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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4. 7. 22. 14:31

   J는 클림트, 뭉크, 마티스, 뒤피, 쉴레, 피카소, 앙리 제르벡스, 조반니 볼디니, 모네 같은 그 이름을 열거하기 곤란한 미술계 거장들의 그림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현장에서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자기 고장에서만 살면서 여권에 도장 한번 못찍고 20년 내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면 앞서 열거한 사람들 수준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는다. 재고할 가치가 없는 일이다. 자크 루지에나 바흐 스폐셜리스트의 음반을 굳이 틀어 놓지 않아도 사람들은 누구나 약간의 힌트만으로 능히 비슷하게 또는 다른 패턴으로 변주를 할 수 있다. 다음은 앞서 나왔던 외모로 사람 이름 늘어놓기에 대한 응용 놀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줄리언 반스, 밀란 쿤데라, 오르한 파묵, 하워드 제이콥슨, 찰스 디킨스... 그 다음에 갑자기 (______)! 괄호 안에는 그 누구의 이름을, 당신의 이름을 넣을 수 있다. 넣지 말라는 현행법도 없고 그 어떤 관습이나 풍속도 없다. 그런데 당신의 이름을 이 괄호 안에 넣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판이하게 산성과 알칼리성처럼, 홍해의 기적처럼 구분하기 순쉬운 2가지로 나뉜다. 이런 식의 유치하고 꺼벙한데다가 상태가 몹시 의심스러운 말장난에 대한 반응은 사람에 따라, 성별에 대해, 혈중 알콜 농도의 영향에 의해, 뭐에 근거해, 뭐에 따라 왜 그렇게 다른 것인지 참으로 신기해 보인다. 초딩이 아닌 어른들이 봤을 때도. 이 단순한 유머가 게으른 변명이 더해지는 글쓰기 중압감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일단 S가 그리고 J가 글을 막 쓰게 만드는 얼마간은 불흉한 화근이 되었다. 블로그 검색어는 물귀신이다.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을 읽다가 옛날에 극장에서 동성 친구와 '빠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1996)'를 보고 나오던 낮 시각의 뭔지 모를 어지러움을 떠올리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런 낯선 느낌을 소설에 적는 게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일런지... 모차르트 K.183번을 듣고 있는데 어, 갑자기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공기보다 가벼운 수소가 잔뜩 담긴 여러 개의 풍선을 한가득 들고 지면에서 발이 떨어질락 말락하는 기분 같다고나 할까. 아마도 그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겠지만, 감정의 기복 때문에라도 누구나가 그러하겠지만, 어쩌면 그래서 그러한 감정이 증폭되고 배가 되는지도 모른다.

   때는 바야흐로 2014년 왠지 모르게 기분 좋은 어느 날, 누가 무엇을 발표하고, 어디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왜 어떤 동물이 자다가 개꿈을 꾸고 몽유병자가 된 날이 언제였는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정말 마침내 거짓말처럼 S는 믿을 수 없는 유레카의 순간을 맞이했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팔자 좋게 낮잠 자다가 진짜 번개를 맞은 건지도 몰랐다. 소설의 구상이 딱 떠올랐다. 제목은 '소설가가 된 여자, 개가 된 남성' 살다보니 이렇게 놀랍고도 기이한 그럼과 동시에 찬란한 경험을 하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흐뭇한 어떻게 보면 음흉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읽는 중에 쌍코피 터질 정도로 뛰어난 그런 놀라운 연애소설을 쓰고 싶은 여자들과 신종 느와르 영화를 보거나 만들거나 연기하고 싶어하는 남성들처럼. 그런데 다음날 도서관에 들러서 보니 그와 비슷한 제목과 내용으로 이미 발표된 소설이 있었다. 삶이 참 허무하다. 이런 제길슨. 그렇지만 이로써 한가지 깨달았다. 제목을 먼저 뽑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확정은 아니더래도 말이다. 하지만 제목 먼저 뽑고 글을 써내려가기에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나 재즈계의 거장들도 까무러치는 즉흥연주의 귀재 만큼의 능력과 가망성이 없어서 제목 짓기는 차차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름답고, 문학적이고, 희귀하고도 재미있는, 애달프게 눈길을 책으로 잡아 끄는 뭔가 빠져들 것만 같은 그런 제목... 어디 없나?
   그래서 J는 하는 수 없이가 아니라 흡사 상류층 귀부인들이 견적을 자동으로 계산해 내는 반사 신경과도 같은 직관력으로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여자 주인공 A가 기필코 소설을 쓰게끔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알파벳 A는 주홍글자를 연상시키고 동시에 해치(시비와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 컬러 텍스트로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한 이름이자 너글러운 문자다. 지금껏 소설에서 이름을 이니셜로 표기한 예는 까마득히 많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비록 많지 않을지라도, 단 4명일지라도 어쩌면 매우 지성적인 전문가일 것이라는 것을 쉽사리 예측할 수 있다. 설마 앞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당신의 지성을 굳건히 믿는다.
   A는 번역일을 하는 중 틈틈히 연애소설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 원래는 신종 추리소설을 계획했는데 추리소설은 이제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게다가 어지간히 써서는 눈에 띄기도 힘들다. 그리고 꼭 연애소설이 아니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대사가 포함되는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런 대사는 다음과 같다. 청소년은 잠시 두 귀를 막는 게 좋겠다. 아, 이건 드라마가 아닌 소설이니까 단락을 잠시 건너뛰는 게 낫겠다. 

  • '유난떨다' 구글링 검색결과 첫빠 (순위가 하락했을지도 모름)
  • 째가 이쁜 척 하고 있어.
  • 저 잘난 체 하는 모습이라니.
  • 지금 속으로 뭔 생각해? 내가 맞혀볼까?
  • 레슬링 선수 출신 어느 유부녀의 인생이 담긴 말 "임자 있는 남편한테 꼬리치는 년들은 허리를 그냥 확 접어브러야 돼."
  • 내 남편한테 껄떡대지마 이년아!  :  뭐 껄~떡?
  • 내 인생에 달라붙어 단물 쪽쪽 빨아먹는 낙지 빨판 같은 년!
  • 돼지뽄드 같은 년!
  • catty behavior에 충실한 어떤 여자의 경우 옥타곤에 직접 올라가지 않고 마술피리를 불어서 남자친구를 대신 올려 보내는 일.

그녀는 이 시대의 예술가와 전문가, 일반인은 물론 다음 시대의 지성인에게도 잊혀지지 않을 널리 읽혀질 고품격 소설로 기억될 만한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여자는 그래요. 외모? 잘생기면 좋죠. 말빨? 여자는 그런 거 중요하게 생각치 않아요. 여자는 남자의 사소한 모습에 반한답니다. 능력? 그 다음 구구절절. 순진한 하이틴 로맨스라... 어디 잡지에 애독자 엽서를, 어느 라디오 방송에 애청자 편지를 보낼 일 있나? 멜로드라마적인 케미컬한 요소는 살짝 품어 한켠에 놔두고 더없이 모던하고 격조 높게, 코스모폴리탄이란 단어를 떠올리면서 감탄사를 유도하는 그런 소설. '나는 뭐뭐 한다'라는 대사나 묘사와 설명을 읽는 독자가 적어도 '너만 그러니'라고 느끼지 않게끔 만드는,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우리'라는 말을 제일 나중에 쓰는 그런 소설.

   소설은 뭐다, 또 그렇게 쓸줄 아셨는가. 소설은 뭐다라는 소설계의 불문율을 그만 쓸려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해야겠다. 소설은 상심이다. 왜냐하면 비밀이다. 일단 광대한 독서 경험을 거치고 수없는 상심을 경험한 후에나 무슨 얘기인지 더 잘 알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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