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이런 인과 과정과 플롯, 체스와 바둑이나 여타 스포츠의 진행 상황을 참고하지 않아도 이 흐름을 대충 보자면 다음에 펼쳐질 이야기는 어느 정도 가닥이 나온다. 완전히 일치하는 작품은 찾기 어렵겠지만 조사해 보면 이미 시도했던 몇 가지 흐름이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 초보자일수록 그 정형화의 길로, 대가라면 혹시 안전한 통로로, 중견 전문가라면 적합한 순번을 골라 진행한다고 볼 수도 있다. 즉 지금 어떻게 어떻게 진행했는데 S가 거주 공간을 이동했어, 새 호텔로. 그럼 대개는 그 호텔에 비밀이 있다거나 자신의 또는 자신과 관계된 실체가 밝혀지거나 또는 제 3의 인물이나 단체 혹은 그 장소에 얽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사건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그 호텔은 엘리베이터가 총 12개 있다. 그 가운데 시간이나 요일별로 또는 다른 이유로 특정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해진 어느 한층에 내리면 그 층은 기존 호텔의 그 층과는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만들어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그렇게 해서 사건이 쭉쭉 이어질 수도 있다. 또 다른 설정은 단 하나의 방의 비밀이 서서히 호텔 전체 투숙객에게 알려져 나가는 일고의 과정 혹은 호텔의 모든 인원이 새로운 투숙객 S를 상대로 단 1개의 수상한 점에 대해―호텔 별채의 특정 구조물, 폐쇄된 스카이라운지, 기타 등등―일고의 언급도 없이 그 물음이나 주제 또는 그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대화 내용에 대해서만 이상하게 숨기고, 말을 돌리고, 못 들은 척하고, 낯빛이 변해서 섬찟 놀란다든가 매우 두려운 표정을 짓거나, 갑자기 약속이 있다면서 떨리는 어조로 말한 후 급히 그 자리를 피하는 일을 들 수 있다. 또는 쫓기거나, 배타고 섬으로 가서 수상 비행기를 타고 더 먼 섬으로 갔다가 헬기 타고 그 섬의 인근 별장으로 갔다가 다음 날 쥬라기 공원을 보는 설정, 새 친구와 갑자기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 특정 호실의 공포 장르, 존 말코비치라는 이름의 중간 층계 분석등 조심스러운 흐름을 보일 가능성은 그야말로 그 다양성이 다채롭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그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이상한 기류와 특이한고 놀라운 의심스러운 구석이 하나 없이 지극히 평범한 (그 당시)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의 음악이 유독 많이 나오던 호텔이었다는 점과 그 호텔의 투숙객들은 오로지 클럽원의 추천에 의해서만 출입과 숙박, 이용등 모든 서비스가 가능하고 보안에 매우 놀라울(특급 호텔 업계 보통의 8배) 만큼의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 정도만 특색이라면 특색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S는 안심하는 마음 한켠에 앞으로 이어질 호텔 생활이 신비스러운 면이 부족할 듯한 예감에 다소 실망하는 시무룩한 몸짓을 보이면서도 뭔가 새로운 꿍꿍이를 벌일려는 의도를 티내는, 그와 같은 준비를 하는 것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여태껏 이야기가 너무 안일하게 후다닥, 따라하기 어이없게도 멜로드라마처럼 완전 외부와 우연에 기댄 흐름을 보여 왔다.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고 그냥 뚝딱 원맨쇼를 하면서 놀고 먹고만 있으니 앞에서 밝힌 설정에 대한 추가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영화나 드라마나 TV 코메디 프로와 최소한 현실에서 슈퍼스타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팬들도 있다. 팬은 팬인데 무척 애매한 팬이다. 팬에도 층위가 있나 보다.
신종 증후군은... 맞다. 원래 사람 개개인은 모두 비슷한 인간종이지만 또 모두 특별하고 신기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미스테리 재단의 거액 스카우트, 이걸 수정하자면 이렇다. S는 그가 그동안 썼던 주인공 J처럼 실업자가 되면서 남겨진 자산에 기대어 섬으로 갔다. 자산이 썩 많지 않으면 데면데면하겠지만 딱 얼마 안된다면 오히려 시도하기에 마음 편한 법이다. 그게 젊음이다. 그런다고 무턱대고 따라하지는 말기 바란다. 그렇게 섬으로 가게 된 계기는 미스테리 재단이 아니라 허접한 텔레마케팅에 낚여서 안그래도 원래 갈려고 했던 섬에서 할인 프로모션 이벤트를 하는 호텔이 낙찰된 것 뿐이다. 즉 밑도 끝도 없는 거액의 유산상속, 아니다. 실업급여를 포함해 딱 1년 동안 (또는 평생) 모아둔 돈 몽땅 털어 그곳에서 전부 다 써버리고 올라오자. 올라올 때 거액 고료 환상문학상을 탈 만한 작품을 완성해오자. 이런 마음으로 내려간 거다. 초특급 호텔에 입이 떡벌어지는 호화 생활과 브랜드들 뭐뭐뭐. 그 스키장의 뇌진탕 때문이다. 신종 증후군에 의한 자기 최면일 수도 있다. S가 J를 괜히 만든 게 아니다.
자, 이제 마초 독자와의 오해는 풀렸다. 개수작이 아니란 것을 공인받은 것이다. 다만 존 파울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의뭉스러운 재단은 나중 뒤늦게 나오던가 반전을 위해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괜히 길거리 캐스팅으로 대단한 특수 실험 대상에 얼빵하고 멍청한 놈이 뽑혔다고 하면 안된다. 식상하다. 어떤가? 혹시 모르겠지만, 그럴리는 없겠지만 따라할 수 있지 않는가? 그것도 쉽게? 자, 당신도 할 수 있다. 1588-XXXX. www.airbnb.com도 있다. 한달에 돈 얼마면 구할 수 있는 하숙집 쑤두룩-하다. 도시 행정 프로그램도 있다. 세계 거의 모든 도시는 자매 결연 도시가 있다. 거즘 완벽하게 촘촘하고 평평하며 아름다우면서 불완전한 세상이다. 안 좋은 일들은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건 꼭 국제기호기구 광고멘트 같다. 작가도 TV에 세뇌된 삶을 살았다. 그래서 인터넷 셀레브리티들을 좋아한다. 그녀를 만난다면 악수하고 싶다. 기념 사진이라도 찍고 싶다. 실은, 안아보고 싶다. 여기까지만! '따라하지마!'는 명대사나 카피라이트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만인이 쓰는 자연어다. 유행을 안 타는데 어찌 따라하라, 따라하지 말라 하겠나. 주제넘은 소리다. 아무튼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다행이다.
그렇게 S는 이제 없던 일도 만들고 사람들을 꼬시고 세뇌시키면서 (일부러 허접하고 허름해 보이는) 초특급 호텔 멤버들 간의 불화는 아닐지라도 적당한 긴장감과 깨알 같은 스릴과 서스펜스를 살면서 잊지 않게끔 아무도 모르는, 없을 수도 있는 그 호텔에 얽힌 비밀을 항상 사람들에게 묻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 뻔한 장면들과 자세한 대화는 생략한다.
상어가 파도를 아직 안 뛰어 넘었으면 좋겠는데 어째 상어가 파도 근처에나 접근했는지 의심스럽다. 급조한 느낌이라고? 역시 독자는 똑똑하다. 셜록 홈즈도 울고 갈 판이다. 급조, 급조가 뭔 뜻이지. 급히 조작한다? 이 떨떠름한 기분은 알 수 없는 기쁨에 근거한 적당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TV를 보면 1차적인 코메디는 재미있다. 드라마에서 잘생긴 주인공이 그곳을 가격당해, 으으으. 주인공만 나타나면 모두 자리를 피해, 으으으. 그런데 너무 유치한 말장난은 어른이 하면 안 웃겨. 그런 1차적인 유머는 진짜 초딩이 해야 웃긴다. 그런 미세한 차이가 관건이다. 1차적인 유머는 원래 쉽지 않은 개그 코드다. 초딩 개그도 썩 다양하다. 앞뒤, 화음, 리듬 없이 미는 개그에 대해서는 그분들(초딩)끼리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줄임말이 있다. NDJM(나대지마). 만화 장면 전환식으로 고급스럽게 웃기기는 참으로 힘들다. 10분간 쉬지 않고 마이크를 독점하며 마구 털어서 웃기기 보다는 먼저 얼굴로 웃겨야 한다. 천마디 말보다 표정으로 웃겨야 격이 산다. 그것 만을 살피는 독립 기관이 두뇌에 있어서 그런지 표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문학이 존재한다.
두 도시 이야기/찰스 디킨스
p.36 그의 시선이 작고 가냘프고 예쁜 얼굴과 풍성한 금발, 미심쩍은 듯 그를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 그리고 당혹스러움과 호기심, 두려움이나 총명한 집중력을 주름으로 한 번에 표현하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이마에(그 이마가 얼마나 싱그럽고 부드러운지 떠올리면서) 잠깐 머물렀다.
몸이나 마음이나 말이든 자동차든 간에 무조건 일단 들이 밀고 보는 삶으로 생애 후반부에 "사는 동안 인생이 당신에게 친절을 베풀었길 바랍니다. ¹ "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일 근사치가 있다면 그건 헛점이 섞인 액면일 뿐이거나 끕이 뭐한 코메디일 것이다.
당신은 TV를 너무 많이 봤다. 그대는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다. 영화보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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