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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4. 7. 17. 16:26

   J는 마치 자신이 가택 감금된 상태로 영화 혹성탈출(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 2011)처럼 원래의 상태보다 약간은 불안하고 조금은 이상하면서 뭔가 알 수 없는 고양된 기분의 상태에 이르러 있다고 느꼈다. 지금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는데 그나마 자신의 귀 모양이 멀쩡한 것에 대해서 스스럼없이 인정하기에는 간지러운 미세한 안도감을 품으면서 갑자기 모차르트의 40번 교향곡과 K.423번을 듣고 싶어졌다. 그는 3.5류 소설처럼 지휘자가 뭐하고 쾨헬 넘버가 어떻다는 얘기는 절대 일부러 하고 싶지 않았으나 잠재의식의 한 공간에서는 알 수 없는 어떤 예감이 꿈틀하는 것을 마냥 모른 체 할 수 만은 없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본인의 복사판이 이렇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 너가 아무리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억지로 쓴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절대 고품격의 반대편에 위치할꺼야. 3인칭이라고? 모양만 3인칭이지. 너도 완전 초심플한 깍뚜기 떡대야. 이 소설이 나는, 나는, 나는...과 뭐가 달라? 설정, 줄거리, 문체, 반전, 머머주의... 아무 것도 없잖아. 이 멍청한 놈!
   그렇게 음악을 듣다 보니 안 그래도 불안정한 기분이 더 이상해졌다. 그러다가 막 혼잣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아니 도대체가 말이야, 어디 문예창작과 학생도 아니고, 문학 동아리 고딩도 아니고, 이거 뭐하는 짓이냔 말인가. 맨날 책 읽고 블로그 쓰고, 고품격 소설을 찾는다고 돈벼락을 맞는 것도 으리으리한 자동차를 골라타는 것도 아닌데 이거 정말 뭔 한심한 수작이냔 말이다. 그래서 그는 결국 생각이 그쪽으로 옮겨갔다. 책만 읽지 말고 책을 써서 미스테리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여행 경비를 마련해 보자고,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는 동안 때로는 무모한 도전을 하는 날이 오게도 마련이라고 일반인 특유의 합리화 공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물론 어찌어찌하여 책이 오프라인으로 발표된다고 치자. 그럼 그걸 누가 사겠나. 설마 뭔가 영화에 나오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람들이 이상해져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고 치자. 그럼 당연히 교묘하고도 완벽하면서 약간은 일부러 빈틈을 보인체로 변장하고서 서점으로 달려가 베스트셀러 코너에 놓여진 자신의 책을 곁눈질하는 코메디 퍼포먼스는 하지 않을 것이다. 개봉관이 아닌 온라인 발표되는 영화의 주인공도 같은 생각을 할 것만 같다.
   막상 J가 여러 편도 아닌 한 편의 소설을 쓸려고 생각하니 도무지 뭘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왜 쓰는지...라고 생각했다. 여행 경비를 마련한다는 '어째서'에 대한 이유는 확실하지만 바로 방법이 문제였다. 언제 소설 쓰는 법 같은 책을 보거나 문화 강좌를 들어본 적도 없고, 드라마 작가, 순수문학 소설가, 3류 소설가, 에로영화 시나리오 작가, 무협소설가는 커녕 그럴싸한 직업이나 특별한 재주를 가진 친구조차 단 한 명도 없었다. 핸드폰 연락처들도 비리비리하다. 굉장히 막막했다. 완전 막연해서 허무했다. 다른 일반인 또한 옛날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많이 그랬을, 그럴 것이라 짐작했다. 그렇다고 그가 그런 골 때리는 본인 능력치를 초월하는 시도를 해볼려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다만 어차피 시도할 만한 수준이 안된다고, 해봐야 뻔히 실패한다고 머리 속에서 모두 셈을 마무리했던 것이다. 하지만 댄 에리얼리의 어느 책에 나온 '어차피 그렇게 된 거 효과'를 건전하고 밝고 자신있게 긍정적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었다고 무작정 부정할 수 만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20년 전에 읽었던 소설들도 왠지 도움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헛생각은 그만하고 이제 진짜 써야겠다고 자세를 고져 잡았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J는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왜, 누구에 의해서, 무엇 때문에, 그곳에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또한 일단 정신병원으로 알았으나 꼭 그곳을 정신병원이라고 부를 수 만도 없었다. 그곳은 영화 큐브 (1997) 같은 공간일 수도 있고, 비밀 지하 기지, 지구 내부의 미지의 공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J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 '이건 현실이 아니야', 우리는 당연히 S가 이 상황을 연출했을 것으로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대 독자여, 주의력을 떨어트리지 마시고 애완견을 어여삐 안아 들듯이 이 소설을 집어던지시는 마시라. 카프카, 까뮈의 작품을 읽드래도 세간의 평은 다를지라도 사람들 혼잣말은 거의 다 똑같으니까! 그 순간 갑자기 문안개가, 푸르스름한 정체불명의 연기가 사방에 피어 올랐다. 그리고 저 멀리 문이 하나 나타났다. J는 다른 도리가 없이 그 문으로 다가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그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개꿈이었다. 어떤가? 포스트모던 소설의 분위기와 흡사하지 않은가? 누보 로망, 그냥 누보 로망일 뿐이다.
   J는 어느 날 요상한 꿈을 꿨다. 흑백이 아닌 완전 번쩍번쩍 컬러풀한. 꿈의 내용은 이렇다. 


   Friendfeed를 보다가 Veronica Belmont 피드를 보고 괜찮은 게 있길래 Twitter에서 찾아 Retweet을 했다. "할머니가 이런 얘기를 해주셨다. 남자를 알아볼려면 그 사람의 글을 보라... 이러쿵저러쿵" 그러고 나서 집에서 소파에 거만한 자세로 앉아서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순간 갑자기 친구에게서 등산가자고 전화가 온다. 친구 만나러 걸어 가고 있는데 공원에서 Veronica Belmon이 야구 캐치볼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인터넷 피플 유명인은 베드민턴을 치고 있다. 계속 이동한 후 친구를 만났는데 계획을 급변경해서 정신병원 병동에 가기로 한다.
   정신병원 병실에 들어가니 어떤 은퇴한 정보요원 수장과 그 따까리들이 있다. FBI, CIA, NCIS, MI6...이런 비밀단체에서 활동했다는데 외모는 이상하게 깍뚜기 스타일이다. 가볍게 인사 나눈 후 자리에 앉는다. 환자 시트에 드러누운 후 곧 공연이 시작된다. 완전 이쁜 소녀가 와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소녀는 자신의 엄마가 이 병원에 환자로 입원해 있다고 한다. 완전 이쁘지만 좀 노는 타입으로 보이는데 파가니니를 연주할 때 활에 불이 붙는줄 알았다. 줄리어드 천재 1%가 20년 연주해야 이 수준이 되는데 꿈이니까 가능했나 보다. 
   공연이 끝나고 친구와 헤어진 후 어떤 할아버지의 초대로 마천루 스카이라운지에 올라갔다. 분위기 있는 백발의 노인이 혼자 등을 보이고 서있다. 현실이라면 연극일 테지만 이땐 완전 분위기 있었다. 진짜같았어!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는데 바깥 풍경이 스펙타클하였다. 업계 1위 항공사가 비싸게 구입한 최신기종 여객기와 업계 2위 항공사 마크를 붙인 콩코드등 여러 비행기들이 Air Show를 하고 있었다. Air Show가 끝난 후 불사조 스케일의 큰 학들이 불타고 있는 날개를 휘저으며(불로 이뤄진 날개라 타지 않는다) 글라이더처럼 날고 있었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영화에서처럼 명대사를 읊는다. (뒤돌아 안 돌아섰나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마 뒷모습만 보인 상태에서 고개만 쓰윽 돌렸는데 살며시 보이는 얼굴이 투명이든가 연한색 마네킹 같은 원목이었던 것 같다. 영화 The Signal 2014 마지막 장면 비슷하게)
"신기하게 까마귀나 까치도 기류를 타고 가끔 올라오지만 머무르지 못하고 바로 내려가버리네."

   그 다음에 바로 J는 꿈에서 깨고 말았다. 그냥 개꿈이었던 것이다. 깨어나는 순간 그 전날 동네 초등학교 운동회에 무작정 놀러 갔다가 무심코 예뻐 보여서 주워왔던 만국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왜 그런고 하니 아이폰 수면-꿈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다가 재미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처럼 밤에 잠을 잘 때 온 방을 헤집고 뒹굴면서 잠꼬대를 헤댓나 보다. 그런데 왜 이 소설에서는 등장인물 설정이 수많은 평론가와 학자들이 떠들썩하리 빠삭하게 사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연구 조사하여 낫낫이 비밀 한 점 없이 밝혀내버린 1900년 전후의 예술가의 사생활처럼 가난하냐 하면, 그것은 아마도 S가 인생을 통채로 너무 많은 속임수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채로 살아왔기 때문에, 또한 너무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Don't Trust Anyone 같은 명대사 때문에, 복잡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리고 서두에 나왔듯이 독자의 감정이입을 극대화하기 위한 고도로 치밀한 전략 때문인 것이다. 그의 과거는 아마도 마음에 들지 않고 음침한 분위기와 축축한 제반 여건에 쌓여 있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현존하지 않는 유명 작가와 예술가들은 거의 엉덩이 반점과 발바닥 흉터까지 죄다 까발려졌다. 앞으로도 학계에서 영원히 연구될 게 뻔하다. 세계 곳곳에서 학사, 석사, 박사 논문과 학계, 연구서, 인문교양서 등등등... 심지어 과거와 현재는 데이터 양의 차이가 적지 않다. 미래는? 그러니 데이브 브룩스나 폴 크루트먼 같은 학자가 예술가가 되지 않고 지금의 분야에 집중하는 것 같다. 남자는, 남자는 사생활을 존중받고 싶어 한다. 감추는 게 많아서일지 모르지만 여자도 조금 그런다. 사람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고 또 하루가 가고 유구한 세월의 흐름 속에 J는 뭔가 삶의 변화가 아주 절실하게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소설은 가방이다. 과하게 여성스런 아가씨는 앙증맞게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니지만 심하게 엘레강스한 아주머니는 큰 용량의 에르메스인지 아닌지 잘 알 수 없는 가방을 들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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