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기

from 칼럼 2018. 10. 28. 18:34

    나는 최근 자진해서 일기를 쓸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할 말을 일기장에 옮길 수는 있지만, 그러면 할 일에 (악?)영향을 받기 때문이었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이 별로 없었을 수도 있고, 단순한 핑계일 공산도 크다.
    그런데 쓰는 일이 업인데, 그와 별개로 일기를 또 쓴다? 정력이 왕성할지라도 순수하지 못할 여지가 다분하다. 액면─미끼─흑심─사심─양심─본심─동심─사랑─변심─풋사랑─추문─스캔들, 그 구분은 썩 확연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쓰는 일이 업인데 그와 별개로 일기를 또 쓰면, 생전에 출판해서 품위 유지비를 두둑히 챙길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래도 되고, 그게 나쁜 일도 아니고 일종의 취미와 똑같은 일이지만, 누구나 그러지만. 그야 어쨌든 상술이라는 야유와 딴따라라는 조롱쯤이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닌, 나는 그런 입장이 아니다. 뭐 어떤 비꼬기가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은지 오래된 처지도 아니다. 그래서 무관심에 특급 처방은 노이즈마케팅일까? 넘어가고. 취미와 일이 분리되지 않으면 타성에 젖을지도 모른다. 싫증에 뚜껑이 열리느니 미리미리 으쌰으쌰 달리는 게 낫다. 회사 서류를 집에까지 들고 와서 들여다보면 부인께서 참 좋아하시겠다. 내놓으라 하는 요리사를 만나러 동생이 가게에 놀러왔는데, 왜 그 요리사는 배달 음식을 시켜줄까? 노는 게 일인 경우도 있는데, 대체로 일은 일이다.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고. <놀 때 놀고, 일할 때도 놀고>를 누가 싫어하겠나! 터놓고 말해서, 일하기 싫고 공부하기 싫음이 솔직한 거 아닌가? 내가 아는 친구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안 친한 거네, 친구는 1이고 댁은 1.5구만, 사석에 뭔가 상품이 걸린 우정이구만 그래. 학교 가기와 회사 가기가 좋다면, 월요일 아침 거리의 사람들 표정은 대체 뭘로 설명할 텐가.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고, 좋아도 고백하지 않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내 경우에도 그렇다. 쓰기에 미치지 않는 이상, 놀기와 휴식에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렇기는 하나 어차피 어른도 응석 반 투정 반이다. 그게 아니면 넉살 반 불평 반. 업어치나 메치나! 기분 좋으면 일기를 쓰지 왜 못 쓰겠나. 어렵게만 생각할 일도 아니고, 굳이 순수한 동경심과 포근한 소망을 편애할 소녀 감성에 스스로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하면 된다. 나는 꼭 일기장에 자발적으로 뭔가를 적고 싶다는 욕구가 풍선처럼 부풀면, 그때는 일기를 쓰기로! 간단하네.
    산악자전거 대회 대 부엘타 아 에스빠냐─뚜르 드 프랑스─지로 드 이탈리아! 고전음악 전공자가 대중예술계로 데뷔하는 일이 그 반대보다 많듯이, 왜 그런가는 언젠가 설명한 듯. 그렇듯이 어느 전설적인 레이서는 이렇게 말했다. WRC 레이서가 F1 머신을 모는 것이 F1 레이서가 WRC 머신을 모는 것보다 쉽다고. 왜 아니겠나. 당연한 얘기. 그건 그거고,
    아무튼 그런 레이서가 백화점-공원-옆 동네에 놀러가면서 운전하는 것. 일보다는 일상인데 꼭 누군가 옆에서 부채질하고, 부추기며, 살살 꼬시고, 꼼지락꼼지락 간질간질 깐족거리는 일. 영화에 보면 나온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부화를 돋구면 깐죽 분위기를 끄던가 신경쓰지 않던가. 아니면 기대에 부응하여 열정으로 상대를 만족시키던가 딴청피우게 만들면 된다. 다만 빈말에는 응수하지 말기를. 실제로는... 넘어가고.
    (잠깐. 깐족? 행동으로 알짱알짱 얼쩡얼쩡, 말로 변죽을 울리는 일 외에도 있다. 가령 친구1의 여자친구한테 친구2의 점백이라는 놀림은 기름 붇는 일이 아니다. 친교가 별건가. 단지 그 말에 빵 터져서 웃음이 도저히 멈추지 않는 친구3이 밉상인 거다. 연애하며 찬물을 끼얹고 싸우고 또 싸우느니, 사랑의 뒷모습이 멋진 게 난 좋더라! 그런데 그 친구3이 대체 누구였더라...?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이론은 그렇다. 철들면 재미없다고 해도 어른은 애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혼자 삭힐 건 혼자 삭혀야 한다. 드라마 대사에 나오듯이, 난 그이를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아요? 애증이다. 명백한 후반전이고 어쩌면 연장전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숙녀는 원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고. 즉, <사랑의 시작 그 파릇파릇한 감정의 영원함>과 <습관적으로 짝사랑 받기>. 그녀는 그 둘을 양쪽에 꿰차기를! 아닌가? 그건 열망이 아니라 뜬구름 잡는 공상이라고? 넘어가자)
    곧 말하기, 듣기, 읽기, 보기, 쓰기, 베팅하기, 차기, 뛰기, 넣기, 장비발, 먹기, 타기, 좋아하기, 사랑하기 그리고 행복하기! 뭐 아이스크림? 어쨌든 인간의 본능이다. 하든가, 못하든가, 안 하든가, 참든가!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까지. 그러거나 말거나. 뭐가 됐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해서 하면 된다. 따라서 공과 사를 나누듯 구분을 하고, 이치를 깨우치며, 원리를 이해하여 행동하면 된다. 예를 들어 나는 일기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 또는 쓰기에 어떻게 임할 것인가. 왜 쓰는가, 에 대한 반문일지도! 일단 보기를 들자면 이렇다.

  1. 타석왕: 아무말 대잔치! 짹짹─꽥꽥꽥─따따부따. 뭐든 막 쓰기. 닥치고 쓰기. 또는 근면&먹고 살기. 예선 탈락도.
  2. 타율왕: 딱 영감이 떠오를 때만. 바로 그때 뭘 써도 쓰기! CD는 테슬라와 베를리오즈, 콘서트는 AC/DC만, 웨이터는 에르메스요 차는 페라리!
  3. 원맨쇼: 화염방사기! (뭐, 걸리기만 해봐?)

    1번은 이렇다. 버는 족족 과소비에 퇴폐를 옹호하는 탐미주의자처럼 재산을 탕진하듯이-일 수도 있다. 물론 어둡게 보자면 그렇고 밝게 보자면 성실함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듯이, 동전을 뒤집어 보면 그거다. 하루 몇 시간 노동. 즉 무조건 하루 20페이지를 1년 365일 내내 쓰기. 장단점은 있다. 그렇게 써서 바흐나 모차르트나 베토벤급이면 좋은데 그게 아니면? 뭐 타석도 인생이니까. 7부 리그는 뭐 축구가 아니라 피군가. 이류-삼류도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병풍도 사랑을 해야 한다. 신부들러리라고 언제까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아니냔 말이다. 그처럼 대부분의 직업인이 1번이다. 마감일이 존재하듯이 연봉 협상도 있으니까. 노력형 천재든 깜짝 신인이든 뭐든 어차피 1번이다. 다망과 다작과 다변등 전부 1번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도 1번인데 그런 희박한 확률에 명예욕이 동하는 것, 먹고 살기다. 아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어떤 표정이 떠오르는 것일까?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뭐라 설명하기 애매하지만 언제더라 객관적 자료에 따라 형세가 어둡다가, 날짜가 거의 임박해서 안색이 더 어두워지기 직전인데 딱 더 화나게 생겼는데, 그런데 어떤 깜짝 뉴스가 발표됨에 따라 기사회생한 표정! 으아~ 캬~. 넘어가고.
    2번은 이렇다. 진공청소기를 분석, 커피포트를 탐구, 고전적 액자를 애호함과 동시에 현대적 추상미를 추구하다 끈금없이 미친듯이 몰입. 걸출한 물건은 2번일 가망성이 높다. 1번이 대중예술이라면 2번은 순수예술쯤.
    3번은 이렇다. 참고 참고 또 참고. 맹해서 참든 멍청해서 둔감하든. 어쨌든 계속 참고. 참고 또 참고 꾹 참고 끝끝내 참다가, 막판 스파트로~ 쏴아~~~~~~~! 따라서 3번은 둘 중 하나다. 괴물이든가 미친놈이던가.
    1-2-3 가운데 때와 장소와 여건에 맞춰 선택하면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자의와 별개이겠지만 부분적으로는 말이다. 다만 개가 말처럼 뛰면 곤란하고, 늑대와 양은 원래 정반대라는 거만 알면 된다. 그래서 인문교양론에서 지겹도록 하는 말이 그거다. 다른 무엇보다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그게 잘 될려나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변수도 있다. 일례로 말수 없고 나서기 싫어하는 1번에게 만약에 떼돈이 생긴다? 그분은 하루 아침에 2번이 된다. 1.1─1.2─1.3..... 점차 상승할 수도 있고. 만일 말수 없고 나서기 싫어하는 1번이 참다 참다 끝내 못 참고 울분을 토로한다? 밑도 끝도 없이 희귀하게도 3번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그전에 사교나 취미랄지 뭔가로 풀고, 사전에 짜증 계량기의 압력을 낮춰야 한다. 기본기를 신경 쓰고, 멜라토닌 분비량을 늘리며, 각종 호르몬 변화량에 신경 쓰는 일. 으쌰으쌰가 뭔가? 수다 3시간과 위스키 3병이 뭐냔 말이다. 장타가 좋긴 좋다만 당장 유흥비 마련을 위해서 여행회사의 주식을 단타로 사고 파는 일. 그걸로 한몫 챙긴 친구한테 술을 얻어먹어봤는데, 기분이 썩 묘하더라. 좋긴 좋은데, 그냥 단순히 좋은 것과는 또 다르게 좋더라! 그거 뭐지? (단, 단타는 될 수 있으면 쩜쩜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에 생판 모른 사람왈, 타지도 않고 문이 닫히는 그 틈으로 말만 던짐. 누구씨 머머 종목 사세요 늦기 전에요. 끝. 그런데 그 말에 혹해서 그분은 자그마치 3장을 날렸다나 뭐라나. 원 세상에나!)
    그리고 그래프를 참고하자면 그렇다. 스포츠인이라면 젊어서는 1+2가 좋고, 시간에 따라 1번으로. 머리에 꽃을 꼿거나 마담이 사자머리를 선호하는 일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갱년기 이후로 넘어가기 전에 1.5를 욕심낼 수도 있고. 그런 반면 귀에 펜대를 꼿은 일이라면 반대로 1+2에서 2번쪽으로 옮겨가는 게 좋다. 인문교양학에서 천재론도 거의 빠삭히 연구는 완결되었다. 때문에 상식은 파다하다. 고로 원숙한 플레이보이는 말씀하신다. 꼭 미리 조숙하지 않아도 된다고. 헛물켜서 꽝되느니 대기만성하라고. 오히려 늦바람이 무서울 수도 있다고. 그렇지만 각자 인생론은 약간씩 차이가 나니 만큼 새로운 도전의 문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비타민 담배랄지 알콜 엔진 사업에 속아서 거액을 손해봤다거나, 요트가 안 팔리거나. 그러면 뭐 각자 알아서 하는 거고!
    결국 만루홈런도 아니고 허당계에서 원맨쇼도 아니고, 기껏 얘기가 길어졌더니 또 옹호 받는 건 그거구만. <전망을 살펴서 암산한 다음에 뻔트를 댈 것인가, 말 것인가!> 참 나. 직감은 마누라한테 딸리고, 직관은 독학도 안되고 학원도 없고. 동기부여계는 거품이고 행복업은 복권이니, 하 나 이거 정말 답답한 노릇이구만 그래. 그러니까 결론은, 좋으면 좋고 아니면 다음 기회에?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대타가 성공하면 만점이고, 필요하다면 '아니면 말고'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인생 뿐만 아니라 하여간 일기까지 하면 하고 말면 마는 식이군. 간단하네.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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