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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4. 7. 17. 15:21

   시원한 바람이 나부끼는 나뭇잎과 모래알을 바라보며 한적한 해변에서 S의 사적 공간에는 생각해보니 딱히 부족한 게 없었다. 청아한 여인네들과 천진난만한 어린이들, 베이지색의 더없이 귀여운 강아지들이 가끔씩 마치 그들끼리 정해진 시간 동안 지나다니기로 짠 것처럼 오가는 가운데 지금 자신 앞에는 최신형 노트북도, 값비싼 오디오도 칵테일도 선그래스도, 리스로 마련한 포르쉐 타르가와 굉장히 맛난 최상류층이 인정할 만한 빵과 커피도 모두 다 준비되어 있다. 단어만 들어도 기분이 좋은 휴양지인데 요트가 빠질 수 없다. 저 앞에 대기시켜 놓았다. 또한 지금 묵고 있는 초신성 호텔의 귀빈용 별관에서 일하는 상냥하고 아름다우며 알 듯 모를 듯 우수에 가득찬 눈빛을 지닌 컨시어지도 꼬셔 놓았다. 참고로 컨시어지는 미모의 지성파 여성이다. 그러고 보니 거의 모든 현대인은 사실 부러운 게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툴툴 거리냐면 너무 풍족해서는 아닐까란 생각을 해봤다. 그건 아마도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여유작작해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한마디로 지겨운 얘기다. 그냥 주기적으로 뉴스와 책과 방송에 쉬지 않고 등장하는 식상한 얘기들이다. 하지만 한 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4 Hour Week/팀 페리스, p.324 요약.

   한 미국인 사업가가 멕시코의 해안 마을로 휴가 떠남. 부두에서 그곳에 사는 어부를 만나 대화를 나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함. 미국인이 멕시코인에게 고기를 잡는 데 얼마나 걸렸냐, 더 많이 잡지 그랬냐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뭘 하시느냐 물었다.
멕시코인: "늦잠 자고, 물고기 좀 잡고, 아이들과 놀아 주고, 아내 줄리아와 낮잠을 잔다우. 그러고는 저녁마다 마을을 어슬렁거리다 포도주도 마시고 친구들과 기타를 치면서 놀지. 살고 싶은 대로 살면서 내 딴에는 바쁜 몸이라우."
미국인: "저는 하버드 MBA 출신으로 아저씨를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시간 투자..수익금으로 더 큰 배를... 어획량이 늘어나 배를 몇 척 더...통조림 공장... 제품과 가공, 유통까지... 멕시코시티로 옮겨야 할 거고, 그 후에는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뉴욕까지 진출하는 겁니다. 뉴욕에서는 유능한 경영진과..."
멕시코인: "그 모든 일을 이루는 데 얼마나 걸리겠수?"
미국인: "15년에서 20년 정도요. 길어야 25년이죠."
멕시코인: "그 다음엔 어떻게 되우?"
미국인: "...때가 되면 주식을 상장한 후 회사 주식을 팔아서..."
멕시코인: "수백만 달러? 그러고 나서는?"
미국인: "그 다음엔 은퇴한 후 작은 어촌 마을로 가서 늦잠 자고, 물고기 좀 잡고, 아이들과 놀아 주고, 아내와 낮잠 자고, 저녁에는 어슬렁어슬렁 마을이나 돌아다니며 포도주도 마시고 친구들하고 기타 치며 노는 거죠···."

   S는 이 이야기를 4 Hour Week라는 책에서 봤고 그 기원과 원형은 또 더 오래되었을 수도 있지만 달라스든 뉴욕이든 어디에서나 한동안 이런 이야기를 남자들은 모두 다 그 출처를 얘기하지 않고, 자기가 멋지게 읊기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화자가 말하고 청자가 들을 때 서로 딴 생각한다. 한동안 그 이야기 엄~청 유행했었다. 남자들은 어디서 주워 듣든지, 공부했던 것을 기억하든지, 서점에서 잠시 읽었던지 뭐든지 최대한 많이 알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고 자신이 그걸 어떻게든 써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아는 것만 무한반복 재생한다. 그래서 옆사람보다 많이 아는 것 같다고 얘기하면 완전 엄청 좋아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그냥 그렇게 타고났나 보다. 불협화음과 소음에 둔감하고 청각이 예민하지 않고 남의 말을 잘 듣지를 않는다. 그러고 보면 노화에 따라 청각 능력이 후퇴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짠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그리고 남자는 거짓말의, 뻥의 진정한 전문가다. 남자는 거기가 뿔룩 튀어나오고 여자는 움푹 깊숙해서 그럴까. 이게 남자다. 바나나는 휘었다. 펜티에 디자인된 문양들은 재미있다. 설마 그대는 그런 타입은 아니라고 믿는다.
   아무튼 S는 가상 인물 J를 마음대로 들었다 놨다, 울렸다가 웃겼다가, 왔다리 갔다리, 빨가벗겼다가 잠꼬대를 시켰다가 술도 가끔 먹였다. 그렇게 S가 J를 모두 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데서 오묘하고 황당한 그리고 허망하지만 그래도 말은 되는 창조성의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맛에 사람들이 소설을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은 원래 그렇게 창의적인 천재도, 읽는 것은 모두 외울 수 있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도 아닌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S는 다시 J를 쥐어짜서 특이한 분위기의 서사를 펼쳐보이는 창작물을 만들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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