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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6. 3. 15. 23:01

   어느 날 나는 조금 이상해져 있는 나, 점점 변해가는 나를 발견했다.
   일상에 찌들던지 상업에 중독되던지 하루는 종일 금관악기 음악만 듣던가 몇 시 몇 분 정각이 되면 딱 시집을 펼치던가 하면서 뭔가 내가 작심삼일짜리 동기부여의 전문가가 되버린 듯한 희한한 감정에 휩싸였다. 작심삼일짜리 동기부여? 그건 도대체 뭘 뜻하는 건가? 딱 중학생을 위한 영화같은 기분? 소네트 18번과 해변의 묘지 외우기? 시끌벅적 분주하고 바쁘게 살지만 뭘 하고 있는지 목적은 무엇이고, 왜 그 방식을 고집하는지 쉽게 설명이 안 되는 지금은 황금시대? 이런 정신병자의 습관적인 말 같은 헛소리를 지껄이게 된 계기는 가까운 세기말인 1990년대 중반에 발간되어 어느 지역 문학상을 받은 한 권의 시집을 읽고서 시작된 것 같다. 나는 그 책을 몇 페이지 뒤적거리다 집어던졌다. 도저히 못 읽겠으니까. 가만히 놔두면 되는데 나도 모르게 평정심이 깨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책에 나오는 얘기는 전부 들쑥날쑥 재즈풍으로 그저 감각적으로 한껏 부풀려진 만화와 영화와 쇼가 어우러진 풍모가 마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한 손에는 시가를,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장황하게 입에 거품을 물며 이 얘기 저 얘기 끝날 기미를 안 보이고 말만 엄~청 하면서 한시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가만 있지 못하는, 말을 안 하면 엉덩이에 뿔이 돋는, 말하기로 어디서든 둘째가라면 서러워서 몇날며칠 잠을 설칠 것 같은 달변가의 언변과 정확히 흡사했기 때문이다. 한 장 두 장 듬성듬성 성의없이 넘겨보면서 간추려보니 거기 나온 내용은 전부, 전부 그랬다. 그때 유행한 브랜드, 사람 이름, 뭐 한다, 노래 가사식 시어들, 명상가의 잡담, 나는 뭐가 좋고 뭐가 싫다, 재즈 또 재즈 오늘도 재즈 내일도 재즈, 지역명, 전문 용어......! 와~ 이 양반 말 참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내 감상은 실제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시인은 시를 참 쉽게 수월하게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으신지 의아한 심정. 내가 그때 심사위원이었다면 책 한 권 구해서 찟고 구겨서 불태웠을 수도 있다. (그쯤 언제던가 나는 내 앨범에서 사진들을 몽땅 추려서 실제 불태웠다) 어디 이런 수준의 책을 후보에 올리냐면서 안 그래도 소문도 흉흉하고 권위도, 상금도, 봉급도 떨어지는데 하면서. 물론 농담이다! 정말 유행의 최첨단을 누리면서 요즘 가장 뜨겁다, 근래 보기 드문 명필가다 라는 찬사를 듣게 될지라도 브랜드, 이름, 반짝하는 도시적인 것, TV 편성표, 인터넷 최신 경향을 어차피 일부러 어쩔 수 없이 많이 반영할 것이라면, 동네 이름과 동네 예술가와 동네 최신 스타일보다는 시대 사조와 몇 세기 전에 살던 극작가와 해수욕장 모래부터 우주까지 모두 다루는 것이 백번 낫다. 꼭 지엽적인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안 그러면 메뚜기도 한 철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시집을 전혀 읽지 못했다. 도저히. 유한성이 어떻네 추억의 육체를 빌려 자신의 존재를 복원하네 하지만 예술 분석에 문화 비평 같은 내용들만 있어서 에잇~ 하면서 아 이런 괜히 봤네 그랬다. 하지만 그걸 봤으니까 그분이 오신 것인지도 모르지만. (혼잣말, 혹시 이 때문에 그분께서 행차를? 사소한 일이 아닌 건 분명한데... 그렇긴 한데) 철이 지난 어떤 작품이 왜 무언가는 촌스럽고, 어떻게 뭔가는 고풍스럽고, 이상하게 저기 저 그것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빛이 나는 것일까? 그걸 내가 알면 이미 앞서 말한 시인처럼 살면서 딱 책을 100권은 족히 발간했을 것이다.
   잠깐, 브랜드 이야기를 하겠다. 이름, 고유명사, 이니셜, 은유를 불러일으키고 연상시키는 게 무척 많은 단어. 상표! 옛날에 나는 이성의 이름만 읽거나 들어도 설렜다. 하물며 사진이라면, 영상이라면, 그런 성적인 이야기라면 어떠했을까, 말 다 했다. 그러나 그게 정상이다. (주제가 브랜드지만 에로와 포르노의 차이, 그것까지 가미되는 느낌이지만 글이 말과 영상을 성적으로 닮으면 그건 예술에서 멀어진 것이기 때문에 또 젊음은 전자와 후자에 모두 호기심의 촉수를 드리우기 때문에 지금은 같이 묶어도 썩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땐 그랬다. 나는 이성의 이름만 읽거나 들어도 설렜다고. 그럼 지금은 안 그럴까? 정말 지금은? 그렇다면 현재 난 비정상? 아하~ 언제 바뀐 줄도 모르게 공수가 바꼈으니 당신께서 대답해보자. 자, 이름을 막 가져다가 열거하겠다. 아무 의미없이 나열하는 것으로 다른 뜻은 없다. (번역은 해당 언어권 이름으로, 성과 이름도 적절히...) 수민. 예령. 현주. 유리. 세은. 유진. 영희. 란. 은주. 가은. 선진. 민아. 미희. 지우. 우진. 진선. 선희. 희주. 주혜. 혜민. 민순. 아영. 채연. 은미. 미경. 송희. 아진. 지영. 은희. 길연. 보미. 현정. 희진. 지원. 아름. 소영. 현숙. 미현. 민실. 은아. 명신. 미혜. 미경. 영미. 현주. 단아. 진아. 상미. 향미. 혜정. 지혜. 보라. 우정. 예지. 민지. 정은. 단비. 가람. 선희. 리원. 지수. 수현. 미나. 소미. 인정. 다혜. 경희. 승주. 정. 유라. 혜리. 수빈. 미라. 지아. 예원. 예은. 하늘. 현미. 유경. 세정. 시연. 아란. 주경. 미현. 은정. 은솔. 슬빈. 나영. 윤지. 아람. 은비. 라영. 인화. 나은. 은지. 아름. 미진. 지수. 선향. 정민. 한별. 스텔라. 유진. 리나. 재은. 선주. 한솔. 혜림. 선미. 새미. 소정. 보경. 서영. 신영. 성주. 은하. 새롬. 자영. 은희. 은정. 민지. 은지. 수진. 예림. 자애. 솔. 다미. 보미. 승미. 고운...... 자, 어떠신가? 기분이 어떠십니까? 사진을 보면서 얘기할까요? 아니면 실물을 보면서 좀 더 심층 분석할까요? 그거부터 시작하자구요? 일단 예선을 거쳐고 범위를 좁히자고-요? OK~ (손가락) 딱! 역시 그렇다! 예리하시네, 통찰력이 남다르셔, 극도로 감각적인 세련된 스타일의 이상주의자이시군! 남자 이름이 아니라 여자 이름이라서 감이 떨어졌다는 그대의 고상한 말 맺음. 요약하자면 바로 이게 브랜드다, 이게 브랜드라고, 이것이 바로 상표다! ...... 세상에서의 당신! 그때 너! 내일 그대! 오늘 생각하기에 사랑이란! 그는 어때! 걔 어떻드라! 누구, 음 그래! 그이는 멋져! 몇몇 단편과 중편과 장편소설에서 최근에 가장 뜬 브랜드는? 바로, 그분! 뭘해도 그분, 틈나면 그분, 할 말 없으면 그분! 아니라고?
   난데없이 사람 이름이 많이 나온 이유가 있다. 그것은 <왜>와 관계되고 언제, 는 나왔고 이제 남은 건 <어떻게>다. 왜, 언제 이상해졌다 그것 보다는 어떻게 이상해졌나를 더 소상히 정성껏 밝혀야 하는데 꼭 세탁소에 가서 왜 TV를, 어째서 최신 TV를 팔지 않냐고 떼쓰는 형국이 됐다. 재미없는 연속극. 희트곡 없는 잊혀진 가수처럼. 번번히 헛다리만 짚고 헛불만 켜는 거짓된 삶을 살아와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과거가 통채로 오리무중이지만 차츰 소심해지고 점차 자의식이 가라앉고 야금야금 고개를 숙이는 입심을 되살려보자면 좌우지간 나는 이상해졌다. 탁자 건너편에 앉은 일행에게 봇물이 터진듯 무진장 말을 쏟아놓다가 옆 탁자에 앉아 있는 타인에게 <내 말 듣고 있냐고?> 이렇게 따지는 미친 개와 비슷할 것이다. 나는. 그건 진통제나 두통약으로 치료되지 않는 사랑이라는 병과 같다. 희한한 불청객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상할지라도 바라건대 그것이 빈 술병처럼 명멸된 빛의 처량함, 통념적으로 인준할 수 없는 유빙, 실성한 듯 회전문을 빙빙 돌리며 거기서 빠져나오지 않는 어른만은 아니기를. 명색이 소설인데 글이 말을 닮으면 곤란하다. 빨간 융단 위를 걷는 영화제 관계자라도 된 것 같은 자신감이라도 지녀야 한다. 카메라 후레쉬가 번쩍거리면 덩달아 기분은 좋아질 것이다. 과연 이렇게 횡설수설해도 괜찮은 행동인지 즉각 그 이상함을 재가하도록 하자. 고역이 될지라도. 격분할지언정. 말실수로 판명된다 해도. 애착이 지나치고 집착에 애걸에 뭐, 껄~떡? 이라는 명대사가 떠오르더라도 어떻게 이상해졌나는 밝혀야 한다. 불확실한 그것이 독자에게 선듯 건네는 정표가 될 수도 있고, 슬쩍 한번 던져봤는데 소 뒷걸음질치다 밟은 쥐가 될 수도 있고, 그대에게 귀뜸하는 비밀이라거나 아첨, 소원, 허탕, 염탐, 맵시등 그 무언가로 밝혀진다 해도 유령을 보든 말든 이제는 밝혀야 한다. 더 미룰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럼.
   자, 시간이 됐다. 그 이상함은 이것이다. 살면서 한번 쯤 만났거나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유독 악수를 많이 하는 사람, 특이하게 만나는 사람마다 하이파이브를 하는 사람, 명언을 하루에 최소 몇 번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처럼 나는 나 이외의 물건들 이름과 나의 기분, 감정, 정서, 능력, 습관, 방식, 의욕, 분위기, 문체등 모든 것이 어떤 불확정성의 원리와도 같이 나로 스며들어 나 자신이 도화지나 풍향계, 동기화되어 업데이트되는 프로그램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 것이다. 아니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다. 거짓도 아니고, 환상도 아니고, 불가사의 또한 아니다. 그냥 하나의 현상 같다. 맞다. 그렇다. 그림을 그리면 화가가 된다. 꿈을 꾸면 몽상가가, 소설을 쓰면 소설가가 된다. 종이를 소재로한 조각들을 뜯어 입체 퍼즐로 빨강머리 앤의 집을 만들면 건축가가 되는 것이다. 꼭 상상임신처럼. 남자가 하는 입덧처럼. (이런 생각하니까 이상해졌군!)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바로, 이렇게 이상해졌다. 나는 행복한 글쓰기 라는 책을 읽으면 나는 글을 쓸려고 폼만 잡아도 행복해진다. 나는 딜런 토마스의 탄식이라는 시를 읽으면 정말 나는 탄식하게 된다. 나는 루이지 케루비니의 음악을 듣는다면 배경이 불투명해지면서 추구하는 문학적 배경이 이상하게 바뀌게 된다. 또, 나는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라는 영화를 보면 동네 놀이터에서 (대중적인) 보석 브랜드 피타니의 상자, 알맹이가 빠진 포장 박스를 줍게 된다. 나는 거리에서 누군가 추파춥스 막대 사탕을 먹다? 마시다? 핥아먹다? 빨다? 다듬다? 귀여워하거나 포장을 푸는 모습을 보면 살바도르 달리와 추파춥스 로고의 관계를 떠올리면서 뭔지 모를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나는 투게더 라는 이름의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에서 남몰래 혼자 먹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외롭게 혼자 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아무리 사람 많은 도시에서 최대 3일을 버티지 못하는 추리소설가라도 빵을 사와서 집에서 먹고 요리하고 와인을 마시며 최소한의 관음증이라는 TV를 혼자 볼 것이다. 그게 인생이니까. 나는 모닝스타라는 광고를 보면 아침에 상쾌하고 쾌활하며 통쾌한 기쁨을 느낀다. 나는 내가 쓴 실험적인 단편소설 습작의 제목을 <그래서 도대체 뭘 어쩌자는 겁니까?> 라고 먼저 지으면 그런 뉘앙스가 퍼지는 향긋한(?) 기분의 소설을 쓰게 된다. 꼭 뭘 못하는 사람들이 거창하게 제목 먼저, 장비 먼저, 판돈 먼저 부풀린다. 아! 오! 아─아! 오─오! 이것은 이것은 말이다, 자존감이라는 딸기맛 과자 한 봉지와 존중심 초코칩을 끌어올려 나는 뭐다, 나는 어떻다, 나는 뭐뭐했다, 나는 뭐뭐 하고 싶다, 나는 무엇을 좋아한다, 나는 여자도 좋고 남자도 좋다 라는 <나는, 나는> 이라는 애초의 소설 쓰기 목적을 입상 후보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나도, 나도> 라는 신삥 햄버거 문체의 왕자를 앉혀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때때로 리하르트 바그너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을까? 누구도 모를 일이다. 나도 잘 모르겠다. 다시 말해 이것의 단점은 결코 여건이 녹녹치 않고, 결과와 여파를 사소하게 넘겨버릴 수 없다는 뜻이다. 곧 나는 <머머할 것이다>는 요구르트를 마시지 않으면 예언을 할 수 없게 된다. 그걸 마시지 않으면 예언을 못 해! 콘래드 호텔 근처에서 얼쩡거리기라도 해야지 글의 품격이 조금이라도 올라간다. 주기적으로 어린이 TV 프로그램을 보고, 만화를 읽고, 동네 초등학교를 구경해야지만 동심을 되찾고 정욕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물론 그것과 저것이 건강하다는 뜻이지만. 나는 순수라는 이름이 붙은 우유가 포함된 어떻게 만든 좋은 식빵을 먹으면 순결해진 느낌이 드는데, 문제는 그걸 안 먹었드니 난, 나는 불결해졌다. 이거다, 문제는! 나는 로맨스 코메디 영화를 보지 않으면 눈치도 없고, 낭만도 모르고, 웃지도 웃기지도 못하는 썰렁한 마초가 된다. 나는 인문-교양서를 읽지 않으면 멍청해진다. 많이. 원래 멍청한 것과는, 그리고, 여자들이 특별하게 멍청하다는 표현에 민감한 것과는 조금 구별할 필요가 있다. 나는 거리에서 멋진 차를 구경하지 않거나 인터넷으로라도 명화와 미녀를 안 보고 고전음악을 듣지 않게 되면 안목과 수준과 취향과 타고난 성향과 격조가 모두 땅에 땅바닥에 떨어진다. 서점에서 책을 안 보더라도 연애심리 코너를 기웃거리기라도 해야지 여자를 다루는 솜씨와 이성의 환심을 사는 재주가 녹슬지 않는다. 1주일에 한 번 갔던 서점, 날마다 가게 생겼다. 대략 이 정도다.
   자, 시선을 돌려 당신의 얘기를 들어보자. 당신은 여자다. 남자도 있다. 그대는, 그대는 지금, 지금 빠져든다 빠져든다. 점점 점점, 천천히 천천히, 깊게 깊게! OK! 몰입했다. 천사의 환락궁의 소설 극장에 도착하셨다! 여자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면 가장 무난할까? 그녀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과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선호하는 언사가 무엇인지 떠올릴려고 용단을 굳힌다면, 곧바로 다리를 떨고 줄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연거푸 세 잔 마시며 초조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식~ 웃음짓기. 그들은 대체로 남자다. 그 가운데서도 육식남? 즉 건강한 청춘, 간혹 부장님식 농에는 능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도무지 여자는, 여자는 통 모르겠다는 중년. 여러 보기 가운데 딱 하나만 꼽자면 여자는 젊음에 어마어마하게 지대하고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나이, 상태, 여건, 처지, 상황, 환경과 그리고 자태.
   어느 날 나는 <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라는 책 제목을 우연찮게 읽고서 나는 남자지만 문득 거기서 영향을 받아 쏜살같이 여성적 관심사와 내 몸이 딱 결탁하여 초로의 정념을 품고서 나도 모르게 어느 대학교로 향했다. 저번에 하숙 생활을 했던 그 반대 방향으로 갔다. 그곳이 바닷가였으니까 이젠 산으로 갔다. 우연히 그때 친하게 지낸 동생들을 만나면 멋쩍기도 할 꺼 같고, 포스트맨은 벨을 울릴까 말까 카페도 요즘 물이 좋지 않고, 아직 해변가에서 팬티만 입고 일광욕을 하기에는 넉넉히 따뜻한 날씨가 아니고, 글도 잘 안 써지고 해서 나는 어떤 젊음의 기운을 받고 예술적 착상과 심미적인 영감, 나쁘게 발전하지 않을 최저 수준의 도착증과 어떻게 보면 억지로 이어보면 그거와 약간 연결되는 착안의 소재와 동기를 얻게될지 모른다는 추정에 근거하여 나는 아침에는 모차르트의 희유곡을, 저녁에는 쇼팽의 야상곡을 그리고 낮에는 클럽음악에 대해 검색해보다가 그런 천방지축과도 같은 결심을 하였다. 그 후로 바로 실행했다. 그것은 내가 봤을 때 내 일이니까, 내 삶이니까, 내 인생이기 때문에 딱히 정확한 논리와 이성적 근거가 부족해도 충분히 수긍가는 일이었으며, 따라서 석연찮게 망설일 필요도 없고, 그러므로 턱없이 황당한 일도 아니다. 내 인품에 썩 지장을 미치지도 않기 때문에 손가락 딱 하면서 OK~ 라고 혼잣말을 소리내면서 그 일을 감행했다.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시내, 그런 건 현실 세상엔 없다. 있어도 거의 만나기 힘들다. 친구와 역할 바꾸기, 나는 괜찮은데 친구는 무척 난감해 한다. 친구집 놀러가는 거도 나이에 비해 너무 남발했다. 요즘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시상도 떠오르지 않고, 뭘 해도 재미없고, 맹목적으로 독서만 하면서 한정 없이 그분만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시정잡배 같은 작금의 생활을 스스로 본인에게 시인하고, 제 2의 자아와 잘 교섭해서 말썽부릴 것 없이 촉망받을 무난한 수순을 밝아 새로운 일을 꾸민 것으로 판단한다. 그렇게 예측하고 관망하니 조금은 속이 후련했다. 기껏 이름은 대학교 놀러가기, 에 다름 아니지만 이 얼마나 신선한 기운이 샘솟고, 부지불식간에 막 글이 잘 써질 것 같은 예감이 천명하여 심금을 울리고, 나름 대견하여 내 가슴은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날 마구 쫓아다니며 구애와 칭송과 사랑이 아니면 우애라도 괜찮다면서 상궤를 벗어나 이상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장래에 예뻐질 여대생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역으로 된통 당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볼보 웨건을 몰고 그곳으로 씽씽 달렸다. 그래서 어느 시골 산 중턱에 있는 꼭 수도원 느낌이 나는 어느 대학교 무슨 캠퍼스에 도착했다. 혹시 이곳 산의 이름은 마의 산?
   나는 우선 <나폴리 드라큘라>라는 찻집에 들려 카페라떼를 한잔 시켰다. 왠지 모르게 나는 선뜻 이유없이 들떠서 내가 마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색정적인 만화인줄 알고 봤드니 처음부터 끝까지 건전하고, 청순하고, 풋풋한, 간지러운 내용으로 일관된 장르가 잘못 지정된 순정 만화에서 항상 당하는 역할의 우울씨 같은. 그리고 학교 안 장미 축제가 펼쳐진 곳으로 가서 꽃들을 구경하고 대학교의 낭만인 잔디밭에 앉아 소설 구상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아직 노을이 질려면 시간이 멀었지만 그냥 한번 최면을 걸어봤는데 역시나 그분은 오시질 않았다. 그맘때 쯤 옛날에 알던 앙숙을 만난다던지 지난 풍파를 떠올리면 분위기가 사색적으로 싹 바뀔 수도 있는데 널찍한 교정을 보니 그곳은 문리대와 예술대 그리고 체육대의 딱 중간 지점이라서 왠지 청춘을 예찬하고, 인상주의를 찬미하여 나름 신비주의를 꿈꾸고 다음과 같은 말을 듣지는 못할지라도 살면서 한번 쯤 써먹어봐야할 듯 하여 나는 좀 더 경건해지고 환상적인 눈빛과 체념적인 몸가짐을 취하게 되었다. 그 말은 무엇이냐면 바로 이런 말. <당신은 초현실주의자이시죠?> 소탈한 한편 똘끼가 피둥피둥 충만하고, 술 취했거나 팔푼이란 핀잔을 듣고 싶지 않다면 쉽사리 일상에서 그런 말을 하기는 힘든 법이다. 그러니까 한번 쯤 시도해봐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괜히 인생의 낙이 없다면서 허세 떨고, 신세 한탄이나 하고, 아무나 힐난하며, 틈나면 비아냥거리고, 비방과 허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허풍과 뻥으로 삶과 인생을 모조리 꾸미는 것보다는 그게 낫다. 훨씬. 미성숙해도 고무적인 젊음을 즐기고, 즐거운 인생과 교분을 맺으려는 호쾌한 발상과 간직해도 창피하지 않을 삶의 목적, 그로 말미암아 자연스레 드러나는 청춘의 시를 닮은 태도와 희망찬 자세를 잊지, 잃지 않으면 된다. 된다? 되긴 뭐가 돼?
   오고 가는 학생들을 보니 모두 대체로 남자들끼리 또 여자들끼리 모여서 노는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동성은 조금 맞으면 친해지는데 이성은 많이 조화를 이뤄야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까다로워서. 그래서 와 이 남자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임이 분명해, 그랬다가 나중, 아 내가 예전에 뭐에 씌였던 게 틀림없어~ 그러는 건 그가 나와 세상에서 제일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유례없이 의도와 들어맞듯이 그분과 조우하지는 못했지만 간신히 어떤 의욕, 나를 현혹하는 신망과 낭만, 사족을 못쓰게 만들지도 모르는 희사를 하나 발견했다. 혹시 시간이 조금 지나면 홀딱 빠져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대기하고 있었다. 기쁜 일? 뭔가 해 보고 싶은 열망? 그런 걸 뜻밖에 찾아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들썩거려서 나도 모르게 말이 앞섰다. 사실을 실토하자면 나는 그냥 버스를 탄 거다. 신변이 변변치 않고, 딱히 계획도 없고, 괜히 날 좀 봐주라고~ 나 여기 있다고~ 나와 좀 놀아주라고~ 비명을 지르며 소란을 피울 수도 없어서 구내? 군내버스인지 시내버스인가를 탔다. 어차피 종점까지 갔다가 되돌아올 테니까 구태여 걱정할 필요도 없고, 한심한 일도 아니라고 판단해서 풍덩 몸을 던져버렸다. 나에게는 머머하면 머머해야 한다, 그런 줏대는 없었다. 햇빛이 있다. 버스가 있다. 나는 햇빛이 비추어 버스를 탔다. 이게 다다. 이런 머 하니까 머 했다는 일관된 이상한 논리는 기존 작품에서 많이 다뤄진 주제다. 버스에 오르니 경이감은 고동치고, 누차 설렌 가슴은 또 설레고 더 설레고 나도 덩달아 대학생이 된 듯한 환상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러니 비싼 가죽점퍼를 못 살 바에야 과-점퍼를 알아봐야 한다. 그러니 좌석에 앉으면서 나는 미동도 못하고 어찌 보면 고까운, 야속하지 않은 상상을 하다가 어느 아가씨 위에 덥썩 앉아버렸다. 절대, 고의는 아니었다. 이런~! 미안하다고 하고 나는 옆자리에 앉았다. 전례없는 일이다. 나중 한번 더 그러면 이례적인 일은 아니게 될 것이다. 첫 경험치고는 다행이다. 왜냐하면 무서운 상남자가 그녀였다면······ 오 저런! 그랬으면 내 마음은 커녕 내 몸을 건사하지 못 했을 수도 있고, 그가 동성애자에다가 내가 그분의 이상형이었다면 방도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 별로 즐겁지 않은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그와 별개로 나는 다양성을 존중한다. 시작은 이랬다. 참, 좀 전에 내가 실수한 혐오스런 경거망동을 느꼈던 그녀는 심성이 고와던 게 틀림없다. 나 보고 꿈에 볼까 두렵군요, 이런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인생에 주어진 의무에 충실한 아가씨 같다. 품행이 세련되고 행동도 우아하다. 멀거니 쳐다보며 눈빛으로 화를 내지도 않았고, 분개할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난간 위의 고양이처럼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버릴 것 같은 숙녀였다. 음, 숙녀! 바로 그녀는.
   버스는 출발했다. 옆자리에 앉은 남녀는 사랑한다면... 사랑하지 않는다면... 유치하고 닭살 돋는 혀짤배기소리를 속닥거리고 있었다. 버스를 탄지 얼마되지 않아 나는 스르륵 잠에 빠져들 뻔 했으나 다시 깨어났다. 혼몽의 문 직전에 세속 도시의 즐거움과 개 같은 날들의 기록에 대해 떠드는 한참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뒤에 있던 젊은이들의 패기에 놀라 맨정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사랑을 위한 아침 시간을 지나서 어딘가 텅 빈 극장 같은 분위기의 버스 안에서 나는 동양에 있는 어떤 이국의 항구에 도착한 것만 같은 기분에 젖어들었다. 그들이, 이 버스에 탄 친구들이 다가올 행복과 인생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쩐지 어느 책에서 읽은 듯한, 달려라 토끼는 아니고 어디서 제목으로 쓰인 듯한 그런 말들을 많이 하여 나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차는 시골 군내 버스도 아니고 도시의 시내 버스도 아닌 소풍을 떠나는 대학교 차량이었다. 거기 타고 있는 친구들은 모두 그 대학의 문예창작과 학생들이었고, 나는 그 친구들과 계획에도 없던 야유회를 떠나게 된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떠나면 그뿐! 일정에 오른 것이다. 녀석들이 날 받아줄지는 모르지만. 내가 봐도 그들에게 반가운 손님도, 달가운 특별 초청객도 아니었지만 어쩌다 나는 비련의 여인인 듯, 욕심이 없는 여자는 아닌 듯 조용히 차창에 비추는 풍경을 보면서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찍고 있었다. 누가 봐도 상태가 안 좋아보였지만 저 아저씨 누구냐고,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어디 아픈데 있는 건 아니냐고 친절한 물음을 건네는 친구는 없었다. 게다가 앞자리에 앉은 머리카락이 송글송글 탈모가 꽤 진행되는 것 같은 어찌 보면 약간 노쇠한 중년은 통성명을 하고 보니 중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나와 친했던 동창이었다. 같은 반으로 짝궁도 한 번 한 것 같았고. 그 친구는 좀 전 그곳 시골 3류 대학교의 문예창작과 교수, 나는 소설가 지망생? 나는 그냥 적당히 실업가라고 둘러댔다. 자랑스럽게, 떳떳히...까지는 아니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스스럼없이 탁 말한다는 게 영 여의치 않았다. 그들은 멀리 MT를 떠나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공원으로 야외 수업을 가는 길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학교 앞 언덕으로 수채화 그리로 가는 것처럼. 교수는 내가 옛날에 사고 싶었지만 못 사고 블로그에 사진만 올려놨던 시계를 차고 있었다. 혹시 내가 알던 여자를 너도 알고 있지 않냐고 뜬금없이 아무 개연성 없는 질문을 할 뻔 했다. 내가 왜 그런 충동을 느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 친구와 옛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어떻게 사는지에 관한 말도 나누던 중 잘 들어보니 뒤에서는 누가 문예창작과 학생 아니랄까봐 일상 대화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문학적 표현과 보통 사람들로써는 구사하기 힘든 난위도의 뭔 멋들어진 느낌이 드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사랑한다. 자본주의의 약속. 나는 햄릿이다.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너라는 환상.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아름다움의 근처. 환상을 꿈꾸다. 안 이쁜 신부도 있나 뭐. 우리 낯선 사람들. 사는 게 뭔지...... 이런 앞뒤가 안 맞는 말들을 잘도 엮고 이어서 말이 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보고 듣고 읽은 온갖 정보를 마구 뒤섞고 인용하여 뭔가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최면을 거는 듯한 수법에 의해 씌여진 굉장히 특이한 소설처럼.
   일행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시 인근 전원지의 어느 호숫가에 도착했다. 학생들이 내리자마자 가방과 공책과 필기루를 들고서 모두 각자 글쓰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 흩어졌다. 교수 친구도 좀 더 같이 시간을 보내면 좋을 텐데 라면서 평범한 인사말을 건네고 나서 어딘가로 떠났다. 이상한 야유회다. 그냥 강의실에서 수업할 것이지. 아니면 여기서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 그분을 내 그림자로 요술램프 안으로 유인하여 정착하게 만드는 비책을 알려줄 것이지 삭막하게 모두 떠나버렸다. 여긴 아마도 아프리카인가? 아프리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또 폼 잡고 있다. 뭔가 이곳은 아픈 천국 그런 느낌에 4차원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를 타야할 것만 같은 급박한 마감일 증후군을 겪는 것만 같은 곳이다. 날짜 못 지키면 그동안 먹은 거 다 토해내라는 살벌한 당부의 피력 같은. 수심 가득한 성화를 위엄을 갖추어 듣는 사람 또는 읽는 사람 말문이 막히도록 기약없는 조용한 고함을 톡톡히 맛보는 기분. 충전이라는 이름의 몬스터 활력제라도 마셔야 하는데 에너지 음료를 챙겨오지 않았다. 학교에서 체육관이나 공원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건데 내 불찰이 컸다. 노심초사 우연에 기대긴 했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마음은 쉽게 그 짝을 찾기 힘들다. 지금을 만끽할 수 밖에. 새로운, 신선한 경험의 접경을 만날지도 모른다. 거대한 일상은 제쳐지고 모험은 갑자기 찾아올 것이다. 이미 그 안에 있다. 흥미와 짜릿함은 결여됐지만 전례없는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발버둥치면 선뜻 이상한, 큰 많이 큰 빨간구두를 만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초롱초롱한 기분에 펄펄 날개를 펼치고 그분 곁에서 시공을 초월해 든든한 공상가로써 터널 끝의 빛을 보게 될 것이다. 정말? 그게 문제가 아니다. 사랑의 어두운 저편은 모르겠고, 일단 호수를 한 바퀴 돌아야겠다. 시계 방향으로.
   호숫가를 산책하는 동안 나는 어떤 기이한 없던 예지력이 생긴 것을 깨달았다. 아까 만난 친구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드디여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청바지에 하얀 운동화와 숏컷, 리본 머리띠를 했던 그녀는 <캄캄한 날개를 위하여>라는 시를 쓰고 있구나. 그녀와 사귀는 같은 과 남학생은 <험준한 사랑>이라는 비평을 쓰고 있고. 그리고 한때 나와 같은 중학교에 다녔던 교수 양반은 외도를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어느 차가운 도시의 여자와 통화를 하고 있다. 오늘이 그든 그녀든 결혼기념일만 아니기를 바란다. 이 짦은 시간 동안 순식간에 그 모든 것이 인공지능 로봇처럼 금새 식별된다. 그렇게 나는 호수 반대편까지 갔다. 중간에 나는 사슴도 보고 토끼와 너구리도 만났다. 곰을 보면 진짜 좋을 텐데 무섭고 무서워서 안 본 게 다행이었다. 동물원이 아닌 자연 속에서 녀석들을 발견하니까 기분이 엄청 좋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같은 말은 실은 이런 상황에 씌이는 게 아마도 무난할 것 같다.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의자 앞으로 호숫가에 나룻배가 보였다. 가서 한번 앉아만 보자 그런 심정으로 그곳으로 갔다. 마치 판매원이 안 사셔도 좋습니다 그냥 한번 보시기만 하시고 바쁘시니까 가셨다가 나중 혹시 생각나실 때 들려주시면 고마울 뿐이죠 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러나 거기 앉고 보니 그냥 한번 구경하고 나오자 했던 초심은 어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노를 젓고 있었다. 슬슬 첫 구매가 지속적 소비 다음에 브랜드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과도 같이. 그러다 얼마 안 가서 꼭 욕조 물이 빠지는 것처럼 저 앞에서 물이 밑으로 빨려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배는 이미 그 암흑 속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안에 뭐가 있는지 보고 나서 물 바깥으로 나간 후 나머지 호수 반바퀴를 돌자고 생각해서 차츰 구멍 옆으로 이동하다가 어, 어,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다가 배는 그 구멍 속으로 빠졌다. 당사자는 새로운 공간으로 넘어간 것이지만 관찰자가 보기에는 순식간의 사라짐이다. 그러나 보고 있는 사람은 있었나 모르겠지만 무슨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겪은 다음 행보는 고배를 마실 일도 아니고, 좌절할 사건도 아니었으며, 곤경에 처하지도 않았다. 뭔가 민망하지만 드물게 있는 일처럼 그렇게 꼬불꼬불 가야만 하는 길이 있는 것처럼 S자로 또 뒤집어진 S자로 새냇물을 타고 나룻배가 이동하다가 깊은 숲속 조용한 계곡에 도착했다. 해명하자면 길이 이상한 것이었다. 만류하는 친구도 없었고. 전말은 정상이 아니었지만. 푸르른 울창한 숲이 뭔가 날 비호해 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행인지 모험인지 그것의 보라빛 바깥의 동경에 대한 성패는 이제 시작된 것 같았다. 뭐니뭐니해도 가상현실은 현실성과 환상성이 생명이라면 지금 내가 처한 영화같은 일은 비정하지 않은 적당한 편력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게 일반적이다. 조금 기쁜 환담만 나눌려다가 크게 와전되어 대뜸 판이 커지고 뒤집어지지 않기를 바랬다. 이 길을 따라가면 무엇이 나올까 같은 궁금증을 떠올리기도 전에 나룻배 바로 앞에는 찻집이 있었다. 이름은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 약간 애매한 이름이다. 브랜드 로고와 비교해 봐도 너무 다채롭거나 약간 이채롭거나 뭔가 아쉬운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이런 도시적인 카페가 대체 왜 여기에 있을까? 그런 수상쩍은 생각이 드는 곳이다. 닳고 닳은 도시인의 핑계 하나에 대해서 원시인이 대뜸 반문하는 이런 말을 닮은 그런 장소였다. 그런 말이 대체 어딨어요? 상업성이 전혀 없는데, 교통도 불편할 것 같고, 시야가 탁 트이지도 않고 뭘로 보나 애매한 카페였다. 그리고 내부에 사람이 없었다. 다시 보니 이곳은 어느 예술가의 집이나 집무실인 듯 여겨졌다. 너는 커서 뭐가 될래? 라고 묻고 답하는 대화가 오가고, 아침이면 직장으로 학교로 갈 준비를 부산스럽게 하는 그런 가정집은 아닌 게 분명했다. 카페도... 아니다. 숲으로 간 미술관도 아니다. 환상과 모험의 파노라마가 펼쳐지지 않았을 뿐 그런 극체험에 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실 같았다. 무슨 공로상 같은 트로피도 있고, 유명 화가의 화보집과 트럼펫, 몰트 위스키 몇 병, 구식 레코드판들, 장난감과 소설과 시집도 많고 특히 가방이 많은 걸 보니 가방 매니아? 구두가 많은 건 구두 디자이너? 또 나를 위해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에스프레소 한 잔이 보여서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나 확인한 후 나는 그걸 원샷 했다. 살면서 사랑을 놓칠 수는 있다. 그러나 향긋한 차 한 잔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곳은 외지인이 오래 머무를 곳이 아닌 듯 하여 나는 그곳을 나왔다. 문 닫고 인적인 끊긴 카페였다면 포도주든 뭐든 술병을 들고 마시게 그거 하나만 들고 나왔을 텐데 뭔가 미련을 남기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다. 개운하진 않지만 나만의 공간이나 주거지에도 이름이 있고 간판을 걸 수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안 될 것 없지. 말을 바꾸면 술집과 음식점도 이름이 없을 수도 있고. 블로그 무명처럼. 가게를 새로 연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문을 닫는 찻집은 어쩌면 이런 예측이 어긋났기 때문에 폐업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즉 10년이든 20년이든 목돈을 모으고 직장 때려치고 카페를 열고, 나는 큰 욕심없이 한 달에 돈백만 벌면서 나 좋아하는 영화 실컷 보고, 잠 많이 많이 자고, 그림 마음껏 그리고, 책 원 없이 읽고, 글 엄청나게 쓰고, 인생 2막에는 곡만 쓰겠다, 사진작가로 등단하는 것을 준비하겠다, 만화가 아니면 만화애호가, 음악평론가로 주목받고 싶다는 그런 계산을 하고 거창한 이름의 카페를 주업으로 해서 소박한 예견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지만 아마도, 아무래도, 결국에는 돈백에서 동그라미 하나가 모자란 10만원 조차 잘 벌어지질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인생 3막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추론! 능동적으로 선명하고 자신감 있고 밝고 분명하게 돈 벌고 베풀고 인생을 즐기면 그만이지만, 이론은 그럴 것인데, 기쁘지 않게도 능동태가 아닌 외부의 원인에 의한 것처럼 수동태로 돈이 잘 안 벌린다, 글이 안 써진다, 구름이 방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니 일이란 놈이 운이란 영예의 목마를 덥썩 타지질 않는다, 희망이 외로워진다 라면서 자꾸 삶이, 인생이 요컨데 피동적으로 그리고 피상적으로 되는 듯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다. 남의 집에 들어와서 괜히 타인 걱정을 하다가 나는 다시 보트를 타고 돌아가던지 도로를 찾아 나가던지 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다.
   아까 진행해 오던 방향으로 계속 가기에는 막상 길이 없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나룻배를 타고 시냇물을 타고 호수로 향했다. 그렇게 이동한지 얼마되지 않아 아주 잠시 어두워지는 듯 하더니 위에서 쏟아지는 작은 폭포수를 통과했다. 나룻배가 그곳을 지나갈 때 흘러내리는 물은 잠시 줄어들어 나는 물에 많이 젖지는 않았다. 차분히 주위를 둘러보니 그곳은 호숫가로서 처음 출발한 곳으로부터 전체 반경을 3/4 지난 지점이었다. 보트에서 내려서 나는 나머지 구간을 걸어 처음 버스에서 내린 장소에 도착했다. 공원에서 내일의 노래는 들리지 않았다. 안녕, 요정~ 이라면서 들뜬 모습의 청순한 여대생들이 말을 걸어오지도 않았다. 문예창작과 학생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버스는 떠났다. 나는 혹시 그들과 MT를 같이 떠나게 됐나... 라면서 처음에 혼자 우쭐했던 그때의 생소한 딴사람 같았던 자신을 떠올리면서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나를 빙둘러 카메라가 360도로 몇 바퀴 돌고 버즈 아이 뷰로 촛점이 옮겨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정말 사람은 금방 딴사람이 되기도 하고, 만들어지기도 하거나 가능성도 많은 것 같다. 사람이니까!
   그러다가 어느 육중한 체격의 쫄티를 입으신 시골 아저씨가 다가오시더니 내게 말을 건넸다.
   「저기, 선생님. 라이터 좀 빌립시다.」
   「아, 죄송합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
   「아,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지요.」 잠시 그는 뭔가를 생각하드니 이렇게 말했다.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예?」
   그는 못들은 채 한다. 정말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도 더 추궁하지 않는다. 곧이어 그는 또 하나 다시 이상한 말을 내뱉는다, 툭.
   「시간은 가벼운 것이구나!」 이제는 나도 그냥 뭘 말했었냐는 듯 방해하지 않고, 뭔지 모를 정취를 음미하는 그의 감상을 존중한다는 것처럼 어떻게 보면 그냥 지나가는 개가 짓는 것이겠지 하면서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 때문에 그가 나를 보고 참 과묵한 양반이군, 이런 무-반응맨을 다 만나다니 이거 별일일세~ 하는 듯한 안면의 미세한 떨림과 함께 내게 이런 물음을 던졌다.
   「초면에 실례지만 형씨는 무슨 일 하시는 사람이요? 아, 무례하게 느꼈다면 내 사과하리다. 미안하오. 나도 실은 결례를 범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오. 다만 당신이 왠지 평범한 직장인은 아닌 것 같고, 또, 에 또, 뭔가 이상하게 시대를 건너 뛴 옛 사람인 듯한 어떤 경이로움과 앳된 동경심 그리고 막연한 상실감을 내포한 표정을 짓고 있길래 변명은 슬프지만 교양미가 부족하게 낯설은 질문을 건넸을 뿐이라오. 부디 오해는 품지 않았으면 좋겠소. 난 사실 그렇게 아무하고나 대화를 잘 트는 사람도 아니고, 나서길 좋아한다거나 때에 따라 필요한 방력이나 일상적인 결단력과 튼튼한 배짱이 조금은 부족한 사람이라오. 물론 상식도 그리 풍부하지는 않고 사람도 조금은 고지식한 구석도 없다고는 못하겠구료. 최소한 자의식과 창의성과 호기심이 넘치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죠. 음, 내가 보기에는 형씨도 그 정도에서 크게 동떨어진 천성은 아닌 것 같소만 그냥 한번 예측해 보았을 뿐이라오. 내가 직업상 신기는 없지만 또 그와 관련된 관심도 뭐도 아무 것도 없지만 요즘 들어 내 예언이 어디가나 그리고 언제든지 잘 들어맞는 행운을 누리고 있소. 때 아니게 내기까지 평소와는 다르게 왕왕 하곤 하지요. 중요한 의미는 없지만 지나가는 말로다 소인이 하나 정중히 추측을 해보자면 음, 형씨는 아마도 이곳에 나중 다시 오실 것 같소만, 꼭 한번 쯤은... 아니 그렇소? 어쩌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 될 수도 있을 듯 보입니다만... 그냥 한번 앞일을 내다봤을 뿐이라오. 마음에 담아두진 말기 바라오. 그렇다고 내가 내일을, 또, 훗날을 내다본다거나 그 어느 추세를 정확히 예측하는 재주를 가진 것은 아니라오. 나는 요즘 블로그가 남기는 미래가 궁금할 뿐이라오. 근래 즐겨 읽는 블로그가 있는데 이상하게 그곳에 올라오는 산문을 읽다보면 마치 반세기나 1세기 전에 씌여진 듯한 정말 오묘한 기분이 든단 말입니다. 그 느낌이 나는 참 좋다오. 나도 그쪽에서 나름 반평생을 일해왔지만 그런 정신이랄까, 독창성? 감수성? 음악성? 그 새로운 전율과 시각과 흐름은 내 생전 처음 경험한다오. 그건 아마추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가의 솜씨도 아니고, 솔직히 뭐가 뭔지 잘 모르겠소. 주책없이 초면에 내가 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군요. 거짓말 잘 하는 어른이 되버린 것만 같아 코가 점점 길어지는 피노키오가 되버린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요. 내 책상 한쪽에 <웃고 춤추고 소설하라!>라고 붙여놨건만 야성은 빛나야 할 텐데 난 그저 한 잔의 칵테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정말 어디 다른 곳에서 타인으로 아니 또 다른 나로써 살아보고만 싶은 마음이 끌어올라와서 자꾸만 그것을 달래고 소리치고 꾹 내려눌러도 수그러들지 않고 자꾸 더 울렁이며 막 날 하늘로 어디 저 어딘가로 끌어올려 먼곳으로 날 데려가는 것만 같소. 수많은 풍선에 매달려서 공중에 떠서 이동하는 그런 느낌과 같다고 할 수 있죠. 아, 내 소개가 늦었소. 나는 누군인가 그것도 밝히지 않고 무턱대고 선생께서 뭔 일 하시는지 물어봤으니 나도 어지간히 새로움에 목말라 하는 것만 같구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오? 아 글쎄 내가 머리 속으로 구상하고 상당히 영감을 구체화시키고, 그분과 거의 기념사진이라도 찍고, 그분과 가까스로 담판이라도 할 것 같은 기다림이 해소될 것만 같고, 정말, 정말 조금만 더 머리 쓰고 노력하고 분발하면 흐릿한 착상이 확실한 글로 거의 거의, 다다를 듯 했는데...... 나 원 참, 글쎄 제자 녀석이 내가 생각했던 그 내용 그대로 시를 멋지게 아주 훌륭히 후다닥 지어버렸지 뭐라오. 제목은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고래가 있다나 뭐라나. 그것이죠. 나는 그 직전에 형식도 이미 결정해놓고 조금만 기다리면 되었는데 아쉽게 되버렸지요.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본다, 딱 그 모양이 되어버렸다오. 그 녀석 아무래도 천재 같단 말이오. 얌체 같은 놈! 녀석은 능력자가 틀림없다오. 그러나 내가 뭐 괜히 꼬투리 잡거나 학점에 불공정하다거나 그러진 않소. 오히려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뿐. 나도 거기서 쾌감을 느끼니까 말이오. 기쁘니까. 즐거우니까. 다만 그 천재성을 일찍 꽃피우지 않길 바랄 뿐이오.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말이라오. 나는 그동안 제자들 가운데 허천나게 많은 천재들을 보았다오. 그런데 나중 보면 기껏 동네에서만 놀고 있거나 뭔 밑도 끝도 없이 행위 예술 업계에서 말단 사원으로 일하거나 엄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걸 많이 봐왔다오. 그 중에는 카페 사장도 여럿 있소. 백수도 수두룩 하다오. 닭을 튀기거나 영화판에서 단역으로 일하면서 뭔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를 못 찍어서 빌빌대는 제자들도 있다오. 물론 그 일들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친구들 재능이 아까와서 그렇소. 어쨌거나 지금 우리 학과 최고인 그 녀석이 나중에 문단에 나와서 옛날에 내가 엄청 갈궜다고, 아주 욕 나오도록 혹독한 특훈을 시켰다고, 날이면 날마다 이 사람 저 사람 안 가리고 뻑하면 험담만 일삼는다고 폭로라도 하면 어쩌나, 그렇게 지금 걱정이 태산이란 말이오. 예견하건대 그 녀석 나중에 작품 세평은 아마 모르긴 몰라도 승승장구할 듯 하오. 돈도 엄~청 많이 벌 것 같구려. 녀석 나중에 모른채 하지 말고 자주는 말고 한번 쯤 찾아와주면 무척 반가울 텐데, 바빠서 그럴 틈이 날려나 모르겠소. 그냥 잘되면 그뿐이고 뭐, 그러면 좋은 일이고 다행이지만 뭐랄까, 그냥 좀 내가 요즘 글이 잘 써지질 않아서 해보는 투정에 불과하다오. 잊어버리시구료. 동네 아저씨의 질투와 타성에 젖은 교수의 핀잔과 함께하는 자책이 무슨 대수겠소. 그게 뭐 중요한 일이라고 형씨의 명상을 방해하다니 나도 참 어지간히 속도 없는 것 같소. 그래서 내가 처한 현실이 그러해서 입담배 하나면 충분했는데······ 그래서 라이터가 있나 형씨에게 여쭤봤던 것이라오. 글 쓰는 게 큰 벼슬은 아니지만 나름 거기서 행복을 느끼고 즐겁고 언제나 잔잔하게 재미있지만 나름 그것도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렸는지 문예창작과 애들 가르치는 일에 열중하다보니 습관적으로 말이 길어졌군요. 이만 줄여야겠소. 아, 잠깐, 딱 하나만 물어보고 싶소. 물론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오. 아니 그냥 듣기만 하시구료. 나도 그냥 말만 한번 해보고 넘어갔으면 좋겠으니까. 그런데 뭐 하나 물어봅시다. 혹시... 설마하니, 댁도 미래에서 왔수? 정말... 그런거요? 저기, 존엄하신 그대가 나미래씨? 하하하, 난 속으로 한참 지나서 혼자서 웃긴 하지만 남이 듣기엔 곤욕이란 걸 모르는 건 아니라오. 나도 원래 부장님 농담을 익힐려다가 실패한 후에 이상한 하이개그만 늘어서 탈인거 있죠. 허허허. 가짜 웃음도 이젠 잘 안 되고, 참 큰일이라오. 아, 이만 일절 아니 말을 마치겠소. 할 말은 다 했소. 미안하오, 로미오.」 뭐여? 로미오는 비극의 주인공인데, 해피엔딩 아니잖아! 꼭 대화 상대에게 영화배우 누구와 잠깐 비슷했다고 하면 상대방이 좋아하는 틈을 타서, 그 사람 어때서 어찌됐어~ 라고 하면 표정이 싹 바뀌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또 절묘하게 시기를 놓쳐버렸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고, 판타지 같은데 기존과는 다른, 환상적인데 알고 보면 환상적이지 않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동시에 초현실적인 그런 소설을 쓰고 있다는 말은 이미 쏙 들어가버렸다. 그 대신에 단지 나는 영원─완벽─주관 이런 말들이 어렵고 불편하다는 것 그리고 나는 최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오디세이아 읽기에 실패했다고, 꼭 때가 되면 읽고 싶었는데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왠지 요즘 들어 부쩍 읽고 싶었는데 여전히 역부족이다 때문에 그건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고 조금 바람빠지는 답변을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같이 한 잔 하시면 어떠시냐고 물을 수도 없고, 달리 할 말도 없고 해서 아까 봤던 경로와 카페에 대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상황에서 그건 괜찮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이르는 순서 즉 물이 호숫가가 아니라 호수 중간에서 욕조 물 빠지듯이 꼭 그렇게 해야만 그 카페에 접근할 수 있냐, 그리고 둘째, 대체 그 카페는 뭐 하는 곳이냐, 아무리 영화 세트장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17,8세기 화풍의 세부적인 실내장식을 그렇게 옮겨다 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또 거기 사는 사람은 대체 누구냐, 뿐만 아니라 게다가 집인지 카페인지 그곳의 명칭은 왜 그 모양이냐, 더군다나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도저히 형언하기 어려운 그 으스스한 느낌의 정체는 그 소름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다시 호수로 나오는 경로 그건 대체 뭔가, 구조나 공간이나 중력이나 뭘로 봐도 쉽게 설명이 안 된다, 납득이 안 된다 납득이, 그러나 아까는 몰랐다, 아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건 말도 안 된 일이었다,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대체 이게 뭔 일인듯 싶다...... 나는 그런 내용으로 그 중견 교수에게 정중히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는 내가 아무래도 헛것을 본 것 같다고 알려주었다. 이곳은 네스호가 아니라고! 51구역도 아니라고! 본디 이 호수는 골짜기 마을이었는데 지역 개발 계획 때문에 원주민은 다른 곳으로 모두 이주하고 마을은 수중 부락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썩 멀지 않은 저쪽 농촌에서 예전에 동물 전염병인가 뭔가 때문에 돼지가 수천마리던가 매장된 일이 있었다, 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형씨처럼 간혹 이상한 경험을 하는 사람이 생긴다고! 물론 전자와 후자가 관련이 있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다고 한다. 그럼 내가 겪은 일은 다 무엇일까? 거기서 마신 한 잔의 카페라떼? 아니 에스프레소는 뭐였을까? 보트에서 노를 만진 촉감과 노를 젓다 퍼져서 통통한 이두박근과 허벅지 근육으로 느낀 통각, 그곳에서 봤던 트럼펫과 간판과 실내장식들은 다 진짜였는데, 실재 존재했다고, 그건 대체 뭐였을까? 따분한 이 세상은 잠시 잊혀졌고, 권태와 우울은 어딘가로 증발했으며 요술지팡이를 뜻밖에 발견하여 성스러운 탄식을 내지를 뻔 했는데, 이런 다 틀렸다. 정말 으리으리한 대저택인데 헐값에 내놔도 귀신 나온다고 안 팔리는 그런 사례와 비슷한 일일까, 어디서 전례를 찾아야 하나, 법원에서 판례를 뒤적거릴 수도 없고, 아 뭐야 이거. 이래뵈도 나는 소설가 지망생인데 탄탄한 명성의 도덕적이고 사람 좋은 문예창작과 교수에게 마구 따질 수도 없었다. 이 양반과 괜히 목소릴 높여 대화를 나눌 수도, 누구 주량이 쎈가 내기를 할 수도, 그렇다고 몸의 대화만 빼고 테니스든 스케이드 보드 타기던 뭐든 뭘 할 수도 없었다. 방법이 없음. 한탄 밖에 나오질 않고. 그분께 따질 수도 없었고 따져서도 안 되었다. 내가 어떻게 나의 세련된 매너와 영특한 기지가 내 품위와 적절히 부합한다는 것 또한 그에게 증명할 수 없었다. 그가, 아니라면 아닌거지. 그러나 영 석연치 않다. 통 개운하지가 않아. 뭔가 납득이 안 돼. 날씨는 완전 화창하고, 선명하고, 즐거웁기만 했는데. 그런데, 그런데...!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하는 것일까? 논평도 불필요하고 잘잘못을 따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와 얘기를 더 나누어보니 아까 내가 타고 왔던 버스에서 만난 그 처음의 문예창작과 교수 1 그 사람은 지금 나와 대화하고 있는 문예창작과 교수 2의 강의를 무료로 듣는 청강생이자 아무래도 대학가 인근 주민으로 추정되었기 때문이다. 교수 2의 화법이나 몸짓과 어조와 행세와 격조와 말발을 보더래도 이분이, 문예창작과 교수 2가 진짜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천재 제자가 너무 기특해서 자기는 여기 남아 우수와 고독과 쓸쓸함을 즐기고 제자들과 문예창작과 야유회 차량은 먼저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바로 그가, 교수 2가! 덧붙이자면 교수 1이 심성이 나쁜 인간도 아니고 소란을 일으킨 방청객도 아닌데 뭔가 허언증이 있는 것 같더란 얘기. 곧 교수 1은 가짜였고 그가 했던 말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것. 학과생들은 이미 모두 아는 일인데 그래서 곧이곧대로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 1년에 딱 한 명 정도!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그는 나에게 물었다. 나중 만난 그분, 문예창작과 교수님이 내게 미래에서 왔냐고 물었다. 미래에서? 뭔 말이야 그건? 그리고 댁도, 라고 했어. 댁도, 댁도? 그렇다면 그건 교수 1이 미래에서 왔다는 뜻이 아닌가! 이제 와서 자꾸 교수 1과 교수 2가 비슷해 보이는 게 탈이지만 가만 있어봐, 뭔가가 있구나 뭔가가 있어. 교수 1은 내 중학교 동창, 교수 1은 미래에서 왔어. 그럼 교수 1의 중학시절이 설마, 미래? 행여나 그럴리가! 그럼 그때 학교를 같이 다녔던 나도? 에~이 아니야 아니야.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다른 경우의 수는 뭐가 있지? 교수 1은 그냥 좀 부족한 사람이라고 치자. 그럼 나 말고 또 미래에서 온 사람이 있다고? 그리고 내가 어딜 봐서 미래에서 왔다는 거야? 뭐? 내가, 나도, 형씨도 좀 부족해 보인다는 그 말인가?
   그래서 뭐? 나는 연타로 한방에 두 번 속은 것이다. 앗, 3번일까? 아아 헷갈려. 싫증나지만 속는 것이 싫증나지만 반면에 속으면 기분이 좋다, 기뻐, 막 재밌어 진짜 정말로 재밌다고, 나 변태 같아, 아후 이런 삐─ 불과 뭔 놈의 아카데미인지 오즈의 마법사 놀이공원인지 그때 숫제 기대를 져버려야 했는데, 격랑이 계속되는 것 그게 인생인가 보다. 썩 경의롭군, 환장하겠어. 훌륭해! 하나는 아직 도저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겠으니 1 대 1 일 수도 있다. 50 대 50. 어때, 한번 어떤 숨겨진 비밀을 알아낼 때까지 이곳으로 출근할까? 그 카페를 어떻게든 찾아내서 주인이 뭐라 하든 말든 그곳에서 소설을 쓸까? 그렇게 되면 문예창작과 교수 2의 예언이 정확히 적중하게 된다. 결론은 그렇게 됨. 하지만 뭐랄까, 그렇게 되면 그분의 인품은 괜찮아 보이지만 그분을 문학계의 노스트라다무스로? 그런 전문가가 마술 산업에서 학계로 넘어왔다거나 문학교수가 쇼도 하고 영화도 찍고 뻥도 심하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지만 점잖으신 분을 괜히 헛바람들게 하는 거 같단 말이야, 그러면 예의가 아닐 것 같다. 허풍쟁이 만들도 버리는 결과 밖에 더 되나. 것도 왠지 찜찜하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아까 그 양반 말하는 걸 보아하니 화법이 장난이 아니고 신통력, 정말 있는 거 같다. 그곳으로 가는 은밀한 방법을 내게 점지해줄 수 있는 유일한 한 사람일지도 몰랐는데, 역시 돈버는 덴 재주도 또 욕심도 크지 않은 호인임에 틀림없다. 요즘 부쩍 탈모가 심해지고 글도 잘 안 써진다고 하시니 그쪽에서도 뭐 확인은 못하겠지만 관심도 없겠지만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다. 하물며 내가 여기 매일 와 봐야 교수 2가 천재가 되기도 힘들고, 교수 2가 교수 1로 탈바꿈 할 수도 없고, 그 즉 교수 2가 회춘을 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그냥 묵묵히 삶을 살고 인생이 어떻다면서 설을 풀면 그뿐. 내가 봤던 카페? 작업실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는 실재 존재할까? 있을까 없을까? 답답한 일이로다. 진퇴양난, 딜레마 그리고 궁지! 또는 찾을 수 없는 미로? 괜히 시내버스 타고 종점까지 갔다오기, 군내버스 타고 시골 구경하기, 를 노렸다가 기분만 이상해지고 상황도 꼬여버렸다. 아주 심하게. 심지어 글도 안 써졌고, 그분은 더 멀리 저기 멀리 휴가를 떠나셨다. 이것은 무엇일까? 뭐긴 뭔가, 소탐대실이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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