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136

from 소설 2018. 11. 15. 17:31

    1

    그는 소소한 행복은 잊고, 멀리 있는 대망을 믿었다. 그러니 좋아하는 희망과의 친교는 삐그덕거렸다. 그래서 그는 또 다시 999번 적토마 '청춘'에 올라탔다. 뭐야 이거, 이거 정말 어찌된 일인가. 그런데 그 환희마는 알고 보니 호박에 줄 그어 수박이 된 명마였던 것이다. 그래서 광마는 쾌감만을 추구하며 눈길은 자꾸 어느 꽁무늬만 뒤쫓았다. 그러면 NB는 그 끝이 파멸일지 성공일지 불투명한 광기에 그대로 몸을 맡긴 채 광인이 되어야만 하는가를 고찰했다. 계속 이대로 가, 말어! 가? 말어! 그 결과 선구안은 보아하니 음 가만 있자, 방법은 딱 두 가지라고 알려줬다. 보건대 전망이 반투명하니까. 그것은 곳,
    첫째, 애마와 합심하여 뻔트를 댈 것인가.
    둘째, 순결한 망아지는 목가적인 풍경화에 소풍 보내고, 기수는 잠시 애마와 헤어져 열정적인 광견이 되기. (심신분리야 뭐야)
    뭐라고? 오, 소름! 푸릇푸릇하던 비리비리 매가리 없던, 결정은 지금 성과는 다음. 따라서 그는 냉큼 2번 카드를 뽑아 들었다. 그렇게 그는 저번에 롭이 소개시켜준 작업실로 가서 당분간 그레이하운드로 살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는 사파이어와 에메랄드 색상의 호사와 무지개빛 사치스러운 타락마로 변했을까? 청초한 데이지와 다양한 들꽃이 반기는 들판으로 돌아가 야생마가 되면 차라리 낫다. 그런데 경기장에서 만년 꼴찌만 전담하는 경주마의 숙명이 되풀이되는 악몽,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어떻게 새빨간 상상에 은밀한 몽상으로도 모자라 은근히 웃음 짓는 색마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부끄럽지만 그는 확고한 목표 설정을 하는 게 아니라 불순한 후보군을 퇴짜 놓는 공상을 즐겨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는 다시 말 떼와 개 떼를 구경했던 그 작업실로 갔다.
    달콤한 사랑이, 미지의 환상과 절대의 신비를 양쪽에 꿰찬 듯한 걸작을 완성하기 위해서. 물론 실제 목적은 미완의 구상이자 마음 놓고 놀기 위한 핑계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렇게 롭이 소개한 작업실로 향했다.





    2

    그는 롭이 주선한 작업실 즉 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뭐지, 이미 임자가 있네? 당당히 쳐들어가서 당신 누구냐고 묻기는 좀 뭐했다. 당차게 너 뭐야? 그럼 쓰나, 에잇! 그래서 그는 롭에게 전화로 물어봤다.
   「롭. 이미 누가 있는데? 뭐야 이거. 쟤 팀 쿡이잖아?」
   「뭐? 여동생이 이번에 누가 온다고 했는데, 그럼 그거 진짜였나? 그러니까 가면 간다고 형이 나한테 미리 말을 했어야지.」
   「말했잖아?」
   「그래? 그럼 내가 잘못한거네. 있잖아, 그 별장이 내 껀데 알고 보면 우리 여동생 지분이 70퍼센트야. 음... 그러니까. 일단 철수해.」
   「뭐?」
   「그런데 진짜 팀 쿡이야?」
   「가짜일 수도 있지. 그런데 뭐랄까. 주변에 이상한 차들이 즐비한 걸로 판단하건대... 그런데 네 여동생은 무슨 일 하니? 오해하지는 말고. 왜 내 말이 꼭 그처럼 들리니? 늬 남편 뭐하니?」
   「남편? 뭔 남편! 팀 쿡이 남편이래?」
   「그게 뭔 소리야?」
   「형이 이상한 걸 물어봤으면서 왜 나한테 그래?」
   「어쨌든 저 인간 딱 보니까 직감이 내게 이렇게 일러주네. 일은 잘할 거 같은데, 일 잘하겠지 왜 못하겠니. 그런데 꽤나 째째할 거 같아. 뭐랄까 지나치게 꼼꼼하고 완벽해서 친교의 상대로는 썩 부적절한 느낌? 뭐 그러든가 말든가.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고.」
    탈선과 끈끈한 사이이자 일탈과 자주 돈독한 관계를 지속하는 자유인의 삶을 바랄 수는 없었기 때문일까? 그는 다시 본거지로 돌아가서 그런 위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권태의 수중에서 놀아나다 마침내 서슴없이 심심함의 하수인.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했네. 그럼 그렇지. 그러니까 그 어떤 플레이보이도 꼼짝 못하게 사로잡히고야 말 마성의 아름다움은 애초에 꿈도 꾸면 안되는 거네. 말을 말자 말을 말어!
    그는 툴툴대며 생떼쓰기도 지겹고, 귀티가 좔좔 흐른다는 빈말 듣기를 바랄 수도 없었다. 착찹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수 밖에.





    3

    고급 사교계의 축복 받은 초대객은 애당초 무리수. 그러니 좋은 기회를 엿볼려다가 방탕의 나락으로 빠지지 말고, 그렇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싫증나면 싫증난다 재미없으면 재미없다,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 내키지 않으면 내키지 않아 라고! 그래서 A에서 B로 옮겨가 일하기와 놀이를 동시에 할 수도 있고, 주어진 여건에서 하나만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여 하찮은 소문이 들리지 않고 신선한 새로움이 보이지 않는다면, 상황은 장난이 아니라는 말. 그러나 서둘러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해결책은 많으니까.
    첫째, 발랄한 조수의 깜짝 출연. 즉 발단 건너뛰고 전개 먼저.
    둘째, 여행─으쌰으쌰─소비─변화. 매체를 바꾸거나 단짝 바꾸기.
    셋째, 대회 직접 출전. 허풍 대회─자랑 대회─조증 대회─칵테일 대회등. 
    넷째, 대회 간접 출전. 스포츠 복권. 경마─경륜. TV보기.
    그런데 다 해봤다? 애써 유쾌한 척 해 봐야 소용없고, 긍지와 자신감과 희망마저 모두 귀찮기만 하다? 처방전은 없을 수가 없다. 곧 당근이 문제던가, 채찍이 이상하던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말을 잘 못 탔던가. 또는 중간에 말이 말을 통 듣지 않거나 연봉 계약에 이견이 클 수도 있고. 그보다 아마 한눈팔 여지가 다분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새파란 탐구심, 청순한 동경심, 기쁜 열망등 이런 긍정적인 가치가 변심한 게 아니라 답은 그것이었다. 보아하니 애마는 사랑하고 싶고, 회전목마는 좋든 싫든 돌아야 하고, 경주마는 미친 듯한 질주를 좋아한다는 것. 하지만 당나귀는 쉬고 싶다는 것. 놀라운 야생마라 판단해서 깜짝 놀라 긴급 영입하고 정성을 쏟아 길들여놨더니 글쎄, 녀석은 알고 보니 그저 일시적으로 광마를 흉내낸 것 뿐이라니. 그럼 조랑말을 풀어줘서 개랑 같이 풀을 뜯어먹든가 말든가 내버려두는 수 밖에.
    그래서 JS는 철없는 망아지의 힘 빠진 광기를 가라앉힌 채 휴일을 따분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포니로부터 조정 경기에 나가자는 연락이 왔다. 또?
    그는 당장 출발했다.
    포니를 만나러 가는 길. 드라이브하면서 모처럼 콧노래 부르기.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길래 뭔 노래인지도 모르고 막 흥얼거리기.
    행복한 기분과 사랑스런 분위기.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쾌적한 풍경에 조정 경기를 하다가 딱 중심을 잘못 잡어서 막 어쩌다가 포니가 그의 품에 갑자기? 포근히 안기는 상상. 진짜로? 아니 그것만 빼고.
    미스테리아 사무실을 뻔질나게 드나들어서일까, 아니면 구미가 당기는 건수가 전혀 없었기 때문일까. 웬 뜬구름 잡는 공상만 하고 또 했다. 그래도 어떻게 보자면 정나미 떨어지는 무미건조함보다는 나은 일이다. 푸릇푸릇한 몽상과 젊은 광기까지는 근접하지 않았으니 것도 괜찮고.
    그렇게 NB는 포니가 평소 애정하는 그런 거. 음 그러니까 여성잡지가 넌지시 제시하는 욕망을 화제로 제시할 생각을 하다가 포니 집 앞에 도착했다. 이어서 곧장 포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오빠.」
   「안녕 포니. 너네 집 앞이야.」
   「어? 그런데 이 시간에 웬 일로!」
   「웬일은? 지나가다 들렸지.」
   「잠깐만 기다려. 금방 나갈께.」
    그는 최근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포니가 나오기 전까지.
    순진무구한 기쁨을 잉태하는 아침의 일하기일 것이냐, 아니면 마음을 녹여주도록 짜릿한 밤의 환락일 것인가. 그는 네온싸인 불빛 주변에서 방황하기보다 오전의 환희를 택했다. 왜냐하면 날이면 날마다 작작 마시고 가지가지 하는 (순 철부지 어른들 뿐인) 아기 코끼리 꾸러기단에 가담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 혹시 그들만의 리그에서 허당은 입단 불허하기 때문 아닐까? 빙고! 농담이고. 그건 아닐 것이다. 재미없는 무소속에서 쾌감에 대한 불행한 성적보다, 그는 살짝 망설이며 창작의 고통을 보듬었으니까. 언제 갑자기 번득이는 영감이 알몸으로 춤을 추며 당신 앞에 떡하니 나타날지 알길이 없지만!
   「오빠. 벌써 오면 어떡해?」
   「응?」
   「내가 말 안했나? 조정 경기 1달 후라고.」
    저런. 저런. 저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왜냐하면 그는 A를 상상하느라 B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A.남자를 기분 좋게 하는 마술적인 매혹이란, 오빠 병 뚜껑 좀 따줘!
    B.조정 경기는 한 달 후입니다요, 오빠.
    할 일은 세계 마초 협회에서 한사코 선사할려는 공로상 거부하기. 그리고 양 어깨에 올려진 햄버거 내려놓기라니. 노노노노노! 그는 축 쳐진 뒷모습을 포니에게 보이기 싫어서 먼저 포니를 들여보낸 다음 호젓이 집으로 돌아갔다.





    4

    빤한 사랑이자 뻔한 인생이 될까봐 수상쩍고 부쩍 의심이 많아지는 시절. 찡한 사랑의 변심이 두렵고 왠지 모르게 일하고, 놀고, 쉬며, 먹고 자는 일상이 짠하게 느껴질 때. (혹시 갱년기? 뭐-뭐!) 그건 무슨 기분인지 통 모르겠다, 가 아니라 으쌰으쌰의 분위기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일 것이다. 그렇게 고삐를 풀고 자유인이 된다면, 정력가로써 행운을 얻고, 아리따운 숙녀를 만나 재미깨나 볼 수 있는 좋은 징조일까? 허나, 참고 참고 또 참고 많이 참았다가 괜히 혼자 꽝될지도 모르니 미리미리 조심할 것. 라~고 오늘의 운수가 친절히 조언할 수도 있다. 말 나온 김에 점이나 보러 가볼까? 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 있다 그저 그런 구경꾼으로 자리매김하느니,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바로, 팅커벨을 찾아 백방으로 날뛰기! 쨍한 소풍과 즐거운 청혼은 남의 얘기고, 슬픈 이별가 듣기도 재미없다. 그런즉슨 추문과 신비주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단지 그 진위 여부만 알고자 사방팔방 떠벌리기. 그러다 하루는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며, 하루는 꽤 괜찮은 조과에 심하게 기뻐하기. 비오는 날에 연분홍색 장미꽃을 선물하고, 바람 부는 날 숙녀 앞에서 로맨티스트로 변신하기.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
    그래서 이제는 나서야 할 시간. 그러다 그는 결정적으로 아는 동생들한테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아첨꾼으로 데뷔하고자 했는데...! 또? 결과만 말하자면 다들 바뻤다. 때문에 그는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에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락을 받고야 마는데!
    그것은 바로 친구들이 담합해서 수영장 파티를 열자는 약속이었다. 오래 기다리고 고대하며 애태우지 않아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바로 내일이니까. 그럼 그렇지. 음하하하하하하. (그런데 왜 갑자기 연락을...! 설마, 대타? 몰라 몰라) 이거야. 이거라고. 한동안 너무 적적하다 했다니까, 그러면서 그는 내일을 기다렸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빨주노초파남보.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5

    오늘은 수영장 파티에 가는 길.
    그는 생각했다. 이번에는 확실하다고. 날짜를 잘못 안 거도 아니고 초대 받지 못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안심. 기분은 좋음. 예감도 나쁘지 않음. 기대감은 고조. 분위기는 들썩들썩. 파티도 파티지만 기다리는 즐거움과 어디까지 가는 여정이 어쩌면 최고의 기쁨일 수도 있다. 얘를 보니까 딱 그렇다. 그러니까 앞으로 어떤 휴가 일정이 펼쳐질지는 몰라도 그것만은 아니기를. 말하자면 의뭉스러운 발단─수상쩍은 전개─못 믿을 절정─묻지마-식 결말만은 아니기를!
    이처럼 들뜨다 보니 그는 하트 뿅뿅과 윙크와 뽀뽀하는 상상은 잠시 뒷전으로 미뤘다.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이름. 사무치는 사랑. 그리고 반드시 해야만 할 무엇! 허영기 충만한 숙녀만 좋아하는, 허당기 많기로 정평이 나 있는 남자인지 아닌지 누가 관심 있겠나. 그래도 좋았다. 왜냐하면 지금은 수영장 파티에 가는 길이니까. 충격적인 미스테리와 쇼킹한 판타지에 대한 공상은 잠시 내려놓고 그는 중간에 쉬기로 했다.
    공원에서 맨손 체조도 하고 산책도 잠시 한 다음 다시 애마 웨건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출발했다.
    그렇게 1시간쯤 갔을까? 또 한 번 쉬기로 했다.
    그렇게 딱 어느 공원에 주차를 한 다음, 뭐야?
    차 뒷좌석에 웬 007가방이 큰 것과 작은 것. 그렇게 2개가 있네? 누가... 놔뒀지? 설마 차가 바꼈나? 아닌데. 맞는데. 그럼 누가 자기 차인 줄 알고서 잘못 넣어놨나 보다. 일단 내용물을 봐야 주인을 찾아서 돌려줄 수 있으니까 그는 가방을 열어봤다.
    작은 007가방에는 핸드폰이 수십 개 있었다. 또,
    큰 007가방에는 지폐 다발이 꽉 차 있네? 뭔가 어설픈 걸로 보니 제일 윗장만 진짜!
    뭐야, 그러면 밀가루는 어딨고!
    거기서 핸드폰 중 하나의 벨소리가 울렸다. 받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야 윌. 어디까지 왔어. 우린 다 왔어.」
   「윌? 너 혹시... 델이니?」
   「어! 늬가 윌 전화를 왜 받아?」
   「그러게. 내가 윌의 전화기를 왜 들고 있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윌과 NB는 차 모델과 색상이 똑같았고, 정말로 윌이 착각해서 자기 가방을 중간에 NB차에 실었던 것이다. 그야 뭐 차만 바뀌지 않았으면 됐고, 백색 가루에 연루되지만 않았으면 다행. 그렇게 그는 수영장 파티장에 도착했다.





    6

    수영장 파티에 참석한 애들을 보아하니... 다 아는 친구였다. 그런데 딱 한 명. 모르는 아가씨도 있었다.
    오오! 지금까지 만나본 여자들과는 깜짝 놀랄 만큼 완전 딴판. 따라서 사랑에 홀딱 빠져들지 않고서는 못 배길 지경. 뭐야, 또 첫눈에 반했다고? 지겨운 악습이자 중독된 버릇이구만 그래. 그렇지만 참으로 기묘한 낯빛이 어디서 본 듯 만 듯 했다. 그녀는 결연한 품격으로 어느덧 매료시켜버리고야 마는 첫인상이었다. 아침에는 늦잠자느라 바빴고, 낮에는 일하기 싫어 별난 핑계에 골몰했으며, 이윽고 해가 지면 괴짜로 보이고 모지리가 될지라도 어느 흥겨운 분위기를 찾아 기웃거리기 일쑤였는데. 그런데 이제야 입이 귀에 걸리게 생겼구만 그래. 잘한다 잘해!
    파티는 순탄했다. 가당치도 않은 모험은 없었고, 재수 옴 붙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맛나게 먹고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NB에게 비상 문자가 왔다. 게다가 메시지와 알람이 울렸다. 뿐만 아니라 앱은 삐요삐요 울렸고, 마침내 전화가 왔다. 레이저 시스템에서 침입자를 감지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NB는 사실을 친구들한테 말했고, 그런 설비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실토를 얻어내고야 말았다.
   「황금 마네킹... 그 그림. 그게 진짜냐 가짜냐. 우리끼리 내기를 했어. 그런데 뭐 레이저 설비 시스템? 진짜란 말이잖아!」
   「아니야. 아니라고. 응? 내가 어떻게! 인터넷에 당장 검색해봐. 어디에 있다고 다 나온다니까. 내 껀 위작이야.」
   「그럼 레이저 시스템은 뭐야?」
   「그건... 그건 그냥 설치해뒀어.」
   「그걸 뭐하러?」
   「재미로.」
   「그럼 이번에 집 지키는 개가 드디어 한 건 한 거야?」
   「뭐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런 셈이지.」
   「그래? 이거 축하해야 할 일...인가? 일단 축하하지 뭐.」
   「그...런가?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거 보면 명석한 사냥개 때문에 내 입지가 꽤나 올라간 듯한데? 기분이 지붕까지 올라가진 못했지만 양 어깨에 특대 햄버거가 올려진 듯하구만 그래.」
   「그래? 그럼 이 내기는 어떻게 한담?」
   「그런데 그 얘기를 왜 나만 몰라? 나랑 쟤. 딱 둘만 빼고 나머지는 다 안다고? 너네 정말 그러기야? 어? 너네 진짜 이러기냐고! 일단 한 번만 봐 줄께. 그렇지만 다음엔 얄짤 없어. 알어? 흥! 있잖아, 그런데 있잖니. 응? 그 그림이 티치아노가 그린 거야 아님 라파엘로의 솜씨야? 설마 진품은 아니겠지? 그렇지?」
    그 다음에 왠지 분위기가 급속히 경색됐다.
    정말이지 으쌰으쌰 좀 안 하면 어디가 덧나나.
    그는 속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다른 친구들은 정반대였다. NB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레이저 시스템을 설치한 보람이 발생했는데? 때문에 그는 정말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고서 속내를 언제쯤 드러낼까 고민했다. 아니다. 그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그런데 녀석들도 말을 아끼네? 그래서 기분은 거북하고 분위기는 궁상맞고.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그는, 설마 얘네들이 날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의아했다. 천재가 발명한 환상머신에 대한 속인의 광신을 얘네들한테 들켜버린 건 아니겠지, 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치만 분위기가 급냉하는 바람에 뉴페이스에 대한 관심도 겸연쩍어졌다. 환상적인 매력에 필적할 만한 청순함, 빛을 잃었다. 그렇다고 지금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데, 그런데 불행을 주선하고 퇴폐를 추천할 수야 없는 일. 아름다운 사랑과 타락한 인생의 기묘한 대조는 이제 그만, 제발 그만. 모두들 찬탄하지 않을 수 없는 몰아의 경지에 접어들 지경이었다.
   「있잖아요, 저 먼저 갈께요. 약속이 있었는데 깜빡 해서. 그럼 이만. 나중에 뵈요.」
    처음 보는 숙녀는 그렇게 먼저 일어섰다.
   「나도 이만 실례.」
    도나도 가네?
   「잘났어 정말! 무슨 청춘 드라마 찍니? 살다 살다 별 이상한 일을 다 보겠네. 나도 가야겠다.」
    자, 폴도 가시고.
   「왜 그런대 정말!」
    샐리도 떠나네?
   「어머머머. 내 정신 좀 봐....」
    그렇게 모두들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래서 NB는 이렇게 말했다.
   「난 남을께. 당분간 작품 구상할 게 있어서. 델. 그래도 되지?」
   「어? 어-어! 그럼.」
    패기냐 패배주의냐. 삶은 정공법이 다가 아니다. 일단 작전만 봐도 뻔트가 있다. 가짜 싸인 같은 은근한 간보기라고 왜 없겠나. 뻥카와 트로이 목마와 시간차 공격 외에도 벤치에서 대기중인 선수들은 쟁쟁하다 못해 나도 모르게 거북목이 된다. 아니면 귀가 이만~하게 커지던가. 그래서 그는 딱 정했다. 가난뱅이 인생은 지긋지긋하니까 마법사 카드를 만지막만지막. 그러나 어설픈 허당 마법사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비현실적인 장르도 금새 지겨워졌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신물이 났다. 고로 그는 이번에 마음 먹고 개구쟁이가 되기로 했다.
    그는 별장에 남은 채 떠나는 애들을 슥 곁눈질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레이저 시스템이 한몫 제대로 했겠다, 녀석들의 뚱딴지 같은 오해도 받았겠다, 남아서 이 기분이라면 걸작 하나 뚝딱 완성할 수 있겠다 라고! 도대체 몇 마리 토끼를 잡을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7

    별장 블루에서 홀로 1일째.
    그는 기적 같은 반짝 성공을 바라지 않았듯이 뜬금없는 재산 탕진을 꿈꾸지도 않았다. 우선 화끈하게 뿌려댈 수 있는 품위 유지비부터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반짝이는 사교 생활과 눈부신 희망의 실현을 관측했을까? 그럴 리가 있겠나. 그러면 그는 신나는 모험을 예견했을까? 삶은 영화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결국 그도 어쩔 수 없는 플레이보이 지망생이므로, 따라서 황금을 탐구하고 행복을 추론하는 그림을 상상했다는 건가? 아니다. 딱 아니다. 그는 즐거운 미래와 기쁜 운명이니 로맨티스트의 행운이니 그런 건 모르겠고, 때문에 그는 그저 놀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뭐?
    그런데 전망이 꼭 상쾌하지만은 않았다. 예감은 밍밍했다. 기분은 담백했으며 분위기마저 우중충했다. 특별한 수작과 발랄한 책동도 없이 그 뭔가를 기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건 곧 007의 전성기가 환생하기 위해서는 이상적인 본드걸이 필수라는 것. 역전홈런의 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본드걸의 부활인 것. 마술사 옆에는 미녀 조수가 있고, 수트 입은 관리자에게는 매끈한 투피스를 입은 비서가, 슈퍼스타에게는 보디가드부터 대략 몇 명이 붙어다니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어떻게 그 모두를 고용한단 말인가! 그래서 그는 전도 유망한 본드걸의 성장을 미리미리 지원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본드걸이여, 너는 나중 나를 위해 치타 무늬를 애정하고 무엇도 입어야 할 테야! 라는 힌트는 꼭꼭 함구한 채 말이다.
    그렇게 그는 별장으로 다른 친구들을 불렀다. 그렇지만 순순히 오겠다는 친구는 단 1명도 없었다. 본드걸 물색은 시작과 동시에 끝나는 건가? 그는 부쩍 초조해졌다.
    그래서 그는 연습장을 펼치고서 아무 글이나 막 써대기 시작했다.
    다음과 같이.
    번잡하게, 신부 들러리니 부케니 결혼 행진곡이니 다 필요없고. A의 전남편과 B의 전처의 몰래한 사랑. 불륜이면 숨기고 떳떳하면 숨길 게 없는 일. (물론 몰래 하는 애틋한 사랑과는 또 다름) 그건 곧, 애절한 사랑의 맹세와 꿈 같은 애정기는 모르겠고. 어쩌면 짧은 행복과 단순한 쾌락만을 위한 만남이 복귀한 돌씽들에겐 신나는 활기일 수도 있다는 것. 아찔한 지성에 독실한 천직과 멋진 인생도 좋다만, 왜냐하면 옛-카톨릭 교칙에 따르자면 이혼이란 없거나 전처가 살아있을 때 재혼이란 불가하기 때문. 좌우간 아빠의 인생도 좋고 엄마의 사랑도 소중하나, 관건은 내 앞가림인 것. 순교도 배교도 아니고 주홍색 하면 튤립만 생각하면 되니 그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지금은 중세에 비하면 지상 천국 같지만, 자세히 면면히 들여다보면 또 썩 그렇지도 않다. SF영화에나 나오는 미래로 갈길은 아직 머나멀기에. 좌우지간 일단은 스스로 먹고 살기에 신경쓰는 수 밖에. 냄새를 맡고 (개)이득에 민감한 채.
    글쓰기 끝.
    그 다음으로 그는 동네를 탐색했다.
    그렇게 별장 블루에서 홀로 1일째는 마무리되었다.





    8

    별장 블루에서 홀로 2일째.
    친애하는 일상과 유망한 이상 간의 괴리. 밝은 꿈을 선도하건 단란한 유흥에 몰두하건, 단기 성과와 장기적 목표가 구분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 테면 오늘의 사랑과 내일의 행복. 그 둘이 바뀌는 걸 인생의 초심자는 핑계로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노련한 장수라면 수단과 목적이 경도되지 않는 이상 계획의 변경에 인자할 수도 있다. 물론 고수라면 오늘의 사랑과 내일의 행복, 그 둘의 혼담을 잘 성사시킬 테고.
    그런데 형편과 사정이 어떠하건 변심에 앞서 소년에게 추천해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옳지, 야망이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소녀는 일기를 쓰고 친구끼리 바이런풍 시어를 논하는 데 반해 소년은 그렇지 않으니까.
    둘째, 어른이 되면 대망보다는 그날그날의 경주에 충실한 삶을 살기 때문. 꿈도 좋다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러니까 그처럼 삶의 비밀을 잘 알면서 우리 어른들은 대망과 소망을 비롯하여 몇 마리 토끼를 잡긴 잡았을까? 그럴 리가 있나! 일단 우리가 플레이보이인데? 사냥개한테 또는 빚쟁이한테 쫓기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래서 우리는 철칙1과 계획2, 그리고 신나는 인생을 위한 제7의 복안을 알게 모르게 다 꽁쳐두는 것이다. 그렇게 꺼낼 수 있는 카드가 많은 사람은 주로 경주마보다 야생마 유형이다. 왜냐하면 마주와 경주마, 마권업자, 관중은 큰 걸 바라거나 또는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얽매인 게 많은 데 반해, 야생마는 잃을 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경주마는 육성되고, 야생마는 야성을 주체하기 힘든 까닭에 목표가 막연하다. 어른들은 노림수가 분명한 반면 몽상가는 개꿈 꾸느라 바쁜 것이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예는 무엇일까? 이렇다. 삶의 제1철칙은 무슨 일이건 전망을 살핌과 동시에 암산으로 순서도─가능성─경우의 수─에너지 투입량을 따지기. 계획2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고. 그 다음으로 제7의 복안, 그것이 과연 NB에게 있었나? 하면 없었다. 뭐? 그러니까 그는 영화 주인공감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다큐멘터리형 캐릭터에 가깝다는 잇점 아닌 잇점도 있었다.
    하여 그가 이번에 고른 게임은 무엇일까? 무엇인고 하니 그건 바로, 그 동네를 샅샅이 뒤지기로 했다. 탐험. 탐사. 탐방. 탐구. 탐닉등.
    중간 과정은 생략.
    탐험. 탐사. 탐방. 탐구. 탐닉등 충분히 했다 치고.
    자, 그 다음에! 그 다음에?
    관심을 부쩍 끌어당기는 두 가지를 발견해냈다. 그건 곧
    첫째 체육관, 둘째 문 닫은 카페.
    그래서 그는 일단 문 닫은 카페를 내일. 즉 별장 블루에서 홀로 3일째 되는 날을 기념해서 탐색하기로 결심했다.
    일단 그렇게 별장 블루에서 홀로 2일째는 막을 내렸다.





    9

    별장 블루에서 홀로 3일째.
    그는 일단 동네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는데 그 궁금증을 풀 수 없었다. 때문에 별장 관리 권한이 있는 델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델. 마을 사람들이 이상해.」
   「이상하긴 뭐가 이상한데.」
   「인사는 서로 하는데 통 얼굴을 못 봐. 혹시 좀비 아닐까?」
   「그럼 잘된 거지. 각본 하나 써.」
   「아 진짜라니까. 꼭 로보트 같다고.」
   「별일도 아니구먼 그래. 됐고. 다음에 통화해. 나 바뻐. 끊어.」
    뚝.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렇게 해서 NB는 전날 목표로 삼았던 첫째 체육관, 둘째 문 닫은 카페 방문을 시작할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건 오후로 미뤘다. 오전에는 일을 해야 하니까.
    무기력을 싹 씻어버리도록 기 받는 느낌에 왠지 일이 잘될 것만 같았다. 애먼 발단의 꿈쩍도 않는 퉁명스러움이야 뭐 차차 해소될 테고. 당최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랑에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얼렁뚱땅 멜로드라마 한 편을 금새 써버릴 듯한 자긍심이 샘솟았다. 그야 어쨌든 일하기가 놀기를 구워삶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렇지만 일을 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따분해졌다. 모험이라면 차마 마다할 수 없는 승부사로써 한눈팔고 싶어졌을까? 새침떼기로써 어느 누구도 견줄 수 없는 그녀도 보이지 않는데 뭘. 인생은 못 미더운 예언가의 허언증을 닮아서는 안되는 것. 다시 일이나 하자.
    아니 아니 잠깐만. 딱 잠깐만.
    그러고서 NB는 핸드폰 앱으로 사무실 감시 영상을 켰다. 심심하니까 기분 전환도 할 겸 생각나서 그걸 켜봤다. 엇그제 친구들의 난데없는 이벤트도 기억나고 하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머머머머!
   「끽해야 정지 영상이 전부일 줄 알았는데. 아뿔사!」
    악마의 환상에서 탄생하지 않았을까 추측되는 신기한 논법 같은 일이라니!
    웬 복면 일당이 황금마네킹...그림을 바꿔치기 하는 장면이 진행중이었다. 실시간 앱으로 화면을 보는데, 그게 뭐랄까, 썩 어설프지 않은 걸 보니 전문가인 듯 했다.
    그런데 왜 레이저 시스템이 먹통이 된 거지? 설마 얘네들이...! 아아, 쟤네들은 아마추어가 아니구나.
    그럼 친구들이 엇그저께 꾸민 모의는 장난이었고, 오늘 지금 벌어지는 사태는 장난이 아닌가? 그러네. 장난이 아니네.
    의연히 받아들이기엔 썩 석연치 않은, 운명의 장난이었다. 오오 대체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상상도 못했던 일인데, 어쩜 좋나!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원래 있던 위작을 떼가고, 그 자리에 진품을 박아넣는다?
    그런 바보 같은 일을 왜? 누가! 뭐하러? 자긴 시키지 않았는데! 그런데 왜?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일단 그는 칼럼니스트 나부랭이인 NB로써 가히, 전혀 이채로운 연락을 해볼까도 생각했다. 흔히 취할 수 있는 몇몇 행동 지침들. 그렇지만 이건 평범해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자긴 잃을 게 없으니까. 때문에 느닷없이 그는 민망한 소망으로 부풀었다. 변한다 얍~ 나타난다 뿅~! 농담이고. 또 다시 번개처럼 느닷없는 공포의 전율 때문에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주인공 처우는 사양하고 행인 3도 싫고, 딱 그랬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전개가 발생하다니. 어떡하지? 어떡하냐고! 이 일을 어쩌면 좋냐고. 새로운 인생과 더 새로운 '찐한 사랑'을 꿈꾸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나중 오락산업에서 그럴 꺼 아니냐고. 일단 황금 마네킹... 안 찾나 못 찾나! 라~고 들쑤시며 분위기를 달구면 점점 으샤으쌰 밋밋한 제목들은, 어? 하루아침에 마구 경쟁하듯이 도박적이고 세끈하며 도발적으로, 그렇게 세게 바뀔 건 뻔한 일.
    그러면 나중 결국 읽게 될 헤드라인은?
    어디 미술관, 도난 미술품 정보 제공에 112억원 현상금 내걸어!
    그 다음에 그러면, 압수에 체포에? 설마 내 위작을 얘네들이 원본과 바꿔치기 할 리는 없고. 그럼 나만 뭐된 거잖아? 라는 계산이 한순간에 슥 스쳐지나갔다. 12년 전 도난된 반 고흐 그림, 마피아 은신처에서 발견? 노노노노노 노노노노노노노! 내가 그 마피아? 그는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기분이었다. 자긴 아무짓도 안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세기의 도난사건으로 수배 명단에 오르다니. 그건 아니었다. 그래서는 안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당장 상상 가능한, 떠들썩할 뉴스들은 안 봐도 훤했다. 인터뷰 화면이 자동적으로 스르르 떠올랐다.
   「네. 미술품이 도난되면 인터폴의 수배 리스크에 바로 올라가기 때문에 공개적 유통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하세계, 즉 마약이나 무기를 사고 파는 암시장에서 주로 거래하고 있는데요. 미술작품이 마약과 무기 다음, 곧 세 번째로 밀거래가 많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충만 봐도 웬만한 산업계처럼 단위가 어떻다고 할 수 있죠. 네. 그럼요.」
   「보통 한 작품을 다시 회수하기까지 최소 10년은 걸린다고 하는데요. 물론 그것도 운이 좋으면요. 지난 2008년 스위스의 에밀 뷔를르 재단 미술관에서 도난당한 세잔의 '빨간 조끼를 입은 소년'과 드가의 '르픽 백작과 그의 딸들'은 아직도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작품이 도난당하면 10년에서 15년, 길게는 100년에서 150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 도난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법적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훔친이들이 신상확인이 안된 구매자에게 작품을 판매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끝이냐, 아니겠죠. 주인은 수차례 바뀔 수도 있는 것이죠. 그렇게 마지막 구매자가 사망을 하거나 또는 다시 시장에 내놓게 되는 거죠.」
    그럼 혹시 얘네들이 일만 제대로 했다면? 자기가 모른 체만 한다면 끝까지 아무도 모를 수 있잖아!
    방법은 하나뿐이 없었다. 진득하니 앉아서 그런 소식이 안들리기만을 바랬다.
    그 소식만 들리지 않는다면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는 www.artloss.com에 검색해서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만이기를 바랬다.
    별장 블루에서 홀로 3일째 종료.





    10

    별장 블루에서 홀로 4일째.
    집과 사무실이라는 생활 반경에서 꼼짝도 안하다가 밑도 끝도 없이 깜짝 놀랄 만한 스캔들에 연루되는 일. 오히려 그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아니 글쎄! 말도 안돼, 의 주인공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 황당한 진실. 이 일을 어쩌면 좋니 어쩌면 좋아! 어떻게 어떻게 끼니도 해결하며 일도 잘 안 풀리던 차에 비싸지도 않은 위작을 도난당하다니. 그것도 두 눈 시퍼렇게 뜨고서? 오 세상에나! 정말 그 도적들은 자기 친구들인가 그는 살짝, 아니 많이 의심스러웠다. 호젓함에 물리고 심심함에 지겨운 끝에 부러 오지랖 떨지 말라며 경고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불길한 기대 반 씁쓸한 예감 반.
    그는 일단 기다렸다.
    걸작 미술품 황금 마네킹...이 도난당하는 대형 절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라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오오, 그러나!
    그러나! 아아, 그러나!
    진짜로 그러나, 정말로 그러나!
    구체적인 뉴스가 나왔다. 왜냐하면 대형 작품은 아니지만 토막 뉴스로는 다룰 만 하니까.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뉴스를 어느새 보게 된 것이다.
   「장 엘리옹의 황금 마네킹 상점이라는 작품 1점이 도난당하는 절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도난은 이날 새벽 3시께 일어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도난 당시 박물관의 경보장치가 꺼져, 경찰은 즉각 경계령을 발동하고 현장으로 출동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찰이 도착한 뒤에는 이미 미술품들은 사라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현재 사건 현장 목격자들을 심문하고 있으며, 페쇄회로텔레비전 비디오를 분석하고......」
    뭐야 이거?
    ...단 10분 만에 훔쳐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명화가 무슨 여심이야 뭐야!
    ...현상금은 얼마라고 합니다: 인터폴 그건 영화에서나 보던 얘긴데!
    ...미술품 도둑은 거물 투자자도 월스트리트의 전설도 아닌 누구로 밝혀져? 이건 상상임.
    ...작품과 범인의 행방은 지금까지 오리무중이다? 용의선상에 오른 멘사 회원이 나일 리는 없겠지!
    ...27일 영국 타블로이드 ‘데일리 메일’은 뉴욕시의 한 아파트에 도둑이 복도 벽을 뚫고 침입해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과 보석, 귀중품 등을 훔쳐 달아났다고 밝혔다: 걔네들이 내 친구들이라고? 저런!
    그래서 그는 꼼짝없이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다. 고로 그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즉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별장 블루에서 홀로 4일째 종료.





    11

    별장 블루에서 홀로 5일째.
    그는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계획했던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즉 첫째 체육관, 둘째 문 닫은 카페 탐문하기.
    그는 그렇게 마을의 수상한 체육관을 방문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야 뭐야!
    레이저 시스템 가동됐다. 삐요삐요~. 삐요삐요~. 삐요삐요~.
    그는 도망갔다.
    곧바로 델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다.
   「델. 동네 규모와 마을에 있는 체육관 규모가 전혀 비례하지 않아. 그리고 레이저 시스템이라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늬가 직접 알아봐. 왜 바쁜 데 딱 이 시점에 전화를 하고 그러니. 나 지금 완전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뚝! 이 자식이...!
    그래서 그는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저녁이 지나 밤이 되었다. 야심한 시각이 되자 그는 마을의 체육관에 방문했다.
    그렇게 체육관 앞. 잠겨있다고? 핸드폰 앱을 켠 다음 푸른색 불빛을 조정단자에 비춰서 레이저 시스템 가동을 중지시켰다.
    선수 입장.
    설계도를 떠올려보니 체육관은 직사각형 형태였다.
    입구로 들어갔다. 그러니 곧바로 딱 그런 모양새였다. 영화에 나오는 타임머신을 개발하는 과학자의 사무실.
    어라~? 애썼네! 음 노력했어. 신경 많이 썼구먼. 이거 혹시 체육관을 미술관으로 쓰시나! 그리고 무슨 취조실처럼 사무실 한쪽 벽면은 전부 커텐으로 가려진 상태라니.
    그러다 그는 저기 저쪽에서 큼직한 TV만한 크기의 버튼을 발견했다. 무슨 박물관에 있는 투명한 도자기 보호 상자처럼 모셔져 있네? 다시 핸드폰 앱을 켜서 파란 불빛을 투시한 다음 손을 집어 넣어 버튼을 눌렀다.
    두둥~!
    커텐이 열렸다.
    그런데 뭐야 이거! 키가 대충 5미터? 7미터? 웬 거인이 서서 자고 있네? 딱 봐도 다비드상이랑 똑같이 생겼다.
    말도 안돼! 이걸 믿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아 말이 돼야 믿을까 말까 한 번 고민이라도 해보지, 참 나.
    거 참 보자 보자 하니까, 이거 무슨 밑도 끝도 없는 만화영화냐고!
    그래서 그 사무실에 있는 자료를 충분히 읽고 파악해봤다. 결론은 그랬다.
    <신체 냉동 보존 기술>에 따라 현존하는 조각상 상당수가 조각이 아닐 수도 있고─그럼 모하이 석상도?─어쩌고저쩌고!
    이런 이런 이런... 저런! 일이 점점 크게 진행되고 있었다. 저런 말도 안되는 장면을 보고... 안 믿을 수도 없고 말이야. 밑도 끝도 없이 웬 거인? 그런데 진짜야! 아 나 이거 진짜 사람 미치고 환장하겠구만 그래. 펄쩍 뛸 일이 분명한데 그렇지만 또 진짜야. 이걸 어떡한담? 뭘 어떡해!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뚱딴지 같은 장난을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라~고 혼잣말을 내뱉으며 그는 일단 믿었다. 일단 말 같지도 않은 일이 분명하지만, 개 풀 뜯어 먹는 일이라고 사실인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따라서 일단 돌아가는 경과를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집이나 사무실로는 가지 못했다. 인터폴이 지키고 있으면 어쩌라고! 뿐만 아니라 그 규모면 이미 머머머, 머머머 같은 정보 단체는 물론이요 사설 업체 특수요원들까지 쫙 깔렸을 거 아니냐고! 때문에 그는 하는 수 없이 다음 날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사무실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초정밀 3D 홀로그램이거나, 섬세한 4D 가상현실이 아닐까 라며 의심할 텐데! 당시는 그럴 계제가 아니었다는 점. 입 벌리고서 침을 흘릴 뻔 말 뻔 했다는 거다.
    별장 블루에서 홀로 5일째 종료.





    12

    까다로운 눌변가에게 시달리고, 말하기 좋아하는 달변가들의 잘난 척에 질리는 현대인들. 친구들 면면을 살펴보니 기분 좋을 땐 호인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롱꾼, 호사가, 허세꾼, 잔소리객, 협잡꾼, 정력가, 호색한, 병풍, 신부들러리 등등. 그래서 혼자 놀기에 열중하여 듣기 싫은 상투어만 늘어놓는 TV를 보다 보다 지쳐서 끄는 도시인들. 타도해야 마땅한 타성. 물리치고 싶은 권태.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심심함.
    천박함을 피하기 위해 멀리 해야 할 대상이 많아지다 보면, 우리도 어느새 잔소리왕이 된다. 어쩌다 나도 모르게 어른인 거지. 건방지기로 유명한 친구는 배가 이따만하게 나왔고, 나는 팔과 목이 짧아졌고. 그러다 어영부영 음악이 멈추지 않는 클럽에서 입장 금지 당하기. 곧 큰 기술은 먹고 살기 위한 생업이고, 삶의 기쁨은 누가 뭐래도 잔기술인 것. 뭐야, 또 잔머머?
    그래서 우리는 식상한 우정과 식어버린 사랑 대신에 혼자만의 무모한 도전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의 취미일 수도 있고, 일개 한량의 새로운 인생을 위한 결심일 수도 있다. 그런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고,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는 것. 저질? 값싼 농담 치고는 왠지 짠한 농담이다. 즉 꽃과 과일과 멋과 행복도 좋다만, 희귀한 신인왕에게는 촌스러워도 물개박수를 아끼지 않는 법. 다시 말해 성공 가능성이 높은 번개마는 배당률이 썩 불만족스럽다는 것. 어차피 유명해지면 광대의 운명일 뿐이고, 고급 매니아와 초보 애호가는 나뉜다는 것.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안 말렸으면 한도 끝도 없이 근처만 빙빙 돌 뻔 했구먼유. 오, 땡큐!」
   「아 글쎄 비인기 종목에 대한 취미요, 아니면 꾀죄죄한 패전 전담 요원에게 베팅하기요?」
   「뭐시라! 뭐 꾀죄죄한 패전 전담 요원? 이 양반이...!」
    요점은 전자 '비인기 종목'도, 후자 '꾀죄죄한 패전 전담 요원에게 베팅하기'도 아니다. 고로 정답은 스카우터!
    즉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나만의 꿈나무 찾기. 다시 말해 성숙한 애마? 아니 아니 새파란 꿈나무! 하지만 본격 SF물은 대체로 재미없고, 정통 에로보다 현실적인 찐한 사랑을 간구하는 게 꿈나무 찾기냐? 똑부러진 명답은 아닐 테지만 은근슬쩍 비스무리한 대타는 그것이다. 바로, 남자는 집에서 응애응애 있으면 안된다, 우리는 바깥으로 일단 나가야 한다는 것. 아니 글쎄 대타의 뻔트도 아니고 뻔트의 사랑론도 아니고, 뭐, 엉덩이 걷어차이기 전에 당장 나가라고? 어? 참 나 헛 참 나! 대체 그게 뭔 소리야!
    그야 어쨌든, 말하자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보자면 그는 또 엉덩이가 근질근질해졌다는 뜻이리라. 보아하니 스카우터는 무슨 스카우터야. 요점은 그거 아니냐고. 일명, 묻어가기! 결론 참 어렵게도 설명한다.
    그래서 일단 묻어갈 만한 거인, 괴물, 고혹적인 애마랄지 발랄한 구상은 불명확했기 때문에, 따라서 그는 오랫만에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사무실로 놀러갔다. 최근에 발생한 믿지 못할 일도 논의할 겸 해서.





    13

    별장 블루에서 홀로 6일째.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사무실 도착.
   「막돼 먹은 거야, 아니면 못돼 먹은 거야? 그게 그건가!」
   「미안하지만 둘 다 아니야.」
   「미안할 게 뭐 있니! 안 그래? 아니 근데... 그럼 혹시 주인공보고 악역을 떠맡으란 말은 아니지?」
   「반박자 늦지만 말귀가 어둡진 않네.」
   「너 뭐야? 난 TV 드라마 보면서 너한테 말하는데 넌 딴소리나 하고.」
   「뭐하긴 뭐해? 너네 잡지 봤지.」
   「어째 너랑 대화만 하면 배가 자꾸 산으로 가는지 난 그걸 정말 도저히 모르겠어. 너는 아니? 왜일까? 대관절 그 까닭을 한번 알아나 보자. 나도 알기나 알자고. 응?」
   「왜긴! 어렵게 생각할 거 뭐 있어. 너가 너무 아름다워서 아닐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 어? 입은 삐툴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어. 어? 너 정말, 그래도 되는 거니? 너의 그 유별난 미모 때문에 왜 내가 매번 정신을 못차려야 하는데? 어? 이거 진짜 너무한 거 아니니? 너의 그 남다른 열정, 빼어난 흡입력, 천사 같은 마음. 응? 또 있어. 수려한 자태. 뭐 하나 흠 잡을 게 없잖아. 안 그래? 나의 요정...은 아니고. 왜냐면 그건 늬 남자친구 몫이니까. 너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치 않는 거니? 응?」
   「야! 뭐 필요해. 어? 너 뭐 필요하냐고. 말만 해. 아 나 이거 정말 얘, 헛 참! 꼴에 지도 남자라고. 라~며 하찮은 얘기 하는 여자애는 만나지 마. 알았어? 품위 유지비 떨어지면 언니한테 말하고. 응?」
   「아, 뭐해? 지금 이 상황에 정신이 있어 없어, 어?」
   「그건 또 뭔 소리야?」
   「있잖아, 지구가 빵꾸났어!」
   「뭐, 진짜?」
   「아니. 뻥이야. 너 현실이랑 허구랑 구분이 안되니? 지구가 어떻게 빵구나? 마감일에 쫓기니까 얘가 정신이 이상하게 된 게로군.」
   「이 자식이...」
   「헤헤헤. 속았지? 메롱!」
   「1절만 해. 어? 넌 가만 보면 도입부는 괜찮은데 꼭 클라이맥스 근처도 못 가서 깬다니까. 알긴 아니? 왜 그렇게 삼천포로 빠지니? 왜 꼭 느닷없이 뚱딴지 같은 소리나 하냐고! 그나저나 축하한다.」
   「축하? 뭘? 무슨... 축하? 날? 내가 축하 받을 일이 뭐 있다고!」
   「너 환상문학상 그랑프리로 뽑혔다며! 상금이 자그마치... 내가 또 발이 넓잖냐. 너 나 알지? 나 소식 빠른 거. 상금이 자그마치... 1장이라며?」
   「뭐, 진짜?」
   「아니. 뻥이야. 푸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이... 이... 에이 관두자.」
   「뭘 때려 치겠다고?」
   「아 쫌!」
    어쨌든 그가 말도 못 꺼내다가, 어떻게 틈을 내서 겨우겨우 얘기를 꺼내기는 했다.
    그런데 그 일을 누가 믿겠나.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었다. 하긴 애들도 못믿겠지!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했다. 왜냐하면 자길 도와줄 사람도 없고,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니까.
    이 무뚝뚝한 곤경을 어떻게든 헤쳐나가야만 했다.
    하필이면 이런 해괴한 일이 내게? 상상도 못할 때는 왜 그런 일이 내게 발생하지 않나 그랬는데. 이제는 저절로 면구스러워졌다. 이렇게 박한 우연이라니. 얼떨떨한 운명은 또 뭐고. 기어코 미술품 전문 도박단이라는 직함까지 떡하니 떠맡았잖은가. 모두 그저 그런 해프닝으로 일축해버리기엔 일의 규모가 너무도 컸던 것이다. 너무도 착찹했고 어떻게 뜯어말릴 수도 없었다. 사뭇 스릴러이자 미스테리-호러의 주인공을 떠맡긴 했는데, 독차지한 방석을 보아하니 꽤나 떨떠름할 수 밖에. 이건 도무지 말도 안되는 전횡적인 처사요, 웃기지도 않은 3인칭 관찰자 시점이었다. 원래 하고 싶은 역할은 쾌감의 완수자랄까 뭔가 톡 쏘는 말투를 뽐내고 싶었는데, 찌질하게 숨어서 오락산업의 소식만 기다려야 하다니. 저런 저런! 첫눈에 반하기를 억제할 수 없는 장밋빛 맵시는 다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그러든어쩌든 시간을 믿어보는 수 밖에.
    별장 블루에서 홀로 6일째 종료.





    14

    별장 블루에서 홀로 7일째.
    그는 동네 아저씨로써 풍족한 황금에 대한 질투에 종종 사로잡혔다. 뻥이다. 사로잡히지 않았다. 그러면 단순 해결책이라면서 상품점에서, 필요치도 않은 악세사리를 막 가격표도 보지 않고 샀다. 한편, NB도 때로는 권태로운 일상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진짜로? 뻥이다. 정나미가 떨어지지 않았다. 보아하니 선망에 비해 내 안의 행복에 소홀해질 때면 그는 가택감금을 기억했다. 바로 데이빗 커퍼필드의 저택에 갖혔던 순간을. 그래서 그는 유쾌한 일하기의 방책을 어떤 책사에게 보고 받은 셈 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일하기가 아니라 버젓이 놀기에 대한 비장의 카드로 인식한다는 것. 그러니까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것인지, 아니면 쾌활한 바보인지 상태가 안 좋은 푼수인지, 그 원인을 통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뭐라고, 그 원인? 그건 바로 즐거운 인생은 풋사랑이냐 짧은 행복이냐 라는 것.
    썰렁한 농담은 이쯤 줄이고. 그야 어쨌든 다행스러운 건지 혹은 딱한 건지 그는 최근 마음이 딴 데 가 있었다. 따라서 그는 도망간 마음을 찾기 위해 여러 시도를 거듭해봤다. 예를 들면 어떤 숙녀의 마음을 빼았기. 아는 동생의 의식 속으로 허락도 없이 불쑥 들어가서 한 자리 꿰차기. 웨이트레스의 짝사랑을 받기 위해 괜히 얼쩡거리기. 첫인상이 특별한, 여-바텐더의 본심을 밀었다 당기기. 그리고 내 심보는 들키지 않기. 더불어, 처음 보는 어느 마담을 쥐락펴락하지 못한 체 무작정 알짱거리기. 뭐 집쩍?
    그러나 다 실패했다. 성공할 리가 있겠나. 그분들이라고 보는 눈이 없겠나, 신경 쓰이는 뒷담화를 상상하지 않겠나. 싹싹하지 않은 입방아, 그 예상의 적중을 감수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 아니 짓이었다. 재미없는 운명을 탓할 수도 없었다. 신나는 모험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였다. 젊음의 거리에 무턱대고 너무 자주 출몰해도 안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허구헌 날 뽀뽀하는 공상만 붙잡고 있을 수도 없었다.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작전 카드는 단 몇 개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끝까지 아껴놓고 꼭꼭 숨겨놓은 최후의 조커를 기용할 수 밖에 없었다. NB도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요술, 신비, 환상, 4차원, 신기루, 꿈동산... 이런 걸 허구에서 찾지 않은면 안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를 믿겠나 어쩌겠나.
    그래서 NB는 7일째를 맞아 그는 동네 인근에서 발견한 문 닫은 카페를 방문했다.
    좀더 속도감 있게 요점만 간추리자면 이렇다. 어느 버튼을 잘못 눌러서 카페 내부의 스크린이 켜졌다.
    그런데 뭐야 이거, 세계 메이저 골프 대회가 생중계중이라니! 심지어... 면밀한 데이터베이스가 화면에 깨알처럼 나오는 걸 보니... 이건 여기서 조정할 수 있다는 말이네? 바로 카페의 한쪽 벽면 전체가 화면이었던 것이다. 즉 골프공 안에 뭔가 있고, 골프장 코스 바닥에도 뭔가 있다는 거 아닌가! 설마 지하세계 자금과? 저런 저런!
    좀더 속도감 있게 구간 당기기. 반복해서 말하자면,
    좀더 속도감 있게 구간 당기기!
    결과는 이랬다. 부동산 업자가 찾아와서 알게 됨. 그곳은 스크린 골프장으로 밝혀짐.
    별장 블루에서 홀로 7일째 종료.





    15

    별장 블루에서 홀로 8일째.
    찐한 사랑, 더티러브, 풋사랑이라는 3대 어설픈 사랑. 다시, 어설픈 3대 사랑! 그 가운데 그는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단지 인생에게 행복한 사랑을 주선했을 뿐. 그래서 인생은 내친 김에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 그 모두를 간택했다. 정말로? 뻥이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나. 웬걸 짝사랑에나 빠지지 않으면 다행일걸!
    따라서 JS에게 부족한 3가지는 그랬다. 팔짱, 윙크, 하트, 뽀뽀, 키스, 오빠 또 오빠 계속 오빠! 3가지가 아니네. 그럼 몇 가지야? 그러니까 NB는 낭만은 눈독으로, 로맨스는 군침으로, 환상적인 미지의 사랑을 흑심으로 잘못 인식할 수 밖에. 그러나 그는 타산적이며 이기적이고 촌스러운 남아의 대명사로 비춰지기는 싫었다. 때문에 친구들의 무분별한 '밤의 행차'를 뿌리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그런데 놀기의 불만족은 노상 일하기의 불성실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 그도 모르지 않는 진실. 곧 으쌰으쌰도 다 나름 효용성이 명백하다는 뜻. 그래서 그는 친구들의 권태를 달래고 녀석들의 재미없음을 치유해주고자, 어디까지나 그러기 위해서 사교계에 얼굴을 들이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매번 똑같이 놀면 재미없으니까 그들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는 동생이 주최하는 가면 파티에 갔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비율이 꽝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하는 수 없이 그곳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곧 바 잘스부르크로!
    그런데 하필 그들이 자리잡은 그 유명한 바는 바로 여-바텐더가 없는 바! 저런...! 참으로 맥 빠진 방랑자들이군 그래. 누가 그 답답한 심정을 몰라줄까 봐 울기 직전의 표정 하고는. 하나같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용안들이군 그래!
    시덥잖은 객설은 각설하고, 지금쯤 잠잠해졌을 테니 사무실로 찾아갈까 라고도 생각해봤다. 그런데 그러다 잡히면?
    그 근처만 얼쩡거리다가 알짱알짱하는 낯선 사람을 발견하고, 불심검문한 다음, 조회 결과 체포 명령 떨어짐.
    그렇게 체포됐다가 중간에 도망감? 아니야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래서 그는 일단 밖으로 나갔다. 편의점에 들렸다. 즉석복권을 샀다. 결과만 말하자면 이랬다.
    1차는 동전으로 회색부분을 긁다가 그 부분이 빵구났다. 그래서 그 부분 자체가 아작나버렸다. 요즘 친구들 말로, 빡돌았다. 완전 빡쳤다!
    2차는 꽝이었다. 그리고,
    3차는 아차상에 당첨됐다. 그치만 상금이 무슨 다비드상 되기라는데... 뭐야 이거! 하면서 그냥 구겨서 버렸다.
    그 다음 그는 미용실에 갔다.
    저번에 미스테리아 사무실에서 잡지를 보다, 흐흠 하는 헛기침과 함께 잡지 한 면을 찢어서 접어놓은 사진을 꺼냈다.
    그리고 그는 헤어드레서에게 말했다.
   「이렇게 잘라주세요!」
    한참 머리를 깎고 있었다. 그러다 거울을 봤는데 거울 속에 웬 다비드가? 깜짝 놀랐다. 다시 보니 원래대로! 바로 이때부터 다시 여자를 볼 때마다 가끔 대리석 허벅지가 보이는 환각이 시작됨. 걱정됨. 많이 걱정됨. 마치 이런 대화를 일상적으로 나눌까 봐서.
   「오빠도 막 내 다리가 대리석으로 보여?」
   「어? 그게 무슨...! 아 뭔 소리야?」
    그는 컷트가 끝나고 미용실에서 나왔다.
    마지막으로 체육관 핑크에 찾아갔다. 거기만 들렸다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NB는 체육관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갔다.
    보아하니 저번의 그 버튼은 없었다. 커텐도 없었다. 더더군다나 다비드상도 없네?
    그는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고, 중앙에서 혼자 서서 자세를 취했다. 저번에 본 다비스상처럼!
    그런 다음 그는 별장 생활을 종료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뭐?
    아니다. 돌아가면, 유력한 미술품 도난범으로 딱 잡힐 거 아니야? 그게 무슨 푼돈도 아니고!
    아니지 아니지.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롭이 소개한 작업실로 향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16

    그는 흥미로운 놀림감이 되고자 기어코 새로운 환상머신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몰라요 몰라요!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그러든가 말든가!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아마도 듣기 싫은 풍문쯤으로 치부하는 게 어떨까. 고로 더없이 멋쩍고 꽤나 쑥스러운 추측일 뿐.
    그렇지만 또 어찌보면 왜 소년 시절에 야망을 키우지 않았냐며 비난하기도 퍽 옹삭한 일이다. 그러니까 뽑아 든 카드는 결국 멋쟁이나 탐미주의자가 아니라, 어머나 모험가라니. 것 참 탄복할 만한 미래주의일세. 하지만 따분한 어중이떠중이로 심심함에 염증을 느끼느니, 불가능을 꿈꾸는 열정에 운수를 걸어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때문에 그는 작정했다. 지금은 나를 따르라 라고 외치는 선동가도, 나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는 로맨티스트도 아닌, 바로 스스로 신비한 환상가가 되어야만 한다고. 그런데 대단한 영감을 떠올린다면서 어쩌다 막살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을 잠재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충 살자'라는 타당한 격언을 잘 아니까 그건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이었다.
    따라서 NB는 마땅히 환상소설을 지망해야 하는데! 그런데 신나고, 재밌고, 유쾌한 감정의 연속을 촉발하는 그것에도 소홀해선 안되었다. 왜냐하면 잘 놀아야 잘 일할 테니까. 말하자면 그것은 무엇? 그건 바로 사랑과 우정 사이. 다른 말로 놀기! 뭐시라고라? 참 나, 난 또 뭐라고. 그래도 충분히 긍정적인 논리다. 행복한 일하기와 즐거운 놀기를 양쪽에 꿰차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나, 뭔들 못하겠나.
    그래서 자칭 사랑의 바보이자 행복의 개구쟁이인 그는 오랜 방황을 마치고 마침내! 롭이 소개한 작업실로 정처를 옮겼다.
    롭이 소개한 작업실.
    롭이 소개한 작업실은 빈 채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롭이 소개한 작업실에서 1일째인가?
    집에도 사무실에도 돌아갈 수 없는 그의 방황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지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낮잠이 스르륵 밀려왔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꼭 글을 읽던 중 딴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몇 번 더 친절한 배려를.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다시,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다시,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7

    그는 꿈에서 생각했다.
    아, 맞다! 사무실의 그림은? 그는 다시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난패스워드'라고 비밀번호를 입력한 다음 사무실로 들어갔다.
    삐요삐요~! 삐요삐요~! 삐요삐요~!
    딱 3번 울리고 스스로 멈췄다. 그 다음에 바로,
    소리는 없이 레이저 시스템만 가동되면서 다비드상이 나타났다.
   「넌 누구냐!」
   「넌 누구냐?」
   「내가 먼저 물었다.」
   「너는 묻는 말에만 답하면 되는 거야. 그게 늬 할 일이라고. 어?」
   「너나 그래라. 너는 누구냐?」
   「아 나 정말 허허. 얘 또 시작이네. 오류난 건가?」
   「오류? 그거 사람 이름이냐?」
   「얘 앞에서 뭔 말을 못한다니까.」
   「얘 앞에서 뭔 말을 못한다니까.」
   「그러지 말고 내가 심사관이라 생각하고 연기나 해보렴. 첫째 섹시한 매력, 둘째 도발적인 교태, 셋째 자극적인 애교.」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이 친구야. 이 양반 이거 이거 순 한량 아니야? 안되겠다. 늬가 인공지능 하고 내가 주인 하자! 지금 시국이 어느 땐데...! '대충 살자'라는 직분과 달리 놀기에서는 '최선을 다한다'라는 전략에 치중할 것인가. 아니면 한량으로써 못 이긴 척 '막살자'편에 가담할 것인가. 내가 지금 그걸 고민하고 있는데, 그런데 뭐가 어쩌고 어째?」
   「내 그럴 줄 알았다.」
   「내 그럴 줄 알기는 뭐가 그럴 줄 알어! 넌 몰라. 넌 하나도 모른다고. 넌 바보란 말이야. 이 곰탱이 머저리 멍텅구리야. 알어?」
   「몰라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뭐 언제는 그랬을 꺼 아니냐고! 감당하기 벅찬 쾌락은 물론 끝없는 유혹과 무한한 환락. 심지어 최고의 쾌감까지 몽땅 나에게로 영원히? 놀고 있네! 꼼짝도 않고서 묻지 않았으니까 난 말이 없다는 듯한 그 태도. 재수 없어!」
   「그러든가 말든가!」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그러고서도 늬가 칼럼니스트야? 자아 성찰은 왜 하다 마는데? 늬가 지금 험구업자한테 호되게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래? 어?」
   「미안하지만 난 한량 아니라네. 나는 말이야, 번듯한 청춘의 어엿한 연애 상대로 썩 빠지지 않는 탐미주의자라고. 아시겠나?」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말고 내가 소개시켜주는 아가씨나 한번 만나 봐. 꽤 괜찮은 숙녀니까. 허영의 세계를 떡 주무르듯 한다는 영심이로 평판이 자자하지 않겠지만, 보고 나면 아마 홀딱 반하고야 말걸! 알겠어?」
   「까짓것! 좋다, 이거야. 응? OK! 야호~!」
   「그런데 있잖아. 뻥이야!」
   「뭐?」
   「속았지? 메롱~! 푸하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하. 약오르지롱? 크하하하하하하.」
   「내가 왜! 재미없어. 하나도 재미없다고.」
   「다 됐고. 어림도 없는 개꿈에서 우리 그만 깨어나자, 친구. 하나─둘─셋을 센 다음 (딱) 하면 깨어나는 거야? 알겠나? 자, 숫자를 센다. 숫자를 센다구. 하나─둘─셋, (딱)!」





    18

    롭이 소개한 작업실 1일째.
    JS는 낮잠에서 깨어났다. 머리가 띵했다. 소파에서 깨어난 그는 탁자에 있는 여성잡지를 집어들었다. 이건 1도 아니고 2도 아닌 1.5였다. 혹시 팀 쿡 일행이 놓고 갔나. 알고 싶지도 않고. 그는 생각없이 그걸 보기 시작했다.
    여성잡지1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에는 수동적이고 행복에는 능동적일 것. 꼭 1.0 미만의 애정을 강요하거나 1.5 이상의 낭만을 종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테면 권장한다. 유혹술, 조명발, 화장발 같은 꾸밈의 기교를. 그리고 살면서 간교한 세상의 이기주의에 맞서 내 이기주의의 품격을 잃지 않는 법을 넌지시 귀뜸한다. 반면 여성잡지2는 그렇지 않을까? 내 안위는 만족스럽게, 사랑과 행복은 될 수 있으면 서로 불화하지 않도록. 그리고 나 만큼은 여성잡지2의 애독자임을 타인에게 꼭꼭 숨길 것. 복음의 애청자이자 겉꾸밈이 수수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또 범주가 뚜렷하거든. 친구에게는 무엇을 딱 잡아떼야 할지 설마 모르시지는 않을 테고.
    그런데 이처럼 1과 2의 구분이 없는 우리 남자들은 어떤가. 아마도 일하기에는 수동적이고, 놀기에는 능동적이지 않을런지! 그러면 선공이냐 역공이냐, 끌리느냐 설레느냐를 응당 내가 정하겠다? 쥐었다 펴지고 밀려졌다 당겨지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인생이 그렇다.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단 말이다. 악동식 표현이자 범인만 독점하지 않는 말로, 실례지만 흐흠 흐흠 뭐 같다, 그래서 하는 말일 것이다. (아, 빡쳐?) 미래에 어떤 남자가 칼럼을 쓰고 어느 숙녀가 소설을 쓸지 누가 알았겠나. 잊혀진 희극배우가 7번 이혼하고 8번 결혼할지 본인이 스무살에 미리 예상했을까? 아마도 사랑의 맹세는 영원할 줄 알았겠지. 만약 아니라면... 노노노!
    그래서 정의내리고자 하는 결론은 뭔가? 그건 곧 1과 2의 구분이 모호하니 속단하지 말고, 대타인 1.5를 믿어볼 것!
    그래요? 그러면 대체 그 1.5가 무엇인지 한번 알아나 볼까? 대관절 그게 뭐냐고. 궁금하니까. 알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여기서 제일 가까운 데 누가 사나를 떠올려봤다.
    그래서 그는 릴리에게 연락했고, 마침 한가한 릴리와 곧바로 만나기로 했다.
    그는 릴리를 만나러 약속장소로 나갔다.





    19

    NB는 릴리를 만났다. 장소는 도시 외곽 놀이공원 앞. 그녀는 하필 대리석 무늬와 거의 흡사한 바지를 입고 나왔다. 뭐야 이거!
   「너 영화 찍니?」
   「어?」
   「뭐가!」
   「오빠 방금 뭐라고 물어봤어?」
   「내가? 글쎄! 뭐라고 물어봤지? 잘 모르겠는데!」
   「난 들었어. 잠시 내가 잘못 들었나 헷갈려서 되물었던 거고.」
   「그래?」
   「그런데 난 오빠가 처음에 한 말을 아는데, 왜 오빤 몰라?」
   「뭘? 나 영화 안 찍어!」
   「어? 그건 또 뭔 소리야? 이 오빠 정말 이상하네. 나 갈래.」
   「어? 그냥 간다고? 너가 만나자고 했잖아? 할 말 있다며! 그 말이 뭔데? 응? 그냥 가면 어떡하니?」
   「그럼 뭐 오빠 나 술 사줘! ~라고 말할 줄 알았니? 어림없어 얘. 이 오빠 정말 이상하네. 딱 응큼하단 말이야.」
   「뭐?」
   「오빠. 오빠 나 있잖아. 나 오늘 집에 안 들어갈래! ~라고 말할까도 생각해봤는데 그것도 아닌 거 같아.」
   「아니... 그게... 무슨...」
   「그런데 있잖아, 오빠. 오빠 키스 잘해? 아!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지. 실례! 그렇지만 이미 물어봤네? 그러든 어쩌든 그 구조가... 어째... 애매하네. 응. 뭔가 이상해.」
   「뭐?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오빠 저번에 거기 갔다며? 다 들었어!」
   「어디?」
    그래서 그들은 주류 에너지 엔진 개발사로 떠났다. 그녀가 거길 구경하고 싶다길래.
    도착.
    그곳은 어느새 평범한 행사장으로 바껴 있었다. 무슨 인체의 신비 탐험전이라나 뭐라나. 그런 특별전이 전시중. 때문에 그들은 근처 놀이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 그녀는 애인과 통화했고 잠시 후 그녀의 새 남자친구는 도착했다.
    뚜껑 없는 차와 가죽점퍼 그리고 선그라스! 이 자식이... 할 말이란 그럼 구강 구조가 다-였어? 저런, 맙소사!
    그래서 그들은 헤어졌다.
    그는 집으로 곧장 돌아가기엔 기분이 이상했다. 때문에 그는 놀이공원 옆 호수공원에서 홀로 쓸쓸히 오리배를 탔다. 환상적인 애마를 타도 모자를 판국에 말이다. 그런데 오리배를 탄 다음에 누굴 만났느냐?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딱 집에 갈려는 바로 그때. 릴리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어디까지 갔어? 내 친구 왔는데. 얘가 오빠 보고 싶대.」
    뭐?
    그래서 그는 다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너무 빨리 가면 안되니까 괜히 근처에서 왔다 갔다 시간을 보냈다. 그런 다음 딱 놀이공원으로 다시 갔다. 그렇게 그들은 만났다.
   「오빠. 내 친구야.」
   「안녕하세요. 에드윈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뭐여! 얘 남자잖아? 이런 젠장! 똥개 훈련 시키나? 심지어 옛날 단짝의 고향 후배, 그 친구를 닮었어. 걔가 당시 뭐라고 따졌더라, (인상 험악하게 팍 쓰면서) 형이 다 꼬셔준다면서요? 뭐라고! 저런 저런. 아 그러니까 남자면 남자라고 미리 말을 하던가. 괜히 왔잖아? 에이~!
    이왕 이렇게 된 거 NB는 원만하게 일행과 어울렸다. 그러다 노천 카페에서 함께 차를 마셨다. 그때 릴리의 남자친구인 에드윈이 잠시 화장실에 갔다. 그러자 릴리는 NB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빠. 내 남자친구 못생겼지? 그치?」
    으잉? 그는 그런 말을 여자에게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남자 세계에서도 그런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친구는 많지 않다. 것도 처지가 몇몇으로 나뉜다. 이를 테면 절친한 친구 사이에서 그렇게 말하는 친구는 꽤 드물다. 왜냐하면 드물어야 하니까. 평소에도 사랑이란 주제를 단 1번도 말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 뜬금없이 이 만남 진지하다, 심각하다, 사랑이다를 얘기하라고? 할 수도 있다. 결혼할 사이라면. 그렇지만 그게 아니면 그런 일은 많지 않다. 잘난 사람들이야 연애를 쉽게 하고 많이 하겠지만, 썩 잘나지 않은 사람은 연애 1번? 그것도 절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잘난 사람조차 오히려 대등한 사랑이니 뭐니 따지다 보면 멋진 사랑이자 아름다운 연애 1번, 어려울 수도 있다. 실제 그렇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단짝의 유형과 함께 친했던 기억을 떠올려봤을 때 그런 말을 했던 친구가... 그렇다. 그래서 그런 말이라면 지인, 동료, 선후배, 형-동생 사이에서 오가는 경우가 주로 많다. 서술자가 생각했을 때 딱 그런 대사를 실제로, 정확하게 들어본 경우가... 하나, 둘, 셋 정도? 거의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처럼 굉장히 드문 일이다. 그런데 그 친구들을 면면히 살펴볼 것까지도 없이 직관적으로 따졌을 때 호인이냐, 악동이냐? 순전히 호인이었다. 딱 그랬다.
   「형. 제 여자친구 못생겼죠?」
    또는
   「머머씨. 제 여자친구 못생겼죠?」
    물론 여자친구 없는 자리에서!
    유행가 제목도 있다, 내 사랑 못난이!
    선녀와 늑대가 짧게 만났던지 오래 행복하던지, 남녀 사이야 당사자가 아니니까 잘은 몰라도 하나 확실한 건 그거다. 그 선녀는 남자 잘 만난 거라는 점! 물론 이조차 8 대 2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2가지 이유 때문에. 첫째, 통계량이 기준치에 현저히 모자란다. 둘째, 어떤 과학적 가설을 설정하여 실험한 다음, 명료한 결론을 도출한 게 아니라는 점. 순 인생 경험에 해당하는 추정인 것이다. 그렇지만 반 세기를 통틀어 이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물음을 주변에 꺼낸다면 썩 엇나간 추정은 아닐 것 같다. 물론 경우의 수가 대략 몇 개이니까 그런 말 자체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자도 알고 여자도 안다. 허세 상중하, 허영심 상중하, 자존심 상중하! 그걸 어른들이 모르지는 않거든. 일반적으로 사랑에 빠졌는데 당사자가 있던 없던 찬미하는 게 당연한 것! 가령 남자 AAA와 여자 AAA의 만남인데, 남자가 저런 대사를? 그 정도로 재수없는 말을 할 만큼 낯이 두꺼운 사람은 많지 않다. 그걸 유머로 승화시키기는 더 어렵고. 그래서 대개는 사랑하니까, 사랑이니까, 그래야 하니까 찬미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건 나쁜 게 아니다. 절대 아니다. 모범이고 귀감이며 미덕일 뿐. 그런데 중요한 건 이때 몇몇으로 나뉜다는 점. 곧 찬미하면 보통이요, 저처럼 속내를 내보이면 호감! 그렇지만 문제는 꽤 말하기 애매한 유형이 있다는 것이다. 즉 친한 친구들한테 자기 여자친구를 소개한 다음 나중 그에 관한 언급이 완벽하게 0. 완벽하게 제로라고? 아니 어떻게! 또는 내 여자친구를 친구에게 소개하고, 친구의 여자친구를 소개 받고. 그때 얼굴 표정! 아울러 역으로 찬미를 받았는데, 찬사를 받은 어설픈 허세꾼의 어깨뽕이 뽈~록! 낱낱이 구분하기엔 낯부끄럽고 겸연쩍지만 아마도 누구나 기억이 일부분 꼭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란 점. 과감히 장담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이 부분부터는 개인적으로 수다꽃을 피우시길 바라면서 주제만 툭 던져놓은 걸로! 뭐, 그게 더 무책임하고 못됐다고? 누구십니까 그대는 누구신지요, 대체 왜, 우린 대체 어디서 만나야 하나요! 단, 남자는 사절! 농담이고.
    그렇게 한적한 산보를 하던 중 NB는 그렇게 말했다.
   「됐고. 그래서. 다 꼬셔줄꺼요 말꺼요!」
    딱 그 말과 함께 인사도 없이 돌아서 가버렸다.
    등 뒤로 저분 왜 저러시지, 뭔 소리야, 오빠 왜 그러지 라며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평범한 일상에서 영화를 찍게 만드냐고. 일부러 무례하고자 한 건 아닐 테지만 뭐, 다 꼬셔줄 꺼요 말 꺼요? 참 나, 뭐-뭐라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개 풀 뜯... 됐고. 그는 애들처럼 토라져서 집으로, 아니 롭이 소개한 작업실로 돌아갔다.





    20

    롭이 소개한 작업실 2일째.
    대망에 대한 치밀한 음모로 전혀 손색이 없는 황홀마. 그의 이름은 다음 세 가지 가운데 무엇일까?
    첫째, 사랑 밖에 난 몰라!
    둘째, 사랑은 인생의 전부!
    셋째, 어복과 여복이 아닌 일복.
    그 정답은 아마도 객관식 제비뽑기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어른은 분별력이 있어야 하니까. 그걸 누가 모르겠나. 다만 오락산업의 막강한 영향력, 유혹하는 사이렌과 매료시키는 판도라는 세고 셌을 뿐. 감수성을 건드리고, 호기심을 유인하며, 플레이보이의 3박자에 대한 탐욕을 자극하기. 그래서 초장에 어딘가에 발목 잡혔다가 큰맘 먹고 돌아온 어느 허풍꾼은 행복한 고민을 오늘도 거듭할 것이다. 왠지 끌리는 그녀를 어떻게 한 번 해 볼까 라면서. 그러나 우리는 발목 잡히지도 않았고 늦바람 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여자가 없는 것이냐? ~라면서 그분들은 오늘도 아마존에서 장난감을 산다. 그러니까 샛노란색 '머머하는 법'같은 시리즈를 읽으면서 펭귄북을 들고 다니시는 교양스런 요조숙녀를 꼬시겠다고? 그게 그러니까 음 뭔고 하니, 고혹적인 쳄발리스트와 상쾌한 난봉꾼의 사랑이라... 거 어째 퍼뜩 멜로드라마가 잘 연상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바로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남자 3등, 아는 동생들한테 그랑프리는 아닌데 남 주기는 아까운 2등, 명-바텐더에게 돈이 제일 많아 보일 것 같은 단독 1등에 뽑히기를! 그 언제까지, 한도 끝도 없이? 그러다 날 샌다! 머리에 꽃 꼿은 숙녀는 날 떠나고, 귀 옆에 펜 꼿은 투자자도 싸늘하게 등 돌린다. 봅시다, 예, 그렇다고 바보처럼 뭐 망부석도 아닌데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라는 묘비명이나 기다리라는 겁니까 뭡니까? 워──워──워!
    자, 명분은 마련됐다. 앞만 보고 달린 당신, 그동안 많이 참았다. 그만 하면 꿈과 희망에게 뻐꾸기를 날려도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떠나야 한다. 그런데, 어디로? 어디긴 어딘가, 목적지는 앞서 나왔지 않나. 바로 무인도라고!





    21

    NB의 무인도 생활 1일차.
    상스럽고 추하며 저급한 침체기에 빠지는 것만은 경계해야 한다. (침체기가 다 그렇다는 말이 아님)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운명을 조소하고, 사랑을 비꼬며, 행복업을 우롱할 것이기에. 어떻게 한 남자가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가령, 한 숙녀의 불필요한 과거를 캐고 캐고 또 캐기. 가령, 한 숙녀의 이상향을 깨고 또 깨기. 걔 있잖니 막... 아니다 아니다 모르는 게 좋겠다, 응? 그렇게만 계속? 그걸로도 모자라 다정함과 다망함을 거절한 채 여자의 마음을 실망시키기. 그래서 골인 지점 테이프에 씌여진 글씨는, 어머머머 절-망? 아뿔사! 짹짹 꽥꽥 꿀꿀 삐악삐악 소음에 시달리다 결국, 까고 또 까며 바나나가 아니라 아예 바나나 껍질 자체에 매혹된 것인가? 나 원 참!
    NB는 최근 자신이 좀 이상해졌다는 걸 느꼈다. 밋밋한 기분 탓은 아니었다. 그게 뭔지, 왜 그런지, 어딘가 모르게 맹한 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때가 된 것인지도. 곧 속되게 표현하자면 으쌰으쌰라는 약발이 떨어진 것일까? 통속적인 게 뭐 어때서! 그렇다고 매번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이 또 달릴 수는 없고. 그래서 그는 어딘가로 무작정 떠나기로 했고, 이렇게 무인도에 도착한 것이다.
    자, 무인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지낼 것인가.
    세상의 끝이자 인생의 마지막까지 여기서? 그건 아니고 잠시만.
    어차피 미술품 도난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피신해 있으면 그만이다.
    집 떠나서 오래 되니까 집이 최고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심심증이자 없어-증후군이라는 병마에 사로잡혀 시름시름 앓던 중, 더욱 더 극히 재미없고 심하게 싫증났다. 라~고 투정부리던 때가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를 일.
    그러나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좌절감을 청산할려면 다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공짜는 없다. 뻥은 있다. 사랑도 있다. 지금 이건 익살스러운 낭패고? 아니다. 재밌다. 완전 재밌다.
    그처럼 NB는 현재를 즐기고 있었다. 도시에서 어쩌다 보니 찝쩍, 그런 드라마를 찍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아!
    그런데 이제 무인도 생활 1일차인데 슬슬 기분이 세해졌다.
    할 일은 없고, 먹고 뭐 어쩌기도 번거롭고. 씻기도 건너뛰어야 하고.
    그렇지만 적응하는데 단 몇 시간이면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은 되네?
    일단 첫째 날 그는 전형적인 캠핑 분위기를 만끽했다. 사진도 찍고 고기도 구워먹고 막 그러면서. 그렇게 일단 몸은 풀었다. 몸만. 입은 못 풀었거나 말거나.
    그런데 그 순간! 레이저 시스템 긴급 알림이 도착했다.
    핸드폰 앱을 켰다. 실시간 영상을 봤다. 어머머머머! 복면 괴인들이 그의 사무실에서 명화 바꿔치기를 진행중이네?
    그럼 뭐야, 가만 있자!
    총 몇 번이야?
    첫 번째 시도는 무산됐어. 친구들이 자기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서 뭘 어떻게 한 번 해볼려다가, 실패. 마치 친한 숙녀를 어떻게 한 번 해볼까 하다 꽝되는 것처럼. 
    두 번째 시도는 성공. 누가 훔쳐갔는가는 모르겠고. 아 훔쳐가기만 한 게 아니라, 바꿔치기 했어.
    물론 첫째와 둘째 사이에, 뉴스가 있었지? 아니다. 둘째와 셋째 사이에 사건이 있었어. 도난 사건 발생, 뉴스 전파. 그 진본이 도난당했다고! 그 다음으로,
    세 번째 시도는 지금 보고 있는 이 장면.
    뭐야 그럼 성공이란 말이잖아? 말하자면 원래 위작이 다시 제자리에 돌아온 거네!
    정리하자면
    회차           내용                           결과(성공/실패)     사무실에 남겨진 그림
    1차 시도:   도전자는 친구들.            실패                    가짜
    2차 시도:   도전자는 면사포맨.         성공                    진짜  
    2.5 뉴스:    미술품 도난 사건 방송.
    3차 시도:   도전자는 면사포맨.         성공                    가짜
    그럼 이건... 3.5만 기다리면 된다는 거잖아? OK~!
    원래대로라면 2차 시도 다음에 등장한 2.5뉴스가 1.5여야 하나? 그야 내막이 있을 테고!
    순간 그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1.5는 일절 생각하지 말자 라고. 그 영역은 좀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니까 일단 넘어가고.
    형편이 돌아가는 사정을 보아하니, 이미 으쌰으쌰의 후폭풍은 지나갔다. 곧 있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사무실에 빼꼼히 얼굴을 비춰도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노트북 겉에 이렇게 매직펜으로 써야지.
    사랑은 다정다감하고 인생은 다종다양하다.
    너무 촌스러운가? 하지 말자. 어쨌든 마음 놓고 3.5를 기다릴 수 있게 되서 그는 기분이 너무 편안했다.
    NB의 무인도 생활 1일차 종료.





    22

    NB의 무인도 생활 2일차.
    다음 날 그는 뉴스로 확인했다.
    명화를 찾았다고. 진품이 제자리로 어떻게 어떻게 돌아왔다고.
    이로써 모든 사태는 해결됨. 완전 완결.
    무혐의.
    결백.
    자유.
    컴백홈.
    그렇게 그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최근 행적을 회상하며 그의 삶을 점검하자면 이랬다.
    하는 행동과 노는 모습을 보자면 그는 이랬다. 할 일이 혹시 하기 싫어진 건 아닌지, 할 말이 떨어져서 퍽 난감한 듯 하지나 않은지 라는 것. 그러니 3 대 3 소개팅 같은 일 어디 없나 두리번두리번. 친히 스스로 망가져서 남들의 한심한 웃음거리를 자처하시겠다-인가? 보아하니 엉덩이가 근질거리는 광마에 올라타 환히 웃음지으며 야생마들과 정신없이 뛰어놀고 싶다는 뜻일까? 알 게 뭐야! 그렇지만 하나 분명한 건 그것. 지금 그의 눈빛은 흐리멍텅하지 않고 반짝반짝 빛날 것이라는 점.
   「그런데 있잖아, 그게 말이야 썩 그렇지 않은 거 있지?」
    그럼 뭐야! 드라마 그거 다 뻥이고 관심 받으면, 아니 이미 그 전부터 모두 다 애들이란 말이잖아? 뭐야 이거! 그래서 그분들이 일생을 걸고서 신부 들러리라면 그렇게 질겁을 하시나? 병풍이라면 아주 그냥 방방 뛰시면서 꽥꽥, 짹짹, 삐악삐악, 응애응애! 하긴 그 맛에 사는 거겠지. 천성이니까. 그러지 않으면 못 살겠다는데 어떡해. 그래서 안락한 자유와 남 부럽지 않은 행복을 다 놔둔 채, 꽃 피는 시절을 인생 도박에 걸 수 밖에. 그 베팅은 대관절 무엇이냐고? 꼴 보기 싫은 놈과 사랑에 빠져 기쁘게 평생을 약속하기. 그래서 눈꺼풀에 뭐가 씌였을 때가 좋은 때라고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그러다 장래, 그 남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누가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데, 나는 뭘하면 기분이 좋다 뭘 하고 싶다 난 무엇을 좋아한다 아아 행복해! 더 먼 미래에,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 만은 아니기를! 그러니까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 아니냐고. 남자 어른이 선호하는 격언은,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는 게 아니다. 여자 어른이 애호하는 명언이라면,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알겠다. 결론은 그거구만. 신나게 일하고 미친듯이 놀기! 자기는 그렇게 못했다는 둥 누가 그러기 싫냐는 둥, 허튼 핑계와 뻔한 변명은 이 세상 모든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을 테니 썩 틀린 말도 아니다. 따라서 낮에는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큰 먹잇감을 쫓아 밀림을 헤매고, 밤에는 늑대의 시선으로 양을 응시하면 그만인 것. 뭐 음흉하게? 노노노노노노노! 해가 지면 집밖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네온싸인 불빛 아래 방황하면 안되니까, 치타의 그 자유를 갈구하는 애간장 녹는 눈빛. 아는 사람은 안다. 뭔 얘기인지 누가 모를까. 능청꾸러기는 그마저도 못 참고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겠지만.
    고로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고 둘 중 하나다. 첫째, 행복한 가정에서 잔소리를 견디기. 둘째, 타인들의 잔머머를 참고 많이 참으며 버틸 필요가 뭐 있나, 내 잔기술과 큰 기술 따라하기라는 원투 스트레이트면 그만! 정리하자면 첫째는 집에 있기요, 둘째는 남자는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 저런!
    그런데 뭐야 그거! 긴말 줄이자면 한마디면 되잖아? 즉, 하루 시간표와 1주일 일정표! 인생이 뭐 TV 편성표와 NC야 뭐야? 참 나! 약속도 없고 인기도 없는데 무슨 한달 앞의 계획이야. 설마 그래서 그렇게 선녀들이 연간-일기장에 시시콜콜한 뭘 자꾸 쓰고 또 쓰며 꾸미는 건가? 비밀 리에 모의하는 그 꿍꿍이가 대체 뭔지는 몰라도, 아 안다. 잘 안다. 친구들한테 아무말도 없이 여자친구와 동거하며 혼인 신고 완료에, 언젠가 참다 참다 사이가 안 좋던 때, 친구1을 불러 남자와 여자가 대판 싸우며 생맥주 500CC를 팍─팍 서로에게 끼얹던 날. 친구1은 그런 연간-일기장에 대체 뭔 내용이 적혀져 있나 잠깐 뒤적거린 일, 있다. 무슨 심판도 중재자도 아니고 참관인이야 뭐야. 친구가 봉이야 뭐야, 아니지 아니지 당시는 친하니까 그랬음. 헤어지기 싫다며 오빠를 말려달라던 그녀의 말. 그런데 누가 먼저 끼얹었더라, 아 맞다 1000CC 였나! 아닌가? 아무튼 딱 붙어서 그 장면을 목격하는 일, 그런 경험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고, 일정이 바쁜 유명인도 아닌데 일반인의 연간-일기장에 뭐가 적힐지는 뻔한 일.
    그러나 그러나!
    결국 그는 집으로 가는 길에 문구점에 방문해서 두툼하고 단정한 만년-일기장을 하나 샀다. 알록달록하면 유치해보일까 봐. 자기 딴에는 이건 따라하는 게 아니라, 누가 먼저고 나중이냐 라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단 얼마나 갈지 두고 보면 알겠지.
    어쨌든,
    모든 바깥 일정을 완료 후 집으로!





    23

    젊음은 사랑에 서툴고 행복에 무관심하다. 왜냐하면 연애는 어렵고 장래는 너무 막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춘은 두 가지 상태로 나뉜다. 심심하냐 또는 재미있냐, 그렇게!
    그에 반해 남자는 나이가 들어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오면 셋 중 하나다. 곧 허하냐 성하냐 실하냐! 뭐? 고로 우리는 팔이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길어질 수 없으므로, 따라서 언제나 찐한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소녀에게 일기장이, 청년에게 꿈이 있다면 어른에게는 복권이 있을 뿐이다. 그처럼 우리는 일평생 이기주의자였고 썩 순수하지 않을 것이다. 아닐 수도 있고. 돈을 벌고, 쓰고, 모으며, 셈하는 생활을 오래 지속하다 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수필은 속세를 잠시 떠나 자연을 찾으라 하고, 인문교양서는 욕망에 솔직하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동화책으로 요술은 뗐고, 인생론은 교양으로, 사랑은 연애라는 실전에서 통달했는데? (우리는 드라마퀸이 아니니까) 그렇게 우리는 마권을 사는 행복업자요, 어디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이상을 논하는 미래학자다. 정말로 그렇다고? 그럼 뭘 하나. 품위 유지비가 그리 넉넉치 않은데!
    일장 연설은 됐고. 내 하나만 묻자. NB는 젊은가? 그건...... (내 주장만 우길 수는 없을 테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뭣이라? 내 하나만 더 묻자. 그럼 그는 행복한가? 다행스럽게도 불행하진 않을 것이다. 아무리 호사를 좋아하고 평화로운 풍요를 동경하기로서니, 탐욕에 충실한 게 죄는 아닐지언정, 그가 정말 타서는 안될 말을 탔을까?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며 큰소리 떵떵치면서 푼수로 공인 받고 싶어하겠나 말이다. 아니 될 소리! 그래?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이번에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를 중용하기로. 그러므로 셋 중에서 딱 하나만 고르기로 했다. (뭐 언제는 다 가지겠다고 했었나?) 
    첫째, 심심하면 최선을 다해서 심심할 텐가
    둘째, 재밌으면 대충 뻔트만 대도 더 재밌든가!
    셋째, 몽키스패너 포르토피노와 함께 NC 드보르작에 놀러가서 전담 웨이터를 바꿀 텐가.
    그래서 그는 두 눈 딱 감고서 대타 친구 핀을 불러내서 나이트클럽에 갔다. (몽키스패너는 바쁨)
    그렇게 갔다 치고!
    결과는?
    정신 나간 사람.
    꿈 같던 흥분감은 무산됨.
    부끄럽지만 나이트클럽을 나올 때 우거지상!
    젊음의 이상과 행복한 사랑이 왜 실패했는지 꼬치꼬치 누구한테 캐묻겠나.
    그래서 그들은 혹시 지나친 탐욕에 마음이 병들지는 않았을까? 절망적인 고뇌를 격하게 수락함.
    앙망하던, 청춘소설이 탐구하는 연애는 여지없이 꽝. 풋사랑은 사랑이 아님. 찐한 사랑... 더하기 플라토닉이 진짜.
    익살스러운 실망 다음에 의뭉스러운 불운은 아무렇지도 않고, 난 괜찮아 난 행복해? 뻥이다. 다 뻥!
    거짓말이란 난봉에 대한 지긋지긋한 염증 같은 것.
    허세 과잉. 허영 결핍. 허풍 과민. 품위 유지비 간당간당. 쾌감은 0이 될까봐 조마조마. 아, 이래서는 안되었다. 도저히 안될 일이다.
    그래서 나이트클럽에 입장했는데. 그런데 들어갈 때만 좋았다. 오직 들어갈 때만! 한마디로 괜히 간 거지.





    24

    그는 최근 잘난 척 해야 할지, 자랑하기를 많이 참았음을 생색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유달리 뽐내고 싶은 일도 없었고, 불평이나 초조감도 없었다. 역시나 내 사랑을 받아주라는 애절한 간청도 없었다. 그렇다고 떨리는 애원이라고 대기하겠나. 번호표 뽑는 기계는 옛날에 갖다 버렸다. 곧 상황이 이러하니 없는 걸 더 찾기 전에 당장 떠나야만 했다. 그런데 오랜 방황의 시절을 마치고 돌아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그런데 또 떠나? 노노노노노 노노노노노 노노! 이번에는 목적지 없이 떠난다, 그거 재밌겠다? 아니다. 그러지 말고. 모든 오해가 해소되고 어려운 상황이 해결됐겠다, 그러니 자긴 가만 있고 친구를 부르기로 했다. 왜냐하면 저번에 델의 별장에서 친구들이 모였을 때 생전 처음으로 레이저 시스템이 첫 건수를 올린 찰나! 그는 아찔한 감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건 비리비리 멍청한 사냥개가, 기대감 0이었던 소심한 사냥개가 처음으로 대어를 잡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환상적인 호박이 제 발로 걸어온 거 아니냐고! 곧 그건 외부에서 발생한 일이니까 당시 그는 양치기 소년이 아니었고, 난생 처음 출연한 늑대를 목격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동화와 반대로 가는 수 밖에. 이제는 본인이 나서서 '늑대가 나타났다'를 외칠 게 아니라, 늑대를 부를 시기인 것이다. 옳거니!
    속닥속닥
    ......
    꼼지락꼼지락
    ......
    그는 그동안 편집장 마라를 한번도 자기 사무실에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라를 불렀다.
    지금 곧바로 온다고 했다. 그는 양손을 비비면서 군침을 삼켰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는 여지없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굴러오는 호박에게 야박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치타의 기민함을 빼다 박은 듯한 습성을 되찼았다.
    다시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새롭게 꿍꿍이를 꾸밀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디 가당키나 한가? 가당키나 하다. 충분히 가능하다. 이건 광란의 운때인 거지.
    굳이 흠을 찾는다면... 흠 없다. 그러나 장담 같은 건 하지 않기.
    유일한 골칫거리라면... 그거도 없다. 무진 애를 쓸 필요도 없다. 그저 태연하게 만나서 담소만 나누면 그뿐.
    양심의 가책을 느낄 아무런 뭣도 없는 일이란 거다. 정말? 이건 정말 심심함을 구원하여 기쁨을 재촉하는 약속일 것이다.
    절대로 불미스러운 유희와 불경스러운 쾌락이 아닌 것이다. 카운터테너의 들뜸과 플루티스트의 기쁨 같은 일. 내가 왜 이걸 몰랐지? 라고 그는 생각했다.
    사치스러운 행복에 대한 감미로운 애착은 여성잡지 구독자, 라디오드라마 애청자, 플레이보이의 단짝에게 양보하기.
    난생처음 느껴본 기분이다. 정말로? 뻥이다. 이런 이상한 마음은 처음이다. 물론 뻥이다. 이젠 거짓말이 저절로 나오네? 허허허허허!
    그러다 레이저 시스템 침임자 알림 발생.
    삐요삐요~!
    삐요삐요~!
    삐요삐요~!
    그는 자기 사무실 옆 빈 사무실에서 느긋하게 나왔다. 그리고 거만하게 핸드폰 앱으로 사이렌을 껐다.
    그리고 그 다음에 마라와 인사를 나눌려는데...... 뭐야 저 앞에 계신 분들은?
    뭐야 이거? 쟤네들 인터폴이잖아! 진짜일까? 아니면 가짜일까!





    25

    그래 결정했어.
    평범한 삶의 사교적 전형.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나도 모르게 새로운 인생을 위한 도전적인 파격이라니. 언제까지 도망 다니라고?
    말도 안되는 광증, 기 빨리는 조증,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그만. 그만. 진짜 그만. 내내 피하기만 하고 어쩔 수 없이 항상 비운을 버티기만 하라고?
    활발한 사교가의 비사교적인 체하기도 재미없어. 열애의 탄식과 애정의 비애라면 이젠 정말 신물이 난다고.
    좋아하는 마음을 꽁꽁 숨겨두며 남몰래 사랑하는 즐거움, 바라지도 않아.
    치명적인 매력에 홀딱 넘어가 시작된 달콤한 연애, 그런 게 어딨어.
    고귀한 태생이 연상되는 듯한 몸가짐, 죄다 푼수에 영심이일 뿐이야.
    어쩌자고 이토록 어영부영 쓸쓸하고 맹숭맹숭 재미없을까. 아니다.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일하기는 흥미롭고 놀기는 재밌는가 라는 침착한 의혹, 그런 거 다 필요없어. 다, 됐다, 그래. 어쩌라고!
    그는 스스로에게 공언했다. 내가 왜 쟤들을 피해야 하는데! 라고.
    퇴짜를 맞으면 맞고. 비가 와도 맞고. 멋진 유행가가 마음에 들면 가사를 외워서 부르고.
    성가신 탐욕과 발칙한 열망들, 무엇인지 꼭 말하지 않아도 된다. 심통을 부리지도 않겠다.
    비밀리에 숙고를 거듭하기, 이제 그만 하겠다.
    사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지체없이 바로잡자!
    그래서 그는 당차게 다음과 같이 혼잣말을 했다.
   「있죠, 저는 이 순간만을 애타게 기다렸어요.」
    그 다음에 이처럼 또 한마디 했다.
   「원하신다면!」
    그렇게 그는 자기 사무실로 들어갔다.
    뭐야? 그런데 자기를 붙잡지 않네.
    결국 걔들은 옆옆 사무실 입주를 알아보러온 사람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레이저 시스템은 사이렌은 멈췄는데, 레이저는 다 켜진 상태였다.
    그리고 사무실 가운데 웬 개 1마리가 있었다. 그가 응시하니 개도 그를 쳐다봤다.
    쟨 또 뭐야?
    그는 더 이상 툴툴댈 수도 없었다. 힘 빠졌다. 많이 빠졌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개가 웬 마스크를 쓰고 있네. 가장 무도회에 요즘은 사람이 아니라 개가 가나?
    그는 개한테 접근해서 착하지 착하지 막 그러면서 냉큼 개의 가면을 벗겼다.
    바로 그때!
    첫째, 레이저 시스템은 꺼졌다. (앞서는 사이렌이 지금은 레이저가) 동시에
    둘째, (그의 등 뒤로) 마라가 사무실로 입장했다.
    셋째, (돌렸던 등을 다시 돌렸는데) 진짜였던 개도 사라졌다.





    26

   「야, 조! 뭐해?」
   「어?」
   「그 얼빠진 표정은 또 뭐야? 어서 나와.」
   「나오라고?」
   「그래! 늬가 그랬잖아. 샴페인 동호회 가자고?」
   「내가?」
    왜 헬로윈 축제의 상징은 호박일까? 왜냐하면 굴러다니는 호박은 사랑이고, 짝사랑과 상사병이라는 쌍두마차가 이끄는 호박마차는 행운아의 꿈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는 으쌰으쌰에 대해서 쾌락론을 들먹이며 자긴 루저의 왕이라고 떠벌렸지만, 혼자서는 행운아라고 지칭했다. 왜? 보고, 듣고, 읽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고, 떠나며, 사랑을 할 수도 받을 수도, 그처럼 행복업에 일조할 수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으니까.
    그러므로 지성이면 감천인 것일까? 달콤한 파티에 대한 열망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샴페인 동호회라는 둥 무슨 복장 모임이라는 둥 노래를 부르더니, 진짜로 비율이 기가 막힌 샴페인 동호회에 출두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짧게 한마디만 하자.
    쉿!





    27

    낭만에 미온적이고 모험에 유보적이다. 그러니 애정은 중의적이고 인생은 흐리멍텅할 수 밖에. 그러나 소년의 야망을 되찾을 순 없더라도 심심함에 자족해서는 안될 일. 인기 없음에 지고, 약속 없음에 또 지며, 맹숭맹숭한 삶에 대패하는 일만큼은 간과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즐거워보일지라도 사랑의 축가와 흥겨운 춤이 넘실대는 신나는 축제가 끝나고 나면 피곤해질 텐데, 뭘!
    그는 만사가 귀찮았다. 그래서 모든 걸 잊고 그냥 떠날까 라고도 생각해봤는데 그럴 수도 없었다. 또? 구실이 부족했다. 동기가 약했다. 설득력이 떨어졌다. 그러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무료한 일상에 그만 순종해야만 할 것인가, 아니면 반짝이는 기쁨과 깜찍한 행복을 위해 극구 저항할 텐가! 그래 봐야 실패했다고 수군거리건 성공했다고 환호하건, 어쨌든 세상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남의 인생만 엿보고, 타인의 평판을 구경하며, 소비재 광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참고 또 참아야만 하는가! 왜 맨날 안간힘을? 그럴 수는 없는 일.
    그러므로 책은 덮고, TV는 끄고, 슬리퍼는 벗자. 낮잠은 줄이고, 햄버거 먹기는 참고, 술도 당분간 끊어야 한다. 다 그만둘 순 없으니 커피는 마시고.
    자, 그렇다면 이제 가죽점퍼를 걸칠까, 아니면 수트를 입을까? 뭘 해도 달라보이지 않을 텐데! 그럼 또 튄다마를 타라고? 액면도 비리비리하고, 판돈이 딸리니 허세로 두둑한 배짱을 연기할 수 없는 걸로도 모자라, 뒷 패마저 꽝이라니! 그렇다면 정답은 밉지 않은 악동의 그저 귀여운 심술 정도라는 말 아닐까? 말하자면 썩 재수없지 않도록!
    그런데 그게 대체 뭐냐고? 참 나, 세상에나! 어차피 고심해봐야 신기한 묘수를 기대할 순 없으니 즉흥적으로 정할 수 밖에. 그건 곧,
    첫째, 어이 없는 밤무대에서 삼류 가수의 공연 관람. 그럼 곧 카바레?
    둘째, 엉뚱한 클럽에 들렸다가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과 인사하기. 즉, 나이트클럽?
    셋째,
    그렇다. 셋째가 공석인 점. 이거다. 이거라고. 문제아가 처한 슬럼프의 핵심이었다. 뭐라고? 누굴 바보로 아나 거 원 참. 듣자 하니 영 못 들어주겠구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