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이란 단어에 아차-해서 몇 자 적어본다.
선험주자와 후발주자의 차이는 대충 말하자면 이런 거다.
선험주자 *후발주자
은행 계좌 개설 소요시간 1주일 즉시 또는 2~3일
은행 계좌 개설 필요사항 사인-전화-편지... 서류 위주
계약서 작성 꼼꼼히 ......
인수합병 기업(구-국가) ......
* 후발주자도 신용등급처럼 구분이 나뉠 테지만, 편의상 구분하지 않음.
* 후발주자의 후발주자에서는 미묘한 쟁점에 대해 주객이 바뀌는 일도 가능하다. 가령,
- 소비자의 권익 : 판매자 사업권 보장
- 가해자가 입증 : 피해자가 증명
- 배상이냐 : 보상이냐
- YES : NO (위자료에 정신적 요소와 미래 가치까지 포함하느냐 아니냐)
- 개인 보호가 먼저 : 조직과 회사와 체계 위주에 가깝냐.
선발주자에서 멀수록 후자에 가깝다. 후자는 그 이치상 구시대적 성격이 짙다. 전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때문에 집단과 기득권이 될 수 있는 진입장벽 자체가 높다. 힘이 있냐, 인맥은 있냐, (18세기처럼) 소개장은 있냐. 회사 만들기도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어렵고 힘들며 과정이 까다롭다. 아울러 그러니까 깡통 법인, 바지 사장, 신종 사기등 이런 편법이 통한다. 전자에서 대체로 이미 겪은 일. 그런데 불의의 피해자가 되지 않고 풍족하기만 하다면, 후자가 좋을 수도 있다. 또 전자라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후자는 전자처럼 법과 인습으로 일과 놀이의 제한이 약하니까, 놀고 일하며 1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다. 전자의 단점도 물론 많다. 위자료가 크니까 동거를 선호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므로 기업사냥꾼은 불법이 아니고, 브로커도 합법이다. 탐정도 역시. 하지만 중요한 건 문명이란 후자에서 전자로 이동하는 걸 편애한다는 점. 그래서 후발주자의 후발주자권에서 그런 일도 있다. 100명이 모여 사는 시골 마을 50미터 옆에 비교공장이 세워짐. 10여년간 통계를 내보니 이렇다. 주민 1/3이 암에 걸려 사망. 1/3은 암 투병중. 나머지 1/3은 콜록콜록 알약만 하루에 100개 복용&다른 약도 끼고 삶. 곧 콜록콜록은 투병이 진행중. 사람 뿐만 아니라 땅과 나무와 대기등도 사람과 비례하여 아프게 변함. 비료공장 직원의 건강은 어쩔려나 몰라도 이런 불합리조차 지지부진에 흐지부지다. 모순은 찾아보면 너무도 많은 것이다. 판매자와 소비자의 관계도 똑같다. 후자측은 판매자쪽 이익을 대변하는 것과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 가운데, 무슨 일이 있든 없든 대체로 소비재가 계속 잘 팔리도록 중재하는 데 힘을 쏟는 경향이 짙다.
하다못해 자동차의 시동 버튼과 엑셀 페달, 문 손잡이, 문과 문틀의 간격까지 교묘한 차이가 있다. A부터 Z까지의 공정이 있다고 하면 선발주자는 A와 B의 장벽 자체가 높다. 반면 후발주자는 장벽은 구분되면 그만이고, A라는 또 B라는 공정 자체의 효율을 극대화한다. 선발주자 방식은 공정과 기능간 장벽 자체가 높기 때문에 A와 B를 완벽하게 분리하는데 주력. 반면 후발주자 방식은 공정과 기능간 합리적인 분리를 신경 쓰느라 A와 B의 구분은 3단계 정도로 분리되면 그만. 선발주자의 철학은 A와 B의 구분은 훨씬 드높은데 반해서 후발주자는 그건 중간이면 되고 다른데 더 가중치를 둔다. 후발주자 방식은 B공정에서 C공정으로 넘어왔으면 C공정의 기능성 구현을 최적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그런 반면 선발주자 방식은 C공정에서 D공정으로 넘어왔더라도, D공정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조차도 C와 D의 장벽에 대한 부분까지 응당 D공정에 포함하는 듯 하다.
2
예를 들어 자동차. 최고급부터 저가 브랜드까지 자동차 액셀을 밟아보면 둔감하지 않은 이상 즉각 느낌이 온다. 토요타 프리우스를 타보면 흠잡을 데 하나 없고, 더없이 부드럽고 세련되며, 극도로 우수하고 매끄럽다. (그럴 것이다, 안 타 봤음) 한마디로 트집 잡을 데 없이 쾌적. 그런데 메르세데스 벤츠와 비교해보면 뭔가가 달라도 다르다. 왜냐하면 브랜드 이름 자체가 하나는 알파벳이고, 하나는 알파벳화했기 때문이다. 디자인도 그렇다. 포르쉐, 애스턴마틴, 페라리! 완벽하게 알파벳 스타일 디자인이다. 그런데 어디─또 어디─어디. 후발주자 가운데서도 절차가 까다롭고 형식을 철두철미하게 따지기로 최고를 꼽아봐도 그렇다. 딱봐도 그렇다, (전혀) 알파벳스럽지 않은 디자인이라고. 물론 막대한 자본이 투입됐는데 그럴 리가 있나, 과장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페라리 바닥을 보니 F1 기술을 하나 하나 옮겨놨구나 그런데 왜 다른 건 어쩌냐, 그 말이 아니라 브랜드별 포지셔닝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거다. 다른 말로, 원리! 기능으로 봐도 그렇다. 애플 아이폰 대 그외! 완전히 느낌이 다르다. 그래서 파나메라를 타는 사람 가운데 애플 아이폰을 쓰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0명일 것이다 라는 추산이 가능하다.
(참고로 자동차를 비롯한 소비재도 차이와 차별의 개념이 약간 모호함. 즉 소비재가 비싸냐 저렴하냐, 고급이냐 합리적이냐에 따라 품질의 차이는 있다. 다만, 물건을 팔고 난 다음 판매자와 소비자의 관계는 '양측의 돈독한 믿음&브랜드 이미지'와 비례해야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음. 주식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므로 주가 종목은 모든 소비자를 공평하게 VIP로 우대하지 않음. 말하자면 브랜드의 위나 아래나 완벽하지 않기는 마찬가지. 우선 고장률의 백분률은 차이가 난다. 품명-연식-옵션에 따라 그 차이는 커질 가능성이 큼. 야구에서 0점대 방어율 투수가 드물듯 대충 2퍼센트라고 가정했을 때, A++은 1퍼센트요 B--는 3퍼센트. 곧 기계는 사면 보통 97~98퍼센트 정상인데 나머지가 문제. 어떤 브랜드 새 차의 불량 비율이 가령 5퍼센트라고 치면 나머지 95퍼센트는 좋음! 곧 새 제품은 뽑기라는 말인데, 그래서 7개국어 77시간 검색은 소비자 몫이고, 광고는 별개. 그걸 뭐라 하냐, 평판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 슬리퍼는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면 좋고, 과정이 까다롭거나 어쩐다면 잊고 또 사면 그만. 전문용어로 기회비용인가 뭔가. 반면 인간의 삶은 1번이니 뽑기 보다 행복─사랑─자유 같은 의미에 치중하면 그만. 그런데 그게 아니라 새 자동차! 어머머머, 꽤 비싸네? MB 마이바흐 최고가 풀옵션도 엔진이 고장나 경운기가 되어도 새 제품 교환은 불가. 10번, 100번이 되든 실랑이 밖에 없음. 왜냐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는 안되니까. 모든 대책을 세워놓은 다음에 판매하고, 또 그 연구 비용까지 온전히 제품 가격에 포함되지만 문제가 붉어지면 브랜드는 여지없이 표정이 바뀌는 게 정상이다. 거기 딸린 직간접 식솔만 몇 명이요, 산업의 명운은 또 어떻고. 일부 현지 법에 따라 다를 수는 있으나, 이때 판매자와 소비자는 신뢰의 관계에서 법적 관계로 발전. 그러면 그들의 우정은 더 이상 공고할 수 없기 때문에, 미워하거나 좋아하거나 달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 그러니까 만약에 피고 대 원고의 관계로 도약한다면, 회사라는 공룡과 개인이라는 생쥐처럼 1 대 1이냐, 아니면 1 대 다냐. 아니면, 이상한 뽑기는 잊고 내 삶을 살거나. 또는 뉴스에 나오듯이 투쟁 또 투쟁, 남은 인생의 상당한 시절을 걸거나. 사람에 따라서 나뉜다. 또 분쟁의 대상이 제품사일 수도 있고, 사회 문제랄지 얄미운 터부와 게으른 관례일 수도 있고.
뽑기 문제라는 게 이렇다. 혁신은 어려우니 차근차근이면 좋은데 개선이 더디면 누군가 총대를 메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진보라는 건 뽑기라는 문제 인식부터 출발한다. 렉서스가 뜨고 크라이슬러가 고전한 이유. 현지에서 무작정 포드를 싫어하고 링컨을 편애해서가 아님. 그런데 세계 부호 순위 100 안쪽이면 신제품 교환해줄려나? 그건 모르겠으나 상식적으로만 봐도 쪼잔하게 VIP측에서 그럴 필요가 없겠네, 또 사면 되니까. 마이바흐나 커피포트나! 마이바흐가 전재산이라면 아마도 힘들것이란 예측은 어렵지 않다. 곧 알콜 엔진 사기가 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일단 코끼리는 순진하고, 당나귀는 착하며, 닭과 개구리는 사랑과 행복 밖에 모르거든. 서로 늬가 양이냐 내가 늑대냐 그 궁리하기 바쁘니까.
너무 고급 브랜드만 옹호하는 듯 해서─사랑 타령만 고집할 순 없으니까─꼬투리 하나 잡자면 이렇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대 과르네리처럼 서로 다르다 뿐이지만 큰 차이도 있다. 예를 들면 포르쉐도 페라리에 비하면, 약점이 있다. 왜 매니아들이 F는 여자의 감성이요 P는 남성의 이성이니 농담 삼아 그러냐면 다 통계 때문. F는 막대가 이미 눈금 끝을 똑똑똑똑 다급히 노크할 때 P는 어쩐다, 둘 다 몰아본 사람들과 관심 있는 사람들만 아는 사실이다. P의 엔진이 깨진 사례를 인터넷에서 찾기 역시 힘들지 않을 테고. 여자는 집을 다 태우는데 남자는 반만 태운다는 어디 속담처럼 F와 P가 여실히 비교된다. 그럼 그 책임 판명은 또 어떻게 하지? 그야 뭐 재보험사에 맡기던가 어쩌던가 당사자 소관.
따라서 그런 추정은 적잖은 신뢰도를 얻는다. 어떤 가설이 감별사의 선구안과 하트의 신뢰도를 훔쳤냐고? 곧 조류의 과학적 통계는 빈틈없이 수집될 것이라는 점. 그에 비해 육상과 해상을 누비는 기계는 집계 합산에서 빈틈이 발생. 일단 수학이 제일 앞서고, 의학은 중간일 테고, 뒤쳐진 그룹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정치처럼 소비자의 무관심은 평판의 와전과 광고의 과장, 정보의 왜곡을 불러올 가망성이 언제든지 있다. 모순은 상존, 타임머신도 공존, 난봉꾼도 실존.
그렇다면 소-주제의 결론은 이렇다. 위 내용은 즉각 중고차 시세에 반영되고, 뭘 하든지 간에 증시 역시 일찍이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 아아 겨울이 가까와 오는데 보일러 회사 주식을 살까, 아니면 부동산이 불패를 기록중이니 건설회사 주식을 살까. 이도 저도 아닌 사람도 있을 테니 우리 그냥 신분 상승을 노골적으로 문제 삼지는 말자. 차라리 행복업에 일조하는 복권을 사거나, 단골 바에서 바텐더와 경마 단타 전업에 대해 토론하는 걸로. 그외 개인택시 1인 사업권 거래, 부동산 매매 권리금, 동산 매매 양도양수 세금 납부 문제는 다음 기회...가 아니라 일단 전문가에게. 다시 '선험주자와 후발주자의 방식 차이'로 돌아와서,)
그 차이가 제일 큰 건 사고방식과 생활습관과 글이다. 중간 정도로 뚜렷한 건 정밀도의 끝까지 갈 수 있는 기계 분야이자 사회 전반적인 체계. 그리고 커피-맥주 같은 맛에 대해서는 그 차이가 덜 근소할 테고. 그래서 브랜드 품질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더라도 제품의 철학은 뭐가 달라도 다르니까, 아예 처음에 브랜드 창시부터 브랜드명을 알파벳 스타일로 만드는 일도 있다. 그에 따라 브랜드명은 사람 이름인 경우가 제일 많고, 과일이나 꽃 이름도 있으며, 다른 일반 명사도 있다.
다른 예로 소설. 악기에서 스타인웨이 앤 선스라는 의의. 침대는 어떨란가 몰라도 커피머신처럼 글도 차이가 있다. 시계 하면 스위스지만 필기구를 보면 초정밀도에서 후발주자가 나은 면도 있다. 그런데 기계가 아닌 언어. 선발주자에서도 나뉜다.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와 끝물로. 말은 끝물이라지만, 고전파의 호황은 덜 입은 대신에 다른 장르와 분야에서 최초와 선도역을 선취. 한창 재즈와 블루스와 현대 미술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F. 스콧 피츠제랄드 읽기를 시도하면 완벽하게 조지 거쉰과 상응하기 때문일까?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도저히 못 읽겠다. 억지로 꾸역꾸역 읽으면 읽겠지만, 시간이 없어서 중도 하차한 걸로. 언어의 특성상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 위주가 아니라, 그와 더불어 근대가 시작됐기 때문에 그 뭐랄까 멋은 극작가쪽으로, 우수함은 인문교양쪽으로 다 가버렸다고 생각하는 자칭 교양가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훨씬 이전의 헨리 제임스는 읽고 이디스 워튼은 읽고 싶은데, 나머지는 대체로 인문교양서만!
3
끝으로 왜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가, 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예시가 하나둘 점점 늘어나네? 때문에 관찰자로써 추리소설에서 한 역할 떠맡을 듯한 자긍심이 샘솟는다. 하여, 찬찬히 살펴보며 어떻게 그 둘이 달라졌는지 그 서사와 이치를 따져보자. 왜 그럴까 추측하자면 아마도 이렇지 않을 런지. 즉, 왜냐하면 개념의 차이 때문. 선험주자 방식처럼 <꽃 : 꽃병>과 <그림 : 액자>가 일정 부분 비례하느냐를 제1기본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후발주자 방식처럼 꽃의 가치와 그림 수준을 제1덕목으로 삼을 것인가! 맞춤복 대 기성복이다. 유럽에서 아무 미술관에나 들어가면 흔히 보이는 정물화. 그 정물화에서 꽃병을 눈여겨보자. 거기서 <꽃 + 꽃병>의 전체 높이에서 꽃병이 차지하는 비율. 바닥에 딱 달라붙어 있지 않다. 그런데 분재는? 화분도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화분은 병풍일 뿐이고 절대로 튀면 안되는 신부들러리일 뿐이다. <화초 또는 나무 : 화분>의 전체 높이에서 화분이 차지하는 높이마저 고급이면 고급일수록 현저히 낮아진다. 그림과 액자가 대등한 건 그것이다. 좋은 브레지어처럼 날 언제나 포근하고 고상하며 기분 좋게 만드는 애정. 실크 팬티가 왜 비싼 줄 알겠다고? 그렇다고 애들 입는 코끼리 팬티를 빼았지는 말고 우리는 호피 무늬를! 그래서 선험주자 방식은 멜로드라마의 사랑이 아름답듯이 CD 공정별 장벽이 높고, A와 B의 사랑은 사생활까지 꽤나 공유하기. 그런 반면 후발주자 방식은 이렇다. 미녀와 야수의 연애로 영화를 찍어야 한다면 공정간 장벽은 낮고, 개인주의적이며, 프라이버시가 앞서고, V공정은 V공정으로써의 고유한 기능성이 더 우선시된다. 그 차이다. 그 차이라고. 각자 장단점은 있겠지만 이렇듯 산업과 공학마저 보수적 철학과 진보적 관점으로 나뉜다. 주입식 교육이냐 아니냐까지는 건너가지 말고. 권위, 관례, 인습, 전통과 더불어 고전적 조각─건축─미술─문학 그리고 고전음악이라는 기반의 성격과 완전 놀랍게도 상응하는 차이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느냐, 백작이 재산을 탕진하다 끝내 타락하느냐. ~와는 다른 얘기고. 요컨대 개천에서 용난다 라는 말처럼 개인의 자유와 게임의 법칙은 현대적인 후발주자 방식을 비교적 더 선호한다. 반면 줄거리의 반전과 보수적인 식견은 고상한 선험자 방식을 적극 애호하고. 단지 완고한 선발주자 방식이 더욱 고루해지면 구식 탱탱 묵은 골동품일 될 수도 있고, 합리적인 후발주자 방식이 삐끗하면 싸구려가 될 수도 있다는 점. 고로 관건은 균형감이다.
추가로 기계의 언어에 대해서 잠시만. 기계를 누가 만들까. 사람이? 아니다. 기계가 만든다. 기계는 기계가 만든다고. 물론 사람이 설계부터 운반과 사용까지 할 테지만, 사람이 담당하는 측면을 빼고는 모두 기계가 기계를 만든다. 수공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계가 제품을 만든다. 그렇다면 기계의 언어는 무엇일까? 그렇지, 알파벳이다. 더불어 원소기호의 비율이자 공식을 비롯한 과학. 가령,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C, C++, C#, 자바, 자바스크립트, 파이선, PHP, SQL 등등. 그리고 0과 1같은 숫자. 곧 하드웨어는 선발주자에서 기반을 닦아놨고, 나머지 소프트웨어와 틈새시장 가지고 경쟁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걱정은 그것이다. 시간에 비례해 대체로 생명체 종의 다양성 하락을 경계함에 비해 주로 느는 것이 많다는 점. 쉽게 보면 환경과 지금은 예상은 하겠지만 실감은 먼 만화영화에나 나오는 일들. 곧, 인구와 지구 온도는 점점 느는데, 오히려 기계적 역량마저 함께 상승한다? 주식시장은 불과 얼마 정도 실물 경제를 앞서가지만, SF 작품은 그래서 미리미리 훨신 나중의 가능성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기 위해서.
한편 남녀의 차이로 비유해 봐도 큰 어색함은 없다. 정물화에 대해 타인이 어떻게 그 조화를 평가하는지, 남들이 그 비율을 어찌 볼 것인지에 화병은 관심사가 크다는 것. 그런데 꽃도? 크지 왜 아니겠나. 다만 화병보다는 훨신 덜하다는 점. 요점은 그거다. <1.과연 내 화병-꽃을 타인이 어떻게 볼 것인가 2.사랑> 비교적, 꽃이란 화병보다 순수히 그리고 결연히 2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꽃이니까. 내가 위니까. 내가 신부고 화병은 신부들러니까. 좋고, 옳고, 멋지다. 틀리지 않다. 모범안이고 권장할 만한 습성이다. 나쁘지 않다. 괜찮다. 그런데 지금 따져야 할 주제는 그것이 '아름답냐 아니냐', '어울리냐 아니냐'가 아니라 남녀의 명백한 차이다. 여자는 1과 2를 놓고 봤을 때 당연히 2를 압도적인 승자로 꼽는 걸로도 모자라,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는 격언을 결코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는 아니다. 남자도 비교적 남들 앞에서는 여자와 비슷하다고 하겠지만, 우리들끼리도? 글쎄요 글쎄요. 여기까지!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는 인간의 본능이겠지만 남녀의 차이는 존재하는 것. 기본적으로야 내가 뭘 입으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누가 나한테 뭐라고 했다, 어머머머 그 오빠가 나보고 표정이 많다고 하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이다지 기분이 좋을 수가! 라는 듯이 사고방식의 차이처럼 꽃과 화병은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아마도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루에 최소 24번 1년 365일 일평생 거울을 세심히 들여다보는 생활을 지속한다면, 원래 그래야 한다는 건 인습보다 본능에 가까울 테니 <꽃 + 화병>에 대해서 비교적 남자보다 개인차의 범위가 더 넓다-라는 것. 여자 세계에서 그거 모른 사람도 있나? 어른 뿐만 아니라 애들도 알 건 다 안다. 속은 다 있다. 우선 격식부터 남녀는 다르다. 바텐더가 1등을 누구로 꼽건 남자는 잘난 척이 예의다. 잘난 척이 우정의 척도가 될 수 있다. 때로는 내가 잘난 척하다 지치면 친구를 비하해야 한다. 그러다 다시 에너지가 차고 기 받으면 잘난 척 하는 거고. 반면 여자는 첫째가 겸양이고, 둘째로 자기 비하이자 친구 띄우기, 그리고 셋째가 그거다. 잘난 척! 더더군다나 잘난 척에 대해 최소한의 멍석이 깔리는 대상과 친분이 알게 모르게 딱 정해져 있다는 것. 나의 화장발, 나의 조명발, 나의 실루엣, 나의 귀걸이, 나의 교양스런 말투, 나의 상식적인 논조, 나의 고상한 취향, 나의 근사한 안목...등, 은 천동설에게 당연히 중요하다. 단, (이론적으로) 화병은 제외, 딱 제외! 왜? 왜냐하면 화병은 에스코트이자 의전이며 시중 드는 돌쇠 때로는 보디가드, 즉 왕자님이니까. 다른 말로 사랑일 뿐이니까. 하나는 거울 속의 나와 직접적인 단짝이고, 하나는 단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랑일 테니까.
평생 함께 해야 할 정체성─성격─생활상─교양이라는 전자, 인생의 동반자라는 후자!
전자와 후자를 어떻게 동격으로 견주겠나. 종 차체가 다른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전자는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 한다. 그러나 후자는 사랑하면 연인이지만 헤어지면 남남이다. 곧 영원한 타인. 때문에 여자는 그 둘을 함께 저울에 올려서는 안된다는 점, 금기 사항 중에서 무순위다. (여성잡지1과 2가 괜히 나뉘는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러나 남자는 여자와 다르므로, 따라서 그 둘을 일상적으로 시소에 올린다. 그래? 그걸 누가 모를까! 사랑 하는 바보와 사랑 받는 백치, 같을 수가 없다. 12명도 아니고 내 주위에 120명의 1.0 미만이 있다면 그 모두를 다 유혹할 텐가, 아니면 전부에게 덤빌 수는 없으니 범위를 좁혀가면서 간을 볼 텐가. 농담이 지나쳤지만 남자는 농담에서도 갈린다. 3000명의 궁녀가 만약 네 꺼라면 넌 어떻게 할래? 1 대 1로 3000명 전부 다 개별 면담을 해야 한다, 아니다 100 대 1의 경쟁률은 기본이다로.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은 그처럼 다른 것이다. 그러면 1.5에게 사랑 받아서 반쪽과 반쪽이 만나 하트 1개가 완성됐는데, 아직 그 사랑은 진행중이지만, 이제는 내가 1.0미만을 사랑하고 싶다구요? 그걸 왜 여기서 물으시요, 낭자! 아 글쎄 연애산업을 놔두고 말이오. 친구는 뭐 괜히 있나요. 다만 사람이 뭐 로보트도 아니고 지나치지 않게 남 얘기도 하니 만큼 기준은 다를 수 있다.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해도 사랑이니까. 오락산업의 역할이 뭔가. 하오나 남 험담하기가 취미고, 남 흉 보기가 일이며, 타인 흠집내기가 인생이 되면 곤란할 뿐. 그런데 어떻게 본 칼럼의 주제가 그것과 연관될 수 있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하나는, C공정과 D공정이 너는 너 나는 나! 다른 하나는, A공정과 B공정이 너와 나? 그건 지나친 억측도 아니라 억지에 불과할 뿐. 그래서 아마도 B와 C의 교집합을 얼마만큼 인정할 것인가에 따라 그 둘이 나뉜다고 보면 간단하겠다.
그래서-일까? 진도 빼는 플레이보이식 연애는 후발주자 방식일 거라는 예상. 안타깝게도 틀렸다. 하수는 몰라도 고수는 맞춤복도 좋아하고 기성복도 마다하지 않을 테니. 양다리는 멀티태스킹처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닐 공산이 크지만, 때에 따라 필요하다. 가령 먹으면서 걷기. 놀면서 생각하기. 자면서 꿈꾸기.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하기. 연애에 대해서 짧은 패턴을 각별히 아끼는 바람둥이가 철들고, 정신차려서, 전념하는 긴 행복을 만났다더라? 운명적인 사랑만으로냐, 아니면 그거 받고 찬란한 황금을 베팅하느냐. 고로 관건은 균형감이다.
진짜 끝으로 딱 한말씀만. 선발주자와 후발주자의 특징이 뒤바뀐 예도 있다. 바로 컴퓨터 운영체제. 그것으로 선발주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고, 후발주자는 애플사 맥의 운영체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는 실용성과 합리성을 추구했고, 맥 운영체제는 정교함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틈새 시장을 노렸다. 보기에는 맥북이 괜찮다. 이쁘고, 섬세하며, 글씨체가 좋거든. 그런데 윈도우가 일단 시장을 선점했고 과점했으며, 가격과 기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래서 맥북을 쓰는 사람이 맥북에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운영체제를 깔아서 쓰는 웃지 못할 일도 있다. 맥북 운영체제보다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가 훨씬 포괄적이기 때문에. 일종의 (50점짜리 지극히 정상적인) 허영심이긴 하다. 그런데 페이스북 회사 직원이 페이스북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애플 본사에서 윈도우만 쓰는 사람도 있다. 제일 흔히 보이는 노트북은 델이고. 그처럼 제품이든 양식이든 정체성이 많이 혼합됐다. 산업군에서 빅3의 안정성 주기도 짧아지기 때문에 기업들도 거미줄처럼 주식을 보유한다.
선발주자와 후발주자가 사람과 소비재에 따라 차이가 있다만, 그에 따라 차이와 차별의 구분이 흐릿해지기도 한다. 그건 다음 편 칼럼 '인구 이동 그리고 인종 구성'를 참고.
이상 시시콜콜한 잡담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