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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4. 9. 27. 21:57

   전에는 어떤 책을 읽다 보면 왠지 모르게 재미없었는데, 그래서 끝까지 읽지 못하고 어김없이 책을 덮어버렸는데, 그 스타일과 그 분위기 그런 감성과 범주를 좋아하고 동경해서 오히려 때로는 경원하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무슨 이유인지 좋게 말하면 마음이 살짝 붕떠서 움직여서 그런 책을 다시 들게 되고 덜 좋게 말하면 달리 특별히 서둘러 읽을 책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아서 그렇게 읽어 나가는 찰나 아주 드물게 이런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어 괜찮은데! 이렇게 나불대는 조용한 독백, 참으로 반갑고 즐거운 시간이면서 게다가 그 시간이 느려지고 구부러지는 (오바하면) 정지한다는 신호다. 전에는 왜 그랬지.
   뭐랄까 그땐 너무 다른 차원의 세계를 그린 또는 좀 더 달리 보는 시각으로 표현한 작가의 글이나 다르게 볼려고 노력하는 캐릭터가 나오는 이야기를 보고 싶어서, 보고 싶다고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너무 뭐는 뭐다, 뭐는 뭐다 같은 TV 연예 프로그램 유행어나 TV 광고 카피라이트 느낌이 물씬 나는 조금은 유치한 '연애는 타이밍이다' 라는 문장에 딱 맞게 숨가쁘게(?) 살다 보면 책도 그렇게 자신에게 어느 순간 슬며서 다가오는 순간이 있나 보다. 참 친절하게 그러나 완전 이상하게. 뭐 다 그런 건 아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드문 비율로 그렇다. 다른 사람은 그럴 것이다.
   사람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차든 뭐든 장점을 보는 자세와 반듯한 태도도 좋지만 대체로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더 그럴 수도 있지만 무언가의 단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겉으로 자기도 모르게 표출해버리고 양해를 구하든, 말에 생각을 살짝만 뉘앙스를 비추든 누구나가 다 똑같이 느끼는 인간성에 속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그래서 어느 이야기를 보면 너무 정교하고 정확하고 적확하다, 일부러 속에 있는 걸 드러내지 않는 흐름이다, 또 그런데 성애에 대한 설명은 너무 분량과 단어 선정과 묘사가 뭐하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든다, 중성적인 감성의 사람에겐 그달리 냉큼 마음에 들지는 않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또 어떤 책을 보면 너무 전형적이다, 단 하루도 빼지 않고 보고 듣고 겪고 꿈에서도 나오는 그 대상만을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적어도 내게는 재미없게 받아들여지나 보다, 그렇게 된다. 또 다른 책을 보면 너무 직접적이야, 이건 과도하게 질질 끄는데, 저건 너무 파격적이고 문어체와 구어체가 정돈되지 않았고 뭐는 뭐고 뭐뭐 했다 뭐뭐 했다만 나오고 다음 얘기 뻔하다 진부하다 식상하다 그렇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산다.
   그니까 소설에서 어쩌다 가끔 나오는 소설가들이 예술가들 중에서도 참 유별나고 유난스러운 이상한 별난 부류라고 하지만 그에 더하자면 조심스럽게 첨언 해도 된다면 소설가 위에 독자, 더없이 까탈스러운 독자, 재수없는 독자가 있다. 그게 맞다. 하긴 소설가도 독자다.
   과연 모순되면서 조화로운 물밑의 수많은 감정과 파동을 잔잔한 물살과 성난 파도로 흥미롭게 엮은 소설은 어떻게 써야만 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어렵다.

   J는 예전 사실인지 거짓인지 단순히 혼자 지어낸 상상 속의 허구 세계인지 모를 섬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며 그 소설을 이어가기로 했다. 학교 가기 싫다고 안 갈 수는 없다. 직장, 돈을 벌기 위해 또는 일하는 게 마냥 행복해 죽겠으니까 꼭 가야만 한다. 때려치우긴 뭘 때려치워 일하는 게 얼마나 좋은데. 연애도 사랑도 일이고 소설도, 소설쓰기도 소설읽기도 일이다. 이름 붙이기 나름이다. 예약된 스케쥴의 비즈니스 미팅, 구글 캘린더나 종이로 된 달력으로 관리해야 한다. 어린이님도 유치원, 가야 한다. 버스 운전기사, 정해진 경로로만 가야 한다. 안 그러면 그 다음날 신문과 뉴스에 나온다. 택시 운전기사, 승객이 원하는 목적지로 가야 한다. 안 그러면 납치다. 대형사고다. 또 뭐가 있을까 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자, 이렇게 확실한 사실을 쭉 나열하니 그대의 마음이 약산성을 띄기 시작한다. 머머 해야 한다, 머머 해야 한다, 머머 해야 한다. 살짝 싫어지거나 조금쯤 거북하거나 아마도 공중파 방송에 나오는 효과음이 발생할 것이다. 삐─
   머머 해야 한다를 깨트리자면 사건 사고, 커다랗고 끔찍한 사건 사고를 일으키거나 뜻밖에 혹은 우연찮게 휩쓸린 행인을 만들어 내면 되지만 그것이 아닌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살고 있는 마을을 떠나는 캐릭터를 그래서 만들기로 했다. 저번에는 가물가물하지만 긴가민가하지만 섬은 한 번 나왔으니까 가봤으니까 이젠 항구 도시로 보내야겠다. 소설이 여기까지 흘러온 이래 참 대단한(?) 극중 대전환을 맞이했다.
   원래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그곳을 벗어나 대도시로 가고 싶어 한다. 반대로 대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곳은 없거나 거의 드물겠지만 전기도 없고 전화도 되지 않는 깊은 산속 오지나 썩 품격있는 호텔이 있는 섬이나 항구 도시로 떠나고 싶어한다. 항구 도시라면 모르겠지만 깊은 산속 오지라면 며칠 지나서 그 마음이 금새 바뀔 테지만 일단은 보통 현실에서 흔히들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 인간이니까.
   그곳 항구도시는 섬과 내륙도시의 중간이다. 언제라도 어느 곳으로도 누군가와 떠날 수 있는 4차원의 교집합 공간이라 부르고 싶은 그런 장소. 그런데 섬과 항구도시의 차들은 모두 바닷바람의 영향 때문에 아무리 좋은 차라도 부식이 대체로 심하다. 그래서 비교적 최신 자동차가 덜 보인다. 하지만 섬보다는 항구도시의 전체적인 견적이 높다.
   통상 육지의 내륙 도시 생활을 하다 섬이나 항구도시에 가면 당연히 기분이 이상해질 수 밖에 없다. 마음이 붕하고 퐁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하면서 슥 뜬다. 상상만으로도, 순수한 탄산수가 아닌 맹물 한컵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 말발도 그렇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사이코패스나 범죄자를 빼고 멋지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 남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지 않은 사람, "저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에요."라는 말을 하거나 듣기를 완전 싫어하는 사람, 만국 공통어인 코메디를 썩 달가워 하지 않는 사람은─다혈질에 과격하고 험상궂지만 선량한 마초일지라도, 지역과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거의─이럴 때 반올림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나─한 사람도 없다.
   말발! 누구나 잘하는 것, 당신이 잘하는 또는 잘-하고 싶어 하는 것, 상대방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 당신 그대 독자는 그야말로 물건이다. 나이, 주인공과 주변인물의 명징한 분리, 상황설정, 무대 세팅 등등등 삶과 인생과 우주에 프로페셔널하고 세상만사에 통달한 천재인 당신이 그런 구도를 딱 보면 앞으로 뭔 얘기할지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어 기승전결과 반전이 있을지 있다면 허무할지 다 전부 다 내다보신다. 이런 혼잣말까지 능히 그러면서 눈을 부릅뜨고 말씀 하실꺼다. '(얘)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이 소설은 이 연재-편은 철학소설이라는 개구멍으로 들어가서 즉흥연주의 포니테일로 마무리 된다. '(얘)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이런 게 TV 코메디 프로가 아닌 중고등학교에서 이국적인 유행어가 될 가망성이 크다.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뭔지는 몰라도 존중합니다."와는 확 달리 이국적인. 그리고 초딩은 NDJM!
   희망과 가능성을 버리지 말지어다. 뭐야 이거, 수첩이나 핸드폰이 아닌 데스크탑 메모장에 뚝딱 써버렸다. 어머 믿기지 않아. 와우 (말을 빠르게) 됐어 됐어! 그러긴 한데 좋긴 좋은데 뭔가... 수준이 팍x2 떨어진다.

   오늘의 한 곡은 적지 않겠다. 왜냐하면 지는 우아하고 고상하게 폼잡고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파가니니, 라흐마니노프, 드뷧시, 마리아 칼라스 같은 고전음악을 들으면서 우리 보고는 한~참 철지난 팝송을 들으란 말야? 이런 삐─삐─삐─...라는 괴팍하나 다정하며 상냥한 핀잔은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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