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질문 치고는 범위가 너무 넓고 막연하며 전후 문맥이나 상황 설명 아무거도 없지만 결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한가지는 바로 의문문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첫문장으로 쓰인 간결한 의문문. 그래서 뜬금없는 엉뚱함을 감안하더래도 누구든 딱 찍어서 묻는지도 모르고 너무나 답변이 턱 막히는 말이지만, 모호함과 의뭉스러움 그 자체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다지 기분 나쁜 물음은 아니다. 그 어떤 감정이 처음으로 싹틀 때 무작정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맞다. 정말 그렇다.
다른 질문을 생각해볼까. 음 심각할 필요도 진중할 의무도 아무 부담없이 막 생각해보면 질문은 넘쳐난다. 최근 관심사는, 자주 찾는 장소는, 즐겨찾는 웹사이트는, 하루 일과는, 시간표는, 배움의 속도는, 심심할 때 하는 일은, 좋아하는 브랜드는, 즐겨듣는 음악은, 나이, 친구, 방학, 책, 학생들이 쓰는 새공책의 표지들을 보면 무슨 느낌이 드는가? 문구 코너를 구경할 때는, 스토킹 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 팬지의 꽃말이 뭔지 아니? 아는 꽃말은 있니? 별자리 싫어하니? 좀 더 알고 싶고 계속 궁금해지는 좋아지는 사람은, 놀이공원에 가본지 얼마나 되었나요? 마지막 데이트는, 선호하는 자동차 스타일은, 사랑하고 싶니? 사랑받고 싶니? 아니면 둘 다 하고 싶니? 또 아니면 사랑도 일이니? 그 카피라이트 너 혼자 만든거니 어디서 베낀거니? 왜 훔쳤어? 언제까지 남의 꺼 카피하고 흉내만 낼 꺼니?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지 아니? 사람은 어떻게 태어나는지는? 왜 태어나는지?... 등등등 물음표 계속, 모두 질문으로 시작해서 이어갈 수 있다. 단 초짜 세일즈맨이 고급 승용차 판매왕이나 다단계 사업 거물급 다이아몬드 클래스에게 멋모르고 쉽사리 맞부딪혀 의욕적으로 썰을 풀어 낚아보겠다고 어설픈 물음표 갖고 덤비다가는, 제대로 혼쭐이 나서 정신 빠짝 차리고 로봇처럼 인정사정없이 세뇌당하기 쉽상이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아니 어떻게 이리도 아무 연관 없는 문장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오직 그것만으로 말이 문단이 이야기가 되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여자들은 보통 질문을 받고 품격을 갖춘 에티켓의 분위기에서 시간을 보내고, 적당히 은근하게 고혹적으로 자신을 꾸미며 품위 유지비를 꼼꼼히 체크하면서도 미지의 대상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것을 한사코 사양하기를 여간해서는 싫어하지 않는 것처럼 독자 또한 간간히 성별의 간극을 떠나서 여자들처럼 질문받고 주인공처럼 여겨지는 것을 썩 마다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돈이나 외모나 목소리와 그 어떤 조건으로 여자를 꼬시기 힘들 수는 있지만 특유의 입담이 그보다는 덜 힘들다는 것은, 그 증명은 만인과 시대와 세상이 다 인정한다. 영원히 공인될 것이다. 그런 재담가들이 자주 써먹는 수법이 질문이다. 평범한 기술 치고는 소설에서도 제법 써먹을 만한가 보다. 왜냐하면 어떻게, 무엇을, 그리고, 어쩌면, 심지어, 왜... ... 머리 속에서 마구마구 떠오르는 딱히 풀어낼 수 없는 공상의 나래에 약간의 질서를 부여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결부시키는 초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질문은 약간, 설마 우연?을 기다리는 심정과 뭔가 비슷하다. 이런 얘기는 논리적으로 푸는 게 아닌 법이다.
먼저 발단. 어떡하지 어떡하지 수많은 목차와 주제와 소재는 이미 상당히 써먹었는데.. 게다가 반대로 그 분량이 쌓였으니 오히려 풀어나갈 방법이 수월할 수도 있는데 어딘가 막다른 골목에 딱 막힌 느낌이야, 아 답답해. 그러다가 계속 고민. 이 방법 저 수단 다 안 먹히고 속으로만 발버둥 거리다가 그러다가 생각을 계속한다. 쓸데없는 생각도 많았으며 하다 하다 생머리가 다 아프기 시작한다. 결국 낙찰. 다양한 분야의 책과 영화도 보다가 먼저 <어 이거 괜찮네>라는 광고를 보고 반나절이 지나서 <이걸 쓰자>라는 마음의 결정을 내림. 슬금슬금 이거저거 다 맞춰보고 결합하고 연결하다 그냥 무심코 쇼윈도우에서 마음에 드는 가방을 발견, 상점에 들어가 물건을 신용카드로 찍 하고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앤디 워홀처럼 꿈꾸듯, 놀듯, 어릴적 무도병을 기억하듯, 실로 드라마틱한 사건과 삶과 인생과 책을 누군가가 사랑하게 만들듯, 어떤 혼잣말처럼─젠장, 리히텐슈타인이 먼저 해냈자나!─작은 처음이라는 마법이 풀렸다. 쓰다 보니 어느 때부터인가 이야기보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태생하냐 태동하나 이게 더 중요하게 되어버렸다. 우수한 영감도 숙련된 착상도 뭣도 아닌데 말이다.
구상, 요컨데 그걸 구상이라고 하면 된다. 뭘 그렇게 어렵게 설명할 필요 있겠나. 누구에게 잘 보이겠다고, 무엇을 만족시키고 싶어서. 월척은 아니고 일단 고기가 안 잡혀서 앞바다에 담궈 놓은 낚시 바늘을 꺼내서 미끼를 갈아 끼우고 백스윙을 했는데 뒤편에서 뭔가가 걸리긴 걸렸다. 방향이 문제지만 일단 그렇다. 빈손으로 철수하기엔 그 처량함, 감당하기 힘들다.
친한 친구들은 (와! 이제 시작이다. 빨리도 시작한다) 탁 트인 푸른 바다가 앞에 보이는 야외 결혼식장에서 만났다. 모두 모였다. 조니, 케빈, 알렉스, 마크, 하워드, 닉, 제임스. 혹시 이 글을 읽는 귀인이나 향사께서 나의 이름과 같아서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하신다면 필자는 은근슨쩍 만족할 것이다. 그들이 모두 아는 지인의 결혼식인가 보다. 아니면 딱 1명만 알고 그가 다른 친구들을 모두 불렀을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떤가. 그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정말 가고 싶은, 꼭 가야 하는, 참석하면 좋은, 생각해서 슬쩍 피하는 여러 상황 가운데 이도 저도 아니고 아무래도 우연히 무엇 때문에 또 다른 우연을 불러서 모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는 그들이 그저 엑스트라로 동원된 것인지도 모른다.
맑은 하늘,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후 그리고 바람과 분위기 모두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그런데 진짜 결혼식이었다. 그들이 마음이 들뜬 걸 보니 모두들 연미복을 입고 나비넥타이를 메고 웨이터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웨딩드레스 나락을 잡고 쫄망쫄망 따라다니거나 이벤트를 보여준답시고 수영장의 스프링보드에 카누를 타고 올라가서 다이빙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초반에는 모차르트의 세레나데 G장조, K.525번 "Eine kleine Nachtmusik"를 현악 4중주단이 연주하드니 그 다음으로 비용을 많이 썼는지 스윙글 싱어즈의 음악이 흐르고 있다. 스윙글 싱어즈가 진짜왔다. 현악사중주단은 많다. 하지만 스윙글 싱어즈는 하나다. 스윙글 싱어즈의 객원 멤버와 OB도 왕창 불렀다. 다만 최고의 오디오로 AR 틀어놓고 퍼포먼스 그리고 증강현실을 적당히 조합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객원 멤버와 OB를 봉으로 불렀을 리는 없다. 봉으로? 조금 저급한 단어가 나왔으나 지우지 않는 건 그들의 음악이 워~낙 멋지니까 그 비교 효과를 노린 것 같다. 아무튼 모두 생음악이다. 쉬는 시간에 어느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약간 범생이 타입으로 생긴 웨이터가 피아노에 앉아 잠시 바흐의 이탈리안 콘체르토를 연주하기도 했다.
저기 한켠으로 보이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왠지 모르게 우수를 간직하고 어딘가 모르게 약간 슬퍼보였지만 크게 겉으로 드러나는 우울한 행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의 미모는 어느 예술 및 예능계 최고 스타보다 딱 2배 뛰어났으며 그녀의 지성과 인품, 성격은 최상의 가문의 자제나 후천적으로 빚어낸 최고의 인재보다 정확히 2배 반 그리고 그녀의 유머감각과 기타 제반 여건은 모두의 예상과 기대보다도 완전하게 3배 훌륭했다. 그런데 왜 신랑이 보이질 않는지는 알 수 없었다. 눈치없이 물어보고 다닐 수도 없고 그들은 서로들끼리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즐거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이미 물어보았는데 동문서답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저쪽에서는 커피 한 잔을 놓고 멋진 남자들끼리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커피 한 잔을 놓고 눈으로, 눈으로만 두남자가 대화를 한다. 두남자는 슬리퍼맨과 구두를 신은 남자다. 슬리퍼맨은 A, 구두를 신은 남자는 B로 약칭한다. A는 슬리퍼를 신고 있기 때문에 클래식 수트를 입고 구두를 신은 B에 비해 좀 초라해 보이지만 그는 대신 커피 한 잔을 들고 있다. A는 금방 내린 따끈따끈한 향기로운 천상의 커피 한 잔을 들고 있다. 슬리퍼맨 A가 먼저 선점한 한 잔의 커피를 양보하고, 그 대신 B의 구두를 건네받아 신는다. 약간의 안면은 있는 사이 같다. 이제 두남자가 슬리퍼와 고급 신사화를 바꿨다. A가 구두, B가 슬리퍼를 신은 채로 커피를 들고 있다. B는 사뭇 흐뭇한 표정이다. 모두를 흡족하게 만드는 비즈니스다.
그렇게 슬리퍼를 신고서 눈썹이 짙고 신수 훤한 남자 B가 어렵게 얻어낸 커피 한 잔을 마실려는 순간, 자기에게 성숙한 미인 C가 다가온다. 그녀가 다가오기 전 그러한 여인네를 유인하기 위해 B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는 않은 듯 하다. 온갖 수식어를 갖다 붙여야 하는 여성의 눈빛은 그저 그 눈빛만으로 어떤 남자의 마음도 능히 콩닥거리게 할 수 있을 듯 한다. 완전 뇌쇄적이라서 쏘아보는 그 눈빛만으로 B는 멈칫한다. 마침내 B는 그녀의 눈빛을 거부하지 못하고 C에게 커피를 건네준다. 신사인가 보다. 그 남자의 안색은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 면모를 보여준다. 포커페이스다. 커피 한 잔과 미녀와의 간밤의 데이트를 또는 그녀와의 한살림을 바꾼 것 같다. 그녀는 냉큼 떠나버렸다. B는 이제 커피와 고급 구두, 모든 것을 잃었다. 2개 잃으면 다 잃은 거나 마찬가지다. 이태리식으로 미녀의 손에 키스하거나 프랑스식으로 양볼에 뽀뽀하는 건 물건너갔고 마우스 대 마우스는 꿈도 못 꿨고 미녀와의 혼담은 커녕, 가벼운 대화 몇마디 없이 상황은 끝나버렸다. 이런 가벼운 슬리퍼 흠.
그 후로 아름다운 여인 C는 잔디밭에 있는 초대형 우산 밑에서 햇살을 받으며 바람을 느끼고 A와 다정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엘레강스 여인 C는 화이트 와인 1잔을, 마초남 A는 처음에 B의 구두와 바꿨던 커피잔을 들고 있다. 즉 정리하자면 A가 슬리퍼를 신은 채로 먼저 커피를 들고서 B에게 접근해서 커피를 건네고 구두를 얻은 후, 그 다음 여인 C가 B에게 다가가서 커피 한 잔을 양보받아 온 다음에, 먼저 와서 화이트 와인 1잔을 들고 있던 A와 서로 음료를 맞바꾼 것이다. 마초 A와 여인 C는 원하는 모든 것을 예술적으로 다 얻었다.
저~쪽에서 슬리퍼를 신고 걷다가 우연히 그 모습을 보고 B는 <뭐야 난 다 잃었잖아!> 마치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 토로하고 싶은 것 같은 쓴웃음을 짓고 있다.
두시간 후.
다시 B가 슬리퍼를 신은 채로 새로운 커피를 마시려 한다. 왜 꼭 그 커피는 한 잔씩 밖에 남지 않는 것인지 참으로 신기하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A가 그에게 다가온다. 카페인이 필요한가 보다. 카페인과 대화 나눌 상대가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또 눈으로 대화를 나눈다. 뭔 텔레파시 능력자들이다. A가 눈빛으로 당신의 커피가 탐난다고 신호를 보내자 슬리퍼를 신은 B는 저 앞의 호수, 바다같은 호수에서 쉬고 있는 요트를 가르킨다. 어떻게 보면 호수, 어찌 보면 바다로 보인다. A와 B는 그렇게 천리안으로 요트의 운전대 앞 탁자에 놓여진 한 잔의 레드 와인을 보고 있다. B는 A에게 그걸 가져다주라, 그러면 이 커피와 바꾸어주겠다 하는 듯한 눈썹 모양을 그리고 있다. 서로 흔쾌히 웃는다. 잠시 후.
온몸이 물에 흠벅 젖은 A는 커피를, 근사한 수트를 입고서 슬리퍼를 신고 있는 B는 젖지 않은 채 레드 와인을 마시고 있다. 그 포도주는 슈베르트와 멘델스존을 듣고 자란 포도를 이용해서 비밀의 피라미드 공간에서 100년간 숙성한 와인인가 보다. 또 A가 마시고 있는 커피는 부작용이 전혀 없는 환각과 환청, 환영, 환상을 가져다주는 신세기 약물이 첨가되어 있나 보다. 도대체 그 커피 브랜드는 뭐란 말인가? 아니면 일부러 A가 뭉개진 이유는 구두굽에 뭔가 신비의 물건이 숨겨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흔히들 뉴스에서만 봤던 금막대기 1,000개를 농축한 (메추리알 사이즈) 환과 그 비법이 담긴 칩이 구두굽에 내장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 A가 구두는 이미 얻었으니 너그럽게 일부러 위장 삼아 스타일 구겨준 것이다. B는 그것도 모르고... 그는 허우대만 멀쩡한 남자다. 다만 생김새가 유명 영화배우를 닮았을 뿐이다.
그건 그렇고, 친한 친구들은 온전히 그 모든 광경을 구경하고 나서 약속이나 한 듯이 이구동성으로 한마디 한다.
「광고찍고 있네!」
친구들은 모두 음식을 먹다 내용물이 입천장에 딱 달라붙은 듯, 뭔가를 할려다가 뭘 할려고 했는지 잊어버린 듯, 공놀이를 하다 공이 교장실 창문을 깨트린 듯, 주머니에 푼돈 딱 얼마 남았는데 주머니에 구멍이 나서 그 돈이 어느새 빠져서 잃어버린 듯, 특급 코메디언이 바깥에서는 항상 뻥뻥 터트리지만 집에만 오면 왜 못-우끼냐고 구박 받고 맥을 못추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위처럼 적혀진 글로 보면 1~2페이지되어 보이지만, 영상으로 보면 1분이 채 안되는 그런 에피소드일 뿐이다. 그렇지만 상당히 웃기고 또 보고 싶고 기억에 남는데다가 얼마간은 기억하고 싶게 만든다. 뜬구름 잡는 허황된 얘기지만 광고일 뿐이지만 그러하기 때문에 그것은 광고거나 로맨스, 둘 중 하나였고, 그러므로 누구는 계속 속고 싶었고, 따라서 누군가는 그 마법에서 깨어나기 싫어서 그 분야 업계에서 계속 열심히 일하며 웃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세상은 광고가 예술이다. 광고도 진짜 예술이다. 결정은 몽땅 소비자 몫이다. 책임 또한 소비자가 진다. 너무 누릴 게 많으니까 어떤 부분에선 옛날 세상의 예술혼이 지금 세상에선 살아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과거와 지금은 그냥 방법이 다를 뿐이지만 헝그리 정신은 중요하다지만 배고픈 소크라테스 뭐라뭐라 하지만 어떤 책의 그림을 보면 소크라테스, 엄청 잘 드시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도 그는 불세출의 철학자임에 틀림없다.
그곳엔 인간의 영원한 친구인 강아지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종류도 다양했다. 그레이트 데인, 셰퍼트, 잉글리시 마스티프, 나폴리 마스티프, 달마시안, 중앙아시아 오브차카, 말라뮤트, 티벳 마스티프(장오), 세인트 버나드, 피레니안 마스티프, 시베리안 허스키. 게다가 이름을 잘 모르는 언제 어디서나 여러모로 가장 무난한 여러 똥개들도 즐비했다. (귀가) 덜렁덜렁 (눈썹이 입술이) 실룩실룩. 아슬아슬하게 무질서와 대충대충의 미학을 무너뜨리지는 않고 있었다. 단지 잠깐 어떤 덩치 큰 녀석이 험핑에 몰입한 사태가 1번쯤 있을 뿐이었다. 고양이들은 번잡하다고 실내에서 나오지 않은 듯 하였다. 어! 저기 아까 험핑 때문에 웃으면서 쓰러지셨던 부인, 즐거운 대화를 나누시고 있다.
파티에서 웃고 즐기는 사이에 아름다운 신부가 아빠와 한 손을 잡고 무대로 등장한다. 모두들 그들을 향하고 웃고 그리고 박수도 치고 싱그러운 분위기 일색이다. 눈부신 꽃피는 봄날의 신부는 한 손으로 꽃 한송이를 아버지의 수트 윗주머니에 살며시 꼽는다. 신부의 그 손길은 정말 명플로리스트나 로댕을 조각한 미술가의 손길 같다. 앗, 그 조각가 이름이 로댕이었나? 어쨌든 그런데 갑자기 안개가 끼거나 저 멀리서 용오름 현상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뭔가 형언할 수 없는 미스테리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 정말 특이한 할 말을 잊게 만드는 느낌 쌔한 어떤 뭔가에 휩싸인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기분과 인상 모두 평온하게 놔둘 수 없는 기이함이 감지되고 있었다. 그건 마치 삼국지의 제갈공명 정도는 되야 감지할 수 있는 바람이었다. 제갈량은 척하고 알았겠지만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감이 떨어질 수 있는 그런 적란운 같은 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맞바람이었다. 정말 특이한 맞바람이 불고 있었다. 괴상한 맞바람.
갑자기 신부는 안개꽃 부케를 던져버리고, 아버지에게 한마디 하고는 무대 멀리로 뛰어간다. 아마도 미안하다는 말일 것이다. 나 이 결혼 못하겠다고. 드레스를 두손으로 쥐어 올리고 구두는 벗어던지고 맨발로 뛰어간다. 어디서 그렇게나 많은 카메라가 등장했는지 조명도 마술처럼 나타났다. 햇볕 쨍쨍 눈부시더래도 조명은 필요하다. 조명은 곧 마법이니까. 순간 드디어 이름값 못하고 있던 친한 친구들이 움찔한다. 조니는 바로 이거야 라는 안색으로 라이터를 꺼내든다. 그 라이터는 사실 라이터처럼 생긴 디카였다. 현재 판매중인 상품이다. 케빈은 한발 앞서 아이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다. 그는 몇 년 전에 아이폰으로 영화도 수~편 찍었다. 완성도가 떨어져서 문제지만. 알렉스는 시상이 떠올라서 수첩에 급히 글을 쓰고 있다. 알렉스의 선그라스에 내장된 초소형 카메라도 작동중이었다. 마크도 있다. 그는 자신의 차에 내장된 카메라로 이미 녹화중이었다. 행사 관계자와 처음에 잠시 마찰이 있었지만 차가 멋지고 또 이미 끝난 얘기라고 하면서 그만의 비즈니스 어법을 구사하여 행사 관계자를 한방에 거짓말로 설득시켰다. 그리고 중요한 그 장면에서 하워드는 화장실에 갔다. 전날 햄버거 먹고 급체한 경마 기수가─저번에 쓸 때는 말(horse)이 햄버거 먹고 급체한 걸로 썼는데 그냥 넘어갔다─혹시 하워드였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냥 자연스러운 신체 대사 과정일 것이리라.
할일없이 한 수 뺏긴 닉과 제임스는 뛰는 걸 원래 좋아했다는 듯이 이런 순간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이제 좀 파티가 흥미로워질려고 한다! 이제 좀 사는 게 재미있어질려고 한다! 라는 것처럼 뒤에서 그녀를 쫓아간다. 그런데 닉은 언제나처럼 멋있었지만 제임스는 폼이 엉거주춤했다. 제임스가 고래를 옛날에 잡았는데 또 잡았을 리는 없고, 그는 괜히 저번주 어느 날 아침 꿈에서 깨자마자 비몽사몽중에 어떤 실수를 하고, 어떡하나 그 기분으로 하루를 이어갈 수도 없고─털고 일어나야지, 사랑도 똑같아, 인생도 마찬가지야─정신차린 후, 케냐산 8성급 원두를 핸드 드립으로 제조해 먹고, 낮에 케냐의 최상급 마라톤 선수를 흉내낸다고 앞발 주법을 따라하다가 종아리에 알이 굳건히 박혀서 뛰는 폼이 좀 어정쩡했다. 케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애기도 아니면서 좋은 거 보이기만 하면 뭐든지 따라 할라 그래. 습관처럼 괜히 어설프게 세계 1등 따라 하다 호되게 역풍을 맞은 것이다. 장점-본뜨기,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한숨. 그들의 앞에 가는 신부는 가면서 드레스를 벗어버리고 올블랙 원피스 차림으로 뛰어간다. 그 절세미녀가 입고 있는 블랙 원피스는 투우를 연상시키는 관능적이고 섹시한 수가 은근히 들어간 어느 디자이너의 작품같았다. 아무래도 신부를 빼앗긴 신랑의 연적이 대단했나 보다. 신랑이 결혼식장에 보이지 않았던 건 미용실 갔다가 차가 막혀 늦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럼 신랑의 연적이 안 보이는 건 왜일까? 왜냐하면 그 연적이 신랑보다 외모나 재력이나 여러 방면의 재능은 비교되지 않을지라도 말발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첫째, 남의 결혼식 파토냈고 둘째, 적당히 생기고 목소리 좋았으면 나타났겠지 셋째, 재력이나 취향─동성애적 내면과 이성애적 성정체성─또 옷발이나 안목과 배경등 뭔가가 있었다면 소란 피우기 전에 정리했겠지 넷째, 봐봐 등장하지도 않고 여자를 부르지 않는가 그것도 드라마틱한 순간에 마법처럼!
그렇게 그들이 따라간 마지막 장소는 해안 절벽이었다. 신부의 스타트 폼은 하프 마라톤 코스라도 뛰어갈 것 같았지만 그곳은 무대와 가까운 바로 언덕 너머로 조금만 가면 나오는 바닷가였다. 아일랜드나 지중해 어디 같은 높다란 곳은 아니지만 첫째, 그만큼 멋지고 둘째, 물에 몸을 내던져도 전혀 위험하지 않을 것 같은 천혜의 풍광을 눈부시게 자아내는 장소였다. 해안가에 도착한 그녀가 있고 그녀의 시선 위로 알파벳 두글자가 씌여진 헬리콥터가 1대 날아와 있었다. 글씨를 보니 CD라고 적혀있었다. 뭔 암구호인가 아니면 누구 이름인가, 콤팩트 디스크? 그 헬리콥터에서 냉큼 줄사다리가 그녀 위로 내려왔다. 그녀는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주위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무수한 꽃잎이 날리고 있었다. 이런~ 누가 음악도 틀었다. 분위기 아주 죽인다. 그녀는 마침내 헬기를 탔고 어딘가로 떠난다.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향수 광고 현장이었다. 당혹감에 앞서는 재빠른 대응은 혹시 닉과 제임스 때문에 촬영 엔지가 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다.
뭐야 이거?
뭐긴 뭔가.
팝아트다!
20세기 중반에 말들이 많았다. 음료수병 몇 개 그려 놓고 작품. 또 커다란 눈의 일러스트 그림을 보고 일각에서는 10분이면 그린다지만 100분이나 10일 정도 소요될 것 같지만 어마어마한 초히트 상품이 되어 여러 나라 떠들석하게 만들고 장기간 인기 폭발. 그런 그림을 놓고 권위있는 언론의 편집장이나 명망 높은 평론가들은 대개들 짧게 언급했다고 한다. 그런 사례들은 많다. 그런 말들은 대체로 이렇다.
「그건 예술이 아닙니다... (뭐라 뭐라 뭐라)」
「쓸데없는 작가다... (뭐라 뭐라 뭐라)」
「도대체 어디까지가 미술이냐... (뭐라 뭐라 뭐라)」
지금이니까 그렇지 그 말도 그 때 당시는 완전 불합리한 평가는 아니였고 또 엉터리 말도 아니었을 것이다. OX 문제가 아니니까. 그런 평을 듣거나 읽은 사람의 말도 맞다. "괜찮아, 난 상관없어, 좋아." 미술품 경매가를 보면 도저히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금액들이 그런 작품들에, 진지한 정통 또는 신종 미술품에 매겨져 있는 게 현실이다. 제약사 창고에 있는 안 팔리는 알약 재고품 조금 구해서 적당히 배치해서 보여주고, 상어, 양, 유니콘을 수족관에 담아 전시했는데 개당 몇-백-억! 해골바가지도 작품이다. 말을 일부러 이렇게 해서 그렇지 그런 작품들은 작품성도 드높고, 그 가치도 아예 0을 하나둘 더 붙여도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뭔 예술이 장난인가? 그럼 소설은 장난 아니고? 예술은 장난이다. 아니 그걸 몰랐단 말인가? 설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 거의 천재적인이 아닌 진짜 천재인 독자께서는 그냥 모른 체, 잘 알지 못하는 척 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 소설도 장난이다. 다만 그 장난이 억겁으로 쌓이면 어쩌다 하나 걸려서 예술이 될 수도 있다.
장난이나 놀이가 되기엔 시간이 태부족한 분야, 예를 들면 야구나 탁구, 테니스 같은 젊어서 승부를 봐야하는 종목일 경우 정상을 달리고 있는 스타는 자녀가 아빠나 엄마의 길을 가고 싶다고 하면 극구 말릴 수는 없지만 일단 반대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건 인생 초장에 승부를 봐야 해서 너무 힘들게 연습하느라 장난이나 놀이로 체감되지 않아서, 그러하기 쉽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많이들 (권하기에는) 너무 힘들다는 말을 한다. 스포츠 분야가 이렇다면 수를 물리기 힘들다거나 극도로 비밀스러운 분야도 있다. 만약 당신이 진짜 정보 요원이야. 맘대로 살지도 못해, 마음껏 사랑도 못해, 어디가서 나 요원이라고 떳떳이 밝히지도 못해, 왠지 모르게 동년배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거 같아, 국제 스파이 박물관도 못 가봤어, 신분만 요원이지 첩보나 작전이나 아는 중요 기밀도 없고, 영화처럼 멋지거나 재밌지도 않아, 에잇 차라리 다른 분야 고위공무원 시험공부나 해서 한번 도전해 볼 걸 그랬어, 그렇다고 다시 일반인으로 되돌아 온다? 뭔가 모호하다. 젊음의 고지에 오르자마자 멀리 인생의 수순까지 모두 가닥이 나버리면 왠지 허전한 일이다. 그런 반면에 길게 볼 수 있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야도 있다. 음악, 미술, 과학, 소설... 전자 1과 전자 2에 비해서 후자는 약간 그렇게 말리는 경향이 조금은 덜 한 것 같다. 하지만 분명 후자 가운데 소설을 쓰레기로 보는 일반인도 없지는 않다. 생각은 자유니까. 다만 그런 의견이 너무 강했을 때 같이 사는 가족이 거북스러움을 반복적으로 오래 계속 느껴서 그렇지. 그나마 나쁘지 않은? 조금 부드러운 한 예를 들자면 이런 경우도 있다. 10권 분량의 대작 소설을 일가족에게 필사하라고 (강)권하는 일. 그건 그렇고 본인도 인정한다. 필사의 영험한 효과를. 하지만 어렸을 때 어설프게 따라하다 초장에 포기해서 효과는 보장 못한다. 그냥 의견은 천차만별이지만 약간 그런 부분들이 있다. 강한 표현이 등장했던 것은 어느 중장년 남자 어른들이 주로 인문-교양서만 읽는 이유와도 일부분 관계 있다. 소설을 펴보면 언제 그 설명 다 읽고, 언제 사건 파악하고, 또 어느 세월에 감상하냐고. 매번 내게 맞는 명작을 읽는 것도 아니냐면서, 대부분은 별로라면서. 사는 것도 그렇자나, 언제 돈 벌고 언제 부를 축척하냐고, 그럼 대관절 언제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거냐고, 세상은 얼마나 급박하게 변하는데 재깍재깍 요점을 파악해야지, 인문-교양서를 읽어서 핵심을 간파하고 모토를 수정하며 비즈니스 감각을 키워야 한다고, 브랜드의 장기 포지셔닝을 파악하고 슬로건에 감흥을 느껴야 한다고, 압축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며 발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숙녀를 만나면 자유자재로 로맨틱한 감언과 명언과 유머를, 친구들과 있을 때는 카피라이트로, 집에서는 일상어에 위트를, 아침엔 이성에 다가가고 저녁엔 감성을 도취시키고, 파티에서는 팔방미인으로 활약해야지 언제 지루한 이야기를 읽나, 긴 이야기도 물론 좋지만, 먹고 살기 급급하니까 그렇다고. 대부분 들어보면 그런 논조야. (이제 쓱~ 문어체에서 구어체로 넘어가야지) 말발에 도움이 별로 안 돼. 오히려 말발을 깎아 먹어. 가난한 것의 문제가 시간을 갉아먹는 것처럼. 소설은 직접적이지 않아. 주제의 범위가 너무 넓거나 똑같아. 거의 비슷한 패턴이야. 같은 작품이 영화로 나온 게 있으면 영화를 보지 소설을 왜 읽어. 소설 좋아하는 남자? 별로 인기 없어. 차를 좋아한다면 처음에 아무 생각없이 바라만 보면서 무심코 구경만 해, 그러다 관심을 갖고, 다음에는 재미삼아 여기저기 알아봐, 알아만 봐, 그냥 보기만 하는 거야. 그 다음에는 타고 싶어져, 몰고 싶어져, 갖고 싶어지는 거야. 그러다 나중엔 결국 차를 사게 된단 말야. 그게 순서야! 광고의 세계와 상당히 넓은 영역으로 겹쳐지지. 소설? 처음엔 뭐지 하고 읽어. 초반에는 심심해서 보다가 다음에는 재미로 봐. 그러다 계속 봐. 또 다음에는 소설에 대해 친구에게 얘기도 하고 블로그나 SNS에 글도 써. 추천도 해. 그럼 더욱 그 세계를 알고 싶어져. 더 깊이 들어가게 되는 거지. 점점 더 점점 더. 완전 흠뻑 빠지는 거지. 그러다 끝에 가서는 소설을 쓰고 싶어져. 그럼 나중에는 소설가가 되겠지. 그래 소설가가 됐어.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하지만 돈은 못 벌어. 바로 이거야! 그게 정규 코스란 말이야. 그러니까 락 콘서트에서 기타줄 물어 뜨고, 팬들 열광하고, 무대에 팬들이 던진 속옷 수북이 쌓이고, 전기 기타 불태우며 축제가 벌어지기 전에 이미 아마추어 기타리스트 인생 초반에 기타리스트의 머리카락이 잘리든가 기타 목이 부러지든가 하는 거야. 다스바이더님에 의해서! 문화권에 따라서는 집에서 후줄근한 팬티만 입은 채로 엉덩이 걷어차이고 쫓겨나거나, 헤어를 거의 스킨헤드로 밀리고 외출금지 당하는 톰보이, 비슷한 이치야. 봐봐 애들 여럿 고개 끄덕끄덕하잖아. (얘기가 여기서 그치면 뭔가 서운한 법) 하지만 그 청소년들도 커서 더나은미래주식회사에 취직하고 결혼해서 애낳고 나중 애 키우다 보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어느 정도는 또 설교를 하게 돼. 원래 그렇게 되나 봐. 거리에서 유난떨고 꽃다발을 들고 뛰어가는 남자, 여자친구와 헤어지지 않아. 운전도 잘하고 매너도 좋고, 상냥하고 착하거든. 그런 남자 놓치면 여자는 두고두고 후회할거거든. 인문-교양서에 뭐라고 적혀있는지 읽어보란 말야. 똑똑히 읽고 제대로 느껴봐. 사람들은 멀쩡히 앞에 걸어가는 연인의 앞모습을 상상하지. 누가 나아 보이네 어쩌네저쩌네. 왜 남의 일인데 그들의 객관성을 당사자도 아니면서 마음대로 이리저리로 쟤 보고 평가하냐는 말이야? 뭔가가 너무 차이가 나면 나중 힘들어지거든.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 초딩때는 시간 많자나, 크면서 점점 자유시간이 줄어들어, 핸드폰 연락처도 30살이나 적당히 언젠가를 기점으로 꺾여. 어려서는 이거저거 다 하고 싶다가도 언제쯤이 되면 통장 잔고가 보이지. 왜 엄마 아빠는 내 성년식에 주식 통장을 선물해 주지 않았냐고 징징댔는데 이제 보면 그때부터라도 스스로 버크셔 헤더웨이를 따라할 걸 그랬어. 특출난 재능이 있거나 끈기 하나는 자신 있다거나 길게 가도 괜찮다면, 조금 가난해도 상관없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좋아 죽겠다면, 문학이 정말 좋다면 그러면 그 길을 가는 거야. 뜻밖에 얻어 걸리거나 의외성과 행운과 우연은 셈하지 않았으니까 참고하고. 비록 간곡하고 사려 깊은 사근사근한 태도와 어조는 아니지만 (나도 그게 내 분야가 아닐지라도 못 가진 재주가 때로는 조금 책망스럽기도 하지만 그건 그렇고) 남자 대 남자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하는 얘기야. 자, 끝으로 음... 그렇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애절한 사랑을 너무너무 슬픈 사랑을 꼭 해야 되겠니? 그걸 진정 원해? 주인공 하고 싶어, 조연 하고 싶어? 인문-교양서야 소설이야? 내 말 들을래 쟤 말 들을래? 뭘 고를 거니? 나중 어느 업계로 가고 싶어? 강연, 뉴스, 토론이야 아니면 영화, 코메디, 드라마야? 인문-교양서냐고 소설이냐고? 뭐? 카페 사장이라고? 이런~ 크게 될 놈이구만(먼)! 조금 길어졌지만 이런 식이다. 과장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일리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비인기 종목, 순수 학문, 집안일, 필요한 악역... 모두 같은 얘기다. 쳐다보지도 마라, 인간은 백안의 신이 아니니까. 뒤돌아보지 마, 뒷모습의 환상을 깨니까. 다른 거 보고 듣고 읽고 겪고 나중에 결정하렴, 세이렌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으면 너의 온 인생은 음악 업계에 모두 바쳐야 하니까. 아무도 믿지마, 그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니까 새로운 생각을 하기 힘들어지니까. 한 분야만 파면 실은 다른 쪽에 눈길을 주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대화할 때 상대방의 전공을 파악하며 (비즈니스식 표현으로) 니즈를 해석하며 남의 생각을 읽는다. 그리고 이번 챕터 첫문장의 답에 대해 머릿속으로 상상 리포트를 작성한다. 즉 이미 초딩 즈음부터 인생 고민은 시작되고 어른들은 또 그때를 동경한다. 어렵게 살다간 옛날 위인을 보면 쫄딱 굶으면서 평생을 살든가 온갖 성병에 시달리거나 정말 기구한 삶을 살다가고 사후에 평가받는 일도 있다. 어른이 되면 모두 깨닫거나 듣고 알게 되는 사실들이다. 바로 찻집에서 하는 이야기들, TV 토크쇼에서 나오는 말들. 그건 바로 장난이나 놀이에 또는 그렇게 시작한 분야에 거의 일평생을 들여 몰두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모든 것을 걸었으니까.
이와 같은 글을 읽고 논리적이고 시각과 청각이 잘 분리되고, 고르게 여러 능력이 적당히 그리고 균등히 발달되어 있는 남자들은 마음이 움직이는 가운데 계속 생활해왔던 것처럼 말발을 키우면서 대충 놀면서 쉬엄쉬엄 읽다가 하나는 기억해서 저장하고, 두번째는 패스, 세번째는 빨리 읽고, 네번째는 챙기는 반면, 어느 극도로 감각적이면서 감정적인 뇌파가 언제 어떻게 어디로 튈지 모르시는 뇌파 매커니즘의 소유자라면 아주 잠시 조금 헷갈릴 수도 있다. 물론 반대로 거친 남자쪽에서 반문할 가능성도 있고 그렇다고 크게 낙담할 일도 아닐 것이다. 독자의 마음을 슬쩍 넌지시 들여다 보자면 이럴지도 모른다.
「이거 한도 끝도 없이 놀라는 말이야? 이성적으로 균형 잡힌 생각을 하라는 말이야? 언제는 문체가 뭐고 문학이 어떠니 하드니만 이제는 막 놀라고? 이런 돌팔이 같으니라고.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옛날에 이런 말 듣고 (읽었나?) 놀다가 지금 이렇게 됐자나! 에이 못쓰겠네. 아주 놀고 있네. 이제 그만 소설과 영화와 음악과 드라마와 미술과 예술과 온갖 아름다움과 미지의 세계에서 나와서, 뛰쳐 나와서 현실을 살란 말이야. 현실을 살라구. 언제까지 그 뒤에서 웅크리고 쪼물딱거리기만 할꺼니? 쪼물딱. 그 잔소리 이제 좀 다른 걸로, 뭐든 좋으니 다른 걸로 바꿔보렴!」
「처음엔 연애할 때 리드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는데, 오랜 시간 지나 보니 자긴 하고 싶은 데로 살고 저 인간은 다독여주고, 칭찬하고, 회유하고, 설득하고, 그러다가 평생 최면을 걸어버릴 줄이야, 평생 리드해버릴줄 누가 알았겠어. 결론은 허당인데 말은 잘해, 청산유수야. 난 바가지 긁는 집사람이고 인생, 낭만, 삶, 사랑, 품위...는 모조리 다른 사람들 얘기고 그저 그냥 살아가는 것 같아. 살림하고, 아이를 갖고, 애를 낳고, 애 키우고 또 살림하고 밥하고. 하나 더하면 돈 벌고? 그러니 내가 말발이 늘 리가 있나 말 수만 느는 거지. 이젠 늠름한 평균치 동네 아줌마야, 언젠가 할머니가 되겠지! 재미있긴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얘기야.」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 이리 저리로 흔들린다오.」
인정한다. 이런 글을 읽으면 머리가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헛바람에 상당히 심각한 부작용도 동반할 수 있다는 것을. 시간낭비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까지. 심지어 이미 어디에서는 이런 글 읽으면 멍청해진다는 피드백을 토대로 매끈한 그래프를 작성중이라는 정보도 있다. 승률은 반반이다. 막무가내로 가까운 사람을 들들 볶거나 닦달하지 말고 호흡을 가다듬자.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우주의 기를 받아들인다. 하나 둘, 하나 둘. 먼저 어쩌다 간혹 우아하고, 한편 근사하게 그리고 대개 고상하게, 행여 잊혀질만 하면 한 번쯤 기품있게 살기.
구스타프 말러가 그랬다. 언젠가 미래에 내 시대가 올 것이라고. 어디서 주워들었기 때문에 정확한 말은 검색해 봐야 알 수 있다. 앞뒤 떼고 전후좌우 모두 빼버리고 그 말만 딱 떼어내면 그건 예술가의 자존심이나 시대를 앞서가는 예언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이 장난인 시대는 <앞으로 올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옛날부터 그래왔다. 새롭지 않은 얘기, 누구나 아는 얘기. 장난인 듯 아닌 듯, 예술로 보이지 않는 것 같이 (예술로) 보인다든가, 소설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데 (환상) 소설로 느껴지거나, 소설이어야지만 읽을 수 있는 정취가 있긴 있는 것처럼 없어도 있는 것처럼, 딱 그런 애매하고 이상한 팝아트 같은 모양의 지적 자주성이 엿보이는 사색적인 기질의 소설이 있긴 있는 듯 하다. 없어서 만들어 냈다기 보다는 수많은 아마추어들이 오랜 세월 지속하고 있는 하나의 현상이 아닌 일견 생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