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185

from 소설 2021. 4. 30.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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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타협적인 야망, 노련한 허당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속물들이 맹활약하는 멜로드라마로만 넌지시 인생을 배워서도 안된다. 그러다 세상물정 모르는 불여우의 은근한 유혹에 굴복하면 나중... 넘어가자. 군침도는 먹잇감과 달콤한 성과 추종하기, 너무 조숙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그럼 뭔가에 미숙해도 안심이냐 그 말은 아니다. 다만, 공짜 뿐만 아니라 사랑도 없다는 게 야속할 뿐. 물론 농담이다. 그렇듯 인생이란 결코 간단하지 않은 것. 베짱이와 개미 우화마따나. 하면 된다, 라는 속담에 따르자면 개미는 빈 곶간에는 가지 않는데. 아니면 말고, 를 옹호했을 땐 꿀 항아리에 개미 덤비는 격이 어찌 없겠나. 그럼 호박은 제 발로 안 굴러가나? 그 뿐만이 아니라 제가 춤추고 싶어서 동서를 권한다. 그런데 권유를 받기도 전부터 달아오르는 동서는 또 뭐지? 그걸 내가 아나 달님이 아시나. 누구도 별로 관심 없을 따름. 신비스러운 지성도 재미없다. 아찔한 착상의 도취감도 다 까먹었다. 그렇다고 마냥 징징거리기만 해서도 안된다, 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의 차트를 개편했다. 재산목록 순위를 속된 말로 물갈이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아직 미치고 환장할 정도는 아니다. 나는 제정신이니까. 그러다 아는 동생들로부터 러브콜은 폭주했다.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남자로 첫손 꼽힌다나 뭐래나. 그러나 뻥이다. 뭐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이젠 하다 하다 헛것이 들리는구나. 괜찮다. 허접하기 짝이 없는 형편. 정말로 괜찮단 말이다. 왜냐하면 이젠 더 내려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날아오를 일만 남은 것이다. 어디로? 저기 저 푸르른 미지의 이상 그 눈부신... 황홀한... 그만하자. 재미없으니까. 어쨌든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 때문일까? 날달걀 세례를 위해 녀석들은 불침번처럼 교대를 서가면 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게 내가 몇몇 칼럼들을 대체 왜 쓴 것일까? 그걸 알면 내가 여기까지 왔겠나. 나는 단지 낭만주의를 동경하며 신비를 선망하고 사랑을 믿었을 뿐. 그런데 왜...! 그래도 뭐 유행가 몇 편 작곡하고 수채화 좀 그리다 보면 걔네들 모두 제풀에 지쳐 돌아갈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런데 잡념은 왜 이리 날 귀찮게 하지? 그건 아마 호텔 생활이 벌써 지겨워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럼 왜? 몰라.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몰라도 된다. 그런 가운데 뭐랄까 뜻밖의 관심사가 낙찰되었는데 그건 뭘까. 없다. 회심의 대타는 없고 기막힌 핑계만 남은 것이다. 이걸 어쩌지? 뭘 어째, 어쩌긴 뭘 어쩌냐고! 하긴 불건전한 사냥감에 굳이 시간낭비하지 않는 게 어딘가. 명시적으로 궁극의 목표가 우리를 기다린다. 뭐 꿩보다 닭은 어떠냐구요? 뭣이 어... 워 워 워. 인생이란 똥싼 년은 도망가고 방귀 뀐 년만 남은 것이다. 농담이다. 실언이다. 망했다. 못살겠다. 받은 옐로카드만 넘친다. 품위유지비 있지도 않은데. 그게 그러니까 글쎄. 뭐라고나 할까 고독은 유감스럽지 않은데 가난은 어찌할 수 없다고나 할까? 아니다. 사치는 내일로 연기요 풍요도 복리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행복론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스꽝스럽다. 설득력이 없거든. 그럼 이참에 모든 여심을 확 독점해버릴까? 아니다. 그러지 말자. 그러니까 뭐라고나 할까 나는 갑자기 시인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아아, 떠오른다. 번개처럼 눈부신 시상이 스쳐지나간다. 그건 뭐냐 하면 이랬다. 희망 없는 세상 없고 도둑 잡은 나라 없다. 뭐? 헛소리 그만 집어치워라. 라는 말 정말로 들린다. 대어는 커녕 피라미도 안 잡힌다. 그러나 칼럼니스트라는 직분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다. 아닌가? 그래, 사는 게 지겨워졌다. 벌써 지쳤네. 솔직하고 자시고 내가 날 속이기도 지겹다. 연재소설 쓰기도 싫증났다. 다 재미없다. 모조리 귀찮아졌다. 만사가 따분하다. 그러나 때려치겠다는 말은 아니다. 노래부르고 춤을 춰도 이거보다 낫겠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사랑이 추접스럽다고 말한 적 없다. 이런 젠장 거 참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라는 말을 어떻게 내 입으로 하나. 그러면 안된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무엇 때문에 책상 앞에서 투덜거려야 할까. 그걸 알아서 뭐 하나! 필요없다. 몰라도 된다. 아무튼 지적인 기쁨은 바닥났다. 나는 천박한 속물인 것이다. 아주 그냥 능청을 타고났다. 그런데 유능함은 못 타고났어. 그러니까 뭘 해도 안되지. 응? 이 정도면 지적 수준이 의심스러울 지경. 감히 이렇게 논평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만 나는 심심한 남자다. 허나 그건 비밀 축에도 못 낀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니다. 못 들을 말 남발할 순 없다. 나도 그 정도는 아니까. 그래도 뭔가 조금 섭섭하다고나 할까? 끝으로 정말 이 말까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니다 하지 말자. 하지 않으려고 했다면서? 그럼 하지 마. 그럼 될 거 아냐. 그렇다. 맞다. 옳다. 그런데 결론이 이상한데? 날마다 바보처럼 뜬구름 잡는 공상만 하니까 그렇지. 너무 고르다가 꽝될지도 모름. 고르고 고르다가 그럴 수 있음. 
    그래서 나는 일단 집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아, 사무실에서 적당히 때맞춰 퇴근했다. 사무실에서 먹었던 늦은 간식 때문에 저녁식사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나 들르기로 했다.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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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여기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정경인데... 데자뷔 현상은 아니다. 생각났다.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테라스. 그 모습이구나. 분위기도 괜찮고 이따금 일하고 명상하기 편한 음악도 흘러나왔다. Handel / 오라토리오 <삼손> HWV57 중 '빛나는 세라핌’. 이어서 파이프 오르간. 다음으로 Giuseppe Sammartini / Sinfonia a Flauto solo, e Basso in F major (Parma no.12). 또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플룻 실내악. 그래서 나는 모처럼 사무실에서 핑핑 노는 것보다 훨씬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도무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필자가 군복입던 시절 언제적이던가 연병장에서 땡볕에 왠지 머리가 핑 돌아서 바닥에 주저앉았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에 옆 동료가 양쪽에서 부축하고 그늘진 막사 안쪽으로 데려가주며 걱정해주는 말을 듣긴 들었는데. 그게 왠지 저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정신을 잠깐 잃었다고나 할까. 즉 당시와 비슷한 그런 느낌은 저 가로등 때문이라고 할 수 없겠으나. 그와 더불어 취중에 막 토할 거 같은 울렁울렁함. 또 배멀미. 그리고 뇌전조 현상. 간질 환자 같은 경련. 막 그런 이상한 증상과 기분 탓에 나는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그러다 나는 마침내 정신은 말똥말똥한테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보아하니 자면서 가위눌린다 라는 증상과 비슷했다. 그렇지만 분명히 잠들지도 않았고, 몽환적인 환각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내 앞에서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미술관장 흉보는 얘기도 들었다. 그게 그러니까 동네 카페에서 공책에 끄적거리며 낙서를 하다가, 그 모습은 자연스럽게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으로 바껴버린 것이다. 아니 어떻게? 나는 뭔가 짐작할 수 있었다. 뭔가 의심스러운 존재, 그건 도플갱어였다. 다만 녀석은 초능력자 나는 무능력자. 그놈은, 나를 걸어다니는 블로그라는 설정으로 못 박아놓고, 그 다음에 살아있는 명화(명화 속 인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내 이 녀석을 콱 그냥... 그러나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데 나에게 도플갱어는 전지전능한 3인칭 시점을 바라보는 작가라고나 할까? 미술관 구경이 따분한 연인, 그 가운데 누군가의 속옷. 그 등판에 새겨진 명화도 빈센트의 그림. 도플갱어는 나를 드디어 흰티셔츠 등판에 박아버린 것이다. 누가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아? 아직은 당하는 거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절레절레) 작가의 영감과 작업이 끝나면 내 이 녀석을 가만두지 않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난 아마 나중 그걸 까먹을 것이다. 그래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제대로 혼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놈은 가만두면 안된다. 따끔하게 타이르고, 바지에 오줌싸도록 정신차리게 만들 것이다. 내가 걔를 말이다. 그러다 어딘가에서 웬 향긋한 향수는 내 후각을 자극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식겁했다. 왜겠나. 
    왜냐하면 티셔츠 다음으로 나는 엽서랄지 우산으로 바뀔 걸 예감했기 때문이다. 도플갱어는 날 봐주지 않았다. 이런 생쥐 같은 녀석. 그런데 다행스럽게 거기까지 가지는 않았다. 단지, 처음으로 돌아갔는데 나만 야외 테라스에서 비를 맞으며 앉아있었다. 이제야 제정신을 차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곧장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어느 사무실? 어디긴 어딘가. 내 사무실이지. 
    중간 건너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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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앉아있는 녀석의 뒤통수 머리카락을 확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 사람의 손아귀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악력이 내 머리채를 낚아챘다. 왜 사람의 손아귀냐, 아직 뒤를 돌아봐 누군가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설마하니 그게 귀신이겠나 아니면 공룡이겠나. 결국 내가 낚아챈 머리끄댕이는 새 밀걸레였고, 내 머리채를 낚아챈 분은 아는 동생 세실리아였다. 
   「오빠, 사무실 문이 열려있었어.」
   「그런데 너 이거 계속 잡고 있을 거니?」
   「아, 미안. 난 오빠 뒷모습이랑 닮은 실사판 인형인 줄 알았지.」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거니?」
   「변명 아닌데. 난 정말 마네킹인 줄 알았어. 오빠 사무실에 걸려있는 그림, 거기에도 마네킹 나오잖아. 안 그래?」
   「그건 내가 아니잖아. 아무튼 넌 갑자기 무슨 일인데?」
   「아는 동생들 다 떨어져나갔다며 투덜거릴까 봐 오빠 걱정하는 사람들 많던데. 인생을 헛살진 않았군.」
   「뭐 그래서 친구들이랑 술게임하다 억울하게 너만 걸려서 나 죽었나 살았나, 아님 혼자 이상한 거 보질 않나...확인하려고 왔니?」
   「오빠 왜 말을 그렇게 해?」
   「미안. 오빠 기분이 그래. 아주 말이 아니야. 지금 내 정신이 아니란 말이야.」
   「나 갈래.」
   「세실리아. 오빠가 나중 커피살께. 나중 다 설명해줄께.」
    그렇게 세실리아는 가버렸다. 저것이...! 
    그건 그렇고. 도플갱어는 어디로 숨었을까? 아니다. 말려들면 안된다. 그렇다고 도망갈 수도 없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멍청한 척해야 한다. 일단 그렇게 결론내리고 나는 오늘 마저 일을 끝내고 퇴근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여 나는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집에서 다음과 같은 낙서를 난 또 미친듯이 컴퓨터에 써내려갔다. 
   <나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설마 놀고먹는 허당은 저속한 말로 백판 자빠져 노는 똥개가 부러운 걸까! 겉으로 봐서는 모른다. 근데 속을 볼 수 있나? 어딜 넘 봐, 그림의 떡일 뿐인데. 또 누군가를 자빠트리고 싶어서? 정신차려 이 친구야. 하여튼 지금 그 얘기가 아니다. 그럼 무엇을 말하고 싶은데. 다 큰 처녀가 동화를 읽고 동요 따라부를 일 있나. 아저씨가 이러면 안되지. 하긴 아마 어쩌면 난 인생을 잘못 살았을 수도 있다. 딴 건 몰라도 내가 사랑을 아나? 연애론에 대해 숙녀에게 한참 배워도 모자르겠지. 그렇다고 뒤늦게 야망의 질주를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최선을 다하기보다 중간은 가고자 했는데. 정말로 한 푼 모아 두 푼 된다. 그런데 왜일까? 내 경우에는 푼돈 모아 목돈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남자는 한 방! 폼잡지 말고 제정신 차리자면. 근데 어디까지 말했지? 말이 아니라 글이다. 이러니 뭘 해도 재미없지. 혀는 헤프고 손은 짧다. 근데 현란하기로... 넘어가자. 거 자꾸자꾸 누가 날 방해하든 말든 까불지 말자. 여기가 무대인가? 아니다. 관중도 없는데 예술병에 걸리면 안된다. 그러니까 젊음과 자유와 낭만과 행복과 난봉과.. 뭐? 그러면 안된단 말이다. 그렇다고 여자들이 가방에 뭘 넣고 다니는지 꼭 알고 싶단 얘기도 아니다. 그걸 알아서 뭐 하게? 관심없다. 알아봐야 시간낭비니까. 어찌 됐든 인생 성적표가 애매하다. 생애사 전략은 안먹힌다. 성과도 은근히 올 뻔하다 말았다. 그래서 더 빈정상한다. 젠장! 뭐야 이게? 그럼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독심술이나 배워볼까? 그러지 말고 차라리 마술을 독학하는 게 낫겠네. 이런 개꿈 같은 공상한테 밀고당겨지느니 차라리 일기를 쓰겠다. 아저씨가 푸르른 미래로 행진하지 않으면 왜 안되냐 라면서 낙서라도 해서 기분전환이라도 된다면야. 하긴 우리... 내일은 생각하지 말기로 해요, 라는 대사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풋사랑이 짜증난다 라는 말은 아닌데. 근데 진짜 아찔한 착상의 주변만 서성거리다가 아무것도 안 될 것이다. 개가 오줌누는 동안에 산토끼가 도망간단 말이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인생이 특별해질까? 굳이 뭐 하러 그걸 고민하나, 얼굴 팔리기 썩 좋아하지도 않는데. 괜히 헛바람 들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새로운 사랑도 언젠가 새로워지지 않게 되기 마련. 원래 어른들은 권태와 친할 따름. 하오나 멜로드라마가 딱히 싫은 건 아닌데. 내가 정말 어쩌다 신비주의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건지 알 수 없다. 이러니까 자유주의자의 호기심은 식상해버리지. 안 그럴 수가 없거든. 동심과 상상력과 배경지식에 대한 열정도 식어버렸다. 우선 선동을 해도 퍽 지지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꿈을 포기해? 직업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래도 황금만능주의에 무관심한 탓에 아직 블로그는 살아있다. 허당은 건재하니까. 그렇다고 너무 진보적인 SF를 추구해서도 안된다. 사실주의에서 멀어지면 안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처럼 뒷패만 기다리다가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늙어버렸다고나 할까? 뭣이 어째? 지금이 유난떨 호시절은 아니다는 것만 알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무대는 너무 넓어져버렸다. 정말로 세상은 좁다. 그런데 나는 단지 사랑에 늦을 뿐. 축구도 개 발. 이래서 사교계에서 팽당했지. 안 봐도 뻔해. 응? 그러니 자연스럽게 환상머신의 완성도 멀어져간 거다. 허나 실망은 금물. 절망쯤이야 받아드리고 체념에 웃는다. 아니, 그거 받고 더블로 갈까? 낙심 받고 따따블? 그런데 뭐에 대해서. 그 뿐만이 아니라 뭘 걸 수 있을까. 이래서 결과는 상심. 뭣이 어쩌고 어째? 그래도 일찍 야생마의 헛된 꿈에 실의해서 다행...이랄 수도 없는데. 좌우지간 나는 불행하지 않음. 대망의 성취는 쉽지 않아야 제맛. 꿈의 실현이 행운따라 얻어걸리면 재미 하나도 없다. 아니 근데 난 어쩌다 이처럼 응석이 늘어버린 거지?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배운 건 정녕 넉살 밖에 없단 말인가! 이건 아니다. 그럼 뭐가 예스인가. 몰라. 그러든가 말든가. 이게 다 고리타분한 자본 논리의 공격을 잘 방어하지 못했기 때문. 그래. 다 내 탓이다. 근데 문제는 계속 지다 지다 패배주의의 화신이 되었다는 것뿐. 혹시 나는 걸어다니는 샌드백이 되기 위해 태어난 건가? 아니겠지. 아니어야 하니까. 그런데 앞으로도 아닐 것이다, 라고 퍽 낙관하기 힘들다. 그래서 슬프다. 그런데 눈물은 안난다. 허나 나만 그러나? 거 봐 봐 거 보라고. 이렇게 짜증내고 심약하니까 승부사 기질이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거지. 나 혼자 해결사라고 주장하면 누가 들어주나. 이러니까 신나게 주동해서 애들 끌고 가서 끝판왕 만났는데 옆에 보니 아무도 없어. 지들이 언제부터 일을 그처럼 열심히 했다고. 설마 이래서 친구들과 지인들이 다 날 피하는 건가? 일단 아는 여동생들 다 떠난 것만 봐서, 딱히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이처럼 현실이 우울하니 따라서 기똥찬 허구를 지어낼 적기다만. 그게 어디 쉬어야 말이지. 그래. 솔직하고 자시고 나는 위선자다. 이제는 나보다 더 가색쟁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큰소리칠 기운도 없다. 허세를 숙청해도 허영심이 압박한다. 그럼 정말 이러다 '막살자'라는 강적한테 간택받으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건 그때 가서. 또 미리미리 더 덜떨어지지 않으면 된다. 그럼 그게 다일까? 다일 리가 있나. 하기사 나 까짓 게 뭐라고 인생에 대해 아는 척하겠나. 나는 한심한 작자다. 또 작작 좀 떠들어야지 상대방 생각도 안한다. 기분파와 낭만파의 아름다운 사랑을 심각하게 왜곡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 뿐만이 아니라 소심하다. 하여 뜬금없이 배짱 부리니까 다 날 피하는 건가? 뭔가 다시 앞으로 돌아간 느낌. 기분 상했다. 망했다. 썩었다. 팍 곯았다. 치명적인 매력 다 필요없다. 그래서 하다 하다 스포츠 칼럼계까지 진출했더니 글쎄, 듣자 하니, 그럼 늬가 해 봐! 뭐? 미침내 굶주린 늑대는 구석에 몰린 것이다. 저기 보이는 개구멍은 통과하기도 좁다. 안 그래도 쥐구멍도 보이지 않는다. 날파리도 안 날리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째서 뭔가를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나, 하여 한때 유행했던 게 미치라는 둥 뭐라는 둥. 힘빼지 말자. 아직 예선전도 아니니까. 근데 이러다... 쉿. 아무래도 지금은 적극성을 환영할 시기가 아닌 것만 같다. 
    따라서 나는 나를 조종하는 그림자 마술사를 잡기로 결정했다......>





    3

    오늘 NB는 몹시 차분했다. 음악도 들었다. Handel / 오르간 협주곡 F장조 HWV295 ‘뻐꾸기와 나이팅게일’. 또 스릴러 영화에 나오듯 이상한 소리이 이끌려 괜한 전개로 빠져들지도 않았다. 그럼 뜻밖의 향기에 놀라 느닷없는 발단이 시작되었을까? 그럴 리 있겠나. 은닉자가 마침내 못 참고 꺼내놓는 비밀을 말하듯이 말하자면, 그는 단지 친구들 모임에 놀러간 것일 뿐. 즉 모처럼 오랫만에 친구3,4명이서 모여 커피마시고, TV로 영화 틀어놓고 동시에 게임도 오락도 험담도 하고 그러기로 했다. 그래서 딱 그곳으로 출발했는데.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NB는 친구집으로 딱 들어가려는데... 그 집은 증축을 위해 깨끗이 준비 단계만 마친 상태. 아마 그 상태로 꽤나 갈게 내버려둔 것처럼 보였다. 그제서야 그는 생각났다. 친구집이 이사간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일단 예정보다 늦게 도착할 것 같아서 그는 친구한테 전화했다. 친구는 전화를 받았다. 
   「친구야 미안. 나 깜빡하고서 늬 옛날 집으로 갔어. 도착하고서야 알았지 뭐니. 지금 여기서 출발하면,」
   「너 뭐니? 너 내 친구 맞냐? 우리집에 너 이미 와 있는데.」
   「내가 벌써 너네 집에 가 있다고?」
   「그러니까 너 누구야? 그런데 전화는... 늬 이름 뜬 거 보면 맞는데. 어떻게 된 거지?」
   「뭐라고? 아니... 도플갱어가 이젠 날 따돌리고 전면에 나선다니...! 이걸 어떡하지?」
   「도프... 뭐? 너 방금 뭐랬니? 내가 잘못 들은 거냐? 내가 걔 바꿔줄께 둘이 통화할래?」
   「안 돼. 그건 안돼. 절대 안돼. 난 걔한테 상대도 안되거든.」
   「상대가 되든 말든 그러니까 너 누구냐니까, 응?」
   「나 너랑 장난하는 거 아니야. 너 나 알지?」
   「너란 존재는 내 옆에 있는데 당신은 누구냐고요, 네?」
    더 이상 통화하는 건 의미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NB는 전화를 뚝 끊었다. 
    당연히 괘념치 말라며 옆에서 살갑게 부추기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해설하며, 설득하다 밀고 당겼다가 쥐락펴락. 정말로 도플갱어는 무서울 만큼 배우는 게 빨랐다. 세상물정 금새 깨우쳤다고나 할까? 그래도 지금까지는 동시 출전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숨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날 바깥으로 돌려도 될 만큼 자신감이 붙었다는 말인데. 탄력받은 그에게 내가 정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괜히 섣불리 녀석을 달래려고 했다가는 난 눈탱이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이와 같은 난감한 사태는 꽤나 장고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어떡한담? 그럼 이제 난 자유란 말인가 아닌가. 아니다. 단기적으로 좋을지도 모르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코 나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점. 모를 수 있나. 퍽 낙관하기 곤란한 실정. 열망어린 헛꿈만 주관적으로 부풀릴 시기가 아니다. 위기는 기회가 아니라 아무리 객관화해도 내게 불리하다. 뭘로 봐도 연패가 기다리고 있을 따름. 그렇다고 꺼내들 카드는? 판돈이 있어야 뒷패를 기대하든 말든 할 거 아닌가. 이럴 때 대비하라고 다 푼돈을 아끼며 베팅을 하는 건데. 이건 뭐... 가난하지만 행복하다. 뭐라고? 됐고. 그래서 나는 당분간 새로운 줄거리를 구상하기 위해 일단 떠나기로 했다. 도플갱어 지가 그래 봤자 도플갱어 밖에 더 돼? 게임 자동 기능으로 움직이라고 내버려둔 채 휴가나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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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전환.
    나는 오늘 정형외과에 다녀왔다. 아, 근황을 설명하자면 나는 휴양지 호텔에서 며칠 묵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른팔 팔꿈치가 아프길래 근처 병원에 갔었다. 아무 문제 없다고 하더라. 그러다 핑핑 놀다 조금 일도 하다, 바텐더한테 껄떡거리기도 했는데. 껄...그게 아니라. 빨빨거리며 나돌아댕기는 대신 폼잡고 분위기 잡고 무중력 레이더를 가동시켰다고나 할까? 농담이고. 그러다 또 이번에는 왼쪽 손목이 아파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통증은 간헐적으로 날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정형외과에 다녀왔다. 당연히 결과는 이상 없음. 그럼 뭐지? 왜지? 그러다 슬슬 느낌이 세해지더니 결국 기분은 꽝이 되었고, 징조가 뭔가 불길하다 했더니 글쎄 나는 나도 모르게 황금 마네킹 그림 액자 속에 갖혀버리고 말았다. 아니 어떻게... 도플갱어가 벌써 심지어 이제는 하다 하다 요술까지 숙달했을까? 그걸 그러니까 어떻게! 나는 장차 이 억압에서 풀려나면 당장 저 그림, 아니 내가 탈옥수로 벌서던 이 그림부터 갈아치울 것이다. 즉 장 엘리움의  <황금 마네킹 상점>. 이게 화근이다. 그럼 다음 그림은 뭘로 바꾸지? 윌렘 드 쿠닝의 여자, 여자 1로 바꿀까?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아무튼 지금 방법은 없다. 도플갱어가 전면에 나선 이유가 있긴 있을 텐데, 일단은 가만 지켜보는 수 밖에. 그렇게 나는 말똥말똥 정신이 또렷하나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액자 안 그림에 못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드디여 나는 도플갱어를 보고야 말았다. 녀석은 사무실로 태연히 출근해서 나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이 자식이...! 그러다 녀석은 아는 동생들한테 전화해서 껄떡거렸다. 막 심하게. 이 자식이...! 이런 싸구려 뽄드같은 녀석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그러다 녀석은 바깥으로 나돌아댕겼다. 또 어딜 얼쩡거릴려고. 아니면 알짱알짱 누군가에게 떡밥 뿌리기? 그렇게 1주일이 지났다. 오늘은 웬일로 일찍 출근했을까. 지켜보면 알겠지. 
    녀석은 분위기 전환 삼아 음악을 틀었다. 
    Frederick Ⅱ / 플루트 소나타 261번 F장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상에 대한 신념은 무뎌졌다. 사교계 진출을 위해 무작정 팔 걷고 나설 수도 없다. 이러니 낭만적인 멜로드라마로부터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다. 뒤로 오는 백허그는 져드리겠는데, 앞으로 오는 팔자는 못이는 것인가? 알 거 없다. 사는 낙이 단조로운 게 뭐 어때서. 남들이라고 인생의 즐거움이 썩 다양하지 않을 것이다. 달콤한 러브콜은 올 뻔하지도 않았고 쓴 웃음만 남았다 하여 절망할 수는 없다. 당연하다마다요! 근데 뭘 하는데 난 또 일기를 쓰고 있지? 그 까닭을 속시원히 안다면 난 아마 꽤나 행복할 텐데. 어쨌거나 더 이상 털어놓을 비밀은 없다. 있긴 있는데 누가 엿들을까 봐 겁난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시적인 매혹과 행복의 기쁨 이젠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럼 난 드디어 타락한 건가? 그러든 아니든 나는 악마가 아니다. 그나저나 비밀리에 추진 중인 작전을 차라리 숨기지 말아버릴까? 있어야 말이지. 겸손하고 싶어도 무슨 자랑할 게 있어야 하든 말든 할 거 아닌가. 그럼 사랑마저 사치일까?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마음만 먹으면 특A급 영화배우를 자빠트려 결혼에 골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녀를 눈부신 5월의 신부로 만들어드릴 수 있거든. 그러므로 나는 굶주린 늑대가 아니다. 그럼 또 누군가 그러겠지. 그럼 난 뭐 굶주릴대로 굶주린 늑대냐? 그러나 우정도 다 어릴 때 얘기다. 한편 장미꽃은 꺾을 때 꺾는다, 를 모르지는 않았는데. 남자의 친교란 믿을 게 못 되는 건가? 아니겠지. 그래서 칼럼으로 무언가를 고발했던 거고. 그러든 어쩌든 잔소리 바닥나서 좋긴하다. 그럼 뭘 하나. 재산은 증식되지 않는 반면 허세만 나날이 발전하는데. 절망을 예언하지도 않았고 상심을 저주한 적도 없는데... 그런데 왜 이런 거지? 허나 성과 빈곤에 대한 대응이 세련되지 않아서야 쓰나. 하여 권태에 직면한 결과 꽤 괜찮은 대타를 투입하고자 하는데. 어디 보자... 괜히 봤다. 그렇다고 눈을 질끈 감고서 미친 척할 마음은 없다. 이를 테면 달콤한 건수가 제발 함께 놀자고 꼬신다면 퍽 마다하진 않겠으나, 풍운아 별칭을 왜 아깝게 놓쳤냐는 물음에 논박할 활기도 없단 말이다. 그게 그러니까 말이다 배고픈 곰은 춤을 추지 않는 것일까? 그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만. 우리는 일단 미련곰탱이가 아니라는 점. 그런데 왜 이처럼 인생이 허접하지? 그러게. 뭘 해야 새로워질까. 더 식상해지지 않은 게 어딘가. 그러다 갑자기 예고 없이 찾아오는 모험가의 자발, 최소한 내 얘기는 아니다. 이러니 천사의 교태와 요정의 내숭과 비너스의 변덕, 다 거짓말일 뿐이다. 일단 소망부터 내게 결코 순종적이지 않다는 것. (절레절레) 이런 악조건 속에 나까지 떠들기 좋아한다라... 아니다. 그건 아니다. 이건 뭐랄까 난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나 할까? 아니다. 나는 늙었음에 동의할 수 없으니까. 이렇듯 능청을 모두 쾌락주의 탓으로만 돌려서도 안된다. 꽃피는 봄날이 멀지 않았다. 백조의 날개는 물에 젖지 않는다. 퇴폐적인 상상력도 사양하자. 그런다고 그게 설마 허당의 섭리를 거역하는 게 되나? 알 게 뭐냐. 근데 누가? 내가? 내가 왜? 아니 왜? 뭣 때문에? 그 이유를 안다고 황금방석에 안는 것도 아니고, 모른다고 불알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여러 방면으로 레이더 가동시킬 것 없다. 지금은 하나만 알자. 일단, 잘 먹으면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것. 하지만 이젠 커피도 잘 마시지 않는데 것도 별로. 개 눈에는 개뼊따귀만 보이는 게 아니다. 그래도 미친 개는 밤마다 개꿈만 꾼다. 근데 그게 대체 뭔 소리야? 그만하는 게 좋겠다. 
    그래서 나는 딴 걸 할 수는 없고. 놀기도 애매하고. 따라서 나는 저 액자를 갖다버리기로 결심했다. 그 다짐은 결국 결실을 맺었느냐? 그걸 지금 알려드릴 수는 없다. 나도 뭔가 믿을 만한 카드 몇 개는 남겨놓아야 하니까...>
    이처럼 일을 끝마치자마자 도플갱어는 NB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네 눈에는 내가 도플갱어로 보이니!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액자 안 그림 속에 갖힌 채 말이다. 





    4

    라이몬디가 라파엘로 - '파리스의 심판'. 풀밭위의 식사/마네 (1863). 풀밭위의 식사/파블로 피카소 (1954~63). 그 주제를 일부 차용한 유명 상표 광고 사진 촬영장. 또는 단지 보기에 따라 쇠라의 점묘화를 떠올릴 수도 있는 풍경. 어쨌든 그 인근에서 NB는 깨어났다. 도플갱어가 그의 기억을 완전히는 아니나, 옅디옅도록 지워버렸을까? 그는 자기가 왜 여기서 깨어났는지 도통 기억할 수 없었다. 
   「야, 조수. 잡상인도 아니고 저 거렁뱅이는 또 뭐니?」
   「아저씨 뭡니까?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아니 대체 언제 아무도 몰래 잡입했어요? 어서 나가세요.」
   「저 냥반 보통내기가 아닌데. 대체 뭐 하는 양반이야? 혹시 우리 작업을 일부러 방해하기 위해서?」
   「뭐 해, 어서 끌어내. 상태가 많이 안 좋아보이는 거 딱 봐도 모르겠니?」
    그곳에서 도망치듯 뛰쳐나올 경황, 그럴 깜냥 없었기 때문일까? 미처 자기가 왜 이러고 있는지 그는 당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뭔가 어떤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 느낌 너무 세했으므로, 그는 달콤한 예감과 정반대되는 예견을 떨쳐버려야만 할 것 같았다. 그 불안의 정체는 무엇일까? 도깨비를 사귄 셈이므로 도플갱어는 수동으로 한 번, 두 번, 세 번 놀리다 마침내 자동으로 전환되는 건 아닐까 라는 점. 섬뜩했다. 식겁하지 않을 수 있겠나. 설마하니 nb가 앞서 몇 번에 걸쳐 발생했던 기적 같은 변신을 기억해낸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말도 안되는 신비감 본인부터 믿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이와 같은 퍽 신뢰하기 어려운 난감함, 떨쳐낼래야 떨쳐버릴 수 없었는데. 그걸 치유하려면 스스로 어딘가에 추파를 던져야 할까, 아님 아는 동생들로부터 얼쩡얼쩡 치근댐을 받아야만 할까. 어찌 됐든 그건 걔 사정. 다만 또 다시 환각인지 마법인지 그런 증상들이 재발되지 않았다는 것은 꽤나 다행이었다는 점. 썩 부인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 때문에 그의 낭만적인 기분이 탄력을 받았냐, 하면 아니었다. 그러니 극적으로 제정신을 차려서 좋긴 한데. 그는 왜 이리 허전한 것일까? 상심할 필요없다. 왜냐하면 그는 고전파의 막강한 실세이자 마술적 사실주의의 탁월한 실력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근데 그런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걘 대체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다 쓸 데 없고. 거듭 말하지만, 그는 주도적으로 새로운 인생과 찬란한 사랑을 짝지어주기만 하면 된다. 근데 그게 쉽나? 혹시... 그래서 옛 표어 '하면 된다'는 잊혀진 거나 다름없을까! 그렇다고 <아니면 말고>도 퍽 잘난 거 없다. 어차피 저 하늘의 별을 딸 수 없다면 제3번 가상의 무언가를 상상하면 그만. 하여 그 가상의 목표가... 보나마나 뻔하다. 깨물어 줄만큼 예쁘다는 칭찬을 남발하는 촌닭, 적어도 NB는 아니라고 주장할 테나. YB가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쓴다면 또 모를까. 아니 어떻게! OB들이나 툭하면 첫눈에 홀딱 반하지 NB는 절대로 그럴 리 없다. 좌우지간 불가능하다고 믿을 수 없는 사랑의 완성, 그건 정녕 진한 사랑일까? 힘빠지는 얘기 시작도 말자. 다만 심신이 분리되는 느낌이 무엇인지는 그 어떤 분위기에서라면 보여드릴 수는 있다. 그게 그러니까 풍년 거지 더 섧다 라는데. 눈은 풍년이요 입은 흉년이라고 굶주린 늑대의 심정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농담인데 왜 이리 재미가 없을꼬! 그런데 어찌 하여 그 덜떨어진 허당에 대한 변론은 또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걸까. 때문에 애초에 시작도 말아야 한다. 그래. 그만하자. 허접한 잔소리 징글징글하니까. 
    그래서 그는 무작정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아무 생각없이 집으로 뛰어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는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니 출입 인증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네? 어, 이게 뭐지! 난 이런 거 설치한 적 없는데... 뭐지? 뭘까? 뭐야 이거! 왠지 모르게 그는 집은 일단 놔두고 사무실로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은 이해할 수도 설명하지도 못할 테니까.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거의, 거의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묘하게 그 근처에서 튕김. 마치 온라인 게임처럼!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문자 메시지를 받음. 여기서 NB의 위치를 묘사하자면 그는 자기 사무실이 보이는 거리. 마치 2층 카페 창가에서 향기로운 찻잔을 들고서 그를 쳐다보면 녀석의 허접한 패션이 보일 듯한 위치. 아니 그런데! 어머나... 어머머.. 아니 어떻게. 창밖을 내다보는 도플갱어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의 냉소를 보고서 나는 인상을 팍 썼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녀석이 보낸 문제 메시지 때문에. 곧장 문자를 확인했다. 
   "007 가방을 구해와라. 안에 무엇이 채워져야 할지 굳이 내 입으로 말하지 않겠다. 만약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다면 내 말을 순순히 따르는 게 좋을 것이다. 그 정도도 모르진 않겠지?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기 바람."
    뭐라고? 뭐가 어쩌고 어째? 이 자식이 누굴 바보로 아나...! 내가 이래 뵈도... 근데 내가 어디 가서 무슨 수로 007 가방을 구하지? 설사 가방을 어떻게 구한다고 해도...! 
    나는 반나절 잔머리를 굴리며 산책하다 돌아왔다. 그 다음 퇴근하는 녀석의 뒤를 밟았다. 성급히 달려가 녀석의 멱살을 잡으려하다간 된통 당하거나 또 튕겨나갈 게 뻔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계란 1개, 메추라기알 1개를 미리 구해왔다. 이처럼 미행붙는 걸 녀석이 예견했거나 내가 걔한테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녀석은 더 느긋한 걸음걸이를 뽐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확 던졌다. 계란과 메추라기알을 말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생달걀 1개를 던지니 그건 허공에서 사라졌고, 그게 사라지자마자 난 새똥을 맞았다. 신기하다고 감탄할 상황이겠나 짜증낼 기분이겠나. 이런 젠장~! 다음으로 메추라기알이 더 없나 주머니를 뒤져봤다. 없는 줄 알았는데 1개가 남아있었다. 나는 그걸 마저 던졌다. 밑져야 본전이다 라는 생각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일까? 그걸 알아서 뭐 하나. 그랬더니 그 다음 어떻게 됐을까? 그 마지막 메추라기알 1개는 허공에서 사라졌고, 사라지자마자 난 개똥을 밟고 넘어졌다. 이 녀석이 증말 보자 보자 하니까... 이젠 어떡하지?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나는 결국 중고품 매장에서 007 가방을 구입했다. 내용물은 지폐 다발로 꽉 채움. 단, 제일 윗장만 고액지폐로. 제일 윗장을 빼고 나머지는 이것저것 되는대로 규격만 맞춰서. 그걸 들고 가서 녀석 사무실 문 앞에 놓고 돌아왔다. 녀석 사무실? 언제부터... 됐다.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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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이 되었다. 최고급 호텔에서 숙박했는지 밤새 떠돌아다녔는지 그건 넘어가자. 오늘은 토요일. 정말 난 거지가 되어버린 걸까? 그래도 모르니 일단 집으로 가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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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처럼 우리집은 그대로였다. 나는 다시 예전 생활로 복귀했다는 걸 깨닫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김새지만 언젠가 재밌어질 거라고 긍정할 수 밖에 없었다. 





    5

    누가 나를 도플갱어로 만들었을까, 도대체 왜! 아니면 난 숙주에서 튕겨져나오자마자 새로운 육신에 갇힌 건가? 모르겠다. 아는 척할 수도 있다만 그러긴 싫다. 아무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먼저 실토하자면 이렇다. 그건 뭐냐, 바로 어제 내가 녀석을 미행했듯이 출퇴근길에 누군가가 나를 따라다녔다. 게다가 변장은 했을지언정 얼굴 및 머리 전체를 붕대로 칭칭 감고 있었다. 그게 모자가 달린 외투를 입고 있었음과 더불어 요상한 패션으로 잘도 위장했기 때문에 전혀 괴상해보이진 않았다. 단지 날 속일 수는 없었다는 거. 그럼 뭘 해?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심지어 어제 내가 도플갱어에게 보여준 행동들을 흡사 Ctrl+C & Ctrl + V! 그렇게 녀석은 내게 어떤 무언의 의사표현을 하고 있었다. 이건 뭘 뜻하는 거지? 그럼 녀석도 내가 모르는 새에 내게 접근할려다가 이미 튕김 현상을 경험했다는 건가? 또 내가 본래 정체성을 되찾은 것처럼 나는 녀석한테 내 모든 것을 빼았겨버리게 되는 걸까...? 그럼 이제 나는 어디로 쫒겨나나! 정신이 혼란했다. 아, 맞다! 만약에 튕김 증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가정했을 때! 저 녀석이 갑자기 나한테 느닷없이 다가와서 이렇게 따지면 어떡해야 하나...! 
   「야, 나랑 한판 뜨자!」
    뭐라고? 아니 정말로 저 자식이 불현듯, 급작스럽게 내게 다가와 날 때리면 어떡하냔 말이다. 왜냐하면 쟤가 내게 뜬금없이 사랑을 고백할 리는 없기 때문에. 만약 녀석이 갑자기 나랑 친하고 싶어한다면 그건 말도 안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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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이 되었다. 
    자,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그 누구보다 내가 먼저 궁금한 일...이 아니라. 한마디로 말해서 도플갱어는 사라졌다. 그런데 뭐라고나 할까.. 왠지 아쉽자 뭔가 허전하다고나 할까? 정말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호기심을 속시원히 충족시켜드릴 것처럼 알자하니, 발단은 날 약올렸고 전개한테 나는 속았다. 아니면 뭔지 모를 허깨비한테 된통 당한 건가? 모르겠다.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기발한 이치의 이해를 좀 더 돕기 위해 말해두자면, 줄거리고 나발이고. 정말 모른단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뭐 때문일까? 가난 때문이라고 말은 하지 않겠다. 나는 사랑의 시를 쓴 적이 없다. 누가 행복을 논하제? 벌집 쑤신 듯 낭만에 심취해봐야 다 쓸 데 없다. 그렇다고 인공지능한테 어떻게 징징대나. 아마도 제일 먼저 들을 말은 그럴 테니까. 넌 몰라도 돼! 뭐? 흥분하지 말자. 정작, 아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이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부정하지 않겠다. 궤변과 몽상과 허언과 쓰잘데기 없는 상상력 다 필요없다. 짝사랑도 소용없다. 어차피 인생 혼자다. 누가 그걸 모른데? 내 인생 성과가 꼴찌라는 사실은 부동의 숙명인 것일까? 운명 같은 소리 하지도 말라니까 정말. 이래서 나는 뭘 해도 안되는 건가.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라는 허구를 너무 많이 남발했던 죄값일 수도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왕 뭔지 모를 환상론 시작한 김에 좀 더 이어가자면 우선 나를 객관적으로 봐야겠다. 그래야 한다...까지는 아니지만 그럴 필요가 있다. 그는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동시에 여심을 녹여주는 데 실패했다. 허나 그것은 거짓이다. 왜냐하면 무대에 서보지조차 못했기 때문. 결국 어디 가나 무엇을 하나 상상병은 현실 도피일 따름. 그래도 뭐랄까 적어도 미래는 자유와 모순되면 안될 것이다. 그래 봐야 꿈은 허영심의 노예에 지나지 않을까? 묻지 말자. 알아서 뭐 하게. 그럼 정말 소망은 충족될 수 없단 말인가? 만약 아니라고 하더라도 욕망에게 녀석이 어떻게 호적수가 된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하지 않아 다행이긴 한데. 그래서 어설픈 신비주의를 파괴한 결과가 대체 뭐란 말인가. 지금 와서 고전주의를 신봉해봐야 누가 알아주나. 그러든 어쩌든 어떤 환상에 대한 뜬구름 잡는 몽상부터 집어치우라 그래. 개뼉따귀 라는 말만 들어도 지치니까. 아니 그러니까 누구한테! 뭐, 그렇게 심한 말을? 이러니까 황금만능주의와 불친이요 인기로부터 미운털이 박히지. 안 그럴 수가 없거든. 그러게 유능함과 돈독한 친목을 쌓지 못하고 뭐했냔 말이다. 허나 삶이 어디 내 맘대로 되야 말이지. 뭐 일단 여기까지만 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그 다음이 대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6

    도플갱어와 친교를 맺을까? 불가능하다. 그럼 사랑의 차트가 애원하는 구애를 못이긴 척 받아줄까! 어림없는 일. 그렇다고 하여 색다른 취미가 새로운 삶의 낙이 될 수도 없는 형편. 그래도 공식적인 가난에 별 불만은 없다. 허면 비공식적인 낭만의 실종에 미련이 없냐, 그래 없다. 그러니까 이렇다 할 공적과 찬미와 행복에 무관심하니 편하다. 그래서 깨달은 건 무엇일까? 말하자면 핑계 없는 무덤 없고, 말 다하고 죽은 귀신 없다는 것. 나도 안다. 난 쓰다 만 일기장 같은 남자라는 걸. 하여 나는 이제 알게 됐다. 그건 무엇일까! 내 인생은 불만족을 보장하고, 재미없음만 책임지며, 심심함을 사랑한다는 걸 말이다. 뭐, 뭐가 어쩌고 어째? 개꿈과 허언에 더 이상 농락당하지 말기로 한 걸 난 벌써 잊었나. 내 평생 살다 살다 이런 투정은 처음이다. 아니다.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우리처럼 그 어떤 기대감을 잃어버리다 보면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첫눈에 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데 그게 뻥과 뭔 상관일까? 그걸 알아서 뭐 하나. 더 이상 아무한테도 홀딱 반하지 않는다는 게 중요할 뿐. 안 그런가?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운명을 고민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나중 허비한 인생을 언젠가 후회할 수도 있을 테니까. 물론 내일은 그렇고 오늘 당장 시간 낭비로 내 기분은 나빠지겠지. 그렇다고 아무 이유없이 분위기가 좋아질 만큼 그 무엇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영화배우가 되었다. 그런데 그건 꿈이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서커스를 찾아다니기도 귀찮다. 더군다나 남자니까 마술사 조수로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끼리 얘긴데 어떤 수작을 걸고 싶은 욕망이 바닥났다는 거. 이제 난 남자가 아닌가? 아닌 게 아닌데 고개를 숙인 건가? 솔직히 말해서 더러운 애정을 자빠트리는 풍운아, 하나도 부럽지 않다. 그럼 길바닥에 나뒹구는 낙엽만 봐도 꺄르르 웃는 젊음을 동경하냐, 하면 것도 아니다. 그럼 대체 문제가 뭔데? 문제 없다. 아하! 맙소사, 나는 이제 철이 든 거다. 안되는데. 이제 어떡하지? 뭘 어떡하나. 아니다. 속없는 우리에게 철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긴 아는데. 보통 문제가 아닌 거다. 그럼 어떡할 텐가? 대책없다. 그냥 확 도망가버릴까? 그런데 어디로 떠난단 말인가. 가봤자, 개는 토한 곳으로 돌아오기 마련. 그렇다고 내가 개란 말이 아니라. 별들의 고향이 어딘지 모르진 않다만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 그래도 집 떠나면 고생이다. 그런데 여자 뒤꽁무늬나 쫓아다니는 개고생을 왜 사서 하겠나. 다 부질없다. 나는 행운아가 아니라 그냥 패배자다. 다시 한번 말한다만 뭘 해도 재미없다는 말은 아니다. 여자? 관심없다. 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심지어 나는 시인이 아닌데 청춘이란 단어를 내 입에 담을 순 없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아무도 없으니 하는 말이지만) 블로그를 때려칠까? 닥달하든 들들볶든 잔소리하는 여편네한테 들킬 일도 없는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 심한 말로 칼럼니스트 일자리 집어치우든 말든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는다. 이젠 하다 하다 스포츠 야유마저 형편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 탄력 받기만 기다릴 건가? 그래. 가자. 젊음의 행진 못 할 거 없다. 그런데 열정이든 뭐든 시동이 안 걸린다. 그런데 왜 갑자기 떡밥뿌리기가 떠오르지? 그걸 내가 아나 바보가 아나. 아니면 다름 아니라 내가 바보인가? 또 바보면 좀 어떤가. 게다가, 어? 환상머신 운운했던 난봉꾼이 어디 내가 처음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래 봐야 내가 정말로 웃기는 터미네이터인지 누가 알겠는가. 고로 얼굴 팔릴 걱정 없어서 기쁘다. 그래. 너무 좋아서 문제군.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결론은 이런 게 아니다. 그럼 진짜로 진한 사랑을 절실히 원하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래! 알아야 말이지. 모른다. 단지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시간은 미래로 나아갈 뿐. 그거 받고 당장 품위유지비가 부족할 따름. 그래도 우리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밝은 미래를 뭐 하러 비관하나. 그녀들은 다 나한테 넘어올 수 밖에 없는데. 다만 가난이 선명하니 비밀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원래 세상사란 조금쯤 불공평하기 마련. 허나 상하일체복과 멜빵청바지를 못 입어본 체 어른이 된 게 어디 나 뿐이냐고. 괜찮다. 나도 나다. 그리고... 
    아니 그런데 어떻게...! 
    딱히 기다리지는 않았으나 뭔가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는 느낌. 설사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지언정 뜻하지 않게 저쪽에서 뭔가 착오가 있었는지 어쨌는지 내게 신호를 보내왔다. 물론 나는 여기서 말하는 저쪽이 어떤 대상인지 그 비밀과 배후와 사연과 줄거리 등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건 그렇고. 발생한 일이 대체 뭐냐, 다름 아니라 볼링핀이었다. 그건 집 앞에 볼링핀 1개가 놓여있는 걸 발견. 또 사무실 앞에 볼링핀 2개. 뭐지? 이 안에 드라마처럼 도청장치, 감시카메라, 적외선...체온...그럴 리는 없을 테고. 설마 이게 슈퍼컴퓨터? 그냥 뭔가가 내게 잘못 배달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걸 가만 놔두니 며칠 후에 사라졌다. 주인이든 배달자든 중간책이 다시 가져갔을 테지. 그러다 1주일 후 나는 알게 됐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나는 무엇을 알게 됐을까?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그건 바로 내 지인들이 하나둘 도플갱어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점. 
    가령 이런 일들이 흔히 발생했다. 즉 세실리아가 날 짝사랑한다는 착각을 깨버리기 위해서 나는 그녀한테 연락했다. 처음에는 평소와 다르게 사무적인 어조로 전화를 받더라. 바쁘다고 하길래 1주일을 기다린 다음 다시 연락했다. 왜냐하면 평소 세실리아로부터 호의와 선물과 애교와 연정을 언제나 받기만 했기 때문에. 그래서 많이 늦었지만 호혜를 되갚고자 이번에는 그녀가 자주 찾는 카페로 찾아갔다. 우연히 만나기를 애타게 바라지는 않았다만 여자들은 은근 그런 걸 좋아하니까. 정말 그럴까? 그러든가 말든가 일단 싫어하진 않는다. 물론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렇게 나는 세실리아를 만났는데 그녀는 냉담했다. 아하, 이래서... 나는 그녀의 눈빛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그녀의 눈빛은 나를 바라봤지만 뭐랄까 초점이 내게 잘 맞지 않았고, 사람이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동물이 날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일들은 매번 발생했다. 친구 1, 친구 2, 친구 3. 지인 A, 지인 B, 지인 C. 대체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그렇다고 이걸 내 주변인들이 모두 도플갱어로 대체된다는 명백한 증거인가, 굳이 그 판단이 비이성적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두 번이면 말겠지만 엑셀 파일을 연상시켰으니까. 그럼 이제 나는 어떡해야 하지? 모르겠다. 만약 이대로 계속 간다면... 나 빼고 모든 지구인은 외계인이 되는 건가? 좀비 영화 재미없어서 안 본지도 오래됐는데 그런 허황된 상상 그만 좀 하자. 어쨌든 이럴 때는 그냥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어딜 들쑤시고 다니겠나 괜히 잠자는 불독을 깨우겠나. 부추김 당하는 거도 재미없고 깐족거리기도 옛날 같지 않다. 고로 괜히 감정이 말랑말랑해진다고 헛바람들지 말고 일이나 하러 가기로 했다. 





    7

    달콤한 성과를 달성할 궁리는 뒤로 한 채 날이면 날마다 탐욕에만 첨예한 관심이라니. 하긴 일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 건 좀처럼 뻔한 이치. 정녕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온 걸까? 그런데 왜 왔는지 모른다고 우주로 떠날 수도 없다. 그러든 아니든 뭔가 이상한 낌새, 다분히 막연한 출세욕 탓은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아마도 전폭 신뢰할 수 없는 망상에 그저 귀찮을 따름. 이런 장단이라면 춤추기 어렵다. 세상을 모르니까. 그래도 힘내 라고 크게 외쳐볼까? 외치긴 뭘 외쳐. 여자의 마음에 대해 아는 게 뭐라고! 헌데 대체 그 얘기가 왜 나오는 거지? 도통 욕심도 없는데 말이야. 하긴 그걸 알아서 뭐 하게! 어쨌든 낙관적인 희망은 끌려내려갔다. 그런데 만약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뭐 어떻게든. 어찌 됐든 인생이란 개뼉따귀가 아니란 거만 알면 된다. 아울러 나는 공짜를 좋아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웬 허당들을 무턱대고 부러워하고 싶지도 않다. 심지어 이 마당에 뭘 해도 재미없다 라는 말을 어떻게 내 입으로 하나. 못해. 안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솔직히 말해서 나는 뭘 해도 재미있다. 신난다. 즐겁다. 기뻐서 미치고 환장하겠다. 기분 끝장이란 말이다. 허허허. 그건 그렇고. 한편, 아저씨들 권고대로 값싼 햄버거나 조질까?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그나저나 내 나이를 밝힐 수는 없다만 난 어쩌면 중년기를 너무 띄엄띄엄 봤다. 그럴 생각은 없었다만 결과가 그렇다. 기왕 그렇다면 흑심이라는 죄와 솜방망이라는 벌, 라는 제목으로 단편영화나 하나 만들까? 나는 결국 '한다면 한다'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고 아니면 말고, 를 때릴 수도 없지 않나. 딱 봐도 망설이기 좋아하던 겁쟁이는 필경 허풍만 남발하는 조롱꾼으로 성장했네. 맙소사, 이런 젠장! 그렇다고 속좁은 여자를 만족시킬 수 있나, 아니면 예언가의 기질이 남다르기를 하나. 괜히 애독자를 부추기거나 특히 시선은 어딘가 뒤꽁무니로 자연스럽게 향할 테지. 더더군다나 매력적인 숙녀들한테 혹 하기 밖에 더 하냐고. 그러니 뭇남성들을 현혹시키지 못하는 분들 속 뒤집어질 수 밖에. 뭣이 어째? 아는 동생들 안부는 궁금해하지도 말자. 편식하는 어린애처럼 이게 뭐냔 말이다. 굳이 이런 얘기를 하고자 한 게 아니라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렸을까. 그래서일까? 갑자기 그런 말이 떠오른다. 바로, 여자가 제 방귀에 놀란다. 점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꿩 잡는 건 매다. 그런데 꿩 놓친 매 마냥 이게 뭔가. 이건 아니다. 젊은 미소가 더 썩기 전에 기분전환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되니까. 안 그랬다가는 난 울어버릴지도 모를 일. 허나 난 울보가 아닌데. 그럼 먹보인가? 아니 속된 말로 내가 뭐 돼지새끼? 나는 개가 아니다. 이런 말장난 하면 할수록 더더욱 바보가 된다. 이미 멍청해졌다. 아니 타고나기를... 통과. 심지어 여자들 셀 수도 없이 꼬셔봤기 때문에 더 이상 그녀들을 이해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뭐랄까 얼쩡얼쩡 그녀들 유혹에 넘어가는 상남자보다 내가 한수 위다. 어디서 공인받을 수는 없어도 말이다. 그렇지만 내 잔꾀에 내가 속아넘어가기 일쑤. 그럴 수 있다. 애초에 멍청한 수작 시작도 안하는 게 어딘데. 그리고 내가 무슨 애송이도 아닌데 한가하게 말 같지도 않은 궤변으로 호인들 농락시킬 일 있나, 아니면 괜히 마음의 준비도 덜 된 여심들한테 추파를 던지고 다닐 일 있나. 다 부질없다. 그게 다 이루지 못할 꿈을 꾼 것부터 시간낭비다. 허나 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원하지 않았다. 또 무관의 제왕을 누가 알아주나. 좌우지간 나는 미치지 않았다. 멀쩡하다. 끄떡없다. 괜찮다. 그러고 보니 이제 알겠다. 허접한 슬럼프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작정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물론 말이 그렇단 거다. 그렇지만 그 방법을 아예 제외시키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방구석에서 공연히 마음을 졸이느니 나는 그녀들의 마음을 띄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여기서 말하는 그녀들이 누구지? 몰라. 우리는 여자 관심없다. 우리? 그 우리에서 제발 난 빼달라는 푸념 벌써 들리는 것만 같다. 근데 내가 무슨 자유의 여신상도 아닌데 뭣 때문에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어야 할까? 그런다고 돈방석에 앉는 것도 아닌데. 뭐, 돈방석? 그런 얘긴 다 어디서 주서들었는지 모르겠다. 일부러 저렴한 표현을 남용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도 모르게 알고 있었을 뿐. 아니, 어? 그건 또 무슨 이유 때문에 궁금해 하는데. 애시당초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나인데 말이다. 그럼 이게 다 모스맨 연구소 일당들이 치밀한 작전으로 날 조종한 건가? 알 게 뭐야. 자, 액면에 놓여진 수다 카드는 그만 거두어들여야겠다. 
    이때 나는 깨달았다. 알 게 모르게 도플갱어가 나를 조작하고 있다는 것을. 어디까지나 심증 뿐이나 증거가 없다는 게 더 수상하다. 날 아주 은근히 미치게 만들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아무것도 모른 체 넘어갈 줄 알았을까? 배후에 녀석이 있다는 걸 내가 어떻게 몰라. 그렇다고 저번처럼 근처에서 더 이상 녀석은 얼쩡얼쩡대지 않았다. 그렇다. 녀석은 모스맨 연구소로 도망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곧장 그곳으로 쳐들어갔다. 끝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번 문단은 뭐라고나 할까.. 도플갱어와 맞장뜨기 위해 모스맨 연구소행, 라고 한마디면 끝날 건데. 뭔 설명을 이렇게나 많이! 바로, 이래서 내가 작가에서 영화감독으로 이직해야 한다는 거다. 근데 또 그 줄거리를 시작하자면 얘기 길어지니까 이만 줄이는 걸로.





    8

    참고로 모스맨 연구소에 도착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그건 비밀이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따로 영화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아직은 어설픈 예고편으로 뭘 뜸들일 시기가 아닌 것이다. 아니다. 속시원히 무슨 일이 있었나 남몰래 귀뜸할 책무, 회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되니까. 따라서 살짝 아니 속도감을 앞세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를 고백한다. 정말로 그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지 낱낱이 실토하겠다. 아주 그걸 소상히 말하자면 그럴려고 하는데 손에 땀이 빠싹 난다. 그러니 곧바로 등에도 식은땀이 방울방울 맺힌다는 걸 꼭 알아주시라는 건 아닌데. 그만큼 엄청난 일이 터졌냐, 사람에 따라 반응은 제각각일 테나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괴상했다. 물론 당시 현장에서 나만 눈꺼풀 파르르에 온몸에 경련이 일었을 것이다. 아, 근데 얘기한다면서 자꾸자꾸 지연되는데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 더 뜸들였다간 오해하기 딱 좋을 수도 있으니까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곧장 말하겠다. 
    내가 찾았던 모스맨 연구소는 바껴있었다. 마술쇼 공연장으로 말이다. 그래서 도플갱어고 자시고 모르겠고 나는 마침 시작하려던 마술쇼 입장권을 구입해 들어갔다. 공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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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 숙녀들이 많다거나 할 일 없거나 외로운 사람들이 가득하다 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관중보다 공연에 빠져들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시작된 공연. 왠지 모르게 초급으로 시작했다. 입에서 색종이가 나오는 마술. 다음으로 카드 마술. 또 공중 부양 마술. 그러다 드디어 나를 까무러치게 만들었던 마술이 시작되었다. 바로, 3단 분리 마술! 즉 몸통 분리 되는 마술, 웬만한 사람들 TV로 한두 번 보셨을 것이다.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마술, 그런데 거짓말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마술. 개가 사람을 무는 게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물면 특종이 되는 것처럼. 마술 실패로 인해 정말로 뭔가가 분리되었느냐, 하면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마침내 몸과 마음이 분리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마술사가 조수를 커다란 장비에 넣어 3단 마술을 선보였는데, 미녀 조수의 얼굴이 내게만 아마도 내게만 도플갱어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땀이 비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차라리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남녀 몸통 분리 후 바꿔서 재결합을 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로 인해 나의 환상인지 정신착란인지 그 어떤 증상,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신비스러운 현상이 재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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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하여 나는 내 사무실에 걸려있는 그림 속 마네킹이 되었다. 그렇게 액자 속에 갖혀 도플갱어가 신나게 내 행세를 하고 다니는 걸 나는 단지 사무실 내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어떻게 다시 본래의 내 숙주를 되찾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녀석이 내 기억을 조작한 건지 지워버린 건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언젠가 녀석을 만나면 혼쭐을 내줘야 하는데. 그런데 반대로 내가 녀석한테 혼꾸녕이 나면 어떡하지? 그건 뭐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그렇게 도플갱어 관련하여 짧다면 짧고, 복잡하다면 복잡한 사연은 막을 내리게 됐다. 다음으로 나는 사무실 집기를 여럿 교체했다. 모니터도 바꾸고, 오디오도 바꾸고. 그러자마자 다음과 같은 글을 쓸 수 있었다. 
   <해가 서쪽에서 뜰 때 쥐구멍에 볕들까? 삶은 팥이 싹 나거든 알려드리겠음. 무슨 바람이 불어서 또 잔소리를 슬슬 발동걸리고자 하는 것일까. 알고 싶지 않다. 그러나 수다머신이 시작한 것은 끝을 봐야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뭘 어떡해. 능청 떨면 그만. 허나 이럴 때일수록 아름다운 사랑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근데 그게 뭔 소리지? 몰라. 그러든가 말든가. 그래도 말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데 엉뚱한 행복감을 바란다는 건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면 난 이 상쾌하지 못한 기분으로 대체 뭘 원하는 것일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아마도 흥분을 가라앉히는 거겠지. 선동도 피곤하다. 그러니까 이상한 구원파 같은 얘기 그만하는 게 좋겠다. 어쩌면 이게 다 달콤한 추억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랑의 맹세를 하냐 아니냐를 막론하고 기회도 없었거든. 그런데 행복을 어떻게 서약하나. 이래서 뜬구름 잡듯 희망만 귀찮게 하지. 그리하여 결론이... 끝이 곯은 희곡만 겨우겨우 떠올림. 틀림없다. 처지 정말 옹색하군 그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까. 그러다 갑자기 꿈같은 멜로드라마에 깜작 발탁? 꿈도 꿀 수 없다. 신분상승? 개 풀뜯어먹는 망상일 따름. 하긴 이게 다 청춘을 즐기지 못한 대가일 것이다. 탐스러운 사냥감을 보고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 난 무책임한 남자지. 언젠 안 그랬나? 어찌 됐든 나는 쥐어짜면 짤수록 참기름이 나오는 참깨가 아니다. 도대체 누가 마른 오징어도 짜면 물이 나온다 그랬나? 아니다. 그럴 리 없다. 허나 공상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마감일은 또 쫓아온다. 항상 그렇다. 바쁘다 바뻐. 시간없으니까 한꺼번에 다 범벼, 라고 말할 상대도 없다. 인정받을 권위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팔색조로 간주받나. 안된다. 나는 꿈의 낙원에서 추방된 게 아니라 근처에도 못 가봤다. 그러니 여심을 쥐락펴락하는 패권이 내게 허락될 리 있나. 그래도 내 분수도 모른 체 설치고 다니지 않아 다행이긴 한데. 이렇듯 속으로는 태연하면서 겉으로는 너무 방정맞은 거 아냐? 아닌 게 아니라... 됐다. 타이를 수 없는 허접함, 냅두자. 관 두라 그래. 못 말릴 허언증 어차피 때 되면 지친다. 그런데 그러다 더더욱 탄력받으면 난 어쩌지? 만약 그렇다면 그땐 외계인을 찾아 떠나는 수밖에. 어딘가 무지개 너머에 원형 UFO가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없으면 SF 영화라도 보던가. 나도 안다. 내가 햇병아리라는 걸 말이다. 그러니 난 피자랑 햄버거에 만족한다. 그럼 피자랑 햄버거 좋아하는 사람은 다 애송이인가? 아니겠지. 아닐 거야. 이러니까 여태 난 팔푼이 쩜팔이였지. (절레절레) 이와 같이 끝없는 정신병을 계산에 넣지 않은 건 아닌데 이게 영 차도를 보이지 않으니 애석할 따름. 정말로 뭐랄까 개 같은 공상병은 언제나 완쾌될까? 잘은 모르겠으나 멀지 않다는 예감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플레이보이를 질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명발 부럽지 않다. 그건 행복의 진정한 논거가 될 수 없다. 우리에게 있어 멋진 인생이란 곧 환상적인 동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진짜로 동화 속 주인공처럼 꿈을 펼쳐야 하는데. 말도 안되는 개뼉따귀가 자꾸 떠오르는 걸 보니 영 조짐이 좋지 않다. 그래도 사월 소나기는 오월의 꽃을 낳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일하기에 정진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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