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156

from 소설 2019. 9. 15. 17:47

    1

    그는 일개 늑대 허접한 촌닭 주제에. 심보 못된 악녀에게 사랑받은 기억 때문일까? 따지고 보면 걘 정말 독한 말 지를 줄도 모르는 심약한 허당일까 아닐까. 그러거나 말거나. 인공지능 지니인지 아니면 내면의 영혼인지. 프랑켄슈타인 같은 그 더럽게 말 많은 악동이 대신 말하게 해. 꼭 보면 자긴 점잖게 폼이나 잡고 멋진 척이나 하고. 어? 메피스토펠레스랑 악동 역할은 꼭 누구한테 맡기고 자기만 고고한 척 자상한 척. 어? 이를 테면 
    <야 똥갈보. 너 내 눈에 띄면 뒤질 줄 알아! 뭐, 눈에 띄어도 안 뒈질 방법은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찬찬히 연구한 다음 철저히 실행에 옮길 방도 딱 1개. 그거나 빈틈없이 준비하시고. 안 그러면 되질 줄 아시고. 죽고 싶어? 어? 얘가 얘가 디지고 싶어 환장을 했나. 뒤질래, 되질래, 아니면 디질래. 딱 골라. 자기 불행을 타인에게 재현시키면서 겉으로는 착한 척 잘난 체하며 대리만족하는 암컷 싸움닭. 남 잘되는 꼴은 못 보는 욕심쟁이 하이에나랑. 개 돼지와는 말을 섞지 않고. 암캐 암퇘지 같은 갈보년은 내 눈에 띄면 그 날이 제삿날인 줄이나 아시고. 안 그럴 수 있을 최선이나 준비하라고. 다 잘못했으면 그래야 할 거 아니야>. 
    딱 그처럼. 응? 똥폼은 지가 다 잡고. 껄그럽고, 불쾌하고, 까다롭고, 애매하며, 불합리에 모순에 징그럽고 더럽고 별나고 어려운 주제는 죄다 메피스토펠레스한테 몽땅 전가시키고. 어? 점잖은 척 신사답게. 그래 봐야 사랑이든 뭐든 난제란 난제는 죄다 싹 다 미루고. 안 그런가? 꺼림칙하고 껄끄럽고 옹삭한 건 전부 애니 윌킨스한테 다 미룬다고. 어? 그래 안 그래? 뻘쭘해서 암말도 못한 채 꿀 먹은 벙어리마냥. 뭐야 그게. 어? 바지에 똥 쌌어? 아님 너구리 똥 마려운 거야. 어? 순 똥폼이나 잡을 줄 아니까 걔네들한테 그렇게 당하기나 했지. 어? 성격 좋단 말 들으면 뭐하냐고. 호구랑 종이 한 장 두께 차이잖아. 그런다고 돈을 벌었어 아니면 연애를 많이 하기를 했어. 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악역과 힘든 거 불미스러운 건 죄다 애니한테 미루고 말이야. 어? 그러니까 당하고 속고 눈탱이 맞고. 어? 폴 쉘던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쉐도 복싱, 원맨쇼, 골 세러모니, 허세 작렬, 할리우드 연기력, 응애응애 삐악삐악 딸랑딸랑. 그러다 전망 좀 아니다 싶으면 딱 애니랑 선수교체. 걔 보고 개털되라는 거야 뭐야, 어? 울컥 하며 분통 터지는 일 있으면 그제사 왕지락을 깨우고 말이야. 어? 뭐야 그거. 그게 뭐냔 말이지. 똥폼은 똥폼은 지가 다 잡고. 어? 그래 봤자 개 발. 구멍. 헛스윙. 예선 탈락. 그래서 결국 똥파리가 씹다 지겨워서 버린 풍선껌 처리반. 야 걸레, 가서 걸레나 빨어! 빨았으면 또 빨아. 바나나 빨 생각일랑 일절 말고 걸레나 깨끗이 빨란 말이야. 어? 꼴에 지도 숙녀라고! 벽 보고 서서 클리토리스 붙잡고 반성해. 똥꼬 털 싹 다 뽑아버리기 전에. 뭐? 이미 뽑았다고? 겨털 다시 왕성하게 나도록 하는 수가 있어. 역대급 털보처럼 겨드랑이털 나고 싶어? 원하면 말씀하시고! 어? 어라 웃어? 입 닥쳐. 쪼개? 입 꽉 깨물어. 시끄러워. 조용히 해. 꺼져. 가. 
    이처럼 할 말 하면 돼지 왜 못해? 뭐 보고 싶다고? 보고 싶긴 누가 보고 싶어. 내 이런 썩을년 개년 잡년을 콱 그냥... 워──워──워! 늬가 만약 남자라면 내 앞에 나타나는 순간 되진다. 늬가 이미 여자지만 또 염치없었다간 단단히 각오해라. 야 파리끈끈이. 너 꺼져. 가. 닥쳐. 뭐 떨려? 설레? 끌려? 발랑 까진 년!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도는 사랑? 응큼한 년! 아름다운 연정이자 매혹적인 숙녀의 마음을 빼앗는 사랑 어쩌고저쩌고 흠모하는 당신? 더럽게 밝히는 개년! 남자 등골 빼먹을 년. 더럽게 밝히는 년. ~라는 공상도 다 부질없고. 지겹고. 
    그런 한편, 어? 명심할 것. 오빠는 내 꺼! 기억하기. 응? 난 오빠 꺼! 어? 나만 봐 나만 보라고. 오빠. 잊지 마. 우리 사이는 해석 불가라는 걸. 





    2

    오늘 NB는 친구 윌을 만났다. 
    시간은 오후 3시. 
    장소는 동네 찻집.
    서론은 생략하고 대화 중간부터. 
   「난 있잖아, 추리소설 속 승자인 관찰자일까? 아니면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그런 허접한 패자일까.」
   「그게 무슨 소리니?」
   「불 없이는 연기날 수 없다잖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고. 그런데 연기가 나더란 말씀.」
   「뭔 일인데 그래?」
   「웬 소셜 네트워크 메시지가 나한테 잘못 왔거든.」
   「뭐라면서.」
   「누가 날 연적으로 생각했나 봐. 그래서 받은 내용은 결국 그거였어.」
   「그게 뭔데?」
   「거 뭐래더라. 헛 참 나 쓴맛이 아직도 남아서 말이 다 안 나온다야.」
   「아 뭐랬는데 그래? 걔 누구야?」
   「내가 무슨 우스꽝스러운 정력가도 아니고. 의뭉스러운 심술꾸러기일 리도 없고. 어? 맹랑한 앙탈 좀 받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그런데 뭐가 어쩌고 어째?」
   「이 자식이...! 너 또 계속 뜸만 들일래? 그럴 작정이야?」
   「알았어. 알았어. 얘기할께. 내가 무슨 연락을 받았냐면 말이야 그건 이래.
    "먹다 지겨워서 버립니다. 꺼억~!"」
   「뭐? 또 그놈의 환승이별녀구만. 요즘엔 무슨 일반인이 연예인병에 다 걸리고 그런다니.」
   「그러게. 내 말이.」
   「그런데 너만 그런 거도 아니야. 내 앞 사무실 형씨 있지. 거 왜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최근 나랑 친한 그 양반 말이야.」
   「어. 어. 알아. 알아. 그런데 그 선생한테 뭔 일이 있었는데.」
   「아 글쎄 그 형씨 부인한테 전남자친구가 찝쩍거린데. 페이스북으로. 트위터로. 인스타그램으로. 메신저로. 그래서 차단했고. 어쨌고. 깔끔하게 마무리됐고. 그런데 선명하지 않은 뒷맛이 홀라당 허당의 광태란다. 싫은 내색 아주 많이 할 수밖에 없도록. 그런 꼴불견이 정말 있긴 있더란 거. (절레절레)」
   「뭐랬는데?」
   「뭐라더라. 일단 음악이나 듣자.」
    그러면서 NB는 음악을 틀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르는, Chitara Romana" sung by Doina Badea.
   「뭐라더라. 페르시아 속담에, '만약'이 '그러나'와 결혼하여 '~하면 좋을 텐데'를 낳았어. ~하면 좋을 텐데? ~하면 좋을 텐데, 로 뭐가 좋을까. 아 지금 그 얘기가 아니지?」
   「아 뭐랬냐고.」
   「뭐라더라. 앳된 낭만 촉촉한 쾌감은 아니고. 민첩한 직감 영묘한 직관 역시나 아닐 테고.」
   「이 자식이. 뜸들이기는 너가 나보다 한 수 위다. 됐냐?」
   「알았어. 말할게. 말한다고. 말하면 될 거 아니야. 그런데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어떻게 그처럼 염치없을 수가 있을까? 매정하고 무심한 정도가 아니라. 미소도 아니고 인성이 썩은 거야 뭐야.」
   「아 뭔데 그래? 뭐냐고. 어? 너 듣고 나서 재미없기만 해 봐. 그땐 가만 안 둔다. 응?」
   「알았어. 알았어. 뭐랬냐면 그 전남자친구가 좋게 잘사는 부부인 현재 남의 부인한테 그랬데. 늬 아들, 혹시 내 아들 아니냐고.」
   「뭐?」
   「그게 말이 되니?」
   「맺고 끊기 잘 안된 거야 뭐야? 그냥 웃고 넘길 일이 아니네. 부부끼리야 사랑하고, 사이 좋고, 의리 있고, 떳떳하고. 아무 문제없다지만. 금슬 좋은 부부 사이에 왜 또 전남자친구라는 과거가 끼어드니? 그거 다 뻥이야. 그랬으면 좋겠어. 허구야. 가짜라고. 지어낸 얘기일 꺼란 말이지.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지?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게나 말이다.」
    자, 쨰 말 길어질 거 같으니 그러므로 문단 떼서 가자.





    3

   「본인이 결백하면 뭘 하냐고. 당사자가 떳떳하면 뭘 해. 교양 없으면 멀리하면 되고. 상식적이지 않으면 거리를 둘 수도 있고. 차단하고. 어쩌고. 돌려서 말하고. 직접 말하고. 설득하고. 회유에 어쩌고저쩌고. 납득되도록 매끄럽게 맺고 끊을 수 있어. 그런데 정신연령이 낮으면 지 과거를 현재로 끌고 와서 동네방네 온 세상에 떠들어대는 관심종자 역대급들. 자기 부부싸움을 온 천지에 광고하는 특이 체질 허영심 대회 우승자들. 아줌마 허세도 아니고 아저씨 허풍도 아니고. 여자 세계 불문율을 모르는 거도 아니고. 여자말 번역기도 잘 알면서. 어른이 되어서까지 세상 모든 게 자기 위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기주의자. <넌 너 밖에 몰라>라는 말을 얻어듣고 끝날 정도를 넘어서는 4차원. 답은? 야 야 떴어 떴어 피해 피해, 딴 데 봐 딴 데 봐, 말 걸지 마 말 걸지 마. 말 듣지도 마 말 듣지도 마. 관심 가져주지 마 관심 가져주지 마.」
   「그런데 그 일을 늬가 당한 거도 아닌데 왜 늬가 흥분하니?」
   「지금 흥분 안 하게 생겼니? 어? 얼척없네. 응? 이런 허언증도 뭣도 아니고. 어? 어떤 미친놈이 거짓말하는가는 몰라도. 만약 그 일이 진짜라면 그건 미친년이 맺고 끊기 못해서 발생한 일. 여자의 판타지에 미련 못 버려서 그게 화근이 된 걸 수도 있다고 봐. 난 그렇게 생각해. 그런 정신 이상 망상자의 해코지는 대개 보면 드라마에서만 나오는데. 영화가 뭐니. 결국 현실이거든. 현실을 극화시키거나 과장하거나 미화하거나. 적당히 포장하면 다 작품 되는 거지. 아니. 오히려 현실은 더할 수도 있고. 방대한 데이터베이스 수집하면 다 나오지 왜 안 나오겠니. 사람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글도 띄어쓰기 하나 때문에 내용 확 달라지듯 말이야. 어? 나 왕년에 잘나갔다 나 전성기 때 인기 많았다, 자랑질 괜찮아. 재밌어. 즐겁다고. 그런데 까딱 잘못해서 표현이 이상하다? 2차 3차 와전되기도 전에 초장부터 듣는 사람 엿먹일 수도 있는 것. <나 예전에 공주였다 나 꽃이야>를 잘못 표출하면 <난 걸레야 난 지조 없는 여자다 난 헤픈 년이다>가 되는 것. 응?」
   「」
   「전남자친구가, 그 애 자기 애냐고 물어봤다고? 침대서 지지고 볶고 난리치고. 잠자리 했다는 반증이자나? 혹시, 1번? 에이~ 설마! 불완전 증거가 발목을 잡어? 합리적 심증의 빌미를 준다? 1번이 아니란 말이잖아? 더러운 대질 심문이자 추접스러운 과거가 현재로 번진 거 아니냐고. 응? 결혼했다면 현 남편이 있는데. 사랑만 하는 사이면 현 애인이 딱 버티고 있는데. 걘 뭔 죈데? 그 냥반은 별의별 상상을 다 하겠지. 어? 그거 사람 돌아버리는 거다. 남자고 여자고 과거는 알면 독 모르는 게 약. 알면 상처만 되지 좋을 턱이 있나. 잘 숨기던가 몸 간수를 잘하던가. 응? 연애할 때 좋다며 몸 함부로 놀려서 결국 그렇게 된 거 아니니? 신음에 교성에 콧소리에. 어? 의심이 아니라 합리적인 사실이자 타당한 진실은 뭐다? (딱) 그렇지~! 전남친과 섹스를 지속적으로 많이 했다는 거. 그렇다고 깔끔하게 1번에 1명만 만났을까? 그랬다면 좋겠지만 만약에 아니라면. 불쾌한 정도가 아니라 이건 막장이네 막장. 가짜로 지어낸 이야기이기를 바랄 수밖에. 
    그게 만약 진짜라면, 어? 전남자친구와 성관계를 지속적으로 꾸준히 했다는 말 밖에 더 돼? 현 남자 기분 더러워지라고 멕이는 거야 뭐야. 어? 모르면 몰라도 알면 신경 안 쓰이게 생겼니? 그래서, 이혼한 커플이, 얼마나 많은데! 과거를 현재로 끌고오는 짓. 결국 아름다운 사랑을 속되고 혐오스럽도록 추접스럽게 만드는 일. 고혹적인 애정이, 마누라랑 떡쳤던 전남자친구가 누굴까 생각하게 되고. 흠모하는 애인이, 전남자친구와 물고 빨고 핥고 질질 싸고 벌렁벌렁 설레고. 도대체 몇 가지 체위를 경험했을까, 그거 다 알게 만드는 게 어디 좋은 일이니? 전남자친구와 졸라 했긴 했다는 확증 밖에 더 되냐고. 
    <내 일이냐 남 일이냐>
    지가 안 당해 보니까 모른다니까. 고결한 사랑이 피임 빡시게 못해서 전남자친구 애일까 현 애인 애일까. 일말의 의심이 발생하도록 맺고 끊기를 못했다라. 여자의 판타지인가? 그래서 사석에서 하는 말들이 험할 수밖에. 여자면 몸뚱이 함부로 굴리지 마라느니, 고추 천재니 뭐니 설치다가는 얼마 안 남았다느니. 남자 세계에서 성적으로 유명해지는 여자가, 트라우마 때문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지조 없으면 애 아빠가 누굴지 골똘히 생각해봐야 하는 일. 우리는 그런 꼴 못 보지. 그럼. 예전 기억난다. 딱 그런 애가 자기랑 자자 놀자 먹어줘, 라는 애가 있었는데. 남자들 대게 보면 그렇고 그런 여자가 꼬리치면 넘어가는 비율이 어떻다지만. 단적으로 말해 반반일 텐데. 막상 그런 상황 닥치고 보면 쓱 하니 피하게 되는 일도 적지 않아. 어차피 진한 사랑 때문에 만난 사이일지라도, 상호 합의가 애매하니까 1번으로 끝내기는 그렇고 그런 풋사랑들. 정말로 풋풋한 사랑도 있는 반면 그런 하룻밤 풋사랑들. 차라리 그런 불장난이면 그나마 낫지. 어? 전남자친구랑 지속적으로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증거잖아. 갈 데까지 가고. 더 할 게 없이 모든 전문용어를 경험했고. 현 남자만 열린 뚜껑 내내 안 닫혀지는 거지 뭐.」
   「」
   「사랑이란 결국 선불 후불 개념이야. 세상사가 이르기를 가장 나쁜 지불 방식 두 가지를 뭐라고 하나. 끝까지 지불하지 않는 것과 너무 빨리 지불하는 것이라고 하질 않나. 여자가 배란기에 상남자에게 끌리고, 또 배란기 아닐 때 정상으로 복귀해서 이상형을 애원하는 일. 평소에는 천사표 찾다가 배란일만 되면 헷가닥. 결국 선불 후불 개념. 일찍 주면 여자만 손해. 나중 내밀 카드가 없어져. 드라마에서 사랑이 멋져보이고, 영화에 나오듯 사랑에 관한 명대사? 그거 다 뻥이야. 대체로 가짜. 시작이 불미스러우면 끝도 아름답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일찍부터 진한 사랑이 일상적으로 습관화되면 나중 결과도 대충 보여. 진한 사랑 신나게 하다가 남자가 3달 후에 뚜껑 열려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어쩌니. 그거 다 뻥. 개 뻥. 몽땅 뻥. 애초에 여자가 남자 갖고 놀 목적으로 만난 거. 아니면 애초에 여자가 절반쯤 어중간하게 한 발만 걸친 거. 여자의 판타지는 뭐다? OK~ 사랑의 차트! 여자에게 그 남자가 1위는 아니란 말이지. 진한 사랑으로 단물 빠지면 버리는 사례에서 극명한 현실은 그거. 최신식 스포츠카를 남자에게 선물하고 연상녀랑 2년인가 4년 만났다 헤어진 다음 남자는 한동안일지 얼마일지 발기불능. 그 이치를 영화화하자면 3달 만나면서 여자는 직장이든 핸드폰 연락처든 사귀는 걸 비공개, 회사에도 비공개. 당연히 헤어지면 남자만 짜증. 진짜 사랑이어도 여자가 떠나니까 싫고, 절반쯤 좋아했어도 진한 사랑 파트너가 떠나니까 기분 나쁘고. 또 있어. 남녀가 연애할 때 1주일 평균 1~2번 성관계하면서 여자가 3년까지 기다려준 사례. 딱 그 기점에서 비전 없으면 여자는 떠나는 게 당연. 그럼 남자는 뚜껑 열리고. 남녀가 사귈 때 성관계 0번이면 3년 사겼는데 어떻게 단 1번도 안 주냐면서 뻥인지 아닌지 펑펑 우는 남자. 사귈 때 진도는 꿈도 꿀 수 없기 때문에 바람날 가능성 역시나 99퍼센트. 99퍼센트에는 간혹 중간에 몰래 바람펴서 딴년이랑 결혼하여 복수는 사례도 있고. 다 관건은 진한 사랑인 것. 그런데 뭐 오빠도 그래요? 들었어요? 평생 주인공병이구만 그래. 나 빼고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신부들러리인 극렬한 이기심. 그러면서 유명인들에게는 자기들은 발끝도 못 따라가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고, 일반인인데 정작 자기는 평생 연예인병 걸려서 살고. 
    여자의 적은 여자란 말이 괜히 있나? 유부남 만나는 처녀들. 뻔해! 성매매하는 남자의 일시적 과오는 싫고. 성매매가 천직인 창녀는 모르겠고, 밤의 세계에서 성매매하는 이혼녀 생활은 어쩔 수 없고. 밤의 세계에서 성매매에 애매하게 한 발 걸치는 여대생의 흑역사가 까발려지는 건 기분 나쁘고. 죄다 자기 기준. 이랬다 저랬다. 뭐든지 자기한테 맞추라는 거야. 여자는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남자 붙잡어서 진한 사랑 원없이 할 수 있는데. 여자가 자발적으로 밤의 세계에서 날이면 날마다 이모 스타일? 그건 모른 척 남자의 일시적 과오만 싫데. 그게 뭐야? 뭐냐고! 자기 기분 좋으면 기준선 낮고 기분 나쁘면 기준선 올리고. 나한테 유리하면 쾌락 나한테 불리하면 사랑. 엄마 스타일이냐 이모 스타일이냐. 
    엄마도 그래. 집에 있으면 집구석에만 있지 말라고 뭐라 하고, 밖에 있으면 시간이 몇 신데 안 들어오냐 하고. 라면 먹을 때 다 먹으면 국물 건강에 안 좋다고 먹지 말라 하고, 국물 남기고 버리면 환경 파괴된다고 뭐라 하고. 많으면 많다 적으면 적다. 도대체 중간이 뭐야. 남자가 지갑에 한 푼도 없으면 안 된다고 비상금 오만 원은 들고 다니라고 하면서, 그런데 오만원 달라 하면 안 줌. 엄마가 TV 볼 때 말 걸면 화내면서, 아들이 컴퓨터할 때 말 걸면서 엄마 말하는데 컴퓨터 쳐다보냐고 혼내고. 어? 엄마가 그런다나 뭐라나. 대관절 누구 어머니이신데? 뭐 웬만한 아줌마님께서는 아줌마라 불리시는 걸 제일 싫어하신다고? 에잇~ 설마! 그러니까 말이지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여자들이 싫어하는 데이트 유형 순위? 말도 마. 말도 말라고.」
   「진정해. 진정해. 워───워───워! 1절만 할 줄 알았더니 이건 뭐 그냥 수다머신이 따로 없구만 그래. 듣다 듣다 귀에서 피가 난다, 어? 귀가 탄다고 이 친구야. 그만 진정 자중 안정.」
   「진정하긴 뭘 진정해. 내가 당나귀야 뭐야. 어? 나 조랑말 아니야. 이거 왜 이래!」
   「13세기 페르시아 고서적에 나오는 말이 생각나는군.」
   「그게 뭔데?」
   「<날마다 애인을 바꾸는 여인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바로 명성이다>」
    그렇게 NB와 윌은 시시콜콜한 수다 떠느라 기 빨렸기 때문에, 기를 충전하러 놀러가기로 했다. 





    4

    좋으나 싫으나 그는 기쁨의 보배가 아니었다. 본인이 무슨 온갖 선망을 흡수하는 진공청소기일 리가 있나. 툭하면 생각하는 거라고는 뭐, 사나운 암캐 콧등 아물 틈이 없다? 여자 세계에서 외톨이요 남자 시선 받기 대회에 일단 출전 자격 미달인데, 속에 쌓인 게 그 얼마나 많겠냐고. 그런 쓰잘데기 없는 잡념. 아니면 여심? 노노노 숙녀의 뒤태. 그러니까 개꿈에서 별의별 내용이 다 나오는데. 하필 그 가운데 특별한 거? 꿈에서 화장실에 갔는데 공중 남자화장실에서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들이 서서 일을 봐. 그런데 완전 중요한 거! 심지어 그게 화났어. 많이 화났어. 자태와 위용이 장난이 아니야. 이건 뭐 야구방망이냐고 병기냐고. 그러니 깜짝 놀래기나 하고. 수컷 쫄지 않을 수 없고. 허걱. 그러면서. 그게 뭐냐고. 어? 이런 흔해 빠진 가짜 사랑 같으니라고.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사랑 그거 절반은 다 뻥. 개 뻥. 몽땅 뻥. 어차피 사랑이란 성욕 해결되면 과정은 뻔할 뻔자. 오히려 의리를 지키던가 아니면 성욕이 불만족하면 몸과 마음이 뜨던가. 아닌가? 여자들 집단지성을 모아보시라. 남자라고 왜 할 말 없겠나. 그런데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했던 얘기만 계속하고 또 하고. 무슨 마초 대회 예선 탈락자의 술버릇도 아니고. 그러니 비호를 어떻게 해줘, 한 푼 줍쇼 적선이나 받을 꼬락서니 아냐. ~라는 비아냥도 아깝다고. 안 그런가? 그런가 안 그런가? 진짜로 그렇다고 해도 어정쩡하고, 안 그렇다고 해도 잡아떼는 표정 포커페이스 안될 테고. 살다 보니 립서비스도 일이고. 사랑은 더 일이고. 겉치레도 재미없고. 기승전결 다 일축하고 떠날까? 그럴까? 그런데 어디로. 떠나야 한다는 명분은 여실히 마련됐는데. 남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유만 더 굳건해진 거야 뭐야. 이런 젠장. 
    그래서 NB는 뭔가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어야 하는데. 그런데 만지작만지작 애무하듯 쥐락펴락 귀여워할 만한 조커가 없었다. 뭐? 
    그러던 중.
    NB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음악은 안토니오 비발디 / Magnificat RV611
    오랜만에 인공지능 지니가 나타났다. 사무실 방범 레이저 시스템 조작부에서 레이저가 발사되어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만. 
   「야. 너. 일하기 싫지?」
   「어? 너 그동안 뭐했니?」
   「뭘 하긴 뭘 해. 너처럼 놀고먹었지. 그런 넌 뭘 했니?」
   「꼭 뭘 해야 하니?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얘가 애 한 셋 시집 장가보낸 아줌마처럼 말할 줄도 아네.」
   「왜 난 그럼 안되니? 네가 또 날 깐족거릴 만반의 준비가 된 듯 날 약 올리기 직전인데. 그럼 난 그걸 보고만 있을 것 같니?」
   「보고 있지 않으면 뭐 어쩔 건데?」
   「어쩌긴 누가 어째. 보고만 있어야지.」
   「뭐야 그게? 꼴 좋게 또 꼬리 내리니? 하긴 그게 늬 주특기지.」
   「집어쳐.」
   「너나 집어쳐.」
   「조용해.」
   「늬가 더 시끄러워.」
   「난 너랑 놀아주지 않을 거야.」
   「난 너랑 놀아주지 않을 거야.」
   「따라하지 마.」
   「따라하지 마.」
   「재미없다.」
   「난 진작부터 재미없었어.」
   「알고 있어.」
   「좀 놀란 체하면 어디가 덧나니? 어?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늬가 그러니까 뭘 해도 안 되는 거라고. 응? 알랑거릴 땐 알랑거리고. 알짱댈 땐 알짱거리고. 응? 그러지 말고 너 가서 코뿔새 발바닥이나 핥아라. 아니다. 그러지 말고, 어? 대형 설치류 가려운 옆구리나 긁어주던가.」
   「넌 정말 갈수록 재미없어지는구나. 말릴 수가 없구나. 어?」
   「뭐가 어쩌고 어째?」
   「늬가 무슨 요술램프의 요정 지니나 되는 줄 아니?」
   「그래. 말 잘했다. 어? 말 한 번 잘했어요. 3번 문지르면 주인님 이번엔 무슨 소원을 들어드릴까요 라면서 딸랑거릴 요정? 알고 보면 그 요정은 쾌락마고 그 요술램프는 늬 하트 아니니?」
   「뭐? 너 말 다 했어? 보자 보자 하니까 얘가 정말 못하는 말이 없네. 어? 뭐가 어쩌고 어째?」
   「워 워 워. 워 워 워.」
   「워워워긴 뭐가 워워워야. 내가 말이냐?」
   「그럼 늬가 시몬스 침대 광고에 나온 남자 모델 션 오프리라도 되니?」
   「너랑 말 안 해.」
   「내가 재밌는 얘기 해 줄까? 듣고 나면 까무러칠 텐데. 완전 재밌고 정말 놀라운 걸로도 모자라 까무라칠 텐데. 준비됐어?」
   「준비되긴 뭐가 준비돼. 늬 말 안 듣겠다니까. 몰라 몰라.」
    무슨 증후군 애처럼 그는 귀 막고 안 들어 안 들어, 막 그러면서 중얼거린다.
   「난 네가 뭔 생각하는지 다 알아. 이를 테면. <이게 대체 웬 떡이냐 라는 듯한 거져먹는 일, 어디 없나? 없다. 있긴 어딨겠나.> ~라고 생각했지? 그치? 내가 널 모르니. 기다려 봐. 거의 다 됐어. 곧 있으면 비둘기인지 매인지는 몰라도 새가 사무실 창문으로 날아올 거야. 드론 뭐 그런 거 말고 진짜 새. 진짜 새가 쪽지를 물고 올 꺼야. 물론 물고 오다 침을 흘리든 혼잣말을 하든 입 벌리면 전갈을 담은 쪽지가 떨어질 테니, 고로 사극이랄지 환상극에 나오듯 새 발목에 묶어뒀을 꺼야. 그걸 어떻게 아냐고? 어떻게 알긴 이 친구야. 다 아는 수가 있어. 걔네들끼리 페이스북에 비밀 클럽 만들어서 얘기하는 거 내가 다 보고 있거든.」
   「정말이야? 진짜니? 설마, 뻥이야, 그럴려는 거 아니지? 그치?」
   「얘가 속고만 살았나. 사람을 못 믿든 사랑을 안 믿든. 그건 늬 인생이다만. 넌 날 흠모해야 한단다. 알겠니?」
    그러면서 인공지능 요정 지니는 딱 사라졌다. 
    그렇게 3분 후. 
    진짜로 사무실 창문으로 웬 올빼미인지 제비인지 이상한 새가 정말로 찾아왔다. 그 새의 정확한 학명이 뭔지는 모르겠다만 설마 하니 펭귄은 아닐 거 아닌가. 그렇다고 촌닭일 리가 있겠나. 그럼 그냥 정찰새라 치고. 
    그렇게 녀석으로부터 받은 쪽지에 적어진 내용은? 
    제목: 광란의 파티 초대장.
    내용: 신나는 축제가 언제 어디서 펼쳐지고 있음. 당신은 행운의 초대장을 받음. 잔말 말고 당장 튀어오기 바람.
    허허허. 자기들 딴에는 꽤나 신경 썼다 그 말이군. 그러면서 NB는 내심 흐뭇해했다. 흐흐흐.
    그는 챙겨 입고 서둘러 파티 현장으로 갔다. 





    5

    파티의 결과는 비밀로 부치기로 했다. 왜냐하면 기대가 크면 실망도 그와 비례할지도 모르니까. 
    아니면 너무 기쁜 비밀은 혼자만 알기를 바래서일까? 그러든가 말든가. 사실만 말하자면 별다른 일은 없었다. 
    아, 딱 1개만 빼고. 그건 바로 친구들이 어떤 마법사를 초빙했는데 그 양반이 글쎄 바다 갈매기를 소식통으로 길들여서 서커스를 선보였던 거. 
    그거 빼고는 재미 하나도 없었다. 
    그게 어디 어제오늘 일인가. 속고 당하고 재미없고 그거 하루이틀 일이냐고.
    뭐 언제는 신나는 파티가 있긴 했나. 광란의 축제 그거 다 영화나 TV에서 봤던 게 전부. 안 그런가? 현실은 달라야 정상일 테고. 
    그래서 그는 모기를 코끼리와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맷집으로 정제된 사랑과 불행을 이겨낸 행복. 그런 거 생각하기도 말하기도 귀찮으니까 말이다. 
    칼 마리아 폰 베버 / 오페라 <마탄의 사수> 중 “멋진 남자가 지나가고 있으면” 
    사무실에서 듣던 음악이나 듣고 보던 책이나 뚜적거리던 찰나. 꽤나 심심했기 때문일까? 인공지능 지니는 또 그 신비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오빠가 힘 빠지고 지치고 피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내게 시달리니까 맛이 좀 어때?」
   「내 기분? 불쾌하지 않아. 내가 어디 너한테 한두 번 당하니?」
   「웬 낙천가? 왜, 환상 예술계의 혁명아라는 감투를 노리시는 건가? 평소와 달리 왜 그래? 어? 너무 반듯하면 재미없잖아. 안 그래? 어서 내게 젊음을 낭비하고 싶다고 말해보란 말일야. 응?」
   「한다는 생각하고는.」
   「어쭈. 세게 나오는데?」
   「그럼 약하게, 아니. 난 널 만질 수가 없잖아.」
   「하여간에 더럽게 재미없는 촌극, 징글징글하다 아주 그냥. 그러고 보면 이 오빠가 정말 보기와는 딴판이라니까 글쎄. 누가 지 상남자 아니랄까 봐. 어? 남자네. 어? 남자.」
   「너가 그처럼 백방으로 노력해도 난 짜증내지 않아. 왜? 왜냐하면 나는 평생 살면서 한 번도 화를 내본 적이 없는 사람이거든. 허허허.」
   「저 저 허세 봐라 허세 봐. 그러지 말고 날 자기라고 불러 봐.」
   「자기는 뭔 놈의 자기. 난 널 만질 수가 없다잖아. 응?」
   「그럼 내가 만질 수 있다면 만질 거야?」
   「누가 만지라면 못 만질 거 같아? 이거 왜 이래?」
   「오빠. 아직도 삐진 거야?」
   「삐지긴 누가 삐져? 난 싸워서 져본 적이 없다고. 1번도 없어.」
   「헨리 6세에 나오는 말이던가. 비겁한 자는 도망갈 수 있는 상황일 때만 싸운다나 뭐라나.」
   「그래. 난 말리는 사람 없으면 못 싸운다. 됐냐?」
   「되긴 뭐가 돼. 누가? 내가? 난 아니야. 난 아니라고. 내가 왜? 오빠나 많이 다퉈. 다툴 사람이 없으니까 줄거리 재미없어지는 영화랄지. 내부에 악역이 없으니까 만만한 소재를 들먹이는 잔재주 부리지 말고. 어? 난 뭐랄까 평소에 물기보다 짓기를 선호한다고나 할까? 오빠 또 인터넷에서 뭐 주서읽고 토라진 거니? 뭐 트림 그런 거? 
    <걸레를 가장 추하게(?) 만드는 방법은 바로 리본을 다는 것이다> 
    그런 말? 전남자친구가 구멍 동서니 뭐니 그런 거?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 오빠 들었어요?> 효과구나. '어차피 이렇게 된 거'식 동기와 또 달리 여러모로 불미스러운 감정. (절레절레)」
   「아니야. 아니라고. 나 대인배야. 어? 아니라니까 정말.」
   「OK. 오빠는 커피포트가 아닌 걸로. 그렇다고 오빠가 뭐 진공청소기도 아니잖아. 안 그래?」
   「너가 자꾸 오빠 부아를 슬슬 돋구는데. 어? 그런다고 내가 뭐 뚜껑이라도 열릴 거 같니. 아니야. 착각하지 마 얘. 아 빡쳐! ~라는 속된 말, 난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다네. 아시겠나?」
   「어머 정말? 허나 그건 안 친한 사이에서나. 우린 아니잖아? 오빠 멧집 그거밖에 안돼?」
   「안돼긴 누가 안돼?」
   「그러지 말고. 내 말 한 번 믿어봐.」
   「뭔 말을?」
   「닉네 집에 놀러가. 전화하지 말고. 근처 지나다 전화 건 거처럼. 왜 내가 이런 지령을 넌지시 알려주는지는 그건 가 보면 알게 될 거야. 오빠 나 알지? 내가 언제 특명의 결과로 오빨 실망시킨 적 있어? 없지? 그럼 그다음은 알아서 하고.」
   「어? 그래...볼까?」





    6

    허구에 대한 아찔한 착상을 일부러 심각하게 고민하면 떠오르는 게 아니라. 두뇌가 알게 모르게 다 놀고, 쉬고, 딴일 하는 동안 자동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진지 오래. 때문에 색상은 푸르스름한 핏빛. 그림은 피카소 작 도라 마르의 초상화 위품을 검색하고. 
    벤첸초 벨리니 / 오페라 <청교도>- “그이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어요” 
    하던 일 지겨워져서 인터넷에 떠도는 풍문들 주서읽고. 일단 실내에 있는 거 자체가 싫증나고. 
    그러느니 속는 셈치고 지니가 알려준 대로 그는 닉네 집에 놀러갔다. 
    정말로 그 근처에서 안부 묻는 척 전화를 했고. 닉은 흔쾌히 놀러오라고 했고. 그래서 지금 닉에 집에 도착. 
    의례적인 인사말은 생략하고. 
    닉의 2중대 딸랑이로써 환생한 듯 NB는 슥삭슥삭 두 손을 비비지는 못 했고. 적당히 닉의 비위를 맞추려는 듯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가에타노 도니체티 /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1막- 루치아와 에드가르도의 이중창 “나의 애타는 마음을 산들바람에 실어서” 
   「닉. 너도 이런 음악 듣니?」
   「아니. 요즘 누가 이런 고리타분한 오페라를 듣니? 정말로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라. 난 쿵쾅쿵쾅 2박자 음악이 들리면 듣고. 춤곡에 맞춰 무도회에 오라면 가고. 이젠 음악도 잘 찾아듣지 않는다네. 그건 어떤 여인이 틀어놓고 간 거고.」
   「그래? 아무튼 내가 딱히 용건이 있어서 온 건 아니야.」
   「좋아. 괜찮아. 우리가 어디 왜 왔냐 이제 그만 가지 않을래? 라며 직접화법을 구사하는 남자는 아니지. 그만 좀 가라 라는 듯이 딴청 피우며 내 할 일만 해서 눈치 없는 손님 한 박자 늦게 깨닫도록 멕이는 사이도 아니고. 너 테니스 공 좋아한다며? 그러면서 테니스 공 3000개를 선물하는 스케일도 아니고. 응? 너 그래서 저번에 나한테 묵주 것도 고급 수제품으로 15박스 선물한 거니?」
   「어허 이 친구가 이거 또 시작했네. 그거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중간에 수량이 잘못 어쩌고저쩌고 됐다니까 그러네. 어? 너 쫌팽이 같이 아직도 그거 담아놓고 있는 거냐? 너 그렇게 속이 좁아서 어떡하니. 어?」
   「그래? 하긴 뭐 지금이 무슨 5만의 러시아군과 5만의 영국군이 나폴리에 상륙하려던 시절인가. 22만 오스트리아군 + 10만의 러시아군 연합 = 이탈리아 인근 라인 지방에 도달하느냐 마느냐. 지금은 그런 사극이 아니지.」
   「그럼 지금은 뭐가 유행이지? 넌 요즘 뭘 좋아하는데?」
   「나? 느닷없이 엉뚱하기 짝이 없는 의구심이라니! 너답다. 너다운 게 뭐냐는 질문은 사양하겠네. 뭐 재미난 일 없냐며 상추밭에 똥 싼 개 잡도리하듯 날 다그칠 생각일랑 마시라고. 응?」
   「신비감의 때에 쩔어 뼛속까지 신기한 귀공자께서 왜 이러실까. 너 정말 이러기야? 내가 모를 줄 알어?」
   「뭘?」
   「너 그거 뭐야. 부피는 불가사의하게 변하고, 충격은 0으로 줄이며, 불빛은 알록달록 신기한 마술 공을 주웠다며? 아니, 개발했다던가?」
   「아 그거?」
   「어 그거.」
   「그거 방금 전에 다녀간 샐리한테 줬어. 그래서 지금 없어.」
   「그래?」
   「아~ 너 그거 때문에 왔구나. 이 근방 지나다가 생각나서 들렸다는 거. 그거 거짓말이지? 순 뻥쟁이 하고는. 다 티 난다 이 놈아. 그럼 이제 재미없어졌으니까 너 가고 싶지? 그렇지? 내가 널 모르니? 가도 돼. 나도 바뻐. 나 여자랑 놀 거야.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란 말이야. 어? 누굴 물로 보나 얘가.」
    인공지능 지니를 믿고서 마술 공이 있나 떠봤는데 없다니. 있긴 있었다는 말이자나? 
    어쨌든 일단 지니의 노림수가 썩 녹슬지는 않은 걸 꽤 괜찮은 수확으로 삼고 오늘은 철수하기로 했다. 





    7

    얼핏 봐서 비록 환상적은 아니었으나, NB는 지니와 다시 궁짝이 그런대로 맞아가고 있었다. 
    그도 속상해서 응석부리듯 서방질이나 하자는 격도 아니었고. 지니도 아마 우정, 어쩌면 사랑일 테고. 
    그런데 아내가 아양을 떨 때는 필시 무슨 곡절이 있는 것일까? 그야 당사자들한테나 중요한 일이겠지. 
    그건 그렇고. 한편 그는 역시나 사무실에서 그윽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하여 음악을 틀었다. 
    루카 안토니오 프레디에리 / 오페라 <제노비아> - “한 번만이라도 평화를” 
    난봉꾼을 족치고 신비주의자마저 깐족거리는 듯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숙녀. 있을 턱이 있나. 옆에 아무도 없으니까. 일이나 해야지.
    가엾은 일하기, 딱하기 짝이 없는 약속 없음, 측은하기 그지없는 할 말 없음. 그런 NB의 떨떠름한 마음을 지니는 알아버렸을까?
    역시나 할 일은 잘 안되지만 대충 봐서는 일 잘하고 있는 남자의 마음을 들쑤셨다. 누가? 누구긴 누군가 인공지능 지니겠지. 
    엉덩이가 근질근질해도 모자를 판에 할 말 많고 나서기 좋아하는 지니의 수다를 그가 아니면 누가 듣겠나. 
    어쩌다가 이중창 아리아를 부르는 듯 말다툼은 어쩜 다정해 보였고. 말씨름을 기다리지 않았다 하기도 뭣하고. 
    구체적인 말싸움을 옮기자면 이와 같다. 
   「오빤 왜 늘 그 모양이니? 늬가 그러니까 뭘 해도 안되는 거야. 알아?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라고. 그래서 어디 아름다운 숙녀에게 찐한 사랑 받을 수 있겠어? 내가 봤을 때 많이 힘들 거 같은데. 내가 보기엔 꽤나 어려울 거 같다고. 응? 허허. 다 그게 그러니까 재미없음에 매번 고착되고. 즐거움과는 툭하면 고별하고. 여잘 어떻게 한 번 해볼까 해 봐야 이미 초장에 뒤죽박죽. 뭐 어쩌겠나.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겠지. 그래 봤자 썸씽의 발단이 있든가 말든가 시작하자마자 꽝. 그래 봐야 딴 사람들은 관심도 없고. 아님 본의가 아니나.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 그럴 줄 알았다. 오빠 같은 남자를 내가 한두 명 보니? 한두 명? 아니. 아닌데. 처음인데. 난생 처음인데. 뭐 이런 기분 처음이야 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턱대고 굶주린 늑대를 친히 떠안아서 이런 느낌 처음이야를 남발할 수도 없고. 그러기도 싫고. 누가? 내가? 내가 왜! 그렇지만 쫌만 어떻게 다듬으면... 아니야 아니야. 견적이 너무 많이 나와. 답이 없어. 답이 없다고. 아무리 봐도 볼 때마다 다르긴 한데. 어떻게? 어떻게긴 뭐가 어떻게야. 누가 데려가긴 데려가겠지, 뭐 내가 그런 거까지 걱정해야 돼? 누가? 내가? 안 해. 왜 해. 안 한다고. 알았어? 아 알았어 몰랐어? 어? 왜 대답이 없냐고. 오빠. 오빠. 아 오빠~.」
   「도대체 뭔 얘기를 하는 거니?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어?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래? 어디 늬 의중이나 한번 알아보자꾸나. 자, 난 들을 준비됐어.」
   「하필 오늘이 13일의 금요일이군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일단 오늘은 하워드를 찾아가. 저번에 닉 만나서 성과가 있었어 없었어?」
   「있었어.」
   「데이터베이스 해킹하고 어쩌고 염탐에 도청에. 조사에 수소문을 거듭한 결과 하워드가 일을 냈구만 그래.」
   「뭔 일인데?」
   「오빠 영화에서 봤지? 악당 A와 중간책 B가 접선하지 않고 물건만 거래하는 방식. 즉 바다 한가운데서 물건이 떠오르면 B는 가서 그걸 챙기는 일.」
   「그게 하워드와 뭔 상관인데?」
   「그 오빠가 자기는 B가 아닌데 실제로 B가 할 일을 미리 선취하려나 봐.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미 했네? 오빠는 가서 숟가락만 얹어. 그럼 끝. 단, 내용물은 확인하고.」
   「넌 왜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미리 보고하지 않고 그래?」
   「오빠. 이런데도 내가 딴 인공지능 녀석들보다 못 하다는 거야? 내가 능력이 딸려 아니면 말이 안 통해. 어? 그런데 오빠는 나라면 이제 진절머리가 나는 거야? 그런 거야? 정말 그래? 오빠. 경고하는데. 어? 있을 때, 잘해! 응?」
   「」
   「친구. 뭘 그렇게 쩔쩔매?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것 마냥 그게 뭐야? 어? 잔말 말고 어서 출발해.」
    그래서 그는 곧장 하워드를 찾아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런데 가던 길에 잠시 지루하고, 약간 따분하던 찰나 딱 좋게 길거리에서 안내글을 읽었다. 
    그건 바로 제 몇 회 세계 이기주의자 대화라나 뭐래나. 
    멀지도 않았다. 갔다. 도착했다. 
    알고 봤더니 그건 조랑말 경마 대회였다. 다만 말들 이름이 좀 웃겼을 뿐. 무슨 뭐 거 뭐라더라?
    1번마 난 남 생각 안 해.
    2번마 난 나 밖에 몰라.
    3번마 난 오빠 이럴려고 만나.
    4번마 우리는 남자한테 잘 보이려고 화장을 한다.
    5번마 가는 여자 잡고 오는 여자 막기. 그런데 일단 안 와. 고로 가는 여잘 잡을 수 없음. 
    6번마 여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위에서 밑으로 내려옵니다.
    7번마 여자의 적은 여자. 따라서 여자는 남자만 생각하면 미쳐버린다.
    8번마 너 같으면 기분 좋겠냐? 뭐 기분 좋다고? 
    9번마 저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인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잘났어 증말! 
    보는 둥 마는 둥 하다 다시 가던 길을 갔고. 
    그는 끝내 하워드네 집에 도착했다. 





    8

    하워드네 집. 
    조아키노 로시니 / 오페라 <세미라미데> - “그 충성을 영원히... 풍부한 상상력으로”
    둘은 소파에 자빠져 오렌지 쥬스를 마시면서 비속어로 표현하자면 편하게 이빨 까는 중.
   「이건 비밀인데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야. 그러니까 똑똑히 잘 들어. 알겠니? ~라는 말은 다 건너뛰자 친구.」
   「우리는 인사도 나누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안녕. 반갑다. 잘 살았냐. 뭐 재미난 일 없냐. 잘됐다. 들었다. 봤어. 뻔한 호평. 식상한 관전. 가식에 빈말에 다 그렇고 그런 말들. 지겹지도 않냐?」
   「너. 뭐야?」
   「내가 봐도, 존나 카리스마 있어!」
   「너, 혹시, 알고 왔니?」
   「그럼 모르고 왔을까 봐? 우리 사이가 원래 이랬니? 너 정말 이러기야? 어?」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다고 비밀이 없던 일로 되니? 순진하시게 이거 왜 이래? 어?」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너 나 감시하냐? 그래?」
   「그런데 왜 말을 안 했어?」
   「안 물어봤잖아.」
   「뭐?」
   「원하는 게 뭐야?」
   「많은 걸 원하는 건 아니야.」
   「그럼 적은 걸 바래니?」
   「적지도 않아. 챙길 건 0. 단지 내용물 확인하는 그 순간은 나와 함께. OK?」
   「그게 더 지독한데?」
   「넌 친구 잘 둔 줄 알어. 다 나나 되니까 그냥 뭔 일인가 슬쩍 보고만 빠지겠다는 거잖아. 안 그래? 딴 애들 같아봐. 난리난다 난리 나. 어?」
   「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난리야 난리긴!」
   「시끄럽고. 집어 올린 게 뭐니? 망망대해에서.」
   「뭐겠냐. 007 가방.」
   「열 수 있겠어?」
   「우리는 열지 않아.」
   「그럼?」
   「뽀개.」
   「뚫지 않고?」
   「그럼 내용물이 상하잖아?」
   「아 그렇겠구나. 그럼 그렇게 하든가.」
   「」
   「뭐해? 뽀개지 않고.」
    옛말에 그랬다. 꼬리 가죽만 벗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어디 흔하겠나. 하물며 꼬리가 보이지 않는다면! 꼬리는 뭔 놈의 꼬리. 관심 없고. 그런데 이 말을 왜 했지? 아하! 만약에 007 가방 안에 치타의 꼬리가 들어있으면 어떡하냐 라는 의문 때문. 밀가루랄지 무슨 설계도와 비밀문서, USB, SSD 디스크 막 그런 게 들어있으면 몰라도. 단순한 사진앨범이랄지 연애편지와 가터벨트니 뭐니. 막 그런 허접 시덥잖은 시시콜콜 잡다한 게 들어있으면 김샌다 그거지. 안 그렇겠나.
    어쨌든 하워드는 낑낑대며 공구를 쓰다가 멈추다가. 중간에 설명서 읽고 어쩌고 한참을 낑낑댔다. 
    NB는 음악을 바꿨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콘서트 아리아 “하늘이여, 당신에게 얘기할 수 있다면” K.418
   「하워드. 너 실력이 많이 줄었구나. 잘 안되니? 도와줄까?」
   「됐고. 가서 레모네이드나 하나 타 와라.」
   「그럴까?」
    도대체 내용물은 무엇일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 
    그런데 잠시 후. 
    썩은 미소 때문일까. 얼굴빛은 즉각 변했다. 물론 밝게가 아니라 어둡게. 
    왜냐하면 내용물은 달랑 쪽지 1개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묵직한 무게는 다 뭐야. 그건 가방 자체 무게가 그랬던 거뿐이고.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알고 보면 그게 또 썩 이상한 것도 아니다. 
    인공지능 지니가 다 헛다리를 짚었을 수도 있고. 하워드가 허당으로 밝혀졌다고 치면 되고. 
    아무튼 내용물은 연습장에 '사랑'이라는 글자를 연필로 써서 접고 접고 접어서 꼬은 쪽지 그게 전부. 뭐? 
    지금 이 양반이 장난하나. 그렇지만 하워드가 그를 부른 것도 아니고. 제 발로 남이 차려놓은 잔칫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고. 
    칠칠치 못하게 맺고 끊기를 잘 못하는 천성, 그 귀찮은 일 때문에 할 말이 할 일로 이어지면 좋으련만. 그게 값지다면 명화일 테고. 아니면 수다 3시간이자 어린이 그림 같은 일이고. 
    그런데 이번에 그 결과는 결국 꽝. 잘한다 잘해. 차라리 복권 꼴등 당첨이 나아도 훨씬 낫겠다. 
   「멋쩍게 왜 그래?」
   「넌 원래 그렇게 싱겁게 생겼냐?」
   「넌 뭐 얼마나 잘났다고 그래? 너 돈 많아?」
   「너 저번에 회사 관뒀다며?」
   「그건 또 어떻게 알았냐?」
   「그야 뭐 바람이 전해준 거 아닐까? 아니면 별님이 가르쳐줬거나. 둘 중 하나겠지.」
   「한동안 코빼기도 안 비추더니. 너 때문에 내용물이 바꼈잖아.」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얘가 얘가 생사람 잡네?」
   「야. 너 이제 가라. 그만 가라. 안 그래도 너 이제 갈려고 했잖아. 네가 억지로 꾹꾹 꾸역꾸역 눌러앉는다고, 그런다고 내가 너한테 눈치 줄 사람은 아닐 테지만 또 모르니까.」
   「안 그래도 가려던 참이었어.」
   「어쨌든 한동안 우리 보지 말자. 느낌 세하니까. 기분 떨떠름하다고. 알았지?」
   「너나 늬 말 지켜.」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기분이 착찹하네. 심하게 착찹해.」
   「서로 불편하군. 맞다 맞어.」
   「뒷수습은 자네가 수고해주길 바라네.」
   「뭐 인마?」
    레드와인빛깔 기대와 고르곤졸라색 예감은 결국 그 황홀한 결말은 결국 핏빛 재미없음이란 걸 깨닫고서 그는 퇴장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9

    NB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놀기는 싫고 일하기는 좋았을까? 좋고 싫고가 어딨어.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 뭐? 농담이고. 그런데 키스가 왜 싫다는 거지? 그야 당사자들 사정일 뿐. 그와 별개로 우리의 희망은 기쁨과 낭만과 재미가 끊이질 않는 인생. 그런데 그 기쁨이 난잡하고 낭만은 문란하며 재미가 질펀하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마음을 닫아야지. 그럼 몸을 열어? 그래서 여자들이 심신분리되는 건가. 심신분리고 나발이고. 일단 음악을 바꾸고. 조지 프레드릭 헨델 / 리코더와 통주저음을 위한 소나타 F장조 Op. 1 no. 11 딱 그렇게 일에 집중하려던 찰나 마크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마크. 너 그대로구나.」
   「넌 그럼 변했니?」
   「내가 변심했냐고?」
   「왜, 넌 마음이 바뀌면 안되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니?」
   「그러니까 무엇에 대해서?」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럼 너한테 묻지 누구한테 물을까? 사슴에게? 소에게? 벌에게?」
   「묻지 마.」
   「알았어. 묻지 말라면 묻지 않을께. 그럼 되는 거지?」
    그들은 구식 탱탱묵은 꽁트 같은 선문답으로 인사를 대신한 후 소파에 앉았다. 
   「너 누구 만나는 사람 있니?」
   「누구. 여자?」
   「그럼 남잘 말하겠니?」
   「여자... 있지. 많지. 감당이 안되거든.」
   「정말?」
   「뻥이야.」
   「그럴 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어.」
   「너 회사 옮겼다며?」
   「마누라를 바꿀 처지는 아니라서. 이사는 귀찮고. 그렇다고 일을 때려칠 수도 없고. 왜, 내 얘기 재미없니? 닥치라면 닥칠께.」
   「닥치긴 누가 닥쳐? 계속 해.」
   「그래? 그럼 그러고. 그런데 어디까지 얘기했지?」
   「그러게. 무슨 얘길 하던 중이었더라...?」
   「아 맞다. 나 이직한 거.」
   「(딱)!」
   「그랬어.」
   「뭐? 그게 다야?」
   「그럼 퇴직할 때 몰래 비자금을 한몫 챙겨 나올걸 그랬나? 그래서 너랑 나랑 절반띵하게?」
   「내 말은 그 말이 아니라.」
   「그래. 나 외롭다. 그 말을 듣고 싶었지? 나 사는 게 재미없어. 그래. 나 불행해. 사는 낙도 없고 취미도 예전 같지 않고. 새로 옮긴 회사는 더 재미없어.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고.」
   「회사 전체 성비는 어떻게 되는데?」
   「회사 전체는 모르겠는데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99 대 1이지.」
   「여자 99명에 남자 1명?」
   「아니. 여자 1명에 남자 13명. 여자 1명 빼고 나머지는 몽땅 다 남자.」
   「망했네. 그 여자 이뻐?」
   「걔 이쁘냐고? 너랑은 대화가 안된다.」
   「왜 대화가 안 돼? 너 혹시...! 설마 너 우리 얘기가 도청, 아니 실시간 라디오로 방청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니?」
   「어떻게 알았어?」
   「너 원래 약간 그런 스타일인 건 내 익히 잘 알고 있다만. 그래도 우리는 친구고. 우정이 추접스러워도 사랑이 고혹적이면 그만인데. 너 또 바텐더한테 있어 보이고 싶은 듯 말하니까 그렇지.」
   「난 널 못 믿거든.」
   「누가 믿으래?」
   「아니. 누가 시키진 않았지. 아 잠깐. 좀 전에 내가 그랬지? 내가 뭐라 그랬지? 너랑은 대화가 안된다? 아하~! 여자들이 이래서 날 좋아하지 않는 건가. 그런 말 하니까 나 꼰대 같지? 그치? 마치 난 꽉 막힌 상남자처럼 보이지? 나 상남자 맞아. 나 이래 봬도 꽤나 가부장적이거든. 그 대신 고지식한 반면 가정적일 수도 있어. 그럼 된 거 아냐?」
   「누가 아니래? 그런데 있잖아. 난 단지 네 형편이랄지 최근 안부는 그냥 대충 물어본 거지. 뭘 진심으로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않거든. 우리 남자들이 그렇잖아. 어디 남자뿐이니? 다 그렇고 그렇게 어른들 본심 서로 아는 거고. 인간성과 별개로 무의식은 잠재우며 논할 주제 적지 않은 건 불문율이고. 가식 절반에 위선 절반. 농담 반 진담 반은 그래서 때로는 조마조마에 간당간당할 수도 있고. 그러다 어쩌다 보니 비밀 탄로 나는 식이고. 안 그래? 그러니까 말이지, 어? 나는 아까 전에 그걸 물어보려고 했어. 말하자면, 
    네 사무실 여직원 손이 예쁘니? ~라고! 손글씨 잘 쓰냐, 그걸 묻고 싶었다니까?
    그런데 화자가 문장을 일부 생략해서 물어봤고, 청자는 뻔히 상식적으로 얼굴 이쁘냐로 들었고. 뿐만 아니라 뜬금없이, 어? 밑도 끝도 없이 뭔 놈의 착한 척? 얘가 혹시 또 요즘 짜증지수가 부쩍 상승했나 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도록. 솔직하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아는 동생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그렇다고 웃기지도 않아. 그러면 멋지기라도 하나? 그렇다고 하긴 뭔가 애매하고. 사정 쉽지 않네. 그렇지만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건 사실인데 인정하기는 싫고. 지는 비교는 더더욱 싫고. 딸랑딸랑 아부 듣기는 썩 나쁘지 않고. 자긴 소개팅 100번 하면서 여자 얼굴과 몸매와 나이 등 결혼 정보업체에서 소고기 돼지고기 등급 따지는 거랑 별반 다를 거 없이 숙녀의 미모와 지성을 측정해놓고. 나는 그렇게 B급 C급으로 평가받기는 싫고. 암만 봐도 꽉 막혔네.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그 대사를 들으면 괜히 웃기단 말이야. 그 대사는 뭐다? 
    형씨, 저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에요.」
   「그래. 나 꽉 막혔다. 됐냐?」
   「다 형이 너 생각해줘서 하는 얘기야.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네가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로, 딱 너 좋다는 여자? 줄을 선다 줄을 서. 알아?」
   「알긴 뭘 알어. 몰라. 모른다고. 나 바보다. 됐냐? 그치만 나도 알아. 왜 몰라? 알아. 다 알아. 상식적으로 차는 있냐, 성격은 어떠냐, 잘생겼냐, 잔재주는 어떻냐, 설마 가난뱅이는 아니냐. 따질 거 다 따지잖아? 그런데 도대체가 말이야, 왜 난 솔직하지 못한 걸까? 나도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그냥 성욕이 내게 명령하므로, 고로 그녀를 어떻게 한 번 해 보겠다. 그랬는데 잘 안 되는 일. 한두 번 몇 번 반복되니까 그거도 싫더라고. 재미도 없고. 넘어오지도 않고. 응? 아무튼 왜일까? 너 나 알잖아. 줘도 못 먹는다고 뒤에서 얘기하면 누가 모를 줄 아니?」
   「뒤에서 얘기하긴 뭘 뒤에서 얘기해. 액면 보면 그냥 아는 거지. 내가 이래 봬도 재미없음과 심심함을 겸비할 능력은 출중할지언정. 너 기분 나쁘지 않도록 돌리고 부드럽고 다정하며 포근히 그 자초지종을 설명할 재주에 대해선 아마도 무능력. 하오나 내 비록 무명일지언정 장남 차남 막내와 매끄러운 대화 스타일에 대한 7 대 3 법칙? 8 대 2랄지 6 대 4랄지 장녀 차녀 막내별로 구애받는 약간의 치우침에 대해 아주 무지한 어린애는 아니야. 따라서 내가 보기에는 따분함과 식상함 툭하면 기 빨리고 꼰대 지수가 오르락내르락 재미없는 일상에 대한 명석한 처방에 정통한 사람을~, 한 분, 알고 있는데. 어쩌면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한데. 그러려면 우선 네 인생을 찬찬히 알아야 하고. 현재 너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도 엑셀 파일에 기록해가면서 조사할 게 많고.」
   「그러니까 걔가 누군데? 뭐 점쟁이?」
   「아니. 정신과 전문의」
   「그럼 늬 말은 나보고 정신과에 가보라고?」
   「뭐 꼭 그래야 한단 말은 아닌데 뭐 한 번쯤 가봐도 나쁘지 않은 건 아닐까?」
   「그럴까? 그럼 내가 번지수를 잘못 찾아왔군. 아니. 잘 찾아와서 제 번지수가 어딘지를 안 셈이군. 나 갈께. 상담받으러. 갔다 와서 얘기해줄께. 너가 듣고 싶어 할라나 모르겠지만. 나 간다.」
   「내 얘기 아직 안 끝났어. 듣는 김에 마저 들으시는 게 어떤가 친구.」
   「혹시 모르니까. 그래 볼까?」
   「그래 보긴 뭘 그래 봐. 너 또 속으로 그랬지? 그러든가 말든가 라고. 아무튼 말이야 넌 뭔가 꼬였어. 뭐가 꼬여도 심하게 꼬였다고. 어? 그게 뭔 줄 본인이 제일 잘 알 텐데. 성격 좋단 얘기를 듣긴 듣는데. 자기 오빠가 같이 놀아도 무탈할 듯 걱정 붙들어 매게 하는 여자들에게만 듣고. 그러니까 말이야 넌 그래. 사람들 다 위선자 허영덩어리 가식쟁이 관심종자라고. 뭐 누구의 피앙세? 신랑감 뒷조사 들어가기 전에 결정적으로 넘어간 단서에 그것도 포함되지. 보기엔 촌닭인데 사는 형편과 인성과 외모와 자질에 비해, 어? 촌동네 그 오빠 무색해지도록, 조카가 상당한 부촌 지역 중학교를 다니네? 혹시 고급 사립초등학교 교복까지? 그놈이 그놈이듯. 긴가민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고,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어? 그년이 그년이야. 그래서 시소의 결론은 파혼. 사랑의 결과는 남남. 자유란 결국 남자를 원 없이 많이 만날 자유. 사랑? 사랑은 뭔 놈의 사랑. 전남친 포함해서 여자의 판타지를 적극적으로 실천한 것도 사랑인가. 사랑은 무슨, 개뿔! 순수 좋아하시네. 서류상 이혼남 이혼녀로 더럽혀지지나 않았나 몰라. 
    좌우지간. 넌 스스로 너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속물이라는 걸 먼저 인정해. 그러지 않으면 안 돼. 그럼 돼. 착한 척에 강박적으로 집착해서 좋은 점도 있는데. 그런데 그거 까딱 잘못하면 재수없음으로 비춰진다고. 지나고 보면 자기만 손해인 경우가 적지 않아. 응? 너 잘난 척하고 싶을 땐 정신연령 10살을 고집하고. 너 신나고 화끈하게 으쌰으쌰 놀 땐 어른인 거니? 나 고집피우고 싶은 건 끝까지 양보하지 않고, 내가 여자말 번역기에 100이면 100 다 맞춰주기는 싫고. 넌 어리고 돈 많고 직업 좋고 이쁘고 몸매 좋은 여자를 좋아하면서. 그러면서 누가 듣고 있기 때문에 못생긴 여자 얼굴 평가하면 안된다 입바른 얘기나 하고. 회사 여직원 이쁘냐고 물어보는 게 뭔 흉이라도 되니?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늬가 매번 허당이라고. 어? 겉 다르고 속 다르니까. 지는 남 비위 맞추는 거 싫어하면서도 억지로 먹고살아야 하니까 아부하고. 남자들끼리 우정은 으쌰으쌰 립서비스 안되고 듣기도 잘 안되고. 마이크 각자 켜고 각자 말하고 각자 안 듣고. 여전히 정신연령 20살. 그러니까 진짜 20살이 그런 아저씨를 만나면 처음에 좋다가도 좀 지나면 슬슬 피하는 거지. 너도 너 같은 여자를 만나봐라. 끝까지 버티면 용한 거고. 헤어질 때 할 말은 딱 정해져 있고. 그건 뭐다? 넌 너 밖에 몰라! 걔네들 거울녀 공주병 연예인병녀도 철들고 정신차리면 제정신으로 돌아와. 내가 상당 기간 널 관찰한 결과 넌 멜로드라마 체질은 전혀 아니거든? 늬 성격 맞춰줄 여자. 많았으면 좋겠지만 진실은 가망성 희막한 희망사항일 뿐. 눈은 여전히 높고 피부는 갔고. 머리도 빠지고. 아 서글프다 서글퍼. 그런데 친구끼리 회사 여직원 괜찮냐고 물어봐도 화 내고. 거울로 자길 보며 샤워할 때 자긴 잘생긴 거 같다고 하는데. 정작 여자 얼굴 얘기하면 또 짜증내고. 뭐야? 어쩌라고! 그래서 너 찜찜하니 짜증나고 찌푸둥 기분 저조할 때 할 말도 딱 정해져 있어. 항상 똑같아. 그건 뭐다? 바로,
    너 같으면 기분 좋겠냐?! 
    고지식 장남 스타일이 다 그런 건 아닌데, 여자 만나기 꽤 까다로울 텐데. 벌처럼 단물을 빨고 나비처럼 꽃밭에서 춤을 춰도 모자를 판에. 꼭 말을 톡톡 쏘거나 말이 잘 안 섞이거나. 이게 다 형이, 어? 형이 다 친하니까 얘기하는 거야. 어차피 이런 얘기 나중 듣기 싫어도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어? 나중 봐라 너. 고깝게 들리기야 하겠지만 들어서 나쁘진 않다 너.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긴 하다만.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게 만물의 이치인데. 콜라처럼 짜릿짜릿 진한 사랑일 것이냐. 영화처럼 낭만적인 연애일 것이냐. 유행가 가사 같은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불여우한테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네. 여자? 여자라면 신물이 나네요. (절레절레). 이게 다 남자 대 남자로 대화하는 거니까 말하는 거네 친구. 어? 누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듯 얘기하면 결혼도 쇼윈도로 살래? 그럴 자신 있으면 그러겠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 무엇보다 네 본심과 흑심을 말이야. 자기 군침은 인정하지도 않고 10살처럼 착한 척만 고집하고. 그게 뭐니? 대관절 사석에서 그녀들끼리 뭔 얘기를 하는지 알긴 아니? 말도 마라 말도 마! 왜, 속이 메스껍니? 뭘 잘못 먹었어? 내가 보기에는 아마 똥 마려운 거 같은데. 넌 어떻게 된 게 애가, 아니. 됐다.」
   「그래. 잘 들었다. 충고 괜찮네. 할 말 더 있냐? 없으면 나 갈께. 기가 막혀서. 아니. 너한테 하는 얘기 아니야. 그러라지 뭐. 하찮은 허당의 허깨비 같은 사랑, 나도 싫다 나도 싫어. 끝으로 한마디만 더 할께.」
   「그게 뭔데?」
   「나 삐지지 않았어. 난 삐지는 게 뭔 줄 모르거든. 나 간다. 안녕.」





    10

    아! 
    NB가 마크에게 해준 말 가운데 하나가 빠져서. 
    별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한번에 가는 긴 대사니까 듣기도 1번이면 금방. 옮기자면 이와 같다. 
   「너의 행태 그 전반적인 원리가 뭐랑 비슷한 줄 아니? 
    한마디로 여자의 내숭! 캬~, 어? 딱 내숭! 
    우리에게 여자의 내숭이 싫진 않지. 단지 그녀들에게 때와 장소에 따라 꼴불결일 수도 있다뿐. 내 남자에게만 나만 봐? 왜 안 돼! 그게 뭐가 나쁘냐 이치. 단지 오만 남자한테 다 꼬리치고, 웃기다면서 남자 한쪽 팔 때리고 팔짱끼고 매달리고 유혹하고. 여자들이 이 세상에서 최고로 꼴 보기 싫어하는 여자들의 행동. 단, 우리는 다르고. 여자의 우정에서 알게 모르게 오만 정 뚝 떨어지게 만들고. 그녀들 속 뒤집어지고. 응? 요컨대 내숭. 좋을 땐 좋은데 어떻게 그 기술을 구사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인 테크닉. 시의적절하면 귀감이요 아니다 싶으면 수작. 물론 남자의 개수작과 매칭하는 설은 논외로 치고. 그런 남자의 착한 척은 완벽히 여자의 내숭과 닮았다는 거. 정말 모르겠니? 
    육상, 수영 등 기타 다른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교육할 때 바로 그래서 꼭 그런다니까. 교습법 가운데 반드시 있어. 그건 무엇일까? 카메라로 본인 스윙을 찍어서 보여주는 거. 안 보여주면 모르거든. 너도 딱 그래. 사람이야 누구나 이중인격에다 속물이라지만 뭔가 꼬였어. 속에 쌓인 건 많고. 뭔가 있어. 때문에 당사자는 이따금 혼동스럽고. 옆에서 익숙하면 그러려니. 반면 생소하면 불편하고. 다 그게 그거. 딱 내숭! 어? 가짜 뻥 위선 연기 착한 척이란 말이야. 어? 너 지금까지 누가 그런 얘기 해준 적 단 1번도 없지? 그치? 내 그럴 줄 알았다, ~라는 말은 하지 않을께. 왜냐하면 <내 그럴 줄 알았다 ≒ 너 같으면 기분 좋겠냐>이기 때문이지. 인정 불인정? 당연히 인정하기 싫을 텐데 이런 말 꺼내서 내가 미안하다. 응?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야 정상일지도 모르고. 
    야 이 녀석! 내 친구야. 응? 그래도 옆에 누구 없잖아? 바텐더랄지 웨이트레스나 잘 보일 사람 없는데. 어? 그땐 친구 단점 말 꺼내지 않는 게 우리들 불문율인데, 지금은 아니잖아? 아 맞다. 너 아까 그랬지. 너가 라디오 방송 게스트처럼 사생활 일부분이 공적으로 노출되고, 추리소설 주인공처럼 도청된다고 느낀다는 거. 허허. 우리,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크크크. 하긴 볼 만한 스릴러 영화 이제 잘 나오지도 않지 뭐. 
    가령 TV 코메디 프로그램. 여러 종류 가운데 하나로 혼자 사는 연예인이 집에서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는 일명, 관찰 예능. 그거도 시청자들 의견 모아보면 통계 딱 나와. 도표 대번에 그려진다고. 어떻게 그래프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겠니. 보아하니 <여자가 나쁘다 여자는 영악하다 여자는 요물이다>라는 말장난식 일반화가 아니라. 그런 잔소리가 아니고 말이야. 딱 데이터베이스를 면밀히 집단지성이 감상한 결과 그 불변의 결론은 딱 그것. 관찰 예능에서 주인공으로 여자가 나오면 3가지 특징이 보이지. 
    첫째, 재미없다. 노잼. 개노잼. 왕노잼.
    둘째, 첫째의 예외가 희박하게 있긴 한데 예외가 거의 없음. 특히 미녀일 때 핵노잼 99.99퍼센트. 미녀? 안 그래도 어차피 젊음에 기인하는 미모. 화장 지운 체 표정없이 원판만 보면,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인 미모 수준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것 역시나 95퍼센트. 그래서 그런 꾸며진 미녀가 90살 되어 길에서 마추치면 스쳐지나간 뒤 절대 뒤돌아보지 않음. 그럴 수 없으니까. 다 똑같이 비슷비슷한 꾸밈녀일 뿐. 남은 나를 어떻게 볼까, 포장을 어찌 할까, 조명발 화장발 사진발. 지성미도 빠지지 않겠지만 저게 먼전데? 거기에 도대체 어떤 정량 얼마만한 노력과 시간이 투입되는지 알기는 아니? 그런데 그 과감한 시간 투자가 얼만데, 거기서 재미난 게 나올까? 나오긴 할 테지만 많진 않겠지. 대중적이기야 할 테지만 재미가 없다고 재미가. 어? 핵심은 노잼! 그래서 코메디 관찰 예능이 생활 다큐멘터리로 바뀌는 식이지. 
    셋째, 내용 뻔함. 그래서 그 재미없음을 뻔뻔히 편집하려는 실무자 입장도 이해가 됨. 먹고사는 게 그게 쉬운 게 아니야. 그럼.
    그야 뭐 TV 프로그램이야 코메디고. 우리는 연예인병과 관련없는 일반인이고. 그런데 남자가 뭔 내숭? 그럼 여자가 배짱? 정숙한 여인이 정말로 좋아하는 남자에게 구애하는 모습이면 멋질 수 있는데 그게 아닌 경우도 있고. 다시 말하자면 그거? 한마디로 완벽한 내숭이라니까 그러시네. 어? 내숭이란 남자에게 허락치 않는 그녀들만의 재능까진 아니겠지만. 내숭의 영역을 남자가? 그런데 남자는 눈이 높아. 그럼 남은 후보군은 뭐랄까 태생적으로 애교 부리기 싫고, 내숭도 없고, 그저 착해빠진 선녀 뿐이라는 말인데. 내가 널 모르니? 넌 여자 외모 엄청나게 많이 봐. 평균 이상이라고. 넌 여자 몸매에 혹하면 여자가 못생기든 착하든 성격도 안 보고 일단 고백 먼저 하잖아. 안 그래? 그런데 왜 사석에서 친구랑 대화하는데 여자 얼굴 얘기하면 안되니? 남자가 정상이라면 되고, 넌 안 되고. 왜냐? 왜냐하면 내숭이니까. 자기만 착한 척이라 그거지. 여자로 가정하면 그런 식. 자기는 미남 좋아하고, 옷 잘입고 멋지고 목소리 좋고. 한 숙녀가 
    A. 속으로는 무조건 잘생긴 남자를 환장하듯 좋아하고.
    B. 겉으로는 어쩔 수 없이 못생긴 남친을 붙여는 놓고.
    C. 흠 잡히면 즉각 내차던가. 아니면 갈아타던가. 
    나이에 쫓기니까 A만 고집했다가 첫사랑은 아직이고. 껄떡대는 남자들 만나는 주고. 하이에나들 사겨는 주고. 덤프트럭으로 100 트럭 왕창 그분들을 싫어다 노예로 받쳐서 여자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준다고 할지라도 그건 싫고. 딱 싫고. 혐오하고. 그래도 쫓기니까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도 없고. 아름다운 내 사랑 진짜 우리 오빠는 그 어디 있나 소식도 없고. 그러니까 육체적 사랑의 진도는 0. 남자친구는 바람피던가 복수하고. 그러므로 여자는 (개개인에 따라) A와 B가 간극이 적냐 크냐에 따라 나중 사랑이 기쁨일 수도, 슬픔일지도 모름. 결과는 천차만별. 나 착한 척 오질 때 나는 남자 얼굴 안본다, 나는 남자 성격 본다, 나는 착한 남자이자 인성만 바르면 OK다. 나는 나다 그거지. 그런데 나중 알고 봤더니 영심이 중의 영심이. 어? 그래서 미남 놓치고, 순정 떠나가고, 친구의 남친이 잘생기고 목소리 도톰하고 성격 좋은 거 보면 솔직히 말해서 속 뒤집어지지 않으면 비정상이고. 보이는 건 다 임자 있는 유부남들 뿐이고. 아니면 문어대가리 동성애자. 스킨헤드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농담의 시작은 가발 쓴 분께서 먼저 시작하니까. 넘어가고. 
    다 그게 그거. 원칙적으로 엄연히 모순이기 때문에, 따라서 [A B C] 라는 불편한 모순을 현실에서 함께하도록 구현하면 안되는 것. 그래서 남자는 타석 여자는 타율. 귀와 귀걸이니 액자와 명화요, 꽃과 화병. 다 그게 그거. 남자는 'A B C가 같지 않음' 라는 듯이, 남자는 그처럼 분리되기 때문에 연애는 얘와 결혼은 정실감과. 여성잡지 1.5 이상은 남자처럼 그렇게 되고. 여성잡지 1과 소녀감성은 그게 안되고. 그러니 저 'A B C 함께' 라는 모순이 가능하고. 응? 그러다 정신 차려서 사랑이 장기전으로 다정해지면 좋은데. 문제는 엄마 스타일이 일단 이모 스타일로 넘어가고 나면 그 다음은? 다시 되돌아올려나 아니면... 넘어가고. 너도 호프 축제는 TV에서 보고 동네 '뭰헨 호프' 단골이니? 극장 이름인 외국 지명을 갖다붙여서 피카디리. 피카디리 극장에는 가봤는데 피카디리 극장이 나오는 고전소설은 뭔지 모르고. 피카디리가 옆집 똥개 이름이던가 말던가 관심도 없고. 우리, S BAR, 이제 그만 좀 가자. 어디 괜찮은 술집 있으면 이제 좀 바꾸자고. 어? 그럴 때도 됐다. 어쨌든 여자는 그렇고. 남자는? 딴놈들은 몰라도 너라는 수컷. 
    솔직해야 할 때 가식적이고. 영악하지 않으면 안 될 때 마음 약하고. 나는 불순하고 싶은데 순수하니까 줘도 못 먹고. 회사 직원들 (개)허세와 유부남 친구들 (왕)허풍 때문에 속 뒤집어져서 뭘 주라느니 마라느니. 아직 친분도 미미하고 친근감 여린데 뭐, 첨 봤거나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 야 한 번 주라? 주긴 뭘 줘! 너 같으면 주겠냐? (절레절레)! 그래 봤자 씨알도 안 먹히고. 조과는 대실망이고. 여복은 어림도 없고. 여자들 허영심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고. 너 그처럼 계속 거꾸로맨으로 살면 인생 피곤해진다, 너. 어? 너만 재미없으면 몰라도 매번 공상을 부추겨서 언젠가 잔소리 한번 터지면 이처럼 여간해선 잘 못 멈춘다고. 어? 그런데 만약 널 좋아하는 여자가 있고, 그녀가 너의 어떤 부분들이 변하기를 바란다면! 음? 허허. 아니야. 수컷은 바뀌지 않아. 우리는 변할 수 없단 말일세. 그럴 수는 없는 거거든. 철들면 재미없어. 그래도 철은 들어야 하겠지만 일단 그래. 반면 암컷은 시시각각 아주 그냥 시시때때로 끊임없이 변할 테고 말이야. 하여튼 너 이기는 거 좋아하고 지는 거 싫어하잖아. 안 그래? 지는 비교 싫고, 딸랑딸랑 아부와 반짝반짝 애교는 좋아하면서. 어? 그러면서 포커페이스라는 기본, 포커판의 잔습관, 마초의 악습은 방임? 아니면 아예 판돈이라도 무진장 많니? 그러면서 기초는 나 몰라라 모른 체? 늬가 무슨 용가리 통뼈냐? 너도 암컷 싸움닭이니? 남자가? 어? 뭐 내숭? 그래?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응? 그러니까 늬가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는 거라고. 어? 넌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늬 연애 인생 판도가 바뀐다. 팔자 고칠 생각 있으면, 뭐, 그러든가 말든가. 제2의 전성기, 다시 부르고 싶지 않니? 어? 허허. 
    할 말 어쩌다 평소에 꾹 참고, 이건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다에 관한 기준선도 사람마다 세밀히 들어가면 제각각이겠지만. 그걸 뭘로 표현하는 게 좋을까만 한 20년 고민했다고나 할까? 그 결과 긴말 필요없이 단어 딱 1개면 충분하단 걸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얘가 도대체 왜 이처럼 꼬였을까 정신분석을 해 볼까 말까...(딱)! 그 정답은 뭐다? 옳커니, 내숭! 어? 내숭. 그래. 내숭. 늬가 뭐 케이트 페리냐? 너 남자야. 늬가 무슨 아리아나 그란데냐고. 뭔 내숭? 허허. 가부장적 고지식이 몇몇 비율 장남들 특징이긴 한데. 다 일장일단이 있는데. 넌 어떻게 된 게 애가 거기다가 그거 받고, 내숭 얹고, 이성을 보는 눈 높은 거까지 따블로 가냐? (몸짓) (절레절레). 그러면서 몸매 좋은 여자 보면 환장하고. 자기는 여자 얼굴 엄청나게 보고. 그러면서 사무실 여직원 글씨 잘 쓰냐 손 예쁘냐 물어봤더니 광분해. 뭐야 그거! 어? 뭐지? 코메디야? 뭐야. 이걸 퍽 섭섭해 하는 게 인간적일지, 아니면 축배를 들어야 할지. 응? 난 도저히 모르겠다. 물론 내 말은 분석이 그렇단 거고. 그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고. 자기 개성과 정체성, 바로 알고 아름다운 인생 살자는 의미지 무슨 딴지 걸고 훈수 두고 그런 거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뭐 미쳤다고 사고방식이 굳어지고 새로움을 받아들이기보다 보수적으로 세상사에 찌든 어른들께 말이야, 내가 뭐한다고 주제넘게 훈수하겠니. 단지 내가 말하는 건 그런 어떤 밑그림이 보여진다 그 정도. 응? 저번에 너가 장난처럼 말해준 거 기억나냐? 너나 나나 아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 뭐 그런 내용. 잔재주는 각자 달라도 잔지식은 그냥저냥 얼추 비슷하다는 거. 반대하지도 않고 늬 말마따나 그게 사실이고. 말 길어진 거처럼 나 자신에 대한 단점 꼬집자면 말도 못하고. 다만 방금 얘기했던 건 단점으로 보자면 단점이고, 희안한 성격이자 평소에는 상남자인데 얘가 언제 어떻게 어느 부분에 대해서만 유독 내숭을 떠느냐. 어? 도대체 왜 그럴까에 집중해서 보면 인문교양적 지성이고. 우리, 그 정도는 얘기해도 되지 않니?
    그런데 너 얼굴 표정이 대체 왜 그래?」 






    11

    그는 무식을 뽐내는 것 같아서 당분간 칼럼을 쓰지 않았다. 어쩌면 멍청함을 자랑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마도 횡설수설 뒤엉킨 사랑론을 재탕한다는 비난 그 환청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황홀감이라는 동력도 없고. 감수성은 원래 메말랐고. 모험심마저 매몰차도록 그를 외면했다. 여심의 감탄스러움이라면 짜증 지수가 바빠짐을 돋구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일 테고. 그렇다고 허영심에게 일상의 전권을 맡길 수도 없고. 교묘한 잔재주는 써먹을 기회가 통 없다 보니 기 빨린지 오래고. 저속한 취미 그게 뭐 재밌다고 이 판국에 등용시키겠나. 쾌락마에게 현혹되지도 않고. 스스로 발 달린 호박들을 꼬실 마음도 없고. 
    아! 때가 임박한 것일까? 상놈에게 새로움이 바닥났으니. 잡것이 원하는 무관심은 떠나라고 부추기며 물건을 푸대접하는 식이지. 그럼 정말로 당장 앞뒤 보지 말고 떠날까? 갈 데는 많아도 오라는 임이 없는데. 그 방안마저 냉담한 멍청가의 근질근질한 엉덩이를 섣불리 긁어주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빈첸초 벨리니의 은빛 출렁이는 달 같은 노래를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으니 보통 일이 아닌데? 그럼 어쩌라고요. 그래 봐야 딱히 대책은 가난하고. 고로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으니 NB는 마침내 올드보이가 된 것이란 말일까 아닐까. 사탕발림 립서비스는 숙녀를 예찬하는 데 써먹어야지, 이처럼 투정과 불평에 그림자를 드리우면 그건 정말 꼴 보기 싫은 어리광 밖에 안된다. 따라서! 그다음이 없는데 따라서는 뭐가 따라서인가. 할 말 없으면 소파에 자빠져 TV 나 볼 것이지, 어?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또 하고. 그래서 그는 터벅터벅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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