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드레스 코드

from 칼럼 2019. 6. 2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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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럴까? 정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그럼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을 좋아해야 한다 라는 하나의 가설은? 그야 좋든 싫든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만 알면 되고. 실상 이론과 실제는 다르니까. 나머지는 교양과 상식은 공통이요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 역시 인정하면 그만. 그야 어쨌든 관건은 개구리 마음대로. 개구리 인생이야 개구리가 알아서 하는 것. 단지 개구리 군단에서야 질서와 인습 같은 덕성이 없으면 안 되고. 그렇듯 우물이든 옷이든 뭐든 개구리 마음. 
    그런데 가만 보면 대개 고무줄 기준선이 흔하디 흔한 게 세상사. 내가 하면 사랑 늬가 하면 불륜. 나만 좋으면 주변 시선은 외면이요 나만 좋으면 그만. 때문에 자기 기분 좋을 땐 주절주절, 나 뭔가 저기압일 땐 또 다르고. 가령 천성이 비꼬기 좋아하는데 인생의 가속도가 붙어버린 상황에서, 하필 분위기도 별로에 기분까지 저조한 양반과, 때와 상황에 알맞은 교양과 상식을 논한다? 글쎄 그건 듣고 흘리던가 봐도 못 본 체 외면하는 게 시간 낭비하지 않는 지름길. 그래서 웬만한 토론은 매끄럽게 논제를 발전시키기가 여간해선 어렵기 마련이다. 괜찮은 호인은 손아랫사람한테 배우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런데 (그럴 수 있지만) 속좁고 허세 지수랑 승부욕과 자존심 장난 아닌 남자한테, 허영심 지수 까칠한 숙녀한테. 거기다 대고 넌 왜 어쩌고저쩌고? 친구 사이에서만이길. 꼽추는 자기의 혹을 볼 수 없지만, 그의 동료의 것은 볼 수 있다. 나는 돌려서 완곡하고 부드럽게 말한다고 하나 받아들이는 사람이 몇 번 꼬아서 들으면 악의 없는 훈수와 다정한 충고와 친애하는 참견. 다 물거품되는 일. 오해와 모순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다. 
    가령 결혼식 피로연장에서 신랑 친구들, 무리가 나뉘는 신랑 친구들이 괜히 싸우는 게 아니란 말이다. 말이 안 통할 수 밖에 없는 일은 형편 자체 때문에 붉어질 수도 있다. 화장발이 아니라 어딜 가나 눈에 확 띄는 미녀가 유독 돋보이는 부부 모임. 그 모임 깨지는 건 시간문제. 절대로 결코 오래갈 수 없는 모임이 바로 그것이다. 예쁜 게 죄라는 말처럼. 못생긴 남자한테 못생기면 기분 어쩝니까, 라고 만약 농담으로 물어보면, 속된 말로 기분 엿 같다고 하시겠지만. 그럼 못생긴 촌년은? 심지어 나이까지 시들어지면? 추남은 그래도 일생 내내 상향지원에다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여자를 탐한다지만. 선녀는 어쩌냐고 선녀는! 우리들 솔직한 속마음이 무엇인데, 못생긴 여자가 탈브라를 하든 탈코르셋을 하든 말든 아닌가. 그런 거 시끄럽다 관심 없다 짜증난다 관심 주지 말자 그거 아닌가. 고양이가 살찌면 쥐를 잡지 못한다. 헛바람 잔뜩 주입되면 우리의 아저씨는 걸그룹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 일. 내 친구들만 봐도 있긴 있다. 걔한텐 촌년이 딱 천생연분인데, 걔 입장에서는 막 아닌 거지. 입장 바꿔 보면 여자라고 뭐 다를 게 있나. 사적으로 그분들께서 단추구멍을 뭐가 좋다 하겠나. 울컥 자제하시고 오해도 참고, 원리와 이치를 먼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차분히 말을 섞을려고 해도 우기고 우기고 박박 빡빡~ 우기고. 시장판 말다툼도 자주 하면 재밌고─시골 정감이 나쁜단 말이 아니고─바람도 자주 피면 당사자 입장에서야 짜릿하지 왜 아니겠나. 숫처녀도 그렇고 불륜도 그렇고 뭐든 처음이 제일 어려운 법. 들키지만 않으면 불륜도 미덕이라고 여기는 일부 늑대와 뭔 도덕과 윤리를 논하나. 세상사에 닳아지기 전에나 양심에 뜨끔하지 귀가 한 번 뚫리고 나면 그놈이 그놈인데? 남잔 다 귀걸이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 귀걸이 얘기가 지금 왜 나와? 
    아하 간접화법 대 직접화법. 늑대의 양적 세력 확장형이냐, 양의 질적 품위론이냐 그 차이네. 시각차가 그 때문에 발생하구먼 그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티격태격. 마초 위주인 놀이터에서 숙녀 기분 맞춰주듯 섬세하고 사려 깊도록 주제를 꺼내놓으면 그분들 얼마나 좋아하시겠나. 신부들러리가 신부보다 더 화사하고 어쩌고저쩌고, 상식적으로 심했다 라는 예 없지 않듯. 그와 정확히 흡사한 예가 진중한 행사에서 튀는 복장의 남자. 예식에 어울리지 않는 신랑의 친구. 하물며 초대도 안 했어. 심지어 별로 안 친했어. 그런데 어떻게 묻고 묻고 찾아왔어. 남자들이야 으쌰으쌰 얼렁뚱땅 고맙다 어쩐다 대충 넘어가지만. 여자가 보기엔 아니지 아니지 전혀 아니지. 초대받지 않은 잔치에는 가는 게 아닌 법. 파티에 환영 못 받을 사람이 참석하면 그분께서 떠나 줄 때 진짜로 환영받는 것. 이 세상이 내 생각만 하면 그만인가? 나만 좋으면 끝인가? 상대방 생각은 왜 안 하는데!     
    그러니까 왜! 딱 상남자 마인드. 일장일단 있으니까 그래도 좋은데, 아니 누구나 똑같은데. 왜 도대체 어째서 그처럼 꼬였을까. 뭐가 그렇게 뒤틀렸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편할 땐 직접화법이요 신나면 비꼬고 간접화법 극찬. 그러면서 여자의 간접화법을 들으면 짜증나고 지는 비교는 더 짜증나고. 여자들 비일관성에 내 고개 끄덕끄덕하면 내 단점과 지는 비교도 찬찬히 살펴 봐야지. 그래야 공평. 하나 주고 하나 받기. 그런데 그게 아니라 늬 꺼도 내 꺼 내 꺼는 원래 내 꺼. 상남자가 뭔 자존심 대마왕이야 뭐야. 왜지? 왜지? 다 그렇지도 않고 평소엔 사람 좋은 호인이다가 뭐 때문에 간혹 헷까닥 하시냐고. 대관절 무엇 때문에 남자가 갑자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변신해서 절대로 내 생각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일까. 왜 듣지를 않냐고.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이제 알겠네. 이제 알겠어. 여자가 나이에 쫓기듯 위기 의식이 없을 수 없듯. 왜냐하면 남자는 수치라는 정량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기 때문. 자기계발서 처세법 동기부여술 기타 등등. 으쌰으쌰식 남자는 말이야 라는 상남자론 때문에 본인도 시간 엄청 소비했어. 안 가도 될 결혼식장에 뭔 하이에나의 동생에 형에 누구의 누구 뭐까지. 들은 말은, 늬가 거길 왜 가냐. 또 들은 말은, 뭐 무슨 어디 이사 도와주고 어쩌고 그런 건 어디서 보도 듣도 못했다는 둥. 어차피 허풍이야 사실을 측정할 수 없다지만, 뻥도 기본 가락이 있어야 가능한 셈인데. 나중 남는 건 가족 밖에 없는데. 친구도 무조건 많은 게 좋다는 식이고 인기도 많아야 하고. 뭘 해도 지기 싫고. 운동도 제일 잘해야 하고. 아는 거도 최고로 많아야 하고. 주관 뚜렷해 봐야 TV 보고 풍문에 들리고, 난 반대로 가고. 아줌마 허세처럼 남자라고 뭐 팔랑귀 아니겠나. 뿐인가? 남자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고. 난 꼰대가 싫지만 나도 엄연히 꼰대 지수 오르락내리락. 난 남자 아닌가? 난 뭐 허세 없나? 우린 뭐 알게 모르게 난봉꾼 기질 없나? 허지만 내 여동생이 만나는 남자는 바람기 없기를 바라지. 하물며 난 돈도 많아야 하는데 현실은 다를 수도 있고. 그래서 하는 말 님은 뭐 얼마나 잘 나가세요? 라고 하고. 결국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서, 나와 의견 틀리면 저주하고. 뭐야? 여자랑 똑같잖아? 여자들 보고 착하면 뭐하냐 속좁지 않냐 라면서, 자기들은 쫌팽이! 대인배 반대말이 찌질이인데, 그 말 듣는 남자 어느 누가 기분 좋겠냐고. 아무리 그래 봐야 실제는 다르고. 무의식적으로 남자는~! 결벽적으로 우리는~! 수컷은 말이야~! 친구들끼리 사랑을 비롯해 절대로 말해서는 안될 주제도 넘쳐. 듣고 보고 알고 풍문만 봐도 뻔트 99번에 아름다운 사랑 1번은 기본인데. 그런데 난 뭐냐 그거지. 부러운 게 뭐 어때서. 그런데 부러우면 지는 거라 그러고. 가는 여자 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기. 그럼 뭘해? 일단 여자가 오지를 않는데! 남자의 불문율은 상향지원인데 여자들 일부는 만나 주는 마인드가 심심치 않게 있는 거 같고. 환승이별도 걱정이고. 그 수많은 야한 동영상, 진짜 몰래 찍은 야한 영상들. 그게 사랑인가? 그게 사랑이냐고. 여자들이 하나같이 좋다고 하는 남자는, 말을 말어야지. 매만 벌기 밖에 더해? 아무리 그래도 제3자가 백번 양보를 왜 하나, 병풍이 어떻게 주인공이냐고. 그럼 남자들이든 여자들이든 하찮은 유머로 모른 사람이 없는 그거. <이 결혼식 무효야~!> 그 말만 하지 않으면 만사 OK네. 아 그렇구나. 축하하러 왔다는 명분만 있으면 적반하장도 유분수구나. 어차피 다 똑같은 속물인데 나 꼬인 건 기분 나쁘고. 내 맘에 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고. 피장파장.
    자, 오늘부터 신부들러리가 다 해 먹으면 되겠네. 벗겨먹든 말아먹든 지지고 볶든 어쩌든. 그럼 되잖아? 뭐가 그렇게 잘났냐고. 그래 봐야, 멍석 깔아주면 먼 산 쳐다 봐. 딴청 피우기 바뻐. 아니면 입만 살았던가. 그게 뭐냐고. 으쌰으쌰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네? 자, 돌격 앞으로~! 그래서 따라갔는데 옆에 보니 아무도 없어. 몇 시에 어디서 모이기로 했는데 나가 보니 아무도 없다고. 짖지 않는 개가 슬그머니 문다고, 물지도 못할 꺼면서 아주 그냥 말만 말만. 아 글쎄 마이크 타이슨 사건까지 갈 일 자체가 없다고. 밥상을 아무한테나 차려주냐고. 그렇지만 아무 데나 숟가락 올리고. 지명 방어전은 커녕 의무 방어전이 문제가 아니라 허풍을 위한 전제마저 가난. (절레절레) 뭐 여자가 처음부터 지는 비교를 들먹였겠나. 제멋대로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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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차 강조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얘기. 아줌마 허세가 괜히 말도 안되는 게 아니다. 다 당하고 속고 버림 받고 사랑받지 못하고. 풀 데는 없고. 괜히 그분들이 잘 듣지를 않고, 들어도 배가 산으로 가고. 문법 자주 틀리고, 어법 이상하고. 그분들 괜히 그렇게 된 거 아니다. 남자도 똑같다. 오히려, 남자가 도리어 더 팔랑귀다. 허세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지만, 허풍에서 밀리면 기분 나쁘거든. 늑대들 찝쩍 껄떡 시선 집중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 느끼는 부익부빈익빈 현상, 여자만일 리는 없다. 절대로 없다. 남자도 똑같이 속 뒤집어지지 왜 아니겠나. 난 인생 착실히 살고 한눈 팔지 않은 채 꿋꿋이 중간은 가거늘. 그런데 왜 난 여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헤픈 여자랄지 찐한 사랑 나누는 여자친구 몰래, 또 알게 모르게 야한 동영상 찍어서 올리는 거. 것만 봐도 걔들은 실컷 어쩌는데 왜 난...... 남자도 여자랑 똑같다. 그 야한 동영상이라는 게 보면 처녀성을 일찍 잃어서 어쩌다 정숙한 숙녀가 잘 주는 숙녀로 변질된 경우가 태반. 대부분 통계 딱 나온다. 그래서 쌍방향 플라토닉인 경우와 여자의 절정감이 농밀한 경우 역시 타율이 현저히 낮고. 바람둥이가 괜히 바람둥인가, 정실감으로 그런 부류는 철저히 거르는 게 그분들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환승이별을 당하는지 그분들은 당최 이해를 못한단 말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거기 나오는 남자들은 그냥 막 거시기 딱 뭐 어떻게 그런 거 같은데. 그런데. 왜 난 쩜쩜쩜! 안 그래도 웬만한 뱁새는 지 기분만 틀어지면 아무리 친한 친구한테도 막 쏘고 비꼬고 조롱하고. 물론 친하지 않으면 등만 돌리면 욕! 
    파도타기라는 게 통상 그렇다. 그저 숫자만 많으면 좋다 그래야 한다, 라는 관념이 젊었을 땐 지배적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고 들어가고 차차 아니라는 걸 알게 되거든. 친구의 친구, 동료의 친구, 으쌰으쌰 으쌰으쌰 난 잘 살아왔고 성실히 중간은 갔는데. 어느 날 보니 늑대 파도타기의 결과는 결국 <펠리컨 갈매기 벌새 앵무새 파랑새 팔색조 나비>쪽이 아니라 정반대인 <뱁새 하이에나 똥파리 미꾸라지 나방>쪽이니까 뭔가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 (넌 뭐 얼마나 잘났냐 늬까짓 게 뭔데 왜 나만? 종이 한 장 두께 차이를 결정적으로 내가 만들지 남이 만드는 게 아니다). 어른들이 살라는 대로 살았고, 인문교양서에 나오듯 인맥도 신경 쓰고. 그랬는데 왜 하필 파도타기가 반대로 되냐고. 해는 서쪽에서 뜨지 않는데. 그런데 그런 분들께 뭐 좋은 얘기랍시고 뭔 배짱으로 훈수를?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알아서 걸러지고 자동적으로 털어지는 게 연락처. 특히나 
    첫째, 경조사 때 문화적으로 봉투를 주고 받는 품앗이 풍습. (엑셀 파일로 관리하든 아니든. 적어도 기억은 남고. 속물 아닌 척이 더 나쁨. 차라리 솔직하던가. 착한 척을 그만하던가. 여자들 우정에서 제일 기분 나쁜 거 가운데 하나가, 위해 주는 척하면서 자기 이익 챙길 때이듯. 뭔놈의 착한 척이 그렇게 오지냐고. 사석에서는 별말을 다하면서 시선만 모였다 하면 에헴~ 입바른 소리하기 바쁘고. 어쨌든 결혼 늦으면 손해 완전 손해인 거 같고. 유부남들은 허세 자체가 급이 다르니까, 한쪽에서는 늦출 수 있는 한 최대로 늦추라 그러고. 아예 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고. 원래 유부남은 안에서 행복해도 밖에 나가면 허세 허세. 안 그래도 처녀들 가운데 유부남 좋아하는 애들도 있고. 대학생만 봐 보시라. 나이 차이 많은 오빠 만나면서 하는 말이 뭔가, 와 오빠 능력 있다~! 안 그런가? 여자만 30대 여자가 느끼는 그 어떤 기분. 남자는 일찍 느낀다는 차이 밖에 없다. 아니다. 여자는 일평생 느낀다. 대학교 4학년 남자가 같은 4학년 여자를 안 만나고 신입생을 만나면. 그럼 그분들 발가벗고 춤을 출 만큼 기분 좋겠나? 안 그래도 여자는 어린 여자는 다 경쟁자다. 어린 여자를 만나는 남자는 아마도 미워보이지 않을 수 없기 마련. 다시 돌아와서.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쌓이면 쌓일수록 배신감도 많이 느끼고.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거 같고. 그 관습은 철두철미하게 지키면서 왜 드레스코드는 나 몰라라? 물론~ 피치 못하게 드레스코드 못 지키면 마음만 받으면 그뿐. 친한데 와준 게 어디야 고맙지 왜 아니겠나. 그걸 누가 뭐래? 그런데 반갑지 않은 옛 친구. 반가우면 좋은데 친구 파도타기로 알게 된 마피아와 똥파리와 하에나 무리들이 죄다 어떻게 알고, 초대장도 없이 찾아와서 으쌰으쌰? 어릴 땐 모르지. 그걸 어찌 아나. 그거 보면서 신부가 귀걸이를 처음 단 처녀처럼 만족해하시겠네? 거울 보며 혼자서 처음으로 립스틱 바르고 화장하는 여자 아이처럼, 주인공들이 흡족해 하시겠다고. 그분들 느와르 영화 너무 많이 봤구만 그래. 경험 많은 사람은 점쟁이보다 많이 안다. 대체로 30살을 정점으로 인간관계는 그래프 선분 뻔하듯, 일찍 일찍 멀리 보고 집중하는 게 현명. 친교 뿐만 아니라 사랑도 마찬가지)
    둘째, 상하관계 높임말이 군대처럼 철저히 나뉘는 인습으로 세계 1등. (장점도 있고 문화니까 익숙하면 그뿐)
    셋째, 인구밀도
    그 세 가지가 나쁘단 말도 아니고. 살다 보면 터 잡고 사는 곳이 고향이기 마련이고. 그런데 인문교양학적으로 따지자면 이 세 가지와 젊었을 때 롤러코스터가 회전목마로 안착하는 시점. 바로 그때 촌닭이 까칠해지기 쉽상인 점. 매우 흔한 증상. 여간 낙천적이며, 남자들한테 성격 좋단 말 듣지 않고, 여자들한테 뭘 좀 안다는 칭찬도 안 들어 봤고, 처음 보는 숙녀가 보자마자 오빠라고 반기지도 않고, 바텐더와 웨이트레스의 얼굴 표정 보면 내게 호의적인가 아닌가 즉각 구분되는데. 거리에서 보이는 선남선녀들. 보이는 거라고는 걸그룹. 그런데 못생긴 촌년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실상 선녀조차 날 탐탁치 않아 한다고? 못생긴 촌년과 결혼한 내 친구, 두고 두고 잡을 뻔 잡을 뻔 맛만 보고 내쳐진 추억. 줬다 뺐는 게 더 나쁘다고, 산업계 공짜 전략에 길들여지고 속은 거 같아서 두고 두고 후회한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는 문턱을 넘을 수만 있어도 여자를 탐하고. 못생긴 선녀는 꽃이 피어도 촌닭과 뱁새가 쳐다 보지도 않고. 야 야 몇 시 방향 몇 시 방향? 어디 어디 아 어디... 이 자식이... 얼굴이 무기라는 둥 어쩌고저쩌고. 누가 50 넘은 여자 쳐다 본대유? 속에 쌓이는 울분은 점점 쌓여가기만 하고. 거기다 대고 뭐 잘났다고 인생은 무엇이고 어쩌고저쩌고. 등 돌리면 욕이라니까 그러시네. 아니지 아니지 면상 볼 일도 없겠다 막말 경연장이 인터넷 놀이터 아니겠나. 그분들 숫자에 대한 강박증. 내 열등감을 바닥에 깔고 띄워주며 다독이고 괜한 역린을 건드려 봐야, 좋은 소리 듣기는 여간해선 어렵다는 점. 
    닦아진 길이 가장 짧은 길이다. 경험은 좋은 약이지만 병이 나은 다음에야 그것을 얻을 수 있단 말이다. 그렇지만 단 과실의 껍질은 언제나 쓰다는 걸 미리미리 알면 그거 얼마나 좋냐 그거다. 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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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물 안 개구리도 그렇다. 우물이라는 7부 리그에 있을 존재가 아닐 때 늦든 빠르든 자연스럽게 상위 리그로 진출하는 건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일. 오르락내리락. 그런데 그 우물에 알맞냐 아니냐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냐 라는 것. 스포츠라면야 지극히 객관적인 가치 판단이 가능한 건 매우 당연. 그와 달리 우정과 사랑은 스포츠계의 이적 시장 논리보다는 덜 깔끔한 듯 하다. 동네 평균 연령 깎아먹으면서 굳이 대학교 인근에 사시는 주민. 주민의 권리일 뿐. 부자 동네들 부동산 훈풍이 변하는 일, 고급 사교계보다야 문턱이 낮을 수 밖에. 다만 나이트클럽이 손님 가려서 받는 것 역시나 상업적 논리. 그런데 친교와 애정은? 애매하면 동격인가 아닌가, 주인공이 누군가를 보면 깔끔. 드레스 코드라는 기준을 살피면 쉬움. 
    싫다는 여자한테 내 구애를 받아주라며 끈질기게 매달리는 남녀. 20대들 노는 클럽에 끈덕지게 같이 묻어갈려는 30대 40대 남녀. 경조사에 파격적인 드레스를 입고 오든 오뛰꾸뛰르 복장을 입고 오던 다 필요 없고 무조건 많으면 좋다며,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오면 고마운 거지 겉모습이 뭔 필요인가, 그 말도 맞긴 맞지만 그건 병풍의 투정일 뿐이고. 신부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장례식장에 반짝이 댄서 옷 입고 갈 일 있나. 리더와 주인공이 누구든 나만 튀면 그만이라는 생각. 병풍과 신부들러리 역할 난 싫고, 그냥 참석이 의미이자 백댄서가 주인공. 언제부터 백댄서가 슈퍼스타였어? 초대받지 않은 예식에 큰맘 먹고 간 사람 입장의 고마움이냐, 정녕 위해 준다는 생각이면 초대받은 잔치에만 가야하느냐냐. 주인공이 싫다는데 백댄서가 나서서 내가 최고다? 나는 좋은 의도다? 
    결국 누구나 적당한 상식과 사적인 소음도 잘 알지만, 약간씩 마음의 결이 다른 건 아마도 그 때문인 듯하다. 곧, 생각이 남성적이냐 여성적이냐. 물론 사안에 따라 한쪽 방식이 좋을 때가 있듯이, 대체로 절충적 시각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듯 남녀의 차이부터 달라도 너무 다른 거부터 문제다. 뭘로 보든 그 상반되는 시각은 만나면 만나는 대로, 어울리면 어울리는 대로. 아아 (절레절레). 
    여자 : 귀     /양   /고양이/여우/  꽃/명화/화초/항구/간접화법
    남자 : 귀걸이/늑대/개     /촌닭/화병/액자/화분/  배/직접화법
    여성적인 시각으로 볼 것인가. 남성적인 입장으로 고찰할 것인가. 차이는 적지 않다. 결과는 판이하게 바뀌기 마련. 그러니 주객전도도 흔하고. 상식도 안 통하기도 하고. 교양미 실종에. 모순은 드물지 않고. 불문율마저 유행처럼 바뀌고. 그래도 내 생각이 장땡이다 내 주관만 옳다면서 밀어붙여? 우기고 또 우겨? 내 말만 진리다? 들이대? 아니면 말고? 너 같은 촌년은 싫다면서 늑대가 치를 떠는데 제발 좀 꺼지라고 손사래를 치는데, 끝까지 달라붙고 들이대는 암컷 싸움닭, 끝내 힙합 가수를 죽이면 사회가 그걸 어찌 책임지나. 스토커 싫다는데 싫다는데 만나주라 만나 주라, 구애와 사랑 때문에 남자들한테 죽어나가는 여자가 과연 몇 명인가. 문명인 남자가 왜 갑자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돌변하냐고. 뜬금없이 호모 사피엔스? 고백이든 구애든 드레스 코드든. 웬만하면 소수가 다수에게 맞추고. 싫다는 사람이 싫다면 적으면 1번이요 깔끔하도록 많아야 3번에 포기해서 주변 사람들 골머리 썩이지 않기를. 그보다 스스로 판단해서 고백하면 가능성이 최소한 두 자리다 싶을 때나 용기 내서 어쩌는 거지, 막 그냥 똥파리처럼 아무한테나 들이대면? 그러니까 잘생기면 얼굴값이요 못생기면 꼴값이란 말이 있지. 못생긴 게 문제가 아니다. 못생겨도 오디오 이퀄라이저처럼 나머지에서 커버하면 되고, 실제 나머지로 매력이 철철 넘치면 정말로 사랑스럽다. 그런데 꼭 극소수 때문에 나머지 다수가 매도되는 일. 드물게 또 심심치 않게 있지 않냔 말이다. 찬물도 순서가 있는데 예식은 나이 넥타이를 맨 신랑과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위한 행사인데. 예법이 까다롭진 못할지언정 딴판이면 어떡하나. 그걸 편들고 억지 쓰면 어떡하냐고. 피치 못한 거랄지 사정 참고하는 건 그렇다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면 그게 뭐냐 그거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완전 잘생긴 미남이 있다더라? 인근 범위 어디까지 숙녀들 죄다 집합한다. 패스트푸드 버거킹에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 아가씨가 완전 이쁘다? 웬만하면 군침으로 끝나겠지만 똥파리부터 하이에나까지 가만 보면 철면피 때문에 파리 끈끈이 현상이 발생. 그러면 주변에서 죄다 치를 떨지 않나.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우물이 통째로 썩어버리지 않나. 그게 다 끼리끼리와 드레스 코드를 무시한 개인의 고집과 주관적 아집 때문. 타고난 건 어쩔 수 없고. 우물 안 개구리. 우물을 변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내가 성장할 것인가. 그래 봤자 연애라면 진보적으로 막 그냥 씨 뿌리고 바쁘게 어쩌고저쩌고. 그러다 결혼이 닥치면 최대로 고결한 정실감을 만나서 보수적으로? 그 남자한테 몸 바치고 마음 주며 한 시절 할애했던 촌년, 속 뒤집어지는 일. 고로 착한 척도 좋고 사석에서만 말할 게 따로 있을지라도, 원리가 어떻고 주인공은 누구며 리더를 직접 상대할 것인가 형식을 지킬 것인가, 라는 이치만큼은 너와 나와 우리가 다르지 않기를. 개성은 달라도 그건 틀리지 않기를. 너나 나나 고양이든 개든 우린 모두 속물이요, 이기적이며, 이중적이라는 점. 인정할 건 인정한 다음에 계산기 두드려도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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