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작은 소설.

from 칼럼 2019. 1. 27.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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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특급 호시절이 임박함을 예견해야 한다. 아울러 뻔트론에 애착감을 느끼고 들뜬 분위기와 설레는 기분을 조장하기를 원했다. 리듬을 타면서 한번은 동기유발, 한번은 동기부여! 그리고 실패하면 합리화. 아니면 친구 만나서 술 한잔 마시고 당구 복수전. 그처럼, 나는 즐거운 인생과 행복한 세상에 대해 통찰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뭔가 이상한 게 말이지, 뭐라고나 할까 슬럼프를 관측하는 게 아니라 아예 거기에 매력을 느껴버린 거 아닌가. ~라는 희안한 육감! 그 때문에 자꾸 유령의 농간에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보아하니 나는 미루기와 게으름을 양쪽에 끼고서 어떻게 하면 우쭐함을 또 한번 자극 받을 궁리나 하는 형편이었다. 어깨 위에 앉은 햄버거도 떼냈겠다 허언증도 치유됐겠다. 하지만 그녀를 어깨에 들쳐매고서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리자, 새침한 듯 귀여운 숙녀가 앙탈 부리는 상상은 도무지 뿌리치지 못했고. 그건 정말 도저히 어떻게 안됐다는 게 아니라, 진짜로 그랬다는 게 아니고. 그처럼 정작 마음은 아직까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또 레임덕에 허덕이고 있었다. 어떻게 쫌 어떻게 BAR '율리시스와 사이렌'에 들려서 바텐더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눠볼까 어쩔까. 게다가 거기서 한술 더 떠 노잼─깡통─가짜─뻥─장난─농담, 그런 건 죄다 재미없으니. 따라서 색다른 건수와 새로운 우연성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마치 나는 필연적으로 침을 질질 흘리면서 동네를 바쁘게 떠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개인 것 마냥, 자꾸 정신과 영혼과 마음이 일치하기를 각자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진짜로 구글 검색창에 그런 걸 쓰지는 않았고. 바로, 여자 꼬시는 법.
    바로 그때.
    뭔 일이 있었냐, 하면 별 일 없었다. 나는 하던대로 일을 했다. 착상을 기다리고, 인터넷으로 사고 싶은 노트북을 구경하며 아이쇼핑하는 게 다였다. 그렇게 나는 사실적 환상주의니 환상적 사실주의니 꾸밈어가 떠들썩한 작품을 읽어보려고 꾹 참고 노력했다. 늘상 그래 왔으니까. 그게 본업이니까. 그게 천직이니까. 나도 남들처럼 그래 볼려고 했다. 왜 그렇게들 이러쿵저러쿵─어쩌고저쩌고─따따부따 할 말이 많으신지. 왜 그렇게 생각하고 무엇 때문에 할 말을 참지 않으시는지. 저분은 툭하면 남의 다리를 긁으시는지. 이분은 왜 수박 겉 핥듯이 스키장에서 혀로 어딜 핥았다가 구급대가 출동하는지. 왜 그렇게나 <아는 척─잘난 척─겸손한 척> 제조기로만 사시는지. 그걸 알아보고 이해할려고 노력했다. 부던히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만 말하자면 실패했다. 여지없이 실패했다. 참고 참고 또 참으며 읽다가, 중간에 덮었다.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읽기에 실패했을까 라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그 결과 거창한 연구도 뭐도 아니고 대충 왜 그런지를 알게 됐다.
    나는 언어학이라는 학문을 전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언어학을 전공한 문사들의 글발이 좀 어떻다는 걸 알기에 그것과 연관해 생각해봤다. 곧 대상이 뭔고 하니 <가브리엘 마르께스>. 수식어를 반복하는 시간 낭비, 그런 촌스런 일은 타인에게 양보하고. 일단 순진한 문학 소녀, 천진한 사춘기, 꿈 많은 유년이라면 어른들과 전문가들께서 말씀하시니까 무던히 마르께스 읽기에 도전할 것이다.  「정말 그런가 보구나!」 하면서 말이다. 어른들도 드라마에서 언뜻 책 표지를 비춰주니까 뭔지 궁금증이 자길 괴롭힐 것이다. 독서는 몰라도 읽었냐 안 읽었냐, 에서 책 뒷편 줄거리와 평가 정도는 알고 싶으실 테니까. 왜냐하면 식상한 <아는 척 잔지식>이자 <내가 최고라는 자존심으로 달성한 위업 곧 인기> 같은 권위에 그분들 주관은 팔랑팔랑~ 호의적일 테니까. 다른 말로 쫄 테니까. 용돈 해 봐야 얼마 되지도 않고, 경험도 미천한 데다, 꿈까지 없는데? 잔지식으로 친구한테 대적하겠나, 말발로 아빠한테 상대가 되겠나. 공부 못하면 나중 뭐 어쩔 것이다, 어떤 것만 쫓다가는 멍청해질 것이다 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겁먹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피곤할 테니까. 잔소리도 다 효용가치가 쏠쏠하지만, 그분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다. 아 글쎄 어른들이 스무살을 응애응애 병아리로 보는데, 그런데 그보다 더더욱 어리면 갓난아기 아니냔 말이다. 나는야 딸랑딸랑 응애응애─참새 짹짹 병아리 삐악삐악─두손을 비비며 파리몸짓! 그러니 본인 뿐만이 아니라 그분들도 태반은 완독에 실패할 것이다. 그분들이나 나나 그걸로 보자면 똑같다. 완전 똑같다. 그분들 인생이야 각자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성향과 정체성을 알아가시면 되고. 어쨌든 시각을 좁혀서 나만. 오직 나만 봤을 때. 왜 나는 가브리엘 마르께스 읽기에 참패했는가? 하면 이유는 이와 같다.
    왜냐하면 마르께스는 스페인어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나보코프가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쓴 롤리타라면 읽겠는데─읽었는데─것도 2번 정독했는데 그게 아니니까. 다시 말하자면 내가 만약 마르께스를 읽던 중, 「아아 이걸 몰랐구나. 오오 꽤 괜찮네!」 ~라고 느꼈다면. 만약 그랬다면 이미 몇 세기 전에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스페인 모음곡을 작곡했을 것이다. 순서라는 게 그렇게 된다. 그게 선행되지 않았으니까, 안 그래도 루저니 뭐니 나 역시 실패할 수 밖에. 물론 전문가들 설명도 좋다. 틀리지 않고 탁월한 고견이다. 좀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서, 스페인 하면 오페라다. 모차르트 오페라인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베토벤의 피델리오. 로시니 오페라인 세비야의 이발사. 비제의 오페라 카르맨. 이탈리아도 그렇고 에스파냐에서 오페라는 찬란한 꽃을 피웠지만, 정작 그 이전에 바흐는 스페인 모음곡을 쓰지 않았다. 바흐는 엔리케 그라나도스처럼 스페인 무곡을 작곡하지 않았다. 애시당초 작곡할 마음이 요만큼도 없었나 까지는 모르겠고. 만약 바흐가 스페인 모음곡을 썼다면 필경 나는 가브리엘 마르께스를 읽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완독에 너끈히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가정이고 결과는 달랐다. 바흐가 작곡했던 이탈리아 모음곡이야 작은 규모니까, 이탈리아어로 쓰인 소설과는... 뭐랄까 살짝 비례한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탈리아 영화는 좋고 풍광이야 기가 막히지만, 건축과 조각과 그림도 아닌 이탈리아 문학? 적어도 전공······까지 하기에는 시간도 턱없이 모자르고, 인생도 예술에 비하면 짧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쉬운 일도 아니다. 게다가 좋아하는데 잘할 수 있냐 라는 문제도 있다. 그대의 행복은 단촐하지 않기를 기원함과 별개로 우리들 목과 팔은 다소 짧아지긴 하겠지만.





    2

    한편 굳이 한가지 이유를 더 추가할 수도 있다. 왜 읽기를 서둘러 멈췄는가. 시간도 충분하고 억지로 숙제처럼 끝가지 읽었다고 가정했을 때, 왜냐하면 그렇다면 더 나쁘면 나빴지 더 완곡한 해명은 차마 어려울 테니까. 둔탁한 할 말 참지 못할 테니까. 그러니까 잘 멈춘 거다. 갈 데까지 가는 건 멜로드라마 대사로 대신하기. 말하자면 입장 바꿔서 태교의 제한이 있어야 좋나, 아니면 무제한이 괜찮나. 정말로, 진짜로 당신의 자녀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는 걸 원하시나요? 그대 진정 차별에 너그로운가! 친구 파도타기로 정녕 끝까지 가도 괜찮단 말인가. 명문대 나온 천사 같은 딸래미가 막노동판에서 일하다 놀다 일하다 노는 천재 남친과 결혼하고 싶다면. 그렇다면 애지중지 곱디고운 처녀로 키워놨더니 글쎄 그러겠다면 절로 응원하시겠나. 취향과 안목이 딴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요. 혹시라도 촌년&촌닭이라면 몰라도 공부깨나 한 차별 금지 신봉주의자께서 이걸 질투심과 연결시킬지 퍽이나 걱정되는군. 어른대회에 초딩을 끼워주니 안 끼워주니, 그걸로 텃새라는 둥 편견에 차별이라는 둥. 아직도 제3세계권에 상장을 비례제로 남발해야 할 일은 여전히 멀었다. 유럽권과 영어권에 상 받을 만한 우승자감은 죄다 외면하고 아직도 초딩들 줄서서 목 빠지게 기다린다. 그러니까 어떤 분야 권위자 상당수는 여성잡지업계로 자리를 옮겨야 마땅할 것이다. 여자도 골프장에 입장 가능하고 지구는 평평하다고 전문가들이 한 얘기라면 다 믿는 건가? 범죄인의 사회 적응을 다룬 영화랄지 사회성 짙은 작품은 최선을 다해 외면하면서. 그러면서 대체 뭘 안다고 주류 언론의 아마추어보다 못한 기사에 세뇌당하는가. 책이라면 여성잡지 1과 2만 일평생 끼고 사는 가정주부의 삶, 수다 3시간이 생애 최대의 기쁨인, 그럴 수 밖에 없는 동네 아줌마의 인생을 이해하기가 어디 쉽던가. 그렇다고 여성잡지 1과 2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정말로 그런 글을 쓰고 싶겠나. 괜찮은 판타지 소설이나 틈틈히 쓰면서 유명세 때문에 행복한 투정도 감사히 여기고 싶지, 허구헌 날 들들 볶고 닦달하는 편집장이 어디 이뻐보이겠나. 자기 일을 진정 사랑하겠나. 잘나가는 처녀 때 사랑에 빠져 여성잡지2 그거 별거 아닌 듯 보였는데, 호시절은 잠깐이요 어느 날 보니 불현듯 나는 이혼녀.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고상한 전문직을?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전남편은 유명하기라도 하지. 큰 빚을 통채로 전남편이 자랑스럽게 떠안음과 더불어 하나뿐인 애마저 뺐긴 이혼녀. 전남편은 이혼도 자랑이요 빚 많은 것도 자랑에다, 그 큰 빚을 대인배처럼 떠안은 것은 물론 자식 꺼벙한 것까지도 자랑. 전남편은 욕하는 게 일이었는데 자식 얼빵한 것도 자랑이면서, 또 내 자랑만은 욕하지 마라느니 뭐라느니. 그런데 이혼녀의 미모는! 이혼녀는 객관성이란 잣대로 현재를 보아하니...... 에잇! 너무 짠하잖아? 정말로 그렇잖아?
   「A.여자 나이 50 넘으면 누가 쳐다본데요?   B.여자 나이 50 넘으면 누가 여자로 보느냐구요.  C.단, 나처럼 각별히 우아하다면 모를까!」
  「왜 그러시오 낭자. 나한테 오시오. 내 그대를 사랑해드리리다.」
   (※ 통상 첫번째 대사에서 현실적으로는 A만, 각본에서는 B까지, 드라마에서는 C마저. 첫번째 대사를 받는 두번째 말도 현실을 감안했을 때 이를 테면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놉시다' 정도)
   ~라는 말을 말 그대로 50 넘은 여자가 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농담. 사석에서 끼리끼리 오가는 정담. 꼭 그렇지도 않고 웃자고 한 얘기란 걸 우리가 모르지 않는데, 일단은 단지 50 미만 남자가 말했을 땐 크나큰 실례. <30살 선녀냐, 50살 미녀냐>. 성 무슨주의와 별개로 개그의 소재로 다룬지 오래됨. 여자를 남자로만 바꾸던가 공평히 둘 다 논하면 되니까 논란도 피해감.  「늙으면 어째야지」라는 말과 완전 똑같음. 오락산업이 우리들을 좌지우지할 수 밖에 없는 필요충분조건은 그처럼 상시 만족이다. 아무튼 사교계니 무슨계니 그쪽 말고.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캐셔 같은 시간제 일을 하는 부류도 있는 반면) 새로 사귄 친구와 함께 밤의 세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 밖에. (이때 중요한 점. 그분들 인생은 자연스럽게 여성잡지 1에서 2로 옮겨간 평균값. 그런데 그게 아니라 스무살 때부터 여성잡지 2로 시작한 건 또 뭐고). 그분들이 선발주자권의 평론계에서 천시하는 작품과 전남편이 심하게 싫어했던 수필과 본인의 잔소리를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진짜 구분하실 수 있을까. 전남편이야 잔지식의 화신이었다지만 그것과 잔소리 여왕이 같지는 않거든. 입담 걸출한 잔머머 제왕, 흔해 빠진 수다쟁이. 전자와 후자가 어떻게 같겠나. 스스로 모르지도 않고. TV와 여성잡지 그리고 수다. 그게 아니라 근사한 고전이라... 생각만 해도 잠이 오는구나. 착한 척 남들 따라서 차별이네 뭐네 나도 그랬는데, 내 이기적인 삶은 그것과 얼마만큼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가. 태반의 전문가가 주동하고 세계적인 권위자가 삐에로로 나서는 바보들 세상에서. 오락산업의 보살핌과 가짜의 총애와 환상적인 허상으로 빚어진 왕국에서 평생을 사셨는데. 그런데 그분들께서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말처럼 특정 감정에 대칭하는 딱 1개 표현이라던가 낱말이라던가. 그것이 상품이든 작품이든 또는 아이디어든, 그분들께서 그것이 구체화될 최적의 매체가 무엇인지 과연 구분하실 수 있겠냐고! 왜 젊은 친구들이 3초에서 30초에 이르는 짤을 퍼트리고, 왜 3분의 마법이라는 유행가가 인기의 대명사가 되었는지. 설명을 할 수 있느냐 라는 점. 우리 눈에 보이는 수수한 옷차림과 정치인식 화법에 대해서는 뭔가 구분이 되면서. 그러면서 어떻게 사극에 나오는 백작가의 인습과 궁궐 밖 흥정의 묘미가 구분이 안될 수 있을까. 그러면서 그녀들끼리 말하기를 말이 안 통하는 남자라는 둥 뭐라는 둥. 뻔트가 어떻고 상남자들 명대사를 남발하면서, 어떤 남자왈 뭘 좀 아니 모르니.
    구경꾼 즉 감상자의 입장 헤아리기. 가능하지 왜 아니겠나. 생각만 하지 않으면 되는데? 권위자들이 했던 얘기와 업계 관계자들이 끄적거린 설명에 동의하고 지식으로 알기만 하면 되는데? 자고 놀고 먹고. 그거 누가 못하나! 그걸 피치못하게끔 곤란한 신체적 장애는 다큐멘터리지만, 정서적 장애? 어른은 애들과 한마디로 경쟁 관계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전음악이라는 기반과 미술계라는 상대적 지표, 그 2가지와 타분야가 비례하는 게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면 또 모르겠다. 그건 끄덕끄덕. 이해하고 마음을 추리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냥 무턱대고 생각하지 않기. 숙제 베끼기와 인터넷에서 자료 조사해서 대충 짜집기해서 단행본 만들기. 적당히 논문 쓰기. 세계3대 (순수) 과학잡지에 간헐적으로 논문을 기고하지 않아도 명예직 평생 보장되기. 그건 뭔가 좀 그렇다. 안 그럴 수 없겠지. 소셜 네트워크를 보자. 카페라떼나 녹차라떼처럼 몸과 마음에 둘 다 유익한 음료 같은 단문. 그걸 인터넷에 올리면 퍼트려지고 알려지며 재생산된다. 그것의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그와 일부분 비슷한 이치다. 고전의 계승자인 현대음악과 미술계는 카페라떼나 녹차라떼처럼 몸과 마음에 둘 다 좋은 명맥이 이어진다. 그런 반면 일부분 타 분야에서는 값싼 탄산음료처럼 일시적으로 짜릿하지만 몸에는 좋지 않은 저렴한 해석과 다 똑같은 평론이 업계를 이끈다? 그 분야는 <고전음악이라는 기반과 미술계라는 상대적 지표, 그 2가지>와 더없이 비례할 수 밖에 없다는 결과값. 현재가 증명하고 미래는 예견된다. 양치기견이 양떼를 모는 식으로 선량한 레밍쥐는 정말로 오락산업한테 휘둘리지 않는단 말이더냐. 패스트푸드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건 그것대로 좋긴 하다만 주객이 바뀐 것처럼 그것 위주라면 문제가 있으니까 하는 말.





    3

(───잠깐만 주제를 벗어나서───)
    앞서 언급한 <......잔소리를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진짜 구분하실 수 있을까>에 대해 잠시만 참고 설명이 필요할 듯 하다. 왜냐하면 설핏 오해의 소지가 약간이나마 있으니까. 곧 남편의 잔지식-설과 부인의 잔소리가 절충된 수다도 충분히 가능하다. 당연히 서로 바뀔 수도 있고. 대화라는 건 원래 테니스 공처럼 왔다 갔다 해야 그게 대화다. 할 말이 많건 적건 동등한 사이라면 8 대 2일 수도 있고, 사업적으로 누군가를 독대하며 '55분 듣기 5분 말하기'일 수도 있다. 어쨌든 강연은 100이고 대화는 50 대 50이 기본 공식이다. 그런데 대화에 대해서 그게 아니라 말을 했다 하면 길고, 많고, 또 길고, 졸리고,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고. 아무리 들어도 이건 대화가 아니라 설교 같은 말하기도 있다. <아아, 또 시작히구나!>라는 아빠의 말씀.
   「야 야 떴어 떴어. 뭐해 뭐해. 피해 피해. 딴 데 봐 딴 데 봐.」
    대형견 목줄을 쥐고서 공원에서 노인네들은 물론 좌중을 휘어잡듯 배꼽 잡게 만드는 코메디 화술. 그거야 테니스처럼 5 대 5보다 원맨쇼에 가까워도 괜찮은데. 그런데 그게 아니라 많이들 알고, 대체로 익숙하며, 지극히 평범한 얘기들만 길게, 길게, 또 길게, 도저히 끝날 기미가 없이, 길게......! 오오, 또 또, 아아 또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질문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렇게 될 수도 있음. 단지, 여성잡지 1에서 2로 자연스럽게 옮겨간 평균값 이혼녀의 기구헌 인생이 하루 아침에 첫째 캐셔랄지 웨이트레스냐 아니면, 둘째 여급이냐. 그에 따라 나뉠 테니 하는 말. 말은 엄청 많은데 '웃기기 타율'이 바닥인 여인의 어떤 사연을 감안한 얘기지 머머주의가 아님. 여자는 감각적이기만 하고 남자만 논리적이라는 거냐 뭐냐, 그 얘기가 이님.

  1. 설교식 화법
  2. 안듣기 화법
  3. 본론 없는 화법 
  4. 쓸데없는 말만 하기 화법
  5. 뜸들이기 화법
  6. 청자 주늑들게 만드는 화법 
  7. 무조건 우기기 화법
  8. 무조건 부정 화법
  9. 선동가식 화법
  10. 진행형 화법
  11. 어디로 튈 줄 모르는 개구리식 화법
  12. 거꾸로맨 화법
  13. 딸랑딸랑─삐악삐악─어버버버─아부부부─응애응애식 화법
  14. 각 동물별 화법
  15. 아는 척 화법. (끌어내리지 않는 이상 끌려내려가지 않는 '타석에 주저앉기'식 화법)
  16. 알아도 모른 척 화법
  17. 약장수식 화법
  18. 비꼬기 좋아하는 조롱꾼 때문에 발생하는 갑분싸. 찬물을 확 끼얹는 화법.
  19. 문명 체계와 정반대되는 사고방식에 따른 유인원의 유체이탈 화법.
  20. 여성잡지 1&2와 비슷한 듯 다른, 시작은 산만─중간은 문법이 틀리고─결론은 없는 잔소리 화법.
  21. 남의 다리 긁기─아무말 대잔치─다 차려진 잔칫상에 숟가락 올리기 화법. 
  22. 오 소~름. 끝짱! 와 대~박. 개-재밌어. 졸라 멋져. 개-간지. 아 빡쳐! 중3화법 또는 젊은층 화법.
  23. 눈높이 맞추기 화법

    같은 유형끼리 친구가 되기도 하는데 서로 상극인 조합도 있음.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우리가 학교에서 사회에서 괜히 그랬던 게 아님. 특히, <뭐 + 뭐 + 뭐>랄지 <A + B + C + D......>가 내 남자친구라면? 특히나 그분께서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까지 좋아한다면! 그럼 친구가 옆에서 따끔하게 제지한다. 
   「늬 남자친구는 어쩌기라도 하지 얘. 난 어쩐 줄 아니? 일단 발음이 이상하기로 그런 사람은 처음이야. 얘길 들어도 한참 생각을 해야 돼. 뭔 말인지 라고. 바닥을 기는 한두 살 애기의 말은 엄마처럼 내내 붙어 있어야 알아먹잖아? 그거랑 똑같다니까. 응? 그 고충을 너네들이 알기는 아니? 엄만 애기 말을 잘 알아듣기나 하지. 응? 난 못 알아먹어. 같다 맞추고 때려 맞춰야 한다고. 어? 늬가 내 남친이랑 대화해 볼래? 어? 그럴래? 복에 겨워서 얘가 정신을 못차리네. 너 그거 알면서 일부러 나 들으라고 자랑하는 거니, 아니면 고급스럽게 매기는 거니? 응?」
   「얘네들이 말이야, 어? 늬들이 뭘 좀 모르나본대! 얘, 차라리 눌변이 나아. 그게 낫다고. 돈만 잘 벌고 허우대만 멀쩡한 거보다 그게 나을 수도 있단 말이야. 그건 조종하고 요리라도 되지. 그런 남자는 조련하면 돼. 어렵긴 하겠지만 일단은. 응? 그런데 그게 아니라, 너네들이 나쁜 남자의 녹여주는 감언에 넘어가서 달콤한 기분이 나중 어떻게 폐막하는지, 그 절망감을 대체 알기는 아니? 응? 그걸 알고나 하는 얘기야?」
    <그분들이 선발주자권의 평론계에서 천시하는 작품과 전남편이 심하게 싫어했던 수필과 본인의 잔소리를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진짜 구분하실 수 있을까>에서! 평생 집안일만 하고 애 키우고 그러다 어느덧 난 이혼녀. 본인이 여자이면서 50 넘은 여자가 말하길,
   「여자 나이 50 넘으면 누가 쳐다본데요?」
    그나마 우아하거나 먹고 살만 하면 나은데, 그게 아니라. 평생 집안일만 하고 애 키우고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난 이혼녀. 집안일과 애 키우는 일이 정녕 고귀한 일이란 걸 누가 부인하겠냐마는. 그러나. 하지만. 사회에서 그분들을 고급 인재로 스카웃할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는 것. 현실은 냉정한 것. 아무리 반세기를 살았어도 여자는 여자인 것. 인간은 새로운 사랑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본능은 동일한 것. 남녀 공히 그건 원초적인 것. 사랑이 시작될 즈음이야 좋았지. 왜 아니겠나. 그러나 현실은 냉정한 것. 양육권도 넘어갔지, 난 50 넘었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전남편은 벌써 누굴 만난다더라 어쩐다더라. 의리 없는 인간. 못된 놈. 게다가 거울을 보아하니 이건 뭐......! 심지어 돈이라도 많으면 모른데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면······! 
(───잔소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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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란 양반들이 바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못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몰라서 건드리지도 못하는 건지. 그야 모르겠지만 바로 이 부분이다. 「나도 자랑 좀 하자!」 ~라면서 또 수다 떨겠다는 게 아니라. 이처럼 <가브리엘 마르께스>에 대한 내 소신을 떳떳함과 동시에 조리있도록 업계에 밝힌 전문가가 있냐? 바로 그 말이다. 있긴 있겠지만 대충 예측해도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증권업계 애널리스트처럼 천편일률적으로 <어떤주 어떤주 꼭 반드시 사라>는 말만 있지 팔라는 보고서는 드물 듯이 감히 어데다 딴지를 걸겠나. 응? 감히! 번지수가 틀렸거나 생각이 짧거나. 콜롬비아 관광도 좋고 투우도 다큐멘터리로 보고 싶다. 오페라 글라스와 단안경과 쌍안경이 각각 작품에서 어떻게 달리 쓰이는가와 별개로 제비복. 입어보고 싶지 왜 아니겠나. 그런데 그와 별개로 원리와 이치에 대해서 상식과 교양에서 다루는 그림이 어떻게 보면 한마디로 참 까막눈이다. 그쪽에서 다루는 상식이라는 게 어찌 보면 참으로 속좁고 허접하고 꺼벙한 옹졸함을 닮았다고나 할까. 아니, 어떻게 그처럼 뭘 모를 수 있지?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문가들이─대부분 훌륭함 일색이 주류를 이루는 반면 일부는─속된 말로 나발거림과 나불댐과 <남의 다리 긁는>-식의 배경 설명만, 어? 그것만 오직 뻔하게 반복하고 베끼며 시끄러운 소음을 일으키는 일. 없지 안아서 하는 얘기다. <감상하는 작품이냐, 소비되는 상품이냐>.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인 세상. 안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중요한 훨씬 개인적이고, 응당 언어학적이자, 분명 비교적인 원리는 딴전으로 내버려두고. 그냥 막 너도 나도 교과서적 지식만 주거니 받거니! 응? 남자의 우정처럼 너는 천재 나는 스타! 그게 대체 뭐나고요. 네? 본인이야, 왜 그와 같은 시각차가 나는지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행운을 어쩌다 부여받았으니. 운명적인 사연이야 그건 뭐 그렇다 쳐도. 다른 전문가들도 다 이 정도쯤이야 식은 죽 먹기라는 듯이 설명할 수 있을까? 설명할 수 없다! 그럴까? 못한다! 대체로 안하고 대부분 못한다. 왜 X축과 Y축이 다른지도 잘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설명하겠나. 보이는 게 홀로그램 아바타니까 그건 홀로그램이다 뭐다 잔지식을 총동원해서 설명하기만 할 뿐. 장님 코끼리 뒷다리 만지기 이상이 어떻게 가능하겠나.
    단지 유명세로 1인자든 뭐든 직업군별로 다른 전문가들도 사정은 비슷비슷하다. 처음부터 트랙 달리기에 최적화된 도박꾼도 그렇다. 아무리 특급 엘리트 코스대로만 따라왔더라도 심한 응용, 까다로운 난제, 험난한 급변을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응애응애─삐악삐악─짹짹짹짹 그런다. 경주마의 야성과 전장을 찍은 다큐멘터리의 참상과 극적 선율과 원리를 모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정통과 진짜를 모르면 출발은 좋은데 후반으로 갈수록 지치기 마련이다. 왜 나는 이 일을 하는가, 난 정말 이게 좋은가. 그건 딴전인 채 로보트처럼 공부만, 부모님이 정해놓은 반듯한 길만 따라갔던 범생이였으니, 고로 내가 어떻게 살고 싶었는지도 생각해보지 않았거든. 그처럼 일단 출발은 좋고, 간혹 첫 끗발이 개 끗발일 수도 있지만, 중반전도 선전한다. 그러나 막판에 막판 스파트를 못하니 마라톤 플레이메이커처럼 역할에 충실하게 된다. 애초에 플레이메이커라는 배역을 맡았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 골인 지점이 보이는데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 또는 골인을 앞두고 에너지가 바닥난다? 본류를 모르면 그렇게 된다. 가령, 코럴드로우─포토샵─3D MAX부터 시작하여 고급 과정까지. 그러니까 후발주자측 (일부) 웹디자이너가 딱 그런 식이다. 그쪽 5년차 웹디자이너. 어떻게 머머 스타일로 머머처럼 그렇게 해 주세요, 라고 주문하면 귀신같이 해낸다. 것도 뚝딱! 일도 아니다. 헤어디자이너에게 누구처럼 다듬어주세요, 그랬더니 헤어뿐만 아니라 나를 완전히 슈퍼스타랑 똑같이 만들어주는 식이다. 아주 그냥 기가 막힌다. 끝내준다. 학구파 중견과 <애플─인스타그램─마이크로소프트─야후>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웹디자이너보다 월등히 잘하진 않겠지만 대충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런데! 그런데 참 이상한 게 뭐냐면 어떤 컨셉으로, 의견 수렴하고 정식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하라! ~라고 주문하면 그쪽 역시 응애응애 삐악삐악 애가 된다는 점. 그런 정식을 주문하면 그분들 벙찐다. 붕 뜬다. 눈이 똥그래진다. 얼굴 어두워진다. 피한다. 도망간다. 딴 데 쳐다본다. 입이 벌어진다. 왜? 일단 C++에 대해서든 뭐든, 웬만한 프로그래머 뺨 칠 정도로 세부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고급이 아니거든. <독학 + 속성 과정 학습 + 현장 경험>에는 탁월했지만, <학구적 신기술 + 직관적 코딩>에는 약하니까. 그러니까 구글링하다 포기하느니 아예 맞춤복 주문을 받지 않는다. 기성복만 만들기도 빠듯하니까. 그러니까 상업적인 분야, 즉 과학적이고 수학적이며 장비와 노력으로 승부를 보는 분야에서는 어떻게 된다. 어떻게 된다고. 그러나 그게 아니라 생각의 힘이 뚜렷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분야에서는 어설픈 요행과 허접한 반칙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가령, <가브리엘 마르께스에 대한 일반적 정평과 정반대되는 논조를 제시하시오>. 할 수 있을까? 못한다. 제시 못한다. 일단 해 보지를 않았고, 생각조차 안 해봤거든. 논설 공부 역시 기계처럼 잘하지만 다 똑같은 기성복처럼 구식일 뿐이다. 자로 먼저 수치를 제고 형태를 측량한 다음 디자인에 들어가는 맞춤복처럼 세련된 논평? 글쎄요 글쎄요! 그 사람의 정체성과 개성에 딱 맞는 맞춤복 같은 비평? 그걸 어떻게 하나. 기성복 뽑기도 바쁜데. 나 행복하기도 힘들고 나 신나게 놀기도 벅찬데, 어느 세월에 맞춤복 과정을 다 따라하겠나. 따라서 서평 베끼고 목록 따라하고 딴 게 아니라 <응애응애와 삐악삐악 참새 짹짹>마저 베끼고 또 베끼고. 어제도 따라하고 오늘도 따라하고. 프레따뽀르떼와 오뛰꾸뛰르. 자동차 신제품 디자인이 인터넷에 미리 떠도는 것처럼 시간차 얼마 되지도 않도록 가짜 상품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베낀다. 그렇지만 공산품은 그렇고 예술도 물량 공세를 하는 분야도 그렇지만, 미술은? 미술은 다르다. 양대 미술품 경매 시장이 어떻게 다른가는 몰라도 과목이란 게 그렇게 차이가 난다. 전문가와 권위자의 역량이 그렇다보니 어딘가에서는 진짜로 큐레이터가 가짜 학위로 어느 자리까지 올라서 사회 문제로 단위를 떠들썩하니 들었다 놨다 했던 일조차 있었다. 나중 그걸로 책 써서 또 다르게 유명해졌다. 그리스 비극은 왜 읽기 어려운가, A문장 다음에 B문장이 오면 안되는 이유를 비교문학적으로 설명하시오, 산만한 여성의 문법을 논리적으로 재배치하여 구조적인 결함을 해결한 예에 대해 논하시오, 할리우드 시나리오 다중 작업의 성공 예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브리엘 마르께스에 대한 내 생각이란 것 자체가 없는데, 그걸 하시겠다 그게 가능하다? 사정은 그렇다. 형편이 이렇다. 원리가 이렇게 된단 말이다. 다 똑같이 베끼고 짜집기에 권위자가 스케치한 디자인 뿐만 아니라 큐레이션-선정-감별까지 베끼느라 바쁘다. 베껴도 잘 베끼면 모른데 무슨 말도 안되는 남의 다리 긁기까지 베꼈어. A와 입체와 원류를 베끼면 좋은데. 그게 아니라 B와 평면, 그리고 유럽이 조상인 중견주자도 아니고 이상한 개인적 취향을 베껴. 뭐지 그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절대 나쁜 게 아니다. 다만 그 과정을 넘어갔을 때 좋고, 못 넘어갔으면 아마추어. 어떤 분야는 프로들 전부가 아마추어. 뉴스에서 들리니까 기억하기로 망언 제조기니 뭐니. 일부 분야에서 유명인과 전문가와 권위자라고 하는데, 대가라고 추켜세워주는데. 그런데 어떻게 입만 열면 글만 쓰면 <잔소리 반에 말도 안되는 헛소리 반>. 베낄 게 따로 있지 뭔 큐레이션-선정-감별이랑 요약본과 평론까지 베끼다니. 부단한 과정 동안 헤매고 또 헤맬 수는 있는데, 그게 아니라 필자 학교 다닐 때 독서감상문 썼던 거랑 똑같은 게 참 많음. 책은 다 읽지도 않고, 읽지 않았으니 내 생각이 없고, 여기서 저기서 짜집기. 그래 놓고 독서감상문 짜잔~! 게다가 전문가라고 해 봐야 어차피 읽어도 권위자나 유명인 생각을 가져와 내 식으로 편집한 유형이 참 많음. 영화 1편 보고 나서 할 말 없으면 잠재의식 창고에 넣어두면 그만. 그런데 전문가랍시고 뭐라 뭐라 또 그 말대로 차곡차곡 내 지식의 기반을 그것으로 채운다. 안 그래도 된다니까요, 안 그래도 된다구요. 내가 생각하기에 할 말이 발생하지 않는 건 건너뛰고 훨씬 훗날 나중 그것에 대해 내 할 말이 발생했을 때. 그게 진짜임. 아니면 가짜고 어차피 내 것도 아님. 아울러 영화 1편 보고 나서 할 말이 없더라도, 남의 의견을 존중할지언정 꼭 인정할 필요는 없음. 내 시간 아까우면 평론가의 말을 들어줄 필요도 없고, 읽겠다는 빈말도 아까움. 일단 나는 생각 전이니까. 면밀히 사고하지 않았으니까. 잘 모르면 잘모른다 알면 안다. 그건 내 정당한 요구가 맞다, 또는 그건 내가 틀리다. 이건 말이에요 내가 잘 모르기 때문에 3일 동안 연구해본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처럼! 아무튼, 찬찬히 감상하고 생각을 골똘히 하지도 않았는데, 결과물은 독서감상문 짜잔~! 물론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분야에 따라 유독 뒤쳐진 분야가 있다는 뜻. 수학과 과학이 바탕이 되는 상업과 산업이야 규모가 중요하니 엇비슷하다지만, 사고체계에 따라 수준이 좌지우지되는 분야는 결코 그렇지 않음. <언어에 따른 특징과 한계 + 고전이라는 기반>에 따른 영향은 절대로 쉬운 게 아니다. 심지어 고전이라는 야생마는 벌써 오락산업이라는 경주마로 바껴버린지 오래. 왜 어른과 초딩이라고 비유했는지 이해 못하시는 분도 많다.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봐도 무방한 쟁쟁한 화가들. 작고하신 그분들은 손만 까딱해도 명화이자 걸작에 예술. 그런 반면 (일부분) 유명인에 권위자와 대가라는데, 그런데 어떻게 입만 열면 펜만 잡으면······! 참말로 못말리는 분야. 예술도 절반은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기지만, 후발주자권 출판계에서 각각 선정한 세계문학 목록을 보자면 할 말을 잃게 됨. 이런 얘기까진 밝히지 않을려고 했는데 이왕 시작한 김에 끝을 보자면, 그런데 자기들 딴에는 진지해. 완전 진지해. 이름 걸고 브랜드 걸고, 환경 생태계의 명운까지 걸고서 진지하다고. 일부러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하겠는데, 그분들은 어찌 그렇게 이상할려고 기를 쓰시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쟤 쓰레기야 쟤 완전 쓰레기라고 뭐 기부천사? 놀고 있네 쟤 완전 쓰레기라고~!> 그건 개그라도 되지. 그런데 진짜 쓰레기를 선정해놓고서 심각해. 진짜 쓰레기만 모아놓고서 그게 쓰레기라고 말도 못해. 멍청해도 어떻게 그처럼 예술적으로 멍청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어. 자기가 그랑프리 트로피를 만들어서 스스로 수여하고 물개박수 치는 꼴. 강박관념과 세계문학이 뭔 상관이라고. 소비제는 상관없다면서 미친 듯 마시면서 발동 걸렸겠다 웨이터 이름은 <막살자>겠다. 뭔들 못해! 응? 뭔들 못하냐고. 유인원과 영장류를 구별도 못해. 무조건 어디 맥주만 미친듯 마시고, 어디 여행만 걸신들린 듯 떠나는 걸로도 모자라, 유인원 1-2-3-4-5... 뭔 뜻인지도 모르면서 사주고 읽어주고 팔아주고. 그 남의 다리 긁기를 성장기 동안, 또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마어마하게 시간 낭비만. 그게 어디 내 인생인가? 태어날 때 좋은 부모를 골라서 못 태어난 건 그렇다 쳐도. 태어나기를 유인원이랄지 원주민으로 태어나 건 그렇다 쳐도, 응? 씨가 중요하냐 밭이 중요하냐. 둘 다 중요한데, 그래도 잘 크면 다행. 그런데 그게 아니라 문제는 살면서도 유인원과 영장류를 구분조차 못해. 씨도 그렇고 밭도 그렇고. 영장류가 아니라 유인원으로 태어났으면 노력해서 영장류가 되어야 하거늘, 쓰레기만 오직 쓰레기만 골라서 일평생 주입하니 이거 원. 그러니까 주입식 교육이네 뭐네 그쪽 시장도 말도 못함. 어버버버버 아부부부부 두손을 비비면서 파리 흉내내듯 응애응애 삐악삐악 꼬끼오꼬꼬댁. 좋은 거 다 놔두고 좀비처럼 내 인생도 타인의 거짓에게 내어주고, 나라도 팔아먹고, 사랑도 변하고. 좋은 거 다 놔두고 왜 하필 앙드레 모루아는 읽지 않고 유인원이 쓴 만화책만 날이면 날마다. 여기서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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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만화책 저자는 독재자를 사랑하고 독재자의 딸마저 좋아함. 그분들이 무조건 싫다 나쁘다 혐오스럽다, 그 말이 아님. 당연히 원리를 따지지 않으면 자칫 오해는 혐오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쩌면 그러기 딱 좋을 수도 있음. 그분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실까, 남미에서 한때 좌파 바람이 불었듯 왜 아시아는 1개 정당 지지와 빨간색 일색일까. 왜냐하면 그분들은 C대─O대─H대─Y대─S대에서 공부하신 석학들과 사고체계 자체가 다른 원주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모르는 게 없는 박사일지라도 사고방식은 원주민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선발주자가 건너가서 중견주자를 세운 반면, 후발주자는 이걸 어쩌나! 중견주자가 넘어와서 후발주자를 세운 게 아니네? 보고 배우고 따라할 수 밖에. 허나 모든 걸 체득한다지만 사고방식의 구동 원리는 바꿀 수 없고, 정치인은 수입할 수 없는 것. 회사에서야 중견주자측 인력을 흡수할 수 있다지만, 후발주자 대다수는 완벽한 원주민인 것. 보들레르가 포를 인정하고 어쩌고 교차와 교류보다 크게 보자면, 선발주자의 원숙함에 비해 중견주자의 문화는 한마디로 젊다 라고 했을 때. 후발주자는 명백한 혼돈 상태. 그러니까 그분들이 그럴 수 밖에 없다. 에스키모, 인디언, 캐나다 원주민과 호주 원주민이야 주류에서 소수로 전향됐다지만. 전락이란 표현은 차치하고. 아시아는 100퍼센트가 그대로 전수됨. 동유럽쪽 100퍼센트에서 평생 살아본 사람들도 똑같다. 같은 반 친구와 사회 친구등 지인이 100퍼센트. 차별이란 걸 TV로 알게 된다. 그런데 동유럽은 유럽일 일부였고, 아시아는 원주민 100%가 갑자기 전환된 셈이다. 에스키모와 인디언 같은 원주민이 비주류로 보호되는 것과 또 다르게. 반만년 역사니 만년 역사니 전통은 그러지만 실질적인 건국은 미국보다 훨씬 짧고. 선발&중견주자에 비해 법 체제와 사회 체계는 젊은 걸 넘어서서 말하자면 아동기. 그 뿐만이 아니다. 3세기 전에 러시아에서 프랑스어를 모르면 쥘 바르베 도르비이 어법으로 치자면 '상놈들의 망상인 평등은 귀족 사이에서만'에 위배되었듯. 전통은 유구한데, 현대적 체계는 늦고! 서구 문명이 정립한 기준을 따라가기 벅찬데, 원주민 문화라는 자존심은 높고! 요즘 유행하는 꼰대 농담처럼 어디에서 태어난 세대의 한계라는 건 너무도 뚜렷하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다. 차별 같은 강박증도 늦었고 원류가 무엇인지도 늦게 알았고. 외세 침략에 내전 겪고 독재니 민주화니 그러다 먹고 살만해지니까, 나는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았는데 입도 뻥끗 안했는데 난 꼰대래. 하오나 사람은 늙을수록 보수적인 꼰대가 되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 세상을 살면서 불의를 잘 참을 줄도 알게 됨. 원래 처음부터 그랬을 수도 있고. 평시니까 가정과 내 인생이 먼저임. 원론적으로 인간은 이기주의자인데, 그런데 시대적으로 비겁자에 뭐에 뭐에. 불리하면 참고 비겁하고, 유리하면 말하고 나서고! 그래서 팔 걷어붙이고 화끈하게 따질려고 했는데, 얼굴이 얼굴이! 자, 국사를 살펴볼까 살펴보지 말까? 거론하지 말자. 다만 현재를 과거에 대입했을 때 배신자는 누가 맡을지 정말 보이지 않는 걸까! 국왕제가 대통령제로 바껴서 국왕 명맥은 종료된 건 그렇다 쳐도, 유럽 왕실들의 친교와 교류들 부러운 것도 아닐 테고, 보수 정치인이 나서서 참 일찍도 뭐 어쩌고. 그때 그 역할이 지금 그 역할, 까지는 아니겠지만 절반쯤 뭐 대충 그림 그려짐. (동사-형용사-부사-전치사는 있는데) 주어가 없는 여자. ~가 듣기로는 야당과 여당을 오갔던 어느 중진의 평판임. 아무리 그래도 콘크리트 지지층에 변심한 애인 부르고, 보수 기반 결집하며 스윙보터 독점하면? 일류에 끼지 못한 웹디자이너처럼 중견이자 중진이 된다. 게다가 어쩌다 밀려나는 건 엉뚱하게도 바른 말 하며 약자를 대변하나,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 않는 기준선을 아시는 분. 정통파 웹디자이너가 아니라, 베끼기로 천재인 웹디자이너가 바로 그 업계의 대표적인 중진이 된 형세다. 기준은 표니까 정 주고 마음 주고 말도 주고, 그 대신 주어는 없고. 물론 일장일단이 있고 잘한 점도 칭찬해야 마땅하나, 아는 사람은 알듯이 일관성과 평판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점. 다만 그런 사연이 소수이기를 바라나 시장을 시장판이라고도 부르듯 정계도 정치판일 수 있으니, 오락산업만 마냥 흐뭇한 입장. (언론사 헤드레인에 따르자면) 옆 동네 망언제조기께서 전-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건 아니건 오십보 백보. 똑같음. 어차피 똑같이 특정 비율이 탄탄한 지지를 받는 건 마찬가지. 개인이니 단체니 옳은 말을 하고 바른 행동을 하는 소수 비율은 따로 있고, 일단은 개인의 행복 먼저 경제 먼저. 어딘 어디의 표밭이니, 정치적 신념을 보아하니 주변분 꼰대는 당의 수장도 못할 평생 당원. 꼰대라는 주제를 코메디와 꽁트에서 애용할 수 밖에 없음. 정치계를 정치판이라 낮춰부르는 습성이야 해당 사항 적격인 분들이 따로 계시겠지만, 오락산업은 그야말로 건드리지 않는 분야가 없다. 양복 입고 점잖은 화법에 능했지 절반은 그분들도 할리퀸 아니냐고. 할리퀸이 본시 하인이자 광대인데. 그런데 왜 그렇게 정치는 어려운지. 일 많이 하고 혜택 많고, 일 적게 하고 혜택 적고. 세금 많이 걷고 복지도 많고, 세금 적게 걷고 자율도가 높고. 차라리 그처럼 간편하면 나은데 그것도 아니고. 정치 전문가들도 일한 만큼은 칭찬과 격려를 받아야 합당하거늘, 오히려 욕을 많이 얻어먹어 배부르고. 모순은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 모순과 혼돈이 짧은 시간에 집중되니 원시인이라는 비유를 할 수 없이 끌어당길 수 밖에 없다. 실상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지 않았으니, 그러니까 원시인이라는 표현이 틀린 말도 아님. 그걸 몰라서들 그러시는지. 그러니까 말이 안 통하고, 혼돈과 급변 때문에 옆을 살피기 힘드니 일찍부터 스무 살부터 꼰대가 듣기로는 있다고 함. 각자 성격도 다르고 정체성도 다른 데다 이기심은 절대 포기해서는 안되니까 그렇다쳐도. 사이코패스를 차별해서도 안되고, 누가 누가 소시오패스인지도 모르겠고. 일단 과정을 보자면 그렇다. 사극에 보면 나라명이 바뀔 때 인적 자원이 썩 빈곤해보이지 않기 마련. 그런데 비정상적으로 나라명이 바뀌면? 인재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니 변절자라도 아쉬울 형편. 사극에서 신분을 사고 현대극에서 신분증도 바꾸는데 변절자가 호인 가면 쓰는 게 어디 어려운 일이겠나. 나라의 말년운과 세기말이 일치했을 때 귀족 피라미드는 뒤바껴서 귀족이 물 반 고기 반처럼 흔했음. 조직에 쫄병은 몇 안되고 별들이 태반인 모습. 그때쯤 현대 올림픽이 다시 시작됐으니까 그건 뭐야. TV로 타임머신 보시면서 뭘 모른 체하는 것도 참 재주네 재주. 쇄국정책에 따라 사회지도층만 가마를 타고 다니던 마차의 시대에서 중간 단계 건너뛰고 갑자기 문명. 그러니 바닥에서 시작해야 하니 사회지도층은 (프랑스에서 단두대행이었던) 변절자가, 체계는 후발주자로부터. 교양과 체계를 선발&중견주자로부터 직수입하는 게 맞는데 그럴 여력이 없었고. 때문에 번역도 선발&중견주자측 자료를 직접 번역하기보다 후발주자쪽 재번역이 주류. (인터넷 번역기로 1번 번역했다가 2번째 번역해도 결과는 좋은데 미세한 차이가 있음). 그게 쌓이면 너와 내가 말이 안 통하게 됨. 보수적인 문화권에서 개방적인 문명을 흡수했다고 원주민의 생각과 의식까지 한꺼번에 개방적으로 바뀌진 않음. 어림 없음. 그 반대로 전통은 자랑스럽고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이 본심. 말이 안 통하고 글을 이상하게 쓰고 희안한 거 좋아하고. 소비제와 문화제와 산업제도까지 비정상적으로 수입. (일부분 업계에 따라) 전문가도 뭘 모르고 베끼기 좋아하고 관행은 어떻고. (물론 원리 얘기 중이니까 장점 얘기는 빼고). 다 그럴 만한 이유가 분명했음. 선심성이니 다양성이니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도 이제 걸음마 단계. 좌우지간 인습은 구시대적이고 개인은 보수적인 반면 체계는 개방적이라니. 게다가 이중인격을 인정하기 싫어함. 심지어 스스로 얼마나 차별적인지도 모름. 더더군다나 나와 남을 따지는 기준도 일관적이기 어려움. 뿐만 아니라 지는 비교를 얼마나 심하게 미워하는지, 어느 정도로 증오하는지 모르진 않을 테고. 그런데 참 이상한 게 뭐냐면 이기는 비교는 미친듯이 좋아하면서, 뭐에 환장하듯 사랑하면서 비교 자체가 싫다고 해. 삐── 모순 발생! 겉과 속이 다름. 솔직하지 못함. (반면 여자친구가 다음 생에도 나랑 사귈 꺼냐, 결혼할 꺼냐 라고 물으면 또 멈칫 생각해서 애인은 토라짐. 솔직해야 하는데 부정직하고, 통 크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지나치게 솔직. 뭔가 바뀜. 뭔가 거꾸로 됨) 그러면서 친구보고 가식적이라고 함. 자길 부러워하지 말라고 함. 그러니까 우리는 진짜 위선자 아닐까 라고 자각하게 됨. 검지를 펴서 내 코끝에 갖다대게됨. 개방적인 선진 사회라는 선발&중견주자에서조차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하기 꺼려하는데. 후발주자에서라면...... 오, 세상에나! 내 친구가 동성애자를 그 얼마나 혐오하는지 아시나요? 말도 못함 말도! (이걸로만 봐도 시간표는 0.5세기전).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선발&중견주자측과 많이 비슷한데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 하나 면밀히 살펴보면 갈길이 멂. 특히, 제일로 중요한 의식부터 그렇다. 쫓아서 따라잡는 재미가 쏠쏠할지 어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현재 여건은 그렇다. 사극에서 현대극으로, 원주민이 현대인으로 스타트랙이야 뭐야 순간 전환 아니냐고. 모든 공은 부하에게 모든 책임은 나에게, 그럽시다 라고 해도 그래프 유형이 아이쿠야~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 법. 도시를 봐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 사회를 보자니 이건 선발주자식이요 정치를 보면 또 중견주자식이네? 절충해서 다듬고 개선하면 그만인데, 삼류 언론에서 모신 논객의 어법을 빌리자면 잡탕이니 뭐니가 된다. 이때 아무렇지 않은 편 빼고는 정확히 둘로 나뉨. 첫째, 틀린 말도 아니다 기분이야 불편하다지만, '잡건─명물─물건이 되는 게 낫지 않을까' 라면서 진공청소기쪽으로 향하는 유형. 둘째, 긴말 필요 있나 뚜껑 열린 헤어드라이기요 뒷목 잡는 커피포트지. 이어가서, 언어 섞어 쓰기를 비롯해 혼돈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님. 그러니 그분들과 말이 안 통할 수 밖에. 도로 사이클 대회니 축구 리그니, 수준 자체가 다르다 보니 말 하나 토시 하나도 똑같이 비례하게 된다. 그런데 잠깐 잠깐 잠깐! ...... 어라 뎀비네? 귀여운 도발─계산된 흥분─섹시한 반론치곤 꽤나 깜찍한데! 어쭈, 참 기특하다고. 아하~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셨구나. 진짜로 그처럼 생각하셨구나. 「뭐, 원주민? 누가, 내가? 뭐라고? 뭐가 어쩌고 어째? 이 양반이 시방......」 쉿! 다른 거 다 놔두고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그건 뭔고 하니, 듣는 원주민께서 기분 나빠하시면 정상이고, 아무렇지 않으면 비정상.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때 '정상'측이라 함은 곧 인디언과 에스키모를 묵시적으로 존중하지 않음을 뜻한다. 따라서 그대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진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는 점. 배고픈 소크라테스이신지 아니면 할 말 많은 허당이신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먼저 아시길!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시라. 자성과 용서와 속죄 그리고 착한 척이 어디 쉽던가! 정말로 쉽나요? 이 건방진 뚱보야 겸손한 척이라도 좀 해라 라는 친구 말을 들었든, 그렇게 겸손해하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라는 조언을 못들었건. 하늘이 보고 있든 아니든. 양의 탈을 쓴 늑대인지 사람의 탈을 쓴 하이에나인지. 그 무언가를 우리 스스로 모를 수는 없는 일. 그런데! 아니다 아니다 나는 에스키모를 좋아하고 인디언과 친하고 싶다, 나를 원주민이라고 칭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분들을 경시하는 마음은 요만큼도 없다? 그건 표면적으로 발성하는 말일 뿐이고. 이마에 확연히 씌여있는데 누굴 속일려고. 거 무슨 양치기 소년도 아니고. 거짓말은 부디 피노키오들끼리. 어찌 됐든 커밍아웃 축하드립니다. 그게 정녕 축하할 일인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훌륭하십니다 그려. 그걸 기어코 못이긴 척 고양이 담 넘어가듯, 슥~하니 얼렁뚱땅 넘어가시는 거 보면. 대단해요 대단하셔. 짝──짝──짝! 이런 이런············ 주제가 도망갔는데 다시 돌아와서. 그렇다고 원리가 찬찬히, 또렷히, 속 시원하게 설명되었다고 해서 또 우르르르? 노노노노노! 어쨌든 원리가 그렇다는 거지 그분들 생각대로 우리가 계몽되어야 한다? 말이 안됨. 말이 통해야 좋은 거지 말이 안 통한다고 좋은 게 아님. 말이 통하지 않는 원리가 그렇구나, 그건 그거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숙녀에게 뭘 좀 안다고 인정 받지 못함. 뭘 좀 알아도 꼰대면 그녀들은 고개를 돌림. 말이 통하든 안 통하든 어르신들끼리도 신부들러리 서기 싫어하심. 노인과 청년. 덕담 시간과 용돈이 비례하지도 않고. 주례사가 주인공도 아니고. 정치인이 잘살기 위해 국민이 있냐, 조명에 물개박수 칠려고 우리가 있냐. 하면 그건 아니니까. 부언 설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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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발주자들이야 회사를 파는 건 공생 관계일 수 있는데, 주식 시장을 봐도 사정은 타임머신. 개-소-닭-돼지처럼 식민지배를 받을 만했구만 그래. 미개한 족속.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각자 판단. 아니면 논리적으로 증명을 하던가. 사실을 놓고 따지던가. 사람은 참는 데 한도가 있고, 기계는 입력된 정보에 따라 출력값을 꺼내놓는 게 할 일. 사람이 끝없이 참으면 비정상에 봉이요 바보임. 아님 속에 담아놓거나 속셈이 따로 있음. 인간은 그렇고 기계는 또 다름.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야 어디로 튈 줄 모른다지만. 그렇지만 '뭐가 나올지 확실한' 자판기는 리모콘 버튼에 따라, 입력된 코딩값에 따라 돌고래의 생각을 인간의 언어로 변환하여 출력하는 게 그 역할. 아하! 우리 주인님께서 바로 이걸 원하시는구나~ 라면서 소망을 충족시키면 그뿐. 못할 게 뭔가, 정녕 원하신다면 기꺼이. 그녀가 듣고 싶은 고백이 무엇인지 진정 몰라서들 그러시나! 안 그랬다간 그럴 때까지, 끝까지 닥닦할 텐데? 들들 볶기인지 환상공장인지는 몰라도 끝도 없는데? 도돌이표와 메아리 뿐이 없다고. 그러니 제발 징징거리는 아마추어처럼 굴지 말라고요. 원하는 결과물을 꺼내놓지 않으면 남탓이요, 기대했던 선물이 아니면 실망? 이게 무슨 환상머신이야 이럴 꺼면 차라리 회전목마가 나아도 백번 낫겠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거울에 비춰지는 내용은 시시때때로 바뀜. 물론 요술 수정구슬이 문제일 수도 있고, 수정구슬에게 주문을 거는 마법사 탓일 수도 있음. 뿐이겠나. 다스베이더니 마귀할멈이니 각자 좋아하는 스타일은 천차만별인데?) 열등하면 세계사에서 패자가 될 수 밖에 없는데 여전해 아직도 여전하다고. 선발&중견주자 영장류가 아닌 후발주자 원숭이들도 미개함에 따라 나뉘니까. 때문에 비둘기가 돌아오고 평평한 세계라지만 식민지-피식민지 경쟁은 여전하다기 보다 다른 방법으로 훨씬 심화되는 처지. 시대의 흐름이 그러한대 지역적 형편을 보아하니, 좀비는 언제 사람이 될까. 정말로 뭘 기대조차 하면 안되는 건가 몰라. 로마제국 전성기에 파리와 런던과 브루셀과 암스테르담등 유럽 전체가 모두 로마의 식민지였고, 북유럽 야만 종족들은 역사적으로 말 그대로 북유럽 야만 종족들이었다지만. 그땐 그때고, 지나간 건 지나간 대로라지만. 어디는 참 늦어도 아직도 현실이 사극이요 민초는 레밍쥐. 현실이 역사책과 박물관으로 흘러가는 동안 비열했던 이방과 야만적 간신을 처단하지도 못했고. 심지어 현재 정치 시계를 봐도 뭐함. 만약 나중 아픈 역사가 반복되어도 정신 못차리기는 마찬가지. 중학교 1학년 수업시간에 어떤 선생님 가라사대, 더 떠들면 사람 대접 안해줍니다! 사람 취급 받기 싫으면 계속 떠드세요. 그거 충분히 경험했으면서도, 간접 경험한 친구들이나 누구나. 당해도 싸다. 잘사는 나라들을 봐 보시라. 진짜로 뭔가가 좋아서 이용하는 거지 선심성 때문에 뭘 어떻게? 어림 없는 소리! 전리품에 전쟁 성 노예에 그거 재차 반복돼도 정신 못차릴 듯. 좀비처럼 너도 나도 원정 출산이니 뭐니. 외국인 전시 비상 탈출 작전 명단에까지 내국인 이름을 올리고 싶어하는데? 못해서 안하는 거지, 할 수만 있다면 절반은 그러고 싶어하는데? 나머지 절반이라고 뭐 얼마나 다르겠나. 뉴스에 또 뭐가 오르락내리락. 정권 바뀔 때마다 사과하겠나, 연례 행사로 사과하겠나. 피해국이 대체 몇 곳이고, 개별 사례가 몇 갠데. 하나둘 저자세 취했다간 그거 뒤치닥거리하다가 날 샌다 날 새. 일도 못하고 레임덕 구경도 못한 채 끌려내려가기 쉽상. 그럼 같은 편에서 퍽이나 좋아하시겠네.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싶어하는 개미들은 그런 거 별로 관심 없다. 민간 단체라면 몰라도 별로는 무슨. 경제 1개만 좋으면 그뿐. 중대 사안이야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면 그만. 오히려 일각에서 세계 제패 못하도록 막은 동기를 사과 받고 싶어하는데? 귀무덤-코무덤에 옆 나라 왕족과 왕비를 처참히 살해한 검을 박물관에 보물처럼 모셔서 전시하는 건 약과. 전범들은 길이길이 떠받들며 숭배 받는데? 뿐인가! 독일은 유대인 학살을 추모하기 위해서 베를린에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지었다. 허나 그건 유럽이니까 가능. 지구본을 반대로 돌려보자. 중국 난징에 있는 난징대학살 기념관에 일본 총리가 방문한 사례는 근 100년 동안 총 4번이 전부다. 그것도 레임덕을 앞둔 현-총리도 아니고 전-총리가. 현-총리는 근 100년 동안 난징대학살 기념관에 과연 몇 번 방문했을까? 0번? 1번? 이미 100년 가까이 됐는데, 우와~ 2번? 아니면 0번? 우와, 말 다 했네 말 다 했어. 심지어 전-총리 거동이 가볍다고 같은 편에서 역적이네 뭐네. 현-총리가 방문하다고 해 봐라, 난리난다 난리나! 세계적으로 잘사는 부자 나라 치고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는 0개다. 단, 예외는 딱 1개. 원래 계획은 잘은 모르겠다만 7개던가 12개던가 그랬고, 1개에 꿈적하지 않았고 결과는 2개로 종료. 그러나 그게 직접적 원인은 아니고. 해상 봉쇄를 당하지 않고 해전에서 선전했다면 개수는 늘어날 수 밖에 없었을 테고. 그와 별개로, 세계 제패 막은 동기를 사과 받고 싶어하는데? 러시아가 세계3차대전을 일으켜 러시아어를 널리 공용어로 만들려고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는데, 그런데 너네들 왜 우리를 막았냐 그거지. 모스크바 방문한 김에 사과해라 사과해라! ('그딴'이니 '그따위'니 라는 감정적 표현은 벤치멤버에 진득히 앉혀놓고) 사과, 그거 그만하자. 그만. 오, 제발! 그렇다고 난징대학살 기념관 딱 1개만 있나? 현재를 살고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건 옳은데, 그렇지만 행정가가 현재의 일을 못하게 된다. 날 샌다 날 새. 다른 사회적 모순도 얼마나 산적해 있는데. 리더니 1인자니 그분들께서 매번 이기적이셨으니 괜히 뉴스에 한번씩 소식이 오르락내리락하면 일반인들만 또 멈칫한다. 신물이 난다. 지긋지긋하다. 미워해선 안되고 안에서는 시끄럽고. 선심성에 다양성에 뭐에 뭐에. 역사적 사실이 꺼림칙하고 과거 1인자의 행적이 미운건데, 망언제조기들은 건재한 걸로도 모자라 줄줄이 대기중이고. 이례적으로 뭘 해도, 늦게라도 뭘 하더라도, 당연한 일 하신 전-총리께서 (같은 편으로부터) 역적 얘기 듣는단 말이다. 내부에서 난리난다. 100년 동안 전례가 증명하지 않냔 말이다. 그러니까 하지 말자. 덮자. 억지로 가뭄에 콩나듯 하는 게 한 건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가짜다. 진짜가 아니다. 중국의 슬픔은 앙금이 안 남았다면 거짓말. 평화의 시대이니 만큼 뭐 당사자 생각이 없진 않을 테고. 선발주자&중견주자와 일부 후발주자는 그 얼마나 비교되냔 말이다. 이 이치가 원주민식이 아니면 대체 뭐가 원주민 방식이란 말인가. 원주민 문화라는 게 그렇다. 원주민 전통에 따라 원주민 인습이라는 그늘에서는 문화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다. <우리를 아시아라고 부르지 마라>라지만 황인종인 걸 어찌 부인하나. 황인종이란 낱말 자체가 무슨 인종차별인가. 황인종을 황인종이라 칭하지 그럼 뭐라고 부르겠나. 홍인종? 살색인종? 거룩한 황인종?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기? 일관되지 않음! 약자를 배려하고 강자에게 옳은 말하기? 그 반대다. 물론 셀수 없는 장점을 빼놓고 사교도 빼놓고. 사회적 및 외교적으로 그러지 않으면 안되는 원리가 그렇다는 거다. 강자에게는 바닥에 바짝 엎드려 끝없이 비굴하고, 약자에게는 영원히 강자로 굴림하고. 정확함─깨끗함─일사불난함─피해주기는 물론 도움 받기도 싫어하고─미안과 죄송을 입에 달고 살지만 약육강식이라는 전제라면 다 소용없고─양보하고─수줍어하고─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고─참고 참고 참고 끝없이 참고 마지막까지 참고. 속마음은 절대로 열지 않고. 같은 계층 끼리는 좋고 차이 나면 바싹 굽히고. 귀족과 무사와 남자에게 유리한 구시대적 관점. 동전의 앞면이 그렇다면 뒷면은 사극에 나오는 완벽한 간신배. 즉, 좋게 말하면 탐정에 염탐꾼 정보원이자 프리메이슨 결사대고, 안 좋게 말하면 사극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간신배. 반도는 열도보다 미천허니까 겉으로 형식은 갖추돼 막대하고. 막말하고. 억지에 망언에 망발은 정치인의 평균이자 유구한 습관으로도 모자라 의무 조항. 그러나 대륙에겐 굽실굽실. 단어 하나 토시 하나까지 조심조심. 예예 굽실굽실 예예 굽실굽실. 남아시아인을 겉으로는 예절로 대하나, 속으로는 러시아 백마들이 좋고. 아메리카 백마들을 애정하고. 아닌가? 아니기를 바람. 하긴 지방을 제압하고 세계를 제패하기 위한 시도, 실패이자 뒷북이라서 탈이었지 빨랐으면 괜찮았을 테고. 보나파르트 나폴레옹과 정치인 전원 일동 전범자 숭배가 그 차이다. 불미스럽지만 내 편이니까 외면하는 인내력, 장점인 동시에 무조건적인 예절로 통함. 그래서 다른 문화권에서 남자가 여자의 핸드백을 들어주는 모습을 로망으로 보기도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거나 도움 받기도 꺼려하고. (이건 만국 공통이다. 좋게 말해서 기분파요 로맨티스트이자 멋쟁이가, 안 좋게 말해서 제멋대로 거꾸로맨에 허풍꾼 난봉꾼일 수 있듯이. 이탈리아 남자가 마마보이에 입만 열명 뻥이요, 영국 남자는 조롱꾼에 재미없고. 독일 남자 괜히 진지하고 더 재미없거나 부모와 남남인 듯 보이고. 프랑스 남자는 어디로 튈 줄 모르고 어쩌고. 아일랜드와 러시아 마초를 알아주고. 수도권쪽 남자가 비교적 더 깍쟁이고. 똑같은 이치다. 다시 이어가서) 먼 과거에 강자였던 대륙적 기질은 그와 달리 북유럽 야만족을 경계했던 로마제국을 더 닮았었다. 주변국들을 아래로 보니까 조공을 받는 정도쯤. 국왕이 일개 별1개 장군한테 3번 절하고 9번 굽히는 사례는 드물었고. 반대로 일개 장수끼리 평화적으로 담판한 결과가 판이했던 일도 있다. 단지 말로써 단지 말뿐으로 소국 전체, 즉 대국의 주 단위 지역만한 땅을 공짜로 이양한 역사도 있다. 좋게 보냐 안 좋게 보냐, 리더에 따라 나뉘겠지만 그걸로 보자면 대인배. 대륙적 기질은 치밀함의 극치인 하와이 진주만 자살 공격같은 비열함의 끝과 달랐다. 원주민 ABC가 다 그 근방에서 자기들끼리 또는 안에서만 티격태격하는 동안 유럽은 전 세계의 90%를 장악했고. 현재도 ABC의 부분적 의식은 심하게 뒤쳐진 옛날 방식이고. 사정이 그렇게 된다. 앞선 칼럼에서 룩셈부르크 원주민은 어색하지 않고, 벨기에 원주민도 어색하지 않은 반면. 그런 반면 왜 유독 ABC 원주민이라고 가정하자면 뭔가 멈칫하나! 왜냐고? 그건 바로 원주민별 문화와 전통과 인습에 따른 특징이 현대 문명과 일부분 상충하기 때문에, 따라서 일관성을 잃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게 불리하면 문화요, 내게 유리하면 서구문명을 취하고. 원주민 전통에 따라 원주민 인습이라는 그늘에서는 문화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다. 그 동물의 세계 같은 다큐멘터리식 문화는 그게 옳고 당연하며 좋은 거니까. 어쩔 수 없다. 딱 거기까지니까. 그게 한계니까. 물론 정치계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예술가니 뭐니 뭐니 다 똑같다. 개인차가 있고 단체에서 옳은 역할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문화의 한계를 벗어나긴 힘들기 때문. 종교계 수장도 참 바보스럽다. 자기가 거기 가고 싶다니. 개탄스럽긴 마찬가지. 역대 1인자들이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기록이 낱낱이 증명하는데, 무슨! 리더 입장에서야 100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나는 털끝 만큼도 왈가왈부하고 싶어하지 않는 게 당연하지. 세계라는 학교의 교장도 없고 교칙도 어찌 보면 있으나마나거든. 우기면 장땡이요 버티면 그만. 더군다나 망언제조기는 언제나 건재. 국민의 지대한 전폭적 지지. 전범자들도 항상 숭배. 그래서 1인자는 크게 보면 임시직인만큼 각각 정치적 성향이 다를 테니, 판례처럼 기록은 다 남을 테니까, 적당히 이따금씩 형식을 갖추는 선에서 절충하면 깔끔. (그런데 이조차도 원주민 인습 때문에 쉽지 않음. 서구적이면 격식으로 멋지게 행사를 치르면 그만인데, 원주민측은 양복만 입었지 원주민식으로 굽히고 감정적으로 서로 불편하니까, 그 때문에 쉽지가 않음) 유럽을 따라하는 건 좋아하지도, 따라할 수도, 그러고 싶지도 않고. 1인자들끼리 얼굴 붉혀봐야 득될 거 없다. 터놓고 말해서 서로 바라는 건 자국의 이익일 뿐이니까, 그러므로 남자의 우정처럼 각자 마이크 들고 각자 딴 얘기하는 모습이 진짜. 이웃이야 리더들끼리 절친해봐야 바라는 건 딴판. 때문에 실제로 동네 이웃처럼 왕래는 가끔이요 얼굴 붉히지 않으면 그게 최선. 지금 만큼 좋은 적이 없었다느니 언제 이래로 최악이라느니, 그래 봐야 행정가들 얘기고. 일반인들은 별로 괘념치 않음. 그러든 어쩌든 항상 비슷. 단, 순진하고 귀가 팔랑팔랑하며 착하신 분들만 괜히 멈칫에 휩쓸릴 뿐. 그런데 바보처럼 한쪽에서는 선심성 선심성, 다양성 다양성, 유인원 유인원, 으쌰으쌰 으쌰으쌰! 절반쯤 정의롭지 않는 게 당연한 문화적 특징을 몰라서들 그럴까. 그런 반면 장점은 패전 후 철수 당일까지 꼼꼼히 일할 거 다 일하고 철수. 요컨대 A측 보수권은 안쪽으로는 건조한 이성이요, 바깥으로는 도덕적인 감성? 일관성이 없다. 내 성향에 부합하니까, 내가 TV에 나와야 하니까, 나 아니면 안되니까. 그래서 국사에서 국민은 개─돼지─소─말 취급 받아도 그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세계사는 정의로워야 한다니. 나 같은 레밍쥐가 진정한 보수요, 나만 유일하게 진정한 잠룡으로써 대권을 품어안을 자격이 있다는 둥. 뻔히 TV로 세계 정세를 보면서 문명사를 알면서 그게 대체 뭐냐고. 난세에는 간신배처럼 외세에 빌붙어 형제-동료와 시민을 사람 대접 안해주며 개─돼지─소─말 취급하더니. 시대가 바껴 먹고 살만해지니까 피라미드 상층부를 꿰차기 위해 서로들 원정경기 생각에 너도 나도 나갈 궁리. (도전 정신은 좋고 행동 반경도 기왕이면 큰 게 좋다지만, 그게 아니라 출세욕에 대한 욕망이 다양한 게 아니라 다 비슷비슷하다는 뜻). 헌법 1조 2항인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건 그냥 무시하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도 무방하다. ~라는 취지로 50년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데. 그건 어쩔 수 없었다니. 그게 말인가 애들 공갈 젖꼭지인가. 지금 세상이 반 세기 전처럼 돌아간다면 참 좋아하시겠네.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고 여론 조성은 쉽고, 1인자가 마음만 먹으면 군림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던 세상. 어느 보수 정치인왈, 언제는 자기편을 향해 어려울 때 숨느라 바쁘더니 조용해지니까 기어나오고 어쩐다더니. 그러더니 그분도 슬슬 발동 걸고 슥~하니 고양이 담 넘어가듯 걸어서 나오시나, 기어서 나오시나. 코메디언이 따로 없음. 얼굴도 코메디언이랑 거의 비슷. 그런데 한쪽은 웃기고 한쪽은 꼰대. 시선을 돌려도 일부분 비슷하다. 뒷북으로 봉기를 일으킨 B 원주민 지식인도 난세에는 칼에 철저히 굴복, 비둘기가 노니는 현세엔 펜은 외면이요 불미스러움은 무조건 방관. 내게 유리하면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고 싶고 조명 비춰주면 기분이 좋은데, 내게 불리하면 개구멍이든 쥐구멍이든 아주 그냥 불야성을 이룬다. 오십보 백보! 한쪽은 (일부측) 비논리, 다른 한쪽은 (문화적으로) 차별은 감내하고 신분과 여러 차이에 따른 불이익도 당연시하는 (부도덕이 아니라) 몰도덕. A에서는 혼돈이 여럿 겹쳐서 으쌰으쌰 우르르르 바쁜 반면, B에서는 삼엄하리만치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비굴하기. 선발&중견주자측 국방장관과 함께 TV에 나오면 문화적으로 바닥에 빠싹 엎드리듯 어른 대 초딩이 됨. 절대로 쇼맨쉽이 아니고 결코 외교적 일관성도 아님. 하오나 약자를 상대할 때는 맹수로써 양보는 없음. 절대 없음. 인근의 후발주자 A-B-C라는 젓가락&한자 문화권이 굽히고 절하는 건 똑같고, 나머지 반틈은 다르고. 그래서 빚어지는 해프닝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님. 또 오락산업이 헤드라인을 얼마나 잘 뽑나. 전체 인터뷰에서 민감한 부분을 그 얼마나 예쁘게 부각시키나. 그런 반면 선발&중견주자는 원주민식과는 다름. 생쥐를 잡을 때도 맹수는 최선을 다하고, 맹수는 모기로부터도 제 몸을 보호할 줄 앎. 문명사의 근간과 기틀을 괜히 죄다 만든 게 아님. 당연히 평소에 빈둥빈둥하지만, 먹잇감이 나타났다 싶으면 뭐가 됐든 최선을 다함. 곧, 한마디로 일관됨! 그런데 A-B-C는 각기 같으면서도 다르네? 화법이 다르고 져주어 이기는 방법도 있고, 정면승부는 여간해서는 피하고 속내를 모르겠고. 도청도 어렵고. 향후 성장세도 장난 아니고. 그래서 선발&중견주자측은 A-B-C를 절대 만만히 보지 않는다.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얘기가 또 제 발로 굴러가는 호박처럼 외출했는데 다시 잡아왔다고 치고. 이어가자면,

  1. 어린이: 찰스 디킨스 소설에 나오듯, 꼬마가 패배를 정중히 인정하는 장면.
  2. 어른1: 피터 드러커의 경영서에 나오듯,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애로점─불평─보완점등을 말하라고 설득. 허심탄회하게 털어놔도 좋다며 꼬심. 야자타임도 거부하지 않겠다면 호언. 살살 슬슬 애쓰고 정성스럽게 꼬드김. 솔직함에 대한 동기 부여와 진실 게임이 필요하다는 합리화로 끝끝내 하급자의 마음을 열었을 때. 그래서 하급자가 솔직함을 꺼내놓으면 과연 상급자는......! 두둥~?
  3. 어른2: 우리 여성분들 잘 아시다시피 남편 및 남자친구가 지는 비교를 어찌 생각하는지. 듣고 듣고 또 듣고. 참다 참다 또 참다. 그러다 언젠가 막판에!
  4. 어른3: 촌닭과 뱁새. 농담을 진담으로 받는 그분들. 순수한 우정, 투박한 자존심, 어설픈 허세. 만족되지 못한 대망.
  5. 여자편은 생략. 왜냐하면 숙녀분 말마따나 그녀들 잘 아시다시피, 다음 생에 절대로 여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시니까.

    어린이가 모두 A 같지는 않겠지만 A 어린이는 어른 1-2-3과 참 많이 비교된다. 아이와 어른이 뒤바뀐 셈이다. 의식과 무의식. 문화의 앞면과 뒷면. 인습의 보수와 진보. 현대 문명과 원주민 문명 A부터 Z까지. 보통은 응애응애─삐악삐악─딸랑딸랑─뿌잉뿌잉 그걸 어른들이 다 구분하시지만. 그렇지만 실상 알고보면 어른은 그리 착하지도, 착한 우리는 그리 어른스럽지도, 어른스러운 성인은 정말로 성숙하긴 어렵다는 것.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현대 문명 체계 대 원주민 관습. 수학-과학-음악-미술-문학-세계사 교과서를 보면, 거의 대부분 원주민 사고체계와 현격히 다르게 발현된 거고. 지는 비교처럼 나는 원주민으로 불리기 싫고. 나는 나이트클럽에서 차별 받기 싫지만, 나는 차별을 아주 좋아하고. 5000년이니 10000년이니 전통을 강조한다지만 꼰대 주제로써 코메디는 완전 좋은데, 어르신과의 대담은 불편하고. 어르신들끼리도 알게 모르게 차별하고. 이때! 그걸 다 알고서 후발주자는 A일 것이냐, 아니면 B-C-D일 것이냐. 한번쯤 찬찬히 생각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다, 모르면 모른다, 면밀히 연구한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게 정녕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푼수미와 야성미의 만남을 모른 체하진 말고. 친구끼리 달릴 땐 달리고. 점잔 빼다 으쌰으쌰, 으쌰으쌰하다 다시 낙담하고. 사랑은 유치하고 우정은 추접스러운 거니까. 뭐 어쨌든 그래서 생각했다 치고. 자, 직장 동료들의 험담을 듣다 듣다 지쳐서 자기가 드디여 총대를 맨다.  「이래서야 쓰겠습니까, 이게 뭡니까? 해도 해도 너무하지 정말. 직원들 원성이 지금 얼마나 들끓고 있는 줄 아십니까? 그러고도 당신이 우리의 리더야? 그래? 관둬. 때려치라고. 이게 뭐야? 이게 정말 뭐냐구요?......」  그런데 아무도 안 말려. 지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일을 열심히 했다고!





    7

    못 사는 사람은 다 못 사는 이유가 있다. 베팅을 아예 못하는 사람이 많고, 베팅감이 없거나, 예금-적금하기도 빠듯한 서민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1원 10원짜리까지 아껴서 아득바득 살아도 형편을 보면... <남자는 한 방이다>가 안타면 좋은데 멀거니 서서 삼구삼진 당할 때. (절레절레)! 커피로 수다 3시간과 양주 3병은 체급이 다르다. 가방 1개와 자동차 1대가 다르듯.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남자 대 여자 얘기든 뭐든 일관성이 관건이다. 입장 바꿔서 둘 다 맡았을 때 나는 과연 똑같을 수 있는가 바로 그점) '남자는 폼이다'와 그이의 허풍에 넘어가서 사랑에 골인했거늘. 그런데 이 남자? 아무튼 사정이 딱한 경우가 참 많다. 그렇다고 사회 체계는 현대인의 기대를 따라가기 벅차다. 주변 친구를 둘러봐도 주식을 사행성 도박꾼처럼 한다. 기술이 남다른 도박사면 모른데, 그게 아니라 도박꾼처럼 한다고. 아무리 속고 당하고 자빠져도, 비정통 과정을 거쳐서 전문가 대열에 오른 중견 웹디자이너처럼 결코 원류를 고집하지 않는단 말이다. 이상하고 이상하며 또 이상한 거만 골라서 산다.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하겠는데. 어떻게 이상한 거만 골라서 산다. 1년 넘게 주식을 보유해본 적도 단 1번도 없다. 그러면서 또 아는 건 안다 박사. 천생 개미는 개미다. 그걸 다 직접 간접으로 깨닫고 나면 이미 갱년기. 그때 모험을 어떻게 하나. 잘사는 쪽은 정말로 뭔가가 좋아서, 필요해서, 괜찮으니까 소비하지 절대로 막 그냥 퍼주는 일은 없다. 절대 없다. 피자배달원이 뭐 헛것을 봤겠나 거짓말을 하겠나. 부자동네 주민들이 애도 아니고 바보도 아닌데? 100년이 될지 더 나중이 될지 전쟁 성 노예, 그거 또 반복돼지 않을 생각은 않고. 어제나 오늘이나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과거 유럽에서 왜 군인이 대표적인 신사 계급이었고, 왜 최근 얼마 전만 해도 예스런 골프장에 여자는 입장 금지였는지 몰라서들 그러시나. 오냐 오냐 그러니까 유인원 최고다 혹성탈출 한번 찍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없어.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고!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초딩한테 상장 줬더니 진짜로 초딩은 입이 귀에 걸리고. (설레설레). 암행어사를 직접 능욕하던 당사자들은 정작 행복한 척 잘살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오히려 그분들을 위해 선인들은 기도하고. 그러니까 내 애 만큼은 이런 (재밌는) 지옥에서 살지 않도록 원정 경기 면허증을 부여해줄려고 그 난리였을 테고. 단지 여행뿐일지라도 막상 세계를 돌아다녔거나, 잔지식이 꽤 되거나, 뭘 좀 알거나, 저쪽 가서 살아본 사람은 그 차이를 잘 안다. 기가 막힌 달력 사진인 어디에 가면 저녁 6시면 거리에 사람이 없네, 이미 5시에 가게 문이 다 닫히네, 우리처럼 밤새 달리지 않네, 치안이 어떻네······ (딱) 딱 재미없는 천국이라고. 그래서 원리를 잘 아는 어른은 뭘 좀 안다. 그런 반면 원래 심보가 나쁘거나 최근 어려운 형편 때문에 불만이 쌓인 사람은 큰 그림을 못본다. 투정하기 바쁜데 어찌 행복론을 논하겠나. 그분들 세계관, 듣지 않는 게 나음. 북유럽과 캐나다니 어디니 세금 얼마나 많이 걷는 줄 알고나 심하게 말씀하실까? 거기서 살아보긴 살아봤을까! 그 체계를 하루 아침에 달성했을까? <할리우드─디즈니─라스베가스>처럼 다이아몬드식 그래프와 세금 많이 걷는 선발주자권처럼 눕힌 타원형 그래프일 것인가. 그게 아니라 모래시계형 성격이라면 연락 피하게 만들고, 피라미드 구조를 지나쳐서 대문자 T 거꾸로식 구조에 살면 금방 좋다가 금새 싫다가, 다시 금방 흥했다가 금새 싫증났다가. 그럴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 체계랄지 경제 같은 개념에서는 아예 불가능. 케이크를 손에 들고 있는 동시에 입에 넣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거 아니면 저거 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둘 다 가지고 싶다? 차라리 편애할 궁녀 얘기를 친구랑 하시는 게 낫지 않을런지. 어쨌든 전통 복장─토속주─전래 동요─사극 복장 그거 다 좋아, 좋다고. 그런 반면 일부는 고전음악과 일반적으로 현-세계의 기준인 범례들 자체가 전통. 그래서 양복이니 관현악이니 그 자체가 전통이지 않은 후발주자권의 언어로 탄생한 작품을 보아하니 차이가 이만저만하지 않음. 뛰어나고 우수하고 훌륭한 점도 물론 많지만, 일장일단을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후발주자권 언어로 쓰인 매체의 결과물에 평생 세뇌당한 어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글을 쓸지. 안 봐도 뻔함. 아니 왜? 이건 좀비나 원숭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인간이면, 당신이 인간이라면 그렇게는 못함. 그렇게는 않함. 아니 어떻게! 가짜가 많고, 치안도 좋고, 금방 친해지고 믿고 속고, 베끼기 좋아하고, 수학 잘하고, 세계 평균과 다양성을 따져봐도 예절도 좋고. 완벽하니 원주민-식. 전형적인 원주민-식. 그게 다 문화와 언어 때문이다. 그 때문이라고. 어려서 들었던 유명한 록 그룹 헤비메탈 그룹 음악만 봐도 세계가 200여개 나라인데 단 몇 개 언어에 집중됐다. 그런데 파리가 손을 비비듯이 병아리 삐악삐악─참새 짹짹─응애응애 꼬끼오꼬꼬댁! 고흐와 피카소야 손만 까딱해도 예술이었던 반면, 후발주자권에서는 입만 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왜 그럴까, 역시 이미 인문교양서에서 다 밝혀냈다. 만약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때 문화와 언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일단 말하기와 듣기가 자연스럽고 청자와 화자가 말이 통하는 줄 알았다가 갑자기 분위기 싸해졌다고 가정을 해 보자. 그럼 <논리와 상식과 교양에 부합하도록 말하느냐>라는 기준에 비추어 선발&중견주자는 비교적 화자측이 잘못했다고 본다. 왜냐, 논리와 상식과 교양에 부합하도록 잘 말하지 않았으니까. 조리있게 설명하지 못했으니까. 납득이 안됐을 테니까 말이다. 반면 후발주자는 비교적 청자측 잘잘못을 따진다. 적당히 이해하고 대충 알아먹어야지, 기분 살피고 분위기 따져서 눈치 까야지 말이야, 어(?), 직감─직관─육감─제7의 감각 그거 놔뒀다 뭐해? 동질감과 이심전심도 모르면 쓰나, 그런 식이다. 화자 중심이냐 청자 중심이냐. 곧 보행자 먼저냐 운전자 우선이냐. 소비자와 판매자, 감상자와 창작자의 입장 차이도 일부분 비슷하다.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인문교양학에서 이르기를 이치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 때문이다. 모든 기준은 A부터 Z까지 선발&중견주자 기준인데, 그런데 후발주자가 일부분 초딩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사고체계가 어떻고 언어의 특징 때문에 수학을 잘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모두 그 때문이다. 형량 같은 것도 선발주자는 약하고, 중견주자는 세고, 다시 후발주자는 약하고. (남미권과 중동권은 잘 모르겠고, 중국 같은 예외는 논외로 치고). 이치상 잔뻔치가 아니라 강뻔치면 범죄율이 낮아야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고. 수상 소감은 물론 드라마에서 모범적으로 제시한 인간의 행동과 감정 노출 방식등 그것마저 따라하느라 인생이 피곤해진다. 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다 하다 하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대신 생각해주고, 인공지능이 대신 선수복을 입는다. 그 때문에 누군가는 자기 육체라는 숙주를 허구 쓰기가 아닌 인문교양학 고민에게 내어주기까지 한다. 안 그럴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뭘 자주 바꾸는 것도 문제다. 교육계도 산업군처럼 선발주자 따라하느라 이상해지지 말고. 괴물될려고 기를 쓰지 말고. 차라리 사극처럼 성실성과 노력과 끈기등의 고유한 가치를 평가하는 시험을 70퍼센트에 인성 20퍼센트 기준 삼는 게 백번 낫다. 전공에 따라 비율은 늘였다 줄였다 하면 될 테고. 반세기를 살아도 자기 개성도 모르고, 일생을 속고 또 속고, 살면서 내내 진짜로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를 인생이 어쩌면 태반일 수도 있는데. 그런데! <A: 세계3대 바이올린 주니어 콩쿨 입상 경력, B: 수박 겉 핥기처럼 100개 분야에 도전해서 입상 경력>. A가 아니라 B로 좋게 좋게 진흙 속 진주를 찾으시겠다? 선발주자권에서야 인습과 문화적으로 <악마론에 대해 자유롭게 논하시오, 열정마와 타락마의 우정을 상상해보자> 그런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걸 또 겉표면만 따라하시겠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후발주자로써의 잇점을 살리는 게 낫다. 제발 그분들 괴롭히지 말고 자라나는 꿈나무 기 살려주자. 안 그래도 사회에 나오면 사랑에 속고, 사기를 당할 수도 있으며, 기 빨리거나 인기 없거나. 그렇게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말이다. 보이는 게 그렇고 들리는 풍문은 또 어떻고. 칼럼을 쓰지 않을 수 없으니, 연애소설은 대체 언제 쓴단 말인가. 물론 산적한 문제가 많으니 지구 반대쪽 업계 동료의 말처럼 쓸거리가 많다는 것. 어떻게 보면 일복이고 달리 보면 일중독. 말하자면 속셈 간파하고 의중 꿰뚫어보는 것처럼 각각의 다양한 원주민 방식도 다 나름 장점과 일리가 있다. 다만 토속 술잔 모양과 분재와 전통이 100개 200가지라면 익히 들었던 록음악은 단 몇 가지고. 고전음악이 헤비메탈로, 오페라가 뮤지컬로 넘어갔듯이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문명의 기준은 알파벳인 것. 따라서 비알파벳 원주민 세상은 모순이 발생해야 정상인 것. 선발&중견주자측에서 문명의 체계를 다 깔아놨고 시행착오도 다 했으니, 그에 따른 잇점을 누리는 게 있으면 현대식 체계와 다소 이질적인 사고방식의 의한 애로사항도 나름 풀어야 할 숙제인 것.





    8

    문화 차이 때문에 빚어지는 차이는 애호하는 술도 똑같다. 선발─중견─후발주자가 공통적으로 선호하는 술은 맥주. 각자 선호하는 스포츠가 약간씩 다르지만 가장 공통적인 건 축구이듯.
    (잠깐만 스포츠? 자국 스포츠에 대한 조롱꾼의 투정도 경제성 먼저 생각해서 따져야 함. 전체 스포츠의 1년 총매출과 순이익은 정해져 있고, 어차피 가령 1-2-3-4-5위 종목 간에 누가 더 가져가고 덜 가져가냐 차이. 수익 구조는 한계가 있는데, 무턱대고 전체 스포츠 종목들의 1년 총매출과 순이익이 불가사의하도록 자동적으로 늘어날 수는 없는 법. 카테고리의 법칙 즉 선도브랜드는 자기 브랜드가 아니라 해당 카테고리를 홍보해야 한다는 '알 리스'식 브랜딩 불변의 법칙에 근거하자면, 따라서 팬들의 불만 상당량은 단지 소음에 지나지 않게 됨. 스포츠 잔소리는 여기까지).
    그런데 비교적 선발주자와 중견&후발주자가 확연히 다른 점은, 선발주자권이 월등히 포도주를 선호한다는 점. 남유럽권에서 1년간 1인당 포도주를 10병 마실 때 중견&후발주자권은 딱 1병 마심. 대충 말한 거지만 전혀 틀린 얘기가 아님. 그래프를 보자면 지금은 그나마 양반. 0.5세기 전에는 반올림하면 100 대 1이었음. 남유럽의 올리브유에 대한 애정처럼, 남유럽의 포도주에 대한 애호는 압도적으로 세계 최고급인 것. 게르만권&섬나라는 맥주를 또 남미권은 혼합주가 잘 팔리는 점도 있고. 곧 (음주 취향에 있어서) 중견&후발주자가 선발주자와 가장 다른 점은 <모 아니면 도>라는 점. 맥주처럼 도수가 아예 낮거나 아님 토속주거나, 또는 독주거나 혼합주거나. 왜 선발주자가 유독 포도주를 애정하는지는 고전을 이해하고, 교양을 알며, 상식에 밝으면 왜 그런지 모를 수 없을 테고. 사는 정도 즉 지갑이 두껍냐 라는 기준에 따라 약간 차이는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그렇다. 





    9

    교양학이라는 과목은 없다. 아니 있나? 있으면 첫문장이 틀린 거고. 어차피 처녀는 아줌마된다. ~라는 말은 농담이고. 널 보면 내 전성기 시절을 보는 듯해, 너의 미래는 나다─나는 너의 미래다! ~라는 유머가 어찌 보면 재밌는 악담일 수도 있으니 넘어가고. 좌우지간 교양학에서 밝혀냈는지 아닌지 애매한, 모순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이치를 더 파고들어가 보자.
    무의식으로 느끼고, 의식적으로 지각한 다음, 복합적인 기분을 논리적으로 해석하기. 사랑스런 노-연인을 보며 추접스럽게 뭐하는 짓이냐며 깎아내리거나, 아름답다며 역성드는 사고의 전 과정. 사고방식과 사고체계란 오른손잡이-왼손잡이처럼 타고나는 것이다. 피부색-눈동자 색과 외모처럼 타고나는 것이다. 취향도 그렇고 안목도 그렇다. 억지로 노력해서 대충이나마 양손잡이가 될 수는 있다. 그런데 전문가 기준으로 완벽한 양손잡이는 백만 명 중에 1명이 채 안된다. 개헤엄이 아니라 영법 수영. 즉 자유형을 할 때 숨을 오른쪽으로 쉴 건가 왼쪽으로 쉴 건가. 주시안이 있는 쪽으로 쉬는 게 좋다는 건 전문가의 추천 사항. 그럼 내 주시안은 어느 쪽인가?

  1. 양손을 앞으로 나란히 뻗어 두손을 겹친 다음, 조그만 하트 모양 틈을 만듬.
  2. 전방에 있는 인형을 하트 안에 쏙 넣기. 다음에 그 하트 안의 인형을 보기.
  3. 한쪽씩 눈을 찡그려트려서 한쪽 눈으로만 보기. 

    1-2-3의 결과에 따라 하트 안에 인형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게 주시안이다. 인형이 보이면 주이안이고, 안 보이면 비주시안. 로젠바하법이니 뭐니 안과 전공의 가운데 그걸 모르는 사람은 0명이라고 보면 된다. 오른쪽 눈이 주시안이면 오른눈잡이, 왼쪽 눈이 주시안이면 왼눈잡이. 오른눈잡이는 주로 오른손잡이, 왼눈잡이는 거의 왼손잡이. 일단은 그렇고 나중 내 맘대로 바꿀 수 있고. 그러나! 특히, 주시안은 사고방식처럼 좀체 바뀌지 않고. 손발의 우세성은 대뇌에 따르고 나중 의지로 바꿀 수 있는 반면, 눈의 우세성은 3세 이전에 결정되며 평생 지속. (오차는 통과). 대충 8 대 2로 마술사와 야한 복장의 조수 같은 관계다. 사고방식도 똑같다. 단지 인문교양학의 보고에 따르자면 그렇다고 한다. (민속음악과 전통복장을 전공하는 건 그것대로 좋고,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에 따른 장점도 파다하다). 인문교양학에서 이르기를 1개를 빠삭하게 아는 게 먼저겠지만, 그렇지만 언어학과 비교문학 같은 학문처럼 <선발-중견-후발주자> 그렇게 멀찍이 떨어진 2개체 이상의 학문이랄지 문화를 공부하는 게 어떤 면에서 유리하다고 한다. (글씨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세계 대부분 나라 VS 글씨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문화권이던. 또는 첫째─인지체계가 일부 확연히 다름과 더불어 둘째─왼손잡이와 여자에게 비교적 훨씬 너그로웠던 서양 대 동양권이건. 선발─중견─후발주자의 차이 가운데 대표적인 건 그거다. 여자와 소수에게 얼마나 포용적이었냐, 새로움을 창시하고 낯선 문물을 받아들이는 시행착오가 길었냐 짧았냐.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건, 아르키메데스의 깨달음 같은 새로움은 그 한계점이라는 틀을 깨지 않고서는 웬만해선 불가능하기 때문. 고로 후발주자권에서 태어난 것 자체만으로도 동전의 앞면은 모종의 혼란스러움이라는 숙명이요, 뒷면은 시작부터 넓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인 것. 십자군이 유럽 르네상스의 시발점이 되었듯 서양 대 동양의 접촉이 그 예시다. 행동은 인생의 직접세요 사랑은 인생의 간접세인 것처럼. 그건 딴 얘긴가? 아니다. 딴 얘기 아니다. A와 B의 번개불 튀는 융합이, 싸구려 뽄드 같은 접촉이 개인이면 우정과 사랑이요 넓게는 세계사니까. 그 말이 그 말). 그와 같은 다층적─의도적─고의적인 노력 여하에 따라 '숲과 원리가 보이냐 안 보이냐' 라고 일컫는다. 꽉 막히고 속좁고 말 안 통해서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일도 그것과 일부 관련이 있다. 촌년의 사랑도 그렇고 촌닭의 우정도 똑같다. 촌스러운 취향이란 게 그렇다. 한계 때문에 전과하느냐, 한계라는 기준선 자체를 넓히느냐 즉 틀을 바꾸느냐. 그에 달렸다. 그에 달렸다고. 7부 리그 어항에서 탈출해 태평양 1부 리그로 진출하느냐, 부르느냐 도전하느냐. 일단 시작점이 전통복장이라고 한다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며 무채색을 선호하고 굽히는 문화권에서 태어났다? 살면서 문화적 모순점을 겪을 각오를 해야 한다. 미리 겁먹지는 않아도 되고. 오락산업은 튄다마를 중용하고, 현대 문명의 질서는 속담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바로, 시끄러운 바퀴가 기름을 먹는다. 곧, 우는 애 젖준다. 그래서 후발주자권에서 태어난 친구들은 아동기부터 사춘기를 거치면서 고민한다. 왜냐하면 속으로는 <잘난 척하는 놈이 (때때로) 왕따당한다>를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 왜냐하면 여자 세계에서 <잘난 척 이쁜 척 겸손한 척, 나대고 나서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다, 여기 참견하고 저기와 친한 척> 해도 되는 여자와 안되는 여자는 완벽하리만치 딱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 불문율을 모르는 여자는 뭘 모르는 여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아는 척? 쳇! 재수없어> 속으로 그런 생각해 봤기 때문. 왜냐하면 <이쁜 척하는 쨰 완전 꼴 보기 싫다> 라는 느낌 한번도 안해 보면 비정상이니까. 왜냐하면 같은 반에서 왠지 모르게 아무 이유없이 밉상인 친구가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 왜냐하면 다 차려진 잔칫상에 숟가락 올리는 것도 필요하니까. <인생이란 왜 적극적이어야 하는가>만 알아서는 안되니까. 왜냐하면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고, 타율이 뭔지를 알아야 하니까.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그걸 어찌 모르겠나. 5살 꼬마도 속이 깊다. <소 뒷걸음질치다 쥐잡는>식으로 대어를 낚았다? 인간의 본능은 겸손과 어깨 위 햄버거와 '타인이 날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을 얼굴 표정에 적절히 배분시킨다. 그래서 축구팬들 사이에서 허당이 얻어걸린 골을 넣고서 오바하는 모습을 보면, '암 걸린 줄 알았다'며 싫어한다. 어쨌든 후발주자권에서 태어난 친구들은 아동기부터 사춘기를 거치면서 고민한다. 튀지 않아야 한다─소란피우지 말자─타인을 배려하자─조용조용하게 묻어가자─험담을 못해서 안하는 게 아니라 해선 안되기 때문에 안한다, 그게 기본이니까. 세계 최고의 치안은 인구밀도랄지 체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문화라는 이유가 첫 번째다. 원주민의 인습이라는 첫 번째 까닭에 따른 장점, 물론 동전의 양면처럼 단점도 있다. 그게 뭐냐? 굽히고, 나이를 따지고, 혈연-지연-학연 따져서 끼리끼리 노는 원주민 문화다. 귀족인지 아닌지 아버지는 뭐하시는지. 곧 타고 난 건 주시안처럼 오른손잡이처럼 원주민식이었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의 체계는 원주민식이 아니네? 그러네? 뭐야 이거! 마음 속의 혼란과 사회적 혼돈은 그 때문에 빚어진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까지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세상은 제일 위에 '하는 놈'이 있는 식이다. 누구도 믿지 말라는 게 식상한 영화 대사가 아니란 거다. 그래서 바깥에서 그걸 보면 좋게 말하면 역동적이고, 안 좋게 말하면 무질서하게 또는 깍쟁이처럼 보일 수도 있다. 동유럽-서유럽-남유럽-북유럽 그리고 어중간한 중부 유럽의 차이처럼 말이다. 그래서 캐나다 원주민이 멀리 떨어진 A-B-C에서 4~7년씩 모두 살아보면 참으로 많은 걸 느끼게 된다. 북유럽이라고 다 같은 북유럽이 아니다. 영화 혹성탈출이 뭐겠나. 현재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인디언을 떠올려보면 된다. 만약에! 첫째 인디언이 인구가 많았고, 둘째 인디언이 문명에 일찍 눈을 떴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정확한 예시가 무엇인가는 굳이 궁금해하지 않아도 된다. 에스키모 원주민이 듣기에 퍽 기분 나쁠지라도 어디까지나 사실일 뿐인데? 원리가 그런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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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여기서 끝이면 얼마나 좋겠나. <어디 원주민>이란 얘길 듣고 내 기분이 언짢으면 적게 잡아도 일단 2가지 우를 자인하는 것이다.
    첫째, 자격지심이자 이타성이 쏙 빠진 이기심. 자존심 훼손. 열등감 인정. 비교 자체가 싫다는 모순.
    둘째, 진짜로 인디언과 정말로 에스키모 원주민을 존대하지 않는 내 본능.
    아니라면 거짓말쟁이와 위선자와 욕심쟁이들의 반론은 환영하고. 판도라의 상자는 희망이라도 있었지. 그런데 원주민 정신은...! 선발주자들의 진단과 분석과 예언은 결코 틀리지도 져열하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향후 그럴 것이다. 원주민들끼리 어떻게 다를지. 복수할지 지구를 구할지. 또는 우주여행을 할지. 그도 아니면 여전히 또 영원히 세계관마저 원주민식을 고집할지. 장래 지켜보는 재미가 꽤나 쏠쏠할 테고. 세계 제패는 흔히 알듯 총칼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복수도 진짜만 있는 거도 아니고. 용서도 꼭 상대가 필요하지도 않다. 셀피처럼 물개박수의 수혜자는 남이 아니라 나일 수도 있고. 대체로 영원한 건 없고, 시간 지나서 보면 대부분 뻥이다. 중요한 건 뉴튼의 사과 같은 깨달음이고. 피자배달원 말마따나 사는 형편과 어떤 형식은 대체로 비례한다. 그러나 독자께서 잘 아시다시피 부자라고 꼭 착하고, 재밌으며, 이타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지킬 게 많으면 진솔하기 어렵고 터놓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내 사생활이 까발려져서 속마음을 들켜서 좋을 게 뭐 있겠나. 그 남자를 어느 정도 좋아하는 숙녀의 마음이 들키는 것과 그건 또 다른 문제니까. 잃을 게 없는 무명이 깜짝 승리를 일군 사례가 그 얼마나 많더냐. 가까운 친구만 봐도 어떤가. 사랑이 싹트는 시절에야 멋져보였다지만 나중 보니 꽃피는 봄날 단지 개꿈을 꾼 추억일지도 모른다는 점. 아름다운 사랑이 행복한 가정으로 승화하여 보람찬 열매를 맺길 바라지만 인생이란 내 마음 같기가 어려운 법. 그 누가 모르겠나. 먼저 가세요─고마워요─미안해요─좋아해요─죄송해요─After YOU! 현재는 관습이자 빈말이고 나중 지나서 보면 대체로 뻥이다. 아닌 거 빼고는 말이다. 어제와 오늘의 날씨가 다르듯 오늘 하루 내 기분이 일관되기조차 어디 쉽던가.
    (애인의) 과거는 과거일 뿐. 지나간 일은 지나간대로. 단, 세계적인 역사학자가 말하기를 역사는 뭐라고 했다더라? 그야 어떻든 인간은, 뭔가를 한번 알고 나면 알기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법. 타임머신은 단지 영화일 뿐. 역사가 반복될지 어쩔런지는 몰라도 인간이 금수가 아닌 이상, 상식을 알아도 무식할 수 있다. 얼마든지! <겉과 속, 상스럽냐 예스럽냐>. 경우의 수를 단순하게만 잡아도 일단 4가지.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진국이더라, 남자 잘 만난 줄 아시라. 누가 누가 그런 칭찬을 들을지 어른들은 모를 수 없다. 옆사람이 자긴 사이코패스라고 고백하진 않겠으나 내쪽에서 가만 보아하니...! 뭐가 보이시나요? 겉꾸밈에 감탄하시나 속마음에 아차하신가. 아니면 소파에 자빠져 오랫만에 편안히 휴식을 취할려고 TV를 켰는데. 그런데! 유독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못생겼는데 잘난 척 멍청한데 아는 척 나대는 걸로도 모자라 뻔뻔한 데다 (속된 말로) 단춧구멍이 첫화면에? 그분들도 선량하고 호인에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타인을 즐겁게 해줄 능력도 출중하시나, 그러나 왜 하필! (노인대학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학예회인 줄 알고 귀여운 애들 좀 보자 라고 했더니 (절레절레). 리모콘 누르니 오스트랄로피테쿠스요, TV 끄고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켰더니 네안데르탈인. 컬러 TV면 화사하기라도 하지. 동물원에 놀러갔더니 아 글쎄, 곰돌이랑 앵무새랑 기린이랑 코끼리는 다 어디다 감췄어? 보이는 거라곤... (절레절레)! 그렇다고 울컥해서 동네 바에라도 가 봐. <여-바텐더 없습니다. 바텐더 남자입니다?> 이런 젠장! (늬까짓 게 뭔데? 넌 뭐 얼마나... 일단 흐름상 그 부분은 생략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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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기 때 쌓은 잔지식은 그렇다 치고. 그러다 갑자기 난 어른! 화자 중심이냐 청자 중심이냐. 곧 보행자 먼저냐 운전자 우선이냐. 소비자와 판매자. 어른이 되어 개인도 혼란스럽고 사회도 벅찬 게 현실이다. 100명이 감기약을 먹고 1명이 탈나서 소송 제기, 판결 땅─땅─땅, 1명 뿐만 아니라 탈났던 비율까지도 배상! ~라는 알파벳 이치. 후발주자 원주민 문화권에서는 그조차도 여러가지로 나뉘게 된다. 쉬쉬하느냐, 적당히 타협하느냐, 유별나게 튀느냐, 그도 아니면 노이즈 마케팅이냐. 사회적 합의와 토론이 미비한 건 아닐까, 문화적 소양은 충분할까. 공장에서 일해도 행복하고, 아르바이트만 해서도 충분히 먹고 살만 하느냐. 고민은 깊어진다. 사랑을 예로 들 수도 있다. 처음 만날 때 남녀가 더티러브로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애초에 처음부터 영원한 사랑이라는 합의 없이, 어? 플라토닉이라는 전제와 손 잡고 만인이 보란듯 자랑스러운 데이트와 공개적인 과정 없이, 어? 그렇게 찐한 사랑으로 만났다고. 비공식적인 남몰래 사랑일 수도 있고, 일터에서 오래 알게 되니 그럭저럭 정들었을 수도 있고. 사랑과 우정 사이처럼, 플라토닉보다 육체적 사랑 때문에 서로 좋아했거든. 그러다 중간에 여자가 그걸 공식적인 연인─형식적인 부부─아름다운 사랑으로 바꾸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도 있다. 어머머 이 남자 꽤 괜찮네? 벌써 정이 깊게 들어버렸네? 그래도 중간에 남자가 발을 빼면 이별이 보통인데, 만약 법으로 따지자 그러면? 시작은 더티러브였는데 셋으로 나뉘게 된다. (넷 이상은 생략)
    첫째, 무고죄. (어벤져스급 변호인단에 따라 동전은 뒤집어질 가망성이 아예 없진 않고)
    둘째, 팜므 파탈─요부─꽃뱀의 '바지가랭이 잡고 늘어지기 작전'에 휘말려 몇 년 법정에 출두하다 유명인은 낙마. 전업. 이사. 이혼? 쉿!
    셋째, 평화로운 가정의 몰락. (혼인 전이라면 사귀던 진짜 애인은 떠나고, 만약 가정이 있다면 파탄에 따라 아동과 십대는 결손 가정에서 자라고)
    (남녀의 사랑에서 악역이 여자인 예는 예만 그렇고. 치정 범죄에서 남자측 잘못인 비율을 우리가 모르진 않고. 영화에 보면 연쇄살인마의 90%는 백인. 법관의 70%는 장남. 100M 스프린터의 70%는 막내. 명마라토너 80%는 흑인. 촌닭&뱁새는 장남 비율이 우세하고,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는 비-장남측 통계가 많나는 모르겠고. 사실과 교양학을 모르지 않는 우리. 아무튼 일방적인 예시에 대한 변호는 여기까지만)
    어찌 됐든 회색도시에서 자라서 어느 날 갑자기 어른. 세상도 녹록치 않고 나이값도 쉬운 게 아니다. 산적한 과제가 결코 만만치 않다. 10명이 감기약을 먹었는데 1명이 탈나서 그 문제가 일파만파 번질 때. 소비제를 만드는 생산자측에 유리하냐, 소비자측 권익에 불리하냐. 그게 다 이 때문이다. <원주민 문화의 선천적인 사고방식> 대 <알파벳 시스템>! 전자와 후자의 불협화음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칼럼 <선발주자-후발주자 방식의 또 다른 차이>에 따라 회사를 만들기 어렵게 하고 산업군 진입 장벽을 높일 것인가. 아니면 보행자 우선이기 때문에 운전자를 불편하기 만들 것인가. 선택은 가능하다. 불가능한 게 아니라 가능하다고. 번갯불에 콩 구워먹을 수도 있고, 땅을 팠는데 진짜로 금이나 돈이 나올 수도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진리는 차츰차츰 영차영차,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개혁과 진보와 혁신은 쉬운 게 아니니만큼, 대가가 크니만큼 개선하고 발전하기가 무순위. 그런데 차츰차츰과 영차영차는 손발이 맞아야 한다. 합심해야 가능하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튈 때는 튀고, 개성이나 정체성을 따질 게 아니라 지킬 건 지키고. 실행 전에 깨달음이 우선이다. 모로 가도 로마만 가면 된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로마로 갔을 때 얘기. 잘못된 코스로 빨리 갔다가, 중간에 코스를 수정하고 어쩔려면 대공사가 된다. 토끼와 거북이 같은 우화가 그것이다. 차츰차츰 희망찬 미래이자 밝은 내일로 나아가려면, 그럴려면 선발주자측에서 중견주자를 먼 과거─가까운 과거─현재 어떻게 봤는지-보는지를 알아야 한다. 대중과학잡지와 순수과학잡지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물론 몰라도 무탈하지만 알면 좋다는 뜻이다. 무관심해도 괜찮다만 모르면 안 그래도 속좁은 남자 더 옹졸해질지도 몰라서 하는 말. 몰라도 행복하고 몰라도 재밌는 인생도 많지만, 이왕이면 급이 다른 행복과 사랑이기를. 자빠질 때 자빠지더라도 소파에 자빠지기를. 속아도 '속는 셈 치고'가 전제되며 진짜로 못이긴 척 속아 넘어가도 좋은 상대에게 속기를. 모르면 진짜 권위자가 아니라 그냥 수다쟁이요, 모르면 최고의 권위자가 아니라 잔소리꾼이 될 것이다. 동심과 상상력과 선행 같은 아이의 장점이 뚜렷하듯, 어른은 그로써 어른스러워지는 것이다. 닭과 달걀 정도는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왜 고전음악과 그 무언가가 신기하리만치 비례하는지를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정물화 같은 고전미술처럼 그 완벽한 황금비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다─대충 살자─막살자>가 각기 다르듯. 여성잡지 1과 2의 차이처럼 말이다.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듯, 여자가 남자의 도톰한 목소리에 환장하지 않으면 그건 여자가 아닌 걸 잘 알 듯이. 정말로 여자가 남자의 도톰한 목소리에 꺼뻑 반하지 않으면 그건 여자가 아니다. 극미한 황홀감을 느끼지 않는 숙녀가 아마도 있을까? 있긴 있겠지만 어쩌면 없을 것이다. 청초한 숙녀라고 해 봐야 어차피 사진발. 정면으로 보고 가까이서 보고 찬찬히 보고, 사귀어 보고 화장 지우면 다 비슷비슷. 화장술 때문인지는 모르겠다만 정말로 놀랍도록 다 비슷비슷하다. 언뜻 봤을 때 이쁘냐, 먼발치서 봤을 때만 예쁘냐. 벌레 먹은 사과라도 마다하지 않느냐. 그와 별개로 한눈에 봐도 탁월한 미남! 화장발─조명발─알짱알짱 꼬리 흔들기처럼 그냥 단순한 수트빨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대번에 확~ 그냥 눈에 띄는 미남을 가까이서 봤을 때. 낭군님 팔짱을 끼고 있든 아니든 숙녀가 홀딱 빠져들지 않으면 그건 여자가 아니다. 아니지 완전 아니지. 그게 어디 여잔가? 어? 그건 덜렁덜렁 고추 달린 남자다. 그건 여자가 아니라 곰이다. 미련곰탱이 곰이나 마찬가지다. 말이 좀 심했다만 어쨌든, 물론 장기적 관점이 배제된 채 성급한 따라하기의 폐해도 없을 수 없다. 회사 치고 MICROSOFT의 윈도우 운영체제를 이용하지 않고 소비제를 만드는 회사는 없다고 봐도 되는데─애플 제품도 윈도우 운영체제 아니면 회사는 방학한다─어쨌든 회사 아마존 같은 공룡 대 개인. 공룡과 개인 모두 윈윈, 이상은 그거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영세 업체─자영업자 같은 중간 영역, 우버처럼 생태계에 새롭게 등장한 신종 유형 같은 중위 영역이 곤혹스러울 수 있다는 것. 현실과 이상의 괴리다. 현실에서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그래서 산업계의 히든 챔피언은 선발주자측에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 어른들끼리 모순의 발생 이치를 따져보는 건 이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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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뭐냐, 십대들이다. 십대들이라고! 권위자가 그렇게 말하는데 내 소심한 주관에, 책 읽기 공부하기 싫은 핑계도 반틈인데 뭐라고 변명하겠나. 할 말이라곤 공부 그거 어차피 돈 많이 벌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그 말 밖에는, 아 또 있다. 캐면 계속 나오지만 그건 논외로 치고. 아무튼 일종의 한계는 태생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따라서 우리 어른들 일부는 책이라면 열심히 피해가는 것이다. 마치 최선을 다해서 호박이 어딘가에 줄을 서듯 말이다. 잔지식의 왕국만으로 충분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환상은 TV, NC, 게임, 스포츠, 취미, 어설픈 사랑의 3박자, 놀기, 으쌰으쌰 등등 그렇게나 다양하고 화사한데? 신나는 반짝임과 기발한 소비제는 널리고 널렸는데? 뭐하러 교복 벗은지가 언젠데 아직도 끙끙 앓으면서 책과 씨름하겠나. 아니 그렇소? 물론 이치가 그렇다라... 그렇다면 난 타고난 모발색에 따른 한계가 있으니 뭐 어쩌겠네. 그처럼 뭘 해도 안된다 라는 개그와 꽁트로. 어차피 임계치가 있으니 힘들다는 말이구만 라면서 퉁명스런 표정으로. 그런 한편, 학벌이랄지 기존 학파의 틀을 뛰어넘으면 되는 것 아닐까? 도전이 다른 게 아니니까. 그처럼 몰랐던 원리를 각자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건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왜 나는 영화에 나오는 슈퍼맨-영웅-엑스맨 같은 재능이 없을까. 허나 정상이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친구와 농담할 때 하는 얘기로 이중인격도 있다. 놀라운 특수 능력은 없더라도 그 정도는 누구나 있다. 가령, 이중인격에서 그 2개 인격의 비율만 달리 설정해도 영화처럼 수많은 인격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실상 우리는 누구나 엄마를 닮은 성정도 있고 아빠를 쏙 빼닮은 습성도 지녔다. 정말로 그렇지 않은가. 작은 행복에 만족하냐 어설픈 사랑의 3박자로도 불만족하냐. 모두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왜 인간의 두뇌를 5% 미만만 쓰니 어쩌니 그런 이론 같을 듯한 지식을 우리가 알고 있을까? 다름 아닌 인체의 신비 때문이다. 전혀 범상치 않은 일반인도, 쉽진 않겠지만 가능할 테니까. 도전해서 실패하면 재도전으로 그 패배를 합리화하거나, 아니면 실패의 원인을 내 바깥으로 돌리느냐. 이성으로 원인을 실측하느냐, 아님 환경만 탓할 텐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중학교 때 하교길에 학교 앞 공원에서 스케이트보드에 생애 처음 올라 타던 장면이 기억난다. 당연히 발을 올리자마자, 뒤로 꽈당! 주위 친구들 다 웃고. 영화 <빽 투 더 퓨터>처럼 대충 어떻게 될 줄 알았겠지. 스케이트-롤러스케이트-인라인스케이트. 마찬가지다. 볼링장에서 내 친구는 백스윙하다가 볼링공을 뒤에 앉은 내 쪽으로 던졌다. 딴 친구도 평생 골프채를 구경도 못해봤다가 자기 형 따라서 골프장에 가서 처음 골프선수를 흉내낸 얘기를 해준 적이 있다. TV에서 많이 봤으니까 대충 될 줄 알았단다. 그런데 자기 형 스윙은 연습의 결과고, 자긴 태어나서 처음 골프채를 잡자마자 골프장. 그러니 골프 스윙이 아니라 야구스윙. 몇 번을 휘둘러도 한 번은 허공, 한 번은 삑사리. 십대에 인생의 평생 직업을 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중 의도처럼 흘러갈지 어쩔지 미래는 누구도 모른다. 실제로 어른이 되면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생각치도 못했던 장르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갔다 왔다 다시 갔다 왔다, 3번째 결혼식까지 옛 친구를 부르기엔 너무 멋쩍더라, 내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더라. 그럴 수도 있다. 거울을 보면서 내가 엑스맨일까? 그럴 수는 없고. 다만 이중인격으로 몇 가지 가능성이 파생될지는 공상해도 되고. 각자 기억나는 사연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시작이 미약함은 당연한 것. 투정해도 자유고 불평해도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 할지는 모두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씨가 중요하냐 밭이 중요하냐,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여기서부터는 뻔한 얘기니 생략하고.
    이를 테면 과학과 스포츠와 조류학 같은 분야는 이처럼 전혀 다른 시각이 발생할 가능성 자체가 현저히 낫다. 보는 시각에 따라 설명이 확연히 다를 소지가 월등히 적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고로 자칫 헛소리로 비춰질 소지가 다분한 다변의 결론은 이렇다. 다소 취향과 한계가 분명한 과목에 대해서라면 애초에 전체적인 원리와 개인적인 성향을 잘 알아야지, 안 그랬다가는 안 그랬다가는. 중년을 훌쩍 넘어서 직업을 A에서 B로 바꾸거나 어쩌거나. 그런 일이 발생하기 마련이라는 점. 그걸 누가 직접 설명해주지도 않았고, 어디에서 보도 듣도 못했다. 듣도 보도 못했다. 바로 그래서 침 튀기듯 동물 소리가 늘어난 것이다. 하여간 최근 일하기에 대한 형편은 이쯤에서 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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