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본론(論) 9

from 칼럼 2022. 2. 15. 16:23

    1 

    왜 역사(일본 고대사)
    [0~400년] "중국 사서 삼국지 VS 일본서기" 독립,대립되는 내용 근거. 1~3세기 규슈 유적 발굴 많음에 비해, 1~3세기 非규슈 유적 발굴은 거의 없음. 일본서기 집필 당시 중국 사서 삼국지, 백제삼서 등을 모두 참고했으므로 편찬의도에 따라 무엇이 가공 및 추가되었는지 추론 가능. 또 동아시아 전역 유적 발굴, 문화재 연구, 인구 추정 등 참고하여 2가지 결론 도출.
    첫째, 수없이 열도로 외부세력 유입 (기간과 무관/시간과 비례/민간인 무력인 불문/기원전 몇...부터 근대까지 지속)
    둘째,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독립왕국들 (왕국력&왕국수는 고저 감안해도 늦게는 1,000년대까지도 지속)
    146년~189년: <후한서 동이전> 환제,영제치세(146년~189년)에 왜국 대란이있었다 기록. <양서 왜전> 한명제 광화연중(178년~183년) 왜국 전란이 있었다 기록. 
    173년: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라 8대 아달라이사금(재위 154년~184년) 20년(173년) 5월에 '왜국 여왕 비미호가 사신을 보내 예방해왔다'라는 기록 ← 규슈 북부에 있는 야마타이국일 가능성 짙음

    [350년~400년]
    천황가, 왜 가와치 왕국 등 중앙 부족에서 백제계가 집권하는 기틀을 마련
    [400년~700년]
    야마토 왕국에게 백제란? 본국,모국,조상의 나라 개념. 최상위층을 비롯 거의 모든 걸 파견 → 시간과 비례 비율 낮아짐
    미와 왕국에게    가야란? 본국,모국,조상의 나라 개념. 최상위층을 비롯 거의 모든 걸 파견 → 시간과 비례 비율 낮아짐  
    야마토 왕국이 NO.2인 미왕 왕국과 그 외 순위들을 섭렵, 병합, 흡수하여 통합하는 단계가 500년대 전후. 흠명왕대에 전국에 30개 이상의 미야케가 설치됨은 곧 왕권 직할지가 넓여지는 과정. 물론 全열도는 아니고 서일본과 가와치, 나라 일대 위주. 그런데 500년대에 미와 왕국에게 조상의 나라였던 가야가 신라에게 압박당함. 또 가야(당시 이름:임나)는 왜에게 철과 식량의 주요 공급처. 이때 이미 왜 연립들에게는 "친가야 반신라"였는데. 신라가 가야를 병합한 후, 침체기를 거친 다음, 마지막으로 660년 백제 멸망. 이렇듯 일본서기에 내재된 신라를 향한 반감,앙심,복수심,정벌욕,적개심,증오심,원망이 언제 어떻게 한두 번에 발생한 게 아니라 차츰차츰, 부글부글, 야금야금... 그러다 일본서기로 정점을 찍은 것임. (참고로 신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장기간 지속된 국가체계라는 점. 최소 700중반대에서 900년대? 중국만 봐도 땅덩이가 광활한 이유 등등 때문에 300년 겨우 넘긴 왕조는 딱 1개, 200년대 후반도 딱 1개뿐임) 이게 한반도와 열도, 즉 백제-신라-가야-왜의 여러 왕국들... 정치 관계였다면. 백제-신라-고구려-가야 등 한반도 내 정치 관계 외에 중요한 게 또 수나라(중간에 당나라로 바뀜)와 한반도 국가들 관계였음. 
    397년: 백제 17대 아신왕의 아들인 직지 왕자의 도왜
    461년: 백제 '곤지'가 왜로 건너가 가와치 왕국 건립 기반다짐
    468년: 백제 개로왕은 곤지에게(왜의 가와치 왕국) 칠지도 하사
    501년: 왜 곤지(사마)는 백제로 귀국하여 백제 무령왕(사마)이 됨
    500년대 초반: (백제계) 가와치 왕국 + (가야계) 미와 왕국 = 야마토 왕조 확립
    555년: 백제 위덕왕은 왜에 동생인 혜를 파견하여 병력 요청 → 1,000명 파견받음 
    562년: 신라가 가야 점령 (백제&왜는 가야 복원 시도는 시패/특히 왜-미와 왕국 출신들인 가야계 비통)
    570년: 수나라는 왜국으로 사절단 보내 화친 맺는 데 성공
    588년: 백제 위덕왕은 비조사 건립을 위해 불사리,승려,사공,목수...등을 파견함
    596년: 왜 추고왕4년에 준공, 불상은 607년 안치, 불사리는 593년에 찰주 초석에 안치 
         (부여 왕흥사 설계도로 세워진 일본 최초 절로 현 이름은 비응사, 당시 이름은 호코지 또는 간고지. 일본 최고最古사찰인 비응사가 부여 왕흥사를 복사하듯 설계 및 건립했다고? 2007년 10월 부여 왕흥사에서 발굴한 금은·청동사리함에 새겨진 창건연도를 단서와, 수많은 역사 자료를 근거로 증명됨. 당시 2007년 부여 왕흥사에서 발굴된 사리함에는 "백제왕의 발원으로 (왕흥사가) 577년 2월 창건됐다"기록되어 있는데. 그 뒤 줄거리에 뒤이어 588년 창건 시작, 596년 준공. 그리고 일본서기에 기록되기로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약 300개 사찰 중에서 가람조영의 경과가 기술된 것은 호코지가 유일. 불사리 안치식날 만조백관 100여명은 모두 백제옷 차림으로 아스카 왕조는 모든 게 백제 일색이었음. 624년 기록에 따르자면 당시 사찰 수는 46개, 비구승 816인, 비구니 569인으로. 당시 대부분 사찰은 사찰건축기술면 등 모든 게 백제의 긴밀한 지원 하에 건립. 다만 일본서기에서 600년대에 백제의 지원에 힘입은 사원건축, 불상제작 내용은 거의 전무한 것은, 600년대에 기술 현지화가 일정 수준에 도달한 걸로 추정. 또 500~600년대에 고구려,신라,임라에서 직간접으로 불교 관련 지원을 했다는 기록도 일본서기는 빼놓지 않음)
    598년: 수나라가 30만 대군으로 고구려 침공 → 여러 이유로 퇴각
    604년: 수나라는 113만 대군으로 고구려 침공 → 대패하여 철수 (이 후 몇 년에 걸쳐 두 차례 재침공하나 실패)
    618년: 수나라 몰락 → 당나라 건국 (즉 국가명 바껴 새왕조 건립) 
    626년: 추고왕34년에 소가 우마코 사망. 일본서기는 본래 반 소가씨 입장에서 기술된 사서임에도 불구하고 업적을 호평하여 소개. 또 일본서기는 소가 우마코의 업적 상당수를 성덕 태자의 업적으로 돌리는 식으로 기술
    629년: 백제는 미륵사 완공, 630년 사비궁을 중수하였으나. 당나라가 고구려 침공 계획,실행 때 지원 약조했으나 안 지킴. 이 때문에 당나라는 후일 협력파트너로써 백제가 아니라 신라를 택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
    645년: 을사의 변 (왕권회복을 위해 백제 본국에서 파견된 백제왕자 나카노오에 등이 사실상 소가 씨에게 빼앗긴 백제의 후국 왕이었던, 야마토왕의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벌인 사건. 성공하여 소가씨 3대의 약 60년 권력의 종지부를 찍게 됨. 야마토 왕권 회복이라는 제1목표 외에도 당시 당나라 권세 대두, 한반도 3국 각축전 등 동아시아정세 대응 차원 정치체제 구축과 백제일변도 외교정책을 지양하기 위한 목적 등도 동반)
    646년~647년: 왜 국내 행정조직 개편, 국외로는 647년 신라 김춘수 환대, 648년 견당사 파견 등 넓은 대외 정책 실행
    654년: 대내외적인 새 정책은 나카노오에 왕자를 중심으로 한 백제계의 반발로 사실상 시행되지 못하다가, 고토쿠왕이 죽음으로써 야마토 조정은 다시 친백제 정책을로 복귀
    672년: 임신의 난. 덴지 천황이 죽자 덴무가 역모를 일으켜 673년 왕이 됨. 

    ■ 자유의 여신상: 독립기념 선물 (프랑스 → 미국)
    ■ 칠지도         : 여전히 1,300년 연속 지금도(최근 박물관,교과서,모든 인문교양서,TV,신문,,모든 것!) 백제→왜 헌상품으로 주입식 세뇌 
    ■ 일본서기      : 660년 (부모의 나라) 백제 멸망에 따라, 자식의 나라 '왜'는 스스로 독립. 당연히 선물해줄 상대가 없으므로 스스로에게 문제의 양대서기를 수여. 물론 양대서기는 "역사+창작"인데. 역사에 근거를 둔 정도가 아니라 정반대로 뒤집음. 왜냐하면 부모의 나라 백제가 멸망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고, 천황 명칭도 중국을 참고하여 탄생. 아울러 건축 양식과 사회 제도 등 거의 모든 걸 백제식에서 중국식으로 대전환. 
    ■ 미국 식민지 시대 VS 일본 고대사 비교
    결론: 미국 식민지 시대 (1493-1776) ≒ 왜 고대사 

도표 A
────────────────────────────────────────────────────────────────────
            미국        일본
────────────────────────────────────────────────────────────────────
시기       18세기    기원0년 전후 ~ 700년대 
식민지*   영국       부여 ( 
            프랑스     백제 (가와치 왕국)
            스페인     부여백제 (야마토 왕조)
            네델란드   가야 (기와 왕국) 
            포르투갈   신라 (가와치 왕국)  
            멕시큐      고구려 (씨족,부족)
            인디언a     원시부족a
            인디언b     원시부족b
            인디언c      원시부족c
            ......            구주 왕조 (규슈 지방 백제 초기 세력)
미국은 18세기, 일본(왜)는 5세기 전후의 차이로 말미암아 명칭의 차이 부각됨. 즉 식민지냐, 아니면 왕국/분국/씨족 개념이냐 차이! 
────────────────────────────────────────────────────────────────────






    2

    [대립 내용: 중국 사서 VS 일본서기]
    1. 실권자 왕과 명목 뿐인 왕이 따로 있음
636년 편찬된 수서 왜국전에 따르자면 600년 당시 왜국 왕은 '다리시히코'인 남성으로 기록 VS 일본서기에서 당시 왕은 추고여왕으로 분명히 여성. 이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이란 얘기! 또 일본서기 스이코기15년(607년) 조에 왜국이 처음으로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는데, 이 최초의 견수사에 관하여는 수서 왜국전에도 대응하는 기사가 등장하여, 견수사에 관한 내용은 중국&일본 사서가 일치. 다만 대립된 내용에서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스이코16년(608년)에 수의 사신 배세청이 처음으로 왜국을 방문하여 왜국 왕을 접견하는데. 왜국 왕이 다리시히코라는 수서의 기록은 이러한 양국 간 사신교류를 토대로 기록된 것으로 사실, 외교, 국가간 서찰을 근거로 기록했기 때문에 신빙성이 높고. 관련 역사적 사료와 비교해보더라도 사실이 분명함. 따라서 당시 왜국 여왕이 스이코라는 일본서기의 기술은 거짓이고, 스이코는 존재하지 않거나 아니면 명목 상 왕에 불과했다는 뜻. 고로 실권자는 아마 소가 우마코요, 수서가 왜국 왕으로 기록한 (남성) 다리시히코 역시나 우마코가 유력시됨. 더욱이 일본서기는 607년 수에 보낸 사신을 대당에 보냈다고 하고 (수나라의 사신인) 배세청을 대당의 사자라고 일부러 틀리게 기술하는 한편. 한편 다리시히코의 정체는 전혀 일체 언급하지 않은 걸로 보아 당시 소가 우마코가 사실상 왜국의 왕이었던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의도. 
    2. (1)로 말미암아 소가 씨 3대가 사실상 대왕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발굴조사로 확인됨.
    아스카 왕조 역대 왕들의 무덤이 모두 소가 씨 선산인 가와치의 다이시초나, 아스카의 백제인 촌에 있고, 당시의 왕궁은 확인되지 않는 반면. 소가 시 저택은 모두 궁궐처럼 규모가 크고 화려하였다는 사실은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 이로써 소가 이나메는 그의 딸들을 모두 긴메이왕의 비로 보냈고, 이러한 소가가에 의한 일왕가 혈통 일원화 작업은 우마코 때도 지속. 즉 1000년 대 이전 이미 이때도 일왕가 왕들은 소가 씨를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고, 소가 씨 저택에서 성장하며, 소가 씨 집안이나 신사에 머물면서 허울 뿐인 왕의 임무를 수행한 걸로 추정. 이게 우마코가 실권을 장악한 587년부터 소가 이루카가 살해당한 645년까지 약 60년간이고. 그리고 이나메가 531년 '신해의 변'으로 긴메이왕을 옹립하여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한 이나메의 시대를 포함하면 약 110년이 소가 씨의 시대.
    이시와타리 신이치로씨 주장에 따르자면 소가 씨 3대가 사실상 대왕이었다기보다, 소가 우마코가 실제로 긴메이왕의 아들로 실제로 아스카 왕조의 왕이었다고 주장. 우마코가 긴메이왕과 기타시히메에서 출생한 요메이왕이고 요메이왕에 이어 즉위한 스슌&스이코는 실재한 왕이 아니고, 우마코의 대왕시절 왕들로 창작된 왕들이라는 의미. 근거는 우마코의 처이자 모리야의 여동생 후쓰히메는, 오시사카히코히토노오에의 여동생 (요메이가 범하였다고 하는) 우지 왕녀와 동일 인물이라는 정황이 짙고. 비타쓰왕의 아들인 오시사카히코가 모노노베 모리야와 동일 인물이라는 점 때문. 고로 비타쓰왕은 긴메이가 센카의 딸인 이시히메를 ....로 취하여 낳은 아들이고......흥미로운 추론으로 자세한 검증과 연구가 더해져 사실여부 판단이 필요한 논설임. 

    [수수께끼의 4세기 - C]
    수수께끼의 4세기가 중국 사서를 근거로 하면 일단 150년. 또는 3~4세기로 잡을 수도 잇는데. 일단 150년 동안 중국 사서에서 '왜'는 홀연 종적을 감췄다가 150년 만에 등장하는데. 그렇게 중국 사서에 150년 만에 뜬금없이 등장한 왜국의 5왕은 누군가? 
    찬, 진, 제, 흥, 무! 
    이걸 또 역대 일본 역사학계는 일본 내 연립/독립/산별...왕국의 왕들로 인식했는데. 역사 사료들을 살펴보면 말도 안되는 거짓으로 밝혀짐. 일단 일본인이 쓴 가장 오래된 한문으로 알려진 "왜왕 무가 송황제에게 올린 상표문". 상표문에 왜왕 무의 부친이 왜왕 '제'라고 되어 있으므로 왜왕 '제'는 백제의 개로왕, 왜왕 '흥'은 문주왕 또는 개로왕의 다른 아들인 셈에 대해. 아래 문단에서 설명하기로. 이로써 백제계 왕국들이 왜 산지에 독립되어 있었고, 고구려의 압력에 따라 백제-신라-가야의 세력들이 열도로 넘어가 역시나 여러 독립 왕국들로 무리지어 존재했다는 점. 그걸 현존하는 자료를 근거로 일본인이 작성한 가장 오래된 한문을, 백제인이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이 작성한 걸로 인식. 당연히 왜 작성했는지 일본인 거의 99.9999...%는 모름. 그저 TV에서 읊어주는 대로. 그냥 요미우리와 산케이, 어디 어디가 주입하는 대로. 끝. 
    설명은 책 (두툼한 인문교양서) 천억권으로 모자라니 간략히 문단 요점을 말하자면. 
    <18세기를 배경으로 보여주는 미국 서부영화 = 일본의 기원0년 전후 ~ 700년대>
    단, 차이점은 무기와 기술 등 시대적 배경 차이.
    (서기 700년 이전 일본 왕가-귀족-사회지도층은 백제&한반도와 무관한 열도 토착인 출신이어야 한다는 야심은 1300년 이상 지속됐으나)
    따라서 서기 700년 이전 일본 왕가-귀족-사회지도층은 백제&한반도에서 일찍 갔냐 늦게 갔냐 차이 밖에 없음. 
    아니면? 아이누족 밖에 없음
    현재 북미 백인들이 과연 유럽 백인들과 전혀 무관한 인종일까? NO! 또, 
    현재 북미 백인들이 유럽과 무관한 북미 토착인 출신임만 주장하나? NO! 또, 
    현재 북미 백인들이 유럽과 무관한 북미 토착인 출신이 옳다고 가정하더라도.
    만약 그게 옳다면? 그러면 북미 인종 구성은 (백인은 희박하디 희박할 뿐) 인디언 + 나머지 밖에 없게 됨.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기 700년 이전 일본 왕가-귀족-사회지도층은 백제&한반도와 무관한 열도 토착인 출신이다?
    기원전이든 후든 (남방계인) 아이누족 빼고 토착 일본인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됨. 
    단, 전국통일이 불가능한 고대사회였으므로 남방계 일색의 원시부족, 왕국, 씨족 사회는 남방계가 당연히 원류. 곧 전국통일은 AD 1,000년 이후 얘기. 그러니까 아이누족와 남방계와 남방계 혼류, (도래인과 덜 혼혈된) 4세기 캐나다 원주민, 기원전 호주 원주민, 기원후 뉴질랜드 원주민의 후손들이 700년 이전 일본 왕가-귀족-사회지도층이었다? 말이 안됨! 
    지금도 인종학등으로 분석해보면 (최근) 일본 왕가-귀족-사회지도층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코카시언, 몽골계, 북방계 피가 섞인 흔적이 역력. 이는 당연히 일본에서 현재까지 발굴된 왕관 가운데 금관은 단 1개도 없음과 밀접한 관련. 금관은 0개 금동관은 다수. 요약하자면 북방계 유입 "1천년~몇 만년"으로 현재 6,7세기 같은 비사회지도층의 남방계가 현재는 옅어졌을지언정. 북방계 외모가 문명과 비례하여 거의 모든 걸 잠식해도 문화는 태평양 원주민(아마존 남방계)라는 점은 아래 10문단 참조. 
    물론 남방계가 못생기고, 나쁘고, 더러우며, 열등하다는 걸 전제로 주제를 논하는 게 아니다만. 주제의 대상에 대해 칼럼 1편, 2편, 3편...일단 9편만 봐도 어떤가. 그분들께서 무얼 전제로 사고체계가 작동하는가 말이다. 이런데 영화 혹성탈출이 연상되지 않고 베겨? 인류사가 얼마나 아름다웠겠나. 전투가 아니라 전쟁에서 식지 않은 (여자) 주검만 있어도 (남자) 군인이 어땠을까. 한마디로 송장에 날파리 꼬이듯! 근데 멀쩡히 살아있으면? 똥파리 꼬이는 연애론과 격이 다른 얘기. 그러니까 지금 봐도 엑셀파일, 정부 주도, 세계 스트라이커 양대산맥 경쟁 매스컴 보도처럼 현장중계하니까 전국민 광분. 지금이라고 달라? 우리가 만약 이겼으면! 신자가 아니어도 성경 구절 조금은 알듯이. 카인과 아벨이 정반대로 지구인들한테 뭔가를 경고하니까 칼럼이 바쁘지. 아직도 모르겠소? 반드시 거래만 해야 될 상대는, 마음을 나누며 사귈 친구가 아니라는 건 익히 셰익스피어가 경고했다. 관련하여 고유한 잉글랜드인이 어딨겠나, 죄다 북유럽-중유럽-남유럽-동유럽-시베리아-어디-어디..에서 유입된 인종일 뿐. 그마저 덜 고유한 잉글랜드인을 아일랜드로 몰아버렸는데. 그마저 끝까지 아일랜드를 못 괴롭혀 안달. 근데 또 재미난 게 사고체계는 우리를 부러워하지 마세요. 그처럼 성경 인물들이 로마제국 본토 출신 병사들보다 대체로 못생겼던 이치처럼. 잉글랜드인이 근대 이태리 미남보다 덜 잘생겼으니까, 유럽을 상대로 안되니까 영국연합을 탄생시켰는데. 하필 1등급 그분들을 상대로 유대인이 저속한 멜로드라마 대사처럼 단물을 빨아먹는다? 베니스의 상인이 유명하면 뭘 하나. 007 가방으로 판사 매수가 성에 차겠나. 법조계부터 사교계든 연예계든, 불과 20년전 40년 전 그 바닥이 어땠는지 어른들이 모르시나? 그럼 다른 분야는! 대체 앵글로색슨족만 해도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오는 분들인데. 게르만족은 또 얼마나 유대인을 싫어하고 증어하며 극혐했으면...! 그럼 칼럼 대상이 지목하는 원시부족은 뭐 외계인이야? 지구가 바로 이처럼 요지경처럼 돌아가니까 아마도 사랑(만)은 아름답기를 기원하는 거 아닐까. 





    3

    [쇼토쿠 태자는 가공인물?]
    소가노 우마코의 업적을 대부분 쇼토쿠 태자라는 가공인물을 내세워 꾸민 게 보다 진실에 가까움. 
    그럼 일본서기는 왜 그래야 했을까? 
    왜냐, 일본서기의 편찬 목적이 만세일계를 강조하고자, 또 불리한 건 뒤바꾸고, 불미스러운 걸 미화시키기 위해서. 특히 고교쿠2년(643년) 기사에 쇼토쿠 태자의 아들 야마시로노오에는 물론 그의 자제들과 가족 모두가 다 함게 소가노에미시에 의해 죽임을 당함으로써, 이후 쇼토쿠 태자의 자손은 완전히 사라지는 걸로 일본서기가 기술한다는 점. 즉 쇼토쿠 태자가 창작에 따른 목표를 충족시켰기 때문에 창작 인물 쇼토쿠 태자의 모든 자손을 일본서기에서 퇴장시킴.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일본서기는 소가 우마코가 이룩한 업적을 그대로 사서에 남길 수 없었기 때문. 그래서 가공 인물 쇼토쿠 태자를 등장시켜 소가 우마코의 업적을 마치 직접 슈퍼맨처럼 완수한 걸로 꾸밈. 일왕가 입장에서 보면 우마코가 비록 아스카 왕조를 위해 많은 공헌을 했을지언정, 편찬 위원들은, 그와 그의 손자 이루카가 왕과 왕자 등 많은 왕족을 죽였고 역모를 일으켜 왕이 되려고 한 악인들로 판정했으므로. 그래서 우마코의 일생사를 곧이곧대로 기록할 수 없으니까 가공 인물 쇼토쿠 태자를 만들어 그의 업적으로 바꿔치기 하였다는 걸 무려 2022년이나 되어서야 점점 깨달아가는 중. 또 쇼토쿠 태자를 창작하였을지언정 자식도 없이 원맨쇼만 강조하는 건 너무 작위적이었기 때문에 야마시로노오에라는 아들을 둔 것으로 서술했고, 아들 대에서 온 가족을 무대에서 퇴장시킨 셈. 
    결국 소가 우마코의 업적은 온전히 요메이왕(재위 585년~587년), 스이코왕(재위 592년~628년), 쇼토쿠 태자 그렇게 3인방으로 분산되어 일본서기는 기술했을 것임. 그러면 또 그 3인방 사이의 왕으로 기술된 요메이, 스슌(재위 587년~592년), 스이코왕은 모두 허구의 왕들로 봐도 무방. 게다가 스이코가 죽는 해(628년)와 우마코가 죽는 시기(626년)도 절묘히 비슷한 점도 매우 흥미로움. 이건 너무 은근히 진짜 사실이 무엇인가를 암시하지 않을까? 





    4

    [38대 덴지 천황은 누구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덴지 천황 = 교기왕자. (의자왕의 둘째아들로 나카노오에 왕자로 명칭변경! 결국 신분세탁으로 덴지천황이 됨)
    일본서기에 따르면 덴지는 668년 왕위에 오르고, 670년 국호를 '왜'에서 '일본'으로 바꾸어 새 일본국 역사를 시작한 최초왕. 또 일본서기에 기록되기로 

아버지          +  어머니                                         =  아들
34대 서명천황 + 35대 황극 여왕 (동일인=37대 제명 여왕) = 38대 덴지 천황

    라고 설명했으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이 아님! 일본서기의 기술은 역시나 또 뭔가를 숨김. 일단 당시 정황은, 의자왕은 이미 항복하여 백제 회복의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 그러나 사이메이 여왕(37대 제명 여왕)은 60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준비에 총력을 기울임. 그러다 661년 7월 사이메이 여왕이 군사준비 지원 준비 중 갑자기 죽자, 나카노오에 태자(나중의 덴지 천황)은 소복을 입고 칭제. 국장을 미루며 군대를 이끌고 백제로 출병. 즉 나카노오에 왕자가 (어차피) 지는 전쟁임을 알면서도 부흥군으로 백제 지원에 전력을 다한 것. 그러다 풍장 왕자에게 관직을 주고 오노오미 고모시키의 누이를 처로 삼게 한 후 백제로 귀국하는 풍장을 수호하게 함. 의자왕의 둘째 아들이 칭제(즉위하지 않고 왕의 업무를 보는 것) 상태로, 의자왕의 첫째 아들인 형을 백제로 보냄. 그리고 현장을 목격한 후루히토노오에 왕자가 '한인'이 이루카를 죽였다고 외쳤을 때. 그 '한인'은 백제에서 온 인물을 의미하는데. 그 당시 백제에서 와 있던 인물로는 크게 2명으로 압축.
    첫째, 631년 도왜한 풍장왕자 (의자왕의 첫째 아들)
    둘째, 642년 도왜한 교기왕자 (의자왕의 둘째 아들)
    그렇다면 둘 중에 누가 나카노오에 왕자로 변신했을까? 의자왕의 둘째 아들인 교기왕자가 (일본서기 기술과 달리, 사실은) 나카노오에 왕자로 뒤바뀌고, 후에 덴지 천황으로 변신. 그 사실을 은폐 및 왜곡하고자 일본서기는 풍장은 귀국했고, 의자왕의 둘째 아들 교기왕자는 (후에 덴지 천황이될) 나카노오에 왕자가 아닌 것처럼 꾸밈. 그 외 뒷받침되는 근거도 뚜렷하고 확실.

    (1) 을사의 변 당시 고교쿠왕은 백제의 왕자 2명 중 풍장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 표명 없음
    (2) 백제 멸망기에 풍장왕자는 백제로 건너갔다가, 나당연합군에 패해 고구려로 도망갔다는 일본서기 기록(자세한 설명은 생략). 고로 의자왕 1째 아들인 풍장은 제외
    (3) 교기왕자는 고교쿠왕과 사냥도 같이하는 등 총애받고 소가 에미시는 그를 위해 씨름시합을 열 정도로 배려 깊은 걸로 보아, 일본서기는 교기 왕자를 나카노오에로 바꾸어 기술했을 가능성이 큼
    (4) 일본서기에서 교기 왕자가 642년 도왜한 뒤 그 해에만 교기 왕자 관련 기사만 7회. 그러다 644년 이후로 교기 왕자 관련 기사는 딱 사라짐. 그런데 재미나게도 644년 이후에는 나카노오에 왕자에 관한 기사가 뜬급없이 계속 이어짐. (총애받던 의자왕 둘째 아들 관련 기사 일색이다가, 갑자기 그를 신분세탁하여 이름이 바뀐 나카노오에 왕자만 등장? 교기 왕자 = 나카노오에 왕자)
    (5) (중국 역사서인) 구당서 유인궤전: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은(1째 아들 풍장왕자) 백제에서 싸우고. 의자왕의 아들 부여용은(2째 아들 교기왕자) 왜국에서 백제를 돕고 있었다며 기술. 또 부여용이 부여융의 아우라는 기사도 등장. (일본서기에 따르자면 덴지 천황이 백제의 부흥운동을 적극 지원하였으니, 고로 그가 바로 구당서의 부여용임을 알 수 있고. 그래서 교기 왕자 = 나카노오에 왕자 = 덴지 천황)
    (6) 교기왕자의 이름 어원 분석: 용(勇)의 드라비다어 = 군디게. 교(翹)의 뜻은 꽁지인데. 꽁지의 드라비다어 = 군디. 털은 '개' 또는 '게'로 게의 '에' 발음이 '이'로 순행 동화되어. 그러므로 '군디게'는 '군디기'가 되어 교기는 꽁지털이라는 의미가 되는데. 결국 교기는 용을 뜻하는 걸로 볼 수 있음. 또한 용감하다는 말을 몽골어 '괴키'라고 하므로 교기는 이의 표음으로 볼 수도 있음

    따라서 일본서기에서 지칭하듯 덴지는 34대 서명천황과 35대 황극(37대 제명)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아님. 그게 아니라 의자왕 둘째 아들 교기 왕자 → 나카노오에 왕자 → 덴지 천황! 또 641년 조메이왕의 장례식에서 나카노오에 왕자가 부왕의 조사를 읽는 16세 동궁(태자)로 등장하는 것은. 훗날 편집으로 끼워넣은 조작이 너무도 티나는 부분! 뻔해도 너무 뻔함. 목적은 물론 만세일계 왕조임을 강조하고, 일본 왕가-귀족-사회지도창은 한반도와 무관한 열도 토착인 출신임을 어떻게든 사실로 만들기 위해서. 
    심지어 나카노오에 왕자가 동궁의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무려 3번이나 왕위를 양보해야 했는데. 만약 진짜로 조메이왕과 고교쿠 여왕의 아들이었다면 정말로 3번씩이나 왕위를 양보한다? 거의 있을 수 없는 일. 이렇듯 의자왕의 둘째 아들로써 백제에서 도왜한지 얼마되지 않아 왕위에 오르기까지 3차례 배제라는 시간이 필요했을 걸로 추정. 이처럼 <덴지 = 교기왕자>라는 진실을 알고 나면 모든 그림이 확연해짐. 모든 줄거리가 자연스럽게 이해됨. 642년 도왜한 교기왕자는(의자왕의 둘째 아들) 645년 백제계 아스카 왕조의 실권을 잡고 권력을 휘두르던 소가 씨를 타도하여 백제계 왕권 회복. 또 본국인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패배가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사력을 다해(국가 총력을 기울여) 백제 부흥군을 지원. 그러다 백제가 멸망하자 백제에서 망명해온 수많은 백성들을 적극 수용. 정착 지원. 백제 출신 관료 우대. 그렇게 백제의 마지막 국왕이었던 의자왕을 끝으로 백제가 멸망한 후, 의자왕의 둘째 아들 교기왕자는 668년 왕위에 오르고 670년 국호를 '왜'에서 '일본'으로 바꾼 최초의 일본왕. 즉 한마디로 의자왕 둘째 아들은 일본의 시조! 
    이렇듯 이 모든 걸 일본서기는 신분세탁을 해준 셈. 결론은, 
    A. 사실: 교기왕자 = 나카노오에 왕자 = 덴지 천황
    B. 거짓: 교기왕자 ≠ 나카노오에 왕자 = 덴지 천황





    5

    [40대 덴무 천황은 누구인가?]
    672년 임신의 난 발생. 덴지 천황이 죽자 덴무가 역모를 일으켜 673년 왕으로 즉위하는데.
    단기간 내 조정군 진압이 가능했던 이유는 많음. 일단 생전에 덴지 천황이 동궁이던 오아마를 제치고 아들인 오토모를 후계자로 내정하는데, 이를 눈치 챈 오아마가 출가를 핑계로 이미 조정에서 빠져나와 요시노에 은거하면서 고향으로 알려진 미노를 중심으로 은밀하게 거병 준비. 또 왜의 백제 지원군 참패 이후 조성된 백제계 오미 정부에 대한 불만 폭증, 비판적 분위기 팽배, 아즈마노구니를 중심으로 한 오와리 씨 등 주요 호족과 야마토에 있던 소가 씨 일족 등 대거 오아마 편에 가세. 그리고 백성들 민심. 백제 지원으로 수많은 젊은이가 희생된데 이어 강제노역 등, 신라와 당이 언제 공격하여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공포감 고조. (일본서기가 자세히 구술하기를 꺼려한 걸로 추론했을 때...) 신라의 지원. 쓰쿠시에 머물고 있던 당의 대규모 인력이 672년 5월 철수(곽무종이 오아마에게 당과 연합하여 신라에 대적 의사 타진). 야마토 왕조의 영토가(또는 세력권만) 열도 중서부와 관동지방으로 조금씩 확대되면서 인적구성에 있어서 야요이인들과 가야, 신라계인들의 비중이 압도적 다수로 대두. 임신의 난 때문에 백제계 세력 퇴조, 천황이 씨족들 위에 군림하는 천황중심 황친정치 시작. 
    덴무 천황은 일본서기에는 덴지의 친동생으로 되어 있으나, 오히려 덴무가 연장자로 둘은 친형제가 아닌 듯(여러 이유가 많은데 특히 덴지가 4명의 딸을 덴무에게 출가시키고, 덴무 또한 딸들을 덴지의 비로 들이도록 하는 점). 게다가 야마토 왕조의 친백제계 정책에서 벗어나 친신라적인 입장이 뚜렷한 점도 이상하므로. 하여 신라의 왕족인 김다수 또는 풍장의 아들이라는 설 등이 난무. 아무튼 임신의 난을 계기로 "친백제정책 → 친신라정책"으로 대전환. 그리고 일본서기는 편찬 시기와 근접한 덴무기에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 전 30권 가운데 유일하게 2권 분량 차지. 
    그러면 30권에서 2권 분량은 또 무엇을 감추고 왜곡했을까? ~를 추론하자면. 백제계에서 느닷없이 덴무라는 신라계로..라니...! 여러 설들 가운데 덴무를 김다수로 보는 학설도 있으나. 그보다는 장복이 유력! 일본서기에 642년 8월 조에 백제인질 달솔 장복에게 쇼토쿠의 관위를 내렸다는 기사가 등장하는데. 바로 이 장복 → 오아마 왕제로 행세 → 덴무 천황! 또 동년 7월 조에 백제의 사신 지적 및 그 아들 달솔과 누군가가 은솔 군선을 조정에서 향응하였다는 기사가 등장하는데...이때 일본서기가 일부러 빠트린 이름. 그 이름은 지적의 아들 달솔로 곧 장복으로 추정됨. 즉 신라계에서 덴무로 볼 만한 인물이 과연 누구일까 라고 범위를 좁혀가자면. 당시 역사 가운데 한반도 정황, 특히 백제의 동향이 매우 중요. 왜냐하면 <덴지 → 덴무>는 곧 <백제계 → 신라계>로 180도 전환이기 때문. 참고로 그 후 지토 천황 이후 야마토 왕조의 계보는 덴무의 자손들에 의해 계승되다가 제48대 쇼토쿠 천황대에 이르러 후계가 단절됨. 그래서 덴지 천황의 아들이었던 시키 왕자의 아들인 시라카베 황자가 770년 고닌 천황으로 즉위함에 따라 100년 가가이 지속되었던 덴무계 왕통은 단절되고 다시 덴지계 왕통으로 이어지게 됨. 
    그럼 당시 백제에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백제 무왕은 (신라의) 선화 공주와 결혼(역사적 증거들 다수로 증명). 
    특히, 2009년 (한국) 미륵사지 금판&사리 등 발견. 미륵사를 건립한 무왕의 왕후를 선화가 아닌 당시 백제 최고 관직이었던 좌평 사택덕적의 딸로 기록 (금판 명시). 
    A) 무왕의 왕후 1 = 선화공주(의자왕의 어머니... 실증,연구 필요)
    B) 무왕의 왕후 2 = 사택공주(교기왕자의 어머니, 사택적덕의 딸)
    여기서 선화 공주는 신라 증평왕의 공주였다는 삼국유사 기록으로 말미암아. 결국 지적이나 그의 아들인 장복은 신라와 밀접한 관계인 백제 왕족이 되는데. 백제계에서 '왜' 임신의 난 때문에 갑자기 신라계로 대전환하여 덴무 천황? 신분세탁을 의심하여 추정하면 결국 신라계와 혼맥을 맺은 백제계의 왕족 가운데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건... 오직 딱 1명, 장복만 꼽힘. 
    (앞서 언급했듯) "교기 왕자 = 나카노오에 왕자 = 덴지 천황"이 사실일 때!
    왜 36대 효덕왕은 백제왕자가 도왜하여 왕이 된 (당시 매우 흔한 사례/수없이 반복). 이때 
    A) 지적(왜36대 효덕왕)이 도왜 전 백제에서 얻은 아들: 장복
    B) 지적(왜36대 효덕왕)이 도왜 후 왜에서    얻은 아들: 유마 왕자 (→ 나카노오에에게 살해당함)
    입증할 부분이 많긴 하나 뭐니 뭐니 해도 극명한 전환점이 중요. 즉 <백제계 → 신라계>. 따라서 40대 덴무는 과연 누구일까? ~에 대한 조건은 더더욱 압축됨. 빼도 박도 못함!
    (1) 백제계 왕족으로서 왜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인물
    (2) 백제계 왕족으로서 백제에서 태어나 도왜한 인물
    (3) 한반도와 무관한 열도 토착인 출신은 절대 아님
    (4) 임신의 난은 신라계 호족,여러 씨족들 적극 지지한 점 (태생이 왜라는 점 반증)
    (5) 신라의 직접 지원은 일본서기에 기술되지 않으나 정치적 여건: 신라 흥 백제 멸 (백제계 왕족에서 신라계와 누가 친할까?)
    (6) 덴무가 임신의 난 중에 아마테라스 대신이 있는 이세신궁의 방향을 향해 절을 하였다는 점 (백제에서 성장하여 의자왕 아들 자격으로 도왜한 덴지와 달리, 왜국에서 태어나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음)
    (7) 백제계인데 신라계와 맥락이 닿는 인물 (덴무가 백제계 왕들 능묘가 많은 아스카 히노구마에 덴지의 딸인 지토 천황과 합장된 점은 사후 증명이고. 일본서기에 따라 사전 증명은 덴무라는 즉위 인물, 정책, 향후 업적 등이 "백제계 → 신라계"라는 점)
    (8) 팔각릉이 은근히 암시하는 점 (팔각릉: 34, 35, 37, 38, 40, 41-42 / 원분: 36, 39?) 
    (9)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 아들 자격으로 도왜한 왜 38대 덴지 천황과 달리. 일본서기 기술대로 덴무는 왜 34대 서명천황 아들로써 태생지가 왜. 반면 38대 덴지와는 지지배경이 확연히 다른 점. 이처럼 덴무는 구백제계부터 신라계,가야계, 신라 사신과 직접 내통 가능할 걸로 추측, 기타 여러 왕족들 호족들 씨족들 지지 기반 튼튼. 탄탄.
    그러므로 결론은, 
    장복 → 후루히토노오에 왕자 → 오아마 왕제 → 덴무 천황





    6

    [몬무 천황 일설]
    신라 제30대 문무왕(재위 681년~692년) = 몬무 천황.
    일본 역사학자 사와다 요타로가 제기한 학설로 몬무 천황의 한자 시호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문무왕과 같다는 점에 착안. 신라 제30대 왕인 문무왕은 왕위를 아들인 신문왕(재위 681년~692년)에게 물려주고, 도일하여 일본의 몬무 천황이 되었다고 주장. 근거는,
    (1) 지토 천황의 아들인 쿠사카베 황태자가 죽은 해가 689년이고, 몬무 천황이 죽은 해가 707년인데. 속일본기에는 이들의 사망 시 연령이 적혀있지 않고
    (2) 속일본기는 몬무 천황이 건강한 성년으로 자랐다고 하는데 재위 10년간 황후를 세우지 않았으며
    (3) 몬무 천황의 시호에 '조부'라는 표기가 들어 있고
    (4) 몬무 천황 3년(700년) 신라가 일부러 사자를 보내 효소왕의 사거를 알려왔을 때 신라의 왕을 '사랑하는 아이'로 표현하고 있으며
    (5) 몬무 천황의 즉위 전 이름이 '가루' 황자였는데 가(카)루는 한국어의 칼에서 온 이름으로 추정

    이러한 의문들은 신라 문무왕이 일본 몬무 천황과 동일인으로 보면 모두 해소.
    (1) 몬무 천황 사망 시 연령은 속일본기에는 없으나 다른 문서에 78세 또는 65세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문무왕이 707년에 사망한 경우의 연령으로 추정되는 81세에 근접
    (2) 몬무 천황은 고령이었으므로 황후를 세우지 않았던 것이며
    (3) 신라의 효소왕은 그의 손자였으므로 '애아'라는 표현을 쓰는 건 오히려 당연
    (4) 문무왕은 죽기 전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던 전설. 실제로 문무왕 수중릉으로 알려진 대왕암이 동해안 앞바다에 있는데 동해의 용이 되고 싶다는 표현은 일본으로 가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

    [덴무, 지토조에 30여 년간 견당사가 파견되지 않은 이유]
    일본 역사학계는 당시 일본의 조정이 국내 체제를 정비하는데 주력했기 때문이라지만. 궁색한 변명에 가까운 이유는 무엇이냐? 국내체제 정비를 위해서는 오히려 당의 선진적인 제도를 배우기 위한 견당사 파견이 절실. 그럼 왜 일본은 견당사를 파견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했기 때문.
    671년 경 한반도에서 당 세력을 퇴출시키는데 성공 (대가는 고구려 영토는 대폭 축소──당나라가 다 병합──신라까지 위협받음). 또 임신의 난을 통해 야마토에 친신라계의 덴무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직간접 도움. 이때 당의 세력을 몰아낸 신라가 배를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야마토 왜는 견당사를 파견하지 못했음. 이러한 사정은 8세기 후반 신라와의 관계가 경색되기까지 신라가 한반도의 연안을 따라 항행하는 북로의 사용을 불허했던 줄거리에 근거. 그와 같은 사정은 견당사 일행이 동중국해를 건널 때 공포에 떠는 모습에 대해 833년 파견된 견당사 일원이었던 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 777년 파견되었던 견당사의 보고에 여실히 기록됨. 그리고 668년에서 701년 간 24회의 사신을 일본에 파견했는데. 이로써 거의 매년 신라의 사신을 일본에 파견했다는 뜻. 고로 신라가 왜의 정치-사회제도 개혁에 깊숙히 관여. (동시대 일본도 신라에 12회 등 지속적 사신 파견. 그리고 당시 발해와 신라가 사신을 너무 많이 또 너무 자주 파견하는 데 대해서 왜는 매우 부담스러워 했다는 기록 등이 당시 국제 정세 판단에 중요한 시사점). 
    그리고 694년 완공한 일본 최초의 도성인 후지와라궁-후지와라쿄가 중국 당나라의 장안과 낙양을 본받아 조성한 것이라는 견해가 만장일치인데. 덴무, 지토조에 30여 년간 견당사가 파견되지 않았는데 당나라 장안과 낙양을 참고해 일본 최초 도성을 조성한다? 완전 비상식적인 주장! 그게 아니라 상식적으로 납득 될 만한 근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 삽십 몇 년간 외교 단절이라는 사실과 불일치하는 주장이 어떻게 만장일치라니! 668년부터 701년까지 견당사가 한 번도 중국에 파견된 사실이 없는 반면 일본과 신라 사이에는 빈번한 사신교류가 있었던 점을 근거로 후지와라쿄가 신라의 경주를 본떠서 지어진 것임을 짐작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음. 더더군다나 702년~838년 사이에 일본이 당에 파견한 7차례의 견당사 중 중국정세에 대해 보고한 것은 777년과 803년 파견된 사절뿐이고, 나머지 5회의 사신은 아무런 보고를 하지 않은 걸 보면. 당시 일본이 중국(당나라) 정치제도의 개혁, 사회제도, 사찰 건립 기술 등에 중국의 문물을 수용하였다는 일본 사학계 주장은 전혀 불합리. 고로 후지와라궁-후지와라쿄가 당나라 장안(&낙양)을 본따 설계했다는 주장은 거짓에 가까움. 역사적 근거에 따라 후지와라궁-후지와라쿄보다 정확히 100년 후인 794년 건립된 헤이안쿄가 당나라 장안을 참고했다는 건 타당한데. 당시 국제정세,국내체제를 모두 검토하건대 694년에도 당나라 장안,낙양을 따라 설계했다? 말이 안됨. 

도표 B
────────────────────────────────────────────────────────────────────
                                완공시기    참고-설계(일본학계)    참고(사실판단)
────────────────────────────────────────────────────────────────────
후지와라궁-후지와라쿄   694년         당나라 장안-낙양      신라 경주*
헤이조쿄(평성경)           710년         당나라?                  신라? 백제?  
헤이안쿄(평안경)           794년         당나라 장안             당나라 장안 
────────────────────────────────────────────────────────────────────
*신라 경주도 당나라 장안성 참고로 축조. 수나라 대흥성도 남북조시대 북위의 낙양성 참고로 축조. 
일본학계 주장 오류
1. 앞서 언급한 사신 양국 교류 기록
2. 710년 이후부터 일본 종교건축은 백제식에서 → 중국식으로 180도 전환(무조건 중국식)
3. 710년 수도 이전 즉 694년 완공이면 백제식 기술 현지화가 상당량 고도화로 추정
4. 800년 간무왕, 한왜 동종 서적 분서사건보다 훨신 이전인 694년 임을 감안
5. 752년 세계최대 금동불 완성이 어디 기술이다? 주요 설계자,책임자,기술자는? 그 외...
6. 698년 준공된 야쿠시지가 682년 조영된 신라 문무왕의 영묘사인 감은사 가람배치를 참고한 점
7.8.9......
────────────────────────────────────────────────────────────────────

    더불어 덴무, 지토조에 30여 년간 견당사가 파견되지 않은 이유는 임신의 난과도 연결된다. 일본 역사학자 사와다 요타로는 1995년 이렇게 학설을 제기함. 임신의 난은 친신라계의 덴무 천황 측 VS 백제계의 오미 조정 사이의 전쟁. (중간 내용은 생략하고라도) 결국 오아마의 거병은 국내의 친신라파의 지지에 의한 것으로서. 임신의 난 이후 20년에 걸쳐 견신라사는 8회 파견된 반면 견당사는 30년 동안이나 파견되지 않은 것만 보아도 이 전쟁은 신라와 당의 대리전 성격이 짙다고 사와다씨는 주장. 
    그래서 친신라계인 덴무, 지토조 즉 몬무왕2년(698년) 준공된 야쿠시지. 야쿠시지라는 절은 두 개의 탑을 동서로 배치하는 가람방식으로 682년 조영된 신라 문무왕의 영묘사인 감은사의 가람배치를 참고한 것. 즉 야쿠시지와 경주 감은사는 똑같은 신라식 쌍탑배치임! 





    7

    [나카토미 가마타리가 풍장?]
    일본 역사작가 세키유지 학설에 따르자면 
    후지와라(나카토미) 가마타리 = 백제 왕자 풍장!
    한마디로 매우 가능성이 높은 학설. 역으로 가마타리가 풍장이 아니라고 단정할 근거도 결코 많지 않는 가운데 향후 밝혀야 할 심도 깊은 주제. 삼국사기는 풍장이 행방을 감추었다고만 기술했고, 11세기 편찬된 중국 자치통감은 풍장이 고구려에서 포박되어 당으로 연행되었다고만 기록. 그런데 어떻게 풍장이 다시 야마토 왜에 등장? 

    (1) 나카노오에 왕자(=덴지 천황=교기 왕자?)가 인생의 위기를 맞이한 시기에 가마타리의 모습이 일본서기에서 사라진 점. 이는 가마타리가 백제로 귀국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일본서기가 서술한 풍장의 행적과 일치. 당시 혼란한 상황을 감안하자면 풍장이 당나라로 갔다가 고구려나 (통일)신라로 도망갈 리는 없으므로, 왜로 돌아가 연명책을 강구했을 듯. 또한 백강전투 후에 가마타리는 (일본서기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다시 일본서기에 등장하고, 그의 후예인 후지와라 씨는 일관되도록 백제 유민을 중용하는데. 백제의 왕족을 (일본서기 편찬의도에 알맞도록 수도 없이) 신분세탁한 걸로 추정
    (2) 오사카부 아부야마산 정상부근에서 발견된 7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묘의 양식. 그 양식은 능산리 고분의 묘제와 흡사하고, 묘에서 발굴된 미이라 유체가 금실로 자수를 놓은 관을 썼던 것으로 판명. 그러면 7세기 야마토 조정에서 최고위직의 시키칸 관직을 받은 인물은 누구였느냐? 후보군 없이 오직 가마타리뿐! 따라서 이 묘는 가마타리의 것으로 보이는데. 게다가 이 인물이 백제양식 묘에 매장되었고, 이 묘가 백제의 왕묘와 같은 양식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 묘는 풍장의 묘일 가능성만 짙음. 또 나카토미씨는 신토의 제사직을 담당해온 씨족으로 알려졌는데 신토의 대표라고 할 나카토미가 백제의 왕묘에 매장될 이유가 있냐, 없냐? 전혀 없음. 말도 안됨. 고로 이 묘의 파장자는 풍장 즉 나카토미 가마타리가 거의 확실. 
    (3) 덴지8년(669년) 덴지 천황이 가마타리를 병문안 하였을 때 가마타리가 말하기를 생전에 군국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고 말한 걸 일본서기는 기록했는데. 이는 백강전투에서 패배하고 도망쳐온 데 대해 사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음. 또 동대사헌물장에 의자왕으로부터 내대신이었던 가마타리에게 적칠한 주자가 보내졌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가마타리가 의자왕의 아들 풍장이었기 때문에 있었던 일로 보임. 세키유지에 따르자면 간무 천황 때부터 왕위계승의 신보로 추가된 백제 왕실의 대도계를 가져온 인물도 풍장으로 보인다는 것. 더불어 백제혈통의 간무를 왕으로 세운 세력이 후지와라계임은 풍장이 가마타리였음을 말해주는 방증. 

    [왜국으로 파견된 첫 백제 왕자]
    일본서기는 약 250년간 10여 명의 백제왕자가 도래한 것으로 기술.  (1) 왜국이 백제의 후국  (2) 천황가 기원이 백제 왕실에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부정하려는, 일본서기 편찬목적을 참고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기(고사기+일본서기)는 역사의 진실을 우회적으로 암시했다. 그래서 왜국으로 파견된 백제 왕자들이 약 10명이고 그 총 기간은 오진8년(397년)부터 ~ 고교쿠 원년(642년) 백제 마지막왕인 의자왕 아들 교기에 이르기까지 약 250년간. 그 가운데 왜국으로 파견된 첫 백제 왕자는 누구였을까? 
    바로, 오진8년(397년) 백제 17대 아신왕의 아들인 직지 왕자다. 반면 한반도 사기인 삼국사기는 아신왕6년(397년)...기사가 있으므로 백제 왕자의 도왜 사실이 기록 상으로 일치함. 이때 왜국은 규수에 백제의 거점으로 있었던 고마국이 유력! (남아있는 기록 상으로만 처음: 도왜하여 고마국의 후왕이거나 향후 461년 도래한 개로왕의 동생으로 일본서기가 기록한 곤지 왕자부터는 왕자, 드물게는 왕족을 열도로 보내어 열도의 후국을 통치하게 하였단 관행은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지속) 
    그렇게 왜국으로 파견된 첫 백제 전지 왕자는 8년간 왜국에 체류하였다가. 다시 본국으로 귀국하여 백제 전지왕(재위 405년~420년)이 되는데. 그가 고마국의 후왕이었는지는 단정하기 어려우나 당시 고마국 왕이 시기적으로 보아. 중국 역사서인 송서에 등장하는 왜왕 '찬'이었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 또 438년 송에 조공한 왜왕 '진'은 왜왕 '찬'의 동생으로 기술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전지왕이 왜왕 '찬'이었다면, 그의 동생인 백제 비유왕(재위427년~455년)이 중국 사서에서 지목한 왜왕 '진'이었을 것으로 추정. 
    2번째 도왜한 백제 왕자: 유랴쿠5년(461년) 도왜하는 백제 21대 개로왕의 아우 곤지. 
    장차 (백제 무령왕이 되는) 시마와 (동성왕이 되는) 말다라는 아들도 이때 함게 도왜. 일본서기는 침묵하나 중국 송서는 관련사 기록.
    3번째 도왜한 백제 왕자: 부레쓰7년(504년) 도왜한 사아군. 순타 태자와 동일 인물로 추정.
    당시 게이타이 천황은 곤지의 아들 & 백제 무령왕의 아우. 게이타이를 승계한 긴메이왕은 무령왕의 손자인 법사군으로 추정.
    4번째 도왜한 백제 왕자: 스이코기5년(위덕왕 44년, 597년) '백제왕이 왕자 아좌를 파견하여 조공하였다'는 기사. 관련하여 신찬성씨록과 일본서기 내용 일치. 
    5번째 도왜한 백제 왕자: 조메이기3년(631년) 조에 '백제 의자왕이 왕자 풍장을 인질로 보내었다'고 기록. 관련하여 일본서기는 삼국사기 기록과 다름.
    6번째 도왜한 백제 왕자: 고교쿠기원년(642년) 조에 등장하는 의자왕의 아들 교기. 
    7번재...8번째... 
    그렇게 약 250년간 숨기지 않은 기록만 10여명. 이 250년 동안 백제에서 왜로 하사든지 헌상이든지 일단 넘어간 물품이 무엇이냐? 바로 칠지도, 스다하치만 인물화상경, ...., .... 등등인데. 일본 천황가가 아니라 비천황가, 즉 미국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 언급대로 사무라이 측 주장에 따르자면. (왜냐하면 천황가 즉 천황가가 섬기는 한반도 신들, 한반도 지명, 한반도 관련 이름들, 한반도 관련 ....)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치자면 나머지 사회지도층과 사회지도층이 다스리는 나머지까지가 99.99999......%이기 때문). 일본 천황가가 아니라 비천황가(사무라이 측) 주장대로 하사가 아니라, 그 물품들이 헌상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 하찮은(?) 헌상품들이 대체 뭐라고... 천황 즉위식에서 보물 중의 보물처럼 받드는 삼종신기가 되었을까! 조상 대대로, 지금까지, 미래 언제까지나... 대체 그 하찮은 게 뭐라고, 응? 아니 그렇소? 





    8

    [건국신화]
    전세계 수많은 신화들은 보편적인 공통점을 가진다. 그리스 신화, 로마신화, 북유럽신화...! 그런데 일본 신화는 그런 신화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이유는 왜일까! 대체 왜 일본 신화 만큼은 다른 신화들과 전혀 다르지? 일단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서
    A. (다른 신화들과 달리) 신화 시대가 매우 상세함
    B. (다른 신화들과 달리) 이설 및 변류들을 빼곡히 서술
    C. 천신,천손의 성과 이름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 점
    D. (다른 신화들과 달리) 민간 전승 토대가 아님
    ......

    왜 다른가! 
    1. 천황가의 내력을 절대로 드러낼 수 없는 사정 때문
    2. 천황가의 기원을 철처히 왜곡, 창작, 개조해야 하기 때문
    3.
    4.
    5.
    ......

    이 때문에 칼럼 내용들과 수많은 사료, 학식, 근거를 토대로 종합해보면. 기원전 3세기 경부터 한반도 삼한(변한,진한,마한)으로부터 왜로 수없이, 적게, 많게, 차곡차곡 인구 유입 및 누적. (관련하여 자연인류학자인 하니하라 가즈오 교수 학설대로는 도래인 비율을 약 80%로 보고, 이들이 건너오기 전부터 일본열도에 살고 있던 원주민 즉 조몬인 비율은 전체 20% 추정. 이마저...생략) 그러다 4세기 광개토왕의 한반도 남부공략 때문에 대거이주, 5세기 신라의 가야 합병에 따라 또 대거 이주, 그러다 6세기 백제 멸망으로 또 대거이주. 대거 이주 중간 중간 이주. 일본서기&삼국사기 기록 상 300년대 후반 백제왕자 이주로 판단컨대 백제 세력이 350년부터 넘어가 기반을 잡았다고 보면. 가왕치 왕국 같은 큰 세력 몇몇에, 적은 세력 몇몇 등이 열도 전역에 산재. 그 가운데 천황가의 기원에 해당하는 가와치 왕국 중심으로 봤을 때 일본 고대사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음. 

도표 C
────────────────────────────────────────────────────────────────────
                    왕위        왕통        세력 우위     세력 범위, 기타
────────────────────────────────────────────────────────────────────
BC몇...~ 350년:                                            다부족/AD 350년전 조몬인은 매우 희박/그럼에도...400년..500년..선후 조몬인間 불화
350년 ~ 660년: 백제계     백제계      백제계*      가와치&나라쪽 한정→점진적 영토확장→백제계는 점차 소수화&약화 진행
660년 ~ 672년:                                           "백강전투 ~ 임신의 난"  여러 비백제계가 백제계보다 우위**  
668년 ~ 701년:                                           왜의 견당사 파견 중지
672년 ~        : 신라계     덴무계                     고사기, 일본서기 편찬 기점으로 백제 색채를 지워나가기(없애기) 시작
781년 ~        : 백제계     덴지계***                  간무천황은 친백제 정치에서, 중간에 독립기조로 바뀜 (율령제 기타...등등 때문)
현재까지       : 일본인     덴지계(백제계)            단! 천황가를 제외한 99.9999...는 사무라이이므로...그렇게 됨! 
────────────────────────────────────────────────────────────────────
* 백제 왕실의 가와치 왕국 장악에서, 점차점차 
* 야요이 시대 한반도 관련 유물은 규수&긴키 지역 집중 (3~5세기 물품은 주로 가야와 신라, 백제는 그보다 늦은 6~7세기 집중)
** 645년 을사의 변만 봐도 백제계끼리 내분
***100여년 만에 백제계 왕통 회복. 허나 중심권 밖으로 세력 정벌, 800년까지도 동북부 에미시 왕국(?)등 평정 작전 활발. 해안선 길이 세계 1위와 땅덩이 때문에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등처럼 천하통일은 당시 여건 상 불가능. 또 일본국 시작 등 이유로 한일동족 역사기록 분서사건 등 대하드라마 연속됨. 다만 신찬성씨록 등 모순된 근거는 너무 많아서 일본서기만 무색해짐. 
────────────────────────────────────────────────────────────────────

    [신찬성씨록]
    難波連 出自 高麗國 好太王也: 광개토대왕의 아들이 일본에 존재했음을 기록. 일본의 난파련(難波連)이라는 씨족이 광개토태왕의 아들의 후손이라는 뜻이고, 광개토대왕 아들이 윤공천황이다. 난파는 오사카의 항구 이름. 

    [일본서기 / 칠지도]
    A. 백제왕이 왜왕에게 칠지도를 하사했다(내려주다)
    B. 백제왕이 왜왕에게 칠지도를 헌상했다(갖다바쳤다)
    둘 중 무엇이 진실일까? 힌트는 일본서기가 알려준다. 즉 일본서기에는 백제왕이 양마 2필을 바쳤다고만 되어 있지, 칼과 거울에 대한 언급은 없다. 왜냐하면 칼과 거울은 상위자가 하위자에게 하사하는 것임을 일본서기 편찬자(또는 후세 편집자)가 절대로~ 모를 리 없기 때문. 그러므로 애초에 처음부터 양마 2필만 바쳤다고 창작했거나, 아니면 여러가지를 바쳤다고 초고를 작성했다가 나중 후세에 그건 말이 안된다는 판단 하에 일부 내용을 삭제한 걸로 추정. 참고로 일본서기에는 이처럼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은 수천, 수만 그 이상이 숱하디 숱하게 등장함. 





    9

    [전방후원분]
    전방후원분은 수많은 근거를 논외로 치더라도, 상식적으로 따져보면 너무도 쉬운 이치.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전방후원분 VS 현재 한국에 남아있는 전방후원분
    * 대량 일본 전방후원분 분량을 100기로 잡으면, 한국 전방후원분은 1기 비율 (규모 비율은 말도 못함)
    이 둘 사이에서 (정확한 수치는 조사 못했으나 대략이나마) 1 : 100이라는 비율이 성립하는데. 그러면
    A. 왜(일본) 전방후원분 피장자들이 삼국(한국) 전방후원분 피장자&이하 전부를 지배했다?
    B. 삼국(한국) 전방후원분 피장자들이 왜(일본) 전방후원분 피장자&이하 전부를 지배했다? 
    과연 A&B 둘 중 무엇이 사실일까? 무수한 사료를 근거로 명백히 B가 정답. 그런데 왜 일본 역사학계와 사회지도층은 지금도, 또 영원히 A만을 옹호할까? 왜냐하면 B가 사실인 건 무엇보기 싫기 때문에. 따라서 흡사 미국 독립 이전에 미국 내에서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 스페인, 멕시코, 포르투갈, 인디언 여러 부족, 개별 왕국, 각종 씨족들....이 현재 미국 영토 내에 다방면으로 존재했다는 걸 부인하는 것과 똑같음. 오히려 옛날에 미국이 나머지를 싹 다 지배했다고 믿고 싶을 따름. 또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뻔하다. 
    문명이 시대를 따라갔냐? 
    YES: 전방후원분 1000기 건립 불가능
    NO: 전방후원분 1000기 건립    가능 (예: 멕시코 피라미드, 이집트 피라미드)
    의문점은 또 있다. 전방후원분 1000기 건립이 거뜬히 가능했다면, 그럼 신라-백제-부여-고구려 전체에 전방후원분 2만기 20만기 200만기를 왜 건립 못했을까? (일본 사극이 간절히 바라는 대로 구식탱탱묵은 억지가 옳다면, 한반도에 지금쯤 진시황급 전방후원분만 최소 20만기가 존재했어야 마땅! 근데 사실은?) 건립 못한 게 아니라, 방향부터 틀렸기 때문. 그러니까 현재 한일 양국 대학에서 역사학,고고학 학위를 획득한 일본 역사학자일지라도 이와 같은 상식은 아예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때문에 그냥 모든 걸 오직 "교류"에만 촛점을 맞추니까 귀를 기울일 수도 학식을 높이 살 수도 없게 됨. 더더군다나 이미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는 A가 아니라 B만 옳다는 걸 증명하는데. 대체 언제까지 전국민을 만년 세뇌시킬 건가? 전방후원분 1000기 건립이 손쉬웠던 국력이었는데 옆동네,옆나라,옆왕국...으로 옮겨가서 고작 1 대 100 비율 밖에 달성하지 못했다고? 게다가 무덤 규모조차 비교도 안됨. 심지어 지역마저 최소 1000기가 퍼진 지도보다 훨씬 초라한 모습. 이건 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수가 없음. 그만큼 이집트 피라미드 건립 즉 BC 2,500년경에 이집트 피라미드가 수없이 건립됐듯, 또 멕시코 피라미드의 숫자가 이집트를 훨신 압도하는 것처럼. 당시 <왜(일본) VS 삼국(한반도),부여,가야...>의 차이가 현재 남아있는 1000기 전방후원분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 즉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확연한 걸 넘어서 (무수한 역사 고증을 차치하고라도) 다음을 넌지시 알려준다는 점. 
    단언컨대 카우보이 모자 보면 뭐 생각 안드나? 미국 서부 영화를 보면... 딱 봐도 모르겠냔 말이오.
    지배층    = 외부 이주민 / 외부 세력
    피지배층 = 내부 원주민 / 내부 주민
    여기서 일본 사학계/사회지도층은 A에서 실제 천황의 무덤으로 장담하는 무덤이 약 2~3개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앎. 그 2-3개 빼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 또는 신원미상, 또는 허구에 불과. 즉 신사들 안내판처럼 에둘러 정한 것일 뿐. 그걸 파고들어 왜 증명 못하냐 따지면, 전세계 역사학계 평균과 달리 딴청으로 일관. 말하자면 역사학에서 갑자기 고전학(고전업/고전시대)으로 뒤바뀜. 기왕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전방후원분 몇 백기가 그냥 후세 사람들이 멋지게 보라고 조성했을 리는 만무함. 또 국내에 피라미드 이집트급, 진시황릉 등급을 몇 백기 조성할 정도인데 옛날에 왜 옆나라로 침략해서 그거보다 월등한 식민지 역사를 못 이뤘을까? 교류? 교류? 말이 되나 말이! 놀고 있네. 말도 안됨. 말 같지도 않음! 양국 비율은 비교도 안될 정도지만 똑같은 전방후원분이 많이 남아있다, 또 출토품도 똑같거나 거의 유사하다, 어쩌고저쩌고...따라서 단지 교류? 한번 생각을 해보시라. 고대 멕시코 사회에서 수 천기, 수 만기, 수십 만기에 해당하는 피라미드를 그냥 단순히 다독여서 만들었다? 그냥 후세 사람들 보기 좋으라고 설득해서 만들었다? 그게 어떻게 교류로 만들어지겠나. 사이좋게~ 오손도손~ 정답게~ 우리도 지을께 너네도 많이 지으세요? 꼬마애들 소꿉장난도 아니고 그게 뭔가. 한마디로 무력이지! 외부 세력이 유입하여 강력한 집권에 따라 만들어라, 강제노역을 시키니까 가능했을 뿐. 그게 최근 또 2000년 전후에 유네스코에 등재하네 마네 말 많은 제2차 세계대전 노예 강제노역 구역이지. 물론 남녀노소는 강제노역, 젊고 어린 여성은 성노역! 그런데 단지 교류? 그게 말인가 치킨인가 (절레절레)! 
    만약 전방후원분 1000기가 "외부 세력"이 아니라 내부 토착민이 피장자라면? 
    그럼 일본서기 편찬부터 ~ 77년 체제 ~ 1945년 패전선언 당시까지 주장했듯 임나일본부설만 옳겠지만. 그마저 일절 설득력 없다는 점. 
    그래서 이미 옛날에 수도 없이 일본 역사학자 일부는 고백했다.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을? 
    1000기인지 1500기인지 모를 엄청난 규모의 전방후원분 가운데 실제 피장자가 천황이 맞는 수는 2~3개 뿐. 
    1000기인지 1500기인지 모를 엄청난 규모의 전방후원분 가운데 산1개랄지 논-땅 1블럭을 통채로 능묘 설정한 예시도 많다는 걸. 

    [고사기 VS 일본서기]
도표 D
────────────────────────────────────────────────────────────────────
              초기 판본         후세 첨가&삭제
────────────────────────────────────────────────────────────────────
고사기:     없음                적거나 거의 없음 추정
일본서기:  없음                많은 정도가 아니라...코메디로 결론
────────────────────────────────────────────────────────────────────





    10

    [국가체계 / 원시부족]

도표 E
────────────────────────────────────────────────────────────────────
                             북미            일본                        한국                          이스라엘
────────────────────────────────────────────────────────────────────
역사/학식/지식/상식    NO 호불호    불호(극유감)*             NO 호불호 
국가체계(0~700년)      무존재          불확실                     확실
인구유입(0~700년)                        꾸준,규칙적,도표         간헐적-소규모-사유분명
본성:양육                  
유전자(인종):문화(관습)  환경 우위     관습 우위**
정신이상(원시부족감안)  없음/희박    평균/만장일치                
주-생활반경                자국            해외→자국               자국                           해외→자국***
────────────────────────────────────────────────────────────────────
* 역사/학식/지식/일반상식은 앞서 적었듯 호불호 문제가 아님. 근데 일본만 호불호가 유독 치명적,필사적으로 작용. 태평양 원시부족들은 다 그렇다는 뜻! 
** 일본 관습의 절대성: 절대 OX 문제는 아니나, 일본 인구 구성에서 (아이누족 빼고 거의 다) 외부 유입임을 감안했을 때 절대다수는 한반도계라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나? (절대로 OX 문제는 아니나) 이로써 원시부족은 문명권과 상반된다는 점. 흡사 멸종위기동물 보호구역처럼! 그러나 중요한 점은 
(1) 멸종위기도 아님. 오히려 인구&국력&영향력 극강
(2) 불리한 건 또 멸종위기동물 대우를 받고자 함
(3) 유리한 건 또 희소동물? 이색인종 취급 받기 싫어함
(4) 무엇보다 세계 평균 교양, 상식, 역사...에서 싫은 건 전부 부정
그리고 최소한 일본 사회는 인종, 본성, 개개인 성향에 앞서 압도적으로 문화(관습) 위주라는 것. 
*** 이스라엘 주요 생활반경: 디아스포라→현재! 즉 속칭 떠돌이에서 현재로. 모습은 다르지만 일본고대사도 외부 유입에 따라 인구구성이 완성된 꼴. 물론 "떠돌이"라는 속칭은 이를 테면 집시에 딱 해당할 텐데, 중간 과정은 물론 결과까지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한 사례. 또 이건 팔레스타인 문제와도 얽혀있음. 고로 일단은 세 가지 구분 가능. 첫째 흩어졌다 모였냐, 둘째 흩어진 게 거의 대부분이냐, 셋째 일본처럼 외부유입으로 달성할 만큼 진짜와 가짜를 달성했으니 딱 문호를 다느냐로. 

────────────────────────────────────────────────────────────────────

    결론. 도표로 보자면 
    1. 국가 체계
    관건은 국가 체계. 국가 체계가 확실했냐 아니냐 때문에 인구 유입 성격도 결정됨. 국가 체계가 확실했던 한반도 삼국 및 가야,부여 권역은 0년~1500년 사이에 대체로 뚜렷한 이유에 근거하여 외국계의 현지 유입이 이뤄짐. 그 기간 동안 간헐적으로, 또는 세계사 사건 때문에 유입된 예는 구체적으로 이렇다. 베트남 왕족은 쿠데타로 황족이 멸족될까봐 고려로 망명하여 새 성씨 부여받음. 명나라 장군의 조선 귀화. 왜군 사무라이가 조선 귀화(일본 장기처럼). 아랍인 사신도 고려로 귀화. 여진족 족장도 고려로 귀화. (일부) 제갈씨는 위나라에 불만 품고 신라로 망명.... 이와 같은 구체적 사료가 확실. 
    반면 국가 체계가 불확실했거나, 확실하게 밝혀지면 속 뒤집어지는 고대 일본사는? 
    (한반도처럼 간헐적으로가 아니라) → 규칙적으로 대규모/중규모/소규모
    (한반도처럼 사유확실 > 불문이주) → 사유확실 < 불문이주 ("사유 확실"조차 밝혀지면 극히 유감)
    2. 일본고대사는 국가체계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왜곡,날조,감추고,숨기고,짜증내며,망언하고,세뇌시키고... 모두 다 그 때문! 
    3. 원시부족 문화
    태평양 원시부족들 예시는 인문교양학 연구로 100개족, 1000개족 공통된 특징이 돋보이는데. 더불어 전세계로 그 범위를 넓혀보면... 그게 다 원시부족 성향 때문에 괴상망측이 발생한다는 점. 단, 원시부족 가운데서도 문명을 받아들이면 성경을 읽고 아는 비율이 대폭 늘어나지만, 일본처럼 0점대 방어율조차 실질적으로 양다리 걸치기다? 좋은 건 받아들이고, 짜증나는 건 배척함! 
    4. 씨냐 밭이냐! 본성이냐 양육이냐는 교육학의 중요한 화두에 해당하지만 물론 OX 문제는 아니겠으나. 도표만으로 보자면 이스라엘은 대략 2000년 동안 <환경 요인 + 인종 성향>이 절충됐다고 봤을 때. 일본은 인종 구성이 (늦냐 빠르냐 유입 시기 차이 밖에 없으므로, 남방계 아이누족 빼고) 절대 다수가 한반도계이기 때문에 "환경 요인 > 인종 성향"이 절대적이라는 점. 이로써 원시부족 관습에 물들면 칼럼에서 언급했던 수많은 내용들은 자연스럽게 된다는 점. 그게 삼광작전이든, 역사왜곡이든, 731부대든, 중국놈 목베기 대회를 동계-하계 올림픽 중계처럼 매스컴 열광이자 전국민 광분, 볼링공 볼링핀...., 전쟁노예, 전쟁성노예,죄다 부정...인도네시아 레고족, 아마존 원시부족. 똑같이 일본 원시부족은 오히려 넘을 수 없는 원시부족계의 극한값! 
    5. 일본 천황가만 백제계 직계가 아님. 일본 화폐 인물들도 거의 다 한반도계임. 족보 따지면,,, 통과. 역사서 신성성씨록조차 그때 기록에서 전후좌우 사정 감안한 걸 빼고라도. 그보다 훨씬 이전은? 그래서 칼럼이 길어지는 것임. 다 그분들 때문에. 
    6. .태평양 원시 부족
    문명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문명인을 통솔, 또 전세계를 지배하고자 도전했전 전적 화려. 물론 실패로 돌아갔으나 속마음 속에 속마음 속에.... 궁극의 속마음은 무엇이다? (딱~) 우리가 만약 이겼다면! 물론 태평양 원시 부족은 물론 전세계 원시부족 통계에 따르자면 야만, 식인, 악녀문화, 레고인습...에 근거하여 지금도 그런 부족 몇몇. 또 완전히 문명과 비슷해진 사회 몇몇. 그런데 겉만, 또는 내 마음에 드는 부분만, 또는 우리를 만족시키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여전히 야만성만 숭상하여 발전시키는 아름다움의 정체가 너무도 신기하기 때문에. 칼럼은 써도 써도 끝이 없는데. 수없이 반복하였지만 그만큼 중요하므로 그 원인들에 대해서 재차 거론하자면 이와 같다. 그러니까 왜냐! 





    11

    도래인 누적 1천년 지속. 여성적 인습 → 악녀 문화로 자연스럽게 발전. 탄탄히 성장. 기가 막히도록 살벌해짐. 그래서 천동설 기반 사고체계를 면밀히 연구해보니. 토속신앙 바탕 아마존 관습.... 골치아픈데. 본 칼럼에서는 일단 도래인 누적 1천년 지속, 악녀 문화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끝맺겠음. 도래인 누적 1천년! 이 역시나 딱 2개로 나누면 이해는 너무도 쉽다. 

도표 F  
────────────────────────────────────────────────────────────────────
                               영국              일본
────────────────────────────────────────────────────────────────────
도래인 누적(BC)           
도래인 누적(AD 0~1천)                       세계1등? (AD 0년~1천년 사이에 일본보다 누적량 많은 국가는? 없음! 인구,체계,기술..모든것)
도래인 누적(AD1천년~)
도래인 누적 결과(성과?) 영국연합           일본비연합: 궁성요배/황국신민/황민화 정책 (결과적으로 영국과 정반대지만/내부적으로 대성공)
                                                    그리스제국/로마제국을 영국이 지배/영국왕 계보는 만세일계......
문화요약                   여성문화           악녀문화
사고체계                   국기,십자가        현인신 천황/역대 천황은 누적 모두 우주신/향후 일본 현인신 1만,10만,1백만 달성 예상
관습기반                   계급제              계급제      /문명과 다른점은 최상층 빼고는 벌레
인습전제                   예의범절           민폐엄금   /앙심 사면 안되니까/보복 무서우니까/기타 등등
인습전제 근거             교양,상식,성경    도래인 누적 1천년/졸업식 기계체조,서커스,란도셀 가방......
성적인습                   개방적/가부장적  정상인듯 괴상...(근친..세계1등,신선한 피섞기 전통,방사전문:토사구팽...)
타인배려 근거             도덕/윤리/교양   교양+왕따 때문! 찍히면 끝이니까. 한마디로 사극 (무라하치부: 초법적 제재행위 전통)
남성문화 배제문제*      주인공병*          뒷담화 극성/대하드라마 극렬/사극 영원
────────────────────────────────────────────────────────────────────
주인공병* 예시: 하늘 위에 여왕 / 우리를 부러워하지 마쇼~! / 남들이 나를(우리를) 어떻게 볼까 생각할까 얘들아~ 내가 주인공할께~ 등등
────────────────────────────────────────────────────────────────────

    남성문화 배제문제에 대해서:
    "가는 여자 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기"를 당연하게 보는 누를 범할 가능성 상존. 물론 그게 평균이고 당연한데 사람 사는 사회에 이론과 실제가 같냐? 하면 아님. 또 어떻게 보면 너와 나 생각이 다르고, 내게 유리하거나 타인에게 불리한데 살쾡이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입장에서도... 음 이해되나 안되나. 그러므로 대하드라마 인식 기반에 따라 멜로드라마를 찍으면 일부러 몇몇 대사를 집어넣는 탁월한 혜안이 돋보이는 장점도 있는데. 간혹 그걸 간파하는 안목이 없으면 천동설은 평소에는 간접화법퀸이다가, 희안하게~ 중요한 대사 같은 건 직접적으로 이해하고 기억해서 응용하거나 똑같이 써먹음. 그런 예가 뭐냐? 
    첫째, (아는) 이모 왈 "한번 자봐라~"
    둘째, (아는) 언니 왈 "한번 줘봐라~"
    멜로드라마 애호가 역시나 사고체계가 멜로드라마라면 모르는데. 그게 아니라 대하드라마 기반이다? 캬~ 어? 미쳐버림! 이 험한 세상에... 세상에나... 뭐, "가는 여자 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기" 비율을 지 맘대로~ 100%로 설정한다고?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임! 아니 정말로 (심한 말이지만 그만큼 중요하니까) 그런 미친년이 우리 주변에 있다고요? 없으면 좋겠으나... 쉿! 그러니까 하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돌변 가능성 몇 퍼센트한테 막말로 한번 줘 봐봐. 그랬는데 막상 아니다 싶어서 관계를 끝내고 싶은데. 그게 맘대로 되나? 누구 맘대로! 그래서 따끔하게 한마디 한다고 가정해보자. 드라마에서 흔히 보듯이 말이다. 
    "어디 (어쩌고저쩌고) 한번 만나줬더니 (어쩌고저쩌고) 한번 줘봤더니 (어쩌고저쩌고 흐물흐물...새끼손가락...)..." 
    그녀는 다음 날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됨. 발견이나 되면 다행이게? (똑똑똑 검지로 옆머리를 두드리는 시늉). 사이코패스 만들기가 일도 아닌 게 아니라, 나 빼고 나머지를 소시오패스로 이용해먹는 게 일이 아닐 수도 있단 얘기. 이러니까 자기 손에 케찹 묻히기 싫어해서 평범하게 사느냐 당해도 그냥 손해보고 넘기느냐, 아니면 (조용히) 두고 보자 라면서 쌍방 불행을 예고할 수도 있고, 또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같은 대사를 비롯해서 뻠쁘질 푸쉭푸쉭 가려운 데 긁어주고 부추기고 염장질에 헛바람 주입에... 손 안 대고 코 푸는 부류도 있음. 그런가, 안 그런가? 가령 저 말 듣고, 또는 이미 저런 속언 듣기도 전에 일 저질러 놓고 나서 그 다음 순서에 저 명대사를 실생활에서 들음. 그래도 대부분 무탈할 텐데. 소식이나 알면 다행이게? 이래서 여자가 하필 중요한 순간에 직감이 후순위라서 문제임. 물론 애를 낳으려면 천동설 기반일 수 밖에 없다만. 이래서 (남자도 마찬가지지만) 살다가 보면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 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는 거. 여자 입장에서 속 뒤집어지는 기분이 무엇인지 안다, 모른다? 그런데 남자 속을 긁어도 긁어도... 한마디로 죽고 싶어 환장을 하니까 그러지. 그런데 그런 그림이 무엇인지 알면서 저런 싸구려 대사를 남발하는 아는 이모, 아는 언니가 그녀들 주변에 적다? 적냐? 아, 반말이구나. 적나요? 적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걸로 봤을 때 개와 고양이가 왜 앙숙이냐를 모르면 안된단 얘기. 
    A. 남자는 웬만하면 여자 잔소리 특급한테 나가떨어지지 않음 (물론 연애 땐 누구나 도망감) 반면,
    B. 여자는 웬만하면 남자 잔소리 특급한테 나가떨어짐 / 미쳐버림 / (원래 미친년인데 또 미친다?) / 침대에 누워서만 10년 보냄 / 장수 불가
    물론 A&B 모두 결혼 얘기지만 타협하고 사랑하고 조화롭게 잘 사는 연인도 많다만. 남자가 꽉 잡고 산다라...... <초장에 잡는다>는 속설이 농담이면 모르겠다만. 바로 이게 인류 역사였다. 다시 말해 가부장 사회! 캬~ 어? 가정에서 남자가 독재자로 군림하면 어떻게 된다? 아프리카 독재자가 아프리카를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었나. 그와 똑같단 얘기. 그리고 멍청한 천동설에 대해 조언하면 깨닫고 더 나은 인생을 살면 좋은데. 그게 과연 쉬울까? 쉽지 않으니까 우리는 그녀들 세계는 모르겠고, 으샤으쌰 소파에 자빠져 사자-하이에나-표범-치타가 나오는 다큐멘타리나 보는 거지. 그녀들 세계? 심지어 원시부족까지... 레고가 그래서 잘팔리는구나. (절레절레)





    12

    다음은 미완의 주제 / 연구해야 할 내용
    [수진전秀眞傳]
    일본의 고대 비서로써 신대문자神代文字 10여만자로 적힌 책. 경행천황 때에 기록되어 대물주신의 가문에 전해져왔음. 그러나 77년 체제의 기본이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현재까지 배격됨. 즉 일본서기 직접해석, 임나일본부, 신사참배, 궁성요배, 황국신민, 황민화 정책와 전혀 상반된 내용이기 때문. 다시 말해 미국 독립사와 매우 닮은 역사가 바로 일본 고대사인데. 역사가 내(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첫째, 미국이 유럽을 고대시대에 지배했다고 뒤집음
    둘째, 그리스 제국은 반대로 지배를 당했음
    셋째, 로마 제국도 영국한테 식민지 취급받았음

    ■ 일본의 고대사서(古代史書) 
    [상기(上記)]
    [신황기(神皇紀)]
    [미야시다 문서(宮下文書)]
    [다케우치 문서(竹內文書)]
    [北陸飛彈朝史]
    [구카미(九鬼)문서(出雲高天原朝史)]
    [상륙국신치문(常陸國新治文)]
    [고천대궁사가문(高千穗大宮司家文)]
    [일향국주원웅전서(日向國主元雄傳書)]
    [출운국조상세기(出雲國造上世記)]
    [상륙록도국조문(常)陸鹿島國造文)]
    [이두가무삼도전서(伊豆加茂三島傳書)]
    [미장중도역수기(尾張中島逆手記)]
    [이세도회문(伊勢度會文)]
    [섭진길대세좌기(攝津住大世座記)]
    [비후팔대현문(肥後八代縣文)]
    [아파전촌기(阿波田村記)]
    [축전후노가문(筑前後老家文)]
    [풍전후가문(豊前後老家文)]
    [살마무도기(薩摩霧島記)]
    [월백산지주인문(越白山之舟人文)]
    ......

    ■ 일본의 ‘국사대계’ 제13편
    [엔기시기(延喜式)]

    ■ 궁내청 비공개 자료
    [백제삼기]
    [고려실록]
    ......

    ■ 오키노시마(沖ノ島)' 비밀 자료. 고대유물의 정창원(正倉院)격인 출입금지 구역에 보존된 자료들
    ■ 왜 일본은 신대문자 연구를 발전,공개하지 않을까?

    [이중력(二中曆)]
    1320년경 만들어진 역사서이자 백과사전. 편자 미상. 
    516년부터 700년까지 일본 전국에서 사용된 30여개의 연호를 기록

    ■ [전국 10만여 신사들 제신 비문 분석]
    (가짜 안내판 내용을 제외한) 슈퍼데이터 

    ■ [전국 10만여 신사들 제신 사료 분석]
    (가짜 안내판 내용을 제외한) 슈퍼데이터 

    [남성문화 배제문제 2]
    사랑에 부정적이라 단정하기를 권고하는 게 아니라. 속단, 과신, 넘겨짚다, 오판... 근데 뭘 믿고? 천동설과 거울병은 불과 종이 1장 두께 차이. 이러니까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지 밖에 모르는 년이지. 범인을 추리하긴 뭘 추리해. 추측하며 생각 많으니까 그분들 쥐락펴락이 재밌지. 여자를 다루는 기술은 뭐다? 예술이다! 농담이고. 탐스러운 생선을 바라는데 이거 너무 겁만 주는 거 아닌 게 모르겠군. 그러게 주긴 뭘 줘? 하여튼 사랑이란 주제만 나오면 성적 학식에 대해, 이 세상에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는 그녀들. 애정 상담, 사랑 충고는 좋아하는데. 한 방에 홱 바뀌어버리는데. 뻑-가버리면 뭘 하나! 우리한테 한 방에 넘어올 수 밖에 없는데! 또 수다떨기는 좋아하는데 정작 책임지기는 최고로 싫어함. 사랑의 성적표가 더럽다 싶으면 웬만하면 주변에서 고양이들 싹 다 흩어짐. 내가 언제 곧이곧대로... 막 그러면서. 말이 좋아 개는 토한 곳으로 돌아온다고 하지, 영화 평론처럼 악인이 꼬리흔드는 강아지처럼 날 잡아주세요? 꼬리 먼저 친 개가 밥은 나중 먹는다. 그러면 미남, 성우, 모델이 다가오니까 여자들 모여있다가 불여우는 또 못 참고... 쯧쯧쯧! 그래도 남자에 환장한 게 아니다? 말이 그렇다만 초장에 잡는다 좌우명에 따라 어떻게 잘 해볼려다가 결과는 무엇일까! 첫 끗발이 개 끗발임. 그려면 이게 수학에 기초한 OX인지 아닌지조차 구분이 헷갈려짐. 그렇게 전적이 막 늘어나. 패전 추가... 무승부 추가... 그러다 중간 계투? 패전 전담. 그러다 남자들 세계에 소문 쫙 퍼짐. 그럼 그 바닥에서 얼굴 어떻게 들고다녀? 이직. 이적. 순진한 소녀감성은 나는 나중 그러지 말아야겠다? 엄마~ 오빠 머머해~ 고자질했는데 나중 오빠 곱하기... 그게 바로 여자!
    그러니까 그 인간이(호감 가는 남자 누군가가) 과연 과부집 수캐냐 수코양이냐, 잔머리 엄청 굴리게 될 텐데. 착한 여자, 순박한 촌년, 순진한 숙녀.... 어차피 닳고 닳은 누군가와 종이 1장 두께 차이라는 점. 과부가 마음이 좋으면 동네 시아비가 열 둘이다, 과부살이 십년에 독사 안되는 년 없다, 나이 서른 과부는 수절이 어렵다... 아직도 모르겠소? 정말 그렇소? 그렇다고 필자가 뭐 누구 혼삿길 막으려고 이런 얘길 하냐, 하면 아니지요. 아니란 말이오. ...문장 1...... 문장 2......여자가 '예'라고 말할 때는 숙녀이기를 포기한 셈이다... 그나마 옛날에는 그랬지. 근데 지금은? 걸핏하면 딴년이 빼앗아갈까 봐 환장을 하며 눈 뒤집혀...! 심지어 그냥 아무나 보면 꼬리치는 년이 누구다? 그래 봤자 나중 되어 봐 봐. 세상으로부터 배운 거 돌려주간디? 우리 엄마 돌아가신 다음 필자보다 더 슬퍼하고 원통해하는 사람 없었는데. 우리 엄마는 왜 하필... 그렇게 됨. 그러니 "착한 척" 조장하는 오락산업이 득이란 득은 다 챙김. 그래서 동정심 금기, 감정 배제로 교육시키는 문화도 생길 수 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마저 더러워지면 안된다? 근데 왜 그렇게 더러운 사랑에 미치냐고. 
    그래도 인생은 사랑이니까 멜로드라마처럼 낭만파부터 기분파까지 몽땅 일망타진할 꺼야? 포커페이스 따지기 전에 보여줄 패부터 없음. 그럼 액면은? 그런데 남자를 어떻게 믿어! 우리는~ 그녀들한테 몇 마디 털면 처음 만나자마자 신혼여행감! 여기까지만 아시고. 끝으로 말하지만 절대로 겁주는 거 아님. 정말로, 응?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볼 수 없다. 그러니까 무엇을? 사랑은 아름다울까 아니면 더러울까를! 뭐라고? 멋진 조각상조차 미소가 썩게 만드는 농담은 동네 똥개도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숙녀들은 아침에 시뻘건 립스틱을 왜 바르는지를 궁금해할까. 그도 아니면 "어머 얘 남자가 화장했다 재수없어 별꼴이야"라는 사적 대화를 엿들을까. 왜 하필 순진한 호기심은 저속해져버렸는지. 개똥 같은 헛소리는 집어치우자. 괜히 바지에 똥쌀 일 있나! 어쨌든 징징대봐야 역전골은 쉽지 않기 마련. 그러니까 연가를 친애하나 그녀들한테 사랑받지 못했지. 안 그래? 하긴 내가 다정해도 숙녀들은 솔직할 수 없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만. 그러든 어쩌든 나도 이런 사랑론을 끄적거리는 거 싫다. 누군 뭐 좋아서 예술하나? 물론 말이 그렇다만 어쨌든 처음에 좋아해도 결국 싫증나기 마련. 일이든 일이 아니든. 허나 썩 신뢰할 수 없는 호시절이 가버렸다고 실망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다시 부르면 되니까. 우리는 어떤 여자든 만나면 금방 친해진다. 그런데 그건 옛날 얘기고 지금도 우리의 러브콜에 세상이 반응할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만 알면 된다. 그러고 보니 난 정말 인생을 몰랐다. 어설픈 희망이 엉터리라는 걸 충분히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살았을까. 게다가 무대는 텅 비고 관중들은 떠났는데 지금 와서 잘난 척을 왜 하나. 그러면 내일은 뭔가 좀 달라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그렇다고 막살자는 말은 아니다. 그럼 어떻게 기분 전화을 하나. 직업을 때려치고 재산을 탕진해버려? 모아둔 게 뭐 있다고 탕진해. 형편이 그런데 왜 하필 늑대의 군침을 마르지를 않냐고! 내 말이 그거다. 바로 그거라고. 하긴 남녀의 애정이란 알고 보면 흑심이다. 그나저나 이런 개뼉따귀 같은 공상 때문에 사람 진이 다 빠질 지경이다. 아주 미쳐버린다. 그래도 '저 인간 때문에 내가 정말 못 살아'라는 잔소리 안들어 속편하긴 한데. 이 세상은 왜 내가 잘되는 꼴을 못보는 거야, 라면서 투정할 생각도 없다만. 과연 그럴까? 넉살도 바닥났다. 혼자 떠들어대봤자 힘만 빠지기 밖에 더 하나. 아울러 남들이 '저새끼처럼 되진 말자'라고 험담하는 상상을 왜 하냐고. 한심하긴. 덜떨어져도 정도가 있지. 그게 뭐야? 남들이 뭐? 말도 안돼. 차라리 외계 생명체가 있다는 걸 믿자. 또 모르잖아? 그래도 괜찮아. 왜냐하면 여자들은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하니까. 아니 근데 어째서 그녀들은 우리 같은 허당들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걸까. 아아 오늘은 또 어디다 씨를 뿌릴까... 근거 없는 자신감, 줄여서 근자감 짜증난다. 경박하게 이겐 뭐냔 말이다. 그도 아니면 뭐 슈퍼맨으로 변신해라 얍~! 남들 나이 먹을 때 난 대체 뭐 했을까. 뭐 하긴. 뭇여성들이 하도 만나달라며 쫓아다니니까 그 가운데 괜찮은 숙녀를 꼬셔서 눈까풀이 뒤집어지도록, 쉿! 듣자 듣자 하니 내가 다 속이 뒤집어지는구만 그래. 무슨 생각하고 말하고 쓰고... 거짓말이 그냥 자동으로 나와. 환장하겠다니까 증말. 아무리 그래도 결론이 앙큼한 포옹, 격정의 팔짱, 뜨거운 키스, 달콤한 윙크라는 말은 아니다. 절대로! 그럼. 그렇지. 아무렴. 왜 아니겠어. 뭐 영화 제목마따나 지독한 사랑? 놀라자빠질 뻔한 로맨스라는 둥 뭐라는 둥 그거 다 뻥이다. 추접스럽게 스캔들의 주인공을 내가 왜 해. 안 해. 싫다고. 어쨌든 우리는 낭만적인 첫날밤을 궁금해한 적 없다. 그것만 알면 된다. 하늘을 미워하기 바쁜 사람들이 지금 뭘 하나를 왜 궁금해하나. 다만 우리는 숙녀들의 애원을 정성껏 다 상대해드리지 못해 죄송할 뿐. 허나 그녀들의 애간장 녹는 마음을 모두 받아줄 수도 없는 노릇. 뭐 그녀들 마음만 받고 동네 인심 잃는다? 세상의 원성을 사서 뭐 하겠나. 근데 개 핥은 죽사발 같은 저 표정은 또 뭐야? 넘어가는 게 좋겠음. 머머하니까 속이 다 시원하더라 라는 일이 뭔지도 모르니까. 아무리 그래도 황홀한 눈길이면 몰라도 껄떡이 뭔가 껄떡이! 아, 드라마 대사를 잘못 들은 것 같다. 그럴 수 있다. 여자한테 첫눈에 반할 일이 없으니까 별 환청이 사람을 다 귀찮게 하는구나. 그러게 말이야. 이러니 내가 생각해도 난 바보 같은 놈이다. 누가 봐도 놈팽이겠지. 그러니까 사람이 천박해지면 안될 것이다. 그걸 알면 뭐 하나. 철이 안드는데. 대체 언제 정신차릴까? 알고 싶지 않을 따름. 하여간에 군침을 작작 흘려야 말을 안허지. (절레절레) 
    그런 의미에서 나는 퇴근할 때 옆길로 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어때, 좋은 생각이지? 썩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돌아가야지. 근데 여긴 대체 어디지? 거 참 말 더럽게 많네. 내 참 더러워서... 그만 하자. 그만 해. 





    13

    [빈말과 문화]
    가시마 노보루: 
    "일본의 황통사는 거짓 역사지만 일본이 놀랄 만큼 짧은 기간 내에 과학과 선진 물질문명을 받아들여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한때 세계 지배를 꿈꿀 정도로 자부심과 용기를 가지고 발전한 것은 중국과 한국 등 피해국에 대해서는 미안한 일이나 오로지 이러한 역사 위조의 공적이다." 
    ↓
    기원전, 기원전...! 만약 우리가 이겼으면! 칼럼 내용들. 

도표 G
────────────────────────────────────────────────────────────────────
                      인문교양 표준               여성문화/원시문화일부      악녀문화
────────────────────────────────────────────────────────────────────
충신VS간신       충신권고,예외교육          평소충신..갈아탐..변신       무사문화...풍신수길처럼...*
소속                 텃새,철새...학습             계급제/환승이란!             1당제&나머지만 존재 
보수:평시         보수,진보...다양         경계:나만 보수   나만 주인공 불허 (약육강식철저/뒤통수상존/진보불허)
보수:상시         템즈강 러시아재벌 점령...  
보수:전시                           평시 보수의 정체밝혀짐**  식인,레고,성노예 엑셀파일을 브랜드지점 운영처럼...  
위선                 나이비례,경계:착한척→부도덕 
경쟁                 교양/상식...                   멜로드라마/다큐멘터리     보결에 관한 피터 드러커 지적
여자말 번역기   직간접 화법                간접화법 극호           간접화법 극호 (직접해석,위조,수단방법 안가림등)
선심               보답이 돌아올 자에게만   불필요,합리-타당 선호      코묻은 돈까지만 허용,이용,역이용 다종다양
양심               도덕,윤리,종교,교양          때와 사안에 따라           양심은 결코 중요한 개념 아님/철저히 배제
진심               멜로드라마                    포장1                         포장2 (누구에게도! 즉 사극만)
                                                                                     없음 (일단 없음이 기본,또는 무한까기)
                                                                                     전혀,결코,하등 중요한 개념 아님
                                                                                     오직 죽냐 사냐와 밀접히 관련됨
사과               교양/상식...                   입버릇/예절                  입버릇/예절***
동정심            적당히                        외면,즉 사랑과 구분         감정 배제 관습 (동정심만큼 천한 건 없음) 
호기심
문화
성씨 변경        지성,세계 참고        왕부터? 세계평균과 다름         대하드라마, 칼럼 내용 참고
양자 제도        세계평균 참고                                                 세계 1%로 보편적 (일본장기 참고)
유대인이란?                                                                    유대인 학살은 공훈,자랑,문화,미소,업적,보훈
수단과 방법         윤리학 경고사항              
남자 대 남자        대화 가능                    불가능                        불가능/피함/따돌림/배격
시샘/부러움/선망  능동,피동 등등              받기만 가능****          천동설,여자말 번역기 참고 
조롱하기/받기      멜로드라마                   사극 기준                    조롱하는 건 좋음/조롱받는 걸 싫음*****
야만인 경멸
식민지배
사고체계
역사 위조                                                                           공적/사실/둔갑...
신분 세탁                                                                           천황가 족보 / 고대일본 정체******
홀로코스트추모   당연/실현/교육     당연/도덕/교육          부정/불가능/외면/NO교육 
반성/사과/사죄    당연/윤리/실천     당연/가능/실현          부정/빈말만/말돌리기......왜?*******
────────────────────────────────────────────────────────────────────

    (A)
    무사문화...풍신수길처럼...*: 
    서기 0년~900년 사회지도층 대부분이 반도계인 점과 썩 무관하지는 않음. 이런 부분만 놓고 보면,
    인류 만국 공통보다 < 섬문화 특징
    밭보다                < 씨

    (B)
    평시 보수의 정체 밝혀짐**:
    아마도 만국공통의 문제인 듯. 실제 상류층은 전시에 만국공통으로 제일 먼저 도망갔고. 그걸 현대인은 망명으로 인식. 러시아계 유대인도 이스라엘행을 포기한 체 부자 나라들로 이민간 사례, 유대인이길 포기한 체 비유대계와 결혼해 혈맥 흐려진 사례 다수. 즉 평시에 보수~ 보수~ 외쳤던 분들께서 하필 전시에는 정반대로 왜 제일 먼저 도망가느냐? 왜냐하면 능력이니까, 가능하니까, 또는 양의 탈을 쓴 늑대니까. 즉 전시에 제일 먼저 도망가느냐, 아니면 평시에 원정출산부터 이중국적과 검은머리 외국인이냐 차이 밖에 없는 듯하지만. 또 가족 놔둔 체 흩어진 사례와 경우의 수는 매우 다양함. 또 부자라고 무조건 템즈강 러시아 재벌 점령처럼 해외 도피, 해외로 자산 빼돌림 등 졸부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독립을 위해 앞에서, 뒤에서 돕는 부자도 다수. 또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하필 식민지 변절자한테 시키고, 기타 등등 다수.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중남아메리카에서 북미로 때거지로 물밀 듯... 끝없이... 아마도 영원히? 옛날에나 부자 위주로 국가명 바뀌니까 이주한 사례가 많았으나, 시대가 많이 바껴 미래는 또 어찌될지 모름. 그래서 더더욱 진입장벽 높이는 추세. 

    (C)
    입버릇/예절***:
    사과하기: 소시오패스가 일평생 사과를 단 1번도 왜 하지 않은가를 생각해보면 됨. 
    사과받기: 앞에서는 받아줄 수 있는데 돌아서서... 항공기 승무원들 경험담 통계로 증명
    무릎꿇기: 바깥에게는 어떻게든 비켜감. 안함. 못함. 왜 해? 유감부터 별의별 말 만들어냄. 안에서도 그만큼 껄끄러운 상황은 드무니까 수많은 상황들이 엑셀표로 정해짐. 또 그럴 상황 자체를 안 만들고, 일단 뭔가가 발생하면 악역이든 독박이든 칼 같이 징벌. 그렇지만 오키나와 별4개한테는 어떻게든 무릎꿇김. 단, 열도 바깥한테는 죽어도 무릎 꿇는 건 없음! 全열도 거의 전지역이 지금도 미군부대 점령인데도 불구하고, 알고 보면 "집 지키는 개냐 아니면 개님이냐" 여전히 그런 논쟁 차이 밖에 없음. 그러니까 교양, 상식, 학식, 배경지식이 세계평균과 터무니없이 동떨어지게 됨.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제2의 홍콩을 돌려주라, 한국전 발발 직후 식민지를 돌려달라 요구. 그래서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최고군수권자였던 천황은 면책, 천황 빼고 나머지도 전원 피해자로 돌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전범자들 몇몇은 척결됐으나 나중 영웅/야스쿠니 신사 합장/전국민 존경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전범들이 사회지도층 복귀/점령/지배/지금까지/아마도 영원히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미군에게 식민지 반환 요구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미군에게 일본인 성위안부 공적 운영 (스스로/당시 지폐인물처럼 떠받들었는데 지금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한국전쟁 발발시 '일본 참전 요청서'보내서 "동양인은 동양인이 잘 안다" 맥아더에게 서면 전달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한국전쟁 발발시 (반사이익 꿀맛이니까) 조금만, 가능한 한 길게 이어졌으면!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는 약 1300년 역사 위조의 공적,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는 한국전쟁 특수로 호황





    14

    (D)
    시샘/부러움/선망****:
    인문교양 표준과 상당히 동떨어짐. 즉 지동설이 아니라 오직 천동설뿐이므로 나만 시샘, 부러움, 선망을 받아야 한다는 게 전제! 그러므로 나는 능동,피동 다 가능하지만 타인은 양방향 가능하면 절대로~ 죽어도~ 안된다는 논리. 고로 실제로는 부러움과 찬사만 받고 나만 독무대인 멜로드라마 주인공인데. 또 이상하게 겉으로는 타인에게, 타국 수장한테 우리를 부러워하지 말라고 함. 왜냐하면 물개박수를 싫어하기 때문. 오직 나만, 우리만 은근히~ 띄워주라는 심보.
    또 여기서 재미난 점이 하나 있는데. 유럽에서도 앵글로 색슨이 유대인에게 얼마나 당했는데. 유대인 싫어하기로 유럽에서 앵글로 색슨 따라올 자는 결코 많지 않았음. 따라서 지금은 절대로 아닐지언정 속으로, 또 당시에 영국은 아돌프 히틀러 때문에 손 안대고 코 풀었다면서 겁나게 좋아했던 사람들도 부지기수. 물론 이런 배경지식을 유럽인 장년층을 빼놓고는 나머지는 대부분 하나도 모른다는 점. 이와 같이 유대인 600만명인가? 유대인 대량 학살 당시 그런 참상, 지금만 참상이지 당시에 속으로 꼬셔하던 서유럽인들이 결코 적지 않았다는 거 아시는 유럽 중장년층 거수 해보시겠수? (손차양)~ 기가 막힘. 이래서 현재 우크라이나와 동유럽 현안이 복잡하게 꼬였다는 점을 외부에서는 공부해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음. 지금 세상이니까 밑도 끝도 없이 막 아무 데나, 어디에나 흑인이 무슨 영화든 막 뜬금없이 무조건 비율 할당 특혜를 받는 게 많은데. 그게 심하니까 영화판도 이상해졌는데. 옛날에는 흑인은 노예일 뿐. 로봇 청소기와 흑인의 차이가 없었던 시절. 그런데 무슨 진보적으로 세상이 바뀐다고 갑자기 수영장에... 그거 경험했던 중장년층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배경지식. 그게 다 유럽사가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순작용,부작용 함께 만든 결과. 지금이니까 유대인 대량학살이 어쩐다? 당시에는 동유럽, 중유럽, 북유럽, 남유럽, 특히 영국은 환호성 지르면서 좋아했던 사람들 부지기수. 또 좋든 싫든 시키고 고문하며 죽이는데 어떻게 해, 가담해야지. 게다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흑인들 대량학살이 유대인 대량학살보다 훨씬 잔잔했다? 어림 없는 소리. 그런데 유대인 대량 학살 VS 아프리카 대량 학살! 그러나 그것과 예술은 별개인데 또 밑도 끝도 없이 주인공들이 흑인 어린이를 막 끝까지 데리고 다니니까 줄거리 이상해지고. 심지어 아프리카 전문용어들이 몰려들면 전부 다 도망갈 거면서, 그나마 덜 흑인들이 다가가면 백인들이 피한다고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게 평균인지 아닌지 헷갈림. 그냥 막 누구나 주인공이래. 또 남아시아 여자가 동남아시아 남자랑 결혼하는 게 축척되면... 남아시아 여자들은 대체 누가 데리고 살게? 이래서 끼리끼리 만큼 좋은 게 없는데, 착한 척이 괜히 일만 더 키우게 됨. 또 똑같은 끼리끼리일지라도 흑인들 끼리끼리는 아름답다, 무슨 유대인이랄지 백인들 끼리끼리는 색안경끼고 봐야 하나? 막 이상해짐. 그게 다 혼란스러웠던 역사, 착한 척, 위선, (무슨 말 만들어내기로) 정치적 올바름 때문. 이상한 의미의 정치적 올바름? 웃기고 말도 안 나옴.
    유대인은 그나마... 이래서 될 수 있으면 전통적으로 동류혼을 추천, 선호했던 것임. 성경에서도 아마 그랬지? 그런데 응애응애 착한 척에 이끌리면 일만 더 키우고. 삐악삐악 착한 척은 조금만 더 가면 위선. 또 위선에 익숙해지니까 부도덕. 또 부도덕과 제일 친한 친구는 비윤리.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음은 몰염치. 파렴치. 아예 일본은 몰도덕이 문화의 본질. 난리도 아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애응애가 멜로드라마를 보면 혼혈이 왠지 멋져보이고, 왜 나는 성장기에 TV 주인공처럼 출생의 비밀이랄지 무슨 사연이 없냐 투정하고. 전세계에서 최고의 혜택을 입으면서 막 이게 나라냐면서 징징대고.
    와우 (절레절레). 천동설이 재밌는 게 참말로 알고 보면 응애응애~ 애들은 저리 가라 수준임! 천동설이 참 무서운 게 겉면을 십자가로 포장한다는 점. 또는 나이 어린 경우는 착한 척, 나이 먹은 어른들은 위선! 따라서 고전음악 전성기 시대에야 당연히 성경과 칸타타, 대성당, 성경관련 미술과 건축, 교회음악이 대세였으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성지순례보다 식민지 순례로 뒤바뀌게 됐음>. 다시 말해 성지 순례보다 식민지 직접 순례, 또는 속마음 표출 금지를 여자말 번역기로 옮겨보면...회상...회고...레고와 기타 등등 경험담, 영웅담 다수에다 설명은 끝도 없음. 즉 아프리카 깜둥이들한테 성경책을 전해주면서 때로는 총으로 회유하다가, 보통은 대량학살하다가. 그래서 니체처럼 신은 죽었다 라고 하든가, 아니면 아예 마가릿 대처처럼 성경을 발로 읽는 게 평균이 되어버림. 그럼 결국 천주교가 서진(西進)해서 본질이 적어도 바뀌지나 않으면 좋은데 지저스 크라이스트를 겁나게 이용해먹은 꼴 밖에 안됨. 고로 십자가 문양을 내세워 국왕이, 또는 여왕이 교주의 대리인 자격이 됨. 실질적으로는 동격! 아니면 더 위? 서유럽은 교황을 저속히 표현해 안 쳐주며, 일본은 아예 명칭 자체를 격하시키며 관련 종교는 문화적으로 발도 못 붙이게 만듬. 게다가 일본 경우는 아예 천황들만 살아서는 현인신, 사후에는 우주신. 근데 알고 보면... 골때림. 고로 인간의 감정은 본디 식민지 순례와 성지 순례가 공존할 수 없다는 점. 오직 둘 중에 1개만 택하게 된다는 점. 결국 부처님 위해서 기도하는 게 아닌데 지동설이 어떻게 가능하나. 
    기왕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필자가 악녀 문화에 대해서 왜 이처럼 집요하게 연구할까? 왜냐하면 여자들이 남 위해주는 척 지 이익만 챙기는 년을 싫어하지만, 그게 문화가 되면 이거만큼 골치아픈 일도 없기 때문에! 평소에 착한 일을 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친절을 베풀 무대에 올려지면 부드러워지는 게 나쁘지 않다는 건 누구나 모를 수 없는데. 그게 아니라 유독 과도하게 친절하다? 사근사근 친절친절 부끌부끌... 여자말 번역기라는 가면을 쓰고 있구나 라면서 우리는 직감한다. 그래서 남자 세계에서는 상대방 띄워주기를 OX처럼 딱 구사하는 경우가 정해져 있다. 언제 봤다고 오다가다 만난 사이에 상대방 띄워주기? 그건 형씨가 나 기분 좋으라고 하는 빈말일 뿐이고! 그게 아닌데... 어쭈 이 양반 좀 보소...?

    (E)
    조롱하는 건 좋음/조롱받는 걸 싫음*****:
    <그 나라의 멸망을 축하한다>는 극호이자 애호, 환희, 열광, 축제, 기념! 
    반대로 지진을 축하받는 건 극혐. 더 재미난 점? 
    도와줘도 짜증냄. 손만 까딱해도 싫어함. 
    지진과 화산폭발과 해일과... 나쁜 건 다 남 탓! 
    그래서~ 내부에서 살쾡이들 밖에 없기 때문에 칭찬 칭찬 칭찬, 겸손 겸손 겸손... 겉으로만 사귐. 아니면 세뇌! 

    (F)
    신분 세탁: 천황가 족보 / 고대일본 정체******
    일본역사는 고대일본, 일본문화재 다수, 신사 안내판들... 날조 다수 대성공
    일본 사회지도층은 일본인, 일본문화를 전세계 상대로 이미지 세탁 대성공
    일본 사회지도층은 천황가 계보를       자국민 상대로 신분    세탁 대성공
    그런데 일본인 성씨와 족보와 문화 등 칼럼 내용들을 지적하면 얼굴 표정이 망가지는 건. 삼광작전과 더불어 "상대하지 않겠다" 전술과 닮았는데. 그런 비율 빼놓고 나머지는, 또 그분들마저 살살 부추기고 긁고 약올리면 결국은 물귀신 작전 밖에 나올 게 없음. 곧 멜로드라마 대사처럼, 나만 뇌물 먹었냐? 종교사, 유럽사, 인류사... 속된 말로 묻어가기. 또는 그래서요? 아니면 "어쩌라고" 본뜻을 말 바꾸기한 거 밖에 없음. 

    (G)
    왜?*******
    1. 문화니까
    2. 원시부족 특성 (아마존,인디언,태평양...종특징)
    3. 국가체계 시작 = 외부유입에 따른 기초 (내부승진이 아님) 
    4. 국가기원 시작 = 외부유입에 따른 기초 (내부승진이 아님)
    5. 미안,죄송......빈말,거짓에 상대가 만년 속으니까   
    6. 선심,동정심,인정...멍청하니까 만년 이용해먹음
    7. 야만인 관습은 자랑스러운 전통이기 때문
    8. 조상님 과오를 영원히 부정해야 하니까
    9. 아예 베니스의 상인한테 당하는 걸 고마운 줄 여겨라 심보
    10. 아름다운 인류 문화유산이므로! 단, 우리를 부러워하지 말거라
    11. 칼럼 내용 다수
    그래서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자국에 못지음. 안지음. 죽어도 불가능. 
    그래서 홀로코스트 추모관이 자국 건립은 불가능하니까 일본 바깥에 위선자임을 들키면 안되니까 차선부터~ 차악책이 뭐냐? 칼럼 내용들.
    그래서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만약 현역 정치인이 독일, 이스라엘, 미국의 홀로코스트 추모관에 참배하고 오면? 암살당함! 또는 대가가 매력적임. 매국노로 매장당함. 역적으로 낙인찍어 퇴출. 그런데 앞에서는 미안하다 미안하다, 환영한다 환영한다... 돌아서면? 적극적으로 본색을 드러내거나, 무관심하거나, 표면적으로 미안-사죄-교양인인 척. 그러나 본심은? 내숭! 이게 다 인문교양 표준은 뒤통수를 윤리적으로 죄악시 하는 반면, 뒤통수와 앞서 말한 짐승 만도 못한 원리들이 오히려 정반대로 예의이자 지고의 선이라는 점. 이걸 아무리 설명해도 문명인들은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움. 그러니까 당신들은 죽어도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라면서 쌍방향 이해하기는 안되고, 일방적 이해받기...관심받기...보호받기...시샘,부러움,선망,조명발 받기만 당연하게 됨. 만약 문화적으로 국민의 대표인 정치인들이 미안, 또 국민 개개인들이 죄송스러운 게 평균이라면 진작 전쟁성노예 기념관을 자국에 짓고도 남았어야 하는데. 그게 말이 되나? 말도 안됨. 칼럼이 벌써 9편째인데 미안, 죄송, 송구, 인류애...그게 진짜라면 이 일을 왜 해야 하냔 말이다.
    (최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이득 보는 대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며 그게 억만배 커졌으면, 조만배 길어졌으면 ~라고 바라던 적이 언제였는데.
    물론 그분들 조상이 죄다 어디서 건너갔는데!
    물론 넘어가자마자 세계평균에서 즉각 벗어난 게 아니라 진입연도 엑셀파일에 따라 알력 경쟁, 권력 다툼으로 지금처럼 비열함이 기준선이 된 것. 종교에서 말하는 성과 속, 선과 악, 도덕과 윤리, 죄와 벌. 그와 전혀 다르도록 경전도 내실도 없이 오직 겉치레와 황민-신민이라는 개념으로 극대화된 신도라는 종교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으므로. 곧 레고부족 문화가 1300년 누적되니까 지금에 이른 것.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하고 계속 하고... 앵글로색슨과 게르만족은 물론 전유럽인이 얼마나 유대인을 증오했었으면. 그처럼 미개한 황인종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 단 일본 원시부족만은 예외다, 멸종하고 싶지 않으면 굴복-맹종하거라, 게다가 일본 원시부족만이 신민이다 신의 나라다, 따라서 전세계는 일본 원시부족의 지배를 받아야 마땅하다) ~라는 게 바로 무사 문화!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하고 계속 하고... (절레절레)! 전설의 시간, 신화를 몽땅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하고 계속 하고"로 채워버리고 싶고 그거 밖에 모르는 건가? 아니면 하늘과 대화가 원래 잘 안되거나, 원시부족처럼 아예 불가능한 건가.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하고 계속 하고"... 이래서 개개인 사람들의 내면을 보아하니... 핵전쟁을 바라는 숫자가... 말도 못함. (이러니 1900년대 초반에 유대인 반멸을 약하다면서 아쉬워한 비율이 유럽의 30%요, 유대인 전멸을 기대한 비율은 한 40% 되나? 그분들 속마음을 과연 하늘이 모르겠냔 말이다. 그래 봐야 유대인 학살이 처참하다 아픈 역사다 라는 말 누가 못해! 아프리카 종족 대학살은 아무도 슬퍼하지도 관심도 없음. 또 그렇게 살살 긁으면 밑도 끝도 없이 영화계, 연예계....막 흑인이 절반을 점령. 더구나 그건 정확히 말하면 흑인도 아님. 단지 흑인 비슷한 혼혈일 뿐. 진짜 흑인은 북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남아프리카, 남남북 북북남...아프리카 수많은 부족들 죄다 보자마자 구분하는 게 진짜 흑인. 무슬 어설픈 흑인이 자기들은 묻어가기, 진짜 흑인이 묻어가자고 하면 개짜증. 아프리카 태생이 진짜 흑인인데 그분들이 봤을 때, 어설픈 분들께서 스스로 흑인이라면서... 속으로 무슨 생각이 들까? 자기가 태어나 자란 지역 반경의 5개 부족을 보자마자 구분하는 것처럼, 아프리카 흑인들 즉각 구분해야 진짜 흑인인데. 요즘 시대는 무슨 백인이든 게르만이든 슬라브드 아이리쉬든...영화에서 밑도 끝도 없이 흑인만 사랑하고 애인이자 부부. 그래서 막 영화도 보기 싫어짐. 또 유럽 영화 어쩌다 한번 볼려고 하면 무슨 90%가 혼혈. 뭐지? 무슨 혼혈 아니면 어디 명함도 못 내밈. 그런데 일본 원시부족이 전세계를 지배하는 게 뭐 그렇게 잘못됐을까? 그러므로 야생동물 보호구역 원리처럼, 유리할 때 불리할 때 잘도 구분되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이 됨) 그러니 속으로 응애응애 삐악삐악... 화염방사기부터 레이저와 기타 등등 스포츠 조롱꾼 자질 어디 가나? 그래서 어떤 열도는 살면서 속마음을 제대로 발설한 적이 평균 거의 없다는 점. 어쩌다 한두 번 있어도 결코 진심일 수 없다는 점. 이래서, 
    원시부족 사회에서는 뭐든지 매끄럽게 조화롭고자 민폐조심 민폐조심 그러는 거고
    원시부족 사회에서는 앙심 품을 일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죄송죄송,부끌부끌 그럴 뿐
    원시부족 사회에서는 내 마음과 몸이 편하고자 외교,세계평화,스포츠 정신,보복방지..그뿐
    원시부족 사회에서는 공동체에서 따돌림 당하지 않기 위해 사회지도층 심기를 절대 안 거스름
    원시부족 사회에서는 동그라미 안쪽만 옳으므로 세계평균,교양,상식,진보는 완벽히 불허할 따름
    원시부족 사회에서가 정말로 세계평화를 원한다면 역사부터 제대로 교육시킴. 그런데 사실은?
    따라서 원시부족 사회는 칼럼에서 답답하도록 반복해 지적하듯 오직 세계정복과 천황교 지배일 뿐이다. 제발방지? 재도전 변형.
    그래서 100년 200년 전 용어들인 신사참배, 궁성요배, 일억옥쇄, 황국신민...에서 더더욱 지독해졌지 바뀐 건 오히려 고급스럽게 위선만 발전. ○바깥 교양인들 이용. 착한 척 순진한 미개인, 착한 척 멍청한 남녀들, 뭘 모르는 선심파들, 자기 밖에 모르는 천동설과 시시각각 제멋대로 바뀌는 철새들만 만년 이용해먹음. 한번 생각을 해보시라. 정말로 사죄하는 게 옳다, 과거사는 야만적이었다, 미안한 일이지만 지난 일이다, 원시부족론은 어쩌면 그렇게 다 아느냐...~라고 생각한다면. 베이징 학살 추모관, 성노예 추모관, 강제징용 추모관...등을 현지에 지어야 옳음. 그런데 그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으면? 표정말 썩음. 결국 속마음 속의 속마음은 전원 정반대라는 것! 그러니 누군가가 약2천년 전 십자가에 묶이니까 여자 한두 명 빼고 싹 다 도망갔지. 나중 참회라도 했던 제자들은 그나마 다행. 그래프가 우상향이라도 됐으니 귀감. 근데 처음이든, 끝이든, 과정이든, 속마음이든? 뭘로 따져도 사람의 탈을 쓴 금수일 뿐.
    단, 원시부족 문화를 기준으로 보자면 그것만이 진정한 아름다움, 고귀한 이상향일 뿐.





    15

    [선심]
    선심이 왜 문제일까? 왜냐하면 타당한 규율에서 예외에 해당하니까. 일반거래가 아니라 일방적 거래니까. 공정 경쟁이 아니라 불공정 게임이니까. 신나는 별들의 전쟁이 아니라, 명승부 챔피언스 리그가 아니라 (속된 말로) 개판과 놀랍도록 가까우니까. 말하자면 선심은 곧 비타당,불합리,불공정,패망,꼭두각시,NO-주관,줏대없음,바보,푼수, 멍청이, 미련 곰탱이, 노예, 착취, 특히 식민지와 연결됨. 그러므로 대체로 남자 어른들은 선심 별로, 벨라~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여자 어른들은 어쩔랑가 몰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어른은 착한 척, 선심, 위선 등등을 구분한다. 해야 한다. 못하면 지지리 못살거나 평생 가난하게 산다. 이러니까 그녀들은 우리들한테 쥐락펴락 마음이 녹을 수 밖에 없음. 곧 꼬마들이야 성장경험이 나중 어른으로써 지성에 근접하는 합당한 밑거름이 될지언정. 어른이 애들처럼 논다? 남자는 철들면 안된다, 는 우리끼리 놀 때 얘기! 
    자, 멜로드라마 전성기를 회상해볼까? 언제적 정서로 사랑은 바보들이나 하는 거라고 알았다. 그런데 유행과 별개로 사랑에 관한 일반적인 좌우명 가운데 또 뭐가 있다? 사랑은 없다. 그래서 순진하면 고생길이 훤한 것. 나 잡숴주시오 라면서 초식동물이 제 발로 육식동물에게 모든 걸 헌납한다? 헌납이 아니라 하사했어도 천년 이천년 헌납했다고 날조해버린다. 더더군다나 남의 떡으로 선심 쓰는 예시는? 심지어 착한 사람에게 선심 쓴다면 또 몰라도, 상대가 착한 사람이라고 무엇으로 단정할까. 일단 착한 사람일지라도 나중 변치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나. 그런데 하물며 양의 탈을 쓴 늑대에게 선심을 베푼다? 생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 그거다. 스스로 당해도 쌀 근거를 많이도 만들어놓고 나중 불행을 누구 보고 책임지란 말인가. 게다가 어차피 기다리기만 하면 잔칫상 다 차려질 텐데 나중 숟가락만 올리면 되는 거 아닌가? 사고체계가 아예 다르니까 이래서 호구들이 평생 고생하는 거지. 또 서로 나서서 신심 쓰겠다고, 착한 척하겠다고, 위선 떨겠다고... 서로 앞장설려고 난리인데 굳이 나까지? 뒤늦게 정리되면 하이에나, 독수리 떼들, 아프리카 들개떼들이 이득만 챙긴다. 뭘 모르는 원주민들은 속옷까지 벗어주며 선심을 베풀었으나, 야만인들은 앞에서는 웃고 어쩌고 뒤에 가서는...! 그러다 원주민 몰아내고 이주민이 원주민 된다. 딱 보면 어리숙한 바보들이 먼저 선심 쓰고, 약삭빠른 살쾡이들은 지 이득 챙길대로 다 챙기고 떠나버림. 그러니까 왕년에 잘나갔던 스타가 나중 쫄딱 망하고 나서 1층 광장에 나가보니 아무도 없더라, 라는 옛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왜 여성적 문화는 타인 일에 신경쓰는 걸 특히 경계하겠나. 
    스파이더맨, 슈퍼맨, 얼굴 없는 천사, 아이언맨...들이나 선심에 앞장서는 거고. 유럽과 한지붕 아래 있었더니 손해만 막심해서 한 발 빼버리는 영국이 선심에 앞장선다? 말이 안됨. 계산기 두드려서 제일 나중 움직여야 말이 됨! (아울러 선착순 개념은 또 다름). 앞서 국가 이미지 세탁, 국왕(천황) 신분 세탁을 왜 거론했을까! 도표 G에서 빠진 게 하나 있다. 바로, 불리하면... 전세를 보아하니 안되겠다 싶으면 성씨도 바꾸어버려 나중을 기약하는 일. 지금 보니 성공했나 안 했나. 풍신수길이 성씨를 몇 번 갈아치웠다? 천황가 계보만 봐도 성씨가 수도 없이 바꼈다. 그러니까 백제 관련 발언만 하면 모든 매스컴과 전사회지도층은 초비상이 걸리기 마련이지. 또 개와 고양이를 비교해볼 수도 있다. 그래도 개는 서열이라도 있지. 집사가 고양이보다 위다?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지 못하면 성에 차지 않는 게 맹수. 여자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남한테 어떻게 보여지고 싶은 걸 우리가 빠삭히 다 아는데, 여자를 다루는 기술이 뭐 일인가? 아무리 멍청해도 멍청해도... 말을 하면 할수록... 말 말자! 여성 비하가 아니라 주제는 선심. 여성적 두뇌 바쁘게 돌아가는 거 보면 남자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돌변하는 것과 똑같다. 곧 남자나 여자나! 물론 나중을 위해서 땅에 빠짝 엎드리는 게 가능한 건 (똑똑똑) 이 두뇌 때문. 그게 모여 문화가 됨. 살쾡이 심리라는 게 알아보면 볼수록 참말로 예술적이란 얘기다. 너 먼저 먹어봐, 죽나 안 죽나 보게! 그대 먼저 앞장서세요 저는 당신의 뒤를 따라야지요. 불리할 땐 당신 먼저. 유리할 땐 노골적으로 잔말 말고 따라와. "한번 줘 봐라"라는 조언을 듣기도 전에 먼저 일 치른 후 별볼일 없다 싶으면 냅다 앞장서서 가버리니까. 그러니까 웬 돌쇠는 누구야~ 같이 가~ 야 같이 가자니까~ 막 그러면서 서둘러 뛰어감! 그럼 또 선수 교체 과정 거쳐야 하는데, 못 참고 환승하면 그 바닥에서 유명해짐. 아니면 다음 날... 막 그럼. 물론 누구야~ 같이 가~ 야 같이 가자니까~ 그와 정반대면 뭐다? 창피하고 얼굴 팔리는 게 어딨어, 눈에 뵈는 게 없는데. 100% 지갑 열어 계산하고 막 겁나게 퍼줌. 1장, 2장, 3장...! 자, 그 얘기를 왜 했을까? 그런 여자말 번역기들끼리 모였다고 생각을 해보시란 말이다. 누굴 믿어? 담보도 없이 어떻게. 분산 투자 괜히 하나. 끔찍히 탐나는 먹잇감이라면 또 모를까 할 필요도 없는 모험을 왜 내가 먼저 해야 하나. 
    여기서 하나 묻자. 선진국 가운데 선심에 유독 관대한 나라가 있나? 없다. 있었나? 인류 역사상 단 1번도 없다는 것만 알면 된다. (뉴스에 흔히 나오는 게 선심 아니고 뭐냐구요? 그건 선심이 아니라 체계다. 인류애에 앞서 일단 체계지 선심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그건 곧 세상이 어두운 구석은 어두울지언정 잘 돌아간다는 반증. 그조차 구분 못하면 착한 척과 위선도 분간 안된다. 그럼 부자 되어도 졸부되는 거고, 부자 못되면 평생 가난하게 살면서 부자들 치닥거리나 해야지 뭘.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임. 아니, 선심 타령보다 중요한 게 바로 투자 시기. 때문에 굳이 부동산 매입해서 눈총받고, 그래프 마음에 들지 않고, 세금 걱정에다, 임대료 잘 안 걷히는 부담까지? 굳이 그럴 필요 있나. 2007년 금융위기, 또 언제. 최적의 적기 아닌가. 돈 까먹지만 말고 황금의 쇼핑 시기인데 잡다한 종목에 눈길을 왜 주나. 모아서 10년에 한번 쯤 투자. 아니면 규칙적 분산 투자. 그런데 그게 아니라 부자들 들러리 서거나, 아니면 귀얇거나, 아니면 헛바람 주입되거나? 대리전 개념처럼 부자들 수족이 되어서 우르르르~ 우르르르~ 동네 축구 대체 언제까지 하실 생각인지) 응애응애 삐악삐악 나이 먹고 할리퀸 로맨스를 왜 읽나. 여성잡지1 여성잡지2를 펼쳐보시라. 왜 가난하면 비교적 조금은 몇몇 부분에 대해서 부자보다 비이성적 삶을 살까? 과거에야 피식민지와 식민지, 노예와 주인 구분이나 쉬웠지. 헌데 지금은 그걸 무엇이 대신하나? 부러워하면 지는 게 아니라, 아예 부러워하는 권리조차 빼앗고 관심도 주지 말라고 하질 않나. (흡사 찐따 라는 속어조차 착한 찐따 라는 둥 여자들한테 이상형 찐따라는 둥. 찐따 라는 용어조차 빼앗아버리는 이치랑 똑같음) 근데 역설적으로 무대는 독무대만 선호. 이상해도 너무 이상함! 그냥 뭐든지, 모든 걸 천동설에게만 최적화 하라는 명령. 그래서 여자들만 아는 표정들이란 게 있음! 그런데 제 발로 선심성 노예에다 각종 전문용어들이 난무한다?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폭군들이 이름 웃기다고 죽이고, 자기랑 닮았다고 연예계 퇴출에, 말도 못할 요지경 세상이었지. 그럼 거기서 끝이냐, 아니지요 아니지요. 욕망자는 남자요, 욕망 받는 자는 여자다, 고로 지동설은 천동설(만)을 위해 존재한다? 궤변은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곧바로 내숭과 선수교체함. 여자말 번역기와 직결됨. 그럼 어떻게 한번 쟤를 자빠트려 볼려다가 선물 공세에 노예처럼 끌려다니다가, 헤어질 때 선물해준 거 싹 다 내놓으라고 하는 마초도 발생. 아니면 선량한 상남자야 참다 참다, 하다 하다 안되겠으나 넌 너 밖에 모른다면서 떠나버림. 어디 남자만 말이 좋고, 많고, 기나? 여자말 번역기를 새로 장만하면 아마 든든할 것이다. 알고 보니 인류사에서 강대국은 지리적 잇점도 큰 몫 했으나 그와 더불어 무감정, 무자비, 동정심만큼 멍청한 감정 기제는 없다, 선심은 바보들이나,,, 때문에 기인했다는 점. 물론 앞으로는 다르기를 바랄 텐데, 과연 그게 마음대로 될까? 그야 두고 보면 알겠지요! 





    16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왜 일본은 전국민을 非오이디푸스로 만들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래서 우민정책. 77년 체제. 신사참배. 궁성요배. 황국신민. 일억옥쇄. 또 생각나지 않는 별의별 희안한 용어들 많은데. 다음 도표로 극명히 차이점이 부각된다는 점. 
    때문에 아마도 일본은 영원히 문명인과 완벽히 부합할 수 없을 걸로 예상한다. 만약 문명인과 겉으로만이 아니라, 실제 속으로 또 모든 게 일치하게 된다면? 만약 그렇다면... 설명 불가. 상상 불가. 못하는 게 아니라 굳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는 걸로. 이미 칼럼에 비슷한 내용 많으니 참고하고. 
    이처럼 일본은 사회지도층이 모든 일본인, 미래의 모든 일본인을 오이디푸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이 진짜 문명인처럼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문명인이 된다? 그러면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존재할 수 없다. 어쩌면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 되었겠지. 

도표 H
────────────────────────────────────────────────────────────────────
                                      유대인            일본인 
────────────────────────────────────────────────────────────────────
국가 분실(디아스포라)           ○                   X (미군 위안부 운영/맥아더를 신처럼 숭배/일시적 목적이므로 잊혀짐)*
국가로서 나라밖 국가 만행     기회無*            ○ (세계신기록)     
국가로서 나라밖 개인 만행     기회無             ○ (세계신기록)
과거 실향민 개인(부자) 평판   고약함             고약함 
과거 실향민 개인(평민) 평판   
현재 실향민 개인(모두) 평판   괜찮음             괜찮음 (세계 평균 이상)
독일처럼 큰 반성 기회          기회無             ○ (세계신기록)
독일처럼 큰 반성 실천          기회無             X (정반대로 모독/앙심/속뒤집어짐/세뇌/외면/복수)
국가로서 나라밖 국가 만행 가능성                ○ (매우 높음) 
국가로서 나라밖 개인 만행 가능성*               ○ (매우 높음)
사고체계                          문명인             야만인 (실제로는 원시적 / 겉으로는 문명인처럼) 
교양, 일반상식                   문명인             야만인 (실제로는 원시적 / 겉으로는 문명인처럼) 
────────────────────────────────────────────────────────────────────

    더글라스 맥아더가 잊혀진 점: 
    정글에서? 인간세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만고의 진리. 그에 관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움
    기회無*: 아랍국,팔레스타인 분쟁은 타 칼럼 참조
    국가로서 나라밖 개인 만행 가능성*: 
    일례로 인디언 관습에서 영원히 벗어난 일본 밖으로의 이민자에게 여쭤보면 된다. 아울러 인디언 관습에 영원히 구속된 일본인이 간혹 일본 밖에서 일본 관습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해방감? 그걸 과연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이래서 볼링공, 볼링핀, 레고족, 훈제족, 삼광작전, 죽음의 행진, 전쟁노예 비교, 세계 근친혼 지수 비교, 전쟁성노예, 전쟁 노예를 비롯해. 나는 너네 집에서 신세 좀 질께, 그러나 너는 우리 집에서 죽어도 안 재워줌. 너는 우리 동네 와서 돈만 겁나게 쓰고 가세요, 그러나 나는 딴 동네 가서 절대로 지갑 열지 않음. 저쪽에서 원정경기 와서 철저히 대응, 원래 마음 열지 않고 빈말과 허례허식만으로도 혼을 쏙 배어놓음. 이걸 줄여서 접대 문화! 기가 막힌 접대 문화는 당연히 저속한 표현인 상술로 연결된다. 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을 저술했을까? 일례를 또 하나 말하자면 이렇다. 커피 배달업이 몇 십년 전 일본 전국에서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당시 그렇고 그런 전국 평균과 달리 오사카는 남달리 상술이 뛰어났다. 바로 다방 레지가 팬티를 안 입고 배달했다는 점. 뭐, 노팬티? 그래서 일본인들 사이에 만담이 오가는 대화의 요점은 이랬다. 그게 바로 오사카 상술! 뭐라고? 넋이든 혼이든 영혼이든 경제성은 뭐든지 쏙~ 빼앗아가버리고 마른 수건까지 쥐어짜서 바다를 만들어버림. 
    그러니까 구매력 지수로만 봐도 내수품만 이용하는 반면, 수입품 소비가 사고체계 개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체급 대비 현격히 낮음. 물론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건 한계가 있으므로 도표상으로 체감하기 어려우나. 실질적으로 들여다보면 볼수록 기가 막힐 지경. 즉 북미, 중국, 유럽은 외부품 소비에 관대하므로 세계경제와 밀접히 연관된 반면. 일본 경제가 흔들리는 것과 세계경제는 연관성이 현저히 줄어듬.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일본 경제가 어려운 적이 있었나? 없었음. 세계2차대전 이후로 단 1번도 없었음. 무슨 잃어버린 20년 같은 전문용어를 인용해 반박하고 싶은 분들 많겠으나, 그래 봤자 무슨 잃어버렸는데도 면밀히 살펴보니... 그게 무슨 잃어버린 거야. 잃어버린 거 맞아? 틀림! 완전히 틀림. 말 같지도 않음. 그만큼 1970년 이전에 천장을 터치해버렸기 때문에 이상한 전문용어가 탄생한 것임. 만약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우리가 만약 이겼으면! 왜 어떤 칼럼니스트는 누누히 경고할까? 언젠가 세계신기록을 과연 누가 갱신할까를 생각해보면 됨. 이게 바로 뭐냐, 다음 말로 간략히 설명된다.
    (1) 넉살
    (2) 응석
    (3) 능청
    괜히 과거 인문교양학에서 일컫기로 일본은 12살이라고 지칭했을까? 문명인 기준에서는 그게 옳지만. 그야말로 완벽히 옳지만 그마저 틀린 게 뭐냐면 12살도 많음. 5살? 아니 2살. 그래서 듣는 12살은 자기들이 세계를 지배해야 하는데 듣기 싫겠지. 사정이 이런데 과연 비일본인들이 과연 벌레의 관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나? 없음. 괜히 당신들은 죽어도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라고 말하는 게 아니니까. 정리하면, 
    만약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 우리가 만약 이겼으면!
    그래? 나도 한번 넉살 좀 떨어보자. 누군 뭐 응석부릴 줄 모르나? 나도 능청 좀 피우자. 자, 어떻게 너스레떨지? 옳거니~ 나보다 더 원시부족 문화에 대해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 봐! 어? 내 소원이 그거다. 누가 좀 나보다 더 이 주제에 대해 빠삭한 사람이 있었으면. 있나? 있겠지. 있을 거야. 있어야 해. 그런데 정말 있나?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다. 
그런데 응석의 포장을 벗기면... 못해서 못하는 게 아니라는 점. 이게 더 무서움! 캬~ 어? 기가 막힘. 
    끝으로 일본 황실에서 지내는 제사 축문의 주요 구절을 한국어로 읽는 점을 왜 숨길까! 일본군의 제2차 세계대전 만행에 관한 외국영화는 수입금지 시키는 반면. 자국민 세뇌에 조금이라도 불리한 내용이 포함된다 싶으면 철저히 배격. (이래서 "조류의 시점 : 파충류의 시점" 개념이랄지 천동설 대 지동설, 간접화법 대 직접화법에 익숙한 비일본일지라도. 여자말 번역기만 존재하는 원시부족을 아는 건 그 어떤 값을 치러도 어려울 지경. 여왕벌 빼고는 벌레 중심 관점만 존재하는 당연한 생활습관조차 바깥에서는 그걸 무슨 예술, 노벨상, 지고의 선 개념으로 흔히들 착각하게 되는 이치. 그래서 유럽인이 2천년 당하다 당하다 더 축척될 수 없다 하여 홀로코스트가 발생했는데. 뭐, 홀로코스트? 아무런 이유도 없이 홀로코스트? 무슨 맥락도 없이 홀로코스트? 그럴 리는 없음. 절대로 없음. 그런데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독일에 짓는 건 민족의 역적이자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 불허, 치욕, 망동말라, 말조심하라...등등. 말이 되나? 그렇지만 일본만 신의 나라이므로 신국이다 라는 토속인앙 더하기. 정말 악인이, 아니 악인만 오직 구원받는다는 사이비 종교 천국. 세계에서 무슨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음. 그렇지만 단지 여왕벌 문화 끝? 아무리 설명해도 죽어도 모름. 그때야 천황 덕으로 숨쉰다, 걷는다, 먹는다, 마신다, 쉰다, 말한다...였지만. 그런데 왜 "일본문화 = 천황문화"가 아닐까? 천황 위에 상왕이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 허나 겉으로는 천황의 '천'자 비슷한 소리만 들려도 서로 눈치보며 굽실굽실, 조심조심, 수줍수줍, 부끌부끌, 미안미안, 친절친절, 민폐민폐. 영화에서 반전이 간혹 나오거나 어떤 설정에 알맞게 몇몇 영화에만 등장해야 감동하는데. 요즘도 그러나? 밥 먹듯이 나오니까 짜증나고. 개연성 무시하니까 더 짜증나고. 반전을 달리 말하면 뭐겠나. 뒤통수가 기본값이라는 것. 이게 바로 무사 문화). 자국 공영방송 TV 대하드라마 대사는, "다들 잘 들어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나라 백성을 난폭하게 다루지 마라. 일체의 분쟁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천황이 백제 관련 발언을 털끝 만큼 발언해도 스탈린,히틀러,무솔리니 시대처럼 철폐 급급. 일본 국보 1호를 비롯해 고대 주요 문화재는 태반이...꼭꼭 숨김. 대체 왜? 이 모든 게 칼럼 내용들 즉 원시부족 특성인데 간략히 서양 고전 배경지식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카인과 아벨
    둘째, 오이디푸스 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