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만약 신이 있다면 아마도 이 세상 안쪽보다는 바깥에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또는 물리적인 탄소 기반 물체보다는 다른 방법일 테고. 아울러 궁금함에서 상상은 시작되고 그것은 제한이 없으니, 가정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신은 개미를 만족시키고, 벌의 눈 밖에 나지 않으며, 로마제국 병사들보다 훨씬 못생긴 채 삐리하지 않을 것이다. 싹싹 빌든 교묘히 꼬시든 물고기들의 환심을 반드시 사야 한다. 어떻게라도 구워삶아서 기필코 당신의 마음에 들어야만 할 것이다. 확실한 건 이렇다. 동물은 인간의 밑이고 신은 인간의 위라는 점. 그 때문일까? 역설적이게도 인간에게 신은 밉상이면 안된다는 것. 혹시, 모순인가? 아닌가? 아니네. 왜냐하면 나는 SF에 나오는 괴물이요 라면서 만인을 놀라게 하여 거창한 공인이라는 심사를 통과해야 할 테니까. 만화영화에 나오듯이 행성들을 저글링하며 시간에 구속 받지 않기를 누군가는 바랄 테니까. 이미 데뷔를 인정 받지 못했던 실-사례가 일부 존재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양치기 소년이 나비에게 거짓말을 하겠나 구애를 하겠나. 양치기 소년이 나비로 변신하지 않는 이상 그런 거 다 포기해야 한다. 어떤 거? 사랑의 나비 입장에서 감탄할 수 있는 탁월한 신기함이랄지, 슬기로운 복음이니 뭐니, 놀라운 새로움이니, 손쉬운 비유법, 슬픔의 역사를 고찰하기, 아찔한 지성과 깜찍한 재미와 행복한 사랑. 그리고 나비가 인지할 수 있는 궁극의 섭리까지 그런 거 다 포기해야 한다. 만약 양치기 소년이 나비로 변신하지 않는다면! 양치기 소년이 양치기견으로 변신한다면 사랑까지는 몰라도 사귀면 좋을 테고.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인간과 똑같은 외계인을 말 잘 듣는 좀비처럼 길들이던가. 그 당연한 순리를 누가 모를까. 남의 발을 밟은 사람은 절대로 발을 밟힌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도덕적으로 상식을 알고, 상식적으로 교양을 배우며, 학구적으로 이상을 추구할지언정 타인의 마음을 훤히 알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추정, 배려, 생각뿐. 하이힐을 신고, 거울 보고 화장하며, 치마를 입고 1달에 1번 마법에 걸리는 여자의 마음. 그걸 우리 남자들이 추정만 하지 어찌 온전히 이해하겠나.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는 희극과 라트라비아타의 아리아.
그러니까 가짜가 아닌 진짜를 알기 위해서는 진짜가 되는 방법 밖에 없다. 토끼와 거북이. 톰과 제리. 여우와 두루미. 그리고 남자와 여자. 강력계 형사를 실제 만나봤을 때 드는 생각은 그거다. 정보가 많이 쌓이면 다르겠지만, 첫인상만으로 딱 느끼기엔 그렇다. 취조자와 피의자가 잘 구분되지 않네 라고. (너 머머해봤냐? 현장에서 체포돼봤음. 1번도 아님) 드라마나 소설에 곧잘 나오는 대사, 괴물과 싸울려면 괴물이 되야 한다나 어쩐다나. 조류학자 만큼 새에 대해서 많이 아는 사람이 비율로 따지면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99퍼센트 추정만 할 거라면 몰라도 100퍼센트 이해하며 알고 경험하고자 한다면 그래야 한다. 인간은 TV 다큐멘터리 시청자가 아니라 그 주인공이 되어야만 한다는 논리. 지극히 타당한 이치다. 결코 불합리하지 않은 원리다. 미용실에서 하이에나 같은 돌격형 헤어스타일로 꾸미는 게 아니라,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진짜 하이에나! 전자는 하이에나 전문가도 뭣도 아니고, 후자는 진짜 하이에나다. 낳은 정과 기른 정이랄지 알이냐 닭이냐 같은 예를 끌어당겨도 무신론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는 힘들다. 아무리 무한할 정도로 크나큰 천문학적 우주도 어차피 그 끝이 변한다는 걸 과학적으로 증명한지도 오래 됐다. 동물원의 동물들에게 인간이 백날 설명을 해 봐야 동물들이 뭐가 뭔지 납득할 수는 없는 일. 하지만 인간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무엇까지 알아낼 수 있을까. 신과 인간의 차이도 있듯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전자는 신학이고 후자는 많다. 축산업, 수의학, 인생론, 점성술, 과학, 사랑, 우정, 의리 등등.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서 무의식이 어디까지 변색될 수 있는가는 윤리일 테고. 이를 테면 인간은 드물게 자발적으로 동물 미만이 되거나, 차츰차츰 신의 영역에 근접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또 다른 예로 술 마시면 개, 빈둥빈둥 심심할 때는 사자, 으쌰으쌰 신나게 놀 때는 얼룩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원채 비슷하며 다르기 때문에 산타 마리아만 놓고도 긴가민가한다. 뭐든지 의견은 다양하다. 첫눈을 기다리고, 사랑을 그리워하며, 크리스마스 카드를 처음 보내는 첫경험 같은 거. 캐롤송에 기분이 들뜨며 흥겨운 일도 없는데 괜히 설레는 크리스마스 이브. 그러나 크리스마스 당일은 꿈벅꿈벅─헤롱헤롱─맹숭맹숭. 또 뭔 얘기하다 여기까지 온 거야? 여기가 대체 어디야! 다시 돌아와서,
그처럼 늑대에게 승인 받고 양에게 허락을 간청해야 하는 게 만약 신이라면 그건 뭘까. 허당? 아니 삼류. 구도자? 아니 방랑자. 개구쟁이? 아니 몽상가! 우주의 바깥에 과연 무엇이 있을지 조금은 궁금할 테니까. 그보다 차라리 누가 천사이고 누가 요정이며 누가 악마인지 모르는 게 어쩌면 나을 수도 있고. 만약 그 뭔가를 알게 된다면 좋은 쪽으로 그림을 그리는 수 밖에.
따라서, 따라서긴 뭐가 따라서야! 결론은 이렇다. 패자부활전은 난 모르겠고, 멋진 친구들의 기쁜 삶은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라는 점. 우린 챔피언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의무방어전을 연상하며 명대사를 연구하기. 그리고 혹시라도 세계 마초 협회에서 허풍 대회를, 허당 클럽에서 자랑 대회를 개최한다면 시원하게 예선 탈락하기. 고로 명분은 충분하겠다 많이 참았겠다 짱돈 아니 비상금도 마련됐겠다, 야 야 가자 가자 당장 떠나자! 어디로? 희망의 나라와 신비한 낙원과 환상의 세계로! ~가 아니라 오픈발이 어쩐다는 나이트클럽 에뎅2로.
농담이 지나친 점 깊이 반성하고. 그래도 하기 싫어도 공부는 해야 한다. 적기라는 게 있으니까. 가기 싫어도 출근해야 한다. 위선과 가식, 판에 박은 듯한 예절과 식상한 빈말도 다 필요한 법이다. 비둘기나 동네 똥개가 실례한 그것마저도 긴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싫어도 사랑한다고 거짓말을...... 난 아니다 난 아니야.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