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안 써진다며 처량하게 혹은 아연하게 혼자서 술 퍼마시고, 괜히 아무런 잘못 없는 조이스를 뒤적거리며, 재미없을 줄 이미 다 알면서 느닷없이 칼비노를 펼쳐 보다가 허무맹랑한 처녀 작가처럼 서점에 가서 사지도 않을 거면서 지루하니까 '뭐야 이거'라고 (속으로만) 험담이 절대 아닌 혼잣말을 하리라는 걸 100% 알면서도 프루스트를 뒤적거리는 행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해야 하는데 뭐 사람 나름으로 성별에 따라 개인차도 있으니까 그냥저냥 위안을 삼는다. 어쨌든 삘 받는 찰나를 기다리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방법임을 참으로 빨리도 알게 되었다. 이 쉬운 걸 말이다.
행복의 추구/더글라스 케네디
p.128 ...물론 내 말이 너처럼 '작가의 블록 현상'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전혀 위로가 안 된다는 것쯤은 알아. 작가의 블록 현상은 나 역시 수시로 겪는 증후군이니까.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다보면 의외로 문제가 쉽게 풀리기도 해. 글을 쓰고 싶으면 쓰고, 사랑을 하고 싶으면 연애상대를 찾아봐. 나이를 몇 살이라도 더 먹은 연장자로서 말하는데 사랑을 해보겠다고 작심하고 나서는 건 곤란해. 그런 식으로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 십중팔구 싸구려 멜로드라마로 끝나게 되지. 사랑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가슴을 비집고 들어와 머리를 탁 치는 느낌을 주는 거라 생각해.
몇 년 몇 월 며칠, 이거 저거 요거, 뭐뭐 했다 뭐뭐 했다 뭐뭐 했다. 지금 꼭 초딩 일기 같다. 스토리가 안 나오니까. 하지만 그런 초딩의 일기 같은 책이 몇백만 부, 몇천만 부 쉽게 찍어 버리는 걸 보면 한 번쯤 그 방식을 본 뜰 필요가 있다. 그 유명한 몇억 부 찍은 이야기, 딱 정확히 초딩 스타일이다. (물음표를 너무 많이 쓰면 고귀한 독자님께서 짜증내고 재수 없게 느끼시니까 적당히 쉼표로 대체해야 한다) 초딩의 마음을 닮고 싶은 어른, 초딩의 생각으로 글을 쓰는 동화 작가, 초딩의 불장난을 다그치고 말리고 타이르는 부모로서는 도저히 확실하게 초딩처럼 그 몇억 부 찍은 작품에 절대 절대 빠져들 수 없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어른은 초딩 시절이 이미 옛날에 지나가 버렸으니까! 그니까 슬퍼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으니까, 불가능하지만, 불가능하니까, 막던지자면, 몇억명의 애독자에게 욕 먹을 각오하고 그 극소수를 위해 알려드리는 팁이다. 그대에게만 알려 드리니 맹세코 어디 가서 발설하지 말고 함구해야 한다.
무조건 따라하는 거에 대한 단점의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지만 그런데 너무 신경쓰지 않는 연습이 긴요하다. 왜냐하면 신선들이 사는 것 같은 샹그리라의 로얄제리처럼 응축되고 지구를 통채 휩싸은 인터넷 망처럼 길다랗게 유려하고도 장중한 문체를 구사하는 건 말처럼 그리 쉽지 않고, 그냥 무조건 마침표를 저 뒤로 미룬다고만 해서 흉내낼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칼럼은, 아 칼럼이 아니라 소설 연재 편은 신선한 시도다. 수첩에 볼펜을 꽉 움켜쥐고 신들린 듯 영감(?)을 써 내려가지 않고 Dell표 데스크탑 컴퓨터를 켜놓고 메모장에 작성했기 때문이다. DELL도 괜찮다.
앞서 만들었던 J같은 캐릭터는 원래 지극히 속물적이고 통속적인 성격의 소설 속 가상 등장인물이다. 현실에서는 있을 법 하지 않은. 그런 인간은 좀 험담을 얻어들어야 한다. 그래도 싸다. 마치 뒤태에 꼿힌 기억을 너무 직접 경험에 대해서만 집요하게 쓰는 소설가처럼 자랑이랍시고―그런 소설가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J 캐릭터만―책으로 펼쳐 내지는 못하고 블로그에 기록할 것 같은 유형이다. 어려서 전두엽에 뚜렷히 각인된 첫 뒤태의 기억이 마치 이와 같을 것이다. 초딩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의 '뭐 재미난 거 알려 줄까' 같은 인사말 또는 제안을 듣고 같이 가서 보았던 퍼포먼스(같은 반 친구의 치마를 걷어올리는 게 아니라 바지를 잡고 ... 그 친구의 이름은, 피해자였던 그 친구의 이름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 친구가 '나를 잊지 말아요' 같은 제목의 노래를 작곡했을 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에 참여. 법률 용어는 어렵다. 그 다음 뒤태의 기억, 중딩 1학년 때 독서실 멤버들과 여자 목욕탕(화장실이 아니라 공용 목욕탕이었다, 전에 잘못 썼다)을 훔쳐 본 2번의 시도와 1번의 실패가 틀림없이 있을 만한 타입이다. 그런데 전자는 어떻고 후자는 어떻다가 아니라 이 전자와 후자 사이에 중성미자가 없을 리가 없다. 어린이였던 적에 XX 운동이라며 동네 아줌마들을 모조리 웃겨버렸던 행위가 다시 초딩 5학년인가 6학년인가 즈음에 집에 있는 (별로 강도 높지 않은) 싸구려 잡지에서 뒤태의 예술적인 사진, 그 한 페이지를 보며 재현된 사건 같은. (이런 젠더는 이거 때문인지 포경수술을 늦게 받아서 그런지 정상적인 사정을 또래에 비해 뒤늦게 경험한다는, 첫 경험에서 보통 남자들과는 달리 젊은 여자들처럼 사정에 이르지 못한다는 학계의 보고가 있다. 남자의 첫 사정과 첫 경험 사이의 시간이 여자들의 경우 약간 역대칭한다는 학술 자료도 있다. 당연히 학계 보고와 학술 자료는 물론 비공인으로 필자의 추정치다)
사실 뒤태는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도 그 만큼 가치 폄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른들 가운데 운전 안 해본 사람, 또는 운전을 못 해봤으면 자동차의 조수석에는 타본 사람, 그것도 아니면 차에 타본 사람 나오지 말고 그냥 인정만 해 주시라 간절히 부탁한다면 전부 다 그건 공인한다. 그러면 도로에서 제일 많이 보이는 게, 가장 잘 보이는 게 무엇일까? 거리를 지나가는 잘생긴 남성, 섹시한 여자, 지성적인 중성인? 다 아니다. 자동차의 뒤태다! 그래서 모든 자동차 회사들이 뒤늦게 좀 더 그것에 대한 R&D 비용을 늘리고 있다고 알려진다. 출처가 어딘지는 불확실하다.
뒤태는 침 흘릴 만큼 놀랍도록 책과 닯았다, 수평적인 가치에서. 옷만 대충 좀 갖추어 입으면 누구나 다 최고로 잘 나가는 영화배우요, 실제 보면 몸이 찌릿찌릿하고 뭔가가 찔끔 한다는 아티스트다. 누구나 음 거의 누구나. 그런데 다소 실례이긴 하지만 이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이 마당에 꽤 적절한 명대사. 절대 뒤돌아보지 마!
이 글은 꼭 세계 3대 고백록의 하나인 거의 1천 5백년 전이었던 4세기 말에 씌여진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닮았다. 그 숭고한 지력이 아니라 형태만.
이제 정말 미간에 힘-빡-주고 한껏 긴장하고 스토리를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