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187

from 소설 2021. 5. 30.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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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처럼 먹고 마셔 식욕이나 실컷 충족시킬까? 식탐은 왕성하나 그마저 귀찮다. 정력마저 예전같지 않나? 탐욕은 식었다. 그런데 사랑이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분들은 진한 사랑에 흠뻑 젖을 생각중이므로 아마도 없을 듯. 타인의 행복을 빌어주진 못할망정 그런 얘기 하는 거 아니다. 기왕 말 나온 김에 말하자면 굶주린 늑대의 불결한 상상? 저리 가라. 응큼한 여우들 사랑의 차트가 더 불결하지 말란 법 없다. 알고 보면... 쉿! 그렇다고 누가 누가 더 불순한가를 따져 뭐 하나. 이제 보니.. 그만 하자. 짝사랑복 논해 뭐 해! 그나저나 기분 전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오늘도 흔쾌히 첫눈에 홀딱 반해야 하나, 아니면 뭇여성들께서 내 첫인상 때문에 실망할지 모르니까 자기 관리를 해야 할까. 만약에 그 무엇가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금새 지칠 것이다. 또는 중간에 변심하거나. 아예 애초에 시작도 전에 말 뿐이던가! 그러니까 난 이미 대충 살고 있는 거네? 이래서 우리는 적어도 막살지 않는 건데. 그러든 어쩌든 지금쯤 보미는 나를 위해 꽃다발을 사고 있겠지? 한편 수민은 나를 생각하며 연가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누구 맘대로 나는 걔네들을 들었다 놓고 있는지. 그런데 문제는 그게 모두 사실이고 한두 명이 아니라는 점. 이 정도면 난 뭐 갈 데라고는 정신병원 밖에 없다는 얘긴데. 이게 다 팬미팅에 가기 싫어서 하는 소리다. 난 얼굴 팔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친애하는 그대여 어쩌고저쩌고 지겹거든. 그래서 한송이 장미는 새로운 여자에게? ~라는 말이 정답이란 게 아니라. 튤립도 있고 팬지는 물론 이 세상에 꽃이 얼마나 많은데. 촌스럽게 사람들은 닭살 돋는 대사 지겹지도 않난 몰라. 웬만한 거 다 뻥이라는 점 자기들도 잘 알 거 아냐. 하긴 인간은 누구나 가식쟁이다. 고로 어른이 된다는 건 속물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인데.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그러든가 말든가 에밀리가 또 케익과 샴페인 사들고서 쳐들어오면 어떡하지? 일단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그러니까 어디로? 인생 정말 웃기게 돌아간다. 상태마저 겁나게 안 좋다. 심각한 슬럼프다. 난감하네. 어쩌지? 그러지 말고 그냥 사라의 구애를 받아줄 걸 그랬나. 지금 생각해보니 자기를 데리고 살아달라는데 난 왜 매정하게 뿌리쳤는지. 알 수 없다. 이거 봐 이거 봐 이거 이거 보라고, 또 전화온다. 이번엔 또 누구야? 광고전화다. 뭐 예상 못한 건 아니다. 사랑이란 원래 예고없이 찾아오거든. 또 살다보면 숱하게 속는다. 그래서 내가 또 몰래한 사랑에게 속았냐 하면 아니다. 아예 시작도 안했으니까. 어쨌든 뭘 해도 재미없는 마당에 "머머해라"라는 말이 눈에 들어오겠나. 등 돌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게을러지기 마련. 그럼 애시당초 팔랑귀처럼 나부끼느니 주관이 확실한 게 좋긴 좋다. 헌데 그런 허당은 시간낭비를 유독 많이 한다. 하여 남녀 공히 동타. 괜히 칼럼 소제로 빠지지 말자. 이러니 맨날 놀고 먹기는 틀려먹은 셈. 낭패다 낭패. 어쩌지?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하냔 말이다. 이제 정말 어떡하지? 하는 수 없이 작품 구상을 핑계로 어딘가로 가야만 한단 얘긴데. 
    이처럼 연습장에 낙서만 끄적거리며 마감일은 또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귀인이 날 찾아왔냐, 하면 아니다. 허나 뭔가 다른 어떤 일이 있긴 있었다. 그건 무어인고 하니 바로 낯선 식물들이 집으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물론 비현실적으로 막 식물들이 걸어다녀서 내게 말을 걸었을 리는 없다. 또 초현실적으로 동네 똥개와 내가 뜬금없이 말이 통할 수는 없는 일. 즉 내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침대 옆에 웬 시금치가 있었다. 이게 어쩌다... 처음에는 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음 날 아침에는 머리맡에 놓여있는 잡초를 발견. 내가 어디서... 땅바닥에서 굴렀나? 아닌데. 그리고 3일째 되던 날. 이젠 풀이 아니라 꽃이 있었다. 그럼 그렇지. 식물들이 걸어다닐 리는 없고 누군가 날 흠모하는구나. 까지는 아니다만. 내가 단골 술집에서 마담을 꼬실려고 들고 갔던 꽃다발, 그 마담의 남자친구가 반갑게 인사하길래 재빨리 등뒤로 숨겼던 꽃다발. 그런 일은 없었다만 이름 모를 꽃마저 어쩌다 신발 사이에 들어갔던가 바람에 날아와 옷주머니에 들어갔던가.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4일 째. 물론 전날 밤 나는 나도 모르게 기대하게 되었다. 스스로 예감에 들떴음을 고백한다. 그러다 식물에서 동물로 바뀌는 거 아냐... 그런 생각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식겁했다. 깜짝 놀랐다. 화들짝 겁먹었다. 눈은 똥그래지고 커졌던 가운데는 급속히 사그라들었다. 대체... 저게... 왜...? 
    알고 봤더니 장난감이랄지 정밀한 모형인 줄로만 예상했는데. 그건 닭이었다. 촌닭. 그런데 산 닭이 죽었냐 하면 아니다. 식품점에서 파는 생닭. 그러니까 그게 왜? 내 말이. 일단 나는 생각이 깊어졌다. 이러다 정말 다음 날엔 살아있는 돼지가, 내가 꿈나라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 아냐? 그런데 정말로... 아니다. 그렇게 또 다음 날이 되었다. 그래도 돼지는 아니다만 이번에는 생선이었다. 정식 명칭이 있다만 그것까지 말할 수는 없다. 어쨌든 나는 노트북을 켜서 지니를 소환했다. 진짜 우리는 한동안 만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인공지능이 몇 번 업데이트 됐는지 아닌지도 몰랐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알게 됐다. 시금치, 잡초, 꽃, 생닭, 생선... 모두 내 몸에서 나왔다는 것을 말이다. 뭐? 그게 말이 되나 말이! 내가 무슨 만화영화 주인공인가? 나는 인공지능이 드디어 미쳤다고 간주했다. 걔도 잔꾀가 녹슬어서 그럴 만 했을 수도 있다. 상태가 안 좋아도 많이 안 좋은 거지. 때문에 나는 지니의 말을 믿지 않았다. 녀석이 동영상을 보여주긴 했는데 어디서 또 조작됐던가 그럴 것이다. 입력과 출력! 입력은 식사고 출력은 다 알다시피. 그런데 내가 무슨 환상머신인가? 걸어다니는 우머나이저라는 둥 음흉한 터미네이터라는 둥 그건 다 농담일 뿐이고. 그런데 어떻게 출력값이... 그러니까 내 배꼽 아니면 거기라는 말인데. 인공지능이 만약 사람이었다면 난 녀석의 멱살을 잡던가 꿀밤을 때렸을 것이다. 
    그렇게 1주일이 되었나... 아침에 일어났는데 내 발가락에서 나뭇가지가 자라있고, 잎파리도 열렸다. 이러다가 열매까지 맺히는 거 아냐? 그럼 내가 나를 따먹으라고? 뭘 따먹어 따먹긴! 난 그걸 조심스럽게 구브러트리진 않았다. 혹시 몰라 아플까 봐 말이다. 그런데 내 손이 닫자마자 그건 순식간에 움츠러들더니 점점... 점점... 작아져서 점으로 바껴버렸다. 그 점마저 눈 녹듯이 없어졌다. 뭐야 이거? 하다 하다 도플갱어는 날 가지고 노나? 어디 산책 가서 동네 똥개랑 놀 것이지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말도 안돼! 무슨 말이 되야 납득을 하든가 말든가 할 거 아닌가. 뭔 또 말 같지도 않은 요술로써 날 겁주려고. 설마... 나는 서둘러 팬티를 열어봤다. 휴~ 다행이다. 녀석도... 아니야. 혹시... 그때가 언제지... 약 25년 지났던가 그런데. 양쪽 치아를 때운 아말감. 그거 혹시... 괜한 생각이 다 들었다. 이대로 집과 사무실만 왔다 갔다 하다가는 난 어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당장 떠나기로 했다. 어디긴 어디겠나. 남쪽 바닷가, 휴양지 호텔! 자, 떠나자 낙원으로. 그렇게 중간에 별일 없이 나는 그곳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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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따뜻한 남쪽 휴양지. 희망의 나라는 여기일까? 그럼 그 정도도 온화하지 않은 휴양지가 어디 한둘인가. 말이 그렇다는 얘긴데. 그렇지만 희망의 나라라니까 말꼬리 잡고 늘어지다가는 할 일은 커녕 암것도 못한다. 그럴 땐 인터넷에서 그림 몇 장 보는 게 딱이다. 공 물어오는 개 사진들 말고, 가벼운 원반 맞는 개들 표정. 또 압권은 라이벌 팀으로 이적한 스트라이커가 공격할 동안, 골대 뒷편에서 야유를 퍼붓는 팬들 표정. 하지만 것도 한두 번이다. 그렇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끝냈다는 말이 아니라. 싫증이 빨라 속 편하다는 얘기도 절대 아니다만. 어떻게 어떻게 나는 마감일 전에 연재 분량을 완성했다. 그래서 딱 블로그를 업데이트하려고 했는데 글쎄... 내 블로그가 해킹당했네? 이 자식들이... 날 뭘로 알고! 어? 너네들 내가 누군지 알아, 어? 나야 나, 어? 나가 누구겠나. 허접한 허당 자기 목소리 녹음한 거 들으면 거북한 인물. 대단허지. 이러니까 거울도 부담스러워서 잘 안 봐. 이상하게 기분 따라 막 왜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도 아닌데. 그때 그때 시시각각 표정은 달라보이는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뭐 해킹? 나는 입력했다. 걔네들도 일말의 힌트는 허용하지 않을지언정 어딘가 빈틈이 있다는 걸 내게 감출 수는 없거든. 그래서 나는 화면 구석지 어딘가에서 링크를 찾아내서 비밀번호 입력 화면으로 넘어갔다. 
   「난패스워드」
    블로그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녀석들도 내가 갑부도 아닌데 괜히 헛고생한 거다. 아니면 번짓수를 잘못 알았든가. 그때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핸드폰 알림벨이 울렸다. 딩동~!
   「오빠. 어디야?」
    얘는... 설마 얘가 날 짝사랑했었나? 아니 왜 갑자기...! 그렇게 답장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찰나, 나는 다음 문장을 읽게 되었다. 
   「오빠. 우리들 모였어. 그런데 여기가 어딘 줄 알아?」
    나는 이럴 때 여자들은 재빠른 답변을 좋아한다랄지, 아니야 살살 말려들어가는 것처럼 어리숙하게 최면에 걸려드는 미남 배역을 연기하는 걸 선호한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도 아니면 그냥 멋 모른 척, 흡사 여자들이 못 이긴 척 구애에 넘어가는 것처럼 나도 어벙한 척 먹임직스러운 미끼를 덥썩 무는 연기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혼자서 애 태우던 그때. 또 다음 문장을 어느새 읽고 있었다.
   「오빠가 우리들 모인 모습을 상상한다는 거 다 알아. 게다가 우리도 오빠가 그처럼 해킹을 금새 풀어버릴 줄 미처 예상 못했거든. 심지어 용케 대답을 이처럼 잘 참으리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어. 그러니까 나 혼자 내기에 이긴 거지. 아무튼 우리가 몇 명 모였는 줄 알아?」
    나는 몇 명 모였는데 라면서 마치 내가 앵무새나 된다는 듯이 대답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들은 내가 말대답하는 걸 설마 싫어하는 걸까? 알 게 뭐야!
   「여기 1층 커피숍이야. 나와.」
    지들이 뭔데 오라 가라야! 또 1층 커피숍이라면 거기가 리즈 칼튼 호텔 몬트리올 지점인지, 아니면 뉘른베르크 지점 콘래드 호텔 1층 커피숍인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얘네들 그러고 보니 못 보던 새에 많이 뻔뻔해졌는데? 예전에는 꽤 부드럽고, 놀랍도록 친절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여성잡지 1은 재미없다, TV 틀면 짜증난다, 고로 다짜고짜 여성잡지 2로 일찍 넘어가자? 그 희박한 논리에 나까지 끌어들이시겠다? 이것들 좀 보소...! 바로 그 때.
   「뭐해 오빠? 나오라니까. 어딘지 꼭 말로 해줘야겠어? 우리들끼리 한참 뭉쳐다닐 때. 몸짓 발짓 손만 까딱해도 알아먹으셨던 분께서. 이제 와서 나 몰라라? 오빠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뭐 정작 날 떠난 게 누군데. ~라고 생각하는 건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왜냐하면 그랬다간 된통 혼나야 하니까. 물 꾸물대고 있어? 얼른 나와. 1층 커피숍이라고 했어, 안했어?」
    나는 나도 모르게 호텔 1층 커피숍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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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에는 정말로 그녀들이 있었다. 뭐야... 그럼 저 가운데 결혼해서 학부영도 있을 테고. 또 이혼녀도 있을까? 그럼 불륜녀는... 있어서는 안되겠지. 아닐 거야. 혹시 쟤네들 아직도 날 짝사랑하는 거야? 에잇 재미없잖아. 그럼 진작에 말을 하던가. 응? 일단 "지수, 수영, 예진" 그렇게 3인방이 친했고. 또 세은과 하영이가 단짝. 또 김천원은 모두랑 친했고... 심지어 진짜로 날 짝사랑하던 지원이까지 여기에...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저렇게 여자 7명이라니... 8명인가? 막 계속 늘어나? 구도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잖아. 
   「오빠. 오랫만이다. 우리 중에 누가 제일 보고 싶었어?」
   「정말 궁금하기나 했을까? 저 능청. 익숙하다 익숙해.」
   「뭐 해, 왔으면 앉어. 그냥 가게? 서운하다. 갑자기 피곤해지네.」
   「얘들아 우리가 한마디씩만 해도 그걸 다 받아줄려면 몇 마디인데. 우리가 두세 마디씩만 해도... 자중하는 게 좋겠다. 그치? 또 오빠가 우리를 모두 데리고 살 수도 없는 거 아니겠니? 」
   「그럼 뭐 늬가 오빠의 1번이란 말이니? 착각하지 마 얘. 넌 빽넘버 부여받지도 못했으니까.」
   「뭣이 어째? 너 말 다 했어?」
   「얘들아 다투지 마. 너네들 일부러 즉흥연기한다는 거 내 다 알아. 내가 그 정도도 모를 줄 알았니? 몰랐으면 작전을 변경하는 게 좋을 거야. 왜? 묻지 마.」
   「와, 오빠... 낯설다. 오빠 원래 이렇지 않았는데. 얘들아 저 오빠 말 잘 못하지 않았니?」
   「그렇지. 듣기만 잘했지. 아니면 듣다 듣다 정신이 반쯤 나가서 뭘 듣고 있는지도 몰랐겠지. 별명이 괜히... 흐흠.」
    그렇게 나는 에스프레소 더블. 이어서 카페라테. 또 이어서 카푸치노까지 마시고 나서야 알게 됐다. 해킹은 그녀들 짓이라는 걸. 물론 날 일부러 극성 팬클럽처럼 쫓아다니고 계획하고 막 그래서 벌인 일이 아니라. 저 가운데 누가 복권이 당첨됐던가,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거나, 엔젤 투자가 대박났거나. 누군가 하나 돈자랑 하기 지겨워진 친구도 있을 테고. 쟤네 우정은 영원할 것이며. 일단 애들이 못되지도 않고. 또 어떻게 적당히 착한 해커집단과 친분이 닫았을 것이며. 용돈 주는 셈 치고 아는 동생한테 어떻게 어떻게. 또 자기들끼리 나보다 먼저 휴양지에 여행와서 먼발치서 내가 맞나 내기를 했는데. 어쩜 그럴 수가...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그게 다였다. 
   「그런데 있잖아. 얘 애 들어봐 들어봐. 있잖아, 저 오빠 아직도 이 꽃 저 열매 다 따먹고 다닌다니?」
   「따먹... 뭐? 너 어쩌면 그런 저급한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니? 다 뻥이야. 쟤 허당이래니까.」
   「어느 동네에서 뭇여성들 다 따먹고 다닌 남자가 저 오빠라고?」
   「누가 그래? 다 뻥이야! 넌 또 속냐? 다 뻥이라니까 글쎄.」
   「그래. 늬가 뭘 잘 모르나본대 여자한테 말도 못 걸어. 어버버버 응애응애. 물론 듣기만 잘해. 것도 일부러 잘하는 게 아니라 그냥 멍청하게 듣는 척만 하는 거야. 언제 여자를 꼬셔봤어야 여심을 알든 말든 할 거 아니니.」
    아무리 친해도 어떻게 날 앞에 두고서...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것도 오랫 만에 만나서... 나는 너무너무 당황스러웠다. 
   「오빠. 바쁘지 않아? 이제 가도 돼.」
   「넌 애가 정이 없어 정이. 매정해도 아니 어떻게, 뭐해 안 가고.」
   「나도 바빠. 누군 뭐 약속 없는 줄 아니? 나 한가한 남자 아니다. 늬들 알아둬. 어?」
    그렇게 헤어진 다음 나는 내 방으로 올라가서 장비를 챙겼다. 없는 장비는 근처에서 샀다. 원터치 텐트. 촌스러운 대형 해수욕장용 우산. 선그라스. 버블건... 또 혹시 모르니까 꽃다발. 오리발은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뭐 오리발? 아무튼 챙길 거 다 챙겨서 호텔에서 보이는 해수욕장으로 갔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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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람들과 조금 거리를 둬서 자리를 잡았고 일광욕을 시작했다. 적당한 음악도 조용하게 틀었다. 자, 이제 곧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면 좋은데. 그래야 하는데. 분위기가 뭐 이래? 신나는 줄거리는 나와 친하지 않았다. 결코 싫지 않은 발단은 커녕 기막힌 우연은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그런 일이 생길 리 있나. 그래서 나는 약간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얇은 패션을 고집했다. 늬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라는 오기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감기에 걸리기 전에 아르테미스와 비너스 둘 중 하나가 나를 구해주겠지 라는 기대가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뭘 근거로 말도 안되는 자신감? 어차피 말 같지도 않을 거 근거 없이 나는 낭만을 믿었던 것이다. 왜? 나는 딴 때는 몰라도 당장은 기분파였거든. 우리는 일할 때나 고전파지 평소에는 플레이보이인 걸까?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그렇고 그런 제비가 아니다. 어떻게 언제나 한량일 수 있겠나. 할 일 없이 아무 데나 가서 껄떡거리라고? 뭐 껄~떡? 거 참 말이 너무 심하잖아. 그러다 뙤약볕 밑에서 노트북 켜고 뭘 보는 거도 왠지 한심해보이고. 촌스러운 우산 밑에서 책읽기도 많이 처량하며. 어딘가 이런 내가 너무 어색했으므로. 난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가서 7명...8명인가..9명인가 아는 동생들한테 어떻게 묻어가든가... 걔네들 일정에 엎혀가든가... 뭐 어떻게 될 거라는 셈법이 든든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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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숙소로 돌아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첫인상이 고혹적인 숙녀를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의 만남은 이미 정해져있었던 것일까? 모를 일이다. 그러든 어쩌든 그녀는 너무 예뻤다. 저 귀여움 어디서 결코 흔치 않은데. 쟨 또 언제 교태를 연습했던 거지? 요염한 년 같으니라고.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말이 잘못 나왔다. 어쨌든 내숭은 고급스러운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수줍음으로 보건대. 앙탈은 이건 뭐 거의 타고난 셈. 너 잘 걸렸다...가 아니라. 우리는 잘 만났다. 아, 어떻게 만났는지를 말하지 않았구나. 내가 원래 멜로드라마 잘 보지 않는데. 그래서 영화도 몇몇 장르라면 닭살 돋기 때문에 진득히 보는 건 너무도 곤혹스러운데. 어쩌다 내가 나도 모르게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일까? 그걸 내가 알겠나 그녀가 알겠나. 그럼 이제 나는 슬슬 진한 사랑을 예감해야 하는 걸까? 또 또 앞서간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그녀가 눈치챈 걸까 아니면 그녀도 나와 똑같은 걸까. 표정으로 본건대... 아마도 날 좋아하는 것만 같다. 착각이래도 괜찮다. 또 그녀가 날 좋아하지 말란 법 있나? 없다. 또 일단 걔가 날 짝사랑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오다가다 만난 사이와 또 다른 게 바로 운명일 것이고. 그리고 아, 아직도 나는 그녀와 어떻게 만났는지 말하지 않았구나. 말하면 된다. 일부러 뜸들이려는 게 아니라 나는 흥분감에 도취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너무 들떴나. 진정하자. 그런데 설레는 걸 어쩌라고. 그러게 말이다. 그나저나 다희랑도 연애해야 하고... 수미도 날 따라다니고... 선정이도 자길 데리고 살아달래는데 이걸 어쩌지? 아무튼 걔네는 걔네들이고. 지금 우리의 만남은 숙명이라는 거만 알면 된다. 아, 근데 아직도 말하지 않았구나. 요점만 말하자면 일단 문단을 떼서 가는 걸로.





    4

    나의 그녀는-이라고나 할까? 여기서 그녀는 누구인가! 너무 일찍 그녀에 대해 모든 걸 말해서는 안된다. 그 고운 이름을 아껴서 불러보고 싶다고나 할까? 으으... 오그란든다. 다시 펴면 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녀는 나처럼 이거저거 차려놓고서 일광욕 중이었는데, 혼자서! 어쩌다 근처를 지나가는 커플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서 어쩌고저쩌고... 나는 그냥 지켜만 봤는데. 살짝 오해가 발생할 뻔 말 뻔하다가 어영부영 글쎄 싹 해결된 다음 그녀가 하는 말이,
   「오빠. 고마워요. 오빠가 절 구했네요.」
   「예? 아니... 전...」
   「오빠라고 불러도 돼죠? 저도 이런 만남을 기다렸던 건 아니에요. 누가 이렇게 이상한 첫만남이 시작될 줄 예상이나 했겠어요?」
   「혹시... 누가 보냈어요?」
   「네? 보내긴 누가 보내요! 오빠도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요? 아, 저는 조신한 여자에요. 저 막 그런, 그런 여자 아니라구요. 아시겠어요?」
   「」
   「모르시겠죠. 그래서 제가 제 말이 옳다, 맞다는 걸 증명해드릴 기회를 드릴께요. 고마운 줄 아세요. 아무 남자나 절 만나는 행운에 당첨되는 건 아니니까요.」
   「」
   「뭐해요, 절 에스코트 하셔야죠. 설마 여자랑 처음 대화해보는 건 아니겠죠?」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 끝만 살며시, 그렇게 무슨 어디서 본 것처럼 정말로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제 어떡하지? 커피를 마시자고 할까? 아니야. 아까 에스프레소, 카페라테, 카푸치노... 아직도 울렁울렁 벌렁벌렁...! 그럼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가 우리는 해수욕장 끝까지 갔다. 그런데 잘못 왔다. 반대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럼 혹시... 얘가 일부러? 
   「오빠. 오늘은 이만 헤어져요. 우리 너무 갑자기 친해진 거 같지 않아요? 아무튼 절 너무 기다리게 만드시면 안되요.」
   「진짜로, 누가 보냈어요?」
   「네? 그게 무슨...」
   「아니에요.」
   「전화해 오빠. 그럼... 그럼... 음...」
   「전화요? 번호 모르는데요.」
   「모르긴요. 전 알아요. 또 이미 오빠 핸드폰에 제 번호도 입력되어 있을 걸요.」
   「네?」
   「저 모르겠어요?」
   「누구...」
   「설마 제 번호 지운 건... 아니겠죠?」
   「아니 그게...」
   「핸드폰 이리 줘봐요. 어서요.」
    그렇게 그녀는 뭐랄까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 번호를 찍더니 전화를 걸어서, 자기 핸드폰을 열어보고 저장시켰다. 그럼 얘는 선수고 나는 아마추어? 식상한 농담 더럽게 촌스럽네. 그렇게 우리는 일단 너무 뜨겁게 진한 사랑에 빠져들지 말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한 셈이었다. 저기 멀어져 가는 그녀... 그런데 저쪽으로 가면... 길이 있나? 쟤도 누구처럼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취미가 그거 밖에 없나. 어쨌든 걔 인생 내가 대신 살아줄 수도 없는 거 아니겠어. 뭐 틀린 말도 아니네. 허허허허허. 그렇게 나는 그녀와 작별한 다음 숙소로 돌아갈까 하다가 마음이 바꼈다. 뭔가 영감이 번뜩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원턴치 텐트를 편 다음 적당히 자세를 잡고서 글을 썼다. 
   <추잡한 상상은 재미없다. 아깝지 않은 소비, 후회없는 시간 낭비. 전자와 후자도 관심없다. 방탕도 짜증일 뿐. 지고한 이상이 더럽혀졌나 아닌가 묻지 않겠다. 아는 동생들도 없으니 편하다. 허나 사랑이 필요없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든 어쩌든 결과적으로 나는 가난하다. 그렇지만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 저 세상에 갈 때 역시나 빈손. 또 어차피 짜증날테니 자기 합리화를 왜 귀여워해야 하나. 그나저나 도플갱어는 나와 밀통하기를 정말 좋아하는 건가? 허나 것도 잠잠하다. 사랑의 나비를 잡을 뻔 말 뻔, 이 아니라 나방조차 보일락 말락... 이젠 파리새끼 한마리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도 그냥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밀려 황금만능주의자로 살까? 아니다. 왜냐하면 달콤한 꾀임에 빠지면 안되니까. 첫 단추 잘못 껴본 적이 한두 번이간디? 그런데 어떻게 또 첫 끗발이 개 끗 발을! 고로 그거 말고 다른 복안을 선호해야 하긴 한데. 최선을 다해 계획만 짜다가 실행없이 작전 수립만으로 어떻게 행복을 정복하나. 참 나... 이러다 뭘 좀 아는 남자로부터 점점 멀어져만 가는 거 아닌가 몰라! 그래 봤자 밑져야 본전? 뭐가, 뭐가 밑져야 본전.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칼럼 집필. 근데 가난해. 그 정도면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 그냥 무능. 그러게 난 왜 하필 넉살을 연마하고 능청만 갈고 닦을까! 그걸 지금 누구한테 묻나?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응석이군 그래. 그야말로 비낭만파요 기분파들 들러리구만. 큐피트가 아니라 그냥 물. 사람들은 에스프레소와 콜라와 칵테일을 좋아하지 고작 맹물을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하여간에 잡념은 끈질기도록 날 성가시게 한다. 어쩌면 좋을까? 뭘 어째. 저속히 말해 이런 때는 돈 쓰는 재미만한 게 없는데. 문제는 품위유지비가 바닥이라 그거지. 그렇긴 하나 자기 나 왜 사랑해? ~라면서 꼬치꼬치 캐묻는 잔소리 듣지 않아 다행스럽긴 하다. 최소한 불행하진 않잖아? 적어도 심심하기는 하네. 아아 재미있다. 그러든 어쩌든 이 정도면 공상 할 만큼 했으니까. 자, 이제 신나는 모험을 떠나볼까? 기대되는 일정은 없다. 예감을 춤추게 만드는 바쁨 있을 턱이 있나. 그래도 열정은 식지 않음. 그러므로 나는 영화배우로 전업하기로 작정했는데. 이상하게 영화계가 활기를 띠지 않아 어떤 소속사도 내게 러브콜을 보내지 않더라. 그렇다고 물불 가리지 않고서 연극판에라도 뛰어들까? 그럼 기다렸다는 듯이 누가 반기겠나. 재미없다. 촌스럽게 희망을 논할 수도 없다. 어떻게 솔직히 대망을 고백할 수 있나. 안된다. 못해. 왜 해? 싫어. 명색이 스포츠 칼럼니스트인데 아마추어처럼 굴 수야 있나.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 몸매의 신봉자가 아니다. 뭐? 신박한 논리를 난 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답답하다. 그래도 탕진할 재산이 애초에 없어서 다행이긴 하다. 그러니 어떻게 탐욕의 화신일 될 수 있을까. 첫인상이 유별나게 고혹적인 숙녀를 언젠가 봤는데, 그런 한심한 얘기 그만 좀 하자. 그나저나 재미없음의 구원 투수는 과연 있을까? 꽃 피자 임 오신다. 그런데 반가운 손님은 알고 봤더니... 아직도 사랑의 선발투수를 유행가 가사처럼 착각하는 사람도 있나? 식탐보다 절제. 그런 데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다. 다 시간낭비다. 죄다 거품이니까. 개꿈도 소용없다. 
    그래서 나는......>





    5

    사랑의 비너스. 우리는 뭐랄까 진한 사랑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데이트 할 때마다 7명 이상 아는 동생들이 걸고넘어졌다. 어떻게 귀신처럼 알고서 딱 그때마다 나타나서. 판 다 깨버렸다. 그래서 결국 비너스는 떠났다. 정식으로 확답도 남겼다. 우리는 인연이 아닌 것 같다나 뭐래나. 연락하지 말라며 그래도 뺨은 때리지 않더라. 나도 뺨 맞을 짓 하지도 않았다. 뭐 손해본 건 없다. 미래의 이득을 실현시킬 계산법으로 따지면 손해이긴 하나. 그런 이익 별로 관심없다. 그렇게 어떻게 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이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하여 나는 근처 미술관에 들르기로 했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미술관에 도착해서 구경하고 커피 마시고 산책하고. 할 거 다 했다. 왠지 입이 심심해서 빵이나 먹을까...하여 나무 밑 그늘 탁자에 앉았다. 과일쥬스와 빵을 주문하는 곳으로 가려는데 누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맞...지? 아니, 맞...죠? 그렇죠? 야, 나야. 너.... 너가 누구더라?」
   「누구...」
   「나야 나. 폴. 기억 안나? 우리가 친해질 뻔 말 뻔 다시 어떻게 가까와질 뻔 그러다 말았잖아.」
   「아아 너구나. 하긴 그때 우린 호감은 있었는데 어울려다니는 친구들끼리 좀 서먹서먹 아니. 아예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했잖아.」
   「그러게. 나도 그처럼 예전 동창을 만난 적이 있는데. 학교 다닐 땐 말 한 번 섞어본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긴 하더라고. 물론 서로 모른 척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야. 아무튼 반갑다.」
   「그래 나도.」
   「넌 썩 반갑지 않은 얼굴인데.」
   「아니야. 내가 세계 도박사들이 알아주는 포커페이스라서 그럴 거야. 그런데...」
   「아, 여기? 우리 비서실장이야. 인사해. 캐서린, 이쪽은 내 친구. 친구, 이쪽은 캐서린.」
   「어머머. 이름부터 공개하지 않는 걸 보니 감추는 게 많으시나 봐요. 뭐 차차 알게 되겠죠. 그렇죠?」
   「너... 언제... 아니 근데 너 여기 사니?」
   「아니. 집은 다른 도시에 있고. 여기는 직장. 저기 보이는 호텔에서 임기 1년짜리 사장 맡고 있어. 곧 돌아갈 때가 됐지.」
   「너가?」
   「왜, 내가 공부랑 인연이 없었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거 같아서? 그게 말하자면 길다. 그러니 다음에 만나서 중요한 얘기는 다시 하는 게 좋겠어. 물론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빈말, 또 한번의 우연이 반복될 거라는 가정 하에 하는 말이야.」
   「그게... 뭔 얘긴지 잘 모르겠는데?」
   「일단 난 먼저 가봐야 해. 그러니 캐서린과 함께 커피 마시는 거 어때?」
    그러면서 녀석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급히 도망가버렸다. 말 돌리기의 귀재가 쟤야... 아리송했다. 그럼 나와 캐서린은... 무엇을 해야 하지? 당장 뽀뽀를 할 수는 없으니 어디 가자고 할까. 그때!
   「어머, 우리 사장님이랑 학교 같이 다니셨어요? 저분 예전에 어땠어요?」
   「어떻긴 뭘 어때요. 흉했어요. 쟤 내 꼬봉이었거든요. 쟤는 내 스피커였고 나의 인공지능이나 다름없었죠. 그럼요. 그런데 아, 캐서린. 캐서린? 캐서린 맞죠? 맞죠. 초면에 실례지만 혹시 캐서린은 쟤 좋아하지는.. 않겠죠. 관상을 보아하니 둘이 잘 안 어울려요. 그냥 직업적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그럼 어떤 남자 좋아해요? 제가 남자 소개시켜... 아 우리 오늘 처음 만났구나. 헉! 우리래. 숙녀분 의중도 모른 체 허허허. 주책이네요. 내숭은 아닐 거 아녜요. 허허허허허.」
   「재밌는 분이시네. 호호호.」
    호텔 사장이 옛친구라니. 근처 미술관에서 걔만 만난 게 아니라 뜬금없이 보너스로 비서실장까지 소개받고. 
    그렇게 더 부담스러운 대화를 이어가기 전에 난 자리를 뜰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날 잡았다. 초면인데 다짜고짜 바지끄댕이를 잡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캐서린이 내 머리끄댕이를 잡을 리도 없지 않나. 하여 그녀는 내 옷깃을 잡는 척하더니 글쎄 자기 손등의 온도를 내게 슬쩍 건내는 거 있지! 꽤나 은근한데? 이건 대체 나랑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건지. 뭐 어쨌든 그럭저럭 우리는 다정한 예감이 일치한다는 확신과 함께 헤어졌다. 물론 둘 다 전화번호는 물어보지 않았다. 앞서 먼저 가버린 친구가 뭐랬던가 우연이 우릴 기다릴 것이다 라는 가정, 예언, 그때 머머하자 라는 은근한 암시까지. 이 자식이... 멋진 거 지 혼자 다 해버렸어? 생긴 거도 꽃미남과는 아닌데 전형적인 다비드과에다가, 여자들이 딱 좋아하는 옷걸이. 몸짓은 또 언제 소녀들 좋아하는 가수들 쉭쉭 섬세한 그것과 닮았고. 난 상대가 안될 게 뻔하다. 하지만 아예 상대가 되지 않을지언정 딱 보니 걔는 여자 못 웃기네. 너무 점잖거든. 하여 자상함 다음이 없어. 여자를 기대하게만 만들면 뭐 하냐고. 대타는 물론 판토마임부터 즉흥연기 기타등등 사랑학 박사인 내가 낫지. 때문에 초반에만 혹할 게 뻔해. 저렴한 말로, 첫 끗발이 개 끗발! ~라는 말이 있지. 걔가 그거네. 하오나 우리는 다르지. 일단 보자마자 바로 웃거든. 만나자마자 언제 봤다고 즉각 오빠~인데?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그래도 걔가 또 뭔가 그녀들이 도저히 싫어할 수 없는 분위기라는 게 있는데. 여자 기분이 눈부신 내일을 기대할까 말까 하던 찰나 포기해버리는 묘한 향수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 뭐가 그렇게나 복잡한가. 모르겠고. 그나저나 녀석의 행보로 보건대 또 눈치가 퍽 빠지는 것도 아닐 테니,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나랑 캐서린이랑 잘해보라고 자리를 쓱 피해준 건가? 난 모르는 일이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다시 만날 걸 알고나 있다는 듯이 헤어졌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나는 호텔 내 방으로 들어갔다. 요점만 말하자면 해수욕장 그녀 "선미"가 나체로 날 기다리는 중! 
    아니... 어떻게... 드라마에서만 봤던 모습이 내게도? 그런데 진짜로 그녀는 팬티까지 싹...? 에잇~ 설마! 
    그런데 실루엣을 보아하니 아닌 것도 아닌데. 난 당연히 당황스러웠다. 그럼 싫었을까? 일단 낯설긴 하나 주인공감은 나였기 때문에 나쁘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워매 좋은그~라면서 대놓고 좋은 척할 순 없기 때문에. 아무리 그렇더라도 나도 모르지 않음. 내가 무엇을 알지? 옛말에 그랬다. 나도 사또 너도 사또 하면, 아전 할 놈 없다고 말이다. 난 일단 주인공감이 아니거든. 먼저 연극무대에서 탄탄한 연기력부터 쌓아야 하는데. 밑도 끝도 없이 누구 대타로 깜짝 발탁에, 데뷔 하자마자 대성공에... 그건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나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다.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얼굴 팔리는 거 싫어라 한다. 그러든 어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이 장난 아니라는 거. 어떡하지? 그렇다고 선미한테 직접 물어보기도 좀 뭐한데... 너 혹시 다 벗은 거니, 정말이니, 진짜니? 라고 말이야. 그럼 일단 나도 동타를 이뤄야 할 테니... 그게 맞나? 아닌가. 어떡하지? 얘가 그러니까 나한테 반했단 말이지... 허나. 그렇다고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기, 왠지 미안한데. 뜻밖에 축제가 시작되자마자 주인공이라니. 그래도 다 된 수프에 코 빠트리면 안된다. 뭔가 의심스러우니까. 거울로 내가 나를 봐도 썩 의뭉스러운데? 하긴 선미가 자의로 떠난 거냔 말이다. 잘 되어갈 뻔 하다가 딱 옆에서 찬물을 끼얹은 건데. 분위기 확 깨버렸으니 어딘가 모르게 자기도 일일드라마에서 보던 역할에 충실하고 싶어졌을 것이다. 딱 그 상황 되니까 안 그럴 수 없을 거야. 그래서 나를 갖고싶다? 고로 내가 져드리면 우리는 예술이 되는데. 이게 또 문제가 뭐냐 하면 통속극에서 흔하게 보던 설정. 딱 진한 사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할까 하던 찰나, 갑자기 확 들이닥치는 거야. 그럼 난 덫에 걸려 꼼짝 못하는 거지. 뭐? 이래서 남자들끼리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논하는 거다. 남자1이 3세대를 내다볼 개꿈을 공상하는 동안 막 옆에서, 쟤는 3년 가겠네... 3달이면 질리겠다... 나랑 내기할래 난 3주면 쫑이겠는데. 이런 얘기 많이 하기는 대회에 나가 입상쯤은 일도 아니다. 어쨌든. 그러다 이미 다혈질 기분파가 그녀를 꼬셔버림. 농담이고. 그런데 이처럼 망설이기만 하다가는 낼모레 환갑일 것이다. 친구한테 들을 말도 뻔하다. 넌 그래서 안되는 거야,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어쩌고저쩌고. (절레절레) 그러다 (딱) 나는 직감했다. 여자의 육감 나한테 상대도 안되니까 나는 확신했다. 결정적으로 나는 그녀의 동공 움직임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제7의 직관력이 어떻게 날 돕지 않을 수 있겠나. 일단 앞서가고자 하던 감수성, 호기심, 유혹에 넘어가고 싶은 본능...그분들도 뭔가를 깨닫고 슬슬 벤치멤버로 빠졌는데. 그런데 이렇듯 중차대한 순간에 어떻게 이처럼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을까? 있다. 왜냐하면 시간이 정지됐기 때문에. 허허허. 조연들은 몰라도 우리는 익숙하거든. 흐흐흐. 
    아무튼 나는 당장 달려가서 그녀의 가면을 벗겼다. 그랬더니 정말로 그녀는 표피가 벗겨졌다. 그녀는 선미가 아니라 로보트였던 것이다. 나한테 뭐 호피 무늬 일체복 입고서 춤추고 싶다고? 다 뻥이었네. 아니. 그건 진짜였고 얘만 가짜다. 
    한편, 나는 그녀를 사진찍기 위해 핸드폰을 켰다. 동시에 도트북도 가져와서 적외선 카메라, 초음파 4D 동영상, 기타 특수 비파괴 촬영 장치들을 가동시켰다. 그럼 그동안 선미가, 아니 로보트가 날 차분히 기다렸을까? 그럴 리 있겠나. 그녀는 벽에 걸린 액자를 열고, 액자 뒤에 미리 설치된 구멍으로 들어갔다. The Yellow Curtain / 헨리 마티스. 설마 저 액자는 진품? 그런데 언제 액자를... 문을 열듯이 또 그 뒤로 비밀통로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거지? 그러든 어쩌든 영화는 시작됐는데 또 내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험극인데 갑자기 에로로 바껴서 누굴 자빠트릴 수 있나? 도망가면 안된다. 나는 그래서 선미, 아니 로보트를 잡기 위해 녀석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6

    결국 나는 비밀통로로 로봇을 따라가다 포기했다. 그래서 다시 되돌아갔다. 그렇게 딱 호텔 내 방에 도착. 
    그런데! 뭐야 여긴 내 사무실이잖아? 호텔 방에서 비밀통로를 따라가다가... 끝까지 못가고 돌아왔으니. 이러면 안되는데... 어떻게 된 거지? 그러니까 언제 저 마네킹... 제목을 잊어먹은 저 그림에 특수장치가 되어있었던 거지? 
    그리고 또 무슨 이유로 공간이동이 순식간에 가능했던 거고. 또 호텔에 있는 내 짐들과 자동차는 어떡하지? 
    바로 이럴 때를 위해서 나는 모스맨 연구소와 친분을 유지했던 건데. 속된 말로 난 걔네들한테 주기적으로 약을 쳤다. 
    혹시 모르니까 이럴 때를 위해서 뭘 엄청 먹이고, 심심하면 선물 갖다주고, 개개인 기념일도 다 챙겼다. 물론 웬만하면 거기 여자들도 다 나한테 반했다. 그렇게 잘해주는데 뻑가지 않을 수 없거든. 때문에 다 날 좋아할 수 밖에. 착각도 병이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난 서둘러 전화해서, 통화하고, 상황설명하고... 그러다 딱 소파 위 그림을 봤는데. 그림은 거짓말처럼 제 위치에 그대로 있었고. 또 막 만져보고 살펴보고... 그래도 좀 전에 무슨 문처럼 열리고 그런 장치는 일절 없었다. 또 액자를 떼서 보니 비밀통로는 개뿔. 뭐야 이거? 그러다 나는 통화 중이라는 걸 깨닫고 전화기를 들었다. 
   「형. 일단 우리 사무실로 넘어와. 와서 얘기하게. 이번에는 내가 다 꼬셔줄께. 형은 안돼. 알아?」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모스맨 연구소에 도착. 몇몇 사무실에 들러 인사하고, 얘기하고, 기타 등등. 다 마친 다음. 
    도청 금지는 물론 침입 불가능한 특수실로 들어가서. 우리는 슈퍼컴퓨터를 가동시키고, 엑셀파일을 켜서 각종 경우의 수를 기록했다. 
    답은 나왔다. 물론 쉽게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구상화 ──→ 추상화
    추상화 ─X→  구상화 
    추상화 ──→ 추상화
   「형. 호텔에 놓고 온 형 짐이 뭐 뭐 있지?」
   「노트북이랑 옷가방. 또 이것 저것. 그리고 자동차.」
   「포기해. 그래야 하니까.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야.」
   「무슨 소리야? 안돼. 여기 너와 나 밖에 없으니까 하는 말인데.」
   「그래서 하는 말인데, 뭐? 또 누구 따먹을 일 생겼어? 아니, 나도 나다. 뭐, 또? 난 쏙 빼놓고 혼자서 죄다 독식하시겠다? 이 양반 좀 보시게! 응? 이거 증말 너무한다고 생각 안 해?」
   「무슨 얘기를 하는 거니? 너 나를 그렇게 밖에 안 봤니?」
   「응.」
   「근데 왜 포기하라는 거야?」
   「어째서 포기 못하는데. 내가 사줄께.」
   「늬가 왜 사줘. 형 여자 좋아한다.」
   「그럼 뭐 난 남자 좋아하냐? 아무튼 이유는 말해줄 수 없어.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단 말이야.」
   「그럼 나도 포기할 수 없는 까닭, 당연히 말해줄 수 없어.」
   「나한테도?」
   「그나저나 넌 형한테 배울 게 아직 꽤나 많이 남아있는 걸로 아는데...!」
   「형한테 속아서 내가 얼마나 돌아왔는 줄 알아? 차라리 내 잔기술로 승부 볼 걸.」
   「형한테는 한 방이 있어. 너가 형한테 필살기를 아직 못 배웠으니까 그렇지. 너 나 모르냐?」
   「형은 바로 내가 알지. 안되겠다. 정 원한다면...!」
    그래서 마침내 나는 호텔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게 됐다. 
    요점만 말하자면 동네 미술관에 가면, 관장실에 명화가 걸려있다고 한다. 
    White Center / 마크 로스코
    물론 진품. 그걸 네 꼭지점에 지문을 동시에 대고 윙크를 하랜다. 
    특수 지문인식은 아니란다. 단, 남녀 지문 교차 등등 자세한 설명.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어떻게 어떻게 들어갔다. 마침 오늘은 쉬는 날이고, 해킹으로 보안 장비 무력화 완료. 
    또 아는 동생들 지문도 다 이럴 때를 위해서 체취해놨고, 그렇게 총 4명의 이성 지문을 교차하여 꼭지점에 부착시켰고. 
    윙크를 하자마자 정말로 액자는 딸깍~ 하면서 문처럼 열렸다. 와, 보인다. 저 구멍 끝까지 기어들어가야만 하는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물러설 곳도 없다. 또 왜 도망가나. 길은 하나 뿐인데. 나는 그렇게 저 보이지 않는 끝을 향해 기어들어갔다. 





    7

    나는 그렇게 예상했다. 다시 내 호텔 방으로 되돌아갈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랬을까? 아니다. 
    내가 도착한 장소는 다름 아니라 호텔/비서실/비서실장 캐서린 책상 밑이었다. 
    그렇게 내가 자동문처럼 열린 비밀통로에서 얼굴을 쑥 들어올리자마자 본 광경은 무엇이었을까? 
    (딱) 옳커니~ 그러나 색상은 말하지 않겠다. 설마... 아니다. 말할 수 없다. 그 비밀은 무덤까지 안고 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 그걸 발설하면 안된다. 그럼. 사람 그러는 거 아니다.
    물론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뭐라고나 할까 뭔가 약간 과장된 표정하며... 어떤 의도된 대본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습해본 반응이라고나 할까. 
    가늠컨대 그녀는 내가 그렇게 나타날 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말인데. 
   「오빠. 그런데 지금 거기서 뭘 해?」
   「나? 뭐...한 거 없어.」
   「그럼 방금 뭘 봤는데?」
   「보긴 뭘 봐. 나 그런 사람 아냐, 어?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너 벌써 있었니?」
   「근데 혹시 저 꽃다발 오빠가 보낸 거야?」
    아마도 내 친구 호텔 사장이 그녀를 흠모하는 거 같은데. 보아하니 짝사랑. 그래서 익명의 꽃다발을 보낸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보냈다고 말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보내지 않았다 라고 강건히 부인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꽃은 내 연정이 되었는데. 이래서 캐서린은 나한테 마음을 빼았겨버린 건가? 이러니까 여자들이 나한테 뻑갈 수 밖에 없지. 지들이 나한테 안 넘어오고 베겨? 농담이고. 물론 이때 그녀가 만약 이렇게 말했다면 나는 꽤 실망했을 것이다. 오빠, 지금 키스 타임인 거 같은데! 야구 경기장에서 키스 타임이란 우연히 당첨되는 묘미가 있는 것. 그런데 제발 한번만 만나주라는 둥 껴안아주라는 둥? (몸짓) 물론 다행스럽게도 캐서린은 날 심하게 체념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곧장 그녀와 키스를 했다. 이처럼 뜨거운 키스는 난생 처음이었다. 너무 황홀했으니까. 그 뿐만이 아니라 이건 (조용조용히) 내 첫키스였다. 캬, 어? 됐고. 그렇게 우리는 데이트를 하러 갔다. 물론 캐서린의 오픈카를 그녀가 운전하고서 말이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우리는 평범한 연애로 시작했다. 며칠 동안 어떻게 애정을 표현하고 무슨 줄거리가 있었는지 영화 예고편처럼... 그렇게 알고 넘어가자. 너무 많은 걸 알려드릴 순 없으니 말이다. 그러다 어느 일요일. 우리는 해수욕장 구석에 텐트와 우산을 폈다. 그녀는 연분홍색 비키니를, 나는 하늘색 수영복을 입고서 우리는 일광욕을 시작했다. 그러다 그녀는 잡지를 뒤적이다가 사진도 찍다가, 잠시 낮잠을 잤다. 나는 번뜩이는 영감이 떠올랐기 때문에 서둘러 노트북에다가 끄적거렸다. 
   <우리는 쾌활한 음탕함에 젖을 수 없다. 더러운 상상은 하지도 말자. 추접스러운 흑심 품어서는 안되니까. 귀여운 애교로 보나 육감적인 매력으로 보나, (절레절레)! 그러니까 상쾌한 꽁트, 눈부신 작품 구상, 신나는 모험 그 모두에 대한 비전에 흑막이 가려진 셈인데. 그럼 걷어내면 되잖아? 병풍맨은 통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썩 괜찮은 묘안을 물색하기를 잘했는데. 그런데 지금은 못한다는 거. 그래 팔색조가 되기 위해 정열적으로 노력해본 적도 없다. 숙녀들의 이상형 하나도 부럽지 않다. 그럼 허언증업에 종사하는 현실이 챙피하냐, 것도 아니다. 그나저나 사랑도 포기했다. 어쩌면 큰 욕심 없어서 다행일 수도 있다. 하긴 마지막 낭만파 같은 촌스러운 별명을 탐해서 뭐 하나. 한심한 연애칼럼 쓰기도 지쳤다. 사랑의 차트 하나도 관심없다. 그러든 어쩌든 어젯밤 개꿈이 퍽 괴상했는데 복권이나 한장 사볼까? 꽝 안되면 어떡하나라고. 1등은 남들한테 사양해야 할 일. 회상하자니 내게는 그런 격언이 있었구나. 꿈은 아무렇게 꾸어도 해몽만 잘 해라! 누가 들으면 개 풀 뜯어먹는 소리 그만 좀 하라 그러겠네. 틀린 말도 아니다. 도대체 언제 철들지를 모르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등번호를 바꿔달아봐야 어차피 소용없을 것이다. 하여 의무방어전 상대는 오직 고독한 가난? 챔피언 벨트 반납하기 싫어질까 봐 우리는 무대에 오르지 않는 것일 뿐. 조명발 그거 눈부시기만 하지 받아봐야 별로 좋지도 않음. 안 그래도 화장 지우면 다 똑같다. 할 말은 많은데 일단 거기까지만 알자. 내가 보기엔 이래 뵈도 왕년에, 내가 입만 뻥끗 하면 부끄러워 할 여자들 천지다. 억쑤로 많다. (몸짓) 또 내가 입만 열면 그냥 뻥뻥 터트리니까 웃다 웃다 안면 근육 씰룩거린다며 말렸던 여자들만 (몸짓)! 굳이 이런 말까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서 그녀들이 날 못 잊는 건가? 다들 안 믿겠지만 제발 한번만 만나달라던 그녀는 물론 자기를 제발 데리고 살아달라는 둥 날 귀찮게 하며 매달리는 여자들 때문에, 바로 그래서 내가 은둔형 허당으로 사는 거다. 그게 다 걔네들 피하느라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가서 개뼉따귀나 똥개한테 주고 오지 그래? 근데 누가 자꾸 내 말을 끊지...! 대체 관상이 어떤 분이시길래 오지도 않은 미래를 짜증나게 하냐고. 설마 이마에 찐따라고 써있는 건 아니겠지? 진위야 어떻든 마음에 드는 애칭은 누구한테 빼았긴 게 아니라 원래 내 것이 아니었을 거라는 점. 고로 굳이 사서 절망할 필요없다. 그래도 일기를 쓰더라도 고상하게 좀 쓰자. 이게 뭔가? 미친년 나물 캐듯도 아니고 똥 마려운 촌년 미남한테 첫눈에 반한 듯도 아니고. 무성의하게 이게 뭔가! 곧 정체가 탄로나도 고전음악? 우승은 못하고 풍악만 갖추네. 그래도 옷이 날개라는데 최소한 "오빠는 옷도 못 입냐"라는 말 만큼은 사양해야 마땅하다. 안 그런가? 그런데 거울을 보아하니... 옷걸이 좋다는 허세도 힘빠진다. 얼굴이 갔으니까. 왠지 모르게, 나도 모르게, 어딘가 모르도록 더럽히고 싶은 새하얀 도화지 같은 얼굴! ~이 아니라 이미 닳고 닳은 면상? 뭐가 어쩌고 어째! 뭐 이건 관상이, 뭐랄까 나르는 닭 보고 따라 가는 개라고나 할까?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 격이구만. (절레절레) 아니 내가 어쩌다가...! 우리가 뭐 꽁지내린 똥개도 아니고 야속한 달력 탓해서 뭐 하나. 그래서 나는, 떡도 못 얻어먹는 제사에 물팍이 벗어지게 절만 하고 있나? 잘한다 잘해. 이래서 놀고 있네~ 라는 핀잔을 도저히 피할 수 없는구만. 그래서 나는 이 세상 아름다움으로 느낄 수 없을 만큼 고혹적인 숙녀와의 연애, 깔끔하게 단념했다. 따라서 나는 마침내 자유를 획득했다. 할 게 너무나 많다. 이 쉬운 걸 여태 왜 몰랐지? 그러게 말이다. 알든 모르든 더 이상 가택감금이 아니라는 게 중요한 거다. 자, 이제 신나는 모험 여행을 떠나볼까? 여건되면 로드무비 찍고 탄력받으면 글도 쓰는 거지.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노트북을 덮고 나서 알게 됐다. 그녀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어디 갔지? 왜 말도 없이! 설마 날 못 믿나? 아닌데. 정말 아닌데. 이미 넘어왔는데. 넘어왔어도... 쉿! 





    8

    며칠이 지났다. 캐서린과 나는 설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까? 그런데 왜! 
    아니, 어? 무엇 때문에 그녀는 말도 없이 날 떠난 거냐고. 대체 무슨 사연을 간직한 건지...
    그럴 거면 왜 내게 잘해줬지? 알 수 없었다. 물어보고 싶어도 만나야 묻든 말든 그럴 건데...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괜히 좋다 말았던 일들이야 뭐 회상하면 어디 한두 번이겠나. 
    그래서 나는 손절이 빨라 좋기도 할 텐데... 허나 아름다운 사랑과 풋사랑은 다르다는 거. 
    한편, 나는 근처 어느 카페에서 캐서린과 선미 그 둘이 다정스레 얘기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어쭈.... 쟤들 봐라! 어떻게 1 대 1이라면... 친구끼리 하는 말로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든 말든 족치기라도 할 텐데. 어떻게 뭔가 잘 되어갈 듯 말 듯 하다 왜 사라졌는지.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넌 사랑이 장난이니? ~라면서 따지기라도 할 텐데. 2명? 선미랑 캐서린이랑 둘 다? 나는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그녀들 앞에 나설 수가 없었다. 뭐야.. 그럼 이걸로 봐서는 난 그 유명한 1 대 1에(만) 최적화된 남자? (만)? 여자는 남자한테 잘보이기 위해서(만) 화장을 한다. 뭐?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그나저나 선미랑도 거의 거의, 거의 쫌만 조금만 더 거의 어떻게 내가 적극적일 필요도 없이 지 혼자 막 자빠지고.. 거의 거의 조금만 더... 그랬는데. 캐서린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근데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다 잡을 수도 없고. 근데 불여우들은 도망가질 않고 얼쩡얼쩡! 저것들을 어떻게 야금야금 요리한다...! 난 잔꾀가 바빠졌다. 생각이 많아졌다. 허접한 차림새로 심심할 때 떠올리던 잡생각과 차원이 달랐다. 그러다 그녀들이 카페를 나가려고 했다. 나는 정신을 차렸다. 빠짝 긴장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들을 미행할 계획이었기 때문. 그렇게 나는 그녀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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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이 함께 지낼 별장을 마련한 건가... 나는 캐서린과 선미가 다정스레 어느 별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다음 나는 한숨을 쉬고서 차분히 주문을 외웠다. 어떤 주문인가는 말할 수 없는 점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그렇게 내가 꺼내든 카드는 바로, 비파괴 투시경. 나는 요원들이 멜빵에 차고 다니는 무엇처럼, 그 물건을 옆구리 뒷쪽에 차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아니 얘가 이렇게 성능이 훌륭하다니. 이럴 거면 맨얼굴 감별기 당장 발명하겠네. 화장발 싹 다 꿰뚫어볼 텐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결론은 이랬다. 둘 다 각자 옷을 벗었다. 그렇다고 내가 벗겨주고 싶다 그런 마음은 일절 없었다. 쟤들은 인간이고 나는 외계인이나 된다는 듯이 나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지켜본 결과 나는 알게 됐다. 바로, 선미는 암회색빛과 연한 암청색이 도는 콘크리트 색상이었고(나체가). 캐서린은 약간 어두운 뭔가 괴상한 대리석 빛깔이었다는 것을. 그러니까 옷을 다 벗었는데 눈부신 나신이 그랬다는 것이다. 물론 클린싱폼..폼클린싱...비누...화장발도 다 지워지고 나니. 얼굴도 앞서 말한 나체 색상과 똑같았다. (참고로 말하는데 지구상 그 어떤 인종들과 전혀 다른 뭐랄까 빛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신비한 색상이라고나 할까? 물론 어두운 색상 이면에 드문드문 샛노란색이랄지 연두빛 같은 원색이 아주 잠시 반짝였다) 저거 뭐야? 완전 괴물들이잖아? 쟤들을 보고서 누군가 욕망을 느낀다니! 말도 안돼. 설마 내 근처에 있던 점잖던 그 냥반들도 쟤들을 흘낏흘낏 보면서 막 이상한 상상을? 나는 아니다. 탐욕과 나는 하등 친하지 않으니까. 어쨌든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결국 선미랑 캐서린은 둘이 막 껴안고 키스하고 비비더니 마침내 한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방금 말한 건 관용적 표현이랄지 저급한 묘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직접화법. 즉 정말로 그 둘은 합체가 되어버렸다., 미술 수업 시간에 배웠나... 콘크리트색과 대리석색을 합하면... 물론 쟤들은 그와 달랐다. 결과는 곧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청보라색이었으니까. 
    잠시 후. 선미는... 아니. 캐서린은... 아니. 저 괴물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지? 저년은 어딘가로 성큼성큼 이동하더니 갖혀 있는 야생동물을 빼내더니 먹었다. 덥썩! 어떻게 입 안에서 가죽은 잘도 분리해서 곧 뱉어냈다. 아니... 실험용 생쥐, 족제비, 여우를 생으로 먹어? 저... 그럼 생식? 아니 육식주의자? 뭐지? 뭐야 저거! 나는 그것도 모른 체... 진한 사랑을 내 맘대로 상상했다니. 등에 식은땀이 쭉 흘렀다. 아주 그냥 흥건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식은땀은 물론 더운 땀으로도 질펀했다. 지금 비오나? 아닌데. 그럼 이게 다 땀이야? 그러게 말이다. 여기서 또 뭔가 새로운 비밀을 알게 된다면 나는 그걸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럴 꺼면 혼자 오는 게 아닌데. 혹시... 저 괴물이라면 내가 이렇게 지켜본다는 걸... 아마 모를 리도 없을 거 아닌가. 그럼 일부러 내게 보여줄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연극배우나 된다는 듯이. 누굴 아마추어로 아시나...! 이대로 또 다른 무언가를 봤을 때... 정말로 기절이라도 하면 어쩌지? 그럼 저 괴물이 나와서 이미 정해진 수순에 따라 나를... 나는 살짝 오줌을 지리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갑자기 똥도 마렵잖아? 이런 젠장! 그래서 나는 곧장 도망가지 않을 수 없었다. 





    9

    며칠이 지났다. 오늘 나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캐서린 만났다. 또 또 바텐더한테 껄떡거린다... 저게 뭐냐 추접스럽게...라는 핀잔을 난 정말 듣기 싫었기 때문일까? 왠지 그날따라 나는 야경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창가에 앉아 혼자 고독을 핑계삼아 멋진 척 폼을 잡고서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 누가 날 아는 체했다. 
   「오빠 여기서 뭐해?」
   「보면 모르니?」 ~라는 답변은 쏙 들어가버렸다.
    왜냐하면 그녀는 캐서린이었기 때문에. 엇그제 나는 그녀의 나체를 봤는데? 걔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오줌...지렸다. 그래. 솔직히 말하고 자시고 사실인데 어쩌라고. 안 그럴 수 있나? 얘가 또 누굴 잡아먹으려고... 정말로 누굴 잡아먹고 화장을 풀세트로 했지? 이 정도면 작정하고 남자 꼬시고 싶다는 건데...!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고. 
   「오빠 원래 말 없는 남자야? 내가 반갑지 않나...」
   「반..가워.」
   「그래? 그럼 나 옷사줘.」
   「옷... 사줄께.」
   「농담이야. 옷은 내가 사줄께.」
   「어, 사줘.」
   「뭐? 정말 사줄까? 말만 해. 뭐든 골라. 뭐 디올 옴므? 아니면 제냐 원단 맞춤복? 나 보너스 받았어. 무려 2만 퍼센트. 특별수당도 있어. 보여줄까?」
    얘가 왜 갑자기 촌년처럼 굴지? 수상한데... 속으로 찔리니까 일부러 멜로드라마 흉내내는 거구만. 안 봐도 뻔하다. 옛날 삼류 대학교 후배, 학과에 딱 3명 있는 여자애들. 그 가운데 한 명이 말하기를. "선배, 학교 좀 나와요!" 기차에서 단짝이랑 나랑 심각한 장면을 봤으니까 아마도 걔 시야각에 잡혔으니...그렇겠지. 근데 그 3인방 가운데 여자애 1명과 같은 학과 (남자)후배가 사겼는데. 그 후배는... 방학 끝나고 왜 나한테 갑자기 90도 인사를 했지? 진짜 폴더 인사는 아니다만 80도 정도... (머머형 인사드릴께요)... 당시도 황당 지금도 이상! 친분이 형성된 거도 아니고... 형 인사드릴께요 꾸벅하며 방학 잘 보내셨어요 라고 했던가... 무슨 내가 학과장도 아니고... 날 할아버지로 알았나?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 아직도 미스테리. 걔도 그때 제정신이 아니라 로보트처럼 그랬던 건가. 또 여자 후배 3인방에서 나머지 1명은 후배들의 1년 선배인 '내 동기'와 사겼는데. 언젠가 그 캠퍼스커플이 친구&내가 사는 자치방에 몰래 찾아옴. 그게 우연찮게 나나 친구 뒤를 밟았다는 말인데... 그렇게 집도 알아냈고 열쇠를 어디에 숨기는지 까지 (몰래) 다 봐놓은 다음. 그 캠퍼스커플이 평범한 상업시설은 가기 싫고 그래서 특별한 장소로 친구&내가 사는 자치방에 조용히 찾아왔는데. (주말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무도 없을 걸 예상하고서) 당시 친구 혼자 있어서 3자 대면! 화들짝 놀랐을 텐데. 그럼 3명 가운데 2명만 이상했던 거네. 아무튼 옛날 생각 그만하고. 
   「오빠 무슨 생각해? 내 생각 안 했어? 왜 갑자기 앙탈이냐고? 우리 사귀는 사이니까.」
   「」
   「오빠. 우리 2 대 2 소개팅 할까?」
   「」
   「아, 오빠 지금 작품구상 하는구나? 내 친구가 작곡가랑 사귀는데 이럴 땐 방해하는 거 아니라던데.」
    내 친구? 친구가 아니라 혹시 캐서린 전남자친구 얘기 아닐까. 그러든가 말든가. 
    어쨌든 우리는 그날 그렇게 헤어졌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어느 날 나는 해질녁 바닷가에서 걷고 있었다. 저녁 노을을 보며 이렇게 걷는 일. 이게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닌데... 또 연인과 걷거나 추억 만들기마저. 한데 어째서 이걸 해보는 게 쉽지 않지? 뭐 산다는 게 그런 거긴 하다만. 그러다 나는 저쪽에서 걸어오는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숙녀한테 흑심을 품지는 않았다. 다만 왠지 신경쓰인다고나 할까? 그런데 가까이 다가오더니... 알고 봤더니 걔는 선미였다. 뭐 선미? 오소리 잡아먹고, 담비도 생으로 먹고. 실험용 생쥐도 꼬리를 잡고 꿀꺽했던, 선미? 그럼 이제 날 잡아먹으려고? 그래서 나는 뒤돌아서서 오던 길로 돌아갔다. 아직 그녀는 날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 날 몰라봤기를 바랬다. 그런데 나의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눈치 빠른 그녀, 약삭빠른 나. 전자와 후자는 앞으로 진한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라는 예언을 어디서 듣지는 못했고. 밑도 끝도 없는 공상 하기도 싫었는데. 사실은 그녀가 날 이미 알아봤다는 점. 날 겁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오빠. 오빠...맞지? 맞네 맞어. 와, 오빠다. 오빠?」
   「」
   「근데 왜 도망가? 방금 나 봤지? 그치? 아닌가? 아닌데. 일부러 모른 체하는 거야? 내가 창피해? 아님 혼자 부끄러워?」
   「」
   「아님 내가 짝사랑할까 봐 걱정이야? 그럼 나도 내숭 떨어야 하나. 오빠, 유난떨지 마. 나 파랑새야. 오빠가 뭘 좋아하는지 난 다 알아. 더구나 나는 팔색조니까 다 가능해. 허허허.」
   「」
   「이 오빠 좀 봐. 왜 몸이 굳었어? 어? 뭘 잘못 자셨나, 오빠 왜 이러지?」
   「」
   「오빠. 이러지 말고 우리 시내로 놀러가자. 오빠가 나 꽃 사줘, 난 오빠 옷 사줄께. 그리고 근사한 저녁식사도 함께 하자. 왜 싫어? 에잇 좋으면서.」
   「」
   「근데 오늘따라 이 오빠 정말 말 없네. 왜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버리셨을까...」
    선미는 갑자기 날 간지럽혔다. 난 웃지 않으려고 꾹 참았다. 그러다 그녀는 내 젖꼭지를 스쳤고, 내 똘ㄸ...가운데 근처도 스쳤다. 이때! 바로 이때 마법이 나를 가만 놔두질 않았다. 가운데가 커진 것이다. 점점 커지기 시작한 정도가 아니라, 확. 뭐 확? 왜 하필... 그러게 말이다. 그러다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막 시시콜콜 어쩌고저쩌고 지들끼리 통화하더니 걔는 갑자기 심각해졌다. 그리고 뭔가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 가버렸다. 아, 살았다. 뭐랄까 내 가운데가 커지기 전에 이미 나는 살짝 오줌을 싸버렸는데. 그녀한테 들키지 않았으니 다행이긴 다행이었다. 





    10

    범인은 현장에 반드시 다시 나타난다? 개는 토한 곳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나는 "선미&캐서린"의 별장에 찾아간 것이다. 그곳이 왠지 모르게 나를 불렀다고나 할까? 그로 말미암아 내 직감은 녹슬지 않았다는 게 증명된 셈. 아니 어떻게 내 육감을 속일려고? 말도 안돼. 난 그냥 예감이 데려가는 대로 못 이긴 척 따라가기만 하면... 근데 마침표는 언제 찍고. 아무튼 이 완벽한 수읽기! 이러니까 여자들이 뻑이 가지. 캬, 말도 말어. 내가 봐도 그냥 환상. 응? 기가 막히다니까 글쎄. 끝장이야 끝장! 
    자, 밖에서 놀던 그녀들이 별장 안으로 들어가는구나~! 옳지. 그럼 이제 슬슬 요술 투시경을 꺼내볼까? 어! 어디 갔지? 앗 깜짝이야. 여기 있다. 그럼 이제 곧 있으면... 막 지수, 수영, 예진 걔네들 셋이 몰려다녔던 걸로 보아. 보아하니 설마 진짜로 합체? 그리고 세은과 하영을 나머지 한 명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데. 설마 걔가 조련을? 채찍... 막... 망사... 막 엎드려 엎드려. 뭘 엎드려? 어? 흐흐흐. 그런데 난 어쩌다 이처럼 염탐꾼이 되어버린 거지? 알 수 없었다. 알기 싫었다. 그걸 안다고 누가 좋아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러지? 아니... 아니... 요컨대 비파괴 투시경이 먹통이 되어버렸다. 아니 어떻게... 이 중요한 시간에...! 
    아차!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설마... 내가 입수했던 비파괴 투시경이 불량품은 아니겠지? 아니면 초정밀 특수 장치가 심어져있어서 막.. 막.. 평소에는 정상적인 망원경이었다가. 특수 상황에는 막.. 막.. 막 녹화된 초정밀 녹화 영상을 틀거나.. 아닐 거야. 에잇~ 말도 안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얘기를. 그런 개 풀 뜯어먹는 추측은 하지도 말자. 일단 말 같지도 않거든. 무슨 말이 돼야 상대하든 말든 할 건데. 이 두 눈으로 똑 봐로, 똑똑히 다 봤으면서 (몸짓)! 무슨 그런 개뼉따귀 같은 헛생각을 다하다니 나도 늙었다. 아니 나는 젊다. 어리다. 이러다 달걀이든 타조알이든 그 속으로 들어갈 태세지. 정 안되면 공룡알 별채라도 짓던가. 왜 못해? 누가 말리지도 않는다. 하긴 누가 보채지 않는다고 정말로 할 생각은 없다. 말이 그렇단 거니까. 우리는 땀에서도 커피향이 나거든. 진짜로, 어? 정말이다. 나는 태어나서 거짓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증거가 그거다. 그 뿐만이 아니라 증인들도 엄청 많다. 나 때문에 쌓였던 속옷만 해도 수북하다니까 글쎄. 
    그렇게 옵션 조작부가 복잡한 요술 투시경을 어떻게 어떻게 정상으로 복귀시켰다. 다른 곳을 보니 제대로 작동되는 걸 확인했다. 자, 그럼 이제 극적인 본게임을 시작해볼까? 진땀 나는 명승부는 이제 시작된 거나 다름없었다. 세기의 명경기는 바로 이것이다. 그럼 요술 투시경은 명기? 그러거나 말거나. 그렇게 나는 뭐랄까 입이 귀에 걸린 채 뭔가를 감상... 아니 관찰... 아니 목격하려고 할 때. 그 중대한 시국에. 아니.. 아니... 아니...! 
    마술 투시경으로 관찰하려던 찰나 선미&캐서린이 나타난 것이다. 
    내가 비파괴 망원경으로 그녀들이 노는 거실을 딱 보려는데 망원경 화면 앞을 뭔가가 막는 느낌? 선미였다. 
   「오빠 거기서 뭐해?」
   「너... 그... 난...」
    그때 누가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 뒤돌아봤다. 캐서린이었다. 
   「오빠 지금 뭐해?」
   「하긴 뭘해, 보면 몰라?」 ~라고 말할 뻔하지는 않고, 아예 말할 수 없었다. 
    아니, 저 거실에서 지금... 얘네한테 말한다고 믿을려나... 아, 맞다. 
    그 괴물들이 바로 얘네들이잖아? 나는 식겁했다. 공포심이 휘몰아쳤다. 
    그럼 너네들이 날 잡아먹을려고... 진짜로? 이젠 어떡하지! 
   「오빠 우리랑 같이 놀자.」
   「그래 오빠. 오빠 바빠? 어디 갈 데 있어? 없지? 그럼 같이 들어가서 놀자.」
    그러면서 선미와 캐서린은 내 양쪽에서 팔짱을 끼더니 날 데리고 별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언제부터 얘네들은 운동을... 팔힘이 팔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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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뜸들이지 말고 곧장 말하자. 빙빙 돌리기 없이 냉큼 알려야 하니까. 
    그 안에는 호텔 사장 내 친구. 걔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녀석과 친구들이 있었다. 
    즉 남자가 호텔 사장 내 친구를 포함해서 5명... 이층에서 있을 테니... 설마 얘네 전부가 짝 맞춰서? 
    근데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호텔 사장 내 친구만 해도 한마디로 여자들이 꺼뻑 넘어가는 외모. 캬~ 어? 여자라면 누가 하나 예외없이, 첫눈에 보자마자 (몸짓)! 안 그러면 여자가 아닐 테니까. 그런데... 그런데... 호텔 사장 내 친구의 친구들. 이 자식들이... 너무한 거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잘생겨도 정도가 있지. 웬만한 여자가, 그 정도가 아니라. 여자라면 단박에 보자마자 꼬리 겁나게 흔들게만 생겼다니. 아주 그냥 있는 꼬리 없는 꼬리 난리나지. 난리 나. 쟤 또 꼬리친다! ~라는 관전평을 하고 듣던 그녀들조차 자기도 모르게 심신분리될 정도로. 그럼 결국 걔네들과 나는 비교되잖아? 이런 젠장! 나는 자존심 팍 상했다. 열등감 없지 않을 테나. 자존감이 문제가 아니라 나마저 미남들한테 혹하는데? 이미 여자들은 넘어갔다. 뻑갔다. 홀딱 반했네. 제정신이 아니구만. 이래서 머픈카 머픈카... 그러구나? 그게 뭔 소리야? 나도 몰라. 아무튼 어디서 듣긴 들었지. 허허허. 속물들. 그러라 그래. 그러든가 말든가. 누가 알고 싶데? 관심없어. 잘난 척하기는. 놀고 있네. 사랑 좋아하신다고. 웃기고 있어. 하나도 웃기지 않는데 말이야. 그런데 내가 봐도 너무하잖아? 이건 뭔가 끼리끼리...와 결코 알맞지 않았다. 너무 이질감이 불편하니까. 아닌가? 허나 이때 중요한 점. 내가 관중으로 내려간다랄지, 속칭 찍사. 그래 신부들러리 역할을 맡을 수도 있고. 또 내가 한때 또 별명이 뭐였겠나, 구체적으로 더 나쁜놈! 그런데 내가 그... 그... 저 주인공들과 대비되는 병풍 배역을 맡지 않으면 안된다니. 왜 싫어? 좋았다. 기분 나쁠 리 있나. 다만 비파괴 투시경이... 근데 빈말을 빌미로 내가 계속 여기 있어도 되나? 나도 눈치는 있다. 난 바보가 아니다. 그런데 이럴 줄 알았으면 옷 좀 신경써서 입을 걸. 왜 하필 상하 트레이닝복을. 쟤네들은 싹 다 빼입었잖아? 상표는 안 봐도 뻔해. 그럼 나는? 나는 결국 '옷도 못입는 남자'가 된 거네. 맞네. 그렇다. 또 사람은 나이들수록 조금은 나이와 비례하여 옷을 잘 입으면 좋다. 즉 먹는 건 나한테 맞추고, 입는 건 그보다는 덜 해야 한다는 점. 음식은 먹고 싶은 걸 먹돼, 의복은 그와 될 수 있으면 똑같지 않아야 괜찮다는 얘긴데. 될 수 있으면 남한테 흠잡히지 않도록! 옷차림도 전략이라는 둥 이마를 까고 다녀야 돈이 들어온다는 둥. 나는 그녀들 패션이 돋보이도록 그냥 배경색 정도로 신부들러리 패션. 그걸 보고 여자들이 칭찬하는 것. 그래서 옛날에 난 하필 남자한테 그 얘기를 들었다 "옷만 잘 입으면..." 그래? 그럼 옷 못 입으면? 단서가 붙는 남자... 조건이라는 커트라인이 하필 발목잡는 남자라니. 그나저나 그때 커피숍 아르바이트 같이 하던 그녀를 어떻게 한번 해볼 걸 그랬나? 왜 그땐 아무 생각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를 테면 뭘 입어도...와 아무나 가깝지 않다는 걸 누가 모르겠나. 좌우지간 오빠는 옷도 못 입니? 환청은 날 괴롭혔다. 그러니까 여기 모인 남자들은 전부 "옷도 잘입는" 남자인데. 유독 딱 나만, 나만, 어? 나만... (절레절레)!
    다음으로 넘어갈려고 했는데 패션 주제가 나와서 살짝만 첨언하겠음. 왜냐하면 패션계는 나한테 고마운 줄 알아야 하니까. 괜히 생색내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아 글쎄 진짜로, 어? 걔네들 나한테 진심으로 고마운 줄 알아야 하거든. 에르메스부터 어디 어디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처럼 나한테 겁나게 감사해야 마땅. 좌우지간, 첫인상을 어떻게 지우나, 절대 못 지움. 필자가 알기로 문화권별로 웨이터를 부르는 등 관습이 천차만별인 걸로 아는데. 패션에 관해서도 세계평균보다 훨씬 자유로운 것도 인습이라서 프레타포르테가 탄생할 수 있었을지언정. 그건 직업과 산업일 뿐이고. 먹는 건 먹고 싶은대로 할지언정, 의복은 식욕과 같으면 안됨. 입는 데 자유로운 문화도 대체로 다 옛말이요 구습. (사적인 자리에서 도청 안된다는 가정하에 말하자면) 형씨들, 여자 꼬시기 싫어? 그럼 막 입어. (누가 절대로 엿볼 수 없고, 엿들을 가능성 0이라고 여건을 못 박아두고 논하자면) 언니들, 남자한테 잘보이기 싫어? 그럼 막 입어도 됨. (사석에서 말하기로 즉 막말로) 사귀는데 막 입고 까칠하고... 점점... 짜증계기판에 고스란히 누적되어 정떨어지면 연애도 끝남. 애초에 환승이별녀를 처음부터 골랐거나 능력 부족이랄지 여건 미비인데 무리하게 시작했거나. 즉 패션은 연결 안되는 데가 드묾.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뭘 걸쳐도... 혼자일 때는 괜찮은데... 그렇다. 옷걸이 아무나 하나? 심지어하다 하다 바텐더한테 돈 많기로 1등 그거 손꼽히고 싶어서 옷 챙겨입는 남자, 과연 적나 많나. 물론 돈이 실제로 엄청 많은가, 단지 외관상 왠지 돈이 많은 거 같은 남자다. 일단 전자와 후자는 하늘과 땅 차이인데. 아울러 전자는 불가능 후자는 가능! 보아하니 전자는 꿈도 못 꾸고 후자는 가시권. 그럼 가난한데 저거라도 1등하는 게 좋지 않나? 나쁠 거 없다. 기분 끝장이거든. 친구들 광분하는 거 보는 재미, 안 겪어보면 말도 마 (절레절레)! 1등 못해봤으면 (몸짓). 누나들한테 얼굴 1등으로 손꼽혀도 형들 친구들 격분하는 거도 똑같음. 물론 그건 패션의 완성은 뭐다로 연결되는데. 좀 재수없게 들릴 수도 있다만 필자도 딴 데 가면 신부들러리 축에도 못드는 점, 그냥 세상사 이치에 불과하다. 터놓고 말하자면 당시 병풍들 때문에 기분 좋았다만 이상하게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내르막 길이라고나 할까? 넘어가고. 어쨌든 미래의 행복을 위해 단지 지금은 누추하게 막 입고 사느냐, 아니면 오늘 막살고 내일 거지되느냐. 사람들 다 아는 얘기다만. 딱 1개만 더 귀뜸하자면 첫눈에 보자마자 오빠~ (언제봤다고...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는 특종을 대체 어디서 들었는지) 뭐 오빠? 당시 양복 차림이었으니까. 이래서... 그만하자. 내 친구 정비사가 꼬실려던 여자가 필자를 처음 만난 날 팔짱 확 끼고 싶은데 조심스레...수줍게... 당연히 양복차림. 자기는 남자한테 잘 보이는 거 관심없다? 뻥. 다 뻥. 싹 다 개 뻥. 여자들끼리 경쟁심, 그분들 얘기 굳이 들어볼 필요 있나. 그런데 뭐라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슬픈 이치라고나 할까? 즉 물론~ 옷이 다 해결해줄 수는 없음. 여자들도 그래서 화장을 하는 것임. 남자한테 잘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하는 목적은 최소 50%. 아니면 거짓말. (최소 50%인까 반올림하면 응당 100%임) 괜히 화장 안해도 주목받는 여자... 옷 못 입어도 멋진 남자... 딱 대비되거든. 자, 반대? 없음. 있을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기왕 말 나온 김에 말하는 거 참지 않겠는데, 그러니까 뭐랄까 예전에 들은 말 가운데. 
   "와, 저 오빠 말발 장난 아니다."
    살면서 그런 칭찬 처음이자 마지막. 딱 1번. 내 친구 자랑 했나 안 했나. 말발 장난 아닌 거 내 친구들 얘기고. 나는 한마디로 우리 아빠처럼 눌변. 대표적 또 전형적 눌변. 근데 왜... 그러게. 지금 설명이 왜 길어졌나면 그게 다 패션 때문인데. 패션? 패션? 너 오늘 여자 만나냐, 남자한테 칭찬받기도 딱 1번이네. 근데 그날 여자 안 만났고. 또 평소에 만날 일이 없어. 어? 이런 젠장. 물론 농담이다. 농담 반 진담 반이 절대로 아니니까. 이래서, 아니다. 됐다. 됐다 그래. 누가 함께 놀고 싶대? 필요없어. 사랑이고 자시고 다 소용없다고. 이런 젠장. 괜히 좋다 말았다. 그렇게 나는 아무한테도 인사하지 않은 채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누가 궁금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연락처도 서로 모르니까. 또 누가 아마 이렇게 내 험담을 할 수도 있다. 내가 분위기를 띄워줘도 모자를 판에 물을 흐려놓았다는 둥 뭐라는 둥. 나도 안다. 오징어가 되어버린 나를 말이야. 됐어. 나도 됐어. 그렇게 나는 숙소로 돌아갔다. 





    11

    광고는 못생김에 복종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오락산업도 불행에 굴복하지 말라고 타이른다. 그래서 여자들은 실망한테 질 바에야 솔직히 부러움을 고백하라고 부추기는 걸까? 그래 봐야 지는 비교 때문에 남자들 뚜껑만 열린다. 정력 배양에 절망은 도움되지 않는단 말이다. 현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 저 하늘의 구름이 사랑의 솜사탕일 리는 없다. 세상을 띄엄띄엄 알면 안된다. 오늘도 적들은 예뻐질 테니까. 플레이보이에게 당근이란 달콤한 과일이든 아니든. 지금 그게 중요한가? 고로 변화가 절실한 시점. 왜냐하면 혹시라도 미래는 내 편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 그렇다고 헛바람 조장하는 바람잡이들한테 휘둘리고 게릴라 마케팅한테 속으면 안된다. 결국 잘나게 탄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잘난 척 새로움을 옹호할 수 밖에 없단 말도 아니다. 그럼 바람결에 휘날리는 치맛자락을 공상하리? 아니다. 딱 NO!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계에서 빼았가버린 내 인기. 알고 봤더니 애초에 없었네. 이래서 연예계와 나는 친할래야 친할 수 없는 것. 특히, 푸대접 받는 자존감이 제일 문제일까? 그러니 안되겠다 라는 판단 하에. 나는 숙녀들의 다정한 유혹에 못 이긴 척 넘어가드릴까 하고서 시내에 출두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알겠다. 아마 상상을 초월하는 환상마저 언젠가 개꿈처럼 영원하지 않다는 점. 이처럼 무대가 멀리 있다고 핑계만 느네. 이 정도면 거의 허언증을 괜히 2군으로 내려보낸 셈이다. 영화 같은 인생, 소설 같은 사랑 다 필요없다. 어쩌면 문학적 상상력을 너무 혹사시킨 나머지 재능이 바닥난 거나 마찬가지 일 수 있다. 살면서 일생에 3번의 기회가 온다는데 그럼 보너스까지 다 와버린 건가? 그럼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은 또 뭐야. 하여 비운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유쾌한 운명은 개척하는 자의 몫. 둔한 말(馬)도 열흘 가면 천리를 간다. 아, 맞다. 그런데 식어버린 열정마저 날 도와주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왜 갑자기 귀가 간지럽지? 누가 내 등에 포스트잇을 붙여놨나 보다. 떼어서 읽어보니 이렇게 씌여있다. 대충 살자! 뭐, 뭐가 어쩌고 어째? 흥분할 힘도 없다. 흥분도 안된다. 설마... 쉿! 어쨌든 이미 낭만적인 플레이보이라는 지위는 박탈당한 거나 다름없다. 어차피 허당 본색이 탈로난 마당에 손해볼 게 뭐 있나. 그래 봤자 식어버린 피자 같은 남자가 대체 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Mozart / 오페라 <마술피리> 밤의 여왕 아리아, 것도 엄선한 레코드판으로 듣고서 아침에 딱 집을 나섰어. 그런데 갈 데가 없네? 괜히 나온 거지. 그러니까 난 왜 이렇게 무기력한 걸까? 틀림없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그 불합리한 동기를 깨닫게 될 텐데. 알고 나서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있나? 자기 합리화에 앞서 다 잊어먹을 게 뻔해. 또 오빠가 너의 눈부신 데뷔를 위해 하는 얘긴데 널 정말 아끼니까 솔직히 말해서 나나 되니까... 들어줄 동생들도 없고 만약 있다 해도 신뢰감 바닥일 것이다. 형이 꼬셔준다면서요? 환청마저 개목걸이로 날 압박하는 실정. 이제 어떡하지? 허나 욕심 없는 남자 매력없어 라는 핀잔쯤은 두렵지 않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운의 여신한테 러브콜 보내지 않아도 된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꼬실 수 있는데 뭐가 걱정인가! 그러니 나는 이런 무정한 형편을 못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내가 봐도 재수없다. 망했다. 다 틀렸다. 유난떨고 있어 증말! 하오나 내가 뭐 마술사도 아니고 언제나 애독자의 마음을 훔칠 수 있나? 우리가 어떤 숙녀든 꼬실 수 있는 건 옳은 말인데. 누구나 다 웃길 수는 없다. 이 마당에 내 생각을 말하자면 난 유들유들한 겉모습에 능글능글 응큼한 속마음이 음흉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지 않았다. 허나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나? 이러니까 지금 동물적 본능마저 잠잠하지. 제7의 육감이 끝장이면 뭐 하나 어디갔는지 소식도 없는데. 그런 의미에서 내 특별히 염두에 둔 비책이... 어, 있었는데 어디 갔지? 또, 없다 타령. 그놈의 능청 증말 징글징글허다. 괴롭다. 내 탓이다. 그래도 아무리 허접해도 정도가 있지 이게 뭔가. 
    그래서 나는...... 카페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던 나는...... 얼른 숙소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호텔 내 방 그림 뒤 비밀통로가 왠지 모르게 다시 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 때문에. 나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잠시 후.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누가 만들었는지, 아니면 짠하고 요술처럼 발생했는지 모르겠다만. 그건 있었다. 있다가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났을까? 그건 알 수 없다만 중요한 건 내가 그 앞에 서 있다는 점. 그럼 난 이걸 내버려둔 채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그럴 수는 없지. 하여 나는 앞뒤 돌아보지 않고 냉큼 그 비밀통로로 들어갔다. 저번에 들어갔다가 중간에 다시 돌아와서보니 내 사무실이었는데. 만약 꾹 참고 끝까지 간다 했을 때 그 마지막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긴박한 호기심 때문에 엉덩이가 근질근질했다. 이러니 심장이 벌렁벌렁할 수 밖에. 뭐 하트 뿅뿅 사랑의 차트니 윙크니 팔짱이니, 그런 거 다 필요없다. 지금은 이거 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나는 아무 생각없이 끝까지 들어갔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나도 궁금하다. 
    곧장 말하겠다. 그 끝은 걔네 별장 다락방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선미 주도하에 은밀한 놀이? 어떤 의식이 거행 중이었다. 
    물론 몰래 엿보는 걸 들키면 안될 것이다. 의도치는 않았으나 나는 또 염탐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선미는 괴물이었는데. 저번에 모였던 미남과 재주꾼과 멋쟁이들. 
    걔네들 목에 개줄을 달아 막 지들끼리 노는지 뭐하는지. 또 피규어를 담아놓는 장식장처럼 막 영화에 나오듯이... 너무 많은 걸 말할 수는 없다. 일단 여기까지만. 
    그런데 그때 뒤에서 캐서린이 쫓아온다는 걸 알게 됐다. 나를 부르는 것도 같고 또 그녀는 정체를 드러낸 체 위장막을 벗어버린 듯 보였다. 난 잡히면 끝이라는 걸 직감했다. 마침 선미는 개목줄을 끌고서 어딘가로 걔네들을 데리고 나갔다. 나는 발로 뻥 차서 차단막을 제거한 다음 거실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그런데... 거실로 누군가 등장했는데. 복장을 보아하니 하녀였다. 이름표에는 다정이라고 씌여있었다. 
   「다정양. 못 본 걸로 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차마 내 입이 떼어지지 않는 이유, 왜인지 알 수 없었을 따름. 
    허나 기색을 보아하니 캐서린은 거의 다 와서 곧 있으면 날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그때 다정은 언제 봤다고 날 보자마자 오빠 라고 했다. 
   「오빠. 피해요. 우선 피해요. 근데 우리 어디서 본 거 같지 않아요? 나는 왜 오빠를 언제 만난 거 같지... 허나 저 아무한테나 뜬금없는 대사 남발하는 숙녀 아니랍니다. 그래도 우리의 인연은 뭔가 특별한 거 같지 않아요? 그러든 어쩌든 쟤네들 조심하세요. 외계인이거든요. 오빤 걸리면 (몸짓)! 인간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만 알고 계세요. (캐서린이 기어오는 소리) 지금 이럴 때가 아니죠. 우선 피해요.」 
    그때 다급히 캐서린이 괴상한 음조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선미와 노예 배역들이라고나 할까... 걔네들 인기척도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필름 빨리감기)
   (밖으로 나가 풍차를 보며 뛴 다음... 골목을 돌아... 자기 차는 무엇인데 범퍼 좌측 하단을 더듬으면 버튼이 있을거래, 그걸 눌르면 시동 켜지고 문 열리고. 다음으로 접선 장소는 언제 어디. 우리는 그렇게 만나 곧장 신혼여행을! 뭐? 농담이고)
    그렇게 나는 그곳을 탈출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도주극을 좀 더 짜릿하도록 연출할 용의 얼마든지 있었는데. 하필 다정과의 로맨스가 끼어드는 바람에...! 좌우지간 나는 다정이 싫지 않았다. 또 딱 봐도 다정은 벌써 나한테 넘어왔다. 이미 우리는 숙명적인 연인이었다. 우리는 만나면 아무나 금방 친해지니까. 다정도 날 보자마자 첫눈에 홀딱 반한 게 분명했다. 이러니까 여자들이 나한테 뻑이 가지! 안 넘어오고 베겨? 허허허. 귀여운 것들. 아무튼 그렇게 나는 떠났다. 
    그 후 다정과 나의 로맨스. 멜로영화일지 살짝 에로를 엿보일지. 그건 다음에 알려드리겠음. 





    12

    어느새 사랑마저 풋사과보다 벌레 먹은 능금을 선호하는 것일까? 뭣이 어째! 그러든 어쩌든 인생은 풋풋하지 않다. 세상도 만만치 않을 테니까. 그러므로 나는 두 번 다시 능청떨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약 그러면 나는 남자가 아니다. 멍멍멍 암케라고 놀려도 할 말 없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나도 미련없다. 왜냐하면 환상론 알선업을 그만뒀으니까. 그러니까 삶의 흥미진진한 잔재미는 반감 정도가 아니라 말라버린 거다. 절망과 행복도 분간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심심함은 내 죄요 재미없음이 벌이란 말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색다른 방탕을 결코 원치 않는다고나 할까? 뭣이 어쩌고 어째! 그만하자. 지겨우니까. 그렇다고 천사가 보이지는 않고 악마한테 도망갈 수도 없고. 그러니 아름다운 환상을 어떻게 기대하나. 예감도 싫증났다. 공상은 짜증난다. 관능미는 신공질만 부채질한다. 그래서 나의 (갸우뚱한) 관록미마저 원점으로 복귀한 셈. 이러니까 여자들이 날 싫어하는 걸까? 아는 동생들 다 떠난 것만 봐도 사실이 그렇다. 행운에 순종하고 싶다고 해도 큐피트는 한가하지 않다. 고로 핑계를 또 희생시킬까? 아니다. 권태한테 복수당할 테니까. 그러든 어쩌든 꿀꿀한 기분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서 뭐 하나. 다 필요없다. 아니, 이기심을 팔아버릴까? 저속한 허영심을 누가 욕심내나. 대타들도 형편없다. 아아, 젊음이여! 시상마저 딱 거기까지. 그런데 말이야, 무슨 나는 도플갱어한테 말대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일까? 내 말이 그거다. 개뿔. 이런 불결한 마음의 소유자 같으니라고. 이래서는 꿈과 희망이고 나발이고 다 놓칠 게 뻔하다. 짝가슴을 짝궁둥이한테 양보하는 얘기는 하지도 말자니까 정말. 이럴 때 총애하는 애마가 있으면 좋으련만. 때문에 이 난처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슥 풍운아 명단에 이름을 올릴까 하는데. 망설이다가 정말로 적었다. 그랬는데 그건 알고 봤더니 바보대회 출전 대기자 명단이었다더라? 내가 이래서 전업하지 않는다. 내가 왜 블로그만 붙잡고 늘어지겠나. 내가 작곡하면 금방 모차르트가 될 거 같거든. 근데 내가 그림을 그리면 피카소를 능가할 수 있을까? 없다. 안봐도 뻔하다. 이런 잡생각이 어떻게 멈추나. 아닌데. 그럼 설마 그러다 끝없는 시간낭비로 결판나면 어떡하지? 어쩌긴 뭘 어째. 늙는 거지. 뭐, 뭣이 어째? 듣자 듣자 하니 거 엄살이 너무 심하잖아! 이래서는 안된다. 대체 언제까지 패배주의자로 살아야 하는데? 기회주의와 황금만능주의를 쥐락펴락 누가 할 줄 몰라서 이러냔 말이다. 정녕 이대로 탐욕의 실현은 멀어져만 가는 것일까? 그렇다고 누가 무언가를 원한다 라는 말이 아니라. 나도 안다. 최고의 우정은 바로 가난이라는 걸. 근데 적당히 멍청해지다 딱 멈출 줄 알았는데 이건 뭐 더 허접해지잖아? 아니 근데 거 말 끝마다.. 너무한 거 아냐? 누가 할 소리를! (몸짓) 너 이리 와! 엥? 내가 가면 되지 왜 또 피동격과 자동사인가. 이러니 내내 이 모양... 쉿. 대책이 없다. 좌우지간 말로만 낭만파가 너무 무심하다고 투덜거려 봐야 득될 거 없다. 기분파가 무정한 거가 나랑 대체 뭔 상관인가. 허당은 무능하다더라.. 누가 또 내 험담하나? 무식하게 말이야 허당이 뭐야 허당이! 어? 그렇다고 또 모냥 빠지게 뭐 아쉬운 대로 꿩 대신 닭? 그럼 뭘 해 변심을 어떻게 이겨. 못이겨. 안 그래도 툭하면 싫증인데? 그래서 나는 언제나 예술적으로 지기만 하는 걸까! 물론 나는 이럴려고 블로그 업데이트를 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너 그럴려고 작가 됐냐 라는 비판을 어떻게 피해가겠나. 자유라는 이름의 낭만은 안타깝도록 잡을 수 없는 나비인데다가. 거론하기 힘들 정도이니까 빈정상해버렸는데. 그런 마당에 하늘과 이상과 사랑을 논해야 할까? 하지 말자. 해서 뭐 하나. 고작 (속된 말로) 뻠쁘질 갖고 뭐라는 게 아니다. 우리는 남자니까. 그럼 또 그러겠지. 그럼 난 여자냐? 거 말이 그렇단 소리지 거 참...! 하여간에 난 말이다 어리광쟁이가 아니다. 우리가 언제 품위유지비 부족하다고 짜증내는 거 봤나? 우리는 그런 적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태어난 이후로 아직까지 거짓말을 1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농담도 질린다. 그러게 잘난 척하지 말아야지. 그냥 잘나면 되잖아? 뭐 하러 유난떠나. 잘나지 않은 척 겸양떠는 건 가식이다. 요즘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현황을 보아하니... 말 말자. 어? 됐다고요. 고로 나는 갈 데가 사무실 밖에는 없었고. 할 일은 일하기 뿐이었으므로. 이미 공간이동하여 책상 앞에 앉아있다. 오늘은 또 어떤 줄거리를 상상할까? 놀라운 착상은 알고 봤더니 다 뻥이란 말인가. 바로 그때 나는 모스맨 연구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어째서 최근 잠잠한가 했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나는 녀석들과 협상한 후 중간 장소에서 접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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