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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4. 8. 25. 14:46

   썩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글쓴이가 수줍게도 어린이의 몸짓을 보여 가면서 까지 손가락 오그라드는, 엉덩이 가려운 부분을 긁적거리고 싶은 욕구를 꾹 참고서 어른스럽게 독자에게 고백해야만 하는 일이 딱 하나 있다. 정말 사람 좋은 솔직함을 꼭 지니고 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이런 내면의 묵직한 짐을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내내 안고 있기에는, 오줌 마려운데 주인 눈치를 살펴가며 어떡하지 못하는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기에는 인품이 고결하지 못하기에 나 편하자고 독자 괴롭히자고 소설의 SF 볼륨을 높여보기 위해 완성판 소설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소설 작법 구성을 비트는 이런 시도가 어느 정도 그리 볼품없는 모습은 아닐 것으로 예상한다. 마음은 이미 정해졌으니까 질질 끌지 않고 딱 고백하겠다.
   글쓴이는―작가는 이라고 쓰면 덜 겸손할 것 같아서 글쓴이라고 쓴다기 보다는 그럴 깜냥이 안되니까 대놓고 말하자면 창피해서―소설의 결말을 이미 써 놓았다. 이 소설의 결말을 진작 써 놓았다. 스토리의 결말이 아닌 소설 전체를 끝마치는, 오케스트레이션을 마무리하는 약간 오페라의 막장 음악 같은 느낌의 대단원이라고나 할까. 아직도 당연히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지, 재미있게 꼬일지, 흥미진진하게 쭉쭉 나아갈지 잘 모른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약간의 비관조의 감정을 드러내놓지 않더래도 그냥 그래프 기울기를 보니 대충 이상한 이야기는 나올 것 같다. 손님을 감탄시키는, 연인의 데이트 분위기를 감동의 퍼펙트 스톰에 몰아넣는, 옆사람을 기쁘게 만들고 가족과 친구, 친지와 동료를 웃고 감탄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아닌 그냥 이상한, 이상한 이야기.
   자, 미리 써 놓은 결론은 이렇다. 다음과 같다. 이런 시도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지는 않아도. 하지만 털 건 숨김없이 털어놓고 가야 한다. 그래야 홀가분하다.
   혹시 진짜 만에 하나, 십억명 중에 한 명 꼴로 어떻게 그런 톡톡 튀는 완전 투명하게 하얀 빛의 강아지 털 같은 영감을 생각해 낼 수 있냐고 궁금해 하시는 호인이 있다면 그 사랑스러운 큐피트 황태자를 위해 비밀스러운 힌트를 약간 언뜻 내비출 수 있다. 왜냐하면 본인도 그게 특수 비법인지 개떡 같은 억측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기에, 그렇게 자신이 없기 때문에 툭 먼저 트럼프 도신 영화 세트장에 원카드를 던져보는 것일 뿐이다.
   그건 바로 중력의 방향을 트는 것이다. 중력을 어떻게 트냐고, 그건 불가능하다고? 불가능하다니, 지금 이 순간 그냥 대충 잡아 수천만 명의 백수들이 자기 집, 자기 방에서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생활하고 있는 것인데. 그래도 감이 오지 않는다면 정말 당신은 눈치도 감도 신사도도 그 무엇도 없는 굉장히 멀찍이서 봤을 때의 미남일 뿐이다. 참 소화불량이나 만성피로라는 부작용은 주의해야 한다. 중력은 뭔 중력, 그냥 어쩌다 우연찮게 얻어걸려서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거다. 이제 그만 앞서 말한 결론을 적어야겠다.
   독자의 험담은 (배부르지만) 무섭다. 허나 사양하지는 않겠다.

   이게 뭐가 소설이냐고? 작가 마음이다. 그것도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했다. 게다가 고품격으로. 요즘엔 무슨 개나 소나 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 그런다고 누군가 험담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그 기법도 광고 문구처럼 동네 북이다. 비록 당신의 마음을 완벽하게 훔치지는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최소한, 그럭저럭 당신의 시간은 훔쳤다. 원래 언제 어디에서나 베스트셀러의 95%는 이런 식이다. 그럼 영화는? 영화도 비슷하다.
   본인의 젖가슴에 늠름하게 손을 얹고 평소보다 얼마 더 솔직해지기는, 타인의 (이성의) 맨 가슴에 다소곳이 시선을 떨군 채 진솔하고 정직해지기는, 빵이든 밥이든 면을 걸든 인생을 걸든 그 어느 판돈을 걸든지 어른의 마음과 모공이 어린이의 피부처럼 맑고 고결해지기는 어딘지 모르게 적잖이 어려운 법이라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별 10개 만점을 주는 영화는 아예 없다. 대부분 그냥... 별로... 뭐... 고개는... 표정은... 어조는... 모두 다 그런다. 심지어 어떤 우락부락한 아저씨들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저주와 험담을 퍼붓기까지 한다. 하물며 상대방이 그렇게 느끼고 생각한다면 굉장히 흡족해 하고 좋아한다던 '위대한 유산'의 변호사인 재거스도, 큰 영화제의 상 받은 작품들도 모두 대동소이하다.
   어떤가, 내일부터 당장 소설을 써보는 것은? 만일 잘 안 써진다면 일단 고품격 소설을 읽는 생활을 시작하는 것도 괜찮다. 살면서 당신은 깨달은 게 하나 있을 것이다. 좀 찔리지만 그냥 대놓고 설명하자면 창작의 고통은 너무 고평가 받고 있다는 것이다. 책? 그냥 쓰면 된다. 소설을 쓸려면, 첫 소설을 쓸려면, 시도해서 안되면 나중으로 미뤄도 되고 일단 시작하면 된다. 그게 절반이다.
   중간에 살짝 언급했지만 이 소설엔 왜 유독 특정 단어가 그렇게도 신물나도록 많이 나올까? 설마 아직도 그 단어가 뭔지 모르시는 분이? 아마도 그건 당신의 인생 경험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정말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왕창 먹고 또 먹어본 적이 있나요?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가? 그렇다. 퀘스천 마크는 이렇게 없애야 한다. 지금 누군가와 이 글을 같이 읽었다면 혹시, 만에 하나 반박자 늦게 웃는 사람이 있으면 꼭 기억해 두시라. 그가 다음에 큰 일 낼지도 모르니까.
   청년 시절에 존 업다이크의 그 책을 들고서 표지가 너덜너덜하게 돌아다니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살다 살다 메모용 수첩을 애지중지 꼭 끼고 다니면서 잠잘 때도 매트 바닥에 넣어 놓고 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러다가 누가 보든 말든 신경 꺼버리고 누가 관심이나 가져주겠어라고 포기하게 될 줄이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무협극에서 보자기로 아무리 비밀병기를 싸매서 등에 지고 다녀봐야 그건 그냥 광고의 한 기법일 뿐이다. 거리에서 콘트라베이스 케이스를 메고 다니는 사람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거창하게 집필 기간이라 부르기는 거추장스럽고 속 보이는 처사지만 기간을 셈하면 그래도 급하게 뽑은 거 치고는 어쩌다가 한 권 분량이 나오고야 말았다. 어차피 충분한 시간을 들여봤자 더 잘 나오기는 어려울테니 짧은 시간에 효율은 챙겼다고 할 수 있다.
   자, 이제 막판이니까 허심탄회하게 까놓고, 완전 뚝 까놓고 내면의 독백으로 자신에게만 고백해보자. 다음 객관식 보기에서 어떤 작품이 가장 재미있는가? 

  1. 마르셀 프루스트
  2. 제임스 조이스
  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4. 이탈로 칼비노 
  5. 블로그 

   ... 이런 이런 이런. 당신은 그러니까 안되는 거다. 당연히 주관식으로 답해야지 어찌 나이 먹고 그렇게 순진하게 답을 고르고 있는가? 5번 빼고 다 재밌다가 B급 정답이다. 거의 모든 게임에는 연습 게임이란 게 있다. 판돈을 돌려주겠다. 다시 잘 생각해 보시라. 그렇다. 당신은 천재다. 당신도 할 수 있다. 보이스 비 앰비셔스! 당신은 영화배우 뺨을 때릴 자격이 있다. 소설은 인생이다. 인생은 코메디다. 고로 소설은 코메디다.

   그건 그렇고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안 끝났다. 작가를 의심하고 누군가를 믿지 말라고 하는 사람에게 속아줄 때는 삶의 여유와 연기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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