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글쓴이가 수줍게도 어린이의 몸짓을 보여 가면서 까지 손가락 오그라드는, 엉덩이 가려운 부분을 긁적거리고 싶은 욕구를 꾹 참고서 어른스럽게 독자에게 고백해야만 하는 일이 딱 하나 있다. 정말 사람 좋은 솔직함을 꼭 지니고 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이런 내면의 묵직한 짐을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내내 안고 있기에는, 오줌 마려운데 주인 눈치를 살펴가며 어떡하지 못하는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기에는 인품이 고결하지 못하기에 나 편하자고 독자 괴롭히자고 소설의 SF 볼륨을 높여보기 위해 완성판 소설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소설 작법 구성을 비트는 이런 시도가 어느 정도 그리 볼품없는 모습은 아닐 것으로 예상한다. 마음은 이미 정해졌으니까 질질 끌지 않고 딱 고백하겠다.
글쓴이는―작가는 이라고 쓰면 덜 겸손할 것 같아서 글쓴이라고 쓴다기 보다는 그럴 깜냥이 안되니까 대놓고 말하자면 창피해서―소설의 결말을 이미 써 놓았다. 이 소설의 결말을 진작 써 놓았다. 스토리의 결말이 아닌 소설 전체를 끝마치는, 오케스트레이션을 마무리하는 약간 오페라의 막장 음악 같은 느낌의 대단원이라고나 할까. 아직도 당연히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지, 재미있게 꼬일지, 흥미진진하게 쭉쭉 나아갈지 잘 모른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약간의 비관조의 감정을 드러내놓지 않더래도 그냥 그래프 기울기를 보니 대충 이상한 이야기는 나올 것 같다. 손님을 감탄시키는, 연인의 데이트 분위기를 감동의 퍼펙트 스톰에 몰아넣는, 옆사람을 기쁘게 만들고 가족과 친구, 친지와 동료를 웃고 감탄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아닌 그냥 이상한, 이상한 이야기.
자, 미리 써 놓은 결론은 이렇다. 다음과 같다. 이런 시도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지는 않아도. 하지만 털 건 숨김없이 털어놓고 가야 한다. 그래야 홀가분하다.
혹시 진짜 만에 하나, 십억명 중에 한 명 꼴로 어떻게 그런 톡톡 튀는 완전 투명하게 하얀 빛의 강아지 털 같은 영감을 생각해 낼 수 있냐고 궁금해 하시는 호인이 있다면 그 사랑스러운 큐피트 황태자를 위해 비밀스러운 힌트를 약간 언뜻 내비출 수 있다. 왜냐하면 본인도 그게 특수 비법인지 개떡 같은 억측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기에, 그렇게 자신이 없기 때문에 툭 먼저 트럼프 도신 영화 세트장에 원카드를 던져보는 것일 뿐이다.
그건 바로 중력의 방향을 트는 것이다. 중력을 어떻게 트냐고, 그건 불가능하다고? 불가능하다니, 지금 이 순간 그냥 대충 잡아 수천만 명의 백수들이 자기 집, 자기 방에서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생활하고 있는 것인데. 그래도 감이 오지 않는다면 정말 당신은 눈치도 감도 신사도도 그 무엇도 없는 굉장히 멀찍이서 봤을 때의 미남일 뿐이다. 참 소화불량이나 만성피로라는 부작용은 주의해야 한다. 중력은 뭔 중력, 그냥 어쩌다 우연찮게 얻어걸려서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거다. 이제 그만 앞서 말한 결론을 적어야겠다.
독자의 험담은 (배부르지만) 무섭다. 허나 사양하지는 않겠다.
이게 뭐가 소설이냐고? 작가 마음이다. 그것도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했다. 게다가 고품격으로. 요즘엔 무슨 개나 소나 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 그런다고 누군가 험담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그 기법도 광고 문구처럼 동네 북이다. 비록 당신의 마음을 완벽하게 훔치지는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최소한, 그럭저럭 당신의 시간은 훔쳤다. 원래 언제 어디에서나 베스트셀러의 95%는 이런 식이다. 그럼 영화는? 영화도 비슷하다.
본인의 젖가슴에 늠름하게 손을 얹고 평소보다 얼마 더 솔직해지기는, 타인의 (이성의) 맨 가슴에 다소곳이 시선을 떨군 채 진솔하고 정직해지기는, 빵이든 밥이든 면을 걸든 인생을 걸든 그 어느 판돈을 걸든지 어른의 마음과 모공이 어린이의 피부처럼 맑고 고결해지기는 어딘지 모르게 적잖이 어려운 법이라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별 10개 만점을 주는 영화는 아예 없다. 대부분 그냥... 별로... 뭐... 고개는... 표정은... 어조는... 모두 다 그런다. 심지어 어떤 우락부락한 아저씨들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저주와 험담을 퍼붓기까지 한다. 하물며 상대방이 그렇게 느끼고 생각한다면 굉장히 흡족해 하고 좋아한다던 '위대한 유산'의 변호사인 재거스도, 큰 영화제의 상 받은 작품들도 모두 대동소이하다.
어떤가, 내일부터 당장 소설을 써보는 것은? 만일 잘 안 써진다면 일단 고품격 소설을 읽는 생활을 시작하는 것도 괜찮다. 살면서 당신은 깨달은 게 하나 있을 것이다. 좀 찔리지만 그냥 대놓고 설명하자면 창작의 고통은 너무 고평가 받고 있다는 것이다. 책? 그냥 쓰면 된다. 소설을 쓸려면, 첫 소설을 쓸려면, 시도해서 안되면 나중으로 미뤄도 되고 일단 시작하면 된다. 그게 절반이다.
중간에 살짝 언급했지만 이 소설엔 왜 유독 특정 단어가 그렇게도 신물나도록 많이 나올까? 설마 아직도 그 단어가 뭔지 모르시는 분이? 아마도 그건 당신의 인생 경험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정말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왕창 먹고 또 먹어본 적이 있나요?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가? 그렇다. 퀘스천 마크는 이렇게 없애야 한다. 지금 누군가와 이 글을 같이 읽었다면 혹시, 만에 하나 반박자 늦게 웃는 사람이 있으면 꼭 기억해 두시라. 그가 다음에 큰 일 낼지도 모르니까.
청년 시절에 존 업다이크의 그 책을 들고서 표지가 너덜너덜하게 돌아다니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살다 살다 메모용 수첩을 애지중지 꼭 끼고 다니면서 잠잘 때도 매트 바닥에 넣어 놓고 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러다가 누가 보든 말든 신경 꺼버리고 누가 관심이나 가져주겠어라고 포기하게 될 줄이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무협극에서 보자기로 아무리 비밀병기를 싸매서 등에 지고 다녀봐야 그건 그냥 광고의 한 기법일 뿐이다. 거리에서 콘트라베이스 케이스를 메고 다니는 사람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거창하게 집필 기간이라 부르기는 거추장스럽고 속 보이는 처사지만 기간을 셈하면 그래도 급하게 뽑은 거 치고는 어쩌다가 한 권 분량이 나오고야 말았다. 어차피 충분한 시간을 들여봤자 더 잘 나오기는 어려울테니 짧은 시간에 효율은 챙겼다고 할 수 있다.
자, 이제 막판이니까 허심탄회하게 까놓고, 완전 뚝 까놓고 내면의 독백으로 자신에게만 고백해보자. 다음 객관식 보기에서 어떤 작품이 가장 재미있는가?
- 마르셀 프루스트
- 제임스 조이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이탈로 칼비노
- 블로그
... 이런 이런 이런. 당신은 그러니까 안되는 거다. 당연히 주관식으로 답해야지 어찌 나이 먹고 그렇게 순진하게 답을 고르고 있는가? 5번 빼고 다 재밌다가 B급 정답이다. 거의 모든 게임에는 연습 게임이란 게 있다. 판돈을 돌려주겠다. 다시 잘 생각해 보시라. 그렇다. 당신은 천재다. 당신도 할 수 있다. 보이스 비 앰비셔스! 당신은 영화배우 뺨을 때릴 자격이 있다. 소설은 인생이다. 인생은 코메디다. 고로 소설은 코메디다.
그건 그렇고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안 끝났다. 작가를 의심하고 누군가를 믿지 말라고 하는 사람에게 속아줄 때는 삶의 여유와 연기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