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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4. 9. 2. 15:10

   많은 어르들은 소설을 읽지 않는다.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면 조금 덜 많은 어른들은 책 자체를 읽지 않고 산다. 이건 사실이다. 믿고 안 믿고, 따라할 가능성이 어쩌고저쩌고, 좋네 나쁘네 왈가왈부할 여지가 전혀 없는 완벽한 사실, 왜 그런지를 생각하고 연구하는 일은 타인에게 친절하고도 의리있게 양보하자. 세상에는 신경 쓸 일이 너무 많고 먹고 살기 바빠서 때로는 상황에 따라서는 사람은, 사람은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 세상이 험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너무 방대하고 깊으니까 세간의 일은 나에게 알맞게 현명하게 작게 작게 받아들이거나 drag&drop, drag&drop 해서 넓고 원대하게 생각하면 꽤나 자신이 생각해도 자기 자신이 왠지 모르게 멋져 보이고 나름 괜찮은 사람 같아 보일 것이다. 즉, 외부의 뉴스보다 그에 반응하는 나 자신보다, 내부의 나 자신의 삶에 더 게임 캐릭터 에너지를 소모하고 투자하여 신경쓰는데 좀 더 노력한다면 그렇다면, 어른일지라도 당연히 생각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게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곧, 뭐 재미난 일 없나? 뭐 색다른 거, 뉴 페이스, 뭐 뭐 뭐.
   친구들끼리 지속적으로 언제나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무엇일까? 이런 저런 상투적이고 식상하고 지겹고 짜증나는 신경질을 포함한 어떤 성격과 말빨을 모두 걸러낸 후 그 요체를 그윽한 커피콩처럼 잘 구워내면 딱 답이 나온다.
 "뭐 재미난 일 없냐(없니)?"
   너가 많이 아네 내가 많이 아네, 그것보다 더 산뜻한 것은 새로운 일이다. 경험과 지식을 밑바탕으로 대화하는 것보다 정말 즐겁고 신나는 일을 직접 겪고 체험하는 게 좀 더 짜릿하다. 그러니까 내게 맞는 컨텐츠를 기업이 브랜드가 부인이 친구가 지인이 예술가가 누군가가 알게 모르게 알려 주고 입소문이 나서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서, 휴먼의 인생에서 오직 그 재미 딱 하나만 아는 사람은 오로지 그것 하나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와 함께 시간을 함께 보내기가 참 버겨운 법이다. 여자들의 젠더 범주에서도 그러한 타입이 있을까?
   아무리 아름답고 폼나고 예쁘고 뭐한 뭐한 소설을 쓸려고 해도 사람들은 모두 다 (빈부와 어떤 차이는 확연하지만) 견적내는 것 하나는 거의 모두 다가 천재다. 어설프게 가상인물 여럿 만들어 내고 사건 사고 조사하고 지어내 봐야 그래 봤자 안 통한다. S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자신이 아무리 아찔한 지성을 위해 슬픈 외국어를 듣고―유년기를 지난 어른도 정통 학습법은 아닐지라도 외국어 공부를 하면 두뇌 회전에 도움된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졌지만 더 특출난 연구결과를 몽골의 하버드대에서 새로 발표해 주시기를 바란다―수도 없이 몇 페이지만 보고 책을 덮어버리고 발버둥을 쳐 봐야 없던 능력이 갑자기 뚝딱 생기지는 않는다. 침착하게 스토리 경우의 수를 그려 보고 술 먹고 고민해 봐야 소용없다. 하늘에서 뚝딱 그런 신통한 재주를 후천적으로 내려 주실리 없다. 그렇다면 강아지 인간이나 고양이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마초들이 죄다 스티븐 킹이 되라고? 어, 그러고 보니 이름도 킹이다.

   S는 이제, 뭐 한 것도 없지만 여태까지 와서 더는 자신이 S인지 J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J라는 제목의 소설이 어느 섬에서 발표되었다는 소식을 어떤 웹사이트에서 보았는데 지금 당장 읽을 수도 없고 또 허무맹랑한 의심도 황당한 처연함도 없을 뿐더러 황급히 조바심을 갖지도 마음이 불안하지도 않았다. 잠깐, J라는 제목도 그 책도 그리고 다른 무엇도 역시 탐난다. 그렇다고 꼭 무협지에 나오는 2급 고수가 특수무공으로 빨대로 콜라는 먹는 것처럼 1급 고수의 무공을 쪽 뽈아버리고 싶다는 건 아니고 누군가는 그런 질투를 받고 싶지 않겠느냐 그런 말이 하고 싶었다. 그 1급 고수는 보통 영화에서 모든 단물을 쪽 뽈리고 모든 무도를 빼앗긴 후 완전 삐리한 평민이 된다. 득도한 것인가? 미치지는 않았고 어차피 안 좋은 상태에서 더 내려갈 바닥도 보이지 않는다.
   의식의 흐름을 기록하는 행위는 집어치우고 초특급 쉐프가 요리한 아주아주 값비싼 음식들만 먹고 자란, 모차르트와 바흐와 오페라를 듣고 자란, 천혜의 자연환경이라 할 만한 쥬라기 공원에서 성장한 돼지가 주원료로 쓰인―너무 잔인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햄버거 패드를 구울 시간이다. 딩~동.
   노트북으로 쾌적한 미술관 개패에 앉아 옆에 꽤나 잘나가는 연예인이 앉아도 콧방귀를 뀌며 무시하면서 지성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데 방바닥에서 엎드려 손글씨로 수첩에 글을 쓰니까 손가락도 아프고 허리도 찌푸둥하다. 아, 내 허리. 풍차는 네델란드에서만 돌아가는 게 아니다.
   S는 사실인지 환상인지 기억의 왜곡인지 뭔지 무슨 SF 영화도 아니고 그 옛날 빨가벗고 백화점 의류매장에 번쩍하며 나타났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도 아닌데 도대체가 그 원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해서 그 폐허가 된 놀이공원에 가보기로 했다. 무모한 시도는 아니다. 그는 지금 백수니까. 작가니까.
   그대도 글을 써서 책을 내시라. 그것도 고급 피자 문체풍으로. 연예인, 스포츠맨, 기업가, 정치인도 훌륭한 또는 그다지 재미있다고 말하기엔 사람을 몹시 인색하게 만드는 책을 많이 많이 펴낸다. 그러면 작가가 되는 것이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태반이 작가라고 한다. 진짜 물 반 고기 반이다. 그렇게 책을 내면 평범하게 살고 있는 당신에 대해 조너선 아이브처럼 누군가 나서서 자서전을 써주고―안 팔려서 출판사 사정이 쇠락할지 모르지만―스티브 잡스와 같이 수많은 주주들을 두고두고 오래도록 먹여 살릴 것이며 포르쉐 박사 마냥 사후 언제가 될지 모르게 그 이름이 불려지게 될 전설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실은 전혀 준비없이 어른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영화감독이 될 수도 없고 갑자기 명지휘자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 권의 책,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S는 그 놀이공원으로 가는 길에 사는 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거대한 원형의 우주선이 안착한 듯한 모양의 또는 마치 커다란 운석과도 같은 우주 클래스 돌덩어리가 떨어진 자리처럼 생긴 지형을 보고 그 자리에 바로 멈추어 섰다. 옛날 옛적에 보았던 무수한 영화와 다큐멘터리, UFO 서적과 인터넷 페이지들에 나와 있는 그런 전문용어를 떠올리게 하는 정교한 세부 구조와 문양 등을 보았을 때 흡사 누가 보더래도 진짜 UFO 착륙 지점이 틀림없다고, 코앞에서 그걸 진짜 보고 있다고, 고개를 자기도 모르게 꼭 남이 자신의 턱을 잡고 끄덕끄덕하는 것처럼 홀딱 빠지게 믿게 만드는 그런 진귀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순간 S는 침을 살짝 흘릴 뻔했다. 재빠른 동작으로 그 사태는 막았지만 맛난 음식을 보는 것처럼 입안에 군침이 고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원래 영화와는 달리 불가사의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사람도 개처럼 그러는 것인가. 그런 건 안 중요하고 S는 주변을 급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눈동자를 더 급하게 요리저리 굴렸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아무런 동요없이 그저 묵묵히 가던 길을 가고 하는 일을 하면서 터는 입을 계속 바삐 움직였다. 왜 그런 거지? 여기 있잖아, 이 앞에 있잖아, 보고도 못 믿는거야, 이 사람들 모두 이상해, 대체 이건 뭔 상황이고 못 믿을 설정인거야,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제일 처음에는 '드디어 이제 헛것이 보이는구나'로 시작해서 이제는 마치 엎어진 패를 까듯이 180도 생각의 반전이 일었다. 그러면서 예전 거액의 즉석복권을 들고 당첨됐다면서 은행으로 달려가 바꿔 달라했던 어리석은 건지 어리숙한 것인지 아니면 순진하다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던 지난 일을 떠올렸다. 복권의 스크래치를 긁어서 당첨금액만 보고 눈이 뒤집혔던 그 때. 참하고 단정한데 약간 시무룩하고 쌩콩한 표정의 은행원의 '이 숫자와 이 숫자가 일치해야 한다'는 짧은 설명을 듣는 순간... 그것과 비슷했다. 패를 까놓고 설명이 길어졌다. 그 미지의 UFO 안착 혹은 불시착 지면은 생활미술, 설치 예술 구조물, 비엔날레 성격의 전시 예술 이벤트였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시비라거나 바보라거나 둘 다라거나 라고 그분들이 생각하셨을텐데. 얼굴이 완전 홍당무가 되어 S는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는 흡사 그 찰나 만큼은 지구 끝까지라도 행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면 언젠가는 바다에 빠지니까 중간에 멈추겠지만 말이다. 괜히 혼자 지레 쫄아서 슬퍼서 그러다 보니 길가는 사람들이 다 본인 때문에 웃고 있는 듯 하였다. 그 가운데 몇몇은 또 어떻게 보면 속으로 험담을 하면서 비웃는 것도 같았다.
   사람들 가운데는 "현존하는 가장 유머러스한 작가"라는 빌 브라이슨의 수많은 글을 하나하나 모두 읽기 보다는 어쩌다 조금씩, 게다가 우연히 자상하게 천천히 알고 듣고 보는 것을 바라는 염치없는 족속들이 없잖아 있다. (설령 변덕이 심할지라도) 세기말 분위기의 날씨를 좋아라 하는 그런 사람들의 꺼벙함 그리고 약간 음흉한 속마음, 딱 그걸 노리는 작가들 또한 없지는 않을 것이다.

   S는 드디어 그 문제의 장소에 도착했다. 인적은 전혀 없고 아무런 특이 사항도 이상 징후도 없이 고양이 2마리 만이 앉아서 낯선 침임자를 관찰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저 멀찍이 보이는 담장 끝자락에 영화에서 보았던 썬글라스에 다부진 체격과 험악한 자세를 숨길 수 없는 그런 요원이 아니라 진짜 현실 세계에서 일처리 100%로 아주 은밀하게 극소수에게만 알려졌을 것 같은 킬링 머신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듯한 수상한 한 남자가 일부러 어리숙하게 변장하였지만 그 살기 만은 제어하지 못하고 S에게까지 그 초음파가 전해지고 있었다. 순간 그 남자가 총을 꺼냈다. 당연히 길다랗거나 그런 종류가 아니라 전형적인 구경 숫자가 높고 묵직하고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이었다. S는 땀이 이마에서 쭉 나는 정도가 아니라 온몸에 소름이 돋고 공포감에 흠뻑 젖어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을 뻔 했다. 거의 휘청하며 잠시 두다리에 살벌한 경련이 일었다.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난 모든 인생이 압축된 필름으로 쏴 하고 지나가고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사랑의 기억과 아련한 추억 그리고 좀 더 착하게 살 걸 그랬나 라는 생각까지.
   그런데 그 남자가 담배를 하나 꺼내 물드니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일순간 굉음이 일었다.
   "(효과음) 퐁~"
   그 권총은 라이터였던 것이다. 오 이런... 혹시 했는데 설마-인가. 그래도 참 다행이다. 멀쩡히 살아 있지 않는가. 이제 다시 극사실주의로 회귀하는 것 같기도 하다.
   S는 그냥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고 조용히 집에 와서 차분하게 구글 맵스로 그곳을 찾아보았다. 자세한 지도를 보니 그 세밀함이 떨어진다는 것 말고는 이상한 점은 없었다. 인터넷 검색 결과도 이렇다 할 만한 걸 발견하지 못했다. 탐정을 고용해야 하나, 무인기를 띄워야 하나.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뭐 재미난 일 없나 하면서.
   이제 S는 아직 망하지 않은, 여태 폐업하지 않은, 적당히 장사 되면서 꿈과 희망을 전해 주며 오래오래 운영될, 지금 운영하고 있는 놀이공원을 찾아다닐까, 혹시 환상인지 실재인지 불분명한 시공간의 꺾임 현상을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찾기를 바라면서? 그건 잘 모르겠다.
   이 소설은 현재 조금 쓸쓸한 진행에 허무한 현대인의 고독감을 자아내는 흐름이다. 그렇다. 속시원히 말하자면 지금 재미없다. 지금~은 재미없다. 현실 공간의 인간 삶이란 원래 이런 것이다. 냉철히 S의 삶과 독자의 삶을 살며시 맞대어 견주면 후자가 더 낫지 않는가?
   그날 밤 웃기는 촌스러운 로맨티스트 S는 집에서 아이폰으로 YouTube에서 그 노래를 검색해서 듣고 잤다. 왠지 그날은 자신의 감정과 가장 안 어울리는 음악을 들어야 할 것만 같은 켈트족의 묵계가 느껴졌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영화 Love Story (1970)의 Snow Frolic! 촌스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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