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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4. 12. 31. 12:03

   J는 마땅히 급한 일도 없었고, 달리 힘써 볼 사건도 없었으며 딱히 매달릴 사안 또한 없었다. 당연히 자금 사정 또한 그리 넉넉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큰 당첨금이 주어지는 복권을 정기적으로 그리고 즉흥적으로 덜 큰 당첨금이 걸린 즉석 복권을 사서 틀린 번호를 혼자 고치는 철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블로그와 소셜 네트워크를 둘러 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Notice라는 조그맣게 달린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친한 친구들 이야기 연재는 유감스레 송구스럽고 애석하지만 잠정적으로 중단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그것은 좀 얘기가 기니까 포스트로 따로 작성했습니다.' 라는 간단한 블로그 한 줄 뉴스를 (그것을 누가 본다고) 작성한 후에 다음과 같은 포스트를 블로그에 업데이트했다. 그가 그 포스트를 의자에 앉자 마자 단번에 뚝딱 써내려가지는 못했고 몇 번의 퇴고와 수십 번의 업데이트와 수백 번의 메모 작성에 힘입어 겨우 작성했다. 그 포스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목: 나는 글이 안 써질 때 어떻게 하는가?

   최근에 읽은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의 어느 소설 첫 도입부 감동이 잊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무난한 험담으로 시작하여 그래프 기울기를 완만히 올렸으면 어땠을까 라면서 틈나면 사람을 추측하게 만드는 가슴 두근거리는 콩닥거리는 그런 도입부. 그래서 그 처음 때문에, 그 청량한 음조 때문에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오토매틱으로 1단 2단 3단 올라가지 않고 기어 비율이 오류난 건지도 모른다. 몰래 딱 그런 부분들만 훔쳐다가, 그런 데이터들을 모아서 몇 년 작업한다면 약간은 그렇게 영향 받고 착상을 얻고 발표되는 2000년 전후의 무수히 많은 작품들이나 3류 소설들과는─밀란 쿤데라가 아니라 '그에게는 암말도 못하면서'라는 말을 기억하자, 3류면 어떤가, 그 타이틀만으로 남에게 충분히 이타적일 수 있는데 타이틀만 해도 어디야, 누군가에겐 3류가 누군가에게는 초특급이거늘─다른 1900년 전후 소설의 느낌에 얼마 만큼은 살며시라도 근접하여 그저 변두리에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상상하고 예측하고 마음에 작은 불씨를 번갯불 같은 (쨉이 생략된 급작스런) 어퍼컷을 날리는 단 몇, 단 몇 줄의 문장들. 하지만 이건 글이 잘 써지는 예술가들에 해당하는 얘기고 보통은 이렇게 글이 안 써진다고 고요 속 외침이나 소란스럽게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알고 보면 '글이 안 써진다'는 주제만 가지고도 세계 최고로 물고 늘어지면 이야기가 나오는 사례도 있다. 극히 희박하긴 하지만 있긴 있다. 그것을 역으로 과장하면 '나는 왜 이렇게 글이 잘 써지지?' 같은 주제만 가지고도 "나는 어떻게 일하는가"라는 직접 (현재) 시제형 의문문이 제목인 인문-교양서로, "나는 어떻게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나? (스티브 헬리)" 같은 회상 (과거) 시제형 의문문으로 쓰인 제목의 소설로 만들어질 수 있다. 이 주제만 가지고도 즉 평범한 보통 사람이 한순간에 유명한 작가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럼 너는 정녕 대체 어떤 유형의 소설을 쓰고 싶은 것인게냐? 바로 이런 글. 많이도 안 바래. 그냥 남들 다 아는 거, 사람들 마음 속으로 모두 생각하는 것, 그들이 자주 겪는 것, 인간의 공통된 감정 그것, 사람이라면 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생각하고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고 깨닫는 것.

캥거루/D.H. 로렌스
p.1-64 서민 출신인 서머즈에게는 서민 특유의 이심전심의 본능이 있었다. 이웃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p.1-65 이야기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이것이 상류사회의 사교의 원칙이다. 한편 진짜 서민의 경우는 반대로 이야기되지 않는 것만이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p.1-67 그 모습이 빅토리아를 매료시켰다... 빅토리아는 황홀해 하고 있다... 여자들에게 있어 서머즈가 아주 매력적인 것은 누구와도 결코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신경에는 친구라는 것은 속임수 냄새가 나서 역겨운 것이다. p.2-15 빅토리아는 자크와 정반대였다. 알고 싶어, 보고 싶어, 이해하고 싶어서 애쓰고 있는 의식의 권화였다. 인색을 응시하고 그 안쪽을 그 속의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어. 기선의 여객 담당자, 호텔의 메이드,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 간호사 등 무엇이든 다 해 보고 싶어, 인생의 신비로움에 접할 수 있다면...

   딱 이 느낌으로만 이런 문장으로 시작해서 이런 문장으로 이어지고 이런 문장으로만 계속 나아가고 이런 문장들로만 완벽하게─완벽이란 말은 절대 자주 사용되면 서운한 법이다. 바로 이런 때 사용되어야 하니까─구성되며 이런 문장으로 끝맺는 것. 많이 바라는 거 아니잖아. 그냥 갈 때까지 가보는 것. 절대 많이 원대한 걸 바라는 게 아니라고. 별로 어려운 글도 아니야, 사람들이 몰랐던 내용도 어른들이 놀랄 만한 문장도 어려운 얘기도 전혀 아니야, 맞자나! 그리스 로마 신화─초딩이 혹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하신다면 그분께 한번 여쭙고 싶다. 다른데서는 오직, 나만, 하나 이러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신들이 물 반 고기 반으로 나오니까 좋아하냐고? 여사, 숙녀, 마담 또는 어른 남자분이 혹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하신다면, 사용하는 하고 싶은 그저 일상적인 용품이 Hermès처럼 그 이름이니까 결코 싫어하지는 않느냐고? 남이 아닌 자기 가슴? 가슴에 손을 얻고 답해주라고. 다시 한 번 까놓고 그대에게 묻는다. 이 세상 모든 철학이나 종교나 각계 인사 유명인들이 당신 말을 듣는다면 당신 글을 읽는다면 당신이 발표한 책이 대박을 터트릴 거라면 만일 그렇다면, 범신론을 얘기하겠나 하나에 대해서만 아모스 오즈보다도 더 헤르만 헤세보다도 더 앙드레 지드보다도 더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와 비슷하리만치 성서보다도 더 언제까지나 그 얘기만 하고 또 하고 밑도 끝도 없이 계속하겠나─적당함은 괜찮아. 좋아. 그래─아니면 왜 세상이 오른손잡이 위주냐 왜 남성 위주냐고 하겠나 신과학론을 주장하겠나?─에 청력의 신이나 독심술의 신이 있나? 몰라서 그대에게 물어보는 것은 아니고 생각이 아주 잠시 나질 않아서... "많이도 안 바래? 음 참 많이도 안 바란다. 소망 한번 참 소박하다. 늬가 진짜 어떤 3류의 거침없는 말발에 한번 거칠게 휘둘려 봐야 정신을 차리지, 아휴 이걸 그냥..." 옛날에는 꿈에도 몰랐다. 이런 글들을 쓰며 살 줄이야.
   규칙적으로, 도저히 규칙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규칙적으로 곡을 쓰고 규칙적으로 예술을 연기하는 사람처럼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 영감을 얻으려면 무작정 기다리기만 해야 하나, 그 풀리는 패턴이 상당히 정형화되었을 텐데 왜 방정식의 공식이 안 먹히는지, 그 상대성 원리가 어떻게 바뀌고 변했는지, 왜 하필 지금인지, 왜 약발이 일시적으로─그랬다면, 그렇다면─떨어졌는지, 왜 단물이 빠졌는지, 어떻게 하면 수월하게 잘 풀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 하다가 존 파울즈의 '나의 마지막 장편 소설' 처럼 아무 쓸모 없는 단상들을, 자신이 써보지 않은 쓸 수 없는 문구들이나─예를 들면 관심사와 무관심이 뭐뭐한, 기묘하게 반투명한 표정, 틀리고 틀리고 틀린 것이었다─몰랐던 중요한 상식들을─예를 들면 이탈리아를 먼저 보고 유럽을 둘러 보면 시시해 보일 수 있으니 그 반대로 둘러보라던 괴테 아버지의 말이나 유럽은 아침이 괜찮은데 호주는 해질녁이 멋지다는 서머즈의 대사들을─일단 기록하고 또 기록하고 그것을 반복하다 보면 정체는 알 수 없겠지만 뭔가 나타나지 않을까, 아마추어니까 부담이 없어 라면서 그 의지를 놓아버리지만 않다 보면 어떻게 형언하기 곤란하고 불편한 정말 이상한 소소한 감정들을 어떻게든 다듬고 고치고 짜맞추다 보면─세상에는 이거 딱 하나만 잘(?) 하는 재주를 지닌 사람들도 있다. 많다. 널렸다─대충이나마 연재물이 나오고, 그리하여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뭔 말도 안 되는 글을 쓰고 있어 / 뭔 말 같지도 않은 걸 가지고 이거 뭐하는 짓이야 / 아휴 증말 뭔 헛소리를 또 그 얘기야 / 놀고 있네~ 이런 머저리 같은 놈" 같은 딱 원하는 답을 얻게 된다. 때문에 이렇게 단어나 문법이나 수사 어구를 기록하여 다음 이야기의 착상을 얻는 방법은 쉽게 말해 극히 약간 유치한 초보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한 작품을 몇 년 또는 몇 십년 개작하고 고치고 다듬고 하면서 그 누군가 그분들께서 그 장구한 기간 동안 무얼 하시겠나.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 신동을 오랜 기간 가르친 스승들이 제자들을 떠나 보낼 때 하는 말씀이 그동안 배웠던 익혔던 연습했던 들었던 모든 걸 잊으라는 장면과 정확히 반대쪽에서 벌 서고 있는 어떤 인상과 몸짓이 보여진다.
   여행을 떠나거나 낚시를 하거나 연애를 한다 같은 세련된 방법이 아닌 이것이 글이 안 써질 때 필자가 기대는 첫째 방법이고, 둘째는 현대 소설과 통속 소설을 읽는 것이다. 어차피 완독하는 작품들이 별로 없지만 특히나 글이 안 써질 때는 젊은 친구들이 즐겨 읽거나 대중이 좋아하는 대부분의 근대, 현대 작품들을 펼쳐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착상이 떠오르는 삘을 받거나 딱히 영감이 떠오르지 않더래도 누군가가 끝까지 못 읽는 읽을 수 없는 소설의 공통점을 보게 된다. 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이렇다. 너무 쉽다. 몇 년에 나는 뭐뭐 했다, 몇 살 때 나는 어디 있었다, 누구를 어떻게 만났고 알았고 같이 무엇을 했고, 어떤 대화를 나눴으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흔히들 말하는 사랑과 가까운 듯 했고 왜 그랬었고 그 다음에 계속 과거형. (한 번 시험 삼아 이걸 따라 해 보시라. 나는 옛날에 무엇을 했다 라면서) 1911년 런던 메이페어에 근사한 주택을 구입한다 1915년 정보국에 발탁되어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첩보 활동을 한다 1917년 정보국의 중대 비밀 임무를 맡고 러시아에 간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의 고장에 가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무리한 부탁을 맡은 것이다 1939년 요트로 프랑스에서 탈출을 기도 1940년 카누를 타고 영국으로 탈출. 약 100년 전 쯤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명작가의 연보와도 같이 몇 년 뭐뭐, 몇 년 뭐뭐 그리고 브랜드 이름들 또 그리고 한 소설을 통틀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Top 10, 가장 많이 나오는 명사와 동사 Top 10,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면 Top 10, 자극적인 말초적인 단어나 표현 Top 10 그렇게 회상조의 연속. 이 경우엔 소설보다는 그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작가 노트, 역자 후기, 심사위원의 말, 심사평, 수상 소감등등. 조롱하거나 비꼬거나 빈정대거나 가치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모파상 따라하기 초급 단계─정말 그렇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 "이걸 쓰는 동안 매일 아침 죽과 삶은 달걀을 먹었다. 그게 이제서야 기억이 난다... 어느 날인가 새벽 맥모닝을 먹고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인 후 이걸 쓰기 시작했다. 그게 조금 먼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희곡을 좋아하는데 이걸 읽고 나니 한 번 더 읽고 싶어졌다. 셰익스피어나 이오네스코도. 다시 전부 다 읽고 싶다." 삶이란 원래 이렇게 단편적이다. 그게 정상이고 이걸 엮는 건 기술이다.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어떤 짜릿한 소설은 어떻게 된 일인지 신기하게도 선정성과 정확히 일치하고, 선정성에 반비례되는 신물나게 말하는 재수없게 유난 떠는 어떤 고급스러움에도 정확히 역대응한다. 오 이런 기분 뭐지, 그냥 나이드심인가. 그런 화사한 글을 읽으면 잔상이 오래 남아 한동안 뭘 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듯 한다. 물론 십대는 다소 다르겠지만. 십대에는 그런 글도 읽었다. 하이네, 자크 라캉, 하이데커, 브라우닝, 칼 포퍼, 데카르트, 프로이트, 헤겔, 앨런 블룸, 셸리, 바이런, 로트레아몽 뭐 뭐 뭐와 함께 그냥 닥치는 대로. 무식하게 뭔 말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공부하기 싫으니까 뭔가는 해야 하니까 그랬지. 너트에 볼트를 찾아서 맞추고 끼우고 조이고 물총을 쏘고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지금은 못 읽어. 지금 이 시간에 이 군번에 그걸 어떻게 읽을 수 있어. 그런 이야기는 공구를 펼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 는 직접 가르쳐주지 않고 시작은 어쩌다 우연히 항상 어쩌다 우연히 계속 어쩌다 우연히 끝까지 어쩌다 우연히, (볼트를) 넣다 뺐다 넣다 뺐다 (너트로) 들어왔다 나갔다 들어왔다 나갔다, 언뜻 스치듯 봤는데 왕자 표식이 보여 王자 복근이, 오 신이시여 감사하나이다 이로써 왜 그동안 제 삶이 그토록 고난의 연속이었는지 모두 환하게 변증적으로 설명이 되고 이제 앞으로 나에게 어떤 찬란한 인생이 펼쳐질지 기대되나이다 오오 신이시여 지금까지 저는 기도를 전혀 해보지 않았지만 해봤어도 지금처럼 진심이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저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오오 이제 이제는 맑게 개인 날이 흐려도 기분이 좋은 날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행복과 사랑과 낭만? 뭐 이런 얘기를 해볼까, 하다보니 빠지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이런 삐──!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뭔가 진취적이고 한걸음 한걸음 발전하는 측면이 있어야 되건만, 이건 뭐 아흐 이런 젠장! 단, 소설의 경우에만 어떤 삶을 살았던 사람의 경우에만 한 개인은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어느 정도 비슷하다. 더군다나 어른이 되기 전에는 더욱, 공감각이 예민한 자는 더더욱. 라디오 다음에 TV 다음에 인터넷 다음에 다시, 1차적인 어떤 수공업으로, 그건, 절대, 복고가 아니다. 전문가가 만드는 드라마와 영화와 일반인이 만드는 동영상 그것을 매체만 글로 바꾸는 일은 예술보다 상업에만 치우친 건축이요 무용이다. 경제와 여러 학문은 일정 영역을 공유하지만 문학과 상업이 동일한 건 아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당연한 얘기를 뭣 하러, 그러게 말이야. 이제는 또는 이런 때는 꼰대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것인가? 어쩌겠나 정말 그런데 다른 일에 계속 영향을 미치는데 일이 도무지 손에 잡히질 않는데, 무엇보다도 더 이상 10대가 아님이 분명한데. 잔상? 오 부끄러워. 지금 쯤 무척 혼란스러울 거야. 아 그대는 아니야.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글을 조금 읽는다면 그날 밤에는 정말 무서운 기분 꿀꿀한 악몽을 꾸게 된다. 누구나 영화를 보는 건 괜찮지만 실제 그 주인공이 되는 건 글쎄 하는 게 있잖아. 13일의 금요일 뭐 뭐 뭐, 영화 제목은 독자들이 전문가다. 
   거의 모든 사람들의 모든 일에 대한 처음이 각별하듯이 예술계에서도 작가들의 첫 작품이 그 가운데 빠질 수 없다. 찰스 디킨스는 후기 작품들이 압권이야, 나는 E.M. 포스터나 토마스 만은 중반기 글이 마음에 들어... 이처럼 아닌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단연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나중 작품의 개별 주인공들에 대해서도 무수히 어떤 처음이 다뤄진다. 인문-교양서에서는 이걸 비즈니스 업계의 진입 장벽이라고도 한다. 그래프 딱 짠. 픽션을 통해 남의 처음을 끝없이 알아보고 탐구해 나가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경험, 세계에서 단 하나 뿐인 자신의 경험도 충분히 그 픽션 만큼의 값어치가 있다.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언제나 예술로 승화되지 않은 무한대의 처음들이 있다. 극히 희박하게 아닌 경우도 있지만 남자의 어떤 처음은 대개 성공한다. 그리고 음 그렇다. 처음은 대개 고정되어 있지만 끝은 항상 유동적이다. 끝은 지금이고 지금은 항상 끝이다. 움직이는 끝, 뭔지 잘 모르는 끝, 왠지 머릿 속을 잠깐 텅비게 만드는 단어 끝, 어딘지 모르게 미심쩍은 느낌의 말 끝, 허망함과 신비함과 찬란함을 모두 내포하는 음운 끝 그 단어로 나와 나─옛날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어떻다─남과 나를 비교해 보는 색다름의 선물을 안겨주는 그 친절함이라니. 그러니까, 그래서 당신은 먼 미래에 바로 지금을 회상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나중의 어떤 회상으로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로 탄생할 지금의 현재를 아름답게 만들어 보겠다는 것인가? 거의 비슷하지만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아니 확실히 있다. 지금 생활에 따라 당신이 미래에 쓸 수 있는 소설의 장르와 방식과 스타일이 달라질 것이다. 그에 따라 제한적으로 특정 기법을 구사하지 못할 지도 모르고 '머머 했었다'는─나는 사랑을 아직 몰라, 나는 사랑을 알아도 잘 몰라 같은─낭만적인 과거형 연애 소설이 아닌 '머머할 것이다' 라는 이상한 미래형 점쟁이 말발식 예언적 문체를 선보일지도 모른다. 그럴 것이다.
   젊은 친구여, 무작정 얼굴도 모르고 대뜸 친구라 불러서 미안하지만 멋진 소설을 쓰고 싶으신가? 그렇다면 그저 지금을 열심히 살면 된다. 너무 간단하지만 그렇지만 적어도 브랜드 슬로건 보다는 좀 덜 인색하다. 그러므로 그대가 삶을 지금을 헛되이 살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이상한 논리로 자명해진다.
   고고한 명대사는 원래 이렇게 탄생하는 것일까. 정답은 불투명하다. 명대사 다음에 "XX아 사랑해" 카피라이트 다음에 나를 잊지 말아요 다음에 뒷모습 다음에 그리고 다시 명대사, 절대 뒤돌아 보지마! 무지하게 우려 먹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안 질려, 거 참 희한하고 신기한 일일세. 안 질려, 많이들 소박한 사람들에게 꿈은 커도 된다고 말하니까, 정말 많이 잡아서 초등 1학년 수에 해당하는 읽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쓰는 사람은.
   「정말 뻔질나게도 반복하는군.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그 얘기야. 그럼 읽고 있는 난 뭐야? 혹 해서 표 사고 객석에 앉아서 졸다 보다, 졸다 보다, 졸다 깜짝 놀라 '내게 다시 돌아와줘' 라면서 잠꼬대 대사를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면서 깨어나기야? 남자에게 막연히 신사의 품격을 바라는지 그저 매끈하고 정갈한 네일케어를 권유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어리버리한 양반 진짜 정체가 뭐야 정체가. 아제, 당신 설마 무슨 음지에서만 활동하는 미스테리 대필 작가 뭐 이런거야? 소설을 쓰라니까 영화찍고 있어.블로그 쓰고 있어. (와, 어떻게.. 이렇게 발라버리냐. 그거 하나는 놀라워. 인정.
   「네일 케어? 음 네일 케어. 입담이 과격하고, 손이 투박하며 손톱이 거칠고, 품행도 거칠고, 밥도 빨리 먹고, 사랑은 잠시 인생은 으쌰으쌰 때문인지 또는 여자들의 어떤 완곡한 그래프 기울기도 있는데 남친의 덤벙대고 서두르고, 급하고, 피부 거칠고, 무드 없고, 말발 타율 답 안 나오고, 이 걱정 저 걱정에 담배 냄새 술 냄새 그리고 손톱 발톱 손끝이 까칠까칠 꺼끌꺼글 뾰족뾰족하니 포옹을 넘어서는 육체적 사랑이 처음에 초반에 좋을 리가 없지. 그런데 소설 쓰기는, 소설 읽기는, 소설 취향은.. 음 그래. 이런 뉴스 헤드라인, 틈틈히 어딘가에서 옛날에나 언제나 계속 쓰일 꺼야. 네일 샵 유부남 고객 폭발적 증가, 왜?
   「나도 때로는 밥을 천천히 먹어. 진짜 특수 부대 나온 친구들 앞에서는 암말도 못하지만 분위기 봐서 거들먹거리고 그 때 생각하며 나도 식사를 우아하게 할 줄 알아. 그렇게 식사를 천천히 할 때 누가 방해하면 뭔 일 있냐 그러면 바로 버럭이야. 객관적으로 봐도 촌닭도 그런 촌닭이 없지. 나도 잘 알아. 반면 여자들은 유리 섬유로 만들어진 다루기 어려운 파란 장미나 악기와 흡사해.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연습을 해야만 예쁜 그래프 장기 곡선이 나오는. 어쩌면 태반은 그런 그래프 선이 나오지 않으니까 밥을 먹듯이, 옷을 입듯이, 잠을 자듯이, 출근 하듯이 함께-해야 한다는 굴레 때문에 악기 취미를 그만둘 꺼야. 아마 99%야. 깊이 들어가면 같은 얘기지만 어차피 용불용설이지만 화초 키우기나 농사처럼 생명력의 유지나 섬세함의 극치라는 관점─1.어딜 쳐다봐 눈 안 깔어 2.날 걸리버 보는 듯 하는데 익숙하지만 왠지 좋아 3.내게.. 반했나?─으로 봤을 때 악기 연주는 수영, 자전거 타기, 저글링, 당구, 스키, 놀기와는 약간 성격이 달라. 먹기, 영화 감상, 읽기, 쓰기, 낚기등 엄청 많겠다. 그런데 여자가 바로 딱 그런 꽈라니까. 그만두는 편이 나가떨어지는 쪽이 남자라면 여자는 악기야.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팬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양들. 처음엔 좋지만 중간도 괜찮지만 이거 사람 아니 남자 환장할 노릇이지! 솔직히 애송이도 아니고 견적 안 나오는 일이야. 그런데 어쩌겠어 이게 인생인데. 몇몇 남자는 안 그러는데 또 몇몇 남자는 나는 내가 봐도 완전 왕재수 응애응애 소장파(?) ♬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 갓난아기야. 만일 유부남이라면 의무 방어전이 싫은 챔피언이지. 좋을 때도 있는데 그땐 또 이런 말 하게 만들어. "지 피곤하면 안 할라 그래. 내가, 내가 원하는데." 카더라~ 인지는 모르겠지만 옛날 옛적에 동방의 어딘가에 있었데. 그런 글 위키피디아에서 읽었어. 삼천궁녀 으하하하하하. 그것도 재미있었는데 나중에 다른 걸 발견했지, 사만궁녀. 그 때 표정이란. 뭐야 그러고 보니 네로 황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운 역사상 인물인데. 아 복잡해. 나라고 남의 싫은 표정과 꺼리는 기색을 감지 못하겠어 아니면 그런 게 보이는데 좋겠어? 남자가 어떻고 여자가 어떻고 보다 극명하게 그 차이를 잘 알아야만 인생이라는 장기전에 현명하게 대처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거야. 그 교훈을 깨우쳐 주려고 내가 일부러 더 그러는 거야. 나름 큰 뜻이 있는 거지. 왜 "처음"이 길게 다뤄 이야기되겠어, 피임도 중요하고 어쩌다가 신비스러운 무한한 가능성의 베일에 싸인 인생이 그저 그런 뻔한 인생길로 뒤바뀔 수도 있으니 하는 말이겠지. 사근사근한 목소리는 아니니까 알아서 들어줘. 전초전은 전야제로, 장기전은 기나긴 축제로. 남편(남자친구나 애인)과 아내라는 단어의 느낌과 엄마와 아빠라는 말의 어감이 다르잖아? 유명 축구선수나 발레리나의 발이나 어느 전문가의 손을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면 감동 먹는데 까까이서 어머니 아버지의 손과 발만 봐도 돼. 인생은 짦고 예술은 길다지만 멀리 길게 봐야지, 인생 자체가 예술인데. 뭐야 이거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맙소사. 이 블로그 양반 터프가이 모양새 완전 구기고 있군. 소설이나 영화에서 일장연설 횡설수설 대사가 끼어들면 매우 훌륭하지 않다면야 찌푸둥 하겠지만 이건 뭐랄까, 꼭 희대의 사기꾼이 뜬구름 잡는 언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장기간에 걸쳐 (합법적으로) 축적한 거액의 돈다발들을 알 수 없는 구덩이로 모조리 몽땅 빠트리는 것처럼 블로그 포스트로 포장하니 이거 원 교묘한 건지 우낀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래 무슨 얘기인지 알아. 잘 안단 말이야. 그렇게 타고 나서 수컷들끼리 그렇게 평생을 어울리는데 안 그러면 이상하지. 수컷들은 모이면 어쩔 수 없어, 일단 으쌰으쌰 하고 계속 으쌰으쌰 해야 돼. 난 싫은데 그만 하려 하는데 모이면 더 한다니까, 그럼. 왜 여자들은 그리 까다롭고 섬세하고 복잡해? 왜 그리 세상 일은 어려운거야. 그런데, 시원섭섭하지만 그런데 뭐야 이거 내 얘기야? 이런 삐─ 삐─ 삐─ 이런 거 안 할 꺼야. 그러나 아예 안 하지도 않을 꺼야. 다만 좀 덜 하고 그걸로 뻥뻥 터트릴 꺼야. 화내지 말고 대인배처럼 웃을 거야. 내 삶은 내 소관이고 내 인생이면서 동시에 온전히 나의 것만도 아니야. 칭송받겠어. 누군가 환호해줬으면 좋겠어. 나도 인기있는 남자가 되고 싶단 말야. 평생 돈과 싸우지 않고 거시 경제와 친해지겠어. 교양을 갖추고 성숙해지고 좀 더 나아질 테야. 그냥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웰빙에 중간만 가면 돼. 속전속결도 묘미가 있지만 주위 사람들을 보든 TV나 스크린을 보든 인생이나 연애나 무엇이든 결국 장기전이 드라마틱 하고 더 멋지단 말야. 아~ 남자의 세상은 곧 정글인데 이 세상도 그러한데, 남자의 삶은 정말 고달프고도 침울하며 험난하도다! Volkswagen 주식 팔아서 BMW나 한 대 살까, 자동차 회사들 타회사 주식 보유량도 거미줄처럼 엉켜 있는데 중고차 값 생각 좀 해 보고. 그런데 말이야, 내 친구 불멸의 카사노바, 밥 사주고 커피 사주고 술 사주고 같이 좋은데도 가고 그랬는데 왜 아직까지 내게 그 마법의 비법을 가르쳐 주질 않는 거야?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 특수 기술을 전수해 줄 진정한 스승, 새로운 고수를 애타게 찾아야 하나? 안 되겠어. 지존을 찾아 헤맬 필요없이 내가 스스로 불멸의 카사노바 아니 불멸의 쾌남이 되야겠어. 나이키 슬로건으로 한 번 호응해줘. 내가 가장 잘 하는 무모한 도전, 독학을 꾸준하게 계속 할 테니. 아~ 맞다. 오케이, 깨달았어! 의외로 쉽네. 바로 이거야. 모든 걸 반대로 하는 반대로 맨이 되는거야. 남자와 여자는 왜 정반대냐, 왜 그럴까 라고 울컥할 필요 없어, 오히려 잘 된 거야. 친구들과 으쌰으쌰 할 때는 그대로 원래대로 하고, 이성을 마주할 때는 개성을 유지하면서 상황을 봐 가면서 정반대로 하는 거야, 이 쉬운 걸 왜 그동안 몰랐지? 기분 끝짱이야. 누구처럼 돈이 많지 않아도, 누구처럼 잘 생기지 않아도, 누구처럼 말을 잘하지 않아도, 누구처럼 천재적인 예술적인 다재다능함을 갖추지 않아도 돼.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라는 말발 업그레이드 부흥회에 쫓아다니지 않아도 돼. 카사노바? 아니야. 텐미닛? 애완견 정식 이름 또는 별명일 뿐이야. 만인의 연인도 아니야, 그저 정상적인 연애나 사랑 그거 충분히 가능한 얘기야. 로맨틱한 백허그 부럽지 않아. 지금까지는 무조건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깨닫고 말하는 게 제일 중요했어. 앞으로는 그것과 함께 남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깨닫고 말하는 걸 예측하고 보고 듣고 읽고 이걸 정말 중요하게 생각할 거야. 때로는 아주 가끔씩만 상대의 마음을 떠보고 말을 돌리겠어. 오 간단하네!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길다랗게 뭔가 있어 보이고 뭔가 중요해 보이는 길다란 말을 대사를 굉장히 진중한 분위기에서 멋지게 말해. 그런데 말이야, 현실에서 이렇게 이 정도의 또는 이것보다 훨씬 한 100배쯤 1000배쯤 뻑~하고 넘아가게 멋진 말을 하는 걸 실제 본 사람이 있으면 내가 이뻐해줄께. 그러니까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가 재미있는 것이고, 뉴스나 인문-교양서나 다큐멘터리와 함께 그 시장도 존재하는 거야. 오 뭐야 이거, 나 반대로 맨이 이런 걸 생각해낼 줄이야. 와우 뭐야 이거. 오 정말 들린다 그 말.
   「와, 멋지다~ 그렇지만 뭐랄까······ 살짝 불완전하다고나 할까. 더 좋은 얘기를 해 줄래야 해 줄 수가 없다.
   '첫눈에 반한다'는 태어나서 절대 믿지 않았던 믿을 수 없었던 신념? 조금은 상업적인 표어를 깨트린 1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미녀 또는 완전 백발 노신사가 고급스런 베레모를 쓰고 비싼 오픈카를 멋지게 몰고 가는 모습을 보고 "Get the Car!"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아가씨를 보고 그림을 그려서 아~주 손쉽게 이성을 꼬시는 좀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남자를 보고 "어? 나도 그림 그려야겠다. 그 무엇보다 이게 제일 급한 일이야. (인생이란 마법을 이해하기 위해서)" 공연장에 갔는데 기타리스트의 솔로 연주에 언니들 소리 지르고 미치고 난리야, 저쪽에서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왠 속옷을 들고 누군가는 머리 위로 돌리고 흔들거나 무대로 던지고 아주 웃겨 "이런 젠장~ 내일 당장 나도 기타 배워야지. (삶의 공허함을 메우고 권태를 물리치고 미친 사랑이 기다리니까)" 텔레비젼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 한 명의 멀티 직업으로 나오는 특파원, 작가, 운동화 디자이너, 세계 3대 자동차 실내 디자이너, (진짜 전문) 탐험가 완전 멋져 보여 "카페 사장? 때려치워. 그건 뭘 몰랐을 때 얘기였어. 이제 내 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영화나 드라마 볼 때마다 매번 꿈이 바뀐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 없어)"
   책을 읽으면서 밑줄 또 밑줄 그리고 계속 밑줄. 소설을 보면서 명사, 동사, 형용사, 감탄사, 수사적인 표현 그리고 고품격 어법 "아 나도 이런 문구를 쓰고 싶다. 사용하고자 한다. 그럴 수 있다면. 솜씨나 의식까지는 아니고 얄팍하게 차용과 모방과 그 무엇하기. 사람들 일부는 많이들 자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이 세상은 특별하다.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있다. 그러므로 나도 덩달아 가끔 특별하다고 혼자, 대화를 나눌 친구가 있다면 같이 그렇게 카페에서 소근거린다, 집에서 조용히 생각한다, 사람의 비개인성에 대해서." 만일 그 일이 숙명과 운수와 예감의 도움을 받지 못할지언정, 멀지 않아 단숨에 포기할 게 거즘 확실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거 다 뻥이고 구라고 설정이고 허세에 헛된 기대며 실망할 단꿈일 뿐이라며 투덜거리고 자신을 스스로 다독거릴지라도. 독학을 위해 의욕적으로 파고 들어 연구하던 책이 (점보 사이즈) 한트럭이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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