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198

from 소설 2024. 11. 7. 15:24

    1

    바보 같은 인생은 갑자기 기쁜 삶으로 역전할 수 있을까? 세기말의 종말론처럼 로또 복권 같은 상상. 안하는 게 낫겠다. 그러니 시간아 멈추어다오 라며 능청떨지 않아 좋긴 한데. 근데 그럼 또 재미가 없네? 그러게 말이야. 하긴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일생은 두 번 살 수 없으니. 따라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걸 만끽해야 하는데. 내가 뭘 하고 싶더라? 그게 문제다. 헌데 내가 언제부터 투정꾸러기가 되어버렸을까. 그걸 알아 뭐하겠나. 이제 보니 난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 재산도 없을 뿐더러 의지 역시 박약. 게다가 형편 없는 사랑관으로 어떤 숙녀를 꼬시겠다고. 그렇지만 더 나은 내일이 우리를 기다릴 거라는 예감.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 허나 중년의 삶에 그 어떤 새로움을 기대한단 말인가. 하오나 천진난만한 비관론을 뉴페이스의 종말로 간주할 수는 없는 법. 뭔 말이지? 그러게 말이야. 자, 이제 거창하게 고민할 필요 없단 얘기다. 그럼 기분전환만 생각하면 된단 얘기인데. 그런데 난 왜 툭하면 이처럼 말 같지도 않은 몽상으로 괴로워해야 하지? 쉽지 않아. 쉽지 않아? 뭐가 쉽지 않아. 안되겠다. 그래서 나는 교외 드라이브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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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에서 시골로 금방 넘어왔다. 그렇게 적당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주차장에서 내 애마와 똑같은 모델을 봤는데. 보자마자 가버렸다. 뭐야 만나자마자 작별? 그렇다 치고. 그렇게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나는 왜 산뷰와 벽뷰와 논뷰와 어울리는가를 생각했는데. 주변을 보니 나는 연령대의 평균에서 오락가락. 그 때문에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늙음에 비례하여 활기가 떨어져가며 황금에 미치는 거 아닐까 라고. 안 그럴 수 있겠나. 하긴 사랑은 영원할 수 없겠지. 더구나 연애마저 어려운데 즐거움은 바닥나야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가을이 왔다. 근데 왜 달력 사진과 비교되지? 그러든가 말든가. 천상의 기쁨은 궁금하지도 않을 따름. 친절한 남자도 수줍은 숙녀도 내 주변에 아무도 없는 마당에. 그러니 드라마를 보여 황홀한 연애를 부러워할 리가 있나. 소파에 자빠져 TV도 안봐 사람도 안 만나. 교양마저 다 잊어먹었나? 이렇게 사교와 동떨어진 마당에 뜬금없이 낯선 여인의 모성애를 자극해봐야 필요없다. 그때 알람이 울렸다. 동네 친구가 자기집에 나를 초대하는 날이다. 오늘 저녁이구나. 기억해보니 십대 시절에 친구집에 놀러가고 친구를 내 집에 초대하고. 늙으니 그마저 없어지다니. 어쨌든 저녁을 기다려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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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집 도착. 의례적인 인사말 하며 립서비스 잔치. 그럼 이제 슬슬 나는 기가 빨려나가겠지. 신체에서 피로가 제일 먼저 오는 곳 가운데 하나가 눈일 텐데. 벌써 게슴츠레? 아직 끄떡없음. 무슨 말하지도 않았는데 드레스 코드가 맞춰졌다느니 당신 이뻐졌다 집이 아름답다 행복한 인생 딴 거 없더라는 둥. 또 무슨 얘기들을 했더라? 아, 맞다. 나이듦과 비례하여 다습한 손은 건조해지는데 우리 가운데 (쌩)아이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왜 다 날 갑자기 쳐다보는 거지? 
   「저도 손이 건조합니다. 그래도 가슴은 다정하죠.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왜, 제가 꽉 막힌 어른처럼 보입니까? 실은 그렇겠죠. 왜 아니겠어요. 하지만 멋진 해변가에서 하필 찬바람 불고 싸늘한데 억지로 수영복과 비키니 맞춰입고 일광욕하는 일. 전 못합니다. 안합니다. 그에 비하면 케이스 없이 쓰는 취향. 너무 뭐라 하지 맙시다. 허허허. 그리고 전 파티 그런 거 못해봤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쩐지 꼭 미팅 나가서 제가 꽝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나저나 제가 분위기 못 맞춰서 아쉬울 따름이군요. 마침 저한테 왜 형씨는 말이 없죠? ~라고 여쭤보실려다가 제가 선수친 기분이군요. 이렇다니까요. 그러게 제가 다과회인지 뭔지 안온다고 했잖습니까. 저 인간은 왜 불러서 난리야,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잘 참다 말썽꾸러기가 되는 체질인가 봅니다. 그럼 다시 분위기를 띄워볼까요? 그게 맘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이럴 때도 다 방법이 있죠. 아이스크림? 우리가 젊은이들처럼 게임을 하기도 그렇잖아요. 그러고 보면 억지 미소와 가짜 웃음보다 썩소가 훨씬 솔직하고 편할 수도 있어요. 그렇긴 한데 괜히 저 때문에 흥이 다 깨진듯 해서 죄송하군요.」
    근데 알고 봤더니 그건 나 혼자 속으로 생각한 혼잣말이었다. 또 굳이 인사말을 안하고 나와서 눈치 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 다행이라면 다행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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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이제 무엇을 하지? 지금은 재미없어도 가까운 미래는 상쾌해야 할 텐데. 달리기를 할까 수영장에 갈까. 아니면 무작정 카페에 들려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릴까? 그러다 최근 내가 즐겨찾는 장소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바로 스머프 공원. 아니나 다를까 그곳 밖엔 갈 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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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머프 공원에 도착했다. 활기차게 공원을 모두 돌아볼 수는 없고 해서 의자에 앉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웬 노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근데 이분이 정녕 노인인지 젊은이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행세. 뭐지? 시대적으로... 다른 지방 사람도 아닌 듯 하고. 굉장히 특이한데 딱히 설명하기 곤란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형씨, 나를 알아보겠소? 아마도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우리는 언젠가 프리메이슨 목회에서 만난 적이 있었소. 그때 우리가 약조하기로 차후 스머프 총회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누군가 당신의 기억을 지웠버렸나보오. 기억 못하죠? 그렇겠죠. 뭐 그건 그렇고. 스머프 총회가 우리를 만나게 해주었으니 그에 대해서만 얘기해보기로 합시다. 스머프 총회는 가입조건이 까다롭다거나 일정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거나 그렇지 않소. 다만 선택받은 자 즉 우리가 충분히 연구해서 뽑은 사람에 한해서만 가입을 허락한다오. 그러니 우리가 당신에 대해서 알만큼 알아냈다는 말이겠죠. 그런데 지금 혹시 그런 생각하고 있소? 이 영감탱이는 뭐 하는 사람이지! 라고 말이오. 아시다시피 아니 전혀 모르시겠지만 난 전생에 유명한 독심술사였다오. 그러니 당신의 마음을 훤히 꿰뚫고 있을 수 밖에. 자, 그럼 스머프 총회가 어떻게 과거 프리메이슨으로 둔갑해서 활동해왔는지가 궁금하지 않소? 그러니까 프리메이슨의 기원설로 일곱가지가 있는데. 피라미드 석공 기원설, 세그메트 여신 기원설, 성전 기사단 기원설, 피타고라스 기원설, 솔로몬 성전 기원설, 중세 영국 석공 길드설, 근대설립설 원투까지. 그 모두가 스머프교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오. 
   자, 그럼 당신이 아마도 믿음이 부족할 테니 그대에 대해 내 잠시 설명하는 건 어떻겠소. 당신이 살아온 인생. 어디서 공부했고 누구와 일했으며 어떤 숙녀와 사랑을 못해봤다거나. 열애했던 취미는 물론 학창시절 친했던 친구들. 사진으로 남거나 못 남은 추억들. 연도별 전화목록부와 함께. 어떤 친구의 집에 놀로갔으며 드물게 학교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왔다거나. 술 마시고 취해서 길거리에서 언제 잠을 잤으며. 첫키스는 물론 언제 어떻게 노상방뇨를 했는지까지. 우리는 다 알고 있다오. 미리 말씀드리지만 부디 놀라지 말기 바라오. 당신은 전생에 볼셰비키 소속이었죠? 그럴 줄 알았소. 또 당신은 전전생에 프리메이슨 임시정부에서 활동했죠? 그렇다니까요 글쎄. 일단 지금은 혼자 살고. 만나는 여자는 뭐야 9명? 바쁘게 사는 모습 좋아요. 숨겨진 자녀는, 넘어갑시다. 뭐야 집에 지금 여자가 와 있네? 아니 또 바꼈소? 이럴 수가. 그런데 그녀는 비밀이 없는 여자. 재산은 엄청 많고. 어쨌든 당신이 지금 타는 애마는 파나메라 투리스모. 지갑은 에르메스. 향수는 샤넬? 무슨 암호까지 럭셔리 브랜드로 정했소? 참 내 촌스럽게 그게 뭡니까? 우리는 다 알고 있다오. 근데 설마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칸타타 절반을 당신이 작곡해주었소? 뿐만 아니라 숱한 문학작품마저 당신이 대필해줬다는 거 알고 있소. 이 정도면 우리의 정보력이 거의 전설적이라고 봐도 되겠소. 그렇죠? 기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당신의 고향을 조사하다가 알게 된 게 있소. 그건 말할까요 말까요? 그러자면 또 조부모, 증조...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되니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소만. 좌우지간 낮 열두시 종이 치자마자 태어난 건 좋은데. 그렇게 태어나자마자 지역을 무려 7군데나 옮겨다니다니. 그럼 고향이 일곱이 되는 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거친 인생을 사셨던 결과 결혼은 5번이요 이혼은 4번에. 그리고 기후위기 단체를 후원하고 있군요. 좋아요. 블랙록 투자사에 지분이 상당하시고. 이거 제가 계속 해야 할까요?」
   「말씀 중에 죄송한데 말입니다. 다 틀렸는데요. 아마도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뭐요? 아니 그럼 진작에 말을 해야지. 이 사람이 정말 누구 똥개 훈련시키나? 당신 벙어리요? 왜 진작 제지를 안 하쇼? 누가 말렸어? 아니지 않소. 내 참 살다살다 별 희안한 인간을 다 보겠네. 거 참 이상한 양반이야. 어찌 됐든 내 지금은 물러가오만. 이것만 명심하는 게 좋을 거요. 주말에 할 일 없으면 여기 스머스 공원으로 나오시오. 기가 막힌 장면을 보게 될 테니 말이오.」
   「......」
    그러면서 웬 아저씨는 가버렸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알 도리가 없었다. 





    2

    일주일이 지났다. 할 일이 없었다. 원래 늙으면 그럴까? 젊어도 똑같다. 단지 어릴 땐 심심하다 라고 표현하는 반면 늙어서는 괜히 바쁜 척 응석부리는 게 살짝 다를 뿐. 대체 우리는 왜 그러는 걸까? 여기서 '우리는'에 포함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늙음 때문에 몸을 움직일 때 효과음이 들어가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건 그렇고 오랫만에 스파를 즐길까? 아니다. 그건 한달 후에. 그럼 여행을 갈까? 피곤해서 자주 못가니까 다음에. 그렇다고 강변도로와 해안도로로 드라이브를 떠나자니 왠지 기분이 아닌 것 같고. 미용실은 어제 다녀왔으며. 쇼핑? 내키지 않음. 낚시? 피곤해서 못함. 스포츠 경기 관람은 혼자 가기 지겨워짐. 그렇다고 미술관과 동물원 근처에서 얼쩡거리기도 뭐 하고. 놀이공원에 함께 갈 숙녀는 공석이니. 당연히 남은 건 스머프 공원 밖에 없게 됨.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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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에 마주친 그 아저씨 말은 정말일까? 일요일에 여기 뭔 일이 있을 거라는 예언. 예언은 무슨. 지가 무슨 노스트라다무스야? 근데 일요일을 앞둔 토요일 23시 30분에 이곳에 방문한 난 뭐지? 뭐긴 뭐야 톰과 제리 만화영화에서 달콤한 치즈 덫에 걸린 녀석이겠지. 뭐라고? 말도 안돼. 그때 도시 시내 쪽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저기를 갈 걸 괜히 이쪽으로 왔나 싶었다. 그렇게 근처를 얼쩡거리다 어영부영 밤 12시 5분 전이 됐다. 이때쯤 내가 돌아가버릴 걸 예상해서 뭔가 준비했을 수도 있는데. 그럼 당연히 그런 망상을 믿을 나는 아닌데. 
    순간 자정의 순간 그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저쪽에서 새떼가 엄청나게 날라갔다. 딱보니 철새가 아니라 준비된 거였다. 벌새인지 제비인지 뭐지? 
    곧이어 딱 12시가 되어 내 발 밑을 중심으로 하여 반지름은 약 100미터. 모양은 대략 원인데 약간의 변화가 있는 듯 했고. 원둘레를 휏불 든 사람들이 돌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수많은 인원이 동원된 걸로 보아하니. 무슨 행사지? 축제야? 가서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건데. 그런데 대체 저분들은 왜 저걸 하고 있냐고! 가만보니 원의 중심이 이곳인데... 여기서 뭐가 솟아 나올려나? 그건 기다려도 아닌 듯 해서 생각하는데. 무슨 멧돼지를 때려잡는 것도 아니요. 토끼를 몰아서 사냥하는 것 역시나 아니니까. 그러므로 먹잇감에게 간접적으로 알리는 무언가 의뭉스러운 알림? 물론 새 회원에 대한 예우일 수도 있다만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억측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그렇지만 난 영화 속에 사는 인간이 아닌데. 그럼 이건 착란? 아니야. 최면도 아니고. 지금 환영을 보는 것도 아닌데. 왜 하필 이런 괴상한 신비감이 신나는 주말 밤에 벌어지냐고. 그렇다고 무슨 스머프 총회라는 게 만약 있다면 이걸 매번 하지도 않을 테고. 없다면 뭐 창단식일 리도 없는데. 아니면 지금 내 근처 어딘가에 스머프교 교주가 숨어있나? 이 자식 나오기만 해 봐라 내 가만 두나 봐라! 나와라 이런 멍청이 바보 미련 곰탱아. 당장 나와. 한판 붙자. 내 이래 뵈도 UFC 선수들 여런 나가떨어지게 만들었음. 거기 등장하는 웬마한 녀석들 내 앞에서 바지에 오줌 지렸음. 내 얘기만 들어도 바들바들 떨었음. 근데 이러다 하늘 위로 초거대 UFO가 나타나는 거 아냐? 만약 그러자면 맥북에어처럼 완전 조용할 리는 없을 텐데. 그렇다고 영화처럼 너무 떠들썩해도 말이 안되고. 
    바로 그때 빙빙 돌던 휏불은 꺼졌다. 곧이어 반지름은 더 차이가 나도록 한 200미터? 이제는 휏불이 아니라 레이저야 뭐야? 가만보니 저건 핸드폰 후레쉬였다. 물론 멈춰있지 않고 앞서 휏불처럼 돌고 있는 상태. 그럼 앞서 휏불도 인파가 상당했는데. 저 정도면... 저 촘촘하도록 핸드폰 후레쉬가 빛나는 걸 보니. 아르바이트생 1명이 막 막 막대기 긴 거에다 핸드폰 수십 대를 부착해서... 그건 아니고. 멀리서 봐도 1명당 1대로 보이는데. 무슨 UFO 플래쉬몹? 플래쉬몹 그거 유행 지난 지가 언젠데! 뭐하는 거야?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 기다려도 UFO는 나타나지 않음. 그럼 설마 나체 여인들 막 몇 천명이 내쪽으로 뛰어온다? 말 같지도 않음. 그럼 그 대신 개떼 5만 마리가 한꺼번에? 말도 안됨. 좌우지간 나는 젊음에서 멀어져가니까 상상력이 이것 밖에 안됨을 인정한다. 안 그러게 생겼나. 게다가 주어진 상황으로 보건대 웬만한 영화 플롯을 추정한다? 불가능. 어정쩡한 단편영화 스토리조차 추리 안됨. 그냥 개처럼 눈만 끔벅끔벅하는 게 다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사후세계의 불가사의함과 우주 바깥의 궁금증에 대해서 고민할 수도 없고. 어떡하지? 드라마에서는 보통 저쪽 이탈자 한두 명이 내쪽으로 뛰어오기도 하던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래도 미녀였으면. 농담이고. 이렇게 된 마당에 내가 저들에게 희망의 사과나무가 될 수도 없거니와. 난 젊음의 주인공도 아님. 
    그러다 나는 헛것을 보았다. 저 멀리 풍선 15만개를 한꺼번에 모아서 떠오르는 거대 인형을. 아닌가? 그냥 재밌는 모양의 열기구인데. 실제로 본 게 아니라 갑자기 시력측정할 때 보이는 쪼그만 열기구를 떠올렸을 뿐. 아니 잠깐! 핸드폰으로 이걸 사진 찍을 생각을 왜 안한 거지? 그렇다고 뒤늦게 가방 속의 납짝 디카를 꺼내는 것도 좀 모냥빠지는데. 그냥 관두자. 그럼 내가 도망가든가 아니면 저들이 이상한 쇼를 그만두던가 그런 승부가 시작되어버린 것일까? 아닐 거야. 내가 어떤 기대에 부흥해서 내 몸이 막 열 배, 백 배 부풀어올라 만화영화처럼 막 그래야 하는데. 난 못하거든. 그런 쟤들이 제풀에 지치겠지. 어쩌겠어. 근데 나는 이런 이상한 긴장감을 즐기기 위해서 하필 이 야심한 시각에 것도 혼자서 스머프 공원을 탐방하러 온 거야? 알 게 뭐야. 안되겠다. 유튜브에서 봤던 제목마따나 뭐 회피남 어쩌고저쩌고? 일단 튀자. 도망가자. 잡아먹히면 안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한참 뛰어 내 애마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그렇게 한 20분 운전했나. 공터에서 내려 잠깐 쉬는데. 나처럼 쉬는 사람들이 쏙닥쏙닥 하는 얘기들을 엿들었다. 그게 아르바이트였고 짭잘한 수당을 받는 거 말고 아는 게 일절 없다나 뭐래나. 괜히 더 괴상해짐.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주말은 지나갔다. 





    3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뭘 하지? 무엇을 하던 혼자 있겠지. 그렇다고 꿈 많던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고. 만약 만화영화처럼 돌아간다고 해도 야망 없고 재미없을 건 뻔함. 주변에서 나도 유튜버나 해볼까 라는 푸념도 들을 일 전혀 없는 삶. 그러니 뉴욕 최부촌 아파트를 소개하는 유튜브 숏영상의 코멘트까지 읽음. 그 가운데 간혹, 저분은 어디서 초딩 나온 게 유일한 자부심이래나 뭐래나. 그럼 '6시 내 고향' 같은 프로그램이나 사석에서 시골 출신 양반이 말하기로. 우리는 저 바다만 봐도 가슴이 울렁울렁해. ~라는 자부심은 되고 도심의 회색아파트 지대에서 자란 애들은 아무런 자부심도 뭣도 없어야 하나? 그건 아님. 그분들이라고 비교적 부모 잘만난 행운은 약간이나마 남다를 수 있겠으나 감성 썩고 사리분별 못하진 않음. 오히려 뭘 해도 재미없는 늙은이가 불운의 그림자 아래서 비꼰 댓글과 젊은이들 생각은 완전 딴판. 뭐 그건 그렇고. 그렇다고 소파에 자빠져 TV를 틀자니 뻔한 아파트 얘기, 정치, 식상한 토크쇼, 내용 전개 판에 박은 드라마 등등. 어느새 어두운 분위기의 NO젊은이? (절레절레). 어디서 들은 얘기를 하자면. 자기가 예전에 초딩들 상대로 하는 일 했었는데 첨엔 초딩들이 자길 좋아했는데,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자기를 좀 지루해하고 점점 같이 안있으려고 했다나 뭐래나. 그렇긴 하나 면전에서 초딩한테 못 생겼어 라는 말을 직접 들어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어차피 무뎌짐. 잊혀짐. 물론 잔뻔치가 평생 누적되면 또 다른 얘기겠으나 넘어가고. 안 그래도 웬만한, 말 말자. 처음엔 호감으로 다가왔다가 말 수가 적으니 말 놓던 사람이 존대말 쓰기 시작했다는 둥. 말이 없고 밝지 않으면... 사람들이 계속 좋아해줄 이유가 없다는 둥. 근데 조용했으면 싶은 분께서 말 많으면! 그래서 젊은이들끼리 함께 하는 술자리에 오래 남아줬으면 하는 선배는 일찍 가고, 일찍 가시길 바라는 선배는 진득하니 오래도 남아계신다나 뭐래나. 젊어서는 투정이요 늙어서는 주접? 우리 얘기다. 그렇다. 하다하다 나는 네이버→네이바, 쩜프→짬프, 멤버→멤바.. 막 이런 예로 뭐가 있나도 수차례 떠올려봤음. 또 의자에 앉으면 무릎이 벌어짐. 다 늙어서! (뿐만 아니라 20대 중후반만 되어도 게임을 직접에서 유튜브 시청으로 대체. 그 역시 노화현상 아니라고 못함). 속된 말로 환장할 노릇 까지는 아니겠으나. 한마디로 미치겠음! 그래도 젊어서 흑화되지 않았다만 늙어서 뭔가 분위가가 쳐지고 어둡다라고나 할까? 자연스럽게? 이래서 나이 들면 나보다 잘나거나 늙은 사람은 피하기 마련. 근데 그 no젊은이가 바로 나? 인사성도 오다가다 만난.. 넘어가자. 어차피 나이들수록 깨우치기 마련인 잔소리일 뿐이고. 어쨌든 나는 별 볼일 없는 속물이다. 그러니까 앞 문단 얘기처럼 혼자서 스머프 공원에 놀러갔겠지. 그럼 결국 스머프 공원에 또 가란 얘기일까? 누가 시키지는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는 스머프 공원에 갔다. 그런데 바로 그곳이 아니라 근처 언덕, 오름 지대에 자리잡은 것이다. 그곳을 관측하기 좋으니까. 거기에 마침 짓다 만 폐건물도 있었다. 은폐와 엄폐에 좋고. 물론 잠망경도 챙겨갔다. 그렇게 시간이 됐다. 밤 12시 5분전. 그렇게 망원경으로 그곳을 보니 웬 열기구가 보였다. 뭐지? 혹시 잠망경이 잘못된 건가? 가짜야? 아닌데. 다시 봐도 보였다. 혹시 해서 핸드폰 카메라 사진으로 댕겨보았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자세하진 않지만. 뭔가 있긴 있는데. 뭐지? 진짜 열기구일까? 만약 변화가 없었다면 대충 1시간 대기하다가 중간에 가져온 커피 마시고, 빵 먹고, 과자는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러다 철수했을 것이다. 그런데 뭔가 보였다니. 이건 예상 못했는데. 어떡하지? 뭐 어쩔 수 있나. 가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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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착했다. 그런데 열기구 같은 건 없었다. 뭐야 이거! 그럼 아까 봤던 건 뭐지? 당시에는 있었는데 이동시간 딱 그때 치워버렸을까? 그럴 리는 없을 거 같은데. 왜 있어야 할 게 없냐고. 아님 아예 애초에 보이지 않던가. 혹시 내가 함정에 빠졌나? 아닐 거야. 나는 대어가 아니니까. 대어는 커녕 달콤한 치즈로 꼬셔도 미끼조차 아까울 걸. 그런데 열기구는 어딨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바로 그때 이번에는 저 멀리서 셀 수 없는 촛불들이 켜졌다. 그런데 가만 보니 바람이 불어 막 꺼지고 다시 붙이고. 또 누군가는 인공 촛불도 있는 듯 하고. 막 우왕좌왕. 뭐 하는 거야? 대체 뭐 하자는 거냐고! 그럼 혹시 다시 저쪽으로 가서 거 뭐더라. 시력 측정하는 장비를 구비해서, 그걸 뭔가 어떻게 뚝딱뚝딱 분해하고 거기다 망원경을 결합한 다음. 현미경의 발판만 붙여서. 거기까지 어떻게 어떻게 했다고 쳐. 그 다음에 그걸 가지고 저쪽 언덕으로 가서 여기를 보면 뭔가 SF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이 보일까? 무슨 미련 곰탱이 같은 상상을. 이런 젠장. 그럼 이건 뭐지? 어제만 해도 반도체 기업 퀄컴 주가가 시장 예상치를 훌쩍 웃돌아 주가가 날아가는데. 난 돈도 없고. 헛고생만 하고. 언제까지 똥개 훈련만 해야 하지? 누가 시킨 건 아닐 텐데. 만약 시켰으면 어떡하지? 근데 과연 누가! 게다가 영화에 보면 대략 주인공은 2명에서 5명 정도. 모험을 해도 뭘 상의하고 기승전결로 넘어가는 쾌감이 있어야 하는데. 엉망진창. 이건 기적도 아니고 전설도 아니며 그 어떤 장르도 아님. 바로 그때! 
    아무일도 없었음. 옛날 같으면 넉살 좋게 그럴 것이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해볼까? 그럼 옆에서 초딩이 놀려주겠지. 근데 아무도 없어. 뭐 인생론에 대해 강변하면서 아무나 만나지 마라? 옆에 아무도 없음.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저 멀리서 불빛이 반짝이며 큰 원을 돌고 있었다. 저걸 신기하다고 해야 하나 이상하다고 하는 게 맞을까. 그래. 신비롭긴 한데. 왜 UFO는 안나타나냐고. 이쯤 되면 그 변화는 내가 만들 수 밖에. 그래서 난 전력질주를 감행했다. 그렇게 저쪽 대열에 합류하려고. 그럼 뭔가 실마리가 풀리겠지. 그래야 한다. 그렇게 될 것이다. 아마 그럴 수 밖에 없을 걸? 근데 이번에 저쪽 인파들은 사람이 아니라 로봇개면 어떡하지? 그야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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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분들 인력에 합류했다. 핸드폰 후레쉬를 켰다. 너무도 은근슬쩍 잠입했나 걱정되지만. 일단 일원이 되긴 했다. 그래서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데. 대체 왜 이래야 하지? 옆사람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이거 혹시 강강수월래 플래시몹이냐? 아님 뭐냐? 왜 이러는지 아냐? 등등을 물어보기 위해서 말이다. 
   「저기요. 말씀 좀 물읍시다. 있잖아요,」
   「있긴 뭐가 있어요? 저 남자친구 있거든요.」
   「뭐니? 무슨 미새더라, 전문용어 그거야? 보아하니,」
   「얘, 신경쓰지 마. 내가 드라마 제목 뭐더라. 걔 같은 남자 소개시켜줄께.」
   「어머 진짜?」
   「근데 이 아저씨 뭐니? 생긴 건 꼭... 외계인처럼 생겨가지고 말이야. 아님 멀쩡한데 여자를 너무 좋아하나?」
   「그러게. 뭘로 보나.. 말 말자.」
   「아니 전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긴 뭐가 그게 아니에요? 우리들 남자친구 있거든요. 남사친도 많거든요.」
    거 참...! 난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뭐 그렇다 치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여기 계시는 분들은 대체 왜 빙글빙글 도는 거죠?」
   「」
    이번에는 내 말을 못 들었는지 자기들끼리만 신나게 수다를 떪.
    혹시 대화 나누면 안될 금기사항? 이게 무슨. 그야 뭐 차차 정탐하고 탐문하고 끈질기게 관찰해보면 알게 되겠지. 그러면서 그날은 일단 철수했다. 





    4

    그렇게 매주 나는 스머프 공원에 갔다. 대부분 말이 잘 안 통하거나. 동문서답하거나. 원하는 답을 못 듣거나. 잘 모르거나. 그게 다였는데. 이런 이상한 대화도 있었음.
   「저기 혹시...」
   「당신은 우리가 찾는 외계인이 아니오.」
   「네? 무슨 뜻이죠? 저는 지구인입니다.」
   「당신은 지구인 같지도 않아. 대체 어디서 왔어?」
   「어디서 오다니요. 이 근처에 살고 있어요. 물론 휴양객으로 말이오.」
   「그러든 어쩌든 내 알 바 아니고. 당신은 우리가 기다리는 외계인이 아니오.」
   「그럼 당신들이 염원하는 그분은 대체 어떤 분이오?」
   「그건 알려줄 수 없소. 아니 잠깐. 여기 모인 분들은 모두 아는데. 당신은 어떻게 모를 수 있지? 당신 혹시 뭐 지구동공설에나 나오는 지하인이오? 정말 그렇소? 이거 이거 너무 수상해, 어?」
   「그건 또 뭔 소립니까? 도무지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군요.」
   「모른 척하지 마시오. 당신 어디서 왔소? 어디 소속이오? 정체를 밝히시오.」
   「대체 어떤 이상향의 존재를 고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제가 눈에서 레이저라도 나가게 할까요? 아니면 날개를 펼쳐서 날까요? 원하는 걸 말씀해보세요. 그래야 어떻게 장단을 맞출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그걸 꼭 말로 해야 안답니까? 사랑이 뭔지 몰라요? 이런 바보 같은 양반을 다 봤나. 쯧쯧쯧!」
   「아니, 어? 어떻게 입에서 화염방사기의 불꽃이라도 뿜을까요? 물론 할 수는 있겠으나 우리는 만화영화의 세상에 살고 있지 않잖아요.」
   「바보천치 같군.」
    이분들이 바라는 꿈과 비전과 희망에 내가 모두 부합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그게 과연 공통될까?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근사치로 접근이라도 되면? 그럼 또... 난리나겠지. 이래도 싫다 저래도 짜증난다 뻔할 거야. 근데 내가 참 별생각을 다하는구나. 그러든 어쩌든 일단 이번 크리스마스까지만 이곳에 숨겨진 비밀을 탐구해보기로 하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깨끗이 포기하는 걸로 하자. ~라고 다짐했는데. 
    한 한 달쯤 지났을려나? 점점 핸드폰 후레시 켜고 원을 도는 인파는 줄어만 갔다. 왜 도는지도 알아내지 못했다. 나도 점점 지쳐갔다. 당장 집어치울 수도 없고. 난감하네. 
    바로 그처럼 기분이 쳐지던 찰나. 어떤 여자 유튜버가 나에게 접근해왔다. 
   「저기 잠시만 인터뷰에 응해주세요. 오빠는 그래야 할 것만 같아요.」
   「오빠요? 아빠, 아닐까요?」
   「어머 오빠 왜 이렇게 웃겨요?」
   「제가요?」
   「그나저나 이 외계인 신드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외계, 뭐요?」
   「아아 뉴스를 아예 안보시는 아저씨구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으신 거 같고. 주위를 둘러보세요. 지금 오빠 혼자 남았어요. 그 많던 사람들은 다 흩어졌다구요. 다 잊었어요. 이제 UFO 초거대 UFO를 기다리는 사람은 오빠 단 한 명 뿐이라구요. 아시겠어요?」
   「내가요?」
   「정말이네요.」
   「우리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주변에 경치 좋은 카페 많은데 그곳으로 자리를 옮기면 어떨까요? 그래도 UFO는 몰라도 맨발 운동하는 분들도 계셨고. 최근에는 오리발까지 본 적 있소. 진흙 밟기 무슨 건강 목적으로 말이오. 아무튼 말이 길어질 거 같은데...」
    나는 추호도 그녀를 꼬시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가 만약 흑심을 품으면 그건 멜로드라마 대사로 뭐 껄떡이라는 둥 개침이라는 둥. 들을 말 뻔할 테니까. 그런데 왜 갑자기 그녀가 좋아질려고 하지? 그 후 어떻게 됐나 모든 걸 밝힐 수는 없다. 차마 그럴 수 없는 처지를 이해해주시기 바람. 





    5

    벅차오르는 교성은 만족스러운 행복일까? 말도 안되는 질문이다. 노상 잔꾀는 바닥나고 잔머리는 안 돌아가고. 어쩌지? 뭘 어째. 숙녀들이 제발 한번만 만나달라고 난리였던 어제나 회상하는 거지. 근데 그때 걔네들은 왜 그랬지? 그러게. 그래 봐야 가슴이 파인 드레스에 우리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그냥 혼자 있고 싶을 따름. 툭하면 전화해서 잔소리하던 그녀! 어디 한두 명이야? 아, 과거형인데. 원래 배부른 사자는 낮잠을 자고, 굶주린 늑대는 (속된 말로) 입 털기 바쁘다. 그러든 어쩌든 나는 비겁했다. 그녀들 마음이 애타는 걸 알면서 모른 체했으니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녀들이 내게 얼마나 열광했던가. 뻥이 아니다. 그런데 말 못할 비밀은 왜 자본으로 환산할 수 없는 걸까. 다름 아니라 그게 재물운일지도 모름. 그러거나 말거나 마지막 연애는 부끄러웠나 애절했나. 기억도 안난다. 아무리 그래도 이 세상에 그녀들의 애마가 되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보다 지겨운 게 어디 있나. 아주 그냥 신물이 난다. 생각만 해도 쓴물이 올라오거든. 그러긴 그래도 우리는 품위와 행복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첫사랑은 시작도 안 했기 때문. 그래도 달력이 바꼈으니까 속상함과 빈정상함과 속 뒤집어지는 일쯤은 잊어버리자. 희망찬 열망과 함께 보채는 그녀, 들뜬 숙녀들의 기대를 져벼리면 안되니까. 근데 그녀들 가운데 누굴 고르지? 선택을 하는 둥 마는 둥 능청도 재미없다. 가만히 듣자하니 무슨 그런 개똥 같은 헛소리만 떠들고 자빠졌으니까 지금도,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근데 죽치고 수다 떠는 게 취미도 아는데 난 왜 갑자기 푸념이 늘었나. 보나 마나 백날 어떤 생각만 하니까 그렇겠지. 그런 녀석들 머리 속엔 대체 뭐가 들었다? 조용조용 하나만 알려드리자면 여자라고 퍽 다를 건 없음. 허허허허허. 그걸 꼭 누가 가르쳐줘야 아나. 그러든 어쩌든 미남을 보면 사족을 못 쓰는 그녀들 챙겨주는 것도 이골이 났음. 웬만히 날 쫓아다녀야지. 일설에 의하면 자기들끼리 번호표 발부기를 샀다가 주사위로 바꿨데. 그게 왜겠어. 왜겠냐고! 그렇지만 장화 신은 여자들이 목소리 도톰한 남자들한테 환장하는 게 나랑 뭔 상관이야. 관심 없어. 다른 남자들한테 눈길 주며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뒷모습은 그냥 길거리 돌맹이 보듯 하니까. 아무튼 그러라 그래. 왜냐, 우리한테만 여심이 몰리면 우리도 힘들거든. 벅찰 거 아냐.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낭만적인 연애의 부재에 썩 연연하지 않는다. 더더군다나 촌스러운 패션이 뭐가 문젠데. 아니 한번 생각해보자. 어떻게 뭘 해도 재미없을 수 있지? 사랑을 노래하고 잔소리를 얻어듣는 운명이 얼마나 기쁘기 그지없는데. 그러다 어느 날 웬 숙녀가 고백해오겠지. 당신을 생각하면 코끝이 빨개진다고. 그럼 나는 답할 것이다. 그대가 뭐 루돌프 사슴코라도 된답디까? 그럼 또 언년이 우리 오빠를 꼬실려고 껄떡거리냐면서 제지를 할 수 밖에 없어. 어떻게? 나는 오빠는 보면 너무 좋아서 눈물이 핑 돈다고! 그런데 그녀들을 내가 간지럽히며 웃겨줄려고 하면 이제야 개꿈이란 걸 깨닫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란 군말 필요없이 희망가를 부르는 것이다. 아닌가? 상태가 이렇기 때문에 그동안 내가 내뱉던 숱한 허풍들 중 유독 무엇이 진짜인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는데. 근데 그게 뭐였더라? 알 수 없을 따름. 뭐 또 까먹었어? 잘났어 정말. 더불어 겁먹은 연민. 쓸데없는 공포. 영락없는 가난? 아주 그냥 권태가 성스롭구만. 예술적이야. 이래서는 도저히 희망의 찬가를 지어낼 수 없다. 그러니까 방탕스러운 상상력마저 탕진됨. 기쁨의 행진은 꿈도 못 꿀 지경. 대체 마술처럼 등장할 팔색조의 미친 활약은 언제쯤일까? 그걸 별이 아나 똥개가 추측하나. 아니면 어여쁜 숙녀에게 물어봐? 말이 안됨. 어쩌면 허접한 중년운마저 심각한 타격임을 눈채 챘으니까 그녀들이 근처에도 오지 않는 건가. 뭔 꽃이 보여야 여심을 부추기든가 말든가 하지. 이거 나 원 참! 이처럼 더 잃을 것 없는 해결사의 망한 정체. 탄로날 걱정 없으니 편하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도전을 멈출 수 없다. 그런데 무엇에 대해? 이건 뭐 몽유병도 거북목 증후군도 아니고. 참말로 난감하구만. 관능적인 찬사는 발설한 기회조차 없고. 의례적인 허언은 정신을 못 차리고.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이래서는 죽도 밥도 안된다. 허나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고 '막살자'별칭을 떠올려서도 안되는데. 근데 이런 식이면 사랑의 결론이든 환상의 끝이든 춤추는 마술 구두는 도무지 멈출 수가 없잖아? 내 말이! 따라서 그냥 억지로 끝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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