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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6. 6. 15. 21:30

   척키가 연락이 없다.
   척키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 척키가 무명 블로그를 읽었을까? 그건 말도 안 된다. 걘 책 안 본다. 종이는 거의 안 읽어. 무명 블로그가 출판물도 아니고 또 그쪽 세계에서 유명하지도 않다. 그러니 그건 아니다. 그럼 뭘까? 왜일까? 왜 척키가 연락을 하지 않을까? 그는 정녕 소인배라서? 범상치 않은 남자라서? 남들 다 아는데 제일 가까운 당사자인 부인이나 남편이 제일 나중 알게 되는 일이 간혹 일어나듯이 척키만 그걸 몰랐다가 소문으로 겨우 제일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알게 되어서? 그래서 자존심이 상해서? 글로 읽어서 알아야 하는데 말로 들어서 알게 되니 열 받아서? 그건 아닐 것이다. 영화에서 명문가 아가씨와 주연을 맡은 하녀 1, 비중 전혀 없는 하녀 2가 있다면 보통 미모는 통상적으로 어떤 순서를 띄는 게 정석이다. 그리고 정석 2단계는 그걸 정확한 대사로 쓰고 똑똑한 발음으로 연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맛에 영화판에서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 많을 것이다. 비공식이긴 하나 공식은 공식이다. 그와 달리 척키가 뭐 정상 운의 하녀 2라도 된단 말인가? 아니다. 그는 남자다. 그것도 남자 중의 남자. 도대체 왜 척키 1에게 연락이 없을까? 괜히 척키 2 때문에 척키를 부를 때 귀찮게 됐다. 경우의 수를 생각하자니 귀찮고, 알고-는 싶고, 난제네 난제. 그러나 모를 땐 물어보면 된다. 그게 답이지만 나는 그런 대화를 나눌 친구가 없다. 그러면 그 다음은? 그 다음에는 또 방법이 있다. 물어볼 사람이 없다면 최소한 거울은 있다. 지금은 그것이 독자다. 그렇다면 새로운 친구, 딱 1명의 독자가 생겼다고 가정하고서 그 1분이 그분이다 라고 믿으면 된다. 그러면 그분은 동화에 나오는 주인님 주인님, 하는 기절초풍할만한 거인 마법사이자 요술 지팡이니까 그에게 물어보면 그만이다. 왜 척키에게 연락이 없냐고. ...(침묵)... 답이 왔다. 답을 들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척키라면 연락을 할 건가요?> 내가 척키라면? 내가 척키? 오, 이런 삐─ 삐─! 괜히 무서운 얼굴을 부러워하고, 가죽점퍼를 들먹였던 지난 일이 다 후회 된다. 어, 옆길로 새지 말고 내가 척키라면...에 집중하자. 나 뿐만 아니라 당신도 그분도 누구나 연락을 안 하실 듯 하다. 왜냐하면 나라도 당연히 안 할 테니까! 왜? 다 그렇게 사니까. 그냥 자기 삶을 살고 현재의 인생을 즐기면서 과거에 친했던 친구에게 서로 연락이 뜸해지니까. 그래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을 괜히 들추어내서 귀중한 시간만 허비했다. 두고 보면 알겠지만 당장은 자신이 없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인지, 깡총 뛰기 위해 웅크리는 것인지, 도움닫기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뒷걸음질 치는 것인지 말이다. 두고 보면 알게 된다. 두고 보자고 하는 사람 하나도 안 무섭더라, 두고 보니 괜히 움찔했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척키는 놔두자. 그는 그의 인생을 살고 나는 소설을 써야 한다. 마당 잔디도 깎고, 수영장 청소도 해야 한다. 그러다 나는 동네에서 멀더의 친구들을 하나둘 알게 되고 나서 그렇게 발을 넓혀가게 됐다. 새 친구를 맺고 지인을 사귀어가다보니 나는 아직 스스럼없이 먼저 연락을 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들로부터 사소한 부탁을 받게 됐다. 그렇게 받은 부탁은 주로 물건을 맡아달란 것이 주를 이뤘다. 내게는 뭐가 없을 듯 보였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 사소한 부탁을 받아 맡은 물건 때문에 우리집 마당이 뭔 판이 됐다. 초소형 포크레인을 잠시 맡아달라 해서 마당에는 초소형 포크레인도 있고, 트럭과 시추기 1대와 골프채와 테니스 가방, 개도 2마리 맡아주고 있고, 동네 피자 가게도 하루에 약 30분 정도 어쩌다 고정적으로 봐주게 됐다. 농사일도 어쩌다 거들게 되고, 어부들 그물 손질 하는 것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거절할 거 거절하고, 방어선을 구축하며, 너무 방만한 삶을 살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게 보통 순서지만 나는 그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반대로 갔다. 너무 소설의 소재를 구하고 구상에 도움이 된다며 발을 넓혀서 이 부탁 저 청탁 다 들어주고 통제가 어려워지다보니 아, 정말 못해먹겠네 라고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사건도 있고, 기승전결도 있고, 알아서 물건 맡겼다 가져가고, 청소도 해주고, 술도 사주고, 남는 장비도 주고, 친구의 친구도 소개시켜주고, 그래서 내 제 2의 인생은 흥미로워졌다. 친구도 많아지고, 친구의 여자친구의 친구도 알게 되고, 한마디로 삶이 재미있어졌다. 이래서 귀촌하는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내 글은 그와 반대로 재미없어졌다. 조금 썼던 소설을 읽어보면 발단으로 시작해서 발단으로 끝났다. 전개와 절정, 결말과 반전에 긴장감과 기품은 찾을래야 찾아볼 수도 없고, 교훈은 실종됐고, 품위는 도망갔다. 저 멀리 아득히. 따라서 있었나 라고 의심스럽지만, 있었을까 라고 이따금 회의에 가까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고전미 역시 감쪽같이 사라진 걸로 여실히 알게 됐다. 나는 글을 참 못 쓰는구나, 더군다나 글이 부쩍 더 안 써진다는 것을. 그러므로 나는 글이 안 써지고 뭘 해도 재미없더라도 하던 대로 기존의 생활을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안 해 봐도 아는 걸 괜히 실험까지 해버렸다. 아흐흐.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찻집이 하나 생겼다. 그곳 사장은 최근 귀촌했다. 고향이 이곳으로 스무살까지 살다가 도시로 나간 후 이제 돌아왔다고 한다. 여기서는 그 뭐지 한 잔에 얼마짜리인 루왁을 비롯해서 원숭이 커피, 족제비 커피, 다람쥐 커피 같은 익히 알려진 희소품 커피를 판다. 그래서 카페 <블로그>와는 손님이 크게 겹치지 않아 멀더가 안심하는 분위기다. 여기 찻집의 이름이 좀 길다. <친구와 사랑하는 연인이 같이 물에 빠졌습니다. 누굴 먼저 구하실 건가요? ...... ...... ...... 왜 둘이 같이 있어?> 이랬다. 인테리어, 간단하다. 다 흰색. 그리고 어떻게 저런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어느 남자의 표정 사진 하나. 갸우뚱, 어째 저런 일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절묘한 표정이다. 그게 다다. 여기 사장 이름은 스탐이다. 스탐과 나는 친구 먹기로 했다. 우린 금방 친해졌다. 많이 친해졌다. 알고 보니 사람이 썩 괜찮다. 물론 어느 범죄자나 작품에 나오는 악인일지라도 대화 좀 섞어보면 정감이 느껴지고, 말도 통하고, 사람 괜찮네 괜찮아 그런 기분이 아예 들지 않기는 어렵겠지만 스탐은 내가 봤을 때 앞날을 보고 사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친구 같았다. 편했다. 호인이었다. 또 웃겼다. 막 카페에서 카우보이 몸놀림으로 여자를 꼬시는 재주가 있을 것 같았다. 스탐은 일단 경험이 풍부하고, 아는 거도 많고, 얼굴이 어디산 다비드라 하기엔 좀 약하지만 그래도 준수하고, 성격 좋고, 말발 좋고, 돈도 많고, 인심도 후했다.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한마디로 팔방미인이었다. 최소한 스탐이 도시에서 죄를 짓고 낙향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의 말은 시골로 내려왔다고 하는데 도시에 사업체와 가정이 있고, 여긴 가끔 들리거나 쉬었다 가는 것 같았다. 나는 멀더와 스탐과 또 다른 동네 아저씨와 아가씨들과 즐거운 시절을 보내다가 어느 날 찻집 <친구와 사랑하는 연인이 같이 물에 빠졌습니다...... (너무 길다)...> 에서 스탐에게 한소리를 듣게 됐다.
   「(넌) 그게 왜 궁금하냐?」
   왜 궁금하냐고? 왜? 아니... 난... 그저... 아니지. 그게 왜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어? 그게 뭐 어때서? 당연히 궁금해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라고 나는 되묻지 않았다. 스탐도 개인적으로 정신장애는 아닐 테지만 뭔 트라우마 정도는 있겠지만 그보다 그 말을 들은 내 충격이 좀 커서 나는 부쩍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뜻 궁금증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가 정말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렇게 말했을까,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내가 뭐 실수한 것일까, 내가 잘못한 일이 뭐지, 그는 왜 말을 돌려서 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톡 쏘듯이 말했을까, 그가 그 말을 하던 때 그의 표정은 마치 당시 우리가 앉아서 원숭인지 고양인지 그들과 연관된 커피를 마시는 스탐의 찻집 <친구와 사랑하는 연인이 같이 물에 빠졌습니다. 누굴 먼저 구하실 건가요? ...... ...... ...... 왜 둘이 같이... (찻집 이름 더럽게 길구만)> 에 있는 실내장식에 사용된 인물 사진과 완벽히, 정확하게 똑같았다.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그의 전부인을 만나보지도 않았고, 그의 현부인이 전부인인지도 모르고, 뭔가 껄끄러운 질문을 던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스탐 너는 왜 내게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너가 그렇게 심상치 않은 눈빛을 건네면 난 뭐가 되니? 어? 내가 거기다 대고 그렇게 쳐다보지 말라고 당당히 발언할 수 있겠냐고. 그는 오히려 눈동자를 마주친 거 보다 더 어떤 연출력과 효과가 뛰어난 기술을 썼다. 즉 약간 고개를 틀고 허공 어디쯤에 시선을 두고 뭔가 골똘히 추측하는 듯한 연기력, 그건 갈고 닦았다기 보다는 즉흥적으로 나온 듯 했다. 간략히 둘의 감정을 말하자면 기분 나쁘기는 피차일반이었다.
   그러면 째깍째깍 시간을 불과 얼마 전으로 되돌려보자. 그가 대체 뭔 얘기를 하고, 그 전에 우리 사이가 얼만큼 돈독해졌는지를 따져보자는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스탐에게 칼칼한 음성으로 답변하지 못했다. 그 말이 뭐가 어쨌다고, 그런 말 할 수 있지 않냐고, 우리 사이가 이 정도냐고, 곡해하지 말라고. 되려 왜 네가 정색하냐고, 혹시 마이크를 뺐어서 화난 거냐고, 박수만 쳐야 하는데 박자를 끊어서 맥이 풀리냐고, 우리가 너와 내가 그런 말 할 만큼 친해진 거 아니냐고, 남자 대 남자로 얘기 한번 해보자고, 할말 있으면 하라고, 뭐가 불만이냐고, 무엇보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 말라고, 내가 당황해할 걸 뻔히 알면서 왜 그러냐고. 나는 바로 이렇게 답변하지 못했다. 뻔히 알면서? 그는 그걸 뻔히 알았을까 몰랐을까? 모른다면 왜 몰라?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어쨌든 스탐과 나는 친해진 지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동네에서 같이 운동 모임도 나가고, 집에도 서로 놀러가고, 수많은 얘기를 공유하며, 술 취해서 어깨동무도 하고, 같이 자동차 범퍼 위 앤블럼에 대고 또 바퀴 로고에 대고 오줌도 같이 누었다. 마라톤 대회도 한번 같이 나갔다. 이삿짐도 날라줬다. 경조사도 참석했다. 같이 술 먹고 헤어진 다음 차에서 잠을 잔 후 나 혼자 집에 가다 음주단속에 걸려서 면허 정지도 됐다. 게임도 같이 하고 근처 도시로 원정 가서 어느 골목길 바에 들어가서 여자들을 물색하고, 선정하여 꼬시기도 했다. 결과는 안 좋았다. 그러나 볼을 부드럽지도 다정스럽지도 않게 어루만져지게 되지는 않았다. 곧 발끈하겠다 앙칼진 목소리 튀어나오겠다 싶으면 먼저 알아서 빠졌다. 어디보자, 또 뭐가 있드라. 여행도 둘이 한번 갔다 왔고, 같이 등산도 하고, 소액이지만 돈거래도 해봤다. 깔끔하게 받을 생각없이 서로 빌려주고 빌렸는데 실망할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돈 잃고 친구도 잃은 게 아니라 원금에 이자는 물론이요 우정도 한층 더 공고히 다졌다. 나중 딱 1번에 크게 당할 수도 있는 희박한 가능성은 일단 배제한다. 생일 선물로 그는 내게 어떻게 알아가지고 자코메티 수제자가 만든 마네킹을, 나는 그에게 황금물고기를 선물해주었다. 자코메티? 믿거나 말거나, 는 아니지만 꽤 수작은 되었다. 선물한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급하면 회전율이 보장되는 미술품으로 손에 쥐게 될 액수도 쏠쏠하고 꽤 짭잘할 것으로 예견되었다. 아무튼 같이 막 이상한 데도 같이 가고, 같이 이상한 취미를 즐기고, 같이 이상한 뭔가에 심취하지는 않았지만 남자 대 남자로써 짧은 시간에 큰 우정을 쌓았다. 우리는, 그래 우리는 이란 말을 써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 그 말을 듣기 전에 이미. 게다가 스탐의 엄마와 아빠와 여동생은 물론 부인과 아들과 딸도 모두 만나고, 전-직장동료와 현-직장동료는 물론 스탐의 각계 각층 친구들도 만났다. 그건 기본이었다. 그 말을 듣기 전에 이미. 그런데 그는 내게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게 왜 궁금하냐고! 그런 말 왜 하냐고! 뭔 속마음이 있냐고! 그가 했던 말이 정확히 그 말 맞나? 그건 뭐 하러 묻냐, 라고 했던가? 아무튼 묻지 않아야 할 어떤 금기 사항을 물었던 듯 하다. 그의 반응으로 보자면! 그는 그럴 만 했으니까 그랬겠지. 그러나 그건 스탐의 기준이다. 내 기준에서는 남부끄럽지 않았다. 떳떳하다. 불온한 상상도, 불미스런 공상도, 야단 맞을 몽상도 전혀 없었다.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왜 나는 죄진 사람이 된 듯 한 감정을 느껴야 할까? 사람 미칠 노릇이다. 참말로 환장하겠네. 평등하다가 갑자기 2인자가 된 기분이다. 2인자가 원래 편하고 좋지만 넌 내게 첫 번째 친구가 아니야, 그런 말을 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사소한 오해가 내게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반복되니까. 아, 스탐과 내가 친한 사이가 됐다는 건 설명했으니까 당시 그가 어떤 말을 했는가를 알아보자.
   그는 내게 고생했던 일과 특수부대 이야기─전역하기 한두 달 전에 동기 끊은 1달 차이 동기의 집에 놀러갔을 때 자기가 앉은 동기의 침대에서 동기의 전-여자친구가 있다 갔네 그러고 바로 헤어졌네─또 스프레이 이야기─자기는 친구 1과 동거할 때 지휘 학원에 다녔고 목표가 있었다, 환상교향곡 악보를 즐겁게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그리고 유난히 고전음악을 많이 들어서 CD를 모아놓은 상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상자에 뭔 조그만 스프레이가 있길래 친구 1에게 그게 뭐냐고 물어봤지만 친구 1도 어물쩍 넘어갔지만 짐작은 했지만 자기에겐 목표라는 게 있었다, 도시에서 친구 2가 내려와 그와 친구 1과 친구 2 이렇게 셋이서 동거를 한 적도 있다, 나중 그는 친구 1과 친구 2가 한 여자를 좋아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친구 2와도 친했는데 그에게 듣기로 그 한 여자가 얘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스프레이에 대해서, 또 대학교 구내 식당에서 봤던... 그 인연은 그냥 인사만 하는 사이가 아니었드라 그... 그..게 가능하구나 그렇게도 되는구나 그런 실소는 드물지가 않더라─또 여러 무용담들을 들려주었다. 게다가 여자 이야기를 많이 했다. 왕비와 애들 이야기도 물론 했다.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헤어졌다. 어떻게 다시 만났고 어떻게 살고 있다 까지. 마누라 엉덩이를 토닥이며 쉬고 싶은데 기막힌 커피가 입수됐다고 다른 도시에 갔다와야 하네, 자기는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 항상 마법에 걸리네 부인은 뭐라하네 어쩌네 또한. 그러다 그곳 <친구와 사랑하는 연인이 같이 물에......>에 어느 아가씨가 찾아왔다. 그녀는 속된 말로 첩, 보통은 정부, 좋은 말로 연인이었다. 바로 스탐과 밀애를 즐기는 사이였던 것이다. 이미 스탐은 그녀에 대해 다, 정말 다 얘기해주었다. 직업은 뭐고, 그녀가 무슨 말을 했고, 어디서 만나고, 만나서 뭘 하고, 뭘 할 때 어땠으며, 최근에 언제 만났고 얼마 주기로 만난다고. 스탐은 그 여러가지를 모두 다 말해주었다. 또 그녀와 비슷한 분신이 각처에 있다고. 어디까지가 뻥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실체 하나만으로 나머지는 의미가 없어졌다. 나는 찻집에 찾아온 그녀를 보고 속으로 아 얘가 걔구나, 스탐 말처럼 눈부실 정도는 아닌데 스탐이 왜 그런 말을 했지, 그녀가 만날 때마다 레이저건으로 스탐을 조종하나, 오 뜨겁다 뜨거워, 남자들이란 또 여자들이란 그리고 남녀 사이란, 그녀는 혹시 우리 얘기를 들었을까, 멀더가 표정 관리가 안 되는데 점심 먹은 게 탈 났을까, 우리랑은 별로 할 얘기가 없는데 여긴 왜 오라고 했지,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대충 상황은 이랬다.
   그런데 난 왜 스탐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했을까? 아직도 원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뭐 심한 말을 건네지도 않았는데. 이번만 그런 게 아니다. 거의 비슷한 일을 옛날에도 겪었다. 동창이며 동업했던 친구에게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엇비슷한 일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내 말 뿐만 아니라 내 행동 역시 탐탁치 않나 보다. 최근 또 스탐의 친구와 나는 친구 먹었다. 스탐의 친구와 나는 친구가 됐다. 그 친구에게 또 나는 역시나 한소리 들었다. <늬가 그걸 왜 하냐고!> 늬가 그걸 왜 해? ...오오, 저런!... 그거 장난 아니다. 장난이 아닌 이유는 곧 설명하겠다. 어찌 됐든 간에 내 친구에게, 자기의 여자친구나 부인에 대한 안부랄지 <부디...> 같은 겉으로 표시되지 않는 내 의중이 또는 그에 대한 어떤 잠재적 기표가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다. 크게 언짢아 하는 것 같다. 상대편에서는 신경쓰이니까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하고 가지만, 내가 지금 이렇게 비리비리하고 3류 소설가가 아니라 우락부락하고 거친 운동을 하고, 카리스마 쩔고 가죽점퍼를 입고, 재력은 기본이고 화술도 기가 막힐 정도라면 어땠을까? 전자가 그와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그 대답을 대체로 어른들은 알고 있다. 자, 판돈을 걸 시간이 돌아왔다. 자-자 날이면 날마다 볼 수 있는 쇼도 아니고 날이면 날마다 찾아오는 서커스단도 아닙니다요. 암표도 구하기 어렵답니다. 그러나 객석에서 구경만 해도 괜찮다.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여러 의견을 보아 하니 그래프 모양새가 각이 안 나온다. 그렇지만 우습지만 거두절미하고 질문에 알맞는 답을 내놓자면 이와 같다. 내가 헐크에 엑스맨에 슈퍼맨에 백지 수표로 코를 푸는 사람이라면 그분들은 그와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전자와 후자는 친구 관계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이 못 만난다. 만나더라도 친구가 아니라 상하 관계나 직접 대면하지 않고 중간에 은행이나 서류, TV, 핸드폰, 소셜 네트워크 같은 매개체가 가로놓여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전자와 후자가 친구라고 할지라도 대화의 진행 방식이 그와는 달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컷의 암컷 보호 본능, 을 이렇게 겪어 보면 이해는 된다. 동네 산책할 때 개들도 똑같은 행동을 보이니까. 그야말로 완벽하게!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다만 한쪽은 불편할 뿐. 그럴 땐 받아쳐야 한다. 늬가 친구냐고, 이런 삐─ 삐─! 그래도 상황을 봐가면서 받아쳐야 한다. 받아치는 게 대화에서는 중요하다. 받아쳐야 해! 이렇게. <그래. 그래, 좋아. 바로 그거야. 바로 그거라고. 그럼 그래야지. (인상 팍 쓰면서, 내 이론으로 상대방을 마음을 휘어잡아야 한다. 곧 말로써!) 오라~ 이제야 반응을 하시는군. 난 그걸 원했어. 나는 바로 그걸 원한 거라고. (골 세러모니) 있잖아~ 너도, 너도 말이야 말이야. 사나이의 순정이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단 말이야 말이야. (손가락 딱!) 바로 그걸 끌어내기 위해 내가 악역을 맡은 거라고 거라고. 알겠어? 어? 나는 뭐 그게 좋아서 그런 줄 아냐 아냐? 어? 나는 그런 대접받는 게 어디 좋을 줄 알아 알아? 내가 어디 바보도 아니고 미친놈도 아니고 (손 모양 그것) 내가 어딘 머저리도 아니고 그게 좋아서 그런 말 하고 그런 행동을 하겠냐고? 어? 넌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설정에 쏙닥 속아 넘어가냐? 이런 순진한 놈 같으니라고. 저런~ 머저리 같은 놈을 봤나. 괜찮아 괜찮아. 그렇다고 고개 숙일 거 없어. 상남자의 야성을 확인했으면 된 거야. 그걸로 목적은 달성했어. 그럼. 자, 이제 슬슬......> 바로 이렇게! 이 장면에서 남자는 남자가 아니라 수컷이다. 수컷! 그렇다고 남자가 개란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개가 아니란 말도 못하겠다. 나도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와 비슷한 글을 쓰고는 있지만.
   앞서 말한 어떤 말이 장난이 아닌 이유를 재차 설명할 차례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꼭 뭐 이상한 걸 가르치고 세뇌시키는 느낌이 든다. 동기부여, 오히려 내가 어디 가서 스파르타식으로 배워야 하는데 말이다. 정난이 아닌 이유. 그것은 사람 성격 때문이다. A 남자 유형은 어떤 장난은 못하고 성격 때문에 그랬을 뿐더러 앞으로의 행동 또한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보통 이런 꽈는 1 대 1이나 1 대 다를 추구하는 성향을 보인다. 1 대 다, 에서 '다'의 최대값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설에 의하면 대략 몇가지 구체적인 수치가 있기는 있다. 3000, 1만, 4만이라고. 물론 세월이 둘 사이에 개입되면 변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절대로! 비슷한 상남자라도, 똑같은 마초라도 이 꽈는 나중 이런 말 절대 못한다. 친구에게, <(내 부인) 늬가 데리고 살래?> 같은. 또 이 꽈는 맞바람, TV 연속극 아니면 남의 일이지 내 일은 못될 것이다. 형식은 유지하고 서로 자유롭게 사는 것, 역시 어려울 것이다. 물론 세월이 둘 사이에 개입되면 변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절대로! 그런데 쓰고 보니 어깨에 뽕이 들어간 거 같다. 내가 넣지는 않았다. 뽕을! 삐─도 모르면서 완전 건들건들 아는 척 한 거 같아 두가지 기분이 동시에 든다. 첫째, 자괴감. 둘째, 뭐가 뭔지 모르는 혼란스러움 즉 초딩들 티격태격의 대명사인 아는 척 하면 곧바로 <나대지마> 바로 그것! 요약컨데, 그냥 뻔대기 앞에서 주름 잡은 것에 불과하다. 잠깐, 어디선가 <여자는...> 이럴 것 같아서 첨언하자면 여자는 또 여자대로 다 고충도 있고 허물도 있다. 한 여자가 말한다. 자기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성을 선택할 수 있다면 여자로 태어나지 않겠다고. 여자는? 여자는, 좋아하시네! 남자와 여자는 차이는 있으나 방식이 다를 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이런 말 자주 쓰면 재미없다. 여자는, 남자는, 우리는, 내가 봤을 때, 솔직히, 뻔한 뻔자다, 늬 말마따나! 여자는 이랬다. 내 앞에서 손 뻗으면 닫는 거리에서 내 일행과 뭔가 어떤 뭔가를 하고 나서 돌아서서 가기 전에 메롱~하며 가는 사람, 여자다. 손 뻗으면 닫는 거리에서 내 지인과 밀담을 나누다가도 내게 당신께 그대에게 그분에게 홀딱 반하고 윙크하고 마음을 송두리채 빼앗기며 앞으로 드라마를 재현하는 것도 바로 여자다. 여자, 잘 아시지 않는가! 여자는 물론 사랑까지! 여자는? 참아주시라. 남녀 사이는 알 수 없다. 끝도 없고 시작도 불투명하다. 실체마저 없다. 남는 것? 뭐가 있을까, 모르겠다. 남기는 남나, 알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의 가능성은 모두 열려있다. 그게 남녀 사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그 주제를 귀찮게 하는 것이다. 누구는 그것에 홀렸다고 깨어나서 마치 남의 일처럼 저주를 퍼붓기도 하는 것이다. 너무도 중요한 일이니까. 그래서 예술에서 일부는 그렇게 몸에 관한 것에 매달리기도 하고. 아니라면 뭐 미쳤다고 그렇게 다들 하나 같이 사랑을 노래하겠나. 뭐 미쳤다고! 적어도 대체로 사람은 안 변하고, 대체로 사랑은 변한다. 슬프지만, 그렇다. 예외는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앞서 나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모두 순 엉터리 학설이라는 것이다. 다 구라고 뻥이고 거짓말이다. 학설은 뭔 학설? 어디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호박도 뭣도 아닌 뭔가 유명무실하고 이상한 무언가를, 어떤 포만감을 느끼게 만드는 당근과 채찍을 가지고서 조바심과 동경심과 궁금함과 흐릿한 기대감만 꿈틀거리게 만드는 제법 길다란 창에 불과하다. 모든 창을 막을 수 있는 방패를 뚫지 못하는 모든 방패를 뚫을 수 있다고 우기는 창. 길기만 엄청 길다. 고기는 못 잡어. 그것은 정말이지 허겁지겁, 얼렁뚱땅, 통상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 이론으로써 찻집에서 나누는 말을 공책에 옮겨놓은 것과 비슷할 것이다. 까보면 원페어조차 아니지. 그 와중에도 자책을? 참 가지가지 한다? 그런 말 들어도 싸다.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지금 나는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왜냐하면 독자에게 따끔하게 혼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늬가 친구가 없지) 고집불통? 인정한다. 뭣 모르는 사랑의 포로를 타의적으로 경험하시는 그분들의 마음을 혼탁하게 만들고 들들볶고 꼬신 죄를 인정하겠느냐? 네, 마님! 죄인은 고개를 들라. 내 적선한 셈 치고 앙금을 가라앉히고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할 것이니 변명이 있다면 마저 털어놓거라.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하지 않느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겠지만 어디 들어나 보자. 너도 사정은 있을 것이고, 위신이 뭔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니 순조롭게 남은 이야기를 마저 풀어놓아 보거라. 단, 나는 그런 걸 바라지는 않는다. 그런 거? 바로 이런 거. <뿅갈 정도로 멋진 뭔가를 해 봐!> 자못 무슨 뜬금없는 사연이 나올지 궁금하구나. 그 정도 스스로 가택감금 했으면 적어도 삼류소설 하나 정도는 내놓아야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더냐. 자, 이어서 시작해보거라.
   짠, 쿠궁쿵 팍팍 픽픽 폭폭 푹푹 푸쉭푸쉭 파바박 퍽 디딕디딕 드기득 드기득 퍽!
   아, 그러고 보니 스탐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엇을 물어봤던가, 그걸 얘기하지 않았군요. 그때 무슨 말을 물어봤드라, 썩 개인적인 걸 물어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야한 질문도 아니었답니다. 어렵거나 기이한 내용도 아니었다는 건 분명해요. 그러나, 그러나 정확히 뭘 물어봤는지 바로 그것은 생각나지 않는답니다. 그럼요. 하긴 그러면 그게 생각난다면 내가 여기서 꾀죄죄하게 삼류소설이나 쓴다고 허세 부리며 종이를 찢고 구기고 씹고 뭉개서 집어던지겠습니까? 네? 펄새 어디서 호시절을 보내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겠죠. 나도 다 속이 있고 꿈도 있다구요. 내가 뭐 바보도 아니고. 대강 짐작은 하지만 말 못할 내용도 아니고, 재밌거나 민감한 사안도 아니라서 여기서 줄이는 게 낫겠어요. 김새니까요. 그럼요.
   빠라바밤 빵빵빵 띠용띠용 숭그리 당당 숭당당 핑글핑글퐁글퐁글 푱푱푱 피욱피욱 퍽퍽퍽!
   앗, 내가 어디에 홀린 것일까? 소설을 쓰다가 갑자기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달려가서 요괴의 구술을 대신 필기했었던 듯 하다. 그건, 잠시 썼던 글은 내가 쓴 게 아닌 것 같다. 이제 다시 글을 써야겠다. 나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글이 잘 써졌던가 안 써졌던가, 잘 기억나질 않는다. 전에도 매번 이랬다. 작정하고 뜻을 세우면 청운의 꿈을 품으면, 이거 해야겠다 뭐 하고 싶다 어느 분야에서 최고가 될 꺼야, 라는 각오는 어딘가로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것은 끝내 꽝으로 종결된다. 소설을 쓰기만 하면, 뭔가 미친듯이 관심가는 무언가에 몰두하면 뭐든 될 꺼 같지만 주로 처음의 상상만 그렇다. 그래도 아주 드물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괜찮다. 지금은 그분이 돌아가셨으니까 뭔 얘기를 했던지도 모르겠고 기분이 다시 우울해졌다. 이젠 조증도 나에게로 잘 찾아오지 않는다. 아니다. 언제 만나기라도 했었나 미심쩍다.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힘이 들었지만, 이제는 지금도 어둡고 힘이 든다. 뭘 해도 재미가 없고 글이 잘 안 써진다. 내가 입만 뻥긋 하면 사람들이 매번 깜짝깜짝 놀랄 것 같지만 정말 놀란다. 재미없는 글만 계속 쓰는 거 같아 그런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그동안 내가 만났던 남자들과 비슷해진 듯 하다. 닮아가는 것 같다. 흉내내는 걸까? 모르겠다. 따라하는 걸까? 이미 숙달 끝났다. 응용에 이어 고난도 단계로 접어들었다. 동조 현상이라고나 할까? 아예 판박이다. 나도 말이 별로 없다. 말하기가 귀찮다. 할말이 없으니까 글도 안 써진다. 원래 내성적인 것 같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어느 다과회에 나중 합류했는데 나 같은 남자가 있다, 서둘러 피하는 게 상책이다. 나는 대체로 입이 무겁지만 또 말할 기회가 별로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입을 뻥긋 하기는 한다. 내가 입만 뻥~끗 하면 큰일 난다. 내가 입만 뻥~끗 하면 큰일 날 사람 많다. 그래서 일부러 글이 안 써진다고 하는 거다. 내가 입만 뻥~끗 하면 하는 말은 긴말 하기 귀찮으니까 주로 이렇다. 내가 최고야! 너는 최고가 아니야! 웃기시네! 좋게 꼴찌권이나 탈출해라! 이런, 젠장! 이렇게 한마디만 하고 끝까지 침묵해야 한다. 나는 과묵한 남자니까. 남자 중의 남자니까. 수다? 싫어한다. 1번에 1가지 일만 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에는 일상적으로 다중 작업을 알아서 잘 한다. 그 중요한 순간이 어떤 순간일까? 어떤 순간이지? 오늘... 시간 있어요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원래는 시간이 없지만 많이 없지만 어떻게 없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떡한담 일단 질러? 커피를 마시며 책 읽기. 걸으면서 생각하기. 그녀와 데이트를 하면서 그녀를 생각하기. 보고 있어도 보고 싶기. 새로 사귄 친구나 스탐이나 멀더에게 연락을 받고 여자들이랑 있다고 해서, 분위기 좋다고 해서 딱 어디에 갔는데 그곳에는 바로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어. 그것도 술 취해서 있던 아가씨들도 다 쫓아버렸어. 나중에 온 남자, 이런 삐─삐─ 수증기 푸~쉭!
   나는 뭔가에 씌여 그분으로 빙의 됐다. 오, 몸도 마음도 그분으로 탈바꿈했다. 나는 그분이다. 오오, 아아! 나는 자존심, 엄청 세다. 호불호, 확실하다. 의견, 분명하다. 떠보는 대화 방식, 좋아하지 않는다. 풍자와 조롱과 조소, 약간씩 잘 못 알아먹는다. 따지고 보면 약간..도 아닌 듯 하다. 모를 땐 어정쩡할 땐 그냥 말 안하면 된다. 동물원? 싫어한다. 아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다시 말하자면, 솔직히 혐오한다. 애들이 좋아하니까 강아지 머리도 쓰다듬고 고양이에게 야옹야옹, 그들의 언어를 흉내내 보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애들 때문에 하는 거다. 콱 그냥 발로 차버릴까, 그런 생각까지는 안 한다. 아니, 한다. 생각과 달리 행동은 점잖다. 미술관? 연애할 때나 갔지 사람들이 거기 뭐하러 가는 줄 모르겠다. 거기 가면 짜증난다. 재미 하나도 없다. 스포츠는 열광한다. 차도 바꿔야 하는데 이번에 집 사고 부인에게 가게 하나 차려주느라 여유가 없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싸워서 져본 적인 단 한 번도 없다. 견적 보고 꼬리 내린다. 그게 현명한 거다. 안 그러면 인생 골치 아파진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 최후에 웃는 자가 승자다. 그러나 나는 겉으로 말은 안 하지만 몇몇 존재하는 내 팬들에게는 말한다. 나는 전설적인 텐미닛이라고. 세상 모든 여자까지는 아니지만 어지간한 여자는 거의 다 꼬실 수 있다. 것도 딱 10분만에. 10분도 많다. 5분이면 끝난다. 전화번호는 그냥 스치면 얻는 거다. 그런 기본을 우리쪽에서는 취급하지 않는다. 고수들에게도 기본은 중요하지만 걸음마를 논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나도 이제 은퇴했다. 그쪽 세계에서. 나도 관심이 시들어진 거다. 어찌되었든 나는 지금까지 싸워서 져본 적이 단 한 번, 단 한 번도 없다는 거~! 그렇지 그거지 전적! 문학? 옛날에는 그녀에게 달콤한 말을 속삭이느라 급하게 제목과 줄거리 위주로 외우기는 했지만 문학도 불필요한 분야다. 남자에게는. 그건 쓸 데가 없다. 도무지 써먹을 데가 없다고. 게다가 그건 다 뻥이다. 뭔 포터? 동네 코흘리개 꼬마들이나 좋아하지 그게 뭐야 애들처럼. 애들도 동요, 잘 부르지 않는다. 최신곡을 듣고 저거 사줘 이거 사줘 그러지 동심도 다 옛말이다. 동화도 다 뻥이다. 책은 어쩌다 인문교양서 가끔 읽고 나머지는 다 쓰레기다. 나머지는 영화처럼 다 오락물이다. 보든 말든, 읽거나 말거나,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봐도 별 도움 안 된다. 다 아는 얘기들. 짜집기한 글들. 수준 낮은 글들. 그러나 여성잡지를 부인이 읽으면 못본 척 한다. 고전은 가끔 읽는다. 휴일이면 집에서 낮잠 자다가 리모콘으로 TV 채널이나 돌려야 하는데 애들과 부인은 자꾸 어디로 가자고 한다. 강아지도 막 나한테 친한 척 한다. 내 발에 오줌이나 안 싸면 다행인 녀석이 말이다. 귀찮다. 가기 싫다. 그러나 어른이니까 할일은 한다. 차에서 또 뭔 바람이 불었는지 마누라가 오페라 아리아를 듣는다. 나도 바그너나 모차르트를 드물게 듣기는 하지만 그건 정말 드문 일이고, 고전음악회? 마누라랑 애들 때문에 가는 거지 그거 만큼 답답하고 정말 짜증나는 일 없다. 나는 왜 모든 일이 귀찮고 짜증나는 것일까? 내 친구에게 들어보면 자기는 나와 약간은 다르다고 한다. 자기는 뭘 해도 재미없고 글이 잘 안 써진다고 한다. 나도 인생이 심심하니 이해는 간다. 나는 한적한 곳이 좋다. 사람들 북적이는 번화가? 정신없다. 짜증난다. 거기 끌려가면 미칠 것 같다. 독신 생활을 즐기는 친구가 부럽다. 비서에게 연락하지 말랬더니 휴일에 자꾸 연락이 온다. 여자들이란! 나는 내 사생활을 친구들에게 다 떠벌리며 웃고 떠드는데 여자들은 그런 것 같지 않다. 아무리 친해도 내밀한 것 정말 중요한 부분은 쏙 빼놓고 말하지 않는 그녀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친구와 그녀들이 생각하는 친구는 다른 것 같다. 그녀들과 어울리는 직업적 습성 때문인지 몰라도 친구 중 한 명이 참 거슬린다. 내가 바깥에서 만나는 여자 얘기로 좌중을 휘어잡고 있으면 꼭 녀석은 중간에 내 마누라 안부를 묻는다. 즉 살짝 비켜가는 구름을 올라타지 않고 구름을 모자로 쓴다. 로켓에 탑승하지 않고 4차원을 얘기하는 놈이 있다. 아주, 짜증난다. 협주곡에서 독주 중인데 카덴차에 끼어드는 것 같다. 또 내 마누라는 친구들 가운데 유독 A와 B를 좋아한다. A와 B 모두 흐리멍텅하고, 사람은 좋아도 별로 남자답지도 않은데 왜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통 모르겠다. 모두 오래되고 편하고 친한 사인 건 맞다. 결혼 전부터 연애할 때부터. 그러나 내 앞에서 마누라가 A와 함께 내 흉을 보면 짜증 엄~청 확 돋는다. 콱 뭘 집어던질 수도 없고. 마누라가 B에게 수다를 떠는거야 그렇다 쳐도 B는 듣기만 할 것이지 여기서 말발을 왜 푸는지 뭔 아재 개그를 공부했는지 참으로 신경쓰인다. 이게 끝일까? 아니지. 그러면 재미없지. A와 B의 있는 흉 없는 흉을 마누라에게 속닥속닥, 이러쿵저러쿵, 쫑알쫑알, 미주알고주알 알려주어 험담의 태산을 만들어야겠다. 그게 처음은 아니다. 아 때가 되었구나 라고 느끼면 묵묵히 수행하는 농번기나 여행과 같은 드문 행사에 불과하다. 살면서 중간 중간 그래야 속이 시원하지 안 그러면 소화불량에다 밤에 잠도 잘 오지 않는다. 나중 마누라가 물어보면 A와 B 모두 이직하고 이사갔다고 해야겠다. 집사람은 집에서 고상하게 꽃꽂이를 하고, 세련된 자태로 책을 읽고(뭐 잡지?), 우아할지는 모르겠으나 고품격 상품을 쇼핑해다오, 부인! 나는 밖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최선을 다해 가족을 챙기며, 남자의 관심사에 몰두할 테니 말이오. 으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런데 이상한 게 이제 그녀는 가족이니까, 오래 되었으니까, 권태기든 침체기든 열애하는 시기는 아니니까 그녀를 좀 놔주고 서로 각자 따로 놀기도 해야 하는데 자꾸 신경이 쓰인다. 자꾸 신경이 쓰여. 나는 집에 오면 말을 별로 안 하는데 그녀가 나와 함께 지인들을 만나면 마누라는 엄청 좋아한다. 내가 먼저 나서서 멋진 이야기를 해서 적당한 웃음과 교훈 그 두 마리 토끼를 잡을라 치면 꼭 나는 중간 다음부터 이야기가 꼬이고 잘 생각이 안 난다. 이미 이때부터 흐름은 바뀐 거다. 마이크는 넘어가고, 타인의 얘기에 분위기는 들썩들썩, 시끌시끌 폭소 왕국이 따로 없다. 그게 대체 뭐가 웃기다고 막 웃다가 눈물을 흘리고 콧물도 흘리고 얼굴 근육에 경련이 일 정도고 아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모두 마음에 안 든다. 빈정 팍 상한다. 짜증 완전 돋는다. 그러나 겉으로는 웃는다. 다행히 내가 가짜 웃음에는 일가견이 있다. 내가 봐도 나는 완전 삐져서 여간해서는 응어리가 풀릴 것 같지도 않다. 저 인간들 원래 어떤 인간들인지 마누라에게 다 얘기해줄 테다. 마누라는 또 어디 모임에 같이 갔는데 한두 번 얘기했으면 됐지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한다. 당연히 영화배우니까 멋지고 잘 생기고 자상하고 음성도 그윽할 텐데 뭔 어학 공부하듯이 막 구간 반복이다. 완전 짜증난다. 이거 정말 부부동반 모임을 확 때려치울 수도 없고 답답하다. 내 존재감이 바닥이다. 아, 그 모임에서는 운동을 하지 않는다. 운동을 하면 표정 관리 안 되는 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아는데 계속 운동을 하자고 우긴다? 그건 엿 먹으란 소리 밖에 안 된다. 그걸 대중의 삶으로 의미를 확장해보자. 사는 동안 내내 엿만 먹이는 인간은 뭘까? 대략 악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사는 동안 내내 (악의가 아니라 선의로) 타인에게 엿만 먹이고, 그와 동시에 사는 동안 내내 (악의가 아니라 선의로) 타인으로부터 엿만 얻어먹는 부류는 뭘까? 더 적합한 명칭이 있겠지만 불완전하지만 조심스럽게 하나 꼽자면 괴물이 아닐까? 작품에서 수없이 주제로 다루는 괴물. 숨어 사는 괴물도 있고, 적응하면서 평범하게 사는 괴물도 있고, 자기가 괴물인줄도 모르는 괴물도 있고. 많거나 적거나 드러났거나 드러나지 않았거나 괴물은 이방인라는 개념과 그 정체성의 일부분을 공유한다. 이방인, 이방인의 종류는 또 얼마나 많은가. 살기 좋기 때문에 아름다운 매력이 있기 때문에 또는 다른 이유로 텃새를 감내하며 새로운 곳에서 사는 사람도 이방인이고, 동성애자도 이방인이고, 왼손잡이도 이방인이요 그 종류는 엄청 많다. 아, 딴길로 빠지지 말고 주제는 내 얘기로 국한해야겠다. 지금 내 얘기를 하는 중이다. 나는 그 즐거움에 빠졌고. 또 주위에서 그런 소리도 들린다. 친구 한 명은 부인이 실제 불륜녀가 되어서 다른 방법이 아니라 그는 야구방망이를 들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른 후 그건 솜방망이라고 알려졌다. 오해가 있었다고 한다. 험한 세상이다. 거기서 나는 험한 세상을 잇는 다리가 되어야겠다. 아, 잠깐만. 여기서 잠시 멈춤. 구간 반복? 구간 반복! 오라~ 구간 반복! 나는 저번에 다른 도시로 출장을 갔다. 자동차가 아닌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했다. 거기서 일을 마치고 다른 친구들과 연락해서 친구 셋이 같이 내려오기로 했다. 친구 1이 새 차를 뽑았는데 녀석도 집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그런데 오던 길에, 이미 만나기 전부터 친구 1은 노래를 불렀다. 차 좋지 차 좋지! 고속도로에서도 시속 100km를 넘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차 좋지 차 좋지! 우리보다 늦게 가는 차가 한 대도 없다. 또 중간에 친구 1은 피곤해서 졸며 운전하며 졸며 운전하며를 반복했다. 교대로 운전하자고 해도 막무가내다. 차 좋지 차 좋지! 완전 짜증난다. 중간에 고속도로에서 조금 정체가 됐다. 왜냐하면 저 앞에 사고가 났었다. 그런데 사고 처리를 하고 교통 흐름을 원활히 하려고 정리도 다 됐건만 왜 차가 막힐까? 꼬집어서 말하기가 더없이 부담스럽지만 어른이니까 얘기하고 넘어가자면 이렇다. 지나가는 차량들이 그 현장이 어떤가 슥 둘러보면서 지나가기 때문에 차가 막히는 거다. 그게 뭐 어때서, 라고 묻지는 말아야 한다. 알만 하신 분이라면. 언어에 따라서 그걸 가장 짧은 단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가 꽤 있다. 2단어, 3단어가 책이 한 권 필요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여튼 친구 1은 운전대를 잡고 도시에서 도시로 천천히 계속 가면서 중간중간 구간 반복만 했다. 딴 거 없이. 그러면서 100세 할머니처럼 운전해. 야 졸지마 짜샤 라고 주의를 주면, 으흐흐 차 좋지 차 좋지! 완전 짜증난다. 얘도 딱 구간 반복이다. 차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찔러서 얘 앞에서 차 얘기 하면 그런 얘기 밖에 안 한다. 너네들 뭐 운전대 잡아봤어, 나는 잡아봤어. 어디 앤블럼에 오줌 눠봤어, 난 눠봤어. 뭐 해봤어, 난 뭐 해봤어. 주제가 차가 아니라 뭔가 뉴스와 관련된 거라면 잡혀갔을지도 모른다. 하긴 해킹 기술 관련해서 몇번 잡혀간 적인 있던 친구였다. 정신분석학계에서 하는 말이 가족이나 친구, 지인등 주변의 가까운 사람은 정신분석을 하지 마라고 한다. 하지 말기는 뭘 하지마? 단박에 왜 그러는 줄 다 보이는데. 친구 1의 얼굴, 아 우울하다. 살면서 여자들에게 관심을 못 받고 호감을 얻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을 것이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기 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 보다 더. 말발? 어디서 그 발음과 어법과 억양에다가 음성이 그 짝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어눌하다. 내가 여자였다면...... 아, 뒷목 잡을 일이다. 말을 잘 못해도 어리숙해도 충분히 미녀의 환심을 살 수 있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어리숙함에 가치를 두는 분들도 많다. 한데 이건 말 자체를 알아먹기 힘들고 억양도 정통 사투리도 아니고 완전 깡촌과 깡섬의 토속 억양이다. 어지간한 노력 아니면 못 알아듣는다. 세월이 흘러야 알아먹는다. 나도 처음 만났을 때 적응하느라 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다. 그외 나머지는 평범하니까 친구 1이 멋진 새 차를 사고 그래서 세상 모든 걸 얻은 기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 수 있다. 잠시나마. 이해 된다. 구간 반복, 아 그래서 그랬구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또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친구 1은 때와 장소에 따라 고고한 대사를 못 친다. 아가씨 아름답소, 보다는 꽃을 들고 그분들 꽁무늬를 쫓아 다니는 부류다. 부지런하게. 발바닥 땀나게 돌아다녀야만 겨우 관심을 받다니, 짠하다. 친구들과 있으면, 요즘 애들 맛있게 생겼드라 라고 한다. 사석에서 뭔 얘기를 못하겠냐마는 남자들은 안다. 남자도 종류가 있다는 걸. 단 몇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자기만의 공간에 오직 여자만 있는 부류, 사윗감으로 그것만 아니라면 괜찮다는 어르신들, 있을 것이다? 많다! 요리도 하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골프도 치고, 춤을 배우고,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멋진 카페에 가고, 낚시를 하고, 서점에 가고, 장비를 알아 보고 그 여러가지 가운데 이거 이거, 저거 저거, 각자 좋아하는 게 다르다. 그런데 답 안 나오는 분들이 있다. 오직 여자, 오직 도박, 오직 나만의 공간, 오직 여자! 바로 그 꽈다. 이런 친구들은 같이 시간을 보내도 할일이 없다. 할말도 별로 없다. 옛날 얘기만 주야장천 할 수도 없다. 여자 얘기만 사냥감 얘기만 계속 하거나 말을 들어주기만 해야 한다. 꼭 남자인 내가 신부 들러리 선 느낌이다. 친구로써가 아니라 일로써. 그런데 이 부류가 매우 드무냐? 또 그렇지도 않다. 뭐라고 말은 못하겠다. 짜증난다. 그래서 친했어도 그 부류는 잘 만나지 않는다. 걔네들은 또 끼리끼리 알아서 단짝을 찾게 되어 있다. 친구 1은 멋모르는 순진한 숙녀를 10번이고 100번이고 1000번이고 따라다녀서 사랑을 쟁취하는 남자다. 그러면 된 거다. 잡은 고기에게 밥을 주지 않는 건 그 다음 일이고. 그렇다. 냄비에 깔리는 책에서는 그렇게 얘기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는 속담이 있긴 하지만 요즘 남자들은 10번 찍지 않는다고. 그래서 슬픈 일이라고. 10번 안 찍는 남자가 없다고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어. 웃기고 까무라칠 일이다. 남자가 들끓지 않는 걸 서운해하는 거랑 뭐가 다르냔 말이다. 어장관리를 해야 하는데 물고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다는 건가? 순진한 청소년들 이런 거 읽으면 정말 그런 줄 안다. 뭐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상술이든 상도덕이든 그런 게 있으니 적당히 넘어가자. 영세 출판사 망할 수도 있다. 괜히 기억나서 문제다. 날 한때 품었던 남자가 날 사랑하지 않았다고. 비통한 일이라고. 그럼 뭐 지는 사랑이었나? 사랑받지 못한 것이 슬픈가 지금 그게 반복되어 슬픈가? 멍청한 년! 똑같이 다국적 성장 환경을 거쳤다고 자기가 카림 라시드인줄 알어. 사람에 따라 민감한 구석이 다 있다. 그것이 내게는 출신과 배경이다. 조금, 아마도 많이 감정이 과장되고 격해졌지만 나는 능력껏 다 갖췄는데 성장환경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서 그런 의미에서 너무 억센 표현이 나왔다. 왜냐하면 그것은, 출신과 배경과 환경이란 것은 어항의 성격과 용적과 변화 가능성을 결정짓고 한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남자들 개인사로 넘어오면 역린 같은 말을 또 때와 장소에 따라 슥 해주면 저절로 싹 넘어온다. 다 그러게 되어 있다. 언제 어떻게 어쩌다 나도 모르게 그 기술을 터득해버렸다 어쩔 수 없단 말이다. 그리고 남자 1은 언젠가 바깥 여자가 엮이냐 안 엮이냐 그 찰나에 또 이랬다. 남자가 태어났으면......! 그분이 싹 씌여서 딴 사람이 된다. 잘 아시지않는가. 이게 남자다. 안 그랬으면 공룡처럼 멸종했을 테니까. 친구 1은 책을? 당연히 싫어하지. 지성과 말발은 일반적으로 전혀 별개의 영역이다. 생각보다 상당히 동떨어졌다. 내가 봤을 때 절반의 글은 모두 말발이다. 남자가 이렇다면 여자는 어떨까? 여자는? 그냥 음악이나 듣자.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 그러나저러나 요즘 걱정이 하나 있다. 마누라가 내 친구 C를 좋아하게 됐다. 내 친구로서. 물론 나도 녀석을 좋아한다. 하지만 문제는 마누라가 친구 C를 무슨 유머 감각이 풍부하고, 언제나 숙녀 먼저, 근사한 음악만 듣고, 옷도 깔끔하게 잘 입고, 여자의 마음을 아주 잘 알며 챙겨주고, 기다릴 줄 알고, 맞춰줄 줄도 알고, 뭘 좀 알고, 여자의 마음도 알고, 신경써줄 줄 아는 뭐든지 다 맞춰주고 다 알 꺼 같고, 브레지어나 미네르바 같은 존재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문제다. 엄청 큰 문제다. 완전 짜증난다. 뭐랄까 막 어떤 궁금증을 유발하고, 사연이 있을 것만 같고, 눈빛은 동경심과 우수와 낭만을 표현한 듯 하고, 가슴에는 동심과 설레이는 꿈으로 가득찬 신비롭고 재밌고 자상한 그런 남자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를! 이거 이거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옆에서 듣고 흘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날이면 날마다, 같이 만났을 때는 만났을 데로, 안 만날 때는 또 생각난다면서 궁금하다면서 안 봐도 문제고 봐도 문제고, 어떻게 뭔 수작을 부렸는지 아주 멀쩡했던 여자를 홀려놨다. 완전 짜증난다. 이 자식이 이걸 그냥 콱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나랑도 친하고 내 친군데 나도 보고 싶기는 한데 내 삶이 내 존재감이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에 뭔가 해결책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심 끝에 생각해냈다. 내 해킹 실력을 과시하기로. 누군가 넌 최소한의 직업 의식도 없냐, 그럴려고 컴퓨터 언어를 배웠냐 라고 묻는다면 할말 없다. 누군가 는 모를테니 제 2의 자아와는 이번 한 번만 이라고 속닥속닥 알콩달콩 타협을 봤다. 안 그럴 수가 없었다. 부인 왈, 그분은 인생이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좀 본받으라고, 왜 그런 고급스러운 농담을 오빠는 못하냐고, 오빠도 운동 좀 하라고, 친구 C와 더 친해지라고 더 자주 만나라고, 이젠 친구 C도 우리 오빠라고, 오빠는 가을이면 가을 남자고 겨울이면 겨울 남자라고, 사진도 잘 찍는다고, 모든 일에 대해서 정말 섬세하고 사려 깊다고, 못 하는 운동이 없다고, 수영도 잘 한다고, 무엇보다 지성미가 넘친다고, 그런데 오빠는, 오빠는 뭔 가슴털 자라라고 발모제를 가슴에 바르냐고, 안 그래도 운동 부족으로 배가 남산만 하게 뽈록한데 그러면 어떡하냐고 그러니까 가슴도 나오는 거 아니냐고, 뭘 하더래도 부작용을 생각해야 할 거 아니냐고! 장난삼아 발모제를 가슴에 발랐을 뿐인데 심각한 정도는 아니고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여자로 변하는 건가, 나는 위기감을 느꼈다. 완전 짜증난다. 난 뭐 봄이면 봄 남자 여름이면 여름 남자 아니냐고. 완전 짜증난다. 나는 그렇게 무수한 핀잔을 들었다. 아주 일상이었다. 나는 태도도 품격도 습관도 취향도 인성도 참을성도 외모도 출신도 감각도 모두 내 그녀 마음에 차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내가 사는 도시에서 내 또래 가운데 소득 수준으로는 상위권이었다. 1%, 는 몰라도 5%? 10%? 15%? 아 점점 늘어난다 점점. 시골로 이사가야 할 거 같다, 어쨌든 그거 하나는 절반은 흡족하게 할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조차 그녀는 썩 내켜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녀석은 내 집에 놀러오면 꼭 마누라가 바가지 긁는 소리를 어떻게 똑같이 따라한다. 본 적도 없으면서. 둘이 궁짝이 완~전 잘맞는다. 그럼 난 어쩌겠나, 미치지. 오빠는 즉 C는 안목 있는 남자라고? 뭐 그럼 나는 안목 없는 남잔가? C는 뭘 좀 아는 남자라고? 난 뭐 뭣도 모르고 날뛰기만 하는 망아지에 망나니에 미친 개 같은 남자란 말인가? 아 나 이거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게다가 어느날 나는 완전 망가진 나를 느꼈다. 나와 부인과 친구 C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코털도 깎지 않고 지저분하고 남 생각도 않는다면서 부인이 나 보고 이랬다. 어디 가서 내 남자친구라고 하지 말라고. 정말 그녀 말대로 나는 어디 가서 나는 누구 남자친구입니다, 그녀는 내 여자친구입니다 라고 말하면 안될 꺼 같았다. 또 나는 태어나서 <성격 좋다>라는 말을 단 한 번도 못 들어봤다. 물론 앞으로도 들을 가망성은 거의 없다. 아예 포기했다. 그런데 녀석은 그냥 거저 먹는다. 아조 날로 먹어. 완전 짜증난다. 더군다나 나는 지금껏 내 외모에 반해서 넘어온 여자는 솔직히 단 한 명도 없었다. 또 그동안은 내가 매력이 있어서, 내 특유의 포근함 때문에 여자들이 많이 많이 정말 많이 넘어온 줄 알았다. 그런데 이쯤 되고 보니 나이가 드니까 이제는 알겠다. 그녀들은 모두 내 말발에 넘어온 거도 아니고 내가 재밌어서 만난 거도 아니고 그냥 잠시 놀았던 것에 불과했다는 걸. 내가 어떤 그녀를 찍은 게 아니라 그녀들이 처음부터 나를 선택한 것이라는 걸! 그녀에게 애초에 마음이 없었다면 뭔 발광을 하더라도 안 될 일은 안 될 있이었다는 걸! 양과 질을 따질 수는 없고 아무튼 내가 못 가진 것들은 걔는 다 가졌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마누라에게 나는 뭐 지겨운 기성품이고 녀석은 선망의 대상이며 꿈이고 마술사며 백마 탄 왕잔가? 나는 아예 가질 수 없고 터특할 수도 없는 걸 녀석은 그냥 타고났고, 그걸로 덤블링을 하고, 그걸로 저글링은 기본에다 여자를 꼬실려면 눈빛만 보내면 끝나고, 그냥 마음만 먹으면 그걸로 다 정리된다. 이게 뭐냔 말이냐. 이런 삐─ 삐─ 삐─! 심지어, 심지어 차마 글로 옮기고 싶지 않은, 옮길 수 없는 일도 있었다. 누군 뭐 내 여자를 나중 어떤 사연이 있든 마지막의 어떤 무엇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없냐고. 누가, 도대체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어? 그렇게 말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그냥 콱, 아 운동을 좀 많이 하셨다면 누군가 보고 있다면 뒷감당 안된다면, 말만 그런 것으로 말로만! 그럼. 그러고 넘어가야지 정말 여기서 한 얘기를 저기서도 하라고? 계면쩍은 표정을 짓고 뒷머리 벅벅 긁으라고? 날이면 날마다? 왜 A에서 했던 얘기를 B상황에서 하지 않냐고 사람들에게 따지고 소리지르고 난리를 친다? 그건 애다. 놀이터에서나 놀아야지 사교계로 나오면 곤란하다. 사회성, 참 많이 떨어지는 어른이 되는 거다. 뭘 모르는 거지. 그런데도 뭐 사랑을 연필로 쓰라고? 연필로? 어, 그건... 맞는 말인 거 같다. 아무튼 수증기 팍팍, 주전자 물 끓는 걸 알리는 소리 삐잉삐잉, 수증기 푸쉭푸쉭! 그러니 정말 그러니까 내가 다음과 같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나. 그래서 그 후 나는 녀석을 잘 아니까, 걔는 동성애자가 아니니까, 심증은 있으니까 물증을 확보해서 그걸 부인에게 제시하고, 그녀의 환상과 신비를 깨트리기로 했다. 한순간에 와장창 깨트리고 싶었다. 그건 환상도 뭣도 아니라고 하면서. 뭔가가 아깝고 자연보호와 어긋난 일인 듯 하고 상도덕의 어두은 일면 같은 느낌도 들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확실히 그땐 뭔가 내게 씌인 거 같았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녀석이 전에 친구들과 같이 일을 하고, 나랑도 일을 했던 것도 그렇고 유난히 친구와 동업을 많이 했던 걸 보면 일단 그는 남자 세계에서 닳고 닳아졌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녀석의 소셜 네트워크를 해킹하고, 동영상 사이트 계정을 해킹했다. 또 나와 같이 일할 때 녀석이 놔두고 가버린 노트북이 내 창고에 곱게 예쁘게 반갑게 고이 잠들어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오케이~! 그래서 노트북 하드디스크를 까기로 마음 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얘도 남자였다. 딱 그걸 확인했을 때 그 뭔가를 확인했을 때 아~ 좀 과장하면 세상 다 가진 거 같았다. 그런데 그 어떤 걸 마누라에게 보여주고, 또 셋이 같이 모인 자리에서 녀석 들으라고 슥 흘리면서 마누라에게 "봤지~ 그렇다니까~" 라고도 해주고 그랬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나도 기분이 왠지 모르게 차츰 이상해져갔다. 마누라도 어딘가 모르게 실망한 듯 그러나 애처로운 듯 알듯 말듯 슬퍼하는 것도 같고 오빠를─내가 아니라 녀석─녀석을 걱정이랄까, 뭐랄까 한마디로 처연함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100퍼센트 실화다. 괜히 일을 벌였을까? 이런 결과가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말은 그래도 나는 사실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깨가 쏟아졌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솔직함, 숨기지 않겠다. 남자니까. 그래, 그렇다. 속으로 나는 아주 쾌재를 불렀다. 푸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 그러나 가슴 한쪽에서 가책도 느껴졌다. 꼭 옛날에 녀석 보라고 지금 마누라인 그때 여자친구의 뒷주머니에 자꾸 손을 넣는다든지 엉덩이를 더듬는다든지 꼭 잘 보라는 듯이 뭘 연기한 다음 그녀의 반응, 그걸 보는 것 같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임무 완수했고 세상은 잠깐만 내 것이 됐다. 그리고 터치 바이 터치 그것도 사연이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즈음 난 녀석이 어려운 처지라고 해서 내가 일하는 조그만 회사로 스카웃했고, 큰 사무실 하나가 전부였는데 거기서 일하다가 회사 앞 식료품점을 같이 가다가 우린 직장 동료가 앞서 걷는 걸 봤다. 우리 사무실 커플이 저 앞에 걸어가며 다정하게 얘기하다가 남자가 여자의 엉덩이를 바지 뒷주머니를 쓰다듬고 여자는 막 앙탈을 부리는 장면을 같이 봤었다. 그때 난 녀석에게 따라가지 말고 자리를 비켜주자고 했다. 그녀는 선악과니까. 그 뒤로 내가 먼저, 라는 건 그렇다 쳐도 난 녀석도 얼른 좋은 짝과 만나기를 바랬지만 실은 난 옛날만큼 멋진 남자가 아니었고, 이상하게 거꾸로 어 음 막 그... 나도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일부러 그러고 싶은 마음은 절대 없었다. 어쩌다 슥 스쳤는데 간지럽혔는데 만졌는데 나중 의식하게 된 것 같다. 아무래도 그랬다고 믿고 싶다. (남자들은 정말 친하면 경쟁이라는 단어를 데려와서 친구에게 소개시켜주면서 암묵적으로 모르지 않기를 그분과 친해지기를 기원하기도 한다, 친한가 친하지 않는가를 알아볼려고 할 때 그것은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녀석과 같이 일할 때 5층 건물 한채를 통채로 빌려서 썼는데, 일하는 사람은 얼마되지도 않고 사무실 한두 개만 쓰니까 남는 방에서 그녀와 밀애를 즐기고 여자친구가 가면 또 나는 왠지 으쓱했다. 어깨 뽕 뽈록. 이야기는 끝이 없다. 왜냐하면 나도 장편 대하소설에 버금가는 연애를 했기 때문이다. 책으로 쓰면 50권 될려나? 예전에 또 마누라의 친구들도 모두 C를 좋아했다. 오빠로서든 이성으로서든 먼 거리에서든. 딱히 멋지게 표현은 못하겠지만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일단 자기들끼리는 어떤 공유해야 할 뭔가, 대화로 알리고 웃고 전해야 할 <할 말>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그런 남자였던 것 같다. 그때 내 친구 도톨이는 내 여자친구의 친구 Y를 좋아했다. Y는 도톨이를 안 좋아했다. 그러나 도톨이는 소문 다 내고 어떻게 할 수는 없고 그냥 주변만 맴돌고 겉도는 그런 존재였다. 여자들끼리 말하는 오공뽄드 같은 존재, 낙지 빨판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마누라의 친구 Y는 전혀 마음이 없었다. 이미 그때부터 Y는 내 친구 C에 대한 마음이 있었다. Y는 C에게 중간에 신호를 보내고 또 보냈다. 회신은 없었다. 그녀는 마음을 키워 갔다. 그녀는 때를 기다렸다. 데이트할 수 있는 완전 허름해도 중고차가 있다는 거도 확인했다. 그 말도 슥 흘렸다. 그러나 그냥 흘러갔다. 미끼를 물지 않는 녀석이었다. 녀석은 형편이 궁했다. 많이 어려웠다. 녀석은 나무고 돌이었다. 그녀는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어장관리는 쉴 수 없었다. 그러면서 Y는 C에게 먼저 전화도 했다. 어장관리 차원에서. 왜, 내가 먼저 전화하면 안 되냐고 하면서. 먼저 전화하면 안 되는 남자는 C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C는 어항 속에 사는 금붕어였다. 그러다 때가 왔다. C가 불완전하지만 허름해도 큰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 Y는 내 마누라를 통해서 C에게 직접적인 통보를 했다. Y가 직접 고백은 할 수 없으니까 Y를 저만치 10미터 앞서 걷게 하고 마누라와 C가 같이 걸어가면서 넌지시 C의 마음을 떠보게 된 거다. C는 당연히 거절했고. 당연히? 나쁜 감정 때문이란 게 아니라 어떤 정중함, 남자 측의 모자람, 약간 어울리지 않는 듯한 측은함, 이상향은 아니니까, 뭐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도톨이만 빼고 당시 내 친구들은 Y를 아는 여동생 그 이상으로 보지를 않았다. 그녀도 여자였지만 인기도 있었지만 뭔가 어떤 뭔가가 부족하고 모자랐다는 뜻이다. 남자의 말로 감당 안 된다는 뭐 그런 뜻이었다. 모두 같이 NC를 가더라도 블루스를 같이 추자고 누구도 청하지 않았다. 그녀는 기분 꽝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 정돈가? 기껏? 겨우? 내가 뭐 어때서? 모두 친하게는 지냈지만, 그 이상으로 나서는 사람은 없었고 어떻게 한 번... 그런 거도 없었다. 그래도 Y는 어장관리에 탁월한 감각을 지녔고 그런 감정 놀음을 좋아했다. 자기만이 부릴 수 있는 능력이라는 듯이. 그래서 나는 C에게 중간에 그런 얘기도 해주었다. 내 여자친구는 내가 처음이었지만 Y는 그렇지 않다고. 마누라에게 듣고 보니 허우대 멀쩡한 어떤 남자가 잠깐 만나다 고지를 점령하자마자 Y를 뻥 차버린 거 같았다. 여자들은 정확히 공통적으로 많은 남자가 자기를 좋아하고 배려하고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줄 안다. 두뇌 회전 원리는 천동설이기 때문이다. 논리야 어디 가버렸니? 그래서 남이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걸 가지고 막 물어본다. 들었냐고, 아냐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듣고 싶지도 않을 텐데 날 차버린 남자, 얘기 들었냐고. 자기가 축구공도 아니고 뻥뻥 차인 게 뭐 자랑이라고, 훈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단, 연애지침서에서는 그걸 훈장이라고 한다. 엄밀히 따져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타인은 그걸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시시콜콜한 얘기고 남의 일이니까. 마음이 있다면 몰라도. 시간이 그렇게 지나고 지나서 Y는 계속 어장관리만 했다. C는 계속 타인의 어항 속에서 살아가는 금붕어였다. 하지만 C는 그때도 인문교양서를 읽긴 읽었는지 뭘 좀 아는 것 같았다. 인문교양서에 나오는 말처럼 처음부터 큰 바다로 나가지 않고, 적합한 어항에서 몸집을 키워 새로운 둥지로 옮기고, 또 그곳에서 더 이상 그릇이 감당안 될 만큼 스펀지처럼 현지 문화와 장점과 기술들을 습득해서 곧이어 다음으로 다음으로 진출할려는 포부가 있었나 보다. 자신은 잘 몰랐을 수도 있고. 그 어항과 이 어항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그러다 그때 또 다른 친구들이 내 인맥에 합류했다. 이른바 소문자 친구들. 캬~ 얘네들이 진짜 남자 중의 남자다. 어디든지 막 가는 거침없는 깍뚜기. 나는 그들과 연락이 뜸했었는데, 다시 연락되어 자주 만나게 되었다. 소문자 친구들 a, b, c, d, e... 마누라의 친한 친구 Y는 소문자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청춘남녀 모두 친하게 지내기는 했다. 궁짝이 맞은 거다. 처음과 중간까에만! 중간에 다른 의도와 거미줄과 사연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논점에 집중하자면 소문자 친구들은 몸을, Y는 마음을 가지고 놀고 싶었으니까 저절로 자주 만나고 친한 사이로 발전했다. 속마음은 다른 채로. 이렇게 목적이 충돌하게 된다면 승리는 여자에게 돌아간다. 비운의 감투겠지만. Y, 기분 좋았겠지. 지금은 몰라도. 나도 Y를 좋아하지 않는다. Y는 내 마누라의 친한 친구지만. C도 Y를? 심하게 표현은 않해도 말 안해도 그 친구 마음 다 안다. 그 뒤로 그렇게 Y가 감정 놀음하는 데로 C도 똑같이만 해주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C는 보통 남자같으면 남자가 해야 할 역할을 할텐데 그걸 안 하드라. 그냥 똑같이 상대방 만큼만 신경쓰고, 상대방 홈페이지에 관심의 글을 남겨주고 그게 끝이었다. 남자가 봤을 때, 한마디로 이상한 행동이었다. 왜 그런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C는 어느 정도 마음을 받은 만큼 그 정도만 건네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뭐랄까 남자들 가운데 그런 부류?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성욕이 일지 않는데, 딱히 마음이 없는 여자에게도 거리 유지만 하지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남자. 전자와 후자의 중간에 대해서만 몸이 반응하는 남자라고나 할까? C는 그랬던 거 같다. 남자 뿐만이 아니라 통상적으로 누구나 그런다. 곧 남자와 여자 단둘이만 알고 만난다면 감정의 개입은 적고 육체에 종속되는 의도가 앞선다. 그리고 남자의 친구들과 여자의 친구들을 알게 되고 인사하고 서로를 더 잘 알아가면서 단둘이 만난다는 것은 농밀한 감정이 깊숙이 개입한다는 뜻이다. 짧은 만남과 스치듯 만났다 헤어지는 인연은 감정이 동하고 교감하며 고민하고 또 그리워할 그런 여유가 없다. 그럴 이유도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순서가 바뀌어 그렇게 시작하는 사랑도 있긴 하지만. 반면 왜 그런 경우 있지 않나, 1과 2가 만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아주 잘 어울릴 듯 하다 어쩌면 배필감일지도 모르니 한번 만나봐라, 이와 같은 의도로 주선한 자리. 곧 진중한 교제를 전제로 친척이나 가족이나 지인과 동료가 소개를 시켜주었는데도 그것이 하룻밤 사랑으로 둔갑하게 되는 일도 있다. 앞뒤 살피지 않아도 되는 짧은 만남, NC에서의 즉석 만남, 어떤 우연한 만남, 그 여름 바닷가 '따지지도 묻지도 말라'식 만남, 드라마 같은 만남에서나 있을 법한 법도가 적용되는 사례, 있─다. 당신 같으면 그렇게 나간 자리에서 그럴 마음이 동하겠는가? 보통 아니다 못한다, 가 정답이다. 모름지기 그래야 하고. 표면적으로, 의례적으로, 공식적으로, 지금 생각으로, 대외적으로 또는 타고난 성정 때문에 대개 누구나 보통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걸 알아 보는 여자가 진정 도도한 여자고, 설령 확 빠졌더라도 참을 수 없는 열정이 금혼식으로 이어지는 것이 천우신조의 인연이고, 간곡하며 값진 사랑이다. 남녀 사이는 모른다고 식장에서 결혼행진곡이 울려퍼지면서 입장하게 되기 전에는 모른다고 하지만 사람 일이란 게 기쁘고 즐거운 일이 다가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을 이미 하고 있을지라도 몸이 어딘가에 갔다 올 수도 있고, 마음이 몸과 분리되어 1인 2역을 하는 일도 있다. 만물의 이치가 그러하듯이 확률로 따지자면 당사자에게, 만인에게, 다이아몬드 반지에게, 또 어떤 상징 앞에서 거룩하게 묵상하고 조용조용하게 엄숙히 선언하는 맹세는 끝내 지켜지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다. 결국은. 그렇다. 슬픈 일이지만 어쩌겠나. 사랑은 변하기 쉬운 것! 그래서 그것을 지키고 가꾸는 노력이 필요한 법! 여기서 잠깐, 그런데, 사랑은 변한다 라고 하면 왜 사람들은 즉시 안 좋게 변한다는 암시를 떠올릴까? 왠지 모르게 그건 더 알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사랑은 더 좋게도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정녕 가치있고 사랑의 인기는 영원한 것이다. 따라서 <좋은 남자는~ 없어> 같은 농담은 잘 먹히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 인생을 돌아보며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래도 그때 난 늬 엄마 사랑했다, (집나간 엄마 때문에 아빠와 단둘이 사는 딸에게 하는 말로) 그때 나는 최선을 다했다 라는 말, 그래서 가슴 깊이 느껴지고 기억되며 인상 깊고 내 마음에 쑥 다가오는 것이다. 마치 파도처럼 철~썩! 흡사 따귀를 얻어맞듯이 철~썩! 그리고 쌍코피! (아 나 이거 도저히 글 못쓰겠구만 뭐만 했다 하면 뻑-하면 옆길로 새고 뭔 말만하면 있는 폼 없는 폼 다잡는 것처럼 보이고, 아는 지식 없는 지식 말 되는 뻥 말도 안되는 뻥 다 갖다붙이는 것만 같고, 어디서 들었던 듯 안 들었던 듯, 읽었던 듯 안 읽었던 듯, 하늘에서 별을 따다가 바다에서 달을 건져 그대에게 안기리다 뭐 그런 말만 하고 자빠졌으니, 쓰다보면 쓰면 쓸수록 뭐랑 비슷해지니 미치겠다고. 이거 이거 딱 보니 결혼식 주례사랑 똑같군. 아 나 이런 이~런 젠장! 저런 천하의...... 아 나 정말 미치겠다고) 딩~동! 종쳤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타이틀 지명(의무?)방어전의 3회전이 시작됐다. 앗, 그게 아니라 학교 종 울림. 3교시 시작됨. 그렇다. 정말 그렇다. 나는 넣다 뺐다 넣다 뺐다 하는 얘기는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없지만 이런 얘기는 할 수 있다. 돈버는 재주와 관련하면 주제가 삼천포로 빠지니 이만 멈추자. 내 마누라의 절친한, 넌 내 첫 째가 아니야 넌 내 2번째야 라고 각자 몇 번째라고 정하는 건 좀 비정하고 슬프니까 그냥 많이 친하다고만 하자. 그래서 내 마누나의 친한 친구 Y는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내 소문자 친구들 a, b, c, d, e...들을 관리했다. 거울아 거울아, 가 아니라 어항아 어항아 였다. 또 Y가 먼저 소문자 친구들에게 개별적으로 먼저 연락을 해서 일대일로 만나고 자기 쪽에 그들 마음을 끌어다 놓고, 그걸 또 하고 또 하고 그랬다. 그게 좋았나 보다. 남편될 사람은 몰랐겠지. 그걸 소문자 친구 누구라면, 자기 친구가 직접 관계가 됐다면 또 당연히 그랬을 꺼다. 둘이 잤다고. 낄 데 안 낄 데 다 나서는 안 가리고 아무데나 막 들이미는 소문자 친구는 자기를 대인배로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자기가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뒤끝 없다고. 스스로 아무데나 굴러다니는 호박이니까 본인은 뒤끝 없겠지. 본인만. 반면 C는 Y에 대해서 중간에 생각이 바꼈던 듯 했다. 친구의 여자친구의 친구들과 인연은 그걸로 끝난 걸로 보였다. 거미줄처럼 엉켜서 한때 친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여동생 같은 느낌이 들었겠지만,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다 소문자 친구들 덕택이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고개 숙여 정중히 호의를 표합니다! 상남자들. 깍뚜기들. 마초들. 늦기는 해도 그분들 사이에서도 소문 다 난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법이다. 그들도 다 생각이 있고 사리판단 할줄 알고 남의 마음도 읽을 줄 안다. 뭐 정말 동물처럼 달려들었겠나 다 서로서로 아는 인맥들인데. 소문자 친구들이 한 일은 상대방이 먼저 걸어오니까 그에 상응해서 맞대응한 정도뿐이 없다. 그렇게 C는 전에 Y와 신경 써주는 감정 놀음 정도는 있었겠지만, 옛날에 간접 고백이랄까 어떤 긴 시간 동안의 마음을 아니까 그냥 그 정도로만 시간을 봉인해 버렸다고 할까. 그런 게 있었다. 소문자 친구들이 나타나기 전에 같이 추억을 많이 쌓았고 즐겁게 지냈는데 소문자 친구들이, 진짜 수컷들이 나타나서 난장판이 되었던 것 같다. 곧 개판! 우연일 수도 있지만 여기다 우연을 들이밀기는 싫다. 또 이분도 어촌 계장에 스파이더맨이구나 여장수로구나 하면서 C든 누구든 나도 아마 반가워했을 수도 있다. 책잡힐 과거를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하면서. 때문에 C는 Y에게 철저히 오리발엔 오리발로 응수했다. 어느 주말에 친구들이 모이게 됐다. 술집이다. Y는 나중 일행에 합류하게 됐다. 빈자리 가운데 즉시 C 바로 옆에 쪼르륵 앉았다. 그 다음으로 합류한 친구는 소문자 친구 f다. 소문자 친구 f는 합석하면서 나란히 앉은 Y와 C를 보고 한마디 한다. 둘이 나란히 앉아있으니 연인 사이로 보인다고. Y는 그 말을 듣고서 묘한 표정과 쓴 웃음을 지으면서 흥분한다. 그와 동시에 한마디 한다. 다른 남자는 다 몰라도 오빠는, 오빠는 절대 아니라고. 그 말을 했던 Y에게 C는 똑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오리발로만 응수했던 것이다. 즉 C가 내 마누라와 내 흉을 보면 나는 맞대응할 게 끝내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완전 짜증난다. 노란 카드, 빨간 카드, 주황색 카드 몇 개 내밀어도 그걸 또 써봤자 의미도 없고 새로운 조커는 없고 수증기만 끓어오르고 그렇다고 대인배로 침묵할 수는 없고 물끄러미 그 광경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에 잠길 수도 없으며, 한마디로 사람 미치는 거지 미쳐. 어쨌든 오빠만은 불미스럽게 좋은 관계로 기억되지는 않는 듯 해서 조금 언짢겠지만 그는 그래도 그녀들, 즉 내 마누라와 친구들과 편했고─친했고─즐거웠고─고마워했고─다정했고─친근함을 그 인연의 기저로 했으나 그의 잘못, 그의 딱 하나 큰 잘못은 그것이다. 남자로써 다가가지 않은 것. 다른 건 없다. 그도 소문자 친구들도 선을 넘어서 다가가기는 싫었을 테지만. 사랑? 아, 머리 아프다. 단어 자체가 다르지 않나, 사랑과 인생.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사랑이 몸에 예속되듯이 사랑도 인생에서 하나의 아름다운 기간이라고. 사춘기, 청년기, 노년기 그리고 발정기처럼 언제부터 언제라는 시간 개념으로 조금은 그렇게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느새 사랑은 인생을 잠식해버리고 나와 마누라와 그 모든 것에 스며드는데 일단 선은 긋고 직장 일을 집에 가져와서 하는 건 동거인의 눈치를 봐야하지 않겠는가. 그렇게나 사랑이 대단한데, 미처 몰랐지만 뒷목 잡고 머리 위로 수증기 아로아롱 푸쉭푸쉭 오를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인생에 대해서 사랑보다 인생을 선행 개념으로 봐야 하지 않겠는가? 내 말이 적이 그르오? 다소 부적절하냔 말이오? 안 그렇소? 안 그러면 자, 유부남들이여 들고 일어섭시다! 자, 으쌰으쌰! 그러나 진짜 들고 일어서지는 맙시다. 눈치 없이 몇 분 엉덩이 들썩이기는 하셨지만 요즘 뭐 재미난 일이 없어서 그러시나 보군요. 사랑? 머리가 지끈지끈해. 애정? 오 골치 아퍼. 어디 좋은 껀수 없나? 그...거 괜찮네! 어, 괜찮아.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이거다.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사진으로 남았던 즐거웠던 추억은 각별히 딱 선뜻 떠오르는 뭔가가 없는 반면 이렇게 약간 엮이고 꼬이고 짜증나는 일은 잘 떠오르고 기억되냐는 말이더냐. 왜?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내게 뭐 그런 걸 추구하는 성향이라도 있단 말인가? 정말로? 그대에게도? 발전과 성취감과 뭔가 어떤 성과를 갈구하고 효율을 추구하기 때문에 일부러 불행과 연관된 기억에 매달리는 이유, 뭐 그런 게 있다면 아아 참 불편한 일이다. 너무 유감스럽겠지, 친절하게 요목조목 설명하고 정리하기엔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도 본능 때문인가? 난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냥 오리발이나 내밀자. 안될 게 뭔가? 오리발, 그래 오리발! 몸이 문란하든 감정이 지저분하든 오리발이나 내밉시다 그려! 그런데 누구야, 누가 남의 집앞에다가 자꾸 걸레를 가져다 버리는 거야? 그건 그렇고, 그래서 C는 TV에서 본 영화,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 영화, 그 영화의 여자 주인공, 그녀의 명대사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 반에서 내가 자지 않은 남자는 너가 마지막이야, 그런 대사. TV를 너무 많이 봐서 애가 이상해진 것 같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그래서 마누라 친구들이 저 오빠 뭔가 있어 뭔가 있어, 그래서 아마도 그랬을 꺼 같다. 그러나 그녀 Y는 딴 거 다 놔두고 왜 하필 그걸 따라했을까? 둘 중 하나다. 첫째, Y도 그 제목도 모르는 영화를 TV에서 봤거나 둘째, 여자들은 원래 그런 속성이 (극미하게라도) 있거나.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 같다. 그 뒤 Y는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 그녀들 가운데 한 명인 여자 Z를 만났다. Z는 내 친구와 사귀었다 헤어졌다. 모두 같이 친했던 C가 좋아했던 진공 청소기라는 별명으로 불린 친구와 사귀었다 헤어졌다. Z가 전화해서 C를 공원으로 불러냈다. 공원에서 그렇게 C, Y, Z가 만났다. 그 자리에서 Y는 자기는 곧 결혼하니까 그래서인지 몰라도, C가 X와 잘되면 어떡하나 그런 의미에서인지는 몰라도 이런 얘기를 했다. 같이 모두 친했던 친구이자 숙녀인 X에 대해서 누구를 만났다네 숙녀 X가 남자가 많았다네 숙녀 X가 요즘 만나는 남자는 누구라네 어쨌다네 다 까발렸다. 그래서 나도 C도 진공청소기도 Y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인상은 좋았던 시절에 대한 기억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할 수 있다. 추억은 향수병을 부르기도 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게도 만든다. 그것이 예술혼과 만나면 작품이 되는 것이다. 말은 그럴싸 하다. 그래서 나중 내가 결혼하고 드물게 여러 사람이 만나게 되면 꽤 신경이 쓰이게 됐다. 어색한 만남인데 Y는 챙피한 줄 몰라하기 때문이다. 수치심이 없드라. 뭘 잘못했는지 알고 싶어하지도 않드라.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모두 서로 자연스럽게 뜸해지게 됐다. 즉 나도 여자친구와 초중반에는 좋았다. 그러나 연애 기간이 너무 길어지니까 중간에 또 일이 없을 수가 없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도와주라는 의미로 자세한 속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눈치없이 소문자 친구 하나는 내 여자친구 홈페이지에 거친 욕설을 도배해놔서 마누라와 둘이서 많이 웃기도 하고 속상했던 적도 있다. 그는 전화 통화로도 그때 내 마누라에게 화염방사기를 뿜어댔다. 소문자 친구들이 나타나기 전의 원년 멤버인 인기짱 진공청소기는 전화로만 내 마누라를 꾸짓었다. 모든 여심을 흡수해버린다는 거의 텐미닛과 비등한 별명 진공청소기, 오작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나는 내심 기뻤다. 사랑에서 결혼으로 기승전결 있었고, 우리의 우정은 굳건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 내가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구나 그렇게 느꼈다. 그후 내 친구와 내 여자친구의 친구 가운데 한 짝이 탄생하고 그들이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는 했는데 그게 전부였다. 그 이상은 없었다. 그걸로 나는 교훈을 얻었다. TV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막 남녀가 같이 어울려서 친할 때 막 2대2로 엮이고 어쩌고 하면서 멋진 장면을 연출하지만 그거 다 뻥이라고. 현실은 막장이 아니면 다행이라고. 현실은 순정만화가 아니라고. 나는 지금 언젠가 내가 C에게 했던 말, 내가 너한테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를 지금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 쌓였던 이야기,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어딘가에 언젠가 쏟아 놓고 싶었다. 혹시 모르니까, 혹시라도 그걸 애타게 듣기를 바라고 가슴 두근거리며 읽기를 원하고 간절히 뭔가를 애원하는 사람이 적을 테지만 있긴 있을 테니까. 오래 참았다. 그걸 도대체 말 못하고 어떻게 참았냐고? 아무래도 그건 인내심의 문제는 아니었던 듯 하다. 참고 견기며 때를 기다려야 하는 문제였다면 나는 아마 못 참았을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빨가벗고 소리치고 다녔을 것이다. 그러다 MT 때 진짜 잠깐 빨가벗기는 했지만. 남자들은 원래 그렇게 크는 법이다. 거리에서 잠도 자고, 사고도 치고, 치고 박고도 해 보고, 여기 저기 거기 관심을 쏟고 파헤치고, 돌아다니고 꿈을 찾고 찾다가 행운의 여신이 찾아온다면 그야말로 내 분야를 만나게 되는 것이고, 내 운명의 짝에게 청혼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사실 이런 걸 말하고 싶지도 쓰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럴 능력도 안 됐다. 지금도 그렇고. 아마도 그것은 신통방통한 주술사의 주문 때문일 것이다. 그 이상은 알려고 하면 안 된다. 절대 뒤돌아 보지 마라. 결국 내가 이런 글을 쓰면 안 되는데... 안 돼? 안 되긴 뭘 안 돼? 없는 이야기 꾸며서 하는 거도 아니고 아무도 안 볼 껀데. 서로 터놓고 말해서 이런 얘기 반가워하는 사람, 어마어마하다. 여성 월간지에 나오는 얘기가 다 뭔가? 아, 여성 월간지는 크게 구분해서 2가지 종류가 있지만 어떤 후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라고 절대 싫어하지는 않는다. 자, 이와 같은 일을 내가 무덤까지 안고 가는 게 맞는가, 아니면 이렇게 털건 털고 가는 게 옳은 일일까? 어디 한번 따져보자. C는 왜 그렇게 타켓이 되어야 할까? 뭔가를 예측해봤을 때 뭐 영특하지 않더라고 아무리 눈치가 없더라도 내가 봤을 때, C는 공공의 과녁 같은 존재다. 적어도 남자들에겐. 같이 놀 때는 재밌고 으쌰으쌰 분위기 좋고 다 좋은데, 이상하게 뭔가 딱 속시원하게 설명할 수 없는 정말 까다롭고 또 설명하기도 어려운 그 이상한 어떤 뭔가가 있다. 그에게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 그게 대체 무엇일까? 나는 정말 그게 궁금했다. 지금도 궁금하다. 그래서 괜한 일 벌인 거다. 뭐지 정말 그게? 뭘까? 그게 대체 뭐냐고.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동성애자에게만 있는 그런 느낌도 아니다. 나도 살만큼 살았고, 세상도 남자도 물론 여자도 알만큼 안다. 책은 잘 안 읽는다. 다른 사람들도 책 별로 읽지 않는다. 읽어봤자 베스트셀러, 그냥 심심풀이 땅콩들이다. 거의 다 오락물이고 여흥과 유희다. 유행일 뿐이다. 그 가운데 클래식은 드물다. 안 그라요? 내 말이 틀리요? 상남자! 남자 중의 남자에 대해서 남자가 제 2의 남자에게 말을 건네본다. 내가 나에게. 상남자는 일단 책을 안 읽는다. 말하는 걸 더 선호한다. 그래서 TV도 토론과 강연을 좋아한다. 드라마를 보는 건 간접 체험이 되냐 안 되느냐가 관건이다. 일단 타인은 남이고 놈이다. 까놓고 말해서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에 관한 일도 때로는 OX로 판단한다. 내 구미와 알맞냐 아니냐가 중요하니까. 그렇다. 남자는 지동설이란 말이다. 얼핏 봤을 때 아 남자는 태양 그러니까 천동설 같지만, 남자는 지동설이란 말이다. 일단 태양처럼 빛나고 핼리 혜성처럼 멀리도 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하지만 여자에게 천동설처럼 보이지만 남자는 정리하자면 요컨데 지동설이란 말이다. 남자는 지동설! 즉 은하계 내에 모든 행성들이 다 태양인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나중에는 하이에나가 승자라는 걸 잘 아니까. 사회성도 있고 올바른 가치관을 갖췄지만 남자들은 부류는 조금 나뉘어도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태어날 때 그렇게 정해져서 어쩔 수 없다. 상남자인데 박식하고 똑똑하며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최고만 골라서 읽는다?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상남자는 남에게 굽히지를 않는다. 그런 상남자는 사과? 안 한다. 절대 안 한다. 통쾌하게 잘 하는 남자도 있다. 드물지 않다. 아니, 많다. 그러나 본디 남에게 굽히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연기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대체로 자존심 상해서 못한다. 시인은 한다. 태도를 보면 형식은 갖추지만 교묘히 시기나 난국을 비켜가서 나중 보면 같이 관망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어느 때 보니 같은 편이 되어 같이 팔짱끼고 전망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게 된다. 깜짝 놀랄일인데 너무 자연스러워서 깜짝 놀랄 수가 없다. 남자는 원래 때로는 정치적으로, 적절히 외교적으로, 종종 연모의 감정에 관하여 철학적으로, 가끔 경쟁적으로 또 이따금 사적으로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암묵적으로 배우면서 크게 된다. 어떤 잘못으로 인해 감정이 틀어지고 이제 다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에 대해서 잠시나마 말을 하고 듣고 그런 일이 반갑고 기분 좋을 수가 없으니 윤곽을 정하고 다음으로 살며시 넘어가게 된다. 어쩌다 드물게 사돈지간이 만나게 된 자리, 남편이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데려와서 살면서 사업한다고 있는 고생 없는 고생 없청 시켜서 살았어─돈 관계 지저분하게 처가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까지 거미줄에 다단계 사업 방식처럼 돈을 끌어다 쓰고 그 파장은 말도 못하는데──사돈지간이 어쩌다 만나게 됐어, 거기서 본가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남편의 형님과 누나가 그 역할을 대신할텐데 여기서 극명하게 그 태도는 갈린다. 그 남편의 누나는 고개를 못든다 고개를 못들어. 그러나 그 남편의 형님은 내가 잘못한 게 뭐야 자기들끼리 좋아서 살면 된 거고 우리도 피해 많이 입었어 그런 자세로 목에 꼭 기부스를 한 거 같다. 말은 그래도 평상적으로 처신은 하지만 그만큼 사돈지간이 만난 자리에서 남자와 여자의 태도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남편도 기억은 한다 자기가 벌인 일과 별개로 내가 뭘 잘못했냐 내가 잘못했는 줄 아냐 외가만 그런 게 아니라 본가도 아주 초토화가 됐다 똑같은데 똑같으면 됐지 뭘 어쩌란 말이냐 라는 의미의 실언, 불편하니까 잊고 산다. 남편은. 어쩌다 프로메테우스가 된다. 명절에 남편의 형님께서 외가로 선물을 보내와, 남편의 누님과 너무 다른 모습을 보여서 그냥 서로 모르고 살고 싶은데. 그래서 고맙다는 인사없이 똑같은 사람이 되어버리게 된다. '남자는 한 방-이다' 라는 말도 있지만, 마음은 있어도, 나중으로 행복을 미뤄도, 미래의 원대한 행복을 위해 지금 덜 행복하고 시련을 감내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찬란한 영광은 험난한 담금질을 요구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위험 회피는 그래프 선의 꺾임은 노력과 의지만이 전부가 아니라 성공에는 길과 운이 큰 작용을 한다. 때문에 첫 단추를 잘못 끼웠을 때 악순환에 빠진 다음 쉽게 그 늪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예가 많고, 인력 너머의 불투명한 요건이라는 숨은 식스맨 그 복을 사람들은 잘 아니까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어떤 행동? 날개 달린 아기 천사가 오줌을 누는 분수대, (이자의 이자라도 갚을려고) 거기서 바닥에 쌓인 동전을 잔뜩 수거해가거나 생명수가 나오는 고추 끝을 막거나 또는 7인의 친구들이 어딘가에서 비밀의 문을 열게된 행위였던 비볐달까, 더듬었달까, 문질렀달까, 쓰다듬었달까 그 촉각을 느껴보는 일이 그것이다. 그대여! 제발, 지금 행복하소서! 내일이면 늦으리. 그대여! 제발, 지금 행복하소서! 낮에 힘들다면 밤에, 밖에서 어렵다면 집에서, 혼자서 심심하다면 둘이서,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면 블로그가 있다오 일기가 있다오 친구가 있다오 거울도 있다오 그렇단 말이오. 척키 인형이든 뭔가든 내가 좋아하는 무엇, 하고 싶은 뭔가, 날 잡아끄는 그것이 신비든 환상이든 사랑이든 춤이든 노래든 또는 허풍이든 그 뭔가는 반드시 존재한단 말이오. 정 안 되겠다면 어항이라도? 그 어항 이 어항? 오오 그건 아니라오. 단, 그런 말들이 있으니 뭘 해도 재미없다고, 글이 안 써진다고, 뭘 해도 안된다고, 매사 싫증나고 따분하더라도 낙담하지 말 것! 웃음도 잃지 말고 희망도 행복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 것! 소망도. 예뻐짐도. 지성도. 그리고 대물도. 그리고 그 말은 이것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나... 과연 그럴까?, 끝이라도 안 좋았다면..., 최후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다...... 다시 남자는, 으로 돌아간다. 앗 벌써 돌아왔다. 다시 이어간다. 남자들의 사고 체계나 행동 양식을 지켜보면 동물의 세계를 너무 많이 닮았다. 수컷은 서열이 중요하지만 또 그런 언급이 과하면 마음에 안 들면 막 화낸다.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그게 뭐냐고. DNA를 그렇게 타고났다. 궁지에 빠진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격이다. 자주. 당연히 그들은 약육강식의 논리를 철저히 신봉한다. (그래서 나는 옛날에 잠깐 연예인 하다가 국적을 포기하고 나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들었던 사람을 좋아한다. 말 그대로, 는 아니고 좋아해야 할 것 같은 오기와 반골과 욱 하는 심정을 느낀다.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싸우고 싶어. 그러나 싸우면 안 된다. 삶이 망가진다. 생각난다. 한사람, 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없던 법도 만들어서 배척 당했던. 제일 만만한 놀림감이자 주홍글자였던.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고 말들 하지만 사람들 의견 쑤두룩하지만 나랑 반대되는 의견들을 보면 정말 가슴 아프다. 할게 있고 안 할게 있는데, 중요한 거 놔두고 욱 하고 으쌰으쌰하고 다 거기서 거긴데, 모든 일은 약점과 빈틈이 없을 수가 없는데 이상하게 문화적으로 뭔가에 민감하게 구는 그런 기질이 엿보인다. 먹고 살기가 팍팍해서 그런가 뭔가 꼬인 뭔가가 있다. 그건 전문가들이 분석할 일이고, 간출이자면 으쌰으쌰 해서 떠들썩하기만 하지 나중 보면 별로 바뀐 거도 없다. 소탐대실이란 말이다. 어떻게 보면 땅 기운이 나랑 안 맞는 데서 태어난 거 같다. 그거도 어디냐, 도 맞긴 하지만 모두 그런 자세라면 그 미래는 참담할 것이다. 말은 그래도 사람들은 나라는 육신과 껍데기, 인간 종의 정신 그리고 그 이상 모두를 비관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으로 살지는 않는다. 하나의 장점이 있으면 하나의 단점이 있을 뿐. 쓴맛이 있으면 단맛도 있으니까. 말을 아껴야 할 때 멋모르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있다. 내 뒤를 돌아봤을 때 저렇게 폐쇄적인 사람이 과연 나였나, 불만만 가득하고 비굴하고 어렵고 의롭고 힘든 일은 모두 외면해버린 그가 바로 나였나, 싶을 때가 있다. 그럴 수 있다. 마음은 저기로 향하고 몸은 다른 말을 할 수도 있고. 아무 것도 없이 맨몸으로 둘이 사랑 하나로 시작하여 살림을 하나하나 갖춰나가고 틀을 다지고 조금씩 발전하며 알콩달콩 사는 재미를 어른들께서 모르시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초록색 생태계가 차근차근 선순환되는 시간의 흐름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 축복의 반대라고 하지 않는다. 내가 선험자가 아니라면 선구자도 못된다면 아무래도 좋다면 나는 하나의 자연인이 되겠다. 그것이다. 적어도 악의로 똘똘뭉쳐 인생을 헛되이 흘려버리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사람이라면. 군중이자 인류에 속한 인간으로써 각각의 단위를 존중하고 아끼며 의무...나이값은 하면서 사는 동안 내 권리 오직 그것 하나만을 외치지는 않는다. 하찮은 미물도 자기 생을 사랑하며 열심히 산다. 개미를 보라, 꿀벌을 보라, 언젠가 만나게 될 줄도 모르는 외계의 생명체를 생각해보잔 말이다. 젊어서 과오와 실패와 좌절이 없었던 사람 거의 없다. 그 꼬투리는 당장도 10년 후에도 낫낫이 밝혀질 수 있다.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잊힌다. 그게 세상일이다. 어려서는 그렇게 배웠다. 약자를 돌보고 살피고 강자에게 맞설 줄 알아야 한다고. 그러나 세상 사는 논리는 절대 그렇지 않다. 이긴 놈이 장땡이다. 이긴 놈이 장땡이란 말이다. 싸구려 장비로 초짜가 대물을 잡으면 옆에 있던 꾼이든 선수든 미치광이든 모두 찌그러진다. 결국 결과고 성과다. 재수 없으면 힘 없으면 욕 바가지로 얻어먹는 거다. 새싹들에게 그러라고 가르치면서 어른들은 반대로 하고 세상도 반대로 돌아간다. 아예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 가르쳐주던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까보면 사람은 다 똑같다고. 어차피 거기서 거기라고. 세상은 아름다움이 전부가 아니라고. 인생도 사랑이 다가 아니라고, 절반은, 순서는 그렇다고. 가공되지 않은 날 것─살아있는 생물─팔딱팔딱 뛰는 그 생에 대한 의지와 생존과 본능과 그것 모두가 장구한 세월 동안 메타데이터로 구축된 원리를 모르면, 따르지 않으면, 개선하지 않으면 종은 단위는 결국 도태되며 종내 지구의 장엄함이고 뭐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고.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인생의 승부는 관 뚜껑을 덮어봐야 안다고. 그리스의 비극시인 에우리피데스 왜 이렇게 말했을까? <시간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시간은 묻지 않았는 데도 말을 해주는 수다쟁이다> 둘 중 하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던가, 배고픈 소크라테스던가. 어차피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는 안 어울리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는 쥐들에게 이상주의일 따름이다. 일단 첫째 목표에 집중하고 한마리 토끼가 먼저다. 계획 B와 운과 복은 그 다음이고. 1번이 도덕과 윤리와 정의고 2번이 패권이라면 1번 다음에 2번 이렇게 순서가 되어야 한다고들 하지만 보통 2번이 어려워서 1번에 호소하는 경우 적지 않다. 또 나와 관계된 것, 내게 유리한 것은 1번을 따지지만 아니라면 관심이 없거나 2번을 택하는 게 일반적인 인간의 행동이다. 자기가 봤을 때 1번에 걸려서 도저히 아닌 것 같아도 다수가 원하면 군말없이 승복해야 한다. 나도 보통은 선량한, 때로는 우매한─먹고 사는 게 먼저니까─어쩌다 이용 당하는 대중에 속하는 1인이란 말이다. 군중에 관한 명언, 듣고 읽으면 불편하다. 나라고 별 수 있나, 내가 시간을 돌릴 수 있나 고대의 그 수많은 신들을 현실로 불러낼 수 있겠나? 할 수 있는 건 한마디로 제한적이다. 설령 독불장군으로 확 없는다? 그건 책을 써서 일조하겠다, 환경운동해서 세상을 바꾸겠다와 같은 의미라면 모르지만 아니라면 꽤 참 참혹한 일이 될 수 있다. 실제 사례도 없지 않다. 이름 붙여진 단어도 있다. 그것은, 역─모!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는 절묘한 극적임과 어떤 풍성함과 거북하지 않은 조신함을 동반한 것으로도 모자라 사석에서 말하기로는 멋져보이기도 하겠으나, 그러나, 분명, 사극에서의 몰입감 때문에 널리 화자되고 불미스럽지만 미화랄까 미적 가치로 환원된 측면이 없잖아 있는 낱말.) 괄호가 길었다. 다시 돌아와서 그들은 약육강식의 논리를 철저히 신봉한다. 이걸 뭐라 하느냐, <본능>이라고 한다. 거의 모두 바른 인성을 갖추고 교양과 사교와 애정과 친교, 우애, 사랑, 교분, 정분, 정나미, 친분, 사모 등등 시시각각 거기에 적합한 대인 관계에 가장 알맞는 감정을 내세울줄 알지만 그 중에 하나의 철문을 열면 그 자리는 항상 본능이라는 강자가 턱 버티고 서 있다. 즉 사람에 따라 자기는 우정인줄 알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본능이 크게 작용하는 사람이 있고, 누구는 정분과 관련되어서만 본능을, 누구는 서열에 관한 한 무조건 본능을 따르고, 누구는 장소에 따라, 누구는 유독 운전할 때만, 누구는 자존심과 관련되면 본능이, 또 누구는 어떤 연관성에 따라 본능이 작용한다. 그 차이만 있을 뿐 본능이란 심리 기제는 원색적이지만 보호색을 띄고 있으나 언제 어디서나 언제까지나 사람과 또 인생과 함께 한다. 열등감과 관련된 뭔가를 건드려도 또 그분이 나타나신다. 본능이. 그분이 없었다면 공룡의 전철을 밟았을 테고. 뭬~야, 이제는 본능조차 그분이시군. 아 나 저런,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다시 이어가자면, 남자는 소설도 별로 안 좋아한다. 그건 논쟁에 효율적인 분야가 아니다. 다다익선 이론에 따라 최대한 많은 저자와 제목과 대강의 개요는 알아두는 것, 그것은 중요하다. 그건 한다. 그러나 문학이라는 학문은 지식을 쌓는데 도움이 별로 안 된다. 여자친구가 말은 많이 하더라도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더라도 한참 지나서 보면 결국 그는 그녀를 웃게도, 울게도, 놀라게도, 헷갈리게도 만들고 모성본능을 자극하여 말로, 말만으로 세계여행 돌고 오고 말만으로 흑백영화 분위기를 연출하며 말만으로 잘잘못도 슥 넘어간다. 그 화술이 좀 딸리는 상남자? 잔소리를 피해서 떠난다. 어디로? 게임기로. 부릉부릉 도로로. 골프장으로. 낚시터로. 운동장으로. 술집으로. 사이버 공간으로. 새로운 뭔가를 찾아서. 이따금 잘못된 만남 속으로. 물론 나도 그런다. 상남자니까. 남자 중의 남자니까. 이와 같은 내용의 글을 혹시 읽게 되었는데 불편한 썩은 미소를 짓는다? 백퍼센트 남자 중의 남자다. 자기가 잘못 하고도 성내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위기 모면술이 아주아주 뛰어나다. 임기응변에 능해야 한다는 걸 잘 안다. 그건 생존본능이다. 그걸 학습하면서 큰다. 친구 D도 남자다. 친구 D가 요즘 인기 드라마에 나오는 이 지역 남자 연예인과 대학시절 어울렸다네 친구라네 그땐 시시했다네 하면서 하도 거들먹거리길래 나는 언제 어느 자리에 그분을 불렀다. 친구 한 명 건너면 연예기획사 사장이다. 그래서 그 스타가 고향 내려오는 날을 잡아서 자리를 만들고 친구 D를 불렀다. 그래서 D에게 아니 왜 친한척 안 하냐고, 친구라며, 시시했다며, 별거 없었다며 그러니 그 다음은 어땠을까? 어떠겠나, 화를 내지. 핑 도는 거지. 남자는 이런 처지에서는 궁극적으로 화를 내는 수 밖에 없다. 그것도 험하게. 어설프게 연기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오리발 내밀며 소리를 지르게 된다. 내가 언제 그랬냐고! 그러면서 화제를 돌려야지. 연봉이 얼마로 올랐다고. 경쟁사에서 더 큰 액수를 제시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고. 뻔하다, 우리들. 남자들 세상을 가끔 보면 라디오 주파수를 다 다른데 틀고서 다 다른 얘기를 한다. 듣고만 있는 사람은 없다. 있다면 속으로 딴 생각한다. 그녀랄지, 장비랄지, 블로그랄지 같은. 그러다 떠들기가 지치고 공통된 목적과 주제가 통일되지 않다보면 자연스럽게 침묵의 시간이 돌아온다. 담배만 퍽퍽 피든가, 술만 캬캬 마시든가. 오만 인상 찌푸리면서. 세상의 시름과 걱정은 혼자서 모두 다 짊어지고 있다는 듯이. 지금은 핸드폰이 있으니까 딴짓하기도 편하다. 할아버지 친구들 모이는 자리에 가보시라. 서넛 가운데 한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문 반복이다. 자식이 뭘 해줬어 어쨌어, TV 코메디 프로그램의 소재로 쓰이기에 딱 알맞다. 분명 우낀데 웃겨야 하는데 이게 또 썩은 미소를 불러온다. 그게 남자들 세계의 생리다. 노는 방식이 그럴 뿐이다. 삶의 방식과 인생 철학, 이미 얘기했다. 여자들 세계? 넘어가자! 아무튼 그 이상한 기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아직도 그 비밀을 풀지 못하고 있다. 흔해 빠진 사랑은 아닐 것이다. 축복 받은 재능 또한 아니다. 이미 안고 태어난 유복한 낭만주의? 절대 아니다. 아무래도 장차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연구자가 나타나면 대신 논문을 쓸 테고 아니면 말고. 뭐 별 수 없지 않은가? 누군가에게는 두고두고 설레는 일일 테지만 내게는 남자에게는 그냥 그저 그런 정도다. 내가 오죽하면 그랬겠나? 사실 나는 보통이다. 그러면 다른 남자들은? 그들은 바보가 아닌 이상 절대 기분 좋을 리가 없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더래도 반틈은 속으로 꿍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오죽하면 그랬겠나? 어? 오-죽-하-면! 내가 봤을 때는 별 차이도 없구만 뭔 대단한 배려와 섬세한 선택이 있다고 그 난리인지 통 몰라 모르겠다구. 그녀가 봤을 땐 녀석은 여심을 들었다 놨다 쥐었다 폈다 긴장의 끈이 자유자재로 음악성을 띈다고 하지만 내가 봤을 땐 별거 없다. 그럼 뭐 나는 쥐었다 펴야 하는데 너무 세게 쥐어서 안 펴지는 건가? 들었다 놔야 하는데 아예 어딘가 딴 데로 여기가 어딘줄도 모르는 생판 희한한 딴 세상으로 보내버린단 말인가? 그럴 리가! 물론 내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나도 들었다 놨다 쥐었다 폈다 할 줄 안다. 잘 안다. 잘 한다. 대가는 아니지만 수준급은 된다. 내가 뭐 어때서? 나 정도면 어디에 명함을 내밀 정도는 안되지만 또 어디서 썩 빠지지도 않는다. 능력 발휘를 잘 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럼. 더군다나 나는 속좁은 남자처럼 굴지도 않았다. 바다처럼 마음이 넓지는 않지만 중간은 간다. 나도 이미 C의 속마음을 읽었기 때문에, C가 넌 내키지 않겠지만 마누라에게는 호감이 있는 듯이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또 돌아가는 용한 기운을 파악해냈기 때문에 보통 남자들 같은데 엄두도 못냈을 행동까지 했다. 이미 옛날에. 우선 C에 대해 삐리리리 정신분석 끝내고 나서 녀석이 다른 데서 개 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 적이 있었던 것 같아서 나는 세심히 신경써주었다. 딱 보니 살면서 이런 말들을 꽤 들었으리라 판단했다. 늬가 그걸 왜 궁금해하냐네, 늬가 그걸 왜 하냐네, 늬가 뭔데 나서냐, 너는 우리 모임에서 빠져라, 늬가 무슨 아니 뗀 굴뚝을 연기나게 만드는 마법사라도 되냐 같은. 그런 소리를 적잖이 얻어들었을 꺼 같아서 나는 또 내 여자친구가 내 친구들 가운데서도 유독 특별히 C를 좋아해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까닭은 이것이다. 나는 하늘처럼 마음이 넓기 때문에 따라서 나는 C에게 예전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넌 말이야 우리 코알라에게 좀 수줍게 대하는 거 같아, 너무 조심하는 듯 해, 좀 더 편하게 대하렴, 영화에 보면 중후반부를 넘어가면서 사이가 이상하게 꼬이기는 하지만 우린 발단의 분위기로 계속 가자구, 라면서 나름 신경썼다. 남자들은 안다. 이런 친구, 많지 않다는 것을. 자타공인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내 친구 E도 다른 친구 여자친구에게, 내 친구 H도 내 마누라에게 참지 못하고 말로써 C가 어떻다, 어떤 사람이다, 뭘 하드라 라고 도저히 참지 못하고 말했다. 고발했다. 그건 어떻게 보면 치졸하게 말할 수 밖에 없는 그렇게 행동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그들이 사회성 없는 사람도 아니고 지극히 정상적인 남자들인데 녀석들이 이러는 건 정말 그건 어떤 제 3의 힘에 의해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 같다. 아니면 이건 누군가 조종한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뭔가가 쌓이고 쌓여서 화자는 별뜻 없는 말로써 의사를 전달하고, 청자에게 그것은 어쩌면 표독스러운 의미 전달이 되어 각인된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또 쌓이고 쌓여 어떡하다 치부가 들추어지기도 한다. 언어학적으로 보자면 삐걱거리는 교감을 화자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화자는 자기는 틀린 것이 아니라고 할 테니까. 내가 잘못한 게 뭐냐고 따질 테니까. 그렇다면 명시적으로 오해를 풀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흘러서 그걸 지금까지 또 지금 이후로도 썩 언짢게 안고 사는 청자의 책임으로도 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두 사람의 언어가 또 두 사람의 인지심리 체계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뿐이다. 다른 건 없다. 의사소통의 원칙을 따지고 기준에서 벗어난 게 뭐냐를 분석할 것이 아니라 그냥 안 맞는다고 보면 된다. 쉽게 말이다. 이것이 혹시 긍정성의 효과에 상한선이 존재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비관성이 특이하지만 이렇게도 표출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까? 모르겠다. 그분들에겐 드물게 한 번이지만 나에게도 드물게 한 번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거슬리는 것은 거슬리는 것이다. 이래서 어떤 분들은 그렇게 순위권에 올려지기를 꺼려하는 것일까? 존말할 때 순위권에서 빼주라고? 물론 나도 안다. 그때 못했으면 지금 잘 하면 된다는 것을. 남 탓 하지 말고 내 안에서 원인을 찾으면 되는 것까지. 잘 되면 내가 원래 좀 잘해 내가 원래 좀 예뻐,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든 말든 나만 내 길을 가면 그만이다, 남이 안 하면 내가 하면 된다, 해도 해도 안 된다 남이 안 하니까 힘 빠진다 그래도 그렇더라도 그 단계를 겪고 깨우치는 게 먼저다 안 그러면 새로운 다음은 제발로 찾아오지 않는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시작이 절반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규칙이 바껴야 하고 질서 의식이 수준에 이르러야 하며 생각이 한 계단 올라서야 한다지만 그걸 아는 게 먼저다 절망이 없으면 실패가 선행되지 않았다면 전기도 없고 문명도 없다, 하루아침에 대단한 걸 이룬 것 같고 혁명이 위대해 보여도 <갑자기> 란 없다 절대 없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래프 선은 움직인다, <어쩌다 한번>에 인생이 바뀌고 그때 재미없고 심심해서 팔자가 바꼈을 수도 있다, 타인을 계몽시키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지는 못할지라도 나만 타락하지 않아도 절반은 성공한 거다, 못 되면 조상 탓 잘되면 난 몰라 같은 말도. 지금 나도 미래 세대에게는 조상이란 것, 왜 모르겠나? 영화처럼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가 만날 수 있다면 만나서 차나 한잔 마시면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다면, 혼자 생각했던 말과 동기부여 강사에게 듣던 말을 건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 또 지금 너는 왜 그렇게 살았냐고, 사냐고. 그때 넌 왜 그렇게 내 욕을 해댔냐고 그와 같은 소소한 질문을 해도 될 만큼 흔한 만남은 아니니까. 뒷머리나 벅~벅 긁어야겠지. 불미스러운 건 이유를 다 바깥에서 찾고, 특별한 건 다 내 개성이라고 단지 그런 거라고 할 만큼 나는 절대적으로 곤궁하지도 궁핍하지도 불행하지도 못되지도 어리석지도 않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때란 말, 좋을 면을 보고 장점을 찾으려는 혜안, 내게도 있고 그걸 키우지는 못해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 산다. 전기기타의 플랫을 깎다 조각가의 길로 들어서지 않고 뒤늦게 내 전공을 찾게 된 듯하여 매사에 감사해 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한다. 교육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무엇과 무엇을 받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 우리 인생에 관여한다는 것도 잘 안다. 부인이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란 것도, 많은 걸 기대하는 게 아니란 것도 모두 다 안다. 따라서 왜 어떤 여자들이 지적인 남자를 좋아하고, 여자들이 은근한 걸 좋아한단 걸 잘 모르는 반면 어리숙한 반면 멋지고 또 멋져서 그 남자를 옆에서 내가 보살펴줘야겠다 진짜 나 아니면 안 되겠다 저 남자를 내 껄로 반드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바른 인성을 갖췄는가를 먼저 보고, 모순 같지만 자기는 아니라고 할테지만 고급스러운 농담과 가짜 웃음 둘 중에 하나를 갖추기를 바라는지 나도, 나도 잘 안단 말이다. C도 나를 특별한 친구로 여긴다. 나도 안다. C도 나를 좋아한다. C가 아주 잠깐 사라졌을 때 나는 수소문해서 C가 교도소에 잡혀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C와 친했던 친구 그러나 배신한 친구와 나는 같이 면회를 갔다. 벌금인가 보석금인가를 내가 아는 형에게 빌려서 대신 내주고 나서 C는 교도소에서 풀려났다. 그때 C는 너스레를 떨었다. 귀여웠다. 자기가 있던 알카트라스 교도소 다인실에서 자기가 넘버 2였다고, 죄수번호가 3141번이었다고. 캬~! 남자들은 안다. 어떤 드라마틱함, 그 거대한 서사가 있어야 진짜 친구라는 것을. 그것이 나와 C 사이엔 존재했다. 그렇다고 하여 우정을 간직하면서 주변의 꽃향기에 심취하고 나른한 권태에 대해서 대화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어 뭐야 우리에게 서사가 있나 우리에게 드라마틱함이 있나 뭐야 이런 뭐야 아휴 뭐야 하면서 없자나~ 없다구~ 만들어야겠구나, 그럴 것 까지는 없다. 이거 집고 넘어가야지 안 그럼 잘못된 우정의 뜻을 그 심오함을 다음 남자에게 심어줄 수 있으니 기록하고 본다. 나도 C를 좋아한다. 나도 C와 친하다. 나도 C를 보고 싶다. 녀석도 현실적으로는 힘들어도 이미 꿈에서 나든 척키 인형이든 친한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도 안다. 안 봐도 비디오다. 나도 C를 부인 말마따나 따라하고 좋은 건 배우고 좋은 건 좋게 보고 싶다. 그러나, 그런데 왜 그 어떤 무엇은 나를 자꾸 불편하게 만드는 것인가? 그 무엇이 대체 뭐란 말인가? 대관절 뭐가 샘난단 말인가? 왜 그렇게 어떤 무형의 불가사의가 얄밉단 말인가? 어떤 원리로 내 속이 그렇게 뒤틀리고 꼬인단 말인가? 난 그러기 싫은데 말이다. 가슴 속에서 막 사랑과 비슷한 무엇도 아닌데 막 뭐가 솟구치는 것만 같다. 좀비 영화에서 봤던 딱 그런 뭔가가 말이다. 도무지 그걸 모르겠단 말이야. 아무리 해도 나는 그걸 모르겠다. 녀석뿐만 아니라 나도 남자도 우리들도 잘 안다. <사랑은 없어> 라는 농담이 왜 웃기고 잘 먹히는지를. 그런데 왜 녀석은 그것의 고고함을 잘 아는 로맨티스트고, 우리는 침울한 책망감을 떠안아야하는 장난꾸러기요 항상 어떤 기회만 엿보며 식탐을 잠재우지 못하는 늑대이자 탐구욕을 만족시켜야만 하는 소년 기동대로 취급 받고 잠재적인 꾸지람의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가? C가 하면 열광과 갈채가 자동적으로 따라오고, 뭐 우리가 하면 그냥 발광과 난동으로 끝나버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고 싶지도 않다. 집어치우고 싶다. 내가 언제 어떡하면 맨날 바깥으로 돌 궁리만 했다고. 뻑 하면 자기만의 공간으로 탈출만을 꿈꾼다나? 내가 언제 그랬다고. 나 만큼 가정적인 남자들 있으면, 경건한 태도로 가슴에 손을 얹고 나 만큼 가정적인 남자 있으면 나와보시라고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 다음에 대해서는 암울한 결과가 뒤따를지도 모를 일이니 카메라를 끄고 더 이상 접수를 받으면 안 된다.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심연의 정체는 과연 대체 뭐란 말인가? 언제쯤 그 비밀을 속시원히 알 수 있을까? 언─제─쯤! 아, 그쪽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야 하는데 괜히 그 생각을 하다보니까 또 수증기가 팍팍 올라오네. 이런, 젠~장! 나는 원래 말이 많은 남자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길다랗게 뜬소문과도 비슷한 장문의 회고문이랄까 비망록을 작성한 것 같다. 무덤까지 안고 갈라 그랬는데, 뭔 거창한 비밀은 아니지만. 그동안 이 얘기를 토로하지 못하고 어떻게 참았냐고? 어떻게 참았을까? 침묵의 명약을 삼켰을까 대인배의 법도를 지켰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라서 그냥 잊고 산 거다. 그게 맞는 것 같다. 흐흠, 음 흐흠. 자, 이런 데도 어디선가 그 말을 또 들어야 하나? 다시 태어나면 지금 부인과 또 다시 결혼하시겠습니까? 그래, 좋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그녀와 결혼하겄다. 그녀와 다시 결혼하겠다고. 어? 됐습니까? ······ ······ ······ 나중 들리는 뜬소문에 의하면 부인은 그러지 않겠다는 간곡한 선언이 있었다고 한다. 정말 아조 처절했다고 한다. 분위기 장난 아니었다고.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이거 이거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어? 이 양반이 지금 이거 안 되겠구만~ 말이면 다 되는 줄 아시나 이 양반이... 하면서, 삿대질은 기본이고 취재 기자는 한 대 아니 여러 대 따끔하게 맞을 뻔 했다는 풍문이 전해졌다고 한다. 물론 헛소문일지도 모른다.
   아아, 내게 있어서 음악은 무조건 대중음악인데 콘서트도 나 보고 싶은 거만 표 끊어서 부인을 데려가고, 이게 환상이라고 가르치고 주문을 주입하고, 집에서 먹는 음식도 내 맘대로, 청소를 어떻게 하라도 내 맘대로, 모든 것은 내가 정하는 데로 하고, 마누라가 좋아하는 놀이공원에는 단 한 번도 안 갔다. 그러기 위해 뻥을 좀 쳤다. 공황장애가 심하다고 뻥을 쳤다. 물론 내 그녀로 만들고 나서. 왜 여자도 그렇지 않은가, 친구는 한 명인데 그 친구는 완전 빼어난 미모의 친구인데 남자를 내 남자로 딱 만들고 나서 어떤 시점을 넘겨서 친구를 소개하지 않는가? 나도 그랬다. 좀 비유가 부적절하지만 갖다 델 이유는 무궁무진하게 만들 수 있다. 이젠 속지 않으면 못 견디게 만들어놨다. 나도 타성에 젖지 않고 틈틈히 공부도 많이 했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으나 아무튼 연구 좀 했다. 그러니까 모든 게 내 중심적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처럼 난 좀 까칠하고, 많이 까칠하고 자기중심적이어서 친구가 별로 없다. 그러나 다른 아저씨들도 거의 그럴 껄? 나 뿐만 아니라 남도 그렇게 생각하는 정말 편한 친구가 5명 10명이 넘는 사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불과 한두 명도 결혼 생활하면 자주 못본다. 자기 만의 공간은 원래 어른들에게 중요한 개념이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거도 좋지만 나만의 공간과 욕구과 또 사소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정말 어렵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른, 안 됐다. 그래도 아직 철들지 않았으니까 그걸로 된 거다. 그리고 이상하게 요즘 호르몬 변화 때문인지 내가 원래 그러면 안 되는데 좀 더 자상해지고, 친절해지고, 상대에게 맞추고 조화를 이룰려고 노력하는 제 2의 나로 변화해가는 것 같다. 큰일이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도 막 따라 부른다. 가사도 외웠다. 정말 큰일이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끝까지 정말 끝까지 헤비메탈을, 헤비메탈만을 추구해야 하는데 말이야. 전기기타 학습을 포기하긴 했지만 샤우트 창법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고 싶단 말이다. 게다가 나는 이미 '카페 피카소'에 모아놓은 상당한 음 어 외상값도 깔끔하게 값았다. 누군가 날 조종하는 것 같아서 내가 내 맘대로 안 된다.
   빠빠 삐삐뽀 뿌잉뿌잉 삐리삐리 아흐흑 아흐흑 크키크크쿠쿠키코쿠 코콩 킁킁 쿵따리 샤방 포춘킁킁 쿠키.
   앗, 이거 뭐야! 돌아온 거네. 제정신이 돌아왔어. 뭔 놈의 가짜 환상머쉰에 빠져가지고 이 고생을 하는 건지. 당장 물러야겠다. 제대로 작동도 안 한다. 이게 다 뭐야 뭐냐고! 잠시 정신이 나갔던 것 같다. 빙의를 마치고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인문교양 서적을 읽어도 소용 없다. 소설을 써도 변화는 없다. 인생이 바뀌질 않는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차를 한잔 마셨다. 아, 정신이 맑아졌다. 이제 대충 내 삶의 줄거리가 보인다. 인생에 관하여. 그 모두는 썩은 경험이었다. 결과가 그렇지 않은가. 성과가 불투명하다. 앞으로 다를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어렵다. 때문에 그것은 겉은 평범할지언정 썩은 사과다. 속이 골았다. 빛 좋은 개살구. 실은 그런 벌레 먹은 사과가 제맛이라는 대사를 아재들은 제법 써먹고 또 그게 어딘가에 자주 먹히지만.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 나면 재미없는 삶이 조금은 반짝이는 느낌이 든다. 뭔가 있어보인단 말이다. 고로 그걸 가지고도 인생은 어떻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말을 듣고 보면, 그걸 글로써 읽는다면 나중 읽고 나서 할일은 하나만 남게 될 것이다. 그건 뭘까? 뭐겠나, 썩은 미소일 테지. 아니라면 그건 거짓말 같다. 그런 거짓말로는 뭐가 있을까? 거짓말인지 참말인지도 이젠 잘 모르겠지만 모두 나열해보자면 이렇다. 모두 헛것이라고! 모두 쓸데없는 시간 낭비였다고! 그러나 속고 또 속고 안 속으면 허전하고 기분이 울적하고 삶을 감싸는 분위기까지 어둡고 어둡고 계속 어둠에 묻혀 뭔가 있을 듯 말 듯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 다음 그 다음 에잇 에잇! 하지만 엷은 또 뿌연 기대의 빛을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지 않기! 희망을 버리지 않기!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기!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부터 살면서 보며 알게 되는 고귀한 태도에 이르는 거대한 풍경들! 그러나 새로움은 없다는 것! 있다면, 을 얘기하는 게 지금 할일이라는 것!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다가 안 되도 밑질 것 없다며 공책에 볼펜으로 쓰고, 핸드폰 메모장으로도 쓰고, 데스크탑 컴퓨터로도 쓰고 궁리하고 또 궁리하고 뭔가를 하다 보면 드디여 아득히 보게 되는 것은 아, 그것은 허상? 첫날밤? 오, 저런! 맞긴 맞네. 썩은 경험이 썩은 사과였고, 그것은 썩은 미소를 부른다는 것! 참으로 낭패로군. 기껏 도달한 결론은 인생이 한바탕 개꿈 같은 것이라니! 결국 나는 개와 다름 없다, 개가 맞네 라는 것인가? 그러면 그것은 처음에 쓰고자 했던 의도, 개가 된 남자, 그것으로 다시 돌아가서 원상 복귀가 된 형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혼잣말 메아리)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분의 반문) 뒤늦게 청소년 드라마풍 작법이나 만화영화식 발상을 빌려올 수는 없다네. 잘 알면서!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스탐은 스탐의 인생을 살고, 나는 소설을 쓰고 내 인생을 살면 그만이다. 그도 놔두자. 신경쓰지 말자. 척키도 놔둔 것처럼. 잊혀지지 않는 생활 대사, 하나하나 신경 쓰고 담아둘 필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평생 남의 비위를 맞추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많고 적고 차이는 있겠으나 자아 1도 자아 2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며 살 수 밖에 없다.
   어차피 글이 잘 안 써지고, 대사를 못 쓰겠다면 생각이나 많이 하자. 그러자. 생각, 했다. 앗, 생각났다. 생각을 해보니 그렇다. 일단 요약을 해야 하니 <늬가 그걸 왜 하냐?>에 버금가는 아니, 으뜸가는 명대사의 기억을 찾아보면 이렇다. 살면서 읽은 게 아니라 직접 들은 명대사 말이다. 그것은 이것이다.
   「예절 좀 지켜라!」
   예절? 어떤 상황에서 내가 예절을 지키지 않은 게 뭐가 있지? 그때 나는 눈빛조차 건네지 않았다.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대충 어떤 상황인지 그려질 것이니 자비로운 남자로 둔갑하지는 않겠다. 그때 그 당시 일행에서 마초가 점찍은 그녀에 대해 나보다 더 어떤 눈빛을 보내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말 한마디 안 했다. 그녀도 말 한마디 걸어오지 않았다. 딴 데만 쳐다봤다. 이미 일행에서 한 명 이상의 남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건 익히 알려졌고, 도마 위에 오른 후 나중 합류한 그녀였다. 행실이 어떻다는 건 그녀 인생이고, 처음 봤고, 관심도 없었다. 친구들이 모인 일행에서 나중 참석한 홍일점, 그녀. 그녀는 보험설계사였다. 미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어떤 타입? 첫째, 예전 나와 둘이서 일을 같이 했던 친한 친구─그땐 그와 나 둘이 동업을 했고, 그 후 그와 나 또 그게 왜 궁금하냐고 물었던 친구 셋이서도 동업을 했다─그 친구가 보험을 상담하기 위해 어느 보험설계사와 밖에서 만날 일이 몇차례 있었는데 친구가 자꾸 어떻게 한번 해볼려고 해도 그분은 항상 자꾸 애를 데리고 나온다고 그래서 어떻게 못하겠다고 도저히 어떻게 못하겠다고 그랬던 사연에서의 그 여자. 둘째, 그렇게 어떻게 이전까지는 좋아하고 다정했고 친구였던 어떤 중년 아저씨에게 나는 어렸을 적 바로 저 꼬마였다. 그렇다. 그녀는 나중 상황이 재현된다면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간다면 애를 데리고 나갈지 어떨지, 행복할지 혼자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그 뭔가가 부족했다는 거다. 물론 심증이다. 추측이다. 육감이란 말이다. 그러나 무슨 얘기는 돌았다. 으흐흐. 으하하하하하. 그러고서 식스 센스? 꽝이군. 당신 같으면 그런 자리에서 그런 상황에 그런 그녀에게 사랑을 쟁취하겠다는 욕심과 의욕과 굳은 의지가 들겠는가? 과연 나처럼 조연이 되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후발주자로 발을 담구게 되었을 때? 보통은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얘기다. 그러나 또 너무 정확하게 결론 짓지는 말자. 그게 좋겠다. 아무튼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거다. 거기서 나보다 예절을 더 지킨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제발 나와보라고! 거짓으로라도 나오라고 막 빌고 싶다. 나는 그때는 물론이고 어디에서나 어떤 그분들께 존재 자체가 질투와 질시와 시기의 대상이었다. 서로 마음에 안 차는 건 피차일반이었다. 또 저 말을 했던 친구와 절친이 있었다. 예절 지키라고 말했던 친구가 소문자 b라면 그와 단짝이었다가 나랑 친해졌던 친구는 소문자 a라고 치자. 소문자 친구들의 리더 a, 명색과 위치는 소문자 친구들에 속하지만 실은 대문자 A급인 그런 친구. 일단은 편의상 소문자 a로 지칭하겠다. 한때 또 걔와 내가 급히 친해졌다. 많이 친해졌다. 우정으로 만리장성을 쌓았다. 큐피트 황태자네 뭐네 서로 애칭도 붙여주고 단둘이 새로운 등산 모임에도 따라가고, 단둘이 브로맨스의 성을 쌓았다. 그와 나는 공통점이 있었다. 마음이 통했다. 우린 모두 유명 영화배우 이름을 이메일 아이디로 사용했다. 미리 선점된 이름일 테니까 내가 좋아하는 영화배우 이름 그 끝에 큐피트 황태자 a는 77을 붙였다. 친해질려면 작은 걸로도 둘 사이의 온기를 알 수 있고, 그 화려한 절친함과 숨길 수 없는 친밀감은 측정 가능할 것이다. 우정이 격정적으로 급속히 불타올랐다. 홈페이지 여자친구들이 막 부러워했고 즐거워했다. 바벨탑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본디 전에는 a와 b가 절친한 우정이었다. 완전 단짝. 그래서 내가 a와 친해져서 둘이 자주 만나고 노니까 b는 개밥에 도토리가 됐다. 당연히 소문자 b는 나와 a가 단둘이 찻집에서 차를 마실 때 문자도 하고 찾아 오기도 했다. 코드 맞는 사람끼리 만나라네 어쩌라네 문자하고 나서 즉시 다 떨어진 너덜너덜한 쪼리 슬리퍼만 신은 채로 택시타고 왔다. 울상인 채로 찻집에 도착하여 내 죽상을 좀 봐주시게 그러면서 쇼를 했다. 소문자 친구 b는. 뭔 말도 안 나왔음. 그는 내 집에도 찾아왔다. 지적인 남자를 좋아한다고 음 나도 책을 한번 읽어볼까 하면서 내 쪼매난 서재에도 기웃거렸다. 몇 권 훓어보다가 말았다. 물론 녀석은 그 집요함으로 살면서 많은 소득이 있었다. 나머지는 진짜 사석에서 할 얘기. 코메디도 그런 코메디가 없었다. 또 우리는 소문자 친구들 무리와 여행도 갔다. 거기서 모두 같이 술을 마신 다음 저녁이 찾아왔다. 나는 머리 아퍼서 쉬고 있고 다른 친구들은 카드놀이를 했다. 그러다 소문자 친구들 노는 걸 구경하다 나는 누워서 눈을 감았다. b는 내게 과자던가 어떤 즉석 식품에 대해 얘기하면서 게임 중이니까 물 좀 받아주라고 부탁을 했다. 처음에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나는 머리가 아펐다. 거절했다. 머리 아프다고. 그러다 부탁한지 얼마되지 않아 b는 뚜껑이 열렸다. 확 열렸다. 즉석 식품을 나라고 가정하고 화내고 소리지르고 벽에 집어던지고 발로 지근지근 밟아서 즉석 식품을 곱고 미세한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거긴 마이크 타이슨 사건이 일어난 알라스카가 아니라 중부 어디쯤 됐겠다. 그 사건 당사자도 소문자 친구들 일원이었다. 현장에 있었다. 그를 소문자 g라고 했을 때, 다른 자리에서 g는 내게 언지를 주기도 했다. 너가 친구들 있는데서 한판 붙으라고 b와. 애들 말릴 꺼고 나이 들고 친구끼리 치고 박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그런 방법도 있다고. g와 서로 충돌해서 괜히 내가 마이크 타이슨이 되기도 했지만 g도 남자 중의 남자여서 그렇지 나쁜 놈은 아니다. 거칠고 자기중심적이고 애완견에게 순서가 밀렸다고 부케가 시든지 얼마되지도 않아 곧바로 이혼해서 그렇지. f의 단짝 g는 그 특유의 관대함 때문에 b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 재수씨 곧 c의 여자친구의 친구들은 b를 뭔 껄떡쇠로 알겠다고. 그렇게, 그렇게 b는 광분했다. 그러고서 혼자 식식거리며 분을 못 참고 b는 문을 팍 닫고 밖으로 나갔다. 혼자서 집에 갈려고. a도 뺐겼겠다, 기분 상했겠다, 이미 난동부렸겠다, 애들에게 돌아가기에는 면도 서지 않겠다, 집에나 가야지 남아서 뭘 하겠나! 그렇게 그는 멋지게 남쪽으로 혼자 내려갈려 그랬는데 (막힌 차 때문에) 주차된 차를 못 빼고, 뒤따라 달려간 브로맨스 친구 a가 b를 엄청 야단치고 어르고 달래고 중재하고 다독여서 다시 숙소로 돌아온 적이 있다. 또 소문자 친구들에게 나도 소문자가 되어 같이 좋은 데도 갔다 왔다. 나중 모여서 어쩌다 그 말이 나와서 분위기 으쌰으쌰 웃고 떠들 때 b는 뭐가 뒤틀렸는지 으잉 으잉 에게 뭐야 에게 뭐야 그게 뭐야 에게~ 하면서 핀셋으로 들어올려야 하네 마네 현미경으로 보일려나 하면서 초딩도 안 할 행동들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실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에게~ (몸짓) 요만~ 에게~ 얼굴 찡그리고 또 에게~ 그게 다였다. 그것만 해도 어딘가. 진정 지적인 남자는 그분이고 풍자는 기본이요 단연 고급스러운 농담의 대가인데 인정할 건 인정하자. 가짜 웃음, 그건 일생 생활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정도로 기지와 재치가 넘치고 해학과 상상력이 풍부한 친구라서 각색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자신이 행위 주체가 되어 그런 표정을 자기도 모르게 표출할 기회, 흔치 않다. 매우 드문 일이다. 어른이 되서도 그런다, 그건 푼수다. 역으로, 살면서 뭔지 모를 울화가 끓어올라서 말할 수 없는 어떤 불가해한 속내 때문에 약오르지롱~ 하면서 눈꼴사납고 같잖은 반응을 반드시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그 표정과 행동을 행위 객체로서 구독할 수 있는 기회, 역시 흔치 않다. 몇 번쯤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어른이 되어 매번 그런 사람을 만나고 겪는다? 그런 일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는다. 있다면 그건 비정상이고, 있다면 그건 정상적인 행복이 아니며, 있다면 그건 만화영화다. 만화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애들은 몰라도, 여자들...은 몰라도, 남자 세계에서 그런 일이 있다? 그건 쉬쉬할 일이다. 대하드라마에서도 보기 어렵다. 때문에 나는 아마 그분에게 고마워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심정을 느낀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오, 땡큐! 매우 감사! 마침 정말 때마침 당시 나는 TV 드라마를 보면서 폭소를 터트리며 겉으로는 즉 대외적으로 부쩍 말수를 줄이면서 또 혼자서는 뭐랄까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고혹적으로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 같다. 드라마 속 명대사를 듣고 또 따라하면서. 어떤 대사냐면 이런 대사였다. <내 남편한테 껄떡대지만 이년아, 뭐~? 껄~떡?>, <내 인생에 달라붙어 단물 쪽쪽 빨아먹는 낙지 빨판 같은 년!!!>, <돼지뽄드같은 년!!> 막 샤워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그땐 좋았다. 정말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예절 좀 지켜라, 그 말 들을 만 했던 거 같다. 못 들었다면 나는 훨씬 더 망나니가 되었을 것이다. 충분히 들을만 했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예절을 안 지켰다. 많이 안 지켰다. 나는 예법이 뭔지도 모르는 막 나가는 시정잡배였다. 반성해야겠다. 그래. 미안하다. 내가 예절을 안 지켜서. a를 뺐겠다는 의도, 원래 없었다. 추호도 없었다. 어쩌다 잠시 친하게 지냈던 거 뿐이다. 친해지려고 노력도 해봤다. 참고 마주치고 참고 어울리고 참고 사진 찍고. 그때 즉시 내가 예절을 안 지킨 게 뭐냐고 조곤조곤 묻고 가르치고 어정쩡한 결론도 얻어냈다. 내가 예절을 안 지킨 게 뭐냐는 물음에 그 친구는 덧씌워진 하이드가 순간 물러나고 지킬이 대두하여 금새 오보를 시인, 했다. 으쌰으쌰,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내 유머감각을 유독 높이 사는 친구였던 건뚱(건방진 뚱보)도 큐피트 황태자 a도 녀석 나쁜 놈 아니라고 하고 두런두런 어울려지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나도 인기있는 남자가 되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보여지고 싶고, 남자니까 원만한 유대 관계를 넓고 멀리 이어갈려는 일종의 의무감도 어른 흉내내기였다. 술도 같이 많이 먹었다. 공통된 친한 친구들도 끼어 있고. 그러나 안되는 걸 어떡하나. a도 자연스럽게 연애하면서 결혼하면서 멀어졌고 그렇게 그냥 지난 일이 된 거다. 과거 내가 친했던 친구들 목록을 보면 답이 나온다. 일관된 기준에 예외가 하나둘 끼어들면 그건 더 이상 기준이 아니게 된다. 흔들린 우정도 뭣도 아니다. 이제 보니 옛날부터 나는 이마에 <나미움> 이라고 써놓고 다녔구먼. 이름도 그렇게 <나미움>으로 바꿀 껄 그랬다. 지울 수 없는 낙인, 찾을 수 없는 부적 그게 바로 나 였어. 나는 타인에게 경구의 대상이었다. 어떤 경구냐면 이거. 남 잘 되는 꼴 못 본다. 그분들은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내가 얼마나 아니꼬웠을까? 또 지금은 얼마나 미워할까? 앞으로는 어느 만큼 아니꼬울까? 사건은 이어진다. 사건은 이어져. 소문자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인 c의 여자친구가 내게 그녀를 소개시켜줬다. 내 영원한 사랑, 마지막 사랑, 전설적인 사랑의 그녀 내 그녀 고운 님을. 고마운 사랑의 징검다리를 이어주긴 했는데, 그랬는데 또 c가 문제였다. 당연히 주위에서 또 소문자 친구들 벌떼처럼 몰려들었지. 같이 놀러도 가고 그랬는데 어느 날 날 빼놓고 소문자 친구들과 c의 여자친구과 내 그녀와 모두 같이 여행을 떠났다. c의 여자친구와 내 그녀는 친한 친구였다. 그때 내가 없는 사이 뭔 일도 아닌 일이 있었다. 여행을 갔던 일행들 모두 함께 술을 마시고 나서 밤에 내 여인과 소문자 친구들의 한 남자와 단둘이 밖으로 나갔다. 단둘이 차를 탔다. 어딘가로 갔다 돌아왔다. 그 한 남자가 다른 g던가 g는 마이크 타이슨이었고, e는 홈페이지 사진을 보고 c에게 그녀를 만나게 해주라고 난리쳐서 그녀와 단둘이 딱 3번 만났던 녀석이고, f였다 그는 f였다. f는 혼자 이미 결혼 계획을 다 짰고 c와 같이 거들먹거렸다. 날이면 날마다. 어느 날 c가 말했다. 내가 없던 그 여행에서 나의 그녀가 f가 잤다고! 오오! 아아! 이럴 수가! c, 자기는 백작이고 남작인데 하녀 2가, 하녀 2가...... 뭔가 억울해서 c는 여자친구가 자기 친구를 뒤늦게 소개시켜주니까 b에게 쪼르륵 달려가서 일장 연설을 해댔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말하고. 괴로운 날들이 시작됐다. 완전 어마어마하게 괴로운 날들이 그때부터 시작된 거다. 여자친구가 자기 친구를 뒤늦게 소개시켜줘서. 안 그래도 여자친구에게 험하게 대하던 그였는데 더 심해졌다. 결혼을 앞두고 Y는 소문자 친구들의 리더 a와도 만나고 c랑도 만났는데 그 둘의 시기가 겹쳤는가는 모르겠다. 지금은 각자 결혼해서 산다는 것까지만 들었다. 당시 결혼할 연인을 둘 다 놔두고 Y가 c에게 먼저 연락해서 만나자고 했고 그래서 만났다.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만나서 단 둘이 Y와 소문자 c가 뭘 했을까 궁금하지도 않다. 지금 소설 블로그 본편 출연자 몇몇은 반성할까? 절대 아니다. 뭘 잘못했다고! 억울할까? 그럴 것이다. 아마도! 서술자는? 반성한다. 과오를 인정한다. 죄송합니다. 그대여! 제발, 지금 행복하소서! 그러다 또 중간에 c는 내 님과 싸웠다. 그래서 1년쯤 안 봤다. c의 친한 친구는 동생들 빼고 그녀뿐이 없었는데. 나중 그들이 결혼하기는 했는데, 나한테도 소리지르고 발광을 했던 놈인데, 미세한 억울함은 남아있을 것 같다. c는 뭔가가 억울하고 짝을 바꿀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고, 그러니 특권만 강조했다. 남자는 남자가 보면 안다네 어쩐다네 자자 너네들 모두 줄 서 줄서라, 내 여자친구의 절친이라네, 소개받고 싶으면 나한테 잘 보여 잘 보이라구 으흐흠 그렇게. 한편 f도 쉽게 마음이 접히지 않았다. 진짜 남자 중의 남자는 이 친구다. 외모도 몸의 언어도 진짜 UFC 헤비급 챔피언급이고 그렇게 거칠게 살았다. 우락부락하다, 카리스마 있다, 얼굴은 어 넘어가자, 남자들이 하나같이 국가대표 상비군 정도로 운동했던 친구를 믿음직스러워하는 각별한 호감 그에겐 있었다. 원래 옛날부터 그와 나 사이엔 같이 아는 친구들이 많았고 둘이도 친했다. 정말 화통하고 남자로써 친구로써 좋은데 좋긴한데 여자들은 너무 세다고 강하다고 주관적이다고 어쩐다고 해서 조금 편하게 느끼지는 않을 뿐이다. 평생 글을 읽지 않고 글이 없는 인생을 살던 f, 그가 시험공부를 해서 무슨 자격증 시험에서 나의 신부가 보는 시험장에 따로 들어가서 같은 날 시험을 보기도 했다. 그가 시험을 봤다는 것은 어느 정도냐면 예를 들자면, 쉽게 말해 느와르, 범죄, 스릴러, 범죄 조직원, 지하 세계에서만 살았던 영화 속 주인공이 글을 깨우치고 배워서 어느 날 검사가 된 거랑 비슷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나의 신부가 빛났다는 뜻인가, 아니면 뻘때처럼 달려들던 소문자 친구들과 소문자 친구들의 친구들이 유별났다는 것인가. 이 또한 잘 모르겠다. 다만 오글거릴 뿐. 뿐만 아니라 알파벳이 아니라 전-직장 동료들과 나는 친하게 지내던 때가 있었다. 자, 다음 사건으로 넘어간다. 다음~ 사건~! 또 남자 넷이서 어울렸다. 한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사이였다. 네 명에서 나이 순으로 나는 2번이었다. 셋은 직장을 떠났지만 남아있는 제일 나이 많은 어르신 형님은 일종의 평생 직장에 계속 몸담고 있었다. 그때 달라스에서 1번과 나 2번이 주먹다짐을 했던 거도 다 그럴 수 밖에 없었나 보다. 친하지 않고, 아예 체급이 차이 났으면 나도 그렇게 깐죽거리지 않았을 텐데. 즐겁게 놀다가 갑자기 딱 연타로 느닷없이 뜬금없이 나는 아구창을 3대를 맞고, 이제 내가 좀 때릴려고 하니 한창 때인 젊은 청년 3번과 4번이 하필 나만 양쪽에서 딱 잡아서 제압하고 끝나버렸다. 상황종료. 분위기 끊기니까 분이 남아 있어도 끝을 시작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또 돌아서서 미안하다는데 뭐라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다 맞을 만 해서 맞은 것이다. 어차피 예견된 일이었던 것 같다. 사과? 오히려 끌려가서 꾸중만 들었고, 내 과오만 인정했고, 내게 동반자는 없었고 이미 1 대 3이었고, 서로 어물쩍 풀었고, 나는 속좁은 남자가 되기 싫었고, 그래서 그렇게 몇 차례 더 어울리다 나는 패거리를 피했고, 그 후 스스로 따돌림을 택해서 그들과의 친교는 중단됐다. 그게 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였다. 흥분할 일, 못된다. 그때가 봄이었나, 서늘한 가을비가 내려서 그랬다. 신선한 경험도 아니었고, 멋진 일도 아니었다. 전혀. 그게 다다.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기서는 이 친구들은 어떻게든 나를 끌고 밀고, 같이 놀고, 우애를 다질려고 했다. 다 같이 격려하며 합심했다. 그래서 으쌰으쌰, 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충분히! 땅 짚고 헤엄치기로! 올커니, 굴곡도 만들어졌겠다 언제─왜─어떻게─그래서 그랬구나, 는 알아도 말은 안 해도 기억은 날 테고, 오히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딱 한 사람만 생태계에 적응하면 그만이었다. 노력은 했다. 시도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못내 뭔가가 마음에 내키지 않았는지 도전은 했으나 역시 이건 아니야-로 끝난거다. 물론 헐크 타입은 실제 살면서 나는 친구로 만들었다. 같이 다니면 든든하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맞은 게 잘된 일이다. 그래도 이해는 안 된다. 나는 남자가 그렇게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건 내 상식으로는 남자가 아니다. 내 교양 수준으로 봤을 때 그건 악녀다. 마술을 못 부리는 마녀다. 내가 봤을 때 남자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이론은 그런데 또 실재는 다르더라. 항상 다르더라. 내 이론이 엉터리였다. 세상이 일단 평등을 말하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머지 덕목을 다 따지는 이유가 있긴 있다. 남자가 맞는데 1번은 그랬다. 그랬어. 왜 그랬을까? 그렇다면 음, 그건 그냥 골목대장 놀이를 하고 싶었던 거다. 그게 다다. 찰과상이야 몇 일 지나면 없어지고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은 오뚜기 장난감처럼 털고 일어나서 잊고 자기 인생을 살면 된다. 말은 쉽지만. 언젠가 4인이 모인 자리에 1인자의 친구이자 직장 동료인 1분이 손님으로 참석했을 때 그분도 그랬다. 3, 4번 동생은 친해도 어려워하는 구석이 있는데 2번은 그런 게 없다고. 저렇게 붙기 전 어느 때 또 술 먹고 먼저 야구를 했다. 그러다 갑자기 야구에서 종목이 바꼈다. 육상으로. 육상에서 끝나지도 않았다. 나도 나지, 뭔 그 여름 해변가에서 그녀와 사랑 놀음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때 거기서 '나 잡아 놔라'를 했다니, 오 저런! 하긴 누가 하고 싶어서 했나. 그러다 1인자가 느닷없이 레슬링을 걸어왔다. 얼렁뚱땅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야밤에 레슬링을 하게 됐다. 동네 주민 신고는 없었다. 동네 주민 신고로 파출서에 잡혀갔다 풀려나 본 적 있나? (그런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물어보는 거다, 너 뭐 해 봤어? 난 해 봤어) 난 있다. 그렇게 레슬링이 갑자기 시작됐다. 1인자와 2인자 둘이서. 넷이 모여 있으니 무조건 숏게임 단판이다. 소란이 일어나면 당장 말려야 한다. 나는 상대방이 걸어온 그레꼬로만형 레슬링 기술로서만 똑같이 응수해서 가볍게 한판승을 따고, 즉시 말려서 1번은 고개 푹 숙이고 일절 두말없이 집에 들어갔던 적이 있다. 첫째, 처음부터 편하게 지내자 더 친해지자 좀 더 가까워지자 아웅다웅 즐겁게 지내자 지금 이대로 영원하자 라고 하지 말던가. 둘째, 중간에 먼저 시비를 걸지 말던가. 난 빈말에 속아넘어갔고, 순진하게 양치기 소년이 되었던 거다. 남자의 질서도 모르고, 수컷의 순정도 모르는 양치기 소년. 그러고 보니 성산 독서실 쪽문 틈으로 어느 여인의 뒷태를 훔쳐봤던 중학교 1~2학년 때, 같이 놀던 동네 형과 그래서 그랬구나. (친한 건 좋은데) 올라타려 한다고! 그때도 싸움이 시작될 뻔 했다. 말싸움으로 끝났다.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왜 그러냐고 외치며 따졌는데 다른 형들이 말렸다. 제일 자주 봤던 형은 날 아니까 막 엄청 웃으면서 말렸다. 싸울 뻔한 형은 장난 아니었고. 아, 그래서 그랬구나! 말로는 수평이고 지란지교지만 핵심은 서열이다. 피터 드러커가 쓴 책에도 나온다. 모든 짐을 내려놓고 부담을 털고 오랜 친구와 만나 발가벗고 냇물에서 논다고 생각하고서 사소한 의문이나 약간이라도 뭔가 걸리는 부분을 얘기해주라, 그렇게 고위급 상사가 사원을 자기 방으로 불러서 간곡히 부탁을 한다면 대개는 그런다고. 한 번 거절하고 두 번 거절하고 세 번 정중히 사양하다가 4번째나 5번째를 넘어서 정말 등에 땀 흘리면서 어렵게 말을 꺼내놓으면 어떻다고. 고위급 상사의 얼굴, 상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분은 가짜 웃음, 다시 배워야 한다. 포커페이스? 어떻게 그분이 그 자리까지 갔는지 궁금하다. 교수님 그 차 설마 돈주고 사셨어요, 가 된다. 미스테리란 말이다. 물론 진담은 아니다. 웃자고 한 얘기다! 더구나 행운에 힘입어 멋진 전망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갔으면 인자함의 층위도 한층 격상되어야 하지 않겠나. 뭐니 뭐니 해도 품위 유지비는 제일 먼저 올라가는데, 품위 유지비만 올라갔어. 많이도 안 바란다고도 한다. 품위야, 내려가지만 말아달라고. 품위야, 오공본드든 낙지빨판이든 것처럼 거기 그대로 중간에만 붙어있으라고. 안 그런가? 날 이용하세요, 날 밝고 올라서세요, 난 진정 봉사를 하고 싶어요 라고 까지는 못하더래도. 농담이다. 웃자고 한 얘기다. 사람에겐 누구나 크고 작건 그런 일면이 있게 마련이다. 그게 인간이다. 또한 상석을 빈자리로 놔둘 수도 없다. 좋은 상사는 무엇보다 훈련을 잘 시켜야 한다는 것을 전문가들은 안다. 어항을 키우고 물건을 만들려다가 간혹 나중 보면 괴물을 키웠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고양이인줄 알고 키웠는데 장르가 바껴서 맹수로 변하는 일은 뉴스로도 보게 된다. 금융범죄 어쩌고저쩌고 해서. 좌우지간 아, 지금껏 난 예스맨으로 살아야했던 것인데 그러질 못했구나. 오오 예스맨! 항상 다투고 안 맞았지만 친했던 사이를 보면 서로 까고 티격태격해도 한번 접어주고 늬 차례 내 차례 그렇게 궁짝이 잘 맞았던 친구가 친했던 것 같다. 한마디로 몸을 어떻게, 는 안되니까 마음이 잘 맞는 친구! 몸이라면 난 슬랩스틱 코메디를 노렸어도 상대방은 몸의 대화로 받아들였다. 어떻게 그렇게 안 맞을 수 있는지 신기했지. 여자들도 어리고 젊었을 때나 친구끼리 막 깨물고 만지고 장난치고 그러지 나이 들면 그런 거 안 한다. 아~ 그때나 지금이나 못말리는군. 끝까지 속아넘어가면 안 되는데 시작도 전에 제 발로 본진에 찾아가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거였어. 취미가 잠자는 사자 코털 건드리기-였군. 음! 그러나 각자 주어진 삶을 살면 그만이다. 작품이든 뭐든 견해는 많다. 뭐네 어쩌네 그러나! 그러나 하나는 분명하다. 지금은 하나만 말하고 싶다. 떠나면 못 온다. 갈 수는 있는데 돌아올 수는 없다. 레테의 강을 건너는 건 모든 책무를 마치고 천운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그 책무가 무엇이냐, 주어진 인생을 즐기는 것이다. 너는 너의 인생을 살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사는 것. 혹시 둘이 섞여야 한다면 그것이 한때 사랑이었다면 또 그것이 중간에 멈추어야 한다면 끝은 고~이 안녕! 아름다웠던 시절을 기억하고, 기쁜 일과 즐거웠던 추억을 간직하며, 내 인생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지금 당장 행복할 것. 말은, 쉽다. 말은 쉬워. 지는 개싸움에 애들 싸움과 어른들 싸움에 인생 내내 싸움꾼이자 말썽쟁이요 막캥이로 살아놓고 우리 보고는 뭐? 뭐가 어쩌고 어째?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어. 충분히 그럴만 하다. 인정, 인정한다! 그러나 할 건 해야 한다. 포장할 건 포장해야 한다. 살면서 언짢은 일은 부지기수다. 좌절과 실패는 딛고 올라서야 한다. 깨닫고 배우고 지나가야 한다. 돌아갈 수도 있다. 환락과 환희와 기쁨이 있으면 오열과 슬픔도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오뚜기 장난감처럼 털고 일어나서 잊고 자기 인생을 살면 된다. 말은, 쉽다. 오뚜기 장난감처럼 털고 일어나서 잊고 자기 인생을 살면 된다. 네 인생, 내 인생. 처음부터 편하게 지내자, 친해지자, 으쌰으쌰 우린 너무 잘 맞는거 같아, 다 좋아 다 좋다구 라고 하지 말던가? 너무 순진했다 너무 순진했어. 다 원인 제공을 한 내 잘못이다. 내 탓이란 말이다. 뭔 말이 더 필요한가. 존재 자체가 화근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고! 존재 자체가 화근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고? 더 필요하다. 왜냐하면 왜 트러블 메이커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 듣고보면, 말하고나면, 알고나면 흥미롭기 때문이다. 재미없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사건, 또 있었다. 자, (손가락 딱, 골 세러모니) 다른~ 사건~! 동창 모임이 있었다. 동창, 모임이, 있었다. 내게 몇몇은 친구였고 몇몇은 동창이었다. 그러나 이젠 그것도 모르겠다. 무엇이 친구고 무엇이 친구가 아닌지. 아무튼 동창 모임이 있었다. 모임의 형식이 없어도 서로서로 오래 만났고 친한 사이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자기 삶을 살면서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게 있어서 친구들끼리 형식적인 모임을 만들었다. 그 모임의 이름도 만들고 법도 만들었다. 즉 회칙까지. 그렇게 어른들 흉내내기를 시도하던 모임은 삐걱삐걱했으나 명맥은 이어졌다. 그러던 언젠가 당시 모임의 회장이 회비를 횡령했다. 얘기가 돌았다. 중간에 작은 빼돌림도 있긴 있었다. 누가 귀찮아서 감투를 쓰지 않으려고 하니 그분 혼자서 돈을 관리했고, 그분 혼자서 회장을 연임했고, 전체적으로 재무재표가 투명하지 못했다. 재무재표에서 뭘 보면 부풀림이 있고 그런 거 다 답이 딱 나온다. 그러나 그건 해킹과 비슷하다. 뚫으면 막고, 매번 새로운 방법이 나오고 또 나오고. 정말 악마의 이름은 새로움인가 보다. 그러면서 회원이 나가기도 하고 새로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다 모두 모인 어느 날 일종의 재판과 비슷한 시간이 주어졌다. 각자 또 전체 그리고 그분도 할말을 성토하는 시간이었다. 사실적으로 횡령, 두런두런 완곡히 표현하면 (두둑한 회비 전체를) 차용했던 그분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서로 매듭을 풀자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명목상으로는 친목도모였고. 그러면서 말이 오가고 술도 한잔 하면서 나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나중에 숟가락 하나만 얹었다. 말 그대로 딱 숟가락 하나였다. 그게 다였다. 게다가 그분의 발언권도 보장됐다. 그런데 너무 보장됐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나 보고 너 여기서 빠지랜다. <너 여기서 빠져라!> 그 자세, 그 표정, 그 태도, 그 기세, 그 여유, 그 증오, 그 무엇 그 앞에서 나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그래 빠질께> 라고! 그러나 나는 마음이 그렇게 너그롭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따지고보면 그분은 어차피 굴욕도 옅어졌겠다, 다 알려졌고 얘기 나눴고, 답답한 처지도 그만 정리됐고 적응도 됐겠다, 면피는 이미 옛날 일이고 적당히 슥 넘어갔으며, 재기와 재도약의 과정만 남았는데 뭔가, 뭔가 심사가 뒤틀린 거다. 왜? 왜 그랬을까? 그는 왜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고, 나는 왜 그렇게 뾰족한 말을 얻어들어야 했을까? 감정을 배제하고 고운 햇볕에 싱그럽게 잘 말려서 푸른 수건과 하얀 속옷을 단정히 개는 심정으로 접근하면 된다. 주군은 최-말단 신하에게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라고. 당시 녀석은 그랬다. 다른 애들은 모두 단짝이 있었는데 걔는 단짝이 없었다. 단짝이 없는 다른 애도 있었는데 그들은 결혼한 남자였다. 가정이 있었다. 걔는 총각이었다. 여자들만 단짝이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언젠가 애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1번이 생기면 1번과만 놀게 된다고, 그래서 다른 애들에게 소홀해지게 된다고, (번역하면) 1번이 사랑에 빠지면 자기는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고, (말은 안 했지만) 서로 마음에 맞는 1번이 자기에겐 없다고, (이게 중요하다) 그래서 결국 현재 나는 1번이 없고 전에도 없었다고, 또 그래서 자기는 친구에게 넌 미안하지만 내게 1번은 못되고 넌 나의 2번째 친구야 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그럴 기회도 없다고. 또 녀석은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놈이고, 자존심 빼면 시체고, 까칠하지만 외양이 좀 그만그만했다...... 그만그만! 남자들은 살면서 드물게 경험하거나 드물게 본다. 챔피언에게 묵사발이 될 정도로 심하게 얻어터진 얼굴을. 수컷 세계에서 일종의 불문율인 아구창만 때리고 아구창만 맞는다 라는 불문율이 깨트려질 만큼 때와 장소에 따라 사리판단 못하는 부류, 드물~게 있다. (막 남자는 무조건 안 굽힌다 그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남자는 아빠다. 아빠는 남자다. 아빠 하면 뭐가 생각나는가? 아빠 사랑해, 다. 동물적 본능을 터부시하려는 것도 아니다) 암중모색, 임기응변, 권모술수의 법칙에 위배되는 꽉 막힌 기질, 꿇리면 못 참는 성질, 속으로 뭔가를 결의하지 못하고 진득하게 잘 기다리지도 못하고, 잘 참지도 못하고 오래 견디지도 묵묵히 조망하지도 못하는 그런 걸 말한다. 그러나 그는 비굴해도 돈이 있는 쪽에 힘의 주변에 붙는 재주 하나는 있었다. 여자들은 제일 꺼려하는 타입이다. 여자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뭘 모르는 타입. 이건 단언컨데 <몰라서>의 문제가 아니라 <싫어서>의 문제다. 또 남자들은 안다. 일이 나면 일방적인 전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또 그건 불상사고 서로 손해라는 것도. 그래서 끝까지 참고, 애초에 그리고 어렵다면 중간에 피해야 한다는 것까지. 친구가 사고뭉치여도 답답하다는 것도 다 안다. 그리고 일방적인 전개 예측에 대한 상황 판단은 보통 본능적으로 한다. 그러므로 그걸 <못한 것>아 아니라 엄한 줏대를 내세운 것이다. 기질 때문에. 여자의 마음은 갈대? 남자니까 심지 굳게, 우직하게 드라마 찍기를 원하는 인생이다. 맞는 역할로. 여자 보기를 돌맹이 보듯? 스스로 나무요 돌이 되는 사나이라 할 수 있다. 단, 단짝으론 난처함. 그래서 걔는 언젠가 완전 묵사발도 됐다. 그 모습을 모두 학교에서 봤던 친구들 모임이었다. 또 그분은 예전에 모임에서 말했다. 친구들도 듣고 나도 들었다. 자기에게는 1번이 없지만 내가 자기 말을 잘 들어준다고, 나와 독대하며 서로 심중을 헤아리는 시간을 틈틈히 갖는다고. 그랬는데, 그랬는데 나중 사건이 터진 날 내가 눈치없이 숟가락을 얹은 것이다. 이미 사전에 난 거리를 두고 싶었고, 실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여겨서 어떤 부탁을 들으면 더 가까이 오지 말라고 따끔히 선을 그은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날 숟가락을 얹었다고 그렇게 된 것이다. <너 여기서 빠져라> 라고 얻어들었다. 예~ 고맙습니다 빠지겠습니다, 그래야 했는데 그렇게 못했다. 진짜 별말도 안 하고, 긴 말도 안 했다. 그런데 또 역시나 나는 과녁이 되었다. 골대 그물이 되었다. 테니스공이 되었다. 투수 베이비~였다. 우익수 누구 슈퍼마켓 앞에서 춤이나 춰라, (전직 아이스하키 선수? 한때 유명했어? 동네 아이스링크에서 한게임 같이 뛰면서) 에이~ 별거 아니네~ 제껴-였다, 그럴만 했던 거다. 그럴만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얼마 살지는 않았다만 내가 경험한 인생 드라마에서는 사랑과 우정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사랑과 우정이 왜 다른 말인지 모르겠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통 몰라 모르겠다고! 사랑 안에 우정이 있나? 아니면 사랑과 우정의 교집합만 존재할까? 그것도 아니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걸까? 또는 우정 다음에 사랑? 그나저나 사춘기 시절에나 고민할 법한 일을 왜 아직도 여태 껴안고 있느냔 말이다. 도대체 이게 다 뭐야 뭔 뚱단지 같은 법석이고 뭔 말도 안 되는 난리요 명대사란 말인가. 뭐 미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야? 어? 그런 거냐고. 참 나~ 우습지도 않다. 이젠 정말 지가 주인공인줄 알고 뭔 말만 하면 명대사고, 길게만 말할려고 하면서 뭔 말만 하면 다 긴 명대사야. 자기도 이제 개나 소, 그 반열에 올라섰다 이거군. 나는 학교에 가고 싶다. 나는 학교에 가고 싶다. 가야 된다. 가야 된다. 물론 선생님은 현재의 학생이면 좋겠다. 야한 복장이면 곤란하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다 라는 말,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알면 아는 거고, 모르면 모르는 거지 그게 뭐야? 그게 뭬냐고. 에게~ 그게 뭬~야! 나도 확실한 게 좋고, 지금 행복했으면-싶고, 뭐 아닐까 라고 묻기보다는 뭐는 뭐다 라고 설득하고 싶다. 뭘 해도 재미없다고, 사랑은 없다고, 좋은 남자는 없다고, 글이 잘 안 써진다고 자꾸 그렇게 매번 꼬박꼬박 부정적 어법을 남발하고 싶지도 않다. 어디 좋아서 그러겠는가, 인생이 수수께끼요 세상이 불가사의인데! 거 마 거 마 아조 인생이 어린이날이구먼유~ 왜 그랬시유~ 왜 그랬냔 말이유~ 그러겠지. 지금의 나가 과거의 내게 그러겠지. 그러나! 그러나,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내게 똑같은 말을 들을 꺼 같아서 적이 헷갈린다. 일순 쭈뼜거리게 된다. 왜 그랬시유~ 거 마 거 마 아조 인생이 어린이날이구먼유~ 왜 그랬시유~ 왜 그랬냔 말이유~ 막 딱 막 그런 환청이 들린다. 아무래도 나는 비정상인 듯 하다. 그런 것 같다. 막 인생이란 게 삐툴빼툴 꼬이고 꼬인 사랑의 화살표처럼 느껴진다. 그런 감정을 놓고 사람은 두가지로 나뉜다. 첫째, 떨려! 그리고 둘째, 떨어! 즉 동화되는가 만들어나가는가로. 곧 동화되어도 뒤늦게 차 떠난 다음에 동화되면 난감하고, 만들어나가도 세월아 네월아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해서는 인생의 참맛을 알기 어려운 법이다. 간혹 수많은 직접 경험이 작가 인생에 큰 밑거름이 되기는 하지만, 그럴 수 있지만 보통은 그냥 밑거름만 되고 만다. 그거도 어디냐마는. 어쨌든, 다사다난했던 지난 일들 모두 이제 남들은 모르겠지만 난 추억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이제는, 이제는 그렇다. 옛날에는 속으로 뚱~할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깔깔거리고 낄낄대며 피식 냉소도 곁들이며 뭔가 속내를 털어놓고 나니까 뭔가 뭉쳐진 불만이나 정보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느낌이 든다. 말로 마음 정리가 어려울 땐 이렇게 글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또는 블로그가, 승마가, 모형 장난감 수집이, (컴퓨터) 마우스 동호회 활동이, 코스튬 플레이가. 이제와서 지난 일을 돌이켜보니 속으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뭔가 모른 체 하고 싶었던 것이다. 뭔가가 인정하기 싫었다는, 불편한 상황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어떤 마찰에 대한 거부감이랄지 그런 감정이 있었던 듯 하다. 마치 만화영화처럼 신비의 풍선을 붙잡고 하늘로 올라가니 숲이 보인 것이다. 냇물에서 길을 잃어 물을 따라가다보니 큰 바다를 만난 것이다. 시간이 어떤 희한한 마법을 내게 선사한 것만 같다. 시간의 신, 그분의 이름은 무엇인가? 어찌되었든 그것이 돈과 직결되지는 않지만 마음이 훨씬 홀가분해진 것 같다. 내가 처음부터 대인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시간이 다 해결해주는 것 같다. 그러나 아쉬운 점을 하나 얘기하자면 이렇다. 별로 달갑지도 않고 흥미롭지도 않고 기분만 나빴던 일, 그것 보다 남자들은 말이다 훨씬 타격이 컸더라도 대규모로 아예 판이 다른 축구장 난동에 엮여서 내가 심하게 얻어터지는 사진이 신문과 웹사이트들에 대문짝만하게 걸리는 게 훨씬 짜릿하고, 기쁘고, 뒤통수 벅벅 긁긴 하겠지만 즐겁고,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마치 사랑처럼! 축구장에 친구들이랑 경기를 보러갔는데, 하필 그 경기가 대단한 명 경기였고, 또 내가 얻어터지는 내가 쥐어터지는 내가 아구창을 얻어맞는 사진이 명사진가에게 딱 정확히 포착되어서 그게 그 다음날 신문에 인쇄되어 나왔다. 그렇다면 보통 남자들은 친구들은 그것을 보고 화낼까? 화를 내? 그럴까? 슬플까? 그럴까? 정반대다. 기분 째진다. 그러면 쥐어터진 사진의 당사자는 (겉으로) 화낼까? 아니다! (속으로) 화날까? 아니다! 진정 화가 안 나? 노노노노노노노노노노노노! 정반대다. 걷으로 공표는 안 해도 기분 끝짱이다. 아조 환상이란 말이다. 대서 특필이자 드디여 걸린 특종이다 그건. 친구들 사이에서 영웅 된다. 얻어터졌다는 것 하나만으로. 진짜 금메달은 바로 이거다. 물론 그래서는 안 되지만 소란을 피우고 남에게 피해를 주고 그러면 안 되지만, 얻어터지는 장면의 주인공이 됐다, 당연히 맞으면 기분 나쁘지만 그렇게 떠들석하게 어쩌다가 주인공이 되어버리면 그건 한마디로 <기쁜 일>이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이지. 그럼. 지금 시대는 TV 다음인 인터넷 세상이다. 한순간에 스타되는 거다. 그러나 여전히 일반인이지만 다시 조용해지지만 오히려 그게 더 재밌다. 그게 진짜다. 나중 뒤돌아봐도 웃게 된다. 경고성 훈장이지만 그래도 남자들은 자기에게 이런 일 있었다는 걸로 나중 체면이 서고, 틈틈이 웃고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저처럼 뒷골목에서 골목대장 놀이에 엮이면 기분만 꽝 된다. 똑같이 아구창을 얻어터질 꺼면 이왕이면 판이 다른 <어떻게>에서 얻어터졌으면 좋을텐데, 그런 것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와 비슷한 각 지역의 속담으로 재미나고 딱 감탄사가 나오는 거 꽤 많다. 살면서 이따금 왜 나야, 하는 일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나도 타인에게 어떤 트라우마를 남겨준 일은 없을까, 순간 그런 걱정이 되다니. 아 이런 철들면 안되는데 소설 작풍의 절반은 거기서 기인하는 건데 큰일이다. 책에 보니 나르시시즘이 충만한 사람은 자기가 잘못했을 때 그걸 시인해야 할 때, 그런다고 한다. "미안해" 라고 하지 않고 "내 잘못이야" 라고 말한다고. 자존감과 관련되어 더 들어가면 무식이 탄로나니까 뭐 그건 잘 모르겠고, 내가 겪은 걸로 봤을 때는 이렇다. 미안하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생각하며, 친구와 말장난 할 때도 먼저 미안하다~ 하면서 먼저 자기를 낮추고, 이간질도 유머로 승화시키고, 시가를 하나 탁 건네면서 "(나 혼자) 먼저 죽기 싫다." 라고 여유롭게 말하는, 이렇게 거침없이 시원시원한 남자 중의 남자는 앞서 말한 1 대 1이나, 1 대 다의 중간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일부러 그럴 생각이야 있겠냐마는, 처음부터 화분을 깨고 드라마에 나오듯이 연애를 시작하기 직전에 좋아하는 여자가 웬 낯선 남자의 차를 탄걸 보고 쫓아가서 그 차를 탁 들이받고 보는 것도 그렇고, 우연은 처음에도 찾아올 수 있고, 내가 몰랐던 나는 나중 나를 잠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초네 남자네 남자 중의 남자네 하지만 남자도 여러 부류로 나뉜다. 공통 분모든 교집합이든 그건 놔두고. 여자? 잘 아시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데, 잘 모르시는 분도 있긴 있다. 다른 건 놔두고 딱 하나만 집고 넘어가자. 여성잡지1에서 2로 왜 넘어가는지를. 단도직입적으로 왜 바뀌느냐, 바뀔 수 밖에 없으니까 바뀐다. 다른 예시를 들 필요없다. 엄마, 아빠를 보면 된다. 봐도 잘 모르겠다? 그러면 들리는 소문이 뭐하다거나 여자의 보통 속성에서 약간 벗어난 경우를 보면 된다. 주위에 없으면 저 위에 나온 예시랄지 일찍 눈을 뜬 친구들을 생각해 보면 된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온다지만 여자는 어떨까? 일단 똑같지는 않다. 그래프가 다르니까. 아마도 그 반대가 더 정답에 가깝다. 그래프가 다르니까. 자세한 설명은 남자친구에게 물어보고, 다시 여성잡지1에서 2로 왜 넘어가는지를 되집어보자. 그것은 체험 때문이다. 대체로 둘 중 하나다. 첫째, 자기 자신은 낭만적인 멜로드라마에 나오는 사랑의 주인공이 아니었다거나 둘째, 멋진 연애 한번 없이 그저 그런 풋사랑만 겨우 있었다거나 없었다거나, 그 경험 때문이다. 그 일을 겪는 동안 나이를 먹게 되고 많은 일들을 겪는다. 여자는. 그 가운데는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다. 그러다 보면 늙게 된다. 그 과정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상처의 내용이나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내부의 어떤 응어리를 그처럼 발현되게 만든 내막이 있었을 것이다. 한 단어로는 트라우마! 극단적으로는 무엇, 그렇게. 사람이 처음부터 악하다면 성악설이고 원래 헤프다면 정숙하지 못한 여자겠지만 그 본성에 더불어 어느 서사가 분명 있었기에 1에서 2로 바뀌는 것이다. 큰일을 겪고 일찍 바뀌기도 한다. 사랑도 그렇다. 이미 첫만남에 있어서 사랑의 목적과 종류는 대게 직감적으로 안다. 처음의 의도와 대체로 결과는 비례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애당초 직관이 전면에 나서서 지휘하는 법이다. 그래서 알면서 힘든 길로 들어서는 것이고, 그래서 먼 훗날 나는 왜 그 남자를 붙잡지 못했을까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당시 오빠는(그는) 날 사랑하지 않았다면서 썩 많지 않은, 퍽 적지 않은 추억에 대해 반추해보곤 하기도 한다. 또 사랑의 아픔을 이겨내는 방법은 다 다르다. 마치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 나오는 그런 어떤 다양함처럼. 불만이든 원망이든 어느 설움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버티다 쌓이다 참다가 끝내 어떤 형태의 뭔가로 표출될 것이다. 좋은 예로 예술, 흔하게는 유희로, 친구를 만나거나 부적절한 염문에 휩싸일 수도 있고, 사회복지 분야로 생업을 옮기기도 한다. 심지어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되돌아오기도 한다. 은퇴 선언 없이 잠적했다가 일상에, 사교계에 컴백하는 건 보통 일반인의 장기일 것이다. 얼마나 사랑이 애절했으면 그럴까? 그래봐야 타인의 사랑이다. 아무리 연민을 느끼고 공감을 하더라도 간접 경험이란 말이다. 그래서 여자는 공통적으로 꼭 그런 말을 한다. 자기가 주인공인 사랑의 기쁨에 대해서 가까이 주위에, 사랑의 슬플에 대해서 먼 주변인에게까지 들었냐고 물어본다. 과장하자면 아무나 붙잡고 자기 사랑의 결별이나 파탄에 대해서 들었냐고 물어본다는 것이다. 뭔 밑도 끝도 없이 아는 오빠에게 아는 동생인 여인이, 처음 만나는 여인께서, 일면식만 있는 여자가 일면식도 없는 떠나간 남자에 대해서 반드시 이렇게 물어본다. 그거 들었냐고! 그거? 그거 뭐? 듣긴 뭘 들어! 왜 들어, 누가 말해주길래, 너 같으면 알겠니, 왜 알아야 하는데, 어떻게 아냐고! 대체 어떻게! 완전 코메디가 따로 없다. 최소한의 사랑이든 저질 사랑이든 하룻밤 풋사랑이든 사랑의 아픔은 남녀가 약간 특성이 다른가 보다. 그러나 결국은 이겨내야 한다. 시간이 약이고. 이 세상이 단순히 천국이나 지옥이 아니듯이 사람도 천사일 수도 있고 악마일 수도 무엇 같은 무엇일 수도 있다는 때와 상대에 따라 다를 수도 살면서 겪게 되는 별 희안한 일도 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추문이든 짧은 만남이든 남녀의 인연은 불미스러울 수도 있으나 아픈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지 않나! 이런 저런 속사정을 살면서 알게 모르게 듣고 겪다 보면 여성잡지1에서 2로 변하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지엄한 이치다. '어쩌면'이 아니고 순리일 뿐이다. 반면에 남성의 잡지는 거의 변치 않는다. 쓰다 보니 음 이런 생각이 든다. 요컨대, 여자? 잘 모르겠다. 독자께는 그대여 여자를 잘 아시지 않는가, 라고 반문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분은 영원한 미스테리가 분명하다. 최소한 남자에게는! 
   소설을 쓰고 있지만 왜 자꾸 이게 연애 컬럼처럼 느껴지지? 아무렴 어떤가! 어쨌든 소설은 소설이다. 생각해보니 이런 거 같다. 어차피 제한선 차이다. 또 말은 안 해도 서로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게 말로 표현이 되는 거다. 어떤 사람은 요만큼 올라왔을 때 어떤 사람은 저만큼 그래프가 채워졌을 때. 바로 톡 쏘고 무신경한 쪽은 아무렇지도 않고, 담아두는 쪽만 수증기 팍팍 푸쉭푸쉭-하지만 같이 톡 쏘면 훌리건 난동처럼 뉴스에 나오거나, 친구끼리 이미 그런 과정을 넘어섰다면 서로 얼굴 찡그리고 참고 또 그걸 즐기게 된다. 남자는 원래 즐겁게 노는 것과 병행해서 서로 갈구고 깔아뭉개고 내가 최고야 너는 최고가 아니야 그러면서 논다. 병신, 등신 이런 말을 실지 장애자와 어떤 환자들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습관처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끼리 얼만큼 친하냐 그 척도로써 그런 의미에서 병신, 등신 그런 말을 쓴다. 그렇게 노는 게 그들의 생리고 질서이며 예의다. 그래서 집에서는 실제 그렇게 불편한 가족 일원과 함께 살더라도 바깥에 나가서는 또 친구들과 모지리, 바보, 밥통 그러면서 놀게 된다. 즉 남자는 여자들보다 좀 더 거칠고 활동적이고 둔탁한 활동과 취미와 습관을 선호하는 것 뿐이다. 야 나가자 그러자 그러고 나서 게임하다가 바깥으로 나갔는데 우리가 왜 나왔지, 를 잘 몰라 하고 이제 뭐하지 하면서 방황하는 게 남자다. 꼭 연정에 관한 것이 아니더라도 이쪽에서는 예절이고 인습이던 것이 저쪽에서는 월권이요 심지어 범죄로 취급받기도 한다. 과거엔 권장했지만 지금은 조심하고 미래엔 박물관에서 보게 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개와 고양이가 이뻐도 참아야 한다. 책임지기 어렵다면. 종으로서는 같지만 나는 남이 아니고, 남은 내가 아니다. 다른 게 당연하다. 기준과 취향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약혼녀가 A라는 언행을 보이는 것은 괜찮으나 똑같은 걸 설령 친구라도 타인의 약혼녀에게 건네는 건 경계라든지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다. 발끈하지는 않더래도 제한선을 향해서 도형의 일부분이 크레파스로(?) 색칠되어지는 것이다. 큰일날 수도 있다. 조심해야 한다. 허나 그녀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서는 보통 그러지 않는다. 중간에 남남이 될 수도 있다. 늙어서도 계속 부부고 대외적으로 연인이긴 한데 얼추 그런 감정이 남아있고 사모가 확연하다면 그건 작품으로 접하게 된다. 동거하는 앵무새가 평소 어떤 말을 따라하는지는 익히 아실테니, 훨씬 잘 아실테니 그만 생략한다. 그런데 정말 할망구가 되서도 정말 똑같다? 그걸 망측하다네 꼴불견이라네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미덕이요 귀감이자 사랑일 테니까. 젊어서의 사랑, 반틈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많이 헷갈린다. 사랑의 종류는 많으니까. 속담이 좀 어떻게 보면 경망스럽지만 살짝 넘어갑시다. 젊어서 좋은 게 뭔가? 게다가 늙어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다르지 않다고? 참 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고 혼자서 소설 쓰고 있네. 누가 삼류작가 아니랄까봐! 농담 하나 장난 하나 가지고 이게 뭔 과대망상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포장이란 말인가. 이 무슨 정력 낭비란 말인가. 아니 될 소리. 꼭 놈팽이에 험담 좋아하시는 영감탱이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그러나 이 나이에 내가 이렇게 '인생은 무엇이다'를 설파하고, 고단한 삶을 살았으니 이제는 한가하게 바닷가에서 낚시나 하며 살아야지 안 될 건 뭐란 말인가? 이 재미라도 있어야지 그럼 내가 뭘 더 바라겠어? 내 말이 틀렸나? 아니꼽나? 떫으슈? 많이 그러요? 기분 나빴수? 왜, 생각 좀 해봐야 본인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소? 저런! 배 떠나가버리네, 젊은이. 순간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법이지. 나도 알고 있네, 내가 틀렸다는 걸. 나도 안다네, 아니꼽다는 걸. 못 마땅하다는 것도. 지루하다는 것도 잘 알아. 연설문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내 귀에서 이어폰을 빼버리고 싶다는 것까지. 하지만 말 나온 김에 마저 듣게나. 내가 원래 나중에 웃겨. 나중에 웃음보가 터진다고. 내 특기는 딴 게 아니라 바로 그거야. 집에 가서야 웃끼고, 1주일 후에 한 달 지나서도 여전히 웃낀다는 거. 그게 바로 내 전공이라고. 그러니 조금만 더 참아보시게. 보아하니 자네는 그만하면 인성도 좋고, 인내심도 있고, 배짱 좋고, 패기 있고, 대성할 가능성도 크구만. 음, 괜찮아. 걱정 말게. 일이 잘 안 풀리면 나중에 날 찾아와. 찾기 어려우면 일단 옛날에 나로부터 뭔 말을 들었는지, 그 인상이 어땠는지, 그 경험이 과연 진짜였는지,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걸 생각하라고. 어? 그래. 내 말은 틀렸어. 내 무덤의 좌우명은 이미 정해졌단 말일세.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 이것이지. 그럼. 난 살면서 궤변만 엄청 늘어논 거 같아. 간혹 내 말을 누가 엮어서 책으로도 냈어. 그거 다 틀린 말이야. 그것도 많이. 그분께서 왈, 일단 너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지도 않았고, 풍부한 경험은 남 얘기를 다 가져다써서 생동감이 떨어지고, 너무 뻥이 세니까 영험한 지혜로 가득찬 뭔가 있어보이는 지혜로운 어르신이 절대 아니라고, 그거 하나면 말 다한 거라고, 하시네... ...(침묵)... 다시 그분이 가셨네. 아, 살판났어. 더 이상 눈치볼 일 없지. 앗싸~! 언제는 그분이 안 오신다고 난리더니? 꼭 주위에 보면 낄 데 안 낄 데 모르시는 분이 있어. 참 안타까운 일이야. 어쩌겠나, 원래 눈치가 없는데. 어느 행사를 보더래도 축사 같은 게 있지 않나. 노인은 신선으로 둔갑해서 대미를 장식해야지. 나도 젊은이에게 뭔가 열정의 언사를 선사하고 싶단 말일세. 요원처럼 귀에 뭐 꼽고 거기서 나오는 음성을 따라해서라도 말이네. 눈치 채면 눈치 채라 그래. 어차피 이판사판이야. 어떻게든 나한테 넘어가게 되어 있어. 예언도 아니야. 각본은 이미 짜여 있어. 끝날 때가 되면 울고 웃고 완전 난리도 아니야. 구입하겠다고, 그것도 세트로, 앵콜 없냐느니, 양말을 벗어주라네 어쩌네, 무대 위로 어떤 말괄량이가 입고 있던 팬티를 벗어서 집어 던지는 건 약과야. 무대에 아주 수북이 쌓인다네. 뭐가? 브레지어와 팬티가! 누가 보면 속옷 재고품 처리장인줄 안다니까. 지금은 수제자를 거두는 기간은 아니네만 특별 강습이란 것도 있으니까 거, 있잖아, 어? 그래 거 좀 준비했다가 어? 있잖아, 그래 그거, 나중 조용히 찾아와 조용히. 제발 소문 좀 내지 말고. 이 놈의 인기, 정말 짜증난다고, 어? 그 놈의 인기 때문에 밤에 잠도 안 와. 뭐? 불면증 아니냐고? 그래 불면증 맞어. 아, 이게 목적이 아니었지. 좋은 얘기로 끝을 맺어야지. 그래. 마지막엔 이렇게 말하면 돼. 난 말야, 신바람 웅변가는 아니지만 동기부여 부흥회 업계에서 제대로 속아서 큰 재산을 탕진했다고! 거짓 고백을 하면서 자네는 그러지 말기를 바란다며 유종의 미를 위한 여백을 남겨놓으면 된다구. 그러면서 청중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지.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겠다고. 동시에 한 명을 또는 한 곳을 정해서 그곳으로 슥 다가가. 한 걸음 옮기고 그윽히 그곳을 쳐다보기만 해도 돼. 이건 연기력이 좀 더 필요하지. 조명도 중요하고.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거야. 준비됐나? 준비됐어요? 외쳐. 외쳐야 돼. 딱 소리질러야 할 순간이야. 크게. 준비됐습니까?, 라고. 그리고 잔잔하게 음악이 울려퍼지지. 대자연의 공간이야. 상상해봐. 상상해보라구. 즐거웠던 기억 즐거웠던 기억, 아름다운 추억 아름다운 추억, 해맑았던 청춘 해맑았던 청춘을 떠올려보라고. 자, 시간을 되돌려보시게. 당신은 유모차에 앉아서 허공을 바라봤다가 젓병도 빨았다가 쪽쪽 빨았다가 꿈나라에도 갔었다네. 그럼. 그렇지. 사람은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줄 모르고, 어떤 사랑을 하게 될 줄 모른다네. 왠지 모르게 빠져들고, 처음 보자마자 와 멋져 난 저이와 결혼할꺼야 라고 다짐하며, 원래 고급 사기꾼들은 말 잘하고 잘생기고 품위에 예법도 갖췄으니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어서 어쩌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보니 나중 알고보니 그건 꽝이었어, 이럴 수도 있어. 그걸 세상에서는 불운이라거나 불행, 지지리 복도 없다, 불길하네, 운수 사납다, (호재도 악재도 아닐 수 있는) 역마살이 끼었다고도 한다네. 하지만 처음에 먼저 따지고 판단하고 줄자로 재고 가치를 따져 측정하고 나서 그 다음에 자, 이제 이제는 사랑에 빠져도 되겠구나 라고 한다면 그땐 이미 늦는다네. 원래 사랑은 나비처럼 다가왔다 바람처럼 가버리는 그런 얄미운 존재인데 어쩌겠나. 물론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 얄미운 존재가 될 수도 있고. 잠깐, 둘이 바꼈나? 아무튼 말이야, 그렇지. 그러니 어떻게 하시라, 그런 말을 나는 못하겠네. 직관력을 키우라, 그런 말 난 못해. 이미 해버렸다고? 그게 뭐 비밀이라고! 다만 나도 뒤늦게 사랑을 배운 것 같아 기분이 좋으니 그 학습에 관한 태도와 배우고자하는 욕심과 텅빈 마음, 놀고 싶은 본능과 궁금한 호기심, 덤으로 낭만까지 붙여서 그 습성을 흉내내서 얼렁뚱땅, 슬며시, 슥 내빼겠단 말일세. 내빼겠다고, 자네가 나를 알기 전의 공간으로 말이야. 그야말로 감쪽같이! 으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하. 아,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니야. 딴 건 보통 대충 엇비슷하게 되는데 가짜 웃음은 도대체 왜 이렇게 안 되냔 말이야? 아 나 이런 이거 미치고 환장하겠구먼. 내가, 내가, 내가 그렇게 연습했는데 왜 안 되냐고? 어? 왜? 대체 어째서? 이런, 젠~장!
   숭구리당당 숭당당 수구수구당당 숭당당 궁자라작짝 삐악삐악 푸슉푸슉 뿌잉뿌잉...
   아, 깨어났다. 또 누구야 누가 도대체 내 몸을 뺐어가는 거야. 기가 빨린 느낌이군. 단물 쪽쪽 빨린 것 같아. 내 영혼이 어딘가에 조종당했다가 이제야 깨어났다. 그러나 이상하게 정신이 맑아졌다. 마음도 맑아졌다. 사람이 순수해졌다. 순수, 라는 이름의 우유나 빵을 먹으면 더 순수해질까? 그런 얼빵한 공상은 이제 그만하자구. 인성도 더 좋아졌다. 너무 좋아져서 탈이다. 감자로 만든 포테이토칩 삐─ 클레오파트라 감자로 만든 포테이토칩 삐─ 클레오파트라, 삐익삐익 꼬였네 들쑥날숙해 사과맛 딸기맛 좋아좋아 이상하게 생겼네 삐─ 스크류바! 어, 뭐야 이거? 왜 옛날 TV 광고 음악이 생각나는 거지? 아~ 정신 연령이 내려가서 그런 것이다. 그럼 신체 연령은, 저런! 있던 새치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건 그렇고 나는 스탐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 찻집으로 갔다. 관계 회복? 언제 우정에 금이라도 갔단 말인가? 다투기도 하고 삐지기도 하고 그게 친구 사이다. 친구나 되니까 자랑하고 자랑을 안 들어주고 상대를 낮추고 나를 올리고 친구는 꽝이고 난 짱이고 그러지 친구 사이가 아니라면 들었다 놨단 쥐었다 폈다? 연애하라고? 친구랑? 그건 우정이 아니다. 친구 사이인데 저 이야기 같은 걸 만들어서 글로 쓰고 영화로도 만들고 노래로 만들어 음반을 내면 돈만 날리는 거다. 나는 어제 찻집 <친구와 사랑하는 연인이 같이 물에 빠졌습니다. 누굴 먼저 구하실 건가요? ...... ...... ...... 왜 둘이 같이 있어?> 에 갔다. 그런데 가게가 비었다. 간판만 남겨놓고 남아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멀더에게 물어보니 가게를 뺐다고 한다. 이사온지 얼마나 됐다고. 대략 아는 여자에게 가게를 차려줬다가 뭔가 뒤틀려서 어떻게 된 듯 했다. 인사도 못했는데. 뭔가 아쉽고 허전했다. 그래서 다시 나는 심심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금 이 순간의 이상한 감정에 대해 누군가와 상담을 하고, 담소를 나눌만한 적당한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스탐이 꼭 나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나 때문에 기분이 상했고, 기분이 상했으니 삶에 변화를 주고 싶고, 삶의 변화? 직업을 바꾸자, 이사를 가자, 여행을 떠나자, 잃어버린 꿈을 찾자, 감성을 되찾자, 이혼을 하자(이건 농담이다), 사랑을 하자...... 그러다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제 2의 사업은 접자, 변두리 삶은 정리하고 도시 생활에 집중하자라고. 괜한 폐를 끼친 듯 하여 이 울적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네 직접 털어놓겠다는 게 아니라, 요즘 어떤 재미로 산다네 어 자네는 뭐 빼면 재미난 일이 없구나 그런 겉도는 얘기를 하다 보면 기분 전환이 될 테니까. 그나마 세탁소 주인 밥이 이런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기에 상당히 편안한 친구인데 어디 갔는지 세탁소 문이 닫혔다. 혹시 밥과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었다면 나는 옛날에 세탁소를 턴 적이 있다고 고백할려고 했는데, 그거도 다 물 건너갔다. 진짜다. 나는 옛날에 세탁소를 턴 적이 있다. 이제 난 앞으로 세탁소도 못가게 생겼다. 동네에 또 전성기를 지난 작곡가 리차드가 산다. 그의 작업실에는 무슨 지휘자 협회 간부 어쩌고저쩌고 라고 씌여있는데 그 친구를 찾아갈까 라고 생각도 했다. 왜냐하면 그와 어두침침한 바에 앉아서 이런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옛날에 처음으로 샀던 클래식 CD는 오토 클렘퍼러가 지휘하는 베를리오즈의 * 환상교향곡이었다고. (* 참고: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꿈이 생긴다. 대체로 외부적인 동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꿈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겼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뭔가를 보고, 듣고, 만나고 그래서 아 저 사람과 사랑에 빠지겠다 아니 이미 빠졌다 그이와 나는 결혼할 꺼야 그렇게 된다. 즉 <나는>은 결국 <나도>에 의해 발화되는 것이다. 다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도움을 받고, 환경에 둘러싸이고, 재능도 타고나야 하며, 살면서 어떤 계기와 우연도 겹쳐야 하고, 그렇게 수없이 많은 작은 원인이 쌓이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는 뭐가 되겠다 하겠다 하고 싶다 그래서 꿈을 이뤘다 따라서 목표를 이루게된 처음의 결심이 내 안에서 생긴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바깥에서 그렇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생긴 꿈은 사랑일 수도 있고, 성직자 같은 직업일 수도 있을 테고, 한 마리 새가 되겠다는 진짜 새로 개로 천재로 내 자아를 탈바꿈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목표일 수도 있다. 그 꿈을 일단 지금 다루는 어중간한 소재를 위해서 영화배우, 축구선수 같은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악기 연주 같은 작은 것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래서, 그리하여 환상교향곡 그것을 읽고 싶다 라는 우연찮게 확립된 유일한 목표인 누군가의 따분한 삶에 찾아온 꿈은 보통 사람들에게 나중 하나의 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중간에 포기하고, 간혹 포기와 직업 사이에 중간 영역이 생긴다. 그 예는 이를테면 이와 같다. 어느 대회에 입상한달지, 입학 제의나 프로구단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달지, 처음에 품은 목적인 삶의 태도나 지휘 같은 목표인 초기 꿈의 1차 목표를 달성한달지 그럴 테고, 그러고 나서 전혀 다른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그냥 그만두고 싶어서, 같이 스스로 원해서일 수도 있고 또는 사고 같은 외부 원인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영역은 훗날 처음의 꿈이 충족된 후에 그 취미, 열정, 관심, 호사는 그 다음이 안개처럼 사라지게 된다. 조금은 기분이 반감되고, 단꿈의 달콤함은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륵 녹아버리게 된다. <교향악단을 지휘하여 청중의 마음을 쥐었다 폈다 들었다 놨다>와 <일상적인 음악 감상인 듣기>. 하나의 꿈은 악보만 읽어서 내 정신으로 내 심상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능력 즉 악보 독서 하기는 전자로 옮겨가지 않고, 이상하게 후자로 귀결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왜 중단되는 것일까? 목표를 달성하면 그 성취감보다 과정의 몰입감이 더 즐거웠으니까 더 중요했으니까? 본디 때로는 파괴와 혼돈까지 묵인하며 그것을 통해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원초적 성향 때문에? 껍질을 깨고 미지의 새로운 바깥 세상으로 나갈려는 본능 때문에? 다른 종류의 새로움을 찾고 싶었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그냥 지겨워져서? 그건 돈이 안 되니까? 이마저 아니라면 단지 하나의 원인 때문이 아니라 저 모두가 혼합되었기 때문에? 그 이유는 바로 그분들이 잘 알고 있다. 바로 그 직접 경험자가 그 까닭을 아는 게 아니라 인문교양 서적의 작가들이 안다는 말이다. 또는 드물게 소설에서 밑줄 그을 만한 부분에 왜 그런지가 나온다. 뭔가 겉과 속이 바뀐 거 같다. 부록이 훨씬 값비싼 경우다.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깨우쳤으면 아 이렇구나, 라고 알아야하는데 왜 그랬는지, 자기의 마음이 왜 그렇게 선회했는지는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법이다. 자기가 제 마음을 경험을 해석도 못하고 옹호도 못하고 이해조차 할 수 없다. 바보가 따로 없다. 그걸 몰라? 저런, 미련-곰탱이네! 알고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한참 시간이라도 지났다면 아 그때 그건 불완전한 사랑에 근접만 했던 남녀간의 애정이었구나 요즘 말로 썸탔구나 라고 뭔가 회상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경험자는 그것도 못한다. 그냥 그때는 웬일이지 그러고 싶었다 또 그랬다, 정도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왜? 왜 그거 뿐이 못하는가? 왜냐하면 그 분야는 전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기는 그쪽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내가 모르는 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와 같이 일정 정보를 분석하여 정갈한 패턴과 최대한 근사치에 가까운 추론을 글로 정리하는 것은 실제 썩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말로는 즉흥적으로 순식간에 사람 마음을 홀리고 정신을 쏙 빼놓을 수도 있으니 어떻게 보면 말이 글보다 위 같다. 작정하고 들어가면 그것이 수없이 반복되면 알면서 속게 되니 알면서 웃게 되니 그것이, 말이 더 높은 계급인 듯 하다. 글보다. 아 나 이거 정말 내가 내 자랑 같아서 내가 내 입으로 이런 말 안 할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미 털어놔버렸다니 아 미치겠네 이거 아무래도 말린거 같아 맞아 말렸어 말렸어 완전 말려버렸어)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CD, 나는 사실 그 CD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고. 분홍색과 자홍색이 들어갔는데 근사한 품위가 느껴졌다고. 그런데 그걸 주인 몰래 옷 속에 감추어서 가게 바깥으로 갖고 나갈려다가 검색대에서 딱 걸려서 주인에게 혼났다고. 호되게 혼나고 나서 값을 치르고 나온 적이 있다고. 그날 엄청 기분이 꽝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오늘도 조금 그와 비슷하게 기분이 우울하다고. 그때 훔친 CD가 그 CD가 맞나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 90퍼센트쯤 맞는 거 같다고. 그런 고백을 하고 싶었다. 리처드에게. 그러나 리처드와 나는 아직 친해지지 못했다. 아직 그럴 사이가 아니란 뜻이다. 그래서 거기도 못갔다. 동네 서점 주인 리오를 찾아갈까도 해봤다. 왜냐하면 나는 책도 한번 훔쳐봤기 때문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 책 1권이지만. 또 있다. 나는 지갑도 훔쳐봤다. 지갑도 주운 것이지만 한번 주머니에 넣고 가슴이 엄청 콩닥거리면서 집으로 가다가 내용물을 본 적이 있다. 군대에서 휴가 나와서의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은 완전 도둑질로 점철되어 있는 것 같다. 완전 엉망이다. 돈을 슬쩍한 기억, 물론 한둘 있다. 아마 더 될 것 같다. 이건 뭐 장발장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고질적 병폐다. 완전 트러블 메이커다. 비빌 틈도 없고 기댈 언덕도 없으며, 뭔가 재미난 일도 흥미로운 웃음거리도 없었다. 지금 역시 그런 게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에서 TV를 보다가, 음식도 만들어 먹고, 음악 듣고 책을 읽었다. 혼자 놀았다. 누군가를 억지로 만나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물으면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라고 할 꺼 같아서 혼자 놀았다. 만날 사람도 없고. 어떻게 놀까 라고 궁리할 필요는 없었다. 항상 하던 일이었으니까. 혼자 집에서 주로 생각을 했다. 나의 지난 과오에 대해서. 
   여기서 멈출 수 없다. 그러면 안 된다. 나는 수영장에서, 온천장에서, 해수욕장에서 몰래 오줌을 눈 적이 있다. 지금은 안 그런다. 다 어릴 때 이야기다. 나는 전에 한창 쇼핑 중독에 빠져서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이클 용품과 부품을 살 때가 있었다. 그때 어느 곳에서 환불 비용을 곱배기로 돌려줬든가 그랬는데 나는 그때 연락이 오면 돌려줄려고 그랬다. 물론 연락이 없어도 먼저 돌려주는 게 도리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꿀꺽 했던 것이다. 내 이메일로도 연락이 없었다. 지나가던 개에게 물린 셈 치나보다라고 이상하게 기분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다. 그걸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안 좋은 기억이다. 어떡하다 어물쩍 넘어갔다. 그리고 슈퍼마켓에서도 거스름돈을 과하게 받고 나왔을 때 돌려주지 않은 적, 있다. 나는 위선자다. 나는 가식적인 놈이다. 나는 벌을 받아야 한다. 나는 어렸을 때 규칙적으로 용돈을 받는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부모님께 거짓말하고 학용품 산다고 거짓말한 적이 있다. 실은 많다. 나는 그동안 쓰레기도 많이 버렸다. 나는 정말 쓰레기 같은 놈이다. 나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급한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 그리고 연락없이 돌아서기도 했다. 어떤 순간 직전에 나 사랑하냐고 묻길래 좋아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아프다고 연락이 왔는데 안 갔다. 그리고 끝났다. 그리고 나를 순수하게 좋아했던 그래서 기달리던 아가씨도 있었다. 나는 직접 대면하고 말하기가 어려웠으면 간접적인 방법을 써서 날 좋아하지 말라고 알려야 했는데 그러질 않았다. 나는 죄인이다. 몹쓸 놈이다. 지금도 나는 사랑받았다고 자랑하는 거 같다. 아, 뒷목, 눈 감고, 인상 쓰고, 수증기, 푸쉭푸쉭! 또 나는 옛날에 어떤 그분이 있는 여인에게 흑심을 품은 적이 있다. TV에서 보든 책에서 보든 어딘가에서 스치듯 지나가든. 적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은 안 그런다. 나는 이제 여자 보기를 돌맹이 보듯 한다. 이상한 상상, 그런데 나는 취미 없다. 그런 게 뭔지도 모른다. 뭐라구요? 당신께서도 미모의 아가씨를 봐도 딴마음을 품지 않는다구요? 꿈쩍도 안한다구요? 오케이~ (하이파이브)! 누군지 몰라도 사람 좋네 사람 좋아, 호인이네 호인이야, 사람 참 괜찮네, 성격 정말 좋구만! 그 뿐만이 아니다. 옛날 제빵 학원 사건은 기본이고, 남을 욕하고 비방하고 얕잡아보고 피하고 불의를 모른 체 한 일도 많다. 평소 기분이 보통이거나 약간 침체된 거면 괜찮은데 기분이 아주 안 좋을 때 험담, 엄~청 했다. 운전할 때도 타인을 배려하기는 커녕 남을 많이 불편하게 했다. TV에 나오는 험담가? 껌이다. 자기들이 웃기다고 웃어주는 줄 알어. 이제는 착하게 살고 지난 잘못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짠한 마음에 꼬마들 장난하는 것 같아서 웃어주는 것 뿐이다. TV를 보면서 안 보면서 욕 엄청 했다. 옛날에. 지금은 안 그런다. 시험 볼 때 부정행위, 초등학교 3학년 때 했다. 나는 질이 나쁜 놈이다. 많이 나쁜 놈이다. 어린시절 사촌형 3이 우리집에 와서 살게 되었을 때 왜 외삼춘네 가정이 멀쩡히 있는데 우리집에 와서 살게 되었나 하면서 성장하면서 애가 조금 이상하게 되었다. 사촌형 3과도 많이 싸웠다. 혼자 있고 싶은데 막 따라다니는 거도 썩 싫고 막 그랬는데... 그래서 어느 겨울 우리집 2층에서 사촌형 3과 같이 돌을 넣은 눈뭉치를 던져 지나가는 동네 친구를 맞힌 적도 있다. 2층에서 연탄재를 떨어트려서 길가던 행인을 맞힐 뻔한 장난도 했다. 또 다른 외삼촌의 아들이 사촌형 1과 2가 방학이면 우리집에 와서 살다갔다. 그쪽도 외삼춘에게 돈을 빌려서 얽히고 얽힌 관계다. 다 저 사업을 하시는 그분에게 올려다 드린다고 일어난 일이다. 내 형도 자기 친구에게 돈 빌리고 아조 말도 못한다. 사촌형 3은 아예 같이 살고, 사촌형1과 2가 방학 때 우리집에 와서 지냈는데 사촌형 1과 사촌형 2 모두 손버릇이 안 좋았다. 난 또 사촌형 1과 또 적당하게 싸웠다. 나는 호박이었다. 명절엔 또 아빠네 사촌동생이 놀러왔는데 꼬마였던 녀석에게 나와 사촌형 3이 거칠게 장난치고 그랬다. 그 뒤로 그 사촌동생을 본 일이 없다. 자기 알아서 잘 살겠지만. 또 형의 아들인 내 조카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은 일도 있다. 여동생이 우는데 남동생이 어쩐다고 살짝 알밤을 쥐어박았는데 딱 1번, 그랬는데 조카가 그걸 기억하고 있을 것 같아서 가끔 조카를 만나면 조카의 얼굴을 볼 때면 나는 영 개운치가 않다. 뭔가 뒤가 켕긴다. 용돈을 틈틈히 후하게 줘야 하는데 통장 잔고가 바닥났다. 미치겠다. 인생을 환상 머쉰으로 치자면 그건 실패작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헬스기구 파는 곳에서 일할 때는 있는 뻥 없는 뻥 다 써서 런닝머쉰을 판 적이 있다. 거기서 제일 비싼 런닝머쉰이었다. 당시 제값을 톡톡히 받았다. 언젠가 찻집에서 일하던 여종업원에게 미안하다. 옛날에 택시 회사 사장과 대판 개싸움을 벌이면서 카페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나서 도망간 일이 있다. 나는 마음이 있고 어떤 감정이 처음이었던 여인과 모텔에 들어가서 손도 안 잡고 잔 적이 있다. 나는 남자가 아니었다. 아니었나? 하긴 정말 좋아했던 여자와 손을 잡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40년간 "나 누구랑 사겨" 그런 말을 한 번도 못해봤다. 공식적으로 여자를 사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수명이 짧았던 시대를 기준으로 삼자면 태어나서 살다가 사랑을 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홀연 종적을 감추는 꼴이 되는건가. 나 원 참! 뭐가 잘못되긴 잘못됐다. 한참! 소설, 영화, 사람, TV도 완전 많이 따라했다. 물론 부적절한 것, 쑤두룩했다. 하지만 그 다양성과 호기심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라는 속담이 적용되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요컨데 어른이 된 것이다. 철없이 덜컥. 그렇게 청춘은 가버린 것일까? 알게 뭐야. 나도 결국 외부로부터 달갑지 않은 정보를 받으면 그것은 쌓이고 쌓여 나중 다른 형태의 어떤 음성적인 것도 포함된 그런 성격의 행동으로 표출된 것 같다. 순서도의 중간에서 회전이 반복되다가 어느 때 정형화된 도식을 벗어나듯이. 또 옛날에 와레즈와 성인 사이트 일을 잠깐 했을 때 과장 광고 엄청 했다. 그때 속았던 사람 가운데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있을 수 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그리고 그때 같이 일했던 친한 친구가 날 실망시켰다. 한땐 많이 친했었는데. 내가 벌 받은 것이다. 떠올리자면 쓸데없는 기억만 계속 나오니까 이만 멈춰야 한다. 나는 그야말로 천하의 가식적인 인간인 것 같다. 나는 위선자다. 나는 쓰레기다. 나는 몹쓸 놈이다. 나는 질이 나쁜 놈이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얼간이 같은 놈이다. 나는 결백을 주장할 수 없다. 내 정직함을 세상에 내보일 수도 없다. 품행은 방정맞고, 행실은 못됐다. 인생이 혼탁하고, 삶은 탐욕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순백의 신부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일까? 불결하다. 정결하지 못한 심보다. 어쨌든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쓸데없는 공상을 뒤로 하고 나는 밖으로 나갔다. 집 바깥으로 나갔는데 비가 왔다. 그래서 다시 집으로 들어와서 한동안 집에서 칩거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공원에 갔다.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 나는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데 내 옆에 웬 펠리컨 한 마리가 와서 앉았다. 지가 꼭 사람이라는 것처럼. 나는 뭐야 이거, 기적이 일어났단 말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누가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펠리컨을 어디서 데려와서 내 옆에 앉힌 것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는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 거리에서 왠지 낯이 익은 한 여자를 보게 되었다. 그녀를 보고 또 봐도 그 이상한 감정을 알 수 없어서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의 걷는 속도가 완전 느렸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저 아가씨를 어디서 봤지, 어디서 봤드라? 속옷 가게 <말이 되는 소릴 해!>에서 봤나? 아닌데. 찻집 <볼 장 다 보다>에서 만났었나? 아니다. 그럼 판타지가 지겨우십니까...는 아닌 듯 하고. 어디서 봤지 어디지? 미용실 <하오의 연정>에서 일하는 미용사던가? 것도 아니다. 그럼 대체 어디서 봤드라, 이 오묘하고도 세~한 느낌은 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일상이 이제 좀 재미있어질 때도 됐다고. 분명 어디서 보긴 봤는데, 하룻밤 사랑으로 만나지는 않았고, 뭔가 은밀한 관계가 있거나 나와 어떤 은근한 인연과 숙명에다가 별자리까지 가져다가 설명해야만 할 정도로 예전에 뭔가 돈독한 사이였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그때 그녀는 종적이 묘연해졌겠지. 당시 나는 펄쩍 뛰었을까? 나도 그녀의 신비스러운 사라짐을 따라서 방황하고 한동안 홀로 지냈을까? 과분한 상대는 아니었을 테고. 술집 <눈 감고도 할 수 있어>에서 봤나? 아니다. 나는 그런 이름의 술집에 들린 적이 없다. 그런 술집 어디 없나? Alt+F4 같은 거. 그녀는 나에게, 여자에게 기분 좋은 말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던 듯 하다. 때로는 샐쭉하고, 왕왕 눈물을 글썽글썽했던 것 같고, 뭐가 그렇게 우스워요 라면서 막 파릇파릇한 생기 넘치는 환한 미소, 젊은 미소, 홀딱 반한 듯한 미소를 내게 건넨 적도 있는 것 같았다. 오오, 그녀가 내게 말이다. 골몰에 골몰을 거듭하지만 그러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참으로 난관이로다. 무작정 팔을 낚아채서 골목길까지 같이 뛰어갈까? 어머 왜 그러세요, 라는 앙칼지고 새침한 음성을 들으면 그녀를 어디서 봤는지가 생각날까? 그건 안 된다. 뺨 맞을 일이다. 무례 중의 무례일 것이고, 심각한 결례를 범하는 경우에 해당하며, 더없는 실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그녀가 권투를 배웠으면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곤혹스러운 추정이다. 그녀는 뭔가 결기를 자극하고 어딘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미모의 아가씨를 떠올리게 만드는 묘한 기운이 그녀에게 서려있는 것 같다. 꽤 고혹적이다 그녀는. 순간 나는 어떤 당혹감을 느꼈다. 나는 덜컥 놀랐다. 드디여 생각이 났다. 오, 아아 그럴 수가... 그래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는 천천히 멀어져갔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녀는 서서히 멀어져갔다. 꼭 뮤직비디오 같이. 아니 이럴 수가. 이렇게 무심할...수가...!
   아, 그녀를 거기서 봤구나. 그녀는, 그녀는 카페 <나 참 기가 막혀서!>에서 일했던 점원이었다. 내 돈 떼 먹고 도망간 년. 신문방송학과? 정치외교학과? 개~뿔! 나는 그녀를 아는 체 할 수 없었다. 반갑지도 않으면서 반갑다고 할 수 없을 테니까. 도저히 어떻게 한번 차라도 같이 마시겠냐고 운을 띄울 마음이 들지 않았을 테니까. 더욱이 돈 값으라고, 내 돈 값으라고 직접 말은 못해도 뭔가 할말이 있는 듯 없는 듯 있는 듯 압력을 가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뭐, 뭐, 뭐? 파릇파릇한 생기 넘치는 환한 미소, 젊은 미소, 홀딱 반한 듯한 미소? 그런 미소가 아니라 단언컨데 썩은 미소가 정답일 것이다. 일명 썩소! 쫀쫀함, 쪼잔함, 찌질함 이제 그런 말과는 헤어지고 싶다. 거리를 두고 싶다. 그만 작별하기를 원한다. 이제는 금액이 얼마였나 생각도 안 난다. 오오 그녀는, 아아 그녀였구나. 그럼 그렇지. 내가 하는 일이 다 이 모양이지, 별 수 있나. 괜히 들뜨다 말았다. 괜히 기분만 잡쳤다. 일파만파 마음만 심란해졌다. 왜 그랬나, 왜 설렜나, 왜 돈을 꿔줬나, 왜 그녀를 믿었나 라고 따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해명할 뭣도 안 되는 일이다. 좋게 집에 가서 잔디나 깎아야겠다. 아니면 수영장을 청소하든가. 아니면 냉장고에 캔 맥주를 꽉꽉 채우던가 해야겠다. 정 아니면 혹시 그분이 오신다면 나는 글을 쓸 것이다.
   나 참 기가 막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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