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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는 사랑의 시를 쓰는 걸 포기했다. 그 말은 언제 연애와 낭만의 시상에 대해 진지하게 심취하며 정진했다는 뜻일 텐데. 그럼 뭐 시작하자마자 포기했다는 건가? 알 게 뭐야. 다만 뭐랄까 청초한 미녀가 뜻밖의 고백을 해주지 않는다며 푸념할 수는 없고. 누군가와 행복과 우주와 바람에 대해 논할 수도 없기에. 아마도 무작정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하여 말만 들어도 좋은 캠핑. 허나 막상 시도해보면 나가떨어질 게 뻔한 견적. 그래도 새처럼 자유롭게 허공을 날며 인생을 노래할 수도 없는 노릇. 고로 이럴 땐 생각 많으면 안된다면서 그는 떠났다. 목적지도 없었다. 그렇게 그는 어떤 캠핑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웬 발랄한 아가씨와 매력적인 숙녀들로부터 둘러싸여 정신을 못차렸을까? 그럼 얼마나 좋겠나. 그렇지만 웬 캠핑러가 그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연배도 비슷. 잘은 모르겠으나 재산은 그보다 우월, 지식과 연애경험과 뭘로 봐도... 그는 멜로드라마식 용어인 스캔에 취미 없었다. 왜냐하면 패션에 관심도 적고 늘상 유령작가로써 무능력 캐릭터였을 테니까. 근데 그게 이유 맞나? 틀린 답이면 어떻고, 남과 다르고 싶을 나이를 훌쩍 지나 뭘 해도 재미없는 어른이 철학을 물고늘어질 리도 없겠지. 근데 단순히 인사말만 하고 헤어질 줄 알았는데 이 아저씨는 왜 이렇게 친절하시지?
「선생께선 캠핑을 좋아하시나 보죠?」
「아니 뭐랄까 좋아하지도 안 좋아하지도...」
「자신의 정체를 노출하시는 걸 조심하시는 것 같군요.」
「네? 정체랄 게 뭐 있나요. 소심하고 가난하며 권태로운 게 비밀은 아닐 테니까요.」
「어머. 형씨 말 잘하시네요? 말수 없으신 줄 알았는데.」
「옳게 보셨어요. 다만 왠지 모르게 당신께는 바보의 입을 트는 재주가 남다른 것 같군요.」
「지나치게 자길 낮추지 마세요. 그럼 제가 여자를 소개시켜드리기 주저하잖아요. 또 알아요? 제가 전화 한 통만 하면 즉각 달려올 오빠 부대들이 (손차양) 그럴지.」
「오...부대? 옛날 말을 즐겨 구사하시는 걸 보니 일부러 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시고자...」
「네. 애쓰고 있죠. 허허허. 근데 이상하게 여기가 캠핑 명소인데 형씨가 오자마자 다 떠났어요. 우연일까요? 아님 형씨한테 묘한 능력이 있는 걸까요.」
「전 드라마를 많이 보진 않습니다.」
「그래요. 제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걸로 하죠. 허나 상상력은 형씨가 한수 위인 걸로.」
「네? 절 띄워주셔 봤자 전 대접할 게 하나도 없답니다.」
「오해하진 마시죠. 이렇게 즐거운 대화 몇 마디면 충분하니까요. 그나저나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과 함께 하니 마음이 편안하군요.」
「그렇죠. 연애 관계가 복잡하긴 어렵잖아요.」
「설마 우리 구면일까요?」
「그건 왜...」
「글쎄요. 차차 생각해보죠.」
「어딘가 모르게 쎄하군요.」
「허허허허허.」
NB는 그렇게 그분과 헤어졌다. 오다가다 만난 사이인데 갑자기 친해져서도 곤란했다. 희망찬 미래를 약속할 만한 연애관이 돕지도 않았을 테고 말이다. 그럼 이제 뭘 하지? 이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캠핑 장비 구입해서 2번 쓰면 많이 사용하는 거라고. 물론 말이 그렇단 거다. 그러니 아무런 장비 없이 달려온 NB 같은 구경군도 있겠지. 그러니 멜로드라마를 보며 유독 닭살 돋던 대사가 뭐였더라. 그 무슨 술보다 술 마시는 분위기가 좋다 어쩐다? 내숭이든 모험이든 누가 끌고 누가 밀든 캠핑이라고 뭐 얼마나 다를까. 그럼 노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까, 공부하는 거 사랑하는 사람이 많을까? 두말하면 잔소리다. 다 학교가기 짜증나고 일하기 싫어도 어쩔 수 있나. 먹고사는 게 다른 게 아니니까 말이야. 이러다 그는 캠핑장에서 낭만적인 시상에 심취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뭐? 그래도 더워 죽겠다, 시끄럽다, 재미없다 보다야 나은데. 그는 왠지 여기 멈추면 안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날은 내내 드라이브만 했다. 그렇게 멋진 노을을 보면서 그는 바닷가 언덕 위 어느 멋진 호텔에 도착했다.
그렇게 딱 호텔에 들어가려는데, 뭐야? 폐업했잖아? 문 닫은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떡하지? 그러고 보니 주변에서 야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뭐랄까 캠핑러 반 채권자 반이랄까.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렇다고 어떤 구경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다. 그럼 철수해? 근데 어디로 철수하냔 거다. 그걸 인공지능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어떡하지? 이래서 피로회복을 아예 만들지 않고 추억 만들 시도도 하지 않는 게 나은 건가? 뭐가 좋고 뭐가 나쁘다 말할 수 없다. 남들이 TESLA 모델 Y를 타든지 내가 홀딱 반할 수 밖에 없는 모델 B양을 만나던지. 뭐? 그럼 둘 중에 뭐가 더 낫지? 고르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나. 어쨌든 집에서 멀리 도망친 거 같았는데 딱히 즐겁지는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기뻤다. 해방이니까. 자유잖아. 원래 이러다 보면 낯선 여행지의 풋사랑도 그에게 노크하기 마련. 아니면 말고? 어차피 여행이란 돌아가야만 하는 거다. 가 봐야 사진 찍고, 고기 구워먹고, 술 마시고, 구경하고. 도시에서도 노래하고 춤추고. 영화보고 밥먹고 차 마시고. 뭐야, NB가 이런 구식탱탱묵은 노땅이란 말이야? 전형적인 아웃사이더다. 하긴 부정하지 않는 건 좋다. 그걸 놓고 말 많아지면 망하는 거니까. 여자들이 좋아서 미칠 거 같냐 아님 단순히 웃기만 하냐. 같을 순 없잖아? 근데 문제는 웬만큼 웃었으면 그만 웃어야 하는데 한도 끝도 없어? 그러니까 초반에만 뻥뻥 터트리다 마는 거지. 처음만 좋아. 아니면 다변가 그녀한테 다 나가떨어지든가. 원래 사랑의 끝은 아름답기 어려운 건가? 지겹다. 이러니 UFO 동호회가 회식도 하는 거지. 그럼 가게 매출 오르고 동네 상권 돌아가고. 나라 경제도 동력을 얻고? 세계 경제 재미없다. 근데 이 자식은 왜 멈춰있는 거지? 마침 이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포르쉐 카브리올레. 무슨 숫자 명칭은 번거롭다. 그 설명 적당하면 좋은데 말이 많다? 여자 뿐만 아니라 웬만한 남자들도 싫어한다. 이래서 사랑을 모르지. 인기가 없어. 오는 여자 막지 않고 가는 여자 잡지 않는다, 가 아니라. 아예 안온다 그거라고. 근데 그 얘기가 왜 나왔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NB가 공책을 꺼내 뭐라 적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안해본 일들을 적고 있었다. 무전 여행? 아니 아니. 그건 추억의 영화에나 나오는 거고. 도보 여행. 근데 왜 하다 말지? 또 분위기 따져? 진득하니 공부하다가 뭘 또 마시고 싶어진 거군. 근데 편의점까지 가기가 귀찮네? 다시 고개를 팍 숙였다. 그래서 뭘 끄적였나 보니. 슬럼프에 빠져 방황 중인 거포. 재산 탕진한 왕년의 스트라이커. 방탕한 생활로 가난해진 대형 신인. 타락한 중년? 그들의 공통점이 뭔가에 대해 웬 숙녀한테 밑도 끝도 없이 썰을 풀 기회조차 없다는 둥 어쩐다는 둥. 다 쓰잘데기 없는 글 밖에 써지지 않았다. 그런데 뭐야 웬 낯선 아가씨들이 한꺼번에 그에게 접근했다.
「아저씨 우리 함께 해요.」
「도시 같으면 어림 없다는 거 잘 아시죠?」
「모르시지 않겠지.」
「그럼 웬만한 클럽에서 저분이 우리한테 말이나 걸 수 있을 거 같니?」
「아예 들여보내 주지도 않겠지.」
다함께 웃음. 겁나게 좋아함. 완전 웃김.
「아저씨 뒷목 잡는 거 봐 봐.」
「좀 귀엽다. 근데 아저씨 전여친 몇 명이었어요? 혹시... 모쏠?」
「웃지 마. 웃지 마. 분위기 이상해지잖아. 근데 진짜?」
「아 웃지 말라니까 증말. 야 차 봐 봐. 아저씨 저 차 오빠 거에요? 와 멋지다.」
「말 돌리니까 더 이상해.」
또 웃음. 비웃는 거야 뭐야.
「아저씨 집에서 할 일 없죠? 그쵸? 그러니까 우리가 놀아주는 거죠.」
「아저씨 직업은 뭐에요? 펀드매니저? 아님... 삼류 연애인 로드매니저? 아니면...」
「(딱~) 건물주. 그런데 2~3층짜리, 수입보다 나가는 게 더 많아. 아님 영화감독?」
「장르는? 말 말자. 아 이제보니 어째 행색이 가난한 예술가? 그래도 제냐스포츠, 포르쉐, 맥북... 왜 안 어울리지? 우리가 너무 멋진 직업만 들먹였나. 그래도 원래 그렇잖아. 그럼 5년차 수험생을 말하니 아님 빚 많은 육체노동자로 점치니? 아니잖아. 지방러가 더 지방러를 깔보니? 아니야. 매스컴에서 막 서울 어디 대학교가 같은 이니셜 캠퍼스를 비하한다? 오바지. 다 뻥. 그건 한마디로 뭐다? 구분. 그럼 끝. 뭔 말이 더 필요해? 싹 다 필요없어. 직업 뿐만 아니라 무대도 그래. 서울 빼고 다 촌 아냐? 예 아니오 말은 안해도 다 알잖아? 그러면서 뭘 모른 척. 웬 위선? 드라마에서 서울이 무대 아닌 경우 있어? 있으면 뭘 해. 거의 없어. 비싼 차 타면 뭔가 다르다, 좋은 차 몰면 차이가 있다 없다 논하는 자체가 뭐겠니. 달라보이는 걸 누가 부정해. 말은 안해도 말 안하면서 다 안다는 거 아니겠냐고. 교훈, 다자주의, 화합, 겸양, 질서 그런 거만 말해? 졸린다. 수열과 수평 혼동하면 망해. 착한 척과 솔직함이 반대로 되면 썩는단 말야. 공산주의가 왜 실패했는데.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런 아저씨가 의외로...」
「뭐 의외? 넌 사람을 그런 식으로...! 왜 상태가 안 좋아보여? 아닌데. 애인은 곤란하지만 뭐 아무튼 이런 분들이 알고 보면 고전음악광이야. 딱 최고급 자동차에서 푸치니, 베르디랑 막 아리아를 들어. 옆에 그녀를 태우고. 근데 어디 음습한 구석으로 데려가서 확 돌변해. 바로, 그분이 이분?」
또 웃음. 비웃는 거야 뭐야.
「나이트클럽 문지기인데 알고 봤더니 클럽 7개를 보유한 거물. 아님 SF 작가? 미술가? 재력가? 해결사?」
「근데 왜 말을 안 해요? 아저씨 벙어리에요? 그렇게 능글맞게 웃지만 말구요. 우린 옛날 영화 안 봐서 그 시절 감성 몰라요. 아시겠어요?」
「보긴 봤잖아. 요즘도 보구. 너 옛 영화 동호회 가입했잖아. 어떤 오빠 꼬실려고.」
「내가 언제?」
「그러지 말고 술이나 한잔 하죠. 근데 아저씨는 도시에서 술 한잔 사달라는 동생들도 없어요? 괜찮아요. 우리가 생겼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아니면 누가 저 외로운 분께 오빠 오빠 불러드리겠니.」
「아저씨 그만 놀리자. 곧 울 거 같으니까. 그러고 보니 안색이 안좋아졌어. 아님 원래 울상인가? 좀 그러네. 아님 마지막 입새상? 음 뭔가 얼굴에 슬픔이 있어.」
「그게 아니라 나이가 있다. (몸짓)」
「그만 놀리자. 그러다 화내시겠다.」
「근데 넌 화장을 왜 고치니? 누구한테 잘 보일려고? 설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잡아먹진 않을 테니까. 그러다 확 덥쳐?」
「어머머 넌 못하는 말이 없어.」
그렇게 약 1시간 경과.
고기도 잘 구워먹었다. 추억도 쌓을 것 같은 예감을 선물받았다. 꽤 친해진 느낌도 받았다. 근데 그게 다였다. 그녀들은 떠났으니까. 연락처 교환도 없이 말이다. 다만 인스타그램에 시커멓게 나온 사진을 흐릿하게 처리해서 사진만 함께 올리고. 그게 더 기분 나빴나? 더 싫든 덜 상심하든. 이게 무슨 마음의 상처겠나. 뭐 다 늙은 마당에? 말이 심했다. 그래도 잠깐 좋았으니까. 나쁘지 않았어. 젊음의 행진을 할 듯 말 듯 했으니까. 그럼 뭘 해. 왠지 더 울적해지는 걸.
2
나는 근처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정처없이 떠도는 집시는 아니지만 왠지 뭐랄까 이 유랑자 적 하는 여유를 흠모했다고나 할까? 뭐, 촌스럽다. 억지로 여자 꼬시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든 어쩌든 나는 이제 예술가가 아니다. 누가 들으면 오해할 수도 있겠다만 말이 그렇단 거다. 어쨌거나 오늘 나는 여행자. 그걸로 됐다. 안 될 건 뭐 있나. 그런데 나는 미친 듯 사랑하던 그때가 좋긴 좋았지 라는 느낌의 연애시를 쓰러 여기까지 왔나? 아님. 낭만시와 헤어졌으니 그건 아니다. 안 그래도 그녀들의 구애와 추종자들의 광기 띤 러브콜 나에게는 없었다. 그럼 이제 늙음과 친해진 건가? 허나 젊음은 아껴둔 카드. 그럼 뭘 하나. 나는 플레이보이계에서 영구 제명당했는데. 그래도 혹시 누가 날 찾을지도 모르니 나는 호텔 카운터에 물어봤다. 날 찾는 낯선이의 쪽지가 없었냐고. 답은 들으나마나. 마치 날 상태가 꽤 안 좋은 양반으로 쳐다보는 시선. 익숙하다. 그래도 우리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 그래서 흘낏 뒤쫓는 미행자가 있나 살폈는데. 있을 턱이 있나. 그러던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예전 딱히 친하지는 않았으나 친구와 애인의 중간쯤을 점유하고 싶은 연락책이었는데. 그건 내 생각이고 녀석 입장은 날 바람잡이쯤으로 여긴 걸까? 그래도 이제 와서 찾아준 게 궁금했다. 왜 날 부른 거지? 안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날 외면하는 듯한 분위기. 꺼지라는 직설어법은 아니겠으나 알아서 떠나라는 듯한 눈짓들. 눈치채지 못할 리도 없었다.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 친구들이 내 풍문을 못 들었나보지? 내가 비밀을 한 번 발설하면 그땐, 그땐 어떻게 되는 거지? 근데 그 비밀을 나는 잊어먹었다. 뭘 기억하는 것도 없고 바보가 되어버렸으니까. 헌데 지금 울려퍼지는 사랑의 찬가, 웬 삼류가수의 모창인가 아니면 이상한 편곡인가 뚱딴지 같은 몽상에 찬물을 끼얹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비싼 호텔이 아니어서 그랬나? 어쨌든 나는 그곳으로 떠났다. 목적은 소설 공상이자 휴가.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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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했다. 녀석의 별장은 멋졌다. 근처 경관도 훌륭했다. 나는 대런에게 전화했다.
「대런 너 어디야?」
「아 친구. 이거 어떡하지? 나 도시야. 게다가 나 사랑에 빠졌어.」
「갑자기?」
「그럼 갑자기지 뭐 한 10년 짝사랑하다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하겠냐?」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너야말로 왜 날 은근 띄워줄려 하지?」
「빈정대지 말고 본론만 말해. 언제 올거야?」
「안 가. 나 얘랑 당장 살림 차릴 거야.」
「뭐? 두집 살림 하겠다고?」
「뭔 소리야? 걔 저번에 정리했어. 나도 다 헷갈린다야.」
「그래서 뭐 세계여행이라도 떠나겠다는 거냐?」
「지금 아니면 안 될 거 같아. 이제 깨달았어. 미루다가 인생 끝난다는 걸 말이야.」
「그러니까 그걸 왜 이제야 깨달았니?」
「난들 알았나 뭐.」
「그럼 여기 비밀창고 문이나 열어주든가.」
「거기 안에 아무것도 없어. 또 문 비밀번호도 까먹었어. 안 그래도 그나마 있던 값나가는 물품 몽땅 도둑맞었어.」
「그럼 나 혼자 여기서 뭘 해?」
「뭘 하긴. 너도 나처럼 갑자기 사랑에 빠지면 돼. 왠지 모르게 몸이 풀려야 가능할 거 같다면 뭐 일단 첨 본 허영녀를 꼬셔보던가.」
「뭐? 말이 심하잖아. 그러든 어쩌든 너의 그녀. 이쁘냐?」
「아니. 못생겼어. 너 알잖아. 내가 만났던 여자들. 이제 너한테 거짓말 하지 않기로 했다. 왜? 재미없으니까. 그런데 진짜로 그럴까? 뻥이야. 완전 이뻐. 끝장! 알지?」
「알긴 뭘 알아. 안 속아. 이제 보니 너 늙었구나.」
「뭐? 그러는 넌 뭐 청춘이냐? 그나저나 늬가 찍어준 종목 있지? 3개다 썩었다. 이러고서도 늬가 내 친구냐? 너 전문가 맞어? 이거 완전 돌팔이 아냐?」
「뭔 소리야? 내가 언제 너한테 종목을 찍어줘?」
「아 됐고. 끊자. 남자끼리 뭔 전화통화를 오래하냐. 나중 보자.」
뚝. 뭐야 이 자식은! 못 보던 사이에 상태가 무척 안 좋아졌는데. 아무튼 여기 괜히 왔잖아? 젠장. 어쩔 수 없지 뭐.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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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나는 대런 집 창고 개구멍을 발견했다. 그곳을 탐험해보고 싶은 충동? 없을 리 없겠지. 큰 불행이 예정돼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아울러 당연히 지나치도록 가슴 설레는 모험도 기대 안 했다. 그렇다고 딱 들어가서 괜히 실망도 하지 않을 테고. 또 우연찮은 타임머신을 딱 찾아내서 탑승할 예감은 옛날에 버렸다. 이 마당에 그녀들과 밤새 놀 수를 있나 어디 여행 떠나 마음 편히 쉴 수가 있나. 그럼 밑져야 본전일까? 그러다 귀신을 만날지 모르니까 위험 회피 차원에서 헷지 수단을 마련해도 나쁘지 않을 텐데. 하여 개인방송을 켜놨다. 이제 심심하면 모든 걸 기록해주는 자동 앱, 장비, 알람을 비롯해 파파라치처럼 내 모든 걸 동영상과 사진으로 남겨주는 상품도 구매해뒀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보면 자기는 사진들을 어떻게 저장한다 남들은 어쩌냐 막 그렇게 궁금해들 하는데. 언젠가 그런 고민은 물론 내가 했던 일들은 많은 영역이 외주화될 것이다. 마치 SF 영화처럼. 물론 더 많은 부분들은 그대로일 테고. 뭐 그건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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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런집 창고 안에서 웜홀을 발견했다. 이걸 탐구할까 말까. 고민할 시간에 덥썩 들어가볼까? 근데 그러다 못 돌아오면 어쩌지? 또 갔는데 거긴 사후세계면? 이러다 웜홀이 놀이공원 폐장시간과 동기화되면 어쩌고.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 친구네 집 창고를 개구멍으로 들어갔는데 딱 그 안에 또 개구멍이 있다? 없으란 법도 없다. 일단 대런한테 묻는 게 먼저였다. 근데 전화를 안받네 녀석이. 아니 근데 여긴 왜 이렇게 춥지? 바깥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인데. 뭐야 이건 또. 뭔가 일정 공간에서 잠깐 수평적으로, 다시 잠깐 요동치는 식으로 강력한 중기압 소용돌이 때문에? 근데 그게 양자화학과 핵자기공명에 기반해서 무슨 입자 터널이 이런 창고 안에서 가동됐다 가정해. 뿐만 아니라 중이온가속기가 완전 말도 안되도록 우연히 발생해서 헬륨이온보다 무거운 이온을 빛의 속도 몇 배로 가속해서 웜홀이 나타났다? 말도 안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억측이야. 재미없게 말이야. 그렇다고 저 개구멍을 그냥 지나쳐버려? 그럴 순 없지.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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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집에 도착했다. 약 30분 산책했을 뿐인데 아니 어떻게? 이제 알았다. 이건 웜홀은 웜홀인데. 내가 도착한 여긴 예전 내가 살던 세상이 아니라 지구 동공세계라는 걸. 왜냐하면 웜홀 안에서는 중력이 무력해지던가 뭔가 특수하게 역학을 만들어냈을 테니까. 그럼 과거 우리집과 여기는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동기화될 테고. 그건 괜찮다만 차이점은 뭐지? 그야 차차 알아가면 그만.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고. 그나저나 대런 집에 두고 온 내 애마는? 근데 이제 보니 이거 순 개꿈 같잖아? 근데 또 꿈은 아니란 말이지. 뭐지 이거? 뜬금없이 요술이 하필 나한테? 그럴 리는 없잖아. 그렇다고 돈벼락 대신에 개고생을 면해 신나도록 놀게 해주겟다는 귀신의 농간도 아닐 테고. 일단 두고 보는 수 밖에.
3
몽상은 덧없다. 그렇다고 점성술을 이제 와서 독학할까? 환상이 깨지지 않았다면 한번 도전해볼 텐데. 핑계마저 권태와 친해져버렸다. 따라서 타로 카드로 사랑의 점을 치는 일, 나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난 깨달았다. 그렇다고 사랑의 종식을 선언하는 일은 아닐 텐데. 이건 아마 젊음을 질투하는 방증일까? 아 잠깐! 아니다. 번뜩이는 착상이 떠오를 뻔 하다 말았다. 매번 이런 식이다. 이래서 낭만도 행복도 신비도 사랑마저 우리를 배신하는 건가?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아닐 것이다. 설마 여자들이 원하는 이상을 내가 만족시켜줄 줄 몰라서 이러나? 역시 아니다. 그런데 왜 나는 바보 같은 관념론자가 되어버렸을까. 왜냐하면 나는 뭔가 고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최근 어떤 뉴스인 한 연예인이 유흥업소 실상으로부터 마약 어쩌고저쩌고. 실은 그 당사자는 나니까. 근데 어쩌다 대타로 톱탤런트는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그럼 아니라고 말을 하지. 출국금지 당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인데. 못 나갈 걸 아나 보지? 관심없다. 그야 환상소설과 무관하니 넘어가기로 하고. 어찌 됐든. 고독과 가난과 허무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나는 회심의 도전을 감행했다. 그건 바로 스타벅스 취업. 허나 연락없다. 곧이어 나는 버거킹에도 노크했다. 그럼 뭘 하나. 맥도날드는 고객층마저 어려서 포기한지 오래다. 이 마당에 허쉬 주식마저 날 골탕먹인다. 괴롭히는 순번들이야 끝이 없다. 어쩌란 말인가. 하오나 인생이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희망을 노래하는 연기도 하지 않겠다. 현실을 외면할 순 없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뜻밖의 행운을 수배한다고 녀석이 나한테 잡히나? 어림없지. 아마도 야망과 난 부적절한 관계인가 보다. 그야 어떻든 나는 상심과 작별해야 한다. 근데 어떻게? 그게 문제다. 뿐만 아니라 기분도 별로다. 이 마당에 분위기를 어떻게 바꾸지? 못 바꾼다. (절레절레)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스콜이 찾아왔다. 커피를 마시며 한다는 얘기가 글쎄,
「너가 무슨 웜홀을 발견했다며?」
「그건 어떻게 알았어?」
「레이다 망에 다 걸리는데 어떻게 모르니.」
「그럴 리 없는데. 난 아무한테도 말 안했거든.」
「블로그에 뭐 적다 지웠지?」
「응.」
「자세한 건 말할 수 없고. 대체 거기가 어디냐? 믿진 않지만 확인은 필요하니까.」
「가보게?」
「응.」
「너랑 나랑?」
「아니.」
그때 친구들이 떼거지로 나타났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이럴 줄 알았다.」
「내가 이래서 개구멍을 신뢰하지 않아.」
「딴 길이 나온다면 몰라도 왜 하필 시멘트로 막혔냐?」
「그러게 말이야. 하긴 기대도 안했잖아?」
「그만 흩어지자.」
언제 내가 녀석들을 불렀나? 왜 지들이 난리야. 근데 이건 또 언제 막혔지? 뻔하다. 처음부터 재미없었으면 말도 안 해. 그러니까 왜들 찾아와서 말이야. 아주 그냥 인생이 꽉 막힌 꼴이다. 이렇게 된 거 한동안 여기 눌러앉아 말아. 아니다. 그렇게 나는 웬 휴양지 호텔을 물색해서 그곳에 정착했다. 그러나 성과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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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내가 심하게 능청떨던 적이. 그러니까 뭐라 그랬던가. 아마도 나는 늙지 않았다? 당연히 거짓말이다. 이러니까 어른들도 엄살로 어디서 빠지지 않지. 아니 그럼 나는 어른이 되기 싫다는 말일까? 그러든가 말든가. 게다가 되기 싫다면 안 늙나? 아니지 않나. 심지어 마음만 젊으면 뭐 하나. 물론 말이 그렇단 거다. 그런데 이 얘기를 왜 갑자기 해야 하지? 꼭 중요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한번 생각해봄직 하니까. 즉 애들은 심심하다를 말하거나 드러낸다. 근데 어른은 반대로 바쁜 척한단 말이다. 이래서 어느 헤어드레서가 그랬었나? 여대생조차 3,4학년 넘어가면서부터 눈빛만 봐도 다르다고. 그게 그 얘기였구나. 맞어. 그래서 4학년 졸업반 그녀가 졸업 후 계획을 물으니까 괜히 발끈했던 것이로군! 아하 정말 그래서? 정말로 1학년과 4학년의 그 극명한 대비감을 생각하면 왠지 짠하단 말이야. 안 그럴 수가 있나! 하긴 문화센터에서 나오는 할머니들 헤어질 때 인사말 가운데 하나도 그거다. 나도 바빠! 뭐? 누가 안 바쁘다 트집잡을까 봐 미리 엄포하는 것일까? 또는 약속 없음에 대한 불만? 아무도 날 귀찮게해주지 않는다는 서운함 때문에? 아님 나만 인기 없음에 대한 짜증? 대체 왜지? 응?
물론 대딩 1학년의 초롱초롱함이 너무 빛나니까 3,4학년만 되어도 환멸 어린 시선일 수 있단 얘기. 그러다 황홀한 사랑에 빠져들면 다시 우리들은 설레기를 바라는 게 인생일까? 왜 아니겠어. 허나 그때만 해도 프리지아 꽃향기 같던 스무살이 불과 몇 년 차이로, 세상사 다 안다는 듯하거나 권태로운 늙은이 마냥 덜 젊음이라니. 결국 툭하면 응석. 투정. 그마저 재미? 삶이 별거 있겠냔 말이지. 말이 그렇단 얘기고.
정말로 어른들은 왜 애들처럼 심심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평범함보다 특별함이, 가난보다 부유함이 빛나니까 그럴 테지만. 어떻게 보면 탄생과 멀어지고 죽음과 가까와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남편의 기일을 챙기는 부인의 열의, 나는 시간과 비례하여 줄어드는 그 마음을 얘기하고자 입을 떼었는데. 그러자마자 청자였던 누나도 그랬다. 할 일 없어서 그런다고. 이걸 어떻게 바로잡나. 무슨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내용은 모르겠다만. 할 일 없음을 부정하지 않는 필자 입장에서, 나는 할 일 없음에 알고 보면 극히 예민한 어른들에게 시간에 정비례하는 열의 얘기는 꺼낼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내심 그런 건가? 늙은 것도 서러운데 연가의 주인공도 못해봤지 근데 심지어 할 일까지 없으라고? 아닐 수도 있다만 그래서 때로는 대화할 때 말수부터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아니 근데 이 얘기가 왜 갑자기 떠올랐지? 그동안 약간 쌓였던 부분도 있겠으나 아마 어제 사촌형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젯밤 꿈에 엄마를 만났거든. 부드러운 엄마 배를 만지면 잠들어 포근했는데. 그런데 의식이 깨자마자 숙취가 (절레절레)! 좋다 말았어. 어쨌든 사촌형의 쓰잘데기 없는 다변. 들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이 양반도 자기 잔소리를 끊거나 반론하거나 귀담아 듣지 않으면 싫어하기는 마찬가지. 속도 어른이다 그 말이지. 만약 말 좀 통하는 게 그렇게 어려웁습니까 라고 조곤조곤 반박하면 대번에 삐진다. 그 뒤로 말 안 함. 이상하게 어디서 지령을 받았는지 코메디에서나 재미있는 바로 그, 어? 그건 아닙니다 화법! (절레절레) 미쳐버림. 갑갑. 답답. 말하기 좋아하는 양반 늬가 말 잘 들어줘라 라는 누나의 말처럼. 누구가 내 말 잘 들어준다는 병풍 애호가들. 기억난다, 꽉 막힌 친구의 막말 오빠가 참으라는 제지. 아직도? 그러니까 언제까지! 봉이 괜히 봉이냔 말이야. 그렇다고 말수 없는 어른들이라고 내가 아무 얘기나 해도 되냐. 하면 아니다. 당연히 비위에 맞는 말만 딱 골라서 것도 까다롭게. 하물며 병풍으로 낙인 찍혔으면 말 다 했겠지.
어찌 됐든 처음에 능청으로 시작했던 논제는 은근슬쩍 변주를 계속한다. 가만 놔뒀다가는 막 이상한 쪽으로 흘러갈 것 같음. 그러게 어제 좋게 혼자서 햄버거 사먹을 걸 그랬단 말이지. 수제 소고기 패티에 치즈를 녹여서 후라이팬에 잘 구운.. 아니다. 그야 언제든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럼 능청 적당히 떨자 라고 결론을 내려 말어?>
~라는 수필을 어떤 주간지에 게재했는데. 그곳에 차곡차곡 쌓였던 원고료는 결국 하나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폐간과 더불어 연락책, 담당자, 무슨 부장인가 뭔가 모두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웬 어른들이 날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선생님과 중요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저와요?」
「네.」
「시답잖은 주제가 아니라 무슨 긴요한 말씀을 나누기 위해서라구요?」
「네.」
「그럴 거라면 번짓수를 잘못 찾으신 거 같은데요. 왜 하필 같잖은 저와 수다도 아니고 대담을 하실려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으신다구요?」
「그럼요.」
「그래서 설명할 시간이 필요한 거죠. 어때요? 생김새만 딱 봐도 뭔가 분위기 있지 않습니까? 선생께서 무척 흥미로워하실 거라고 내 장담합니다.」
「저를 잘 아십니까?」
「글쎄요. 그야 아냐 모르냐로 단답하기 곤란하군요」
우리는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들은 무슨 자기들이 웜홀 연구회라고 했다. 한명은 유체이탈을 쭉 설명하드니 누군가 또 어느 저명한 학회에 몸담은 이력을 설명했다. 어떤 교수직 명함과 더불어 논문을 보여주기도 하고, 노트북을 펼쳐 이것저것 정신없이 설명했다. 듣고 보니 처음에는 납득 가지 않았으나 난 결국 설득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결론은 무슨 내가 저번에 웜홀을 경험한 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됐기 때문이라나?
「요약하자면 제가 영혼만 먼저 이쪽으로 건너왔을 때 그럼 당신들이 내 육체를 이곳으로 옮겨다 놓으셨다는 겁니까?」
「믿기 힘드시겠지만 사실인걸요.」
「그걸 뭘로 증명하시겠소?」
「재현이라도 할까요?」
「못할 건 없지만서두. 그건 하지 않는 게 좋겠소.」
「그럼 형씨한테 최근 발생한 신기한 현상에 대해 우리가 맞춰볼까요?」
「네?」
「아마도 우리가 알기로는 선생께서 요즘 무척 가위를 많이 눌리신 걸로 아는데.」
「그건 어떻게 알았소?」
「우리가 파이어니어 10호, 파이어니어 11호, 보이저 2호를 해킹해서 선생의 영혼 이동 궤적을 추적했으니 알게 된 거죠.」
「뭐라구요?」
「우리는 사실 선생께서 가위눌릴 때 자신이 방의 천장으로 올라가서 누워있는 본인 육체를 보는 걸 예상했다오. 그럼 그 다음 수순은 무엇이겠소. 형씨 같은 인물은 당연히 천장이 없다면 어디까지 가나 보자 라면서 자신을 시험했겠죠. 그렇죠? 그럼 그게 대기권을 벗어나기를 기다렸다가 가까운 행성의 불규칙 위성. 인간들이 외계로 보낸 비행선들. 즉 무인선들 말이오. 카시니-하위헌스호. 갈릴레오호. 뉴 허라이즌호. 스파이어니어 계획 10호 11호. 율리시스. 그 외 대체 몇 개의 무인선들이 지구 밖으로 보내졌는지 아시오 모르시오? 그렇다고 여기서 팔분의자리 델타토성 횡단 소행성, 그리고 낙하형 탐사정인 갈릴레이 탐사정에 대해 모두 설명할 수는 없소. 아무튼 지구인들은 이미 예전에 심우주 공간 탐사에 막대한 성과를 거뒀는데. 우리는 그런 탐사선들이 공군기지에서 보내질 때 이미 당신 같은 인간의 영혼 이탈을 추적할 수 있는 몇몇 장치들을 몰래 그 우주선들에 심어뒀다오. 자, 지금 밖을 봅시다. 어둡죠? 왜 어두울까요? 밤이라서요? 아닙니다. 저번달에는 캘리포니아주 전체를 가릴 만한 우주선이 당신 집 위를 가렸기 때문이고. 오늘은 태양계 바깥에 저 먼 은하계의 초 거대행성의 2중 그림자가 지구와 태양 사이를 가렸기 때문이라오. 아직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시겠지만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자, 이쯤에서 우리와 좀 가주셔야겠소.」
「같이 가자구요?」
「네.」
「어디로요?」
「가보시면 알게 됩니다.」
「이 사람들이 웬 허튼 수작이오. 나는 드라마를 많이 보지 않았소. 그래서 당신네들이 그냥 바보로 보인단 말이오.」
「왜 무슨 바쁜 일 때문에 망설여지오? 딱히 직업 없잖소.」
「그럼 내가 바쁘지 않단 말이오?」
「바쁘시죠. 그럼요. 왜 우리가 모르겠어요. 다 압니다. 허나 현재 조기축구회에서 형씨를 모시기 위해 애쓰나요? 아니죠. 그럼 지금 떼돈이라도 벌고 계십니까? 아마도 쫄쫄 굶지 않으면 다행이겠죠. 그렇다고 친구들과 모임에서 만나 기쁨과 슬픔과 행운에 대해 토론이라도 하기로 했나요? 상상 연애만 하고 계신다는 거 다 압니다. 허나 어른이 되기 싫으면 뭐합니까. 이미 어른인데요. 그럼 이제와서 웜홀 머신을 발명하실려구요? 불가능하잖아요. 아니면 뭐 환상학이라도 창시하실 계획이 있다?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랄께요. 안 그래도 사진 찍으신지 오래되셨죠? 삶이 재미없단 증거네요. 인생이 따분하시죠? 불행론에 대해 쓰셔도 많이 쓰실 수 있겠네요. 이런 판국에 저희와 함께 하지 않으실 이유는 또 뭔데요. 자, 앞으로 펼쳐질 흥미로운 모험이 내심 기대되지 않습니까? 마음을 굳혔군요. 허나 이미 늦었습니다. 거 보아하니 큰일 못하실 분이네. 관상도 우리가 찾던 개상이 아니오. 게다가 피부도 갔어. 어?」
「아니 왜 갑자기 설변의 품위를 놓아버리시는 거요?」
「왜냐하면 여자친구가 천문대 놀러가자고 하면 갈 거면서 지구는 구하기 싫어하는 성격에. 더더군다나 빈털털이. 그건 좋다 그거에요. 우리 웜홀 동호회에서 최신 노트북 조차 선물하지 못할 형편인 거 같소? 불신 가득한 험담 머신이오 뭐요? 잘못했소 안 했소?」
「거 사람을 너무 몰아붙힌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오?」
「그러든 어쩌든 선생은 우리가 찾던 사람이 아니오.」
「뭐요? 말 다 했소? 당신들이 뭔데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시오. 내가 물건이오? 그렇소? 누가 쥐었다 폈다 하면 쥐어졌다 펴칠 줄 아시오? 이 거 사람을 뭘로 보고...!」
「아니 글쎄 형씨가 어쩌다 이 꼴이 되셨는지 거 참 걱정이군요.」
「뭐, 뭐요? 안되겠소. 내 북미항공우주사령부에 형씨들 작전을 모조리 신고해버리겠소.」
「그러지 마시고 좋게 천체 관측 기초부터 숙달하시는 게 어떻소?」
「뭐가 어쩌고 어째? 내가, 어? 내가 마음만 먹으면 마른 오징어를 쥐어짜서 꽤 큼직한 물컵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오. 알아? 참다 참다 별 뭔 개똥도 아니고 무슨 이런 개뼉따구...」
「형씨! 말이 심하십니다. 어쨌든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 거 같소. 조만간 A급이 형씨를 찾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소. 거기까지만 아시죠.」
「그건 또 무슨 속임수요?」
그들은 떠나버렸다. 정말로 우리 인연은 짧고 이상했다. 괴상했다. 뭐지 이거?
5
어느 날 친구들과 카페에서 떠들던 중 누가 제의했다. 캠핑가자고. 에드워드는 차박이 좋다, 브루스는 아니다 백패킹이 낫다, 그러던 중 스티븐은 그랬다. 뭐라 부르든지 목적지가 더 중요하지 않냐 나는 무인도로 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그런데 못 갈 이유 있나?」
「나 내일 회사 가야하는데.」
「사표내. 못 간다고 전하란 말이야.」
「그래. 너 회사에 기력 다 뺐기고 어쩌다 불행까지 겹쳐서 나중 재산 탕진하면 어쩔 거야, 어?」
「지금 아니면 청춘열차는 떠나. 천국으로 가는 로켓에 탑승하는 데 무슨 고민이 필요하니. 안 그래?」
「맞어. 혹시 알아? 보물섬이면 좋고 아니어도 영화 찍을 수도 있잖아. 나중 늙어서 형씨는 젊어서 백패킹도 못해보고 뭐했수? ~라고 핀잔 들으면 뭐랄 건데!」
「나도 반대하지는 않아.」
「그럼 너가 수륙양용 배자동차를 공수하면 되겠다.」
「그건 너무 거창하니까 우리가 봐주는 게 어떨까. 조촐하게 카약 4대만 기부받자 쟤한데.」
「자, 내가 이럴 줄 알고 노트북 챙겨왔잖냐. (웹사이트에 올려진 사진을 보여주면) 여기 어때? 끝내주지?」
「이 정도면... 굳이 드라마 보면서 대리만족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런데 말이야 경치는 좋은데. 거기 희망은 있을까?」
「희, 뭐? 차라리 여자는 있을까 라고 물어보지 그랬니.」
「그건 너무 속보이잖아.」
「너 원래 속보이는 놈이야. 우리는 속이 없고.」
「그러든 어쩌든 지금이 아니면 이제 우리 열정은 바닥난다고 생각한다. 뭘 해도 재미없는 인생만 해도 벌써 얼마인데.」
「근데 늬들 텐트는 칠 줄 아니?」
「그거 금방해. 식은 죽 먹기라고.」
「말이 쉽게 나오는 거 보니 알만하다.」
「나는 파라솔 빨간 거랑 노란 거 준비할께.」
「그러지 말고 엑셀 파일 새로 하나 만들자.」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풍광 꽤 괜찮은 무인도에서 캠핑 3일차.
「이제 슬슬 지겨워지는데.」
「너 그럴 줄 알았다.」
「그러니까 이제 모험 차례다 그거니?」
「미행이 붙지도 않았고 누가 우릴 추적하지도 않잖아.」
「그러면 탐험할 동굴이라도 있단 말이야?」
「저쪽 언덕 너머에 짓다만 카페가 있어. 장사도 했던 거 같아.」
「정말?」
「그 사장님 도시에서 이혼하고 여기 와서 얼마나 살았을까?」
「근데 주량도 약하고 싫증도 금방이니까 아마 다시 도시로 도망갔을 거야.」
그때 그들 앞에 갑자기 웬 아저씨가 나타났다. 연배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카리스마는 걔들과 막상막하였다.
「젊은이들 언제 왔소. 여기에 낙원이 있는지 어떻게 알았지?」
「도시에서 사랑에 낙담하여 떠나왔다고 치죠.」
「그래서 낭만을 찾았소?」
「혹시 꿈의 대화를 하시자는 겁니까?」
「어허 그렇게 막 들어오면 어떻게 하오. 너무 성급하다 생각하지 않소?」
「그렇다고 환희의 미소를 선생께 엿보일 수 없는 거 아니겠소.」
「그러고 보니 친구들 가운데 형씨가 나랑 꽤 말이 잘 통하는 걸 보니. 여보시오. 저 친구 상태가 제일 안 좋은 거요? 하하하하하. 농담이오.」
「농담이 아닌 거 같은데요. 왜냐하면 바보는 바보를 알아보는 법이니까요. 저야말로 진담이 아닌 걸로 하죠. 하하하하하하하.」
「형씨 가짜 웃음 장난 아니구만 그래.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일행과 합석하는 게 어떻겠소. 내 친구들로 말할 것 같으면 밤을 세워 자랑해도 모자른다오.」
「정말이요?」
「정말이겠소?」
「제가 사람이 그렇게 순진하답니다. 그러니 여자들이 뻑이 갈 수 밖에요. 푸하하하하하하하.」
「그러든 어쩌든 어차피 신혼여행도 아닐 바에야 뭐 생각하고 자시고 할 필요 있나요. 원래 인생이란 외로운 법. 게다가 스위스 특급 호텔 지겹도록 가봤을 테니. 여기서 우리 함께 사과나무를 심읍시다.」
「왠지 모르게 이곳에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 같군요.」
「잘 보았소. 일단 남쪽 해안에 회색 우주선이 난파당해 있고. 저쪽 폐 카페 안에는 관짝이 있거든요? 근데 그 안에 은빛 외계인 시체가 있다오.」
「결국 그걸 우리한테 보여주시겠단 말씀입니까?」
「못 보여줄 이유도 없으니까. 왜, 싫소? 남들은 꿈을 찾아 떠나고 황금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생을 사는데. 그러면서 또 누군가는 UFO랄지 외계 문명의 흔적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하지 않소. 근데 가만히 굴러온 호박을 마다할 이유가 있소? 알겠소. 너무 급작스럽다 그거구만. 하지만 원래 행운이 그렇단 말일세. 어쩌겠소. 세상이 그런 걸. 그렇지만 또 아시오? 그 외계인과 조우해서 웬 영감이 번뜩 떠올라 당신들 중 누군가 갑자기 영화감독으로 데뷔할지 말이오. 아니면 이 가운데 갑자기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도 생길 걸요. 자, 뭔가 재미난 일이 벌어질 거 같지 않소? 어차피 인생은 한 번 뿐이지 않소. 손해볼 거 같소? 이렇게 벌써 친해진 마당에 벌써 불이익은 우리로부터 도망간 듯 하오. 설마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내일 함께 암벽등반을 해도 괜찮소. 아니면 저 앞 더 작은 무인도를 소개시켜 드리겠소. 그러다 혹시 아오, 우주의 창조 비밀에 대해 귀뜸해줄지 말이오. 아니면 뭐 정력가 인생의 제7 전성기 회복을 바라는 거요? 아 글세 말만 하시라니까요. 자, 그럼 불멸의 우주인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소 안되었소? 아직 여자처럼 마음의 준비가 안된 모양이구료.」
「그런데 선생님은 혹시 전직 공포 장르 극작가셨습니까?」
「나 말이오? 난 영화배우였다오.」
「근데 얼굴이 왜 그래요?」
「하하하하하. 형씨 대담하게 웃길 줄 알군요. 내 마음에 들었소. 내가 무려 15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해서 그렇다오. 그렇지만 내 기력이 회복된다면 아마 깜짝 놀랄 걸요.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내 3번의 결혼생활을 모두 얘기해드릴 수는 없고. 일단 자리를 옮겨 내 친구들을 소개시켜드리겠소. 한 친구는 관상가, 다른 한 명은 작명가요, 마지막은 풍수가랍니다. 하하하하하. 물론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형씨들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걸 내 다 간파했다오. 그렇게 타인의 속마음 추측하기만 좋아할 게 아니라 대놓고 늙은이의 마음을 떠보는 건 어떻소. 외계인을 어떻게 만났는지 막대한 재산을 어떻게 모았는지를 말이오. 왜, 내 평판이 속세에서 더러울 거 같소?」
「그런데 형씨 입담은 정말 청찬유수군요. 기가 막혀요. 젊어서 여자 깨나 울렸겠소. 아님 아직도 쟁쟁한 현역이십니까? 장난 아니군요 글쎄. 자, 그럼 즐거운 만남을 이어가 볼까요? 어쨌든 외계인의 부활을 보고 후회할지 아니면 끔찍한 초능력이 생겨 열광하지. 아무튼 두고 봐야 알 거 아니오. 그렇다고 인적 많은 캠핑장에서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를 바랄 거 같지 않으니. 우리의 만남은 정말 기막힌 인연 같소이다.」
「왜 아니겠소.」
그렇게 그들은 폐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NB, 브루스, 에드워드, 스티븐. 그리고 만담가, 관상가, 풍수가, 점쟁이. 그렇게 여러명이 모이게 됐다.
「자, 우리 오늘의 기적에 대한 목도 사실을 무덤까지 가지고 갈까요? 그런 의미에서 축배를 드는 게 어떻겠소. 아 농담이요 농담.」
「그렇게 미심쩍은 눈빛으로 떨지 않아도 괜찮다오. 어차피 청초한 애정을 찾으러 오지도 않았으니 우리끼리 불편해 할 이유가 없단 얘기오.」
「혹시, 외계인의 DNA에 뜻모를 저주가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죠?」
「젊은이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만. 허허허허허. 걱정 마시오.」
「우리가 형님들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는 것도 아시죠?」
「그럼요. 평생 속고만 사시지 않으셨을 테니. 사람 좋은 당신들은 저주받지 않을 테니 안심하시라니까요. 아니면 미녀들을 부를까요? 하지만 첫눈에 반할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건 도시에서도 충분하오. 여기까지 와서 뿅갈 일 있소? 아니란 말이오. 허지만 어디 가서 외계인을 만날 것 같소?」
「근데 외계인이 있긴 있는 겁니까?」
「저 건너편에 거대한 UFO가 있다고 아까 얘기 했소, 안 했소? 모르긴 몰라도 아마 내내 오늘 본 외계인에 매혹된 추억으로 남은 여생은 결코 심심하지 않을 거요. 내 장담하겠소. 왜 내가 미친 것 같소? 난 미치지 않았소. 완전 정상이니까. 아 이제 알겠소. 그러니까 아제들이 보기에는 내 말이 뭐 인스턴트 라면의 뿔은 면발 같다 그거요? 그건 중요하지 않소. 아니 근데 이게 무슨 소리지? 누구 이상한 소리 들은 사람 없소? 내가 좀 예민한가 보구료. 신경쓰지 마시오. 아,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도시를 떠나 공기 좋은 곳에 왔더니 통 피곤하지 않길래 한 이주일 잠을 자지 않았더니 그런가 보오. 괜찮소. 안 그래도 꽃 피는 봄이 저 앞인데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기분이 좋구료. 허허허허허. 자, 그럼 황홀한 판타지를 시작해볼까요? 아직이오. 원래 본경기는 늦게 시작하지 않소. 섣불리 축포를 터트릴 수야 없지 않소. 앗! 저건 뭐지? 저기 저 빛나는 눈빛 여지없이 여우군요. 맞죠? 내 이럴 줄 알았어. 녀석들은 귀신처럼 알아본다니까 글쎄. 그럼 이 근처에 사슴을 비롯해 몇몇 구경하기 어려운 동물들도 모여들었을 텐데. 여긴 동물원이 아니고 우린 서커스단도 아닌데 재밌군요. 허허허허허. 그나저나 도시를 떠나니까 여심을 신경써야 하나 주식 차트를 쳐다봐야 하나. 좋지 않소? 젊은이들은 PC방에서 게임 하면서 막 이거저거 주서먹는 게 천국일 텐데. 우리한테 사는 낙이 뭐겠소. 노래 부르고 춤 추고 마시고 떠들고. (절레절레) 이제 더 못 놀겠소. 정말루요? 말이 그렇단 거죠. 허허허허허.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림 그리기를 배우겠소 아니면 행복론을 작성하겠소. 아무튼 옛날 탈퇴한 UFO 동호회에 관한 일화를 얘기하면 정말 깜짝놀라실 텐데. 말, 할까요? 근데 그 얘기는 진짜로 섣불리 발설하면 안된다는 것만 아시오. 난 챙길 여자의 마음도 많고 탐구할 과제도 산더미라오. 그런데 식겁할 위험을 감수하고서 그 얘기를? 그건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이렇게 별이 빛나는 밤은 캠프파이어와 더불어 그녀들과 신나게 놀아야 제격인데. 젊음의 행진을 고집할 수도 없고 아쉽기만 하군요. 그래도 어떻게 생목으로 누가 연가를 불러보시겠수? 하겠다면 말리지 않겠소. 왜 여자가 없어서 흥이 나지 않소? 아 그러게 내가 아까 부른다 하지 않았소. 그러니까 말리지 말아야지. 허허허허허. 그럼 사랑의 노래 대신에 누가 애달픈 연애 이야기라도 하실 용의 있소? 없는 걸로 하고. 그래도 떨리는 예감을 진정시키며 놀라운 직감을 발전시킨 형씨들은 아마 예측하셨을 걸로 아오. 바로 내가 왜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말이오. 근데 어쩌다보니 본인도 그걸 까먹었으니 애석할 따름. 왜지? 아니 왜! 그러게 말이오. 누구 아시는 분 계시오? 없소? 정말 없소? 있다면 서슴없이 말해주시오. 네? 날 좀 도와달란 말이오. 바람 불어 기분도 좋고 내 님도 언젠가 올 것만 같고. 외계인을 확인한 다음 곧이어 드라마에서나 봤던 커다란 UFO에 탑승하리라는 예감. 엉덩이가 근질근질 가슴은 벌렁벌렁 영혼이 날 떠나버릴 것처럼 들썩들썩하군요. 이걸 어쩐담? 어쩌긴 뭘 어째. 서곡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게임을 끝낼 수는 없는 법. 캬 정말 휴양지 최고급 호텔로 떠나지 않은 게 다행이오. 그랬으면 처음 만난 그녀들한테 시달릴 거 하며 밤새 잠을 재우지도 않을 텐데. (절레절레)! 그러니까 에로영화에서나 봤던 기진맥진한 정력 탈진? 생각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군요. 허허허허허. 농담이오. 혹시 집중력 떨어질까 봐 농이 심했으니 이해하시구료. 그래도 혹시 비너스의 윙크와 아르테미스의 팔짱이 아쉬운 분은 얘기하시구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몸짓). 그야 연애는 끊이지 않으니까 말이오. 식음을 전폐할지언정 사랑을 마다한다? 그래서는 안되죠. 그녀들을 외롭게 해서야 쓰나. 어찌 됐든 축제의 초입부는 희롱의 의미가 아니니만큼 오해하지 말기 바라오. 아니 근데 저기 형씨 졸리오? 어허. 체력이 약하시구만. 아니 벌써? 그녀가 실망하겠어. 상심이 크겠단 말이야. 아 글쎄 입장 바꿔 여자 마음 어떻겠냔 말이오. 안색을 보아하니 음, 내게 조용히 얘기해보오. 내가 코치하면 당신은 밤의 제왕으로 거듭날 수 있으니 말이오.」
그렇게 NB와 친구들은 그냥반의 입담을 듣다듣다 지쳐 쓰러졌다. 누구는 텐트에서 잤고, 누군 의자에서 또 그냥 땅바닥에서.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는데.
「아침이다.」
「낮이야.」
「어떻게 된 거지?」
「뭐 없어진 거 없니?」
「없어진 게 아니라 늘었어.」
「뭐가 늘어?」
「돈이.」
「적선이야?」
「나중 만나게 되면 물어봐야지」
「언제 만나? 어떻게?」
「글쎄.」
「저건 또 뭐야?」
(뱃고동)
뭐야 저기 군함이 오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만담가, 관상가, 풍수가, 점쟁이. 그 4인방이 해경에 신고한 것이다. 사안이 중대하니 결국 군함이 오게 된 거고. 인적 없는 무인도에서 코카인을 키운다나 뭐래나. 어쨌든 공권력자들과 잘 얘기가 되어 그분들은 돌아갔다. NB와 친구들도 도대체 외계인이 어딨나 기웃거려 봤는데. 뭐야, 저기 폐 카페 안에 있는 관짝은 뭐지? 근데 재미난 게 누구 하나 그걸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도시로 돌아가기로 했다.
6
누구에게 선물을 줄까. 미소로 환대받을 기대는 접은지 오래. 그럼 아무도 살지 않는 산속에 사나 도시에 사나 마찬가지잖아? 정말로 다를 바 없다. 그럼 연애하거나 직장에 얽매인 상황도 아닌데 굳이 회색도시를 고집할 필요 있나? 또 떠날 구실에 목마를 방랑자인 것만 같다. 하오나 안될 것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어떤 미녀한테 첫눈에 반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뿐만 아니라 푸른 꿈을 꾼다? 뭘 해도 재미없단 투정도 입 밖에 꺼내는 게 아닌 듯. 가만 보니 현대인들이 옛날에는 소음도 무뎠고 고난도 잘 버텼는데. 그래서 일부러 고생하기 위해서 캠핑을 떠날까? 도시를 못 벋어나도 다른 방편이야 많은데. 근데 누가 내게 넌지시 어떤 탐험을 제의하지 않느다는 점. 하긴 당연하긴 한데. 그렇다고 발가벗고 미친놈처럼 거리를 뛰어다닐 수도 없고. 푹신한 소파를 바꾸자니 귀찮으며. 어떤이의 변태적인 취향을 비평할 의욕도 없는 데다. 이처럼 언제까지 권태와 다퉈야 하지? 극장에 가볼까 아니면 오페라하우스 근처에서 뮤직비디오 주인공처럼 거닐어볼까. 아니 근데 분홍빛 도시의 심연에 관한 철학을 책으로 써볼 궁리를 왜 해야 하지? 이러다 혹시 빨리 늙어버리면 어떡하나 라는 겁. 그 엉뚱한 공포심은 여지없이 나를 휴양지 호텔까지 옮겨다주었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이곳의 정경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사석에서 말하기로 기가 막히다는 둥 어쩐다는 둥. 간략해 말해 왜 진작 바람과 바다와 여행자들이 많은 이곳에 오지 않았을까 의아할 따름. 그러다가 내가 젊은 백패킹족들과 어떻게 만나게 됐냐? 별다른 우연이 아니라 그냥 드라마에서 보듯 얼렁뚱땅 만나게 됐음. 자, 그렇게 만나게 됐다 치고.
「해안 산책로를 걷던 아저씨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저분 혹시 실연당하고 홀로 여행중이시지 않을까? 기분은 침울해보이고, 분위기는 패배자 같으며, 왠지 모르게 타락한 과거를 회상하는 듯 하단 말야.」
「허허허. 자네는 시인인가?」
「제가요?」
「뭘요. 얘는 그저 방탕한 한량일 뿐이에요.」
「그런데 선생님은 저 특급호텔의 최고급 객실을 놔두고서 왜 여기 맨땅에 원터치 텐트를 설치하셨죠?」
「나의 재산내역을 대번에 꿰뚫어보다니. 자넨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지 굳이 궁금해하진 않겠네. 우리 모두 남자지 않나. 허허허.」
「그나저나 이국적인 정취에 얕은 수심. 따듯한 수온. 간지러운 바람. 해수욕장에서 수영하는 건 어때요? 하지 말죠. 낮에 많이 했어요.」
「젊은이들 너무 놀아서 피곤한가 보군. 그럼 자네들 사정을 내 한번 맞춰볼까? 음, 뭐랄까 여자도 지겹지? 놀러와서 처음엔 재밌었는데 이상하게 도시에서 능청떨던 때랑 똑같아진 거 같지? 각자 다 핸드폰만 쳐다볼 꺼면 왜 뭉쳤나 속으로만 생각했을 테고. 누군가 풍력발전기에 올라가보자고 제의했는데 반응 별로였고. 나이트클럽 갔다가 실망해서 여기서 나를 만났을 테고. 그럼 매력적인 추억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해볼 감성은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뜬금없이 새로운 모험을? 게임 뿐만 아니라 영화도 요약해서 보는데. 사서 고생을 왜 해. 허나 멋스러운 해변에서 파도소리에 가슴은 울렁거리는데. 파라솔 밑에서 촌스럽게 통기타 치면서 노래를 불러? 아니지. 빨간 목마등대에도 가봤겠다 서퍼 해봤다가 바닷물만 왕창 먹었겠다 승마로 전환했는데 괜히 애마부인 생각이 나네? 더 촌스러워짐. 그러다 살면서 한 세 번 볼까 말까한 울긋불긋 노을을 보며 수상한 제7의 호객꾼을 상상했을 텐데. 그게 바로 난가? 아니라면 서운할 일도 아닐 텐데. 그렇다고 우리 인연이 그저 그렇게 영화처럼 오다 가다 옷깃만 스쳤을 뿐인 걸로 착각하진 말세. 왜냐하면 오늘 밤 외계인을 만날지 알라스카만한 UFO 불시착지를 구경하게 될지 예측할 수는 없으니까. 어딘가 모르게 흔하디 흔한 외모의 소유자였던 이 아저씨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나? 난 외국인도 아니고 혼혈도 아닌데. 이 냥반 대체 우리를 무지개빛 꿈의 세계로 안내할 영도자라도 되나 뭔 자신감이야 어떤 심보야 막 그러면서 궁금해지나? 약간 과장해서 그럴 수도 있는데. 그런데 하나 힌트를 숨기지 않자면 요 앞 해안도로를 따라가다가 샛길로 빠지면 뭐가 나온긴 나와. 여행객들은 몰라. 내지인도 아는 사람이 없는데? 허나 나는 알지. 그런데 왜 카약을 타겠나 뭐 하러 인근 도심지로 술 마시러 가겠나. 아, 맞다. 자네들 목마르겠군. 내 차 트렁크에서 짐 좀 가져다 주겠나? 가서 보면 조니워커 블루. 평생 1번 마셔볼까 말까한 이름 모를 와인. 캐비어. 특급 치즈. 뭐든 있어. 다 가져가게. 아, 코카콜라 1.5와 펩시 2배 농축음료도 있다네. 이참에 한정판으로 대주주들한테만 은밀히 전달한 뭐더라 일라이 릴리의 환상음료. 그거도 있어. 다만 발설은 금물. 거만 지키면 돼. 자네들 다 마셔. 근데 안타깝게 난 생각이 없어. 자네들 먹는 거만 봐도 기분이 좋거든. 이렇게 잔치 중에 내 깜짝 선언을 할 수도 있어. 혹시 아나 내가 까무러칠 만한 숙녀들을 소개시켜줄지? 사람일은 모르는 거야.
그러고 보니 깜빡 잊을 뻔 했는데 말이야. 외계 생명체를 보더라도 놀라지 말게. 녀석이 살아있든 그렇지 않든. 더군다나 한번 그 눈빛을 보게 된 사람은 정신이 조금 이상해지는 게 문제야. 당연히 그 비밀을 발설하면 어떻게 된다는 건 드라마에서 많이 봤을 텐데. 현실에서도? 정말로 그걸 말하지 않고는 못 베기더군. 왜? 제정신을 벗어나니까 그렇겠지. 아니 왜 내 얘기가 말도 안되나? 그러겠지. 안 그러면 이상한 거니까. 그래도 딴 노인네보단 어딘가 마음에 맞지 않나? 맨정신보다 오히려 이게 낫지 않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단 여기 펼쳐진 음식만 해도 나쁘지는 않잖아. 자, 이제 서풍은 멈추고 남서풍이 시작해서 비가 올 듯 말 듯 신비로움을 고조시키게 될 텐데. 음 풍향이 바꼈군. 이럴 줄 알았어. 마침 저 앞에 파랑새가 나타났군. 봐 봐 진짜잖아. 다만 사진은 찍지 말게. 앞으로 또 보게 될 테니까 말이야. 나는 저 새들이 부러워. 허나 우리는 인간인데 어쩌겠나. 그러니 아무때나 여자를 꼬시겠단 얘기는 아닐세. 그렇다고 그녀들의 유혹을 야단쳐야 하냐 것도 아냐. 그래도 우리가 적어도 지금은 세상을 재밌게 살고 있는 거 같지 않나? 어떻게 아직도 출출하면 배달음식이라도 시킬까? 아무때나 말하시게. 문제될 게 뭐겠나. 이런 기회에 우리 사진도 같이 찍세. 또 어플로 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려. 그런데 신비라는 토끼와 낭만이라 불리는 사슴은 남자들끼리 있으니 논하지 않는 게 좋을까? 어허 여자 얘기 하지 말라니까 글쎄. 아 내가 했나? 안 취했는데 왜 이러지. 그냥 취한 척한 거야. 왜냐,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취해본 적이 없거든. 그나저나 젊은이들 가운데 저 친구. 내일모레 출근할 생각하나? 잊어버려. 그건 그때 가서. 아니면 때려쳐. 어? 내가 책임질 거냐고? 말이 그렇다 거 아냐. 응? 그래도 갑자기 내 예언 하나 하지. 낼모레 새로운 여자가 자네한테 꽃 들고 찾아갈 걸세. 두고 봐. 첫눈에 반할 테니까. 아주 그냥 홀딱 반할 거라고. 솔직히 말해 환장할 걸? 왜 상상만 해도 즐겁나? 봐 봐 입이 귀에 걸렸군. 이렇게 웃음을 참지 못하는 걸 보니 정말로 우리가 UFO를 보게 될 징조인가 보군. 징조? 정말로 풍랑과 파도가 거칠어졌는데? 이거 황금 같은 휴가에다 공짜 점보기라. 썩 안 어울리는 건 아냐. 그러지 말란 법도 없고.
그나저나 우리가 잠시 후 외계인과 독대할 시간이 가까와 오는데. 내가 예전에 마술사로 활약하던 시절 얘기를 해볼까? 그때 난 주술사도 겸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어쩐지 그 얘기는 지금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그래 아껴두기로 하지. 그나저나 이제 운명의 서막이 가까와오는데 자네들은 흥분되나 몰라도 난 아니야. 난 걔네들과 이미 친해졌으니까 말이야. 어떡하다 그렇게 됐을까? 그걸 모두 얘기하자면 1,000부작 드라마로도 부족할 텐데. 그래도 자네들 설마 무섭지는 않지?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딨나. 걱정 마. 외계인이 자네들을 잡아먹진 않을 테니까. 그런데 우리가 오늘 못 만났으면 어땠을까? 차라리 만나지 말 걸 그랬나! 그야 두고보면 알겠지. 왜겠나, 공포 체험한다고 친구들끼리 공동묘지로 가는 거보다 외계인과 조우하러 가는 게 낫지 않겠어? 그렇다고 오늘 기억이 나중 통채로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말게. 드라마랑 현실은 같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하니까 말이야. 아니 근데 내가 말이 너무 많은가? 하긴 적진 않지. 허허허. 어쩌겠어. 가는 세월 붙잡을 수가 없는데. 하긴 늙는 게 아무렇지 않다가도 때로는 조금쯤 끔찍하긴 해. 어쩔 수 없어. 그래도 내일은 기대 돼. 사랑은 또 오니까? 내가 오지 말란다고 걔가 내 말을 듣나? 이러니까 여자들이 뻑이 가지. 뭐? 넘어가자구. 그러고 보니 자네들 가운데 실연당한 친구가 있군. 그냥 평범한 이별인가? 상사병은 상사병으로 치유하란 말은 하지 않겠네. 더더군다나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남 얘기라고 속 편한 소리 쉽게 하는 게 아니야. 좌우지간 이렇게 정신없이 떠들다보니 앞날이 보이는군. 미스터리 오컬트 장르는 아니지만. 또 완전히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없어.」
다음 장면은 생략한다. 보나마나 녀석들은 모두 잠들어버렸고. 나는 걔네들 지갑에 두툼히 용돈을 챙겨두고 떠났으니까. 원래 이걸 시도하다 실패해서 망해야 꽁트가 완성되지만. 내 인생은 미완성 코메디일까? 그러든 말든 내일은 뭔가 흥미로움과 아름다움과 신나는 기쁨이 아예 없지 않기를 바래본다.
7
어느 날 내 자동차 조수석에서 웬 비키니가 발견됐더라? 그럴 일은 없다. 내 애마에 다른 사람을 일절 태운 적이 없거든. 잡념이 많아진 걸 보니 색다른 취미를 고민해야 하나 마는 게 좋을까. 빵구난 우산 같은 헛생각 정말 끊이질 않는구나. 하긴 발바닥을 간지럽힐 애인이 있나 정신없이 바쁘기를 하나. 자원봉사도 혼자 하면 재미없겠지. 역시나 전망 좋은 별장은 언제나 날 부르는구나. 그래도 그녀들이 귀찮게 하지 않는 게 어디야. 그래도 최근 내내 심심하다가 재미난 드라마를 한 편 봐서 다행히긴 한데. 반짝반짝 크리스마스는 지났고 해수욕장 개장은 멀고. 그렇다고 이 나이에 친구한테 오리배 타러가자고 조른다? 말이 안된다. 원래 도시의 남자는 고독한 법. 더불어 현대인도 외로운 것. 원래 사람은 혼자. 하여 허탈을 무심코 식탐과 바꾸기도 곤란함. 진짜 뭐 재미난 일 없을까? 있을 턱이 있나. 그러다 그는 웬 캠핑장에 들렀다. 그리고 거기서 솔캠족들과 친해졌다. 자, 이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차차 알아보는 걸로. 그러다 정말로 외계인을 만날지 아니면 UFO 잔소리만 듣다 퍼질지. 그야 두고보면 알것이다.
「혼자 오셨어요?」
「내가 혼자 왔나?」
「혼잣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하시는 걸 보니 넉살이 저보다 위시군요.」
「내가 그랬나? 그러든 어쩌든 난 수컷인데 암컷이 없어 괜히 미안해지는군요.」
「원 별말씀을. 몇 마디 뿐이지만 너무 빙빙 돌지도 말고 곧장 용건을 알려주지 말라는 느낌을 받는군요. 맞나요?」
「글쎄요. 그 느낌이 내 소관은 아니라 난 채점할 수 없소. 그대도 순종적인 애마를 찾는 게 목적은 아닌 듯 한 것처럼 나 또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풍향에 개의치 않는다오.」
「그게 무슨 뜻이죠?」
「내 상태가 썩 좋지 않다쯤 아닐까요?」
「웬걸요. 어쨌든 저쪽에서 솔캠족들 가벼운 파티가 있으니 들려주시면 어떨까 해서요. 싫으시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시면 그만이구요. 저도 저분들 오늘 처음 보는 거지만 지들끼리만 놀고들 난리야. ~라는 핀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요. 제가 너무 인생에 달관한 괴짜 같은 모습으로 놀래켜드렸으면 사죄드립니다.」
「사죄는 무슨. 그 축제에 내가 불현듯 껴들어도 괜찮겠소? 난 그게 걱정이라오.」
「함께 하시면 좋죠. 상상력이 남다르실 것 같고. 그녀들이 봤을 때 뭔가 분위기 있는 듯 하며. 남자들이 판단했을 때 뭐랄까 값싼 말로 쩐주? 농담입니다. 제가 이렇답니다.」
「괜찮소. 나도 그런 농담 좋아하요. 진짜는 아니지만 말이오. 그럼 우리 함께 보 재촉하는 시간을 붙잡아볼까요?」
NB와 낯선 청년은 자리를 옮겨 그곳에 놀러온 솔캠족들은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게 됐다.
「이 고귀한 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요?」
「소중한 추억을 만들면 되겠죠.」
「우연한 인연이니까 너무 막연해지지 말았으면 해요.」
「저도 평범한 거 좋아해요.」
「난 왠지 적응하기 어려운데 내가 너무 솔직한 거오?」
「아닙니다 선생님. 적절한 말씀이세요. 하오나 여기 모인 사람 다 그럴 걸요? 안 그래도 오늘 여기서 솔캠족이란 말 생소하지 않은 사람 하나도 없을 테니까요.」
「그런가요? 그럼 다행이군요. 솔캠족. 허허허. 하긴 우리가 미래파라는 모임으로 나중에도 뭉치는 걸 주장하긴 뭐 하죠. 처음 만나서 헤어질 때 서운하다면 으쌰으쌰 연락처 주고 받는 일. 거북해도 억지로 하지 않겠죠 아마?」
「그럼요. 자, 그럼 이제 수컷을 사냥하러 갈까요? 아, 죄송합니다. 여기 지금 여자가 너무 많으니까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형씨는, 죄송합니다.」
「지금 웃어야 합니까?」
「그럼 화내실 겁니까?」
「자, 어색함은 이쯤에서 해소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UFO를 탐험하러 갈까요?」
「방금 뭐라 하셨오? 저만 아직 모르는 뭔가가 있는 듯 한데. 굳이 알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오히려 그게 더 낫지 않을까요?」
「여러분 시간이 됐습니다.」
「벌써요?」
그렇게 솔캠족들은 웬 탐험을 시작했다. 근데 모두들 너무 빨리 가버렸다. 그래서 NB 혼자 남았는데.
「형님. 여기서 뭐하세요?」
「미처 저분들을 따라잡지 못했는데. 나만 뒤쳐졌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술 마시러 2차 갈까요? 저희 집 어떠세요!」
「그럴...까」
그렇게 그는 오늘 처음 본 솔캠족 형씨와 그의 집으로 갔는데.
「안되겠어요. 전 쟤들 따라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요. 이 시간이 지나면 후회할 테니까요.」
그러면서 그 분이 가버리니 NB 혼자 남게 되었다.
「뭐야 이거! 일부러 날 배려해서 은근히 남겨준 건가? 왜냐하면 중간에 어떤 이유로 뒤쳐지면 분위기 쎄할 테니까? 그러든가 말든가.」
8
나는 꿩 놓친 매 신세일까? 그럼 어떻고 아니면 뭐 하나. 그러든 어쩌든 이제 나는 자유다. 그럼 언젠 자유롭지 않았나? 왜 이렇게 퉁명스러워졌지? 진정하자. 아님 뭘 먹든가. 그도 아니면 뭘로 기분 전환을 하지? 일단 정답은 연애를 하면 된다. 허나 그건 좀 미루자. 늦어도 좋으니까. 무작정 자기 합리화한테 져주지 뭐. 그럼 인생 대전환의 의미로 이번에 사진작가로 데뷔할까? 말이 되는 소리 좀 하자. 물론 안될 거도 없다만 이제 빈말 남발하기에는 인생이 짧고, 적성에 딱 맞는 분야를 지금 찾아 뭐 하나. 어쩌다 뻔트가 좋아져버렸는데. 말이 그렇다만. 점잖게 한분야에 정진하는 분들 도움 못되는 소리 일부러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뭐랄까 시간은 야속하다고나 할까? 벌써 시인이 다 되어버렸군. 만약 그게 아니라면 여지없이 늙은 거지. (절레절레) 아무리 그래도 기계적인 몽상을 이 푸른 여행지에 와서도 하다니. 속 없다. 그러니 철도 없지. 그런데 어떻게 반짝반짝 행운의 그녀와 뽀뽀를 하겠나. 소설을 읽으며 추리를 시도할까 드라마에 빠져 모험을 대리만족할까. 다 별로다. 우선 내 인생이 시시하니까. 하지만 나라고 다정한 추억과 친애하는 사랑을 마다하는 건 아냐. 그럼 뭘 해. 죄다 말 뿐인데. 이래서는 한도 끝도 없겠다.
그래서 나는 일단 숙소 근처 미용실에 들렸다. 꼭 그런 건 아닌데 야한 생각 때문에 머리카락이 금새 자란건가. 아니다. 아마도 난 갱년기일 테니까. 일단 몽정기가 아닌 건 분명하니까 말이다. 그럼 이제 투덜이에서 행동가로 변신한 거다. 자, 중간 설명 건너뛰고 미용실에 어느새 방문했다. 여기서 그녀의 고혹적인 낭만에 유혹당할지 아니면 사랑의 포로가 되어 어떤 숙녀를 나도 모르게 꼬셔버릴지. 그건 오늘의 운세에 맡기기로 하고.
「오빠 혹시 누구 찾으시는 헤어드레서 있으세요?」
「오빠...요?」
「아빠...는 아니잖아요.」
「허허허. 보시다시피 전 지금 농담을 받아드릴 준비가 안된 사람이네요.」
「그럼 어때요. 이미 오빠인데요. 기분 나쁘시지 않죠? 제가 사람을 좀 볼 줄 알죠. 아니면 아니라고 하세요, 네?」
「아, 나의 사랑!」
「네?」
「아닙니다.」
「싱거운 사람.」
「네?」
「저도 아니에요. 근데 벌써 변심한 건 아니시죠?」
「무슨...」
「저로 낙점하신 거 같아서요. 자, 다른 헤어드레서 찾을 필요없죠? 이럴 줄 알았다니까. 자, 악수 한번 하죠. 아니 이건 남자의 방식인데. 오빠가 제 손금을 봐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거도 언제적 멜로드라마야 참. 근데 왜 오빠는 말이 없어요?」
「여긴 미용실이니까요. 난 해설자가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미녀와 함께 하니 썩 싫지만은 않군요.」
「어머머. 은근 절 띄워주시는군요. 어쩜 잠깐이나마 아르테미스가 된 기분이군요. 근데 왜 저한테 잘 보이시려는 거죠? 대답하지 마세요. 아니 근데 제 얼굴보다 제 포니테일을 더 힐끗거리시는군요. 그래도 되요. 안되란 법 없잖아요. 어쨌든 저한테 컷트를 하신 다음 오늘 탐방객으로 남으실 건가요 아님 낚시꾼이 되실 건가요? 제발 난봉꾼만 아니시기를.」
「네?」
「아무말도 아니에요. 가만 보니... 아저씨 친구 없죠?」
「갑자기 오빠에서 아저씨로 바꼈군요. 그러게 처음부터 너무 잘나간다 했다. 괜찮아요.」
「오빠 삐졌어요?」
「찾으시는 헤어드레서 있나 물었죠? 있어요. 여기서 최고 말단 불러주세요. 글쎄 뭐랄까 업계 전문용어 있죠? 아직 데뷔 안한 뭐 그런. 그분한테 저를 맡기겠어요. 시간이 오래 걸려도 좋고 얼마든지 실패해도 괜찮아요. 정 이상한면 삭발하면 되죠. 제가 이 상황에 누구한테 잘 보이겠어요? 그렇다고 삶을 포기하고 막 그런 건 아니랍니다. 물론 그녀들의 미모가 저는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아요. 근데 이건 무슨 얘기지? 알 게 뭐야.」
「그 사람이 바로 저에요. 번짓수 제대로 찾으셨군요.」
「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그녀는 그날 미용실을 그만뒀다. 어차피 때려칠려고 했대나 뭐래나! 설마 나 때문에...는 아니니까 안심. 근데 뜻밖의 친구가 생겨 좋긴 한데. 우리가 과연 사사로운 정을 이어갈 수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연정을 싹틔워도 되나? 근데 아무리 봐도 친구라고 하기에는... 뭔가 이상하다. 그녀가 그냥 내게 여행 안내인으로 남는 게 이상적일 거 같은데. 그러든 어쩌든 나는 그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누군들 안 그러겠나. 뭐 이렇게 된 김에 화가로 직업을 바꾸던가 그 뭐지? 드라마 장소 섭외랑 영화 장면 배경장소 물색하는 직업. 뭐 있다 치고. 아무튼 검은색 렌트카를 최신 샛노란 오픈카로 바꾸기를 잘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를 어떻게 한번 해보겠다는 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아니 그건 남자가 아닌데. 그렇다고 오늘 내일 막 그렇게 자빠트리겠다는 의도를 감추는 건 더 이상하잖아? 뭔 소리야. 어찌 됐든 여기를 내 고향으로 삼든가 아니면 그녀를 내 애인으로 만들지 뭐. 헌데 누구 맘대로? 꿈도 야무지다. 그렇지만 원래 인생이 꿈이잖아? 게다가 다 늙어서 웬 야망? 적당히 소망으로 타협하자. 심지어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게 멋져. 뿐만 아니라 그 주인공이 더 아름다울 거 같은 막연한 상상. 그래서 내가 이 모냥 이 꼴... 그만 하자. 더럽게 재미없다. 이러니 이때까지 봉으로 살았지. 하지만 그게 어때서? 과거는 과거고. 이제 눈부신 미래가 희망에 부풀어... 부풀긴 뭘 부풀어. 개꿈이? 연기자들은 가장 찬란한 순간을 영상에 담아 멋지고, 일반인들도 최고로 경이로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데. 이제 보니 남은 게 없어. 그동안 난 대체 뭘 했지?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잘 기억나지 않아도 언젠가 신나게 놀았던 기쁨도 있었겠지. 뭐 없거나 부족했으면 어떤가. 배 한 척 사서 무인도로 떠나면 그만. 아니면 무인도에 누굴 데려가나 달콤한 상상에 골똘히 집중하던가.
「오빠 무슨 생각해? 오빠 정말 이상하네. 혹시 응큼한 생각한 거 아냐? 나 조신한 여자야. 쉽게 생각하지 마.」
「나 너 쉽게 생각해.」
「쉽게 생각하긴 뭘 쉽게 생각해? 쉽게 꿀밤맞기 내기나 할까? 이 오빠 좀 혼나야겠는데.」
「내가 너한테 왜 혼나? 사랑을 받으면 모를까.」
「애교는 제 껍니다 오빠. 이 오빠 은근 귀여울 뻔 하다 만단 말이야. 이 험난한 세상이 이분을 이렇게 만든 걸까? 그렇다고 우리가 만나자마자 싸운 건 아니니 고로 이 냥반이 나한테 얻어맞은 건 아니잖아.」
「너 지금 누구랑 얘기하니?」
「오빠 그러지 말고 나 술 한잔 사주세요. 에잇 아니다. 술 끊은지 칠 년 됐는데 아깝다.」
「진짜야?」
「아니죠. 뻥이에요.」
「너 지금 나를 갖고 노니?」
「아니 내가 어떻게...! 그래도 똥개 훈련보단 낫잖아요. 아닌가? 뭐 그럼 우리 이제 뭐하고 놀지? 놀이공원 갈까? 아니다. 아님 나이트클럽? 촌스럽게 무슨.」
「뭘 할지 말지 늬가 다 정해라. 날 아주 발가벗겨 놓지만 말아줘.」
「네? 오빠를 홀랑 발가벗겨 주라고요? 아니 어떻게...!」
「아니 숙녀가 그렇게 심한 말을...!」
「아니 숙녀가 그렇게 심한 말을...!」
「너 나 따라하니? 미치겠다.」
「너 나 따라하니? 미치겠다.」
「...」
「뭐 이렇게 된 거 오빠가 나 책임집시다. 응? 오빠, 내 인생 책임져. 그러니까 지금 우리 엄마아빠 만나러 가자?」
「뭐가 어쩌고 어째?」
「그럼 당장 신혼여행 떠나자고? 여기가 여행지야. 근데 어딜 떠나?」
「우리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니?」
「오빠 나한테 실망한 건 아니지? 희망을 버리지 맙시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못 말리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오빠는 옛날에만 가난했던 거 같아.」
「이젠 내 비밀까지 캐냈어? 잘했다.」
「우리 얼만큼 친해졌나 확인하진 맙시다.」
「넌 정말 남자를 툭툭 건드는 재주가 탁월하구나. 아님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만 그러는 거니? 아마도. 아이쿠 맙소사! 그럼 이미 독심술사겠네? 이걸 어쩌지. 내 마음을 들켜버렸으니 말이야.」
「아니 이 인간이. 근데 우리 이렇게 길바닥에서 언제까지 얘기만 해야 하지? 난 썰풀고 어쩌고 그런 멜로드라마 타입 아냐. 어? 그러지 말고 오빠 내 친구 소개시켜줄께. 같이 만나 놀자.」
그날 나는 그녀를 만난 걸 후회했다. 왜냐하면... 비밀이다.
9
다음 날 그녀들이 호텔로 NB를 찾아왔다. 호텔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는데 용건을 들어보니 이랬다. 어제 그만둔 미용실 지하에 비밀 통로가 있대나 뭐래나.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라고 믿는 둥 마는 둥 그녀들을 보내버릴까 하다가. 하는 수 없이 녀석은 팔랑귀를 신뢰해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속아도 썩 손해볼 게 없으니까. 이렇게 한심한 놈이 도시에서 과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을까? 일단 걔네들은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마도 작전을 짜겠지. 계획도 없이 덤벼서는 곤란할 테니까. 인생이야 즉흥연주처럼 사랑에 빠질 수 있다지만 삶이란 계획대로 안되는 게 보통이라지만. 그동안 본 드라마가 얼만데. 그러나 장비도 없어 경험은 더 없어 관련 지식이야 있을 턱이 있나. 하여 NB는 그녀들이 심심해서 놀아줄 사람을 찾나보다 이러다 말겠지 라고 생각했다. 즉 안되면 네비게이션이 경로 수정하는 것처럼 즉시 대관람차 타러가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결국 했냐! 해? 뭘 해? 역시나 그녀들은 한껏 분위기만 고조시키다 탐험하지 말기로 담합했다. 지들이 뭐 공정거래위원회 임원이야 뭐야?
「오빠, 이렇게 된 김에 우리 보트 하나 빌려서 무인도에나 가자.」
「무인도에? 왜 하필 늑대를 데려갈 생각이니? 내가 남자로 안 보이니?」
「그럼 오빤 우리가 여자로 보이는 거야?」
「날 뭘로 보고!」
「이래서 우리가 오빠를 낙점한 거지. 틀렸다면 고쳐쓰지 뭐.」
「틀리긴 뭘 틀려. 날 개조해? 내가 로보트니? 정말 본떼를 보여줘 말어. 오빠가 일전에 발굴가였다는 거 말했니?」
「오빠만? 우린 언제나 방랑자야. 게다가 시덥잖은 도굴꾼 우린 안 쳐줘. 그러니 그 말 안 듣는 개의 주인 같은 표정은 집어치우시지.」
「너 오빠한테 무슨 말버릇이니?」
「오빠~」
「오빠~」
「나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허당이 아냐.」
「그러지 말고 우리 바다 보러 갈까?」
「지난 2주 내내 바다만 봤다.」
「그래서 안 가겠다고? 그건 그렇고. 오빠 나중에 우리랑 계속 친하게 지낼꺼야?」
「너 오빠한테 그런 질문은 금기야.」
「내일 일도 모르는데 너무 멀리 보진 말자. 뭐 그 얘기구나. 찬성. 아울러 반대하면 어쩔건대.」
「반대하면 오늘 사랑하면 그만 아닐까?」
「사랑?」
「누가 누구랑? 어떤 식으로?」
「묻지 마.」
「알았어.」
「근데 오늘 우리 동창회 있지 않았니?」
「남자 안 온대.」
「그건 좀 그렇다. 우리가 무슨 남자에 환장한 조연도 아닌데.」
「너 덜떨어져 보여. 이제 더 이상 고상한 척하는 거 피곤하지?」
「끄떡없어.」
「끄떡없어? 그럼 원래 고상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걸로.」
「너 왜 자꾸 내 신경을 긁는데?」
「왜냐하면 우리와 오빠가 헤어질 시점인 거 같기 때문이야.」
「너도 그렇게 느꼈니?」
이러면서 걔네들은 연락처 교환도 없이 NB를 떠나갔다. 이럴 거면 뭐 하러 왔지?
이래서 NB는 근처에 있는 카페 '쇼팽과 고흐'에 자리를 잡았다.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좋고 아니래도 아쉬울 건 없는 청춘이니까? 방랑벽과 역마살의 차이를 굳이 이 시점에 따져 뭐 하나. 할일없이 일일드라마에 중독될 팔자도 아니고. 여성잡지 보는 그녀의 취미를 트집잡을 마음은 더더욱 없으며. 매력녀, 인기녀, 도화녀, 귀염녀... 로부터 도망가고 싶기 때문임을 부인할 때가 됐는데. 어찌 됐든 엉덩이가 근질근질하던가 아니면 새로운 변화가 절실할 것이다. 대체 세상에서 뭘 찾는지는 몰라도. 슬픔과 이별과 회한의 반대 개념과 부쩍 친해지고 싶을 테니까. 그럼 여행과 사랑이 딱인데. 우연성의 진입장벽은 높고 사랑의 짙음마저 부족하지만 그 두마리 토끼를 다 잡았자나? 심지어 계속. 근데 도대체 뭐가 불만이지? 그야 어른들은 알아도 모른 척. 그렇게 숱한 경험을 바탕으로 백전노장이 되었으나 아직도 소파에 자빠져 TV 채널 돌리는 습관을 그분들은 못 버리셨으니. 우리는 세상이 아직도 궁금한 건가? 아니면 사랑은 신비롭고 금새 식어버리는 연정은 신기하게도 다음 타자를 불러준다는 데 굳이 마다하지 않... 이게 대체 뭔 얘기야? 알 게 뭐람.
한편 오랫만에 그는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여유를 즐겼다. 내친김에 노트북을 켜서 무작정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자기는 왜 항상 새로운 타인만 만나며 살고 있지? 라는 생각. 기존에 알던 친분을 유지하는데 에너지를 쏟지 않아 편하긴 한데. 의도하지 않게 스쳐지나가는 인연에만 몰두하는 삶. 꼭 나쁠 건 없다만. 그렇다고 무슨 드라마 줄거리 같은 사건을 기대하겠나. 더이상 영화 같은 인생을 예감하지도 않는 나이. 그런데 어느 날 함정에 빠졌다? 아니다. 더군다나 흔한 유행을 따라한들 그마저 금새 바뀐다. 마음에도 들지 않는 옷 사 봐야 안 입듯 말이다. 그러고 보니 과거의 방황은 결과적으로 오늘의 떠돌이를 만들어낸 것 같은데. 그러든 어쩌든 심각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저기 저 예쁜 그녀와 눈빛 교환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정말로? 뻥이다. 그렇다고 잠잠한 야성을 불러내봐야 녀석도 소환될 리 없겠지. 때문에 황홀함을 추구할 질주를 왜 하나. 무언가에 맹목적인 열정도 없거니와 환상과 마술과 사랑으로부터 버림받은 것만 같은 감성. 그냥 내버려두는 수 밖에. 그러던지 말든지 어느 요정을 뜻밖에 만날려나? 갑자기? 무슨 애첩한테 뺨 맞을 공상을. 이처럼 그는 엉뚱함이 민첩해봐야 별 이득 없었다. 자, 그럼 이제 어떤 우연을 물색한담? 달콤한 자유. 시간의 정지. 청춘을 회복? 하긴 뭘 해도 재미없어야 정상이다. 안 그러면 이상한 거지. 안 그랬다간 허접한 변덕에 뭔가를 기대하는 게 나을 테니까. 그건 또 뭔 말이지? 알 게 뭐야.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인생은 절대 아니라고 부정해봐야 소용없다. 그러니 결국 우리는 낭만을 포기한 것이다. 우리는? 좋게 말해 NB만 권태에 굴복한 거네. 새로움을 좋아하고 사소한 행복에 만족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 뭐 늙은 개라고? 마성의 환상은 바쁘고 악마의 유혹도 다 얠 피해가나보다. 그러든가 말든가. 그럼 이제 다음 타자로 누가 물망에 오를 것인가인데. 연애? 별로야. 소풍? 지금 하고 있고. 아님 딴 사람들 운동회에 가서 같이 놉시다? 그럼 보나마나 뭐래, 뭡니까, 쉽지 않아 같은 말을 듣겠지. 그러니까 것도 안됨. 이래서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끊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그는 인정했다. 신나는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언젠 안 그랬나. 그저 이보다 더 심심할 수 없어 좋을 따름이지.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단골 카페 점원과 함께 했다.
「선생님. 제가 뭐라 불러드릴까요. 아저씨 아니면 오빠. 이왕이면 후자가 좋겠죠?」
「아무렴 어떻나. 자네 좋을 대로 하시지.」
「속마음을 들키기 싫은신 거죠? 달리 말하면 1인칭으로 주제 파악을 잘하는 건데. 아니면 2인칭으로 내 기분 파악에 훤하니 독심술사던가. 아님 내가 3인칭으로 분위기 파악 못하는 건가?」
「원하는 이성상을 내게 말해보시게. 내가 싹 다 꼬셔줄테니까.」
「정말요? 거짓말치고 너무 태연하시네요. 알고 보면 여자한테 잘 휘둘리시는 데 남다른 소질이 다분할 거 같은데. 그러지 말고 저한테 넘어오시죠.」
「젊은이. 멋쩍게 왜 그래?」
「어머머. 오빠는 뭐 얼마나 나이 드셨다고 그래요?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말이야. 어때요, 제가 마음에 들죠? 싫진 않나 봐. 딴청 피우는 걸 보니. 못 들은 척하시지 마세요 오빠. 어머머 내가 너무 대담했나? 그래요. 저 원래 안 그래요. 근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수줍고 싶지 않다고나 해야 할까? 근데 숙녀가 혼자 떠들게 하시다니.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무엇보다 제가 오빠의 욕망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점. 잊지 마세요. 어쩜 저 음흉한 미소. 사교적인 플레이보이의 흔한 기교가 아니야.」
「그럼 뭔데?」
「뭐긴요. 나한테 넘어온 거지.」
「자네 남자친구와 나랑 아는 사이라면 어쩔려구 그럼 농담을 남발하시나.」
「쉽지 않아.」
「쉽지 않아? 요즘 그 말투가 유행인가 보군. 근데 뭐가 쉽지 않다는 거지?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어. 도대체 뭐가 쉽지 않다는 거야? 응?」
「아아, 쉽지 않아.」
「아 글쎄 뭐가 쉽지 않냐고?」
「오빠 흥분했어요? 재밌네. 웃겨. 날 유쾌하게 만드는 남자. 오랫만이라구요.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구요? 슬플 리 있겠어요. 제 눈을 보세요. 초롱초롱 반짝반짝 뭔가 새로운 사랑에 대한 기대에 흠뻑 부풀어 있는 거 같지 않아요? 그러지 말고 오빠 우리집에 가요. 갑시다, 네? 가자구요 우리 집에. 응큼한 생각만 하시지 않는다면요. 왜요, 싫어요? 싫어도 가야 해요. 우리가 남이에요? 보통 인연이냐구요. 그렇게 멀뚱멀뚱 쳐다만 보지 말고 뭔 말을 하세요. 표정이 그게 뭐에요, 네? 」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그녀의 집에 이미 손님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되어 무르익은 파티 분위기. 동참하란다고 정말로 동참할 만큼 NB는 순진하지 않았으므로 이별은 정해진 수순. 그래서 내친 김에 곧장 다음을 기약하며 떠났다. 오다가다 만난 사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하긴 스쳐지나가는 게 아쉬워 많이들 연락처를 주고 받지만 나중 보면 연락 단 한 번도 안하는 게 거의 다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은 쓸 데 없는 생각이고. 어쨌든 삶이 어쩐지 곧 재밌어질 거라는 기대. 형편없는 공상이 틀림없었다. 그러고 보면 젊음, 소풍, 여행, 연애 같은 걸 바란다는 게 어쩌면 그에겐 욕심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집에서 멀리 떠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감성을 썩 부정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여기서 뜬금없이 전여친을 만나면 어떡하지? 라는 잡념이 떠올랐을 텐데. 불현듯 겨우겨우 잠재웠던 허언증이 도지다니. 그래서 그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급히 자리를 이동했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그러다 어느 게스트 하우스에 자리를 잡았는데. 딱 보니 연령대가 안 맞음. 게다가 모여서 노는 게 뭐랄까 대학교 1학년들의 풋풋한 첫 만남 같은 오리엔테이션을 닮은 듯하지만 뭔가 분위기가 축축하고. 산뜻한 젊음의 기분이 나쁘지는 않으나 너무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느낌에다. 심지어 자기들끼리만 레이저와 텔레파시와 초음파가 오가는데 날 끼워달라 애걸할 수도 없는 노릇. 이건 아니다 싶어 딱 그곳을 나왔는데.
「아저씨. 그냥 가면 어떡해요?」
「그래요. 아저씨만 지금 걷돌다 나중 외로워질 거 같은 예감에 감정 이상해지는 줄 아세요? 우리도 마찬가지라구요.」
「네? 그건 동의할 수 없습니다.」
「뭘요? 오빠는 아무렇지 않다? 아니면 아저씨는 우리가 잘 간파했는데 우리는 저들과 왜 어울리지 못하냐?」
「글쎄요. 그게 그러니까 글쎄요.」
「아니면 이렇게 셋이서 급하게 환상의 조를 짠 게 마음에 안드시나요?」
「환, 뭐요?」
「기분 최고군요. 물론 거짓말이죠. 그래도 잠깐 행복해질 뻔 하다 만 것치고는 심심해진 게 오히려 반갑지 않으세요? 아니라면 청춘을 부러워하지 마시죠. 그저 떠나간 여흥에 아쉬워하지 말고 새로운 만남을 축복하자구요. 왜, 저의 미모와 얘의 (눈짓), 감사하지 않나요? 그럴 수가! 그나저나 시간은 잘가는군요. 어차피 가는 세월 붙잡을 수도 없잖아요. 그럼 재밌게 지내야죠. 왜, 우리랑 어울리지 못하시겠어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를 벗겨먹을 생각도 없고 연애할 마음도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여행객이라고 해서 친구 사귀지 말란 법 있나요? 아니잖아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자기 소개들랑 하지 말기로 해요. 거절하지 마세요. 여자 말 잘 듣게 생긴 오빠. 그리고 그 표정 좀 어떻게 해봐요. 이쯤 되면 제 엉망진창 화법에 서둘러 적응하는 것도 예의 아닐까요? 아님 솔직히 말해요. 우리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구요. 그렇지만 우리가 뭐 결혼할 사이에요? 네? 뭐 셋이서 함께 살고 싶으세요? 그건 아니잖아요. 근데 뭐가 고민인데요! 지나간 시간은 개의치 말자구요. 어차피 떠난 사랑 붙잡을 수도 없잖아요. 아울러 돌아오긴 누가 돌아와요? 또 돌아와봤자 우리가 더 이뻐요. 호호호. 그럼 일단 요 근처 강변을 목적지로 정하는 건 어때요? 싫진 않은 눈치네. 아직 우리한테 마음을 빼앗기진 않았으나 승산 있어보여 좋다구요. 그러든 어쩌든 여자의 내숭 훔치진 맙시다. 딱 보니 오빠는 옛 친구랑 만나서 할 얘기도 없으실 거 같고. 새 친구를 더 반겨하실 거 같구만요. 그렇죠? 그런데 어떻게 우리를 싫어할 수 있죠? 아니겠죠. 이미 마음에 들었네. 완전 홀딱 반했어. 왜, 아니에요? 아니라고 말 못하시구만 그래. 자, 분위기도 좋고 날씨도 선선하고. 그런데 오늘 우리와 헤어지면 다시는 서로 연락하지 말자고 다짐하셨어요? 그럴 마음 먹을 관상은 아냐. 그럼. 자, 어때요? 우리 이미 친해진 거 같죠? 원래 우리는, 아니 오빠는 누굴 만나든 금방 친해지나봐요. 절대 우리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니 안심하세요. 근데 내 친구는 왜 말이 없냐구요? 제가 대신 하잖아요. 아직 스테레오 직전 모노라고 생각하시죠. 안 그래도 자연스럽게 쟤가 앞서가잖아요. 그럼 우리 둘은 앞서 가는 그녀의 각선미를 감상하면 되잖아요. 아, 멋져. 눈부셔. 너무 인상적이야. 오늘 밤 잠 못 이루는 거 아냐? 아니 근데 그렇게 대놓고 보시면 어떡하자는 거에요? 사람 민망하게 말이에요. 지금 팔짱은 제가 끼고 있는 거잖아요. 정말 이러기에요? 이렇게 별이 빛나는 밤에 숙녀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오빠와. 데이트를 하는데 오빠는 늘씬한 저 그림만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슬퍼지는군요. 안 그러게 생겼어요? 이게 정녕 오빠가 바라는 상황인가요? 아마도 제가 썩 사랑스럽지 않나 보군요. 할 수 없죠.
어머머 그러고 보니 도착했군요. 저기 보이는 부엉이 동산. 아시죠,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는 소문요. 출입금지 된지도 꽤 오래죠 아마? 어때요, 함께 가볼까요 아니면 오빠 혼자 가실래요? 그렇다고 오빠는 여기 남고 우리만 들어가라는 건 아니겠죠? 저 안에 뭐가 있을지 왠지 설레는데요. 근데 오빠는 겁나요? 일단 들어가지 말라는 덴 다 이유가 있을 거에요. 그런데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홀수는 괜찮데요. 근데 제 친구는 마음에 안 내키나봐요. 그럼 답은 나온거잖아요. 벌써 결론이 보이는 거 같아 진절머리가 날 리는 없는데. 아무튼 저 안에 대체 뭐가 있다는 거죠? 뭔가 주문을 거는 조각상이랄지 귀신을 만나는 체험을 선물하지도 않을 텐데. 왜 들어가지 말라는 거죠? 누가 그래요? 난 못 들었는데. 오빤 들었어요? 우리가 모르는데 오빠가 어떻게 알겠어요. 이해해요. 그래도 될 수 있으면 여행도 젊었을데 다니라는 말. 오빠도 아실 텐데. 오빠가 늙지 않았다는 걸 지금 증명하면 되잖아요. 그렇게 비너스의 환영을 만나든지 신비롭게도 판도라의 상자를 열든가. 나중 언젠가 우리를 우연히 다시 만나면 절대 모른 척하지 말기에요? 아셨죠? 자, 뭐하세요? 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나요? 그럴 수 있어요. 뭔가 오늘 신혼 첫날밤 기분과도 약간 닮은 구석이 없잖아 있으니까요. 얘, 은근 기대되지? 너도 이런 거 싫지 않지? 오빠, 오늘을 기억해야 해요. 우리 셋이 함께 한 순간을 말이에요. 이쯤 되면 우리가 오빠를 놀리는 거도 아니고 이미 좋아한다는 거. 꼭 말로 고백하지 않아도 아실 텐데요. 그러니까 도전하실 거에요, 말 거에요? 우리는 가고 싶어도 못 간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뿐만 아니라 소년이 탐험을 왜 싫어해요? 우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빠가 저 부엉이 동산을 정복했으면 좋겠어요. 왜냐구요? 왜겠어요. 우리가 오빠를 좋아하니까요. 오빠도 동의하시죠? 그럴 줄 알았어요. 드라마는 이미 시작됐다고 봐요. 우린 이미 영화 주인공이니까요. 자, 곧 있으면 꿈을 이룰 것 같지 않나요? 지난 날 애타게 바라는 사랑 앞에서 망설이던 과거의 내가 꼴보기 싫었던 적 있을 거 아니에요. 남자는 직진이죠. 그럼요. 네? 인생 한 방이라구요. 호호호. 안 그래도 어차피 시작이 반. 네? 게다가 우리도 여자랍니다. 우리를 만족시키는데 오빠의 미래 우리가 책임질게요. 그러니까 시작하면 끝인 거죠. 쉽죠? 어려울 게 뭐 있겠어요. 다만 낭만과 환상과 보물과 쾌락은 물론 모험과 긴장감까지 몽땅 일망타진할 것만 같은 예감. 이미 기분 좋은데요.」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뭔가 있긴 뭘 뭐가 있어. 괜히 한나절 꼬박 출구를 못 찾아 고생하다가 겨우겨우 부엉이 동산을 탈출한 거다. 새벽 다 새고 아침이 되서야 퀭한 눈으로 피곤한 몸을 끌고서. 어쩐지 낯선 숙녀들이 부추긴다 했다. 그러니까 그는 처음 느낀 감정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즉 얘네들이 왜 갑자기 친한 척 하지? 라고 말이다.
10
지금 모험심을 따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야 젊을 때 얘기. 그럼 이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바닥난 건가? 더 이상 늙음을 부정하기도 귀찮을 것이다. 무언가 마음에 끌리는 일이 있나 사랑에 대한 환상이 설렘을 느끼도록 만들어주기를 하나. 그렇다고 그녀들처럼 타인에게 질투받고 싶지 않다는 열망을 감출 수도 없다. 그녀들처럼? 지금 와서 내숭에 쥐락펴락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럼 이제 다음 뻔트의 대상은 무엇일까. 고민할 필요없다. 어차피 열망은 식을 테니까. 근데 이건 너무 허무주의 아냐? 기분이 그렇구나. 허둥댈 일도 없고. 뿐만 아니라 여자는 우리를 안 만나주고? 재미없다. 그러면서 눈 깜짝할 새에 시간만 허비된다. 그렇지만 인생은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둥 도전 의식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둥 인문교양서를 읽기도 귀찮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동기부여 강연회에 가서 예술적 영감을 되찾아볼까? 그래서 그는 여행을 떠나왔지만 하이힐 소리도 못 들었고 비키니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물론 농담이다. 그렇다고 뜬금없이 길 잃은 똥개를 추격할 수도 없는 일. 그럼 아무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뭐 낮잠 자다가 유체이탈 해서 갖다왔다 치고. 자, 그럼 이제 공중부양하는 외계인을 만나러가자며 그녀들을 꼬셔야 하는데. 정말 그러겠다는 게 아니라 말이 그렇단 거다. 왜냐하면 먼저 여자를 귀찮게 하느니 차라리 황홀하도록 유혹당하는 게 편하니까. 그러다 NB는 지나가는 어떤 숙녀에게 홀리고 말았다. 또? 하여간에 심심하면 매혹당하는구만. 그래서인지 아닌지 역시나 금방 잊었다. 말하자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텐데 홀딱 반하면 뭐 하냐고. 일단 말을 걸어 그녀의 혼을 쏙 뻬놓는 건 쉽지만. 그건 일도 아니다만. 또 뻔한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는 귀찮음. 그건 우리를 절망시키는 건가? 그래도 방황에 지쳐 타락하느니 어쩌면 응석과 투정이 낫긴 낫다. 더더군다나 방탕도 의미 없다. 이처럼 번뇌에 압도당하느라 정신없을 때. 그는 도플갱어를 우연히 만나고 말았다.
도플갱어? 정말 똑같은지는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없었으니까. 연애도 그렇다. 사귀는 남녀도 상대의 무결한 무표정과 수많은 얼굴 변화를 알아차리기 전에 헤어지는 게 대부분. 그럼 오래 함께 사는 부부는 서로를 다 알까? 근데 왜 갑자기 얘기가 그쪽으로. 다시 돌아와서.
그렇게 NB는 도플갱어를 한 3박4일 쫓아다녔다. 그럼 이게 추적일까? 어쨌든 그렇게 며칠 지나고 나서 알았다. 상대는 도플갱어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실망했을 테고. 역시나 싫증났을 것이다. 허나 망상이 지나치지 않도록 잘 참았을 텐데. 헌데 기대없이 왜 졸졸 따라다녔던 거지? 무작정 예감이 시켰다고 핑계댈 궁리. 그런 단계도 이미 지났고. 추억을 사진으로만 남기는 것이 아쉬웠을 수도 있는데. 뭐랄까 어떤 특정 각도에서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뭔가 이색적이었다고나 할까? 그럼 특정 각도가 아니라면? 말 말자. 사랑에 대한 꿈도 빨리 깨는 게 좋다는 둥 이성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둥. 차라리 젊은이들처럼 웃고 떠들며 마시고 노래하며 춤이라도 추는 게 나을 텐데. 그런데 이제 그만 가짜 도플갱어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어쩌면 속시원했을 것이다. 그처럼 딱 돌아설려는 찰나 그녀는 NB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죠?」
「네?」
「왜 자꾸 절 따라오시는 거죠?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우리의 동선이 겹친 것 뿐일 테죠. 제가 괜한 오해를 했다면 용서하세요. 왜, 싫어요? 그럼 절 데리고 살던가요. 그건 더 싫다구요? 절 뭘로 보구! 대체 제가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실언을 하는지 저도 알 수 없어요. 그게 다 선생님 때문이에요. 아시겠어요? 낮선 여행지에서 이토록 자주 마주쳤으면 이미 정담이 들만큼 든 거 아녜요? 눈빛은 말했잖아요. 그래요. 솔직히 말하자면 오빠가 저한테 첫눈에 반한 걸로 하죠. 근데 왜 말을 걸지 않았죠? 그게 더 서운해요. 뭔가 이루어질 듯 말 듯 애처롭게 만드는 거. 여자 애태우는 게 그렇게 좋으세요? 맙소사 이 양반 안되겠네. 오빠. 여자 만난지 오래됐죠? 딱 보니 외로워보여. 그런데 굶주린 늑대로 보이기는 싫다? 하오나 남자가 여자 좋아하는 게 뭐 죄인가요? 그러든 어쩌든 더 이상 절 부끄럽게 만들지 맙시다, 네? (그러더니 그녀는 NB의 손을 덥썩 움켜쥐었다) 아니. 제 손을 왜 잡으세요? 아무튼 일단 나가죠. 다음 행선지로 가자구요.」
「네? 네.」
「왜요, 제가 너무 부담스러우세요? 하지만 어차피 도시로 돌아가면 연락하지 않으실 거잖아요. 다 알아요. 하지만 그렇게 자유롭도록 제가 오빠를 가만놔두질 않겠어요. 그 섬뜩한 표정. 마음에 들어요. 어디 더 놀래는 표정 좀 지어봐요. 호호호호호. 왜, 약해요? 어머 센 거 좋아하시는 거에요? 이렇다니까 글쎄. 좌우지간 멋진 경치에 좀 더 흠뻑 취해보기로 해요. 아셨죠? 근데 혹시 저를 푼수녀쯤으로 오해하시진 않았을 거에요. 그러기를 바라니까요. 그렇다고 안심해서는 안돼 오빠. 어쩌다 공상녀로 둔갑할 수 있으니까. 근데 왜 오빠가 뜻밖의 미녀를 만나 곤경에 처했는지 궁금하지 않아? 신경쓰지 말기로 해요. 인생은 짧으니까. 그렇지 오빠? 우리 기쁨과 여흥과 낭만만 생각하자구. 그럴 거지?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근데 그 꺼벙한 표정은 뭐니? 세상은 끝나지 않아. 그러니까 대체 언제까지 과거만 생각하고 살건데. 우리 함께 눈부신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거 어때 오빠? 근데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그렇지만 지금 이 시간은 소중해, 안 소중해? 그러므로 현재 이 순간에만 의미를 부여하자구. 동의하는 거지? 어차피 반대할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 우리 인연의 앞날을 예측할려고 하지 마.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알려고도 하지 말구. 알았어요? 뭘 멀뚱멀뚱 생각하는데! 도시에서 비전 따지면 살다가 이곳으로 도망왔잖아. 아니면 휴가. 또는 여행? 그럼 계획이 무슨 필요가 있어! 자, 이제 오리배를 타러갈 시간이야. 뭐해 안 따라오구!」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그렇게 우리는 푸른 해변가에 도착했다. 노란 파라솔. 하얀 비키니. 넘치는 젊음. 작열하는 태양. 저 멀리 보이는 풍력 발전기. 뛰어노는 골든 리트리버들. 카페에서 햇볕을 피해 쉬는 사람들 등등등.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맙소사!
이때 이름 모르는 동행녀를 누근가 머리를 잡아챘는데. 그게 누구였느냐! 최근 며칠 만났던 여자들이 하필이면 거기서 모두 맞닥드린 것이다. 태풍의 눈처럼 누구는 참고, 누군가는 모른 체하며, 어떤이는 말을 할 듯 말 듯. 그러다 딱 불꽃이 튀기 시작하더니 막장드라마처럼 여자들이 머리끄댕이를 잡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영화에서 흔히 봤던 슬로우모션. 당연히 그녀들이야 시간 지나면 화해할 테고. 더 시간 지나면 각자 일정에 따라 여행을 계속할 텐데. 굳이... 그래서 녀석은 도망갈 따름. 허나 당혹스러움이 믿기자 않더라도 어쩌겠나. 그렇다고 멜로드라마 속으로 풍덩 빠져드는 것 같은 신비스러움을 거부할 수도 없는 것. 다만 여행길을 제촉하며 그녀들과 마추치지 않도록 잘 피해다니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