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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하는 문학의 소재가 너무 신중하거나 진중한 것을, 그건 마치 평소 일상생활에서 진지하고 격식있는 무거운 대화만 고집하는 재미없고 엄숙한 교수님 인물상으로 빗대어 봐도 괜찮다면, 시소의 무게 중심을 바꾸어 너무 코믹한 소재만 선호한다거나 딱 영화에 알맞는 소설만 고집하는 것도 읽는이 사고의 굴레를 멀찌감치 제한하는 모습이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소설 한 편이 나오기까지는 작가가 직간접적으로 수없이 많은 참고서적을 볼 것이다. 안 보는 사람도 있을거니까 그럴 것이다 라고 여운을 남긴다. 뭔 얘기를 하면 그대를 실망시키지 않을까, 어찌해야 글이 잘 써질까, 바로 그것을 한시라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읽을 책을 고르는 시간과 기준과 그리고 정독과 완독, 속독, 읽다 그만두기에 대하여 자못 조심스러우면서 또한 들뜨기도 하거니와 약간은 뭔가 뜻모를 그리움이나 가물가물한 추억과 연결지어진다고, 어떤 꽃 한송이가 연상된다고 추정되는 향수 같은 것에 쫓기는 기분도 느낀다. 이 상황에 적절한 명대사는 각자 마음 속으로!
J는 떠나기로 마음 먹은 감정이 갈대 마냥 바뀌기 전에 낼름 결행했다. 뭐 챙기고 뭐 준비하고 그럴 필요 없이 냅다 결행했다. 어차피 째깍째깍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하루에도 수십 번 만나 달라고 조르는 팬클럽이나 추종 세력도 없으니, 주말마다 찬란한 약속 12개 가운데 선별하고 순서 정하는 귀찮음은 남의 일이니, 값싼 술이라도 먹으면 기분이야 좋고 신간 편하겠지만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가버릴 테니까, 시간과 공간, 지금 그 자리에서 가는 시간을 잡을 수는 없기 때문에 공간을 조금 멀리 옮긴다면 시간이 느리게 가는 효과까지 노린 것이다.
당신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가 천천히 어른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이미 어른이라면 맛있는 음식을 먼저 먹나 나중에 먹나? 또는 나이와 관계없이 뭔가 아껴두고 싶은 것은, 조심히 진귀하게 다루는 물체는, 소중한 형체가 없는 대상은... 없지 않기 바란다. 소설을 줄곧 2인칭으로 쓸 능력은 없으니 이렇게 틈틈히 묻고 혼자 마침표를 찍는 것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앞서 저 앞 장에서 소설을 2인칭으로 쓰겠다고 했던 때와 지금의 저자는 지능이나 예능등에 별 차이가 없이 한달 또는 몇달 쯤 나이만 먹었다. 꼭 구석기 시대와 현재는 성의 기술이 그다지 변한 게 거의 없다는 어느 성의학자의 설명과도 같이.
비행기는 몇분의 몇, 우주선도 몇분의 몇, 빛보다 빠르기는 어렵지만 공간 이동 속도가 빠르면 시간이 실재 느려진다고 하니 달에 갔다온 (반올림) 백명은 미미하지만 약간은 효력을 봤을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자, 당신은 여행갈 때 어떤 교통수단을 선호하시나?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고 솔직히 문맥 상 리딩 리듬감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까하여 물어봤다. J는 여러 교통수단 가운데 기차를 골랐다. 너무 멀리는 못 가고, 말썽을 피울 수는 없고, 형편도 뭐하고 하니 게다가 극소수 따라하는 거 좋아하는 분들의 편의까지 챙긴 나름 심사숙고해서 고른 거다.
기차를 타러 기차역에 가니 왜 그렇게 어딘가로 정처없이 떠나는, 그런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뜨이는지. 전기 기타를 맨 저 친구는 보아하니 실력은 가소로운데 연습은 하기 싫어하는 타입으로 딥 퍼플, 레드 제플린, 너바나, 블랙 사바스, 퀸 같은 지긋하신 아버님이 청년 때 들으시던 노래들 가운데 제일 유명한 딱 몇 소절만 연주할 능력의 소유자처럼 보인다. 플랫이나 안 깎으면 다행일테지. 저쪽에 앉아 목선을 예쁘게 보이면서 혼자 애교와 교태를 부리는─설마 그걸 연습하는 것일까─저 여대생은 에튀드와─제목은 안 보이는데 쇼팽이나 리스트 둘 중에 하나가 아닐런지─바흐 평균율 악보를 끼고 있는데 Steinway & Sons가 아닌 다른 브랜드 피아노가 깔린 음대에 다니는 것 같고, 깊은 사랑으로 이어질 낭만적인 연애 껀수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 하며, 괜히 엉성하게 글렌 굴드나 흉내내고, 영양사나 제빵사, 요리사 시험을 공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가방 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그 옆에 있는 여고딩은 솔직히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어른들과 전문가들이 하도 뭐라 뭐라 하니까 피츠제럴드를 읽고 있는데 더 나이 들면 베스트셀러 소설만 읽을 것처럼 또는 먹고 살기 힘들지만 투잡을 뛰어 참신한 소설을 쓰면서 살 것처럼 보인다. 직업1, 직업2, 소설가가 아닌 직업1 그리고 소설쓰기. 그녀는 채식도 사랑도 그리고 여행도 할 테지만. 그리고 어, 저쪽에 있는 두 분, 약간 모양새가 불륜 같다. 낌새 보면 대충 보이는데 이건, 남의 일은 눈썰미도 뭣도 아니다. 그러다 저 앞에 딱 로마의 휴일 (1953)이나 어디 나오는 그런 스타일의 고운 자태의 아무래도 중년으로 보이는 노년의 부인, 여전히 오래된 초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낭군과 변함없이 애틋하여 주변에서 여러 추궁과 부러움과 귀감과 또 다른 어떤 질시를 받을 듯 하다.
한편 저기 저 개페에 앉아 보온병으로 컵에 차를 따라 마시는 검은 썬글라스의 견적이 좀 나가는 차림새의 여인. 음 이곳 사람은 아닌 듯 하다. 휴양지로 유명한 어느 섬의 고급 호텔에 머무르다 바람 쐬러 내륙에 건너온 모습으로 아무래도 자기 자랑에 걸신 들리고, 중상모략에 삿대질과 험담 스폐셜리스트로 알려진, 최근 적지 않은 빚을 졌다고 구박 엄~청나게 해대는, 한때 가리지 않고 날이면 날마다 지저분하고 저질스런 험악한 욕만 골라 하면서 그런 욕-전문-방송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재기 또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을 그런 남편을 두었을 듯한 형편을 살며시 얼굴에서 읽을 수 있다. 만일 그 사실이 맞다면 우연의 일치요, 그냥 사실 만을 이야기한 꼴이다, 오로지 팩트만.
사람이 일을 안 하니까 생각이 많아지는건가, 소설 쓰는 일을 그 의지를 꼭 불끈 부여잡고 있으니 머리 속이 복잡한 건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딱히 점집을 차릴 기세까지는 아니고 그냥 혼자 놀고 있다. 참, 놀~고 있네.
이때 저 앞에서는 촌스럽게 어느 남학생이 직접적인 느끼한 멘트로 헌팅을 시도한다. 시간 있냐, 남자 친구는 있냐, 전화번호 줄 수 있냐 하면서 뭘 그렇게 뭐가 있냐고만 혹은 어디 가냐고만 물어보는지,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별로 안 봤을 듯한 타입이다. 보통 여자들은 1) 그런 대사를 거의, 한번도, 잘 안 들어 봤거나 2) 영화나 TV에서만 보거나 3) 헌팅받은 친구에게 듣기만 하거나 (그 친구 얄밉다, 부럽다) 그렇겠지만, 그런 말을 처음 듣든 아니든 남학생의 대사 보다는 그 태도와 외관(외모라는 단어와는 약간 다르게 느껴지는), 목소리, 분위기를 살피게 되어 있다. 당연히 그걸 더 중요시 한다. 여자이니까. 남자는 그렇다. 책을 별로 안 봤어, 영화도 드라마도 안 보고 맨날 게임이나 하고 친구들끼리 으쌰으쌰 뭉쳐다니기만 하니 로맨스를 당최 모른다. 혼자 있는 시간에 본인 수준이 달라지고 지성이 격상한다는 당연한 사실까지. 그 남자는 그녀 바로 옆에 앉지 말고, 서 있다면 너무 가까이 들이 대지 말고, 또 그 거리 안에 들어와서 너무 성급하게 말해버리지도 않아야 하며, 몸가짐을 좀 사근사근하게 바꾸면 좋겠지, 그러다 그녀가 아닌 다른 대상에게 한두 마디, 그리고 핸드폰을 보면서 혼잣말, 그 틈에 이제는 그녀가 들고 있는 책에 대하여 질문인 듯 아닌 듯 슬쩍 뭐라고 여쭌다. 그러다 차인다. 푸하하하.
플랫폼에 어느새 기차가 들어온다. 그럼 저 기차는 객차마다 찰스 디킨스 시대와 같은 신분이라는 등급으로 나뉠까 아니면 매 칸마다 다른 시간대의 자기 자신이 있을까. 좀 어설프지만 그런대로 비슷한 제임스 본드나 제이슨 본이 타고 있을려나, 뜨아 그러고 보니 두 이름의 알파벳과 어감이 비슷하구나. 아무튼, 아마도 그럴리는 없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당신이 살고 있는 공간은 냉정한 기운이 감도는 냉혹한 극사실주의의 냉엄한 현실 세계일 뿐이다. 잠시 이런 대화가 트위터 공간에서 오고 갈 것 같다. 글자수는 적당히 건너뛰고 의미 전달에 노력함. 걸리버들만 살고 있는 나라에 소인이 당도한다면 스토리 전개가 느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시간개념도 당연히 서로 다를테고.
- 걸리버: 이 인간이 스토리 안 나오니까 아주 발악을 하는구나.
- 여자1: 냉정한, 냉혹한, 냉엄한? 뭘 계속 냉랭하기만 해, 더워 죽겠는데 말야. 안 그러니?
- 여자2: 자꾸 멍청한 소리만 하고 있어. 재미난 사건도 안 나오고. 어휴 답답하다 푸~
- 남자1: 이런, 괜히 따라했다가 허접한 양아치, 찌질한 불량배 취급받았자나, 그게 무슨 비법이야 이런 삐─삐─
- 남자2: ㅋㅋㅋ개무시 당했구나, 맞아 그건 그냥 개수작이야!
- 남자3: 비법 좋아하시네, 순전 돌파리구만.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소설 그거 죄다 거짓말이다. 뻔한 이야기는 모두 다 개인적 바램과 팬들의 의견, 애절한 사연, 무수한 에피소드, 교훈, 말빨, 기법 등등 그걸 모두 집약해서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다. 적어도 대다수는. 현실에서 그 한 챕터만이라도 당신에게 일어날 확률? 거즘 제로에 가깝다. 이건 힐난이나 비아냥은 커녕 코메디 상도덕에 어긋나는 축에도 못 낀다. 이건 젊은이들이 소설 읽고 하는 말들, 그걸 거의 흡사하게 옮겨적은 것에 불과하다. 또는 당신이 하고 싶었던 말일 뿐이다. 독자의 기대치를 너무 낮추어도 문제다. 연애는 무엇이고 사랑은 어떤 것이다, 삶은 뭐뭐 해야 한다, 인생은 어떻다, 훈시는 커녕 겁을 줄 의도는 추호도 눈꼽 만큼도 없었는데 말이다.
독자들이 정~말 말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 적기만 했는데 분위기 왜 이래?
꼭 마치 하나같이 안 좋게 보고 평판 별로고 껄끄럽고 재수없는 직장 상사나 권력 있는 비즈니스 관계자를 두고 정말 너무 극성이길래 그와 함께 다같이, 모두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가 나서서 총대 메고 '그게 뭐냐,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하면서 거침없이 의롭게 사자후를 뿜고 나니, 그 후 왜 그런지 사람들이 그를 슬슬 피하고 형식적으로만 대하며 자꾸 겉도는 기운이 감도는 것과 비슷하다. 악역이든 뭐라 부르든 나섰잖아, 언제는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느냐고, 왜 앞에 나가 말하지 않느냐고, 트위터로 페이스북으로 커피 자판기 앞에서 목소리 쩌렁쩌렁 울리며 뭐라뭐라 하드니만 말이다. 영화 촬영장이나 Microsoft, Yahoo, Google, Apple 같은 회사의 어느 부서마다 이런 사람과 상황 드물겠지만 꼭 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현재와 머나 먼 미래 신세계는 성-떼끄니끄의 차이가 이와 같을려나 그냥 비슷할려나.
그래도 각 공동체마다 극소수는 어쩌면 웃고 난리났다가 뒤집어졌다. 그리고 극소수의 극소수는 근엄한 척 뒷짐을 지고 약 37도 쯤의 망각할 수 없는 각도로 서서 먼 산을 바라보며 냉소를 짓는다. 뭐야 씌여진 데로 하고 있어. 와우.
이런 서늘하다 해야 할지 쎄하다는 느낌에 더 가까울지 분간하기 곤란한 분위기...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