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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지넷 윈터슨> 도서관에서 책을 한권 대출해서 읽었다. 도서관 근처에 Great Dane이 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한적한 달라스 생활에서 게으른 책읽기의 비중이 그 고도를 유지하는데 약간 격려를 받는 느낌이다. 이 책은 이방인을 다룬 소설이라서 선뜻 읽고 싶었다. 대중의 평판이 훌륭한 소설이다. 휘트브레드 상, 워싱턴 포스트, 람다 북 리포트, 민음사, BBC 드라마! 하지만 정작 읽어보니 그 만큼에 상당하는 즐거움이 조금 덜했다. 왜그런지 이유를 생각해보니 1985년 작품인 것과 함께 다음과 같은 변명들이 있을 것 같다. 지금은 2013년이니까 약 30년전에 씌여진 소설이다.
  첫째 이건 소설보다 영화에 더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면 판타지 장르가 어울릴지 아니면 사실주의 컨셉을 잃지 않아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형 언론들의 찬사가 왜 이쪽에서는 안 먹히는건지 뭔가 조금은 슬픈 느낌이다. 둘째 아웃사이더의 내면에 대한 서술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제일 처음에 나오는 <레슬링> 얘기와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속에 칼이 든 지팡이', '새총', '엑소시스트' 같은 소재를 더 살렸더래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방인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사례가 수없이 많겠지만 아웃사이더의 실예로 Mark Zuckerberg과 Michael Phelps를 들 수 있다. 마크 주커벅과 마이클 펠프스가 이 얘기를 듣는다면 인상을 찌푸릴지 모르지만 이런 관점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들은 둘다 상체에 비해서 다리가 짧다는 핀잔을 많이 듣고 자랐을 것이다. 뭐 이런 사소한 신체적인 특징이 이방인의 기준이 될 수 있냐고 누가 반문할지 모르지만 본인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또 다른 공통점으로 외모에 대한 특징도 저 친구들이 얘기하는 뭔가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주커벅은 중국계 미국인과 결혼한 후천적 유명인이고 마이클 펠프스는 올림픽 역사상 개인 통산 다관왕으로 그 기록이 언제 갱신될지 예측하기는 무척 아리송하다. 셋째 소설에 나오는 배경과 주인공, 사건이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독자의 내적자아 혹은 현실적 경험 또는 상황과 직접적인 교집합이 있어야만 정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뭐랄까 마종기 시인이 쓰는 소설 같다고나 할까. 마종기 시인이 소설을 쓰지는 않겠지만 또 쓴다고 해도 괜찮겠지만 비유가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아름다운 얘기만 하고 살 수는 없다. 감탄할만한 비유만 들면서 남을 웃겨줄 수는 없다. 이런 비유는 완전 이상한 비유겠지만 이런 비유도 있다.
  서울에 사는 청년층 가운데 조용필 신곡에 별로 관심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부의 젊은 사람들도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대가족으로 살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어울리는 옛날 노래를 선곡하는 상상을 해볼 것이다. 왜냐하면 훌륭한 작품의 공통점은 각기 다른 두 영역의 교차로를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제는 Pinterest가 대세인 세상이 아니라 Pinterest도 한 분야의 권세로 정당히 인정해주는 동화같은 2013년 지구의 자전을 벗어나서 사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 Triumvirat - For You
  • Klaatu - Hope
  • Judas Priest - Dreamer Deceiver

  이런 책읽기의 경우는 대체로 번역자의 단문이 훨씬 재미있는 법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릴 적에 함부로 꿈꾸지 마라. 어느 날 그렇게 되어 있는 너를 발견할 것이다." 어린 친구들 가운데서 드물겠지만 장담컨데 분명 옮긴이의 말만 골라 읽는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건 마치 책의 줄거리만 알려고 한다거나 걸어다니는 상식 백과사전 또는 피터드러커식 3년주기 학습법과 비슷하면서도 완전 다른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서강 대학교 영문학과와 런던 대학교 영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으신 김은정 번역자의 견해와는 완전 다른 메타픽션과 비슷하면서도 이상한 포스트모던 소설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좀더 어린 나이에 읽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다. 이쯤에서 눈치빠른 어른들은 잽싸게 글쓴이의 의도를 찌릿찌릿 감지했을 것이다. 이런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유머식의 억지로 분량 늘이는 글쓰기는 아무래도 원고마감에 시달리는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멋진 교복을 입는 사립초등학생들보다는 그 심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서강 대학교나 런던 대학교 근처에도 못가본 사람의 하울링을 그분들은 너그러이 이해해주실 것이다) 미국드라마 Unforgettable의 Hyperthymesia(과잉기억증후군, 초기억증후군)와 한국 드라마 출생의 비밀에 나오는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부러워하는 지극히 일반인 범주에 속하는 누군가의 기억력이 1990년 중학교 2학년 견학기 단문 쪽지가 뽑혀서 교실 뒤벽면에 붙여진 것과 1995년 클래식 음악잡지에 애독자 엽서가 당첨된 이후로 극히 정상인 범위에 속하는 지능이라는 사실이 미지의 은하계로 알려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아직은 달라스의 X-File이다.
  EA 스포츠의 피파 게임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그 게임의 초절정 고수들은 개인기를 기가 막히게 잘 쓴다는 것을 말이다. 환상적인 개인기가 빠진 현대축구는 조금은 지루하다. 닥공이란 용어도 우끼지만 재미없는 1등은 김빠진 맥주처럼 좀 심심하니까 일부 축구 애호가들은 보카주니어스:리버플레이트 대전을 프리미어리그 빅매치들보다 더 가치를 높게 매길 것이 분명하다.
  모든 예술작품과 상업제품은 ⓐ만드는 제작진과 ⓑ즐기는 사람이 있다. 그 다음으로 금융 분야의 파생 상품처럼 ⓑ즐기는 사람을 보는 ⓒ관객이 있다. 괜찮은 작품을 고르는 ⓑ즐기는 사람의 안목도 중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관객의 색다른 관점을 잘 집어주는 것이 비서라는 직업인의, 남자라는 인류의, 선험자라는 git의 의무인 것 같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지넷 윈터슨 p.82
수예 선생님은 시력에 문제가 있었다. 선생님은 예상되는 것과 주변 환경에 따라 사물을 인식했다. 사람들은 특정 장소에 있을 때 특정 사물이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언덕에 있다면 양이, 바다라면 물고기가. 만약 슈퍼에 코끼리가 있다면 선생님은 이를 아예 보지 못하거나 존슨 부인으로 착각하고 어묵 얘기나 할 것이다... 문제를 구성하는 것은 사물이나 그 사물이 있는 주변 환경이 아니라, 사물과 환경의 결합이다. 일반적 장소에서의 예기치 않은 어떤 것(우리가 좋아하는 포커 판에 있는 우리가 좋아하는 아줌마), 또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일반적인 일(우리가 좋아하는 아주머니 집에서 벌이는 우리가 좋아하는 포커 게임), 엘시 모리스의 거실에서는 나의 견본이 절대적으로 타당하지만 버추 선생의 수예 시간에는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나는 알았다. 버추 선생님은 상황에 맞게 나의 노력을 칭찬하는 상상력을 지니거나, 어떤 것이 상대적 가치뿐 아니라 절대적 가치도 있는지에 관하여 찬반론이 진행되고 있음을 깨달을 만한 선견지명이 있어야 했다. 이를 고려하여 나의 의심스러운 점을 선의로 해석해 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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