도 몇분의 몇, 빛보다 빠르기는 어렵지만 공간 이동 속도가 빠르면 시간이 실재 느려진다고 하니 달에 갔다온 (반올림) 백명은 미미하지만 약간은 효력을 봤을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자, 당신은 여행갈 때 어떤 교통수단을 선호하시나?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고 솔직히 문맥 상 리딩 리듬감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까하여 물어봤다. J는 여러 교통수단 가운데 기차를 골랐다. 너무 멀리는 못 가고, 말썽을 피울 수는 없고, 형편도 뭐하고 하니 게다가 극소수 따라하는 거 좋아하는 분들의 편의까지 챙긴 나름 심사숙고해서 고른 거다.
   기차를 타러 기차역에 가니 왜 그렇게 어딘가로 정처없이 떠나는, 그런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뜨이는지. 전기 기타를 맨 저 친구는 보아하니 실력은 가소로운데 연습은 하기 싫어하는 타입으로 딥 퍼플, 레드 제플린, 너바나, 블랙 사바스, 퀸 같은 지긋하신 아버님이 청년 때 들으시던 노래들 가운데 제일 유명한 딱 몇 소절만 연주할 능력의 소유자처럼 보인다. 플랫이나 안 깎으면 다행일테지. 저쪽에 앉아 목선을 예쁘게 보이면서 혼자 애교와 교태를 부리는─설마 그걸 연습하는 것일까─저 여대생은 에튀드와─제목은 안 보이는데 쇼팽이나 리스트 둘 중에 하나가 아닐런지─바흐 평균율 악보를 끼고 있는데 Steinway & Sons가 아닌 다른 브랜드 피아노가 깔린 음대에 다니는 것 같고, 깊은 사랑으로 이어질 낭만적인 연애 껀수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 하며, 괜히 엉성하게 글렌 굴드나 흉내내고, 영양사나 제빵사, 요리사 시험을 공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가방 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그 옆에 있는 여고딩은 솔직히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어른들과 전문가들이 하도 뭐라 뭐라 하니까 피츠제럴드를 읽고 있는데 더 나이 들면 베스트셀러 소설만 읽을 것처럼 또는 먹고 살기 힘들지만 투잡을 뛰어 참신한 소설을 쓰면서 살 것처럼 보인다. 직업1, 직업2, 소설가가 아닌 직업1 그리고 소설쓰기. 그녀는 채식도 사랑도 그리고 여행도 할 테지만. 그리고 어, 저쪽에 있는 두 분, 약간 모양새가 불륜 같다. 낌새 보면 대충 보이는데 이건, 남의 일은 눈썰미도 뭣도 아니다. 그러다 저 앞에 딱 로마의 휴일 (1953)이나 어디 나오는 그런 스타일의 고운 자태의 아무래도 중년으로 보이는 노년의 부인, 여전히 오래된 초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낭군과 변함없이 애틋하여 주변에서 여러 추궁과 부러움과 귀감과 또 다른 어떤 질시를 받을 듯 하다.
   한편 저기 저 개페에 앉아 보온병으로 컵에 차를 따라 마시는 검은 썬글라스의 견적이 좀 나가는 차림새의 여인. 음 이곳 사람은 아닌 듯 하다. 휴양지로 유명한 어느 섬의 고급 호텔에 머무르다 바람 쐬러 내륙에 건너온 모습으로 아무래도 자기 자랑에 걸신 들리고, 중상모략에 삿대질과 험담 스폐셜리스트로 알려진, 최근 적지 않은 빚을 졌다고 구박 엄~청나게 해대는, 한때 가리지 않고 날이면 날마다 지저분하고 저질스런 험악한 욕만 골라 하면서 그런 욕-전문-방송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재기 또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을 그런 남편을 두었을 듯한 형편을 살며시 얼굴에서 읽을 수 있다. 만일 그 사실이 맞다면 우연의 일치요, 그냥 사실 만을 이야기한 꼴이다, 오로지 팩트만.
   사람이 일을 안 하니까 생각이 많아지는건가, 소설 쓰는 일을 그 의지를 꼭 불끈 부여잡고 있으니 머리 속이 복잡한 건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딱히 점집을 차릴 기세까지는 아니고 그냥 혼자 놀고 있다. 참, 놀~고 있네.
   이때 저 앞에서는 촌스럽게 어느 남학생이 직접적인 느끼한 멘트로 헌팅을 시도한다. 시간 있냐, 남자 친구는 있냐, 전화번호 줄 수 있냐 하면서 뭘 그렇게 뭐가 있냐고만 혹은 어디 가냐고만 물어보는지,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별로 안 봤을 듯한 타입이다. 보통 여자들은 1) 그런 대사를 거의, 한번도, 잘 안 들어 봤거나 2) 영화나 TV에서만 보거나 3) 헌팅받은 친구에게 듣기만 하거나 (그 친구 얄밉다, 부럽다) 그렇겠지만, 그런 말을 처음 듣든 아니든 남학생의 대사 보다는 그 태도와 외관(외모라는 단어와는 약간 다르게 느껴지는), 목소리, 분위기를 살피게 되어 있다. 당연히 그걸 더 중요시 한다. 여자이니까. 남자는 그렇다. 책을 별로 안 봤어, 영화도 드라마도 안 보고 맨날 게임이나 하고 친구들끼리 으쌰으쌰 뭉쳐다니기만 하니 로맨스를 당최 모른다. 혼자 있는 시간에 본인 수준이 달라지고 지성이 격상한다는 당연한 사실까지. 그 남자는 그녀 바로 옆에 앉지 말고, 서 있다면 너무 가까이 들이 대지 말고, 또 그 거리 안에 들어와서 너무 성급하게 말해버리지도 않아야 하며, 몸가짐을 좀 사근사근하게 바꾸면 좋겠지, 그러다 그녀가 아닌 다른 대상에게 한두 마디, 그리고 핸드폰을 보면서 혼잣말, 그 틈에 이제는 그녀가 들고 있는 책에 대하여 질문인 듯 아닌 듯 슬쩍 뭐라고 여쭌다. 그러다 차인다. 푸하하하.
   플랫폼에 어느새 기차가 들어온다. 그럼 저 기차는 객차마다 찰스 디킨스 시대와 같은 신분이라는 등급으로 나뉠까 아니면 매 칸마다 다른 시간대의 자기 자신이 있을까. 좀 어설프지만 그런대로 비슷한 제임스 본드나 제이슨 본이 타고 있을려나, 뜨아 그러고 보니 두 이름의 알파벳과 어감이 비슷하구나. 아무튼, 아마도 그럴리는 없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당신이 살고 있는 공간은 냉정한 기운이 감도는 냉혹한 극사실주의의 냉엄한 현실 세계일 뿐이다. 잠시 이런 대화가 트위터 공간에서 오고 갈 것 같다. 글자수는 적당히 건너뛰고 의미 전달에 노력함. 걸리버들만 살고 있는 나라에 소인이 당도한다면 스토리 전개가 느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시간개념도 당연히 서로 다를테고.

  • 걸리버: 이 인간이 스토리 안 나오니까 아주 발악을 하는구나. 
  • 여자1: 냉정한, 냉혹한, 냉엄한? 뭘 계속 냉랭하기만 해, 더워 죽겠는데 말야. 안 그러니? 
  • 여자2: 자꾸 멍청한 소리만 하고 있어. 재미난 사건도 안 나오고. 어휴 답답하다 푸~
  • 남자1: 이런, 괜히 따라했다가 허접한 양아치, 찌질한 불량배 취급받았자나, 그게 무슨 비법이야 이런 삐─삐─
  • 남자2: ㅋㅋㅋ개무시 당했구나, 맞아 그건 그냥 개수작이야! 
  • 남자3: 비법 좋아하시네, 순전 돌파리구만.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소설 그거 죄다 거짓말이다. 뻔한 이야기는 모두 다 개인적 바램과 팬들의 의견, 애절한 사연, 무수한 에피소드, 교훈, 말빨, 기법 등등 그걸 모두 집약해서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다. 적어도 대다수는. 현실에서 그 한 챕터만이라도 당신에게 일어날 확률? 거즘 제로에 가깝다. 이건 힐난이나 비아냥은 커녕 코메디 상도덕에 어긋나는 축에도 못 낀다. 이건 젊은이들이 소설 읽고 하는 말들, 그걸 거의 흡사하게 옮겨적은 것에 불과하다. 또는 당신이 하고 싶었던 말일 뿐이다. 독자의 기대치를 너무 낮추어도 문제다. 연애는 무엇이고 사랑은 어떤 것이다, 삶은 뭐뭐 해야 한다, 인생은 어떻다, 훈시는 커녕 겁을 줄 의도는 추호도 눈꼽 만큼도 없었는데 말이다.

   독자들이 정~말 말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 적기만 했는데 분위기 왜 이래?

   꼭 마치 하나같이 안 좋게 보고 평판 별로고 껄끄럽고 재수없는 직장 상사나 권력 있는 비즈니스 관계자를 두고 정말 너무 극성이길래 그와 함께 다같이, 모두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가 나서서 총대 메고 '그게 뭐냐,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하면서 거침없이 의롭게 사자후를 뿜고 나니, 그 후 왜 그런지 사람들이 그를 슬슬 피하고 형식적으로만 대하며 자꾸 겉도는 기운이 감도는 것과 비슷하다. 악역이든 뭐라 부르든 나섰잖아, 언제는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느냐고, 왜 앞에 나가 말하지 않느냐고, 트위터로 페이스북으로 커피 자판기 앞에서 목소리 쩌렁쩌렁 울리며 뭐라뭐라 하드니만 말이다. 영화 촬영장이나 Microsoft, Yahoo, Google, Apple 같은 회사의 어느 부서마다 이런 사람과 상황 드물겠지만 꼭 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현재와 머나 먼 미래 신세계는 성-떼끄니끄의 차이가 이와 같을려나 그냥 비슷할려나.
   그래도 각 공동체마다 극소수는 어쩌면 웃고 난리났다가 뒤집어졌다. 그리고 극소수의 극소수는 근엄한 척 뒷짐을 지고 약 37도 쯤의 망각할 수 없는 각도로 서서 먼 산을 바라보며 냉소를 짓는다. 뭐야 씌여진 데로 하고 있어. 와우.
   이런 서늘하다 해야 할지 쎄하다는 느낌에 더 가까울지 분간하기 곤란한 분위기...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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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25

from 소설 2014. 9. 27. 21:57

   전에는 어떤 책을 읽다 보면 왠지 모르게 재미없었는데, 그래서 끝까지 읽지 못하고 어김없이 책을 덮어버렸는데, 그 스타일과 그 분위기 그런 감성과 범주를 좋아하고 동경해서 오히려 때로는 경원하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무슨 이유인지 좋게 말하면 마음이 살짝 붕떠서 움직여서 그런 책을 다시 들게 되고 덜 좋게 말하면 달리 특별히 서둘러 읽을 책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아서 그렇게 읽어 나가는 찰나 아주 드물게 이런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어 괜찮은데! 이렇게 나불대는 조용한 독백, 참으로 반갑고 즐거운 시간이면서 게다가 그 시간이 느려지고 구부러지는 (오바하면) 정지한다는 신호다. 전에는 왜 그랬지.
   뭐랄까 그땐 너무 다른 차원의 세계를 그린 또는 좀 더 달리 보는 시각으로 표현한 작가의 글이나 다르게 볼려고 노력하는 캐릭터가 나오는 이야기를 보고 싶어서, 보고 싶다고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너무 뭐는 뭐다, 뭐는 뭐다 같은 TV 연예 프로그램 유행어나 TV 광고 카피라이트 느낌이 물씬 나는 조금은 유치한 '연애는 타이밍이다' 라는 문장에 딱 맞게 숨가쁘게(?) 살다 보면 책도 그렇게 자신에게 어느 순간 슬며서 다가오는 순간이 있나 보다. 참 친절하게 그러나 완전 이상하게. 뭐 다 그런 건 아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드문 비율로 그렇다. 다른 사람은 그럴 것이다.
   사람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차든 뭐든 장점을 보는 자세와 반듯한 태도도 좋지만 대체로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더 그럴 수도 있지만 무언가의 단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겉으로 자기도 모르게 표출해버리고 양해를 구하든, 말에 생각을 살짝만 뉘앙스를 비추든 누구나가 다 똑같이 느끼는 인간성에 속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그래서 어느 이야기를 보면 너무 정교하고 정확하고 적확하다, 일부러 속에 있는 걸 드러내지 않는 흐름이다, 또 그런데 성애에 대한 설명은 너무 분량과 단어 선정과 묘사가 뭐하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든다, 중성적인 감성의 사람에겐 그달리 냉큼 마음에 들지는 않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또 어떤 책을 보면 너무 전형적이다, 단 하루도 빼지 않고 보고 듣고 겪고 꿈에서도 나오는 그 대상만을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적어도 내게는 재미없게 받아들여지나 보다, 그렇게 된다. 또 다른 책을 보면 너무 직접적이야, 이건 과도하게 질질 끄는데, 저건 너무 파격적이고 문어체와 구어체가 정돈되지 않았고 뭐는 뭐고 뭐뭐 했다 뭐뭐 했다만 나오고 다음 얘기 뻔하다 진부하다 식상하다 그렇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산다.
   그니까 소설에서 어쩌다 가끔 나오는 소설가들이 예술가들 중에서도 참 유별나고 유난스러운 이상한 별난 부류라고 하지만 그에 더하자면 조심스럽게 첨언 해도 된다면 소설가 위에 독자, 더없이 까탈스러운 독자, 재수없는 독자가 있다. 그게 맞다. 하긴 소설가도 독자다.
   과연 모순되면서 조화로운 물밑의 수많은 감정과 파동을 잔잔한 물살과 성난 파도로 흥미롭게 엮은 소설은 어떻게 써야만 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어렵다.

   J는 예전 사실인지 거짓인지 단순히 혼자 지어낸 상상 속의 허구 세계인지 모를 섬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며 그 소설을 이어가기로 했다. 학교 가기 싫다고 안 갈 수는 없다. 직장, 돈을 벌기 위해 또는 일하는 게 마냥 행복해 죽겠으니까 꼭 가야만 한다. 때려치우긴 뭘 때려치워 일하는 게 얼마나 좋은데. 연애도 사랑도 일이고 소설도, 소설쓰기도 소설읽기도 일이다. 이름 붙이기 나름이다. 예약된 스케쥴의 비즈니스 미팅, 구글 캘린더나 종이로 된 달력으로 관리해야 한다. 어린이님도 유치원, 가야 한다. 버스 운전기사, 정해진 경로로만 가야 한다. 안 그러면 그 다음날 신문과 뉴스에 나온다. 택시 운전기사, 승객이 원하는 목적지로 가야 한다. 안 그러면 납치다. 대형사고다. 또 뭐가 있을까 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자, 이렇게 확실한 사실을 쭉 나열하니 그대의 마음이 약산성을 띄기 시작한다. 머머 해야 한다, 머머 해야 한다, 머머 해야 한다. 살짝 싫어지거나 조금쯤 거북하거나 아마도 공중파 방송에 나오는 효과음이 발생할 것이다. 삐─
   머머 해야 한다를 깨트리자면 사건 사고, 커다랗고 끔찍한 사건 사고를 일으키거나 뜻밖에 혹은 우연찮게 휩쓸린 행인을 만들어 내면 되지만 그것이 아닌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살고 있는 마을을 떠나는 캐릭터를 그래서 만들기로 했다. 저번에는 가물가물하지만 긴가민가하지만 섬은 한 번 나왔으니까 가봤으니까 이젠 항구 도시로 보내야겠다. 소설이 여기까지 흘러온 이래 참 대단한(?) 극중 대전환을 맞이했다.
   원래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그곳을 벗어나 대도시로 가고 싶어 한다. 반대로 대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곳은 없거나 거의 드물겠지만 전기도 없고 전화도 되지 않는 깊은 산속 오지나 썩 품격있는 호텔이 있는 섬이나 항구 도시로 떠나고 싶어한다. 항구 도시라면 모르겠지만 깊은 산속 오지라면 며칠 지나서 그 마음이 금새 바뀔 테지만 일단은 보통 현실에서 흔히들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 인간이니까.
   그곳 항구도시는 섬과 내륙도시의 중간이다. 언제라도 어느 곳으로도 누군가와 떠날 수 있는 4차원의 교집합 공간이라 부르고 싶은 그런 장소. 그런데 섬과 항구도시의 차들은 모두 바닷바람의 영향 때문에 아무리 좋은 차라도 부식이 대체로 심하다. 그래서 비교적 최신 자동차가 덜 보인다. 하지만 섬보다는 항구도시의 전체적인 견적이 높다.
   통상 육지의 내륙 도시 생활을 하다 섬이나 항구도시에 가면 당연히 기분이 이상해질 수 밖에 없다. 마음이 붕하고 퐁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하면서 슥 뜬다. 상상만으로도, 순수한 탄산수가 아닌 맹물 한컵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 말발도 그렇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사이코패스나 범죄자를 빼고 멋지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 남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지 않은 사람, "저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에요."라는 말을 하거나 듣기를 완전 싫어하는 사람, 만국 공통어인 코메디를 썩 달가워 하지 않는 사람은─다혈질에 과격하고 험상궂지만 선량한 마초일지라도, 지역과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거의─이럴 때 반올림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나─한 사람도 없다.
   말발! 누구나 잘하는 것, 당신이 잘하는 또는 잘-하고 싶어 하는 것, 상대방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 당신 그대 독자는 그야말로 물건이다. 나이, 주인공과 주변인물의 명징한 분리, 상황설정, 무대 세팅 등등등 삶과 인생과 우주에 프로페셔널하고 세상만사에 통달한 천재인 당신이 그런 구도를 딱 보면 앞으로 뭔 얘기할지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어 기승전결과 반전이 있을지 있다면 허무할지 다 전부 다 내다보신다. 이런 혼잣말까지 능히 그러면서 눈을 부릅뜨고 말씀 하실꺼다. '(얘)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이 소설은 이 연재-편은 철학소설이라는 개구멍으로 들어가서 즉흥연주의 포니테일로 마무리 된다. '(얘)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이런 게 TV 코메디 프로가 아닌 중고등학교에서 이국적인 유행어가 될 가망성이 크다.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뭔지는 몰라도 존중합니다."와는 확 달리 이국적인. 그리고 초딩은 NDJM!
   희망과 가능성을 버리지 말지어다. 뭐야 이거, 수첩이나 핸드폰이 아닌 데스크탑 메모장에 뚝딱 써버렸다. 어머 믿기지 않아. 와우 (말을 빠르게) 됐어 됐어! 그러긴 한데 좋긴 좋은데 뭔가... 수준이 팍x2 떨어진다.

   오늘의 한 곡은 적지 않겠다. 왜냐하면 지는 우아하고 고상하게 폼잡고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파가니니, 라흐마니노프, 드뷧시, 마리아 칼라스 같은 고전음악을 들으면서 우리 보고는 한~참 철지난 팝송을 들으란 말야? 이런 삐─삐─삐─...라는 괴팍하나 다정하며 상냥한 핀잔은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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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24

from 소설 2014. 9. 18. 21:10

   굉장히 나이 어린 치기와 실제 어리숙하면서도 학창 시절의 수줍음부터 노년의 초연함에 이르는 그런 심연의 차분하고 광범위한 계층도를 포함한 순수함이, 막연한 순수함이 아닌 이런 순수함이 음 뭐랄까 아무래도 연애 칼럼니스트나 잘 나가는 정신병원 의사의 모범적인 상담 사례에, 예를 들어 인기있는 소설가들의 짜임새 있는 플롯을 짤 수 있는 능력에 포함된다 일컫을 수도 있다. 또한 좋은 목소리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은 목소리가 크고 우렁차고 (듣기에) 홀딱 넘어갈 듯 하면 (오바하면) 절반 먹고 들어가는 셈으로 칠 만큼 그 설득력과 논리가 청자의 심금을 울리고 화자는 영향을 주는 기쁨을 맞보게 있다. (절반이 뭐야..)
   한 편의 소설 전체가 숨막힐 듯한 세밀한 묘사와 압박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만 전체 내내 줄곧 이어진다면 그걸 읽는 언론사 북 칼럼 담당자처럼 완전 몰입한다면 진짜 숨막히고 짓눌리는 압박감에 무척 답답해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흔히 일부 고전소설이나 수준 높은 현대 작품이 이래서 범인(현상범이 아닌)들에게 잘 안 읽힌다. 학교에서 많이 알려진 예술작들과 비슷하게 학문적으로 규정된 테두리라는 룰로 만든 소설은 문학이라는 과목에는 아무래도 무례하겠지만 약간 그런 경향이 없다고 아예 부정하기는 힘들다.
   왜 사람들이 하나의 소설을 끝까지 읽지 못할까, 왜 안 읽지, 왜 드라마나 영화를 중간에 보다 말까 왜. 왜냐하면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게 낫겠다, 다음에 어떻게 될지 너무 빤하다, 또는 잠온다와 이미 뻔하지만 계속 몰입하지 않을 수 없다, 썩 즐겁지 않고 그만저만 하지만 아무래도 교묘하게 시간 할애-하게 만든다는 그래서, 그래서와 그다음에, 그다음에 같은 단어가 작품 창작자의 머리 꼭대기에서 빙글빙글 교차하며 조그만 새들 지저귀는 효과음 소리를 내면서 어지롭게 돌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충 킬링 타임용으로 만들었는데 대박 나거나 뽀너스로 넣었는데 잭팟을 터트리는 경우는 참으로 운이 좋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움베르토 에코가 “최근 100년간 출판된 소설 가운데 가장 재미있고 진실하고 잔인할 정도로 유쾌한 소설 (중 하나)"라고 극찬한, 젊은이는 아무래도 안 좋아라 할 어느 소설이 다루는 주제는 그것이다. 에코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런데 에코 팬층의 분석도를 다룬 기사가 있을려나... 여러 이야기 가운데 아무래도 남녀간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가장 재미있지만 주로 남자의 선수(先手) 혹은 여자의 눈빛에 의해 그 발단은 시작된다. 그런 여자 뒤꽁무니 쫓아다니는 행동과 여자와 모든 사람을 배려하는 신사의 품위는 도대체 얼마나 다른 것일까. 아무래도 그 간극은 많이 희미해지고 있고 그 사이에서 코메디의 중요성은 더없이 부각되고 있지만 어쨌든 그런 남자의 성적 본능이 없었다면 인간이라는 동물은 인류라는 문명은 지금쯤 아마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이미 옛날에 공룡과 똑같이 멸종했을 것이다. 종족 번식은 천연기념 유산으로 줄어들고 그러다 멸종. 참으로 멸망 안 해서 완전 다행이다. 그래서 그분들에 대한 변론이 좀 필요하다. 앞서 푼 단락으로 멋지고 댄디한 남성의 모양새가 구겨진 감이 없지 않으니 조금 추가 설명이 있어야 할 듯 하다. 그분들끼리만 사는 세상이 어떠하리라고는 별로 떠올리기에 아름답다 하기에는 상당히 괴로우니까.
   꽤 은근하고 우아하고 고상하며 근사한데다 세련되고 특별한 자상하며 잘생긴 남자! 그런 부드러움을 아는 남자는 없다. 있는데 결혼했거나, (레슬링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또는 론다 로우지 같은) 짝이 있거나, 만수르끕 상류층이다. 아니면 게이다. 또는 혼성이다. 그것도 아니면 무공을 익혀 다른데 쓸지도 모르지만 조련시키는데 수십년이 걸린다. 훌쩍! DNA라도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이상형 남자와 같은 스토리를 쓸려다 보면 막상 실제 잘 안된다. 그래서 오페라든 뭐든 막간이라는 게 있고 학원에도 쉬는 시간이라는 게 있다. 이번 장은 또 그렇게 받아들이면 된다. 괜히 험담하느라 힘 빼지 말고.
   여자들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만나면 여자(이성)와 돈, 술, 예술, 문화, 낚시 외에도 그 말하는 주제가 심히 방대하다. 그 가운데 하나로 자동차를 빼놓을 수 없다. 부가티, 페라리, 벤틀리... 조금 건너와서 뭐뭐뭐. 그런데 아주 특이한 동네나 극소수를 제외하고, 그런 차에서 내리시는 사람들을 잘 살펴 보자. 대놓고는 보지 말고. 그분들의 인격을 들추고 파헤쳐 보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차에서 문을 열고 내리시는 인물들을 대충 보자면 대부분 중장년 층이다, 대부분. 그 장렬한 브랜드 얘기는 목소리 키워 젊은 친구들이 하는데 정작 그런 브랜드에서 내리는 사람은 나이가 많아. 대관절 뭔가 이상하지만 남자들도 또 나름 다 이유가 있다. 젊은 시절은 한 번 지나가 버리면 결코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요, 아무래도 일이나 삶의 품위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절대 해가 되지는 않기도 하려니와 정작 중요한 작업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또 무리해서 클래스를 높이다 보면 F1보다 약간 한 끗발 아래이지만 반올림 20년 경력의 자동차 정비 엔지니어의 말을 들어봐도 알 수 있듯이 괜히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승용차를 타시는 분들은 아무래도 좀 뭐하드라, 그래서 착실히 알맞게 적당히 검소한 차를 타는 남성이 알고 보면 알부자가 많드라는 말을 듣고, 그런가 보다 하고 스스로 고개를 끄덕끄덕 하게 된다. 하나 더, 차의 배기량을 올리거나 좀 더 괜찮은 차를 알고 타게 되면, 겪어보니까, 타보니까 어떻다고들 뭐라뭐라 하지만 형편이 어렵게 되면 똥줄 타게 되면 오래된 외국 영화에 나오는 허름한 볼보 보다 훨씬 더한 중고차, 다 타게 되어 있다. 정말 눈 높이가 올라가면 되돌아오기 힘든 종목은 취향과 안목이다. 나이를 괜히 먹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여자들이 또 무조건 자기 남자를 새로 만나는 남자를 이도 저도 따지지 않고 차만 보지는 않는다. 이도 저도 따지지 않고 차만 보는 여자라면 항아리형 그래프에서 제일 끝에 위치한 타입으로 마치 자기는 공주 취급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그래야 만족한다는 성향을 보여 수많은 미사여구와 코메디를 듣고도 "할 말 없지?"라고 찬물을 끼얹으는 부류도 없잖아 있다. 완전 재수없게도! 이러면 아무래도 건너편에서는 상대방의 오로지 쇼핑만 좋아하는 인성과 고결한 지성, 퍽이나 높은 안목에 대해 의심을 사게 된다. 바로 견적이 나온다. 그렇다면 또 다음과 같은 대화는 남자의 항아리형(?) 그래프의 끝부분에 위치하는 인물을 다루고 있다. 항아리형 그래프의 양 사이드는 원래 그 숫자가 적다. 사람들은 대개 얼마간 착하다. 기억을 잘 못하거나 잘 안듣거나 뭐 하거나 그래서 탈이지.

   "오빠 텔레비전 소리 좀 줄여, 안 시끄러워?"
   그는 리모콘을 거꾸로 잡고 소리를 높인다. 텔레비전 소리가 올라간다.
   "뭐야, 소리 줄이라니깐 정말... (걸어서 거실로 나오며) 뭐 하고 있어, 아까 공원에서는 집에 가서 누워서 텔레비전 보고 싶다며."
   낚시, 골프, 게임기, 전자기기, 새 쇼핑리스트를 온통 내놓고서 만지고 있다.
   "잠깐만 만지고 들여놓는다는 게 길어졌네. 금방 치울께."
   잠시 후
   "자기야 우리 오랜만에 영화 한 편 보자. (뭐) 어때?"
   "..."
   남편은 딴 생각하고 있다. 원래 중요한 얘기가 아니면, 소리나 액션등이 크지 않으면, 내가 관심 기울이는 분야나 상황이 아니면 별로 신경을 잘 안 쓴다. 묻는 사람 답답하게도. 그래도 처음에는 잘-못-들었겠지, 나중에는 피곤한가보지, 오래된 후로 저 인간이... 그런다. 사람은 원래 바뀌지 않는다. 타고난 데로 쭉 살다 간다. 다른 게 아니라 그게, 그것도 인생이다.
   "자기야 다음에 (애 이름) 친구네랑 식사 한 번 하자. 요 근처로 이사 오셨다는데 요즘 선선해지고 시간도 괜찮자나."
   "..."
   또 딴 생각인데 그나마 생각이 좀 멀리 있다가 이쪽으로 슬며시 건너 왔다. 그 아저씨 나보다 훨씬 좋은 차 타는데... 그 아줌마 ... ㅎㅎㅎ ... 으으으.
   "자기야 다음에 언제 멋진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깐소네 들으면서 파스타 한 번 먹자."
   "..."
   항상 그 남자는 속으로 뭔 생각하는 것일까. 제인 오스틴 소설 속 인물이 의뭉스러운 게 아니라 바로 이 인간이 세상에서 제일 의뭉스러운 인간이다. 그런데 또 바깥에 친구들 만나러 가면 눈동자가 살아난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또 몹시 뭐하다. 그이는 친구도 없는 것 같다. 바른이 아니라 좋은 친구. 아니면 그 반대인가 둘 다인가. 이 남자는 술도 안 먹는다. 오직 여자 아니면 도박, 딱 2가지가 인생의 전부다. 그래서 친구는 있는데 좋은 친구가 없다. 혼자서도 친구를 만나서도 상대방이 "어머 기다리고 있었어요."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헤픈 여자만, 따 먹을 여자만 찾으러 다니니까, 술은 입에도 안 대고. 그래도 그이는 틈틈히 집에서 뭐하고 애랑 잘 놀아주고 뭐하고... (이 말 하면 좀 삶이 우주가 슬프지만) 그것도 안하면?
   "자기야 수제 (no스트레스 유치원에서 성장한 뽀끄) 소시지 사왔는데 그거 해줄까? 아니면 뭐 먹고 싶어? 말만해, 어지간한 건 다 있어."
   "..."
TV 채널 돌리고 있다.
   "자기야 말 좀 해보라니까~ 너 말하는 거 까먹었어? 이 인간이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
   '아이 정말 귀찮게 좀 하지 말지. 게임도 하면서 음악도 틀어놓고 시끌벅적 우당탕퉁탕 그래야 하는데 말야. 게다가 핸드폰을 하나 더 사야겠는데, 첩보 영화가 현실이니 이거 원... 도무지 나만의 공간, 사생활이 없단 말이야.
   "자기야, 아 정말 너무한다. (큰 목소리로) 뭐 먹을꺼야?"
깜짝 놀라는 그분.
   "어 여자."
... 서로 눈이 똥그래져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이때 어린 딸이 방에서 놀다 나온다.
   "난 크면 아빠랑 결혼할꺼야."
   "아이쿠,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면 큰일 난단다."
   "큰일? 무슨 큰일?"
   "넌 아직 모를꺼야. 어른이 되면 알게 돼. 인간, 삶에 대한 회의를."
   "엄마, 회의가 뭐야(뭐여)?"

   유행가 가사나, 우화와는 동떨어지고 연습곡 랩 가사를 표방한 듯 한데 그것도 아니고 괜히 소설 한편 쓸려다가, 이러다가 정말 사람 잡겠다. 누군가는 살면서 미적지근한 지인으로부터 대뜸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왜, 자고 싶어?"

   처음 알기 전, 말을 나누어 보기 이전에, 안면은 있는데 가까워지고 싶은데 좋아하는데 그 사람 근처에서 조심하면서 차를 마시다 그러면서 심하게 사레들리는 그런 분위기를 살면서 잊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3~5분 정도의 짧은 음악을 듣나, 안 그러는 사람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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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23

from 소설 2014. 9. 15. 22:34

   어떤 대화, 동상이몽. J는 급기야 하다하다 아이폰 메모장으로 단편소설 쓰기를 시도해 보았다. 이젠 결국 실험소설이란 말인가. 마치 고전적인 걸작 단편소설에서 느끼함과 군더더기를 모두 제거하고 전위적인데 재미있기까지 하는 그런 착한 단편영화의 특징을 차용해 써보겠다는 의욕적이고 왕성한 창작 의욕이 솟구쳐 오르는 걸 느꼈다. 길게 지속되지는 않을 테지만 일단은 그랬다.
   여자1과 여자2는 개패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나눈다. 남자들처럼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가 아닌 그 매커니즘이 퍽이나 교묘하고 쓰러질 만큼 정교한 여자들은 절친(친한 친구)이라 하면 지금만 절친이 있는가 하면 사는 동안 삶의 이유로 못 만나더라도 언제까지나 절친이 있다. 여자1호와 여자2호는 후자다.
   여자1호는 아픈 과거가 있다. 옛날 남자친구가 특수부대에 있을 때 면회를 갔는데 남친의 선임병이 좀 능글맞게 굴면서 남친이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조금만 기다리면 잠시 후에 나오니 그때까지 부대 인근 번화가에서 간단히 시원한 맥주를 먹자며, 그렇게 부탁을 받았다 하였다가, 술을 먹고 어떻게 해서 그 선임병은 여자1호를 취하고 울고불고 난리 나고, 그 선임병은 후임병인 여자1호의 남친에게 딱 정확히 죽기 직전까지 맞아서 남친은 영창에 안 가는 대신 특수작전 실전 수준 만큼 처참하고도 완전 가혹한 수준으로 장교로부터 벌을 받았다. 그 선임병의 기수가 열외 되었는지 어쩐지는 모르는 채 남친과 여자1호는 그 후 잘 되지 않고 헤어지게 되었다.
   여자2호는 옛날에 한 남자를 만났다. 느낌이 괜찮았고 대화도 잘 통했는데 어떻게 에로 장르처럼 처음 만난 그날 그와 잤다. 육체적 사랑의 정도(正道)가 있겠냐 하겠지만, 좋은 사례도 있을 테지만 음. 중진은 약간 그렇고 쪼끔 애매한 선수는 말한다. 여자들은 처음 만났을 때는 절대 안 준다고, 두번째가 그럴싸 하다고. 그 선수는 선수의 층위가 높지 않다. 사람과 상황과 운명은 다양하고 풋사랑도 있다. 그 어떤 고급 콜걸이나 영화 속 프리티 우먼 (1990)도 키스를 한다, 사랑을 한다, 그 다음까지도! 여자2호는 그래도 그 남자와 잘해 보고 싶어 미래를 계획했지만 결국 헤어졌다. 상남자들이서 함께, 친한 남자들끼리, 가까운 여자들끼리 만나면 정말 찐한 얘기들을 할 것이다.
   여자1호와 2호, 그녀들은 개패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 영화 어때, 뭐 읽을 만한 책 없니, 이 남자 저 남자, 머머 하고 싶다 머머 하고 싶다, 어디 가고 싶다 어디 가고 싶다, 그거 먹고 싶다 그거 먹고 싶다, 뭐 사고 싶다 뭐 사고 싶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선언과 시작의 공증이 문제네 아니네, 다짐이 중요하네 뭐네, 멜로 영화처럼 하이틴 드라마처럼 로맨스 소설처럼.
   그런데 그때 그 개패에서 여자1호와 여자2호에게 헌팅이 들어왔다. 남자 친구들 가운데 그럭저럭 연애 경험이 있는 남자1호가 옆에 있는 친구에게 "지금 째 꼬신다." 말하고 혼자 작업에 들어갔다. 앞서 말했-듯이 누구나가 알-듯이 이런 경우에도 견적내기가 적용된다. 모든 것은 견적이다. 남자들도 딱 어리숙한 뭔가를 보지만 어리숙 하지 않은 여자들도 못 이긴척 은글슬쩍 생활 연기를 한다. 남자1호는 그렇게 두명 가운데 한 명의 전화번호를 따고 일주일 후 2번째 만남 전에 친구에게 말한다. "쟤랑 오늘 잔다." 그리고 그랬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어떤 남자는 첫 만남에 "나 너 찍었다."를 말하고 두번째 만남에서 "나 너랑 결혼할꺼다."라고 말한 후 그랬다는 사례도 있다. 참 애 같다. 남자들은 모든 걸, 모든 걸 공유하고 늘리고 키운다.

   어떤 커플이 대화를 나눈다.
   "나는 오빠랑 사랑할 때보다 서로 그냥 가만히 안고 있는 게 더 좋아."
   "뭐야 그건? 이젠 날 사랑하지 않는단 말야?"
   "오빠는 의역은 도무지 모르는 사람인 거 같아. 대화의 수준 참 높다"
   "뭔 말인지 나도 다 알아."
   "존 업다이크가 누군지는 알아?"
   "이런 쉣, 그 머저리 너구리는 뭐하는 놈이야?"
   "내가 깜빡 했다. 오빠는 키스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걸."
   "전에 그... 아니 이름이... 뭐야 이제 외국인이야?"
   "어쩜..."
   '뭔소리야.'
   '난 솔직히 그거 재미없어.'
   '아 외롭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아 외롭다...'
   '말을 많이 하기만 하면 말빨인 줄 아는 오빠, 아 답답하다. 제발, 제발 그때 만큼은 침묵했으면... 포근함, 자상함, 무드, 섬세함, 낭만적 감성... 바랠 걸 바래야지.'
   '아 계속 외롭다.'

  소설이 시작된 이후 대화체가 처음으로 많이 나왔다. 한가득.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조짐은 커녕 아마도 대화체, 첫 끗발이 개 끗발일꺼야.
   멋지고 성실하고 세련되고 좋은 그러면서도 뭐한 그런 남자 엄~청 많지만 그렇게 작품을 창작하고 미친? 이상한? 사랑도 있고 예쁜 사랑과 최고의 사랑을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쓰는 건 참으로 험난한 길인 것 같다. 소설 쓰기는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S는 아무래도 자신이 요 분야에는 숨겨진 재능도 싹을 티울 가능성도 입에 풀칠 할 재주나 잔꾀도 없어서 아무래도 이 업계에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닌가 하며, (쌍)코피를 흘리는 왜 코피가 터졌는지 의심을 사면서  참 의뭉스러운 새댁 이야기를 써볼까 아니 그것도 어렵겠지 하면서 꽤 심각하게 고민하는 나날을 보냈다. 아무튼 연애소설은 함부로 덤빌 장르가 아닌가 보다. 이건 꼭 3류 소설 같다. '같다'가 아니라 3류 소설이다. 그는 그날 시든 보라빛 꽃잎처럼 고개를 떨구면서 고개 숙인 남자가 됐다.
   있지도 않은 DJ에게 신청한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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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22

from 소설 2014. 9. 14. 14:32

   글이 안 써진다며 처량하게 혹은 아연하게 혼자서 술 퍼마시고, 괜히 아무런 잘못 없는 조이스를 뒤적거리며, 재미없을 줄 이미 다 알면서 느닷없이 칼비노를 펼쳐 보다가 허무맹랑한 처녀 작가처럼 서점에 가서 사지도 않을 거면서 지루하니까 '뭐야 이거'라고 (속으로만) 험담이 절대 아닌 혼잣말을 하리라는 걸 100% 알면서도 프루스트를 뒤적거리는 행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해야 하는데 뭐 사람 나름으로 성별에 따라 개인차도 있으니까 그냥저냥 위안을 삼는다. 어쨌든 삘 받는 찰나를 기다리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방법임을 참으로 빨리도 알게 되었다. 이 쉬운 걸 말이다.

행복의 추구/더글라스 케네디
p.128 ...물론 내 말이 너처럼 '작가의 블록 현상'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전혀 위로가 안 된다는 것쯤은 알아. 작가의 블록 현상은 나 역시 수시로 겪는 증후군이니까.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다보면 의외로 문제가 쉽게 풀리기도 해. 글을 쓰고 싶으면 쓰고, 사랑을 하고 싶으면 연애상대를 찾아봐. 나이를 몇 살이라도 더 먹은 연장자로서 말하는데 사랑을 해보겠다고 작심하고 나서는 건 곤란해. 그런 식으로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 십중팔구 싸구려 멜로드라마로 끝나게 되지. 사랑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가슴을 비집고 들어와 머리를 탁 치는 느낌을 주는 거라 생각해.

   몇 년 몇 월 며칠, 이거 저거 요거, 뭐뭐 했다 뭐뭐 했다 뭐뭐 했다. 지금 꼭 초딩 일기 같다. 스토리가 안 나오니까. 하지만 그런 초딩의 일기 같은 책이 몇백만 부, 몇천만 부 쉽게 찍어 버리는 걸 보면 한 번쯤 그 방식을 본 뜰 필요가 있다. 그 유명한 몇억 부 찍은 이야기, 딱 정확히 초딩 스타일이다. (물음표를 너무 많이 쓰면 고귀한 독자님께서 짜증내고 재수 없게 느끼시니까 적당히 쉼표로 대체해야 한다) 초딩의 마음을 닮고 싶은 어른, 초딩의 생각으로 글을 쓰는 동화 작가, 초딩의 불장난을 다그치고 말리고 타이르는 부모로서는 도저히 확실하게 초딩처럼 그 몇억 부 찍은 작품에 절대 절대 빠져들 수 없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어른은 초딩 시절이 이미 옛날에 지나가 버렸으니까! 그니까 슬퍼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으니까, 불가능하지만, 불가능하니까, 막던지자면, 몇억명의 애독자에게 욕 먹을 각오하고 그 극소수를 위해 알려드리는 팁이다. 그대에게만 알려 드리니 맹세코 어디 가서 발설하지 말고 함구해야 한다.
  무조건 따라하는 거에 대한 단점의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지만 그런데 너무 신경쓰지 않는 연습이 긴요하다. 왜냐하면 신선들이 사는 것 같은 샹그리라의 로얄제리처럼 응축되고 지구를 통채 휩싸은 인터넷 망처럼 길다랗게 유려하고도 장중한 문체를 구사하는 건 말처럼 그리 쉽지 않고, 그냥 무조건 마침표를 저 뒤로 미룬다고만 해서 흉내낼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칼럼은, 아 칼럼이 아니라 소설 연재 편은 신선한 시도다. 수첩에 볼펜을 꽉 움켜쥐고 신들린 듯 영감(?)을 써 내려가지 않고 Dell표 데스크탑 컴퓨터를 켜놓고 메모장에 작성했기 때문이다. DELL도 괜찮다.
   앞서 만들었던 J같은 캐릭터는 원래 지극히 속물적이고 통속적인 성격의 소설 속 가상 등장인물이다. 현실에서는 있을 법 하지 않은. 그런 인간은 좀 험담을 얻어들어야 한다. 그래도 싸다. 마치 뒤태에 꼿힌 기억을 너무 직접 경험에 대해서만 집요하게 쓰는 소설가처럼 자랑이랍시고―그런 소설가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J 캐릭터만―책으로 펼쳐 내지는 못하고 블로그에 기록할 것 같은 유형이다. 어려서 전두엽에 뚜렷히 각인된 첫 뒤태의 기억이 마치 이와 같을 것이다. 초딩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의 '뭐 재미난 거 알려 줄까' 같은 인사말 또는 제안을 듣고 같이 가서 보았던 퍼포먼스(같은 반 친구의 치마를 걷어올리는 게 아니라 바지를 잡고 ... 그 친구의 이름은, 피해자였던 그 친구의 이름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 친구가 '나를 잊지 말아요' 같은 제목의 노래를 작곡했을 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에 참여. 법률 용어는 어렵다. 그 다음 뒤태의 기억, 중딩 1학년 때 독서실 멤버들과 여자 목욕탕(화장실이 아니라 공용 목욕탕이었다, 전에 잘못 썼다)을 훔쳐 본 2번의 시도와 1번의 실패가 틀림없이 있을 만한 타입이다. 그런데 전자는 어떻고 후자는 어떻다가 아니라 이 전자와 후자 사이에 중성미자가 없을 리가 없다. 어린이였던 적에 XX 운동이라며 동네 아줌마들을 모조리 웃겨버렸던 행위가 다시 초딩 5학년인가 6학년인가 즈음에 집에 있는 (별로 강도 높지 않은) 싸구려 잡지에서 뒤태의 예술적인 사진, 그 한 페이지를 보며 재현된 사건 같은. (이런 젠더는 이거 때문인지 포경수술을 늦게 받아서 그런지 정상적인 사정을 또래에 비해 뒤늦게 경험한다는, 첫 경험에서 보통 남자들과는 달리 젊은 여자들처럼 사정에 이르지 못한다는 학계의 보고가 있다. 남자의 첫 사정과 첫 경험 사이의 시간이 여자들의 경우 약간 역대칭한다는 학술 자료도 있다. 당연히 학계 보고와 학술 자료는 물론 비공인으로 필자의 추정치다)
   사실 뒤태는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도 그 만큼 가치 폄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른들 가운데 운전 안 해본 사람, 또는 운전을 못 해봤으면 자동차의 조수석에는 타본 사람, 그것도 아니면 차에 타본 사람 나오지 말고 그냥 인정만 해 주시라 간절히 부탁한다면 전부 다 그건 공인한다. 그러면 도로에서 제일 많이 보이는 게, 가장 잘 보이는 게 무엇일까? 거리를 지나가는 잘생긴 남성, 섹시한 여자, 지성적인 중성인? 다 아니다. 자동차의 뒤태다! 그래서 모든 자동차 회사들이 뒤늦게 좀 더 그것에 대한 R&D 비용을 늘리고 있다고 알려진다. 출처가 어딘지는 불확실하다.
   뒤태는 침 흘릴 만큼 놀랍도록 책과 닯았다, 수평적인 가치에서. 옷만 대충 좀 갖추어 입으면 누구나 다 최고로 잘 나가는 영화배우요, 실제 보면 몸이 찌릿찌릿하고 뭔가가 찔끔 한다는 아티스트다. 누구나 음 거의 누구나. 그런데 다소 실례이긴 하지만 이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이 마당에 꽤 적절한 명대사. 절대 뒤돌아보지 마!
   이 글은 꼭 세계 3대 고백록의 하나인 거의 1천 5백년 전이었던 4세기 말에 씌여진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닮았다. 그 숭고한 지력이 아니라 형태만.
   이제 정말 미간에 힘-빡-주고 한껏 긴장하고 스토리를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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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21

from 소설 2014. 9. 12. 17:22

   흔히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행복하니? 행복해? 행복하지 않아, 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대화의 주제와 시간, 장소, 상대등을 가리지 않고 어찌 보면 감 없는 사람이 보면 동성끼리 사귀는 거 아냐 같은 오해를 즐거운 상상을 유발시키는 경우를 제외해도 아주 공감 못할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소시알 ㅎ레조(소셜 네트워크)에서는 그럭저럭 부끄럽지 않게 이 말을 과감하면서도 떳떳하게 사용한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왜 그렇지, 왜 그런거야 하면서 유난떨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텔레비젼을 보면서 '그래서 행복하니?' 라는 말이 나오면 때로는 무척 거북한 감정을 품고서 그 다음에 무슨 얘기를 할지 어떤 대화를 나눌지 다 아니까, 식상하고 지겨우니까, 왜 그런지는 더 자세히 몰라도 별로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 또 그런데 정말 기특하게도 종이책이나 전자책으로는 어떻게 보면 남몰래 자기도 이미 다 아는 그것에 대한 그것이 제목으로 쓰인 책들을 찾고 또 찾고 읽고 또 읽으면서 더 훌륭한 책을 기다린다.
   뭔가 이상하다. 한 번 더, 잔뜩 수상하다. 한 번 더, 다 같이...는 록스타나 다른 장르 뮤지션들이 즐겨 사용하는 문구다.
   이런 건 로베르토 볼라뇨, 파울로 코엘료 스타일 문체를 사용해야 더 느낌이 사는데 그럴 깜냥도 안되고 그게 어디 막 따라한다고 쉽사리 되는 것도 아니다. 저 이야기를 왜 했냐 하면 그 단어를 직접 쓰지는 않더래도 간접적으로 고급스럽게 아리송하게 느껴지도록 만듬으로써 독자의 마음이 그분들의 육체로부터 유체이탈 하는 기분을 느끼시게끔 해야지만 필론의 결례를 범하지 않으리란 믿음? 어림짐작? 때문이었다.
   지금 일부 마음이 안 뜬 독자는 몸이 무거우신 탓이 크니까 장기 스트레스를 단기 스트레스인 운동으로 상쇄하지 못하셔서 그럴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잘 모르겠다. 컨설턴트들도 먹고 살아야 한다.
   어차피 우긴다고 소설의 수준이 급작스럽게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없는 스토리가 갑자기 잘 풀려서, 너무 잘 풀려서 특급 속기사를 고용해 초딩처럼 구술을 받아쓰게 할 황망한 사태는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따라서 썰을 좀 풀겠다. 잘 안 참거나 잘 못 웃거나 불안한지 들뜬 것인지 잘 모른다면 누군가의 의도가 절반은 먹힌 건가. 어쩌다 보니 역대, 당대, 지역 최고의 작가들만이 가능하다고 쉬쉬 하면서 알려진 연재 쓰기 방식이 구사되고 있으니 아무래도 글쓴이의 상태가 좋을리 만무하니, 제임스 카메론이 수직형 노란 잠수함을 타고서 들어갔다 나온 심해처럼 넓고 깊은 그대의 마음과 인격으로 대인배답게 이해해 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가 아니라 이미 예전에 서로 약조했다. 설마 기억 못하시지는 않으리라.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드리겠소,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지만 뭔가 정형화된 관계에 삼자가 끼어들 여지에 대해서 허점을 보일 것 같으면 남자들은 부모든 하늘이든 인생이든 모든 걸 다 건다. 모든 걸 다 걸고 웅변한다. 여자들은 또 다른 방식을 이용한다. 그 중간의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퍼뜩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블로거가 이 말빨을, 이 글빨을 어디서 배웠겠는가? 단, 그것이 아무리 저급할지라도 글의 흐름 상 그냥 '에나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와 같이 변명이든 그 어떤 핑계든 일단 듣고 보자, 우선 읽고 보자 라고 할 수 있다면! 고품격 소설? 지금 단락에서는 금기어다. 파란만장한 인생? 푸르스름한 빛은 커녕 그냥 진흙탕이었다. 영화, 압축밸브다. 사랑, 아니다. 쑥스럽다. 그럼 하모니? 닮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된다. 그것도 아니면 어디서 배웠겠는가? 뭐겠는가? 무엇일까?

   남자다!

   남자에게 배웠다. 그러므로 본인도 혹은 S도 틈틈히 더 고민을 해야겠다. 굳이 큰 도서관을 죄다 뒤지면서 벤다이어그램 도표를 찾아보지는 않겠지만 나이, 의사 표현 수단, 예술의 구현 방법에 대해서 심도 있는 혜안을 찾아보겠다. 즉 어린 나이의 사람의 말과 글, 대가들의 처녀작, 실제 혹은 가짜 처녀의 말빨, 소설 자체와 그것이 영화로 나올 때, 왜 영화 먼저 나오고 나중에 그것이 소설화되지 않는지(맨날 날개 돋치 듯 팔려서 많이 읽혀서 영화화, 영화화, 어여쁜 영화화), 못 할 수도 있지만 측정 가능한 판단이 뚜렷한 결과물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지만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그렇지만 글쎄다. 쉽지 않겠지만 음 아무래도 독자의 도움을 청해야겠다.
   어설프게 인문 교양서의 주제까지 주제도 모른 채 넘본다는 험담이 재빨리 예상되니까 소설의 작법으로 녹슬고 다 쓰러져가는 요트의 뱃머리를 돌려야겠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 (1960)에서 배의 동그란 운전대를 뭐라 부르는지 갑자기 생각이 안난다. 험담 하면 안티팬이다. 코메디 TV 프로그램에서 어느 여자 스타가 말한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더 사랑받고 싶다고. 그러면 MC가 옆에서 덧붙인다. 안티는 무조건 있어요. 안티는 없을 수 없어요.  여자 스타의 말은 젋어서 그런지 어리고 푸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사랑받고 있지만 충분히 사랑받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신경이 씌여요. 저도 모르게 이상한 운를 타고 제가 점이나 도형이 아닌 선이 되는 듯 그런 느낌인 거 있죠' 그렇게 말했어야 할 것 같지만 또 모른다. 그냥 후자처럼 복잡하고 길다랗게 풀어서 제 마음을 잘 해석하지 못하거나 안 하고 있는 것일지도.
   잠깐 어느 항공기 조종사의 글을 인용한다. 비단 기장 뿐만 아니라 날렵 아니 날씬하고 도도한 스튜어디스도 런던, 로마, 베를린, 파리, 모스크바, 싱가폴, 베이징 찍고 도쿄에서 턴, 뉴욕 거쳐서 토론토 들리고 시드니 다음에 상파울로까지, 그녀들의 Forsquare는 휘황찬란하다. 왜 내가 사는 도시가 안 나왔냐는 심약한 모습은 들키지도 엿보이지도 말자.

대학 친구들과 술 한잔을 하는데, 다들 한목소리로 일이 힘들어 죽겠단다. 화이트칼라들의 일을 잘 모르는 내가 대화에 어울리지 못하자 한 친구가 말을 걸어 주었다. “이번 달엔 어디 어디 가니?” “발리, 하와이, 몰디브, 그리고…”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그 친구가 소리쳤다. “와, 좋겠다. 완전 놀러 다니는구나!” 그러고 보니 스케줄이 모두 휴양지들이었다. 나는 정색하며 ‘가봐야 모두 24시간 밖에 머물지 않고, 그동안 잠자고 밥 먹으면 컨디션 조절할 시간도 모자란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하고많은 날 밤샘과 시차 때문에 신체 리듬은 엉망이고, 소음, 방사능, 자외선, 전자파 등등 몸에 해로운 것 천지이며, 날씨나 비행기가 나쁘기라도 하면 초주검이 된다며 엄살을 떨었다. 그때 다른 친구가 한마디 툭 던졌다. “그래도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잖아.” 나는 이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면 이 친구들은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

   이처럼 기장이나 스튜어디스 또는 그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 주 고객처럼 코스모폴리턴적인 사람들이 있다. 보통 그들이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참 비행기는 이코노미와 비즈니스만 있는 줄 알았다. 즉, 비즈니스와 퍼스트 클래스가 다른 말인지 몰랐다. 무식이 대화 중에 탄로나지 않아서 다행이니 지면을 빌려서 고백하는 바이다. 그리고 비행기 사고는 연도와 반비례해서 매해 감소하고 있다. 인류 문명은 더 나은 미래로 가고 있다. 비행기든 무엇이든 슬픈 뉴스는 슬프고,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하면 좋겠고, 메리 셸리의 비단결 같은 글은 도저히 못 쓰겠다.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되는 건 안되는 거다.
   다시 돌아와서 여권이 너덜너덜한 기운찬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권에 도장 한 번 못 찍어 본 사람도 있다. 팍팍한 필자도 몇 년 전까지 후자에 속했고 지금도 새옷을 안 사니까 그러고 사니까 사진을 안 찍는 아줌마들 마냥 여권 쓸 일이 전혀 없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예술 작품에서 정말 지겹도록 다루는 범주다. 여권이 없는 평범한 청소년, 가난한 서민, 판타지 영화, 막장 드라마, 있을 수 없는 이야기, 뜬금없이 탈출하고 어이없이 쫓기고 밑도 끝도 없이 여행 떠나고 죽고 또 죽고 기타 등등등. 새로운, 새로운 소설을 쓸려면 그 패턴을 끊어야 한다. 딱 끊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캐릭터가 나올까? 영화 Up in the Air (2009)? 아니다.
   바로 공항을 기웃거리는 남성, 타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근처만 왔다 갔다 하는, 슈퍼스타의 차고를 매우 멀리서 훔쳐보기만 하는 중딩, 괜히 살고 있지도 않는 부자 동네를 마치 인근 주민인 척 하면서 산책하는 약간 어설픈 지폐 몇 장을 잃어버린 것 같은 표정의 아가씨, 장래 꿈이 소설가인 초딩. 바로 그분들의 걸리버의 관념이 아닌 걸리버들만 살고 있는 나라에 홀라당 도착한 소인의 관점, 신세계에 당도한 구석기인의 마음, 고래들 사이에 낑긴 새우의 생각. 바로 그것이다. 너무 외교적인가? 무슨, 사교적으로 진실한 친구 사귀는 것도 어렵다.
   참고로 (내용은 큰 기대를 하지 않지만) 이번 연재분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제목만 보고 삘 받아서 작성하였음을 밝힌다. 물론 최근의 혼자 생각이 많이 포함되었지만 발화점은 그거다. 오~ 이 아저씨 책에서 밑줄 긋는 농도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아마도 초딩이 부르는 노래일 것이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에 정말 좋겠네~♬ (* 옛날 옛날 꼬마 숙녀께서는 이런 노래를 불렀다지만 지금은 인터넷이 있다, 와 요즘은 정말이지 누구나 신화 속 주인공 같다)

   뭐야 당신, 아니 그대여, 아직도 그 노래 이 글 읽는 동안 배경음악으로 안 틀었단 말이야? 오케이, 하이파이브, 그럼 지금이라도 듣자. 머다나의 Like a Vir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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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20

from 소설 2014. 9. 2. 15:10

   많은 어르들은 소설을 읽지 않는다.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면 조금 덜 많은 어른들은 책 자체를 읽지 않고 산다. 이건 사실이다. 믿고 안 믿고, 따라할 가능성이 어쩌고저쩌고, 좋네 나쁘네 왈가왈부할 여지가 전혀 없는 완벽한 사실, 왜 그런지를 생각하고 연구하는 일은 타인에게 친절하고도 의리있게 양보하자. 세상에는 신경 쓸 일이 너무 많고 먹고 살기 바빠서 때로는 상황에 따라서는 사람은, 사람은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 세상이 험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너무 방대하고 깊으니까 세간의 일은 나에게 알맞게 현명하게 작게 작게 받아들이거나 drag&drop, drag&drop 해서 넓고 원대하게 생각하면 꽤나 자신이 생각해도 자기 자신이 왠지 모르게 멋져 보이고 나름 괜찮은 사람 같아 보일 것이다. 즉, 외부의 뉴스보다 그에 반응하는 나 자신보다, 내부의 나 자신의 삶에 더 게임 캐릭터 에너지를 소모하고 투자하여 신경쓰는데 좀 더 노력한다면 그렇다면, 어른일지라도 당연히 생각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게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곧, 뭐 재미난 일 없나? 뭐 색다른 거, 뉴 페이스, 뭐 뭐 뭐.
   친구들끼리 지속적으로 언제나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무엇일까? 이런 저런 상투적이고 식상하고 지겹고 짜증나는 신경질을 포함한 어떤 성격과 말빨을 모두 걸러낸 후 그 요체를 그윽한 커피콩처럼 잘 구워내면 딱 답이 나온다.
 "뭐 재미난 일 없냐(없니)?"
   너가 많이 아네 내가 많이 아네, 그것보다 더 산뜻한 것은 새로운 일이다. 경험과 지식을 밑바탕으로 대화하는 것보다 정말 즐겁고 신나는 일을 직접 겪고 체험하는 게 좀 더 짜릿하다. 그러니까 내게 맞는 컨텐츠를 기업이 브랜드가 부인이 친구가 지인이 예술가가 누군가가 알게 모르게 알려 주고 입소문이 나서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서, 휴먼의 인생에서 오직 그 재미 딱 하나만 아는 사람은 오로지 그것 하나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와 함께 시간을 함께 보내기가 참 버겨운 법이다. 여자들의 젠더 범주에서도 그러한 타입이 있을까?
   아무리 아름답고 폼나고 예쁘고 뭐한 뭐한 소설을 쓸려고 해도 사람들은 모두 다 (빈부와 어떤 차이는 확연하지만) 견적내는 것 하나는 거의 모두 다가 천재다. 어설프게 가상인물 여럿 만들어 내고 사건 사고 조사하고 지어내 봐야 그래 봤자 안 통한다. S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자신이 아무리 아찔한 지성을 위해 슬픈 외국어를 듣고―유년기를 지난 어른도 정통 학습법은 아닐지라도 외국어 공부를 하면 두뇌 회전에 도움된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졌지만 더 특출난 연구결과를 몽골의 하버드대에서 새로 발표해 주시기를 바란다―수도 없이 몇 페이지만 보고 책을 덮어버리고 발버둥을 쳐 봐야 없던 능력이 갑자기 뚝딱 생기지는 않는다. 침착하게 스토리 경우의 수를 그려 보고 술 먹고 고민해 봐야 소용없다. 하늘에서 뚝딱 그런 신통한 재주를 후천적으로 내려 주실리 없다. 그렇다면 강아지 인간이나 고양이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마초들이 죄다 스티븐 킹이 되라고? 어, 그러고 보니 이름도 킹이다.

   S는 이제, 뭐 한 것도 없지만 여태까지 와서 더는 자신이 S인지 J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J라는 제목의 소설이 어느 섬에서 발표되었다는 소식을 어떤 웹사이트에서 보았는데 지금 당장 읽을 수도 없고 또 허무맹랑한 의심도 황당한 처연함도 없을 뿐더러 황급히 조바심을 갖지도 마음이 불안하지도 않았다. 잠깐, J라는 제목도 그 책도 그리고 다른 무엇도 역시 탐난다. 그렇다고 꼭 무협지에 나오는 2급 고수가 특수무공으로 빨대로 콜라는 먹는 것처럼 1급 고수의 무공을 쪽 뽈아버리고 싶다는 건 아니고 누군가는 그런 질투를 받고 싶지 않겠느냐 그런 말이 하고 싶었다. 그 1급 고수는 보통 영화에서 모든 단물을 쪽 뽈리고 모든 무도를 빼앗긴 후 완전 삐리한 평민이 된다. 득도한 것인가? 미치지는 않았고 어차피 안 좋은 상태에서 더 내려갈 바닥도 보이지 않는다.
   의식의 흐름을 기록하는 행위는 집어치우고 초특급 쉐프가 요리한 아주아주 값비싼 음식들만 먹고 자란, 모차르트와 바흐와 오페라를 듣고 자란, 천혜의 자연환경이라 할 만한 쥬라기 공원에서 성장한 돼지가 주원료로 쓰인―너무 잔인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햄버거 패드를 구울 시간이다. 딩~동.
   노트북으로 쾌적한 미술관 개패에 앉아 옆에 꽤나 잘나가는 연예인이 앉아도 콧방귀를 뀌며 무시하면서 지성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데 방바닥에서 엎드려 손글씨로 수첩에 글을 쓰니까 손가락도 아프고 허리도 찌푸둥하다. 아, 내 허리. 풍차는 네델란드에서만 돌아가는 게 아니다.
   S는 사실인지 환상인지 기억의 왜곡인지 뭔지 무슨 SF 영화도 아니고 그 옛날 빨가벗고 백화점 의류매장에 번쩍하며 나타났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도 아닌데 도대체가 그 원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해서 그 폐허가 된 놀이공원에 가보기로 했다. 무모한 시도는 아니다. 그는 지금 백수니까. 작가니까.
   그대도 글을 써서 책을 내시라. 그것도 고급 피자 문체풍으로. 연예인, 스포츠맨, 기업가, 정치인도 훌륭한 또는 그다지 재미있다고 말하기엔 사람을 몹시 인색하게 만드는 책을 많이 많이 펴낸다. 그러면 작가가 되는 것이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태반이 작가라고 한다. 진짜 물 반 고기 반이다. 그렇게 책을 내면 평범하게 살고 있는 당신에 대해 조너선 아이브처럼 누군가 나서서 자서전을 써주고―안 팔려서 출판사 사정이 쇠락할지 모르지만―스티브 잡스와 같이 수많은 주주들을 두고두고 오래도록 먹여 살릴 것이며 포르쉐 박사 마냥 사후 언제가 될지 모르게 그 이름이 불려지게 될 전설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실은 전혀 준비없이 어른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영화감독이 될 수도 없고 갑자기 명지휘자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 권의 책,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S는 그 놀이공원으로 가는 길에 사는 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거대한 원형의 우주선이 안착한 듯한 모양의 또는 마치 커다란 운석과도 같은 우주 클래스 돌덩어리가 떨어진 자리처럼 생긴 지형을 보고 그 자리에 바로 멈추어 섰다. 옛날 옛적에 보았던 무수한 영화와 다큐멘터리, UFO 서적과 인터넷 페이지들에 나와 있는 그런 전문용어를 떠올리게 하는 정교한 세부 구조와 문양 등을 보았을 때 흡사 누가 보더래도 진짜 UFO 착륙 지점이 틀림없다고, 코앞에서 그걸 진짜 보고 있다고, 고개를 자기도 모르게 꼭 남이 자신의 턱을 잡고 끄덕끄덕하는 것처럼 홀딱 빠지게 믿게 만드는 그런 진귀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순간 S는 침을 살짝 흘릴 뻔했다. 재빠른 동작으로 그 사태는 막았지만 맛난 음식을 보는 것처럼 입안에 군침이 고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원래 영화와는 달리 불가사의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사람도 개처럼 그러는 것인가. 그런 건 안 중요하고 S는 주변을 급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눈동자를 더 급하게 요리저리 굴렸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아무런 동요없이 그저 묵묵히 가던 길을 가고 하는 일을 하면서 터는 입을 계속 바삐 움직였다. 왜 그런 거지? 여기 있잖아, 이 앞에 있잖아, 보고도 못 믿는거야, 이 사람들 모두 이상해, 대체 이건 뭔 상황이고 못 믿을 설정인거야,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제일 처음에는 '드디어 이제 헛것이 보이는구나'로 시작해서 이제는 마치 엎어진 패를 까듯이 180도 생각의 반전이 일었다. 그러면서 예전 거액의 즉석복권을 들고 당첨됐다면서 은행으로 달려가 바꿔 달라했던 어리석은 건지 어리숙한 것인지 아니면 순진하다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던 지난 일을 떠올렸다. 복권의 스크래치를 긁어서 당첨금액만 보고 눈이 뒤집혔던 그 때. 참하고 단정한데 약간 시무룩하고 쌩콩한 표정의 은행원의 '이 숫자와 이 숫자가 일치해야 한다'는 짧은 설명을 듣는 순간... 그것과 비슷했다. 패를 까놓고 설명이 길어졌다. 그 미지의 UFO 안착 혹은 불시착 지면은 생활미술, 설치 예술 구조물, 비엔날레 성격의 전시 예술 이벤트였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시비라거나 바보라거나 둘 다라거나 라고 그분들이 생각하셨을텐데. 얼굴이 완전 홍당무가 되어 S는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는 흡사 그 찰나 만큼은 지구 끝까지라도 행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면 언젠가는 바다에 빠지니까 중간에 멈추겠지만 말이다. 괜히 혼자 지레 쫄아서 슬퍼서 그러다 보니 길가는 사람들이 다 본인 때문에 웃고 있는 듯 하였다. 그 가운데 몇몇은 또 어떻게 보면 속으로 험담을 하면서 비웃는 것도 같았다.
   사람들 가운데는 "현존하는 가장 유머러스한 작가"라는 빌 브라이슨의 수많은 글을 하나하나 모두 읽기 보다는 어쩌다 조금씩, 게다가 우연히 자상하게 천천히 알고 듣고 보는 것을 바라는 염치없는 족속들이 없잖아 있다. (설령 변덕이 심할지라도) 세기말 분위기의 날씨를 좋아라 하는 그런 사람들의 꺼벙함 그리고 약간 음흉한 속마음, 딱 그걸 노리는 작가들 또한 없지는 않을 것이다.

   S는 드디어 그 문제의 장소에 도착했다. 인적은 전혀 없고 아무런 특이 사항도 이상 징후도 없이 고양이 2마리 만이 앉아서 낯선 침임자를 관찰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저 멀찍이 보이는 담장 끝자락에 영화에서 보았던 썬글라스에 다부진 체격과 험악한 자세를 숨길 수 없는 그런 요원이 아니라 진짜 현실 세계에서 일처리 100%로 아주 은밀하게 극소수에게만 알려졌을 것 같은 킬링 머신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듯한 수상한 한 남자가 일부러 어리숙하게 변장하였지만 그 살기 만은 제어하지 못하고 S에게까지 그 초음파가 전해지고 있었다. 순간 그 남자가 총을 꺼냈다. 당연히 길다랗거나 그런 종류가 아니라 전형적인 구경 숫자가 높고 묵직하고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이었다. S는 땀이 이마에서 쭉 나는 정도가 아니라 온몸에 소름이 돋고 공포감에 흠뻑 젖어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을 뻔 했다. 거의 휘청하며 잠시 두다리에 살벌한 경련이 일었다.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난 모든 인생이 압축된 필름으로 쏴 하고 지나가고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사랑의 기억과 아련한 추억 그리고 좀 더 착하게 살 걸 그랬나 라는 생각까지.
   그런데 그 남자가 담배를 하나 꺼내 물드니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일순간 굉음이 일었다.
   "(효과음) 퐁~"
   그 권총은 라이터였던 것이다. 오 이런... 혹시 했는데 설마-인가. 그래도 참 다행이다. 멀쩡히 살아 있지 않는가. 이제 다시 극사실주의로 회귀하는 것 같기도 하다.
   S는 그냥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고 조용히 집에 와서 차분하게 구글 맵스로 그곳을 찾아보았다. 자세한 지도를 보니 그 세밀함이 떨어진다는 것 말고는 이상한 점은 없었다. 인터넷 검색 결과도 이렇다 할 만한 걸 발견하지 못했다. 탐정을 고용해야 하나, 무인기를 띄워야 하나.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뭐 재미난 일 없나 하면서.
   이제 S는 아직 망하지 않은, 여태 폐업하지 않은, 적당히 장사 되면서 꿈과 희망을 전해 주며 오래오래 운영될, 지금 운영하고 있는 놀이공원을 찾아다닐까, 혹시 환상인지 실재인지 불분명한 시공간의 꺾임 현상을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찾기를 바라면서? 그건 잘 모르겠다.
   이 소설은 현재 조금 쓸쓸한 진행에 허무한 현대인의 고독감을 자아내는 흐름이다. 그렇다. 속시원히 말하자면 지금 재미없다. 지금~은 재미없다. 현실 공간의 인간 삶이란 원래 이런 것이다. 냉철히 S의 삶과 독자의 삶을 살며시 맞대어 견주면 후자가 더 낫지 않는가?
   그날 밤 웃기는 촌스러운 로맨티스트 S는 집에서 아이폰으로 YouTube에서 그 노래를 검색해서 듣고 잤다. 왠지 그날은 자신의 감정과 가장 안 어울리는 음악을 들어야 할 것만 같은 켈트족의 묵계가 느껴졌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영화 Love Story (1970)의 Snow Frolic! 촌스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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