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육제도 2

from 칼럼 2019. 9. 2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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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교육제도'에서 말만 길어지고 얘기가 너무 산만했기 때문에 추가 칼럼을 작성해봤다. 그 칼럼에서 본론은 나올 뻘 말 뻔하다 말았고, 결론은 흐지부지였다. 그래도 서론은 확실했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이. 
    A. 대학입학시험 (대하드라마로 치면 과거 제도. 멜로드라마는 내신 추가)
    B. 수학능력시험 + 고교 내신 + 대학별 별도 시험 (상위권 대학 위주. 대학별로 주최. 생략도 많고)
    C. 제도 다양. 기준 다종. 학생을 뽑는 대학교도 다채로운 잣대 자율권 빵빵. 보도 듣도 못한 색다른 방법도 풍부
    그때 못한 본론을 지금 재도전! 일단 표현을 좀 세게, 사용하는 어휘부터 약간 혹독하게. 그래도 글로 따졌을 때 거친 거고, 사적으로 말할 땐 하나도 거친 거 아니다. 그런데 하필 지금, 딱 여기서 왜 논조를 부드럽게 다듬지 못하고 거칠거칠 까칠까칠하냐고요? 비인간적인 표본이니 정량이니 매몰차도록 순서도 같은 용어를 왜 사용하냐? 왜냐하면 사극에 나오는 장수처럼 작전회의하듯 로봇같이 숫자만 따지면, 비윤리적인 반면에 탁월한 이치와 솔직한 원리를 알 수 있기 때문. 그와 달리 점잖고 도덕적이며 각계각층 누구든지 면 살려주고, 체통 지켜주고, 실속 챙겨주듯 합리적인 말재간과 교양스러운 논법을 구사하면 대체로 답도 발전도 이치도 모두 놓칠 소지가 다분하다. 남들 다 아는 얘기만 반복하고, 뚜렷한 대책 없이 근처만 돌다 수박 겉 핥기만 하고 마는 식. 따라서 속된 말로 까놓고 말해서 이런 문제일수록 가정법이라는 (돌)직구를 구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가정법이 무엇인가. 뭐겠나. <만약 나라면>이지. 그것은 순식간에 우리를 천재이자 갑부로 만드는 마술을 선사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는 사회지도층이 되고, 돈 빼고 시체인 부자도 되며, 외모 빼고 다 가진 남자가 되는 것이다. 속에 쌓인 게 그 얼마나 많고도 많은 일명 선녀. 그 숙녀께서 이 가정법이라면 단방에 절세미녀가 되는 식. 때문에 자상함과 다정함, 부드러움, 오손도손 사려 깊고, 인간미 잃지 않고, 상식에다 교양을 놓칠 수 있을지언정. 그럴지언정 표독스럽게 이런 칼럼처럼 이치만 따지면 적어도 원리는 챙길 수 있다. 자, 그걸 즉각 간명하게 해 볼까? 단언컨대 입바른 소리 말고 사적으로, 솔직히, 가감 없이 무엇을 느낄지 <내가 당사자라면>라는 가정법에 근거하여 생각해보자. 그렇게 B에서 C로 변화했을 때의 속마음을 추정하자면 다음과 같다. 
    <명문 대학교>! B에 비해 C로 입학한 정량. 표본이든 대표적 얼굴마담이든 뭘로 봐도 양질의 데이터베이스를 확보. 때문에 명문대 입장에서는 C가 절대로 싫지 않음. 사석에서 말하듯 B일 때는 공부만 잘하면 개나 소나 전부 다 수평적으로 명문대에 입학 가능했음. (존엄하신 그분들께서 개나 소라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공부만 잘하는 노력파에 덤으로 배경과 기타 등등 준수한 인재를 골라서 뽑을 수 있다는 뜻). 기회는 공평한 대신, 부모가 비리비리하든 집안이 그렇고 그렇든지 어쩌고저쩌고. B일 때 명문대는 공부만 잘하면 아무나 다 받아줬던 시기. 그런데 C로 바꼈네? 명문대 입장에서는 이제야말로 명문대로써 어깨가 더욱 무거워짐. 솔직히 말해 입이 귀에 걸림. 단순히 공부만 잘하는 어중이떠중이까지 다 받지 않아도 됨. 
    이건 뭐랄까 난민 분담제와 완전 다른 문제지만, 따지고 보면 썩 다른 문제도 아님. 고정 분할제니 여성 할당제니 그게 좋게 풀리면 우수 인재가 적재적소에 포진되지만. 필자 친구만 봐도 그렇다. 친구 2명. 걔들은 시골 고등학교 동창. 둘 다 농어촌 전형으로 대학 입학. 그런데 1명은 지방 국립대에서 장학금 받고 나중 연봉 얼마에 세계적 제약회사의 봉급쟁이로 살고. 1명은 지방 국립대보다 상위 급인 수도권 중견 대학교에 진학. 그런데 장학금 못 받고 이렇다 할 연애도 못 해보고, 청춘은 아르바이트한 기억밖에 없음. 그러다 괜찮은 직장 입사를 포기한 채 낙향하여, 적당한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착실히 살게 됨. 신수 훤하고 중간 가시는 그분들을 왜 하필 난민과 비유하느냐, 그분들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쉽게 말해 능력이 매우 출중하다랄지 행운이 따라준다랄지, 그게 아니면 체급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란 의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용 꼬리냐 뱀 머리냐. 사자 꼬리가 되기보다는 개의 머리가 되는 게 낫냐. 그 이치 때문. 그에 관한 속담은 무수히 많다. 가령, 
    큰 배의 일꾼이 되기보다는 작은 배의 주인이 되는 게 낫다 (마케도니아)
    큰 물고기 꼬리보다는 멸치 머리 (스페인)
    1년 암탉으로 사는 것보다 하루라도 수탉으로 사는 게 낫다 (이탈리아)
    철갑상어 꼬리가 되는 것보다 꼬치고기 머리가 되는 게 낫다 (러시아)
    용의 꼬리가 되는 것보다 당나귀 머리가 되는 게 낫다 (네델란드)
    밑바닥 귀족이 될 바에야 농민 부대 우두머리가 되는 게 낫다 (프랑스)
    그렇지만 시대가 변하면 인습도 바뀐다. 철 따라 유행 따라. TV와 인터넷으로 격차는 좁아졌으나 뭐가 멋지고 좋은지 모를 수 없거든. 그래서 당나귀 머리보다 환상열차의 꼬리가 선호시되는 현대! 스포츠 스타들이 자꾸 상위 리그로 진출하는 것과 똑같다. 처음부터 큰 물에서 놀다가 그럭저럭 살 수도 있고. 작은 시장에서 유명해져 차근차근 또는 벼락스타가 될 수도 있고. 현대적으로 용 꼬리 값을 더 쳐준다지만. 많이들 그렇게 살지만. 벼락스타로 우뚝 서지 않는 이상 조랑말은 아프리카에 남든 남미로 이사가든지, 최고로 쾌적한 동물원이랄지 서커스장에 가든지. 조랑말은 조랑말끼리. 딴 게 아니라 그게 끼리끼리. 세상을 겪고 인생을 살다 보면 어른들은 알게 된다. 모를 수 없다. 서로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면 뭔가 멈칫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축구처럼, 그래서 1부와 7부 리그는 나뉘는 것이다. 단적으로 억지로 비유하자면 교육 제도 B는 리그 구분 없이 혼재된 방식이고. 좋게 말해서 C는 리그 구분이 되는 식이고. 그런데 그걸 급히 추진하다 보니 잡음이 시끄러운 거고. 
    끼리끼리. 다인종 사회에서 강박적으로 다채로움을 신경 써야 하는 환경에서 필자가 살아보진 못했으나. 인종 외에 나머지 여건은 많고도 많다. 남녀, 나이, 세대, 학벌, 빈부, 정치관, 인생관, 외양... 기타 등등. 무엇보다 사회에서 사는 이상 모든 것은 돈과 관련된다. 뭐든지 반드시 돈과 직결! 사랑? 돈 1도 안 보고 결혼하는 사람이 많나? 아닌 사람 빼고는 전부 다 재산 맞추고 직장 보고 그렇게 결혼한다. 돈 1도 안 보고 결혼하는 사람이 많다면, 일단 나부터도 나 가진 거 없지만 사랑만으로 인생을 함께하자고 하면 받아줄 사람 많아야 옳은 얘기. 그런데, 그런가? 아니다. 정반대다. 내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고 어쩌고저쩌고. 웬만하면 그거 다 뻥이다. 그대만을 영원히 사랑하겠다? 그거 역시나 거의 다 뻥. 오디오 이퀄라이저처럼 이거 저거 따져서 중간 정도 재산을 다른 게 커버해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할 수 있는 것이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내 일이냐 남 일이냐, 돈 빼고 큰소리치고 입바른 소리하고. 웬만하면 그거 다 뻥. 개 뻥. 9 대 1, 10 대 0으로 시작하는 결혼. 많지 않다. 다른 거도 다 똑같다. 우정도 절친한 친구가 아닌 이상 재산 차이가 너무 크면 나중 100퍼센트 멀어진다. 부모형제, 현격한 재산 때문에 잡음이 붉어지는 일. 모른 어른이 어디 있나. 그 모든 게 돈과 관련되는데, 무슨 교육 제도라고 통뼈라도 된단 말인가. 그 역시나 돈과 밀접히 관련된 일. 순수예술도 먹고살아야 할 수 있고, 빈센트 반 고흐나 된다면 몰라도 손가락 빨면서 곡 쓰고 그림만 그리는데, 어떤 미친 여자가 사랑 하나면 만사 OK라고 허접한 촌놈 옆에 남아있겠나. 요즘 세상 그렇게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봐도 된다.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게 다 뭐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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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명문대학교의 입장은 그렇다. 공부는 기본 중의 기본이고. 잘살고 인맥 좋고 엘리트 코스만 밟은 새파란 모범생만 딱 골라서 받을 수 있는데? 결코 싫을 리가 없음. 내가 만약 명문대학교 고위급 관계자라면 절대로 마다하지 않겠음. (말이 그렇다는 것). 사회적 소양을 따지면 그래서는 안되지만, 사적으로 단짝 친구와 얘기하는데 싫다? 싫다면 거짓말. 
    삼류 대학교 : 2인자의 1인자 따라하기 전략이 먹히는 사례도 있는데. 각자 살 길을 찾을 테고. 변할 테고. 학교도 부동산처럼 거래되는 실정. 명문 대학교는 유구한 전통을 유지하는 반면. 민주주의 도입이 늦은 풍토의 정당처럼 대학교 이름도 철 따라 틈틈이 학교 이름을 바꿔주는 일. 주변에 드물지 않음. 특별하게 뭔가에 집중하거나, 대학교 전체 물량을 줄이거나. 몇몇 변화와 방법의 객관식 보기는 단 몇 개 안 될 테고. 
    학부모 (초상류층) : 상위 몇 퍼센트 엘리트 코스. B든 C든 그게 그거. 상관없음. 단위 내의 명문대에 극성으로 집착하지도 않음. 그거 못 들어가면 단지 그뿐. 나머지로 다 커버됨. 
    학부모 (비 상류층) : 
    학생 (공부 잘함) : 
    학생 (공부 못함 & 잔재주 있음) : 
    학생 (공부 못함 & 잔재주 없음) : 
    관중 (어른 & 자녀 없음) 
    관중 (어른 & 자녀 있음 & 교육열 높지 않음) 
    관중 (어른 & 자녀 있음 & 교육관을 엄마보다 자녀 목소리가 더 큼)
    B ──> C 과도기에 힘입어 신분 상승한 사람 :  다행히 끝물 파도타기로 클라우드나인에 입성한 졸부도 사람들 생각은 천차만별. 그렇지만 원칙적으로 이기적. 피라미드가 역피라미드로 바뀌는 건 원치 않음. 아닐 수도 있고. 
    B ──> C 과도기에 힘입지 못한 중하류층   : 
    이번 문단에서는, 옛날에 이미 C에 안착한 선발&중견주자 측은 논외로 치고 떽떽거렸다. B와 C를 모두 겪은 세대랄지 과도기로 안고 있는 풍토 위주로 말하자면 그렇다. 그렇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사람 사는 데는 현지 사정에 따른 문화적 차이가 있다 뿐이지, 큰 맥락은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뿐만 아니라 선발&중견주자라고 할지라도 완벽히 C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전통을 더더욱 중요시하면 상당량 B 제도를 드문드문 고집하기 마련. 단순히 교육 제도로써 C 모습을 유지하더라도 과목으로 들어가 보면 여전히 B는 절대 강자. 큰 시험이 다 그렇고, 큰 대회 역시나 B가 C보다는 형님이다. 비유하자면 B는 절대평가요 C는 상대평가.
    예를 들어보자. 중고등학교 축구팀 성적이 시원찮더라도 학교 전통 상 축구팀 명맥을 유지하는 게 보통인데. 실력이 형편없어도 무슨 100연패? 그러면 드물게 학교 축구팀이 명맥만 유지할 정도로 대회에 드물게 출전하던가, 아니면 축구팀을 해체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도 리더의 고집 때문인지 관습 때문인지 200연패 300연패 400 대패를 하더라도 패전 전담 팀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왜 사랑을 할까.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우리는 공부를 왜 하는 것일까. 스포츠도 다 나름 협업을 배우고 협동이자 인성에다 자존감 자신감 질투심 복수심 용서 기타 등등 심리학적 기제와 사회성을 배우기 위해 하는 것. 특히, 학창 시절에. 나머지 99팀은 상관없다만 패전 전담 투수 1인은 선수라면 몰라도 아마추어는, 인품을 다질려다가 삐툴어질 소지도 없지 않은 것. 90은 대충 만족이니까, 겉으로 보면 효율은 좋을지언정, 속으로 따져 교육 전략은 썩 괜찮다고 호평하기 어중간하다. 전술이 먹히니까 브랜드 포지셔닝 바뀌는 일과 비슷. 그렇듯 전패 완패 통패 석패 오직 패배주의만을 고집할 거라면, 그럼 비경쟁 분야랄지, 그 학교에서 100연패 하는 거말고 딴 거 잘하는 데 집중하는 방법도 있다. 아니면 100패를 80패 정도로 완화하는 방법 등. 방법이야 찾으면 찾는 대로. 
    보아하니 상업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다. 축구로 따져 1부부터 7부 리그까지. 따로따로 끼리끼리. 1부 리그에서 올해 성적이 안 좋으면 2부로 내려가고. 2부에서 승승장구하면 1부로 승격하고. 그러다 전국구로 제한 없이 모든 축구 클럽이 맞붙는 대회를 가끔 열면 되고. 또 지역별 강호들을 모아 챔피언스 리그도 정기적으로 열리고. 그런데 그건 상업이자 프로고, 교육은 학문이자 사랑론이고. 그렇지만 경쟁은 운명이기 때문에 그 교육계에 자꾸자꾸 상업이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 B에서 C로 발전한 취지는, 흑백 TV를 컬러 TV로 변화시키자는 의도인데. 교육은 그냥 오롯이 백조처럼 교육일 수 없고. 상업과 기타 등등이 맞물려있기 때문에 B에서 영원히 머물러있는다면 모를까 점차 C로 바꿔나간다면. 컬러 TV라는 화려함은 얻고, 컬러 TV를 소파에 자빠져 편히 감상할 수 있는 편의에 따른 노고도 감수해야 할 듯. 그게 어떻게 설계되고 만들어지고 생태계가 어떻고 등등. 
    그래서 B에서 C로 나아간다는 것은 비교적 수평적이었던 대입 제도가, <명문고 입학, 중학교 입시, 초등학교 사교육 등>으로 점차 그 범위가 넓혀지고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식. 민주주의의 장점이 있으면 동전의 뒷면도 있듯. 교육의 상업화와 끼리끼리의 벽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축구 7부 리그는 7부 리그끼리. 1부 리그는 1부 리그끼리. 축구는 그렇고 교육은 일찍 엘리트 코스에 진입해야 끝까지 엘리트 코스를 이탈하지 않는다는 경영학 이론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산업계 진입 장벽, 퇴출 압력, 수익 창출이 높고 낮고. 그 자본 논리와 완전히 똑같다. 그런데 왜 결론을 낸다면서 더 산만해진 느낌이지? 기분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그런 셈이네. (절레절레) 필자가 무슨 해결사도 아니지만 누구나 바라는 대안은 이렇지 않을까 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상황과 여건이 어떠하니. 그래서 단순히 교육 제도만 다듬고 교육계 생태계에 대한 토론만 백날 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 입시 학원계에서 남자 강사가 태반이라서, 옛날에 비교적 골목대장식 문화이자 으쌰으쌰 불문율이 우세했던 시절. 학벌과 성별에 따라 살아남기 힘든 유형이 딱 정해져 있었을 텐데. 헤라클레스가 갑자기 나타나 12 난제를 해결하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전반적으로 다른 업계와 분야가 성장하는 속도와 교육 여건도 비례하는 게 아닐지. 때문에 그렇게 바꾸면 된다. 어떻게? 장관을 인류 역사상 최고로 깨끗하고 역대급 능력자를 앉히느냐 마느냐 때문에 시끌벅적하느니. 그보다 국회의원의 혜택을 대폭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겠지만. 어떻게 하면 암컷 싸움닭이랄지 코메디언이 아닌 걸출한 정계 인사, 꼭 정치를 하면 좋을 사람이 정치계로 나설 수 있도록 그림 그려질 수 있는가를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운명인지 아닌지 몰라도 정실감 신랑감 이상형을 바라는 것과, 총리감 장관감을 동일시하는 것. 전자든 후자든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공장에서 상하의 일체복 입고 부품 조립해도 의사만큼 벌고. 농사꾼으로 살아도 예술가보다 더 행복하고. 굳이 기를 쓰고 애를 학원 몇 개에 돌리고, 엄마가 딱 붙어서 공부시키고 어쩌고. 상류층도 그렇지만 중하류층에서 꼭 보면 공부 못했던 엄마가 극성으로 애들 공부시키는 사례. 흔하다. 아주 흔하다. 그처럼 최고급 엘리트 코스를 거쳐서 나중 평범한 월급쟁이를 하면 그건 또 뭔 코미디. 정작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하고, 일하는 게 즐거워야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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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의미에서 정말로 꽤 괜찮은 교육 제도를 논하고 싶다면. 그 탁월한 이상을 현실로 실현시키길 조금이라도 바란다면. 그러면 제일 먼저 할 일은 딱 2가지다. 
    첫째, 가식적으로 착한 척하지 않기. 즉 솔직하기. 억지부리지 않기.
    둘째, 나와 남. 타인과 나를 동일한 잣대로 똑같은 기준으로 논평하기. 
    첫째와 둘째가 되지 않는데, 무슨 교육 제도 어쩌고저쩌고가 되겠나. 
    일단 현실을 보자.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잔 말이다. 
    운동 종목의 체급 ───> 구기 종목은 무체급이요 일부 종목은 다체급제. 
    대입 입시 제도 ───> 현실적으로 체급제
    고입 입시 제도 ───>           "
    중입 입시 제도 ───>           "
    초입 입시 제도 ───>           "
    관중석/객석...  ───> 등급제
    놀이공원 줄서기 ───> 등급제 (등급제인데 정서적으로 약간 멈칫. 때문에 현실 도입이 아직인 곳 많음)
    학교 입시 제도 ───> 등급제 (등급제인데 정서적으로 약간 멈칫. 때문에 현실 도입이 아직인 곳 많음)
    부동산/사랑...  ───> 세상사 뭘로 보든 등급제 아닌 게 없을 정도로 등급제를 말하는 게 무색해짐.
    따라서 따라서긴 뭐가 따라서야. 말만 많았지 아직도 결론을 못 냈다니. 요컨대 상업은 온전히 급이 나뉘는 게 당연. 아주 지당함. 순전히 온당함. 그런데 학문. 교육 제도는 상업과 달리 오직 순수하게 학문이냐? 하면 아니다. 그러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 따라서 교육학자와 기타 등등 이론은 많겠지만 일부분 차등 교육은 불가피하다는 것. 제3자이자 승자, 인기인, 유명인, 부자, 입바른 소리 전문가, 이론가, 교양학자 등 상당수 의견은 상업 이전 단계인 교육은 그러면 안되다고 주장하실 텐데. 그 말도 옳고 좋지만. 패자, 비인기, 빈자, 선녀... 입장이 되어 보면 안다. 무엇을? 그저 <그들만의 리그>를 착한 척이라는 명분 때문에 그냥 수평적으로 리그 구분을 없앤다면, 거기서 또 패전 전담 투수는 누군가 맡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피자를 크게 쪼개든 잘게 쪼개든 어떤 비율이든 정해져 있다. 없을 수가 없다. 교육 제도에 왕도는 없다. 그렇다고 시골 똥개 밥그릇 싸움으로 격하되어서도 안될 테고. 무엇보다 상업은 등급제고, 사랑은 외모 차별인데, 교육 제도는 어때야 하나? 어때야 할까. 똑 부러지게 B만 고집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C로 끼리끼리의 최고봉을 찍을 수도 없고. 그러면 적당히 등급제를 차용하되, 어떻게 단점을 최소화할지를 고민하는 게 좋을 듯하다. 만약 B난 C에서 패전 전담 요원을 큰 비율로 유지하길 고집하면, 그 패자 비율은 사회에 나오면 더 더 더더욱 상업의 등급제에 좌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꼭 일부러 거칠게 가르치고 강하게 키우자는 말이 아니라. 그보다 험한 세상 온실 속에서만 키우고 이론만 고집할 수야 없지 않나 그 뜻이다. 다 미리미리 사회와 상업과 세상이 어떻다는 걸 차츰차츰 아는 게 모르는 거보다 좋지 않을까? 교육계와 상업계가 너무 동떨어져 있으면 상업계는 오직 경력직만 선호할 테고. 업계 전문가과 교육계 교수와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을 테고.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이 공부를 왜 하는지를, 어른들께서 정말 몰라서 그러시겠나. 어려도 속은 다 있다. 그분들끼리 서로 비교한다. 공부 돈 많이 벌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우리 아빠가 오늘 모인 아빠 회사 사람들 가운데 최고야? 돈 많이 벌면 행복해져? 공부 많이 해서 엘리트 코스만 꿰찼는데 행복하지 않으면 누가 책임져? 책임지는 사람은 없을지언정 일단 돈 없으면 불행할 확률이 엄청나게 높다는 거 애들도 다 안다. 그렇듯 온갖 편법과 합법을 총동원해서 C에서 최선의 길을 고집하겠다면 나중 그게 좋고 즐겁고 기쁘며 좋으면 되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불만족이었을 때 C든 뭐든 그냥 물고기 잡히지 않는다고 험악한 쌍욕을 퍼붓고 어쩌는 건 사석에서나. 거 어째 퍽이나 찔리긴 하다만 이 세상의 지존은 아마도 돈일 텐데. 돈 때문에 교육제도 어쩌고저쩌고 말해 봐야, 돈 빼고는 말이 안 되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알며 기억하는 업계 관계자는 또 어떻고. 
    끝으로 마지막. 진지하게 교육 제도 이러쿵저러쿵 논해봐야 한 번에 이상적인 방향으로 개선될 일은 거의 없다. 아무리 좋아져도 말 많고 탈도 많을 테고. 실상 좋게 바뀌기도 어렵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없다. 제도 자체가 좋든 안 좋든. 불완전한 여건에서 이길 사람은 이기고, 무승부랄지 가난해도 행복할 사람은 행복하다. 아무리 좋은 환경을 만들어보시라. 투정하고 불평할 사람은 응석 절대로 못 참는다. 아무리 여건과 형편이 나아져도 조롱꾼은 만년 조롱꾼. 중세의 황제보다 10억 배로 잘살고, 능력조차 동화 주인공보다 1조 배로 혜택을 누릴지라도. 적당히 만족하는 사람은 긍정적이고 인상이 편안하다. 안 그러신 분은 당연히 들리면 불쾌하고, 보이면 거북하며, 생각하면 짜증만 돋구는 식. 비꼬기 좋아하고 까칠한 사람은 아무리 상황이 개선되어봐야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최고의 환경에서 적당히 평범하게 사는 거, 어려운 처지에 사시는 사람들께 물어보시라. 그거 누가 못하겠나. 불완전한 여건에서 좀 더 나은 형편으로 차츰 개선하고, 진보하며, 나아지는 인생. 그분들은 그거면 만족. 실상 따지고 봐도 공부? 싫증남 짜증남 하고 싶지 않음. 일? 일하기? 일하기 싫음. 그럼 뭘 원하냐고? 아무도 날 모른 체 돈만 원 없이 많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도 속으로 거의 다 그렇게 생각한다. 안 그런가? 무슨 교육제도 이러쿵저러쿵, 나나 잘하면서 짜여진 시스템을 고민하는 게 먼저일 듯. 어려운 여건에서도 성실한 사람은 땀방울의 결실이 맺히기 마련.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설령 실패해도 후회는 적다. 환경은 다소 불완전하고 아름답지 못해도 착실한 사람은 다 중간은 간다. 당장 오늘 내 기분만 좋아도 세상은 아름다워 보이기 마련. 뭔 말은 누구나 다 빌 게이츠요 워렌 버핏. 말은 누구나 다 세계 챔피언감. 불합리한 제도 때문에 내 인생이 도태되었다만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그건 그거고 난 나다, 고로 나는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 쪽인가. 선택은 본인 몫이다. 불평 불만 웬만하면 뻥이 많고. 허세 허영 허풍 일삼느라 바쁘던가 속느라 정신없던가. 결론은 세태 풍자, 내 실속이나 챙기면서 하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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