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역사학 3

from 칼럼 2021. 7. 15.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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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고대) 일본 천황은 백제인이다.
    B: 여자는 남자한테 잘보이기 위해서(만) 화장을 한다. 
    A&B에서 괄호를 빼고 읽으면 어떻게 될까? 여자들이 B문장을 듣고 일부(?)가 발끈하듯이, 또 누군가는 A 문장에서 생략된 게 뭔지 알면서도 흥분한다. 반면 다혈질이 정작 중요한 일은 외면한 채 (몸짓) 요만~한 일애만 분개! 역사왜곡은 관심도 없어. 국민세뇌의 대가는 나중 어떻게 부메랑이되어 돌아올지 생각해 볼 수 있나? 못한다. 왜냐하면 하냐 마냐에 앞서 사고체계가 원시부족처럼 작동하기 때문. 보아하니 과거 왜 북미 산업계에서 일본 주식회사라며 조롱했을까? 그게 다 원시부족 문화, 관습, 관례, 습성 때문 아닌가. 이 세상에 사이비 종교국이면서 잘사는 나라, 그런데 역사 관계된 것 만큼은 날조와 거짓만 통용되는 나라가 있나? 많을까? 딱 1개 빼고는 없다. 곧 국교 = 천황교 = 사비비 종교 = 교황 = 교주 = 천황! 그런데 Ctrl+C  Ctrl+V는 뭐다? 최신판에 열광. 따라서 現직위는 최초직과 동일하게 되기 때문에, 고로 現천황은 곧 천황교 교주인 것. 아닌가? 그래서, 바로 이 때문에 그분들께서는 역사에 그렇게나 민감한 것이다. 
    전세계 성씨야 문명의 흐름과 거의 비슷하다. 체코 성씨 1-2-3위, 브라질 성씨 10~20위, 퀘벡 성씨 기원. 또 서유럽 지명과 일상 낱말들 어원 분석. 그걸 알고보니 어떻다 라는 배경지식은 공통적이다. 지성도 일반적이다. 상식도 너와 나 아는 게 썩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누구한테 그렇게 칼럼을 많이 쓰라고 할까? 불리한 부분만 관계됐다 싶으면 전국민을 세뇌시켜서 좀비로 만들어버리니까. 가까운 역사에서 속으로는 우월감, 겉으로는 착한 척 또는 외면. 먼 역사에서는 속으로는 열등감, 겉으로는 왜곡해서 불리한 거 아무한테도 안 가르쳐. 숨겨. 거꾸로 우겨. 바꿔. 예를 들어 한국 성씨 대부분이 중국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사실, 누가 불인정하나? 아니다. 인정! 사실은 사실. 내국어 즉 말은 있어도 그 말을 종이에 옮길 문자가 없던 시절, 다 아는 일반상식일 뿐. 또 현-중국의 최동쪽 일부를 옛날 백제가, 만주 일대를 한동안 고구려가. 허나 말은 자국어일지언정, 그 말을 문자로 옮길 수 있는 언어는 없던 상태였으므로 중국어(한자)를 사용했다는 점. 하나도 창피하지도 않고 오직 사실일 뿐. 그런데 그와 같은 상식과 교양이 일절 통하지 않는 그 어떤 신비로운 동네가 아마 있다지? 대체 그곳은 어디일까! 누가 한국 몇 대 몇 대 대통령이 중국 성씨가 기원이라고 하면, 얼마든지 OK. 왜? 사실이니까. 허나 한국 대통령은 한국인. 반면 일본 총리도 일본인 천황도 일본인. 다만 일본 지명, 단어, 성씨 상당수는 대륙과 반도계. 천황 역시나!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발끈.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사실 위주로 잘못된 걸 바로잡기 위해서 A에서 괄호를 떼고 책 제목으로 정할 수는 있다. 허나 잘못된 걸 바로잡을 근거도 없는데, 옆동네 혐오산업이 발전한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둘의 차이를 정말 모르겠나? 인정 불인정의 문제가 아닌 게 지식이고 역사며 사실인데. 언어학,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뭘로 봐도 사실인데 전국민한테 거짓만 가르킨다라, 이게 대체 뭐지? 
    사고체계가 구시대적이면 문명인의 상식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일본계 페루인이 페루에서 대통령 됐을 때 일본은 전폭적인 지지를 했다더라? 뭐가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일본과 페루는 지구 정반대편에 위치한 나라로써 상호 얽힌 배경이 거의 없다. 그런데 그것을 비유해서 한국 성씨들은 중국 기원이기 때문에 모두 중국인이다? 무슨 논리가 그런가. 그럼 그런 비약에 따르자면 독일 + 이스라엘 =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2세가 이스라엘 총리를 해도 된단 말이네? 구시대적 사고체계가 그렇다. 바보도 그런 바보가 없겠지. 무슨 북미에서 피부색 다른 대통령이 최초 탄생했다 해서 뭐 금새~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줄 아시나 보지? 천만의 말씀. 응? 아직 멀었다. 가능하기도 어렵다. 그걸 대체 누가 모를까. 이게 뭐냐? 착한 척이다!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이게 위선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고, 가식적이지 않는 게 낫다. 즉 진담과 농담을 구분하듯이, 숲과 나무도 가릴 줄 알아야 한다 그 말이다. 가짜로 상대방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과 진짜로 호감에 바탕한 칭찬을 누가 구분 못하나. (남자가) A 문장을 읽으면 왜 그런 문장이 발생했는지 배경지식 뻔히 알면서, 여자들만 B 문장에 너무 과도하게 예민하다고 조롱한다? 말이 안된다. 그건 고추를 달고 살 자격이 없는 일! 더군다나 그런 억지스러운 착한 척을 다 큰 어른이, 심지어 한국어 사용자가 말이다. 그러니까 보수가 뭔지도 헷갈리지. 한국만 봐도 몽고와 중국의 DNA가 수도 없이 섞였다는 점 어찌 부인하겠나. 막 북방계 남방계, 다만 전체적인 맥락을 알아야지 맥락을! 역사만 봐도 (일시적으로 또 때때로, 오직 엑셀표에 근거하여) 몽고+한국=한국 왕가. 중국+한국=한국 왕가. 그게 역사. 부정 안해! 근데 누군가는 대체 왜? 원시부족이니까. 이러니까 구시대적 사고체계랑은 말이 통할 래야 통할 수가 없다. 한국도 1000년 전에는 딱 그랬다. 중국 황제 취임식에 사신을 보냈는데, 저번에 그 얘기 했네. 사고체계들이 죄다 봉건적이니까 그땐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치더라고. 지금 세상에도 그런다? 그게 말이 되나 말이! 편 들어줄 게 있고 이해해 줄 사안이 따로 있지. 무슨 상식이 꼬마들께서 씹다 버린 풍선껌인가? 아니면 길바닥에 버려진 콜라캔인가! 무슨 교양이 떼쓰고 우기고 내 꺼는 내 꺼 늬 꺼도 내 꺼라는 (속된 말로) 땡깡인가? 도대체 어떤 사고체계면 칼럼을 써도 써도 끝이 없도록 생각이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뭐 자랑인가? 
    세계사로 건너가서 아르헨티나 성씨 순위 9위인 고메즈씨한테, 족보 따지고 도표가 어디로 연결된다. ~라고 말하면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려계(한국계) 중앙아시아인처럼 자기들 출신을 자랑스러워한다. 매년 행사 꼬박꼬박 지낸다. 어디 신사 주지처럼 한국인들끼리만 결혼한 순수성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전세계에 꽉 찼다. 유대계 ½, ⅓, ⅔, ¼, ¾, ⅛....그거 모르시나? 그런데 어떻게 現천황이 초대 천황과 동격인가. 아니 어떻게 천황가가 만세일계일 수 있나. 패전했으니까 큰 선심써서 베풀어주는 식으로, 우리나 되니까 세계평화를 위해서 전쟁 종료해준다! ~라면서 인간선언하니까 또 이어지고 이어지고. 신국은 질 수 없으니까, 신국은 인간들 나라(따위)한테야 져서는 말이 안되니까 하는 수 없이 인간선언? 황가를 구경하려다가 유대교 행사처럼 압사한 사람들이 1950년대에 몇 명인데. 또 인간선언 해 봤자, 어차피 다음 대에서 다시 신격 회복 이미 했다. 그냥 자기들 마음대로 너는 터미네이터 나는 제우스. 막 난리도 아니다. 또 불리하니까 일반인과 결혼한 거지, 전쟁에 이겼고 환경이 도와줬으면 절대로 천황가는 일반인 황후를 얻지 않았을 것이다. 황후의 친아들이 천황이 된 사례는 1900년 윗 대로 10대에 걸쳐 단 1번도 없었다. 그리고 과거 천황가에서 15명 후손을 낳았는데 12명이 죽었고, 또 약 1960년 이후로 40~50년 동안 아들을 코빼기도 못났다. 그게 다 근친혼 때문인데. 그와 같은 불리한 사정 + 전쟁 패전 = 일반인 짜잔~! 그렇게 된 거지. 무슨 교양과 상식? 역사를 대체 몇 번을 말하게 만드나. 이러니 태평양 원시부족이 천황교 국가라 부를 수 밖에. 바로 그 때문에 서기 1,000년 이전 역사에 대해 죽어도, 아마 영원히 함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메이지 유신 전후로 무슨 명분도 없지, 한자를 쓰면서도 은혜를 원수로 갚았지... 인정하면 그건 야만인보다 더한 금수가 되거든. 지금까지 일관되도록 그랬는데 어떻게 전국에 쫙 깔린 신사들 안내판을 바꾸나. 절대로 안될 일. 그 전국에 쫙 깔린 20~30만 신사에 거의 다 있는 개 석상, 그게 고구려개라는 사실도 발언하고 아는 척하면 개인 인생의 미래는 각오 단단히 해야 하는데. 아니 외부인인데 어떤 사고체계여야만 그걸 감싸고 돌 수 있지? 그럼 그분 생각대로라면 영국왕실이 아일랜드인을 모셔서, 아일랜드 왕비의 아들이 차기 영국왕을 맡으면 되겠네? 답답한 양반 같으니라고. 그게 말인가? 그러니까 남 일 내 일 구분도 못하지. 그래서 남 일이라면 스포츠 조롱꾼, 내 일이라면... 내가 언제 그랬어? 그처럼 (몸짓) 생각 제대로 못하다가는, 역사는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반복된다. 아마 분명 그럴 것이다, 어? 두고 보면 안다니까요 글쎄. 괜히 지금 전세계가 이 난리중이간디? 무슨 겉으로만 점잖고 옷 차려입고 교양인인 척하지, 알고보면 사고체계는 순 야만인들 천지구만 그래. 어? 도대체 생각이 있나, 없나? 뭐 아침에 일어나면 생각을 베개 옆에다 놔둔 채 이런 주제에 대해서도 아는 척 못해서 안달인가? 착하다와 위선도 분간 못하면서 기준선은 고무줄인지 알루미늄 철선인지도 분간 못하면 어떡하나. 어른이 그래서 쓰나? 애들이 뭐 보고 배우겠나. 안 그래도 팔랑귀들 천지요 바보들은 더 많은 세상. 이 험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일조는 못할 망정. 더 더러워지도록 만드는 뭐 대회라도 있나? 그럼 유리할 땐 폼잡고 '하면 된다'를 가르치다가, 안되겠으니 또 좌우명을 바꿔. "아니면 말고" 로! 응? 이게 뭡니까, 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이건 아닙니다. 이건 아니라구요. 것 참 아실 만한 분들께서... 쯧쯧쯧. 
    자, 다시 앞서 2개 문장을 살펴봅시다. 평소에는 관용어 잘 구사하고, 말발 어디 가서도 안 빠지는데. 그렇게나 똑똑한 양반들께서 저 쉬운 간접화법도 아닌 넌센스를. 왜 직접화법으로 인식하는 걸까? 도대체 왜! 전생에 착한 척 못해 한 맺힌 귀신이라도 씌인 걸까? 그런 건가? 굳이 듣고 싶지는 않으나, 어떻게 변명할지 참... 안 봐도 훤하다. 그럼 만약에 저게 어렵다면 다음 문장들조차 구분 못하시지는 않겠지요? 
    (1) 옷을 잘 입는다.
    (2) 옷도 잘 입는다.
    (3) 옷만 잘 입는다. 
    설마, 어려울까? 그럼 이거!
    문명 vs 야만
    교양 vs 비교양 
    상식 vs 고급지식
    혹시, 내가 왜 이런 핀잔까지 들어야 하는 거지? 이해할 수 없어. ~라고 생각하시기에 앞서 그러니까 왜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꼬기 대회 우승감처럼 구시냔 말이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제 말이 틀렸습니까? 네? 듣는 귀 없습니까? 아니면 떠들 수 있는 입이 없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네? 아 글쎄 그래요, 안 그래요? 네? 왜 반응이 없어? 힘빠지네. (절레절레) 말이 나온 김에 묻는다만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 거니까, 누가 꼭 좀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야 저처럼 신통방통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를! 뭐 그 얘기는 다음에 더 자세히 하기로 하고. 다음으로 넌센스가 아니라, 농담 반 진담 반도 아니고. 진지하게 직접화법으로. 
    현 독일 총리는 프랑스인이 아니다. 푸틴이 뭐 몽고 사람인가? 즉 이건 현재. 그러나 옛날에는 달랐다. 프랑스인들이 영국왕들을 연임하고, 임명하며, 겸임했다. 그런데 그런 적 없었대. 응? 짜증나거든. 개인적으로 지는 비교에 대해서 기분 나빠하는 거도 아니고. 역사요 세계사인데... 싫으니까 싫다? 그렇다니까요 글쎄. 그럼 뭐 딴 동네는 뭐 좋아서 불쾌한 국사, 슬픈 시대, 짜증나는 지식을 가르치나? 그런 거 단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쏙 빼버리고, 왜곡하며, 유리한 것만 가르치다가는 나중 분명코 언젠가 제값 톡톡히 치를 것이다. 경고했다. 응? 기대하시라. 두고 보면 아니까. 이 사람들이 정말 칼럼이 뭐 장난인 줄 알어? 어? 이거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가난뱅이라고 뭐 보자기인 줄 아냐고. 어? 누군지 몰라도 너 잘걸렸다. 거 누가 하도 말 더럽게 많길래 묵묵히 버티고만 있었는데. 마침 잘만났어. 응? 심심하던 참이었거든. 잠깐이라도 재밌어진 거지. 허허허. 뭐 도전자가 제 발로 찾아온 건 아니나 어렵게 만만한 상대를 만난 거지. 허허. 그럼 환상기계가 뭐라는 걸 보여드려야지. 응? 그렇게나 원하신다면야. 겉으로야 져드릴지언정 신선초를 잘근잘근 씹어먹어드리겠다 그 말씀. 네? 도망가지 말고 딱 기다려, 어? 아니다. 시간없다. 시간 끌지 말고 한꺼번에 싹 다 덤벼. 뭐야 근데 다 어디 갔어? 알고 봤더니 어디서 몰래몰래 숨어서 덤비네. 캬, 잘한다 잘해. 잘났어 정말. 아니면 대체 여긴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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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문
   "혈통주의에 매달려 '일본천황이 백제인'이라고 주장한다면 노무현 대통령도 중국인이다 / 메이지천황 1250년 만에 조상의 땅을 되찾다 / 일본 천황이 한국인이라면 어떻게 되나. 일본 태생으로 페루 대통령에 당선됐던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비슷한 사례가 되겠다. 우리 친척이 일본에서 천황 노릇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우리는 어떡해야 하나. 당시 일본 전체가 후지모리와 페루를 물심양면으로 적극 후원했다... 고려의 왕씨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무너뜨리고 모진 핍박을 가했던 조선왕조의 이씨들을 원망했야 할까... 성씨의 유래를 살펴보면 현재 우리나라에 많은 김, 이, 박, 최, 정, 손, 배, 장씨 등은 모두 신라의 성씨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국민 대부분이 신라 사람들이지만 중국인 대통령이 다스리는 나라가 된다..."

   

    팔랑귀 / 줏대 없는 사람 / 주관 약한 허당 / 세계관과 안 친한 현대인 / 역사를 잘 모르는 학생 / 잔지식에 관심없는 그대 / 일반상식에 약한 어른....! 그분들께서 저 인용문을 읽고서 올바른 가치판단을 할 수 있으면 좋은데. 이때 머머할 수 있다, 가 아니라 어머머 그런가 보구나 라면서 설득당하는 일. 그래서 코 묻은 돈마저 오락산업이 좌지우지하는 것. 그 때문에 누군가는 정말 일복이 축복받은 것. 듣고보니 틀린 말도 아니구나 옳구나 라면서 그냥 100% 찬성. 그러면 OX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 봤듯이 유리할 땐 OX 불리할 땐 먼산 쳐다보기! (이래서 우리들이 그분들 구워삶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거다. 쥐락펴락 바로 그래서 우리는 아무 숙녀나 마음만 먹으면 싹 다 꼬신다. 농담이고) 더더군다나 과학이 발전하므로, 소비제는 점점 우리들의 사고력을 방해하는 쪽으로 발전한다. 그게 좋게 보면 인공지능인데 또 달리 보면 인간의 사고체계란 게으름을 너무 좋아한다는 점. 그러므로 인용문을 읽으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라면서 끄덕끄덕.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꽤 그렇지 않나? 천동설 사고체계가 친구들끼리 수다떠는 시간에 "남들도 다 그렇지 않나?"~라는 건 괜찮다. 친구끼리 담소니까. 그러나 그게 아니라 뭐든지 남 탓이라는 논리, 원시부족 문화는 대체 어떡할 건데. 그렇다고 배경지식을 나이와 비례해서 습득하려고 노력하냐, 졸업하면 자연스럽게 책과 멀어짐. (몸짓) 그럼 플라톤이 옛날 옛날에 말했듯이 그렇게 된단 말이다. 그래서 영화 대사는 흔하디 흔하게 그걸로 귀결된다. 즉 민중을 개, 소, 돼지, 말로 비유하는 것. 자, 그럼 저 인용문에 대해 간략히만 반박을 해볼까? 

   

    마크 롱 대통령이 프랑스인이 아니라고 누가 부정하나? 딴 때는 간접화법 그렇게나 좋아하고, 말귀도 잘 알아듣는데. 어째서 위선과 관계되니까 뜬금없이 직접화법을? 뭐 또 여자는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한다 그 토론하고 싶다는 건가! 답답한 어른들 좀 보소.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람이라는 걸 도대체 누가 모를까? 이란&이라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2세가 양국 아무 나라 대통령을 해도 된단 말인가? 멍청해도 정도가 있지, 한국 성씨들 족보를 따져서 중국 관련 뿌리를 불인정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그런 반면 일본 천황가는 어떤가? 입만 뻥끗해도 全일본이 난리난다. 참을성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월지언정 그땐 안 참는다. 응? 그 차이에 대해서 말하고, 1,300년인지 1,500년인지 일관된 역사왜곡을 지적하는 것이지 무슨 말 꼬리잡고 늘어지는 코메디인가? 700년 이전 계보가 억울하니까, 영국왕이 부모 성씨를 버렸던 것처럼 600년대 후반부터 800년대에 일본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임진왜란이 발생했으며,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계속... 전국민을 세뇌하는 흐름은 먼 미래 어떤 일을 예견토록하는데. 그런 예언을 뭐 할 일 없어서 할까? 뭔 말꼬리잡고 늘어지며 원리도 모른 체 착한 척만 하는지. 위선이 그렇게나 좋을까! 좋든 싫든 그건 개인의 자유나 이와 같은 주제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저분도 사고체계를 보니까 자기 생각 밖에 안하시네. (꼭 그렇지는 않고 알게 모르게 착한 일 많이 하시겠지만) 지만 잘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심보. 왔다 갔다!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의 차이가 그거다. 안 겪어보니까 몰라. 남 일이니까 막말해. 뿐만 아니라 가난할 때는 착하게 살아야지 그랬는데, 부자가 되고 보니 생각이 바껴서 졸부 중의 졸부로 앞장서. 응? 몽고 왕 또는 왕비 + 고려 왕 또는 왕비 = 고려 왕 또는 왕세자. 고려왕이 중국에서 원격 정치, 기타 등등 그런 모두 한국사에서 불인정하나? 대체로 인정한다. 허나 일본은 거꾸로 임나일본설에다가 불리한 건 싹 다 빼고 가르쳐요. 네? 그건 뭘 뜻하냐? 근대사는 정당성을 부여받고, 불리한 지식도 면책받으며, 대의를 위해서 얼마든지 역사는 반복되어도 좋다는 걸 뜻한다. 안 그런가? 자, 봅시다. 
    (1) 1,500년 동안 일관되도록 역사왜곡하는 게 문제인가? 아니면,
    (2) 1,500년 동안 일관되도록 역사왜곡하는 걸 바로잡자는 행위가 문제일까? 
    달걀과 닭도 구분 못하나? 스포츠 조롱꾼 말마따나 우리는 (심한 말로) 닭대가리가 아니다. 그런데 왜 새(대가리)라는 값싼 낱말을 연상하도록 만들까. 시간이 정말 귀중한 자원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뭣 때문에 남들 시간낭비 하도록 앞장서는데. 1,500년 장구한 세월 내내 일본의 역사왜곡! 그걸 지적하는 게 중요할까, 아니면 그 옳은 행동에서 간접화법을 직접화법으로 트집잡는 게 중요할까! 필자가 증말 이런 거까지 꼬치꼬치 지적해야 하나? 이거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나. 누가 좀비 아니랄까 봐 대체 생각을 할 줄 모르니까 그러시나들? 1,500년 연속 끊임없이 역사왜곡하는 목적이 뭔지 생각 안해보셨나? 도대체 원시부족 문화와 전통과 관습에 대해서 몇 번을 반복하게 만드나요, 네? 인문교양서의 제목을 넌센스로 설정한 건 그와 같이 심각하고, 심각하며, 더없이 심각한 사안에 대해서 꼬집는 의미인데. 무엇 때문에 그걸 직접해석하는데? 또 어디서 돈봉투 받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바보 중의 바보임을 공인받기 위해서인가! 당최 이해를 할 수 없는 일. 뉴질랜드는 잘 모르겠다만 일단 여성적인 문화에 대해서라면 대표적으로 잉글랜드와 웨일즈를 들 수 있다. 허나 거긴 교양과 상식이 세계와 공통된 문화권. 게다가 적어도 여왕과 조물주는 구별할 줄 안다. 더불어 최소한 국교로써 양다리 걸치지 않음. 보아하니 역사를 따져봤을 때 종교적으로 교황청의 천주교에서 기독교로 독립한 셈.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으로 영어라는 언어 역시나 독립! 그런데 어딘가는? 거긴 한마디로 국왕 = 교주! 나라가 사이비 종교국. 그러니까 그토록 1,500년 내내 역사왜곡을 하지. 왜 1,500년 내내 역사왜곡을 할까? 목적이 全세계인의 천황숭배니까. 실제 시도한 전력도 뚜렷! 혁혁한 성과로써 실현시킨 전례는 참으로 아름다울 지경. 바로 그 목적 때문에 Ctrl+C   Ctrl+V 하는 것. 그래서 20만~30만 신사 안내문에 적혀있기로, 기원전 기원전.... 싹 다 거짓말! 그런데 이상하게 심각해. 응? 완전~ 진지해. 죄다 연기력 최우수상감. 게다가 천황 죽으면 충신 가운데 하나의 머리를 레고처럼 떼서 볏집으로 어떻게, 또 수평으로 수직으로, 막 다음 천황이 全천황 시체 옆에서 목욕한 다음 신의 옷으로 갈아입어. 응? 그게 정녕 무슨 뜻인지 아직도 모르실까! 자, 만약 잘 모르시겠다면 교육을 알아보자.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간명한 비교만으로 이치를 깨닫게 될 테니까 말 그대로 짧게만 비교해봐도 된다. 

도표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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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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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책사/간신배/세력을 비롯해 나치와 아돌프 히틀러가 재차 나타나지 않도록 교육. 왜 그게 잘못됐나 똑똑히 가르침!
    일본     아돌프 히틀러는 신이다/신국은 인간국한테 질 수 없다, 고로 선심써줘서 큰맘 먹고 종료시켜준 일? 그게 일본의 전쟁종료일. 죽어도 패전일이 아님. 결과적으로 졌던 신국은 그럼 왜 전쟁을 시작했을까? 첫째 끌려들어갔다 즉 원인제공은 저쪽이자 모든 건 남 탓, 둘째 세계평화를 위해서! 그러므로 Ctrl+C   Ctrl+V 그렇게 20년 주기로 내궁을 뿌수고 또 짓고 끝없이 반복. 고로 제1대 교주 = 최신판 교주와 동일하게 됨. 그게 뭐냐? 천황교=민도=신도=황국=황민! 정상적인 종교와 사이비 종교의 차이점 딱 1개만 꼽자면 이거다. 정상적인 종교는 교주 있고, 나중 교황부터 신부 그 중간에 계급표 다분. 그러나 사이비 종교는 일단 자기가 교주, 또 자리 물려받은 사람들이 계속 교주(또는 교주급). 치밀하게 설계한 100년 전 황국사관, 무섭도록 오만했던 150년 전 식민지 사관은 따라서 어디까지나 정의를 위해서인 것. 절대로 가식이 아님. 그게 바로 절대선! 때문에 아돌프 히틀러는 우리 일본을 그냥 단순히 질투함에 지나지 않았고. 그러므로 일본의 제3 도전은 필경 이 세상을 위한 재도전이 될 것. 이 세상을 아름답도록 만들고자 한다는 데 그게 어디 나쁜 일인가? 절대로 나쁜 일이 아님.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교육은 (대략) AD 700년부터 지금까지, 또 미래까지 절대로 변할 수 없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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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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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왕 지위/ 권위  / 의미 / 국명 / 국민 /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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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왕     / 왕족   / 인간 / 국명 / 주권 / 천주교-기독교......
일본  천황     / 현인신/ 교주 / 황국 / 황민 / 천황교-신도-불교-사이비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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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해 1문단의 A 문장의 목적은? 잘못된 걸 바로잡기 위해서, 그러므로 말 뿐인 평화가 아님. 허나 일본의 교육은? 얼마든지 재도전은 정당하다, 1,500년 역사왜곡도 충분히 합당하다, 따라서 일본의 세계제패는 극히 타당하다 라는 논조. 맞을까, 틀릴까? 적어도 사실만 따졌을 때 (약) 1,500년 동안 단 1번도 변치 않았다는 점. 세계 자동차 회사들 주식 보유&비율이 거미줄보다 더 촘촘히 얽히고 설켜 있다는 사실, 어른들은 다 안다. 그런데 이 얘기를 왜 했지.. 뭔가 이유가 있었는데. 넘어가고. 어쨌든 미시마 유키오 같은 사람이야 잠깐 착오가 있었던 것이고, 또 인간선언도 단지 일시적으로 위기 모면 차원에서 벌인 수단과 방법에 다름 아니었던 것. 따라서 그 다음 천황은 당연히 신격에 복귀했다는 점. 물론 외부에서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걸 전통이라 부를 수도 있다만, 역사가 인정 불인정의 문제인가? 승자의 역사가 곧 세계사라지만 이건... 불행한 미래를 예견케 한다는 점. 나중 두고 보면 알게 된다. 다음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열되는 목적에 대해서 알아보자. 자, 다음 2가지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스스로 곰곰히 생각해보자. 
    첫째, 혐한산업
    둘째, 인문교양서를 통한 역샤왜곡 바로잡기 운동
    이건 한마디로 하늘과 땅 차이다. 첫째는 싫으니까 싫은 것. 1,500년 역사왜곡을 원위치로 복귀하라고 하니까 짜증나서, 되돌리는 건 억울하거든. 모든 걸 악녀한테(만) 다 맞춰주라는 심보. 허나 둘째는 그게 아니다. 잘못된 걸 바로잡자는 게 왜 잘못인가? 잘못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그럴 수는 없는 일. 그런데 저 첫째가 잘못된 걸 바로잡자는 건전한 심성에서 비롯된 산업일까? 그럴 리 있겠나. 그랬다면 어떤 칼럼 무수히 반복할 리가 없단 말이다. 이게 바로 문명과 야만의 차이점이니까. 1,500년 동안 얼마나 일관됐는지 누가 엑셀파일로 정리 좀 해주시겠수? 기준선 이상에 해당하는 성과만 봐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코무덤 귀무덤만 봐 보자. 동그라미(○) 바깥의 희생양을 억압해서 코무덤 귀무덤 전리품을 획책해가는 것 기뻐서 미칠 것만 같은데, 그 반대는 싫거든. 고로 임진왜란 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 아시아 정벌! 그마저 엑셀파일을... 연상만 하는 걸로. 그럼 거기서 끝이냐? 말 말자니까요 글쎄. 





    3

    기원전 그리스 제국이 유럽 일대에 문명을 전파한 사실, 전유럽이 그걸 부인하나? 아니다. 그럼 로마제국이 전성기 때 얼마 하락기에 얼마, 그와 같은 영향력에 따라 지명과 유적에 따른 근거가 현재 남아있다는 점. 유럽에서 제각각 그걸 유리하게, 불리하게 막 소설 쓰듯이 가르치나? 아니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이 어떻게 지어졌다에 대해 거짓말을 하나? 아니다. 기원전 8세기 중엽부터 발달하여 기원전 5~4세기 그리스문명의 증거를 불인정하나? 아니다. 그런데 어디는! 그래서일까? 
    2010년 3월 11일 일본 산케이 신문: "일본에서 강제 동원된 한인 수는 245명" (불과 그뿐/나머지는 모두 자의-애걸)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발생
    ......

   [문장]
    1875년에 일본에 명자필칭의무령이 발령되기 전까지 피라미드 최상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성씨가 없었다? 사실. 그렇다면 모두 야만인인가? 아니다. 그래서 피라미드 최상층에게는 성씨에 따른 족보라는 게 있고, 나머지에게는 비공식적인 어떤 방법이 있었을 것. 지하경제와 탈법 세계가 없지 않듯. 다만 공통적으로 피라미드 전체에 동일한 기준이 뭐냐, 이게 중요한데. 그 때문에 현재든 고대든 일본에서는 위로는 천황가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천민은 모르겠음) 모두 가몽이 있었다. 가몽이란 가문의 문장. 왜냐하면 이 가몽이 묘지(성씨) 대신 쓰였기 때문. 예를 들면 유럽 축구 구단들 문양, 소비제 브랜드들 상표, 각종 로고, 벨기에 시청들 깃발, 포르투갈 관공서들 고유 상표. 
    663년 백강전투 / 710년─784년─792년 수도 이전 / 720년 일본서기 / 710년 이후 일본 종교건축 양식 180도 전환 / 752년 세계최대 금동불 완성 / 800년 간무왕, 한왜 동종 서적 분서사건... 요컨대 600~800년 그렇게 대혁신 발생. 180도 전환! 다시 말해 혁명은 약 697년 일본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시작. 그런데 그 일본국은 그때부터 황국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한다는 점. 대충 700년을 기점으로 (마라톤) 반환점을 완벽히 돌아버렸으니 그 이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점. 그 방향성이 지금까지 바뀐 적 있나? 없다. 한결같음. 완전히 일관됨. 자, 반대? 없음. 있을 수 없으니까. 모두 사실 뿐이니까. 일단 180도 전환 계기는 그렇고 앞서 말했던 문장(紋章)에 대해서.
    가문의 문장은 왜 필요했나? 왜냐하면 무사계급 외에는 묘지(성씨)를 쓰지 못하게 했기 때문. 그래서 서민은 묘지 대신에 가문을 쉽게 구분하기 위해서 가망과 옥호를 사용. 옥호는 가령 점포명과 브랜드명, 가문의 문장은 유럽 축구구단과 북미와 전세계 스포츠구단들 로고. 즉 브랜드 상징! 즉 성씨 쓰지 말라는 봉건제를 우회하여 성씨만 쓰지 않으면 될 따름이요 나머지는 다 됨. 베니스의 상인처럼. 여기까지는 인류학, 교양학 감안하면 전세계 동일. 다만 평민 성씨 사용만 사용과 금지로 나뉨. 여기서 경우의 수 몇 가지로 나뉜다. 작위 / 성씨 / 족보 / 가문 문장... 다름 아니라 이게 바로 전세계 공통적인 봉건제도. 원시부족만의 고유한 특징이 절대로 아님. 여기서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제냐 연방제냐가 중요하다. 어떤 형식에 치우쳤냐 그에 따라 1방에 180도 전환은 단순히 국가 단위에서만 혁명적이지 않고,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역사적으로 연방제 성격이 중앙집권제보다 훨씬 강했던 독일&북유럽권역에서 비스마르크와 히틀러 출연으로 어떻게 됐나? 일본은 700년 이전은 부여와 백제계가, 700~800년에 혁신, 다시 나중 무사제로, 메이지 유신 때 다시 천황제로, 그렇게 군국주의로. 모두 오직 180도 전환만! 그렇게 앞서 말한 일관된 흐름으로 말미암아 문양의 전통은 임진왜란까지 변함없도록 단 1번의 오차없이 유지되었음. 비둘기파가 반대한 예시는 언제나 있었으나 663년 이후 일본에서 비둘기파가 득세한 전례는 지금까지 0에 귀결됨. 즉 있어 봤자 성과를 기대하지 못함. 그러므로, 
    도요토시 히데요시 가문의 문장 = 풍신수길 관련 신사들 문양 = 풍신수길이 등장하는 사극에서 흔히 보이는 장면에서는 바로 그 <오동잎> 문장을 보여줌. 그럼 거기서 끝이냐? 그럴 리 있겠습니까! 조선총독부 문장과 대만총독부 문장도 <오동잎> 문장 동일. 뭐 상식이니까 그럼 거기서 끝이겠지? 이래서 지식과 지성은 다른 것임. 현재 일본 내각총리대신의 문장이 무엇이냐? 똑같이 <오동잎> 문장. 풍신수길과 똑같음! 700년, 80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많은 게 변했으나 정작 최고로 중요한 핵심과 영혼은 단 1도 변치 않았다는 점. 풍신수길 관련 신사들은 물론, 풍신수길 기념탑, 풍신수길 기념관 박문관. 귀총 비총(귀무덤 코무덤)의 안내문을 읽어보면? "공의 이런 넓은 마음은 금일의 적십자사의 뜻을 (이미) 300년 전에 발현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좋을 것이다." 바로, 전세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듯 독재자 미화랄지 작은 히틀러 출신고교들의 자화자찬과 같은 이치. 700~800년 180도 전환 이후 지금까지 일관된 흐름, 바로 그 때문에 역사왜곡을 원위치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치. 백강전투 패배 이후 약 1,500년 동안 변한 게 없는데. 그런데 지금 와서 모두 바꾼다? 말이 안됨. 전국에 쫙 깔린 신사들 안내판에 씌여진 기원전...기원전...만세일계 억지 주장은 영원한 것. 전국의 축제와 안내판과 신사와 풍습과... 전부 알맹이를 알면 까무러침. 
    그 초지일관 때문에 비교적 과거에는 서일본이 극강, 현재는 권위는 중앙에. 1900년 전후 황족과 귀족을 빼고 공작 작위를 받은 건 조슈&사쓰마 출신 딱 5명이 전부. 당시 수상(현재 총리), 대장, 육해공 별들, 총독, 사회지도층 등 권력의 70~80%를 조슈&사쓰마 출신이 (반올림하면) 1세기 내내 독점. 그래서 깡촌 마을에서만 100여년 동안 총리만 15명인가...배출된 것임. 그게 뭐냐? 세습제. 신분제. 계급제. 봉건제. 흑백TV. 그래서 고려 불화들과 고대 문화재와 국보들...을 누가 만들었냐, 안내문에 절대로 근원을 밝히지 않음. 세계 최초 목조건물 세계 최초...호류지 머 머 머...그러나 절대로 뿌리 발언 금지. 궁내와 황거를 구경하다가 30~50명 압사하더라도 현인신 황가 계보를 연구랄지 발언은 절대 금지. 단, 원주민은 겁만 주고 이주민은 죽임. 아니면 영구히 차별. 임진왜란의 명분은 663년 패전과 그 이전 약 300년간의 기억을 뒤짚은 일본서기. 한일합방의 목적도 임진왜란 정신. 히틀러와 극명히 대비되는 히로히토 천황. 벗꽃이 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건 사실이나, 여왕벌 빼고 나머지들이나 그러라 하고. 본진과 1인자는 외면이요 책임회피이자 남 탓이 진심. 속마음 속의 속마음은 가해자-피해자 뒤바꾸기. 
    예를 들어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 그 역시나 히틀러의 최후와 완벽히 정반대. 프랑스 공사 레옹 로슈는 막부가 사쓰마-조슈 번의 군대를 진압하는데 프랑스군으로 지원하겠다고 했으나 요시노부는 이를 거절. 이때 영국과 프랑스는 군사 개입할 틈을 노리고 있던 중 내전이 길어지면 패망 모양새만 망가질 게 뻔하던 전세. 그럼 여왕벌이 초라하게 굽힌다? 목표는 인류 발전, 목적은 세계제패였던 제2차 세계대전 군국주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일본의 역할은 연합군측 가담이었으나, 아시아에서는 이미 악마의 역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측에 서봤자 별 이익 없으니까, 또 1급으로 인정해주지 않아 자존심 상하자 국제연맹 탈퇴. 가면을 제대로 벗어버림. 그렇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짐. 폐막식은 물론 신국이 선심써서 세계를 위해 전쟁종료해주는 걸로! 여자만 토라지면 침묵이자 고개 돌리나? 상대하지 않겠다 선언부터 여왕벌 심보가 반복된 예시를 엑셀파일로 정리하면... (절레절레)! 
    고려시대는 말미에 부패하고 어째서 멸망했다, 보통은 그걸 숨기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쇄국정책으로 시대를 못 따라가 세계 평균과 멀어지고 어쨌다, 고로 말년운이 안 좋았다 라면서 사석에서 너와 나 의견이 썩 다르지 않다. 통일신라가 무엇 때문에 국명이 바꼈다 대충은 다 안다. 그런데 뻔한 배경지식을 뭐 하러... 미화하는지. 왜일까? 그게 바로 구시대성인데. 고려시대에 원나라던가 어디로 사신을 보냈는데, 황제 즉위식에서... 사극에 보면 긴장되는 장면들. 그걸 모두 이겨내고, 목숨걸고서 이겨낸 채 귀국했는데 그런데 현장에서 받자마자 찢어버리지 않았다고 또 유배 보내. 그게 구시대성! 그런 비율이 많냐 적냐, 그걸로 원시부족 문화냐 그나마 상식과 교양이 세계 평균에서 썩 동떨어지지 않았냐도 알 수 있는 것. 구시대성 말이 나와서 말인데, 다른 분 말씀을 인용하자면. "겨우 30대 밖에 안되는 젊은 사카모토가 무슨 수로 당시 거물인 사이고와 키도를 만나 대업을 성사시킬 수 있었겠는가? 이는 사카모토 뒤에 영국의 무기상인 글로버와 그 이면에 있는 영국세력의 자금과 후원이 있었기 때문". 즉 크게 작게 자신감과 자긍심에 힘 실어주는 거야 전세계 공통일 텐데 정도 지나친 예시들. 한둘일까? 구시대성 얘기 나오니까 참지 않고 하나 언급하자면 이런 장점도 있다. 
    말하자면 구시대성이 평균이 됐을 때 장점, 그리고 그에 따라 자유가 없고 가식만 남는 단점에 대해서! 즉 서기 300~600년에 (현재 일본) 당시 왜나라에서는 부여제와 백제 제품이 최고급 상품이었다. 말하자면 정치인과 체계와 모든 걸 수입한 셈. 반면 왜나라에서 직접 만들고, 현지인들이 생산한 물품들은 값싼 비지떡. 속된 말로 환장을 했고 너무 차이가 나니 부글부글 싫은 감정, 지는 비교는 쌓이고 쌓이고 쌓이고...사회지도층까지 백제&부여계가 싹쓸이? 그래서 800년에 한왜 동종 서적을 전국에서 수거하여 불태우는 사건을 계기로 대전환. 그런 게 바로 혁명! 즉 문단 주제는 구시대성이니까 곁길로 빠지지 말고, 구시대성 장점 하나를 들자면 일본이 그래서 지금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 즉 외양은 대등, 내면은... 통과! 300~600년에 무슨 보따리상과 대규모 큰 상인이 있으면 있었지 수입 제도와 무역상이 어딨겠나. (때문에 수입이 아니라 이전이요 이입, 식민지 지배가 아니라 약한 결합이자 통치요 전국통일도 아닌 상태에서 백제&부여계만 신분상승 조건) 다만 당시 300~600년에 백제 제품과 부여제만 찬양 찬양. 그러다 700~800년에 대전환!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입품 사용금지는 일본에서 단 1번의 오차도 없이 일관되도록 유지됐다. (단, 수입품을 내수화하는 데는 국가 지원 또는 국가가 나서서 주도적으로) 물론 700~800년 계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른 건 맞지만 그게 단박에 쉽게 가능하지는 않았다. 고려 문화재와 고려 불화들, 조선놈들이 또 도자기를 오죽 잘만들어야지...뺏고 훔치고 그러다 단물 빠지니까 이제 서양 문화를 복사하고 훔치고 응용하고. 그렇게 지금에 이르름. 그게 곧 전통일 수도 있으나, 정신분석을 해보자면 천동설은 남 눈에 민감하기 때문. 어, 쟤 수입품 쓰네? 쟤 따돌려. 어, 쟤 나보다 좋은 옷 입었네? 백제옷이구나... 사극에서 원성을 들끓음. 그래서 백제-왜-부여 관련 서적은 모조리 불태워버림. 그때 이후로 뭐든지 복제하고, 응용하며, 더 잘 만들어서 현지 것만 쓰는 게 불문율이 됨. 안 그러면? 쟤 죽여. 쟨 때려. 저놈은 내보내. 쟤 가둬. 야 너 떠나. 넌 꺼져. 너 나가. 누구? 지구를 떠나라 그래. 넌 빠져! 하여 멜로드라마에서 대사들 흔히 들리는 게 머머해줘야겠어, 라면서 대세에 동조해라. 이탈리아제 옷이 좋고 독일차가 멋지다는 걸 왜 모르겠나. 그러나 그거 애용하는 게 입길에 오르고 눈총받는다? 그러면 죽는다 라는 원칙이 약 1,500년 동안 끊임없이 누적됐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한 것임. 그냥 아무 이유없이 남들이 내 뒤태를 어떻게 볼까, 타인이 나보고 뭐라고 했다 내가 어떤가 나보고 뭐라는데... 모든 게 다 그 천동설 때문. 자, 여자 세계에서 쥐꼬리 만한 월급받고 사는 형편 뻔한데,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 가방만 들고 다니는 영심이. 신분상승하고 싶어서 멋쟁이한테 교태부리고 아양떨고 여드름 짜서 대체 얼마나 번다고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 정말 그게 좋다면 거기까지는 괜찮을 수 있는데 또 자기 인생이요 자유다만. 허언증에 사람이 좀 그렇다? 전문용어는 물론 세상 사람들 다 아는 얘기. 그게 그냥 문화가 된 것으로 보면 된다. 
    한편 세상사를 보면 통상 0에서 1로 급변하는 예는 많지 않다. 다 0.00001...다시 모래알...다시 먼지...재차 영향...그게 1만년 5만년 이어지면 아시아가 죄다 평지였다가, 다시 동해(일본해)는 작은 호수에서 큰 호수로 바꼈다가. 지금으로 지형이 변하게 되는데. 그처럼 점점 유입...유입...땅덩이는 대륙으로부터 미세하게 멀어지고 멀어지고. 언젠가 언급했듯이 옛날 유럽 왕조가 장남의, 장남의, 장남의.... 그게 누적되어 어떤 특징을 보인다 지적했듯이. 솔직하면 죽음...죽음...따돌림...각오...벌칙...지도...죽음...그게 천년 만년 온전히 누적되니까 지금의 원시부족 문화가 탄생한 것. 그래서 숭불파 대 배불파, 결과는 누구 승. 그걸 감정 빼고 지식으로 대화가 되는데. 그렇다고 필자처럼 너무 감정적으로 칼럼을 써도 써도 끝이 없는 것도 좀 뭐하다만. 그렇다고 감정 없이 비인간적 로보트는 될 수 없으니 뭐든지 이퀄라이저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뭐든지 미화요 나쁜 건 다 남 탓이다? 그래서 1,500년 내내 역사왜곡. 하나도 변치 않음. 그 모든 것은 역사학, 인류학, 정신의학, 정신분석학, 토속신앙, 종교학, 고고학, 신학, 지리학, 언어학, 천문학, 풍속학, 민속학...철저한 배경과 고증을 바탕으로 토론했을 때. 내 말이 과연 틀렸나? 그런가? 어디 한번 얘기 한번 들어봅시다, 네? 말귀 못 알아듣는 양반도 아닐 텐데 뜬금없이 직접화법, 간접화법을 거꾸로 해. 응? 그게 뭐지? 뭘까? 대체 뭐냐고요! 
    에도막부의 마지막 순간만 봐도 그렇다. 최후의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성문을 열어 전화를 피한 일. 포장하자면 위신과 존엄을 지켰다고 치켜세울 수도 있는데. 지면 진 거지 뭔 말이 많을까? 성문을 연 사람은 쇼군이 아니고 전권을 위임받은 육군총재 가츠 가이슈니까 마지막 쇼군은 자존심을 지켰다는 말이잖아! 그래 봤자 쇼군이 충신한테 전권을 위임하지 배신자에게 위임할 리도 없었고. 그 둘의 마음은 완벽히 일치! 미국-영국-프랑스의 배경 탓에 하는 수 없이 쇼군 체제 폐막한 건 아름다운 퇴장인가? 반면 미국-영국-프랑스 외세의 압력을 똑같이 Ctrl+C - Ctrl+V 해서 한반도를 접수. 그러나 조선왕조는 비굴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라? 이것 봐라! 굽히지 않네...야만스럽게 왕조 대우해주지 않음. 지면 앞에서는 충성, 시간 지나면 미화? 물 한 컵 주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복수심을 전국민에게 복사시킴. 
   (여자가) 내 손으로 어쩌고 싶으나 어떻게 남자한테 껄떡거려? 톡~ 톡~! 이게 바로 천황교─여왕벌교─살쾡이 문화─사이비 종교라는 점. 천동설 원리 뭘로 봐도 뚜렷하다. 아름답게 대미를 장식한다? 유종의 미가 아니라, 끝만 있고 아름다움은 없다? 아름다움만 없으면 그나마 나은데 그 대신에 그 자이를 핑계가 차지! 응? 따라서 변명만 길고 좋고 많게 됨. 내 말이 틀렸나? 좋은 건 다 우리가, 나쁜 건 다 남 탓. 이건 뭘 뜻하냐? 무조건 봉건제 문화는 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천황교와 교주와 교도 등 모든 것은 개개인 전부 다 미시마 유키오거나, 또는 싹 다 그림자 쇼군! 우리가(애독자 평균)이 아는 남자는 단 1명도 없다는 뜻. 임진왜란 이전에 무수한 탐정과 염탐꾼과 현장요원들을 조선에 파견해서 캐낸 정보 가운데서 어째서, 대체 왜 충청도 사투리를 편애했을까? 어조와 리듬도 한몫하지만 중요한 건 정신! 현재도 마찬가지. 겉으로는 부끌부끌 수줍수줍 친절친절... 속으로는 응큼 교활 비열. 물론 좋게 말하면 또 얼마든지! 그래서 야마토 일반인들 상당수도 충청도 사투리를 좋아함.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국적인 느낌과 부드러운 분위기에 떠밀려, 충청도 (나도) 충청도 알아요 좋아요~! 와줘서 고맙다 플랑카드 플랑카드. 건너가서 애국가 불러주고, 돌아와서 혐한시위 앞장서고. 앞에서는 일말의 악의도 없는 것처럼, 속에서는 앙심과 복수심과 틈만 보이면 머리 꼭대기로 올라가고자 때를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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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황가 팔각릉]
    도표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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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 형식    특징/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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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대 서명(舒明)    팔각릉       익산 쌍릉은 무왕의 가묘, 서명천황릉은 진묘? 
35대 황극(皇極)    팔각릉 
36대 효덕(孝德)    원분          무왕 부인인 사택왕후의 남동생/35대의 남동생
37대 제명(齊明)    팔각릉       35대 = 37대 동일인물
38대 천지(天智)    팔각릉       궁내청은 1987년에 이미 팔각릉 인지, 허나 오래 숨김
39대 홍문(弘文)    원분?         중간에 퇴출당함/1870년에 공인받아 족보 오름
40대 천무(天武)    팔각릉       군주 스스로 자신을 천황으로 명칭한 게 40대가 최초!
41대 지통(持統)    팔각릉       40대&41대는 부부 합장
       초벽황자     팔각릉
42대 문무(文武)    팔각릉

이후 43,44,45......황릉부터는 다른 형식을 띰. 즉 전방후원부, 방분, 원분 순서로 사례가 많은데 42대 이후로 팔각릉은 미발견. 완전히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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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2010년 9월 10일 일본 주요일간지들은 대서특필했다. 제37대 제명 천황 능이 당시까지는 논란만 분분했는데. 8각형 봉분 발견 때문에 나라현 아스카촌에 있는 무덤을 제37대 제명 천황 능으로 (공식)확정! 천황 무덤은 주로 전방후원분인 전통과 달리 매우 이례적인 발견. 즉 전방후원분이 대세였는데 37대 제명천황능이 발견됨에 따라 아스카 시대 약 100년 동안 모든 왕릉이 팔각으로 만들어졌음이 밝혀짐. 34~42대 천황릉이 모두 팔각릉이라는 건 무얼 뜻하나? 그걸 알려면 가장 최근 고고학 성과를 옅보면 답이 나옴. 
    2010년 9월 10일 37대 제명천황능 발견보다 1년 앞서. 2009년 1월 14일 (한국 익산) 미륵사지 서쪽 석탑 해체보수 현장에서, 1층 심초석 윗돌을 들어올리는 순간 사리와 금판 등이 발견됨. 그에 따라 복수 왕후론이 제기되는 등 아직까지 속시원히 비밀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게 중요한 대목! 제34대 서명천황이, 서명천황 11년 서기 639년 12월에 9층탑을 세웠다는 사실은. 639년 백제 미륵사 서탑의 건립연도와 일치! 발굴된 미륵사 금판 명문에 기록된 날짜와 일본서기 9층탑 기사는 약 12달 차이가 나지만, 같은 해에 9층탑 주조는 놀라운 공통점. 게다가 왕릉 외에 팔각릉은 다수 발견. 즉 팔각릉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집중적으로 발생했다가 중단됐다는 점. 
    그럼 팔각릉이 뭐가 문제냐? 요컨대 일본 전통식 무덤이 아니기 때문! 그래서 궁내청은 40대&41대 합장릉이 팔각릉이라는 사실을 1959년과 1961년 이미 확인했지만 무려 50년 이상 그 사실을 꼭꼭 숨겼음. 무려 반올림 1세기를 숨겼다고? YES! 그러다가 2011년에야 겨우겨우 요미우리 신문이 폭로해서 밝혀짐. 물론~ 요미우리 신문이 어떤 언론사인데...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절대로 아님. 단언컨대 마지 못해~ 할 수 없이, 방법이 없으니까, 등떠밀려서 차마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에 늦추고 늦추고... 짜증나도 더 늦었다가는 망신살만 더 사기 때문에. 따라서 겨우겨우 뒤늦게 지각해서 2011년에 의도치 않게 폭로한 것임. 다시 말해 1988년 일본 황실의 무덤을 관리하는 궁내청 서룽부가 (국방백서처럼) 해마다 보고서를 발간하는데. 요미우리 신문 문화재담당 요자와 코타로 기자가 8각형 내용을 발견. 그게 1988년도. 그로 말미암아 요자와 코타로 기자는 이를 계기로 문헌을 뒤져 1696년 전왕묘릉기, 1808년 문화산릉도를 근거로 200년 전부터 팔각이란 인식을 확인. 다만 혼자만 알던가 학계에서 쉬쉬 (몸짓). (돈봉투랄지 007가방까지는 모르겠음) 그러다 마지못해~ 2011년에 요미우리가 터트림. 그럼 50년 이상을 궁내청이 그 사실을 왜 숨겼을까? 알려지면 짜증나니까! 유리하면 즉각 공개했지 왜 안 했겠나. 불리하니까, 응? 팔각릉은 일본식이 아닌데? 물론 학계에서는 그 이전에 서로서로 다 알고 있었음. 어떻게 모르겠어요. 또 1972년 3월 아스카에서 다카마쓰고분이 발견되었을 때, 일본의 역사소설가이자 역사연구가인 마쓰모토 세이초는 이렇게 밝힘. 
   "게다가 이번 것이 원분이라는 것도 중요한 점인데 한국의 묘는 다 원분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본황족은 아니다. 일본황족 관계자라면 전방후원분이 된다."
    그런데 나중 34~42대가 모두 8각릉이라니! 앞서 언젠가 말했듯 2001년 천황의 (저렴한 표현으로) 정신나간 발언 때문에 전일본이 들려졌다 놔졌다가, 全사회지도층이 약속이나 한듯이 광분하며 바빴던 사태처럼. 극히 유감스러운 사건. 극도로 짜증나는 사실. 그럼 명시적으로 밝혀지기만 50년 이상, 추정컨대 최소 100년, 문헌 자료를 총합하면 이미 500년 전부터 다 알고 있었으면서 일본서기처럼 뭔가를 숨겨왔다는 말은 뭘 뜻하냐? 바로 바로 38대 천지 천황릉을 모범으로 삼아 122대 명치(明治) 천황릉도 축조했는데. 뭐야 이제 와서 8각릉? 일본 궁내청이 숨기고, 감추고, 쉬쉬하며,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동안 우물쭈물 엉망진창 모든 게 꼬여버림. 보아하니 역대 일본에 천황이라는 타이틀을 최초 안겨준 제38대 천황. 일본이라는 국명도 그때쯤 시작했는데. 그 거룩한 분 왕릉이 8각릉인데. 그걸 상원하방으로 알고서 이미 명치(122대), 대정(123대) 두 천황릉을 지금처럼 만들었다라...! 그걸 인정하면 그 후에 죽은 소화(昭和)천황릉은 또 어쩔 건데? 그래서 끝까지, 끝까지 숨기고 감추고 어물쩍. 34~42대가 팔각릉으로 확인된 이상 만약 후대 천황들 무덤 상부를 그냥 원분으로 만든다면, 그것은 천황의 무덤이 아니라 천황을 모시던 수장급인 소가씨나 물부씨 정도 또는 일개 삥바리 무덤 정도로 격하시키는 일. 불경도 그런 불경이 없음. 그럼 현천황 무덤은 어떻게 만들건데? 고민 깊어짐. 비밀 탄로남. 뻔뻔함으로 그 짝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얼굴 두꺼운데... 극히 당황함. 난리도 아님. 이미 2001년에 대동단결해서 얼굴마담을 허수아비이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만들었으며. 전례는 전례는... 1,500년 내내 역사왜곡을 일삼았는데. 이제 와서... 이제 와서... 이래도 탈 저래도 탈! 
   (A) 2009년 (한국) 미륵사지 금판&사리 등 발견*
   (B) 2010년 9월 10일 37대 제명 천황능 8각형 봉분 발견
    * 미륵사를 건립한 무왕의 왕후를 선화가 아닌 당시 백제 최고 관직이었던 좌평 사택덕적의 딸로 기록 (금판 명시)
    * 참고로 미륵사 석탑에서 발견된 금판은 제작이 금은동 모두 포함. 곧 86.05wt.%의 금에 13.95wt.%의 은이 함유. 앞면 99자 뒷면 94자 전체 193자. (금빛)금강경판 제작과정은 (1) 먼저 청동으로 만든 금속판에 글자를 뒤집어서 새기고 (2) 그 위에 은판을 대고 작은 망치로 두드려 글씨를 새겨 넣은 다음   (3) 최종적으로 수은아말감 기법을 이용해 금도금. 
    이게 아마 A&B가 아니었으면 영원히 숨기고도 남았을 것이다. 안 그런가? 백제 사람처럼 입고, 말하고, 행동하며, 살았던 제38대 천지 천황. 뿐만 아니라 모든 게 백제식이었던 천황가 전통. 무려 1,500년 동안 신분세탁해줬는데... 이제 와서? 이제 와서? 충격! 엽기! 왕짜증! 수치! 울분. 격분. 당시 음악도 백제 악기도 백제. 제사도 백제. 모든 게 백제. 국가 체계도 백제. 정치인도 전부 백제. 그보다 더 앞서는 부여계가 또 100년인가 150년인가. 그런데 이제 와서? 세계 최대라는 자부심으로 全일본인에게 자긍심을 뜸뿍 안겨줬는데... 세계 최고 호류지를 비롯해 국보와 무수한 문화재에서 백제인 출처를 싹 다 숨겼는데... 이제 와서? 자존심 구김. 심하게 구김. 망신살만 망신살만...! 표정 이상해짐. 아마도 똥씹은 표정? 전세계 피라미드 많기로 1등인 멕시코. 질 수 있나? 전세계에서 무덤 많기로 아마 일본이 1등. 고분의 나라라고 할 만큼 무덤이 많은데 그 무수한 고분 가운데 팔각 무덤은 지금까지 겨우 15기 정도. 그러나 그 핵심은 아스카 시대의 천황 4대라니! 때문에 일본 학계, 정계, 재계......全사회지도층은 관련 자료가 없거나 인정하기 싫은 사료는 있어도, 불리한 건 속시원하게 극복해줄 만한 뭔가는 없기 때문에. 따라서 극도로 당황.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도대체 뭘로 역전시키지? 없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음. 칼럼은... 아니 어쩌자고 저렇게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는지 미쳐버릴 지경. 그냥 돌아버리는 거지 (절레절레)! 





    5

   [일본내 팔각 양식]
    자, 변명대회 바빠진다. 불교에다 팔각릉을 연결할까? 그러나 불교에서의 팔각원당 창건 시기를 고려하면 그게 8각릉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하는 건 애들 장난. 일본서기에 8이 또 많은데 그걸... 지나친 비약. 것도 설명이 안됨. 그럼 중국 쪽에서 근거를 찾을까? 마땅한 게 없음. 등에 식은땀 쭉남! 그러다 일본의 노래집인 만엽집을 들여다보는데. 이렇다 할 해법이 없네. 그렇다고 도교에서 영향을 찾는다? 한마디로 어거지. 중국 제사 양식을 흉내내어 중앙집권제 강화로써 접근하면 어떨까... 중국에서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경우 명당을 세우는데. 이때 원과 네모난 언덕, 팔각의 단을 만드는 건 하늘로 향하는데 그걸 또 땅 속 무덤으로 연결한다는 것도 영 뒷맛이 개운치 않음. 결국 억지! 고로 역공당할 우려 매우 큼. 팔백만의 신들을 빙자하자니 34대 서명(舒明) 천황보다 80년 늦은 훨씬 후대에 채록됐고, 수차례 편집에다... 것도 아니란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부정해야 할까? 오사카 시립박물관에 있는 나니와궁 모형에 팔각형이 있지? 근데 추정하는 건물 완공 시기가... 서명천황이 죽은 후 11년도 넘은 일인데. 그 팔각분을 설명하면서 왜 그 지역이어야만 하는지 역시나 꼭꼭 숨기는데 것도 안돼. 더더군다나 나니와궁은 중대형황자와 중신겸족이 쿠데타를 성공시키고, 35대 황극천황의 남동생을 36대 효덕천황으로 앉혀서 뒷맛인 씁쓸. 왜냐하면 백제 무왕 부인인 사택왕후의 남동생이 바로 36대니까. 35대의 남동생이 36대 효덕천황....나니와궁 얘기만 나오면 덮기에 급급한 이유. 일본 고대 팔각형 건물 가운데 제일 크고 제일 오래됐지만,,, 짜증나도 나니와궁이 34대 팔각릉과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다는 걸 아니까 더 짜증. 그럼 당연히 나니와궁과 34대 팔각릉이 같은 형식 같은 시기였다면, 발주자는 당연히 중대형황자(나중 34대)와 중신겸족. 요컨대 살아 생전 34대가 팔각릉을 미리, 이미 설계했단 얘기? 일단 34대 서명(舒明) 천황부터 살아생전 백제천 옆에 백제대사를 세우고, 죽은 다음에도 백제식 빈소, 살아있을 때도 백제옷에.. 죽어서도 팔각 무덤에다 궁전에 팔각건물. 부글부글 짜증만 증가. 결국 구백제 세력에서 새로운 백제 세력의 상징이 바로 첫째 34대 팔각릉, 둘째 나니와궁! 물론 그 둘을 거의 동시에. 아스카 궁전들 가운데 팔각 형식이 일부 있어도, 백제 익산 왕궁리 유적과 판박이니까 (절레절레)! 그러므로 나니와궁 발주자가 34대면, 나니와궁과 아스카 궁전들 설계자는 백제 무왕 계파들이군. 
    다음으로 일본 최고(最古)의 목조건축물이며,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선정된 호류지. 그 내부에 벽화... 완전 백제란 말이야. 성덕태자를 묘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원래 이름은 허공장보살로써 백제에서 만들어진 것. 그 호류지 동원에 있는 몽전이 팔각형 건축물이고, 백제에서 보낸 구세관음상도 이 몽전 안에 있다가 발견됐는데. 우선 호류지 몽전부터 일본 내에서, 한국식(조선식)으로 만든 가장 오래된 건물. 뭘로 봐도 짜증난단 말이야. 어떡하지? 어떡하지? 근데 괜히 호류지 몽전을 말했잖아? 왜냐하면 성덕태자가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을 일본학계가 끊임없이 말하는데, 그럼 그걸 주도한 사람이...그 때문에. 즉 일본서기 편찬 당시 실력자였던 등원부비등(후지와라노 후히토)가 위조작업을 설계했다는 것까지 밝혀지면 곤란한데. 등원부비등은 등원겸족의 둘째 아들. 등원겸족은 천지천황(중대형황자)를 도와 그의 집권을 가능토록 한 중신겸족으로서. 사극으로 치면 개국공신 1번타자. 그가 죽기 전에 천지천황이 그에게 등원(후지와라)라는 새로운 성씨를 수여! 후지와라? 이런~ 젠장! 단순히 신하&충신...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곧 등원부비등이 천지천황의 아들? 등원부비등이 일본서기 제작팀 팀장급이니... 그럴 만도 하겠네. 천지천황이 아들(?) 등원(후지와라)에게 새로운 성씨를 수여했는데, 하필 그 성씨가 향후 일본 천황가와 사회지도층을 1300년 동안 쥐락펴락.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그리고 1954년 유적지 조사에서 팔각 기단이 나옴.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황태자가 되어 먼저 효겸천황으로 재위, 다시 두 번째로...! 어쨌든 발굴 당시 27미터에 달하는 8각 기단. 중간에 변경되어 팔각7층탑 건립은 중단되고, 그 대신 보다 건립하기 간편한 사각탑으로 축소해서 5층만 만들었다가 전소됐는데. 일본 최초의 불교설화집인 일본영이기는 822년 출간. 거기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옴. 
   "좌대신 등원영수가 서대사의 탑을 팔각에서 사각으로, 7층에서 5층으로 변경하였기에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러니까 왜 칭덕천황은 그 어려운 팔각탑 건립에 사력을 다했을까? 답은 뻔하니 넘어가고. 아무튼 팔각탑 건립에 대한 시도들은 집요했음. 쿄토 법승사에 높이 81미터에 달하는 팔각구층탑. 1208년에 벼락을 맞아 타버렸으나 5년 후 재건, 그러나 또 1342년에 소실. 또 후제호천황(재위 1318~1339)이 잠시 의탁했던 요시노 금봉산사 팔각삼중탑. 그러나 이 절에 들어가는 문부터 일본식이 아니라 한국식. 게다가 관련 전설도 백제쪽. 심지어 거기 아름다운 벗꽃을 심은 사람조차... 신경질 파팍. 이렇듯 중신겸족과 천지천황 이후에도 계속 팔각에 대한 집요한 열의. 끈질긴 집착. 추모. 영생 기원. 의식. 제사. 일본서기처럼 몇몇 팔각 천황릉조차 후대에서 다시 조성했던 근거들 다수. 천황이 못되면 팔각 전각이나 탑을 세워 사후 그들을 위로. 그건 곧 등원부비등(후지와라 후히토)가 천지천황의 아들이라는 얘기가 단지 속설이 아니라는 건데. 곧 팔각은 (새로운 왕권과 분위기 쇄신과 민심 안정을 위한) 천지천황과 중신 집안의 상징격! 남자의 경우에는 팔각릉으로, 여성의 경우에는 팔각탑이나 팔각전으로 만드는 게 전통. 그럼 왜 팔각릉이 42대에서 끊겼을까? 마지막 팔각릉에 묻힌 문무천황은 천무천황의 손자이면서, 천지천황의 딸인 지통천황이 후견인이었기에, 당연히 팔각릉에 묻힐 수 있었겠지만, 그 뒤에는 고모들이 이어받게 되다보니 이제 팔각릉에 대한 신앙과 전통은 희박해졌기 때문. 즉 권력이 바뀌니 전통도 바뀜. 구식은 팔각탑과 팔각전으로만 대신하고 제사만 지내면 됨. 
   자, 여기서 얘기를 교토 천용사라는 절로 돌림. 황실에서 죽은 천황에 대한 명복을 비는 절인데. 이 절의 영명전에는 천지천황부터 효명천황, 소화천황에 이르는 역대 천황들의 위패가 봉인되어 있음. 그런데 여기에 40대 천무천황부터 46&48대 칭덕천황에(46&48대 겸임) 이르는 천무계 천황 8대 7명에 대해서는 위패가 없음. 즉 일본 황실에서는 천무계는 자신들의 직계조상이 아니라 별도계열로 본다는 뜻. 요컨대 직계로 불인정! 그래서 팔각릉 조성 전통 명맥이 끊겼다는 설명도 가능. 그러니까 칭덕천황도 천지천황 직계임을 강조하고 싶어서 팔각탑 건립을 극구 노력했다는 점. 다음으로, 
    2000년 전후에서야 찾으면 많겠으나. 그걸 왜? 1900년 전후도 상관 없고. 아하~ 법륭사 몽전과 함께 팔각건물로 유명한 게 영산사 팔각원당도 있지? 그런데 이 팔각원당은 등원부비등(후지와라노 후히토)의 아들인 등원무지마려가, 아버지 돌아가시기 1년 전에 세운 원당. 일본서기 제작팀장이자 후지와라 성씨 부여받은 것도 그렇고. 결국 동북아시아 최초의 팔각건물지인 고구려 환도상서에까지 소급되니까 알려지면 왕짜증. 아하! 나라 전철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흥복사가 있지? 거기도 팔각건물. 뭐야! 이 절은 등원겸족의 부인인 경왕녀가 남편 병환 치유 기원을 목적으로 한 거잖아? 즉 부비등 죽은지 1년이 되는 721년 축조. 그 위로는 아예 없어. 아예 없다고! 그건 뭐야? 팔각이라는 형식이 등원(후지와라) 집안에서 표상으로 전해져 오는 걸 보면, 일본에 팔각릉이 처음 만들어진 서명천황의 팔각릉 그걸 만든 주역이...쉿. 이러면 정말 각종 가문들을 비롯해 일본에 산재한 각종 문양들을 또 분석하게 만들면... 절대로 안돼. 안된다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다~! 
    아무리 그래도 부정할 수 없으니 딱 일본서기 이전까지만 백제가 (속된 말로) 다 해먹었다고 쳐. 응?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불상한 것들 많이 봐줘서, 너그롭게 그냥 그렇다고 가정해. 왜냐하면 상대하지 않는다 이미 써먹었으니까. 아니 사실이지만 일단 그렇다고 하자고. 응? 그럼 등원부비등(후지와라 후히토)는 720년에 사망하지만 등원 가문은 천황가의 외척으로서 계속 1300년 동안 권력을 독점. 천무천황의 손자인 장옥왕을 모략에 의해 자살하도록 하고. 등원(후지와라) 집안 피가 섞이지 않은 후계자들은 완벽히 배제. 그야말로 독재요 철옹성이며 철권통치. 이후 천황가(천지천황계)와 등원 집안 사이에서만 천황이 나오도록 그 살벌한 카르텔을 유지함으로서 등원(후지와라)가의 장기적인 영화가 무려, 몇 년? 그럼 등원부비등이 정말로 천지천황의 아들이란 말이잖아? 신분세탁이란 신분세탁한 과정이 비밀스러운 판도라의 상자 안에 있을 때 얘기고. 그 상자가 열려져버리면? 그래도 끝까지 우김. 영원히 빡빡 우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바로 (딱), 어? 그래서 일본 고대사 전문가인 세키 유지는 학계에서 대우가 어쩔지 모르겠는데. 그분 말씀이 재밌다. 뭐라고 했을까? 
   "일본서기는 별명이 백제서기라고 할 정도로 전체의 7할이 백제 것으로 쓰여있다"






    6

   구마모토현 기쿠치성의 팔각건물? 일본 내 고대 산성은 29개 정도가 확인됐는데. 이 가운데 백제식 산성은 6개. 그 중 4개가 규슈지역에 집중. 게다가 660년 백제 멸망 이후 축조. 2008년에 출토된 청동 보살입상도 백제귀족이 가지고 온 것. 팔각 무덤의 원류나 발생과정을 유추해볼 수 있는 자료는 전무한 실정. 팔각무덤에 관해 일본 안에서는 설명한 그 무엇도 없다니, 이럴 수가! 그럼 일본 밖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네? 즉 고고학적 근거를 요약하면,

    도표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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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각형 무덤양식                  8각형 건축형식
        0년~300년 / 300~600년      0년~300년 / 300~6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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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0               0                  0               0 
중국  0               0                  드묾           보통
한국  0               0                  보통           많음
세계  0               0                  보통           많음
* 집단지성과 슈퍼데이터 돌려보면 세계적으로 0까지는 아닐 수 있으나, 적어도 한중일에서는 딱 사실과 부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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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34대 서명(舒明)릉이 팔각조성된 게 처음이므로, 다름 아니라 처음이니까 그를 분석해보는 게 좋을 듯. 참고 서적은 927년 초 발간 연희식, 연록연간(1688~1704) 조사. 유독 돋보이는 점은, 최초 팔각릉 무덤의(아래는 사각 위는 팔각) 주인공인 서명천황의 등극 과정부터 복잡. 요약하면 황통에서 멀어진 집안에서 갑자기 등장해 당대를 호령하던 소아 씨 세력을 누르고 왕좌에 등극. (물론 소아씨 집안도 백제계 집안) 일본서기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기록은 재위 3년 3월에 백제 의자왕이 자기 동생인 풍장 왕자을 왜 인질로 하였다는 것과 여러 온천 기행이 전부. 백제식 옷, 전통, 궁 건립, 장례식 등 외 일본서기에 별다른 내용 없음. 다만 일본서기 외의 자료들을 모아보면 재위 3년 3월 백제 의자왕이 왕자 풍장을 보내 인질로 하였다 라는 일본서기 기록은 어패가 있다는 게 뚜렷해짐. 이 때 백제는 의자왕이 아니라 무왕이 다스리던 시절인데 어떻게? 실권이냐 형식이냐 차이로 추정. 참고로 이 왜나라 정치제제는 왕이 있지만 재정은 소아씨, 군사는 물부씨, 외교는 대반씨 등 한반도에서 건너 온 호족들이 집단지도체제를 이루던 시대. 천황 호칭도 훨씬 후대에 확립되었으므로 그 역시나 왕이었을 것. 

    도표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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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 형식    백제왕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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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대 신공(神功)                 백제 13대 근초고왕   천황계 비공식
15대 응신(應神)                   백제 13대 근초고왕   칠지도 하사 (응신=근고수태자?)
15대 응신(應神)                   백제 14대 근구수왕
16대 인덕                          백제 15대 침류왕
~
일본 25대 무열왕          ←    백제 24대 동성왕     (양국 겸임? 동일인물)
일본 26대 계체(繼체)             백제
~
33대 추고여왕                     백제 30대 무왕       무왕 권력 상실때 서명 즉위
34대 서명(舒明)    팔각릉       백제 31대 의자왕     백제30대 무왕이 죽자 서명도 7개월 차로 죽음
35대 황극(皇極)    팔각릉 
36대 효덕(孝德)    -        
37대 제명(齊明)    팔각릉
38대 천지(天智)    팔각릉
39대 홍문(弘文)    -        
40대 천무(天武)    팔각릉
41대 지통(持統)    팔각릉
       초벽황자     팔각릉
42대 문무(文武)    팔각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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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칼럼: 역사학 2"에서 백제왕과 왜왕을 겸임했던 근거에 대해 말했는데. 상시 겸임이냐, 백제에서 권력을 잃었기 때문에 왜나라로 옮겨가서 정권을 잡았느냐. ~라는 슈퍼데이터는 전문가들께서 정리하시기 바람. 일단 백제왕과 왜왕의 비교 자료는 너무도 많은데 그 가운데 이번에는 백제30대 무왕과 왜34대 서명천황에 대해.

    도표 F 삼국사기에서 무왕, 일본서기에 서명천황이 등장한 시기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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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백제30대 무왕     왜34대 서명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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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년       7월                   10월
631년       2월,7월              9월,12월
632년       7월
633년
634년       2월,3월
635년
636년       3월                   6월
637년       
638년       3월(마지막 기록)   10월
639년       1월(미륵사 관련)   1월,7월,12월(대건축의 해)
640년                              4월,10월
641년       3월 죽음            10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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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그렇다면 백제왕이 바다를 건너서 왜왕이 됐다면 그의 무덤은? 당시 백제 내에서도 계파가 갈렸듯이, 백제와 왜도 친할 때 아닐 때 구분 있었을 것. 또 백제왕이 현직에서 건너갔냐, 권력에서 밀렸기 때문에 건너갔냐 역시나. 뿐만 아니라 왕 말고 권력자도 건너갔다는 점. 대좌평과 내좌평은 당시 백제에서 서열 1위와 2위에 해당하는 고위직. 의자왕이 등극함에 따라 밀려난 (의자왕 아버지) 무왕, 무왕의 세력에는 (무왕 아들로써 의자왕과 이복형제인) 교기왕자가 정점일 텐데. 그렇다면 의자왕과 배다른 형제라고 보아야 합당. 그렇게 반란 실패 세력은 왜국으로 추방. 즉 사실은 의자왕의 계모가 왜나라로 건너가 권력자가 됐는데, 일본서기는 사실을 왜곡하여 본국에서 죽었다고 전했을 수 있음. 왜? 그걸 감춰야 하니까. 이런 부분들에서 책과 비석에서 연도 차이가 10년 20년 기본으로 차이난다는 게 그 무언가를 증명. 이와 같은 슈퍼데이터를 모두 참고해보니 다음과 같은 결론 발생. 
    37대 제명(齊明) = 백제에서 왜로 옮겨간 무왕의 왕후 (왕후가 1명 아닐 수 있다는 단서는 뒤늦게 2009년에 나옴)
    의자왕 반대세력인 교기왕자가 권력투쟁에서 졌기 때문에 엄마와 왜나라로. 그럼, 
    백제에서 왜나라로 건너온 왕후라면.... 미륵사를 세우는데 큰 시주를 한 사택적덕의 딸일 공산 큼. 즉,
    무왕의 왕후 1 = 선화공주(의자왕의 어머니)
    무왕의 왕후 2 = 사택공주(교기왕자의 어머니, 사택적덕의 딸)
    여기서 권력에서 밀려난 왕후와 왕자가 딴 나라로 망명하자마자 어떻게 왕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칼럼: 역사학 2"를 비롯해 여러 자료를 기고하는 것임. 이래서 전문가들은 인생을 걸고서 직관력, 판단력, 추리력, 가설, 증명의 기술이 발달하는 거다. 그러니까 일본서기에서 사실/비사실/과장을 모두 구분할 수 있다는 것. 그건 뭐냐? 모두 알지만 단지 아는 건 모두 말할 수는 없다는 거. 따라서 아는 전부를 말할 수는 없다는 거. 그럼 그걸 일부만 대신 해볼까? 일본서기에 따르자면 34대 서명천황조에는 왕후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저렇게 따졌을 때 친아들, 동생등을 추정할 수 있고 그래서 약 2명으로 예단하기도 하는데. 그럼 서명천황은 아들이 2명이나 있음에도 아들이 아니라 왕후가 왕위를 계승했다? 게다가 일본서기 특징을 꼽자면 태자 임명을 관습적으로 기록하는데, 서명천황조는 그런 기록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왕자들 이야기가 전무. 그럼 서명천황 다음으로 천황에 여자 성별로 2번이나 올랐고, 나중 일본서기에서 가장 중요한 2명으로 손꼽히는 왕의 왕자일 때 기록이 아예 0이다? 따라서 그들이 왕자일 때 당시 왜국에 없었기 때문으로 추론할 수 있음. 즉 그들은 서명천황이 죽은 뒤에야 일본서기에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서명천황이 죽은 다음에 물리적으로(실제로) 왜국에 등장했기 때문. 만약 그게 아니라 왜국에 계속 상주했다면 소아 씨들이 가만 뒀을까? 무엇보다 일본 사학자들이 더 잘 아는 진실. 그 깐깐하고 꼼꼼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現일본 사회지도층, 그 가운데 대표주자 요미우리 신문. 그분들께서 어떤 분들인데 2011년에 궁내청이 모든 걸 걸고서 감추는 사실을 폭로했을까? 절대로 좋아서 그랬을 리는 없다는 거. 미치지 않는 이상! 벌거벗은 임금님 꼴로 판결된(판결될) 상황이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그걸 정녕 원해서 그랬다면 2001년에 싹 다 대동단결해서 격분했을 리 있겠나. 이로써 다음과 같은 방정식도 반박하기 곤란하므로 아마도 외면 일색. 즉, 
    백제 30대 무왕                      = 왜 34대 서명천황                (← 동일인물)
    백제 30대 무왕의 왕후 사택공주 = 왜 35대 황극천황(37대 겸임)  (← 동일인물)
    겸임이나 동일인물이 과연 한두 명인가? 
    백제왕이 권력을 읽고 건너와서 왜왕이 되면, 과거 백제왕 때 업적을 일본에서의 행적으로 편입. 편입한 증거는? 일본서기. 그럼 완벽한 신분세탁. 그래서 1,500년 내내 일관성 잃지 않음. 이거 완전 대성공 아닌가? 물론 주도자는 38대 천지(天智), 설계자는 40대 천무(天武)! 행동대장은 백제계들. 이렇게 새로운 역사서와 함께 궁짝을 맞췄던 게 바로 앞서 말한 팔각무덤! 새롭게 팔각 무덤양식을 채용함으로써 모든 걸 새롭게. 즉 팔각양식을 비롯해 일본서기 등장으로 인해 자신들의 (쿠데타를 비롯해 혁명과 권력 승계의) 정당성이 강조되면, 작용 반작용 원리로써 기존 세력의 사악함이 부각됨. 즉 소아 집안의 과도한 권력욕과 과시욕을 벌하기 위해 팔각릉으로써 하늘의 신탁을 받았다 라는 그림. 이건 뭘 뜻하냐? 모든 걸 빠삭하게, 소상히, 전부 다 알면서 알지만 말할 수 없다는 거. 
    다음으로 35대 황극(皇極)을 살펴보자. 이 황극천황도 출신이 애매함. 그의 아버지인 모정왕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었나 기록이 전혀 없음. 단지 민달집안이라는 것만 고시. 황극천황의 아버지 모정왕의 배다른 동생은 서명천황 이라는 사실까지만. 그외 여러 사연을 옛날 옛날 수도 없이 일본사학자들이 백제계 라고 증명. 그 다음으로 백강전투까지 이어지고, 국장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달림. 총력전. 승산도 없음. 이걸 모두 35대 황극(皇極)천황이 37대를 겸임할 때 주도. 물론 그의 왕릉도 팔각릉. 참고로 35대 황극(皇極)천황은 37대 제명(齊明)과 동일인물. 이걸 모두 합산하여 영특한 어느 학파의 결론은 무엇일까? 바로, 
    35대 황극천황(37대 겸임)은 백제에서 활약하던 귀족인 사택적덕의 딸! 
    35대 황극천황(37대 겸임)은 백제 무왕의 왕후였다가 일본(왜나라)로 망명.
    35대 황극천황(37대 겸임)은 일본(왜나라)로 망명해 권력잡았으니 38~40대에서 신분세탁해줌. 
    앞서도 말했지만 일본 천황가 계보에서 천(天)자 시호 받은 천황은 딱 2명. 바로 38대 천지 39대 천무! 
    그런데 35대(37대 겸임) 황극천황의 중국식 이름 말고 일본식 이름이 천풍재중일족회천황. 뜻풀이하면 하늘 개념 포함.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천황가 계보는 쿠데타의 연속이요 권력투쟁의 연속. 다른 왕조들처럼 말 그대로 사극이라는 뜻.
    일본서기가 우회적으로 간접화법으로 알려주는 것도 많다. 암호문 굳이 어렵게 만들지도 않았다. 일본서기 태반이 왜 백제 얘기겠나. 백제에서 망명한 교기왕자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그러다 뜬급없이 그가 사라지고 '중대형황자'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644년 중대형은 어떤 날 소아입록이 온다는 걸 미리 알고, 중신겸자련 등과 매복해 있다가 자신의 친모(황극천황) 앞에서 소아입록을 급습하여 죽임. 암살 성공! 죽기 전 소아입록이 자신을 죽이려는 이유를 묻자 뭐라고 답했나? "안작진멸천종". 풀이하면 '안작, 곧 소아입록이 천종의 씨를 다 말렸다'라는 뜻. 즉 자신들이 천종(天宗), 곧 하늘을 이어오는 핵심이라는 것. 이건 서명천황이 왜국의 왕족이 아니었음을 추정케하는 대목. 이 광경을 본 사람이 뛰어나가 외치기를 "한인들이 안작신을 살해했다"라고 기록. 그러므로 중대형이 왜국사람이 아니고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임을 알려주는 일본서기 대목. 즉 관찰자, 목격자, 소가씨 집안, 다른 권력자들도 전부 다 백제계지만 한인이라는 표현을 쓴 건 정착한지 오래된 백제계가 자기들보다 나중 온 세력들을 견제하려는 목적에서 그렇게 말한 것. 다시 말해 어차피 모두 다 건너온 해외파이지만 먼저 왔냐 늦게 왔냐 차이. 여기서 칼럼은 천황가 계보 비밀에서 다시 천황가 34~42대 팔각릉으로 주제 전환 또는 복귀.
    참고로 이게 모두 A&B라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발견됨으로 인한 성과. 
    (A) 2009년 (한국) 미륵사지 금판&사리 등 발견*
    (B) 2010년 9월 10일 37대 제명 천황능 8각형 봉분 발견
    즉, 그 이전은 후보군만 많았단 얘기이자 동시에. A&B 발견이 없었다면 거짓 주장은 영속할 거라는 점. 단정하기 결코 어렵지 않음.





    8

    서기 688년 중국 측전무후는 사람들 의견을 배척하고 건원전을 없애고 그 자리에 명당을 지음. 자기 출신도 정통파는 아니니 이거 저거 다 따져 뭔가 기념하고자 건립. 역사서인 구당서(940년~945년) 기록에 보면 3층 건물인데 여기에 8각이 등장. 즉 신축 시작은 688년이요 증축으로 요란하다는 이유로 철거하려던 때가 737년. 그때 8각형이 등장하는데. 당나라 건축에서는 가장 큰 목조건축. 원래 명당의 기본구조는 상원하방. 곧 중국 명당의 경우 당나라 때 기준으로 한다면 8각의 기반 위에 상원하방의 건축물을 세우는 것. 뜻풀이 생략. 1층은 사각, 2층은 팔각, 3층은 원! 
    허나 34대 서명천황릉이 만들어진 시기가 사후 2년만인 634년으로 가정했을 때 측전무후 명당은 688년 이후이므로 관련성 부족. 앞서 말했듯이 중국에서 무덤 양식에 8각을 사용한 전례는 0. 전세계로 봐도 거의 0. 이래서 일본 사학계와 사회지도층계는 완전 짜증나면서 인상 팍 쓸 수 밖에 없는데.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부글부글 뚜껑 열림! 닫힐 수도 없음. 이때 중요한 점이 무엇이냐, 바로 천황 몇 대를 암살했던 희대의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 全일본인이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 않는 그. 그분 손에 명을 달리한 무사가... 몇 인가는 몰라도. 일본서기만 천황가 족보를 신분세탁했나? 무려 1,500년 동안 고스란히 일관됐음. 고로 백제에 팔각문화가 별로 없다는 선입견은 물론 식민사학관이 개입하여 있는 건 없는 걸로, 안 좋은 건 있는 걸로. 수도 없이 조작! 결국 34~42대 천황릉 8각 양식은 무왕과 왕후, 사택지적, 사택덕적, 왕자 교기 등 백제에서 밖에 근거를 찾을 수 밖에 없다는 거. 참고로 이토 히로부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마저 표로써 구분할 수 있다. 곧 테러리스트 라는 용어부터 굉장히 막연하다는 뜻. 
    한편 중대형황자! 일본서기에서 한인이라 외쳤던 기록을 놓고 중대형황자와 중신겸직을 신라계로 본 학설도 있는데. 신라전설을 옮긴 건 의심가나 이후 중대형황자가 제38대 천지 천황으로 즉위한 후 백제를 돕는데 전력했던 점으로 보아 틀린 학설로 보여짐. 다시 말해 중대형황자는 일본서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손꼽을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일본이라는 국명을 만든 천황이기 때문. 당시 국왕일 때 아울러 40대 천무(天武)에게 최초로 천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만들도록 교육한 것도 다 38대 천지. 어쨌든 그 근방 소아씨 집안이 절대 권력자였는데. 소아 집안으로서는 자신들이 왕에 준하는 권세를 누려왔지만 정식으로 왕에 올라설 혈통은 되지 않았으므로 백제에서 온 왕족들에게 대왕(천황)의 자리를 맞긴 형세. 그로써 배후에서 팔짱 / 상왕 노릇 / 또는 권력 투쟁. 재차 반복하자면 환경이 그랬는데 뜬금없이 소가 씨 집안과 돈독한 사이가 아니라 먼 혈통이 등장. 34대 서명(舒明)이 등극한 게 여러 권력 암투 과정의 결과인데. 그 권력 암투를 놓고 현재까지 여러 해석이 다분. 그러든 어쩌든 결과는 34~42대 천황릉은 8각릉. 즉 사실은 그렇고 편집은 또 다름. 일본서기에서 유리할 땐 한일(백제&왜) 행적이 겹치거나 다르게, 또 불리할 때도 한일(백제&왜) 행적이 겹치거나 다르게! 그렇지만 당시 60살이 넘은 여자, 지금으로 치면 95살 노인에 해당할 왜여왕 35대 황극(=37대)이 국운을 걸고서 도우러 오기까지의 과정. 요약하면 겸임이 오래도록 반복되다 아니다가, 선임자 백제계 후임자 백제계 등등이 권력암투로 달아오르고. 그 가운데 백제와 극히 친밀했다가 일시적으로 멀어졌다가. 기점은 결국 백강전투. 그럼 당나라가 백제 잔존 세력을 치러 왜나라까지 오면 어떡하지? 그래서 백제는 끝났고 열도는 왜나라이자 천황국이다. ~라고 하여 그 시초에 해당하는 34대 무덤부터 42대까지 팔각 조성. 당연히 직계 자손만 팔각분 가능하고, 외삼촌인 효덕천황은 안됨. 다만 팔각릉 설립 주체는 중대형황자였다가 나중 천황이란 이름을 처음 쓰도록 했던 38대 천지천황, 그를 도와 집권을 하게 만든 중신겸족(등원겸족, 사택지적), 그리고 옹립한 황극(제명)천황 즉 사택왕후라는 말 밖엔 안됨. 그 팔각모양은 중국에서 뚝 떼어받은 게 아니라, 고구려에서 백제로 이어지는 불교의 팔각신앙의 재현이 믿음직한 원인. 





    9

[테러/테러리스트란?]
    도표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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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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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하급 무사
직업        무사/암살자/정치인   독립운동가
암살대상   안(고위급)              
              안(중위급)
              밖(고위급 지시)       이토 히로부미
              밖(대량학살 지시)*
              밖(대량약탈 지시)
              밖(대량학대 지시)
암살실적   직업 암살자
주요실적   일본 천황               
사망배경   암살당함
직위        총리(1,5,7,10대 총리)
              한국통감(1대)
근방 평판  위인전/지폐인물/전국민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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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테러리스트란 불특정 다수냐 뚜렷한 목표가 있냐. 즉 유럽사에서 흔히 보이듯 결투처럼 목표가 단일하냐 아니냐.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무수한 예시를 찾을 수 있듯 무분별하게 어쩌냐 아니냐. 유럽 제국주의가 중동과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기록 남겼던 아름다운 대량 학살 사건들. 그건 말 그대로 대량학살. 그런 게 진짜 테러고. 전쟁 영화에 나오듯 1인자를 목표로, 사석에서 말하기로 대가리만 조진다 그건 테러라는 의미가 다름. 베트남 전쟁에 관한 배경지식, 즉각 연관되어 떠오르시지 않나?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내에서 하급-중급-고급 무사들 다수를 암살. 천황도 암살. 천황 바꿔치기도 성공. 또 권력투쟁에서 반대세력을, 반란 등등 잠재우는 동안 기타 등등. 그야말로 풍신수길의 1등 수제자감! 일본 바깥에서도 법치주의에서 자유롭도록 적든 많든. 도대체 뭐가 테러인지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코로나 19로 전세계가 헤로헤롱 난리도 아닌 것임. 알겠습니까? 이토 히로부미가 과연 영화 레옹에 나오는 주인공과 동급일까? 긴가 아닌가는 몰라도 최소한, 적어도 일본에서는 유치원생인가 초등학생 100% 란도셀 가방만 멤. 그걸 이토 히로부미가 만듬. 전부 황민, 가미카제(결사 특공대)으로 육성하는 이치. 더군다나 그걸 누가 싫어해? 남 일에 신경 끄라 주의. 반면에 반성과 굽힘과 인정은 절대 금물.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원자폭탄 사과하라~ 사과하라~! 그래서 상반되거나 유사한 것임
    히틀러 VS 히로히토 천황
    독일    VS 일본
    이슬람교 ≒ 천황교
    전쟁범죄 처단 VS 전쟁범죄 면책
    전쟁범죄 처벌 VS 전쟁범죄...피해자 탈바꿈
    전쟁범죄 반성 VS 전쟁범죄...추모/존경/감사
    전쟁 재발방지 VS 전쟁미화...적극적 평화주의/마조히즘적 세계관 등등 말 만들어내기
    무슨 3대 담화? 고분고분하지 않은 총리는 직위 물러나면 역적일 뿐. 이미 현직에서 제 분수 모르면 매국노. 뭐 관방장관의 유감성 발언? 관방장관에게 뭘 기대할 수 있는데. 그런 직위는 피라미드 위에서 (손차양) 보이지도 않음. 해수욕장들이 과연 몇 개인데 모래알이 무슨 의미가 있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대로 된 반성이 있었나? 단 1번도 없음. 100년 내내 일관된 거 보면 모르시나들? 1,500년 내내 역사왜곡을 왜 하겠냐고요! 1,500년 뒤끝을 만만히 봤다가는 나중 댓가 제대로 치를 것이다. 물론 그땐 늦음. 이미 끝남. 보아하니 공무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지위, 장관! 그러나 러시아 인형처럼 까면 또 까도 또... 까도 까도 끝이 없는 흑심인지 뭔지. 원시부족에 대해 얼마나 더 설명해야 끝을 볼 수 있을까.
    예를 들어 1995년 5월 3일 무라야마 (全)총리가 중국에 방문해서 뭐랬나. 단어 1개로 축약하자면 "유감". 끝. 유감? 그럼 무라야마 (全)총리가 일본의 평균이냐? 고급이 딴 게 아니다. 져주기, 견제구, 버리는 패, 바둑의 팻감 등. 무라야마의 겉마음과 일치하는 일본인은 거의 없다. 또 무라야마의 속마음을 믿는 일본인이 있을 수 있나? 단 1명도 없음. 이래서 내가 칼럼을 쓰는 거다. 일단 간접화법에 밥 먹듯이 속거든. 내가 그걸 강조하는 이유? 피터 드러커를 읽으면 읽기 전과 달라야 하는데 아니거든요.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 너 그럴려고 머머됐냐?!
    (딱~)! 세상사는 바로 이거란 말이다. 종이 1장 두께 차이. 멜로드라마와 사극의 차이는 옛날 옛날 과거와 현재인데. 그게 어딘가에서는 겹치네? 인디언 부족들은 인디언끼리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거국적인 체계가 성립될 수 없었으므로, 지금의 북미와 오스트랄리아가 탄생할 수 있었다. 태평양 원시부족을 비롯해 전세계 원시부족들은 완벽히 그렇다. 예전 "유감"에 대해 무라야마 총리가 말하고 쓰기로,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 라고 했는데. 그럼 간접민주주의에 따라 순진하게 그게 모든 일본인의 의사와 부합한다? 앞서 괄호를 왜 얘기했나. 옷을 잡입는다, 옷도 잘입는다, 옷만 잘입는다... 오빤 옷도 못 입냐? 똑같은 말을 누가 하냐 똑같은 옷을 옷걸이가 걸치냐 아니면... 통과.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 간접민주주의는 곤충의 보호색일 뿐. 그럼 그 간접화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냐? 나(만) 어떻게 생각한다. 그럼 속마음 속의 속마음은? 내가 봤을 때 진심은 혐한산업이다. 왜냐하면 감정적으로 참아야 하는데 (원시부족으로 신분이자 민족성으로써) 못 참을 게 바로 그거니까. 그럼 이성적으로 친절하고 부드럽고 부끄러운 건 뭐냐? 뭐겠나 착한 척이지. 통념의 뭐래더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물어보나마나. 얼굴 표정에 다 드러난다. 전설적인 포커페이스일지언정 딴 사람들은 몰라도 필자를 어떻게 속이나 이마에 다 써 있는데. 800만 신들이 보호해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불가능. 남아메리카 원시부족한테 방문해서 어떤 반응을 촬영했다 라는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필자 칼럼이 그보다 못할수는 있어도 어차피 같은 얘기라고 자신한다. 딴건 몰라도 거기에 내 이름과 목숨과 하늘과 모든 걸 걸 수 있단 말이다. 필자는 세계적인 도박사 뺨치듯 단언할 수 있다. 만약 1995년 1월 17일 한신대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무라야마 (전)총리도 1995년 5월 3일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기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다비드 석상과 아그리빠를 비롯해 그리스-로마 문화유산. 또 유럽의 무수한 벽화, 천장화, 성당 장식들. 그 다비드 석상 얼굴을 깎아서 더 잘생기게 만들고, 다비드 석상 고추를 더 크고 길게, 응? 캬~ 우람하게 만들어서 국보 1호로 못 박고. 그걸로도 모자라 그 사실을 전국민에게, 영원히 꼭꼭 숨기는 게 그게 말이 되나? 또 그리스-로마 유적지들은 실제 기원전이 많으니까 있는 그대로 기원전 표시. 이집트 피라미드 역시나 맘모스보다 일찍이니까 과장을 왜하겠나. 그런데 언제적 황국사관이 지금까지 변한 게 하나도 없어. 전세계에서 기록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나라가 하나 있는데 뜸들이지 않고 곧장 말하자면 중국. 그 중국에서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역사서들과 문화재들을 100만권 1000만점 그거 곱하기...그걸 불태우거나 가져가거나. 그래서 모든 걸 밝혀냈는데, 밝혀내고 보니 죄다 불리한 거네? 속된 말로 짬시킨다. 필자가 언제 지적하기로 괜히 이대로 가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겠나. 지리학적으로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대륙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게 금년 올림픽 개최지다. 겉으로는 문명과 똑같은데 한꺼풀 또 한꺼풀 벗기면 벗길수록 끝없이 원시부족. 응?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로드라마라는 게 참 양날의 칼인 걸까? 지구를 포기하기 싫은데 끈질기도록 망하도록 내버려두라 싹싹 빌며 기도하는 모습. 나쁜 남자한테 당하고, 속고, 또 속고, 맞고, 계속 뚜들어패고... 어쩌다 딱 1번 잘해주면 우리 오빠? 그렇게 길들여지니까 히틀러가 유명해졌지. 현실과 멜로드라마에서, 폭행당하는 걸 옆에서 말리면 오히려 왜 말리냐 참견 말라는 예가 얼마나 많나. 오히려 식민지 사학관을 100년 유지시킬려고 목숨 걸었던 분들 한국내에서 있다, 없다? 많음. 겁나게 많음. 어? 뭐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이 한 번 유감...불운...유감...! 허나 그건 찔끔찔끔 악어의 눈물일 뿐이고. 진짜는 망언 엑셀파일만 방대한 슈퍼데이터. 어? 막말로 나 죽으면 어쩔 건데? 어? 실패 사례 2번이면 충분. 다음엔 아예... 말 말자. 말 말어.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아마추어들 데리고 내가 대체 뭘 하겠다고 말이야. (부디 곡해하지 않기를 바람. 왜냐? 이유 대신 하나 묻자. 앞서 의문문은 과연 직설법일까 완곡어법일까? 것 봐 봐 이거 이거 이거 보라고 글쎄~! 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여자만 잘 웃기면 뭐 하나. 안 그렇습니까?) 또 속고 당하고 이용당한 사례들 엑살파일로 정리되며 공유한 일. 100년 동안 몇 번이나 되는데? 내가 알기로는 1번도 없음. 노력은 했다만 단합이 안돼든가 정리가 부족. 자료도 흩어져 있어. 아니면 내부에서 지들이 히틀러 흉내내고 나폴레옹 되고 싶어해. 안 그래? 그러니까 망언이 평균인게 오히려 자연스럽고 안심되지. 어쩌다 착한 척하면 급-당황! 아니.. 저분께서 왜 저러시지? 또 무슨 꿍꿍이를. 그분들께서 뭐 미쳤다고 세계 정상들 다 모인 자리에서 부시한테 큰 절을 하겠나. 누가 그 직위에 앉혀줬는지 잠깐 잊어서? 도대체 뭐가 좋다고 기쁘다고 신난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2011년에 폭로다운 폭로한다면 착한 척하겠냐고. 지친다 지쳐. 어? 1,500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달려온 거 알고 싶지도 않잖아? 무엇보다 내부에서 그걸 어떻게 반대해, 오히려 좋아해. 그러니까 최신판에 열광하지.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 특징이 어떤지 대충은 아시지 않나. 좀비 영화 정말 한 번도 본 적 없나? 근데 좀비가 완벽한 괴물들로 겉은 멀쩡. 고로 알고 보면 야금야금, 표면적으로만 찔끔찔끔, 속마음은 부글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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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로 문명과 야만의 차이점을 설명하자면]
   자, 여기서 종교에 대해 조금만 아는 척 좀 하자. 로마제국이 유럽은 물론 동쪽 끝까지 진출하기 전에 페르시아 제국이 있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550년 ~ 기원전 330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 시대는 기원전 330년 ~ 기원전 250년. 다음으로 사산 제국(226년 ~ 651년)은 로마제국과 뺏고 뺏기는 영토 전쟁을 계속했는데. 그에 앞서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는 사막기후 발원지가 트로이카 지대로써 밀집. 또 불교/힌두교도 온대-사막-열대기구로써 발원지가 인접지역. 그 얘기를 자세히 논하자는 게 아니라. 천주교가 영국으로 넘어가서 신교로 바뀌듯, 불교가 일본으로 넘어가서 종교의 천국으로 거듭나듯. 교황 아래 추기경/총대주교/상급대주교/관구장 대주교/대주교/주교..신부는 결혼하지 않는 게 규율인데. 영국에서 교황 허락받기 싫어 실시한게 1500~1600년 동안의 종교개혁. 그로써 잉글랜드 국교는 지금까지 기독교. 곧 천주교를 비롯해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나 국가적으로 성모마리아는 불인정. 그리고 목사님은 결혼 가능. 그처럼 불교가 동쪽 끝까지 전파된 끝에 일본에서 스님도 결혼. 

  • 영국: 천주교 → 기독교 (교주는 영국왕 또는 여왕 아님) ← 문명
  • 일본: 불교   →  천황교 (교주는 국왕 / 일본식으로 천황) ← 야만

    숭불파와 배불파의 다툼 또 불교 우대정책이냐 억압정책이냐. 그러다 문명에 다다렀을 텐데. 문제는 누누이 강조했듯이 불교가 분파되면서 스님이 결혼한다는 것까지는 천주교/기독교 원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데 불교 → 천황교로 스르륵 자연스럽게 교주가 바껴. 어? 불교는 단지 문화이자 기반만 제공했으니 넌 빠져! 그렇게 됨. 단물 빨리고 그냥 기틀과 문화로만 흡수됨. 그렇게 Ctrl+C  Ctrl+V = 현교왕은 초대 교주와 동일. 그게 바로 천황교의 본질. 대륙까지야 스님이 파계하지 않는 이상 여러 계파들은 모두 동일. 그런데 섬으로 건너가자 바뀜. 기독교도 교황을 비롯해 신부님들은 속세와 거리를 두는 게 규칙인데, 분파 분리되더니 목사님이 결혼하고 아메리카로 넘어가자 막 산업도 되고 몰몬교와 더 다양해짐. 거기까지는 좋아. 왜냐하면 교주와 별개로 역사적으로 교왕, 천주교도 교황, 그리고 목사든 신부든 다 문명적이니까. 그런데 천황교에서는 현인신이 교주다? 말이 안됨. 자기들끼리만 그렇다면야 모르는데 전세계인들한테도 숭배를 받기를 원한다는 게 문제. 이러니까 원시부족은 바깥으로 나오면 화근이라는 원리다. 아마존 밖으로 나오면 단물만 빨아먹으려하니까 시장만 더러워진다. 생태계만 추접스러워질 수 밖에. 내 꺼는 내 꺼 늬 꺼도 내 꺼! 응? 아니면 뭐든지 남 탓! 앞에서는... 또 뒤에서는...!
    게다가 영국 역사는 저 종교개혁이 기점이다. 어떤 칼럼이 수도 없이 쏟아지게 된 계기가 뭔고 하니, 720년 일본서기의 탄생인 것처럼. 식민지를 하나둘 늘리면서 영국제국이 시작된 건 종교개혁 완수 다음인 제1제국 (1583-1783)부터. 그럼 그 이전은? 로마제국이 증말 오래도록 놔주지를 않았음. 또 게르만한테 여자들 뺏기고, 바이킹족한테 짓밟히고, 바이마르공화국부터 그 근방이 죄다 원수들. 만만한 포르투갈한테 쨉쨉 스페인제국한테 쨉쨉. 그러다 노르망디가 오래도록 왔다 가니까 영국 본토인들은 물론 영국왕부터 프랑스어만 고집. 심지어 프랑스에 살면서 원격으로 정치. 죽기까지 프랑스에서. 하다 하다 백년전쟁도 패배. 그렇게 영국은 유럽한테 안되니까 눈을 바깥으로 돌린 게 바로 영국제국의 시작! 동급들한테는 안되거든. 그처럼 1500년 1600년 이전 영국사는 굴욕의 역사. 그럼 제국 전성기 뒷북의 대명사인 일본은? 일본 역시나 1200년 1300년 이전은 언급하기 짜증남. (중국은 1900년 전후 대략 100~150년만 굴육의 역사지만 그와 끕이 다름. 영국이 1600년 전까지 숱하게 당하고 더럽게 당하니까, 에라~ 그렇게 중국도 속된 말로 뽕으로 조진 것임. 유럽한테 당한 걸 되갚을 수는 없으니까 나머지한테 몇 갑절로 되돌려준 것임. 다시 말해 영국이 유럽한테 당하지 않았다면 영국제국도 지금보다 훨씬 보잘 것 없었을 게 뻔함) 국보들 태반은 물론 1200~1300년 이전 문화재는 고유한 일본의 것이 거의 없음. 전부 다 백제 꺼. 아니면 신라, 또는 중국. 속이는 것도 한계가 있음. 허나 뻔뻔히 우기는 게 뭐다? 만세일계. 그게 바로 천황교. 즉 영국은 여왕 위에 하늘, 일본은 천황이 아니 천황(만) 하늘! 이래서 자성이니 반성이니 그런 게 말도 안되는 이치. 오히려 우리가 피해자요 전쟁범죄자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거룩한 분들, 또 귀신들 영령을 달래드려야 해. 안 그러면 그분들이 노하시거든. 응? 이해되십니까 아닙니까?
    그래도 감이 올 듯 말 듯 이해가 될 뻔 말 뻔? 바꾸어 말해 아돌프 히틀러가 교주라고 생각하면 쉽다. 히틀러 1탄이 물러간 다음 그 왕좌에 히틀러 2가 앉음. 그런데 상징적 기념물을 20년 주기로 뿌수고 다시 짓고. 독일 전역에 나치교 성당과 나치교 예배당이 없는 데가 없이 쫙 깔렸고. 나치교 만자 상징 로고 앞에서, 미국 대통령과 영국 대사까지 불러다 절하게 만듬. 그럼 또 스페인 총리가 가서 아돌프 히틀러 3세한테 좋다고 90도 인사 꾸뻑. 또 따지고 보면 아돌프 히틀러의 족보를 살펴보니 조상님들은 죄다 북유럽 바이킹족과 야만족들. 그래서 아돌프 히틀러 족보를 싹 다 개조. 신분세탁. 전국민 정신세뇌. 문화로 꽁꽁 묶음.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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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의 팔각양식]
    하남시 / 이성산성 팔각건물지
    하남시 / 인근 동사지 / 팔각초석(목탑지 혹은 팔각의 불상좌대)
    하남시 / 민가에서 발견된 돌로 된 팔각좌대 부분
    안성망이산성 팔각건물지
    이천 설봉산성 팔각형 계단
    충남 부여 / 왕실이나 민가의 우물들 팔각 형태
    남한 산재한 석등 280기 / 팔각 (불교 관련 타국 석등: 인도 0기, 네팔 2기, 중국 2기)
    북한 산재한 석등 ?               (고구려 일대 석등 포함)
    전북 익산 미륵사지 / 미륵사 석탑 기초
    전북 익산 왕궁리    / 왕궁리 5층탑 기초 (건립시기는 650년 전후)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 / 정양사 팔각전    (당시 신라 영토일 가능성 있지만, 백제 승려 관륵이 만든 게 사실. 관륵은 그후 왜나라로 건너갔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됨)
    ......이마저 엑셀파일로 정리하시기 바람.

    (일본 호류지 옥충주자는 백제 위덕왕 때 왜나라에 파견된 백가 제작품인데, 그 테두리 투각금구 장식이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금제사리함 장식과 동일 →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을 만든 사람이 38대 천지(天智)천황이 되기 전, 즉 실권자인 중대형천황의 명을 받아 제작한 걸로 추정할 수 있음. 이래서~ 아사히 신문 구독자들은 궁내청에 머머발굴 허락하라 허락하라, 어째서 뭐는 비공개냐 비공개냐 따지고. 이래서~ 요미우리가 싫지만 등떠밀려서 뭔가를 폭로하고, 산케이 애호가들은 심심하면 궁내청에 협박전화. 사회지도층에 협박편지. 웬만한 실무자와 책임자들 생명의 위협. 더더군다나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먼저 알고, 기관이 나중 핑계대는 것처럼 꼴불견인 모냥새도 많지 않듯. 인터넷 시대 특성상 또 법치주의 때문에, 궁내청은 정보공개청구 소송도 상대해야 하지 아랫것들 착한 척도 상대해줘야 하지 걸핏하면 협박전화는 들끓지. 아주 그냥 골머리를 앓음. 물론 1,500년 내내 비둘기파는 연패요 완패라는 사실만 알면 됨. 때문에 차마 공개할 수 없는 사료는 대체 얼마나 될까? 무엇을 생각해도 상상초월! (일례로 남한 내에 전방후원분이 13개쯤 되던가.. 그 가운데 하나인 광주 월계동 장고분도 도굴됐는데. 대체 거기 누가 묻혔냐... 그 도굴 자료들 비밀 리에 조사하고, 일본내 한국형 무덤도 이미 옛날에 조사됐으니 비교해보면 되겠네!) 이래서 일본은 절대로 바뀔 수 없고, 바껴서도 안됨. 만세일계가 아니라고 이제 와서 착한 척? 말이 되나 말이! 일본 교육계, 역사학계... 뭐든지 들어엎어야 할 정도로 대폭 개혁하라고? 미쳐도 안됨. 절대로 안됨. 죽어도 불가능. 반대로 싫음. 극히 유감! 오히려 더 달림)
   * 1997년부터 5년간 일본 나라현 사쿠라이시 길비지폐사에서 발굴된 금당흔적. 일본 학계는 이걸 백제대사인 걸로 추정. 옮겨지고 바뀌어 마지막에는 대안사가 되었다고 주장하며, 역사서 기록을 근거로 대는데. 그러나 고대 왕실이 위치한 아스카에서 너무 먼 지역이며, 사원의 유구도 없고, 관련 자료가 나와야 하는데 그 역시나 전혀 없음. 곧 일본서기처럼 현재도 서명천황 때 기록을 짜맞추기 위해 궁내청 비위만 맞추는 식으로 모든 게 진행됨. 이건 뭘 뜻하냐? 백제에서 있었던 일을 왜나라에서 있었던 일본 각본 짜고, 겸임 또는 동일인물들도 모두 신분세탁. 그 완성품이 바로 일본서기! 도표로 재차 정리.

    도표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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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30대 무왕                      = 34대 서명(舒明)                      (← 동일인물)
백제 30대 무왕의 왕후 사택공주 = 35대 황극(皇極)천황(37대 겸임)  (← 동일인물)
교기왕자(무왕&사택공주 아들)   = 38대 천지(天智)(중대형왕자)      (← 동일인물)  
사택지적                               = 중신겸족                              (← 동일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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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맥 정리
백제 30대 무왕 + 선화공주(첫째 왕후) = 백제 제31대 의자왕 (백제 마지막 국왕) *
백제 30대 무왕 + 사택왕후(둘째 왕후) = 일본 제38대 천지 (이복형 의자왕에게 밀려 백제 교기왕자는 일본천황 등극)
                      사택왕후(둘째 왕후)  = 일본 제35대&37대 황극(皇極)천황
    * 의자왕 아들은 본명 부여풍/별칭 풍장. 그는 왜국에 있던 도중 백강전투에 참여하게 됨. 즉 37대 제명齊明(35대 겸임)은 의자왕의 새엄마니까, 풍장에게는...그렇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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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에서 왜로 건너갔거나 양국 겸임했거나 다수 사례에서, 무왕계만 보자면 백제→왜로 건너간 사람에서, 
    백제 30대 무왕 + 왕후 사택공주 , 사택지적(사택공주 아버지)
                        ↓
                   교기왕자

    ~이 외에 망명자 명단에 공주 4명도 백제에서 추방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는. 공주 4명은 교기왕자의 이복 여동생들이고, 이들이 당시 일본 실력자인 제40대 천무천황에게 결혼동맹의 상징으로 바쳐진 걸로 추정. 이른바 혼맥! 다시 말해 망명한 공주 4명은 제35대 황극천황(37대 겸임)의 배다른 딸.  그럼 여기서 인물관계도가...! 40대 천무는 38대 천지(天智)의 남동생. 그리고 38대 천지의 여동생이 공주 4명. 고로 38대 천지가 남동생 천무한테 이복 여동생 4명을 줬다? 이래서 41대 지통천황은(40대의 부인) 천지의 딸이 아니라 여동생이라는 얘기. (남동생과 딸, 즉 삼촌과 조카의 결혼이 아님) 그래서 그만큼 천지천황에 대해서 자신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오빠로서 혈연관계가 끈끈했고 직접 백제왕가 직계인 공주이기에 남편이 죽은 후에 아들과 손자를 천황으로 세우기 위해 애를 썼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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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신겸족(등원겸족, 사택지적) 무덤]
    지금까지 확실히 판명난 것은 없다. 다만 1934년 고분시대 종말기의 고분 1기가 원분 형태로 발굴됐는데. 천황 34~42는 팔각릉(사각 1단에 위가 팔각릉이자 주변부는 다르게. 즉 핵심만 팔각릉)이니까 팔각릉으로 묻힐 권리는 없었을 테나 발굴 자료를 살펴보니 천황에 준하는 고위 인사의 무덤으로 추측. 그래서 당시 곧장 발굴 금지, 출입 금지, 동시에 출토품들을 모두 다시 묻어버림. 
    그러다 반세기가 흘러 1982년. 교토대 지진연구소의 한 사무실에서 우연히 그 발굴 당시 비밀리에 촬영한 사진들 수십 장이 발견됐는데. 고분 피장자의 X선 사진과 여러 사진들로 보건대 유체에서 채취도니 두발과 함께 수년간 분석. 피장자가 등뼈와 늑골이 골절된 것이 사망 원인이고 금실은 모자에 자수를 위해 쓴 것으로 추정. 즉 금실로 수놓은 금모는 곧 중신겸족이 죽기 하루 전에 천지천황으로부터 받은 등원(후지와라)라는 성씨와 함께 받은 "대직관"이 틀림없다는 분석이 학계의 중론. 곧 34~42만 예외로 하고 나머지는 장례 개혁, 왕가도 무덤 형식과 전통 변경. 
    끝으로 이로써 첨언하자면 한국 역사학계는 물론 문화재청 등등 할 일 겁나게 많다는 점. 일본이 공산주의랑 똑같이 전국민을 어떻게 세뇌시켰는데(과거-현재-미래). 1500년 내내 바뀐 건 대체 뭔데? 왜 일본이 저처럼 초딩처럼 말도 안되는 주장들만 지속하는 건가. 다 그럴 만 하니까. 일례로 한국에서(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탑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지금도 잘 모를 테고 과거에는 더 몰랐을 것이다. 일단 현재 연구 성과에 따르자면 최고 오래된 석탑은 익산 미륵사 탑과 부여 정립사 탑이라는 게 정설. 허나 둘 중 뭐가 더 오래됐냐... 아직은. 즉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사관에 의해 그 2개 탑을 고려시대 건립이라고 세뇌시키니까, 그걸 무려 학계에서는 1970~1980년까지 철저히 신봉! 즉 학계가 아니라 그냥 동네축구와 다름 아님. 그러다 1980년 가까와지면서부터 겨우겨우 그게 고려시대 것이 아니라 백제 건립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1990년만 봐도 열형광측정보다 훨씬 값싼 탄소연대측정? 장비 자체부터 없었음. 뭐 CSI 드라마에서 어쩌고저쩌고? 그건 드라마고. 대충 때려 짐작해서 발표하고, 일 많으면 다시 덮고, 백제 때문에 뒤짚을 학설들 더 많다 싶으면 막 그냥 때려덮었음. 그래서 학계 원로가 제발 죽기만을 기다렸던 게 불과 얼마 전! 어? 즉 출발부터 늦었던 만큼 그야말로 쉼 없이 장족의 발전을 하는 건 좋은데, 뒤짚어보면 그만큼 아직도 할 일 많다는 뜻. 임진왜란, 식민지, 천황가 계보 등 때문에 지금 할 일이 과연, 필자만 많은 건가? 그럼 질문을 바꿔서 태평양 원시부족 문화가 변하는 게 빠를까, 원시부족 전통을 아름답게 이어가는 게 쉬울까. 일단 당사자가 원치 않고, 가능할 수도 없음. 그동안 천시받았던 백제 권역 문화재 발굴은 물론, 역사학계 구식탱탱묵은 꼰대들부터 정신차려야 함.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고 정신차리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교훈도 살벌하다는 점 바로 알지 않으면 안된다. 





    12

    [* (무왕) 복수 왕후론]
    첫째 왕후는 약 500년 후 발간된 역사서를 근거로 30대 무왕의 왕후는 1명이라는 게 2009년까지의 역사계 사실이었는데. 2009년 미륵사 금판이 발견되므로써, 그 모든 게 싹 다 뒤집혀버림. 그걸 서동요 드라마까지 만들고 영화에서도 써먹었는데, 그동안 코끼리 뒷다리 짚고서 토론한 셈. 일본서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뒤집고 바꾸고 역사서라기보다 코란 같은 소설과도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소설. 그럼 선화공주가 무왕의 유일한 왕후라고 볼 수 있는 한국 역사서 삼국유사라고 하여 100% 사실? 이래서 동네 축구 같은 우를 범하기를 조심해야 함. 신라 으쌰으쌰 하느라고 식민지 사관의 권위만 눈치보다가, 고구려 유적이 반짝 우르르르.... 백제 유적이 최근 뜬다 또 우르르르... 아니다 신라가 그래도 어쩐다 우르르르. (다 출발이 늦었고 꽉 막힌 악역들이 막강했으니까 나아지는 과정으로써 타산지석 삼으면 됨) 결국 2009년까지 전국민에게 거짓을 가르쳤고 전국민에게 사실과 다른 영화와 드라마로 감동시켰음. 고대사로 넘어가면... 판을 갈아엎어야 할 정도! 역사가 이래서~ 재밌음. 하긴 2009년 현존 국내 최고(最古) 미륵사지 석탑에서 느닷없이 타임캡슐이 발견될지 누가 알았을까!
    즉 첫째든 둘째든 셋째든지 "사택왕후"는 명백한 무왕의 왕후라는 게 증명됨. 2009년까지... 학계가 뒤늦게 깨달았다고 쳐도 일반인들은 지금 현재도... 무왕의 왕후는 오직 선화공주 1명 뿐이라고 지식 자랑하기 바빴는데! 아니... 어떻게? 그러나 선화공주가 무왕의 또 다른 왕후인가는 무엇으로도 확실히 증명할 수 없고, 사료를 바탕으로 추측하는 것일 뿐. 다만 백제&신라가 존망을 다투는 관계였다고 할지언정 혼맥의 예가 있었다, 또 다른 사료에 따르자면 고구려 몇 대 왕이 왕후를 1명이 아니라 3명 둔 전례도 있다는 근거가 뒷받침. 그 때문에 복수 왕후론이 제기됐는데, 동네 축구처럼 우르르르 그럴 뻔하다가, 또 선화공주는 실존 인물이 아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경우의 수를 검토한 결론은 복수 왕후 또는 복수 이상 왕후로 결론지어짐. 왜냐하면 익산 일대 쌍릉(대왕묘&소왕묘)에서 소왕묘에 묻힌 사람은 선화공주일 가능성이 높거나, 또는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제3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 따라서 지금까지 연구하기로는 복수 왕후론까지만~ 설득력을 얻고 있으나. 그러나 사택왕후는 실존 인물로 증명 완료, 선화공주는 역사 사료에서 꾸며진 이야기 등장인물로 아직까지 실존인물로써 증명이 전혀 안됨. 당연히 조사와 연구는 지금도 나중도 계속. 일단 여기까지만 하고 나중 부언설명할 기회가 생기면 그때 추가하는 걸로. 
    설명이 들쑥날쑥하니 조금만 덧붙이고 정리까지. 즉 선화공주가 실존인물이냐 아니냐를 따지기에 앞서, 삼국유사에서 분명히 서동설화는 내용 출처가 차전이라고 밝혔다는 점. 때문에 선화공주가 실존인물이냐 아니냐에 앞서 만약 선화공주가 실존인물이더라도, 선화공주의 남편인 서동. 그 서동이 무왕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는 실정.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장인어른 나라와 대규모 전쟁을 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 더더군다나 그럼 장인어른이 자진해서 미리 자기 딸을 인질로 보낸 거잖아? 즉 선화공주를 왕비로 삼아 의자왕을 낳아 단란한 왕가를 이뤘는데, 그런데 장인어른의 나라인 신라와(신라왕은 장인어른) 대규모 전쟁을 한다? 말이 안됨.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 즉 역사적으로 친한 사이가 절대로 아니라, 당시는 적대적인 사이. 그런데 신라에서 먼저 공주를 인질로 보낸다....이상함. 이해가 안됨.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 동성왕 시기에 적국인 신라와 국혼한 예를 삼국사기는 기록함. 또 백제 동성왕은 백제에서 태어나 자란 게 아니라, 왜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다음 나중 백제의 왕이 된 경우인데. 여기서 겸임의 예를 확정하기 어렵듯, 일부 학설이 등장. 
    일부 학설: 서동요 설화가 왜나라(현일본)에도 거의 똑같은 예가 있음. 그걸로 보건대 "서동=무왕"라고 단정하면 서동요와 비슷한 일본 설화보다 연대가 훨씬 낮아지는 모순 발생. 따라서 일부 학파는 서동요의 서동을 동성왕으로 보기도 함. 
    반면 일부 학설 반박: 미륵사가 창건된 시기와 발굴된 여러 사료로 보건대 "서동=동성왕"은 성립될 수 없는 억측. 그건 미륵사 창건 시기와 여러 사료가 증명.
    요약하면 
    a) 삼국사기 / 서동요에 나오는 서동이 누구인지 아직까지 모름
    b) 삼국사기 / 서동요는 설화 & 출처는 차전. 고로 선화공주 실존설 신뢰도 0
    c) 삼국사기 / 서동요: 만약 선화공주를 실존인물로 보더라도 그녀를 무왕의 왕후로 단정하기 애매함
    d) 삼국사기 / 서동요: 만약 선화공주를 실존인물로 보더라도 서동이 누구인지 불확실
    e) 반면에 무왕의 왕후로 지금까지 증명된 건 사택공주 오직 단 1명뿐. 나머지는 모두 가설일 따름! 
    f) 선화공주의 실존을 증명할 수 없으므로, 선화공주가 의자왕 어머니라는 것도 단지 가설일 뿐
    g) 백제 마지막 왕인 31대 의자왕. 의자왕 자체가 미스테리! 출생일 불분명, 친모도 불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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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화법 VS 간접화법]
    비교적 과거에 일본 역사학계가 한국 역사학계를 얕잡아봤던 건 왜일까? 지금이라고 그분들 속마음을 알 길이 없다 라는 비꼬기 만큼은 사양한다. 일단 사실인가, 아닌가? 긴 설명 생략하고. 그럼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 어째서 문명을 공유하는데 뭔가 착오가 발생하는 걸까! 왜냐하면 그게 다 많은 부분 직접화법 대 간접화법 같은 양식 차이 때문이다. 다른 말로 문화! 관습을 비롯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르니까 그마저 비례할 수 밖에. 더더군다나 근대사가 불쾌하다는 점도 대단히 큰 몫을 하나,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직접화법&간접화법은 보통 문제가 아니니만큼 그러므로 필자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거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거든요, 네? 똑똑한 전문가, 알고 봤더니 때로는 멍청하고. 존경받아 합당한 권위자, 이따금 허접해지는 이유가 뭔고 하니 그게 바로 간접화법과 직접화법 때문이라는 것. 앞서 1문단에서 뭐랬나? 평소에는 말 주도권 뺏기, 말머리 가로채기, 말 맞받아치기, 떠보기, 간보기, 이간질, 아부, 앵무새 따라하기, 헛바람넣기, 살짝만 띄워주기 부추기기, 말 아끼며 맞짱구만 치고 절대로 정해진 대사 이상은 말하지 않기. 그와 더불어 화려한 언변까지 토론에 최적화된 분들과 더불어 말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그분들. 왜 하필 직접화법 VS 간접화법만 나오면 당황할까? 꼭 그렇지도 않고, 언제나 그렇지도 않을 테지만. 저 1문단만 봐도 대체 여자들한테 짝사랑 못받아봐서 억울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남자들 세계에서 덕망이 두텁지 않아 불만족스러운 영문에 근거한 건가! 응? 대체 뭘까 그 이유가? 그렇게나 (속된 말로) 이빨까는 걸로 봐서는 아무 여자 다 꼬실 수 있을 걱 같은 양반들께서, 아니 왜? 1문단에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위선떠는 위선자께서도 평소 대체로 착하고 선량할 텐데. 인지체계가 왜 갑자기 맥락 다 무시하고 직접화법만 편애할까?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 그건 뭘까? 지 이득과 직결된 사안이면 절대로 그럴 일 없다는 것! 안 그런가? 그땐 그야말로 자기 명석한 두뇌 100% 1000% 풀가동이자 초능력까지 인지능력을 발휘함. 다만, 이건 착한 척해서 입바른 소리 좀 해도 되겠다 싶으니까 말 같지도 않은 논리 전개. 그게 뭔가, 네? 뭐 1절만 하라구요? 알겠습니다. 허허허. 서론이 길었다만 이제 살짝 몸 풀렸으니 2절을 꺼내자면 이렇다. 일본서기 천지천황 2년 9월조에 이렇게 나온다. 
   "......주유가 항복하였다. 이 일을 어찌할까. 백제란 이름은 오늘에 끊어졌다. 조상의 묘소가 있는 곳을 이제 어찌 다녀올 수 있으랴. 다만 저례성에 가서 일본의 장군들과 만나 이 사태의 기밀한 부분을 논의하자..."
    이게 바로 백촌강 전투 패배의 그 장면. 이 문장을 놓고 한국측 사학자들은 과거 (일부?) 그걸 앞뒤 쏙 떼고 조상의 묘소 부분만 강조. 그것만 놓고서 그걸 빌미로 백제와 일본이 한뿌리이고, 백제 사람들이 일본황실을 세웠다는 증거로 자주 인용했다는 점. 물론 결코 OX 문제는 아니다. 다만 전후좌우 살피고 역사학 뿐만 아니라 언어학, 고고학, 경제심리학, 심리응용학, 인류학 등등까지 감안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저 발언은 풍장도, 일본군 총대장도, 그 수하가 발언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즉 백제쪽 비전투 인력이 말했다고 보아야 설득력 있다. 전투중대와 본부중대는 관례도 군기도 자연히 다를 수 밖에. 실무자와 관계자가 같나? 불미스러운 근대사에 기인한 열등감을 왜 하필 이걸로 해소해야 하나, 라면서 이따금인지 항상인지 양국 역사학계는 평소에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는 점. 즉 속국 개념이라기보다는, 칼럼 설명이 길어지듯 길고긴 일본의 독립이자 일본국의 (최초)탄생에 얽힌 몇 백년 대하드라마라는 점이 중요하다. 1776년 7월 4일 미국이 독립할 때 여러 과정과 수많은 사연과 극적인 줄거리가 함께 했을 테나. 그러나 그 연대표에서 미국은 일관되도록 독립을 추구했지, 프랑스 식민지로써 그냥 적당히 연명해야 하겠다? 제발 그러고 싶다? 간절히 그것만을 원한다? 그런 마음은 없었다. 미국은 독립이라는 유일한 목표로 달려갔을 뿐 뭐 적당히 영국의 속국으로 남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라는 속셈? 없었다. 그게 역사다. 다만 체계와 모든 게 유럽이 뿌리이기 때문에 미국은 <윌슨의 국제자유주의>, 새 국제질서에서 위싱턴 역할은 기존의 유럽제국주의가 전세계를 일방적으로 착취했던 방식과 노선을 달리했다는 점. (최소한 의도와 시작은!). 즉 (역사라는 과정에 따른 의미로 봤을 때) "국제법의 출발점"이라고 일컫는 1648년 웨스트팔리아 평화회의. 베스트팔렌 조약를 낳았는데 그렇다고 유럽에 당장 평화가 찾아왔나? 전혀 아님. 베스트팔렌 조약 때문에 全유럽은 천사로 거듭났을까? 전혀 아니라니까요 글쎄. 그만큼 윌슨 평화주의는 유럽 제국주의와 또 다른 출발점이었으니. 물론 그게 초심대로 나중 실현되기는 힘들었으나 적어도 세계라는 동네에서 전임자 골목대장과는 달랐다는 점만큼은 역사가 증명했다. 그래서 백제가 위기에 처했다? 돕자, 아니다, 국력을 총동원 해야 한다, 싫다... 그러다 조력파가 이긴 것. 지고 이기고가 아니라 만장일치라는 분위기로 모든 관료는 거의 100% 1세대 백제인이던가 1.5포인트...방계까지만이고. 아니면 출세가 불가능한 시대였으니 어쩌면 당연하긴 한데. 그만큼 모국과 분국 개념보다는, 모국과 독립국(또는 최초 탄생국? 신생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의 개념이 훨씬 강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명을 비롯한 모든 체계가 이입된 모국이니만큼 인간적으로든 원론적으로든 뭘로 봐도 국운을 걸고 도와주는 게 옳다, 그래야 한다, 아니면 금수다! ~라면서 실제로 그랬다는 점. 그때 물론 반대파는 39대던가 40대던가 기타 등등. 즉 하도 일본이 1,500년 내내 역사왜곡을 하고 식민지 역사관을 심어놓고, 또 한국 역사학계도 짧은 시간 풀어야 할 과제와 바로 잡을 숙제가 산적해있었기 때문에 그 만큼 고대사 연구가 어려웠을 거라는 점 충분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렇긴 하다만 비교적 과거에 일본 역사학계가 한국 역사학계를 깔봤던 원인은 분명하다. 비전투 인원이 했던 대사를, 전투요원 중에서도 수장급이 했을 걸로 무리하도록 추정했기 때문. 즉 열등감, 자존심, 자긍심과 너무 심하게 얽히지 않았다면 가치판단에 큰 무리 없이 올바르게 해석했을 것인데. 하필 1,500년 내내 역사왜곡이요 근대사도 얽히고 당장 현세대만 해도...그랬으니 오판했다는 점. 거기서 직접화법 VS 간접화법은 또 우리를 들었다 놨다 가만두질 않는다. 바로 그게 중간에 개입해서 요술로 우리 혼을 쏙 빼놓는 것만 같다. 자, 그런 의미에서 1문단에서도 언급했듯이 또 다른 속세의 격언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안되니까 말이다.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이럴려고... 평소에 말길 잘 못알아듣지 않는 상남자. 이때 그걸 직접화법으로 해석하는 남자. 있을 수도 있는데 웬만하면 없다. 그럼 여자는 남자가 그걸 직접화법으로(만) 해석하기를 바랄까? 또는 결과적으로 남자가 그 명대사를 직접화법으로 받아들이면 그 얼마나 좋아할까!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네? 제 말이 틀렸습니까? 저 대사 들어보신 분 살짝 저만 볼 수 있도록 거수해보시겠습니까? 네? 저 천리안이니까 안심하시고 말입니다! (손차양)~! 캬, 어? 이렇다니까요 글쎄. 네? 그런데 말입니다 저 대사는 멜로드라마이자 실생활이고, 본 칼럼 주제는 진지한 학문이고. 물론 호주가 내전 때문에 3개로 쪼개진다 해서, 우방국 뉴질랜드가 전국민 5~10%는 물론 예비군까지 총동원해서 도와주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문서에 근거하고, 기구간 미리미리 그럴 땐 어때야 한다를 정해놓기 때문. 즉흥적으로 행동할 사안이 아니니까. 즉, 한국의 과거 국가 중 하나인 고려, 고려의 왕 몇 대가 중국와 혼례 또 몽고와 혼례. 그러다 현왕인데 중간에 중국에 가서 돌아오지 않고 그냥 중국에서 사망. 또 노르망디 왕조가 유럽에서 승승장구할 때 영국 역시나 쥐었다 폈다 손바닥에 올렸는데. 당시 영국왕 몇 대, 프랑스에서 태어났거나 죽기를 프랑스로 고집했거나 영어는 일평생 단 1마디도 입에 담지 않았던 영국 왕 누구. 그런데 그와 달리 미국처럼 일본 국호가 없을 때 왜나라는 그게 몇 백년 지속되니까 신생국 탄생을 바랐다는 점. 다만 그게 일본서기 이전부터 역사왜곡이 시작됐고, 일본서기를 위해 철저히 고증하고 연구하다가 암호문 같은 일본서기를 만들어냈으니. 나중 수도 없이 편집 편집 고치고 바꾸고 넣고 빼고. 그래서 지금까지 초지일관! 그게 역사학까지 짙디짙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 
    물론 당시 왜나라(현 일본)이 노르망디 왕조의 후예이나 프랑스말만 고집했던 영국왕 사례와 똑같지 않고, 미국식을 고집한 건 좋은데. 문명이 전수되고 체계가 이입됐다는 점을 700~800년 사이에 모두 제거. 대표적 사건은 한일동종 서적 분서 사건! 영국영어가 미국영어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는 점까지 부인하고 싶어서, 거꾸로 미국이 근대는 물론 고대까지 영국을 식민지배했다고 미화. 즉 왜나라가 영국왕 사례와 똑같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다들 백제계와 백제식 밖에 없으니까 좋든 싫든 몇 백년 백제&부여산만 고집하다가 점점, 점점 독립으로 옮겨갔다는 얘기다. 자연스럽게 말이다. 자, 필자의 의견에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분들이 아마도 적지 않을 걸로 예상하여 미리미리 번호표 발부기도 준비했다. 시간없으니까 한꺼번에 싹 다 질문해보시라. 들어와. 들어와요! (몸짓) 시간없으니까요, 네? 





    14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문다는 속담이 있다. 그럼 고양이가 쥐구멍에 몰리면 어떡할까? 역사를 무려 1,500년 왜곡하는 걸 계속했는데... 기원전 660년까지 끌어올렸는데. 그래서 전국에 쫙 깔린 신사 안내판에 명시했고. 전국민에게 150년 내내 미개한 일본 바깥의 역사와 문명 대비, 일본의 우수함과 왜곡 역사만 교육시켰는데. 이제 와서... 말이 안된다. 말도 안되지.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상상? 아직 입도 뻥끗 안했다만 벌써 이렇다. 잘잘못이 한두 개면 말도 안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예술적으로 뻔뻔할 수 있을까? 원시부족이 그렇다니까요 글쎄. 그러니까 문명인인 척 아는 척, 옳은 척, 잘난 척하면 그 꼴 어떻게 보나. 대동단결하여 대노! 이와 같은 현상을 저번에 필자가 당해봐서 조금은 알 것 같다. 즉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 곗돈 횡령 사건! 친구들이 이러쿵저러쿵 그러다 필자가 입만 뻥끗 했는데 글쎄, 너 빠지래! 잘못은 누가 했는데 손만 까딱한 게 뭔 잘못? 방구 낀 놈이 성낸다는 말이 딱 맞다. 다만 맞은 놈은 발 뻗고 자고...그건 좀 다름. 게다가 매파만 득세할 수 있는 문화 특성상 하필 악녀 기질이 관습의 기반이 되네? 남자는 단 1명도 없음. 이래서 남자 대 남자로 말이 통할까? 똥싼 년은 도망가고 방구낀 년만 남는다 라는 말과 대체 뭐가 다를까? 네? 안 그렇습니까? 고로 이건 소꿉장난도 아니고 용의 역린을 건드린 걸로도 모자라 하늘이 웃을 수 밖에. 그러면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면서 우리가 만약 참배를 하지 않는다면, 그 존경하는 귀신들께서 분노하실 것이므로 고로 전쟁범죄자 참배는 옳다 문화다 그게 다 평화를 위해서다? 뭐든지 뭐가 됐든 문명과 상극. 따라서 몇 대에 걸쳐 혐한, 옆동네 멸시, 겉으로 존중 속으로...그걸 극명히 반영하는 현상으로 다음을 지목할 수 있다. 
    너 여기서 빠져라 = 일본에서 나가라! 
    다만 바깥으로 진출한 일본인들이 차별받는 건 싫음! 뭐지? 뭐야? 어? 뭐냐고! 
    2008년 일본 TBS에서 방영된 드라마 <도쿄대공습>에서 조명발을 어디에 집중했나? '얼마나 더 우리를 죽여야 속이 후련하겠냐!'. 즉 동그라미(○)가 바깥에 피해끼치는 건 얼마든지 좋고, 그 반대는 안되고! 뭐야? 자업자득이니까 그랬을 뿐. 시도 때도 없이 뭐든지 언제나 남 탓! 도대체 그 사고체계는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미군만 악마로 그리고, 대공습 알고 있어도 도망가지 못하게 묶어놓고, 볼링공이랑 삼광작전이랑 전쟁 성노예는 아무것도 아니다잖아? 늬가 좋아하는 돈, 라는 대사처럼. 뭘 줘도 결코 좋게 주지 않는 아름다움처럼. 우끼시마배에 실어서 고국으로 돌려보내주는 척하면서, 자국민 선장 및 선원들은 대를 위해 희생되는 소 원리로써 전원 몰살. 오키나와? 버려. 더러운 것들. 동일본과 이누이족? 추접스러운 것들 가까이 오지 말라 그래. 드물게 착한 척한다고 제2차 세계대전 강제 노동 때문에 죽은 사람들을 위한 위령비? 바깥에서 생각하는 위령과 전혀 다름. 천황교이자 신도에서 말하는 위령은 일왕을 위해 죽은 영령을 위로하는 것. 곧 천황을 위해 잘 가셨다 부디 어쩐다...! (절레절레) 악마의 섬 사할린을 비롯해 전쟁노예만 과연 몇 명이었는데? 그럼 그 가족과 친구와 친분들은? 그러면서 몽땅 외면한 체 희망찬 내일로 나아갑시다. 어차피 열도는 점점, 서서히 태평양으로 멀어져가는 중. 혼자만 고고하거든. 

    도표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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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  일본어 발음 :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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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바리바리
동쪽/서쪽         히가시/니시 : 해가 곳는곳, 해가 누우신곳
남쪽               미나미        : 문(門)냄→무내미→무나미→미나미
북쪽               기타          : 귀(歸)터. 북쪽으로 돌아감
앞에               마에         :맏이 맏→마에. 앞에→아페→마에
해돋이            히다리       :해는 히, 돋이는 도디. 히도디→히다리
나(I)               와따시      :나따위→와따시  
작다               찌이사이   :전라도 사투리 쬐까나하이→→찌이사이
깊다               후까이      :푹 까인→후까이
얕다               아사이      :얕으이→아사이
귀엽다            가와이      :귀여우이→가여우이→가와이
교활하다         주루이      :스르륵 빠져나간다→주르륵 흘러내린다→주루이
터무니없다      토호우모나이: 터무니없다→토호우모나이
헛되다            무다다       :허무하다→무하다→무다다
아주 적다        와주까다    :(전라도 사투리) 아! 쬐까나다→와주까다
좋아한다         수끼다      :죽인다→쑥! 하다→수끼다
싫다              까라이다    :싫다→꺼린다→끼라이다
쩨쩨하다         게찌다      :쩨쩨하다→깨지락거리다→깨지다→게찌다
측은하다         후빈다     :가엾다→(속을) 후빈다→후빈다
참는다           가만다     :참는다→가만있다→가만다
헤메다           헤메구루  :헤메다→헤메구→헤메구루
열다              아게루    :아~하게 하라우→아가리(아게루 명사형)→아게루
이해하다        와카루     :이해하다→알겠어라우→와카루
담그다           쯔게루    :담그다→젖게 하우→쯔게루


일본어를 보아하니 어감이 남한 사투리, 북한어와 완전 흡사. 옛날 백제어, 신라어가 그대로 변했으니 대부분 일본어 사전을 통채로 설명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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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전) 미국 안에서 인디언을 아이누족이라고 비유하자면. 
    백제    = 영국,프랑스,스페인
    신라    = 네델란드
    고구려 = 벨기에?
    원나라 =
    ...
    이 비유가 마음에 드냐 안드냐는 문제가 아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실이야 거짓이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1,500년 내내 일관됐을 텐데 이걸 어쩌지? 이래서 칼럼을 써도 써도 끝이 없다는 거다. 안 그런가? 누가 아는 척 못해서 안달난 건 아닌데. 이거 정말 지식노동 신물이 다 난다. 어? 쓴물이 올라온다구요. 이걸 어쩌면 좋지? 미쳐버리겠네. 돌겠다구요. 그렇다고 일각에서는 언제까지 경계해야 하냐, 얼마를 더 미워해야 하냐,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 임진왜란 배경지식을 알면 답은 굳이 생략해도 될 것이다. 100면 1000명 탐정과 중간책 파견해서 정보를 캐내보니. 이건 완전 바보들이거든. 이용해먹기 딱 좋네? 한마디로 단순(무식). 그럼 뭐 이용해드려야지. 압승, 대승, 연승 뭘로 봐도 확신 100%. 그래서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듯이 알려주고...알려주고...대놓고 날짜까지 알려주고...그림까지 보여주고...! 그래 봤자 구시대성이 뭐라고 앞서 말했듯이. 뭐 그랬음. 만화영화에서나 육식동물이 당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죽냐 먹냐 속고 당하냐 밖에 없다.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 먹고, 작은 물고기는 새우를 잡아먹는 것. 뭐 언제까지 민감해야 하냐? 거울을 비춰보자. 언제까지 저 토끼들 징징거림 들어줘야 하냐. 훤히 보인다. 사람 사는 덴 다 똑같듯 어딘가도 분명 좋은 사람들 많고 어쩐다? 문명 기준을 엄정하게 설정하면 비교적 훨씬 적을 수 밖에. 왜냐하면 원시부족 기준으로야 동등할 테나, 문명 기준은 다르니까. 따라서 문명인인 척 교양스럽게 착한 척 입바른 소리한다? 동그라미 안에서 살 자격이 없다만 알면 된다.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스포츠가 뭐냐? 스모다. 지면 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가르치는 게 문화. 남한테 피해를 끼치지 말라? 800만 귀신과 온갖 굴레가 천문학적인데, 남한테 함부로 부담감을 안기면 안되기 때문. 그럼 결국 거울─반사─에코처럼 똥물은 내게 튀기는 것. 그럼 크고 작은 뒤통수 기록들은 엑셀파일로 정리되어 그 메타데이터 공유되나? 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제발 만들지 말라고 누가 물 떠놓고 기도하시나 보다. 안 그런가? 딴 건 몰라도 저 도표. 설마하니... 혹시... 저 화살표를 반대로 바꿔야 할까? 묻는 나도 능청스러워서 짜증난다. (절레절레)! 다 알면서, 응? 다 알면서 근데 정작 저 화살표가 반대라고 1,500년 내내 우기는 식 아닌가. 그게 어디 보통 일인가? 정녕 저 아름다운 분들께서 원해서 궁내청 비밀을 폭로하겠냔 말이다. 
    끝으로 나도 질문 하나만 하자. 네? 좀 그럽시다. 각설하고 즉각 말하자면 이렇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2009년 익산 미륵사지 서탑 심주석에서 발견된 사리. (A) 그 사리는 정녕 누구의 사리일까? (B) 그리고 그 사리가 발견된 미륵사의 미륵은 무엇을 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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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흑백지수 A]
    (2001년 천황의 백제 관련 발언에 비추어)
    내용은 익히 아실 테니 생략하고. 역사학을 논하다보니 어쩌다 현대사, 아니 현실까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해서, 2001년 저 언급 때문에 열도의 사회지도층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지진과 해일을 미리 읽는 곤충과 동물들처럼 일사분란하게 행동. 98%에서 예외인 2%도 편집해서 100%면 공산주의니까 모냥새만 적당히. 그게 언론과 정치-사회-경제계가 잘 소통하는 예일까? 그런데 정작 중요한 점은 오히려 그건 그나마 낫다는 점. 왜냐하면 1,500년 내내 일관됐으며, 축척된 기법, 난보쿠초 시대 (1333년 ~ 1392년)에 기타바타케 지카후사가 쓴 "천황 정통 기록"으로 시작하여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에 확립된 황국사관을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자연스럽게 표현한 사건으로 별 특별할 게 없는 사안이기 때문. 즉 77년간 존속했던 대일본제국(1868년~1947년)의 상징. 지금이라고 다른가? 반면 시선을 반도로 돌리면. 
    고려시대 외교관련 구시대성, 지금 생각하니 그게 정말 예쁜 정치관인가? 빙고! 그럼 조선시대 쇄국정책을 지금 똑같이 반복하면 어떨까? 말이 안되는 소리. 일본만 2001년 어떤 사건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는 계기가 되었던 게 아니라. 한국도 똑같았다. 아니 출발이 현저히 늦었던 만큼, 동시에 변하지 않으려는 구시대성 때문에 더 어려웠다는 점. 예를 들어 정권과 언론이 매우 사이 좋지 못했던 시대인 2001년 한국. 동아일보에 대한 세무조사 당시 反김대중 선봉에 섰던 동아일보가 DJ에게 (기득권층이 보기에) 정치적 보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세무조사를 당했는데. 그 때문인지 동아일보 회장 자택 압수수색을 당하는 과정에서 김병관 회장 부인인 안경희씨가 투신자살. 회장 부인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동아일보 김회장 구속. 서기 600년대 후반 천황이 죽었는데 국장도 미룬 채 모국을 돕기 위해 국력을 총동원해서 전쟁준비과 해외 참전을 감행했던 모습과 참 비교됨. (아무리 동맹국이어도... 그건 말이 안됨. 아무리 극우방이어도... 이상함. 태어났기를 죄다 그쪽이니까 그랬지. 또 그 즈음에 왜나라는 자국 사신을 위나라던가 당시 중국으로 직접 보낼 해군&해상 교통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현아이슬란드처럼 옆동네 배 타고 사신을 중국으로 보냈는데. 그래서 백제가 위험에 처하자 배 400척 만들다가 당시 35&37대 천황 서거) 
    그러니까 왜? 어떻게 0이 갑자기 1이 되겠나! 그럴 리는 없다. 김영삼 정권이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같은 혁혁한 성과도 이뤘으나. 군복 3연타 후유증을 단박에 어떻게 바꾸나. 절대로 안 될 일! 사회지도층이 제발 그래주라고 어디 애원할 사람들인가. 그럼 혁신은 꿈도 못 꿀 환경이었다 라는 뜻인데. 그 대가는? 당연히 IMF! 과거 군복 3연타 다음에 등장한 정치인 대통령으로써 하는 데까지만 했을 뿐. 개혁은 불가능하기 때문. 그런데 과거 40년 업보가 IMF라는 선물을 김대중 정부에 안겨주네? 全언론사들은 쾌재를 부르며, 발가벗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는 듯, 신나게 대동단결하여 때림. 전부 DJ 탓이라는 것처럼. 몽땅 DJ 때문이라면서! 싹 다 DJ가 책임질 일이라는 듯이. 그렇게 실제로 DJ는 굴욕적으로 IMF가 요구하는 강도높은 서류에 일일이 서명 다했음. 즉 재주는 곰이 부리고 달콤한 과일은 누가 따먹은지도 모르도록 사라져버렸을까? 40년 누적 결과 IMF라는 굴육을 선물하니 그걸 DJ정부 2년 만에 다 갚았음! 그러나~ 어? 그러나~ 모든 건 DJ 탓. 실상 금융위기는 60년대, 70년대, 80년대 계속 있었음. 그냥 40년 낸 아슬아슬하다가 DJ가 바톤을 넘겨받으니 딱 터졌을 뿐. 도대체 사회지도층들이 얼마를 빼먹었길래! 당시 만신창이가 됐던 거지. 해방 전후 모두 악인과 배신자와 비열한 사람들은 계속 부자로 재산은 알아서 늘어나고. 또 서민들은 속고 속고 뭐가 뭔지도 모르고. 기록 엑셀파일로 정리해볼까, 말까? 말하자면 출발부터 늦고 선진 사회보다 50년 100년 늦은 데도 불구하고 사회지도층들은 조선사회랑 똑같이 만들지 못해 안달. 그냥 타임머신 타고 뒤로만 가는 데 (저렴한 표현으로) 환장? 부끄러운 줄 모르는데 어떡하나. 심지어, 그러는 언론사들이 군복 3연타 몇 십년 동안, 과연 얼마나 정의로웠을까! 기록이 하나도 안 남아있나? 또 먼산 쳐다보기! 뭔 책잡힐 과거가 뭐 그렇게나 많아? 그게 정녕 언론사가 할 일인가? 어? 그러고서도 글쟁이? 놀고 있네. (절레절레) 그 때문일까, 어떤 영화 대사가 연상된다. "(부패 형사가 전업해서 현직 형사 동료를 만나서 하는 말) 나만 먹었냐? 어? 나만 먹었냐고!" (그 말 듣고) "그러니까 작작 좀 먹으라 그랬잖아, 어? 아 글쎄, 됐다! 그러지 말고......" 여기까지. 이러니 혁신을 어떻게 해. 응? 좋은 건 다 우리가, 나쁜 건 다 남 탓! 똑같잖아? 응? 하나도 다를 거 없다고! 오히려 한쪽은 프로 한쪽은 아마추어. 안 그래? 그런 핀잔 듣기 싫으면 마피아 게임만 하면서 골목에서만 폼잡지 말던가. 코흘리개 초딩도 아니고 그게 뭡니까, 쪽팔린 줄도 모른 채 말입니다. 노벨평화상도 받았으니 그거 저거 쌤쌤 퉁쳐서 독박쓰면 되겠네, 그건가? 아닌가? 안 그렇습니까? 할 말 없으니까 또 맞춤법 트집잡지 않을랑가 모르겄소!
    고수는(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전쟁범죄자를 추모하자 영령을 달래줍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셨는데 독박이 웬말입니까! 하수는(한국은) 노벨평화상이 죄다 독박쓰면 되겠네 아닌 말로 그게 최고로 간편하잖아 왜 대를 위해 소를 희생못해 지만 살겠다고? 40년 발전한 성과를 한방에 IMF로 망신살 톡톡히 샀으니 全언론사 대동단결! 자, 나를 따르라~! (주위를 보면) 아무도 없어. 다 어디 갔지? 좋을 때 으쌰으쌰 어려울 땐 싹 다 개인 플레이! 안 그런가? 나랑 별 관계없으니까 입바른 소리하던가 착한 척, 내 재산과 직결되니 눈에 쌍심지를 켬. 의료드라마처럼 지 잇속 안 챙기고 고지식허니 일 밖에 모르는 천재 응급센터장을 곱게 볼 리도 없고. 대학병원내 천재 외과의 견제하느라, 그게 그렇게 난위도 높은 기술이 아니다 어쩐다. 무대체질 시켜만 주면 누가 못해? 사극이면 사극 멜로드라마면 멜로드라마. 그게 아니라 (언론사와 이상한 방송사가 애용하는 표현처럼) 잡탕? 어? 여자 만날 땐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여자만 없으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하이에나 군침, 아프리카 들개떼 껄떡? 이래서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제 말이 틀렸습니까? 네? 이건 아닙니다~ 이건 아니라구요. 자, 여러분 들고 일어섭니다~ 우리 모두 젊음의 행진을 시작합시다~! 워 워 워. 흥분을 가라앉히고 할 말 마저 하자면. 
    그런 반면 2000년 초반 한국은, 저게 누가 봐도 정치적 보복이다? 한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이 행정수도 건립, 왕조시대처럼 집중된 체계를 분산하자. ~라고 했을 때 전언론은 뭐랬나? 그걸로 판단했을 때 2001년 천황 백제 관련 발언에 대한 일본 사회지도층의 반응은 지극히 예스러움에서 한치도 벗어났다 할 수 없다. 당시 법조계는 어땠나? 돈봉투면 다 됐다. 그거 개혁하자고 지금도 2021년도 고심하며 입씨름하는 거 아닌가? 2001년에 007가방이면 존경하는 재판장님들 거의 다 양심을 팔았다. 히포크라테스와 나이팅게일 선언이 웬말인가. 그럼 현직에서 실망스러운 정도를 벗어났을 때, 물러난 전직의 책임이 그냥 넘길 수 없는 선을 넘어간 건. 조용히 묻어야 할까? 그러니까 (나쁜) 쿠데타를 찬양만 하라고? 그냥 밥먹듯이 쿠데타만 하라고? 흑백TV 마음에 드는 건 개혁이자 발전이고, 흑백TV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정치보복? 1,500년 내내 역사왜곡은 좋고 전임자를 평가 정도에서 못 그치는 건 정치보복? 150년에 정점에 달았던 황국사관 때문에 치른 고역은 옳고 아름다우며, 그걸 바로 잡는 건 싫고! 전세계적으로 이런 사례를 모아보시라. 말도 못한다. 그걸로 반박을 하면 흑백TV는 일단 기준부터 달라진다. 집안단속에서는 왕조시대 기준으로 판단하고, 좀 더 거국적인 표준에 대해서는 사익과 연관되지 않는다면 하급자한테 맡기고, 내 재산과 밀접히 연관되면 눈동자부터 커짐. 너 그럴려고 칼럼니스트 됐냐? 노코멘트! 응? 그럼 언론의 평균이 어땠을까! 그런데 언론 개혁하자, 라고 하니 저 놈 봐라 장난하네 지가 누구 땜에 그 자리에 앉았는데 정신 못차려? 그렇게 된 것. 그게 바로 구시대성이자 흑백TV 사고체계. 대통령 기록물 열람을 비롯해 1950년 이후 대통령들 성과를 일장일단 엑셀파일로 구분해보시라. 구시대성과 흑백TV 사고체계일수록 바깥에 아쉬운 소리만 했다. 그럼 단지 일시적으로 말끔히 끝나냐? 두고 두고 뒷감당은 후세대가 감당해야 함. 돌아버림! 그렇다고 세계언론지수 순위에서 2002년이나 2020년이나 한국은 변함없이 약 40위! 20년 동안 뭐가 바꼈을까? 적어도 세계언론지수를 비롯한 언론계만 보자면 바뀐 건 거의 없다. 안 그런가? 그런 뭘 뜻하냐? 변치 말자, 그냥 옛날처럼 흑백TV들이 군림하는 체계로 살자 라는 얘기. 법조계에서 못된 인성과 돈만 밝히는 능력자들만 승진시키는 건, 늬들이 뭔 상관인데. 그래서 뉴욕 교육과 부동산 1번가 중학교 교장은 쟁쟁한 학부모들을 겁박했다. 장관이든 어디든 웬만히 찌르라고, 우리는 꿈쩍도 하지 않으니까. 라고 말이다. 메이저 언론사 거의 100%가 이명박 정권 때 뭐랬나, 이 나라가 역사상 최고로 잘 돌아가는 것처럼 광고했다. 마치 전언론사가 대통령 대변인이나 된다는 듯이. 그런데 그분 지금 어디 계시나? 네? 그게 언론의 사명감이자 역할일까? 2001년 천황 발언 관련 대응은 그나마 프로페셔널이라니까요 글쎄. 그럼 아마추어는 어디일까? 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를 어떻게 했나? 변절자와 간신배들을 단두대로 보냈다. 그렇지만 지구 반대편은 정반대. 그냥 1900년대 초반의 사회지도층이 2020년까지 별다른 변화없이 그대로! 내 말이 틀린가? 그런데 그거 바로 잡자, 최소한 어떤 숙제는 해결하자 ~라고 하니까 전언론사들이 어떻게 반응했나? 全사회지도층이 우리가 바라던 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다! ~라고 했을까? 기록 다 남아있지 않나. 안 그런가? 그러고서도 그게 언론사인가? 흑백TV들이 그렇다. 다른 건 다 옳고, 사람 좋고, 뭘로도 똑똑한데 유독 구체제를 개선하자 어떻게 발전합시다 무엇을 바꾸자 일단 논의라도 하자! ~라고 하면 절대로 틀린 걸 인정하기 싫은 구시대성. 싫은 건 안 바꿔. 그러면 보수가 아니라 그냥 왕조시대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야스쿠니 신사에 전쟁범죄자들과 일반인이 합장되어 있다 라는 소송 패배만 뭐라 할 게 아니다. 한국 국립묘지에 있어서는 안될 위인들은 또 뭔데! 그러니까 사극에 보면 3대를 어떡한다 라는 상식이 나오는데, 지금도 북한에서는 정치범이면 7대인가 8대까지 무엇이 예정된다. 
    도대체 뭐가 정치보복일까? 흑백TV 기준으로 (보수가 아니라) 경제적이자 체계적으로 야그야금 조금만 나아지면 그만이니까 사회지도층 만큼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자, 다만 사회지도층 만큼은 건드리는 거 못 본다. 그게 정치보복일까? 아니면 경기장에서 뛰는 건 정작 선수인데, 선수에 앞서 코치진부터 살찌고 지휘자가 관현악단 임금보다 100만배 챙기는 건 당연한데, 그거 바로 잡자 옳게 개선하자! ~라는 게 정치보복일까? 도대체 정치 보복이란 낱말의 의미는 뭘까? 뭐든지 흑백TV의 비위만 맞춰드려야 하나? 미래세대의 영역까지 죄다 선불로 땡겨서 흑백TV 원로가 꽉 막혔든 아니든 챙겨드려야 할까. 그러지 않으면 그게 정치 보복일까? 일단 사고체계부터 구시대성이 흔치 않을 때, 그러면 사극은 현실이되므로 정치 보복 같은 꺼림칙한 표현이 일상적이게 되는 건 맞다. 옳고 틀리고는 몰라도 그건 분명하다. 그런가, 안 그런가? 역사학 주제에서 또 흑백TV 주제 때문에 더러워지니까 기분 착찹하네. (절레절레) 군복들이 대통령 자리물림 3연타 하다가, 최초로 정치인이 2연속 대통령. 그 다음에 하필 진보 성향이 대통령(그건 실상 진보도 아니고 그냥 보수요 평균). 즉 군복 3연속이 물러나니까 점점, 점점 개선-개혁-혁신...사회지도층 짜증나네? 그래서 옛날엔 상상도 못했을 혁신적 행보를 이어가니 전언론이 2001년 일본 천황 발언 (개)무시처럼 뭐든지 비꼬아서 상대. 사설도 기사도 논조도 방송도 헤드라인도 뭐든지! 그래서 궁지에 몰리다 몰리다 전임 대통령도 자살. 그럼 동아일보 회장 부인 자살은 정치보복이고, 5년 내내 언론사를 비롯해 전사회지도층이 광분한 결과 全대통령 자살까지 몰린 일은 정치보복 아닌가? 그것조차 구분 못할 어른은 많지 않다. 초딩도 찬찬히 설명하면 다 이해함. 그게 또 거기서 끝나면 좋은데 한국 17대 대통령이 말단 사원부터 사장, 회장, 서울시장, 대통령까지 신화를 쓰는데. 말년운은 꽝! 그게 건설회사 부사장 당시, 하필 사장 부인과 20살 가수지망생의 불륜으로 그 딸이 자살. 그때 회장이 나중에 후회할 판단을 내림. 즉 17대를 사장에 발탁. 그래서 회장은 저주를 내림. 그 저주는 나중 이루어짐. 이게 말단 사원에서 사장-회장까지야 그렇다 쳐도, 제2차 세계대전 독일이 유럽을 식민지로 거느렸을 때 베를린 태생 프랑스인이 나중 프랑스 대통령 당선되서 결말 망한 것과 동일. 토종 아프리카인인데, 유럽 식민지 총통 집안 근처도 아니고 총독 건너뛰고 유럽으로 건너간 부모가 유럽에서 태어나도 나중 사리판별 잘하는 어른으로 성장하면 그만인데. 더 나은 국적만 있으면 계속 갈아타도 좋을까? 2번 갈아탔다가 3번 갈아타느니 눌러앉아 영구 집권해도 좋겠군 그럴까? 곧 당선 전에는 말로만 우리 모두 잘살자, 그런데 결과는 나만 또는 사회지도층만 잘 살자! 도대체 정치 보복의 기준이 뭘까? 정치 보복에 해당할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게 평균이 되면 그런 말을 사용하고 싶어도 못 사용할 텐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까 발생하는 거 아닌가. 그러게 누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래? 그렇다고 또 나쁜 남자가 날이면 날마다 뚜들어패고 막 그러다가 딱 1번 어쩌다 잘해주면... 그런 원리처럼. 1,500년 내내 역사왜곡에다 말도 안되는 억지가 평균에다 전국민 세뇌에 날조대국이라는 현실 가운데, 어쩌다 뭐 일본의 양심? 도대체 그게 평균이 되어야 정상이지 무슨 어디의 양심이라니. 그건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썩었단 말이잖아? (겉은 화려하고 윤택한 환경일지언정 속으로) 도대체 얼마나 사고체계가 썩었으면 무슨 양심이 대단한 별명이자 멋진 수식어로 애용되는지 (절레절레)! 개선과 발전과 다수의 행복이 당연한 의무인데, 흑백TV만의 유일한 업적이요 전매특허라도 되나? 흑백TV만 全언론사로부터 칭찬받아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냔 말이다. 안 그런가? 당연하디 당연하고 그게 평균이 되어야지 뜬금없이 양심이 왜 튀어나오나? 어? 다시 틀을 좁혀서 정치 보복. 뭐 사회지도층이랄지 사회지도층 동조파는 정치보복 해도 되고, 比사회지도층과 개혁파는 정치보복 하면 안된다 라는 관습법이라도 억지로 만들어야 하냐 그거다. 
    고인은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 했는데, 어쩌다 생전 바램과 달리 무덤은 커졌고, 더더군다나 거기다 오물까지 투척. 육군사관학교 불문율이 뭔가, 옳든 그르든 이기면 장땡이라고 가르치면서 쿠데타로써 상급자들한테 개기라고 가르친다. 성폭행과 성희롱도 발생하면 당한 놈 당한 년만 병신이라는 관례는 개선되기 더디다. 심지어 하극상으로 역대급인 1인자를 존경, 하극상으로 최소한 시대의 소임을 맡았던 배역은 창피해한다. 뭐가 거꾸로 됐나? 현역 장성이 자랑스럽게 조명발 받으면 직접적으로 권유요 간접적으로 명령한다, 군번줄 평소에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전시에만 챙기라고. 그럼 그분들께서 실전을 평생 경험할 수 있나? 거의 없다. 그럼 그냥 군번줄 지나가는 동네 똥개한테나 던져주라는 말과 똑같다. 게다가 전부 다 쿠데타용 군인으로 교육시킨다. 그게 뭔가? 지금도 특급 경호 든든! 심지어 옳은 역할을 한 배역은 (베이징을 전직 때 갔다오거나 현임 때 언론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호적 파버린다. 매장시켜버린다. 별명도 화려한 걸 붙여준다. 두고두고 무덤까지 아름다운 꼬리표를 선사한다. 역대 한국에서 진보적인 대통령이 나온 적 있나? 근대사가 짧기는 해도 간결히 말하자면 단 1번도 없다. 물론 유럽 기준의 진보로 말이다. 그럼 세계 평균에 해당하는 보수는? 불과 1번 많아야 2번 또는 2.5번. 나머지는 전부 흑백 TV. 그럼 사회지도층은? 대법관 100%가 혁명 짜증난다, 혁신도시 더 신경질난다, 돈봉투가 웬말이냐 007가방 말고 황금바로 주라는 식. 좋은 판사 내보내는 데 최적의 환경을 만드는 셈? 좋은 인재들이 꾸준히 유입되어도 각계각층에서 구식탱탱먹은 관례 때문에 못 버티고 늦게 나가냐 변질되냐. 수질 안 좋은데 초심부터 괴상한 걸 배움. 그럼 결국 선도브랜드는 자기 브랜드가 아니라 해당 카테고리를 홍보할 마음도 없고, 단기이익만 쥐어짜게 됨. 그럼 리그 평판은 더러워지고 결국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게 됨. 맞나? 불과 10년 전 20년 전이 이렇다. 마피아 + (   ) = 먼피아! 저 괄호로부터 자유로운 업계요 학계 있나? 내가 알기로는 없다. 그래서 구시대성이 압권인 분야일수록 피라미드 아래에서 1/n으로 모아서 위에게 에르메스백을 상납하는 게 관례. 이런 예시들 집단지성을 모아보시라. 그게 반대로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너는 너 나는 나! 다시 말해 개선과 차근차근. 이래서 프랑스에서는 혁명기념일을 기린다. 그런데 개선도 싫다 차근차근 짜증난다 뭐 어쩌자고요! 굽실굽실 대충대충 반짝반짝. 그걸 제발 바꿉시다 라고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열한 책략으로 끄집어내리기. 아니면 무대에 그냥 영구히 남기. 대일본제국의 77년 존속기간처럼 조슈&싸스마 파벌이 직접적으로 최소 70%, 영향력 감안하면 90% 독점. 그와 대체 얼마나 다른가? 세계 발간부수 1위인 요미우리는 그나마 낫다. 한국 발간부수 1위인 조선일보의 평판은 어떤가? 말 말자. 물론 지금이니까 그나마 뭔 얘기인지 안다, 듣기 싫다 짜증난다 하실지 모르지만. 지금이 아니라 10년 전이면! 20년 전이면 대체 얼마나 긍정적인 무대였는지 얼마나 희망찬 나라였느지 어른들 아시는 거 참 많지 않나. 불과 언제적 연예계 성상납과 방송가 PD들의 살벌한...뭐라 해야하지? (나머지가 그 카르텔과 정비례는 아닐지언정 비례했던 게 불과 얼마 전) 나머지 모든 분야와 상당 부분 비례했을까, 아닐까? 잘 아시지 않나. 또 지금이니까 그냥 고개 돌리거나 헛기침만 하시겠지만, 만약 당시라면 으쌰으쌰 부글부글 지금처럼 절대로 조용할 리 없었겠지. 안 그런가? 왜 말이 없나. 언제부터 그렇게 조용하셨다고. 거 참 더럽게 말 많은 사람들이 진짜 누구인데 왜 지금은 정반대로 바꼈지? 아니 왜? 모를 일이다. 알 길이 없으니까 말이다. 
    말 나온 김에 몇 마디 더하자. 그러는 게 좋겠다. 그런데 기자실 폐쇄하고 총리 VS 기자 간담회, 대통령 담화 발표. 대통령과 언론이 의사소통하는 게 아니라, 너넨 듣기만 해 띄우라면 띄우고 어떤 사안 무시하라면 무시해, 또 기자들한테 돈봉투와 기타 이익 듬뿍. 그게 세계언론지수 기준으로 보자면 꽝인데, 왜 언론은 그걸 좋아하면서 역대 최고의 성군으로 치켜세우는 거지? 그러니까 칼럼이 안 멈추는 거지. 그러니까 미얀마 세계 뉴스와 아프리카,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태 등을 보면서 저건 저거, 평범이자 보통으로 돌아가는 현시국은 독재래. 이런 걸로 봐선 아직 정신 하나도 차리지 못했다는 얘긴데. 불과 언제적만 봐도 얼마나 도청을 해대면 귀때기 정권. (대선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휴전 중인 적국 관계자와 제3지대에서 접선하여, 국지전을 부탁했으니 그랬지. 독재정권일 때 뒷산까지 위협받고, 졸부정권 집권 위해 국지전 부탁. 뭐지? 언어와 인종으로 동일 민족이라지만 졸부 만을 위하냐 아니냐 이분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까 옛날에 마피아 관습 아닌 게 드물었음. 100년 전에 나라를 판 전력이 있으니 내내 보수적이었다 돌아보더라도, 집권을 위해서라면 내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사고체계. 졸부랑 똑같음. 그게 다 영화계와 오락산업 소재를 위해서?) 또 왠지 경제를 일으킬 거 같은 인물이 당선됐는데 뜬금없이 CIA가 하라는 일은 안하고 댓글 알바 30개팀 3500명 운영. 뭐지? 그럴려면 코메디를 해야지 아니 왜! 이래서 전유럽이 세계 90% 꿀꺽할 때 이탈리아는 마피아를 탄생시킴. 머시기한 1인자를 배출한 원죄 때문에 뒷감당이...대국민 사과. 근데 일시적으로만 찔끔. 매번 뒤통수. 말로는 나라 걱정 정국 구상. 거기서 끝날 리도 없음. 직접화법 대 간접화법만 해도 앞서 말했듯 금새 동네축구되는데. 직접경험 대 간접경험 ~까지 감안하면? 똥볼찰까 괴로워짐. 저쪽으로 우르르르 이쪽으로 우르르르! 민영화 작전 진행시킬 때만 천국을 실현시킬 것처럼 광고하다가, 나중 뒷감당이 지옥으로 판명날 때 온데간데 흔적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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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흑백지수 B]
    대통령이 특정 역사연구 지시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2017년 6월 6일 조선일보 대제목)
    으잉? 어딨긴 겁나게 많음. 과거에도 엄청나게 많았음. 또 대통령이 특정 역사연구 지시하면 절대로 안된다 ~라는 의도로 대제목을 뽑았네? 그러니까 구시대적 사회지도층한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지 말고 뭘 바꿀려고도 하지 말아라? 놀고 있네. 그럼 알려진 역사 현황과 교육과 배경지식이 잘못되어 있어도, 죽어도 새롭게 고쳐서는 안된다는 말이잖아! 그런 게 어딨어, 억지도 그런 억지가 대체 어디 있을까. 이건 뭐 초딩도 아니고 꽉 막힌 것도 정도가 있지 그게 뭡니까. 개혁의 '개'짜도 상상하지 말라라니. 망언제조기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뜻. 최고로 가까이 아니 있는지 없는지 잠식한다는 얘기. 내부의 적이 더 무섭구만 그래. 와, 살벌하다 증말!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사학계가 잘 돌아갈 때, 건드리지 않으면 됨. 교육계가 엉망진창일 때, 차근차근으로 되냐 혁신해야 하냐를 따지면 좋음. 그럼 검찰계도 우군으로 나서서 뭔가를 바로 잡아야 한다? 검찰계부터 150년 이상한 관례가 여전하면 그건 또 뭔데! 물론 역사학계가 잘 돌아갈 때 괜히 참견했던 예들을 몇몇 거론했듯이, 엉망진창 구습이 도저히 신식으로 바뀌지 않아도 방관만 해야 하냐. 그럼도 일관성 없이 왜 조정, 중재, 지도하지 않느냐고 대제목 달 게 뻔함. 상왕 노릇 못하면 그냥 뭐든지 반대로! 흑백TV 사고체계는 그야말로 상상 초월. 희망의 나라로 나아갈려는데 바지끄댕이잡고 흑백tv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미침. 많은 역사책과 상당 부분 역사 교과서를 확 다 들어엎어야 할 정도로 잘못되어 있는데? 필자가 역사 분야에 대해서 몰랐을 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나갔겠으나, 알고 나니 죄다 바보들이잖아? 
    도표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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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개입 (참견?)             정부 진상조사  결과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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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경제        중간 (짠물&민물파 참고)        O△X
깡촌 집단 암발생   늦냐 빠르냐 (떼죽음인데?)       O
사학계를 비롯....    환경/생태계 검토 후 결정        O△X
미네르바 별명       장막에서 경제분석가 활동       O△X        자유 억압     민주주의 퇴보/세계언론지수 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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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금리를 올린다, 내린다, 유지한다. 부동산 과열을 중재한다 어쩐다. 그런데 뜬금없이 미네르바로 불리는 어떤 경제분석가를 불러들여 협박하고 혼쭐을 내준다? 물론 평소에는 미술계 음악계 오락산업계 자율 기능에 맡겨둠. 그런데 얼토당토 않은 상황이라면 정부가 대체 왜 있는데. 역사학계가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데 팔짱만 끼면서 방관한다니 그건 말이 안됨. 따라서 당장 옛날 수사방식대로 아무나 잡아들이고 누구나 대충 범인 지목해서 때려잡으란 말이 아니라. 저 순서와 과정에 따라 현황을 파악한다 그게 왜 나쁠까! 응? 그런데 언론사 큰 제목에 뭐, 대통령이 특정 역사연구 지시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말이 되나 말이. 그러니까 엄한 미네르바나 잡아다가 곤장을 냅다 때려치는 식이지. 뭘 해도 툭하면 반대로. 뭘 하든지 심심하면 거꾸로! 어? 해야 할 본분은 망각한 체 밑도 끝도 없이 민영화로 좋은 기관들은 싹 다 시장에 팔아버림. (물론 중간 체급이 적당한데 모든 걸 통제하는 식으로 공산주의 비슷하게 슈퍼헤비급 되어도 문제지만 그건 옛날 얘기고. 거꾸로 법칙은 민영화와도 관련된다. 대표적으로 수도/전기/의료는 절대로 민영화하면 안되는데 그건 딱 민영화. 반대로 자, 만약 지금 당장 포르쉐랑 벤츠랑 BMW를 민영화했다고 가정하자면 그건 뭘까? 국영기업 르노가 됨. 물론 르노도 합리적이고 좋다만 페라리와 자동차 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경쟁력은 포기해야 하는 걸 뜻함. 전기차를 비롯해 테슬라-애플-어디..같은 신식 브랜드, 구식 상표와 달리 신식 브랜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기동력과 창의력 뭐든지 굼뜰 수 밖에 없게 됨. 즉 뭘 공영화 범위에 넣느냐 아니냐 라는 건 시급히 몰아붙일 일이 아니라는 거. 간척 한번 해버리면 역간척은 꿈도 꿀 수 없다. 전세계 사례를 엑셀파일로 논문과 10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서 4대강 정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급한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물고기 종류 95% 멸종. 멋도 없음. 차별화도 안됨. 한국 사례에서 섬진강과 작은 강 몇몇 빼고는 다 똑같아져버렸다. 이미 선발주자들이 선험적으로, 천문학적인 대가를 치러서 선례를 엄청나게 남겼는데. 굳이 좋은 길 말고 험지로 가서 피라미드 최상층만 배불리고 나중 나 몰라라. 이게 과연 모범적인 정치인가?). 만약 그렇게 되면 나중 체급 떨어질 대로 떨어져서 정부가 뭘 할 수 있는 게 없음. 응? 괜히 경제학 독학자를 족쳐. 트집잡을 일과 대중이 심심하도록 놀리면 안되기 때문인지 그분들 시선을 돌릴 관심사, 좋은 먹잇감 찾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인지. 괜히 엄한 경제분석가만 불러다 조져! 응? 이 세상이 아름답도록도 아니고 그냥 잘 굴러가도록 가만히 보고 있지를 못하나? 분위기 흉흉하니까 진짜 범인은 잡기도 힘들고, 그냥 비리비리한 놈 때려잡아서 가짜로 범인 사진 찍고 사건 종결. 응? 다른 분야는 아직도 그런 식이잖아? (속된말로) 군대에서 삥바리들 가만 놀리면 정신 헤이해지니까 무조건 심심하면 풀 뜯게 만들어. 언제적 황국식민, 식민지사학관에서 많이 벗어난 논문과 학설이 쓱 고개를 든다? 야, 쟤 따시켜!
   "(엑셀파일을 쓱 보더니) 경제계에서 이거 밖에 못 걷었어? 여기 여기 여기. 싹 다 구속시켜. 죄목 없으면 만들어. 뭐? 좌하귀가 앞으로 출세는 커녕 무대에 얼씬도 못하게 만들어. 모든 분야에서 싹 다 지원조차 못하게 만들어. 한 삼 대 지나면 조금은 정신차릴려나. 걔네들 정신 못 차려. 뭐? 장학회 뺏어. 뭐 하러 말로 사람 대접해? 그냥 구실 대서 적당히 뺏어. (여기 언론사 엑셀파일입니다) 이건 또 뭐야? 전부 불러들여. 지금 당장! 개 돼지들이 뭘 안다고. 더 몰아붙여."
    (a) 어떤 분야가 잘 돌아감/분위기 좋음: 공적 위력 비개입 
    (b) 어떤 분야가 잘 안돌아감/사기..공갈: 공권력 개입
    여기서 (b)에 해당하는데 공권력이 모른 체한다? 그러면 비판하는 게 옳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게 언론의 사명이자 역할. 그 의무를 게을리 하면 두고 두고 오명. 그런데 반대로 (b)인데 공권력 개입했다고 비판한다? 연예인병 걸렸음. 오만방자! 사극에서 간신배던가, 아니면 고려시대 구시대성 때문에 목숨 걸로 사신 역할 톡톡히 하고 왔는데, 서류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지 않았다고 유배보내는 이치. 즉 뭐든지 왜 반대로 하냐? (검지를 구부려 귀 위쪽을 똑똑똑) 사고체계가 흑백tv던가, 사고방식이 구시대성 기반이던가 그 때문. 자, 한번 생각을 해보자. 만약 그걸 반대로 하면 어떻게 될까? 보아하니 전례가 풍성하다. 그걸로만 봐서는 완전 풍년! 예를 들어 (a)에 해당하는데. 가만둬도 잘 돌아가는데 개입해서 뺏던 예는 뭐다? 그런 살벌한 시대가 아니기 때문일까! 뜬금없이, 밑도 끝도 없이 (b)를 놓고서 깐죽. 깐족.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라고 자문해보면 연예인인 줄 아니까, 아니면 만인의 뚜껑을 열기 위해. 나는 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 깐족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기 위해서, 무슨 기여는 기여. 
    뭐야 이게? 응? 무슨 언론사 문관들이라는 양반들이 마피아랑 구분이 안돼. 형님 형님 으쌰으쌰 자기들끼리만 카르텔 형성해서 먼저 굽히지 않는다 하면 지도. 고문. 음해. 조작. 게릴라 마케팅. 노이즈 마케팅. 협박. 응? 실력으로 안되니까 다 함께 더러워지자는 식. 내가(우리만) 못 먹을 바에야 아무도 못 먹게 만들어버림. 제삿밥에 재 싹 뿌려버림. 아니면 남들이 고생고생해서 차린 잔칫상에 쓱 숟가락만 올림. 아직도 이런 꼰대님들이 많다고? 이래서 빅맥지수만 있으면 안되고 흑백지수도 있어야 함. 응? 정작 개입해서 진상조사부터 해야 할 일은 내팽개쳐두고. 언론사 입맛 맞춰주고, 기자님들 일 많이 하시지 않도록 귀찮게 해드리지 말 것이며, 사회지도층 비위만 눈치봐야 한다니.. 쯧쯧쯧! 깡촌에서 집단 암발생으로 30% 떼죽음이자, 나머지 70%는 골골골 겔겔겔 약으로 겨우겨우 연명하며 살고 있는데? 필자가 봤을 땐 코메디계가 쫄딱 망한 이유가 다 있다. 왜냐하면 개그맨과 오락산업 우수 인재들을 죄다 빼앗아가버렸으니까. 러브콜 하기도 전부터 젊은이들의 꿈이 그건가? 이러니 유머계가 안 망하고 어떻게 버티나. 응? 언론사 주필들은 뭐 죄다 멍청이 밥통 미련곰탱이들만 자리에 앉히나? 그런가? 어? 그분들 기록은 하나도 안 남는다는 건가 뭐냐고. 제발 꽉 막힌 자기들한테 관심 좀 가져주라는 힌트일까? 이러니 창작개그 프로그램들이 명맥을 유지할 수 없지. 코메디언들이 죄다 언론사로 다 가버렸거든. 뭐, 대통령이 특정 역사연구 지시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필자가 최근에 심도 깊게 그 분야를 파헤쳐보니... 저런 멍청한... 저런 허접한... 이러니 누군가 더럽게 일 많이 할 수 밖에. 저게 어쩌다 실수하면 그럴 수 있음. 허나 그게 아니라 일관되도록 50년 내내 저러니까 문제! 캬~ 어? (절레절레)
    삼양라면 1989년 공업용 소뼈 사건을 주도한 인물이 누군가? 김기춘과 농심의 관계를 아직도 우리가 떠올려야 하다니. 조명발 아래에서는 "하면 된다", 음습한 구석지 작전 회의에서는 "아니면 말고". 불과 10년 안쪽만 봐도 국정화 교과서 총책임자 김정배는 고대사학계 최고 원로로써 그분이 죽기만을 기다린 염원이 과연 어땠는데. 고대사 담당자 서영수는 또 어떻고! 신형식? 황국사관 Ctrl+C  Ctrl+V. 한국학 중앙연구원장 이기동은 타임머신 태워서 중세로 보내버려야 할 인간. 인간? 지구를 떠나면 더 좋음. 꽉 막힌 그 고대사학 집단 때문에 100년 내내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지를 못해. 뿐만 아니라 관련하여 수많은 부분은 퇴보. 시간낭비는 시간낭비대로 손해는 손해대로! 다음 생에 바퀴벌레로 환생해야 할 분들! 더더군다나 일본에서 황국사관을 극복한 건 아니라 적어도 임나일본부설이 쏙 들어가는 데 무려 수십 년에서 100년이 족히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황국사관은 공부하러 온 한국 학생들을 구워삶았는지 먼저 저자세로 숙이고 들어갔는지, 궁짝이 딱딱 맞는 예도 있다. 가령 고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라는 주장. 진보적으로 올바른 연구를 감행한 역사학자들과 영 딴판으로 황국사관에만 매달린 일본 역사학자 가운데. 미즈노 유, 후쿠이 도시히코 라는 두 교수는 김현구 씨의 학위논문을 지도하고 통과시키고 출판까지 도와줌. 출판된 학생 논문에 황국사관 복귀에 관한 서문까지 써줌. 그러니 비전공자가 발로 뛰고 인생 내내 매달려 집필한 책들과 여러 성과에는 통 조명이 비추질 않지. 필자처럼 아마추어한테도 (속된 말로) 발려. 그런데 학계에서는 권위 튼튼! 대체 그건 어떤 나라일까? 또 그런 엉터리 교수를 고용했는지 계약했는지 집무실을 내준 대학교는 또 뭐고! 그럼 그분들 밑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은 옆동네랑 똑같이 좀비만 양산하는 거잖아? 그래서 황국사관 기준에 반대하는 제의, 학설, 논문, 주장 등은 아예 상대조차 안해주는 식. 
    A. (쿠바인 생각) 도대체 어떡해야 쿠바를 미국한테 팔 수 있을까?
    B. (아일랜드인 인생) 어찌 해야 영국령 아일랜드로 남을까, 어떻게 되돌아갈까! 
    국가 부채에서 2위와 인상적인 차이로 1위를 유지하는 일본. 그 부분에서 단독 1등인 일본이 여러 위기 예고 지표에도 불구하고, 왜 하락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아십니까? 일단은 체급 때문에 절대로 급락할 수 없단 말도 틀리지 않은데. 더 솔깃한 까닭을 말씀드리자면 이렇다. 즉 일본은 여러 장치와 기법으로써 경제적으로 미국과 동기화됐기 때문에, 그러므로 절대로 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즉 만약 미국이 망한다면 일본도 위기일 텐데, 미국이 그럴 일은 없다? 뭘 해도 연승이자 대승뿐만 아니라 공룡 1번만 야위어 가는 식. 옆에 있으면 단물 빨리고, 불리하면 물귀신 작전이고. 뭘 해도 탈! 워낙 귀신을 숭상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한국이 150년 내내 비리비리했던 이유로, 귀신들이 모두 한국에서 일본으로 옮겨와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그쪽 어르신들 겁나게 많음. 또 호류지와 천황릉 유적을 발굴할 때 1000년 1500년 동안 무탈했던 유적을 벗기려고 하니, 승려들이 공포영화랑 똑같이 기겁을 하고 도망갔다는 진실. 한마디로 귀신들린 나라! 얘기가 곁으로 샜다만 돌아와서. 반면, IMF 빌린 나라들은 비동기화 관계이기 때문에 망해도 (일시적으로) 혼자(만) 망한다. 또 나랏일 핑계로 공룡기업을 헐값에 외국계 기업사냥꾼한테 손쉽게 넘기고 개인만 주머니 두둑히 불렸던 예시들도 여기저기. 그것과 (드물게 나쁘지 않은 과체중 줄이기 빼고) 민영화는 차이가 없는 이치! 양심 지켜서 뭐 하게? 지조없이 문란한 년 되는 것임. 한때 비굴 평생 부자일 테니까. 그럼 다음으로 망할 가능성 완벽히 0이라는 건 뭘 뜻하냐? 착할(착해질) 필요가 없고, 이따금 착한 척이야 눈감아주거나 지도하든가 그럼 그만이며, 오히려 황국사관으로만 더더욱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즉 오직 과거 회귀 명분만을 위하여! 
    그러니까 여러 칼럼 주제를 보건대 반도와 달리 열도에서는, 요미우리&산케이와 싸우지 말라고 충고를 애초에 할 필요가 없다. 그걸 누가 몰라? 바보도 아니고 옆에서 뭐 한다고 말리나. 그 앞에서 굽실굽실 굽힌다고 퍽 예뻐하지는 않을지언정 거의 누구도 튀지 않는다. 반면 반도는 2001년 국세청이 중앙 언론사 스물세 곳을 대상으로 세무 조사 시작.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74일,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이 70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82일, 조희준 국민일보 회장이 84일 동안 구속 수감. 그렇다고 나중 뭐가 바뀌었나? 더 독해짐. 응? 조슈&사쓰마 군벌이 정식으로 77년이지만 나머지 감안하면 150년 독점? 1500년 일관성 만큼은 알아줘야 한다고 하여, 하필 반도는 그걸 배우네? 우하귀가 조슈&사쓰마 따라해서 0.5세기 못 채우니까 어땠나? 군복 3연타 때 얼마나 착한 배역을 떠맡았냐고. 도대체 어느 만큼 기세등등 왕조시대의 권위를 누렸길래 사회지도층 1세기 독과점하려는 거지? 그걸로 봤을 때 1당제이자 사회지도층 몽니는 판박이다. 세계 기금으로 신간센 만들고, 일본 자금으로 경부고속도로 만들고. 그런데 신간센은 현재까지 사망자 0, 경부고속도로는... 아아 넘어가자. 언론사가 무슨 스포츠 조롱꾼한테 지기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게 바로 인터넷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그나마 정신차리면 나은데. 과연 어느 정도나 점차점차 발전했을까? 어른들 잘 아시질 않나. 무슨 방송국 PD들만 성상납 천국을 누렸나? 언론사 고위층들을 비롯해 사회 전분야가 그와 정비례. 뭐든지 돈봉투. 그럼 저런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자성을 하나? 자성은 개뿔. 더 삐툴어짐! 그러다 나중 후회하면 늦는다. 졸부들이 막대한 재산 물려준 조부모와 배신자들과 악마들 제사 지내봐야 싹 다 소용없단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SF 영화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근거로 차곡차곡 쌓일 테니 저 세상으로 건너가보면 안다. 그때 全언론사들이 뭐랬더라? 무슨 뭐, 법관들 평균이 007 가방이던 20년 전, 대법관 별명으로 뭐 대쪽 판사? 지금은 지나가는 개도 웃는다. 1762년 5월 21일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이후, 정조가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언론사를 비롯한 사회지도층은 만들어주었을까? 아마도 아닌 듯. 상왕한테 말 잘 듣는 배역이자 퇴근 일찍 시켜주는 지휘자 선호 경향은 별로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기 때문인지 미사일 쏴달라는 사실은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는 셈. (대통령 당선을 위해 미사일 쏴주라, 아니면 대통령 당선된 다음에 천안함 사태 터졌는데 또 미사일? 이건 어떡할 수 없음. 업보가 무슨 뜻인데?!) 즉 5월 13일에 뒤주에 갖혀서 5월 21일에 열어보니... 사망일을 몰라요 그처럼 너네도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말라, 뭘 너무 열심히 바꾸려고 하지 말라인가? 노태우가 사관학교 연설차 갔을 때 경례도 안하고 (개)무시했던 게 시간차로 뒷맛이 씁쓸했는데. 노무현이 국회 들어설 때 반말하고 무시하던 국회의원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지? 어제는 금감위원장이 감옥에 수감되고, 오늘은 全감사원장이 대권에 도전한다. 또 이상하게 출임금지 시켜주면 기자들은 쌍수들며 좋아하고, 소통하지 않으면 언론사들은 더 열광한다. 불과 15년 전, 2004년 10월 행정수도특별조치법 위헌 확인 소송에서 재판관 아홉 중 전효숙 재판관만 유일하게 각하. 그런데 곧 있다가 재판관 직 사직. 그럼 개혁은 고민한 필요도 없는 낱말에 불과한 걸까? 감기야 대체로 쉬면 낫는다. 그러나 전염성 높은 질병은 내가 아팠을 때 남한테까지 옮길 가능성이 크다. 사고체계가 구시대성이라면야 체급만 줄여도 뒷탈은 커다낳고 뒤끝마저 차마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양심마저 팔아버려야 할 시대를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이 글을 쓰는 것조차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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