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는 이렇다.
왜 외계인(신)은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지구에 방문했다(할 것이다)라는 기록이 전해졌을까.
여자는 통상 <왜>에 섬세한 감수성이 반응하고 <어떻게>에 예민한 호기심이 작동한다. 이따금, 남자가 <왜>에 다정하지 않거나 <어떻게>에 무정할 수 있듯이. 그렇지만 요술 대 기술, 허구 대 사실, 감성 대 이성처럼 일부분 심리기제의 순서가 상호대칭될지라도 여자의 사고방식도 나름 장점은 찬란하다. 바로 발상의 전환과 질문 뒤집기. 왜 머머할까? 듣고 보니 숙녀는 헷갈릴 수도 있다. 임팔라는 귀 먼저 펄럭였고 코요테는 목적지향적인 남자보다 마음 주고 받기를 선호하니까. 그래? 그럼 그녀는 질문을 뒤집는다. 안 그래도 전-남자친구는 입만 열면 뻥이었고, 아무도 믿지 말라며 믿고 싶은 우릴 꼬시는 오락산업에게 배운 거도 듬뿍이거든. 어차피 애매모호한 거 생각을 발전시킬려면 것도 괜찮은 방법이니까. 나쁘지 않네. 그래서 저 제목을 뒤집으면 이렇게 된다. 왜 외계인은 인간과 똑같은 숙주로써 현현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딱)! 답은 즉각 나왔다. 효과 괜찮군.
왜냐하면 외계인이 인간과 똑같은 모습이지 않다면, 인간은 그 외계인을 모종의 외계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일종의 괴물로 간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SF 영화에서야 이마에 눈이 1개 더 있다거나, 만화영화에서 눈이 1개라거나. 상상력은 좋다만 외계인이 뭐가 그리워서 인간이라는 숙주를 미련하도록 고집하겠나. 누가 아쉽나 아쉽지 않나는 누가 더 사랑하냐 라는 사랑의 줄다리기에서나 따지고. 인간 대 외계인은 원론적으로 사랑의 포로가 아니라, 종 자체가 다르다고 보면 된다. 노는 물이 다른 프로와 아마추어. 참고로 아마추어가 그 얼마나 행복한지는 프로가 되어보면 안다. 현재를 즐기네 어쩌네 그거 다 뻥이라는 말처럼.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인터뷰하며, 너무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펑펑 우는 선수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른 말로 프로가 우승이라도 하면 좋게? 나머지는 싹 다 신부들러리 처지. 잔재주꾼들이 좋은 게 뭔데. 다방면에서 고수의 기쁨과 여유와 관록미는 물론 장점만 맛볼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유기견 안락사 시키는 일을 하던 시절 자긴 알콜중독자로 살 수 밖에 없었다는 눈물 젖은 회상, 그런 고백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낚시는 재밌지만 어업은 그와 다르듯이. 연애사가 아무리 풍년이어도 여복 하면 정실이듯. (이건 다른 건가. 넘어가고). 외계인과 인간은 좋든 나쁘든, 친애하건 아니건. 각자 다른 개념일 때는 개미와 인간처럼 서로를 공감도, 이해도, 교류도 할 수 없다. 다만 이론은 그렇고, 실제로는 그걸 뛰어넘는 노력은 가능하고. 부자 친구가 형편 그만그만한 친구에게 접어주듯이. 강자와 약자가 함께 하려면 핸디캡을 적용하듯이. 미래를 위해 현재 암컷 싸움닭에게 최선을 다해서 져 주듯이. 그렇듯 물리적인 동격으로 공존하는 건 가능하지 않단 얘기다. 그럴 수 밖에 없겠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든, 아니면 피라미드나 모래시계를 뒤집든 어쩌든. 그처럼 1부리그 득점왕이 7부리그의 인습에 반드시 맞춰줘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아빠나 삼촌이 5살 꼬마와 축구를 하면 져 줘야 하나, 아니면 스트라이커 흉내를 내면서 좋다고 신나야 하나. 아름다운 질서라는 게 그렇다. 아니라면 괴물 취급받을 테니까. 안 그러면 5살 꼬마 삐지고 토라질 테니까. 필자의 조카가 그걸 여실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더라니까요, 절레절레. (얼굴 화끈거려 혼났다니까 그러시네. 져 줄 때 져 줘야 한다고. 일생이 병풍이요 인생은 뻔트라서 그랬나는 몰라도. 물개박수 시원하게 제공하고 인심 후하게 신부들러리 떠맡기. 까짓껏 못할 건 뭔가! 넘어가고) 묵계와 불문율과 질서가 그렇다. 통역도 안되는데 서로 다른 언어끼리 말이 통할 리 있나. 직역이든 의역이든 중간에 변환은 필요할 수 밖에. 소프트웨어의 버전업 호환이니 뭐니 그건 버전만 다르지 거의 똑같은 코딩이니까. 어차피 하드웨어는 같으니까. 돈은 당나귀도 가게 하고,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한다지만. 원론적으로 당나귀와 코끼리는 서로 관심조차 없다. 말도 안 통한다. 요리사가 너무 많으면 수프가 엉망이 된다고, 다신교는 문화적 의미로써 가치 있고 전통적으로 존중하면 그만. 윈윈. 누구도 나쁘지 않음. 문제될 거? 없음. 그와 별개로 개를 키우면서 직접 짖을 필요 없다듯이, 비유가 좀 그렇긴 하다만, 전령은 꼭 매가 아니라 개일 수도 있다는 것.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는 건 비유법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개미에게 개미 이상 40센티미터 미만은 공룡이요, 40센티미터 이상은 비록 생명체일지라도 천재지변으로 간주. 안 그렇겠나? 그럼 만화영화처럼 인간이 인간 모습인 상태로, 개미의 언어로써 개미를 설득하면. 그러면 개미는 설득될까? 정말로? 과연 개미는 납득할까? 진짜로? 개미는 환영할까 아니면 반길 개미가 한 명도 없을까. 개미가 짐짓 인간이 천재지변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인지할 것인가. 개미는 추론은 시도할 것이다. 토론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예측치 및 염원했던 이상과 동떨어졌다 할지라도, 과학적 검증과 실질적 시험과 논리적 변증법등 가능한 방법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개미는 이해하기도 싫고, 논설을 듣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개미의 SF에 대한 이상과 신비에 대한 꿈을 인간이 만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인간이 개미에게 어찌 해야 개미가 합당하게 납득을 하겠냐고. 인간이 어떻게 하면, 타당한 이치에 끄덕끄덕하며 합리적인 증거를 수긍한 체 개미가 놀라며 이해할 수 있을까. 증거들이 불합리하지 않고 합당하다고 느끼고 이해하며 인정할려면 어찌해야 하냐고. 그대가 생각하는 천재지변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라는 사실을 개미가 깨닫도록 할려면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건 정녕 시도할 가치도, 설복해주길 바랄 명분도, 설득할 시도도, 가능한 '신의 한 수'조차 없는 것일까? 허허. 방법이 없진 않겠지요!
때문에 아마도 인간은 이렇게 생각할 공산이 크다. 즉 개미는 개미까지의 한계가 분명하고, 인간은 영역도 원리도 모습도 모두 개미에게는 천재지변이다. 그래? 따라서 방법은 오직 1개다. 곧 인간이 개미로 변신하는 것. 개미랑 똑같은 모습으로 개미 세계에 개미로써 빙의하는 것. 개미라는 숙주를 구하던 깜짝 변신을 하건. 반드시 개미의 눈높이에 맞춰 그래야만 한다는 것. 아니면 안된다는 점. SF영화처럼 눈이 3개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인간에게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가 아닐 거라는 점도 유추할 수 있다. 불가능인가? 어쨌든 그건 후보군에서 제외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왜냐하면 두 가지 이유 때문.
첫째, 반칙! 만화처럼 슈퍼개미의 출연은 반칙. (그건 지 잘났다고 뽐내던 삼촌처럼 망신살일 테니까. 천재는 온전한 주전자보다 깨진... 그런 속담처럼. 귀족이자 거물에 재수없도록 잘난 척 대마왕으로써 슈퍼개미가 깜짝 출연을? 그런 유난떨 일은 애초에 반칙. 물론 데뷔는 정반대였고)
둘째, 그 영역은 인간만의 고유한 몫인 것. (과학. 의학. 생명공학. 우주여행. 유전자 어쩌고저쩌고등)
개미의 눈높이에 맞춰 인간이 개미로써 깜짝 출연이 가능하다면 개미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실존한다는 게 증명됐다는 데 대해서. 신이 있냐 없냐에 대한 논리적 실증은 이와 같이 간접적으로 증명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매우 수학적이고 더없이 과학적인 논리다. 따라서, 아니 뭐니 뭐니 해도 전례가 있지 않나. 수락하기 곤혹스런 선례가 많지 않나. 무시히기엔 웃긴 사례가 드물지 않지 않냐고. 바로, <내가 신이다─나는 알에서 태어났다─나는 외계에서 온 진짜 외계인이다> ~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있지 않았던가. 많지 않았던가. 지금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분들께서 진짜 외계인이든 아니든, 누가 꼴통이고 누가 꼴통이 아닌지에 대한 근거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 그건 바로 그분들 주장의 진위를 판별하는 명백한 증거일 테니까 더없이 중요할 것이다. 그처럼 주장과 사실을 뒷받침하는 숫자가 있어야만 외계인론을 지구인은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점. 전혀 어렵지 않은 이치다. 아주 수학적이요 충분히 과학적인 논리. 단, 그에 준하는 증거와 그에 필적하는 물증과, 무수한 간접적 우연과 수많은 직접적 필연이 만약에 함께 한다면 말이다.
한 번 더 예를 들자면 이렇다. 인간과 신을, 사람과 앵무새로 비유. 실상 앵무새는 인간의 말을 따라하며 타 조류는 꿈도 꾸지 못할 신기술을 뽐낸다. 다른 말로 만물의 영장. 그런데 앵무새는 거기까지가 한계. 왜 인간이 그렇게 말하는지 추측하며 추리까지 할 수 있는데, 그 원리를 탐지하는 덴 한계가 있다. 앵무새는 부부싸움 대화를 똑같이 따라할 수는 있는데, 부부싸움을 인간처럼 창의적으로 할 수는 없다는 것. 그럼 앵무새가 그걸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방법은? 인간이 앵무새의 마음을 실측하고, 인지체계를 측정하여,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를 따지고 보니. 그러므로 제일 자연스럽고 가장 이상적이며 최고로 탁월한 단 1개의 방법은 무엇이라고 결론낼 수 있다. 그건 바로 인간이 애초에 앵무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신화란 그런 것이다.
다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롭고 재밌고 유쾌한 이야기일 테지만. 그렇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만큼. 그런만큼 숭고함과 내 슬픔과 타인의 오열과 허망함과 거룩함에 대한 의미는 다음 생이 필요할 수 있다는 논거가 된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근거를 제공하게 된다고. 사람이 착해야 할 이유도 없고, 인생 내내 막살아도 좋다면 외계인의 넛지가 대체 왜 필요할까. 방황도 하고 후회도 하며 방탕한 나날 때로는 쾌락마를 탈 수도 있다는 게 인생이라지만. 그렇지만 롤러코스터가 놀이공원에서는 즐겁지만 하이에나가 동물원을 탈출해 도시에 출연하면 곤란하듯이. 경주마는 경주마의 운명인 것처럼. 왕년에 놀던 시절이랄지 재미없고 심심하던 시절이야 누구나 겪는 거고. 그게 아니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일생을 막살자주의라면 그건 너무 딱하다 라는 뜻. 바로 그래서 그 어떤 넛지와 노크와 윙크는 필요한 것 아닐까? 인간으로 사는 천사들이 뭐가 아쉽다고 그 사단을 그 난리를 그 전설을. 단지 현생만으로 영혼의 끝이라면 그 어떤 힌트, 그건 도대체 왜 존재하는 거냐고. 현생에서 농담으로 의무방어전을 걱정하듯. 그처럼 저승의 천국과 패자부활전도 현생에서 예고될 수 있다는 것. 의미없도록 살고 싶지 않다, 유치한 연애 추접스러운 사랑은 다 남의 얘기고 (형편을 보아하니) 불행과 절망 때문에 살기 싫다 어쩐다. 중간이 많겠지만 전자가 있으면 후자도 있듯. 몸만 썽해도 행복이듯. 우리 주변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힘겨운 이승살이를 견디시는 분들도 비율이라는 게 존재하는 세상. 그래도 기왕지사 이승에 놀러오셨으면 되도록 천수를 누리시길 적극 추천하며 칼럼을 마친다. 다 쓰고 보니 이미 논했는데 반복했다는 게 생각나네. 에잇.
2
문단 1이 장조였으니 문단 2는 단조로.
덜 이성적으로 더 감정적으로. 즉,
그래도~ 믿지 못하겠다. 말도 안돼! 납득할 수 없다. 타당하지 않다. 불합리하다. 말 같지도 않다. 밑도 끝도 없이 웬 뚱딴지 같은 논리냐. 합당한 증거를 대 봐라. 3단 논법 그런 거 말고, 빼도 박도 못하는 물증을 제시하란 말이다. 우리가 무슨 싸구려 기성복이나 입는 촌놈인 줄 아시나. 우리가 줄자로 잴 수 있도록 걸리버보다 훨씬 커다란 육신을 보여주란 말이다. ~라는 비율이 왜 없겠냐고. 그럼 그분들은 정말 뭘 바라는 것일까. 영화처럼 눈이 3개일 것인가, 아니면 애니메이션처럼 눈이 1개일 것인가. 정말로 탄소 기반이 아니라 하데스도 구경시켜주고, 은하계도 데려다주며, 저승의 비밀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바로 그런 외계인만을 기다리는 것일까? 그야 어떻든 한마디로 엿장수맘! 응? 엿장수 맘이라고. 세상 망하는 게 자기 소원이라는 사람, 왜 없겠나. 당장 촌닭과 뱁새와 싸움닭과 하이에나의 속마음만 헤아려봐도 충분하지 않나. 그렇지만. 그렇지만.
산타 할아버지만 봐도 다 아신다고 하지 않나. 누가 착한 애인지 누가 나쁜 애인지. 그럼 하늘은? 어디 알기만 할까, 아니면 아예 까막눈일까. 그도 아니면 관심조차 없을까. 하늘나라가 뭐가 아쉬워서 넛지에 윙크에 노크를 하겠냐고. 늬가 뭔 상관이야 그건 늬 생각이고! ~라는 불평을 감수하고서 바보처럼. 하늘은 어떨랑가 몰라도 인간만 봐도 인간이 최고다. 만물의 영장 각자의 자존심이 최고라고. 인간이면 누구나 TV로 인터넷으로 천리안인 세상. 오히려 날 띄워주라 날 사랑해주라며 내 모든 걸 포장하며 방송하는 세상 아닌가. 딸랑딸랑 칭찬하고 반짝반짝 띄워주면 누가 싫다 하겠나. 세상에 돈 싫어하고 아부는 더 싫어하는 사람 없듯이. 이미 몇 번 반복했지만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했으니까. 더 못할 것도 없다. 고로 재차 반복하자면 이유는 대도 대도 끝이 없다. 왜 인간이 개미계에 등장할 때 오직 개미와 똑같은 상태를 고집해야만 하냐고? 왜냐하면 인간은 개미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결코 개미의 마음도 심정도 인정도 인지체계도 인생도 모순도 알지 못할 테니까. 그렇지 않으면 무수한 딜레마와 수없는 난점에 대한 원리와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기록하며 파헤치지 못할 테니까. 바로 그래서 인간은 개미계에 은근슬쩍 출연할 때 개미로 빙의해서 나타나야만 하는 것이다. 개미랑 똑같이! 그냥 자기 잘났다 자랑만 할 꺼라면 차라리 나타나질 않는 게 낫단 말이다. 뭐 하나 도움도 안되면서, 장거리 사랑에서 거포 플라토닉이 글쎄 100미터 세계 신기록? 심한 말을 세상 사람들 절반인 남자한테 떠안길 수는 없고. 인간이 개미계에 출연할 때 지 잘났다면 출연할 꺼라며 애초에 오지 않는 게 났다고. 그렇다고. 그렇게 나타날 꺼면 우리 개미한테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거라고. 바로 그렇다고. 안 그런가? 뭐 하나 도움되지도 않는데, 뭐하러? 그래서! 바로 그 때문에 인간은 개미계에 얼굴을 들이밀 때 개미로써만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개미와 하나도 다르지 않도록. 왜 SF처럼 재림할 수는 없는 것일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왜냐하면 과거 전례만 봐도 충분하기 때문. 인간계에 데뷔해서 야만적인 서기 0년 이 세상에 드높은 기준선을 제시해주면 뭐하냐고. 시대상을 보아하니 당시에 적합한 안내자 역할을 하면 뭐하냐고. 주다스 프리스트로 시작해서 2000년 동안 꼬인 게 그 얼만데. 일각에선 여전히 인정 못하지. 많이들 인정할 수 없다고. 그 뿐만이 아니라 세계관이니 종교관도 다 제각각인데? 다 제각각이라고. 신앙의 자유니 뭐니 다 좋은데 죄다 괜찮은데. 사람은 중간은 가야 한다 그러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실천된다면 몰라도 속된 말로, 개 미만에 해당하는 인간사가 그 얼마나 많냔 말이다.
여기서 가정법. 만약에 SF 이상을 만족시켜준다면! 그래? 그렇다고 바러던 이상향에 대한 SF를 만족시켜 줘도 문제다. 그래도 문제라고. 그러면 애초에 원했던 기대감이 실현되고 기다리던 상상력이 예감과 일치하면. 그렇다면 SF를 알현하면 우리가 예측했던 추정치와 SF가 정확히 부합하기 때문에 흡족해할까? 아마도 그럴 리는 없다. 왜냐하면 5살 조카를 데리고 20대 후반 삼촌이 스트라이커 흉내내며 개인기를 뽐내는 이치와 같지 않나. 나 행복하기도 바쁘고 나 사랑 받기조차 턱없이 힘겨운 세상. 거기다 얹어서 개미계에 출연한 슈퍼 개미도 아니고 아예 인간을 개미들이 신으로 떠받들며 찬양하라고? 그럼 참 보기 좋겠네 더없이 귀감이겠다고. 그럴 꺼면 개미계로 오지 말고, 그냥 인간계에 머무시지 이 누추한 시골엔 뭐하러 오셨수? ~라고 하지 않겠냐고.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하고, 다 그럴 듯한 논리적-실증적-연역적-간접적 가치와 증거가 충분한데도. 그래도~ 마음에 썩 내켜하지 않는 분이라고 왜 없겠냐 그 말이다. 그렇게 개미계에 인간이 인간의 모습으로 명함을 내밀면 것도 보기 좋겠네. 정말 좋겠어. 그처럼 인간이 인간의 모습으로 단지 개미계에 잘난 척하기 위해 출연을? 그런 허당 지망생 인간이라면 애시당초 개미계에 얼굴을 드밀지 않는 게 도리. 아니 그런가? 뭐 잘났다고 그 못생긴 용안을 어디다가? 어? 누구 앞이라고! 어느 안전이라고 말이야 말이야.
문명사가 그렇지 않나. 데뷔 때문에 고난을 감행하여 서기 0년이라는 문명의 기준을 마련. 그 후 2000년 동안 유럽사와 예술사와 문명사등 유럽3대 성당과 유화와 칸타타로써 찬양하지 않았나. 문화와 교양과 상식으로 기리지 않았나. 2000년 동안의 그 찬양을 전제로 서기 0년에 아이언 메이든처럼 뭐 어쩐 게 아니지 않나. 순서라는 게 그렇지 않나. 그런데 데뷔도 없었다 우리는 SF만 기다린다, 따라서 진짜 SF가 아니면 우리는 인정할 수 없다, 고로 진짜 SF 같은 외계인이 나타나면 우리는 기꺼이 황홀감 때문에 흥겨워서 나체로 길거리에서 춤이라도 추겠다? 진짜 SF가 아니면 죽어도 인정할 수 없다?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만약 그렇더라도 나중 마음이 바뀌고 말도 바뀌어야 정상. 무릇 (괴팍하신) 인간이라면 그래야 정상. 아니 어떻게 저딴 게 신이야, 저따위가 무슨 인간이냐고. 우리 개미들은 저-저-저 저런~ 저질 인간은 생명체로 인정하지 못해, 우린 여전히 저 40센티미터 이상의 생명체는 그냥 천재지변이라고 간주할 꺼야. 뭐 블로그? 그런 거 나도 쓰겠다. 그런 거 누가 못해? 여기서 저기까지 걸어갔다 걸어오는 거, 누가 못하냐고. 왕이라고 해 봐야 부모 잘만나서 태어난 거 밖에 더 있어? 지들이 하는 일이 뭐라고. 차라리 연예인이면 웃기기라도 하지. 잘생기기라도 하다고. 안 그래? 그래봤자, 어? 잘~해야 괴물 밖에 더 되냐고. 안 그런가? 당첨되어 좋은 건 복권이요, 나쁜 건 불의이자 불행에 불운이라지만. 그렇지만 꿀벌의 확률이 낮은 불상사는 벌꿀이고, 희망과 꿈과 블로그는 설탕물인가? 그런가? 전자는 꿀벌이 인간에게 상납하는 성의 표시요, 후자는 인간이 꿀벌에게 착취하는 SF 줄거리냐고. 전자든 후자든 뭐가 불가피하고 도대체 뭐가 불미스럽냐고. 시켜만 줘 봐. 시켜만 줘 보라고. 내가 더 잘할 테니까. 2배 4배 8배 더 잘할 자신 있다고. 바늘방석이든 돈방석이든 앉혀만 줘 보라니까요 글쎄. 세상 말세요 세상만사 뭔판이라고 이놈의 요지경 같은 지상, 그걸로 보자면 신은 없는 게 분명해. 분명하다고. 다큐멘터리 생태계를 훼손시키며 우리끼리 잘사는 낙원에 괜히 지맘대로 나타나서 나는 외계인이다? 그렇다고? 우리 사랑 훼방놓지 말고, 우리들이 일군 아름다운 지상이자 행복한 세상사 껴들어 방해하지 말고, 예? 집이 혼자 제 갈길 가슈! 존~말로 할 때! 그도 아니면 속 시원하게 한 판 뜨시던가. (풀네임)이 전화하시는데 내 전활 안 받아? (풀네임)과 일하는데 어설프시겠다? 늬가 잘났는지 내가 잘났는지는 판정단의 심판을 받으면 그만.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앎! 촌닭으로부터도 많은 걸 배우고, 뱁새와 하이에나들 아주 그냥 신나서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고 통쾌해했던 일들. 재미었었지 재미있었다고. 그래서 그분들은 성격 좋단 말을 못 듣는 거다, 여자들로부터 인기를 한몸에 받을 수 없다고. (※ 시켜만 줘 보라고: 고양이의 쥐를 물어다 주는 보은이든, 메두사를 물어다 놓는 표독스런 앙칼짐이든. 개와 늑대와 하이에나에 대해서 지나침이 그렇다는 것. 이성적으로 가지각색 유형 가운데 극단은 그럴 수도 있다고. 사람 속마음은 모르는 거니까. 감정적인 경우의 수가 있으니까. 손 안 대고 코 푼다느니 나만 당할 수 없다느니, 심보와 선의는 다르니까. 생각은 사상까지 도달하기가 좀처럼 벅차니까. 인간의 심연이란 그런 거니까. 그 끝이 단지 그럴 수도 있다는 뜻. 물론 아니기를 바라지만. 인간의 두뇌와 파충류의 두뇌는 완벽한 교집합이 있으니까. 인간과 침팬치의 DNA가 98퍼센트 일치하듯 말이다. 허구와 현실이 종이 1장 두께 차이듯. 상대방 액면이 비리비리하다? 판돈 충분하고 내가 야물면 지르는 게 상남자. 여자의 허영심 지수가 남자 허세지수와 정확히 상응하니까. 너 여기서 빠져라! 늬가 그걸 왜 하냐!) 바로 그 때문에 대인관계는 축구리그처럼 승수를 쌓는 게 아니라, 패전을 면하는 게 제일 좋다 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놈의 감히. 오, 지저스 크라이스트! 그 대단하신 뱁새하이에나 양반들, 지저스고자시고 자기가 최고라는데. 자긴 최고고 네 알량한 자존심은 내 알 바 아니라는데. 내 꺼는 내 꺼 늬 꺼도 내 꺼, 도 아니고. 왜 파랑새와 팔색조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 되버렸냐고. 그놈의 감히. 오, 지저스 크라이스트! 지옥은 타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 악마는 나일 수도 있다는 것. 그 말은 곧 역으로 보자면. 천국은 지금 여기요 타인은 천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야 어떻든 웬 약장수 얘기같은 사연을 나보고 믿으라고? 그래유? 집이 혼자 제 갈길 가슈! 존~말로 할 때! 그도 아니면 속 시원하게 한 판 뜨시던가.
~라고 하지 않을까? 어차피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걸 믿고, 보고 싶은 걸 볼 수 밖에 없는 존재. 따라서 <믿거나 말거나>인지 아니면 데뷔와 또 다른 최초에 해당하는 그 무언가 실체적 증명인지 아닌지. 그건 각자 판단할 일. 속지 말라며 다그쳐서도 안되고, 믿지 말라고 종요해도 어차피 비율은 정해져 있으니까. 개인의 삶이란 개인의 인생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너무 꼬았나? 한 세 바퀴 반만 꼴려고 했는데 도대체 몇 번 꽈져버렸지? 한두 번 꼰다면 몰라도, 필자도 심하게 꽈진 건 별론데. 그거 내 스타일 아닌데. 그렇지만 보수와 진보만 해도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니 만큼. 생각의 다채로움을 대충만 떠올려봐도 이처럼 비꼬기 좋아하는 그분들 마음은 오늘도 꽝인 것이다. 각자 향하는 방향이 있고, 추구하는 이상형이 다른 것이다. 바텐더한테 1등으로 손꼽혀보지도 못했어, 호박한테 사랑받지도 못했어, 재미는 없고 뚜껑 없는 차도 없고. 성격 좋단 얘기도 못 들어봤겠다, (내 부인) 늬가 데리고 살래 라는 말도 못들어봤겠다. 나이트클럽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그렇게 들쑥날쑥하면 그나마 나은데. 차라리 좋은데. 아예 보통이 나이트클럽에서 나올 때? 평균이 지는 비교? 집에 들어갔더니 여편네가 또 지는 비교? 우리가 괜히 피하고 고개 돌리며 물 좋은 클럽을 찾아 전전하는 게 아니란 거다. 이래도 싫다 저래도 짜증난다네. 가격 흥정엔 소질도 취미도 없어서 발길을 어디로 돌리며 칼럼을 쓰면, 언제 뭐 보태준 거 있냐느니 뭐라는 둥. 그래서 실질적으로 찬조하고 조촐하나마 보탬이 되어주면, 누굴 거지로 아시나!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우리 보고 어쩌라고. 아니, 우리 보고 어쩌라고요. 부디, 하나만 하나만. 어떻게든 삐딱해질려고 용을 쓰는 것도 재주다만. 그렇긴 하다만 것도 제발 허풍대회랄지 꼰대대회 같은 경연장에서나. 후하게 쳐주면 돈지랄이냐, 인색하게 깎고 깎고 계속 깎으면 후려치느냐느니 있는 놈이 더한다느니 돈독 올랐냐느니. 나이트클럽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남자들이 혼자서 이상한 거 보면 이상한 거 본다고 뭐라 그러고, 안 보면 벤치멤버 방치해서 100미터 세계 신기록이라며 뭐라 그러고. 우리 남자 보고 어쩌라고요! 나이트클럽 들어갈 때 다르고, NC에서 나올 때 또 다르고! 남의 말만 듣고, 따르고, 믿고, 말없이 또 듣기만 하다가는. 속기 딱 좋은 세상이라니까요. 벗겨먹으려만 달려드는 상업에다, 남의 다리 긁는 예술은 또 어떻고. 남녀 모두 사랑론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고, 변심과는 또 그 얼마나 친한가. 그러니까 리듬을 타고, 균형을 잡고, 찡그리지만 말고 웃으면서. 찡그리기만 하면 누가 상을 주나 밥을 주나 사랑을 해주나! 아무튼 이쯤하면 왜 JC는 ♡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승에 방문했다(할 것이다)라는 기록이 전해졌을까. ~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었을까? 아님 되고도 남았을까. 그조차도 아니면......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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