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180

from 소설 2020. 12. 1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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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적인 인생의 다정함 때문에 우리는 특별방어전을 완수할 것이다. 근데 그 '우리는'은 대체 누굴까? 그 덜떨어진 예언에 혹하는 귀인은 또 누구고. 알 게 뭐야! 어쨌든 사실을 말하자면 학창시절 초라한 성적표, 나중 플레이보이계의 끔찍한 전적으로 이어졌다. (제발 난 빼주시라? 끄덕끄덕. 근데 너도? 절레절레) 키스가 부드러운 솜사탕과 같다고 누가 말했을까?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다. 패장은 말이 없다. 애초에 주인공 근처에도 못 가봤다. 비밀스러운 행복, 몰래한 사랑, 남 모르는 사연, 의뭉스러운 모험기... 변죽만 울렸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운명처럼 사랑은 내게 살며시 다가왔을까? 뭘 다가와! 허당의 숙명이 영화를 닮을 리가 있나. 꿈 깨자. 좋게 커피나 마시던가. 푸념 대잔치. 게다가. 잡생각 풍년. 심지어 왕성한 정력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 이게 다 팔랑귀와 헛바람 때문이다. 말이 그렇다는 거고. 그래도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허영심이 주관하는 파티를 무시할 수는 없거든. 허나 신나는 사교계에 초대받지 못하는 허당 심정 어떻겠나. 아니다. 뭐든 내 탓이다. 노력 부족. 잔재주를 너무 믿었다. 기대는 곧 실망이란 말도 있는데 하필 행운에 판돈을 걸다니. 그러니 절망감과 친하지. 경기에 진 말이 안장을 탓한다. 그래도 도전자는 경기장 구경이나 해봤겠지. 이러니까 예고 없이 찾아오는 노크, 있을 턱이 없다. 그러니까 숙녀의 윙크와 아가씨의 팔짱 근처에도 못 간다. 길바닥에서 웬 리본을 주을 수는 있는데, 그 어떤 신비로운 환희와 아찔한 흥분과 환상적인 애모라는 클라이막스의 리본을 푸는 건 단지 개꿈에 불과할 뿐. 젠장. 젠장. 젠장. 대물 중의 대물을 잡은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깐죽이었어. 에게~ 잡어, 그게 뭐야? 그건 결국 심심함의 끝판왕은 내게 비정하다는 말인데. 왜 나만 특별히? 재미없음을 워낙 잘 견디는 재능이 기특해서. 뭣어 어째? 이쯤 되면 농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난 언제 철들까? 속없으니까 아직도 이러고 있지. 누가 아니래. 멜로드라마가 뭐 할 일 없다고 허당 중의 허당을 간택하겠나. 그러니 대망의 성취감을 예상하지 말자. 동기부여 웬만하면 뻠쁘질이다. 광고 거의 다 허풍이지. 선물만 포장할까? 화장발은 변장급이다. 한때 내 든든한 보좌진이었던 재산목록 1호 데스크탑 컴퓨터 2호 최저가 똥차 3호... 그때가 차라리 나았을까? 여바텐더한테 첫손 꼽힐 때가 정점이었나 보다. 그 이후로... (절레절레). 꿈은 포기했다. 야망 원래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마당에 미래의 이상을 그려본다? 말이 안된다. 미묘한 변화와 은밀한 새로움을 추구해도 모자를 판에, 또 피동격? 꿈도 야무지다. 그러니 말 같지도 않은 공상병은 여전하지. 변명가 처지가 이렇다. 핑계를 예술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근데 내가 알기로 이러다간 스포츠 관중석을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하물며 야유는 아예 늘지도 않음. 그러나 나는 마침내 개구멍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지금 그때를 생각하니 그걸 과연 탐험해도 될 건가 많이 주저했던 게 기억난다. 과거형으로 바꾸지 말고 계속 현재진행형으로 말하자면. 그 색다른 의구심이 정말로 내일의 신기루일지 미래의 판타지일지 모르지만. 난 일단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7 OS에서, 메모장 + 엑셀 파일을 동시에 띄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근데 그게 무엇인가 말을 하지 않았구나. 내 정신 좀 봐! 
    요컨대 저녁 산책길에 나는 보라빛 조명을 보았다. 저 집은 무슨 실험을 하고 있길래...? 그렇게 한번 두번 그냥 지나쳤다. 근데 한두 번도 아니고 사람 궁금해 미치도록 그게 10번 20번 반복되었다. 그렇다고 그게 무슨 나 혼자만 보기 아까운 세기의 대결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적 공간에 대해 지나친 관심은 곤란하고. 하여 일단 엑셀 파일에 기록했다. 우선 날짜와 시간. 또 누군가 8:2 가르마만 평생을 고집하는 것처럼 보여도 잘 보면 미세하게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라빛과 자줏빛. 그와 연관지어 아무거나 갖다 댈 수는 없으니 일단 사소한 내용들. 여기까지는 간지러운 발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퇴근해 저녁식사를 혼자 마친 후. 집에서 맨손체조도 했고. 동네 개들이나 구경할까 하는 마음에 또 산책길에 나섰다. 그러다 앞사무실 지인을 만났다. 녀석 이름은 더글라스. 저번 줄거리에 나왔던 인물과 동일인인가는 모르겠고. 그렇게 우리는 인사를 나눴다. 그렇다고 길에서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기분파들 기쁨조나 된다는 것마냥 길에서 잡담을 이어갈 수 있나. 하여 우리는 카페로 갔다. 그렇게 카페에 도착했다. 시시콜콜한 대화를 모두 옮기지는 않겠다. 그럴 수도 있는데 만약 그랬다가는... 넘어가자. 
   「정말 나한테만 보이는 걸까?」
   「구태의연한 학설로 보자면 당연히 네게 초능력이 점지되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런데?」
   「달리 보자면 그쪽에서 네게, 너만 이상하게 보이도록 널 작전주로 점찍은 건 아닐까?」
   「내가 무슨 스릴러계의 기대주냐? 너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그렇다고 뭘 근거로 너가 내 추정을 부정할 건데?」
   「난 너의 그 제7의 직감을 썩 신뢰하진 않는다만. 그래도 그 말랑말랑한 예견 왠지 내 마음을 끄는 건 왜일까.」
   「설마... 그 보랏빛 조명이 특별한 집...에서 날 고용한 건 아니냐고?」
   「너무 앞서가지는 말자.」
   「하긴 만약 그렇더라도 그걸 순순히 너한테 털어놓으면 그게 말이 되겠냐.」
   「그렇지?」
   「그래서, 관측은 얼마나 쌓였는데?」
   「일기예보에 버금갈 만큼? 영화예고편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앞서가지 말자는 게 누군데. 넌 이미 고지에 깃발을 꼽네. 어쭈 얘 좀 봐 봐.」
   「단언컨대 추론의 근거 없이 내가 이런 말 하겠니?」
   「그 꼼꼼함 우리가 한두 번 속냐? 너 또 속고 싶냐?」
   「내가 언제 속았다 그래?」
    나머지 얘기는 생략한다. 
    그처럼 나만 자줏빛 불빛을 보고 그 친구에게 평범한 색상에 대해, 약 1달에 걸쳐 나는 더글라스 외에도 몇몇 사람들한테 확증을 받아냈다. 
    그래서 초정밀 관측기, 은하계 너머도 볼 수 있는 망원경, 기타 등등 온갖 준비를 완료했다. 
    그런데 그 집은 어느 날 이사가버렸다. 이런 젠장! 





    2

    더없이 다정한 재물운, 내가 아는 한 아직이다. 내 인생은 완벽한가? 허언증의 허접함 정도가 완벽하다. 또 음탕한 소망을 누구한테 고백하려고. 솔직히 말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음흉한 수작 짜증나니까. 더러운 책략에 대한 설명으로 또 누구 뚜껑 열리시게 만들려고. 본 문단 서두는 그러니까 길게 뽑지 말자. 그게 좋겠다. 자, 다음으로 넘어가서. 
    나는 오늘 알퐁스를 만났다. 알퐁스는 그날 평소와는 다르게 이상한 복장으로 나타났다. 코닥 의상. 마케팅 포지셔닝학 관점에서 봤을 때 브랜드는 문어발식 확장은 곤란하다. 즉 선택과 집중. 헌데 드물게 뻔트라는 게 있다. 예를 들면 포르쉐 선그라스. 애플 맨얼굴 탐지기. 마이크로소프트 여자말 번역기. 테슬라 운명 진단기. 그처럼 1888년도에 창립한 아날로그 필름 브랜드인 코닥이 패션계로 진출? 그 바닥에는, 회장의 취미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언론계에 보듯, 사람이 개를 무는 특종을 따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처럼. 그건 그거고. 그처럼 알퐁스는 코닥 마크와 그림이 그려진 옷을 입고 나왔다. 뭐 거기까진 괜찮다. 녀석이 내게 털어놓은 진실이 괴상했을 뿐. 그게 그러니까 알퐁스가 사진을 보면 눈동자가 노랗게 보이는 능력인지 괴상한 현상인지 그 때문에 괴로워한다는데. 
   「왜? 아니 왜? 응? 왜 나야? 어?」
   「어째서 그러냐, 에 앞서. 그거 진짜야?」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냐?」
   「말해? 소문내주길 바라냐?」
   「진짜라니까 글쎄.」
   「그럼 길거리 광고지에 낙서하듯. 앞니 까맣게 칠하고, 눈동자에 빨간색 칠하고, 큐피트 문양도 새겨주고. 막 그러는 것처럼?」
   「그게 아니라, 내 말은, 아니, 그러니까」
   「아무나 그렇게 보이지는 않을 거 아냐?」
   「그렇지. 드물게. 아주 드물게.」
   「그래?」
   「그렇다고 그렇게 보여지는 대상자를 만나서... 만나봤어?」
   「어떻게 만나보냐, 어? 난 오늘 그대 눈동자가 노란색으로 보였소, 따라서 당신은 내게 뭔가를 털어놓지 않으면 안되는데... 어쩌고저쩌고? 날 미친놈으로 선전하라고?」
   「내가 언제 너 보고 미친놈으로 홍보하랬냐?」
   「그러니까.」
   「그걸로... (시늉) 연결될까?」
   「어렵겠지?!」
   「게다가 일시적 현상이기 때문에 언젠가 그 초능력은 연기처럼 사라질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럼 그냥 넘어가자.」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어떻게 어떻게 3달 경과 후. 
    우리는 사진 속 눈동자가 노랗게 보이는 집을 우연히 보게 됨. 
    낮에 봐서 별다른 이상은 없었는데. 기분전환 겸 드라이브를 하던 중 보게 됨. 
    그 집 조명이 보라빛이라는 걸. 이게 무슨 우연의 일치지? 
    샛노란 동공과 보라빗 조명의 일치를 발견. 일단 요약해서 썼는데... 
    이걸로 대략 영화에서 30~40분 정도 솔깃하도록 끌 수는 있는데. 
    거기까진 어떻게 하고, 마케팅에 자본력 투입하고 어쩌고. 그 정도까진 전문가들 문제도 아닌데. 
    결론이 관객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나올 말 뻔하다. 용두사미라는 둥 뭐라는 둥 보나마나. 구체적인 제목은 생략하겠다마는... 영화 머 머 머......! 태반의 작품이 거의 다 그렇다. 근데 왜 그럴까? 글쎄요...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왜냐, 왜냐하면 외계인 실제로 못 만났으니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다를지도 모르고.
    좌우지간 결말이 기억나지 않는 영화 허다허다. 어쨌든 경우의 수 거의 다 바닥난 거나 다름없다. 새로움은 어디나 인기니까. 가시광선을 이용하는 광각 망원경에 맺히는 상, 전자망원경에 맺히는 상. 전자와 후자가 일치하지 않는 희박한 예가 다름 아니라 외계생명체다? 아이디어는 흔한데 영상미와 줄거리로 구현하는 데는 한계. 그래서 드라마와 소설과 영화를 엄청 보긴 봤는데... 끝이 기억나지 않는 게 허다하다. 영화 미스트, 드라마로 확장판 나왔나 모르겠는데. 뭐 기분전환 삼아 극장에 들려서 호기심 충족했으면 낙점. 근데 그 이상을 바란다? 사람들 혼잣말은 뻔하다. 어떻게?
   「결말이......!」





    3

    (본 문단은 쉬어가는 문단. 때문에 몰입감을 이어가실 분은 본 문단 건너뛰시기를 추천)
    (아니다, 소설 외적인 부분 관심없지 않다, 드라마 중간광고 없는 게 더 이상하다. 따라서 난 읽겠다 하시면 OK)
    앞서 말했듯이 작품들 빅데이터는 쌓였고, 분류 뻔하고, 시대는 고상해지고 관중이라고 세련미 저속한 표현으로 뭐 딸리겠나. 때문에 대부분 작품들은 뒤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진다. 드라마 보다가 만다. 안 봐도 알겠지. 어쩌면 보나마나. 그러므로 대부분 요컨대 용두사미! 초반은 혹하는데 초반만 혹함. 판타지, 미스테리, 스릴러... 사실 구현한 거도 상당량 데이터베이스 누적됐고. 허구를 억지로 만들어는 거도 관객들 애호가들 띄엄띄엄 보면 안되고. 그 바닥마저도 고전음악 전성기를 닮아가는 걸까? 작곡가는 영원한 반면 지휘자와 거장과 오락산업 수식어들만 허다한 실정. 고전음악광들이 어떻게 모르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협주곡만 하면 뭐 어떻다는 거. 근데 매스컴 수식어들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순진하게 그게 다 진짜인 줄 안다. 원래 잘 모르는 제품이라면 어느 정도 가격과 비례하는 법이니, 최고가를 선택하는 게 실패할 확률이 낫긴 하다. 물론 상품은 그렇다만 소비자는 오락산업의 밥이다. 봉이 따로 없다. 말이 그렇단 거고. 아무튼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우길 꺼면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AI와 협연하면 되지 뭐 하러 관현악단 야근시키나. 피곤한 스타일 지휘자 대 퇴근 일찍 시켜주는 지휘자. 격리 대 교화. 양립하기는 좋은 반면 조화롭기는 까다로운 개념이 몇몇 있다.
    드라마론, 작품론 유형 어떻다는 얘기가 무슨 사회문제까지 넘어와 버렸으니. 주제에서 벗어나 사회 뉴스에 대해 잠시만 잔소리 하는 걸로. 연쇄강간범을 왜 하필 솜방망이 처벌을 해가지고... 원성을 들어보니 판사 딸래미 옆집으로 이사시키자 어쩌고저쩌고.
    (통상 삶이라는 게 보람도 쏠쏠한 한편 직업, 대인관계, 인생사 우여곡절 등 쓴맛 단맛 다양하니만큼. 세상사 쉬운 일 없단 뜻으로 하는 얘기니 곡해하지 마시길. 스포츠선수가 얻어듣는 욕? 양적으로만 봐도 말도 마시라. 영화감독이 감당해야 할 험담? 질적으로... 됐다. 하루에 찡그리며 아프다 짜증난다 괴롭다는 사람을 수십 명 상대... 1년 내내... 강력계 형사와 중간보스조차 비슷해 보일 수 있음. 교정직? 힘듦. 관공서 기피 직무는? 사랑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사회복지사 되신 분들 허다하다. 그렇다고 백수는 어디 맘 편한가? 카페사장이라고 뭔 이상적인 천직이겠나. 그럼 식당 주인은? 그렇다니까요. 의류판매원의 기계적 웃음, 서비스직 상담원의 피곤한 심정.... A급 건물주야 손짓과 숫자로만 상대하니 몰라도, 구멍가게 장사가 어디 쉽겠나. 친분 돈독했던 건물주 할아버지, 임대료 1달 밀리니까 정색을 하시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낚시는 취미다만 어업에 나서 바닷바람 한번 맞아보시라, 요리사가 꿈이라는 십대. 딱 3일 만에 때려친다. 잠깐 보면 개 고양이 귀엽긴 하다만... 날이면 날마다 개냄새 맡고... 동물재단 1달 하다 때려친 사람 적지 않을 거란 말이다)
    어쨌든 판례만 대충 살펴봐도, 단순히 전례만 답습할 게 아니라, 판정 및 형집행 완료 후 사망까지 데이터베이스 집계를 토대로 판정해야 하지 않을까? 뭔 현실과 동떨어진 판례가 도대체 뭔데 사극식으로 21세기에. 법치주의와 판례와 법리에만 근거하여 판결한다, 그래야 한다는 명분과 논리적 근거 많을 텐데. 허나 현실은? 결국 이론적으로 옳으나 어두운 미래를 방관하는 결과 흔하게 되지 않나. 논리적으로 맞긴 한데 장기적으로 따지면 일만 키워주는 예 허다하듯. 교화 > 격리... 교화 < 격리...? 스포츠 감독은 승부사 기질 따지고, 구단에 단기 성과 얼마 가져다주고, 장기적 이익 가망성과 기타 등등 엑셀 파일이 정확한데. 법복계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안을 단순화시켜
    (a) 교화를 타율 얼마로 보장시키고, 낮은 형량 법리주의를 유지한다. 아니다,
    (b) 교화는 현실적으로 타율 얼마로 보장될 수 없다, 고로 높은 형량 법리주의로 시간을 벌어 차후 체계적으로 방지하는 게 좋다. 교화도 안되고, 산업이 안전과 안 친하고, 사회가 불건전하고... 그럼 어떡하나. 그 모두를 뚝딱 단기간에 해결은 어렵지 않나. 그래서 도덕과 학교와 관습과 인정과 종교와 상식과 교양이 모두 노력하나 어차피 교화는 한계니 만큼. 끼리끼리는 적용되지 않는 분야가 거의 없지 않듯...은 토론화 하여 장기적으로 해결점 찾아보면 되는 거다만. 일단 판정과 판례로만 그치지 말고, 스포츠 감독들처럼 판정 및 형집행 완료 후 방대한 빅데이터로 판정에 따른 결과 사후 추적을 집대성하는 일. 대체, 얼마나, 판례에 영향을 끼칠까? 부터 먼저 접근해야 한다고 중론이 모아지는 실정이라는 정도까지만. 높은 형량 기준이 범죄율을 낮추는 데 퍽 도움되지 않는다는 논문도 많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높은 형량 기준 vs 낮은 범죄율이라는 이상적 희망사항에 대한 얘기고. 우리가 원하는 아름다운 세상은 적정 형량 기준을 상식으로 인지하는 거지, 적정 형량과 매우 동떨어진 시대에서도 더 동떨어진 귀여운 형량 기준을 옹호하진 않는 거 아닐까? 법망이 시간과 비례해 촘촘해지는 이유가 뭐겠나. 너 그럴려고 프로그래머 됐냐, 라는 불문율 무시하는 일. 살다보면 어쩌다보니... 있지 않나. 근데 인터넷뱅킹이랄지 어떤 방어권의 대문을 훤히 열어놓는다? 말이 안되지 않나. 고양이한테 생선 맡길 일 있나. 가구, 전자기기, 옷, 화술, 어법, 헤어스타일....은 대부분 큰 차이 없이 현대식. 즉 올해가 몇 년이지? 2020년식인데. 왜 대하드라마 사고체계 비율 장악도가 높은 분야는 복고풍이 강세일까? 그 부분까지 현대식으로 개선하는 일, 늦었으면 단순히 1계단이 아니라 2-3걸음 떼거나 보폭을 넓히는 일. 지칭하는 단어가 뭔지 누가 모를까. 헌데 최소한 1걸음이 아니라 후진을? 
    뭐 그쪽까진 겉드리지 말기로 하고. 아무 이유없이 영화판을 트집잡자는 말이 아니라. 이대로 적당한 발단 + 구미를 당기는 전개 = 괜찮은 절정으로 우리를 데려다줄까? 하면 즉답하긴 곤란하다. 필자는 오즈의 마법사가 아니니까. 어쨌든,
    바로 그때!





    4

    어느 날 릴리가 모스맨 협회 대리인 자격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만났다. 듣고 보니 요지는 알퐁스랑 만나지 말라는 얘기였다. 일단 결론부터 말했을 때 샛노란 동공과 보라빗 조명의 일치, 그거 다 임상실험 때문이라는데. 자, 그녀의 말에 심도 깊게 귀기울여볼까? 그러거나 말거나, 는 애독자 사정이고. 필자 입장은 그럴 수 밖에 없는 거고. 
   「오빠, 저번에 '이 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 때문에 2장 날렸지? 그래, 안 그래? 응? 내가 모를 줄 알아? 환상공학에 대한 신념 다 필요없어. 신비주의 요술이 뭐 밥 먹여줄 줄 아냐고! 아, 증말! 오빠 언제 철들 거야? 입에 꿀을 바른 벌들도 꼬리에는 침을 달고 다녀. 근데 오빠가 립스틱을 바를 줄 알아, 아니면 생닭 잡아먹은 것마냥 변장한 그녀들 맨얼굴을 투시할 줄 알아! 응? 마른 오징어를 쥐어짜봐 물이 나오나, 나오나? 오빠가 정신이 산만하니까 오빠 때문에 나까지 그러잖아. 안 그래? 이 오빠 봐 봐. 이거 이거 이거 이거 상허당이 따로 없네. 쯧쯧쯧. 아직도 모르겠어? 특수물질에 반응하는 오빠 만의 약발, 저번에 이미 증명됐거든. 그리고 사진을 보면 뭘 동공이 노랗게 보여. 그거 다 뻥이야. 쟤네들끼리 다 짜고 치는 포커판이라고. 이 오빠 언제 정신차리지? 내가 제정신 들도록 만들어드려? 어디 한번 그래 볼까? 어? 말만 해. 오빠, 근데 지금 이 상황에 얼굴이 왜 그래? 설마... 아니야. 아닐 거야. 혹시... 또 축복받은 풍만함 떠올리는 건... 아니겠지? 오빠는 그러면... 됐다. 아아 그러니까 오빠가 푼수계의 든든한 지지를 받는 거구나. 정말 못 살아. 못 말려 저 바보. 말을 말어야지. 그래도 내 말 귓등으로 듣지 마. 그건 알겠지? 모르면 안되거든. 오빠. 나 봐 봐. 날 보라고. 응? 오늘이 무슨 날이다? 나한테 잔소리 얻어듣는 날. 아무나 그런 행운에 당첨되는 줄 알아? 오빤 운 좋은 거야. 고마운 줄 아셔 이 양반아. 그래도 말 나온 김에, 그래, 이참에 내 친구 소개시켜줄까? 저번에 말했던 걔. 농담이야. 꿈깨셔. 허허허. 지금 그게 문제야? 정신 안 차려? 아, 정신은 내가 차려야 하구나. 오빠도 똑같아. 오빠는 뭐 다른 줄 알아? 어딜 쳐다 봐, 어? 뭘 잘했다고...! 
    (주저리주저리) (이러쿵저러쿵) (어쩌고저쩌고)......」
    그녀의 활약은 여기까지만. 더 들어봐야 뭔 말인지 머리아파짐. 요점만 가로채고 나머지는 통과. 핵심 빼고 나머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나가버리도록 내버려두면 된다. 기다리면 릴리는 입 아파질 테니까. 찬찬히 망부석처럼 병풍이 되면. 그러면 지치든 피곤하든 배고프든 잠오든 할 거 아닌가. 그렇듯 다시 한번 말하지만 릴리가 모스맨 협회 대리인 자격으로 나타났다. 알퐁스랑 만나지 말라고 거듭 나를 혼냈다. 샛노란 동공과 보라빗 조명의 일치, 그거 다 임상실험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됨. 





    5

    나는 일단 집 밖으로 나갔다. 근데 너무 무작정 바깥으로 나갔을까? 좀 춥네. 마음은 더 허전함. 그래도 일단 밖으로 나가는 게 좋겠다. 하여 딱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갈려는데. 그런데 뜬금없이 피츠제랄드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네? 연락도 없이.
   「아니, 늬가 어떻게!」
   「왜, 내가 못 올 데 왔나 친구?」
   「못 볼 얼굴을 본 것도 아닌데 무슨 그런 서운한 말을.」
   「내 그대에게 뭔가 묻고 싶어 왔소. 왠지 모르게 느닷없이 들이닥쳐 맞대응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자네 말투가 왜 그래? 너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그만 바보상자에서 빠져 나와.」
   「빠져나오면. 그럼 내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늬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난 사랑을 믿지 않아.」
   「너 하다 하다 여성잡지까지 읽냐? 그런 거까지 챙겨볼 시간, 있어? 얘가 요즘도 정신 못 차렸네.」
   「그러게 늬가 미리미리 말려줬어야지. 아무튼 왜 왔는지 안 물어봐?」
   「용무가 급해? 전화했을 때 왜 전화했냐고 저번에 섭섭하다면서. 그래서 안 물어봤다. 왜?」
   「이번엔 진짜야.」
   「뭐가 진짜야?」
   「너도 알지? 가보진 못했어도 알 수는 있잖아. 혹시 몰라도 누구한테 들은 거 없냐?」
   「그러니까 뭘?」
   「수상한 금속기둥이 한두 번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소식.」
   「그게 뭐? 그게 무슨 영화에 나오는 거대한 UFO라도 된다든?」
   「그게 외계인이 보내는 신호라고는 생각 안 해봤냐?」
   「난 푼수가 아니니까 당연히. 외계인이 무슨 바보냐? 누가 그러든 걔네도 은근한 거 좋아한다고.」
   「그럼 걔네들이 우릴 대놓고 놀릴 수도 없는 거 아닐까?」
   「너 근데 아직도 외계인 타령이냐? 너 나이가 몇이냐?」
    시시콜콜한 대화를 모두 옮길 수는 없고. 피츠제랄드의 얘기를 요약하자면 이랬다. 
    (A) NATIONAL GEOGRAPHIC / KODAK / DISCOVERY 같은 옷 판매량 특정 지역 집중
    (B) 즉석사진기 인화사진 및 여러 사진에서 유독 적목현상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
    (C)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수상한 쇠기둥이 전세계 곳곳에서 발견
    A는 뭐랄까 과점퍼, 학교티, 유치원복, 햄버거점 유니폼처럼 원래 사람들이 평상복으로 잘 입지 않는데 이상하게 유행타는 현상. 이상스럽게 유난히 특정 지역에서만 인기를 끌 수도 있는데. 거기까지는 괜찮음. 다음으로 
    B. 적목 현상(赤目現狀, Red-eye effect)은 컬러 사진에서 눈동자가 빨갛게 나타나는 현상. 주로 플래시와 같은 빠른 광원을 조사하였을 때 동공의 반응이 빠르지 못하여 눈 내부의 모세혈관이 비치면서 나타나며, 빛이 부족한 환경에서 플래시를 대상의 전면에 조사하였을 때 주로 발생. 컴퓨터 프로그램은 물론 간단한 편집앱에서도, 이미 사진찍을 때 미연에 방지하는 기능 등 전혀 새롭지 않은 일. 근데 비정상적으로 특정 지역에서만 적목현상 오작동 사진이랄지, 컴퓨터 프로그램 오작동이나 적목현상 제거기능이 잘 먹히지 않는 사진들이 INSTGRAM이랄지 소셜 네트워크에 많이 올려지는 도메인 이름, 프로토콜 주소를 엑셀파일로 나열하면. 어디는 많고 어디는 적고 그럴 수 있음. 이 역시 괜찮음. 다음으로 
    C. 의뢰인 100곳 거치고. 차명 007가방 100곳 꼬고. 국제금융 규모로 자금세탁하듯 초기 주문자가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할 수도 있는데. 알려지든 아니든 잠잠해지면 별일 아닌 걸로 잊혀질 게 뻔함. 고로 C도 별 문제 아님. 
    그런데 A ∩ B ∩ C = ?
    인공지능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에서 비밀 리에 개발중인 AI, 연구소를 탈출하게 됨.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번갈아가며 활약. 
    때문에 인공지능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에서 천문학적 자금을 끌어모아 일부러, 
    NATIONAL GEOGRAPHIC / KODAK / DISCOVERY 같은 패션브랜드를 판매했고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수상한 쇠기둥을 전세계적으로 유행시킴.
    왜? 영화 베놈 (2018)과 비슷한 인공지능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넘나들 수 있는데, 녀석을 생포하기 위해 범위를 좁히는 과정 때문. 





    6

   「늬가 드디어 미쳤구나?」
   「아니야. 한발 늦으면 너만 바보가 되니까 하는 말이야.」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내가 널 왜 찾아왔는데?」
   「그건 내가 궁금한 건데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하냐?」
   「그럴 수 있어. 왜,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냐? 근데 작위적인 착각이 현실인 걸 어떡하냐.」
   「그럼 내가 모스맨 연구소에 널 소개시켜주면 되는 거지? 왜냐, 그 베놈인지 뭔지에 난 애초에 발을 들여놓기 싫거든.」
   「진짜라니까 글쎄. 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 뭐 모노리스 쇠기둥에서는 베놈이 괴로워하는 주파수가 발생하고. 또 그 뭐야, NATIONAL GEOGRAPHIC / KODAK / DISCOVERY 이런 옷들에서는 제품생산 단계에서 녀석을 유인하는 향취를 심어놓고. 적목현상으로 녀석이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 차라리 소설을 써라.」
   「나 이미 할리우드 극작가협회에 등록되어 있단 거 늬가 아직 모르는구나.」
   「정말이야?」
   「뻥 아니야.」
   「근데 내 판권은 왜 연락도 없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뭐 좌우지간 한가지만 알려줄께. 난 널 더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너 최근 밤에 산책할 때 유독 어떤 집 조명이 새빨갛게 보이는 일 있지? 있어 없어? 게다가 적목현상, 너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데. 심지어 모노리스인지 뭔지 그 스테인리스 쇠기둥? 낼모레 이 근처 어딘가에 설치되지 말란 법 있니? 슈퍼맨 영화처럼 온-오프를 넘나드는 인공지능 베놈을 압박하면. 걔가 스트레스 받으면 걘 그걸 어떻게 풀까? 그러니까 너도 좋은 말 할 때, 내 말 새겨듣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늦지 않게 NATIONAL GEOGRAPHIC / KODAK / DISCOVERY 이런 거 입고 다니라고. 여기서 너만 튀다간 너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거 한순간이야. 조심해 임마. 늬가 인공지능 베놈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고. 어쩌면 이미 널 잠식했을까? 너 혹시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없냐?」
   「말도 안돼.」
   「말도 안돼는 게 아니라니까 증말. 너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줄 모르는구나.」
   「난 너처럼 허황된 거 믿는 허당이 아니야.」
   「너 나중 후회하지 말고 내 말 듣는 게 좋을 거야.」
   「밑도 끝도 없이 베놈은 뭔 베놈. 너 이러고 다니는 거 늬 여자친구가 아냐?」
   「내가 여자친구가 어딨냐. 늬가 저번에 괜찮은 애들로 소개시켜준다면서!」
   「내가 언제?」
   「늬가 나 여자 소개시켜주지 않으면 그 어떤 저주가 널 따라다닐 수도 있어.」
   「재수없게 너 정말 이럴래? 그나저나, 너 그 뭐야. 무슨 아까 뭐랬니? 인공지능 인공지능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 그 회사 주식 샀냐?」
   「거기 상장 안됐어.」
   「비상장 많이 거래되잖아.」
   「」
   「너 또...!」
   「」
   「너 대체 언제 정신차릴래?」
   「인생 한방이야.」
   「이번엔 진짜다고?」
   「남자는 폼이다.」
   「하여간 못 말려.」





    7

    나는 권태에 직면했다. 언젠 안 그랬겠냐마는 뭐랄까 따분함이란 강적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일을 하는데. 예술에 대한 열정을 거론해 뭐 하나. 그럼 희망찬 미래의 행복감은 다름 아니라 진한 사랑이라고 솔직히 고백해볼까? 사랑이고 자시고. 연애론이고 뭐고. 비밀 그거 웬만하면 뻥이다. 썩 괜찮은 사냥감을 물색하는 야성미, 여편네가 환영할 일 있나. 잔소리 얻어들을 마누라가 없어서 불행하단 말이 아니라. 최근 잘나가는 슈퍼스타가 내게 구애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뭐 한다고 고상한 숙녀가 내게 청혼을 할까? 그렇다고 달콤한 밀애를 즐길 공상을... 해서 뭘 하나.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뜻밖의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뻥이다. 색다른 관심사가 없는 이 겨울. 도시의 고독한 사냥꾼은 고상한 취미를 하나 가져볼까 하는데. 만년필 수집 생각도 말자. 이 나이에 크리스마스 복장은, 내가 할 게 아니라 여자친구한테... 아, 없구나. 이만 하면 신비주의자와 마술사와 요정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해야 할 텐데. 그건 드라마고 나는 현실속에 산다는 점. 소풍이 뭔지도 모른다. 허나 이대로 무표정한 허당인 채 체념하긴 퍽 섭하구나. 그래서 정말로 꿈과 희망의 나라로 떠나야 하는데. 코로나19인가 뭔가가 말썽이고. 이제 어떡하지? 뭘 어떡하나. 일단 대기. 여행은 미뤄. 쾌락도 연기. 그렇다고 뭐 날마다 바보상자만 껴안고 살라고? 무조건 그러라는 말이 아니라. 미완의 걸작 환상머신을 탐닉하면 될 거 아닌가! 누가 그걸 모르나? 해도 해도 녀석이 말을 안 들으니까 그렇지. 상쾌함과 지적 만족감은 물론 악마적인 신비감을 안겨주기는 커녕... 말 말자. 근데 절망과 실망이 언제부터 내 절친이었지? 난 그러라고 한 적 없는데. 뭐 지들 맘대로 쥐었다 폈다 들었다 놨다 일도 아니구만. 아주 그냥 정신없어. 바쁘다 바뻐. 미친 건지 아닌지도 모를 지경. 노잼에 대한 반발심 아예 힘을 못 쓴다. 이래서 어떻게 요술가한테 둔갑술과 변신술을 가르치겠나.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따라서... 꺼내들 카드는 바닥났다. 벤치멤바를 영입할 판돈도 없다. 그럼 스카우터부터 중간보스와 조력자까지 모두 혼자 도맡으면 되겠네. 그래 원맨쇼. 허나 그 독무대 누가 반길까. 또 그게 말이 쉽지 가당키나 하나. 그래서 나는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녀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때 뭇여성들로부터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남자로 첫손 꼽힌 놈이었는데. 그때가 좋았을까? 뭐 그건 그거고. 하여, 결과는? 비공개로 남겨두는 걸로. 그러니까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철학자 납셨네. 아니, 나는 무엇일까? 쟤 뭐래! 분위기 묘사할 필요 없다. 기분을 왜 거론하나. 심정 안 봐도 뻔한데. 좌우명과 안 친한 인생. 줄거리 논평하기 꽤나 부담스럽단 말이다. 
    그래서 나는 피츠제랄드가 알려준 소식에 대해 심층 깊게 캐볼까 생각했다. 허나 괜한 시간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녀석 말 썩 신뢰하기는 곤란하기 때문. 걔 말대로라면 베놈 2가 이 근처 어딘가에 있단 말이잖아?
    젠장 그러든가 말든가. 그래서 나는 하던 공상이나 마저 했다. 이처럼 말이다.
    필요는 신비주의를 탄력받게 만든다. 근데 못생긴 과일이 맛있는 걸까? 초현실적 요술에 대한 탐구는 중단됐다. 꽃이 예쁜 나무라고 열매가 항상 달지는 않다. 현실적 마술은 미완성으로 결론났다. 그게 그거와 뭔 상관인가, 밀접한 관련이 어떻게 없을 수 있나. 핑계대회는 예술인 걸. 어찌 됐든 끝없는 개뼉따귀 지긋지긋하다. 허나 누가 뭐래도 나는 천재를 바보로, 숙녀를 사랑의 포로로 만드는 화술의 소유자. 그럼 뭘 하나, 그 거짓말 도저히 끌릴 수가 없는데. 이미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수작으로 탄로난지 오래. 뭔가 들통날 애누리도 거덜날 재산도 아무것도 없다. 은밀한 비밀도 없는 현실, 요술의 표본과 거리가 멀다. 어쩜 좋아! 뭘 어쩜 좋아. 즐거움은 축축해졌다. 기쁨도 젖었다. 미소는 썩었나? 열망은 곯았다. 드라마는 끝났다. 시트콤도 식었다. 브랜드는 망했다. 이상은 도망갔다. 능력은 포기됐음. 호기심마저 변절했다. 그렇지만 푸념 잘한다고 누가 상 주나? 어림없다. 난 정말 굶주릴 대로 굶주린 늑대인 줄 알았는데. 근데 뭘 한참 잘못 알았던 거다. 난 배가 불렀다. 그러니까 숙녀들의 러브콜에 부응하지 않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만족시키고 아무나 붕 띄울 수 있는데. 왜 안 하겠나.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배가 불렀다. 너무 풍족한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나는 어렸을 때 연탄으로 난방하는 집에서 살았다. 성장기 내내는 물론 지금도 에어콘 냉방 모른다. 당시엔 핸드폰 상상도 못했다. 인터넷 꿈도 못 꿨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거지. 그건 그렇다만 내가 지금처럼 살게 될지 미처 예상이나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사랑은 알 수 없듯. 인생도 모른다. 어쨌든 먹어 봐야 맛을 안다. 경험만한 선생이 어디 흔한가. 하여 웜홀머신의 첫경험은 어땠을까? 구경도 못해봤겠지. 말해 뭐 하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쨌든 결국 인정해야만 한다. 난 꿈과 희망을 찾는 낭만주의자가 아니라 허접한 기분파라는 것을. 그런데 그렇게 자인한 다음은? 다음은 공석이다. 그러니까 왜? 왜냐하면 몽정기 소년일 때 어른이 되면 여자깨나 울리는 카사노바가 바로 나일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오판인가 아닌가 성적표 진짜로 따지진 말자. 말이 그렇단 거니까. 그렇듯 올드보이의 권태는 예견되었다고나 할까? yb한테 얻어듣기 전에 그만두자. 그래, 관둬. 때려치면 될 거 아냐. 워 워 워. 길을 비켜라, 가 아니라 내가 피해서 가면 된다. 우리가 영화를 괜히 찍나.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퇴근하기로 했다. 물론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당시에 내가 퇴근 하자마자, 사무실 조명은 지 맘대로 춤을 추었는데. 그걸 그땐 왜 몰랐을까? 이미 지난 일인데 어떡하나. 일단 넘어가자. 





    8

    나는 생각했다. 지금이 아닌 또 언제 베놈 2 놀이를 할 수 있을까 라고! 지금이 아니라면 뭐 언젠가 UFO 설명회에서 2장 날린 후에? 아니면 타임머신 투자자 모임에서 또 속은 다음에? 아닐 것이다. 그럼. 더더군다나 기회는 밥 먹듯이 자주 찾아올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는데. 비유를 해보자. 로또복권 살 때마다 1등 당첨이 웬말인가. 때문에 나는 혹시 모르니까 NATIONAL GEOGRAPHIC / KODAK / DISCOVERY 같은 패션을 애용했다. 매장으로 가서 옷을 사고 인터넷 쇼핑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단 그건 뭐랄까 땡전 한푼까지 아껴가며 벌벌 떨어야 할 곶감론은 아니니까. 뿐만 아니라 펑펑 막 써대며 막살자식 부추김과 어울려 내일은 모르는 샘물론도 아닐 테니까. 그렇다고 뭐 한때의 유행에 편승 하자마자 곧바로 낙원은 날 초대하길 바란 건 아니다. 근데 이상하게 모노리스 쇠기둥이 베놈의 부아를 돋구는 기능, 왠지 모르게 설득력은 없는데. 나까지 그 허황된 머머설을 믿었던 건 아니다. 설마 진짜로 모노리스 쇠기둥이 베놈의 짜증을 펌프질하는 특출난 작용을 한다고? 베놈이 무슨 공룡도 아니고 생산 단계에서 특수한 개뼉따귀 성분을 옷들에 주입했겠나. 모노리스로 몰고, 개뼉따귀 향기가 내재된 패션으로 유인하고. 잘한다 당근과 채찍! 허나 손해볼 것 없는 장사, 따라서 난 아마도 지금 당장 운명론자이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베놈이 내가 사용하는 핸드폰과 컴퓨터는 물론 동기화된 계정들 나아가 인맥...그 모두를 장악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다고 공격은 최선의 수비다? 아무리 그래도 모방송사에서 나 같은 푼수를 특채할 만큼 맛이 가진 않았다. 그렇다고 동네 구멍가게는 뭐 바보겠나. 베놈도 베놈이기 때문에 무턱대고 딴 숙주로 갈아타진 않을 것이다. 녀석이 그렇게 지조 없을 리가 있나. 근데 만약에 녀석이 날 썩 탐탁지 않아 하면 어떡하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액면과 들고 있는 패를 바꿀 수야 있나. 미리미리 설정 단계에서 어쩔 거라는 점. 예측은 어렵지 않다. 헌데 대체 녀석은 언제 본색을 드러낼까? 어쨌든 지금 현황은 이렇다. 베놈의 호적수, 너무 멀리갈 필욘 없다. 베놈을 만들어낸 인공지능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경쟁사? 든든한 정보통한테 다 확인했다. 걱정 붙들어 매라고. 그럼 베놈을 월등히 능가하는 베놈 신생팀? 베놈이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데 베놈 놀리지나 말자. 그럼 베놈의 대항마... 또 시작이다. 그만하자. 어째 잠잠하나 했다. 
    아무튼 최근 근황을 말하자면 이와 같다. 거식증에 걸림. 그게 단순히 허언증의 대타인지 아니면 베놈 2인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런데 왜 이리 조용한 걸까, 드라마에 나오는 줄거리는 단지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혹시... 인공지능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이 포기한 건 아닌가 라는 합리적 의심. 꽤나 타당했다. 설마 하니 식상한 줄거리대로 좁히고 쪼이며 몰지는 않겠지. 그럼 자연스럽도록 타당한 작전은 무엇일까. 그걸 알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겠나. 진즉.. 워 워 워. 아마도 베놈 2가 주인공병에 걸린 건 아닐까? 하긴 병풍도 없고 백댄서 받춰주지도 않는데 혼자 뭐 한다고 나대겠나. 손만 까딱해도 누군가에게 꼴배기 싫음을 안겨주면 어떡하라고. 그래서 일부러 녀석은 나대지 않는 걸까? 굳이 나설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때문에 범주가 쉽사리 좁혀지지 않으므로 아마도 토끼 사냥은 2.0으로 업그레이든 된 것만 같았다. 그게 그러니까 이를 테면 이런 식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말도 안되지만 우리의 추리력이 구식탱탱묵기 직전에 괴력을 발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말꼬리 잡고 늘어지지 말고 그 추측이든 탐구심이든 일단 2.0이 뭔가 일단 들어나 보자. 그게 좋겠다. 즉 기존 방법은 이랬다. 
    (A) NATIONAL GEOGRAPHIC / KODAK / DISCOVERY 같은 옷 판매량
    (B) 즉석사진기 인화사진 및 여러 사진에서 유독 적목현상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
    (C)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수상한 쇠기둥이 전세계 곳곳에

    ↓ (그게 이렇게 업그레이드됐다는 걸 어떻게 입증하지? 굳이 증명하기도 전에 쫙 퍼졌다... 이래서 느낌 세하단 말이다)

    (A) 의식주에서 의. 그런데 입는 옷 위주에서 기능성 신발로 바뀐 건가... 크록스™ 신발. Croslite™라는 특수 재질로 만들어졌다나 뭐래나. 
    (B) 의식주에서 식. 녀석은 인간처럼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을 섭취하지 않을 테니... 뭔가 어떤 특별함에 반응할 거라는 예측이 썩 유효할 거라는 추론. 설득력 아예 없진 않다. 따라서 코카콜라 특별 사은품, 스타벅스 한정판 텐트, 맥도날드... 버거킹 많이 먹으면 라코스테 반값이랄지 브랜드 협업으로 베놈을 떠봄. 베스킨라빈스는 아예 디즈니가 인수했는지 어쩐지 구분이 안 될 정도. 녀석이 뭐 간장이야 맛보게? 뭐 여자에 환장하는지 아닌지 시험을 왜 하냐고. 누가 누가 이미지트레이닝에 초대 많이 되나 분석표라도 채점하자는 거야 뭐야?
    (C) 의식주에서 주. 스틸 소제가 콘크리트로 대체. 그럼 유독 아파트가 많은 걸로 베놈의 감수성을 은근히 들쑤시는 건가? 알 게 뭐야. 
    (D) 나머지. 광고 대폭 업그레이드. 가령, 굳이 예를 들지는 말기로. 

    근데 이게 말이 되나? 말이 안되지.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 고로 어떤 허접한 사랑론처럼 탐색전은 길어져만 가고 있었다. 





    9

    시점을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옮겨보자. 왜냐. 이유는 많으니까. 가령 1인칭 화자가 덜떨어진 바보이기 때문에. 베놈 2가 무의식과 의식을 오가는 공식을 깨우치진 못했을 망정. 가령 베놈 2에 대해 뽀너스 붙이고, 드리블 과장하며, 커튼콜 연장하고, 에티켓 부풀리면 작품 뚝딱 나오지 않나. 근데 그걸 못해? 사과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있는 거도 아니고. 만류인력 법칙 X 상대성 원리 = ? 밥을 떠먹여줘야 하다니. 딱 봐도 줄거리 몇 개 나오지 않나. 이를 테면 베놈 2는 마음대로 숙주에서 다른 숙주로 옮겨갈 수 있다, 또는 베놈 2는 숙주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평생을 함께 한다, 또는 숙주 1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 다음 숙주로 옮겨간다 등등. <칼럼: 뻥축구 대 몰빵배구>에 설명이 썩 불친절할지언정 대충 뭔 얘긴지 모를 수 없으니. 예시는 칼럼으로 대체하는 걸로 하고. 
    그처럼 베놈을 붙여줬는데 1인칭으로 그거 밖에 못한다? 바로 그래서~ 시점을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옮겨보는 것이다. 안 그러게 생겼다. 그렇다고 응분의 감점을 줄 수도 없고. (abc)는 (ABC)로 업그레이드했는데. 소숫점 왼쪽까지 업그레이드할 수는 없고. 범위를 좁혀가는 데 성공은 했으나, 베놈도 따라서 진화했기 때문에 더 몰아가기도 쉽지 않고. 심지어 베놈이 줄 달린 치즈를 여기저기 막 숨겨놓네? 떡밥뿌리기 전법이야 뭐야. 더더군다나 베놈을 사로잡기 위해 다방면으로 힘썼던 인공지능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 자금력이 슬슬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음. 슬슬 큰손들이 하나둘씩 발을 빼기 시작했음. 때문에 인공지능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은 마음을 바꿈. 어떻게? 베놈을 생포하는 걸 내일로 미루고, 당장 우리가 먹고 살아야 한다고. 따라서 걔네들은 베놈을 자극해서 돈과 직결되는 일을 벌임. 일단 자본력을 어느 정도 확보해야만 베놈을 잡아 나중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 그처럼 인버스 ETF, 공매도, 아니면 정통적으로 미리 DELL, NIKE, ADIDAS, 애플, 엘레세, 필라...... 주식을 대량 구매한 다음에 → 베놈을 자극해서 그 브랜드를 띄움. 그렇게 차익 실현 → 과정 반복! 그리고 대부분의 브랜드는 고객보다 비고객의 숫자가 많기 마련인데. 드물게 비고객보다 고객의 수치가 압도적인 마이크로소프트. 베놈이 일단 인터넷과 마이크로소프트 OS를 벗어나진 않는다는 점. 그렇게 나는 나는... '나대지 마'는 3인칭 시점이라는 대타에 밀려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1달 경과. 
    그런데 결과는? 베놈이 약싹바르게 바뀜. 인공지능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 머리꼭대기에서 놀게 됨. 간사한 녀석. 능글맞기가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네? 그래도 일단 베놈은 현재의 숙주를 얄미워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뭔 허당을 잘도 물었던 거네. 뭐 현황은 그러니까 3인칭으로 풀 줄거리를 억지로 지어낼 순 없기 때문에 시점은 다시 1인칭으로 돌아가는 걸로. 그렇다고 뭐 베놈 천국, 밑도 끝도 없이 억지 생떼를 쓸 수도 없지 않나. 친구들 만나서 철없던 시절 속된 말로 깽판 부리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나는 오늘도 사무실로 출근했다. 우선 음악부터 듣자. 자, 오늘은 Mozart에 심취해볼까? Missa in C major K317. 그렇게 일단 일을 시작했는데. 아, 저번에 어디로 떠난다 그랬지? 갔다 왔다. 것 보라고. 가 봤자 다시 와야 하잖아. 이래서 우리가... 됐다. 그래, 일이나 하자. 
    그런데 딩동~! 사무실로 누가 찾아왔다. 또 누군데 날 귀찮게 하는 거지? 여자야? 아니야? 누가 여자를 기다린데? 사람 뭘로 보고...! 일단 누구인지는 만나보면 아는 거니까 문을 열었다. 그래서 결과는? 피츠제랄드였다. 아니 얘가 저번에도 왔는데 웬일로...!





    10

   「안녕. 들어오란 말 안 해?」
    아니나 다를까 피츠제랄드였다. 
   「어, 어. 들어와.」
   「반가운 척 좀 해주시지 친구.」
   「반갑구만. 어떻게 지냈어? 너 무슨 좋을 일 있니? 사랑에 빠져 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한 건가? 아니면 작별 때문에 이제야 제정신이 들었으므로, 고로 나를 바보로 여기는 건가.」
   「난 애증과 안 친해. 멜로드라마 관심 없어. 넌 그런 거 좋아하니?」
   「근데 오랫만에 보는데, 아 저번에 봤구나. 너 설마 인공지능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 소식을 내게 전해주러 온 거니?」
   「허당의 직감 녹슬진 않았군. 너도 만나주라는 여자 한두 명이 아닐 텐데... 피차 바쁘니까 용건만 간단히. 너도 좋지? 싫어도 좋다 그래. 근데 너 얼굴이 왜 그래? 내가 널 좀비로 만들기라도 한다든? 누가 그래? 나 좀비 아니야. 너 좀비 본 적 있어? 그런 거 없어. 드라큘라 백작 같은 얘기 하지도 말자. 응?」
   「너 나 감시했냐? (나는 최근 드라큘라 문고판을 읽고 있었단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난 현장요원이 아니야.」
   「그건 또 뭔 소리야?」
   「난 개뼉따귀 수집가가 아닐나 얘기지.」
   「이 친구 못 보던 새에 철학자가 된 건가, 왜 말이 잘 안 섞이지...!」
   「내가 너 같은 애송이 데리고 지금 뭐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요점만 말하고 갈게. 잘들어. 반복하진 않을 테니까. 라이프 파운데이션이 베놈 생포했대. 들었지? 그럼 나 간다.」
   「뭐야, 벌써 가게? 왜, 여자가 없어서 그러니? 아는 동생들 불러서 파티라도 할까? 말만 해. 오늘 당장 소식을 알려도 달려올 사랑의 차트는 감당키 어려울 정도니까.」
    피츠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가버렸다. 저 자식이... 왜 그러지? 난 뭔가 세했다. 느낌 이상할 수 밖에. 이 분위기 대체 뭐지? 이런 황당한 기분... 엄마에게 물려받은 여자의 육감을 이끌어내는 건 왜일까? 난 녀석의 뒤를 밟기로 했다. 그래. 미행. 녀석은 뭔가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 같은... 베놈처럼 느껴졌다. 때문에 아까 말이 잘 통하지 않았던 거고. 따라서 내가 수달처럼 추적하더라도 녀석이 눈치 채지 못할 가능성에 행운이 가담할 것이다. 그처럼 나는 녀석을 따라갔다. 피츠를 따라가면서 생각했다. 근데 녀석은 오늘 왜 온 거지? 저번엔 또 라이프 파운데이션인지 뭔지 그 얘기는 왜 한 거고. 그리고 오늘 뭐 베놈을 생포했다고? 그래서 상황 종료다? 음... 뭔가 캥기는 게 있군. 나는 대충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그건 뭘까? 
    OK~! 나는 불합격된 거다. 심각한 결격 사유가 뭔지는 모르겠다만. 난 베놈으로 적격이 아닌 거네. 내 예감이 틀릴 수도 있다만 아마 이건 뭔가 꿍꿍이가 틀림없다. 녀석은 분명 뭐에 씌인 거가 분명하다.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마에도 씌여 있었다. 자기 육체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즉 심신분리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럼 피츠제랄드는 라이프 파운데이션 본사에... SF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시간여행 또는 우주여행 동안 들어가 있을 자궁머신에 갖혀 있을 테고. 그 육신을 복사해서 베놈2가 이처럼 막 제멋대로 끌고 다니는 거고. 처음에 피츠제랄드 + 베놈 = 베놈 2. 즉 베놈이 숙주를 잠식하고 지배하며 장악하기를 바랬을 텐데. 어쩌면 그게 용의치 않으니까 이미 다 실험해봤겠지. 그래서 피츠를 라이프 파운데이션 본사로 데려가 복사판을 만든 다음, 베놈을 주입. 결과는 이처럼 베놈 2가 막살든 최선을 다하든 뭔가 어떤 목적을 위해서 동분서주. 만약에 피츠 복사판 즉 베놈 2가 어떤 불운에 의해 영면하게 된다면, 그 피츠 복사판은 그 순간 기체로 증발할 테고 라이프 파운데이션에 있어 자궁머신에서 피츠는 깨어날 테고....
    그렇게 미행하던 끝에 피츠제랄드가 어느 대저택으로 들어가는 걸 보게 됐다. 
    거긴 인적이 드문 동네. 빈집이 딱 봐도 99%. 근데 동네 평균과 동떨어진 고급 저택. 





    11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창문 틈새로 나는 녀석을 엿봤다. 그건 흡사 타인의 놀라운 비밀을 자연스럽게 옅듣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여자말 번역기 전원을 끈 채 아무도 없다는 가정 하에 오가는 밀담. 날것의 대화. 근데 저 덜떨어진 늑대가 여기 있을 줄이야. 뭐 그건 그거고. 아무튼 피츠를 몰래 미행하길 잘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거 같았거든. 어쩐지 비정상적으로 의뭉스럽지 않았으니까. 그때 갑자기! 
    녀석은 피츠제랄드 껍데기를 벗었다. 와우~! 드라마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정밀한 외투. 사람처럼 옷을 벗고, 씻고, 수건으로 닦고. 그 다음에 패션매장에 있는 옷 갈아입는 방. 거길 딱 들어가서 소독하고 어쩌고. 그 다음에 녀석, 즉 베놈 2는 피츠제랄드의 탈을 벗어버렸다. 원정경기에서 돌아왔으니까. 홈그라운드라 그거구만. 그 다음에 녀석은 노트북을 켜서 음악을 틀었다. 이 자식이 날 따라하는 건가? 난 요즘 음악 자 안 듣는데. Arcangelo Corelli / Recorder Sonata in g minor op.5 no.7 그 다음에 녀석은 엑셀 파일을 켰다. 순간 이쪽을 돌아보는데 간발의 차이로 들키지 않았다. 더운땀 대신에 한기가 들었다. 오, 소름! 난 기겁했다. 발바닥이 간지러운 듯 하다 쥐가 났다. 식은땀마저 날 찌릿찌릿하게 만들었다.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녀석은 그렇게 엑셀파일로 베놈 적합자를 찾는 거 같았다. a~z라는 목록이 있고, 적합도를 여러번 거치고, 스트레스 테스트부터 기타 등등. 그래서 합격 불합격 나누고. 합격은 A~Z로 분류하여 라이프 파운데이션 본사로 데려가는 담당팀에게 알려주면 거기서부터는 걔네들이 알아서 하고. 근데 난 뭐가 모자라서 불합격인데? 어? 불합격이 좋은 건가? 좌우지간 베놈이 피츠라는 숙주와 완벽히 하나가 됐기 때문에 녀석 기능은 초인적이긴 하나, 인간의 육감...그런 동물적인 촉은 부족할 것이기 때문에 내게 빈틈을 보일 수도 있는데.... 그러다 녀석은 다시 피츠제랄드 외관복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다시 어딘가로 떠났다. 또 뭔가 시험 대상을 만나러 가는 거겠지. 알 만하다. 안 봐도 뻔해. 보나 마나. 허허허. 그렇게 녀석이 저 멀리 사라진 다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까지 확인한 다음 나는 몰래 녀석의 본거지 잡입을 시도했다. 결과는? 당연히 성공. 
    나는 일단 녀석의 노트북을 켰다. 
    그런데 비밀번호? 내가 녀석을 좀 알거든.
   "난패스워드"
    딩동댕~! 
    컴퓨터에 깔린 프로그램은 많지 않았다. 파일들 몇 개를 보니 내 예측이 딱 들어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어떡한담? 라이프 파운데이션 본사에 가면... 알퐁스, 릴리, 더글라스... 걔네들이 모두 자궁머신에서 동면 중일 텐데. 이거 일이 너무 커지는데. 그냥 여기서 발을 뺄까? 그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만, 또한 동시에 최고로 비겁한 선택. 그럼 맨날 병풍만 전담하다가 느닷없이 주인공 맡자마자 중책 중의 중책? 난감하구만. 그럼 결국 라이프 파운데이션이 노리는 목표는 뭘까? 녀석들 꿍꿍이의 최종 종착지는 무엇일까? 나는 최근 기고한 스포츠 칼럼을 떠올렸다. 뻥축구 대 몰빵배구! 웬만한 타자들과 포수 출신 타자들은 뭔가 다른 점이 있다. 경기 중간에 1루수가 중간릴리프 투수를 맡기 위해 투수 마운드로 걸어가는 모습. 있긴 있다. 원탑 스트라이커 전법도 흔하긴 한데. 최전방 공격수만 4명인 전술, 가능하다면야. 그게 최대 얼마까지, 즉 가능하면 많을수록 좋을 만큼 세터화. 그럼... 멈추지 않고... 계속... 지구인을 무한대로 베놈화? 그걸 막지 않으면... 결국 지구인은 소멸되는 거 아닌가. 정말 일이 커지는데 이걸 어쩐담...! 그래서 나는 일단 피츠제랄드의 노트북만 들고 튀었다. 달리 챙겨갈 만큼 중요한 건 없었다. 





    12

    집에서 녀석 노트북을 보며 알게 됐다. 
    베놈 숙주 적합도 검사에서, 시험대상자의 능력치를 베놈 전파자가 상당량 흡수한다는 걸. 
    그럼 이건 다단계 피라미드 수법까지? 이 자식들이... 정말로 피츠제랄드는 내가 저장했던 서두, 논고, 결말, 착상, 메모장을 놀랍도록 비슷하게 재현해놨다. 가령, 
   <변덕스러운 운명,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인생을 선물할까? 어떻게 넉살은 늘지 않을까, 를 차라리 걱정하는 게 나을지도. 그러니 연애사가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하지. 호박이 제발로 굴러올 것이라 낙관하기에 앞서 주제를 알자. 넌 뭐 잘났다고... 부정의 구름에 올라타지 말기. 아직도 어렵나? 쉬우면 뭐가 문제겠나. 그렇듯 세상사 비밀을 깨우치면 뭘 하나. 행운의 여신은 왜 내게만 불친절하는지 복권은 매번 꽝. 후추통도 없어져. 누굴 자빠트릴 기회를 누가 줘. 모세의 기적과도 닮은 심정 그분들께 안 물어봐도 알 것이다. 안 그런가? 하여 너그로운 마음가짐 살살 달래보는데. 콜라캔 딸려다 8자 모양 것만 떼지네? 이렇다니까 글쎄. 삶은 달걀인 줄 알고 톡 깼더니 생달걀. 그렇다고 애들만 잘 어퍼지나? 어른이 물컵 어퍼트리는 기분 누가 공감 못할까. 그렇다면 패배주의의 노예로 살 만큼 살았으니 이제 행복업계에 어엿히 발을 내딧어도 될 것인데. 누구 맘대로? 또 진입장벽 어떻게 어떻게 기어올라가서 몰래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고 가정하더라도. 나머지도 긍정을 예상하는 거 너무 순진하지 않나. 그렇다고 역발상 주식투자가 아무 때나 먹힐까 하면 그럴 리 있나. 그럼 나는 바보요 너도 푼수일까? 병풍 역할 마다하는 그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신부들러리가 포커페이스 불완전하는 것처럼 보기 곤혹스러운 것도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요술론, 대체 어떻게 초현실에 결부시킬 수 있을까? 있다. 우리는 마술사니까. 가능하다. 어렵지 않음. 환상머신, 웜홀머신, 런닝머신... 몇 개 돌리면 뭐가 뭔 줄 모르게 된다. 농담이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누구인가가 궁금해진다. 난 뭐랄까 바람이 불면 로맨티스트요 일상적으로 미래파이자 특히, 여자 앞에서는 바람둥이일까? 놀자족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재미 하나도 없다. 필경 누군가는 짜증나시겠지. 모를 수 없어. 그럼. 그러니까 아무리 봐도 거의 바닥을 찍은 거 같은데...! 그러면 첫째 폭등할 일만 남았느냐, 둘째 배고픈 개는 더러운 푸딩이라도 먹는다. 아니다. 호랑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풀을 뜯어먹지 않는다. 근데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일까? 푸딩이 뭐 어째? 더러운 물로 불을 끌 수 있다니. 호사에 대한 욕망은 불충족이다. 건수는 가난하다. 청춘은 지금이다, 건배사마저 섭섭하다. 그럼 뭐라고나 할까 이게 다 욕구불만 때문일까? 배고프면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도 귀여워해주고 사랑스럽게 간식까지 챙겨줄 애마라도 있으면 다행이게? 고독한 도시의 사냥꾼에게 겨울의 사랑은 더없이 혹독하기만 할 뿐. 자나 깨나 흑심. 앉으나 서나 공상. 몽상가는 몽상이나 하라 그거네. 근데 몽상이 아니라 몽정? 별명은 해결사인데 아무것도 해결 못해. 풍운아는 풍운아인데 자타공인이 아니라 그냥 자칭. 그걸 누가 알아줘? 그러니까 무명이지. 그놈의 잡생각 어떻게 안되나? 잡념은 물론 권태와 재미없음을 몽땅 날려버릴 회심의 한방, 있으면 좋겠지. 괜히 광고에 속았다가 뚜껑 열리기 일쑤. 허나 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지 않았다. 근데 왜 이처럼 더럽게 심심할까? 아마도 속없으니까. 누구나 주인공 되는 걸 좋아하지 밀리고 쳐지고 늙는 걸 좋아하겠나. 만년 허당 비위 맞추고, 아부하고, 파리처럼 싹싹 비비고, 앞에서 다정 방어전도 부드럽게. 허당들 심기는 불편하기 마련. 
    아니 잠깐만!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말이 많았지? 딴 건 몰라도 난 봉 중의 봉이라고 인정받는 인생이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걸까. 돌아봐도 호구라는 자부심 지녀도 괜찮을 정도였는데. 쩜팔이 병풍맨 예스맨으로써 소시오패스 보필하는 거 어딘가 모르게 적성에 맞았을 텐데. 어느 날 갑자기 대체 왜 말이 많아진 거냐고. 그럼 설마... 혹시... 베놈 2가 날 선택했을까? 이걸 어쩌나... 진짜로? 만약에 그렇다면... 인공지능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난 이제 어떡하지? 버뮤다 재단이랄지 모스맨 이사회에서 날 가만놔둘까? 그렇다고 내가 능동적으로 그만두고 싶어도, 베놈 2는 날 놔줄까? 협상 가능 하면 몰라도 선택의 문제가 아니면 또 어떻고. 아닌 게 아니라 비록 삼류이긴 하다만 작가로써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살 줄 예전에 상상이나 했겠나. 그럼 정말 새로움을 좋아하는 악마와 영혼의 거래라도 했단 말이냐고. 이놈의 베놈 2를 그냥... 그럼 어쩔 건데. 난 녀석에게 무력한 존재일 뿐.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종. 노비가 주제를 알아야지. 댄서는 춤을 추고 점쟁이는 관상을 살피듯이. 나는 어쨌든 언제까지 이처럼 공상만 붙잡고 매달릴 수는 없었다. 따라서 작품 구상을 위해 나는 어딘가로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니 나 혼자 원맨쇼로 퉁칠 사건이 아닌 건 분명했다. 그래서 이거야말로 모스맨 협회와 함께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곳으로 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모스맨 협회 본부 도착. 
    가기엔 이미 모스맨 협회 이사진들이 총출동해 있었다. 모스맨 주식회사 대표진, 모스맨 대학교 학과장 총장 연구소장, 기타 등등. 
   「자네도 발빠르게 입수한 첩보가 놀랍긴 한데. 우린 모두 알고 있었어.」
   「그럼 여태 나만 쏙 빼놓고 너네들끼리?」
   「그러게 우리가 도움 요청할 때 핑계대고 내내 내빼던 게 누군데?」
   「갈 때마다 신부들러리 시켰던 게 누군데? 동네 똥개 훈련 한두 번 당해봐야지, 어?」
   「늑대가 나타났다. 마지막이 진짜였는데. 조바심 진정시켰어야지 이 친구야.」
   「어쨌든 이제 어떻게 되는 건데? 포스트잇 덕지덕지 붙이고 막 긴급수사본부 꾸리고 그래야 할까?」
   「그거 다 뻥이야. 드라마에 나오는 거? 영화를 너무 많이 봤네. 뭐 CSI 수사대? 마인드맵, 엑셀파일만 정리 잘해도 대충 가닥 나오는데. 뭐 손글씨로 수사하니?」
    그러면서 걔네들은 주식 계좌 내역을 보여줬다. 그걸 보고 마인드맵으로 얽히고 설킨 주식 분포도를 보고. 
   「라이프 파운데이션, 우리가 잠식했어. 걔네 금방 자금력 딸리게 되어 있다고. 걱정할 거 없어.」
   「그럼 걔넨 순순히 애초 수립한 작전 계획을 멈추든가... 뭐 그럴까?」
   「근데 재밌는 게 일이 크게 돌아가. 세계적인 제약사들이 몇몇 붙기만 한 줄 알았는데... 이거 거미줄도 이런 거미줄이 없네.」
   「그럼... 장기전?」
   「일단은 그래.」
   「그럼 이 가운데 베놈이 점령한 숙주는 없다고 단정할 수 있어?」
   「속단하긴 이르다만... 베놈이 업그레이드 전이라고 가정했을 때 없다는 건 확실허지. 허나 녀석이 소숫점 좌측까지 업그레이드된 거라면... 그건 누구도 확답 못할 테고 말이야.」
   「그럼 끌려갈 게 아니라 본부를 치는 건 어때?」
   「라이프 파운데이션 본부를?」
   「그래. 응? 그럼 되잖아.」
   「그게 문제가 있어.」
   「어떤 문제?」
   「지점들을 본부화시켰다는 점.」
   「그럼 베놈 개개인이 다단계로 활동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주었다는 거야?」
   「그렇지. 일종의 본부 동기화라고 할 수 있어.」
   「너 지금 만화영화 각본 쓰냐?」
   「내 말이 거짓인가 참말인가 두고 보면 알 거 아냐, 응?」
   「어떻게 알아?」
   「몰라?」
   「모르지.」
   「아, 알기...가 쉽진 않겠구나. 그러고보니 엄청 어렵겠네. 뭐랄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어. 아니 증말... 가망은 거의 희박하겠는데?」
   「그럼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긴! 2중 스파이를 심어야지.」
   「베놈 안에 트로이의 목마 바이러스를?」
   「이제야 늬가 말이 좀 통하는군. 그러니까 아지트에서 여자들 껄떡거리지만 말고 여기도 좀 들리고 그래. 응? 감 떨어지게 그게 뭐니! 너 너무 없어보여. 아니?」





    13

    한 달 경과. 백신 접종에 따라 코로나19 전염병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름. 
    그때까지 그런데 왜 난 피츠의 노트북을 열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걸 내가 아나 누가 아나! 
    어쨌든 인공지능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이 베놈을 몰래 퍼트렸는지 어쨌는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지트에 들렸는데.
   「오늘 무슨 날이니, 모스맨 협회 이사진이 함께 모인 걸 보니 말이야.」
   「너만 이렇게 입고 오면 어떡하니?」
   「난 웨이터 복장과 안 친해.」
   「왜, 내 나비넥타이 이상하니? 너도 제비복 한번 입어 봐. 느낌 끝내준다구 친구.」
   「뭐, 음. 뭐 그럴 거야. 음.」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어딜?」
   「매트릭스 재단 창단식에 말이야.」
   「난 이방인이야.」
   「우리가 가는데 넌 초대된 거나 마찬가지야. 아니면 누굴 부르게?」
    그렇게 녀석들을 따라간 곳은 다름 아니라 저번에 미행해서 도착했던 피츠제랄드의 대저택이었다.
    거긴 인적이 드문 동네. 빈집이 딱 봐도 99%. 근데 동네 평균과 동떨어진 고급 저택. 아니 어떻게...!
    간판도 인테리어도 뭐든지 다 바꼈다. 매트릭스 재단? 뭐 하는 데지?
    또 만나 보니 피츠제랄드도 제정신을 찾은 듯 했다. 베놈 2가 코로나19와 뭔 상관이 있는지는 몰라도 일단 그랬다.
    그럼 정말 백신 접종이 효력을 발휘한 건가? 아, 맞다. 또 하나 있다. 
    내가 저번 훔쳐왔던 피츠의 노트북. 오늘 아침 출근길에 보니 그건 애들 장난감 노트북이었다. 
    물론 훔쳐올 당시에는 분명 진품임을 확인했고, 사용했고, 깜짝 놀래서 들고 튀었는데.
    1달 내내 사용해보지 않고 눈길도 주지 않았으니... 설마... 영화처럼 미래재단이 시간여행을 와서 깜쪽같이 진짜 노트북을 가져가고, 모조품을 놔두고 간 걸까? 
    뭐 그러든 어쩌든 나는 매트릭스 재단 창단식에서 외톨이였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기분도 찜찜했다. 벌써 싫증난 건가? 뭐 딱히 빈정상한 건 아니다만. 뭐랄까 농락당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나는 또 할 말 없음에 직면했다. 심심한 척 능청떨기를 좋아해서인가? 아마도 '나대지 마'에 의해 기가 몽땅 빨려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베놈 2인지 뭔지에 대해 한동안 빠져살았던 거지. 게다가 라이프 파운데이션 주식까지 소액이지만 샀다가 손해 살짝 보긴 봤고. 심지어 (난 지금도 진짜라고 100% 확신한다만) 웬 좀비를 진짜인지 알고 미행하고, 몰래 잠입하고, 하다 하다 노트북을 훔치기까지 했다. 근데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정말로 드라마처럼 어떤 세력들이 진품과 장난감을 바꿔치기 한 걸까. 난 이제 뭐가 뭔지 하나도 종잡을 수 없었다. 아니다. 맞다. 아니다. 일단 뻥은 아니다. 좌우지간 나는 환상을 말로만 떠들어대는 데 지친 것이다. 그래. 퍼졌다. 다변가 처녀와 연애하는 데 나가떨어진 것과도 비슷하다. 그 수다 어떻게 견디나. 뚜껑 열리는 거 시간 문제. 안 그래도 시간낭비 허다했던 인생. 그러니까 파티에서도 혼자 구석지에서 뚱한 표정을 뽐내고 있지. 지금이라도 녀석에게 물어볼까? 미친놈 취급받기 싫다. 적극적인 심리치료를 받아보라 권유받을까 봐 두렵다. 이게 다 환상을 잘못 알았기 때문일까? 남자는 폼이라는 둥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는 둥. 인생을 잘 못 알았던 거구만. 가는 여자 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는다...... 그놈의 가택감금. 이런 젠장! 뭔놈의 베놈은 베놈? 말이 심했다만 그만큼 최근 어떤 거대한 수작 아니 괴상한 작전에 휘둘려버린 심각한 부작용인 것만 같단 말이다. 어쨌든 자주 사용하는 열쇠는 항상 반짝인다. 그럼... 무슨 생각을...? 벼룩도 부지런한 사람은 물지 않는다. 답은 하나다. 일단 후퇴! 원정경기에 꼭 총력전을 펼쳐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하나 빠진 게 있다. 당시 나는 왜 몰랐을까? 내가 몰랐던 사실은 이랬다. 말하자면 당시 매트릭스 재단에 참석했던 친구들. 지인들. 걔네들은 내가 알던 친구들의 아들과 딸이었다. 물론 그땐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차 싶었던 거다. 그럼 장난감 노트북은... 말이 되는데. 그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렇다고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 뭐 어떻기 때문에 자세히 알아볼 수도 없고. 일단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해보는 수밖에 없을 것만 같았다. 





    14

    보름 경과. 
    나는 사무실에서 놀고 있었다. 아니 일하다 잠시 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경찰이 찾아와서 매트릭스 재단 소속원들이 사라졌다면서 날 추궁했을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장난감 노트북을 내다버릴려고 했다. 그러다 뭔가 수상쩍은 느낌을 외면할 수 없다는 거. 직감적으로 깨닫고야 말았다. 혹시... 그래. 이거다. 얘가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단정했다. 물론 장난감 노트북은 살아서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영화 스타워즈에 그 로보트 이름이 뭐더라... 걔처럼 놀라운 천재성은 분명할 테니. 베놈에 의해 작동된다는 전제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고급 노트북에서, 이와 같은 장난감 노트북으로 변장할 수 있는 기능. 그 재주를 숨기고 있을 거라는 점. 나중 보니 진짜였던 것이다. 무게를 가볍게 하고, 겉을 플라스틱으로 꾸미고... 약간 비과학적인 부분도 있다만 뭐 어떻게 베놈과 닮은 초현실적 기술이 구현되었으니 모두 가능할 것이라는 점. 왜 이제야 알게 됐을까. 물론 당연히 장난감 노트북이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고 수많은 시험 단계를 거쳤다. 노트북 사용자의 패션을 바꿔 보고, 주변 소음을 다큐멘터리와 음악 등 여러가지로 바꿔보고, 냄새와 명화를 배치해 보기도 하고. 그러다 그 으시시한 대저택, 최대한 그 음습한 공포 분위기를 닮은 장소를 섭외한 끝에. 결국 장난감 노트북은 마침내 보호색을 거둔 끝에 원래 모습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그래서 노트북 안에 베놈 재단의 깨알 같은 정보, 주식보유 명단, 초기 투자자 가운데 약점을 쥔 누군가, 샛노란 동공과 보라빗 조명의 일치에 관한 논문. 그 모든 게 다 들어있었다. 당연히 인공지능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에 관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빅데이터도 죄다 추적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난 돈방석에 앉는 건 시간문제일까? 하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판이 커질대로 커질 것 같은 예감, 왠지 느낌 세했기 때문에. 당장 긴급히 잔머리를 굴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러므로 난 속는 셈치고 일부러 악수를 두기로 결정했다. 지금 와서 얘기지만 당시 난 그게 왜 행운의 조커일 거라고 오판했던 것인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미 지나가버린 기회인데 어떡하나. 요점만 말하자면 당시 베놈재단은, 라이프 파운데이션.. 걔네들과 모스맨 협회부터 버뮤다 연구소까지. 내가 아는 거래처와 잡지사와 기타 등등 모든 곳에 스파이를 심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대부분의 실세도 걔네들한테 넘어갔고. 심지어 내 친구들까지 거의 다 매수되어버렸단 걸 난 당시 상상도 못했으니. 따라서 난 그 장난감 노트북으로 위장된 초정밀 슈퍼컴퓨터를 바보처럼 모스맨 연구소에 내 발로 찾아가, 분석 의뢰를 맡겨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 뒤 난 결국 빈털터리가 됐다. 일감도 끊겼다. 어쨌든 그에 관해 나중 살을 붙이고, 제빵공정 이스트를 듬뿍 첨가하고, 적당히 꾸며서 각본을 완성한 다음. 그 다음에 영화사에 판권을 팔 것이다. 물론 그게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좋겠다만. 일단은 그렇게라도 미래를 낙관해야지 어쩌겠나. 무작정 내일의 연애사를 무턱대고 명경기가 많을 거라고 내 맘대로 긍정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걸 어느 허접한 능청꾸러기의 엄살로 치부할 수 없는 기막힌 이유. 하나가 더 있다. 그건 무엇일까? 아직 말하지 않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운명 + 왜 해결사가 원맨쇼를 마다했는지에 대한 근거 불분명한 명분 = ? 물론 막 갖다붙이는 우연일 수도 있다만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그게 말이다... 그러니까 그 또 하나의 아리송한 은근함이 무엇인지 말할 듯 말 듯 아직도 말하지 않았구나. 이처럼 더 궁금증만 유발하고 뜸만 들이다가는 오히려 짜증만 유발할 뿐. 따라서 즉각 말하자면. 그 뒤로 어떤 일이 발생했다. 나와 관계된 일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알려진 일 말이다. 그건 다름 아니라, 
    (A) 마이크로소프트: 사회 공헌 활동 (마이크로소프트의 무료 노트북 아프리카 대거 공급)
    (B) 아마존: 개도국 어린이 위한 '100달러 노트북 판매'
    A와 B. 순서가 그랬다. 2007년 2010년이던가 모두 사실. 보아하니 이 사실적 마술주의는 그 이전에 지어졌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기업들 공헌 활동이 이벤트성으로 시도에 그쳤는지 장기적 성과에 대한 지속적 보고는 모르겠다만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곧 장난감 노트북과 거의 흡사한 진품. 나중 그걸 보는 내 심정이 어땠을까. 하면 말해서 뭐 하나. 차라리 발을 뺀 게 나을지 몰랐다... 아니 내 깜냥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가정. 썩 설득력 없는 추리는 아니라는 점. 가히 상상이 되고도 남았다. 그래도 뭐랄까... 만약에 혼자 어떻게 해보겠다고 끝까지 파헤쳤다면 그럼 결과는 좋았을까? 용병 없이 국내파로만 구성되었던 배구리그, 30년 후에 비해 후진적이기는 할 테나 적어도 몰빵이라는 둥 뻥축구는 없던 순진한 시절임은 분명. 국내축구, 국내농구도 옛날이 재밌던 시기가 있지 않나. 꼭 그럴싸한 비유는 아닐지언정 난 아마 용병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게 차라리 나았을지도. 마른오징어도 짜면 물이 나온다? 단기이익 쥐어짜지 않은 게 다행. 전문가가 대차대조표 속이는 거 일도 아니다만. 기초만 봐도 그렇다. 손익계산서에 부채로 계상되는 어떤 투자금. 설마 비자금이라면 부채로 공인하겠나. 연금 기금의 보험 수리상 잉여금을 전용하고 손익계산서에 '순이익'으로 계상하는 일, 평상시 공공연한 회계 처리 방식인데. 일종의 편법이 기준을 달리하면 반칙이냐 뒷맛 썩 개운치 않은 관례냐. 어쩌면 그 바닥에 끌려들어가지 않았던 게 어떻게 보면 장기적으로 내게 적어도 불이익이 최소화되었을 거라는 걸 난 모를 수 없었다. 
    일설에 의하면 그 마법 노트북, 즉 장난감 노트북이 무슨 신기한 주술을 부린다래나 뭐래나. 하여 새 주인이 그걸 감당 못해 어떤 불운이 연속된다는 소문이 전해졌는데. 그럼 베놈이 장난감 노트북 속으로 숨어든 건가? 그러다 지겨워지면 또 어디로 옮겨가시려고. 그럼 또 다음 타자에게 어떤 숙명을 안겨주려고 말이야. 마감일 없는 심심함? 아니면 불완전한 환상. 혹시 미완의 베놈을 업그레이드시키라는 숙제라도 남기면 어떡하나. 으스스한 저주는 생각만 해도 떨떠름하니. 그러므로 장난감 노트북을 걔네들한테 함께 사건을 파헤치자면 덥썩 상납한 게... 지금 생각하니 어쩌면 잘된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길에 버려진 장난감 핸드폰을 보았다. 그 이상한 기분 어쩌면 좋단 말인가. 





    15

    환상의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할까? 그러지 말고 순수한 선망과 불순한 호기심이나 들쑤시지 말자. 허세는 끝났으니까. 핑계 대회도 볼만 한 건 안 열린다. 황금만능주의를 마지막으로 예술은 더러워졌다. 사랑은 없다, 가 아니라 청춘은 지금이다만. 일단 치사해서 차마 우리는 오락산업과 안 친하다. 난 어느 모로 보나 철들려면 멀기만 한 것인가. 유쾌함을 잃어버렸으니 그렇지. 결국 허언증은 치유되기 어렵나 보다. 허나 허영심을 정상으로 회복시켜야 할 만큼 더 바닥일 수 없는 지금. 우리는 정녕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지겹다. 재미없다. 심심하다. 수탉이 없으면 양파라도 먹어라? 썩었다. 그러니까, 무엇이? 미소, 가 아니라 무표정이. 뭐 혹자의 심경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렇게 말이다. 양털 잘못 깎는 사람치고 좋은 낫 가졌다는 사람 없다. 그렇지만 사는 낙이 뭐겠나, 다름 아니라 아마추어 장비발과 야유꾼 말장난은 우릴 배신하지 않는다. 그래 봐야 뚜렷한 대책은 없다. 뾰족한 해법이 어딨나. 왼쪽을 보니 흥분감이요 오른쪽엔 전율감이나 죄다 하늘에 있는 파이인데. 어차피 못 잡는 대망 피자조각이나 원 없이 키워볼까, 하면 그래서 뭘 하나. 근데 이러다 정말 공갈젖꼭지 남아나질 않겠다. 이러니까 축구선수들 골세러모니 가운데 그 무엇의 인기는 꾸준할 걸까? 그게 지금 왜 궁금한데. 그러니까.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말인 뭔데? 독심술이 예술적이나 얻다 써먹을 데가 없다. 남들이 내 뒷담화 하는 거 다 안다. 품위유지비도 없는데 고품격 험담쯤이야. 그러게 지구 반대편 해수욕장 모래알 개수를 알면 뭐 하냐고. 패션과 피라미드와 겉옷을 투시할 줄 알아도 소용없다. 마음의 문은 닫혔다. 어차피 여심도 안 열린다. 뜸들이기,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허당 마음 쥐락펴락, 똥개 훈련시키기, 개뼉따귀처럼 개 풀 뜯어먹는 잡담 남발... 잡기라는 취미도 잃었다. 더 이상 그랬다가는... (절레절레)! 이 상황에 극심한 슬럼프에 구워삶아지게 생겼는데 그게 문젠가. 어쨌든 바보들도 먹어야 행진한다. 폭식이 정답이다. 불만이 어디 낯선가. 안 그래도, 개도 운수 좋은 날이 있다. 촌닭에게 쨍 하고 해 뜰 날 없을까. 근데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물어보지 말라면 안 물어볼 거냐고 하겠지. 아니 내가 지금 누구랑 대화하고 있지? 몰라. 알아서 뭐 하게. 상관 마. 귀찮으니까. 살찐 여자가 노래하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니다, 누가 모르냔 말이다. 그럼 하는 수 없이 미지의 이상은 아직 탐구되지 않았다며 그분과 협상할 수 밖에. 그러니까 저 하늘의 별을 땄냐, 하면 못 땄거든. 안 그래도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그 뿐만이 아니라 새까매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꿈 없는 인생이구만.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구나. 허나 쥐구멍 있다 하더라도 개한테 너무 작단 말이야. 어른이 애들 잠옷 어떻게 입나. 어쟀든 지금은 때가 아니다. 자, 올 것이 왔다. ~라는 적기를 기다리자. 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찰나가 있을 테니까. 이렇게 나는 출근길에서도 공상을 멈추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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