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연대 측정. 유기물에 포함된 방사성 동위 탄소의 상대량을 측정하여 시료의 연대를 판단. 이게 뭐길래 까마득히 옛날에 만들어진 물건의 정보를 파악해내는 것이지? 세상에는 신기한 일들이 많다. 알고 보면 자연스러운 원리지만 모르니까 그렇다. 곧 알면 기이하고 신비로울 것이 없지만 모르면 재미나고 색다른 것 일색이라는 얘기가 된다. 예술가들이 아이 흉내내는 이유가 다 있다. 딱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 주지는 않지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음흉한 사람들. 그러니 모른 척 능청이라도 부려야 할 듯하다. 괜한 심술인지 몰라도 그래볼만 하다. 소설쓰기에 도움되니까 연기의 재능도 필요하다는 억지.
알면 새로울 게 없으니까 모르는 것에 대해 궁금해 하고 생각하며 그것에 대해 써야 한다고 속으로 되뇐다. 모르는 것을 쓰는 엉뚱한 이야기만 만드는,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면서 쓰는 습성, 그런 이야기.
자, 자, 모르는 게 무엇이 있을까. 그래, 있다. 사람들의 체격과 지능은 날로 커지고 무거워지고 높아만 간다. 점점, 점점. 자동차도 부피가 계속 커진다. 옛날 차를 보면 꼭 미니카 같다. 자동차가 커지니까 주차장 차 1대당 면적도 커진다. 차량 대수도 종류도 많아진다. 뉴스도 옛날에는 "오늘은 뉴스가 없습니다. 음악을 틀겠습니다." 라고 했지만 지금은 반올림 또는 반내림 1시간짜리 뉴스를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하고, 수없이 재생산하고, 정보는 차고 넘친다. 그럼 언제까지 늘어나고 커지기만 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핸드폰 크기도 계속 작아지다가 다시 커지고, 서로에 대해 모르는 일이 하나도 없을 만큼 가까워지다가 자기 영역과 공간과 시간을 교집합에서 독립시키기도 하고, 직장을 옮기고 그런 것처럼. 다르게 변할 것이다. 일단 추측이지만 아직 모름이다. 아니면 발뺌?
사실주의, 인상주의, 낭만주의, 초현실주의, 미니멀리즘, 팝아트, 복고풍.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무엇. 그것은 무엇일까? 나도 모르겠다. 조니. 케빈. 알렉스. 마크. 하워드. 닉. 제임스. 그럼 이 친구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육하원칙으로 속 시원히 알려주면 비밀이 바닥나버리니까 신비롭지도 않고, 공개되어 버리니까 모르지 않기 때문에 재미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계속되야 하니까 그들의 행적을 추적해보자. 조사를 할려면 꼬리가 보여야 한다. 고로 꼬리를 NC, 나이트클럽으로 정한다.
이 친구들은 NC 사장실에 있다가 준수한 웨이터 에르메스씨가 하워드님은 이곳에 계실 것입니다, 라면서 그들을 어느 해안도시 바닷가에 데려다 주어서 지금 금빛 모래와 네온 싸인, 바다로 뻗어있는 그걸 뭐라 하지, 기다란 그리고 높다란 길, 폼나는 설치물과 많은 사람들, 여유로운 풍경을 보고 있다. 그런데 소설 장면의 가상공간은 꼭 해가 지지 않는 환영 같다. 해가 떠 있나 달이 떠 있나, 는 매우 탄력적으로 판단하고 상상하게끔 만드는 어이 없는 기법이다. 정말 거짓말처럼 어느 소설과 영화에 나왔던 헬륨가스가 들어있는(정확히는 모름) 열기구가 가까운 바다 위를 떠다니고, 거기 매달린 밧줄 끝으로 사람이 매달려 있다. 극중 장면처럼 비극은 예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매달린 사람이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노란 도착점에 착지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불시착 한다고 해도 바다에 빠져서 도전이 꽝만 될 뿐이다. 꼭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도전하는 어느 주인공 따라하기 같다.
어떡하다가 그들은 어느새 하워드의 요트에 이미 승선해있다. 실시간 이벤트나 다큐멘터리 무비로 생각해보자면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승마 경기를 하는데 시선과 온 관심을 빼앗겨 그들의 이동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실재 승마경기가 해변에서는 이루어진다. 또 여기서도 승마경기를 했다. 게다가 종마도 등장했다. 종마, 아직 뜻을 모르는 친구들 많다.
풍덩 소리를 내면서 물방울을 튀기며 뭔가가 근처 바다에 빠졌다. 자동차일까 아니면 텔레비전일까. 그것은 야구공이었다. 한두 명만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여러 친구들이 있으니까 뭐지, 뭐야, 라고 말을 주고 받으면 누군가 어 그거 뭔지 봤어, 라고 말을 해주니까 금새 그렇구나,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이색 스포츠 경기가 준비중인 것 같다. 바다에서 카약을 타고 시작하여 어딘가에 도착, 도로용 자전거를 그곳에서 타기 시작하여 얼마 구간을 일주한 후에 마지막은 런닝으로 마무리. 마지막 런닝은 산 중턱 도로에서 시작하여 도로에서 계속 뛰어 산 정상에 도착. 골인. 개별 세러머니.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하지만 젊은이들은 또 그걸 (개)재밌다라고도 한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해변가라서 개가 헤엄을 치는 모습은 안 보이는데 사람들이 개의 수영법을 흉내내어 떠다니며 그렇게 헤엄치는 이벤트도 진행중이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서핑 보드에 66명이 한꺼번에 올라타 12초 동안 보딩하는 서핑계 초유의 퍼포먼스가 진행중이다.
요트 이름들도 망원경으로 보니 별의 별 이름들이 다 있다. 물론 무명도 있다. 육식주의자 대 채소주의자. 아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vs 아내는 아무 것도 모른다. POPULAST. SPAFINALE. 금요일. I LOVE MY DAD(이건 반듯한 글씨체에 정교한 물감칠하기로 씌여 있지 않고 딸아이가 아빠의 요트 몇-연도 몇-호를 기념하기 위해 십자드라이버로 깔끔히 새겨놓은 것 같았다. 요트 색상이 어두운 색이라서 왠지 유명 미술가의 작품처럼 보였다). Tell Me Why. 날 보러 와요. 언제 시집갈꺼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Room 101. 평범한 개츠비. 파우스트. 팡세. 1984. 노인과 바다. 드라큘라. 덱스터. 한니발. 백곰. 모비딕. 악령. 신드롬 J. 해리포터. 왕게임. 2666. 판도라. 아도니스. 니오베. 그리핀. 리베로. 맥심. 안젤로. 자콥. 매그놀리아. 열대병. 향수병. 마스터. 태양은 가득히. 헐크. 뭉크. 코엔. 본부장. 칸쿤. 트리스탄. 이졸데. 비비안. 마돈나. 요트 이름을 줄곧 나열해대서 소설 분량을 뽑으려 하다니 이런 초딩이 쓰는 어른 소설 같으니라고. 나를 만지지 말라. 피에타. 오필리어. 그것을 잊어라! 나를 잊어라!. 피앙세. 비너스. 결혼 직후. MOST WANTED.
하워드의 요트, 하바나, 아니 익숙한 분야가 아니라서 서술자가 배의 이름을 헷갈려 한다. 모히토에 그 친구들이 있고 그들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사건보다 대화. 살면서 우리는 또는 누군가는 실은 기막힌 모험보다 멋쩍은 대화가 때론 거의 삶의 전부임을 깨닫기도 한다. 뭐 중요한 깨달음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좀 특별하다. 보통의 대화 방식에 반하여 새로운 시도를 애써 한번 쯤 감행해 보는 것일 게다. 안 해봤으니까. 더러는 이따금 열심히 시도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끼리의 그들만의 노는 방식이니 뭐라 할 구실도 없고, 더 들어가서 뭐 하는 짓이냐고 다그칠 일도 아니며, 자세한 설명도 불필요하다. 일단 어떻게 돌아가나 그걸 슥 엿보면 그렇구나, 라고 느끼게 된다. 생각 이전에 1차적으로 다가오는 무엇.
조니가 말한다. 「<케빈>, 너 선그라스 바꾸는 게 어때? <알렉스>, 넌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유일한 오리발 매니아야. 서핑 보드에 오리발 끼고 서서 노를 저으며 절대 서핑은 하지 않는 1인. <마크>, 넌 요즘 살쪘어. 혹시 채식 그만둔 거니? 아니면 무슨 기간이라고 혼자 정해서 어느 하루만 몰아서 육식을 하는 거야? 집에서 날마다 바베큐, 칠면조 파티 하는지 알 수가 있나. 통 친구들 초대하지도 않고 말이야. <하워드>, 실망이다. 왜 우리들에게는 요트 이름 가르쳐 주지 않은 거야? 조니한테 뭐 밉보인 거 있냐? 수상해. <닉>, 넌 요즘도 뭘 해도 재미없니? 뭐 요즘 꼿히는 거 없어? 저기 보이는 해변에 비키니 미녀들 많자나. 비키니도 이젠 한물 갔어. 뭐가 불만이고 뭐가 걱정이야, 인생을 즐겨. 인생은 짧아. 인생은 더워. 뭔 말이야? 누가 인생을 말하라고 시킨 거야. <제임스>, 너 쓰고 있는 소설은 언제쯤에나 완성되는 거야? 쓰고는 있니? 구상만 하는 거 아냐? 플롯은? 재미있기는 한 거고? 그리고... 난... 난... 그냥 그래.」
꼭 사춘기 방랑의 시기를 보내는 친구들 마냥 빙 둘러 원을 그려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어떤이는 옷차림과 안 어울리게 와인잔을 들고, 누구는 맥주 캔을 따자마자 원샷하다가 요트 끝자락에 달린 스프링보드 끝부분에 서서 오줌을 누고, 그래도 되나? 또 다른 친구는 시집을 옆에 두고 있다.
닥치고 쓴다. 닥치고 공격한다는 축구 작전처럼 막 쓴다는 것. 새로운 글쓰기, 아직 해보지 않은 그것, 지금 진짜 어쩌다 그게 시작됐다. 정말 완전 밑도 끝도 없는 시작도 끝도 없는 끝간데 없이 막 쓰기, 맨 땅에 헤딩하듯이 글쓰기, 아직 안 해봤다. 진짜로 무작정 막 쓰면 어떻게 되는지 아직 해보지 않았어. 아마 나중 읽으면 실망할 테지만 한가지 위안이 되는 점은 이거다. 소설가가 연륜이 쌓인 후에 자신의 장편소설 38편 가운데 난 뭐가 제일 좋드라, 뭐가 가장 마음에 든다, 이런 말은 할 수 없겠지만 단 하나의 소설 그것에서 어느 챕터가 인기 있을지 미리 살짝 예상하면서 조금 감안하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점. 소설가가 아닌 독자 입장에서 독자 경력 수십 년을 놓고 봤을 때 우선 독서 행위에 있어서 마음에 걸리는 건 분량이거든. 장편이라는데 설명만 길어, 책표지에는 장편소설이라는데 도무지 뭘 보고 장편이라는지 알 수가 없네.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다가 감흥이 일었다가 황홀하게 빙글 돌았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어. 여기 있는 챕터 하나를 장편소설로 불릴 능력은 전문가의 초입 단계에 해당될 것이다. 즉 모순되는 일이다. 무턱대고 쓴다지만 분량을 단순한 요약이 아니고 의식도 아니고 얕은 수완이라도 좋으니 챕터 하나에 몽땅 몰아넣어서 재밌는 글읽기에 알맞는 질량으로 완성. 일단은 그렇다. 말은 그래. 닥치고 쓴다. 닥쓰! 뭐 챕터 하나 버린다 쳐야겠다. 한번 해보는 거야. 닥치고 쓰는 게 뭔지 보여주겠어. 혹시 그동안 계속 재미없다며 시무룩했던 어느 독자는 이게 제일 우끼다며 지금까지는 영 아니었다며 이제야 좀 재밌어지는구나, 라고 좋아하실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는 말만 그랬다. 닥치고 쓴다고. 하지만 그건 정말로 막 쓰는 게 아니었다. 어떤 결정체가 맺혀야만 쓰면서 겉으로는 닥치고 쓴다고 한 거다. 진짜 재미있을 거라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써도 재미있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 나중은 몰라. 지금은 그렇다. 워워 대체 뭐가 나올지 막 궁금해진다. 엄한 루트로 발동 걸렸어. 그러니 일단 써 본다. 쓰고 나서 실망한다면 또 그걸 구실로 술 한잔 하는 거다. 오케이, 간다.
케빈이 말한다. (문단의 시작으로 누가 말한다는 문장을 쓰고 대화를 이으면, 대화를 쓰고 나서 칸을 띄지 않은 채 대화 다음에 누가 뭐라 했다, 뭐라 한다, 라고 쓰는 것보다 덜 헷갈린다. 그걸 시나리오 방식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희곡은 읽기 어렵다.) 케빈이 말한다. 「<조니>, 요즘 어떤 차 타니? 요즘 어떤 책 읽어? 일은 잘 되고? <알렉스>, 대답 듣지 않고 막 물어보기, 이거 재밌지 않냐? 지금은 짧게 얘기하지만 조금만 있어 봐. 엄청 길게 말할 테니까. 그게 대체 뭔 원리인가 잘 모르겠지만 보고 있으면 조금 놀랍다니까. 실제로 이 게임을 구경해 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결과가 훤히 보인다니까. 지금 짧게 말할 때는 약간 그 게임같아, 당연하지, 하지만 좀 있어 보면 자기 최면에 빠져들 꺼야.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니까. 일단 기다려 보자. <마크>, 저번에 첼로 시작했다며? 독학이 어려워서 어느 첼로 연구소에 들른다지? 첼로 선생님··· 남자··· 아니지? 내가 너무 대놓고 물어보는 건가? 아닌가? 대놓고 물어보면 어때? 친군데. <하워드>, 최근에 보는 드라마는 뭐니? 혹시 요트 물 새지 않아?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요트 사고 나서 완전 개고생 한다는데. 내가 봤을 때 남자는 말이야, 요트를 한 번 사 봐야지 인생을 제대로 알기 시작하는 거 같아. 그럼. 그닥 틀린 말은 아니야. 딱 옳은 얘기도 아니니까. 재밌는 말이잖아. <닉>, 어제 뉴스를 보니 이탈리아 두오모 성당에서 누가 드론 날리다 생-난리 났다는데 딱 너가 떠오르더라. 드론 사놓기만 하고 너 이제 드론 안 쓸 것 같은데, 아마존에 올리는 게 어때? 그냥 싸게 넘겨. F1을 도전해 볼 시기는 넘었으니 놀이공원 범퍼카라도 타러 가든가. 자판기에서도 이젠 드론 팔더라. 처음에는 새로웠는데 말이야.」 자연스럽게 케빈의 말이 끝난다. 흐름이 이어진다.
알렉스가 넌지시 운을 띄운다. 「암장 요즘도 들르니? 시작했으면 스포츠 클라이빙 대회 한번 나가 봐. 음 <조니>!······ 예전 언젠가 그런 말 들었던 것 같은데. 한때 별명이 딕 트레이시였다고. 아니 아니 행키 팽키라 그랬나? 최근에 새로 생긴 별명 같은 거 있니, <케빈>?······ 저번에 풋살 시작한 건 계속 하니, 처음엔 깜짝 놀랬다며, 자신에게 딱 맞는 스포츠라는 느낌이 확 들어서. 막 흥분됐다며. 어때 <마크>!······ 해양 스포츠에서 유독 우리들 가운데 다방면으로 재주를 보이는데, 우리처럼 기껏 어쩌다 한번 놀러오는 수준이 아냐 넌. 또 카약 타면서 동시에 낚시도 한다며? 저번에 유튜브 보니까 카약 타면서 낚시로 사람 키만한 물고기 잡던데. 설마 그런 거 연출 아니겠지? 카약 타면서 낚시 하면 기분은 어떠니? 막 세월을 낚는 심정 그런거야, <하워드>?······ 도대체 누가 너를 애타게 기다리는 걸까. 또 누가 지시하고 지침을 전달하는 거고. 그 사나이 아니 그녀가 너를 위해 이 곳에 있듯, 너도 그녀를 위해 꼭두각시 연극을 펼치는 무슨 이데올로기라도 있는 거야? 마지막 사랑, 치열한 투쟁, 뭐 이런 거야? 너 이런 거 좋아하잖아. 어땠어? 짧지만 좀 미스테리-스파이-스릴러 기분 나니, 응, <닉>?······ 가만 있어 봐, 음, 생각해 보자, 뭐가 있을까, 막 기대되는 것, 기다려지는 것, 가슴 한구석인지 그냥 마음 어딘가가 딱히 간지럽지도 아프지도 그렇다고 쿵쿵거리는 거도 아니고 마구 이상하게 붕 떠있고 휑한 느낌, 들떠 있는 것, 막 예상하며 추측하며 상상하며 한 번 맞춰볼까 하며 기분을 고조시키는 것, 뜨겁지는 않더래도 따듯한 것, 떠날 듯 하면서 한바퀴 빙 돌아서 되돌아 오는 것, 타인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 좋아하는 것과 장래 희망과 꿈에 대하여 추억을 문학으로 표현하는 것, 로맨스, 사랑 노래, 뭔가를 아낀다는 것, 와인을 알아간다는 것, 새롭고 새롭고 또 새로운 것, 말이 아닌 글처럼 시처럼 얘기한다는 것, 너 이런 거 좋아하잖아. 요즘 뭐 재미난 일 없니, <제임스>?」 오오 알렉스는 질문의 끝자락에 이름을 부르네. 느낌 색달라. 대답 듣지 않고 막 물어보기, 어떤 운을 타기 시작한다.
마크가 말 할 차례다. 「<조니>, 저번에 키우던 토끼는 잘 크니? 토끼털 만져보니 너무너무 부드럽드라. 하지만 밍크 코트를 파티갈 때 입었는데 기분이 뭔가 이상했어. 세상은 그대로인데 난 잘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케빈>, 하나 궁금한 게 있어. 도시 사람들은 이렇게 해변으로 떠날 가능성을 안고 사는 뭐랄까, 떠나도 되지만 난 바쁘다─할 일이 있다. 많다─언제라도 가면 되니까 꼭 지금은 아니어도 돼─억지로 그 가능성을 남겨 놓을래, 라면서 선뜻 도시에서 멀어지기 싫어하잖아. 왠지 좀 그런 경향이 있잖아. 이미 휴양지에 와서 놀거나 사는 사람들도 자꾸 어딘가 한눈팔고, 해변이 바로 보이는 어딘가에 막 짐을 푼 여행객이 아닌 여유로운 어떤 떠돌이랄지 항구 도시 내부 도심지의 세련된 생활을 즐기는 분위기, 그러다 또 어디로 멀리 떠나고 싶어지고, 사라지는 건 사고니까 행선지로 떠난 후 여운과 함께 글로 남기고, 넌 그런 정착과 떠남의 오고감, 심심함과 재미있음의 균형을 어떻게 인위적으로 제어하는 거니, 말이 좀 꼬였지만 어려운 듯 들리지만 언뜻 즉흥성과 계획성 말고 날 움직이게 만드는 그런 뭔가가 너에게는 무엇이냐, 그런 물음이야 내 말은. 음 그래. <알렉스>,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해변에 수건을 갈고 눕거나 엎드려서 일광욕 해봤니? 난 안 해봤어. 선크림 바르고 햇볕을 약간 가려주는 커다란 우산 밑에서 잡지나 소설을 보다가, 핸드폰으로 통화하고, 칵테일을 마시며, 여러 디자인의 수영복을 구경하고, 저녁에 만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그런 일광욕. 그거 꽤 배 나온 아저씨나 철없는 유산 상속녀, 유복한 은퇴 생활을 떠올리는 느낌이 들지만 여태 그 느긋하고 쉬운 놀이를 안 해봤다는 게 말이나 되니? 참 나, 나란 녀석은 그간 뭐가 그리 바빴는지 정작 말로만 남에게 인생을 즐겨라, 해버려라, 질러라, 어째라 그랬지 정작 난 누드모델도 안 해봤고, 마술도 안 배워 봤고, 해변 산책 마저 언제 해봤는지 생각도 안 나. 그런데 또 이런 말 하면 일은 언제 하냐, 너무 사람 들뜨고 놀러 가게 뻠프질 하는 거 같은 느낌도 분명 아주 조금은 있어. 그런 말 많이 하잖아. 가르쳐 보면 자기 공부가 많이 된다고. 질문을 해보니 이브 클라인의 그림과 개가나 수절 같은 단어도 그냥 막 심상에 떠오르고, 내게 변화가 필요하단 걸 느낀다야. 문득 고맙네. 음. 그래. <하워드>, 저번에 007 가방 산단 계획은 지켰니? 계획을 지키다? 실현하다, 구현하다? 그런데 그 가방 열쇠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아 그건 그냥 디스플레이용으로 전시하는 게 더 어울리겠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그런 책처럼. <닉>, 언제 우리들 한번 초대해 줘. 피자집 차렸다며? 요리사가 굉장한 미남이라며. 맛난 피자 원 없이 실컷 먹을려고 레스토랑 차린 거 아니니? 완전 틀린 얘긴 아닌 것 같아. 닉을 보면 꼭 닉 드레이크 음악이 듣고 싶어져. 피자와 닉 드레이크, 그건 꼭 화장실에 젊은 부인이 앉아 있고, 화장실 문을 열어 놓은 채 거실에 있는 남편과 대화를 나누는, 그런 정경이 떠오른단 말이야. 왜일까? 왜? 잘 모르겠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지. 궁금하지도 않아. <제임스>, 지금 쓰는 소설에 우리들 얘기도 나오니? 나온다면 좋겠다. 흥미로울꺼야. 꽤 근사할 것만 같아. 아직 미완성이라면 우리 얘기 좀 넣어 봐. 경마장도 장소로 등장하는지 몰라. 애고머니나, 나 경마장도 아직 안 가봤다. 다음에 꼭 가봐야겠어. 말 동상, 말 그림, 말 마크, 백마, 말 근육, 천리마, 힘, 마력, 음. 좋아. 그나저나 젊은 친구들이 처음엔 호기심으로, 들떠서, 조금 재미로 읽다가 뒤로 갈수록 몰입도가 떨어지는 소설 그리고 그 젊은 친구들이 나이 들어서 젊었을 때 읽던 책들을 다시 읽지는 못하고 추억의 장소나 재회와 그땐 그랬구나-라는 그런 기분도 드는 후반으로 갈수록 신비로워지는 새로운 소설을 쓸 거라면 음 난 전자의 주체가 될래. 소설 읽고 뭘 느끼고 감흥과 영감을 얻고 뭔가 깨닫고 감동받는 것 보다는 <솔직히> 시간 때우려고 소설 읽어. 큰 즐거움과 짜릿한 읽는 경험이 아닌 작은 생소함과 신선함 어린 잠깐의 여가, 어렵싸리 탄생한 심도있는 문학을 차라리 그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젊은이, 난 그쪽을 택하겠어. 음 그게 좋겠다. 우리끼리 얘기하니까 하는 말인데 실은 그렇다니까.」 마크의 말이 끝난다. 대화가 무르익는다.
어느새 하워드 얘기할 차례가 되었다. 「<오 조니>, 지금의 이 파노라마는 데이비드 호그니의 어떤 그림과 유명한 클래식 음악의 멜로디가 떠올라. 멈홀랜드 드라이브. 로브 무비도 있는데··· 제목이 뭐드라. 음 생각이 안 난다. 있잖아, 고적운, 고층운, 권운, 권적운, 적운, 적란운, 층운, 난층운 그리고 비행운. 조니 널 보면 꼭 구름 같아. 좀 유치하지? 그래도 그렇게 느껴지는데 어쩌겠어. 그 비결이 뭐니? 비결, 촌스러워서 안 쓰는 말인데 나도 그런 말을 하게 되네. 허허. 난 그게 정말 궁금해. 거기서 물이 내릴지 거인 유아들이 뛰어놀지 불이 번쩍할지 알 수가 없잖아. 놀라워. 기막히다구. 어쩜 그럴 수 있냔 말이야. <케빈>, 케이크를 준비할 걸 그랬나. 조금 출출해지는데. 아 케빈 널 보니까 공복감이 생긴다는 말은 아니야. 왜 너네들만 왔냐, 왜 상냥한 여인네들은 데려오지 않았냐, 그런 칭얼거림 또한 내 마음 속에 요만큼도 남아있지 않아. 정말이야. 정말이라니까. 믿어줘 친구들. 화가 존 싱어 서전트가 이런 말을 했지. '나는 초상화를 그릴 때마다 친구를 한 명씩 잃었다.' 케빈 네게 있어 초상화,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을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니? 예전부터 널 보면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이걸 꼭 물어보고 싶었어. 인물화를 그려서 여자를 꼬시는 거 말고 자화상을 그려서 친구든 시간이든 뭣이든 뭔가를 잃는다는 것, 오, 오, 아름다워! <알렉스>, 너 혹시 투우장에 가본 적 있니? 난 없어. 소더비 경매장도 안 가봤어. 그러나 넌 꼭 그런 곳에 가 본 사람처럼 느껴져. 왜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 나는 우주인이 지구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받아보진 않았으나 언젠가 국외거주자 어느 유명인이 투우장에 가있는 흑백 사진을 보았어. 사람들에게 당신은 점잔을 빼고 있다고, 죽도록 술을 마신다고, 모든 시간을 일하는 데가 아니라 말하는 데 쓴다고, 넌 유랑자라고, 카페나 어슬렁거린다고, 그런 말을 한 사람. 난 그 양반 작품은 별로지만 그 사람 작품 빼고 인생은 참 흥미로워. 나머지는 다 드라마틱-해. 하지만 시대가 변하니 외국에 오래 사는 사람들이 말하는 공통점은 마치 스위스가 되는 것 같다고 하더군. 어느 기사에서 읽었어. 자기가 어떤 식으로든 중립이 되는 것 같고, 여러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거야. 관대해지고 개방적이 되고 제트족이 된 듯한 꽤 멋진 기분, 느낌 알잖아. 뭐 요즘엔 TV시대에서 인터넷도 오래 되고 문화 자체가 국제적이 되었지. 그것이 투우장과 큰 연관성은 없지만 친구들 가운데 자네는 투우장에 같이 가고 싶지 않은 친구로 뒤에서 2등에 뽑혔어. 축하하네. 내가 너무 쓸데없는 말만 하고 있지? 나도 알아. 다 안다구. 어떡하겠나, 기분이 좋은데. 하지만 그러다 보면 뭐가 착상같은 게 떠올라. 그래서 그래. 꼭 낚시하는 것 같다니까. 담배피는 것도 뇌 구조도를 분석해 보면 기다리는 그 과정에서 정작 도파민이 나온다고 하잖아. 무작정 말하다 보면 하나가 얻어 걸려. 신기해. 그걸 수첩이나 핸드폰이나 노트북에 남겨 놓아야지만 그만큼 두뇌에서 에너지를 덜 쓰게 돼. 또 그래야 그 다음이 나오고. 꼭 글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러잖나. 많이 걷고 움직이고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하다 보면 어떤 실마리가 풀리는 착안감이 다가온다는 점, 그것 말이야. 다음 친구로 넘어가볼까. <마크>, 지금도 Family Guy 즐겨 보니? 실은 나도 어쩌다 한 번씩 보긴 해. 아니야. 아마 가끔 일부러 찾는 것 같아. 왜냐면 그건 뭐랄까 살면서 케익으로 얼굴을 맞아 본 경험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랄까. 생일날 케익에 올려진 촛불을 불어서 끌려다가 눈썹에 촛불이 옮겨 붙는 사건을 겪은이나 생일날 규칙적으로 촛불 잔치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생각보다 많은 것처럼. <닉>, 프라모델 미니카 지금도 가지고 노니? 엇그제 축구 경기 방송에 나왔는데 심판이 경기 시작 전에 리모콘으로 조종해서 경기장으로 중형 여행 가방만한 차를 들어오게 한 후 거기서 축구공을 빼더라니까. 공원에서 갖고 놀면 시선 끌기 좋을 것 같아. <제임스>, 넌 요즘 사소한 일이 커지고 커지고 커져서 무척 난감했던 적 있니? 난 있었어. 저번에 파티에서 예전 친했던 친구 녀석을 만났거든. 반갑고 기뻐서 마구 얘기나누다가 전화번호 교환하고 헤어졌어. 헤어질 때 하는 말들 있잖아. 우리는 너무 중요한 걸 잊고 산다, 꼭 연락해, 전화하지 않으면 난 일주일 내내 집에서 울고불고 난리칠 꺼야, 밖에도 안 나갈 꺼야, 너 밖에 없어, 내가 먼저 연락할께, 꼭 한번 만나자, 밥 한번 먹자, 술 한잔 하자,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만나서 하자, 기타 등등. 며칠 후에 그 녀석에게 전화를 했어. 한때는 정말 친했거든. 다시 그때처럼 놀 수는 없지만 일단 밥을 같이 먹든 어쩌든 다시 만나야만 하는 것처럼 저절로 몸이 움직여서 전화를 걸었지. 그런데 통화를 하니 나도 별로 할 얘기가 없고, 그 친구 목소리도 조금 그랬어. 뭐가 조금 그랬냐구?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지 그게 대체 뭐냐고? 그냥 그렇다,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래야만 하는 그런 거 있잖아. 딱 그랬거든. 그러고 통화를 끝냈어. 괜히 기분이 울적하더라구. 그래서 밖으로 나갔지. 그냥 걸었어. 계속 걸었어.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던 중에 앞에 캔이 하나 길바닥에 있네. 펩시였나 마운틴 듀였나. 그랬어. 나도 모르게 그걸 발로 뻥 찼어. 있잖아 무회전 킥. 럭비 한번 해볼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도 조금 들었어. 그런데 그 캔이 빙글빙글 날아가더니 앞서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아가씨의 뒤통수에 정확히 부딪히네. 왜 그런 거 있잖아. 행동에 들어가지 않고 3초 멈칫 하는 거. 딱 그랬어. 근데 그 순간 그 아가씨가 뒤돌아보더니 아가씨와 나의 중간쯤에서 걷던 몸집이 좀 있는 왠 뽀글이 걸스카웃의 파마머리를 다짜고짜 잡고 몇바퀴 흔들기 시작했어. 어떻게 말릴 수가 없었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구. 완전 개싸움이 시작됐어. 누가 힘이 쎄거나 한쪽이 무너지거나 아니면 코피 터지거나 혹은 박진감이 넘치는 거도 아니고 소란스럽고 스타일 구겨지면서 크게 다칠 것 같지도 않는 완전 개싸움 있잖아. 둘 다 스팀을 많이 받아 있는 상태로 뭘 툭 건드려만 주니까 시작 버튼을 누른 듯 불꽃놀이 축제가 펼쳐진 거지. 딱히 다치거나 망가지는 상황도 아니고 그래서 사람들 웃고 쳐다보고 사진찍고 동영상 찍고 한껏 웃드라구. 때마침 지나가는 경찰차가 싸이렌 한 번 울려주니 바로 그 즉시 알아서 싸움을 멈추더라고. 경찰아저씨 오기도 전에 서로 사과하고 미안하다 내가 술 한잔 사겠다 어쩌겠다 그러네. 이젠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함부로 길바닥에 있는 깡통을 발로 차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집에 왔어. 집에 왔는데 이럴 수가 대박! 대박! 누가 그걸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터그램, 유튜브, 뭐, 뭐. 그날 여기저기 뉴스에도 나왔어. 그게 끝이냐? 그럴 리 있겠어. 다른 언어권 방송에도 해외토픽으로 떴지. 남반구 어딘가에 팬클럽도 생겼데. 그러다 그 친구들이 어느날 아침 방송에 나가네. 광고도 찍어. 영화에도 나와. 잡지 인터뷰 기본이지. 인생 폈어. 스타로 뜬 거야. 콜라캔에 뒤통수 한번 맞드니만 바로 유명해지고, 새로운 삶에 즐거운 인생이라니. 어떻게 이런 일이 세상에 있을 수 있나 싶었는데 정말인 걸.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그러고 보면 세상 참 웃겨. 오, 아름다운 인생 오묘한 세상이여!」 하워드의 말이 끝났다. 이곳은 정말 해가 지지 않는다. 해가 지지 않아.
오래 참았다, 닉. 뭔가 할 말이 없어도 지어서 만들어 낼 듯한 눈빛이다. 소설도 그렇게 쓰는 사람이 있듯이. 고품격 문체 하면 줄리언 반스고 줄리언 반스 하면 고품격 문체다. 일전에 인터뷰 번역된 거 조금 읽었는데 어쩜 말까지! 한데 그는 남성이라서 그런지 아마도 E.M. 포스터가 꼭 지금 현재의 닉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런 인상이 없잖아 있는 듯 하다. 마치 실재 구스타프 플로베르가 빅토르 위고를 썩 애호하지 않았듯이. 그건 그렇고 당신은 닉이다. 너는 닉. 그래 질 수 없어. 오케이. 없어도 만들어 낼 꺼야. 할 수 있어. 닉, 그래 결심했어. 내 차례야. 「<조니>, 최근에 본 영화 재미난 거 있니? 있으면 하나 추천해다오. 유명 영화제에서 월계관을 받거나 재밌거나 둘 다든가. 옛날 영화를 지금 보면 거의 다 재미없어. 그러나 그 가운데 명작은 간혹 재개봉하거나 TV 교육방송에서도 나오고, 스스로 찾게 되기도 하지. 나는 이런 얘기를 다른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즉 나와 모두 비슷한줄 몰랐는데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더라고. 옛날 꺼 다시 보면 촌스러운 거 말야. 안 그런 건 명작이고 고전이지. 나도 얘기할 분량이 생긴 삶이라서 슬슬 뒤를 돌이켜 보면서 얘기 나누는 재미가 있어. 학교 다니는 사람들 말야, 그 친구들을 보면 생각나는 것들. 학원가나 학교나 그런 데 가면 가끔 어른들은 자신의 그 시절을 떠올리잖아. 옛날 성우 생활하던 습관이 남아서 대화하다가 거기 빠지면 나도 모르게 말하다가 문어체로 얘기할 수도 있으니까 이해해 줘. 수업이 모두 일찍 끝났는데 딱히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친구들. 그래서 항상 심심하고 내일이 내년이 궁금한 당신. 오늘 뭐하고 놀까. 강의실 제일 뒷자리에서 교수의 말은 오른쪽 귀로 들어 왼쪽 귀로 흘리고, 도서관에서 볼 만한 책을 골라서 대출한 후 강의 중에 소설을 보다가 재미없으면 중간에 읽다 그만둬버리고, 강의 중간에 강의실 탈출하기. 여러번 그러다가 어쩌다 한 번 교수님에게 들키기. 소설과 문체에 대한 생각도 별 관심도 미래까지 없었고, 남자 세상은 일단 지식의 풍만함이자 말발이니까 읽고 던지고 읽고 던지고 반복. 이거 하다 저거 기웃거리고 다음엔 뭘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아르바이트하다 만나 오빠, 작업 걸다 차인 아가씨, 무심코 헌팅, 딱 한 번만 더 헌팅, 딱 2번 했는데 2번째에 재수없게 당찬 여자애가 신고해서 경찰차 뜬 일. 여자들은 10번 대쉬하는 남자가 없다고 수다떨지만 100번 200번 대쉬하는 녀석들 봐봐 어떤지, 당해보면 남의 얘기랑 다르겠지. 뭐든 그래. 신사를 언제 찾아야 할지, 막 그런 얘기를 하는 스쿨걸들. 키득키득. 늙다리들은 그 때가 그립다. 이성도 모르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도 알지 못하고, 어떻게 살고 앞으로 뭐가 될지 생각도 없고, 개념도 별로인 그런 방황하는 청춘. 어느새 50대 대학교수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한 김에 더 하자면, (오 마이 갓) 젊은 친구들, 그 가운데 무엇을 할 것인가, 를 잘 모르는 친구들은 주로 1인칭이면서 나는 어떻다, 뭐가 하고 싶다, 갖고 싶었다, 지금이나 그때 성적 경험이 어땠다, 라는 또래의 어린 마음에 대해 내가 알거나 모르거나 궁금한 것에 대하여 쓴 이야기, '그냥 몰라'가 아니라 왜 그런지와 어땠으면 싶은지를 친절하면서 쉽게 설명한 독백조 소설을 선호한다. 내가 주인공이어야 하니까. 대칭, 대입, 대리, 간접 경험. 하지만 사회에 나와서 아는 게 많아지고 여러 경험을 쌓으며 나이가 들면 그때 봤던 책과 입던 옷과 듣던 음악, 봤던 영화, 그건 모두 그때 얘기야. 아 옛날이여, 그거지. 그러나 그 기법은 이미 과거에 대중화되었다. 새롭지 않다. 대중적 기호도 변한다. 여기서 아마추어가 저기서는 프로일 수 있다. 시간에 따라 프로의 프로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사랑도 움직인다. 변한다. 그것이 0에서 1로 바뀌어 불변한다면 언제나처럼 사람들이 바로 그것에 대해 그토록 야단법석을 떨며 시를 쓰고 논하며 노래부를 리 없다. 택도 없다. 가당찮은 소리다. 이 말이 틀렸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그렇지 않겠는가. 변할 때 변하더라도 지금은 이대로 순항하자. 아름다운 시절을 잊지 말자. 좋았던 때를 기억하자. 남녀의 사귐은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설혹 끝나도 좋게 끝내자. 길게 가는 그것도 있다. 인류가 그렇고 바로 너가 그렇게 태어나서 살고 있다. 자세히 들어가면 아니거나 미추가 드러나거나 실망할 수도 있어서 덮어두는 것도 있다. 그래서 모두들 지금을 소비하며 즐기고 살아간다. 때문에 누군가는 독자에게도 작가에게도 인기없다는 2인칭으로 소설을 써. 물론 그때 보았던 화보집은 지금 보아도 괜찮지. 그러다 여행가서나 무슨 특별전시회에서나 우연히 보는 게 좋을 꺼야. 노안을 늦추기 위해 늦춰질지 모르겠지만 눈-영양제를 먹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비교적 청춘시절 보다는 건전한 또는 불건전한, 뭘 할줄 아니까 아는 게 많아지니까 범위가 좁고 단조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 한번 알게 되면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 없나니 계속 새로움을 추구하고 그래프선은 멈추면 안 된다. 그러나 아내를 100명 1,000명 두면 안 되니까 대신 차나 다른데 애정을 쏟기도 한다. 뭐야, 말 하다가 나도 모르게 내가 내 말에 최면이 걸린 거 같아. 이거 뭐야. 무슨 원리로 이렇게 된 거지? 정말 이상한데, 신종 수법도 아니고 왜 이렇게 계속 말하게 되는 거지. 와 정말 믿기지가 않아. 오 미안 미안. 어디까지 말했지, 누구에게 물어볼 차례드라. 음 맞다. 케빈이구나. 물어볼께. <케빈>, 꾸며낸 일이 아니고 기억하고 있는 사실 가운데 너의 일화를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게 있니? 너무 사소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중요할 수도 있는 것. 이를 테면 클래식 기타를 사서 기타 연습은 안 하고, 맨날 매고 다니면서 여자 꽁무늬나 쫓아다녔다든가, 바이올린 활로 기타를 연주한다거나, 전기 기타 플랫을 조각가처럼 파냈다든가 막 악기나 도구를 개조하는 일 같은 거 말야. 난 하나 떠오르는 게 있어. 옛날에 피아노 연습할 때, 집에 있는 피아노가 업라이트라서 또 그걸 뜯었지. 액션을 갈아서 그랜드 피아노랑 구동방식이 같아질 수는 없으니까 집에 있는 잡동사니를 모아서 두꺼운 종이로 감싸고 둘둘 말아서 접착 테이프로 붙였어. 그걸 뜯었던 업라이트 피아노 액션 위에 올리고 연습한 적이 있어. 타건에 불같은 번쩍임이 실릴 것 같아서. 누구나 그런 일 많이 집에서 해보잖아. 종이로 네모난 상자 만들어서 물을 넣고 끓이면 물이 데워지는 실험 같은 거. 우린 이제 어른이지만 우리도 뭔가 그런 게 필요해. 플라멩고 춤을 배우다 포기하든 살사바에 가서 살사는 안 추고 내내 썰만 풀고 계속 썰만 풀다가 끝내 지치고 이성도 못 꼬셔서 혼자 집으로 쓸쓸히 돌아갈지라도 말이야. 맞아, 뭔가 해볼 필요가 있어. <알렉스>, 넌 어른이 되어 좋은 점이 뭐라고 생각하니? 어린이나 청소년일 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예비 어른과 '아니야, 난 천천히 성장할래, 늦깍이로 어른에 입문하고 싶어' 라면서 늦게 어른이 되고 싶은 친구들. 어떻게든 둘 다 어른이 되잖아. 그렇게 어른이 됐어. 딱 됐어. 그렇게 어른이 되니 어떤 점이 좋은 거 같아? 글쎄 좋은 점도 많겠지. 애들이 못하는 거 하고, 애들이 모르는 거도 알고. 그 가운데 하나로 예상을 깨는 점을 들고 싶어. 견문이 넓어지니까 딱 딱, 척하면 척 알잖아. 어른들은, 음 저 사람 전문가네, 이건 좀 약해, 살짝 봐주겠구나, 엄격할 거 같군, 어떤 코스를 거칠 꺼야, 뭐뭐 하고 뭐뭐 하지 말란 소리구나, 저 남자도 비슷하겠지, 똑같겠지, 거기서 거기겠지, 같이 살아보면 다 비슷하다고 해, 정말 그럴 꺼야. 그런데, 그런데 그게 깨어질 때 느끼는 흥분. 고거 참 기분이 좋아. 좀 가벼운 예로 이런 거. 동네 산책할 때 한두 번 본 듯한 배불둑이, 게으름뱅이, 애연가? 끽연가, 술고래 아저씨를 그 도시 교향악단 정기 연주회에 가서 봤어. 연주회장 제일 앞자리에 앉았는데, 이게 웬 일이니, 동네서 본 그 후줄근한 차림의 슬리퍼 아저씨가 바이올린 2파트 수석이네. 1수석은 생긴 거는 완전 동네 아줌마처럼 보이는데 음 그래. 친구랑 같이 소문난 레스토랑에 갔어. 어머 그런데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명연기자와 똑같이 생겼네. 그가 나왔던 영화, 명대사, 수없이 많은 성대 모사, 광고, 기타 등등. 그런데 홀에서던가 계산할 때던가 그 아저씨 목소리를 들었는데, 에구머니나! 완전 깨, 억장이 무너져 내려. 그런 경험들. 맥주가 떨어져 간다. 아직 마실 건... 안 남았네. <마크>, 어 딱 떨어지게 마크와 하워드에게도 물어보고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오줌 마렵고, 술도 떨어져 가는군. 처음 같은 분위기는 아니야. 아까 누가 말했니, 이렇게 변할 꺼라고. 와 완전 미래를 훤히 내다보는 점성술사인데! 일단 새로운 대화라는 의도는 좋았는데, 음 의도는 좋았어. 그거도 어디니. 노는 거도 힘들어. 마크와 하워드에게는 따로 긴히 너네들 몰래 할 얘기가 있으니 따로 만나서 얘기할께. 그래도······ 괜찮지? 음 괜찮다는 표정이구나. 그럼 이제 제임스만 남았어. <제임스>, 남녀에 관한 글도 지금 쓰는 소설에 포함되니? 한 권 전체가 남녀에 관한 책보다 더러는 소설에서 잠깐 나오는 남녀 이야기가 오히려 더 팍팍 공감되기도 해. 남자와 여자, 무궁무진한 비밀, 여성과 남성, 영원한 숙적, 숙적? 같은 이야기라도 남자는 최우선으로 압축하고, 논리적이고, 넓고 깊고 크게 생각하며, 듣기보다 말하기에 훨씬 에너지를 쏟으니 동행인의 말을 잘 놓쳐 또 항상 뭔가에 집중하면서 팀 컨셉은 허풍이지. 그렇지만 여자는 부풀리고, 상상하고, 늘리고, 교체멤버는 과장미 그러면서 모든 것을 감각적으로 다루면서 쉼 없이 맵시를 드높여.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이면서(?) 그 둘을 합치면······ 괴물이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합칠려다 보니 막 쓸 수 밖에 없게 되는 일도 발생할 꺼야. 잘 내다본거니? 틀려도 일단 들어 봐. 그렇게 글을 쓰다가 어느 하루 면도하다가 또 코털 정리하다가 살짝 피를 흘렸어. 그런데 그날 문득 글이 잘 써지는 거 같아. 뭐야? 그거와 이거가······ 콧물을 흘린 날과 코피를 쏟은 날, 아무런 일이 없던 심심한 날 써지는 글의 차이가 확연하거나 조금은 달라··· 오 이런, demonio!」
친구들 가운데 제임스만 말을 글로 대신해서 나중 알려주기로 한다. 모두들 굉장히 피곤한 듯 보인다. 집중력도 떨어졌다. 알고 보니 무척 어려운 게임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서로 특별한 질문의 시간을 함께 보낸 후 그들은 맥주랑 먹을거리가 떨어져서 핸드폰 배달 어플리케이션으로 음식을 시킬까 하다가 그것도 좋지만 조그만 배를 타고 직접 사러가기로 했다.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그들이다.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사나이들, 그러면서 완수할 임무가 항상 리스트업 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움직이고 돌아다니고 구경하고 한 번 해보고, 그냥 해보는 것도 또는 '그냥 하는 건 없다 잘하냐 마냐만 있을 뿐이다.'까지 역시 좋아하는 친구들이었다. 얘네들은 <편해 배달시켜> 그런 주의가 아니라 불편해도 몸을 움직이면 마음이 동하고 그러다 무섭지만 잘생긴 누군가와 접촉하고 무언가 뜻밖의 사건을 만나고, 그러다 그 불확실한 정체의 일에 관해 몇 일 시간을 투자할 만한 하지만 큰 돈은 물리지 않고 빠져나올 딱히 속시원히 이게 뭐다 라고 밝힐 수도 굳이 말과 글로 확인하고 싶지도 않는 구미를 땡기는 그런 초미의 수법에 관심을 가지는 쪽에 가까워서 그렇게 직간접적으로 한 역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직접 몸을 이동하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먹고 마시고 즐길 무엇을 희구할 뭔가를 사기 위해서 어느새 육지로 가고 있었다.
요트를 최대한 육지 가까이 정박시켜 정지시킨 후 카약과 서핑보드와 1인용 배, 최저가 유아용 칼라 고무 보트를 각자 타고 육지까지 도달한다. 머머 한다. 그랬다. 거 참 하워드의 요트에는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배가 많이 있었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가지각색의 배. 아마 더 찾아보면 계속 나올 것만 같다. 흡사 그 흔한 카드 마술처럼. 아니면 누군가 뒤에서 몰래 떨어지는 물자를 계속 보충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인근에는 범선형 요트 몰티즈 팰컨과 메가요트와 온갖 호화 요트들이 무슨 요트 축제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이 주위에 몰려들고 있어서 하워드도 괜한 없는 바람이 들어 딱히 필요하지 않는 물건들을 마구 들이지는 않았겠지만 조금은 그럴 뻔 하다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 다음부터 갑자기 나빠지지는 않지만 평이한 흐름이었다는 말이다. 요트에 있다가 육지에 도착한다. 그러나 가까운 상품 판매점을 하워드가 알고 있는데 이 친구가 길을 잘 찾지를 못한다. 딱히 길치도 아닌데 길이 이상하다는 거다. 없던 언덕이 생기고 봤던 건물이 없어지고 못 보던 길이 생겼다. 동네 분위기도 이상하다고 한다. 닉이 핸드폰으로 금새 마트를 찾았다. 여기네, 하면서 핸드폰에 띄워진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자꾸 그 주위만 빙빙 도는 거 같다. 그래서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봤드니 그 마트는 없어졌다고 한다. 새로운 뉴 마트가 생겨서 사람들은 모두 그곳을 이용한다는 거였다. 지도가 아직 업데이트되지 않았다고 결론내렸다. 그래서 새로 검색하고 어쩌고 있는데 넉살 좋은 조니가 컨버터블 자동차 타는 친구들과 인사 잠깐 하다가 몇 마디 주고 받드니 바로 금방 친해졌다. 조니는 정말 탁월한 재주를 지닌 친구다. 근엄한 예술적 기예와 놀라운 친화력을 겸비했다. 지성이라는 의자 팔걸이로 그것을 놓고 옷걸이까지 좋은 한마디로 다 가진 친구 같다.
그래서 그 B사의 컨버터블을 타는 친구들이 끌고 있는 캠핑카에 이 친구들 모두가 탔다. 자기들은 이 곳에 캠핑카를 가지고 놀러왔는데 준비물을 많이 가져오지 않아서 쇼핑하러 간다는 거였다. 딱 맞는 친구를 사귄 거다. 급하게. 나중 서둘러 헤어졌다가 언제 만날지도 모르지만 사람 인연이 또 언젠가는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근데 이 B사의 컨버터블을 타고온 친구들은 남자 1명과 여자 2명이었는데 이상하게 얘네들을 보니 뭔가 앞서의 서사 과정이 떠오른달까, 그런 희귀한 점쟁이, 점쟁이도 딱 인생의 한 시절 전성기 때나 가능한 그들의 예전 행적이 보이는 것이다. 이 친구들은 육지의 내륙 도시에 사는데 대대로 명맥이 유지되어온 명문 집안이었고 거부였으며 옷 입는 거나 행동하고 말하는 게 모두 완벽하게 클래식한 친구들로 이 해안에는 한 시절 유람왔는데 오다가 기차에서 내린 어떤 꺼벙한 아저씨를 태워줬다가 좀 전에 내려준 것 같았다. 그들이 지금 타고 있는 B사의 컨버터블은 누군가 중간책이 있어서 구한 듯 하다. 그들은 위장용 B사 컨버터블을 타고 접선 장소에 도착, 집사는 다른 브랜드 B사 컨버터블을 타고 약속 장소에 도착, 그렇게 새로운 브랜드 B사 차량을 인수, 맞교환 한 듯 하였다. 그렇다고 더 이상 다른 환영은 보이지 않았다. 더 보였더라면 그들 인생이 바뀌니까 딱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그들이다. 누구 혼자에게만 그 투시력이 몽땅 내려온 건 아니고 하워드의 보트에서 말을 적게 한 순서대로 영적 능력이 많이 내려왔고, 그걸 집산하여 이렇게 결론내린 거다. 말을 너무 많이 해버리면 혼이 빠져나가는 것일까, 영감이 달아나버리는 걸일까. 다 아니고 그냥 진이 빠진다, 지쳤다, 라고 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저런 구경과 잡담을 나누며 식품 판매소에 가고 있는 동안 이상하게 이 친구들이 타고 있는 캠핑카가 정지한다. 어 왜 멈췄지, 벌써 왔나, 하면서 얘네들이 내린다. 내려서 보니 뭐야 이거, 달랑 캠핑카만 도로 한켠에 서 있고, 그걸 끌고 갔던 컨버터블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거야, 이음새가 낡아서 자연스럽게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거짓말처럼 이음새가 부서졌기 때문에 캠핑카만 놔두고 컨버터블은 가버린 걸까. 아니면 B사 컨버터블에 타고 있는 누군가가 이거저거 손대다가 캠핑카 연결 케이블을 푸는 버튼을 잘못 눌러버린 것일까. 여러 유추와 추측이 난무했지만 괜한 데 사고력을 낭비할 필요없이 간단하게 사소한 실수로 결락이 풀어졌다고 결론지었다. 편하고 쉬운 발상이다. 꼭 그건 스크루지 영감 이야기같이 어느 고장에나 있을 법한 구두쇠 동화를 떠오르게 만드는 손쉬운 삶의 처방과도 닮은 경영 기법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것과 그것이 전혀 상관이 없을지라도 맥없이 사람을 그렇게 연관 짓게 만드는 마법과도 같은 마력을 지녔다. 빵과 고기와 밥과 면과 스프와 여러 종류의 식재료가 집에 있지만 그 가운데 오직 하나만 조금씩 먹고 살면서 나머지는 다 공중에 매달아 놓고 한 스푼 먹고, 한 번은 허공에 매달린 식재료를 쳐다 보고, 한 번 먹고 한 번 쳐다보고, 계속 그것을 반복. 이성애자인 남성 수도승의 그런 수도 생활 말이다. 이게 뭔 유리 겔라의 숫가락 구부리는 마술인가? 알 게 뭐야. 문체는 훨훨 나비처럼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는데. 흔적도 없이. 자기를 쫓아와주라는 그리움 하나 남겨 놓지 않은 채로. 그러나 크레인에 거꾸로 매달린채 구속복에서 탈출하기, 묶인채로 물에 퐁당해서 관이 물속에 빠지면 탈출하기 등등 이런 건 사양한다.
앗, 그들은 캠핑카가 언제 멈추었는지 몸의 단순한 감각에 의해 알아채기 전에 먼저 왜지, 왜지 하는 멀어져만 가는 아득한 아쉬움의 말랑말랑한 감정에 따라 캠핑카가 멈추었다는 것을 알아낸다. 왜냐하면 캠핑카 바깥으로 왠 느닷없이 타조가 뛰어가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저 멀리 보이는 풍력발전기를 바라보며 오 멋진데, 특별하거나 신기하지는 않지만 멋져, 가까이서 보면 커다란 프로펠러가 엄청 빨리 돌아가면서 슝슝 소리를 내는 풍력발전기의 프로펠러, 해변가에도 설치되어 있고, 바다 한 가운데도 설치되어 있는 풍력발전기를 넋 놓고 바라보는데 뜬금없이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동물이 나타난 거다. 웬만한 어른들보다 키가 훌쩍 큰 타조, 그들과 캠핑카의 창문을 사이에 두고 달려가는 타조, 자신이 왜 달리는지 잘 모르는 것만 같은 타조, 세상에서 제일 큰 새 타조, 불사조나 신화에 나오는 허무맹랑한 새 말고 타조, 멸망해 버린 익룡 말고 타조, 그 타조가 도로를 뛰어가길래 뭐야 이거 하면서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는데 찍자 마자 타조가 엄청 빨리 앞서 가버려서 허망하던 차에 딱 깨달은 거다. 타조가 더 빨리 가버린 게 아니라 그들이 타고 있던 캠핑카가 멈추었다는 것을. 그 도로에서 왜 하필 타조가 달리고 있었는지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간만에 재미난 구경했고, 도로 한가운데 그들만 남겨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캠핑카에서 내린 그들은 꼭 외국에 여행온 이국 사람들처럼 주변을 둘러 본다. 하워드도 이곳이 낯선가 보다. 전에 한번 구글맵으로 이곳의 지리와 사진과 정보들을 살펴봤지만 전혀 딴 세상이 된 것 같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독자들 가운데 일부는 인기있는 SF 소설에 잘 빠지지 못하고 턱없이 나가떨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거야. 잘 설명하고, 조근조근 바닥을 다져서 설득시키고, 웃겼다가 찡한 감정도 살짝 안겨주고, 그러다가 감화시켜서 정말 그것이 있는 것처럼 글로써, 글을 통해 카드 마술이라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 즉 어느 독자는 평생 속고만 살았는지 아니면 뭐뭐 했다, 뭐다, 어쨌다 그런 이야기와 나는 뭐다, 나는 뭐뭐 한다 같은 남 얘기만 주야장천 듣는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인지 구조화된 글보다는 일목요연한 무척 산뜻한 기품을 지닌 글이 아니면 잘 빠져들지 못하나 봐. 통 믿지를 못하는 거야. 말로만 앞에 뭐가 있다, 저 너머에 오아시스가 있다, 정말이야 그러면 있기는 개뿔이 있어, 웃기고 자빠졌네, 그러는 태도로 심술부리는 거지. 믿음이 안 가니까. 구라와 뻥을 하도 많이 듣고 살아왔으니까. 그러다 허풍을 배운지도 모르게 조금 배웠지만 많이 부족해. 그런데 지금 이 소설이 그렇게 몰입하게 만드는가? 환상에 빠지는가? 신비로워? 땡. 아니다. 산에는 골짜기가 있고, 이곳 소설에는 꽈당인 챕터가 있다. 이번 챕터 꽝이다, 꽝! 마술적인 이야기? 쩍쩍 들러붙는 모험의 전개? 착착 감기는 구술? 젠장. 그러나, 하지만, 그렇지만 지금 딱 그러고 있다. 오오 이런. (난) 진정 그걸 바라지 않았건만. 어쩌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건 그렇고 한편 그들이 탔던 캠핑카는 최신 인기 상품이었다. www.happiercamper.com 에서 파는 물건. 모델명 Happier Camper HC1. 파란색. 007 가방이 서로 뒤바뀌는 사례 즉 영화에서 보는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현실에서 가방의 종류가 엄청나게 많은 007 가방의 오류보다는 캠핑카 바꿔치기가 더 착실히 맞아떨어질만 하다고, 발생 가능성이 비교적 약간은 더 농후하다고 여겨져서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는, '저건 말도 안 돼' 라는 핀잔은 덜 듣을만 하다. 그렇게 그들이 탔던 캠핑카는 바꿔치기에 대한 오해를 샀다. 물론 그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른다. 이 친구들이 캠핑카에서 내려 주변 정황을 살피고 경치를 두리번거리던 찰나에 왠 사복경찰도 아니고 특수부대도 아닌 진짜 일급이나 특급 경호원들이 얘네들을 갑자기 빙 둘러싸기 시작한다.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도망치기 아니면 설명하여 오해를 풀기, 둘 중에 하나다. 이 경호원들은 똑같은 캠핑카를 잃어버린 다른 갑부에게 고용된 요원들이었는데 아마도 캠핑카의 번호판이랄지 사소한 차이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무작정 덥썩 '얘들이 범인이다' 라고 단정하여 그들을 포위한 듯 하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잘못한 게 없었고 또 대충 보아하니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 금새 범인 추정의 작전은 바로 풀릴 것 같았다. 경호원 팀 이름이 미란다일까, 아니면 일진이 모두 휴가를 떠나서 이진으로 대체되어 어벙벙한 걸까. 대체 불가능, 역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그 기준은 정말 중요하다.
후딱 오해는 풀렸고, 그들은 떠났다. 덩치와 무섭게 생긴 사람들과 삐─ 멋져보이는 실력자까지 모두 다. 이제 허전하게 그들의 기분이 떠버렸다. 순간 뭔 말을 해야할지 왜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지 무슨 떠오르는 생각도 없고 서로들 눈만 껌뻑거리고 쳐다보고 있다.
언뜻 얼이 빠진 채 길가에 서 있던 그때, 어제 같은 오늘 혹은 오늘 같은 어제 그들을 이곳에 데려다 준 에르메시씨가 나타난다. 짠 하고 무척 길다란 리무진을 몰고 나타난다. 그들을 내려줄 때 차량은 묵직한 밴이었는데 차가 바꼈다. 날마다 다른 차를 타는 건가, NC 회원 가운데 VVVIP를 모시러 가는 전용차인가, 알 수 없다.
「어? 하워드씨. 여기서 뭐하세요?」
「어, 미스터 에르메스. 새로 생긴 대형 마트에 갈려다가 잠시 길을 잃었네. 자네 혹시 그곳으로 가는 길은 아니겠지?」
「와우. 독심술사. 깍쟁이. 딱 맞추셨어. 그 비법 저 가르쳐주세요. 어떻게 사람 마음을 그리도 정확하게 읽으세요? 어쩜 그리도 사람 마음을 속시원히 잘 읽나, 이런 말은 남이 해줘야 하는데 세간에는 자기가 자기 입으로 자화자찬 하는 사람들이 있죠. 여자말예요. 그것에 민감한 사람들. 예민한 바이섹슈얼. 제가 정말 긴요히 습득해야 할 기술인데. 그것만 익힌다면······ 오 완전 만능인데······ 아, 그곳으로 가실꺼면 타세요. 같이 가시죠. 마침 구해야 할 와인과 위스키 한 병이 필요해서 사러 가던 길이에요. 꼭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같이 가게 됐군요. 어쨌든 반가워요. 스승님. 이제 하워드씨를 스승님이라 부를 꺼에요. 조금 거슬리시더래도 말리지 말아주세요. 한 삼년 따라다니다 보면 누가 알아요?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그 마술을 일상적으로 구사하고 있을런지. 하늘이 웃고 세상이 우릴 반기는군요. 상상만 해도 즐거워요.」
잠시 에르메스씨가 언급한 자화자찬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1.사람들이 나보고 동기부여를 잘한다고 한다. 2.나 동기부여 잘해! 3.나 동기부여 못해. 이렇게 1번부터 3번 가운데 3번을 먼저 보자. 3번은 그런 말을 하고 나서 '뻑하면 갇다붙이기'로 제일 인기가 많은 우연 때문에 그 상황이 닥치면 완전 잘해, 사람 감동시켜, 질질 짜면서 울게 만들어. 아니면 진짜 못해. 반전이 있을 것처럼 부풀게 만들었다가 '그럼 그렇지'로 끝나는 타입. 오오 3번은 할 말 없음. 그리고 1번은 여자의 글, 2번은 남자의 말. 비교하면 1보다 2가 재밌다. 더 우끼다. 그걸 정말 잘 한다면 그리 말하지 않을 것이고, 일단은 코메디 단골 소재이며, 못하면 허당이라서 스스로 망가지면서 좌중을 즐겁게 만들어 그들의 유머감각을 사로잡는 거다. 동기부여로 자존감이, 자존감이 자책과 자존심으로, 그것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감으로, 자신감에서 행동으로, 행동이 성과로, (때때로) 성과는 물거품이 되는데 웃으면서 실패하게 만들거나 동기부여가 아닌 것 같은데, 라면서 다른 강연장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동기부여를 다른 단어로 교체할 수도 있다. 경찰처럼. 허나 그건 각자 할 일. 이처럼 잘난 척이나 생색이 종이 한 장 차이로 코메디가 되거나 썩 내키지 않는 썰렁함으로 바뀐다. 다시 돌아간다.
오케이. 그들이 함께 대형 마트로 간다. 해가 지지 않는 소설. 이 말은 꼭 암시성 문장 같다.
보인다. 보인다. 저 앞에 커다란 간판이 보인다. 그런데 간판에 씌여진 글씨는...
51구역. 드라마, 유명 소설 원작 드라마를 촬영중일까.
여기서 거장 소설가라면 곽티슈를 모두 쓰게 만들던가 영혼을 쏙 빼서 침대나 책상이나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태블릿에 쳐박아 놓게 만든다. 마에스트로가 아니라서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찰스 디킨스의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 처럼 미완성이나 연결 단락 과제를 남겨 놓는 것이다. 다른 소설이나 그림과 음악도 논란이 많은 경우, 흔하다. 어쩌면 먼 미래엔 그 방식이 일부러 고착될 수도 있고 어찌될지 모른다. 옛날에는 말타고 다녔지만 지금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듯이, 미래엔, 미래에는 어찌될지 미래학자 마저도 <어쩔 땐> 점쟁이 같은 말을 한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들은 하워드의 요트로 돌아왔다. 괜히 갔다왔나?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을 뿐이다.
하워드가 말한다.
「너네들 도심지에서 들렸던 그곳의 NC 사장이 가르쳐 준 건데 말이야. 이 근방 어디에서 인터넷 주소창에 해당 연도의 마지막 날에 하루를 더한 날짜와 모차르트의 마지막 교향곡 쾨헬 넘버를 입력하여 엔터키를 눌르면 이 주위에서 요트타는 사람들의 비밀 통신이 보여진다고 하더군. 꼭 법률로 금지되어 있는 광고 사이에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화면을 넣거나 미성년에게 생각지도 못하는 방법으로 광고의 메세지를 전하는 것처럼 이 친구와 담소를 나누며 차와 술을 마시는 중간 중간에 이런 얘기를 몇 번 나누어서 하더군. 끝인사를 하기 전에도 소수에 관한 얘기를 잠시 하다 끝맺지 않은 채로 끝나버렸어. 슬쩍, 실수처럼 은근슬쩍 흘리는 묘수랄지 어떤 암호문을 전달받는 느낌이 들더군. 그 왜 있잖아, 그런 섬세함이 완벽하게 몸에 베어있는 사람들 있지? 카페나 호텔에 가면 제일 먼저 출구와 도주로와 대처 경우의 수를 즉시 반사적으로 파악하거나 시야에 드는 장면들을 사진처럼 또 플래시 메모리처럼 짧은 시간이나 일정 기간 무조건 저장하고 기억하는 친구들, 항상 뒤를 살피거나 웃음의 뒤안으로 뭔가 슬프면서 애잔한 분위기를 띄는 사람들 있잖아. 그런 기분이 들더라니깐. 꼭 그것같지 않니? 인생은 짧다, 바람이 분다. 바람을 펴라. 그런 광고 문구 말야.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기존의 정상적인 숫자 도메인과 약간 방식이 다른 것 같아. 누가 모스 부호를 사용하거나 2중 3중 암호화하는 걸 직업으로 가졌던 친구들이 재미로 만든 사이트란 말인데 진짜라면 우연잖게 그 협소한 범위와 감추면서도 오픈한 컨텐츠의 대상이 바로 이곳이란 얘기야. 재미로 뭔가를 시작하면 둘 중 하나잖아. 전문적으로 발전해가거나 재미로 남거나. 물론 없어지기도 하지만 얘네들은 그걸 그냥 공개한 것 같아. 일단 믿었지. 오픈 소스 뭐 이런 거처럼. 그래서 여기 요트 안쪽 컴퓨터로 직접 해봤어. 2015.12.32 이렇게 입력하니 안 뜨길래 32.12.2015 이렇게 해도 안 떠서 그녀석 NC 사장이 장난친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끈기를 가지고 몇 번 더 시도해 봤어. 너무 짧으면 뭔가 없어 보이니까 거기다 좀 더 길게 뭘 붙여봤지. 세계 7대 수학 난제 알지? 잘 알지는 못해도 들어는 봤을 꺼야. 실은 나도 잘 몰라. 리만 제타 추측이니 양 밀스 질량 간극 가설이니 하는 것들, 하나도 몰라. 그게 당연하잖아? 그렇지만 그런 검색어로 예전에 구글링 해보다가 기억해 둔 숫자가 하나 있었거든. 흔히 그런데 자주 나오는 소수말야. 이 또한 어렵거나 복잡한 건 아니야. 이런 게 영화 대본으로 쓰이면 쉽게 써야 재밌을 거야. 그 오랜 시간동안 이어져온 속담 봐봐. 간략하잖아! 일단 10보다 작은 소수는 2, ,3, 5, 7이 있어. 그걸 붙인 2357 역시 350번째 소수라고 하더군. 349였나? 아무튼 그래. 그래서 그건 기억에 남아. 그리하여 그걸 덧붙여 본거야. 32.12.2015.2357 을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하고 엔터, 꽝이었어. 그런 페이지는 없데. 순간 쾨헬 넘버가 딱 생각나는 거 있지! 아쉽지만 그냥 포기할려던 찰나였어. 그랬으면 지금 이런 얘기도 못했을 테고, 그곳으로 놀러가자는 제안 역시 못했을 것 같아. 그래서 몇몇 조합을 거치다가 12.32.551.2015.2357 이렇게 입력해 봤어. 그랬더니 딱 뜨더군. 정말 믿기지가 않더란 말이야. 당연히 그럴 수 밖에. 거참. 뭐 신기한 건 없었어. 내용은 신기하지 않았지만 사이트가 뜨는 건 신기했지. 보물 지도, 비밀 기록, 특종 그런 거 말야. 그런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NC 사장 그 친구 말처럼 이 근방에서 요트를 타는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를 하고 있더군. 채팅창도 있고, 실시간 카메라 영상도 있고, 각자 소셜 네트워크를 아이콘과 여러 통계로 보여주는 그래프들도 있고 참 다채로웠어. 잠시 그걸 들여다 보니 누군가 재미난 얘기를 올리더군. 다른 건 아니고 저번에 우리가 도심지 천에서 띄웠던 기구들 있잖아? 소형 프라모델 보트와 고무보트 크기의 과자봉지로 만든 보트, 포도주병, 처키 인형, 종이배, 운동화, 상품 케이스. 그걸 누가 한꺼번에 발견해서 모두 구조했다는 거야. 혹시 소인이 그 배에 타고 있을지 모른다는 긴요하고 급박한 호기심이 움틀거렸다고 그러던가, 어쨌든 그 비슷한 얘기를 하더라고. 그래서 낚시는 좀 되던가, 요트에 강아지나 고양이는 승선해 있냐, 어떤 책을 읽고 있나, 바다에서 듣는 음악은 무얼 선호하더냐, 친해진 돌고래 친구들은 있었느냐, 그 친구와 그런 얘기들을 하던 가운데 은근히 서로 친밀감을 느꼈어. 묘한 교감 같은 거 말야. 그래서 이따 친구들 만나고 놀다가 심심하면 한 번 들린다 그랬지. 먼저 그쪽에서 흔쾌히 한번 놀러 오라고 했어. 어때? 한 번 가볼까? 꼭 안 가도 되는데 가도 뭐 나쁠거 같지는 않아. 거기 가서 심심하면 그냥 구경만 하고 나오면 되지. 너네는 어떠니?」
왜 싫겠나. 이미 그들은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요트, 참 성능이 우수한 물건이다.
가던 길에 보니 등대가 하나 보인다. 그런데 등대에 이름이 씌여 있다. 커다랗게. 이름은 버뮤다 삼각지대. 엥? 버뮤다 삼각지대? 뭐야? 이 버뮤다가 그 버뮤다 맞어? 그거 다 뻥이라던데, 또 몰라 한두 개는 진짜일지. 괜히 낚여서 뻔한 기사 읽기, 이젠 안 해. 그런데 저기 보이는 저 등대, 이름만 그거야 아니면 진짜란 말이야? 만인이 알기로 또 그들이 알기로도 이 방향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데 또 모를 일이다. 제 2의 그것일 수도 있고,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지 이게 원조일지도 모른단 말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호텔이었다. 수상 호텔. 한때 버려져서 방문하는 사람이 없다가 언젠가 한번 뜻 모를 바람이 불더니 부흥의 여론이 일고 돈을 투자하는 법인이 나타나고 그 법인들이 점점점 늘어나고 팬클럽도 생기다가 마침내 호텔로 탈바꿈에 성공한 등대였다. 즉 조그만 등대가 아니라 흔히들 인터넷 뉴스에서 클릭을 유도하고 사람들 입소문과도 비슷한 그런 현상이 초기에 흥미를 유발시키는 이야기로 잊혀질만 하면 이따금 다시 알려지곤 하는 가라앉았다가 땅바닥에 착 달라붙기 전에 또 바람결에 살짝 휘날리는 화장지 한 조각처럼 사람들의 소문과 관심과 일화에 등장하는 지난 연인쯤으로 기억되곤 하는 바로 그런 등대였다. 물론 지금은 예약을 하고 결제를 하면 이용 가능한 호텔이다. 저기······ 한 번 가볼까, 할 법도 했지만 먼저 정해 놓은 목표가 있어서 딱히 그러고 싶은 마음을 아무도 표시하지 않았다. 자꾸 이걸 생각하다 보면 계속 빠져드니까 그냥 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삼천포는 삼천포다.
어떤 공장에 가면 차를 싣는 차가 있고, 챔피언스리그 같은 정상급 축구 경기가 끝나면 친애하는 상대편 선수의, 전설적인 상대편 선수의 유니폼을 자신의 유니폼과 교환하기 위해서 자기편끼리 막 다투고 싸우기까지 한다. 오늘 난 전설적인 그 인간과 게임을 했고, 그와 유니폼을 맞교환하여 마치 동급이 되는 듯한 무아지경에 빠졌다, 는 연인들의 반지나 목걸이 같은 어떤 증표를 받는 행운의 복권에 당첨되어 버렸네, 그걸 위하여 같은 팀끼리 막 밀고 밀리고 다투는 거다. 세계에서 제일 긴 강, 제일 오래된 궁전, 제일 높은 나무, 제일 깊은 바다, 넘버 쓰리도 괜찮음 그리고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이와 같이 이들이 타고 가는 하워드의 요트가 그들이 목표로 했던 12.32.551.2015.2357 사이트에서 대화를 나눈 친구가 알려준 좌표값에 거의 도착한다. 좌표값에 대한 얘기는 따로 하워드가 말하지 않았다. 좌표값은 표준이라서 존재하지 않는 좌표값이면 미스테리니까 그건 극장에 가서 찾고 여기서 하워드의 요트는 좌표값 입력만으로 모든 요트 동작을 자동과 반자동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거기다 수동까지 겸비한 만능 요트라는 것만 알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자, 이렇게 돌아 돌아서 거치고 거쳐서 드디어 그들은 그 좌표값에 도착하였다. 그 좌표값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는 편의상 구단주로 약칭한다. 이 약조를 한 번만 말하고 넘어가면 이따 글을 읽던 중 딴생각한 친구들은 이거 뭔 개소리야, 갑자기 구단주가 어디서 튀어 나왔어, 라고 울상을 지을지 모를 일이니 한번 더 강조한다. 그 웹사이트에서 만난 친구, 좌표값에서 느긋하고 비밀스럽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요트의 주인을 편하게 구단주로 약칭한다.
좌표값에 도착하였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뭐야 이거, 이게 뭔데 아무런 표식도 없고 요트도 보이지 않는 거지, 똥개 훈련시키나, 그런 생각을 할법 하다. 당연히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불안한 의혹을 사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잘 보니, 잘 보니까 앞에 있던 파도와 바닷물과 구름과 안개와 멀리 보이는 배나 요트들은 거울임과 동시에 가상 화면이었다. 그 불빛과 영상이 흐려지고 있어서 그들은 그것이 즉 계속 보고 있었던 수평선과 물과 하늘과 바람이 하나의 배로 뚜렷하게 형체가 분명해지고 있었다. 곧 그건 어마어마하게 큰 요트였다. 배를 떼거지로 운반하는 배가 있다는 얘기는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거나 술자리에서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클래스를 직접 보게 된다. 보고 있다. 꺼뻑~ 경이로운 마음을 품게 되는 거대함. 이 친구들 앞에 있는 요트가 그것을 실감나게 해준다.
이제 하워드의 요트, 모히토가 그 요트, 구단주의 요트 안으로 들어갈 차례다. 요트 안에 요트, 요트 밖의 요트, TV 속의 TV, 셀카 사진에 보이는 거울과 그 거울에 보이는 셀카로 찍는 화면의 반복. 일이 그렇게 되었다. 그거야 그렇다 쳐. 그럼 혹시 또? 구단주의 요트가 구단주 할아버지의 요트 속으로 또 들어가? 그건 아닐 게다. 또 들어가면 아예 무한 반복해서 계속 들어가야 하니까. 여기까지!
해가 지지 않는 챕터. 진짜다. 아니야. 언제 잠을 자는가 그것은 독자가 곧 당신이 정하는 거다. 소설을 읽는 사람이 뭐 애야? 기어다니냐고? 어버버버 피둥피둥 응애응애 그리고 아기 냄새. 아기 냄새? 오오 아니야 아니야. 다 아니야. 언제까지 일일이 하나하나 모두 수동적으로 가르쳐 줘야만 하겠어. 이건 새로운 소설인데. 그래 아까 하워드의 요트 모히토에서 1박을 한 거야. 아니면 모히토가 무슨 바닷가 동굴도 아니고 공장도 아닌 우주선처럼 요트가 들어갈 수 있는 요트에서 구단주와 함께 파티를 즐기다가 먹고 얘기하며 놀다가 즐기면서 잠에 빠져든지도 모르게 골아 떨어진 거야. 그래. 그렇다구. 판타지 소설? 전부 다 뻥이야. SF 소설, 모두 거짓말. (개)뻥!
자, 요트 안에 모히또가 도착한 때부터 이야기를 이어간다.
「맞게 온 거야?」
「그러게 이거 장난이 아닌데.」
「크루즈 선이야?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슈퍼 요트야?」
「엘리자베스 뭐나 무슨 8호 뭐 그런 거야?」
「앵무새가 개 위에 타고, 그 개가 말 위에 탄 거 같아.」
「날개 달린 말.」
「왔으니까, 에, 음, 일단 들어가 보자. 무슨 일이야 있겠어? 또 모르잖아, 멋진 파티가 우리를 기다릴지.」
요트 정착 구역에서 배의 갑판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사람들이 없다. 설마 유령선? 어딜 봐서 유령선, 완전 번쩍번쩍 빛이 나는데 그럴 리 없다. 하지만 자꾸 음험한 생각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요트가 어떤 섬에 정착했다가 배만 떠밀려 나왔거나 다른 허영심과 낮은 지적 수준을 만족시킬만한 뭔가가, 있을 리는 없다. 그냥 도시에 항상 도시에만 살다 보니까 사람들은 사람이 안 보이면 잠깐 불안한 것일 뿐이다. 그게 다다. 잘 찾아보면 된다. 이 크나 큰 배에 사람이 없을 턱이 없다. 그것도 바다에 유유히 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점점 불안해진다. 바닷바람의 풍속이 조금 거칠어지고 풍향의 변화가 심해진다. 누가 먼저 나서서 긴장을 풀어줄 잡담마저 하지 않는다. 분위기 착 가라앉았다. 먼저 무슨 말이든 해서 정적을 깨트리기 망설여진다. 배의 규모로 봤을 때 어딘가 파티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가당한 얘기다. 핵심 인원만 놔두고 많이들 인근 섬으로 출타를 떠났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이 배에 들어올 수 있는 루트도 다양하다. 선착장과 착륙장은 물론 잠수함 정착지까지 갖추었다. 안 봐도 견적 나오는 규모다. 왜 사람이 안 보이지, 왜 사람이 없는 거야? NC 사장이 수작 중의 수작, 최고봉 개수작을 부린 건가. 작전? 이 개··· 불독 같은 놈, 뭐하는 놈이야? 베일에 감추어져서 자꾸 마술같은 일을 벌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도 우끼지만 정반대로 매사 투덜대기만 하는 사람 또한 우습다. 가령,
남이 <뭘 해도 재미없다. 글이 잘 안 써진다. 하는 일이 잘 안 된다. 고품격 소설을 안 읽고 있으니, 끝까지 읽기를 하지 않으니 글쓰기 수준이 퇴보하면 어쩌지? 엄마의 잔소리를 많이 들을수록 정확히 그에 반비례하여 차츰 글을 못쓰게 되고 나도 똑같아지면 어떡하냔 말이야.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그 얘기를 자주 듣다 보면 지적 수준이 점점점점 추락하진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읽을 만한 책이 별로 없다. 끝까지 읽는 책도 거의 없다. 읽고 싶은 소설은 잘 출판되지 않는다. 안 그러면 출판사 구조조정 들어가야 하니까. 번역자는 생활비가 줄어들고 애인이 떠나갈 수 있다. 여기서 끝이냐? 아니다. 학계 전문가들의 권위도 떨어지고, 여러 회사의 마케터와 에디터의 적금이 깨지고, 자녀가 있으면 용돈이 줄어들고, 더 하면 신용카드 연체된다. 그렇지만 그건 인문-교양이든 뭐든 마찬가지다. 고로 지금 이대로가 그냥 낫다. 고품격 소설 전성시대, 오면 골치 아플 수 있으니까. 핑계거리가 없어지면 울적할 거다.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네, 그저 평온히 조용한 삶을 살고 있어서 매사에 감사하네, 라는 말과 글을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이 듣고 어느 만큼 많이 읽었는지 또 앞으로 얼마나 더 듣고 읽어야 할지 예상만 해도 까마득해. 그러니까 꼬마 숙녀와 신사에게 말해줘야 해. 넌 말이야 앞으로 고리타분하고 고루하고 평범한 얘기를 인생의 머나 먼 뒤안길까지 무진장 엄청나게 많이 듣고 살게 될 꺼니까 그거 하나는 확실하니까 앞으로 인생 잘 살아야 할 것이야, 너가 만나는 사람 10명중 9명은 모두 다 똑같은 말만 할꺼라고. 그냥 세상은 그런거야 라고. 변명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기분 나쁘지 않고 행복하다. 명철한 변호가 직업이 아니라 생활이면 인생 피곤하다. 그건 아니다. 재미없는 천국에 평생 살면서 심심한 승리만 하고 지겹고 심심하다가 지루하기까지 한데 그러다 문득 뭔가 호사스런 기분이 느껴지고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운이 느껴져. 그래. 그런데 결국 그건 따분함이라는 이름의 감정이야. 그렇다면 그 보다는 변명하는 게 낫다. 평생 욕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지만 뭐 재미난 일 없나? 끝내주는 일 없냐고?> 라고 타인이 말한다면 엄청 웃기다고 좋아라 할 친구 많을 것이다. 어머나 당신도? 오 보인다. 들린다. 딱 걸렸어. 당신 지금 빵긋 웃었어. 활짝 웃었단 말이야. 웃기면 그냥 웃어. 왜 안 웃을려고 해, 뭐가 그리 심각하냐고. 지금 세상이 웃는 걸 들키면 혼나는 그런 이상한 미래 사회야? 아니잖아. 이건 내일 아침까지 참지 않아도 된다. 너가 지금 이 순간 웃는 모습이 홀딱 걸렸으니까. 아무튼 NC 사장, 어디서 굴러온 마초계의 신성이야, 이름은 뭐야, 허구헌 날 이국적인 뜬구름 잡는 얘기만 들먹일 놈, 정작 이국에 데려다 놓으면 맨날 향수병에 시달릴 인간, 절묘한 타이밍에 사람을 의뭉스럽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어, 녀석. 요술쟁이? 제발!
우선 갑판을 훓고 방이 있으면 창문으로 보거나 들어가 보고, 계단을 통해 다른 층을 살피고 그러다 넓으니까 돌아다니기 귀찮아서 어디 보이는 냉장고를 열어서 캔맥주를 딴다. 캔맥주의 맛은 수제 맥주에 비하면 음 뭐라 말 할 수 없다. 솔직히 그 차이를 냉혹하게 말하라고 한다면 안 좋은 얘기가 나올 테니까. 하지만 캔은 캔이니까 캔에 씌여진 글씨의 서체와 손쉬운 휴대성, 디자인과 캔을 딸 때의 소리 그것만으로도 최고급 수제 맥주와의 차이를 감쇄한다. 이상하고 추상적인 단어, 사랑, 행복, 예술, 인생, 뭐 뭐도 마찬가지다.
요트에 관한 기본 지식을 알아보면 이와 같은 기본 원리를 알 수 있다. <돛단배는 뒷바람을 받아 나아가지만 요트는 맞바람을 받아야 한다. 요트가 맞바람을 헤치고 항해할 수 있는 원리는 요트 바닥 밑에서 물 밑으로 내려져 있는 킬(Keel) 때문이다. 요트 길이와 세일(돛)의 높이에 따라 배마다 깊이가 다른 킬은 요트가 바람에 의해 옆으로 밀리는 것을 막아준다. 돛단배에는 킬이 없다. 이 때문에 요트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인 ‘풍상(風上)’ 방향의 정면에서 좌우 45도 안쪽 범위(No go zone)를 제외하고는 원하는 방향을 향해 ‘지그재그’로 나아갈 수 있다. 여기에 비행기가 뜨는 원리가 적용된다. 세일의 천이 바람을 맞아 반달 모양으로 휘어지면 세일 앞면과 뒷면이 받는 공기 속도는 달라진다. 굽어진 세일 앞면을 지나는 바람의 속력은 빠르고, 뒷면 속력은 느리다. 양력(揚力)이 생기는 것이다. 요트가 받는 바람 속력은 빠르다. 그래서 기압이 낮은 쪽으로 나아간다. 돛이 항공기 날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바로 ‘베르누이의 정리’다.> 이런 얘기를 얘기하다가 어눌하거나 지식이 바닥나거나 할 말이 떨어지면 곤란하다. 남자세계에서는. 앞서 말한 여자들이 자화자찬에 명민한 반응을 보이지만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남자들은 지식의 양에 대해서 꽤나 섬세한 촉수를 감추고 있다. 때론 보면 꼭 애들 같다. 내가 더 많이 아네, 너는 덜 아네, 너 뭐 할 줄 알아, 난 뭐 해 봤어. 위 글은 인터넷 검색해서 주워 읽었다. 그냥 읽은 게 아니라 거저 주워 읽었다. 단어 딱 하나로도 남자는 자동으로 자극된다. 진공관 마란쯔 앰프? 어디서 주워 듣고 말하는군! 눈썰미? 너 벤틀리 운전대 잡아봤어? 그렇다. 뽈록 튀어 나왔으니까. 그럼, 원래 인간의 감정은 유치함이 기본이다. 심리학, 정신분석학, 학문으로 넘어가지 않아도 된다. 그래, 독자가 갑이다. 왕이다. 진짜 그렇다. 언제 안 그렇다고 한 적 있나? 그렇지만 당신이 남자라면 또 여자친구가 있다면 베르누이의 정리, 요트의 구조와 킬, 그것에 대해 영리한 여자친구가 알아먹을 때가지 이해시킬려고 끝까지 해보겠다고 누가 이기는가 보자, 라면서 왜 못 알아듣냐고 왜 신기해 하지 않냐고 추궁대지 말 것을 권한다. No Go Zone, 그 원리를 하나만 말해도 열을 안다면 금새 빠삭히 다 파악하여 요트 준선수 급이 된다면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더 잘해서 당신의 여자친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 그렇구나' 라고 답하게 하는 더 간단한 설명은 안 찾아봤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베르누이의 정리!
틀렸나?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재미있다는 지적이.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몇마디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맥주를 마시면서 보니 이상하게 배가 움직이는 기운을 감지한다. 조니, 케빈, 알렉스, 마크, 하워드, 닉, 제임스 가운데 가장 평형감각과 운동신경이 뛰어난 누가 먼저 그 변화를 알아 챈 게 아니라 물살의 움직임, 조류의 흐름, 자전 방향, 달의 위치 그리고 내핵과 외핵의 자전 궤도(지구 내부에 있는 내핵과 외핵도 자전을 한다. 지구의 자전과는 별도로. 이 사실을 몰랐던 달변의 왕자들, 지식 자랑의 석학들 적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감안해 보니 그들이 타고 있는 요트, 이름은 요트, 그것은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다. 또한 미세하게 자동으로 보트의 동력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동 항법 장치 on. 계속 움직여, 쉬지를 않아.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세월처럼 이 배도 어딘가로는 가고만 있는 것인가.
「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믿을 수가 없어. 믿지 않겠어.」
「<에잇 치사하고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다 때려쳐.> 난 왜 아무 이유없이 이런 말이 생각나는 거지.」
「<아휴 추접스러워서 증말. 이거 원, 나 참 기분 나빠서 일 못하겠네. 너 다 해먹어라.> 나도 그래.」
「<집어치워! 늬가 그렇게 잘났냐?> 난 이 대사.」
「<어찌 그리 사람 무안하게 빤히 쳐다보는 거에요? 응큼하게.> 난 이거.」
「<야 이 미친 XX야. 정신차려 이 친구야.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요거.」
「<이런 미친 놈 내앞에서 썩 꺼져버려!> 터치다운.」
「<아~ 됐고! 늬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 주겠어, 라고 말할 줄 알았니? 아니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 가란 말이야.> 예~스.」
「뭐야 이거 정말!」
「믿을 수가 없어!」
「어떻게 이런 개 뼉따구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지?」
「말도 안 돼!」
「도대체 X맨은 누굴까?」
그들 앞으로 멀리 섬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왜 하필, 맙소사, 그러냔 말이야. 그건 그 섬이 그 섬이 최근 영화에서 봤던 낙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점점 점점 그 섬이 가까와 온다. 점점 가까와 온다. 흔히들 아는 가보지는 못했지만 큰 사진으로나마 많이 보았던 멋진 휴양지와 크게 다를 바는 없다. 하지만 뭔가 이건 낙원이 아닐까, 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원인은 그 순간 요트 주위로 수천 명의 스킨스쿠버 요원들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어쩜 수만 명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이 요트의 승선 인원들은 스킨스쿠버 동호회 회원들인 것 같다. 좋은 여행지를 모두 가본 사람도 한 번에 스킨스쿠버하는 사람들을 동시에 떼거지로 많이 봐 봐야 수십 명이나 수백 명일 것이다. 그러면서 배는 점점 육지와 가까와진다. 이런 해양 축제가 언제 소리 소문없이 생겼을까. 이 규모라면 대대적으로 많이 알려졌을 텐데 말이다. 아무래도 구단주도 이 가운데 있을 것만 같다. 꼭 이 커다란 요트에 이 친구들을 남겨 놓고 일부러 배를 이 곳 쥐구멍으로 몰아서 놀래켜 줄려고 정밀하게 조작하고 짜맞춘 듯한 느낌이다. 저네들은 톰이고 얘네들은 제리? 말도 안되는 소리다, 개소리. 해가 중천이라서 불꽃놀이 축제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거짓말 같지만 진짜였다. 와우 저기 저 배를 보아라. 수륙양용-자동차에다가 한 대는 수륙양용-버스가 보인다. 모터보트, 캐빈 크루져, 수중익선, 하우스보트, 공중부양선, 저인망 어선, 구명보트를 입고 투명 카약을 타는 여인네, 의자보트, 태양광 보트, 구두와 똑같이 생긴 배, 허뻐 큰 종이배, 방수처리 종이로 만든 배 등등 없는 게 없다. 어디서 다 튀어 나오는 거야. 나 증말. 일종의 축제 성격 상 쇄빙선이나 벌크 화물선은 보이지 않는다. 자자 섬이 가까와 온다. 이 세상에 단 하나 남은 천국일까. 저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인가. 무엇이 그들을 반겨줄까. 저곳의 삶은 어떤 운영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그냥 아무 생각없이 만화영화를 보는 꼬마 마냥 모든 것이 궁금하다. 환청인가, 어딘선가 하프 소리와 아코디언과 하프시코드, 백파이프의 멜로디가 들리는 것만 같다. 미쳤다. 그렇지만 현실이다. 정말이다. 이제 거의, 거의 다 왔다. 보인다. 보인다. 해변가에는 아까 하워드의 요트와 가까운 바닷가에 있던 유락시설과 꼭 닮은 환락 공원이 형성되어 있다. 어쩜 판박이다. 그것이 이것과 똑같다. 이것과 그것이 닮았다. 그러면 이 곳이 섬이 아니라 그 육지의 해변인가, 아니면 그들이 갔었던 저번 육지의 해변이 섬이었단 말인가. 이거 뭐지, 뭐지. 일단 그런데 저번에 그들이 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간판이 보인다. 유명 조각가의 작품일 수도 있다. 그 큰 텍스트 작품에 보이는 글씨는 이랬다.
쥬-라-기-공-원!
(이런) 삐─ 삐─ 삐─!
자,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10초의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진격한다. 쑥 들어간다. 당신의 아름다운 인생으로. 준비. 준비. 간다. 10. 이제, 당신은 저 앞에 보이는 미지의 신세계를 탐색할 시간이다. 아! 당신의 감수성은 달아오른다. 오! 어제 그렇게 바라던 오늘이다. 이제 여행을 떠난다. 9. 당신의 마음은 어린아이처럼 맑아졌다. 초심을 되찾았다. 감미로운 그릭블루빛 창공. 물결은 코발트블루. 꿈과 이상과 모험을 떠올려라. 8. 너의 무한한 미래. 아름다운 인생. 지고의 순간. 당신에게도 쾌락과 기분이 고조되는 분위기는 언제라도 찾아온다. 다시 젊음을 되찾는다. 7.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가? 된다. 당신은 행복을 정복할 것이다. 당신은 행복의 신이 될 것이다. 6. 낙원이 저 앞에 있다. 가상으로 존재하는 이상향이 아니란 말이다. 그것은 지금 꿈이라는 과정 안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5. 그렇다! 당신은 저 앞에 보이는 꿈과 모험의 세상을 탐험할 것이다. 4. 아! 그렇다! 맞다. 지치지 않는 젊음과 역동적인 운동감. 희롱할 것인가 기꺼이 즐길 것인가. 3. 오 왜 이렇지, 왜 이런 거야. 뭔가 이상한데. 2. 아! 이거 느낌 희한하다. 뭔가 착오가 생긴 거 아냐. 오오! 점점 느려진다 느려진다. 시간이 느려진다. 차츰 몽롱해진다. 1. 눈이 게슴츠레해진다. 당신이 투명인간이 된다면 무엇이 하고 싶었나? 투명인간! 0.5 자자, 시간이 느려진다. 밑도 끝도 없이 느려진다. 0. 드디여! 정지한다. 마침내! 멈췄다. 오래 기다렸어! 그래 이거야! 이거라구! 농구장에서는 이미 슛을 쐈는데 농구공이 공중에 떠 있다. 사람들이 입 벌리고 있거나 박수치다 멈췄거나 점프하면서 응원하다가 공중에 떴는데 공중에 계속 떠 있다. 오오! 이 일을 어떡하면 좋은가. 어쩌란 말인가. 저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그대의 마음은 어디에 있나요.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 정지다. 이제 배구장이다. 배구 경기 중 C퀵으로 스파이크를 때리려던 공격수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는데 내려오지 않고 그대로 둥둥 떠 있다. 붕! 기차박수도 응원도 모두 멈춤. 똑바로 안 해~ 이··· 이··· 센스쟁이야, 소리치는 아저씨도, 힘빠졌어 힘빠졌어 라고 외치는 선생님도, 그분들이 마시는 생수의 물도 공중에서 얼음 땡 하고 정지했다. 캔맥주를 입에서 살짝 띄워 벌컥벌컥 들이키며 마시는 습관을 가진 술꾼임이 분명하다. TV가 고장났나? 화면이 정지하고 현실의 시간이 멈췄다. 시간이 멈추면 투명인간일 필요가 없다. 당신은 시간이 멈춘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왜, 는 생각하지 말자. 시간이 멈춘다면. 순간은 영원이다. 슬로우 모션 그리고 멈춤! 그네를 타는데 슬로우 모션, 말할 때도 슬로우 모션, 노래 부르면서도 슬로우 모션, 사랑의 행위도 슬로우 모션? 자! 지구의 애호가여! 멀리 떨어진 이곳 은하에서 보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너의 지난 삶과 독자가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당장은 글을 읽고 있군) 그리고 그대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 그 환영이 보인답니다. 모두 투명하게 보인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 소설은 문학이 아닙니다. 이런 맥락없는 황당한 이야기를 예술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3류-입니다. 싸구려 라구요. 이것보다 다른 무엇이 덜 재미나거나 심오한데 예술이라면 그건, 그건 이런 얘기 자체가 미스테리이자 패러독스입니다. 그뿐이에요. 삶에는 그런 신비가 필요한 법이에요. 여기서는 자신있게 이건 소설, 저건 예술, 그대는 사랑······ 이렇게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