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194

from 소설 2023. 5. 2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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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판이 안되려면 당나귀 새끼들만 모여드는 법. 때를 괜히 보는 게 아님! 그에 앞서 내 형편을 보아하니 지붕 위 호박도 못 따면서 저 하늘의 별을 따겠다고? 하여 못 따먹는 과실을 보며 여우가 저 열매는 시디 실 거야 라고 하나. 하긴 타석에 들어서지도 못했는데 돈키호테처럼 허깨비한테 덤벼봐야 소용없다. 세상사가 그렇다. 더더군다나 엉망이된 타격감은 꿈쩍도 않는다. 속절없이 꽃 없는 나비 신세. 어쩌지? 뭘 어째. 쥐 잡는 데는 천리마가 고양이만 못하다. 수줍은 소망과 귀찮아 짜증나는 그녀들의 애원들까지 몽땅 일망타진할 수 있는 마술사한테 알맞는 조수를 기용해볼까 했는데. 있어야 말이지, 어? 게다가 그건 나 스스로 마술사라고 단정하는 식인데 그게 말이 되나 말이. 그럼 이 세상에 요술쟁이 아닌 사람 하나 없겠네. 이제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이라곤 몽환적인 환청을 부풀려 소설로 승화시키는 일. 근데 허접한 품위유지비와 멍청한 영감은 딱 정비례. 그렇다고 성에 차도록 짝사랑 받지 못한 울분을 책으로 써낼 수도 없는 일. 나는 정말 인생을 잘못 배운 걸까? 헌데 누가 가르쳐 줬어야 말이지. 그래도 알아야 한다. 사랑은 아름답다는 것을! 뭣이 어쩌고 어째? 그래도 내일 서쪽에서 해가 뜰지 어떻게 알아! 하지만 그렇게 보자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SF 영화 속 주인공이 될지도 모를 텐데. 그럴 거면 차라리 로또복권이나 사자. 그게 좋겠다. 간단히 말해서 이제 남은 건 하나 밖에 없다. 물 오른 미모를 뽐내는 배우지망생을 꼬셔서 결혼하는 일.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녀 집안은 거물 중의 거물? 마음에도 없는 상속은 바라지도 않을 테나 싫다는데 주는 걸 어째. 꿈도 야무지다. 근데 나는 왜 이런 개뼉따귀 같은 공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는 거지? 개구멍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으니 탈출할 수도 없는데. 이처럼 허영기만 충만해가지고 어떻게 뭇여성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냔 말이다. 그래도 믿는 구석은 오직 하나 허세대회 뿐이었는데. 그마저 사기꾼들이 몰려와 망해버렸다. 아무리 그렇긴 해도 사랑의 극치감을 만끽하는 연애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까짓것 하면 되니까. 그런데 말과 달리 삶은 벌써 꽉 끼는 삐에로 가면을 벗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를 괴롭힌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에 다만 나는 없었으면. 그러든 어쩌든 개뼉다귀 우려 먹듯 다시 또 '없다'논리를 애용하고 싶진 않다. 하지면 과연 고양이가 생선을 마다할까? 아니면 개가 개뼉다귀를 싫어할까. 다 부질없다. 뭐야 또 없다 잖아? 이런 젠장! 그래도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그 어떤 각선미도 탐미한 적 없다. 또 설마 아직도 가터벨트라면 정신을 못차리는 양반들이 있나 없나 모르겠다만. 적어도 난 아니다. 어디 그런...! 게다가 시시콜콜한 멜로드라마 소재들이 대체 나랑 뭔 상관인가. 다 시간낭비다. 그러게 내가 뭐랬나. 난 암말도 안했음. 뭐라고? 잘도 둘러댄다. 어떻게 먹고살지를 걱정해야 하는데. 이게 뭐지? 허당들한테 능청꾸러기란 별명을 뺏어서 뭐 하자는 거냔 말이다. 그러지 말고 좋게 들어보지 못한 모험에 대해 떠들어봐야겠다. 근데 그게 뭐였더라? 까먹으면 까먹은 거지. 괜찮다 괜찮아. 썩은 미소는 바닥을 차고 올라가면 되지만, 웃음기 사라진 건 답이 없으니까. 그러든 어쩌든 당분간 말을 말아야겠다. 그게 좋겠다. 
    그런데 정말 그럴려고 했는데...! 이렇게 그 어떤 행운만 기다리다가는 날이 샐 것만 같아서. 도저히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동호회에 가입했다. 그곳 이름은 비밀이다. 다만 뭘 하는 곳인가는 말할 수 있다. 바로 캠핑 + 카약. 그런데 때마침 모임 번개 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좋았어. 모임장소와 준비물이 무엇인지 찬찬히 읽어봤는데. 나 같은 초보는 몸만 오라그런다. 그래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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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하여 노트북을 열어 동호회 카페에 들어가보니, 아뿔사! 모임이 취소됐다네? 이런 젠장! 어쩐지 일이 잘풀린다 그랬다. 그럼 그렇지. 때문에 나는 의도치 않게 어느 해변가에서 차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언제 사용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침낭이 차 트렁크에 있겠다, 또 그냥 가기엔 왠지 지는 거 같거든. 인생은 짧은데 언제까지 패배주의만 신봉할 수는 없는 법. 고로 나도 모르게 나는 '한다면 한다'맨이 된 것이다. 근데 밥은 어떻게 먹지? 또 샤워는? 게다가 어떤 불량배들한테 괴롭힘을 당하면 또 어떻고. 그야 영화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을지언정 나는 갑자기 사랑이 하고 싶어질 지도 모를 일. 사랑? 진한 사랑 아니면 소설 같은 순애보. 둘 중에 하나를 고른다고 누가 번호표 들고 기다릴 리도 없고. 따라서 나는 그 한적한 해변가, 외진 캠팽지, 심심한 관광지까지 가서 또 웹서핑 밖에 할 일이 없었다. 대체 왜 나는... 어차피 할 말도 없고. 밑져야 본전. 그러다 운 좋으면 드라마처럼 외로운 숙녀와 연애하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좋다 좋아. 그렇게 나는 주식창도 봤다가 동영상도 구경하다가 야심한 밤이 되었다. 그러다 나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 마음 먹고 차를 딱 봤는데. 뭐야? 차가 없어졌잖아? 어디 갔지? 왜 없어졌어? 어떻게 된 거야? 
    그러다 생각났다. 핸드폰 어플로 애마의 실시간 위치를 볼 수 있다는 걸. 그렇게 어플을 봤는데... 뭐야. 혼자서 어디로 가고 있잖아? 누가 내 차를 훔쳤어? 똥찬데? 아니 왜? 뭐 하러? 그렇다고 지금 이 외딴 곳으로 택시를 부르기는 뭐 하고. 뜻밖에 탐정의 활약을 기대해 볼 수도 없고. 제일 가까운 곳에 누가 살지? 발렌타인 아니면 조니. 아르마니는 이민 갔음. 티파니는 허영심 못 견뎌서 내가 찼음. 셀린느도 어장 관리하느라 정체가 탄로나 정 떨어졌고. 지금 이 시간에...만만한 건 조니 밖에 없었다. 그래서 녀석과 통화해 불렀다. 그런데 도착한 녀석은 발렌타인.
   「늬가 여기 웬일이니?」
   「나라고 뭐 널 보고 싶었는 줄 아니?」
   「빈말이라도 그래 줄 순 없니? 또 알아? 내가 끝내주는 숙녀를 소개시켜줄지 말이야.」
   「너 나 알잖냐. 일부러 분위기 뚝 떨어트려서 시작하는 거. 그래야 그녀들이 감동하거든.」
   「너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
   「아니. 여자 싹 다 떨어져나갔어.」
   「너도 나랑 같은 신세구나.」
    인사말은 그 정도면 됐고. 나는 웬 악당인지 바보인지가 내 차를 훔쳐갔다며 어플을 켜서 보여줬다. 
   「안 그래도 엉덩이 근질근질했는데 뭐해? 따라가야지.」
    그렇게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애마를 뒤따라잡았다.
   「옆으로 붙여봐. 대체 누구지?」
    내 애마 옆으로 조니의 자동차는 붙었다. 근데 차에 아무도 없네? 귀신이야? 더군다나 나는 유령도 믿지 않는다. 그럼 뭐야?
   「너 정말 나를 깜짝 놀래켜주는구나. 대체 저 안에 뭐가 있는 거냐?」
    알고 봤더니 그 안에는 웬 난장이 아저씨가 타고 있었다. 근데 알고 보니 <난장이 + 다운증후군>. 뭐라고? 뿐만 아니라 사정을 듣고 보니 딱했다. 그렇다고 동정심한테 휘둘릴 수는 없는데. 사연을 듣고 보니 어떻게 어떻게 해서 딱 30분만 드라이브하다가 곱게 원위치 시켜놀라 그랬다는데. 그래서 나는 공짜로? 그렇게 녀석을 떠봤다. 그렇다고 기똥찬 처녀를 내게 소캐시켜준다며 녀석이 퉁치자네? 솔직히 나는 어디서 좀 놀지 않았는데. 얜 내 눌변을 쥐락펴락 가지고 노는 걸 보니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체 얼마나 놀라운 그녀인데 얘는 나랑 흥정을 하자는 거지? 더더군다나 2 대 2로 소개팅하면 어떻겠냐는 거다. 그야 싫지 않았는데 나는 이 친구가 더 궁금했다. 그야말로 오랫만에 내 호기심에 불을 집힌 거지. 하여 나는 물었다.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요?」
   「저 말이오? 나는 사람이 아니올씨다.」
   「형씨가 괴물이면 난 뭐 괴물의 호적수인 줄 아시오?」
   「모르겠소.」
   「근데 거 어째 아까부터 우리는 좀 말이 잘 섞이지 않는다는 느낌 들지 않았소?」
   「잘 아시구만 그래.」
   「지금 나를 들었다 놨다 길들이는 거요? 아니면 만만한 감수성 아이고 잘 걸렸다 싶어서 은근한 최면을 거는 거요.」
   「그럴 리 있겠소. 우리는 빙빙 돌려서 말하지 않는다오.」
   「그럼 뭘 하겠소. 내가 이렇게 정신 못 차리는데.」
   「내가 여자 소개시켜준다는 제안이 그렇게나 당신을 감동시켰소?」
   「거 참 이 양반이 못하는 소리가 없네. 난 여자 보기를 돌맹이 보듯 한다오. 당신도 내가 뭐 오빠란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푼수로 보이는 건 아니겠죠?」
    그렇게 오다가다 만난 사이를 훈훈한 우정으로 연결시키자는 약조 없이 우리는 헤어졌다. 또 소개팅 장소로 곧장 가라고 하여 우리는 곧바로 떠났다. 근데 중간에 조니가 바쁜 일이 있다면서 내뺐다. 왜 숙녀의 마음을 자빠트릴 용기가 없나보지? 근데 나 혼자서... 아차. 녀석은 "난쟁이+다운증후군" 총각의 말을 믿지 않은 거였다. 그럼 내게도 귀뜸을 하던가. 의리 없는 놈. 그럼 나 혼자만 그 아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서 좋아했던 거잖아? 이런 젠장! 어쨌든 못 만나면 말고 약속장소에 다 왔으니까 기다려보기로 했다. 거긴 카페였다. 나오면 곧장 마음을 빼았으면 그만이고. 안 나오면... 나는 더 시간을 뺐기지 않아서 역시나 손해볼 거 없어 나쁘지 않고. 근데 이 흥분감은 또 뭐지? 나는 정말 낯선 숙녀가 기다려지는 걸까? 이러다 배우병 도질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내가 언제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했다고. 그나저나 정말 소개팅녀는 나타나지 않는 걸까? 여기까지 순순히 먼저 나온 내가 바보다. 뭘 기대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집에 가서 TV나 보자. 엎드려 턱에 팔을 받치고든지 소파에 자빠져서든지. 거만해도 누가 나한테 뭐라 하는데. 그러면서 딱 카페에서 나왔는데. 
    뭐야? 저 앞에서 "난쟁이+다운증후군" 총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고함을 지를 마음도 없고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왜인지 몰라도 녀석은 속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권총이었다. 몇 구경인지 대략 가늠은 되는데 "난쟁이+다운증후군"라는 사정을 감안하니... 웃겼다. 
    근데 뭐야, 녀석이 정말로 나를 조준하잖아? 피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이미 비비탄을 맞고 말았으니 말이다. 





    2

    "난쟁이+다운증후군"는 나를 납치했던 것이다. 내가 눈을 뜨자마자 거울이 보였는데 뭐야 이거? 내 코 아랫선 수평 + 입꼬리 수직선 = 그 위치에 점이 생겼다. 엄밀히 말하면 옛날에 나는 그 점을 뺐었는데. 그게 다시 생긴 걸까? 아니다. 카페 앞에서 녀석이 쏜 비비탄이 딱 거기 맞았고, 그 충격으로 시퍼렇게 피멍이 든 것이다. 근데 녀석의 정체는 뭐지? 그러다 정신을 차렸다. 
    나는 의자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이게 그 드라마에서나 보던... 한니발? 제목이 뭐였지? 팔걸이에 올려진 내 팔 위로 반원인가, 터널 모양처럼 약간 더 구형인가. 그러니까 이건 특수 초합금? 누군가 버튼을 누르면 그게 딱 풀리고? 밑도 끝도 없이 이거 대체 뭐 하자는 거지? 이처럼 뭔 상황인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앞에서 웬 남녀가 사랑의 행위에 집중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내면 연기. 고전적 용어로 합궁? 에로 영화에 나오는 바로 그 장면. 근데 이건 실제 상황! 기분이 묘했다. 뭐랄까 누구에게나 내재된 어떤 변태 성욕을 자극하는 건가? 근데 정말로 단계를 거쳐서... 정말로... 진짜로... 어... 이래도 되나? 라면서 내가 잠깐 눈을 돌렸다 다시 볼 수 밖에 없으니까, 기왕 보려면 제대로 봐야 하기 때문에 딱 현장을 정밀히 봐둘려던 그 순간. 그 남녀는 사람 크기 인형으로 바껴버렸다. 뭐야 이거? 작지도 크지도 않은 딱 사람과 같으면서도, 정말 만지고 싶을 정도로 보드라울 것만 같은 피부. 게다가 여기까지 온기가 느껴졌다. 
    바로 그때 저쪽 대형 TV가 켜졌다. 거기서 좀전에 봤던 그 장면이 보여진다. 그럼 걔네들이 저 TV 안으로 들어간 건가? 그러다 또 TV가 갑자기 꺼졌다. 그래서 다시 실제 남녀가 있던 곳을 쳐다봤는데.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남녀 가운데 여자는 실제 사람인데, 남자는 아까처럼 사람 크기 인형이었다. 근데 여자는 그 남자 인형을 진짜 사람으로 인식으며 그 사랑의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 건가? 내가 가서 그건 사람이 아니라며 그녀를 진정시켜주고 싶었다. 진정? 그게 그러니까 왜 그러는지 무슨 사연으로 이래야만 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아무 생각없이 지켜보던 중 알게 됐다. 남자 인형을 안고서 신음하는 그녀가 서서히, 조금씩, 슬며시 대리석으로 바뀌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남녀가 고대 그리스로마 대리석 조각상으로 바껴버리던 과정이 완성된 시점. 딱 대리석화가 마친 순간. 그때 손발을 묶고 있던 초합금 장치는 풀렸다. 그런데 그건 초합금 장치가 아니라 허술한 밧줄로, 심지어 겁나 허접하게 묶여있었던 것이다. 이건 또 뭐야? 그러든 어쩌든 난 모르겠고. 일단 서둘러 그 조각상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만져봤다. 진짜 대리석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리고 이 빈집은 다 뭐야? 이곳은 고급 호텔 같은 분위기인데 사람이 살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다. 드라마 장면들이 연출되고 꾸며진 것처럼 아마 이곳도 그럴 것이다. 근데 나를 도대체 왜 불렀지? 그 "난쟁이+다운증후군" 총각은 어디로 가버렸고! 그렇다고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기도 뭐했다. 왜냐, 여기가 궁금했거든. 또 없는 게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그래서 나는 걱정됐다. 
    가족이 날 찾았는데 내가 없어졌다? 막 실종 신고하고, 누구를 찾습니다 어쩌고저쩌고. 그 혼란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물론 자주 보지 않으니 당분간은 아무 걱정 없다만. 어쨌든 벌써 1주일이 흘렀는데. 일단 가서 상황을 수습하는 게 급선무다. 때문에 난 여기 더 머물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걸어서 가야 할까? 이상하게 내 자동차는 집 바깥에 있었다. 그야 뭐 "난쟁이+다운증후군" 총각이 내 차를 몰래 빌려썼으니 미안해서 대령해놓은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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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도착해서 알았다. 컴퓨터를 켜서 시간도 보고, TV 뉴스도 봤다. 밖에 나가 사람들한테도 물어봤다. 그런데 이곳의 시간은 불과 단 하루 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뭐지? 그곳의 일주일은 여기의 하루? 1주일 대 1일? 비율은 7 대 1? 나보다 더 연로하신 분들께는 죄송하신 얘기지만, 다 늙어서 이제서야 뭐 모험? 놀고 있네. 이게 무슨 개떡이야. 게다가 주인공도 아니잖아? 더더군다나 내가 사랑의 행위 그 주인공도 아니었어. 그렇다고 엄밀히 따져 관객도 아니었는데. 또 그게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 뿐만이 아니라 돈을 원없이 벌어서 막대하도록 부풀리는 것도 아니고. 뭐 시간을 벌어? 어른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했던 소년이 진짜 늙어죽도록 소년으로 남는, 막 그런 판타지 영화도 아니고. 그렇지만 그때부터 내 기억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때문에 시시때때로 그 농밀한 장면이 떠올랐다. 마치 사춘기 애들이 막 뭔가를 알게 됐는데, 누구나 아는 몇몇 기억처럼. 더 문제는 뭐냐면 그 다음으로 어떤 타자가 등장하냐는 것. 혹시, 아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정말 안되는데. 다 큰 처녀가 양손으로 눈을 가렸는데 어느새 손틈을 벌린다? 엿보긴 뭘 엿 봐! 
    그러든 어쩌든 나는 그날부터 "난쟁이+다운증후군" 총각을 찾아다녔다. 이건 뭐랄까 30년~50년 전 드라마랑 비슷한 설정이구나. 마약 중독 어쩌고저쩌고! 맞나?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시내를 떠돌고 있었는데. 인파가 갑자기 많아졌다. 좁은 골목이었는데 우리는 오도가도 못하고 막혀버렸고. 나도 역시 고개도 못 돌릴 지경이었는데. 뒤에서 누가 말했다. 
   「형씨, 내 목소리 기억하시죠? 설마 모르시는 거 아니죠? 애마의 내비게이션에 입력해뒀다오. 기다리겠소.」
   「당신 누구야?」
    고개를 돌릴 수는 없고. 만약 돌렸다가는 돌처럼 굳어버릴 것만 같고. 그때 거짓말처럼 인파 정체는 풀렸다. 당연히 그 인간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럼 다음 수순은? 나는 그곳으로 떠났다. 





    3

    내비게이션에 기록된 마을 이름은.. 뭐였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와서 최대한 비슷한 명칭을 떠올릴 수는 있다만 그건 썩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 다시 말해 드라마로 나오더라도 시청자 역시나 1주일이면 잊어먹을 게 뻔함. 어쨌든 내가 도착한 비밀 기지는 사족보행 마을을 먼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염탐 장소였던 것이다. 사족보행? 그곳을 낮에는 일반 카메라와 고성능 쌍안경으로 관찰하고, 밤에는 적외선 카메라와 잘 알려지지 않은 우주용&군용 특수 기계로 그곳을 지켜봤다. 그랬더니 나도 어느새 직립보행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는데. 대체 저 녀석들은 뭣 때문에 사족보행을 고집하는 거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변변찮은 할일, 중년의 권태, 가난의 염증, 희망과 불친, 행복이 뭔지 알지도 못하던 내 삶이 갑자기 바빠졌다는 점. 아마 나는 겨울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신나게 연애하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곰탱이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 덕분에 캠핑 문외한에서 전문가로 슬슬 변신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녀석들 정체를 간파했다. 바로 낮에는 인간, 밤에는 레고! 기막힌 성과였다. 그래서 언젠가 야심한 시각에 딱 몰래 현장으로 침입했다가. 뭔가 위치를 바꿔놓는다거나, 누군가를 몽유병에 걸리게 할 수도 있었는데. 때로는 내 낡은 최저가 노트북을 웬 갑부의 최고급 노트북과 내용물을 교환하는 작업. 시간도 충분하겠다, 관련 하드웨어를 준비해놨고. 최적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그마저 손쉽게 뚝딱 처리. 그럼 이제 다음으로 내 똥차를 대체 무엇으로 바꾸어볼까를 궁리하던 찰나. 아뿔사! 이건 생각도 못했던 전개였는데. 그게 뭐냐? 
    바로 언젠가 내가 남겼던 블로그 소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하도 많이 써서 그런가는 모르겠고. 
    a) 어쨌든 말도 안되는 발단
    b) 웬 뚱딴지 같은 전개
    c) 개 풀뜯어먹는 절정
    d) 밑도 끝도 없이 해피엔딩!
    뭐야 이거. 표정이 썩고 젊음이 망하는 문학. 그걸 양산하던 언젠가 그 시절. 그래서인지 어쩐지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는데. 웬 괴짜가 그걸 나와 또 계약맺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영화학과 대학생이 졸업작품 찍느라고 어쩌고저쩌고 신경도 안 썼던 일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그게 간단히 말해 허접한 단편영화로 만들어짐. 그런데 내가 만들었던 주인공의 영험한 능력. 못 믿을 신통함. 그게 바로 내 영혼을 단편영화 속으로 가져가버렸는데. 하필 작품 내용에서 중간에 뭐더라? 앞서 내용처럼 어떤 신비한 마을을 몰래 감시하던 생활. 그렇게 망원경 몇 개로 딱 보고 있던 중. 누군가 거인이, 내가 난쟁이였는지 어쨌는지 하여튼 그 인간이 내 엉덩이를 지긋이 밟네? 그로써 사춘기 때 기억이 연상되고. 그렇게 내 정신을 흡수. 따라서 그때부터 나는 단편영화에 딱 갖혀버림. 어떡하지? 뭘 어떡하나. 내 힘으로 탈출은 불가능한데. 
    그때부터 나는 단편영화가 재생되는 것과 같이. 시간 A에서 B까지가 반복되는 SF 영화처럼. 그렇게 무한 반복되는 로보트로 살게 되었다. 물론 장편 드라마라면 극중 인물인 내가 눈빛을 내 마음대로. 극에 최적화되지 않도록 내 마음대로, 오직 딴 데를 훔쳐보는 것만 가능했으므로. 나만의 엑스마키나는 오직 딴 건 다 연기의 화신인데. 눈빛은 뭐랄까 요망했다고나 할까? 즉 그게 단편영화라서 그다지 문제되지 않았던 것. 그래서 나는 힐끗힐끗 쳐다볼 수 있었다. 감상자는 대부분 다양한 사람들. 취업준비생도 있었고, 퇴근후 원룸에서 취미로 단편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도 있었고. 당연히 나는 그분들의 침실, 거실, 소파. 자동차 안에서 노트북으로 영화를 봤다면 그 자동차 내부. 텐트에서 아이패드로 보고 있으면 내가 볼 수 있는 건 오직 텐트 내부만 흠찟흠찟 째려볼 수 있었다는 점. 그런데 그렇게 유튜브 영상이 막 조회수 얼마네 그런 것처럼. 나는 힘든 것도 모르고, 권태로움도 친구가 되어가던 찰나. 누군가의 데스크탑이 딱 고장나버렸는데. 
    하필 그 컴퓨터의 주인공은 자동차광처럼. 컴퓨터를 자기 신체와 막 복잡하고 엄청나게 정밀하도록 연결해서 단편영화를 보던 사람. 가령 

도표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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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영화 양들의 침묵 (1991년)이던가? 레드드래곤, 한니발, 한니발 라이징의 연관 순서는 모르겠다만. 머리를 냄비 뚜껑 여는 것처럼... 그렇게 까지는 아닌데. 막 운동선수들 몸에 뭘 붙여서 수많은 선을 컴퓨터와 연결. 그런 것처럼. 특수한 연결성을 기반으로 하여 단편영화를 감상하는 괴짜. 하필 그분의 데스크탑 어딘가가 딱 고장나버림과 동시에.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 냥반과 나는 육체 교환. 달리 말해 정신이 서로 바꼈을 수도 있는데. 아무튼 그때부터 나는 단편영화 무한 반복이라는 지옥을 탈출하게 된 것이다. 근데 날 대신에 갖혀버린 그분께는 죄송하지만. 이걸 어떻게 원위치시킬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만,
    첫째, 새로운 사람의 인생을 탐색하느라 1달
    둘째, 새로운 사람으로 삶을 사는데 적응 1달
    셋째, 새로운 사람의 재산을 몽땅 탕진...은 아니다만. 통속적으로 말해 잠깐 돈쓰는 재미에 빠짐 1달.
    넷째, 아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나는 낮에는 연구에 정진했다. 
    그건 뭐냐? 바로 나처럼 단편영화랄지 각종 허구에 갖혀버린 인간이 있나 없나에 관한 연구에 빠져버렸다는 점. 만약... 생각 많아지니까 말이다. 근데 그게 잘 됐을까? 그럴 리가 있나. 그래도 하는 데까진 노력했다. 그러다 실험체의 눈이 깜빡깜빡 막 그러는 동안. 이마 위로 선을 그어 딱 그걸 밥솥 여는 것처럼. 또는 아예 냄비 뚜껑 열듯이 분리하던가. 그렇게 뇌를 포크로 또는 거기에 선을 연결해서. 막 그런 비밀단체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 그걸 한참 알아보다 실패. 어쨌든 백방팔방 동화책이든, 연극대본이든, 막장드라마든지 단편영화에 갖혀버린 사람을 조사해서 일단은 엑셀파일을 완성하는 것. ~라는 할 일이 생겼는데. 한마디로 성과는 보잘 것 없었다. 물론 낮에는 그랬고 일과가 끝나면 자유시간. 그렇게 나는 새로운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4

    그렇게 저녁 시간에 혼자 유튜브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여자가 유튜브를 보며 자기위로 → 그럼 유튜브 주인공이 그녀를 방문 → 곧장 내면연기.
    처음 꿈에서 깼을 땐 뭐 이런 개꿈이 다 있지? 왜 내가 꿈에서 여자였지? 막 그랬는데. 또 한번 같은 꿈을 꿨는데 그래도 뭐 그럴 수 있다 했는데. 뭐야 계속 꾸잖아? 꿈에서 영화를 보며 막... 자세히 설명은 안하겠다만. 사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즉 성 정체성에 알맞도록 남자로 막 그랬다면 단꿈이었겠으나. 이런 개꿈은 한마디로 악몽이라고나 할까? 괴상했음. 그런데 꿈을 깬 어느 날. 내가 드라마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12살 때처럼 바닥에... 막 그러고 있었는데. 딱 그 순간 방문을 열고서 그 드라마 주인공이 나를 찾아왔다. 어머나 이걸 어쩌나! 그렇게 그녀는 나를 덮쳤다. 뭐 자빠트리고 자시고 그럴 겨를이 없었음. 그냥 막무가내로 에로연기.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날마다 반복. 당연히 처음에는 좋았다. 근데 기력 바닥. 정력 탕진. 완전 초최. 거의 산송장에 근접. 당연히 쌍코피 터짐. 한두 번도 아니라 계속. 막 터짐. 식은땀으로 심심하면 샤워. 물론 뻥이다. 상상만 해도 식겁하지. 
    그러든 어쩌든 (내가 새로 얻은 육신의 주인) 이 인간은 뭐랄까 나랑 굉장히 비슷한 녀석이었다. 한마디로 한심했지. 인생이 허접. 덜떨어진 놈. 다만 나보다 나은 건 컴퓨터와 육체를 연결해 어쩌고저쩌고. 그렇다고 그걸 누가 알아줘? 쓰잘데 없음. 어쨌든 (약간 중고긴 하지만 그래도 그 연식이 어딘데) 새로운 신체를 얻자마자 녀석의 두뇌로 내 영혼은 업그레이드됐는데. 물론 다운그레이든지 변형이든 그건 그렇고. 곧장 모든 기억을 흡수. 아니 그 자신이 되어버림. 단순히만 봐도 30대 초반부터 음악을 안 들음. 핸드폰은 7년인가 8년째 최저가 구닥다리만 사용. 한 3년 더 애용할 계획. 자동차는 10년도 넘은 하이브리드. 게다가 30대 초반부터 사진도 거의 안 찍음. 또 아이폰 ↔ 애플 그 실시간 경험도 없음. 당연히 최신곡 들은지도 15년이니까 노래 부르는 것도 까먹음. 여자 꼬시는 재주도 썩음. 키스 어떻게 하는지까지도 새까맣게 잊음. 재미 더럽게 없는 인생. 옷도 안 사입어. 신발도 1개. TV도 안 봐. 만나는 사람도 없어. 만나도 사람들과 대화도 안됨. 뭐 이딴 인간이 다 있지? 말이 심했다만 한마디로 바보였다. 물론 다른 분들이야 번잡하지 않다거나 좋게 표현할 방법 많지만. 얘는 그냥 바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얘가 나였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여자를 언제 만났는지 기억도 안남. 아예 풋사랑과 육체적 사랑은 있었을망정. 태어나서 지금껏 여자를 단 한 번도 사겨보지 못함. 즉 연애 무경험자. 근데 또 전립선 건강 걱정해서 어쩌다 하는 수 없이 에로비디오는 드물게 본단 말이지. 싫든 좋든 남자의 운명이란 말이야 뭐야. 물론 남자들끼리만 아는 진실. 하긴 그렇다고 몽정을 하면 건강이겠으나 못하면 또 어쩌다 부쩍 걱정돼거든. 그러든 어쩌든 약속이 없어. 사람도 안 만나. 대체 뭔 재미로 살지? 
    그러다 나는 이 멍충이의 주식 포트폴리오를 업그레이드해줬다. 언제 녀석과 내가 뒤바뀔지 모르나 일단은 그게 좋았을 테니까. 그런데 평생 이러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날이면 날마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쳐다보는 거지.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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