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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6. 1. 31. 23:27

   친구집에 놀러 가기. 이걸 그래프로 보자면 누군가는 나이들면서 서서히 안 하게 되는 것이라고도 말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나이와 비례해서 계속 늘어만 가는 거라는 특이한 답변도 드물지만 내놓을 것이다. 대개는 비교적 어른이 되고서는 굉장히 좁은 범위로 한정되는 것이 아마도 퍽 엇나가는 대답은 아닐까─물론 누가 묻지는 않았으나 혼자 말하기로 보자면 그럴 수도 있을 듯─당신은 그렇게 생각한다. 안 했다고, 그럼 그렇게 생각해, 아니면 생각을 바꿔 또는 심지 굳게 주관을 지키든가. 아무튼 저번에는 케빈의 집에도 모였다가 하워드의 집에도 모여서 도시 소녀들도 거의 하지 않는다는 냇가에 뭘 띄워 보내는 유치한 장난도 했다가 조니가 먼저 탐방한 후 나중 사라진 제임스를 찾기 위해 나섰다가 헤맸다가 우연한 만남에 이르게 된 일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 각자 자신의 인생을 잘 살다가 알렉스의 집에 모이게 되었다.
   「이를 어째, 어쩐지 걱정되는데...」
   「뭐? 뭔데 그래?」
   「제임스가 장미꽃을 가져왔는데!」
   「저번에 장미꽃 키운다는 친구가 누구였지? 제임스 아니지 않나. 키우다 포기했다 그랬나? 제임스, 많은 선물 후보 가운데 왜 장미를 선택했는지 물어봐도 될까?」
   「그래도 돼. 이미 물어봤는데 뭘. 어려운 일도 아니고. 별 뜻 없어. 데이트 신청이 아닌 건 분명해. 오늘을 축하하자, 도 아니겠지. 그럼 뭘까? 내가 어디서 바람을 맞았나? 그게 아무래도 가장 가능성이 농후한데, 그렇지 않니?」
   「누구 사랑에 빠진 사람 있는 건 아닌가 몰라. 그건 그렇고, 닉! 오늘 일진 좋은데, 알렉스 집 창문이 잠겨져 있지 않았자나. 어떻게 된 거야? 모두 깜짝 놀랐다구. 신고할 뻔 했어. 멀쩡한 대문을 놔두고 왜 창문을 넘어 들어온 거야? 왜 그런 거야?」
   「왜긴? 너희들이 나 몰래 내 험담하나, 내 뒷조사를 했나, 칭찬 일색으로 누군가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나(그렇게 띄워준다는 건 뭐가 있으니까) 궁금해서 그랬지. 그냥 한번 멀쩡히 문을 열고 집에 걸어 들어오기는 왠지 모르게 싫어다고나 할까. 그런 거 같아. 자, 널 위해 준비했어. (알렉스를 주려다가 슥 방향을 틀어서 하워드에게 건넨다) 네가 찾더 고서적, 우리 동네 서점에 있던데. 횡재했지 뭐니. 그리고 이건 증말 오래된 걸로 하나 가져왔어. 블루 와인이라고 들어봤니?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특별한 거라고 나 먹으라고 하면서 선물받았는데, 귀중한 거 같아서 선보일려고 가져왔어.」
   「그나저나 바깥에 세워진 사이러스 뭐드라, 비전인가, V자 모양 꼬리 날개가 멋진 개인용 비행기는 누구꺼니? 굴곡이 너무 (회상이라 불러줘야 할 듯 아득한 상상을 하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슬프던데, 도대체 누가 그거 타고 온 거야?」
   「누가 타고 오긴. 그거 옆집 아저씨꺼야.」 집 주인 알렉스의 빈틈없는 정확한 답변.
   「그렇구나. 어느새 우리의 미팅 시간이 되돌아 왔구나. 딱히 일정을 정해놓고 드라마처럼 회의하는 건 아니지만 몇 번 하다 보니까 어쩐지 이 시간이 난 막 기대돼. 안 그래? 난 그래! 어딘가 모르게 설레고, 어딘가 모르게 들뜨고, 어딘가 모르게 뒤통수 맞을 것 같은 기분... 그런 거 있잖아.」
   「그게 뭐야? 그런 거 없어. 동네 정육점에 가서 찾아봐. 쟤 또 드라마 초장만 보다 그만 두고서 꼭 다 본 것처럼, 몇몇 지식만 가지고 매니아인 것처럼 보일려고 하는 거 다 보인다구.」
   「일단, 모였으니 좀 지성적으로 보여야 할 꺼 아냐. 저기 숙녀분도 계시자나. 소개는 좀 더 기다렸다 하는 게 좋을 거 같고. 원래 우리-식이 그렇잖아? 서로 지금 무슨 책 읽고 있는지 그거부터 얘기해보지 않겠니? 어떤 비즈니스 아이디어 있나, 그걸 얘기하기에는 지금 분위기가 딱 맞지는 않는 거 같아.」
   「난 제시 워렌 티블로우의 성공 커넥션이란 거 읽고 있어. 4단계 알고리즘을 따라하면 출세할 수 있다나 뭐라나,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있긴 있는 거 같아.」
   「난 애덤 그래트 있지? 그 왜 탈모 때문인지 그냥 좋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너무 영특해서 너무 두뇌쓰는 일만 하시는 양반이라 그런지 정수리가 반짝반짝하신 아저씨 있잖아. 말해도 잘 모를꺼야. 그분이 최근 발표한 거, 오리지널스!」
   「이쪽은 서점에서 2권 사서 아직 어떤 거 읽을 건지 결정하지 않았어. 하나는 민감한 진실, 존 르 카레. 두번째는 에릭 와이너의 천재가 되는 방법.」
   「여긴 페이지터너 더글라스 케네디의 비트레이얼. 우리 유명인들 이혼 얘기는 자제하자구. 알고 보면 모두 다 사연이 많드라구. 또 십대만 되도 남녀 사이라는 게 오래가기 쉬운 게 절대 아니란 걸 알게 되잖아. 교육적인 이유로 될 수 있으면 반듯하고, 항상 웃음 꽃 만발하고, 사랑이 꽃봉우리 맺는(포인트: 만개한 것보다 이게 꽃값이 비싸다는 점) 가정 같은 걸 꿈 꾸게 만드는 좋은 집안 분위기나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일반적인 현실로 착각하게 만드는 픽션들이 많지만 나이들면 다 알게 되는 걸 어떻게든 늦추고 싶은 심정, 있긴 있어. 나도 일찍 어른이 안 되었으면 했어. 그래서 일부러 애처럼 사는지도 몰라. 지금도 봐봐. 수다나 떨고 있잖아. 그래, 그만 바톤을 넘길께.」
   「어쩌다가 나는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을 읽고 있네.」
   「난 뭐드라,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지금 핸드폰도 없고... 어떤 단편집이었는데 유명 작가들 단편만 추려서 모은 책. 아, 맞다. 히치하이킹 게임, 이라는 제목이다. 쿤데라, 칼비노, 나보코브, 도리스 레싱... 여기까지만 생각나.」
   「마지막 한 명 말 안 했어.」
   「어, 나야. 나는~야 알렉스, 아임 유어 다스바이더. 최근 너무 많이 읽었드니 머리가 좀 띵해서 지금 좀 쉬고 있어.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 몇 편 몰아서 보고 있어.」
   잠시 정적만이 알렉스의 집안을 싸늘히 감돌고 있다. 머머 했다, 라는 과거형 문체는 주로 1인칭과 설명문이 많은 소설에서 많이 쓰인다면 대화체가 많으면 머머 한다, 로 가는건가. 문학과 학생들은 이런 거 잘 알겠구먼. 또 그들 가운데 누군가는 1인칭으로 글을 써서 그걸 3인칭으로 바꿔 발표하는 사람도 아마 있을 테고.
   「그런데 분위기가 어째 좀 이상하다. 꼭 영화에서 나오는 신흥 종교, 추적을 피하느라 교묘히 이동해서 모이고 막 미래에서 왔다느니 사랑이 부족하다느니 그런 기색이 느껴지는데.」
   「새삼스럽게 왜 그래? 항상 그랬잖아. 이제 이런 느낌이 좋은데! 안 그러니?」
   「그래 맞아. 이게 우리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어. 브랜드 포지셔닝처럼. 여자들은 사랑 이야기에 약하죠, 이런 대사처럼 말이야.」
   「그럼. 유감스럽고 딱한 상황은 아니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딱 할 말만 하고, 군더더기를 모두 빼버린 잘 익은... 햄버거 패드, 그 느낌을 살려야 돼. 햄버거 패드는 냉동한 거 쓰면 안 되고 항상 생, 생으로! 뭔 소리야?」
   「이제 읽고 있는 책은 얘기했으니 다음 순서는 뭐지? 즐겨 찾는 웹사이트? 아니면 새로 생긴 취미? 그보다는 단골 술집 말하기? 에이 그거도 별로다. 촌스러워. 품위가 없어. 철지난 풋사랑 같아. 다 애들 장난 같단 말이야. 뭐 새로운 거 없나? 기다려 봐야지.」
   「아직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으니. 곧 재미있어질꺼야.」
   「그다려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나이가 들어도 점점 차분함을 필요로 하는 일까지 진득하니 참고 아무렇지 않은 듯 잘 뭔가를 하게 되지만 난 말이야, 종종 그런 생각이 들어. 아직 난 어린 거 같아. 정말 그래. 나만... 그런 거니? 나만? 아마... 아닐 껄! 그런 의미에서 한마디 하자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런 말은 못하겠으니까, 나는 그냥 잘 들어주는 역할 맡을래. 그러다 보면 할말이 생각날꺼야. 어, 뭐 재미난 일 없니?」
   「왜 뭐, 폭로전 같은 거라도 할까?」
   「폭-로-전? 오, 예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그 있잖아. 서머셋 모옴의 맥주와 땅콩 같은 소설, 재밌잖아? 맞잖아? 사적으로는 그렇고 그러면서 우리끼리 내외하는 거니? 여긴 여자 없는데. 아, 아까 저기 저 여자분. 이제 소개할 때도 되지 않았니? 누구와 함께 온 손님이야?」
   「... ...」
   「... ...」 모두 꿀 먹은 벙어리. 한동안 멀뚱멀뚱, 뚤레뚤레, 잘못을 저지르고 주인의 꾸지람을 교묘히 비켜갈려는 강아지처럼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모르겠는데. 누구지?」
   「그러게. 누굴까? 여인의 초상이, 저 상냥한 얼굴과 부드럽게 이어진 턱선과 이쪽을 잠깐 흘깃하며 아주 잠시만 쳐다볼 때 그 왠지 슬픈 듯한 뭔가 할 말을 애써 참고 있는 것 같은 눈망울. 그래 저 여인은, 아리따운 아가씨는 아마도 마크? 아니면 제임스...일 리는 없고, 알렉스..의 귀빈이실까? 어쩌면 하워드? 에잇, 말 좀 해봐. 왜 그래? 그만 뜸 들이고, 속시원히 말해줘. 왜 내 사람이라고, 내 님이라고, 내 사랑이라고, 바로 그분이라고 말을 못하는 거야? 뭐 죄지었어? 아니잖아!」
   「아무래도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니야? 알렉스, 너가 집주인이니까 가서 조심스럽게 그리고 공손히 물어보는 게 어떠니?」
   그렇게 알렉스는 베이지 계열 색상 소파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별명이 혹시 기집애? 여우 같은 기집애? 나쁜 기집애냐고 물어볼려다가 다음과 같이 물어보았다. 여기는 어쩐 일인지, 누구와 함께 왔는지, 왜 이렇게 어떤 우수 가득한 느낌을 숨기지 못하느냐고, 정말 그러기로 마음을 굳혔냐고, 우리 가운데 누가 제일 돈이 많을 것 같냐고, 우리 가운데 아니 우리가 모두 친구로 보이냐고, 우리 가운데 어... 용건만 말하자면 여긴 무슨 일이냐고. 딱히 물어보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던 말은 이랬다. 참다 참다 도저히 그 요염한 자태를 보다 못해 이렇게 한판 따질려고 찾아왔다고, 사람이 너무 가식적인 거 아니냐고, 어쩜 이리 눈부실 수 있는거냐고, 이래도 되는 거냐고!
   금새 묻고 답하고, 답하고 묻고 대화하기가 끝났다. 그리고 조용히 알렉스는 그녀와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 당연히 이쪽에 남은 친구들은 소란스럽게 뭐야, 뭐야, 저 녀석, 이런 소도둑놈 같으니라고 하면서 쑥덕거리고 의논하며 추궁하고, 우리들만 쏙 놔두고 자기 혼자 저렇게 태연히 밀애를 즐기러 나가도 되는 거냐고 따지면서 사태를 정확하고 드라마틱하게 파악할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잠시 후 알렉스 혼자 집에 들어와서 그들 곁으로 다가와 자리에 앉고 이렇게 말한다.
   「같이 온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데. 옆집 아저씨 만나러 왔다는데. 그 아저씨와 어떤 사이라고는 말해주지 않아. 주소를 잘못 알았나봐. 그런데 말이야. 문득 말하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건 느꼈어. 이런~! 딱 보니 그 아저씨 얼굴을 모르고 있었던 거 같아. 아 저런, 꼭 한발 늦게 뭔가 촉이 딱 온다니까. 내가 그 아저씨라고 할 껄 그랬나? 그냥 잘 보낸거지? 다정하고 친절하지만 다소 수동적으로, 원래 항상 그렇듯이, 그래 아무 사심없이. 그런데 우리 가운데 제일 뭘 해도 안 될 것 같아 보이는, 뭘 해도 재미없어 할 것 같은 사람이 누군지는 말해줬어. 또 우리 가운데 가장 쎄 보일 꺼 같은 사람도.」
   「누군데?」
   「그래, 누구야?」
   「뻥이야! 그런 말 물어보지도 않았어. 나는 초면에 그런 말 꺼내지 않는 거 너네도 잘 알잖아. 잘 알면서 왜 그래? 초딩같이.」
   「에~이. 난 또 뭐라고!」
   「그러게. 꼭 뭐 있는 줄 알았잖아. 싱거운 녀석. 김샜다.」
   「그럼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아니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헉, 말이 헛나왔다. 미안!」
   「아쉽다. 세상에서 제일 남자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예쁜 친구를 잘 소개시켜줄 것 같고, 이 가운데 가장 멋진 남자는 바로 당신이라고 말해줄 것만 같은 그녀였는데, 아쉬워.」
   「그런데, 알렉스. 너 혼자 사니? 집에 꼭 누군가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딱히 막 뒤져보기는 사양하겠고. 뭔가 있는 거 같은데. 저기 장농에 누구 숨어 있는 거 아니야?」
   「난 트집 잡힐 일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너네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 치정? 그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일이야, 여기서 찾지는 말아줘. 하지만 언제 어디에나 빠지지 않는 통속극의 기본 요소 가운데 가장 섬세하고 처연한 그것, 그것이 뭔지는 각자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서 딱히 불식시키고 싶지도 않아. 슬며시 경련이 일게끔, 납득이 안 가는, 통 안중에도 없다가 나타나면 깜짝 놀라면서 뒤로 자빠질 그런 걸 준비해 뒀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리 언질을 주는 실수는 하지 않을 꺼야. 김새면, 재미없잖아.」
   「얘가 못 본 새에 이상해졌어. 꼭 뭔 탐정 같은 말투를 쓰고 그래. 너무 안 어울려. 섬망증? 화상이나 쌍욕과 욕설 또 몽매도 아니고 뭐랄까, 실눈 그래 실눈을 뜨게 만드는 어설픈 연기력이 엿보인다야. 연습 좀 더 해야겠어.」
   「어쩌다 저 녀석이 저 단계까지 내려갔지? 그럭저럭 전에는 쓸만 했잖아. 스무살 전에 이디스 워튼이나 조지 엘리엇도 거의 읽었겠다, 묵시룩에 대해서도 알고, 전리품의 사전적인 뜻도 정확히 읊어줄 수도 있고, 겸사겸사 잘 감추어진 듯한 저 천재성도 겸손하게 살짝만 가끔씩 들추는 센스도 있어. 저 고전영화에나 나올 법한 예법도 알겠다, 최고의 지식인들 끼리 통한다는 친교에 관한 예의에도 정통하겠다, 그런다고 막 가십란에도 오르내리지도 않아. 주변에서 입소문으로 그의 소식을 듣기보다 내가 그런 가짜 소문을 퍼트리는 게 훨씬 빠를테지. 저 정도면 괜찮지. 그럼. 어디 내놔도 안 빠져. 우리가 친구 하나는 잘 뒀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옆집 아저씨 잘 구슬려봐. 살살 달래고 의구심을 건드리면서 칭송 한 번에, 내 염문도 하나, 네 추문은 두셋 그리고 배후에 누가 있다고 흘려, 허구한 날 신비와 환상과 낭만에 정말 질려버렸다고. 아주(아조) 짜증난다고. 우린 상남자라고, 혹시 마초지수 몇이냐고 여쭤봐도 되냐고 말이야. 뭔가 뾰족한 수가 있을 꺼야... 그만 할까?」
   「언제 끝나나 했는데 잘 멈췄어. 힘들었겠다야. 수고 했어. 옆집 아저씨는 바쁘실테니 그냥 놔두자. 쟤랑 친하지도 않은 거 같아. 또 몰라. 등치 이만 하고, 전에 비밀스런 직종에 있었던데다 막 살벌한 포스가 넘칠지 누가 알겠어. 사람 일은 모른다고 괜히 엮여서 우리가 모험이 아니라 개고생하다 사기극에 끌려들지도 모르잖아. 그냥 우리끼리 놀자.」
   「그럴까? ... 그러자!」
   「나는 이상하게 친구집에만 오면 꼭 남자라면 어떤 화장품을 쓰는지 엿보고 싶고, 여자라면 화장실 바닥에 긴 머리카락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져. 그리고 내가 그곳에 일 때문에 방문했다면 그 사람의 서재를 딱 보면 감탄할지 실망할지 단 몇 초면 충분하고, 통장잔고를 확인하고 싶다고 실토할 수는 없으니 당사자와 내가 나이 차이가 나지만 서로 존중하는 사이라면 그 인간의 기호와 잠재적 성향을 가늠할 수 있는 주류 취향과 생활 습관이 짐작되는 신발들과 옷장과 비밀 창고를 살펴보고 싶고, 막 그 사람을 술 취하게 만들어서 속 이야기도 듣고 싶고, 주량도 알고 싶고, 뭔가 비밀을 캐내고도 싶어. 음, 딱히 좋은 취미는 아닌 것 같아. 그런 자질구레하고 시시콜콜한 사항들이 뭐가 그리 궁금하다고. 그러나 알게 된다면 그 앎을 거절할 수는 없지.」
   「그래. 어디가서 그런 얘기 하지마. 괜히 멱살 잡힐 수도 있겠다. 일이 커지면 침대로 갈 수도 있고.」
   「오, 알렉스. 저거 돋보기 아니야? 거기다 깃털 펜에 문진과 또 뭐라고 부르지, 편지 따개? 그리고 주사위, 트럼프, 언제 도박했니? 게다가 무지개 빛깔 성냥에 아크릴 물감과 초콜릿까지. 이게 다 뭐니?」
   「어 그거 잡지에 사진 찍어서 보낼 일이 있었어. 그게 다야.」
   「아, 그렇구나. 대화가 딱 끊긴다. 우리가 남자친구라서 다행이지 뭐야. 짜식 우릴 너무 경계하는 거 아냐? 좀 냉정해진 거도 같고, 상당히 이성적으로 보여서 빈틈이 보이지 않는 듯 하기도 하단 말야. 뭔지 모르게 어설픈 몸짓은 음 괜찮아.」
   「바깥으로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떠니? 날씨도 따뜻하고 바람도 선선하고, 어때?」
   「그럴까?」
   그들은 모두 알렉스 집의 마당으로 나간다. 그곳에는 초소형 골프장이 있다. 딱 퍼팅만 가능하다. 그리고 수영장도 있다. 이건 저번에 달인가 해던가 그분이 두 번 나타난 마술을 선보였던 그곳과 비슷하고 또 제임스 집 수영장과도 닮았다. 어느새 나와서 소파와 흔들의자와 이곳 저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닉은 서서 숨겨진 버튼이 있나 없나 찾고 있다.
   「여기 혹시 수영장 통로가 저번 그곳, 어디야, 사막의 자동차 경주장으로 연결되는 거 아니니?」
   「그럴리가. 아니다 에 커피 한잔 건다.」
   「그건 그렇고. 다들 어떻게 지내냐? 그냥 그렇지 뭐? 무슨 대답할지 다 알아. 실은 나도 그러니까. 그렇지만 알렉스가 우리에게 뭘 숨기고 있는 거 같은데. 귀를 만지고 팔짱을 낀 다음에 턱 주변에 손이 간다 그리고 시선이 불안정해. 읽혔어! 게다가 우리가 무슨 말을 할지 자꾸 살피고 막 다음 행동을 분석하고 있어. 뭔가 있는데?」
   「헤헤, 그래? 그래. 실은 나 다음 달에 결혼해.」
   「... ...」
   「뭐야? 반응이 왜 이래? 나 다음 달에 결혼한다구. 언제는 뭘 실토하라고 닦달하드니.」
   「... ...」
   「그래 재미없다는 거 나도 알아. 식상한 농담이니까.」
   갑자기 우광쾅쾅, 쿵쿵쿵, 접시 깨지는 소리, 뭘 집어던져서 부닥치고 찌그러지는 음향과 너가 잘했냐 내가 잘났냐, 뭔 여자가 요리 하나 제대로 못해, 남자가 속이 그리 쪼잔해서 어디 무슨 큰일을 하겠냐 무거운 거도 못들고, 말 다했어? 그런 음성까지 모두 들리면서 한바탕 난리나는 소리가 들린다.
   「뭔 소리야? 여기까지 들릴 정도면 목소리가 그냥 큰 정도가 아닌데, 뭔 성악하셨나 연극하셨나. 내가 제대로 들은 거지? 가서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어 저 집 원래 그래. 옆집인데, 아, 아까 아가씨가 찾아온 집은 왼편이고 여긴 오른편. 항상 저러다가 또 좋아져. 보통은 그러다 어떻게 될 텐데, 둘이 잘 만났나봐. 그거도 힘든 일인데 말야. 잘 들어봐. 은근 재밌다니까. 막 웃겨. 완전 기분이 이상해져. 꼭 누굴 완전 웃겨주었다가 울려주었다가 다시 끝장나게 웃겨주었을 때 내가 마치 코메디의 신이 된 듯한 그런 기분, 까지 느껴져. 잘 들어봐!」
   「저분들은 집에 돈이 많나봐. 부자같아.」
   「어떻게 알았어? 저기 저 의자 있잖아. 꽤 쓸만한 중고차 한대 값이야. 저거 저 집에서 버린 거야. 특이한 이웃들이야.」
   「뭐야. 이제 앞집이나 뒷집에서 뭔 일이 날 것 같은데. 세상이 발칵 뒤집히는 거 아니니?」
   「이제 더 이상 그런 진부한 수다와 식상한 대화, 품위라곤 찾아볼 수도 흔적을 그리워하지도 못할 이런 말장난은 그만 하자. 그런 의미로 내가 하나 고백할께. 사랑고백은 아니지만. 또 내가 너희들이 끌리는 이성은 아니지만. 어느 날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어. 갑자기. 기다리지 않은 전화였지. 원래 이렇게 말로 할 생각은 없었어. 뭐뭐 했거든, 뭐뭐 했냐, 난 어떻드라, 그렇게 말하듯 내면의 앙금을 털어내기보다는 나는 뭐뭐 했다, 그는 뭐뭐 하다, 그녀는 어떻다, 당신은 무엇에 대해 아시나요, 그렇게 글로 터트리는 게 더 멋져보이자나. 그렇지만 깜작 선언이라고 생각해주렴. 그렇게 걸려온 전화는 다름 아닌 독촉 전화나 광고 전화였어. 뭘 내라, 뭘 반납하라, 뭘 사라, 뭘 가입해라 등등등. 끝.」
   「뭐야 그게 다야? 기대하지도 않았어. 오히려 안심했달까!」
   「자, 고해성사 시작된거니? 어떻게 뜻밖에 기척도 없이 아주 조금만 왁자지껄 하다가 뜬금없이 진심을 담아서, 물론 안중에도 없었겠지만 그렇게 재밌는 말들을 꺼낼 수 있는 거지? 신기한데? 나도 하나 꺼낼께. 나 이번에 스파르타식 소설쓰기 학원에 들어가! 이번에 들어가면 음, 처음 들어가는 거지만 아마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할 수도 있어. 훌륭한 히트작을 내놓지 못하면 아무래도 그럴 공산이 크지. 그러다 한달이 가고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새걸로 바꾼 다음에 또 한번 바꾼 다음에도 계속 거기 잔류될 가능성도 있어. 그러다 보면 언제 내가 소설을 쓰고 싶어 했을까, 언제 레디 액션이라고 누가 신호를 보내서 여기 들어오게 되었을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싫증나고 재미없고 지루하고 따분할 걸까, 그러면서 고민하겠지. 그러다 정신병원으로 밀려날 수도 있을테고. 펄쩍펄쩍 뛸 일이지만 그래도 찬찬히 생각해보면 장차 달라질 새로운 인생을 상상해 본다면 슬며시 가슴이 부풀어오르고, 청운의 꿈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게 만드는 물욕도 다시 샘솟고, 여기저기 갈팡질팡할 필요도 없고, 다짜고짜 삶을 변경할 이유도 없으며, 타인의 환몽에 타지의 열광과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미망에 안달복달, 더이상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 있지. 이런 발언이 너무 새초롬한거니? 내가 꽁생원같아? 곤욕스러운 처신일까? 놀림감으로 딱 알맞을 수도 있겠네. 그 위에 조소를 덧칠해도 좋아. 어쩜 나는 착종과 교란과 불협화음 같은 광기와 말랑말랑한 감성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몰라. 그런데, 그런데 이게 다 뭔 말이지? 이거 꼭 뭔 이름도 모르는 그런 어떤 실험 같아. 그래도 신기하고, 보람차고, 아름답고 흡사 동화에나 나올 것 같은 그런 일에 관한 양성소? 양자역학이나 그런 연구소 또는 천문대 같은 교습소, 이것도 어울리는 명칭은 아니야. 그곳에 가서 상담을 받고 일단 등록을 한 후에 딱 기숙사에 들어가잖아, 그러면 뭔가 대단한, 정말 까무러치는 역작을 하나는 분명코 만들어 내게 되어 있다드라. 그곳을 매니아들이 뭐라 부르는지 아니? 뭐라 할 꺼 같아? 아폴론? 아니야. 레버넌트, 성, 위대한 유산, 도 아니지. 그럼 비극의 탄생도 아닐 것이 뻔하고. 그렇다면 인간과 초인, 아이네이스, 유토피아, 주홍 글자, 자성록 모두 아니야. 환영이나 흡혈귀의 주말이나 심미안이나 비몽사몽 같은 어정쩡한 단어도 아니지. 그건 바로 '늬 까짓 게 뭔데?' 라고 한다더라. 늬 까짓 게 뭔데? 왜냐하면 음지에서 그렇게 불려야 정말 절실히 목마른 사람들만 모일 수 있다나 너무 많이 알려지면 안 된다고 그러던가 뭐 그런 이유 때문이래. 정말인 거 같지만, 아니 허황된 허구나 그냥 근거없는 소문 같지만 확실한지는 잘 모르겠어. 정말 거짓말인지 알고 싶어. 알고 싶다구. 신기하게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걔가. 그분이. 맞지? 걔가 그분이야! 꼭 거짓말 같지? 그런데 대략 더 공적인 용어로는, 소설 창작 아카데미, 이렇게 불린데. 어때, 간판을 바꾸면 완전 딴 판이 되는 거야. 요즘 잘 나가는 사람들 조사해서 공통점 찾아 보면 얘깃거리 꽤 나온다니까. 언제는 누구든 안 그렇겠니. 극적으로 말하자면 스승이나 혈통 같은 거로도 설명이 되고, 가장 손쉬운 예로는 일반적인 학벌과 학파나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법 학교, 잘 알지? 뭔지? 또 또 많이 있을 꺼야. 세상일이 원래 그런 법이야. 그걸 잘 아는 사람들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지. 하나는 전문가, 둘째는 사기꾼. 물론 1과 2가 겹칠 수도 있어. 발을 여기도 담갔다가 어딘가에는 이름을 올렸다가 빠져나갈 뒷문을 지금 당장이라도 언제 어디서나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사람을 뭐라 부르는지 아니? 뭐긴 뭐겠어, 어른이라고 하지. 그리고 그 소설이라는 자리에는 다른 명사나 숙어나 성어도 들어갈 수 있다고 해. 예를 들면 영화 창작 아카데미, 교향시 창작 아카데미, 낭만시 창작 아카데미, 이처럼 말야. 마크 너 곧 사진 전시회 연다며? 예술사진 창작 아카데미도 물론 있어. 그뿐이겠어, 조니가 혹시 특별-초빙-강사로 우리 몰래 활약할지도 모르는 카사노바 감성 아카데미도 있다고 하더라고. 알잖냐, 내 소식통 끝발 대단한 거! 알아줘야 해,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해. 그래서 거기 들어갔다 나오면 대체로 잘 모르는 사람이 아주 드물 정도의 유명인이 된다고 해. 현역 예술가 중에도 거기 출신이 상당히 많다고 그러든데. 하지만 졸업하지 못하면 계속 거기서 나이를 먹는 거지. 그냥 안 되겠다고, 재미없다고, 못 하겠다고, 짜증난다고, 질린다고 때려치울 수는 없다고들 그래. 우끼지? 뭐 그런 우스꽝스런 학원인지 사기꾼 집단인지 그런 곳이 꼭 대학원이나 비즈니스 속성 코스 과정이나 동기 부여 부흥회처럼 그곳도 일정 패턴이 형성되고 피라미드가 움직이고 돈이 이동하고 사람들이 옮겨다니면서 거의 1차, 2차, 3차 산업처럼 그렇게 세간에서 알게 모르게 생태계가 살아서 돌아간다든데. 정말로 그런 곳에서 꿈을 키운다는 친구들 아주 많고, 많았고, 또 많을 꺼야. 사람들 다 알아. 그럼 당연하지. 비슷한 사례는 흔해. 나도 그래서 이번에 한번 등록하고, 입소해서, 너네들에게 결과물 가지고 딱 나타나려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 거기 들어가기로 했어. 말하자면 그렇다는 말이야. 망했다. 이거 말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큰일났는데. 이거 비밀로 해 줄꺼지? 내 말은 나만 알고 있기 아까워서 조금만 알려준 거 뿐이란 말이야. 난 성직자가 아니잖아.」
   하워드의 기나긴 어쩜 잠시 동안은 기뻐 날뛰 듯 하면서 또 어설프면서도 왠지 모르게 궁금증을 슥 깔면서 빈틈만 엿보이면 몽땅 비밀을 파헤쳐서 혼구멍을 내주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만드는 이상한 화법에 따른 긴 명대사에 대해서 아니나 다를까, 제임스만 반응을 한다.
   「에이,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우끼지 마라. 하나도 안 우끼다.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어. 믿기지도 안는다야.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던 옛날 시대의 비밀 집단 뭐 그런 거야? 안 속아!」 이런 말을 한다는 거 자체가 아예 믿음의 문제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이 되기는 힘들다는 의미다.
   「그래 그건 그렇고 좀 전에 하던 고백에 이어서 나도 하나 털어 놓자면 이번에 열었던 카페 리골레토 있잖아. 거기 문 닫았어. 너무 급하게 준비도 부족한 상태에서 서둘러 그 업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뛰어들었던 거 같아. 다음에 다시 도전할려구. 뭐 나는 이 정도야.」 최근 카페를 열었다 문을 닫은 친구가 한마디 하고, 이제 다음으로 하워드가 괜히 한번 던져본 농담에 어느 한 친구만 자꾸 긴가민가 믿거나 말거나 그 정체를 더 캐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곧바로 그 얘기를 하지는 않고 챙피한 줄은 알아가지고 은근슬쩍 돌려서 말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래 다음에 다시 잘 준비해서 가게 새로 열면 잘 될꺼야... 그런데 왜 자꾸 좀전에 하워드가 말한 소설 창작 아카데미라는 뚱딴지 같은 얘기가 자꾸만 어떤 애상처럼 느껴지는 거지. 기분이 이상한데. 그게 대체 뭐라고! 하필 이 가운데 나만 그런단 말이야. (분위기 살피고) 아, 맞다. 얘들아 있잖아. 나 엇그제 악몽을 꿨어. 예전 TV 코메디 프로에서 봤던 연예인 싸움 순위표 10에서 당당히 2등을 차지했던 연예인, 그 해적 같은 면상 같기도 하고, 뭔가 불한당처럼도 생겼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어쩌다 말과 행동이 어울리지 않는 게 귀엽게도 보이는, 스포츠계를 접수하고 코메디계로 넘어와서 또 정상에 오른 개그맨, 그 넘버 2 개그맨이 꿈에서 어느 날 내 집에 찾아왔어. 난 집에서 자고 있었거든. 꿈에서, 꿈에서 자고 있었어. 하도 문을 쾅쾅 두드리길래 시끄러워서 깼는데, 물론 꿈에서 꿈을 꾸다 깬거지, 그런데 막 문을 박살낼 것처럼 두드리면서 하는 말이 글쎄, 나와서 자기랑 한판 붙자는 거야. 헉! 자기랑 한판 뜨제. 뭘 떠? 이런 뭔 말도 안되는 상황이 꿈에 나왔다니까. 원 세상에나! 꿈이라서 망정이지 실제였으면... 아후 오금이 다 저린다. 도대체 인터넷에서 아무리 자기 혼자 끄적거리고 웃고 노는 블로그라지만, 드물게는 우연히 본 사람도 어이없어서 실소를 자아내긴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혼자 올리고 혼자 웃고 그래서 만족하는 개인 블로그라지만 왜 그 인간을 넘버 2에 올려놓은거야, 그 블로그 주인장은 말야. 그러니까 그 험상궂은 얼굴이 내 꿈에 나타난 거 아니야. 늬가 넘버 1이냐고, 자기보다 위냐고, 왜 자신이 넘버 2냐고, 그럼 이제 남은 건 뭔지 알겠냐고! 아, 십년 감수했어. 꿈을 완전히 깨고 나서 보니 식은 땀을 한 2리터는 흘린 거 같아. 처음에는 나도 거짓말인줄 알았어. 믿기지가 않았어. 땀 2리터를 한번에 흘렸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고. 그런데 그게 정말인 게 곧바로 내가 물을 몇 컵 마시고 그 뒤로 마신 거까지 더하면, 찬찬히 계산해 보니까 그게 딱 2리터야. 이런 뚱보 심술쟁이 곰탱이 삐─ 삐─, 삐─같은 놈, 어디 TV에서 사람들 웃겨주고 피로를 풀어주고 휴식을 안겨줄 것이지 남을 웃기는 것으로도 모자라 내 꿈에 나타나 사람을 기겁하게 만들어? 그러다 이불에 실례할뻔 하게 만들어? 저런~ ...! 자기가 진짜 웃긴 줄 알아, 전성기 지나서 이제 별로 웃기지도 않아, 전성기 때도 하나도 안 웃겼어, 옆에서 다 해줬어, 그때나 지금이나 그냥 맡은 역할은 뭐겠어? 뭐긴 뭐야 병풍인지, 몸으로 웃길 줄이나 알지 고급스러운 유머와 여자들 찌릿하게 만드는 목소리와도 거리가 멀어. 보통 대개는 예술가들의 1집 앨범이나 첫 번째 소설과 작품이 가장 뭐랄까 기념비적이랄까 뭔가 모든 작품 목록에서 제일인 거 같고 어떤 최고의 빛을 발하는 거 같다는 건 모르는 사람은 없어. 어느 급에 이르지 못했다라는 가정 하에. 그런 면에서 계속 내르막 길이거나 그 색채를 유지하는 거지. 꿈에 나온 그 인간이 항간에 떠도는 헛소문, 너무 이상하고 말도 안되는 그 헛소문에 대해서 TV에서 특유의 근엄한 표정으로 냉소와 함께 어렵싸리 극구 변론하고 마누라에게 하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항변할 때 오히려 그때가 딱 그때만 제일 웃겼어! 그 녀석과 비슷한 후배 개그맨인지 가수인지 어느 유명인도 있잖아, 개미 목소리의 소유자, 등치는 몸개그에 딱 알맞게 생긴 데다 우락부락한데 목소리는 개민지 파린지 닮은 목소리, 잉잉~ 엥엥엥~ 그랬나봐 아아~ 너를 사랑했나봐 뭐라뭐라 응응 엥엥엥~ 아 생각해봐 엄청 크고 무섭게 생긴 개가 짓는데 나오는 소리가 응에응에 그러면 어쩌겠나, 백날 지가 음악 인생 산다고 예술을 외친다고 사랑 노래를 불러대지만 사랑에 시퍼렇게 멍든 가슴에 대해 징징 짜는 사랑에 대해 잔뜩 달아오른 애정의 감정에 관해 제대로 알기나 하겠냐고. 수도꼭지 틀듯이 울어본 적이 있어야 뭔 말을 하지, 누가 자기 좋아한다고 하면 앞뒤 안 보고 밑도 끝도 없이 '얼씨구! 좋았어! 오케이!' 그럴 꺼야 당연하지, 꺾고 돌리고 회유를 하나 넌지시 얘기를 할줄이나 아나 맨날 직진에 흔들고 지르고 그냥 달리기만 해 다른 건 생각조차 안 한단 말야, '당연하지' 같은 게임이나 좋아하고 말이야 그게 뭐야 그게 뭐하는 짓이냐고, 샹들리에 같은 단어에 대한 느낌도 전혀 없어, 뭔 단백질 보충제를 콘푸레이크처럼 우걱우걱 씹어먹고 지가 여자도 아니면서 맨날 거울보고 힘주고 자세 잡고 맨날 하는 일 없이 말야 그게 뭐 하는 짓이야? 찌질하고 허접하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이야. 눈치는 어디 초딩들 저금통에다 헌납했나, 주위에서 보면 우낀 그런 괜한 오해를 살 소지를 자기도 모르게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긴 있어, 가령 눈썹이 완전 엄청 정말 길고 숱이 많은 사람이랄지 그런 사람들 말이야.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겠어? 그것도 몰라, 어디긴 어디야 당연히 클럽 문 앞이지, 물 좋은 NC 입구, 그곳을 지키고 사수하고 관리해야 할 꺼 아니야! 그도 그렇고 모두 그냥 덩치가 크니까 주위에서 거들어 준 거 뿐이라구, 저급한 유머에다 순전 타인들 겁줘서 일부러 웃게 만드는 이상하고 식상한 개그 코드의 소유자.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진짜 웃겨서 웃는 거 아니잖아, 무서워서 '애쓴다 애써, 고생하네 고생해' 하면서 웃어주는 것일 뿐이잖아 안 그래? ...(침묵)... 물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게 절대 아니야. 그런 값싼 말로 어렵게 쌓은 내 품위를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구. 안 그러겠어? 나는 그분들이 좋은 사람들이란 거 다 알아. 그분들도 내 말이 진심이 아니란 것 역시 알지, 이런 유형의 코메디 학파인지 분파가 있긴 있다는 것까지도. 나리,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나는 뭐랄까 단지 만약 그분들이 그런 말을 듣고서 열받고 수증기가 귀에서 빵 코에서 빵 얼굴이 만화영화에서 토끼가 좋아하는 홍당무처럼 빨개지는 상상을 하는 게 즐거울 뿐이지. 단지 그거 하나! 그렇지만 꿈에서 나타난 걸 생각만 하면 아휴 증말 그냥 저걸 콱 이런 삐─! 그런 인간들이 어디 라일락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비틀즈의 미쉘은 들어나 봤는지, 데이트하다 레코드점에 들려서 누가 연주하는 누구 작품 찾아달라고 하면 뭔 엄한 짓 하다 들킨 것처럼 눈이나 똥그래지고, 그들과 수줍게 문학에 대해? 겸손하게 지성적으로? 능청과 삶을 제대로 구분할 줄 알기나 할 꺼 같아? 그렇지만 사실 나는 그런 1차적인 유머도 좋아해. 그리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실은 그들의 광적인 팬이야. 정말이야! 하긴 나도 지금 당장 라일락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몰라. 커오는 동안 그렇게 라일락 꽃이 어떻네 뭐라 노래를 듣고 부르고 그랬는데. 비창 교향곡에서는 관악 파트가 어쩌고 럭비는 말이야~ 테니스로 말 할 것 같으면~ 그 다음에 딱히 멋드러지게 할 얘기가 없다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렇게 보면 걔네들이랑 나랑 동급이야. 아니지 그 친구들은 인생에 있어서 스무살을 넘어서면서 대중의 관심에 익숙해지고, 큰 부를 성취하고, 인기있는 친구들과 항상 함께 하며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다가 한눈도 팔고, 거짓말을 하는 재주가 예의상이든 어쩌든 탁월함을 넘어 예술에 다다르고, 뭐 어쩌다 이혼도 하고, 그러면서도 후배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지 않고, 괘씸하게 꿋꿋히 현역으로 남아서 돈 버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이란 건 증명하면서 여실이 땀방울을 흘리는 반면 이쪽은 아아 이게 다 뭐래니. ... (침묵) ... 이러니 내가 어디 외딴 곳에 들어가고 싶겠니 안 그러겠니? 나도 알아. 무슨 뭐 아카데미, 그런 말을 진지하고, 논리적으로, 근거를 제시하고, 차근차근 알려주면서 마술적으로 설명하면 누가 속는데? 하지만 지금 내 사정이 이러니까 잠깐 혹 한거야. 아니, 아니야. 어쩌면 그건 진짜 있을지도 모를 일이야. 어디 조용히 외딴 섬으로 여행가거나 수도승처럼 골방에 쳐박혀서 새로운 샐리 포터, 샐리 포터를 쓰려고 일부러 막 괴짜로 보일려고 하지 않아도 돼. 그런 법인이랄지 단체, 시설, 교습소 같은 곳이 정말 이 지상에 존재한다면 말이야. 직업도 요즘은 얼마나 많이 생기니, 미래학자들이 내는 책들 보면 앞으로 어떻게 세상이 변할지는 말도 못해.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동물농장이니 1984니 멋진 신세계니 산업혁명에 대해서 그리고 그 다음에 대해서 뭔가 아득한 경이감을 가지고서 아주 말도 아니었다고들 하잖아. 왜, 내가 너무 심각하게 반응하는 건가, 아닌 것 같아. 반대로, 내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것도 아니라니까. 딱 적절히 그 가설이, 아니, 그 말 그대로 딱 그만큼만 받아들이고 있고, 안 그래도 내가 예전부터 생각했던 내용들이었어. 하워드, 나랑 이따 좀더 진솔히 자세하게 그 일에 대해서 논의해보자. 하긴 뭐 누가 알겠어? 한 삼년 공들여서 그곳을 졸업하고 딱 궤도에 오른 후 매스컴에 노출되기 귀찮으니까 은둔형 작가니 뭐니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자나.」
   명소프라노가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 아리아를 부르고 있다가 잠깐 곡 중간에 멈칫 쉬어야 하는 음표와도 같이 좌중의 어느 한쪽에는 어느새 불현듯 냉혹한 한기가 서리고 그 노트의 겉표지에는 공포영화처럼 제목이 스르륵 써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제목은 소설 창작 아카데미를 찾아서?
   「제임스 도대체 왜 저러니? 덜떨어진 거도 아니고 일부러 맞장구 쳐주는 데 재미붙인 거도 아니고 이거 정말 뭐 하자는 거야?」 닉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겉으로 말하지는 않고 속으로만 생각했으며 그럴 듯한 의미의 눈빛만 다른 친구들과 공유한다.
   「난들 아냐? 그냥 던진 말인데 저렇게 낚여버리면 그 말을 꺼낸 난 대체 뭐가 되냐고? 그냥 웃자고 한 말인 거 모른 사람이 어딨어? 그러자나.」 하워드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역시 내뱉지는 못하고 괜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발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다. 그래도 대화의 방향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는 않아서 다행이랄까!
   「야, 가자. 지금 당장. 어서. 어디야, 거기?」
   「그거 다 내가 지어낸 얘기야. 선연한 거짓말이라니깐 그러네. 생-거짓말! 됐어? 똑 부러지게 얘기하니까 이제 만족하냐? 딴 애들 다 알아먹었는데 넌 뭔 생각하다가 이제 와서 엄한 소리를 하는 거냐? 설마 원래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건 아니지?」
   「맙소사! 그걸 지금 나보고 믿지 말라고? 이런, 젠장! 믿겠다니까, 속겠다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겠다고, 감화하겠다고, 거짓일 공산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 고백을 반듯한 자세로 멋진 어깨선을 유지하면서 감동한 척 하면서 늠름히 받-겠-다-고! 왜 지금 와서 그것이 가짜로 네말이 거짓으로 돌변해야 하는 건데? 그러잖아? 어서 신나게 그곳을 찾으러 떠나자고. 뭐라고 했지... 뭐 무슨 아카데미? 반짝반짝 신호가 오시는구나. 설령 우리가 찾던 그것이 개판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찾으러 떠날꺼야. 이런 내가 미친 것 같아? 와, 미치겠다. 장난으로 시작한 게 어쩌다 더 이상 장난이 아니게 됐어. 다른 게 아니라 비록 그것이 바라고, 꿈꾸고, 소망하고, 그려봤던 모습이 아닐지라도, 딱 거기에 도착했드니 그건 뭐랄까 그냥 인적이 끊긴 황무지에 불과할지라도 설혹 그렇다고 해도 나는 실망하지 않겠어. 게다가 그것은 내, 내? 내 거기일 리는 없잖아. 그곳의 정문에 딱 도착했는데 어쩜 그곳은 미래에 가까운 미지의 공간일테니까 내부로 들어갈려면 어떤 특수 판독기를 통과해야 되는데 글쎄, 그걸 그 금속성 평판 위에다가 올려놔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럴까 아닐까? 당연히 아니겠지. 여자는 어떡하라고. 아, 뭐 스캐너나 그런 장비가 있겠구나. 그건 모를 일이야. 아무튼 평생 속고만 살아왔을지라도 인생이라는 도박판에서 내내 허탕만 쳤다 해도 확률상 지금은, 이제는, 드디여 내 운명의 왈츠와 행복한 마권 그것의 부제는 바로 믿음이야 반드시 신뢰여야만 한다구. 하나만 찍다가 여기까지 왔어. 다른 건 하나도 몰라. 사랑 밖에 난 몰라. 어중간한 미련은 떨쳐버려야 해. 끝끝내 그곳에 다다르지 못한다면 어쩌면 내가 그곳을 만들지도 모르겠지. 그 무슨 아카데미 그거. 그런다고 설마 폴리스 아카데미 같은 그런 한참 철지난 영화일랑 떠올릴 생각은 하지도 마. 그 길은 곧 그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 될 꺼라구. 지금 신성하고 거룩하단 말이야. 나 심각해. 그래, 미쳤어. 그분이 꼭 이렇게 내 뇌파를 조정하고 텔레파시를 내게 보내니까 나는 지금 이렇게 이상한 말을 지껄이고 있는 것 같아. 느낌이 와. (손가락 딱! 어디를 가르키고 윙크! 하이파이브는 생략!) 좋았어! OK! 이거야! 이거라구! 자, 가자!」
   「... ...」, 「... ...」, 「... ...」 어쩌면 좋을까 이 일을... 그런 분위기.
   「에이 왜 그래, 피자랑 햄버거 시켜 먹었으니까 커피 한잔 마시고 낮잠을 자던가 잠시 쉬는 시간 가지면 안 되겠니? 넌 꼭 애들마냥 뭔 새로운 일에 관심이 가고 호기심이 불붙으면 꼭 참지를 못하고 그 즉시 바로 확인하고 찾고 나서고 그러더라. 엉덩이가 근질거려서 참지를 못하는 거니? 그러면 사랑을 놓친다니까. 사랑은 기다림이야. 이별은 사랑이 다시 한번 만들어내는 변하지 않는 음률이라고. 나이 들면 나이값을 해야지 그게 뭐니.」
   「야, 하워드! 뭐가 어쩌고 어째? 늬가 아까 있다고 했잖아. 지금 와서 오리발 내밀 꺼면 아깐 왜 그렇게 진짜같이 막 허공을 휘저으며 온갖 수식어를 갖다 붙이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눈동자도 흔들리고 동공도 흔들리고 내 마음까지 흔들리게 만들었냔 말이야? 이 자식이, 정말 그러기야, 어? 이럴 꺼야? 지금 여기서, 몸의 대화를 나눠 볼까? 그래? 어? 그걸 원해?」
   「뭐야? 뭐가 어쩌고 어째? 아까부터 가만 듣고만 있었드니, 이런~ 이거 장난이 아닌데. 있을 꺼 같으면 너가 나가서 찾아봐. 난 몰라.」 이렇게 말할려다가 정작 꺼낸 말은 「에이 멍충아, 그런 게 어딨냐? 스파르타식 소설 창작 아카데미? 거기 나오면 다 대가되고, 떼돈 벌고, 행복을 찾고, 쾌재를 부르며, 즐거운 인생을 살게 된다고? 이런 미친 놈을 봤나! 미처도 아주 단단히 미쳤구만. 야 이 바보야 정신 좀 차려, 정신 좀!」
   「뭐?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거짓말이지? 거짓말이라고 말 좀 해봐. 어서. 지금 당장 말이야. 왜 다시 날 속일려고 그러니? 아니다. 왜 다시 날 속이지 않을려고 그러니? 너 원래 그런 애 아니었잖아. 우리 사랑이 이거 밖에 안 돼? 아 사랑이 아니라 우정. 그래 나 바보고 멍청이인 거 다 알아.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되잖아. 이래서는 안 된다구. 이렇게 끝낼꺼였으면 너한테 물어보지도 않았어. 어서, 빨리, 바로 출발하자, 아까 했던 말은 다 잊고 넘어갈께. 자, 가자!」
   「이런 삐─ 삐─ 삐─ 욕을 얼마나 얻어들어야지 정신을 차릴래. 그런 거 없다니까. 지금이 무슨 중세 시대인줄 아냐? 아휴 이런 초딩도 아니고 뭐야 이런 돌아이는, 어디서 굴러왔길래 이렇게 꽉 막혔어? 아휴 증말~.」
   「뭐? 뭐라고? 이 자식이 듣자 듣자 하니까 안 되겠는데, 너 이리와봐!」너 이라와 봐? 자기가 가면 되잖아!
   「야! 잠깐. 무식하게 흥분하지 말고 침착히 생각해보란 말이야. 야, 너 나 안 볼 자신 있어? 어? 앞으로, 나 안 볼 자신 있냐고? ... 나는, 있어 있어 있다구~.」
   「안 되겠다. 야, 우리 한판 뜨자!」
   「뭘 떠? 늬 얼굴이 노랗게 떴다? 컴퓨터 오락 게임 한판 하자고? 안해! 저번에 마지막 게임에서 내가 이겼으니까 더 이상 안해. 내가 이긴 걸로 그건 끝났어, 끝났다구.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껀데? 아이 계속 그렇게 쳐다보지 마. 그러지 말란 말이야. 아 놔 이 자식이 정말...」
   「대충 넘어갈라고 했드니 안 되겠는데, 자꾸 사람 성질을 돋구는데. 너 꽤 흥미로운 취미가 생겼구나. 퍽 재주도 좋아. 자, 시작하자!」
   「날 잡아보시겠다? 그래 잡아봐. 잡아보라고! 따라와 봐, 따라올테면 따라와 봐. 따라오라니까, 그래서 어디 내 근처에나 오겠냐? 어휴 느려터져가지고, 저... 저.. 아이 뭐라 불러야 할지 생각이 안 난다. 저 똘아이 정말 답 없다.」
   얘네들이 남자 대 남자인지 여자 대 여자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남자 대 여자, 그럴 일은 없고 그건 아니고, 그러던 중 한 명 도망가고, 한 명 쫓아가고, 한 명 따라가고, 나머지 모두 뒤쫓고, 그런 일은 일단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란 거다. 하지만 앞으로 일이 어떻게 풀릴지 급작스럽게 호기와 반기가 충돌할지, 너라면 정말 넌덜머리가 난다고, 너도 대책없기는 마찬가지다, 참다 못해 다 팽개쳐 버리고 뭘 때려 부술지, 천만다행으로 말다툼으로 그칠지 아니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속수무책으로 시시각각 하나하나 모두 지켜만 보아야 할지는 아직,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 얘기가 딴세상으로 흘러가 버리면 또 갑자기 흥미로워질 수도 있지만 말이다.
   금새 묻고 답하고, 답하고 묻고 대화하기는 날아갔다. 어딘가로 멀리 저 멀리 날아가버리고 녀석은 쥐도 새도 모르게 갈대의 속삭임을 엿듣고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산타는 없다고, 아직도 사랑을 믿느냐고, 권태도 이별도 체념도 별 것 아니라고, 너의 지난 삶은 모두 무효라고, 지금까지의 모험은 모두 약과에 불과했다고, 뻥을 진실로 둔갑시키지 말고 잠자코 행실을 바르게 하며 건전한 삶을 살라고, 뾰로통한 그런 표정 정말 지겹다고 그렇게 충고라도 해줘야 할까, 늬가 어디 초딩인줄 아냐며 그런 흉물스러운 능청은 그만두라며 꿀밤을 한대 쥐어박을까. 보물의 은닉처가 있기는 어디 있다고 자꾸 그곳을 찾아가자고 보채는지 무슨 예술 창작 아카데미란 곳이 정말 있다면 그리고 그곳이 진짜로 스파르타식이라면 얘는 아마도 그곳의 경비원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그걸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옆사람 머리 띵하게 만드는데 어떡하지, 그러다가 행여나 그런 곳이 정말로 있을 리는 없겠지만 나름 모두 신사의 품격과 함께 지성의 아찔함 너머의 솜사탕 같은 연애와 뜬구름 같은 작업과 목마와 숙녀 그리고 회전목마까지 인생의 법칙과 세상사에 모두 통달한 그들은 제임스에게 정신차리라고 이 친구야, 이렇게 오해하고 있는 사건의 진상을 그 망연한 진상을 툭 검정 단추를 턱 풀고 친절하게 알려줄 위인은 못되었다. 때문에 느릿느릿 감정과다는 잦아들고, 뜬금없이 소설 창작 아카데미를 찾으러 떠나는 절정의 길만 남은 꼴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지금 얘네들 행보는 어디로 튈지 모르고, 그런 예견의 결과는 항상 다르며, 누군가의 천재성을 긴요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알렉스의 집에서 그곳을 찾아 출발하던 당시 살찐 거위는 보이지 않았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 꼭 그런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요괴가 그들을 현혹했는지 무작정 분주함에 들떠 오른쪽 날개인 환상과 왼쪽 귀 신비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면서 현실성을 점점 차츰 잃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왕왕 제정신은 들겠지만 그러다 말어.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의무 가운데 어떤 게 오른쪽이고 어떤 게 왼쪽일까. 진땀 뻘뻘 흘리면서 작문에 열중하는 문학청년에게 그 답을 구하는 것이 전적으로 덜 미망과 미완성과 실패와 결탁하는 일이 될 것이다. 덜!
   어느덧 그들은 출발했다. 앞에 어떤 전경이 펼쳐질지도 모르겠고, 그것을 찾아가는 길이 잘 닦인 반들반들한 비단길인지도 불명확하고, 격식 같은 거 따지지도 말며, 하워드는 나름 선행을 한 것일 수도 있다고 볼 수 있고, 혹시라도 만약 정말 어쩌다가 만에 하나 그들이 뜻밖에 애타게 찾는 소설 창작 아카데미를 발견한다면 꿈은 이루어진다, 는 말처럼 이 잔잔한 일상에 무지개와 오로라를 비처주는 그대의 삶에 달콤한 애환과 더 달콤한 매혹감을 불러일으키는 더없는 금상첨화의 선물이 될 것이다. 필경, 그럴 것이다. 그러나 실망감에 돌아와 술 먹고 뻗은 후에 깨어나서 숙취로 괴로워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들은 무방비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금새 묻고 답하고, 답하고 묻고 대화하다가 한 사람이 좀 길게 얘기하다가 하나도~ (더럽게) 재미없이 알렉스 집에서의 일화가 끝나버렸다. 허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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