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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7. 9. 30. 23:48

   1

   첫 문장.
   첫 문장은 첫 문장이다. 일부러 그렇게 썼다. 혹시 모르지만 수소문하면 없지는 않겠지만 서술자는 아직까지 '첫 문장'이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아직까지 읽어 본 적이 없다. 변변치 못한 기억으로 검토해 봤을 때 일단 그걸로는 최초다. 그 무슨 대단한 위업도 아니고 쓸쓸한 욕망 엉터리 연애에 지나지 않는 일이지만 어쩜 이 일은 사양할 수 없는 흥미를 줄 듯 말 듯 하다 말았다. 그러나 아주 의미없는 시작은 아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인생, 환상관에 갔다 왔고 사랑론도 썼고 이제는 급기야 영화 신비론을 만드냐 마느냐는 판국에 까짓 첫 문장이라는 첫 문장이 문젠가.
   소설가 앵거스는 이와 같이 소설을 시작했다. 발단은 투지 전개부터 흐지부지될 망정 일단 저지르고 본 것이다. 그런데 다 완성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던가 글을 썼던 공책을 찢어서 구기고 뭉치다가 물어뜯어 먹는 수 밖에. 아니면 어차피 블로그 수준이니까 실패작이라며 그냥 발표해도 괜찮을 것이다. 맞다. 이런 앵거스의 상태를 누가 봤다면 아마 누구라도 의심의 여지없이 그를 괴짜라고 인정했을 것이다.
   그런 앵거스는 친구들을 평가하면서 기뻐했다. 보이드는 수재, 마르첼로는 천재, 아비게일은 바보에 순정남, 서먼은 환상가, 다이안은 미녀, 몰리는 선녀, 바바라는 연애의 귀재 그렇게.
   별칭이 썩 각별하지 않은 앵거스 친구들의 수동적인 우정 능동적인 사랑은 질서 정연하게 변해갔다. 마을에서 남자 넷 여자 넷끼리 친했는데, 그 중에 사귀는 짝이 셋이라서 앵거스와 바바라만 남게 됐다. 그래서 그들이 아지트에 모두 함께 모여서 정담을 나누던 어느 날, 친구들은 사랑의 표현을 스스럼없이 드러냈고 친구들은 이렇게 종용했다.
   「둘이 사겨. 뭐 해, 둘이 사귀라니까.」
   둘이 사겨? 미녀 다이안은 남 속도 모르고 마르첼로와 키스하다 말고 난데없이 친애하는 친구의 좌불안석이 애달파 보였는지 신경써준답시고 그처럼 말했다. 당연히 바바라는 일전에 서먼에게 부탁해서 앵거스와 사귀고 싶다는 진심을 전했는데 거절당했겠다, 다른 괜찮은 남자는 길게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였고, 싫은 남자는 근처에서 은근 추근댔고 그래서 바바라는 투정을 부리며 그 자리를 떠났다. 옛날 자기는 앞서 걷고 서먼이 그랬는데, 바바라 어떻게 생각해? 서먼의 남자친구 보이드는 앵거스의 컴퓨터를 까 뒤짚었던 프로그래머였고.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앵거스는 작품은 뒷전이고 전위적인 연극에 몰두했다. 곧 앵거스는 천재 마르첼로와 2인극 연극 장기 공연에 들어갔다. 작품은 출연진이 달랑 2명 나오는 제작비 거의 들지 않는 앵거스의 옛날 연습작이었고, 대사도 단 두 마디 밖에 없는 연극이었다. 그런데 단 두 마디 대사가 하나는 매우 짦았는데 다른 하나는 매우 매우 길었다. 그래서 그 긴 명대사는 아무나 소화할 수 없었고, 따라서 작품 원작자이자 연출가로서 경험을 쌓고 싶어하는 앵거스는 친구였던 천재 마르첼로를 설득해서 연극 감독으로 입봉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마르첼로. 괜찮은 작품이 있는데 말이야, 남자의 일생에 연극 주인공은 한번 해 봐야 하지 않겠니? 너의 인생에 뚜껑 없는 차만 탄 걸로는 부족하지 않냐 그 말이라고. 응? 어때? 꽤 괜찮아. 많이 괜찮다고. 작품이 아주 끝내줘. 기똥차 이 친구야. 승산은 반반. 그러나 잘하면 연극계의 거성으로 데뷔하자마자 연예인이 되는 거지. 응? 마르첼로에겐 젊음이 있지 않나.」
   「너 미쳤어? 이 인간이...... 그런 좋은 건수가 있었는데 왜 이제야 알려주는 거야? 그럼 이제 우리 공연 마치고 나면 바로 뜨는 거야?」
   물론 공연은 무사히 마쳤지만 공연이 끝난 후 텅빈 객석을 보며 마르첼로는 앵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관객은, 이게 다야?」
   「친구. 예술혼은 다른 게 예술혼이 아니라네. 자네 물수제비 별자리를 아나?」 
   「물수제비 별자리? 몰라. 넌 그 별자리에 대해서 좀 아니?」  
   「아니 하나도 몰라.」  
   「그럼 뭐하러 물어봤어? 뭔가 안다는 듯이 말이야. 것 참!」
   「그런데 있잖아 마르첼로. 내가 한 여자를 알게 됐어...(침묵)...」   
   「한 여자? 그래서? 그녀는 어떤 여자야? 소녀 처녀 약혼녀 5월의 신부 아내 이혼녀 과부, 물고기야 아니면 광녀야? 그냥 평범한 미녀나 선녀? 대체, 도대체 어떤 여자냐고? 그리고 어디에서 만났어? 광야에서? 나이트클럽? 거기 어디야 어디길래 그렇게 상상만 하고 있어? 나도 한번 가볼까 말까? 넌 항상 그게 문제야. 그렇게 망설이다가 사랑은 떠날지도 모른다구. 어? 그게 아니라 혹시 그녀는 네게 고개를 숙였니? 이미 넌 지아비쯤 된 거냐고. 아 글쎄 그러니까 정말 뭐냐고.」 
   어쨌든 앵거스는 이와 같이 실망한 마르첼로의 동정심을 사는 한편 신묘한 전위극이 장기 공연에 들어가는 다행스런 성과를 얻게 됐다. 아, 공연은 저번처럼 길지도 않은 인용문을 요약하네 마네 그럴 필요 없이 전문을 옮기자면 이와 같다. 알고 나면 깨닫게 될 것이다. 와, 이 긴 명대사라면 진짜로 천재 마르첼로가 아니면 도저히 안되겠구나 라고.


   2

   「친구. 내 블로그의 새 글 읽어봤나?」
   「아 그거? 그럼. 잘 봤네. 허허허 또 보고 싶네. 오 그럴듯해. 멋져 보여. 뭔가 있어 보인다구. 앞으로 말이야, 궁금함이 실망으로 연결되지만 않는다면 좋겠는데 아아 벌써 기다려지는데! 예감에 정확히 부응해서 기대만큼 놀랍고도 신기한 환상이 실현될까 두고 봐야겠는데! 보통은 아니지만 잘 찾아보면 자신에게 꼭 맞는 즉 한동안 가지고 놀거나 빠지거나 그냥 시간만 때우든가 그런 뭔가를 만나게 되는 듯해. 삶이란 건 말이야. 그걸 헤매는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놀 줄 아는 어른이 되는 거고. 그렇게 봤을 때 전문가의 영역은 꽤 불안정하단 말야. 자네가 저번에 추천해준 경제학 서적, 그것도 괜찮았어. 파라그 카나의 커넥토그래피. 한동안 인문교양서를 읽지 않았는데 때 아닌 월척을 만난 느낌이랄까? 문체, 문장 구조와 논리가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면도 없잖아 있었는데, 그게 왜 그런가 알고 봤더니 결국 단어 때문이었어. 낯선 명사 동사들 때문에. 분명 원론적으로는 경제학 서적인데 꼭 경제학 서적만은 아니란 점 때문에. 어쨌든 참 좋았어. 그런데 왜 그 수준을 자주 만나기는 힘든 걸까? 하긴 그렇게 따지자면 인간이 달에 갔던 때가 언젠데 지금은 어디까지 갔다 왔다 썼다 벗었다 줬다 뺐다 해야 하지 않나, 그렇게 되는군 그래.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안목만 높아져서 탈이야.
   하오나 내용은 별로더라도 가사 전달력이나 꿈과 현실의 경계, 이상과 허구의 사실적 마술성을 살짝 건드리기는 해야 된다고 생각하네, 직업인이라면 말이야. 아 그렇지 않나. 사실만 전달하는 사람이 웃으면 돼, 안돼? 두 말하면 잔소리겠지. 같은 메이저래도 아나운서의 화술에 과도한 감정과 지나친 기술이 들어가면 보는 사람 마음이 기쁘고 썩 편할 수만은 없단 말야. 발로 뛰어서 쓰고 황홀한 영감을 위해 진득하니 1000일 하고 하루를 더 기다릴 줄 알며, 전문가라면 말이야 최소한 나불거린다 적어도 나댄다, NDJM 같은 초딩이나 중딩들도 유행 지나서 사용하지 않는 전문용어는 듣지 않아야 한다구. 그런데 모순은, 딜레마는 바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점. 이론과 실제 다 그래. 5번 실패냐 5000번 실패냐, 당연히 후자가 성공 확률이 높다고. 그래서 중요한 점은 5번 실패하고 미래를 내다보고서 종목을 바꿀 줄 아느냐겠지. 그래, 수읽기. 비전문가도 이미 전문가야. 그래서 지금은 전문가의 권위가 예전 같지가 않아. 세상이 그래. 대중은 최고를 원치 않고 그저 시간만 떼우고자 한다고. 더구나 세상 사람은 모두 천사이자 예술가라는 것. 사람이 원래 그래. 공연 포스터에 나온 얘기나 대중매체의 사탕발림과 오락산업의 수요 때문에 지나고 보면 짧지 않기를 바랄 전성기 뿐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유명인으로 산 당사자의 마음은 바뀌고 변하게 되어 있다네. 제아무리 호평 일색의 투자보고서라지만 응? 화사한 광고성 꽃다발이라지만 처음에는 자기 작품에 대한 소개 글이 너무 과장됐으니까 당사자가 보면 막 부끄럽고 차마 화끈거려서 실소가 절로 나오겠지. 응? 처음에는. 그래서 고인이 된 어느 추리소설가는 출판 계약서에 명시적으로 표기했다네. 자기 사진을 실지 말라고. 그건 아주 드문 실례고 보통은 그렇지. 회사 홈페이지에 나온 CEO 사진 크기와 회사 실적이 반비례한다거나 요란한 홍보와 울긋불긋 짜릿한 내용이 매출과 밀접히 관계가 있다는 점, 그게 다 뭔가? 결국은 돈이야, 경제라고. 물론 모든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을 상대로, 일반인 또한 냉철한 이성으로써 낚냐 낚이냐, '나 사랑해?'라는 말을 듣느냐 사랑 밖에 난 몰라냐, 호박이 제발로 굴러오냐 꽃 들고 쫓아다니던가 돈을 왕창 쓰던가 뭐라도 해야 하느냐, 사랑의 시를 쓰냐 사랑할 수 밖에 없냐, 사랑 고백? 기억나지 않는다 믿었다 속고 속이는 그 줄다리기는 사는 동안 내내 지속되겠지. 작가도 그래. 몇 년 뭐뭐 몇 년 뭐뭐도 아닌데 벌써 당장 현실이야. 움직임이 시작되면 관성은 내가 제어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법이니까. 현실적 문제는 부딪히지 않을 수 없어. 문화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식솔과 옷값과 의료비, 품위 유지비 그게 다 어디서 나오겠나. 그래서 가수는 사랑은 연필로 쓰라했지만 고급 만년필로 글을 쓰는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만족하며 박수를 칠 수야 없겠지만 과찬이란 말은 어쩜 가식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무덤덤해질 수도 있어. 그런데 처음의 부끄럽고 화끈거림이 과연 얼마나 계속 될까? 한없이 지속될까? 줄곧 처음과 똑같을까? 그럴 리는 없다네. 그럴 리는. 아니 사람인데, 그럴 수는 없는 거라고. 딸랑딸랑 빰빠라밤 새콤달콤, 호호 기분이 좋거든. 나는 살면서 황금을 싫어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거든. 어쩜 그건 당연한 말 아닐까 까지는 아닐지라도 무뎌진다고. 무뎌져. 소근소근 딸랑딸랑 하트뿅뿅! 그래서 도취감이란 마법은 돌고 돈다네. 드라마는 영화로 영화는 다시 시네마로, 예술가는 연예인을 지향하고 코메디언은 다시 난 정말 순수예술가의 경지에 올랐으니까 자기가 자기 입으로 선을 그어. 자네들은 대중예술가 나는 아티스트라고. 다 그런 법이지. 사람 아닌가! 허세 허영 허풍! 저분은 왜 그럴까가 보이면 좋은 거고, 안 보이면 어리고 순진한거고, 그걸로 리더면 철부지에 푼수고. 응?
   하지만 말이야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란 말이 있듯이 조명이 빵빵 터지고 풍악이 뻥뻥 울리면 자세를 취해야 한다구. 또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게 돼 있어. 그래서 고수는 무대 체질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관객을 주인공과 연기자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가로써 진면목이 드러나는 법이지. 쉬운 예로 애청자 엽서 같은 거. 뿐만 아니라 바로 그래서 미녀는 야수의 감언이설에 넘어갈 수 밖에 없어. 그럼~! 어떻게 이 정신 사나운 교묘한 언변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성녀나 요정도 아니고 말이야. 눈부신 여신이라 예찬하면 단아한 숙녀께서 퍽이나 싫어하시겠네. 허허허. 음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여자는, 여자는 다 그래. 내 이상형을 만났지만 어머나 이상형은 꽃 들고 쫓아다니는 남자 유형이 아니네? 그 남자에게는 그런 가상한 노력을 나중은 몰라도 당장은 기대할 수 없다? 고급스런 농담이 아니라 값싼 자발을 선호하는 숙녀라면 그럴 수 밖에. 그녀는 졸졸 따라다니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듣기만 하거나 조용한 쳄발로 음률이나 신묘한 효과음 소리처럼 에코만 반향하는 돌쇠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거라네. 미남을 보내고 또 보내고 달변가의 끈질긴 구애도 마다하며 도톰한 목소리의 그 남자 주변에서 알짱대긴 하지만 하나도, 하나도 붙잡지를 못해. 그럴 수는 없으니까. 심지어 뭔 남자들이 한번 거절하면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리니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라는 그 철지난 구식 속담을 여자들이 일시적으로 애원할 때를 알아보는 남자, 캬 남자!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마련해 놓는다 라는 격언을 하필 사랑에 적용하는 남자? 넘어가자고. 콧대 높은 미녀는 재미없는 건지 짜증난 건지 싫증난 건지 모르겠지만 돌쇠 부류를 좋아하거나 얼굴은 전혀 안보는 여자들은 따로 있다네. 응. 여자니까! 그녀는 바로 나를 그 언제라도 꽃으로 예우하는 돌쇠를 만나야 하니까 말이야. 그래, 돌쇠! 첫 번째 돌쇠는 오래 사귀다 그녀를 먼저 차고 다른 여자와 행복의 결혼행진곡을 울리고, 두 번째 돌쇠를 만나 어떻게 산다더라 라는 풍문도 별 인기는 얻지 못한다고. 연예인도 아니고 뭐 볼 게 있다고 여성잡지 2에서 특종이라며 쫓아다니겠나, 안 그런가? 그런데 여기에도 1.5가 있겠지. 첫 번째와 두 번째 돌쇠 사이에 만난 소개팅 남자. 소개팅 중간에 그녀 친구한테 막 전화가 와. 전화는 불이 난다고. 왜냐하면 그 남자는 그녀한테 돌쇠 유형에 근접만 하면 딱이었거든. 그러다 그녀는 딱 그렇게 말하지. 바로 이렇게. 들었어요? 음 그렇게. 들어, 듣다니, 아니 잠깐만. 뭐라고, 들었어요? 들었다니! 듣긴 뭘 들어? 참 나! 제일 첫 번째 돌쇠가 오죽하면 하다 하다 내가 뭐 동화에 나오는 집사도 아니고 참 나 더러워서 돌쇠 못해먹겠네, 그러면서 헤어지자마자 결혼했을까. 그분은 신분 상승한 거지, 돌쇠에서 왕자님으로. 그게 다 치료될 수 없는 공주병이 부른 결과지 뭐. 여자가 다 그러지는 않는데, 들었어요? 처음 만났는데 듣긴 뭘 들어! 하지만 그녀만 그런 게 아니야. 잘 아는 여자애도 완전 똑같더라구. 들었냐고? 탐스런 과일을 따 먹고 그 남자는 떠났더라, 뭐 그 가슴 아픈 사연을 들었냐고? 내가 왜 그 얘기를 들어야 하지? 게다가 누가 그런 소문을 전해주는 어려운 역할을 솔선수범해서 자청하겠냐고. 너 같으면 그런 역할 맡을래? 손을 번쩍 든 친구는 한 명도 없던 걸. 일할 때는 지동설에 그녀를 만나면 천동설이라 음... 아아 쉽지 않아. 쉽지 않다고. 들었어요? 벌레 먹은 사과가 맛이 있다야 뭐야? 어? 오늘부터 썩은 사과는 동나겠다. 과일장사와 농업과 꽃장사, 잘만 하면 괜찮을 수도 있어. 정말 그래. 상품 가치 높은 과일을 제외하고도 상처 입은 사과인데 값은 싸고 맛은 매끈한 상품과 똑같다? 일거양득이군. 오늘부터 벌레 먹은 사과가 인기를 얻겠다고 오늘의 운세에 나와 있어. 벌레 먹은 사과? 그게 제발로 굴러가는 호박과 뭔 차이지? 그게 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휴......)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들었어요?'가 끝일 수는 없음. 왜? 왜냐하면 그렇게 성급히 마무리하면 많이 섭하니까. 사람 서운하게 말일세, 우리가 또 그건 그냥 못넘어가지. 아무렴. <들었어요?>와 똑같은 말이 있지. 꼭 같은 말이 있어. 딱 똑같은 말. 그건 뭘까? 그건 정말 뭘까? 그건 과연 무엇일까? 그건 뭐냐 하면, 바로 이 말이겠지.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호호호 하하하 큭큭큭! 여자는 다 그런다니까.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말이야. 아 그녀들은 정말 못 말려. 하오나 여자에게, 왜냐고, 묻지 마시게. 절대! 그저 낭만을 찾고 사랑을 읊고 환상을 노래하며 젊음을 칭송하면 그뿐. 허세에 웃는 아가씨의 단짝은 뜬구름잡는 허풍을 믿고, 돌쇠를 환호하는 영심이도 여기 저기 거기 훤히 보인단 말일세. 물론 어느 고결한 숙녀께서는 사전에 먼저, 나 사랑해? 라고 사랑의 청약을 표하시겠지만 일단은 그렇다네. 그런데 중요한 건 이거야. 여기서 나뉘다는 점. 여기서 나뉘어. 그런 사랑의 밀어들을 들어봤다, 들어보지 않았다로. 사랑에 대해 묻고 답하지 않는다는 남자들의 불문율만큼이나 그녀들의 공통적인 대사에 대해서 화자였다, 청자다, 알긴 안다, 모른다로. 그 가운데 누가 사랑을 알까? 그 가운데 사랑을 하는 사람은 누구고,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은 누굴까? 그 사랑은 바로 그 시적인 사랑일까? 감히 지금 정답을 말할까 말까? 쉿! 그건 묻지도 따지지도 마세나. 어쨌건 사랑은 하나. 하트 절반과 절반이 만나서 그래서 사랑. 따라서 하트 절반이 말하는 사랑은 아마도 꽤 불완전할지도 모른다는 추론이 타산되겠지. 어쩌면 0.5는 잘 모를 수도 있다구. 동물농장론, 환상론, 신비관도 똑같아. 그럼 하나 궁금해지는 군. 백조는 제한적으로만 세이렌과 친할까 라는 것. 적어도 오리나 티티새일지라도 살면서 세이렌을 만나기는 힘들 걸. 그러니까 마에스트로라고 과연 판도라에 대해서 얼마만큼 통달했을까. 파란만장한 인생이 다채로웠던 환상가는 또 어떻고. 세상은, 아마존에 대해 풍문만 무성하고 메두사와 동심과 오락산업의 구분조차 힘들다네. 인생은, 수박 겉 핥기의 무수한 반복이고. 그러면 사랑은? 사랑이 심술을 부리건 애절하건, 남몰래 시작하든 소리 소문없이 끝나든 사랑에 대한 신뢰 동경 낭만 목적 장르는 다양할 테지. 때문에 그것이 단 한번의 파울 홈런이건 만번의 성과건 사랑을 쉽게 정의하는 건 어쩜 무리가 아닐까 라는 속셈이 간파되는 것만 같아. 다만 세상, 인생, 사랑을 간편하게 그냥 요술이라 칭하는 데 대해서 큰 반감을 사지는 않을 테고. 그래서 어쩌면 점쟁이의 훈수는, 아마도 마술사의 주문은 이렇지 않을까? 당신의 그 고귀한 인생에서 한번이라도 사랑을 하고 한번이라도 마지막 잎새를 그려볼 수만 있다면! 공상 과학과 현실의 절묘한 결합 같은 거. 그래. 사실적 마술주의? 마술적 사실주의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아니지. 아닐 꺼야. 왜냐하면 인생과 마찬가지로 행복 역시 수학공식은 아닐 테니까. 그런데 말이야 나는 정말 이럴려고 연극배우가 됐을까? 글쎄요. 왜지? 왜일까? 나는 왜 연극을 할까? 모르겠군. 그건 다음에 생각하지 뭐. 자, 그러면 말이야 내가 재미난 얘기 하나 해 줄까? 여자는 어쩌면 숙명적으로 평생 속고 또 속아야 할 수도 있다구. 으하하하하! 재미난 얘기는 개뿔! 저거 멋진데 우리도 하나 살까? 귀찮다 사지 말자, 어차피 다 짐이야! 어디 가서 뭐나 먹고 올까? 아 맞다 차 막히겠다 나중에 가자, 꼭! 아 맞다 패션쇼 제일 앞자리 초대장 내가 깜박 하고 이제 막 사랑에 빠진 내 후임한테 선물했지 뭐니, 그래도 착한 일인데 내가 양보했으니 기분은 나쁘지 않다구, 우린 그냥 다음에 가자 응?
   사랑은 무슨 특별한 요술이 아니라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친구들 몰래 혼인신고해서 같이 사는 남자 여자와 함께 했던 일도 있었네. 우리는 생맥주 3잔을 주문했지. 시간도 아마 대낮이었을 걸. 그런데 난 생맥주를 마셨는데 그 둘은 그걸 마시지 않대~! 작은 맥주컵도 아니고 말이야. 맥주도 가득 차 있었어. 아르바이트생이 신참이었던지 거품도 없었다고. 당시 친구집에 놀러 가서 그녀 일기장을 잠깐 엿보았더니 그 적나라한 과정이 다 나왔 있더라고. 머머 했다 머머 했다, 오늘 오빠가 뭐라 했다, 머머 했다 머머 했다, 나는 머머하고 싶다 머머했으면 좋겠다, 머머했다 머머했다. 완벽한 머머했다 문체. 소녀 감성을 바탕으로 이 사랑을 아끼고 다듬고 싶은데 그건 마음처럼 쉽지 않다, 전부 그런 내용들이었어. 그럴 수 밖에 없었나 봐. 그게 뭔가? 사랑이지! 음. 사랑. 그래서 그렇게들 사랑 사랑 노래를 부르나 봐. 생맥주를 마시지는 않더라도 어제는 짝사랑 오늘은 풋사랑 내일은 또 무슨 사랑이 찾아올지 모르는 법이거든.
   와 오빠 눈 크다 내 주변에 있는 남자는 죄다 눈이 단추 구멍만 해 순전 그런 남자들 밖에 없어 와 오빠 재밌다, 오빠의 저 숫검댕이 눈썹 봐 봐 어쩌고저쩌고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여자에게 어떤 말을 듣고, 친구들 다 모인 자리인데 바텐더에게 돈이 제일 많을 것 같은 남자로 손꼽히고, 사석에서 그런 말 하는 게 무슨 허물이라도 되겠나. 그런데 뭐 단춧구멍? 호호호 하하하 크크크! 그러나저러나 이 세상에 눈이 작은 남자가 대체 몇 명인데, 그런 말 못 들어본 남자의 심정은 어떨까? 하트 뿅뿅 윙크 앙큼 앙증 교태 애교 꼬리 흔들흔들 딸랑딸랑 반짝반짝, 여성스럽고 귀여움 만점등 사랑의 징표를 풍성하게 애정의 신호를 듬뿍듬뿍 받아보지 않았던 남자들을 위해서라도 겸손한 자랑은 한마디로 뭐다? 유난떨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재수 없어! 으~웩! 귀여운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고 파랑새는 황홀한 지저귐을 고양이는 멋진 그래 최소한 건장한 젊은이를 유혹해야 마땅하거늘, 어머나 글쎄 이 숙녀도 저 숙녀도 모두 그 남자 보기를 돌맹이나 나무 보듯 한다라... 그게 곧 삶이자 인생인 남자의 심경은 도대체 어떠할까? 다행히 사랑을 하고 있지만 불행인지 불만족인지 내 여자친구는 내 친구 얘기를 그렇게나 하고 또 한다? 그러면 어쩔 수 없겠지. 난 바쁘게 꽃 들고 쫓아다녀야 하는 고달픈 운명인데 누구는 뭐 호박이 제발로 굴러들어와, 그것도 평생 그렇다고? 그럼 하는 수 없지 않겠나, 뚜껑이 열릴 테지. 그분이 오신다구. 바로, 그분이! 오죽하면 그럴까. 그게 곧 삶이자 인생인 남자의 심경은 어떠할까? 정말 어떨까? 그대께서는 그분의 애처로운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이 있나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다네. 화장품이 내게 맞지 않아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그런 고초를 조금이나마 치른 일이 있다면 아마 잠시라도 알게 될 꺼야. 느낄 수 밖에 없어. 몸으로 느낀다구. 와 내 친구는, 그분들은 평생 이런 반응을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고? 여자들도 그래. 여자1이 여자2에게 그러지. 와 언니는 축복 받은 거야 완전 감사해야 해, 오오 저 가슴 아흐흐! 그처럼. 우광쾅쾅 액션 장르나 정확히 게임 같은 영화랄지 쾌락에 젖은 소설과 영상만 보는 게 아니라면 사람이 예술을 향유하며 즐김으로써 얻게 되는 크나큰 소득 가운데 하나 그것은 곧, 공감 능력의 증진이라네. 그런데 중요한 건 이건 참 묘하게도 현상 유지가 어려운 법, 올라가든가 내려가든가 밖에 없어. 갈 길은 둘 중 하나 밖에 없다구. 실력은 녹슬겠지만 왕년의 그 감이 어디 가겠나마는 그런 나만의 방식에 해당하는 최소한의 노력이 없다면 하루 이틀 지나면 내가 알고, 더 오래 지나면 남이 눈치채고, 심하면 뭐겠나 과장했을 땐 모세의 기적을 부르는 수도 있다네. 사람은 누구나 내 행복이 타인의 불행보다 더 중요할 수 밖에 없다는 어쩌면 비참한 진실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슬픈 존재이기 때문에 그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그래서는 절대 안되는 절로 숙연해지는 인간의 본분이라네. 남을 위로하고 으쌰으쌰 뭉치고 그녀에게 동조함은 모두 솔직히 따지자면 조금은 의식적인 행동 아닌가? 곧 무의식의 정반대! 즉 약간의 가식이자 예절. 잠깐 타인이 되보는 것, 그것이 꼭 고관대작의 무리와 어울리든 어쩌든 유서 깊은 오페라 극장에 가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저 잠깐 타인과 속 깊은 정담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지. 그 첫번째가 뭐겠나? 내 귀를 여는 것, 내 마음을 여는 것! 내 귀를 꽉 막고 잔소리를 노래하는 게 아니라. 그런데 글쎄 잠시가 아니라 그처럼 평생을 살아야 한다라... 음... 한번 생각해 봐. 그런 남자가 곡을 쓰면 어떤 연가가 탄생할까? 아주 애절한 노래, 아니면 첫 번째 여자 두 번째 여자 세 번째 여자 쩜쩜쩜, 둘 중 하나일 수도 있다구. 그런 남자가 드라마를 만들면? 그러면? 모범적인 수작이 인기를 끌 수도 있는데 자기 좋아하는 거, 자기 하고 싶은 거를 드라마로 만들 수도 있어. 누가 죽고 어쩌고, 괜히 떠나고, 난데없이 여자들이 좋다고 쫓아다니며, 하늘에서 돈벼락이 쏟아지고, 좌충우돌 외계인이 침공하고 중구난방 작위적이며 개연성 없는 모험 이야기. 남자들이 원래 그래 바라는 게 그런 거니까. 반올림 1억부가 팔린 존은 끝에 가서 어쩐다 같은 작품, 남자들 중 몇몇은 물론 여자들도 꽤 좋아하지. 아 진짜 그거 내가 썼어야 했는데 아 정말 난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아무튼 대중은 그런 가벼운 오락물을 엄숙한 고품격 작품보다 훨씬 더 반기는 법이야. 명작과 함께 내 품격을 드높일 것도 아니고, 그저 시간을 떼우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야 하니까 말이야. 그게 인생이데 뭘 어떡할 수 있겠나. 안 그런가? 질투가 절반의 존경이라고 어디선가 들었는데 글쎄 그보다는 '내가 최고'가 더 솔직한 표현 아닐까? 왜냐하면 예술은 곧 오락이니까. 따라서 난 예술은 예술이기를 바라네. 정치인은 정치를 하고 연예인이 예기를 뽐내는 게 정상이듯이. 재주가 많다면야 부르는 곳도 많고 호응도 크겠으나,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기 전까지는 부전공과 취미도 좋지만 많은 역할 가운데 사랑이 먼저 아니겠나. 모르긴 해도 아마 그 때문에 옛날에는 지금의 예술가를 광대라고 불렀을 수도 있단 말일세. 돈과 인기와 유행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면 다르겠지만 말이야. 그러긴 하나, 나도 어떻게 다시 그쪽으로 기웃거려 볼까? 아니 그냥 하던 거나 계속 해야지, 괜히 남의 떡이 커 보인다며 포지셔닝 바꾸기도 귀찮아. 아하 그러니까 왜 시간 때우기 예술품의 인기는 불변하냐고? 왜? 왜냐하면 남자들은 원래 삼류로 살고 싶으니까. 어째서? 사랑은, 사랑은 없으니까. 보는 눈도 많고 들리는 소문도 무시할 수 없고 무엇보다 말 많은 세상 아닌가. 나 좋다는 사람 많으면 인기 스타로 대접받지만 제약도 따르는 법. 그래서 우리 남자들은 그래도 전에 좀 활약했다면 전직 상비군, 국가대표 상비군 정도를 선호한다네. 무엇보다 남자끼리 사랑에 대해서 말해본 적이 한번도 없으니까 말이야. 한번도? 한번도! 그러므로 어쩌다 행운이 따라서 이름이 알려지면 사석에서는 따따부타 나는 만 명의 여자를 사랑했다 라고 하겠지. 그분이 작고하신 다음 시간이 조금 지나면 관계자일지도 모르는 분으로부터 진짜 몇 명을 사랑하셨다고 얘기가 나오게 되어 있어. 어디 업계 관계자께서 가만 놔두겠나. 그럴 리는 없지. 그럴 수는 없으니까. 답은 뭐 10분의 1 선을 넘었다더라 이러쿵저러쿵 어쩐다고 알려진다고. 얼굴 없는 가수의 1집이 멋졌는데, 당사자야 신비주의고 뭐고 그냥 당당히 음악으로 정당하게 평가받고 싶었는데 소속사에서 뭘 그렇게나 감추고 숨기고 비밀을 만들고 그러다 세월이 흘러서야 마침내 내 분야를 찾게 되는 수도 있을 테고 말이야. 이쯤 되면 주제가 외모인데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빠지면 또 한번 섭섭하지, 그럼. 잘생긴 사람에게 표를 주는 행동이 우를 범할 수도 있지만 외모에 비례하든 약한 상관관계가 있든 어쩌든 그 겉과 속이 긴밀히 연결되어 움직일 수도 있다는 어떤 면모도 읽을 줄 알아야 어른이라네. 사람들이 원래 그래. 불쌍해서 정치인에게 표를 주는 행동?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 전혀. 왜? 잘 먹고 잘 사는 게 최고거든. 누가? 내가! 모든 기준은 나고 모든 표준도 나니까. 사랑해서 떠난다, 참으로 일관되게 어려운 길을 가니까 연극표를 산다, 시간 되니까 또 무슨 새로운 이론이라면서 새 인문교양서를 쓰셨군 하여간 저 양반 알아줘야 해 훌륭하십니다 짝짝짝. 그런 법이지. 아 인생 아닌가. 사람이 사는 이 세상에서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인간의 인생 말이야. 그렇긴 해도 인간이 사는 세상 그처럼 오묘하면서도 차가운 이치는 어쩔 수 없겠지. 빈자 가운데 그저 빈곤을 탈피하기만을 바라는 사람만 있겠나, 야망으로 똘똘 뭉친 사람 역시 존재하는 법. 월척과 대망을 바라는 이 내 소망이 뭐 나쁜 일은 아니지만 말일세. 어른은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예뻐하고, 노년은 청춘을 몸이 불편한 사람은 건강한 사람을, 그 사이에 굳이 정확히 꼬집지 않아도 뭔가 심리적 차이 그냥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은 있지 않나 말일세. 하, 정말 이렇게 되고 보니 지난 시절 무섭게 생긴 인상을 부러워했던 게 거 참 쑥스럽구만 그래. 남자들은 겉으로 말은 안해도 뭐 좀 그런 게 있지. 허허허, 허세와 허영 사이에서 많은 방황을 하다 보니 뭔가 깨닫긴 깨달았던 것일까? 모르겠어. 통 모르겠다고. 하긴 그래도 친구 누나한테 공인 받은 다음 친구의 반응, 캬~! 1층 여자 목욕탕 2층 남탕 3층 독서실에서 독서실 멤버였던 동네 형들과 형 누구 집에 가서 비디오를 보고 나와서 그 형이 하는 말, 자 자 누가 누가 뽑혔을까 자 자 내기라도 할까 자 자 그건 뭐냐 그건 뭐냐 하면 누나들이 순위를 매겼어, 그런데 1위 2위 3위 밖에 없다 미안하지만 나머지는 다 꽝이다, 전부 꽝! 그래서 형들의 반응...... 크아~ 으아~! 그 형은 그처럼 말 많은 남자가 아니긴 했어도... 그 응답들, 캬~! 이때 1위를 해 본 사람 산술적으로 따져도 많지 않아.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겸양 자족 인정 방관 열광 솔직함 가운데 대두되는 지표가 조금씩은 다를 테지만, 와 그때 기분은 정말 은하계를 내 손 위에 올려놓고 들었다 놨다 저글링하는 기분이었지. 캬, 남자, 어? 그게 다 뭐겠어? 딴 데 가면 난 완전 커피포트요 아마도 오징어가 된다는 말이고, 내가 백조 동네에 살지도 않았으며, 미운 오리 새끼도 아닐 테고, 내 인생은 전형적인 촌닭 인생이었던 데다 난 완전 촌닭 중의 촌닭이란 말이겠지. 그럼. 정말 그런가 봐. 그 관록을 어떻게 숨기겠나. 안 그런가? (...휴...) 어떡하다 자네 블로그에 올라온 새 글 감상을 얘기한다는 게 또 내 자랑으로 끝나버렸군. 아 나 이거 증말 거 원 참, 뭔 말만 나오면 내 자랑이라니,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숨고 싶구만 그래. 유령이 이 내 몸을 섭정한 것도 아닐 텐데 말일세. 전에는 미처 잘난 체가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상상도 못했어. '나'란 말이 썩 불편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처럼 잘난 척 하는 나니까 친구들이 예전 내 말 한마디, 곧, 저것이 이쁜 척 하고 있어, 그 말을 듣자마자 웃었던 것일까.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다른 건 몰라도 나중 누구 주니어한테 과정 없이 갑자기 친한 척, 그러지만 않기를 바래야겠지. 무엇이 과거고 뭐가 현재인지 미래는 또 뭔지, 현실과 묵상과 망상까지 꿈과 몽상도 이젠 구분이 잘 안된단 말일세.
   이거 원 아줌마식 수다도 아니고 웬 이상한 푸념만 늘어논 듯 해서 많이 미안하구먼 그래. 자네 얼굴이 벌거니 영 말이 아니구먼. 귀까지 빨갛고 말이야. 자네 벌 스느라 고생했으니, 뭐 술값은 내가 내는 수 밖에. 그마저도 모른 체 한다면 난 정말 얌체는 커녕 험한 소리 듣기 딱 좋겠지. 아마 난 딱 거기까지인가 봐. 그리고 나는, 우리는 아마 오래 전에 좀 놀았던 게 틀림없어. 하오나 내게 있어 변화라면 예전만큼 '우리는' 화법을 구사하지 않는다는 것. 왜냐고? 왜냐하면 '우리는' 화법 말고도 쓸 게 많으니까. 껄껄껄! 그래도 좀 놀았더라도 남자니까 다행이지... 여자... 그만 그만. 실상 사람들 속마음이 그렇지 않나. 뭘 좀 아는 여자들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 줄 아나? 뭘 좀 모르는 남자는 그래. 여자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 줄 아냐고, 그러면서 상의는 셔츠를 입고 하의는 팽팽한 옷을 입는 남자를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무슨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하는 남자 말은 영 믿을 게 못돼. 따따부따 무슨 바보 머저리도 아니고 뭐 부러우면 지는 거다? 지가 무슨 복고풍 카피라이터야 뭐야? 그건 완벽한 하수의 어법. 부럽다가 부럽지 않다가, 숭상하다가 업신여기다가, 철들었다가 철들지 않다가, 햄릿형이었다가 돈키호테형이었다가 수비형일 듯 공격형일 듯, 생각이 막히지 않고 인습의 바닥을 엿볼 수 있는 그 모두가 자유자재로 가능해야 비로소 고수 세계의 문턱 주변에서 이제 방금 서성거리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지. 그럼.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나 마블 코믹스 만화에 나오는 신출귀몰한 첫번째 재주가 뭔가, 딱 하나만? 그래~ 변신이야 변신. 그거라고. 어디 무슨, 촌닭이라고 다 같은 촌닭인 줄 알어. 사람을 처음 보면 구두를 보네 어쩌네 고리타분하게 언제적 얘기를! 뭘 좀 아는 여자는 이런 남자를 좋아하지. 첫째 뭘 좀 아는 남자, 둘째 나만 언제까지라도 사랑해주는 남자, 셋째 뭘 좀 모르는 남자와 좀 놀아본 남자 가운데 하나를 뽑아야 한다면 고민없이 후자라는 것. 어리숙함이든 탁월한 학습 능력이든 황금이든 뭐든 그 모두를 다 갖추면 금상첨화고. 그러면 남자는 어떨까? 남자는 어떤 여자를 좋아할까? 곰을 선호할까 여우를 좋아할까? 뭐 고양이와 개의 장점을 모두 지닌 숙녀? 숙녀는 무슨! 남자는, 남자는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다네. 먹밥을 뿌리긴 하겠지만 물밑에 뭐가 있는지 그 관상이 어떤지 몰라 모른다구. 관심도 없어. 사주와 팔자는 내가 다 만들어 줄 수 있거든. 뭘로? 말로! 소곤소곤 쑥덕쑥덕 이 말로써 말이야. 몇 마디 하고 중간에 운명, 몇 마디 하고 중간에 미련, 다시 몇 마디 하고 맟추기 쉬운 걸로 스윽 떠보면 그래. 와 오빠, 그거 어떻게 알았냐고! 여자는 다 그래. 그러니까 남자들도 그런 거 아니겠나. 잡은 물고기에겐 어쩐다? 그래 그렇다고. 남자가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가, 남자는 어떤 관상의 여인을 선호하는가? 관심없어. 다른 거야 다 전망을 보며 견적을 산출하고 뛰어들 것인가 관망할 것인가 판단을 내린다지만, 아니 물밑이 통 보이지 않는데 그걸 어떻게 미리 정하고 사랑에 빠지겠나. 아니 그런가?」 


   3

   한 옛날 여자대학생부 1만 미터 기록보유자이며 중거리 3관왕이었던 러브양. 그녀는 왜 어느 대회에서, 본부석 앞 결승점 골인을 앞두고서 돌연 필드를 가로질러 곧장 경기장 밖으로 빠져나가 화이트강으로 뛰어들었을까? 4위 골인이 유력해서였나 인성이 안된 3위의 뒤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을까, 아니면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기억했던 것일까.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있다. 가면 오고 밀면 당기고 들었으면 놔야 하는데 세상사는 변수라는 게 있나 보다.
   그런데 변수는 앵거스에게도 있었다. 마르첼로와의 콤비 공연이 점점 삐걱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꾸 서로 핑계를 대면서 자리를 비우니까 어쩔 수 없이 1인2역으로 공연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앵거스가 없는 날은 그나마 나았다. 앵거스 역은 식은 죽 먹기였고, 있으나마나 하나마나 있거나말거나, 대역도 필요없고 녹음 음원을 핸드폰으로 잠깐 틀었다 끄면 그만이었다. 사람 만큼 커다란 인형을 의자에 앉혀 놓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마르첼로의 빈자리였다. 마르첼로가 그럴싸한 변명을 대고 결석하면 앵거스는 완전 비상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그는 최신식 이어폰을 이용했다. 무슨 피부의 진동과 어떤 특수 작용 때문에 외부 소리나 내 목소리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채 음성 인식이 가능한 장비를 큰돈 주고 어렵싸리 구입해서 톡톡히 잘 써먹고 있었다. 그런데 연기가 어색했다. 마르첼로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앵거스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완전 마르첼로가 맡았던 역할은 장난 아니었다. 물론 앵거스가 맡았던 역할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그 긴 대사를 듣는 연기, 오히려 그게 더 고역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래서 앵거스는 공연 도중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서 결국 한다는 일이 도망을 택했다. 한두 번 어쩌다 앵거스나 마르첼로가 공연에 빠지기는 했어도 그건 모두 한두 번에 그쳤다. 그래서 다시 둘이서 다정하게 공연을 하고 있는데 그는 공연 중 무작정 무대를 뛰쳐나갔던 것이다. 앞뒤 보지 않고, 관객은 퍼포먼스로 알든 어쩌든, 그는 무책임하게 떠났다. 그는 어쩌면 앵거스라는 정체성으로부터 잠시 떠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병적인 감수성이 도진 건지 새롭게 환상 증후군이 전면에 나선 건지 확실한 건 없지만 딱 하나, 그는 홀가분했다. 그는 해방감을 느꼈고,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나 산뜻한 기분이 길게 갈지는 아리송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전문 배우조차 기겁할 만한 긴 대사를 어떻게...  또 그것을 내내 듣고만 있어야 하는 역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능력 밖의 일이었으니까.
   떠나는 방법도 참 여러가지다. 그래도 참신한 구실인가. 전과 비교했을 때는. 이렇게 일을 벌인 다음 앵거스는 흥미진진한 모험에 빠지지도 않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환상을 체험하지도 않았다. 유치한 사랑도 물론 없었으며 낯선 도시에 정착하여 새 삶을 시작하여 추리소설 낭독 모임에서 누구를 만났다더라? 그런 거짓말 같은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당연히 앵거스는 저주 받은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방탕 방황 퇴폐 문란 천재성 영감 주색 자유분방한 광란과는 거리가 먼 해프닝만 있었을 뿐이다. 즉 옛날에 가출했을 때처럼 버스 타고 아무 도시에 가서 걷고 먹고 그곳의 시내버스를 타 본 다음 다시 자기 동네로 돌아오고, 독서실에서 하룻밤을 잔 다음 막노동을 하루 해서 그 돈으로 백화점에서 모자를 샀던 기억과 거의 흡사한 용기 밖에 없었다. 당시 그는 학교 친구한테 사찰에서 잤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녀석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에 그는 막노동에 도전했다가 1시간 후 어디 아픈 데가 도졌다면서 죄송하다며 현장에서 도망갔고, 학창시절에 품었던 이상과 꿈도 회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공연했던 소극장으로 돌아왔다.
   「앵거스. 천사의 권위인가 전문가의 위선인가. 모호하다 어째. 난 늬가 공연 중에 도망갈 줄은 미처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어떻게 중요한 용무는 봤고? 고로 까마득한 추억을 되찾고, 그토록 아름답던 사랑과 재회하기라도 했냐? 왜, 대체 왜 도망갔냐?」
   「왜냐고? 그냥 겁이 났거든. 난 그냥 재미로 연극을 해 보는 건데 혹시 이러다 평생 연극만 하는 건 아닌가, 그래서 난 결국 유명해지고 그런 말을 듣겠지. 아아 앵거스가 늙었어! 라고. 뭐 앵거스가 늙었어? 이 양반이 지금... 워 워 워! 때문에 난 별안간 발생한 공포심을 무마시키고 싶어서 떠난 거야. 미안. 나도 이런 내 행동이 비겁하고 못났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뭐랄까 불운과 비운을 미리 겪어야만 찬란한 내일이 눈부신 미래로 바뀌지 않을까, 뭔가 그런 연보라빛 마네킹의 송가가 느껴졌다고 하면 그건 너무 내 생각만 하는 거겠지?」
   「잘 아시네! 걱정도 팔자다. 웃기지도 않다고. 아무튼 공연은 잘 마쳤어. 보이드 불러서 즉흥 원맨쇼로 마무리했어. 그런데 오히려 반응이 더 좋던데. 보이드가 순식간에 관중을 꼬시고 부추기니까 아마 다 넘어갔나 봐. 치사한 귀빈들 같으니라고.」


   4

   아마도 괴상한 전위극의 장기 공연은 누군가에게 별로 탐탁지 않은 호사였을까? 앵거스는 생활고에 허덕이지도 않았고 나름 개구쟁이 호기심도 잘 돌보면서 살았지만 뜬금없이 그는 두 번째 공연 사고를 내버렸다. 관현악 공연장 무대에 난입한 강아지도 아니고 왜 자꾸 연극을 하다가 중간에 도망을 갈까? 병인가? 한 번이야 그럴 수도 있다지만 두 번이 되니 이젠 이건 중증이었다.
   앵거스가 도망가서 어떤 경험을 했었나는 불문에 붙이고, 왜냐하면 비밀도 필요한 법이니까, 돌아와서부터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이와 같다.
   「앵거스. 이번엔 또 왜 도망갔냐?」
   「글쎄. 난 정말 도망가지 않으려고 했거든.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된 건지 나도 잘 모르겠어. 이건 어쩌면 머머증이 아니라 새로운 신드롬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봤다네. 아무튼 자세한 얘기는 말할 수 없고, 이제 다시는 도망치지 않겠네. 진짜, 진짜로. 믿어주게나 친구.」
   「판만 벌려놓고 수습은 깔끔하시다? 입심 좋은 남편감이군 그래. 표류 그만하고 이제 그만 허황된 꿈에서 빠져 나오시지. 앵거스, 너 그거 병이야. 일병이라고. 네가 지금 사춘기니? 아니면 뭐 도망 중독이라도 걸렸냐? 것도 아니면 차라리 필사적으로 쾌락에 매달리던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제나저네나. 대체 철은 언제 들래? 어쨌든 기억해 둬. 넌 내게 두고두고 잊지 못할 놀림감이 됐으니까 말이야.」
   「마르첼로. 마음에도 없는 농담 하지 말게나 이 친구야. 바보의 행진 천재의 후진 괴짜의 도약 가운데 내 역할이 꽤 컸다는 걸 이제 그만 인정하라고.」
   「얘 아직 정신 못차렸네. 아 상태가 영... 그런데 있잖아. 웬 연예기획사 사장이 다녀갔어. 늬 극본 사겠다는데! 출판권은 물론 공연권까지 모두. 또 무슨 인접권인가 뭐라면서 법률 용어도 말했는데 그건 잊어먹었어. 공연도 전체를 모두 녹화해 갔고. 게다가 이 말을 꼭 전해주라고 하던 데. 아무리 은둔형 신비주의자를 고집해도 자기들이 강제로 늬 작품을 띄우겠다고.」
   「너 뭐 잘못 먹었냐 아니면 잘못 들었냐? 허풍 떨지 마!」
   「장난 아니라니까. 얘가 사고도 자기가 치고 성내는 역할도 자기야? 아 나 정말! 아무튼 난 말 전했다. 알았지? 나중 후회하지 말고.」


   5

   마르첼로는 비록 연극이지만 하도 앵거스한테 내 블로그에 올라온 새 글을 읽어봤냐는 물음을 주기적으로 들으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앵거스의 블로그를 읽어야 할까, 앵거스는 블로그를 쓰는데 나는 연설도 명문도 사랑까지 내가 직접 할 수는 없고 언제나 간접 경험만 해야 할까, 유치하게 간접 키스했네 어쩌네 난 뭐 애들 장난 같은 드라마나 보고 있으라고? 마르첼로는 결국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누군 뭐 왕년에 잘나간 적 없었나 라면서 마르첼로는 자기 블로그에 글을 썼다. 그런데 그게 하필 주제가 정치였다. 것도 그냥 막연히 정치. 뜨아! 그리하여 그는 블로그에 글을 썼다가 지웠다. 그러나 그 글은 발행됐다가 지워졌고, 그러므로 당연히 앵거스는 마르첼로 이 녀석 다 커서 작문 연습을 하고 있네 그러면서 여유롭게 웃으면서 완전 좋아했다. 왜냐하면 마르첼로가 쓴 정치에 관한 습작은 완전 작문 연습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 글을 읽고 얼핏 드는 생각은 이랬다. 마르첼로 이 녀석 혹시 글에 대한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뒤늦게 깨우치는 건 아닐까? 그런 의문이 떠오름과 동시에 앵거스는 왠지 모르게 마르첼로가 쓴 글이 훌륭해 보였다. 또 어딘가 모르게 마르첼로가 글로써 나중 대성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서둘러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 그런 다음 새로운 착상이 떠올랐는가는 열외로 하고 마르첼로가 정치? 정치에 대해서 어떤 글을 썼는지 살펴보자면 이와 같다.
   좌우간 정치가 업이라면 몰라도 직업이 아닌 이상 정치관이 일평생 어느 명화의 비뚤어진 표정과 비슷하다면 그건 뭔가 이상하다. 그건 정상적이지 않다. 거긴 어디 텃밭 어디는 무슨색, 그럴 수는 있는데 그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시간과 인생을 초월해서 일방적이다? 그건 비정상이다. 그래서 그건 왜 지역과 사람이 그럴 수 밖에 없었나를 유추해 봐야 한다. 노력 대비 결실이 미미하거나 일하는 방향에 응하는 평가가 합당하지 않을 수도 있는 분야가 정치인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운 따라 피선거권자가, 복권 사듯 일부 선거권자가 자신의 의지를 행사하며, 왜 불합리한 결과는 반복되는가 그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정치는 순전히 스스로 좋아서 곡을 쓰고 흥이 나서 사랑의 춤을 추는 일과 달리 개인의 행복 추구와 나의 천직 사이에 등호가 성립하기 힘든 분야라지만 아무리 봐도 정치가 제일 이상한 분야인 것만 같다. 왜냐하면 30년 50년 정치인으로 산 다음 나중에 보면 정치인은 스포츠 선수와 아주 흡사한데 동일하지는 않고, 정치인은 연예인과도 비슷한데 또 같지는 않고, 정치인에 대한 말은 많겠지만 정치인 스스로 나는 무엇을 잘못했다 라는 말은 평소에 거의 듣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작가야 잔칫상은 출판계에서 준비하고, 배우야 조명은 연예계에서 비춰준다. 그런데 정치인은 시대 때문인가 몰라도 점점 오락산업과 밀접히 가까워져만 가는 듯 하다. 유달리 운이 좋든 저평가 받든 정치인은 그렇다 쳐도 피선거권자를 심판하고 감독해야 할 선거권자는 또 어떤가? 독실한 신자라면 종교니까 그분께서 어떤 기도를 드리든 그분의 자유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가 역시 새로움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일관되든 노선을 바꾸든 정치 후원금을 납부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사회-경제는 관심 부족인데 반해 정치를 로또 복권 사듯 인식한다는 것은 내 엄정한 기준이 어떻건 그건 문제가 있다. 어느 지역이 어떤 사람이 정치에 대해서 내내 빈틈없이 일방적이다? 비약하자면 그건 시험 문제 나오기 전에 답안지 먼저 작성하는 것으로 비유하게 만드는 일은 아닐까? 따라서 왜 그분은, 대체 왜 그곳은 그럴 수 밖에 없었나를 심도 있게 생각해 보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그런 노력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기원전 몇 년의 어떤 군중이나 현재의 총명한 대중이나 거기서 거기일 뿐, 별 차이는 없게 될 것이다.


   6

   앵거스가 다시 도망가기를 감행했을까, 감행하지 않았을까? 앵거스는 도망가지 않았다. 제2의 자아가 명령하고 나는 그 사주를 받아 도망간다,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연극하다가 도망가면 돼 안돼? 안된다.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없이 이성과 감성 모두 안된다에 따른다. 밀가루를 닮은 약이랄지 뭔가를 취한 다음 상대방 얼굴이 당나귀나 코불소로 보이는 그런 일은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그건 아마 세 가지 경우 가운데 하나에 해당될 것이다.
   첫째, 진짜 당나귀 옆에서 피로회복제나 청량음료를 마셨으니까 그걸 마시기 전이나 후나 당나귀 면상이 당나귀 면상으로 보이는 일.
   둘째, 매우 드문 확률로 기가 막히게, 절묘히 약발이 받아서 진짜로 사람 얼굴이 당나귀 용안으로 보이는 일. 이건 거의 하늘이 천명해야 가능할 일일까, 그건 별님에게 물어보자. 자, 그리고 셋째!
   셋째, 이게 중요하다. 셋째는 자줏빛, 살구빛깔, 황금색, 칠흑처럼 검은 앵무새와 치타와 하마가 아닌 이상 무색하여 어쩔 줄 몰라하며 기뻐하는 일은 드물다는 것. 곧 사랑에 처음 빠질 때의 기분은 그 그윽하며 세련된 분위기가 더 최고조로 길이길이 이어질 수도 있으나, 보통은 고상함의 반대편으로 근사함의 반대말로 넘어갈 수 밖에 없다. 쉬운 예로 술에 제일 처음 취해서 천장이,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경험, 장래 두 번 다시 경험하기 힘들다. 엇비슷하게 재현될 수는 있으나 진짜 환상에서 기분만 환상으로 변한다. 밀가루와 케첩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자세히는 몰라도. 모르긴 몰라도. 교묘한 만족을 갈망하건 군침을 꼴깍 삼키며 도파민이 분비되건 어쩌건, 순조롭고 이쪽 저쪽 모두 따졌을 때 중독되어도, 설혹 그것이 병이 된다고 할지라도 아마도 무해한 일이 하나 있긴 있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우주도 나를 위시하여 빙빙 돌며 기쁨의 시간이 춤을 추는 일. 그것이 반복되어도 약물중독도, 정신병도, 타성도 권태도 불행도 아닌 일. 전혀. 그것은 무엇일까? 무엇이겠나, 사랑이지! 또는 건전한 방법의 몰입감 같은 거.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사랑에 빠진다. 매일. 여기를 봐도 사랑 저기를 봐도 사랑. 오늘도 사랑 내일도 사랑. 하루에 최소 12번. 그렇게 날마다. (하이파이브)! 우리는 변화가 필요하다면 몰라도 좌우명은 일단 그것이다.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별 이미 땄는데 뭘 또 따나? 안 그런가? 그러나 숙녀의 엄격한 잣대는 짐짓 시치미떼면 되나 안되나? 안된다!
   서론이 길었는데 볼론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셋째는 누군가의 면상이 당나귀로 보인다면 그건 처음 1번만 그렇다는 것. 하지만 예외도 있다. 가령 어머나 예전엔 미처 몰랐는데 공부하는 게 날아갈 듯이 즐겁네? 그런 일. 이를 테면 몰입. 일하는 게 따분하고 지겹고 재미없는 게 아니라 바로 일이 미치도록 좋네?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건 일이라구? 그야말로 미친듯이 행복하게 일하네? 그런 거. 또는 날마다 생일 잔치 같은 조증을 타고난 듯한 응? 좀 많이 부유해 보이는 백치미 가득한 미녀가 나 좋다고 날이면 날마다 쫓아다니네? 전화하고 또 전화하고 내가 이따 전화할께 또 불러내서 고기 사주고 이러쿵저러쿵. 난 눈이 단춧구멍 같은데 말이다. 바로 그런 거! 그런데 이 얘기를 왜 했지? 아, 앵거스는 바로 이런 사정들을 고려했을 때 이제 더 이상 도망가지 않았다, 를 설명하기 위해서 했다. 따라서 앵거스는 이제 무대에서 도망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오렌지색 환상과도 같은 일에 당도하고 말았다.


   7

   신비론.
   앵거스는 아직 신비론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지는 못했으나 그 말만큼이나 눈부신 한 여인을 만나고 말았다. 그녀는 어쩌면 천사의 날개와 악마의 구두가 공존하는 요정이 아닐까. 그런 기분 때문에 앵거스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자상한 남아의 제정신은 어디 무지개 너머 난장이 나라로 놀러가버린 게 아닐까, 싶도록 이성을 마비시키며 명석한 지능이 묘연해지는 현상이 발생할 정도였다. 짝사랑에 저절로 빠져들게 만드는 남자가 있다면 그녀 역시 공손한 애정으로 사랑의 찬가를 절로 부르게 만드는 숙녀였다. 바로 누구에게나. 그러나 앵거스는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왜? 그는 전문가니까. 진짜로 그는 연극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공연을 하고 있지 않나. 저번에 잠깐 소란을 피우기는 했지만 이제는 도망가도 재미없고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은 그였다. 그래서 앵거스는 수다스럽고 설레는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한마디했다. 그런데 때가 때인지라 마르첼로는 당황했다. 지금 그 긴 명대사를 읊고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연극 제목이 바로, 긴 긴 명대사였다.
   「침착해야 한다 침착해야 한다.」
   이때부터 천재 마르첼로는 버벅대기 시작했다.
   「난 생맥주를 마셨는데 그 둘은 그걸 마시지 않대~! 작은 맥주컵도 아니고 아 그런데 그게 500cc 였나 1000cc였나. 1500cc는 아닐 꺼 아니야.」 그처럼.
   그러다 마르첼로는 대사를 그대로 옮기지 않는 즉흥연기에 들어갔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물론 헤어졌지. 끝날 수 밖에 없는 사랑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다음에는? 물론 남자는 탕자이자 난봉꾼에 도박사로 이름을 날렸고, 여자도 나름 여자의 인생을 살았지. 그런데 재미난 게 뭔지 아나? 세월이 흐른 뒤에 말일세, 아 글쎄 그 둘이 다시 만나더라구. 다시 사귀기 시작했냐고, 재결합 같은 거? 걔들이 무슨 연예인인가 연애소설 주인공인가? 젊음의 나이트클럽 풋사랑도 아니고, 핸드폰 데이트 앱으로 가볍게 만나서 오직 단둘이서만 만나다 헤어지는 가벼운 만남도 아니고, 불륜도 아니고 열애도 아니며, 사랑이라 부를 수도 없는 이상한 재회만 틈틈히 이어졌다는 후문이 전해지더군. 남녀의 애정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 
   마르첼로는 바로 이렇게 악보에서 외도를 했다가 어정쩡하게 어떻게 어떻게 해서 다시 극본으로 돌아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간택을 해도 하필 어떻게 그런 일을... 그러게 말이다. 오, 어머나! 환청인가 에코인가. 내 말이?
   천재 마르첼로의 실수를 유발한 앵거스의 독백은 바로 이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곧 그날 연극을 보기 위해 모인 구름 같은 애호가들 덕분에 모처럼 객석은 발 딛을 틈이 없었다. 일명 만석 매진. 보통은 최소 1명에서 많아야, 많아야... 숫자를 말하면 슬퍼지니까 넘어가자. 그런데 참 이상하게 그날은 객석이 꽉꽉 찼다. 저번에 무슨 연예기획사 대표가 다녀갔다는데, 혹시 그것과 관련이라도 있을까? 그걸 내가 어찌 알겠나. 다만 아는 건 이 정도. 하도 관객이 없길래 앵거스가 한마디 했겠지.
   「마르첼로. 만석은 언제나 기대할 수 있을까? 난 통이 작지도 않고 속 좁은 남자는 아니라구. 카드 게임도 큰 판을 좋아하고, 피자도 큰 거, 꿈도 대망, 물고기는 대물에 쇼핑 목록도 만선에 여자라면 풍성한 여복? 여자는 어떻게 아담하고 앙증맞고 귀엽고 응? 그런데 이게 정말 뭔 얘기야? 아, 환호성에 목마른 이 내 청춘이여! 마르첼로, 천재 마르첼로여. 정녕 기립이란 낱말 다음에는 무엇이 와야 할까? 박수? 묵념하다?」
   「일어서긴 뭘 일어서? 일어서면 앉아서 하는 걸 못해. 공부 같은 거. 누워서 상상하거나 탄복할 만한 꽃 한송이를 꺾을 수도 없다구.」
   한편, 신비론에 절묘히 일치한다는 아가씨와 만석 공연은 대체 뭔 상관이 있을까? 상관관계가 있다. 연관도 그런 연관이 없다. 왜냐하면 숙명이라는 간지러운 단어로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저 하늘의 구름을 다정한 솜사탕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으니까. 그건 바로 공연 관람자가 100퍼센트 눈이 작은 남자였기 때문이다. 100퍼센트 눈이 작은 남자로 객석은 꽉 찼다. 꽉꽉. 그런데 자세히 보니 100퍼센트에서 1퍼센트랄까 뭔가 은근히 오점이 섞인 듯 했다. 찬찬히 살펴보니 눈이 작은 남자가 100퍼센트는 아니었던 것이다. 무릇 눈이 덜 작은 남자도 간혹 있었고, 나비넥타이나 선그래스도 있었으니까. 심지어 자타 공인 진짜로 단춧구멍처럼 눈이 작거나 갸름한 사람도 최소한 절반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이건 너무 심했다. 어떻게 반올림하면 전 관객이 모두 단춧구멍이라니! 물론 사적인 표현의 남용을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그런데 우연치고는 믿지 못할 우연인지 한 여자가 있었다. 애지중지 아껴온 비밀을 얼렁뚱땅 발설하게 만들 것만 같은 우연의 일치 때문에 앵거스는 그녀를 운명적으로 주시하게 됐다. 그녀는, 그 전원 단춧구멍처럼 작은 눈망울의 소유자들 틈에서 군계일학격으로 존재했다. 맞다. 진짜로 그 말마따나, 군계일학! 객석 중간쯤에 우아한 자태를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어마어마한 매력이 발산되는 한 아가씨가 앉아있었던 것이다. 조용히. 다소곳이. 착하게.
   그래서 이건 기막힌 후광 효과를 불러왔다. 한오라기 터럭도 섞이지 않은 무서운 흑표범이 눈동자를 힘주어 뜨면 이와 같을까 다를까. 서술자의 표현이 아니라 사석에서 여자가 말하는 어법에 따르자면, 객석은 온통 단춧구멍 남아로 가득찼는데 어떻게...! 서술자의 표현이 아니라 사석에서 여자가 말하는 어법에 따르자면 단춧구멍 99에 절세미녀 1명이란 말인가?


   8

   단춧구멍 단춧구멍 하면 진짜로 눈이 작은 사람은 상처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이참에 아예 집고 넘어가자. 남자들이여, 돈 싫고 명예 싫고 숙녀들의 인기를 한몸에 독차지하기를 진정 싫어하시나요?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로 호사와 풍요와 행복과 기쁨을 싫어하신다면 그걸 경하드려야 할지 만류해야 할지 분간이 안되는 일이다. 어디에 수소문할 필요도 없고 남자들끼리 으쌰으쌰하는 것처럼 사석에서 사적으로 만나보고 친해지면 알게 된다.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라는 것을. 일단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닌 바로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보는 혜안에 따르자면 그렇다. 으아~ 캬~ 남자~ 남자~? 여자도 똑같다. 여자도 똑같다고. 여자를 안다는 것이 그거다. 남자는 허세 여자는 허영의 차이도 상황 되면 희석된다. 분위기 갖추어지면 알고 보면 남자든 여자든 허세와 허영을 양쪽에 꿰차게 되는 것이다. 최소한 여자는 여성잡지1에서 2로 변하지 그 반대 양식은 단지 허구에 불과하다. 한 사람만을 영원히 사랑할지라도 말이다. 여자는 다 그런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다. 여자는 다 그래. 여자에 대해서 블로그에 누누히 설명을 했지만 해도 해도 끝이 없지만, 여자~ 캬~ 여자, 참으로 말 못할 사연도 있지만 때로는 길게 해명할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극명하게 딱 하나 단어 하나로 그 모두는 끝나기 때문이다. 구구절절한 해명과 심각한 논평을 모두 수줍게 만들어버리는 그 단어가 대체 뭐냐. 뭐냐 하면 바로 단춧구멍이다. 그러나 꼭 기분 나쁠 필요는 없다. 사람은 돈이 많을 수도 있고 가난할 수도 있고, 키가 큰 사람이 있으면 뚱보도 있고 핸드폰을 사는 사람이 있으면 만드는 사람도 있으니까. 뚱보란 말도 똑같다. 뚱보라고 해서 얼마나 놀리고 비난에 차별에 야유에 해당하겠나. 오히려 친하면 친할수록 뚱보라 부를 수도 있다. 괜히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뚱보라고 하지 않아도 이미 후덕한 사람은 이미 그 말을 한두 번은 들어봤기 때문이든 유치원에서 배웠기 때문이든 이미 안다. 단춧구멍도 똑같다.
   그러나 사석에서는 다르다. 뚱보와 단춧구멍이 친할 수도 있는데 우정과 사랑은 또 다르니까. 단춧구멍의 우정을 받아주지 않으면 에게~ 응애~ 난리난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원래 자기 단짝이었는데 새로운 우정이 나타나서 삼각관계도 아니고 나만 낙동강 오리알이 되버렸다? 슬리퍼 찍찍 끌고서 황급히 택시 타고 현장에 쫓아간다. 뭘 부수고 소리 지르고 트집 잡고 없는 생트집가지 잡고 여자친구한테 쟤 단점을 알리고 비난하고 찌르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남자의 질투? 워-워-워!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와 만화영화를 보고 자란 남자들 세상에서 경쟁 심리를 알고 우정과 사랑의 차이점에 대해서 평생 고심해보면 남자의 질투를 알게 된다. 괜히 사랑은 일부일처제 우정은 일부다처제라고 한 게 아니다. 우정도, 때로는 우정도 일부일처제일 수도 있어서 하는 말이다. 오히려 사랑은 평생 길게 유지되든 어쩌든 사랑은 대체로 변한다. 그러나 우정은 사랑과는 조금 다르다. 가까운 우정은 평생 간다. 자주 볼 수는 없더라도 말이다. 그게 우정이다. 여자는 친구끼리 대화를 많이 하는 반면 남자는 친구끼리 사랑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잘 지킨다. 남자와 여자 간에 우정의 형식은 다를 수 있지만 남자 여자 모두 우정이든 사랑이든 내가 누구에게나 내가 어디서나 나는 1번이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이게 뭔가? 본능이자 인기다. 상업적 인기가 아닌 사석에서 진짜 웃기고 만나고 싶고 반기는 사람이 많다는 바로 그 인기. 그래 삼지창 같은 거. 도톰한 목소리 같은 거. 사랑은 끝이 있고 우정은 끝이 없다. 마음에 안 들면 바꾸는 건 똑같다. 그래서 어쩌면 반대로 사랑이 일부다처제요 우정은 일부일처제일 수도 있다. 그건 곧 현실과 이상의 절충선은 우정도 사랑도 모두 일부일처제와 일부다처제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단 말인군, 오 저런! 단춧구멍. 우정과 사랑에 대해서 나는 평생 적극적이어야 하는데 왜 나만 적극적이어야 하는가. 단춧구멍. 우정과 사랑에 대해서 주로? 거의? 타인이 내게 적극적이었던 사람은 그분의 심정을 잘 모를 수도 있다. 이해한다고 말은 한다. 그분의 결별과 이별과 실패 그리고 어떤 짠함과 뭔지 모를 심심함을 위로하며 함께 놀 수도 있다. 그러나 위로를 받고 행운이 따르더라도 그분의 무의식에는 언제나 그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잔존한다. 항상 그리고 평생 잔존한다. 사랑에 대해서 나는 평생 적극적이어야 하는데 왜 나만 적극적이어야 하는가가. 왜냐하며 내가 적극적이지 않으면 내게는 우정도 사랑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많이 크다. 사람 봐 가면서 꽃 들고 쫓아가고 기다리며 귀찮게 하고 시간 쓰고 돈 쓰고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느냐 음 그렇게 사람 봐 가면서, 그게 아니라 기다리기만 하면 호박이 넝쿨째 제발로 굴러오느냐.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늑대가 물고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늑대는 사람 봐 가면서 적극적이어야 하는 운명을 간직한 물고기와 화사한 꽃밭에서 여기 저기 거기 어디나 서성일 수 있는 꿀벌로 나뉘는 것만 같다. 늑대는 늑댄데 물고기과냐 꿀벌꽈냐. 아아 쉽지 않다. 쉽지 않아. 단춧구멍. 그럼 여우는? 잘 아시지 않는가!
   저분은 왜 그럴까, 긴긴 시간 깊게 생각을 해 보면 희미했던 까닭이 조금은 선명해진다. 사랑도 아닐 텐데 왜 저 단춧구멍 친구는 내게 그토록 집착하고 집요함으로 살갑게 굴었을까, 쟤는 왜 저렇게 천성이 냉소적이며 속에 숨겨논 얘기를 더 꼭꼭 숨기며 인터넷 뉴스가 삶의 전부인 것처럼 핸드폰만 쳐다보는 의뭉스러운 삶을 사는 걸까, 게임은 싫어하는데 게임 같은 작품만 열광하는 저 친구는 대체 왜 항상 매사 까칠할까. 관찰! 관찰하면 선연히 들여다보면 답 나온다. 그래도 때 이른 상심은 사양할 것. 왜냐하면 남자는 야망과 꿈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에게는 수다와 상상이 있듯이. 그런데 사랑의 나비와 황금의 이상이 어디 쉽게 손에 잡히던가. 그래서 로또 복권의 인기는 영원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랑프리를 꿈꾸지만 결과는 매번 꽝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꽝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남자는 그래도 사람과 상황 봐 가면서 사랑의 설을 풀고 연정의 즉흥 시를 읊고 춘몽을 노래하며 애모의 씨를 뿌린다지만, 그래 꽃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지만, 수선화도 제비꽃도 튤립도 장미도 한송이 들국화도 꽃잎은 시들 수 밖에 없다는 점. 잡은 물고기한테 밥을 주면 되지 왜 밥을 주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숙녀들은 다정하고 친절하며 자상한 남자를 좋아하지만, 문제는 그 남자는 숙녀들한테 인기가 많다는 것. 젊을 때 안 이쁜 여자도 있나 뭐, 늙어 봐라, 늬들도 그런(늙어서 어쩔) 때가 올 것이다, 늬는 안 늙을 줄 아냐, 라는 말을 누가 언제 왜 하는지 모를 수 없다는 점 역시 우정 및 사랑과 밀접히 관계된다는 점. 우정과 사랑 가운데 과연 무엇이 일부일처제고 뭐가 일부다처제인가, 흥겹고 기쁘고 좋아서 나아가 궁금해서 하는 말이니 오해는 금물. 사람의 생각은 각자 다 다르지만 한 사람의 생활과 심리를 분석해보면 답 나온다. 자주 연락하는 친구와 지인등을 분석해보면 타순처럼 1번부터 9번까지 딱 답 나온다. 1번부터 9번은 절대 동등할 수 없다. 차리라 그걸 감안하고 인정하는 게 편하지 남자 대 남자니 우정이니 어쩌니 눈치 없이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자기만 힘들 수도 있다. 학교에서 뚱보였고 사회에서 '우리는' 화법만 구사하는 철부지로 낙인찍히며 여자한테는 단춧구멍 첫인상으로 동네에서만 유명하더라도, 아무리 투정하고 불만에 응석이 날 괴롭혀도 어딘가에는 나를, 그대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TV를 틀어서 다큐멘터리와 뉴스를 보지 않아도 되고 병원에 찾아가지 않아도 아는 일이다.
   그리고 잘 찾아보면 나만의 재주와 나만의 특기랄지 소질이 있게 마련이다.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는 수도 있다. 첫술에 배부르랴. 다 팔자소관이다. 그걸 골라서 태어나는 인간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지만 다만 차이라면 이 정도다. 0에서 출발해서 안락한 삶을 사느냐 마느냐, 토끼 같은 자식과 여우 같은 마누라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느냐 희망하느냐, 인생관이 있냐 없냐 인생이 멋지냐 멋지지 않냐, 소소한 기쁨과 잔잔한 행복에 만족하느냐 떠나느냐. 하오나 현재의 평판이야 훌륭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으나 시간이 지나서 아 그 사람 하고 떠올리면 '괜찮았어' 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인생도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두 마리 토끼 이론은 말 그대로 이론이니까. 인생을 간결하게 설명하자면 하나를 쥐면 하나를 놓아야 하는 게 바로 인생이다 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B.C.356~B.C.323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알렉산더 대왕쯤은 평이 괜찮네, 그럼 일을 참 많이 했다는 소리네 그러면 통과, 그냥 현세에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왕으로 태어났다면? 궁녀가 몇 명이든 그건 확률적으로 희박한 일이다. 비율은 다를 수 있으나 1을 위해 99가 자유와 평등과 행복을 제한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시대가 바로 옛날이었으니까. 노예로나 태어나지 않았으면 그나마 다행이지 꿈도 야무지다. 꿈만 크면 삶이 어떻다, 어른들은 모를 수 없다. 궁녀와 애첩? 꿈 깨고 냉수 마시고 속 차리는 게 차라리 나은 일이다. 단춧구멍, 단춧구멍이 그거다. 금빛 삼지창과 풍요 안온 기쁨 부귀영화 재미 즐거움 미소 행복과 함께 하는 동메달 같은 삼류 인생, 그 가운데 은빛 단춧구멍이 있을 뿐이다. 단춧구멍에 해당하는 크고 작은 열등감은, 적어도 '난 부럽지 않아' 같은 자존감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쉬운 예는 타인보다 나를 본보기로 삼는 게 제일 편하다. 나! 그리고 그대! 지난 일기장이 있다면 먼지를 털어 그것을 읽어보자. 지금 다시 읽어보면 완전 빵 터져야 정상이야. 왜냐하면 그때 쓴 일기는 완전 다 욕이던가, 완전 소녀 감성이었던가, 아니면 시시한 투정과 온갖 욕망을 주로 1차적으로 기록한 초딩 일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기록을 남기지 않았거나 버렸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 그리고 거울을 보자. 나는 눈도 튀어나왔고, 몸의 비율도 썩 뛰어나지 못하며, 가난한 데다 심지어 줏대도 없다. 더불어 에로비디오도 더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미 많이 봐버렸다. 그래서 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남자가 되어버렸다. 으흐흐흑 으흐흐흑. 어떤 여자가 이런 남자를 좋아하겠나. (하여간 엄살은!) 어쩔 땐 이상한 상상도 해 봤고, 때에 따라 내가 좀 더 험상궂게 완전 무섭게 생겼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숙녀를 생각하면 또 미소년의 외모가 부러워서 잠을 설치기도 한다. 어제도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뜬눈으로 긴긴 밤을 지샜다. 그런데 꿈은 꿨다. 내용은 잊어먹고. 무엇보다 난 살면서 그동안 공식적으로 여자와 사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사귄지 1일 2일 벌써 1년 2년 그런 거도 못해봤고, 그걸로 넌 지금껏 뭐했냐 라고 누가 날 꾸짖어도 낯선 타인이 윽박지르건 친구가 우린 뭐 클래스가 안되냐고 짜증내건 넌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라고 걱정해주건 어쩌건, 이젠 이제는 다 귀찮다. 반박하기도 피곤하고 게다가 모두 사실이지 않나. 그걸로 날 비하하면 대체 얼마나 비하하겠나. 그냥 지나가는 거다. 또 반틈은 빈말이자 가식에 진심은 무슨 거의 무관심을 예의로 포장한 경우가 태반이다. 그게 다다. 부러움 가운데는 이상하게 그런 거도 있다. 하루에 딱 3시간만 잠자는 단상성 수면을 타고난 사람. 열심히 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남이 9시간 자는 거랑 똑같다는 3시간도 많이 잔 거라는 수면자 말이다. 하루 평균 2~2.5시간 수면이 보통 사람의 8시간과 동일한 효과를 나타내는 정도. 그렇지만 11, 12시간 자는 사람도 있고, 시간이 많으니까 긴긴 여유가 좋기는 좋겠으나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을 수 있으니 그냥 중간이 좋은 걸로. 때로는 그분들이 부럽지만 난 현재 잠 원없이 자며 게으르게 살고 있다. 또 미술계에서 작품 총량 및 총 가치가 파블로 피카소를 1위로 알고 있었는데 연평균으로 따졌을 때 빈센트 반 고흐가 있으니 꼭 그렇지는 않다, 촌스럽게 이런 소식에 자연스럽게 눈이 간다. 그리고 나는 학벌도 고2 초반부터 공부는 놔버렸고 고3 내내 거의 전교 꼴찌 수준이었으니 삼류대학도 의미 없고 중졸이나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난 친구를 놀리면 기분이 좋다. 기분이 많이 좋다. 그런데 친함의 척도를 놀리는 걸로 따지는 친구 사이만 있지는 않고 몇몇 유형으로 나뉜다. 맞다. 난 기억나는 3대 길티플레져도 있다. 난 정말 그런 허접하고 덜떨어진 머저리 실용주의자다. 구제불능이다. 집안도 비리비리하고 뭐 하나 변변치 않지만 반론이고 뭐고 다 귀찮다. 기분 나쁜 비판을 들어도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일이 아닌 사안에 대해서만 생각을 사유로 연결시키지 그게 아니면 다른 데 신경 쓰는 게 낫다. 할 일을 하고 할 말을 생각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소망 동경 욕구 선망을 심심하면 떠올린다. 누가 자랑하면 대체 얼마나 자랑할 것이고, 어디서 비하하면 또 어느 정도 심하게 놀리겠나. 다른 사람도 다 그런다. 왜? 왜냐하면 시행착오 할 만큼 했고 세상사가 보이며 인생을 아니까. 내 허세 허영 허풍 깐족지수 역시 33 24 37 50 150 그처럼 스스로 잘 아니까 말이다. 그런데 끝에 150은 뭐지? 혹시 IQ? 꿈 깨야 한다! 그건 허당기다. 100을 훌쩍 뛰어넘는 은근 허당기. 심지어 나는 둔재다. 페라리에 에르메스와 밤의 제왕과 언더그라운드의 황제에 대한 공상이나 하며 허언증은 언제 도질지 모르지 무슨 증후군이 창시되면 내 이름이 붙을까 봐 사양할 걱정 먼저 하는, 단춧구멍에 버금가는 아니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얼간이 코흘래개 똥싸배기가 틀림없다.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처럼 나는 헛된 단꿈으로 허황된 일상을 보내기 일쑤다. 뚱보니 단춧구멍이니 다 비슷한 얘기다. 내가 좋아하는 단춧구멍 단짝과 친구들도 있고 풍만한 여자가 나는 좋더라. 뚱뚱한 아이는 한없이 귀엽더라. 여유로운 성인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뚱뚱한 게 뭐 어때서! 영화배우처럼 눈매가 서글서글하지 않다는 게 뭐 어때서! 뚱뚱한 동시에 단춧구멍이라도 우정과 사랑 얼마든지 가능하다. 뿐인가? 단춧구멍 뚱보 중에도 어디산 다비드는 분명 있다! 적지 않다. 완전 많다. 내가 여자한테 듣던 말 가운데 제일 재밌었던 말 가운데 하나는 그거다. 오빠 눈 튀어나왔어, 입도 튀어나왔어! 그때 난 완전 배꼽 빠지게 웃었다.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단점을 열거할 수도 있다. 눈이 크면 상대에게 감정을 읽히기 쉽다. 협상 테이블 구경은 꿈도 꿀 수 없다. 눈에 먼지가 들어가기도 쉽다. 마스카라 화장품 값도 많이 든다. 다른 여자들이 눈독득일 확률이 비교적 높지 않을 수 있으니 마누라는 안심한다. 고로 친구한테 드라마 명대사를 들려주지 않아도 된다. 내 남편한테 껄떡대지 마 이년아 라고. (뭐~ 껄떡~?) 여자가 속편하다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란 말인가. 여자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내적 가치 추구. 그야말로 이상이다. 안 그렇소? 안 그럴 수도 있다. 말이 그렇다는 말이다.
   기준을 달리하면 몰라도 일단은 단춧구멍과 뚱보에서 자유롭다고 너무 말을 쉽게 한 듯 해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모험가도 탐험가도 도전자도 아니면서 사랑의 방랑자요 험한 세상의 방관자 주제에 따따부따 주장만 앞섰고 말만 많았다. 남의 일 타인의 입장 그렇게 쉽게 말하는 게 아닌데 말이다. 동자승의 민들민들한 정수리를 초강력 자석 같은 인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속 시원~하게 웃으면서 슥슥 문지르다가 결국은 핀잔을 얻어듣더니, 그때나 지금이나! 하오나 숨길 수 없는 핑계 하나 첨언하자면 설령 일부러 불쌍해 보이기 위해서랄지 흡족한 만찬과 동떨어진 삶을 살기 때문에 뚱보가 되지 못했다 같은, 어중간하게 커피포트를 부를 듯 말 듯 뚜껑을 은근히 돌려서 여는 것만 같은 그런 말일랑은 하지 않겠소. 옛말에, 아 그만 오 제발! 원컨대 이 무지몽매한 바보의 불찰과 경거망동을 부디 널리 굽어살펴주옵소서! 전하, 통촉하여주옵소서! 아무리, 아무리 그래도 기분이 편치 않은 단춧구멍도 있을 수 있다. 그럼 그땐 그분을 탐구해보자. 그분의 속마음을 파헤쳐보자. 그러면 서로서로 알게 될 것이다. 타인의 내면을 들여야보면 마치 거울처럼 나와 타인은 놀랍게도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그 오묘한 교집합을 일부 발견한다는 것을. 우리 주위에는 자기 약점을 들으면 사둔 남말 하시네 라며 발끈하는 촌닭이 있을 텐데, 그런데 그분께서 만약 단춧구멍이다? 그 촌닭은 인기 없다. 전혀 없다. 그래도 중간은 간다. 허나 사람은 중간만 가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는' 화법을 간헐적으로 구사할 줄 아는 대인배가 되자. 왜? 왜냐하면 와 오빠 눈 크다 라는 말을 직접 하거나 또는 그런 속마음을 감추는 어떤 여자를 들었다 놨다, 쥐었다 폈다 그래 쥐락펴락, 밀었다 당겼다 까지는 힘들지라도 우리는, 천신만고 끝에 신비감을 점령해야 하니까. 그래야 한다. 따라서 목표가 있으면 구체적으로 적자. 이때 막연한 것보다는 자세하고 명확한 편이 좋다고 한다. 그동안 우정과 사랑으로 상중하에서 무엇에 해당하는 인생이었더라도 지금 당장 단짝이 없고 사랑이 멀리 있어도 희망을 갖자. 그동안 단짝이 많았고 교체가 심했던 데다 지금은 단짝 자리가 냉랭히 공석이더라도 새로운 포지셔닝을 꿈꾸자. 그래, 4번 타자! 어차피 1번 단짝은 단점이 없을 수가 없다. 다양성을 추구하기도 힘들고 장타를 날릴 수도, 경기장 밖으로 도망칠 수도 없다. 귀찮다. 어쩔 땐 짜증난다. 나는 초라할지라도 친한 인맥이 그룹으로 A, B, C, D가 있고 대타도 기자도 응원단까지 있는데 내 단짝은 뭔가 허전하다? 우정 즉 1 대 1 단짝 체제를 공고히 유지할려면 힘 꽤나 든다. 노력이 부족하면 단짝은 교체될 수 밖에 없다. 그건 진리다. 안 그러면 거짓말이다. 게다가 1번 단짝이 있으면 자유도 제한된다. 단짝이 괜히 단짝인가. 냉정하게 따지면 아무리 친해도 끝은 있으니까 어차피 나중 등 돌릴 일만 남은 거다. 피곤하다. 1번 단짝과 내내 놀아줘야 하다니 한심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말이다. 어떤 단짝을 개별적으로 각자 만나서 얘기 들어보면 아주 가관이다. 서로 저 불쌍한 것을 거들어준다는 식으로 말하니까. 아 드물게 단짝이 셋으로 구성되는 경우도 있는데 셋은 몰라도 넷부터는 또 짝이 지어지기 좋은 여건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사랑은 몰라도 우정은 4번 타자 라는 새로운 좌우명에 관한 수필을 쓰자. 만약 목표가 없으면 잘 먹고 잘 살며 중간이라도 가는 게 어떨까. 꼭 거창한 갈망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당장 떠오르는 구체적인 목표점이 없을지라도 행복한 삶에 대해 생각을 하고, 상상도 예측도 추정도 옳커니 예언에 내기도 하면 어떨까. 무엇이 불편하면 왜 그럴까 생각─생각─생각을 하며, 이상형이 있으면 그 이상형에 걸맞게 나를 변화시킬 노력을 하면 어떤가요. 롤모델이 있거나 랩배틀이든 뭐든 한 판 뜰 상대가 있으면 책상 위에 그분 사진을 떡 하니 붙여놓자. 평소에도 비관적이며 매사 냉소적인 데다 단점 듣고 짜증내는 그런 인기 없는 사람으로 긴 인생을 산다면 영 재미없을 테니까. 단춧구멍? 선그라스가 있지 않나. 배짱도 있고 행복을 추구하며 잊혀졌거나 기억나지 않아도 꿈도 있다. 적어도 꿈은 있었다. 최소한 로또 복권 꽝은 그 언제라도 보장된다. 그럼 된 거다. 물론 말은 그렇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단춧구멍론, 일단은 여기까지만.


   9

   좌우지간 공연내내 긴 명대사는 마르첼로의 일이었으니까 앵거스는 적당히 표정 연기만 하면서 그녀에 대한 꿈을 키워 갔다. 그 꿈이 인생 역전의 꿈은 아니지만 왠지 느낌이 왔다. 예감이 좋았고 설레는 기대로 그는 이미 들뜨기 시작했다. 고조된 분위기는 청춘의 특명이었다. 풋풋한 연애를 졸업하고 시시한 사랑을 청산할 생각을 하자 앵거스의 기분은 꿈동산을 헤매고 있었다. 이 사랑이 힘겨운 연정일지 시대를 뛰어넘는 사랑이 될지 그건 모른다. 하지만 앵거스는 이미 사랑에 빠져버렸다. 얼떨결에 사랑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이제 남은 건 그녀의 마음을 빼앗는 일 밖에 없었다. 달리 도리가 없었으니까. 웃음 꽃 만발하던 젊은 날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앵거스는 속으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손으로 (딱) 소리를 냈고 골 세러모니를 선보였다. 물론 공연 중인데 말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천재 마르첼로는 눈만 살짝 치켜떴을 뿐 다행히 극본을 벗어나는 무모한 시도는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러다 연극은 막을 내렸고, 앵거스는 행동을 개시했다. 비로소 특급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10

   결과부터 말하자면 앵거스는 그녀를 꼬시는 데 성공했다. 꼬시다? 앵거스는 어디까지나 정중했다. 허튼 꾀임도 아니었고 헛된 수작도 저급한 언사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알고 봤더니 숙녀였다. 여자. 전형적인 아가씨. 도회적이며 촌스러움도 조금. 앵거스는 한눈에 직감했다. 그는 대번에 눈치챘다. 그녀는 바로 남몰래 질투 받는 매력녀들로부터도 질투 받는, 어쩜 역술가가 오해할 수도 있는 여인이라는 것을. 원래 이런 부러움을 독차지하는 숙녀는 놀랍도록 섬세하고 신통하리만치 부드러운 사랑에 약한 법이다.
   앵거스는 그녀를 따라갔고, 뒤에서 이렇게 주문을 외우듯이 말했다. 그대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 그대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 그래서 그녀는 마치 그 주문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카페에 들어갔다. 때문에 앵거스의 짧은 미행은 미행이 아니었고, 그녀의 뒤를 밟는다는 사실 역시 발각되지도 않았다. 물론 뭘 좀 아시는 분들은 슬쩍 일부러 신호를 보여야 한다는 현장 경험론도 있겠지만 일단은 그랬다.
   그리고 카페 이름은 이상했다. 사랑병. 카페 이름은 사랑병이었다. 일병과 사랑병이 만난 건가? 아직은 안심할 수 없었다. 일단 앵거스는 그녀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분위기를 살피고서 용단을 내렸다. 카페 사장한테 오르간 소나타를 신청한 것이다. 하지만 앵거스는 그녀에게 노골적인 애정 공세를 펼치지는 않았다. 그가 건넨 말은 당돌한 거짓말도 으리으리한 허풍도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바로 옆도 아니고 아주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서 먼저 통화하는 것처럼 어느 대사를 낭독했다. 물론 실제 전화를 받은 건 아니었다. 그러므로 통화하는 척 연기하고 있는 그 와중에 전화벨이 울린다면 그건 망한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핸드폰을 끄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일이다. 따라서 앵거스는 고수니까 그 모두를 운에 맡겼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세상에게 불친절을 인생으로부터 몰인정을 받지 않았기를.」
   그렇게 통화를 마친 후 앵거스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독백으로.
   「오늘이 행복한 밤이라면 백야면 좋겠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백야. 짧은 사랑은 슬퍼!」 윽 손가락 오그라드는 대사를 어쩜 그리도 태연하게 할 수 있는지 미스테리다.
   그녀가 앵거스의 대사를 못 들었을 리는 없다. 그러므로 앵거스는 쉬지 않고 말의 고삐를 당겼다.
   「오늘 나 낯선 남자한테 고백받았어. 있잖아 있잖아 나 있잖아, 오늘 누가 날 걱정해주며 내게 말을 거는 거 있지?」  그래~ 그렇다니까. 그래. 이 말을 남자가, 바로 남자가 했다. 앵거스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녀 보고 잘 들으라는 듯이? 그건 각자 생각하기.
   처음의 통화 연기가 타인의 일이었다면 이건 독백도 아니고 정식 구애도 아니었다. 유부녀로써 행복한 가정을 꾸려서 사는데 정식으로 청혼을 받아본 여자들이 없기는 없는 것처럼 정식으로, 당신이 맘에 드오 내 사랑을 받아주오 라며 사랑의 시작이 확실하지 않는 부류도 적지 않을 것이다. 소개로 만났건 나이트클럽에서 오다 가다 만났건 남녀의 사랑은 오묘하다. 또 남녀의 사랑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과 우정의 중간도 있을 것이다. 종류는 많고 운명은 모르며 소문의 여신은 건재하다. 어쨌든 앵거스는 2.0 다시 1.5 그렇게 다가갔으니 이제는 1.0으로 수위를 높이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이 낯뜨거운 정공법을 이 자리에 옮길 수는 없는 법. 왜? 낯뜨거우니까! 그러나저러나 바로 그런 과정으로 그들은 그날부터 사귀기로 했다.
   그런데 앵거스가 누군가? 누구긴 누군가. 그냥 앵거스지. 그래서 그는 처음 만난 날 그녀의 손을 잡고, 두 번째 만난 날 백허그를 했으며, 세 번째 만난 날 미래를 예언했다. 앵거스는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을 훔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는 다르게 가고 싶었다. 물론 그는 처음 만난 날부터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매일 그녀와 만났다. 격렬한 기쁨이 언제 쓴 웃음으로 바뀔지 모르겠지만 앵거스는 내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앵거스는 꿈 많은 청년이었고, 그녀의 방심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짧은 인생 우리 사랑하세나 같은 복고풍 발언과 고고한 고전미를 냉혹하리만치 구분하는 그녀였으니까.


   11

   즐거움이 주렁주렁 열리며 날마다 재미있기 그지없는 기쁨의 낙원 같은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앵거스의 애인이 되었던 그녀, 이름은 에이미였는데, 에이미가 앵거스를 떠났기 때문이다. 어쩐지 불 같이 타오르는 사랑인가 싶었다.
   그리고 저번에 천재 마르첼로가 했던 말은 진짜였다. 공연을 녹화해 갔고, 출판권을 비롯한 무슨 인접권을 모조리 사겠다던 연예기획사 대표 얘기. 그런데 그분의 전폭적인 투자 예측은 오판이었고, 딱 1번에 불과했던 전석 매진도 모두 어설픈 쇼에 불과했던 것으로 판명났다. 즉 투자 철회 소식을 들은 에이미는 앵거스가 왠지 초라해 보였는지 어쨌는지 앵거스에게 어색한 사색 슬픈 사랑의 고뇌만 남기고 떠난 것이다. 물론 추측이다.
   앵거스는 에이미를 공연에 참여시킬까 아니면 같이 살까 그런 공상까지 했었는데, 이제 다 부질없게 되었고 그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 걸? 그럴 걸! 밉살스러운 연정은 더 밉살스럽게만 느껴졌다. 사랑이 원래 이렇다.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 알다가도 모르고 모르다가도 아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어떡하다 앵거스는 못이긴다는 듯이 그런 상상까지 했다. 바로, 미녀 99명에 단춧구멍 1의 비율로 공연이 길게 만석 행진을 이어가는 극구 만류해야만 하는 몽상. 냉혹한 현실에 탄식할 뿐 누굴 원망하랴. 앵거스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예술하는 놈이 여자가 웬말인가. 그는 그녀가 제발로 떠나갔으니 그녀에게 은근 감사함을 느꼈다.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런데 정말일까? 글세요!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켜버린 것만 같았으나 실연 한두 번 당하나. 앵거스는 하는 수 없이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앵거스 마르첼로 콤비는 공연을 계속했다. 마치 돈키호테가 풍차와 싸우며 조랑말한테 환상론자의 신비에 대한 애착을 설변하며 새파란 모험을 지속하듯이.
   공연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앵거스가 무리한 즉흥 연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연극 대본은 원래 그 대사로 시작해야 정상이다. '친구 내 블로그의 새 글 읽어봤나?'로. 그러나 앵거스는 최근 어쩌다 사랑 엇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마르첼로를 당황케 만드는 첫 대사를 멈출 줄 모르며 길게 이어갔다. 흡사 이런 생각에 기인한 호기심 때문인지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다.
   「마르첼로 너만 긴 명대사를 읊으며 주인공 배역임을 과시하고 명연기를 뽐내란 법 있냐? 난 뭐 언제까지 병풍만 서고 신부 들러리나 서며 내내 늬 꽃다발이나 대신 들고, 쫄망쫄망 늬 꽁무늬만 졸졸 쫓아다니라고? 내가 뭐 병아리냐? 아님 참새냐? 어? 난 뭐 꽃 피는 봄날 없었을 꺼 같냐? 어? 이제 때는 왔어, 어? 알아? 전설적인 전성기의 종말 그리고 오랜 암흑기를 벗어난 부활로써 빛나는 반짝이 의상과 상큼한 레몬향은 물론 미녀 선녀 처녀 숙녀 애첩 마담 귀부인과 함께 모든 단춧구멍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단 말이야. 나도! 바로 내가 말이야. 어? 전망 좋은 해변의 마술 같은 이 기가 막힌 요사스런 사이렌을 한번 울려 볼까? 자, 제3세계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유령선 같은 이 주체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해서 상심한 광기가 내뿜는 얘기에 우리 귀기울여 보세나.」 
   라~고 앵거스는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회상하는 듯 애처로운 눈빛과 함께 말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마르첼로는 이렇게 말했겠지. '너 술 마셨냐?' 라고. 그러나 이건 평소와 다른 상황이었다. 연극이었으니까. 당연히 굼뜬 천재 마르첼로는 어떻게 임기응변에 임해야 할지를 눈치채지 못했고, 앵거스는 기어코 일을 저지른 후 수습하지 못하고 있었다. 초장에 잡아라 같은 구연으로 전해지는 어설픈 조언을 엄한 데 적용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은 급기야 관객의 반응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친구. 내 블로그의 새 글 읽어봤나? 라~고 물어볼 줄 알았지? 마르첼로, 난 늬 허세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만약 그처럼 묻는다면 넌 백퍼센트 은근슬쩍 늬 자랑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으니까. 내 말이 틀렸니? 너도 인정할 건 인정해. 안 그래도 바닥인 늬 인기 찾아볼 수도 없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알겠어? 알겠냐구 이 친구야. 그리고 넌 뭘 그렇게 음악을 크게 트냐? 어? 설마 벌써 잘 안들리는 건 아니지? 걱정되서 물어본 거야 이 친구야. 얼굴 표정은 또 그게 뭐니? 남자가 속이 그렇게 좁아터져서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어? 안 그래? 저번에 우리 연극 끝나고 같이 식사할 때 내가 먼저 서둘러서 먹은 다음 내가 그랬지. 넌 식사를 왜 그렇게 천천히 하니 라고 한마디 하니까 넌 아주 발끈하더라? 그렇다고 내가 무슨 왜 그렇게 굼뜨냐고 윽박지른 거도 아니었고 말이야. 평소에 나는 늬 자발 다 들어주고 잔말 말고 따라오라는 늬 성미 다 맞쳐줬는데, 늬가 무슨 동화 속에 나오는 왕비라도 되냐? 어? 늬가 여자냐? 늬가 숙녀냐고. 뭔 밥을 2시간 동안 먹냐 너는? 그러고서 또 쪼르르 달려가서 다른 친구랑 삼자대면한 자리에서 보란듯이 고자질을 해. 너도 그 친구 재수씨랑 똑같아. 속마음이 요만~해! 툭 던지니까 앞에서 돌려서 화자되거나, 생각해서 어떤 얘기를 툭 던졌는데 한바퀴 돌아서 나한테 오니까 말이야. 요만~해. 대인배야. 그렇지? 아 나 이거 진짜 답답해서 얘랑 같이 연극 못하겠네 증말! 게다가 넌 주량도 약한 녀석이 술은 또 왜 그렇게 급하게 먹냐? 넌 모든 일이 다 늬한테 최적화되야 하냐? 이런 쫌팽이 같은 녀석 어휴 여자도 모르고 이런 밥통 천지 바보퉁이 같은 놈! 늬가 무슨 5살 꼬마냐? 어? 너 친구 없지? 아 있다고? 있어 봐야 내가 봤을 때 늬 친구는 딱 1명이다. 그런데 그분은 혹시 단춧구멍? 그러거나 말거나. 내 말이 틀리냐? 틀리면 틀리다고 말을 해 봐. 왜 말을 못해. 벙어리냐? 어? 꿀 먹은 벙어리냐고. 심지어 그 친구한테 늬가 10번 전화하면 그 친구는 마지 못해 전화 걸고 응해주기는 하는데, 그런데 10번이면 10번 다 전부 늬가 연락하지? 그랬지? 통계 내 봐. 완벽한 사실이니까 말이야. 넌 사랑도 우정도 인생도 다 그만그만하다야. 알긴 아냐? 어? 대학가 주변에서 서성거리면서 이 여자 저 여자 남의 여자 구경만 하는 아저씨로 젊음의 거리 그 환희의 공간에 대한 평균 연령만 깎아먹는 녀석 같으니라고. 너 어디 가서 내 친구라고 하지 마라. 에잇 이런 한심한 친구야. 넌 대체 언제 정신차릴래? 어? 넌 이미 철들긴 일렀다. 너란 인간은 답이 없다고. 어떤 비너스가 너를 좋아하겠냐? 어? 하지만 말이야 사람 운명은 모르는 거다. 어른들 말씀이 왜 어린 친구들을 시피보지 말라고 하는지 너도 알지? 인생의 전반기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지. 혹시 모른다는 말이라고. 그래서 중반전에 들어간 너처럼 로또 복권, 술, 담배, TV, 한가한 취미가 사는 낙의 전부인 너를 보면 내가 정말 답답하다 답답해. 내가 다 처량하다고. 늬가 뭐 여자라도 되냐? 다리 털 부숭부숭 나가지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 진짜 애처로운데 얼굴에 수염 기른 늬 모습을 보면 난 꼭 그게 생각나. 시골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똥개. 똥개 중에서도 주둥이 주변이 시컴헌 개. 딱 그 생각이 떠올른단 말이야.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미리 실망하지는 마시게. 왜냐하면 난 그런 시골 똥개를 좋아하니까. 얼마나? 몹시도! 더군다나 난 예외고 너만 그렇다는 게 아니야. 나도 똑같다구. 그렇지만 똥개 얘기로 빠질 수는 없고 하던 얘기 계속 하자면, 늬가 아가씨도 아니고 모든 걸 늬한테 전부 다 맞추라는 그 자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얼굴은 갔고 머리카락은 아 말 말자. 그래도 너 여자 좋아하지? 그런데 또 여자를 앞에 데려다 주면 싫대! 그게 뭐야? 싫어도 그냥 싫은 게 아니라 친구한테 화내거나 여자한테 따져. 그게 뭐냐? 그게 대체 뭐냐고! 아침에 눈 딱 떠서 밤에 막 잠들기 직전까지 흑심은 널 도무지 놔주질 않을 텐데, 도대체 왜 그래? 여자관계야 늬 팔자소관이니까 그러든가 말든가 관심 없다만 다 늬 생각해서 치어리더 바로 앞자리로 갔는데 멀쩡하고 건강한 남자가 대체 왜 화를 내냐고? 난 아무리 해도 이해를 못하겄다. 내 머리로는 말이야. 으쌰으쌰 나이트클럽 야 나이트클럽? 가? 가? 나이트클럽? 그래서 나이트클럽에 가. 갔어. 도착했어. 그런데 가면 뭐해? 담배나 퍽퍽 피워대고, 술도 안 마셔, 여자도 부끄러워서 그런지 여자도 싫대. 즉석만남을 위해서 웨이터가 여자를 데려다 주면 말도 못해. 춤? 춤도 못 춰. 그게 뭐야? 매출 떨어진 삼류 나이트클럽에 뭐 적선이라도 하고 싶다는 거냐? 그게 뭐냐고, 그러니까 나이트클럽들이 골머리를 앓는 거 아냐? 늬 같은 진상이 얼쩡거리니까 말이야. 촌닭이면 촌닭의 장점을 살려야 할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그게 뭐냐 남자가? 어? 너만 보고 있으면 내가 정말 답답~하다 답답해! 왜 말이 없어? 뭐야, 얼굴 표정으로써 말하는 거니? 얼그락불그락 어머나 단풍들었네? 넌 사랑이 뭔지 알기는 아냐? 우정은? 우정과 사랑의 차이점은? 모른다는 거네. 그러면서 뭘 또 그렇게 아는 척 말은 많냐? 귀는 꽉 막혀가지고 앞뒤도 꽉꽉 막혀가지고 말이야, 그게 뭐니? 그래서야 되겠니? 정말 그게 뭡니까? 그러니까 늬는 소개팅 나가면 맨날 결과가 안좋다구. 이미 소개팅도 반올림하면 백번이잖아. 백전 백패? 이거 지어낸 얘기니? 아니잖아. 다 사실이잖아. 내가 뭐 거짓말했냐? 아니잖아. 그럼. 그러고서 오빠란 말만 들으면 또 유체이탈이 된단 말야. 순진한 척 하지 마 이 바보야. 늬가 바보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데 뭘 그렇게 부끄럽다고, 아휴 이걸 진짜 그냥 콱...! 연기하지 말라구 이 친구야. 인생은 연극이 아니야. 어? 넌 안돼 넌 안된단 말야.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어? 알아? 넌 그러니까 삼류라고. 아 답답해가지고 말야. 아휴 말 말자. 말해 봐야 내 입만 아프다. 늬가 항상 거울 보면서 감탄하는 네 그 용왕님 같은 핼쓱한 안색으로 추론하건대 이런 얘기 딱 질색이란 말이구만. 나도 알아 임마! 이런 젠장, 다 늬 생각해서 해 주는 얘기라고. 너도 눈치껏 말귀를 알아먹고 보는 눈이 있으면 보란 말이야. 저 고요한 열광을 설마 모르는 건 아니겠지? 너 그럴려고 예술가가 된 건 아니잖냐. 너 정말 그렇게 무책임한 사람이었냐? 어? 그러고도 늬가 연극배우라고 할 수 있어? 설마 너 아마추어는 아닐 꺼 아냐. 그러든가 말든가 난 언제나 오빠란 말만 듣고 싶다? 하여간 남자 아니랄까 봐. 남자가 남자인 건 좋은데 늬가 내 친구라서 하는 얘기야 이 한심한 바보퉁이야! 다 늬 생각해서 하는 소리라고. 어? 무슨 낭만과 환상도 모르고 멋도 풍류도 신비감도 없고 넌 정말 뭘 모르는 남자야, 알어? 어? 이게 다 늬 생각해서 해주는 얘기다. 난 뭐 이런 얘기를 하니까 좋은 줄 아냐? 좋겠냐, 퍽이나 좋겠다. 마르첼로. 몸에 좋은 약이 원래 입에 쓴 법이라네. 응? 너도 생각이 있으면 내 말 오해하지 말라구. 그러고서 무슨 자기가 옛날옛날 대하드라마에 나오는 왕으로 태어났다면 자기는 삼천궁녀 각자가 다 외로울 테니 모두 다 1 대 1로 침소에 들어야 한다고 혼자 막 밑도 끝도 없이 즐거운 상상을 해 대. 아주 그냥~. 어허. 아휴. 습관적으로 말이야. 그게 뭐니? 어? 그래서야 되겠니? 아 나 정말 한심해도 어떻게 그렇게 한심할 수 있니? 그게 말이 되니?
   (...휴...) 아 또 있다. 멈출 수가 없네 그려. 그래. 말 나온 김에 가자. 뭐 가 보자구. 끝에 뭐가 있나 보게 말이야. 뭔가 있긴 있겠지. 그럼. 그래. 일레븐. 어디 대학교 무슨과 축구클럽. 넌 선배 걔들은 후배. 축구단 동아리 이름은 일레븐. 넌 아직도 거기 나가고 싶냐? 걔네들 불쌍하지도 않냐? 후원금이라면 모를까 어르신 원맨쇼도 아니고 애들 노는 데 가서 꼭 그렇게 휘젓고 싶냐? 뭔 머리카락 송송 빠진 웬 올드보이 한 명이 와서, 그것도 꼬박꼬박 자주 나와서 재주껏 노는데 함부러 몸싸움도 못하겠고 나오지 말란 말도 못하고, 걔네들도 답답하겠다. 하기사 일레븐 클럽 애들은 올드보이한테 두손 들었다지만 저번에 다른 팀이랑 경기할 때 보니까 늬가 뭐 최전방 공격수? 살짝 스치면 휘청이고 옷깃만 부딪혀도 너는 나가떨어지든만! 그게 뭐니? 개발이야 아님 그냥 개야? 어? 아 나 허세하고는, 못 말린다니까. 아무리 아마추어라지만, 아무리 스포츠라지만 그걸 보는 내 기분이 좋았겠냐? 당연히 좋았지! 농담이고 것 참 안스럽기 그지없더군. 내가 정말 민망했겠냐 민망하지 않았겠냐? 난 그냥 고개를 돌렸다. 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늬가 봐도 그렇지? 그래, 안 그래? 그리고 그런 너를 틈틈히 봐야 하는 늬 후배들은 또 뭔 죄냐. 걔네들이 뭔 생각하겠냐, 저 인간은 데이트도 안하나 애는 안 키울까 다른 할일은 대체 없는 걸까 우리를 무슨 노예로 아나, 그럴 꺼 아니냐고. 아 말 말어. 그리고 늬네 시골 친구들. 내가 저번에 늬 생각해서 널 늬 친구들 앞에서 일부러 띄워주니까 뭐라고, 쟤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냐고? 그러면서 넌 왜 밤에 잠을 잘 때 그렇게 이를 가냐? 뭐가 억울해서? 불만족이 뭔데, 불만이 그렇게나 많냐? 도대체 뭘 원하냐고! 그러면서 포르쉐 운전대 잡아봤냐고? 너 이번 모임 나가지 마라. 친구들이 널 반기기야 하겠지만 애들 형편이 많이 폈드라. 어. 많이. 알겠니? 또 넌 섬 출신이잖아. 그래 나보고 영법 수영이니 뭐니 인정해주는 건 좋아. 다 좋다고. 그런데 네 여자친구는 평소에 불만이 많았니? 친구들 다 있는데 자기 남자친구한테 그러잖아. 개수영이라고! 푸푸 쏴쏴 푸푸 쏴쏴 푸하하하하하하 푸푸 쏴쏴! 또 있다. 계속 나온다. 너가 뭐 옛날에 운동할 때 로키산맥을 울통 벗고 뛰어다녔다고? 그래서 너가 옛날에 레슬링 국가대표 상비군이라도 했냐? 누가 들으면 국대급은 되는 줄 알꺼 아냐. 하여간 그 놈의 허세하고는. 병이다 병. 또 늬가 저번에 그랬어. 나 군대 있을 때 쩜쩜쩜. 워워워 쩜쩜쩜. 뭐 쩜쩜쩜? 누가 들으면 둘 중 하나로 알겠다야. 제이슨 본 아니면 허풍쟁이. 그 병 어떻게 못 고치냐? 어떻게 안 돼? 진짜 어떻게 안 돼? 내가 입만 뻥끗하면, 넌 아주 그냥, 아 그냥 말 말자. 말 말어.
   그리고 뭐 사랑과 우정이 부딪히면 무엇을 택해야 하는지 아냐고? 한 여자를 두고서 친구끼리, 한 남자를 놓고서 친구인 여자 둘이 서로 포기하냐 사랑을 쟁취하냐 그 기로에 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냐고? 넌 또 그걸 어디서 주서들었길래 나한테 그런 잡담을 전했니? 우정은 회복되니까 사람 마음은 풀어지기 마련이니까 사랑을 택해야 한다? 그 사랑 택해서 그래서 늬가 지금 그렇게 집에 어떻게 하면 늦게 들어갈 핑계를 찾고 회사를 옮길 궁리를 하고 어떻게 하면 공공연한 일탈이 가능할까를 고민하냐? 뭘 택하든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게 정답 아니냐? 처음부터 서로들 다 안다구. 그게 무슨 청소년 드라마도 아니고 그게 뭐니? 사랑은 떠나가고 친구는 돈 떼먹고, 그럼 그건 뭐냐고? 아 나 이거 아직도 여기서 들은 말을 저기서 내가 생각해낸 듯이 설을 푸는 사람이 있다니. 그게 바로 내 친구라니. 세상에나 맙소사! 그래도 저번 달에는 내가 미안했다. 난 살면서 여자한테 다른 여자 이름을 불러본 일은 한번도 없다만, 내 일이 아니면 그런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몰랐거든. 늬 후배 저번달에 만났을 때 난 걔가 일전의 그 여자랑 결혼한 줄 알고 그녀 이름을 말했는데, 당시 난 그녀 얼굴은 안봤으니까, 그런데 녀석 무척 당혹해 하던데? 아 미안했어. 내 실수, 인정. 내가 뭘 몰랐단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상황이 되니까 그럴 수 밖에 없더라구. 꼭 내 실수라고 할 수도 없잖아. 안 그래?
   그게 다냐? 그럴 리가 있나. 이제 시작인데. 최근 최고의 인기 여자배우가 누구니? 각계에서 몇몇 있잖아? 세상 사람 모두 6단계만 거치면 모두 연결된다는데 그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까? 그 누군가를 내가 과연 알까 모를까? 그냥 알기만 할까 아니면 그 각별한 친밀감을 숨겨야 할까? 어때? 어떻게 걔, 소개시켜 줘? 혹시 모르잖아? 만약 걔가 너 같은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넌 어떡 할래, 라~고 내가 물어보면 넌 그러잖아. 짜증내다가 결국 딱 그래. 오 땡큐지~ 라고. 완전 빵끗 웃으면서. 그래서 난 나중에 또는 다른 친구들이 너한테 이런 농담은 못할 꺼 같다. (내 마누라) 늬가 데리고 살래? 라고! 호호호 하하하 큭큭큭. 오 땡큐?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거 무슨...! 대충 보면 사리분별 바를 것 같은데 그냥 쉽게 말려 쉽게 말린다고. 말발은 좋은데 또 속기는 금새 속아넘어간다고. 아휴 저 팔랑귀! 아 나 증말 불사조의 날개가 따로 없다야. 우리 아지트 앞 식료품점에 새로운 아르바이트생 완전 괜찮다고 엄청 이쁘다고, 그냥 한마디 툭 던졌는데, 그랬더니 아 글쎄 쪼르르 달려가서 벌써 확인하고 오대? 아 진짜 못말리는 친구들 하고는. 그냥 생각없이 던졌는데 스스로 알아서 낚여! 나 원 참. 에잇 연극이 끝나면 난 그냥 집에 가서 포도주 한잔 따라놓고 척키 나오는 영화나 봐야겠다. 오늘은 각자 놀자.
   아무리 그래도 말이야, 뭐 평소에 내가 꼭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단 말은 아니야. 그냥 이건 무대를 핑계로 재미삼아 몸만 푼 거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한심한 동네 아저씨 같은 친구가 아니라 유부남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라네. 난 유부남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자, 한번 시작해 볼까. 아 짧아. 금방 끝난다고. OK!
   탐스런 사과든 판도라의 상자든 한번만 따먹고 한번만 열어야지 날이면 날마다 따고 열면 그건 사과가 탐스럽지 않다는 거 아니요? 그건 판도라의 상자가 개나 소나 아무나 살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의 가짜 신비주의 문학이라는 거 아니냔 말이오. 공장에서 마구 찍어내고 예술 작품조차 판화나 사진도 7장까지를 뭐 어쩐다는데 너무 아끼지 않으면 신비감이 없지 않냔 말이오, 내 말은. 그러면 그건 그냥 거리의 약장수 쇼나 마찬가지니까. 따라서 우리는 바로 그래서 가족영화를 보면 잠을 잔다네. 왜? 달콤한 꿈에서 악당을 물리쳐야 하니까. 안 그렇소? 유부남들이여 내 말이 틀렸냔 말이오! 이미 저 하늘의 별을 땄지 않소. 네, 우리는. 우린 이미 초인적인 기쁨을 맛보았지 않냔 말이오. 남자 대 남자로써 얘기하는데 나나 당신은 아니오. 절대 아니오. 허나 우리는 알고 있잖소. 늑대의 이상형은 바로 새로운 얼굴이라는 것을 말이외다. 성과 언제나 성과를 생각하고 업무 목표는 내려갈 수 없는데다 남자친구로써, 남편으로써, 아빠로 가장으로 사회적 어른으로 어두운 거리에서 불의를 모른 체 하는 거야 쓰윽 넘어간다지만 로맨티스트인 척 사는 거 정말 힘들지 않냔 말이오. 아니 그렇소? 이런 자기 내면의 음성을 설마 모르지는 않겠지요. 유부남들이여! 자, 우리 다 같이, 우리 모두 다 같이, 함께, 들고 일어섭시다? 워─워─워! 바람둥이 기질 다분한 개구쟁이는 2군에 내려보내고 지금은 달콤한 행복을 측량하며 소네트를 읊을 줄 아는 숙녀의 오빠, 만인의 연인을 연기합시다. 꾹꾹 눌러참았던 말 못할 무언가는 이따 우리끼리... 우리끼리 속닥속닥... 쉿! 큭큭큭 하하하 호호호 푸하하하하하하!
   라~고 일단 분위기를 띄웠으니 이제 진짜 연극을 시작해보세나 친구. 이만하면 몸 풀린 거 같은데? 응? 자, 가 보자구! 저 희망 찬 환희의 내일로 말일세.」 
   「친구. 내 블로그의 새 글 읽어봤나?」
   잠깐 아슬아슬한 감정의 흔들림은 있었으나 마르첼로는 연기를 이어갔다. 아마도 정신이 혼미했기 때문인 듯 했다. 인간 군상의 운명도 연극배우이자 삐에로의 비애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는 듯이.
   「아 그거? 그럼. 잘 봤네. 허허허 또 보고 싶네. 오 그럴듯해. 멋져 보여. 뭔가 있어 보인다구. 앞으로 말이야......」  


   12

   그러나 연극은 중도에 위기를 맞았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마르첼로가 독백 도중 도망갔기 때문이다. 이걸 어쩌나. 어쨌든 연극은 즉흥연기로 어떻게 어떻게 마무리됐다. 그런데 마르첼로는 대체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앵거스는 순식간에 절망감의 또랑에 빠져버렸다. 연가를 불러주지는 못할 망정 악담만 거침없이 늘어놨기 때문에 아무래도 마르첼로가 받아들이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앵거스는 생각했다. 내가 심했나 라고. 그가 무리하긴 무리했다. 누가 봐도. 그것도 무대에서. 오색 풍선이 가득한 리본 커팅식이나 날마다 생일 잔치를 열어줘도 모자를 판에 태연한 척, 조곤조곤 마르첼로의 뚝심과 가녀린 성정을 간질간질 건드렸으니 그가 삐질 만 했다. 그래도 확인할 길 없는 소문도 아니고 백퍼센트 사실에 만감이 교차하는 진실인데 앵거스가 너무 했나? 너무 했다. 많이 심했다. 청컨대 행위예술이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는 제발! 허나 앞일은 모르는 법이다. 이런 식이 아니라면 친하지 않다는 반증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지금은 마르첼로를 찾는 게 급선무다. 마르첼로가 어느 정도 상심했을까? 어느 정도? 흠씬! 보면 모르나. 그런데 천재 마르첼로를 어디 가서 찾는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앵거스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는 사과할 것이고 마르첼로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쳐야 하며,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그들은 다시 예전 우정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럴려면 일단 마르첼로를 찾아야 한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그를 찾냐고. 지금 이건 마땅히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억측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억지가 앵거스를 선동했고 이상한 전율감도 그를 괴롭혔으며 천사의 교성과도 흡사할 듯한 전조가 느껴질 듯 말 듯 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앵거스는 없는 괴력을 발휘할 수는 없고, 우선 할 수 있는 일은 기초적인 탐문 수사였다. 따라서 앵거스는 자연스럽게 엉거주춤 탐정이라도 된 것 마냥 주변인을 만나서 마르첼로의 소식을 물어봤다.
   우선 천재 마르첼로의 연인인 다이안을 만나봤다. 다이안을 미녀임에도 불구하고 영재였는데 다이안은 마르첼로가 어디 가건 언제 오건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집나간 개야 때 되면 돌아오는 법이고, 철부지 개구쟁이야 돈 떨어지면 들어올 텐데 뭘 미리 사서 고생하냐는 듯한 태도처럼 보였다. 앵거스는 다이안으로부터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보이드의 직장에 찾아갔다. 수재 프로그래머인 보이드는 마르첼로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 사이였기 때문에 뭔가 알아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결과는 꽝이었다. 보이드와 마르첼로는 누구나 인정하듯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단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둘은 실상 상대의 일상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만나면 서로 각자 따로 떠드는데 뭘 들었는지는 하나도 몰랐으니까 당연한 결과였다. 그외 환상가 서먼과 선녀 몰리에게서도 괜찮은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앵거스는 어쩐지 조금은 기대했던 추적 탐문 역습 모험은 물론 경건한 비밀에 대한 실마리는 커녕 부풀었던 예감에 부응하는 결과는 하나도 얻지 못한 채 소극장으로 돌아갔다.
   그는 생각했다. 마지막 남은 조커는 하나 밖에 없다고. 결국 바보이자 순정남 곧 비슷한 캐릭터인 아비게일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아비게일은 그들 사이에서 마르첼로와 매우 흡사한 인물 유형이긴 하나 지능에서 약간 차이가 난다. 마르첼로는 천재 아비게일은 둔재는 아니고 범인. 왜 마르첼로는 도망갔을까, 아비게일이 과연 내 간곡한 요청에 부합할 만한 뛰어난 정보를 알려줄까 말까, 그런 생각에 심취하다가 앵거스는 소극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객석에 척키 인형 99명과 앵거스 친구 중 유일한 단춧구멍인 아비게일이 객석 중간에 앉아있었다. 객석이 정확히 몇 석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저번에 단춧구멍 인상착의인 사람들이 가득했고 에이미가 그 한가운데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와 같은 모습이 반복됐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객석에는 전부 척키 인형이 앉아있었고, 객석 정중앙에는 아비게일. 그건 곧 아비게일이 앵거스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고, 이건 전개도 뭣도 아니라 이미 절정과 결말까지 다 정해져있다는 거나 다름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설정인 듯 했다.
   「아비게일. 오랫만이야. 그런데 네가 척키 인형광이란 건 처음 알았는데? 왜 그동안 말해주지 않았어?」
   「늬가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지금이라도 물어볼까? 우리 사이가 그리 팍팍한 사이는 아닌데 말이야. 그렇지?」
   「말도 꺼내지마. 라~고 하지는 않겠어. 어쨌든 넌 뭔가를 알고 싶고 난 어떤 이상주의의 목마를 원하지는 않고.」
   「아비게일. 우리들이 널 좋아하는 거 너도 알잖아. 왜 그래? 싱겁게 말이야. 무섭잖아. 괜히 분위기 잡고, 그러지 말자고. 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이 친구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도 괜찮아. 안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니? 아무튼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답하자. 너 마르첼로 어딨는지 알지? 그렇지?」
   「내가 마르첼로가 어디 있다는 걸 알면? 너한테 가르쳐 줄 것 같니? 왜 내가 그걸 너한테 가르쳐줘야 하는데? 그 이유를 한 100개만 말해줄래? 아니 그런데,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냐? 넌 속 좁은 마르첼로가 토라져서 도망갈 동안 뭐했냐? 안 그래?」
   「말도 꺼내지 마. 마르첼로? 밴댕이 소갈머리 같기는, 걸핏하면 토라지고. 쫌팽이도 그런 쫌팽이는 내가 살다 살다 첨 봤다. 대충 너도 알잖아? 안 그래?」
   「응. 나도 알아. 인정!」
   「아 그러니까 어서 알려줘.」
   「앵거스. 마르첼로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싶니, 알고 싶지 않니?」
   「아 몇 번을 말해. 장난치지 말고. 알고 싶다고. 알고 싶어~(고함)!」
   「난 또 늬가 그냥 의무적으로 그냥 한번 해 보는 몸짓인 줄 알았지 뭐니. 그런데 있잖아. 늬가 원하는 새로움의 정체는 뭐니?」
   「새로움은 또 뭔 새로움? 아 장난하지 말고 진짜 그 마 어디 있는지만 말하라니까. 아비게일. 너 정말, 너 정말, 좀 가르쳐줘 아비게일. 응?」
   아비게일은 앵거스에게 마르첼로의 행선지를 알려줬다. 마르첼로는 딴 데도 아니고 앵거스를 차버린 에이미를 만나로 갔던 것이다. 왜인지는 알수 없지만. 마르첼로는 대체 어디로 도망갔을까, 그 정답을 알고 나니 뭔가 너무 허무했다. 알게 된 답안지는 결국 경이로운 동화의 세계도 아니었고, 동경해야 할 꿈의 낙원 역시 아니었다. 요술상자나 액자 뒤 금고의 발견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실망감은 너무 야비하게도 커다랬다. 정감 어린 낭만도 흥미로운 판타지도 뭣도 아니고 마르첼로가 에이미를 찾으러 가다니! 최대의 행복 고상한 기쁨 최고의 쾌락 세련된 흥미, 그 무엇도 찾을 수 없고 마르첼로는 에이미를 찾으러 떠났다니. 이걸 어쩌나. 괜히 앵거스는 마르첼로에게 미안해졌다. 난 그렇게 심하게 꾸짖고 깐죽거렸는데 마르첼로는 앵거스를 위해서 그랬다니. 난 입에서 화염방사기의 화염을 내뿜었고, 난 눈에서 레이저도 나갔는데. 그런데 마르첼로는 앵거스를 위해서 그랬다니. 앵거스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에이미가 사는 동네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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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도중 마르첼로가 도망갔다. 전에는 앵거스가 1차 도망 2차 도망을 갔다 온 후 정신을 차렸는데, 이번에는 앵거스가 3차 도망을 떠나지 않고 대신에 마르첼로가 떠난 것이다. 앵거스는 마르첼로가 왜 떠났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아마도 자기 때문에 꽤 속상했기 때문에 도망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어쩌면 1퍼센트쯤 자기처럼 마르첼로도 홍일점 묘령의 여인을 낯선 여행지에서 만날지도 모른다는 고풍스런 공상이 마르첼로를 잠식했을 것이란 예측 역시 추산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앵거스는 자신의 행동이 심했음을 절감했고, 때문에 마르첼로가 조금 걱정됐으며 그가 더더욱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앵거스는 마르첼로를 수소문했다. 그러다 척키 인형광인 아비게일과 만나서 마르첼로의 행방을 알게 됐다. 그렇게 앵거스는 마르첼로를 만나기 위해 에이미가 사는 동네로 갔다. 그러나 앵거스는 에이미도 마르첼로도 만날 수 없었다. 애초에 에이미에 대해 아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녀와 다시 시작할 가망성도 전무했다. 아마 마르첼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또는 마르첼로는 그냥 액션만 취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앵거스는 돌아왔고 먼저 와 있는 마르첼로를 소극장에서 만났다. 둘은 화해했다. 결과는 해피엔딩. 대리석 같은 그들의 우정은 굳건히 유지되었고, 투덜거림을 부르는 앙금은 한층 완화되었다가 코메디로 결론났다. 일단 여기까지가 최근 앵거스에게 발생했던 사건의 전부다.
   그런데 잠깐. 앵거스가 에이미와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거의 전무하다고? 그건 모른다. 혹시 모르니까. 결혼행진곡이 울려퍼지고 신랑으로써 신부로써 걸어나가야 그런가 보다 하지, 앞일은 모르니까 말이다. 더구나 결혼에 골인해도 게임은 이제 시작된 거다. 세상일 쉬운 게 하나 없다. 그야 어쨌든 에이미가 돌아오더라도 너무 늦지는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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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거스는 집에서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영화를 볼까? 공포물? 여행을 갈까? 해변에서 여자를 꼬실까? 다 재미없다. 모두 부질없는 일이고 철없는 행동일 뿐이다. 허튼 모험과 쓸데없는 추억 만들기, 바라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소?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앵거스는 뭔가 궁금했다. 브란덴부르크 모음곡 2번을 들어도 소용없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내면에서 본인을 잠식한 요정이 이렇게 말하는 듯 했으니까. 어떻게 좀 해 봐! 추리소설을 읽을까? 음악을 들을까? 아니면 새로운 작품 구상을 할까. 그는 최근 희곡을 한편 썼고, 마르첼로와 함께 극작가인 자신이 연극에 임하고 있으니 차갑고 뜨거운 그런 타인이 만든 작품을 감상하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결론은 이랬다. 과학적인 보고서 읽기. 왜냐하면 앵거스는 진술증거와 간접증거, 논증도식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더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아무래도 과학과 어떤 체계가 지금만큼 덜 발달했고, 인터넷의 자유도랄지 활성화가 미진했으며, 007 가방에 의해 알다가도 모를 일들이 적어도 애매하게 (더) 실제했을 꽤 오래된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읽기로 했다. 신뢰도 높고 논리정연한 재판에 관한 한 편의 보고서를. 꽤 분석적인데 반해 몰입도가 평탄하고 흥미는 독서 진행 대비 하락세가 뚜렷한 추리소설을 한 편 읽느니 차라리 그게 낫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공부가 재밌다, 일이 즐겁다, 난 사랑에 빠졌다,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같은 개념에 그나마 살짝은 근접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일시적으로는 말이다. 게다가 생소한 분야였기 때문에 구미를 당겼고.
   따라서 그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겠다, 뭐뭐 하고 싶다를 넘어서서 뭐뭐 해야 한다 라고 느끼는 단계에 이르렀다. 나아가 그는 글쓰기에 관해서 한 수 배웠다. 이미 알고 있는 단순한 원칙은 비유, 경험, 연결어, 논리, 짧은 문장, 중복을 피하고 최대한 건조해야 하나 그와 모순되게도 최적의 꾸밈어가 꼭 필요하다 같은 점. 뭐가 최적인 줄 알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아마 덜어내면 덜어낼 수록 좋다는 말이 많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듬. 허나 그건 글쎄요! 말과 글의 차이를 불분명하게 인식하는데 최적의 낱말이 쉽게 제발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건 어쩜 희망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름. 아, 한 수 배운 그것은 무엇이냐면 언제 문단을 띄어야 하는가 그것이다. 그 보고서에서 문단을 띄울 때 첫 번째 단어가 무엇인가를 눈여겨 봤다. 예를 들면 이렇다. 본 사례는. 한편. 이처럼. 따라서. 첫째로. 종래. 이와 같은. 이 무엇을. 비단. 핵심질문은. 물론. 하지만. 이 가운데. A와 B는. 무엇은. 우리는. 이를. 위 그림에서. 반면에. 마지막으로. 요컨대. 본 장에서는. 그렇다면. 형사소송법. 등등.
   물론 앵거스는 과거보다 지금 덜 내성적이지만 평소에 말이 많은 남자는 아니었으므로, 그는 그 보고서에 대한 감상문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일기도 쓰기 싫었다. 그러므로 그는 가장 핵심적으로 자신에게 인상을 남긴 사실에 대해서만 자신의 창작 공책에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그는 글을 쓰듯 생각하며, 글을 쓰듯 말을 하는 사람이니 만큼,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다음 작품 구상과 관련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고로 주요 내용은 간과하고, 그는 어떤 보고서에서 무엇을 면밀히 살펴봤나 그 중에서 매우 중요한데 별로 중요하지 않게 판단됐던 그 무언가에 대한 사실만 옮기자면 이처럼 조촐하다. 다음과 같은 단편적인 몇몇 사실에 대한 기록만 읽더라도 어쩜 영화 한 편, 1주일에 한 명 태어날까 말까 하는 그런 불세출의 천재 신인 작가가 발표한 처녀작 추리소설을 읽는 것보다 어쩌면 더 재미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혹시 훨씬 더 재미있을지도 모름. 물론 탐구의 의미이자 작품의 소재 활용도로써, 재판 과정에서 빚어지는 절차상의 불이익과 법리 해석에 대한 불합리가 최소화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말이다.
   각설하고, 끝으로 사실과 법의 심판이 어떻게 차이를 보이든 어쩌든 다음 내용은 어디까지나 세 가지 판단 근거에 따라 기록함을 밝힌다. 첫째 앵거스가 읽은 글 곧 사건의 재구성과 심판의 전과정을 활자로 옮긴 글이 그에게 깊은 인상이라는 성과를 얻었는가, 둘째 그 짧은 문장이 추리소설 한 권보다 더 흥미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 셋째 그 모두를 요약한 내용인가. 이 세 가지를 만족했을 때만 앵거스는 다음 문장을 자신의 창작 노트에 기록했다. 서술자는 앵거스의 속마음과 무의식을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사고가 논리적인지, 연역적인지, 귀납적인지 또는 카르네아데스와 아라우카리아를 아는지 그것을 알지 못함을 전제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건 꼭 영화 시작 전에 나오는 그런 안내문 같은 느낌이다. 이 영화는 사실에 근거하여 만든 허구 어쩌고저쩌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보너스는 바닥났다. 다만 베니스의 상인과 명백한 차이가 있는 만큼 간략한 사건의 개요를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언제, 어디서, 누가 숨진 채 발견됐다.
   추정 시간이 앞이든 뒤든 다 맞음. 사건 발생 후 어디서 누구를 만나서 하는 말, 나 어디서 언제(몇 시 몇 분에) 나갔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양측에서 동원한 전문가 증인의 상반된 주장.
   수많은 진술증거와 간접증거 등이 존재함에도 재판부의 합리적 의심 없는 유죄 심증을 끌어내지 못한 점. (왜?)
   전문가 증언 판단의 불합리. 
   알리바이, 사망 시간, 동기, 기회, 준비물, 무수한 간접사실등 그 모두가 무효화됐다고? 
   결론. 판결 요지. 어떻게, 오 이럴 수가! 
   심증은 매우 방만함. 완전 드라마. 신빙성 부족하고 비과학적인 부분이 분명 있음. 재판부의 합리적 의심 없는 유죄 심증이라... 그 모두가 합당하다면 동시에 전례와 전문가 증인의 상반된 주장에 대한 재판부의 여유로운 대응과 검증에 빈틈의 여지가 있다면 무슨 추정 원칙, 그런 일반론을 뒤집어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됨. 오오, 그 수많은 수고스러움과 눈물과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서사가 결국 모두 헛일이라니! 따라서 '너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에 해당되는 게 좋을 수도 있겠구나. 논외로 007 가방이 대체 얼마나 어디까지 영향을 미쳤길래 라는 궁금증도 조금.
   액션 영화에서 비중 약한 조연이 연기하는 전형적인 대사 가운데 하나는 그거다. 죽고 싶어? 그런데 전문가나 행동주의자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머머 못할 줄 아냐, 같은 말. 즉 주연은 대체로 하수가 아닌 법. 도식화 과정에 따른 헛점을 차치하고라도 영화가 끝나면 이런 명제를 떠올려보는 재미가 있다. 그 하나의 가설은, 내가 만일 피고인이라면! 만약 내가 피고인이라면 나는 몹시 머머하고 싶었을 것이다 라고 앵거스는 느꼈다. 그러나 그렇게 공감하는 건 쉽다. 왜냐하면 내가 만일 피고인이라면 그 상황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때 발생하는 문제는 이성을 감성이 제압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다. 그 수모를 싹 다 감수하고 결론적으로 범인 불명의 타살로 결론난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너 나 사랑하냐, 아니다. 헤어지자. 아니 넌 나를 사랑해야 한다, 아니다. 넌 나를 사랑할 것이다, 아니다. 나중 사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다. 그럼 우리 사이는 뭐냐, 뭐긴 뭐냐 각자 인생을 살자 이제 그만 끝내자. 아니 그럴 수는 없다. 절대 없다....... 노래 가사처럼 쓰자면 이런 내용의 반복인데 있는 그대로 표현되었을 때 그 불미스러운 커피포트를 도대체 누가 어디까지 참고 견딜 수 있을까. 그 암담한 변주가 무슨 아기 별 주제에 의한 것도 아닌데 그 누가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그런 여자는 거의 없다. 있다면 그 유형을 부르는 지칭어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건 이미 심리학적으로 충분히 예고된 결과이지 않을까 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게 가정할 수 있다.
   앵거스는, 이처럼 한 편의 추리소설을 꽤 흥미롭게 읽었다.
   한말씀 더하자면, 치밀한 준비에는 애완견을 상대로 예행연습까지 포함됐다. 내가 갖지 못하면 죽이겠다, 그만큼 갖고 싶다, 그런데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사랑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언젠가 결심했다 어떻게 하기로, 그리고 작전은 꼼꼼하게 수행됐다, 그래서 죽였다 까지가 전말이다. 그게 사랑일까? 그게 사랑이라니! 완벽한 계획 범죄. 그리고 무수한 도움으로 무죄. 식겁한 정황증거는 자그만치 10,000개. 그런데 물질증거가 없다, 고로 무죄다, 어머머 무죄라고? 무죄는 2가지가 있다. 죄가 없는 것, 죄를 증명하지 못한 것. 그렇게 두 가지. 그래서 옛날에는 엄한 증거를 갖다 붙이고, 기준이 바뀌고, 조작이 통하며, 목표가 해서는 안될 수단에 경도되는 일이 잦았을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는 현재진행형일 테고. 포섭된 죄인들과 다 함께 그 크고 작은 죄를 무덤까지 안고 간다라? 그러면 객관식 문제로다.
   1.죽어도 자성은 없음.
   2.죽기 직전 참회.
   3.육신의 영면과 함께 영혼도 소멸.
   4.다음 생에서 계산.
   대도는 움찔도 안하는데 작은 녹을 받거나, 개인적 불이익을 미연에 방지했거나, 비겁했다는 벌을 면한 사람이 오히려 왕왕 떨 가능성이 크다. 각계각층에서 직간접으로 관련된 사람이 적지 않을 테니까. 경험하기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으니까. 당시 사회가 그렇게나 구식이었을까? 그렇다. 그분의 가문이 로스와일드나 듀퐁가도 아닐 텐데, 모세의 기적을 생애 내내 즐기는 건 아닌가 의심스럽다는 의구심은 쉽게 지워버릴 수 없다. 때문에 인간이 어떻게 악마일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필설로 설명하고 싶지 않은 전문용어 몇몇들. 꼭 어떤 특별한 파란만장함을 기쁨이나 즐거움이라 지칭할 순 없어도 당사자가 아니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기이한 감정은 모두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낙심하지 않아도 된다. 심판은 불합리하게 늦을 수도 있지만 그와 더불어 이런 일에 최적화된 덱스터랄지 이런 일을 좋아하는 한니발과 이를 위해 파견된 연옥의 반신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
   앵거스는, 이처럼 웬만한 추리소설 어지간한 걸작 영화보다 훨씬 사실적인 재판보고서를 읽었고, 추후 관련 소식을 드물게 듣었으며, 해당 사건과 관련된 기고문을 간헐적으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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