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뒤숭숭한 세상, 갈망은 인생의 즐거움이다. 인생의 즐거움은 사랑이다. 사랑은 행복이 필수지만 변심도 빠질 수 없다. 변심은 새로움에 대한 격렬한 욕망이다. 격렬한 욕망의 대표주자는 뭐니 뭐니 해도 토요일 밤이다. 그러나 토요일 밤의 쾌락마는 무의식적으로 일요일의 권태를 겁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금요일의 뻔트마라고 일상의 타성에서 뭐 얼마나 자유롭겠나. 그래서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 에 큰 베팅을 한다? 위험 부담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즉 변덕마에 행운의 향수를 뿌린 채 올라탈까?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변덕마가 후진하면 어떡해! 무슨 그런 심약한 포부로 어찌 누드모델과 보디가드의 사랑을 응원하겠나. 됐고!
따라서 우리는 아담의 호기심과 이브의 감수성에 기인하여 색다른 이상을 추구하자. 일명 마지막 잎새 + 선악과! 그렇다고 이상한 이름의 나이트클럽에 출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건 곧 쾌적한 황금, 경탄스러운 인기, 플레이보이라는 명예, 행복한 자유, 유망한 탐구심, 자랑왕, 허풍신, 우주대마왕... 그런데, 보자 보자 하니까 목표가 너무 많다. 현혹하는 광고는 시끄럽고 오락산업은 정신없다. 듣자 듣자 하니 고전음악만 들었다가는 상큼한 아가씨와 매력적인 숙녀들과 영 말이 통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다 하다 하다 나까지 남의 다리 긁기 대회에 동참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일단 마라와 함께 샴페인 동호회로 출발했다.
샴페인 동호회! 괜히 나도 모르게 근사해진 느낌이다. 아무 이유 없이, 샴페인? 어딘가 모르게 은근한 덕망과 은밀한 로망을 벌써 성취해버린 기분이다. 또 다시 춤추는 요술구두 증후군이 도진 것일까? 세련된 분위기 다시 말해 8 대 2라는 황금 같은 비율에 가담할려고 몸부림을 치는 걸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거, 나도 안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마라가 환상문학 잡지 이번 달 특집으로 그와 관련해서 실을 내용이 꼭 필요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가 혼자 가기 싫다는데, 공짜술 먹어줄 때만 친군가? 그럴 수는 없었다. 나도 의리 하면 또 어디서 썩 빠지기는 싫었던 것이다. 바로 이렇게 부득불 이유없이 집밖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를 찾기도 전에 벌써 우리는 그곳으로 출발하고야 말았다.
2
마라와 나는 샴페인 동호회에 도착했다.
아아! 이 분위기라면 못이긴 척 졸업한 허영기과 무자비한 허당기를 타이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J. S. Bach Magnificat BWV243.
어라~? 이 얼마 만인가! 딱 어딘가에 들어섰을 때, 삐리리리 삐리리리 음악에 비율에 음, 보자. 파랑새는, 제비는, 쟨 또 뭐야? 거위는 웬일로! 한마디로 이건 그냥 그저 그런 뻔트의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상치 않은 샴페인 동호회라고 직감했던 것이다. 허허허허허. 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만사가 끝짱일 것인가, 벅찬 기쁨일 것인가. 완연히 후자였다. 동시에 전자였다. 쟤야 나야, 둘 중에 누구야! ~라고 뜬금없이 선택 받게 생겼는데, 부동의 1위 오빠라니? 바로 그런 느낌이었던 것이다.
「야. 너 이런 데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야?」
라며 어떻게 촌스럽게 마라한테 따질 수 있겠나. 이건 그저 평범한 일상이라는 듯이 나는 아무렇지 않게 어울렸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머. 이번달 특집 실기로 했던 게... 어쩌지? 연락왔네. 지금 만나자는데? 놓칠 수 없는 인터뷰거든. 내가 이거 따내느라 얼마나 공들였는데. 어떡하지! 오늘만 나 좀 봐주면 안되겠니?」
「왜 안돼! 이 비율... 때문이 아니야. 내가 어디 그런 걸로 트집 잡는 사람도 아니고. 일이 먼저지. 얘! 나도 그렇게 꽉 막힌 친구는 아니라네.」
그렇게 해서 마라는 바쁜 일이 생겨서 먼저 갔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광란에 빠져 사랑했는데 미완성의 애정이 떠나가는 심정이 어쩜 이런 것일까. 초대객들은 어느새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여긴 그냥 별로 대단치 않은 술집 분위기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니까 아마도 꽤 괜찮은 파티를 새롭게 알게 된 건 맞지만, 살짝 끝물의 파도를 탔던 것일까? 듣기로는 이렇게 알게 된 친구들은 2차-3차 그렇게 으쌰으쌰 어울리지 않는다던데. 말하자면 다 끝나는 시간에 내가 발을 디딘 셈인 듯 했다. 일단은 다음에 반드시 참석해야만 한다, 그쯤으로 성과는 만족. 그래서 나는 뭐랄까 오늘은 그냥 뻔트로써 흡족하게 옅은 미소와 함께 퇴장할려고 했다.
그런데 나갈 때 나를 제지하네?
「(멀뚱멀뚱)!」
말없이 8 대 2 가르마 보디가드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알고 보니 샴페인 동호회는 옆 가게였고, 여긴 그냥 술집이었다. 그럼 그 비율은 뭐냐, 연주회 끝나고 무슨과 동문들끼리 가볍게 파티를 즐긴 것이라고 한다.
그럼 뭐야? 나 당했자나!
보아하니 술값도 엄청 비쌌다. 괜히 왔잖아?
전문용어로 그 뭐냐, 덤탱이? 속된 말로, 눈탱이? 아아 무척 오랫만이었다. 반갑네 반가워!
또 망했다. 꼭 삼류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턱시도 입은 양반이 피로회복제를 친절하게 건네길래 마시자마자 슥 돌아설려는데, 불쑥 손을 내미는 장면과 똑같다고나 할까.
그런즉슨 내 팔짜는 딱 이랬다.
재미없어 졸렬한 평일, 약속없어 끔직한 주말.
그래서 나는 이 기분에 집으로 가기는 뭐하고 사무실로 가서 일이나 하기로 했다.
다음에 등장할 일기는 그렇게 해서 새롭게 창간한 여성잡지1.5에 기고한 칼럼이다.
아, 그건 다른 데 실어야지. 일단 나도 환상문학 잡지에 입성할려면 그럴 수 밖에 없다.
나도 이제는 먹고 살기 위해 독해졌다. 얼굴이 동그래지고 두꺼워졌다. 내 의도와 달리 조랑말은 어쩌다 뻔뻔마로, 당나귀는 밑도 끝도 없이 뻔트마로 자기들 맘대로 변신했다.
배후가 누굴까?
그런 거 없다.
고로 내 안의 그분은 적당히 본론을 꺼내라고 하는 듯 하다.
본론? 그래 볼까!
친구야 모이자. 그대여 사랑해요. 여러분, 정열은 불만족에 달콤한 행복감은 충분치 못해서 미안해요. 그러니 이제부터 요술봉의 예언으로 애정은 변치 않기를. 아울러 마술피리 때문에 환희는 언제나 새로울 것이오. 그렇지만 내(그분들) 진정 좋아하는 건 실은 거짓말이라네! 아니 글쎄 정말로 뭐든 뻥이라고? 단, 난 아니다 난 아니야!
3
어느 날 나는 지체에 어울리지 않게 치마로사의 오페라 서곡을 듣는 중이었다.
그런데, 딩~동!
밖에 나가보니 웬 박스가? 가져와서 겉면을 살폈다. 내용물도 살펴봤다.
알고보니 저번에 여성잡지 1.5를 창간한다며 의뢰가 들어와서 칼럼을 기고했는데, 그에 대한 보답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선물이 아니라 원고료와 이 박스의 내용물을 퉁친다는 안내문이 들어있었다.
VIP 초대권이 한두 장도 아니고 자그마치 20장. 뭐야 이거!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글로벌 게임 박람회. 무슨 신생 그룹 팬 사인회. 작가 사인회도 있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아마 그 일을 굉장히 무가치한 일이라며 꺼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인? 사인은 법인 대 개인간에나 하는 절차일 뿐이다. 그런데 법적 서류가 아닌 일로, 개인이 개인에게 사인을? 살면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구를 느껴본 적은 하늘에 맹세코 단 1번도 없는 것도 어떻게 보면 신기하지만, 어떤 사인을 받고 싶다는 탐욕 역시 전혀 없었다. 호감 가는 여배우랄지 좋아하는 남자 가수가 근처에 있어도 사진은 어색하고, 대화도 어줍짢고, 그냥 살며시 또 빤히 쳐다보는 정도로만 만족! 그런데 그 정도로 호감도 아닌데, 단지 나는 무명 저분은 유명하다는 이유로 사인을? 노노노 딱 노! 내가 이상한 건가? 그야 어떻든, 한번 가볼까 라는 생각이 언뜻 들 정도로 이렇게나 많은 초대권을? 마라한테 따질까 말까를 고민했다. 살짝만. 심지어 무슨 레스토랑 개점 파티 초대권가지 있네? 참말로 가지 가지 한다. 어? 원고료를 떼이거나, 법정 다툼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뭐 초대권? 하긴 거기 기고한 일기는 그냥 연습장에 끄적거린 셈 치면 된다.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지 뭐! 그렇지만 또 이렇게 너무 낙천적으로 넘기기엔 왠지 뒷맛이 세했다. 썩 긍정하자니 기분이 이상하고, 부정하자니 내가 꼭 그런 남자 같지 않나.
속 좁고,
쪼잔하며,
꽉 막히고,
쫌팽이에,
허접한 데다가,
툭하면 짜증내고,
반짝반짝 딸랑딸랑에만 겨우 반응하거나,
에스코트가 뭔지도 모르고, 재미없고, 삐리한 걸로도 모자라
가난하며─가난 자체는 문제가 아니겠죠─덜떨어지고, 뭘 좀 아는 남자란 칭찬은 주변에 다 빼았겨 버린 남자.
뭐? 이런 젠장!
그러나 이때를 위해 나는 미리미리 준비해뒀다. 무엇을? 바로 염주를! 특대 크기에 최고급 수제품은 좀 비싸길래, 적당한 걸 미리 사뒀다. 나는 재빨리 그걸 가져다가 꼼지락꼼지락-했다.
아니면 말고?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기!
그렇지만 기분이 영 아니길래, 빈정상한 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약속을 잡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엔야에게 연락했고, 차 마시며 고상하게 수다나 떨자고 그녀를 살살 꼬셨다. 그렇게 나는 약속 장소로 나갔다.
4
엔야와 나는 어느 카페에서 만나 함께 차를 마셨다.
「늬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내게 큰 거 1장을 줘!」
「응? 뭐라고? 왜 쳐라, 가 아니라 '주라'야? 뭐야 이거! 원래 그거 아니니? 늬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서슴없이 날 쳐라!」
「아니야. 그건 영화고 이건 현실이고.」
「그래? 어째서 그 둘이 다른데?」
「왜 그러냐, 왜냐면 사람인 이상 한 점 부끄러움은 없을 수가 없으니까. 곧 부끄러움이 없다고 착각해서 내가 맞느니, 부끄러움이 있다는 타당함과 내게 큰 거 1장을 주지 않아도 되는 명분까지 마련해주는 이타심. 그게 왜 나쁜데? 두 마리 토끼 잡기잖아! 기억나는 영화 대사는 모르겠고 성서에 나오기로는, 뭐라더라. 음...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뭐라더라. 아무튼 너도 알다시피 그런 말이 있어. 그렇지만 세상사란 건 말이야, 언제나 신성함이 만방에 빛을 비추거나, 정의로움이 수학적으로 만인에게 공평하기는 힘든 법. 출구조사도 오차 범위는 있고, 주인공에게는 우연이 흔하며, 위인전 뿐만 아니라 범인조차 굴곡 없는 인생은 너무너무 단조롭고 밋밋한 거 아니니? 재미없으면 곧장 집중력 떨어지는 게 정상이잖니. 더불어 인간의 죄스러움을 지칭하는 용어는 꽤나 많지 않냐 이 말이야. 하물며 기분따라 사랑이 흔들리고 분위기따라 변심은 매번 우리의 헛점을 노리는데, 응? 큰 부끄러움은 없지 않을까란 착각 때문에 누가 누굴 때리면 어떡하냔 말이지! 응? 그렇지 않나 이 말일세. 아니 그렇소? 이만하면 꽤 괜찮은 호혜성 아니냔 말이네. OK?」
「어? 그래 OK! 그게... 얘기가 그렇게 되나?」
「그렇지. 그런 거라구. 자 그러니까 일단 1장 줘 봐. 아, 뭐해? 어서!」
엔야는 지갑을 꺼내더니 내게 1장을 줬다.
「좋았어! 허허허허허.」
「그런데 내가 오빠한테 1장을 왜 줬지?」
「그러게! 그럼 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거야? 내가 주란다고 덥썩 주면 어떡해? 늬가 거절해야 부끄러움이 적당한 거라는 점. 아직도 몰라?」
「아, 그렇구나! 오빠야. 다시 줘.」
「한 번 준 건 내 꺼야. 얘가 줬다 뺐을려고 하네. 있는 놈이 더한 다니까, 라는 말은 하지 말자고 우리. 응?」
「뭐?」
「뭐긴 뭐!」
「허허허. 안심하긴 일러, 이 오빠야. 내가 뭘 줬는지 내용은 보지도 않고 (개)이득만 생각하니? 그러니까 오빠가 허당이란 거야! 이건 말이야,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오빠가 말한 1장과 내가 건넨 1장은 다른 거라고. 응?」
그런데 엔야의 말을 듣고 보니 또 그럴싸했다. 더군다나 엔야가 건넨 1장을 보아하니 그건 지폐가 아니라 초대권이었다.
뭐, 또?
「하긴 요즘 세상 부끄러움을 말하기와, 사생활 침해를 논하기는 어째 뭔가 겸연쩍어지지 않을 수 없어. 우머나이저만 봐봐. 날개 돋힌 듯 팔리는 데도 항상 품절이잖아?」
「뭐 진짜로? 이건 있는 놈이 더하더라, 가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하지?」
「(툭툭) 그걸로만 보자면 말이야, 어째 뭔가 바뀐 거 같지 않니?」
「뭐가 바뀐 거 같은데?」
「아 그거 말이야. 그래프를 놓고 봤을 때 남자가 먼저 고점을 찍고, 여자는 더 나중에 정점에 이르는 거. 너도 모르지 않지? 상식이잖아. 과학이고 의학이자 교양이야. 여성잡지2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될. 응? 왜 그런 말 있잖아.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흐흠, 그렇다고? (딱) 얌전한 고양이는 곧 남자네! 안 그래? 늦바람이 무섭다? 여자잖아! 얌전한 고양이를 어쩐다면서 속닥속닥 수다의 꽃을 피웠다가 양들은 나중 침묵할까? 아니지 아니지. 그녀들은 안 그래도 일찍이 연애라는 걸 하면서 질투의 화신이었는데, 뒤늦게 찐한 사랑을 알게 됐는데 어찌 조용조용 수줍고 부끄럽고 챙피할 수 있을까! 그 전체적인 그림을 보니까 그렇단 말이야. 남녀 모두 YB일땐 여자가 남자를 보고 웃어, 이따금 그 어떤 수다의 화제로 웃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남녀 공히 OB일 땐 남자는 자는 척 하던가, 샤워 소리에 꼭 흑백영화에 나오듯이 소름이 돋아. 어? 막, 소름!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이러니까 어설픈 사랑의 3요소가 대단한 거지. 응? 아 생각을 해봐봐. 어설픈 사랑의 3요소 가운데 하나인 더티러브로 일부는 발목 잡히고, 또 나머지 절반의 절반은 풋사랑으로, 그 나머지는 찐한 사랑. (딱)! (쉭─쉭─쉭)! 안 그러니? 그래서 부인이 친구들 만나서 하는 말이 뭐야?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는 순위 축에도 못든다는 거. (딱) YB일땐 여자가 남자를 보며 웃고, OB일땐 남자가 여자한테 겁 먹어! 안 그래? 왜, 내 말이 틀리니! 물론 난 아니다 난 아니야. 난 아직 그 뭔가가 밑에서 위로 올라오지 않았거든. 응? 그러니까 내가 가만 있게 생겼냔 말이야. 응? 우머나이저를 현저히 뛰어넘는 환상머신! (딱) 그걸 만들고야 말겠다는 신념.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그거지. 음.」
「그렇다면 말이야. 대체 찐한 사랑과 풋사랑 밖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파도 그 어디에 진짜 사랑이 있는 거지? 오빠는 그거 아니! 알면 내게 좀 가르쳐 줄래요? 응, 오빠.」
그야 어떻든 그렇게 해서, 나는 또 1장의 초대권을 얼렁뚱땅 손에 쥐게 되었다.
그럼 남은 VIP 초대권은 오히려 1장이 늘어서, 총 21장? 맙소사!
5
나는 혼자서 상스러운 거동과 거만한 논조의 배역을 흉내내봤다. 익히 봐 왔던 드라마 조연들 연기를 말이다. 할 일이 그렇게나 없었나? 차라리 쾌감을 사모하고 밤거리 네온사인 불빛 아래에서 방황함을 흠모하길 바래야 하나,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난 정말 어떻게 권태를 단죄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만 꼭 그렇게 티를 내면서까지 타성과의 불화를 내세울 필요 있나. 굳이 환상의 부재를 못마땅해하지 말자, 왜 심심함에 꼭 반항해야 한단 말인가! 라면서 꾹 참고 꿋꿋이 일이나 할려고 했나. 뻥, 아니다. 솔직한 심정이 그랬으니까.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쉽게 되겠나. 그동안 질주는 S자로, 인생은 W로, 사랑은 파이값으로 허둥대기만 했는데? 때문에 나는 모험심을 타이르는 데 여지없이 실패했다. 감수성의 발동을 설복할 마음은 그만 동력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쾌락마의 위력이 되살아났을까? 눈이 번쩍 뜨이며 깜작 놀랄 만한 야생마에 올라타면 좋겠지만, 역시나 내 여건은 보나마나 허접한 당나귀일 뿐이었다. 바로 이때, 어떻게 이처럼 탁월한 우연과 기막힌 행운이? ~같은 일은 전혀 없었다. 뭐라고? 경박함도 재미없다. 그 언제 내가 촐싹맞고 까불댔더라, 그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난 아마도 듣고 싶은 말은 그것 아니냐고.
「돈푼깨나 있는 저런 속물 같으니라고!」
뭐시라고? 참 나, 또 가식! 웃기지도 않다. 재미도 없다. 말도 안된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짜릿한 기쁨의 순간은 다 허구고, 까마득하며, 가짜다. 신비는 없다. 환상도 깨졌다. 진짜로 날씨는 어둡다. 아이 좋아라~ 같은 일, 있을 턱이 있나. 워매 좋은그~,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안되겠다. 이랬다가는 또 다시 '없다&없어'의 역설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딱히 중요한 할 일은 없고 해서, 저기 탁자에 올려진 초대권 다발로 선심이나 쓰자면서 친구를 불러내기로 했다. 이거 그냥 어쩌다 생긴건데 너 가져! 라고 하기 위해서.
나는 그렇게 로즈마리를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우린 벌써 만났다 치고.
탁자에 로즈마리와 나.
우리는 연인처럼 대화를 나눴다.
「오빠 뱁새야?」
「누가 그래, 나 뱁새라고!」
「아니면 말지, 왜 그렇게 흥분해 오빠?」
「그야... 우리가 친한 사이니까 그러지.」
「아 오빠. 나 깜짝 놀랐잖아. 난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 그리 물어본 게 아니라, 핸드폰으로 이거 저거 보다가 언뜻 그런 내용이 보이길래, 그냥 장난으로 물어본 거잖아. 우린 그런 말 해도 되는, 아니 해야 하는 사이니까. 안 그래? 아무튼 잘 알겠어. 오빠는 뱁새가 아니다 라고. 그럼 오빤 무슨 새야?」
「나? 왜 내가 새라야 하는 거지?」
「글쎄. 왜 그러지? 생선보다는, 아무래도 새가 낫지 않나? 허나 굳이 물고기로 비유하고 싶다면야 말리지는 않겠어.」
「(피식) 모르겠고! 좌우간 난 수시로 바껴.」
「그래? 오빠는 어떻게 수시로 바뀌는데?」
「일단 닭부터 시작하지. 왜냐하면 같이 으쌰으쌰할려면 그럴 수 밖에 없어. 우리는 또 그때가 되면 정신이 없거든. 그때의 종류가 좀 많긴 한데, 그건 넘어가고. 허허. 그와 별개로 또 어쩌다 갑자기 개구리가 날 지배하겠지. 어디로 튈 줄 모르거든. 나도 날 잘 몰라. 마치 여자의 마음처럼 말이야. 나는 있지, 누구야 형 때리지 마라, 같은 말도 스스럼없이 친한 동생한테 말하곤 했으니까. 그러니까 팔색조 기질 역시 다분하다고 할 수 있을 걸! 거기서 끝이냐? 섭하게 왜 이러시나! 가죽점퍼 입으면 표범이요, 수트는 또 날 제비로 변신시켜주겠지. 흐흠. 또 혼자 있을 땐 부엉이요 기분 좋으면 오리. 탐스런 과일에 대해 친구가 고민이 많다? 나는 코끼리가 되어 심리학에 대해서 논할 만반의 준비를 갖출걸? 우리끼리 사랑 얘기를 해서는 절대 안되지만, 우정이 뭔지를 모르지는 않거든. 그리고 상큼한 숙녀가 몇 시 방향에 있나를 탐색할 땐 응당 늑대. 그런데 참 이상한 게 뭐냐면, 그게 말이야, 그게 뭔 줄 아니? 그게 어떻게 된 게 또 슬리퍼를 신으면 자칼 느낌이 그냥 팍~! 응? 그리고 나는... 구레나룻이 안 어울리지만 나 뿐만 아니라 우린 언제나 하이에나처럼 상시 레이더는 풀 가동한다고 할 수 있지. 그럼. 물론 기본적으로 개미처럼 일하고, 나비처럼 사랑하며, 벌처럼 바쁘고 싶을 테고 말이야.」
「와!」
「산토끼. 암여우. 수닭. 암캐. 부엉이. 포니. 하물며 판다까지. 다 가능해. 뭐든 말만 하라구요, 아가씨. 으응?」
「내가 봤을 땐 말이야, 있지 오빠! 응? 있잖아. 딱 그 뭐랄까, 음. 그래. 맞어. 옳지. 그치? 음. 그렇다니까. (딱)! 개. 개야. 오빤 그냥 개라고. 응? 그냥, 개!」
「뭐?」
「왜냐고? 왜냐하면 관상이 개상이니까. 푸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어? 아닌데! 오늘은 또 말상이네. 이거 정말 어찌된 일이지? 난 통 그 사정을 모르겠어. 아무리 해도 모르겠다고. 그럼 혹시 지금 오빠는 카멜레온? 사랑의, 아니면 흑심의?」
「계속 그렇게 해. 내 기분이 약간 꿀꿀한 건 꿀꿀한 거고. 차라리 그게 더 좋아. 모르는 걸 얘기하라고. 응? 아는 거 말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대단한 척, 잘난 척, 자기 비하 2번에 쓸데없는 거 뽐내기 1번도 좋으니, 아니 10번 100번도 좋으니. 될 수 있으면 앎과 모름의 그 중간 지점을 내게 알려달라고. 확실히 아는 것, 도무지 궁금한 거, 긴가민가 애매한 거. 일단 그걸 명확히 구분해보라고. 알겠니?」
「오빠. 너무 어렵다. 오빠 충격 받은 거야? 기다려봐 오빠. 응? 오빠! 오빠 기분 뭉게구름 위로 덩실덩실 띄워보내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거. 오빠도 잘 알잖아? 응?」
「」
「그런데 있잖아,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오빠가 인기 순위 탑 3에 뽑혔어. 것도 겸손하게 딱 3위로 말이야. 1위면 부담스럽고, 2위는 왠지 기분 나쁘고, 3위면 괜찮지 않아? 나름 흐뭇한 순위 아닐까? 썩 불만족스럽지 않은 성적이잖아?」
「뭐, 진짜? 허허허.」
「그런데 그게 말이야. 그 순위는 3위까지 밖에 없어. 그래서 1, 2위 빼고는 별 의미 없어.」
「그럼 그렇지. 나만 그런 거 아니야. 다른 남자들도 다 그래. 안 그러면 비정상이거나 동성애자라고. 물론 꼭 그렇진 않겠지만 대체로 몽정기라는 그 어떤 뭔가가 있거든. 알겠니?」
「으잉? 나 암말도 안했는데! 그리고 나 무슨 뜻인지도 몰라. 그냥 나 못들은 걸로 할께. 그런데 왜 갑자기 귀가 빨개지지? 나도 잘 모르겠네.」
효과음!
수증기!
효과음!
수증기!
효과음! 수증기! 효과음! 수증기!
「있지 오빠. 내가 오빠한테 하나 선물해주고 싶은 게 있어.」
「선물? 그게 뭔데!」
「나비넥타이.」
「나비넥타이?」
「응. 나비넥타이. 그런데 칩이 심어져 있지. 실시간 위치를 핸드폰으로 볼 수 있도록.」
「그건 왜?」
「방울 같잖아? 고양이 목에 달린 방울. 고양이한테 방울을 달자, 그런데 누가 달텐가! 라는 쥐들의 숙고. 딱 떠오르지 않아? 하긴 앞면만 보면 딱 떠오르지 않겠네. 왜냐하면 오빠는 개구멍으로 들어가서 뻔트를 댈 테니까. 개는 쥐구멍으로 못들어가지만, 쥐는 개구멍으로 들락날락할 수 있잖아. 안 그래? 그러나 쥐는 쥐야. 오빠는 개고. 한편, 뒷면을 보아하니 글쎄 동공의 기묘한 움직임 하며 응큼한 상상과 별개로 쥐구멍에 대한 지식도 꽤 일가견이 있네? (딱) 톰과 제리! 고양이 담 넘어가듯 한다, 그런 말 못들어봤어, 오빠? 기록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알겠네. 내꺼 하자 라는 유별난 추억도, 바꾸자 라는 특별한 훈장도 찾으면 찾는대로 나오겠구먼. 그치만 그럼 뭘해? 뚜껑 없는 차가 없잖아. 웨건과 진공청소기라... 롤스로이스와 패왕은 어떨까. 아님 토끼와 커피포트?」
「아 쫌!」
......휴지기......
......휴지기......
......휴지기......
그 다음으로 어떻게 분위기는 다시 부드러워졌고, 나는 그녀에게 뱁새에 대해서 다정히 알려주었다.
6
「뱁새라고 명확히 찝어서 말할 수도 있고, 학설에 따라서는 그걸 50점으로 볼 수도 있어. 허세─허영심─자존심 지수를 50점이 중간이라고 하듯이 말이야. 뭐가 됐든 50은 절대로 나쁜 게 아니야. 그건 지극히 정상일 뿐이니까. 또 타고난 건 어쩔 수 없어. 그렇지만 천성과 세상사의 중간에 내가 뭘 그려넣을지는 내 천성으로써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고 말이야. 그 제어가 가능한 범주 내에서 내가 나와 싸우며, 다투고, 사귀며, 사랑하는 일! 그건 아마도 인생이겠지? 그래서 리듬을 타는 게 중요하고, 또 조화와 어울림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지. 그야 어쨌든 뱁새과가 민감한 감정은 주로 이런 항목들이지.
불만족, 열등감, 패배감, 열패감, 지는 비교, 좌절감, 상실감, 불평, 원망감, 질투심, 자존심!
즉, 질주하는 경주마 역할은 물론 마장마술과 함께 회전목마역까지, 뭘로 봐도 자재다능하다거나 적어도 한 가지 큰기술만 있다면 대체로 뱁새일 리는 없어. 올라탄 말이 튄다마든지 천리마든지 뭐가 됐든 그걸 타는 기수들은 다양하지. 촌닭, 촉새, 팔색조, 파랑새, 백조, 오리, 앵무새, 까치, 까마귀, 갈매기, 꿀벌, 나비 등등. 그분들은 잔재주로 눈속임하고, 허풍으로 어느 정도 대신하는 게 가능하며, 어쩌다 행운에 힙입어 출세를 해. 일단 말로써 너와 나 둘 다 썩 싫지 않은 균형감, 바로 그 괜찮은 지점을 찾을 줄 안다고. 내게 대어를 잡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을려나 몰라도 다시 말해 잡힌다고. 뭐가? 물고기가! 그건 응당 뱁새가 아니야. 물론 1.0 버전으로 보면 그렇고 많은 걸 성취하신 분들이라 할지라도 조류 판명기 2.0으로 보면 가면은 벗겨질 테고 말이야. 일단은 그래. 그 음성적인 감정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본능이니까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허세 97, 허영심 98, 자존심 99처럼 뱁새 지수가 99.99로 폭등하는 순간을 잘 분석하면 알 수 있어. 그 반짝이는 찰나는 1~1.5개의 순수한 감정이 아니라 복합적인 감정이 기제가 된다고 할 수 있지. 불만족? 성공의 발판이 되기도 해. 열등감? 타고난 걸 어쩌겠나. 패배감? 진 건 진 거고, 져서 오히려 나을 수도 있어. 상실감? 나는 올라가서 행복감이 뭔지나 느껴본 다음에 절망과 상심 그리고 가난이 찾아왔지만, 그분들은 애초에 상실감 자체를 경험할 수 없다는 것! (딱), 응? 처음부터 그 경로는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는 것! 불평, 친해 봐봐! 원망감, 간질간질 깐족깐족 부글부글 부추겨보면 돼! 질투심? 질투를 하기도 받기도 그렇게 둘 다 경험하면 좋은데, 질투 자체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의 입장은 정말 어떨까! 호박...론은 그만 귀찮게 하고라도 말이야. 앞서 말했듯이 단일한 감정이 아니라 복합됐을 때 커피포트는 바빠지고, 화염방사기는 작동하는 거지. 불만족, 열등감, 패배감, 열패감, 지는 비교, 좌절감, 상실감, 불평, 원망감, 질투심! 물론 나도 내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이렇게 말이 많아지는 것일 수도 있어.
다시 말해서, 계기판에서 빨간 막대 그래프가 언제 그 끝을 파파팍팍 정신없이 두드려대는지, 그 뱁새의 절규는 다 이 때문이지. 형편이 어떻고, 코너에 몰리며, 패배가 반복되다 보면 슬슬 차오르고 차오르고 차오르다 (딱)! 이 음성적인 감정 가운데 순수하게 어느 하나가 아니라, 그러면 바로 <뭐 + 뭐 + 뭐 + 뭐>가 되는 거지. 무슨 1 + 1 판매 행사처럼 말이야. 그냥 웃자고 괜히 칼럼에다 내가 말도 안되는 농담을 남발한 게 아니라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개그라고 그걸 하고 또 하고 계속 남용했을까? 아니야 아니야. 내가 바보인 건 맞지만 그냥 단순히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라고.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 어설픈 3대 사랑, 허세-허영심-자존심 지수등. 왜 그럴까 찬찬히 생각하고, 진득하니 고민하며, 오래도록 고찰하다 보면 알 수 있어. 그럼. 물론 그럴려면 내 직관력이 월등하다던가, 주어진 정보가 풍족하다던가, 가설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을 때라야 가능한 얘기지. 당연히 친해야 하고 오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서 풍족한 자료가 쌓였을 때,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 DNA들의 공통점을 분석 가능할 때라야 그 어떤 개성과 정체성을 구체화할 수 있겠지. 즉 지역 불문 뭐 불문등 일정 비율이 보장되는 인류의 특징일 뿐. 그래서 여성잡지에서 그렇게나 친절히 꼬집는 주제가 뭐겠어? 어떤 남자라야 멋진 사랑을 할 수 있나, 만약 헤어지더라도 어떤 장르로 헤어지지 않을 것인가! 바로 그 최소한의 지혜를 알려주는 것 아니니? 그이는 TV 볼 때 주로 무엇을 본다, 영화는 대략 머머류를 좋아하고, 개인 홈페이지에 대체로 무엇을 올리는가. 음악은 어떤 걸 좋아하고, 잔재주를 객관적으로 따졌을 때 얼마나 잘났는가! 생활환경, 내 방, 블로그, 소셜 네트워크, 사교생활, 핸드폰 앱을 사용한 기록을 통계 내면 절반은 맞출 수 있어. 뱁새인가 아닌가는.
예를 들어 앱은 많이 깔려있는데 소셜 네트워크는 전혀 하지 않네? 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이렇게 말했지. 소셜 네트워크는 인생의 낭비다 라고. OX 문제가 아니니까 한마디로 의미 있는 얘기! 그런데 대충 사는 인생으로써 인생을 낭비하냐 마냐 라는 팔짜도 아니고, 매우 성실하지만 속마음은 원천적으로 '막살자 주의'라면 소셜 네트워크를 하지 않는 이유가 전혀 다르겠지. 그분께서 왜, 왜 소셜 네트워크를 하지 않냐고? 할 게 없으니까. 자랑할 게 없으니까. 하기도 싫으니까. 남의 자랑만 보라고? 내 부인 못생긴 거 그걸 뭐하러, 내 입으로 말하냐고. 내 입 아프게 뭐 한다고! 내 기분이 특별히 좋다면 모를까, 평소에는 말을 잘 하지도 듣지도 않는데, 자발적으로 그걸 왜 해야 하냐고. 지는 비교는 듣기도 싫고, 말하기는 더 싫어! 게다가 객관적으로 따져 보니 나는 최고가 아니고, 그런데 단짝은 무식하게 자기가 최고라 하고, 에라~ 모르겠다 모두 최저! 고운 마음에 아름다운 심보, 어떻게 하면 뱁새가 행복할 수 있을까? 물론 돈이겠지. 그렇지만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분을 만나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기분이 좀 그렇다는 것. 뱁새는 뱁새라는 점 때문이야. 가령, 여-바텐더에게 제일 돈이 많을 것 같은 친구로 내가 꼽히지 못했을 때 야유도 못해. 하기 싫어. 보기도 싫어. 무조건 싫어. 꼴도 보기 싫다구. 심성이 쥐구멍에 몰리면 둘 중 하나. 중간은 갔던 마음가짐이 틀어지거나, 늑대는 양의 탈을 벗는 일. 어떤 술집에서 남자가 여급을 선택할 수도 있는데, 반대로 때로는 분위기에 따라 여급이 남자를 선택하기도 해. 그렇게 친구랑 단둘이서 여급 둘을 만났을 때, 비교적 나은 여급에게 선택 받지 못했다? 왜 부모는 나를 이렇게 나았냐고 투정해. 단 1번도 한눈 팔지 않고 살았는데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야 하느냐, 라는 말이 진짜로 딱 편도선에서 멈추는 일. 그 때문이지. 빅뉴스, 톱뉴스, 핫뉴스에 내가 오르기는 바라지도 않는가 몰라도, 그럭저럭 부유하기는 해야 할 꺼 아니냐고! 부정적 감정 + 소극적 표출이 특징인데 그런 친구들끼리 친하다면 모를까, 부자라면 모를까, 재미도 없는데 소셜 네트워크에서 긍정주의자인 척? 사석에서 친구끼리 하는 얘기처럼 말하자면, 그건 미친 거지! 더 심한 말은 우리끼리는 하지도 듣지도 마세나. 아무리 친해도 말이야. 얼굴 찡그릴 기회야 따로 있을 테니까. 하이 개그와 고품격 농담을 딴 데서 아깝게 허비해야 할 이유까진 없지 않겠어? 자, 그건 그렇고 이와 같은 주인공을 보자면 핸드폰에서 주로 사용하는 앱은 딱 3개가 전부야. 앱은 많이 깔려 있지만 자주 쓰는 앱은 오직 딱 3개.
첫째, 포털 사이트 앱.
둘째, 남성잡지 앱.
셋째, 나머지(게임이나 지도나 기타 잡다한 것).
첫째는 오직 잔지식 섭렵이랄지 뉴스 읽기. 책읽기는 20살 이후로 0이니까 그거라도 해야지 뭐. 둘째는 생활로 보자면 '못 오를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 주의지만 소비생활과 별개로 잔지식은 구경이고, 심심풀이 땅콩이며, 투정이니까 OK. 물론 내가 복권에 당첨돼서 상-중산층에 포진하면 그건 또 다를 테고. 그리고 셋째는 문명의 이기고. 이와 같은 예를 놓고 생각해본다면 동성끼리는 직감적으로 느껴. 첫인상으로 느끼건대 <A.성격 좋다>의 보기 가운데 <a.성격 좋다>만 우리는 유일하게 '성격 좋다'로 인정하지. 왜냐, <A.성격 좋다>의 하위 보기는 그 후보군이 많기 때문. 따라서 <A.성격 좋다>에서 <a.성격 좋다>만 오직 성격이 진짜 좋은 거야. 물론 호구 그룹군도 거기 포함되고. 뭘 좀 아는 남자는 절반쯤 교집합을 형성할 테고 말이야. 동성 사이에서는 성격이 좋든 안 좋든 친해지기 쉽지. 처음 만나서 마시고 노래 부르며 으쌰으쌰, 평생을 약속하지만 오늘 지나면 그거야. 안녕이라는 인사조차 과분한 남남. 부지기수야. 남자 대 남자로써 그걸 어찌 모르겠나. 그렇다고 여자들끼리라고 <A.성격 좋다>의 후보군이 없겠나? 모르긴 몰라도 남자보다 훨씬 많을걸! 그처럼 우리는 <A.성격 좋다>의 나머지 후보군을 전부 성격 좋다 라고 인정하지 않아. 서열 밖에 모르는 수컷 아부왕, 언뜻 보면 성격 좋아. 그런데 딱 등 돌리면? 아휴 말도 마, 말도 말라구. 판매왕이랄지 보험왕등 세일즈맨도 태반은 성격이 나쁠 리가 있나. 그래서 우리는 보면 알아. 그건 형씨가 나 기분 좋으라고 하신 말씀이고! 라고 말일세. 그렇지만 이성도? 동성은 가면을 투시하는 반면 이성은 눈에 콩깍지가 씌이는데? 그러기는 힘들어. 안 힘들면 사랑이 얼마나 어렵겠냐고. 우리를 보라고 우리를! 우리는 이성을 만나면 금방 친해져. 누가 됐든 만나자마자 친해진다고. 응? 성격이 좋거나 딱히 모나지 않은 남자, 사기꾼이 요리를 예단컨대 딱 3번 만나면 끝나. 첫째 격식 있는 식사, 둘째 함께 술을 마신다, 셋째 골프! 딱 삼구삼진이면 게임 끝난다고. 응? 끝! 그런데 그게 아니라 성격 안 좋고, 뭘 좀 모르고, 자존심 극상에, 뱁새과에다 이러쿵저러쿵하다? 본인은 리듬따라 허세 80이 가능하지만 리듬에 충실한 타인의 허세 80은 짜증내며 물개박수를 꺼린다? 직장에서는 만년 굽히고 다니다가 친한 친구를 만나서는, 친구는 내 뜸한 허세 80을 들어주는데, 친구가 어쩌다 허세 80을 찍으면 광분해! 뭐지, 뭐지, 그건 정말 뭘까? 나 뱁새요 라며 이마에 써주라는 건가? 뭐 이런 주홍글씨가 다 있냐고! 하물며 그 단짝인 촌닭은 진짜로 제일 친한 친구의 신부들러리마저 외면한다? (설레설레)! 조류의 분과라는 차이가 존재하고, 사랑도 외모 차별이며, 우정도 터놓고 말하자면 서열인 것. 때문에 우정이 추접하고 사랑이 유치한 건 그저 자연스러울 따름. 그러므로 말이 통하는 영혼끼리의 만남, 나아가 하늘이 맺어준 사랑은 드물어야 정상 아닐까? 그렇다고 어설픈 3대 사랑이 비정상이란 말은 아니야. 하루에 12번도 더 첫눈에 홀딱 반하는 게 뭐 나만의 재능은 아닐 테니까. 아무튼,
나는 있지, 왜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라는 학명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졌는데 뱁새라는 유형은 정식 학명이 없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 혹시, 그게 그건가? 그럴지도 모르고. 뭐야, 그럼 나는 안다박사에 아무말 대잔치 학파라고? (설레설레) (수증기 부글부글)! 그러니까 허세도 그렇듯이 어설픈 게 더 뭐 어쩐다니까. 100만명 가운데 1-2명 정도는 다를 텐데, 꼭 어정쩡하면 딱 그래. 빈수래가 요란하다고! 삐악삐악, 꽥꽥 꽥꽥, 따따부따, 짹짹 짹짹짹, 끼룩끼룩! 그런데 여자들이 뱁새와 미술관에 가면 그건 뭐지, 뱁새와 참새 미술관에 가다-인가! 사랑이란 뭘까, 눈에 콩깍지가 씌였다는 아름다운 섭리 아니겠니! 그렇지만 나중 회한도 있고, 환멸도 있으며, 아무리 그래도 여자든 남자든 한쪽이 한쪽을 더 사랑하는 경우도 있지. 아니 많아. 엄청 많아. 완전 많지. 길게 가는 사랑은 아마도 그게 태반일걸. 대등한 사랑은 알고 보면 많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 뿐인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건 또 어떻고.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알지 누가 알겠나. 아니 그렇소, 낭자?
마지막으로 우리 오빠는 아니다? 그 가운데 하나. 단지 내 주관적 견해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보기에 뱁새와 90퍼센트 흡사한 여건이다, 그런데 우리 오빠는 그렇게 꽉막힌 사람이 아니다? 속좁지 않다? 어둡지도 쪼잔한 쫌팽이도 아니다, 그건 뭐냐구요? 그건 닭. 늑대. 개. 많네. 또는 하이에나? 그래, 당나귀!」
결국 나는 이상한 주제 때문에 말을 너무 많이 해버렸다. 나도 모르게! 응? 그냥 뭐 어쩌다가.
그래서 나는 입이 아프고, 그녀는 귀에서 피가 나고!
뭐야?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잖아! 저런 저런 저런.
미지의 모험은 유난스러울 뿐더러 있을 수도 없다.
공치사할 기회도 구설수에 오를 일도 없다.
결과만 말하자면 나는 로즈마리한테 험하게 꾸중 같지 않은 꾸중을 들었다.
그렇게 나는 VIP 초대권을 선사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녀와 헤어졌다.
썩 내키지 않은, 우리의 작별. 뭐야 이거, 괜히 만났잖아? 저런!
7
여심을 사로잡고 인기를 가로채며 큐피트처럼 요술을 부리기. 호박과 화병. 페라리와 에르메스. 꽃을 사랑하는 세 남자. 최선을 다하자, 대충 살자, 막살자!
뭐? 그러나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 곧 열정가─열망가─정력가일 때 피의 색깔이 아마도 살짝 달라지는 건 아닐까? 초록색─파란색─빨간색으로! 그런데 장밋빛 인생을 위해서라면 핑크색은 어떨까?
보아하니 프로메테우스가 천상의 불꽃을 지상의 인간에게 선사했으니 그에 대한 화답으로 신기한 환상머신을 가동해볼까? 눈부신 행복은 무엇인지, 찐한 사랑은 대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통 모르겠으니, 썩 나쁘지 않은 구상일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몽상은 그만하면 됐고. 어찌 됐든 솔직히 내 재능마는 분명코 비리비리하니까, 고로 나는 이번에 엉뚱마의 요술에 운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사무실을 나섰다. 오늘 일과는 이쯤에서 마무리. 그렇게 나는 사무실을 나섰다. 최근 단골이 되서 자주 들리는 근처 카페가 나를 기다리니까.
그곳의 이름은 브렌따노!
그곳에 도착해서 나는 주인장과 대화를 나눴다. 차는 카푸치노!
「주인장. 오늘 하루 어땠소?」
「나 말이오? 어땠겠소. 실컷 커피나 팔았지. 허허허. 내게 무슨 속절없이 빨려들어갈 수 밖에 없는 미지의 마법이라도 있겠소? 그렇지만 우리, 무료함에 괘념치 말고 상심에 낙담하지 말기로 합시다.」
「형씨는 말을 너무 잘해. 나는 글을 너무 못쓰고.」
「칭찬치고는 너무 성의 없어. 나도 좀 은근히 띄워주면 안되겠소?」
「내가 언제 다른 숙녀를 은근히 띄우는 걸 보기라도 했단 말이오?」
「에이 이 양반이 너스레 떨기는. 우리끼리 그러지 말기로 합시다. 보면 알지. 응? 딱 보니까 여자 마음 들었다 놨다 하겠구만 그러네. 자, 어떻게 엎드려 절 받으려면 내가 먼저 환상 측정기라도 선물해야 하오? 말만 하시오. 허허허.」
「그러지 말고 차라리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건 어떻소? 아아 실수. 농담이 망했소. 인정. 딱 인정! 아, 혹시 민감한 사안이면 미안하오. 허허허. 아니오? 아니겠지. 긴가? 그런데 뭐가! 그야 타인의 취향. 내 취향이 존중 받는 게 당연하듯이 타인의 취향 역시!」
바로 그때 카페 바에서 틀어놓은 TV 화면에서 조그맣게 뉴스가 나왔다. 유명하신 어느 양반이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는 내용의 뉴스였다.
「허허. 나도 저렇게 환원할 뭐나 있으면 좋으련만.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환원 말이오? 어떻게 생각한다...라고 생각해보진 않았소만, 즉흥적으로 말은 할 수 있소. 내가 뭐 음유 시인도 뮤즈도 아니지만 무의식이란 게 있으니까 말이오. 안 그렇수? 환원이라... 평소에 솔직한 생각을 듣기도 말하기도 쉽지 않은 주제구만. 질문 좋소. 질문 좋아. 가만 보니 아제가 나보다 한 수 위야. 형씨 설변쯤 되면 나는 이미 동기부여 비디오를 팔아도 엄청 팔아제꼈을 텐데. 거 참 아쉽구만. 그러다 안 팔리면 창고에 쌓여있는 비디오를 몽땅 기부할 수도 있고. 그랬는데 만약 돈으로 주라 하면 어쩌지? 참 나! 아무튼 물어보셨으니 답하자면 이렇다오. 환원을 하냐 마냐, 자수성가 했냐 못했냐! 몇 가지 경우의 수가 있겠죠? 당연히 도표와 그래프가 빠질 수 없는 법. 오늘 낮에 내가 그동안 썼던 칼럼을 대충 훑어봤소. 그랬더니 유독 인기라는 낱말이 많이 등장합디다. 그럼 나는 왜 그렇게 그 단어를 소홀히 대하지 않았냐? 왜 그렇게 거기에 천착했냐? ~하면 억지로 걔만 총애한 게 아니라 어떤 원리 때문이었소. 천문학적 부에 대해서 유명하면 환원의 비율이 높고, 덜 유명하면 비교적 낫나? 그 역시 한번 정도쯤만 생각해봤소.
그래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렇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에스프레소─카페라떼─칵테일 가운데 마시고 싶은 걸 마시고, 하고자 하는 걸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뻔트는 대는 일. 그걸 만약 인생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멋진 인생을 사는 방법이 다양하듯이, 이 세상에 보답하는 일도 다채롭다는 것. 때문에 환원이라는 방법을 택하고자 하면 하고, 아니다 자기는 누릴 걸 좀 더 누리고 다르게 기여하겠다 하면 그렇게 하는 거고. 끝.
자, 그런데 환원을 아무나 할까? 하면 또 꼭 그렇지는 않겠죠. 그러나 환원을 할 수 있는 상류층이라고 단순히 환원 자체가 의미 있기 때문에 환원을 하냐, 꼭 그렇지는 않죠. 쥐도 새도 모르게 착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꼭 칭찬을 받고 싶어서 착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겠죠. 전자든 후자든 둘 다 좋은 건 마찬가지. 다만 인간의 본능은 어디까지나 신부들러리보다 신부인 것. 따라서 내가 천문학적 부를 이 사회에 환원하겠다는데 아무도, 개미도, 뱁새도, 벌꿀도 쳐다보지 않네? (딱) 그 입장이라면 나 같아도 애초에 그럴 맘이 발생하기는 쉽지 않겠죠. 뿐만 아니라 오늘은 환원하고 싶어서 딱 환원을 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내일이 딱 되니, 당장 아쉽네? 환원 그거 괜히 했다 그거지. 뉴스 몇 개 나간게 다거든요.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 그 말이죠. 게다가 환원을 하는데 아주 드물게 또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 환원이 꼭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도 없겠죠. 그래서 저는 환원 같은 미덕은 야망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상남자들한테 썩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비율만 유지되면 되고, 오히려 누구나 환원이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라며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계층의 사다리가 만인에게 너무 인색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봅니다.
아닌 말로 환원이 대세가 되어버리면, 뭐 꼭 그럴 리도 없겠지만 타임머신 원리로 따지자면 일부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또 문제점이 있지 왜 없겄소. 그게 비율이 너무 비정상적으로 되어버리면 아마 모든 게 꽤나 위축되고, 적잖이 폐쇄적인 사회에다, 어쩌면 많이들 꿈을 잃어버릴 소지도 있다구요. 나는 좋은 옷을 입고, 멋진 차를 타며, 아름다운 사랑에다 풍족한 호화 생활과 영화로운 인생을 살고 싶은데! 그런데 환원한다는 소식이 너무 자주 뉴스에 나온다? 가난에서 부자가 된 의미가 퇴색되어버릴 수도 있겠죠. 그런 뉴스 한 번씩 나올 때마다 어느 계층 친구들은 멈칫~, 안 그럴 수 없지 않을까요? 에르메스니 베르사체니 포르쉐니, 그 산업에 딸린 종사자가 몇 명이고 그분들이 거기서 번 돈으로 어디 커피만 마시겠소? 병원비도 충당하고 품위 유지도 신경 쓰고 생필품을 사야 하지 않겠소. 만약 환원이라는 어떤 비율이 비정상적 상태가 된다면 문명의 풍요로움이 절반은 사라져버린다에 내 웨건을 걸겠소. 그건 곧 자본주의의 반대로 가는 길이걸랑요. 만약 그렇게 된다? 우리가 아는 드라마니 영화니, 예술과 오락산업 그런 거 쇄락하는 거 시간 문제겠죠. 단순히 군사적으로 A와 B가 그럭저럭 평화의 관계에 있을 때, 그 관계가 심하게 경색되면 단순히 교류만 끊기는 게 아니라 어떻게 되겠소? (딱) 거대 자본은 싹 다 빠져나가버리겠죠. 물론 과장해서 말했을 때 그렇다는 거고, 그런 운동성이 없진 않다 그 말이죠. 네. 그럼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었는데, 물이 다 빠져버린다? 둘 중 하나죠. 배가 산으로 가거나, 바다가 육지가 되거나. 바닷물이 사라지는 내용의 드라마가 그래서 재밌다는 거죠. 장편감으로 딱이니까요. 그게 끝일까요? 동기 부여업은요! 심하게 수평적이기를 바라면 그에 반대하는 자본은 어디로 갈까요? 당연히 숨거나 지하로 가겠죠. 카지노의 매출은 떨어지고, 경제의 성장 동력도 삐걱거릴 가망성이 커지겠죠. 그럼 자연스럽게 인류의 시간표는 다시 뒤로 갈 가능성도 없지 않겠죠. 그 뿐만이 아니에요.
일단 법으로 정해진 게 아닌데, 그걸 법으로 확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라고 왜 없을까요? 일단 (대)환원이라면 대체로 불문율이 있죠. 인생 후반기에 해야 한다는! 그래서 늦으면 늦을수록 효과는 커지겠죠. 어떤 효과요? 사회적으로 좋은 효과도 있겠지만, 순수하게 개인의 명예라는 수학적 효과 말이죠. 그렇지만 나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인생, 나 잘난 맛에 살며 나 행복하기도 바쁜데, 환원도 좋지만 날이면 날마다 그분들에게 물개박수만 치고 있을 수도 없어요. 뉴스, 하루면 잊히죠. 누가 누구랑 사귀네, 누가 누구랑 헤어졌네 라는 소식이 들리면 나도 모르게 그래야 하나 어떨 땐 헷갈려요. 왜냐하면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할 일들도 많으니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니까요. 쟤는 뭔데 나서서....! 네? 그게 끝이 아니겠죠. 사회 환원을 하지 않아야 할 경우도 적지 않죠. 환원이 어느 비율을 넘어서면 이 세상은 기업 사냥꾼들 천국이 되게요? 안 그래도 자본의 논리 때문에 폐해가 이만저만하지 않은데요?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힘과 다각도로 살펴보는 습관을 잃는다면 사기꾼들 발가벗고 춤 추며 난리 나겠죠. 왜 아니겠어요?
그렇다고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나요? 기업 사냥을 달리 말하면 M&A 즉 기업인수합병. 매수자와 매도자의 만남이요,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사랑. 그래서 좋게 보면 좋은 거고, 나쁘게 보면 나쁜 것! 예를 들어 가전제품 회사가 자동차 산업 즉 완성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싶네? 방법은 두 가지죠. 첫째 내 브랜드를 만드는 것, 둘째 기존 브랜드를 인수하는 것. 첫째는 0에서 시작하는 거고, 둘째는 못해도 50점 깔고 시작하는 거죠. 물론 둘 다 장단점은 있겠지만요. 고로 M&A는 어떻게 보면 천사고 달리 보면 악마일 수도 있겠죠. 마치 사람처럼요. 50 대 50으로 상호 이득에 기반해서 M&A가 있었다면, 그걸 표현하는 헤드라인도 천차만별이에죠. 가령 건조하게 어디서 어디를 인수했다 정도가 있으면, 어디가 무엇을 꿀꺽했다도 있겠죠. 대중 전달 매체를 통하여 일반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일, 보도요 언론이며 오락산업의 할 일이겠죠. 네 좋든 싫든 사명감이요. 산업이 아니라 학문이면 신문방속학일 테구요. 그래서 그런 알력의 다채로움을 보면 직구가 아닌 변화구에 대해서 살갑도록 '왜'를 우리에게 대령하거나, '어떻게'를 우리게게 주입시킬 수도 있겠죠. 가령, 민감한 내용이 나오네? 국내용이냐, 견제용이냐, 쟁점용인가, 구태의연한 정치용인가. 타임머신 원리와 세계 무슨 지수까지 따져서 보면 보이기 마련이겠죠.
아울러 뭐 어떻게 된다면 처음부터 도전 욕구 자체를 저해시킬 요인이 매우 크겠죠. 어차피 돈 벌면 다 환원해야 한다고? 신기록 달성하면 뭘해, 어차피 깨질 텐데! 성공해도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죠. 사회 환원에 대해서 유독 말 많고 어쨌던 사람들, 그분들이 운 좋게 벼락부자가 되신다면 당연히 캥기지 않을 수 없을 테구요. 애초에 아득바득 성공해야 할 명분이 없어지면, 3가지 가운데 역으로 엄한 친구가 수혜를 입을 수도 있어요. 최선을 다하자, 대충 살자, 막살자! 환원의 어떤 비율이 마치 신분제가 투철했던 시대랄지 어떤 정치 체제처럼 되어버리면 자본주의의 꽃은 시들 수 밖에 없겠죠. 그럼요. 그러니까 어느 날 딱 환원한다며 기자 회견을 자청했는데 꼴랑, 응? 달랑 기자 몇 분에 카메라는 똑딱이. 꽃단장에 연설문 보며 연습도 했는데, 조명은 어디 갔냐고! 심지어, 그 다음 날 나는 알거지 신세? 오바쟁이라는 놀림을 받아도 꼼짝없이 인정해야 할 만큼 선의를 꼬아버린 점은 제가 깊이 반성합니다. 다만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고, 각자 자기 길을 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인생을 살되, 알게 모르게 착한 일을 하면 그뿐이죠. 네. 그럼요. 유명해지고 싶다, 라는 처음의 마음. 부자가 되고 싶다, 랑 썩 다르지 않은 말이걸랑요. 그래서 물론 과거 기준이지만 종교에서 권장안을 내놓기도 하지 않았나요? 아시다시피 이미 옛날 옛날에 말이죠. 물론 신식으로 따지자면 좀 더 주관적일 테고, 자율적이며, 또 낮아지겠죠. 방법도 다양할 테구요. 지금 세상은 옛날보다 어마어마하게 풍요롭고 복잡해졌으니까요. 어느 급을 훌쩍 뛰어넘게 된다면 존경 받고 베풀고 단지 1퍼센트 이하를 공적으로 베풀지라도, 차라리 나머지 효과로써 그 1퍼센트 효과를 훨씬 더 상회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원래 돈이란 건 자꾸 쓰고, 구르고, 돌아야 좋은 거니까요. 안 그러면 경제는 위축되기 마련이니까요. 경제는 증시와 환율처럼 오르냐 내리냐, 단 2가지 색깔 밖에 없어요. 물론 화답의 최저점은 양심도 있고 평판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보다는 숫자에 기반한 세금일 테구요. 미리부터 부담 갖지 않아도 괜찮다, 이 말이죠. 실제로 고급스런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 평균이 어떤가요? 길고, 잘생기고, 눈부신 젊은이는 거의 없죠. 평균은 중년 이상에 늙은이가 다수죠. 늙은이가 낮춤말은 아니지만 뭐 그렇다는 거죠. 너무 번잡하니 말만 길어진 듯 해서 허허허 죄송헙니다. 어째 또 어떡하다 그렇게 됐군요. 그런데 왜 내가 어쩌다 사극에 나오는 영감님처럼 연설하고 있죠? 혹시 나 말린 건가요?」
그렇게 나와 브렌따노 사장은 친구 먹기로 했다.
8
악마의 천재성은 요원했다. 게다가 따분함은 날 농간했고. 더불어 본심은 자꾸 날 흑심쪽으로 유인할려는 것만 같았다. 건강한 본능이 건전하다면 뭐 나쁘겠냐마는, 일단은 그랬다. 뿐만 아니다. 놀기에 대한 끝없는 욕구는 무엇에 근거하는가는 몰라도, 그 와중에 허당 친구들한테마저도 희롱당했다. 그런데 어쩌면 난 원래 플레이보이인 것일까? 딱히 건실한 삶에서 멀어진 건 아닌데, 왠지 모르게 거울을 보기가 겁났다. 배가 나오고 팔이 짧아지고 목도 짧아지고! 이럴 게 아니라 렘브란트의 작품 가운데 저렴한 거 1점이나 구입할까? 만일 그러면 사무실에 위작을 걸어놓고 다음에 그걸 진품으로 바꿔주......기는 샴푸의 요정도 불쾌해할 것이다. 장난꾸러기들이 알면 짜증내고, 심술쟁이들 귀에 들어가면 큰일날 일이다.
이처럼 뚱딴지 같은 공상이 늘어만 간다는 건 다 때가 되었다는 신호일 것이다. 보아하니 둘 중에 하나는 근질근질한 거지. 입이든 엉덩이든! 웬걸, 그게 아니라 어딘가에 추파를 던지기 위해 뻔트마를 타고 싶은 건 아닐까?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가택감금 중이며, 집에서 차분하게 쉬고 싶기 때문에. 하지만 남자는 얌전한 고양이가 근방의 생선을 탐하고, 조신한 숙녀가 다소곳이 교양미에 열중하듯 집에 있으면 안된다는데! 곧 나는 정숙한 처녀도 지친 말괄량이도 아니거든. 따라서 나는 일단 집밖으로 나갈 수 밖에! 그런데 어디로 가지? 내 말이!
그건 뭐 어떻게든 되겠지. ~라면서 나는 곧장 세르벤테스처럼 거리로 나갔다.
그래서 나는 오늘 퇴근하자마자 바 피타고라스에 들렸다.
나는 바 피타고라스에 도착했다. 손님은 오늘따라 1명도 없었다.
그래서 피타고라스의 여주인장과 나는 웃으면 대화를 나눴다.
「주인장. 요 앞 브렌따노 아시죠?」
「네 그럼요. 저도 자주 놀라갑니다. 허허.」
「어제 저는 브렌따노에 들렸고, 오늘은 피타고라스에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있잖아요.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또 모른다면 몰라도 알면서 아무말 하지 않는 것도 좀 뭣하군요.」
「무슨 일인데 그러시나요?」
「흐흠. 내 총대를 메고 말하겠소. 거 브렌따노 사장 있죠. 그 양반이 마담 험담합디다. 것도 심하게.」
「네? 정말요?」
「아니요. 뻥이에요.」
「차라리 진짜였다면 더 재미있었을 걸요.」
「아니 왜요?」
「왜긴요. 그래야 내가 그 양반이랑 다투면서 친해지고 어떻게 멜로드라마라도 한 편 찍을 꺼 아닌가요. 평소에 영화 찍을 일이 거의 없걸랑요. 선생 삶은 영화인가 몰라도, 저는... 뭐랄까. 요즘 좀 그렇죠. 상쾌한 행복도 살짝만 불편한 불운도 없고, 그래서 지루하고 심심하기만 한 시절. 달리 말하자면 슬럼프, 사랑의 방정식으로 보자면 권태기?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마담.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지고의 사랑이 뭔 줄 아시요? 고아한 이상 말이오.」
「그건 뭐죠?」
「저도 몰라요. 알면 내게 가르쳐주지 않겠소?」
「심술궂기는! 어느새 능청꾸러기가 다 됐군요?」
「지금 능청꾸러기라 하셨소? 그럼 남정네들이 그렇게나 열망하는 물질적인 행복을, 그것도 내가 이룩했단 말이오? 아니요. 난 대망을 실현시키지 못했소. 어떻게 보자면 애초에 야망이란 건 없었다, 가 정답이겠죠.」
「아하~! 그렇다라. 선생님. 플레이보이의 묵시적인 야망을 타결하는 기기 막힌 방법이 뭔 줄 아시나요?」
「그게 뭔데요?」
「글쎄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알면 이미 내가 어떤 멋진 남자를 구워삶아서 진작에 허니문을 떠나도 떠났겠죠. 그 일이 성사되기만 했다면야 7번도 더 떠났겠죠. 안 그래요? 아 7번이 뭐야!」
「마담. 설마 내 재미없는 농담에 보복하는 거요? 만약 그랬다면 성공했소. 나보다 훨씬 썰렁하구만 그래. 보통내기가 아니야. 어디서 물건 소리 좀 들었을 법 하다구요. 정말루요.」
「칭찬은 칭찬이데 퍽 유감스럽군요. 허허허. 처음에는 안됐는데 어떻게 연습하다보니 되네요?」
「뭐가요?」
「너털웃음이요.」
「(피식) 내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이곳에 들를 게 아니라 브렌따노에 들려서 마담에 대해서 험담을 나누는 건데. 혹시라도 나중 귀 간지러우면 날 생각하시오. 허허허.」
어쨌든 우리는 얼굴도 많이 봤겠다, 말도 많이 나눴겠다, 오늘부터 말을 놓기로 하는 사이가 됐다.
9
순전히 행운 덕분에 신나는 모험에 묻어가는 것일까? 전혀 생각치도 못한 전개에 업혀가리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이게 웬떡!
칼럼 원고료 대신 받은 초대권은 한두 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다 차려진 잔칫상에 슥 하니 숟가락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부러 가공할 만한 초현실적 절정은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카바레에서 잠시 추억의 유행가 달랑 몇 곡 듣고 나오는 게 무슨 퇴폐미도 아니고, 응? 그래서 나는 순진한 척하지 않은 채 당당히 카바레에 입장할려고 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초대장이 없잖아? 지갑에 분명 있었는데! 그렇게 뒤지고 뒤지다 잘 찾아냈다. 그래서 그걸 쓱 들이밀고 들어갈려는데,
「손님. 이건 지난 여름 행사 때 사용된 초대권인데요. 기간 지난 거 말고. 최신! 최신 모바일 초대장을 보여주셔야 입장이 가능합니다.」
「그래요? 그거는... 없걸랑요!」
「그래요? 그럼 입장 불가죠. 아쉽지만 발길을 돌리실 수 밖에! 그러니 저희도 무척 섭섭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아 이거 정말 너무 착찹해, (설레설레)!」
뭐라고?
「카바레 사장을 만나게 해 주시오!」
「네?」
8 대 2 가르마 덩치는 옆에 있는 올백 헤어스타일 친구를, 이런 의아한 진지함은 난생 처음이라는 듯이 쳐다봤다. 살다 살다 광증도 아니고 꽁트도 아니고, 뭐지? 라는 표정으로 말이다.
「좋소! 라~고 설마 답하리라곤 예상치 않으셨다는 거, 우리도 다 압니다. 어째 잘 아실 만한 분께서, 선생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이만 웃으면서 헤어지는 게 피차 좋을 것 같습니다. 규율이란 게 있는 만큼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 저기 저 줄 서서 기다리는 젊은이들 표정, 네? 부쩍 어두워지는 거 보이지 않나요? 어떻게 제가 한쪽 무릎이라도 꿇을까요?」
그런데 웬 멀끔한 신사가 다가오더니 아무런 제지없이 카바레에 입장할려고 했다. 날이면 날마다 그런다는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바로 그때.
「형!」
「야, 롭!」
「형. 여기 웬일이야?」
「넌 여기 무슨 일인데?」
「나 가게 하나 열었지. 심심했거든. 그러지 말고 같이 들어가자. 내가 카바레 사장실 구경시켜줄 테니까. 아, 뭐해? 어서!」
우리는 그렇게 자리를 옮겼다.
(짜잔~) 벌써 나이트클럽 사장실.
와~! 나이트클럽 사장실은 이렇게 생겼구나 라는 걸 느꼈다.
「롭. 그런데 이건 너무 깬다. 그러니까 저기 바깥의 젊은 친구들은 쓰디쓴 술이나 마시고 궁짝궁짝 2박자 음악에 취해서 흐느적 거릴 때, 응? 넌 여기서 이처럼 고상하게 듣는다는 게 뭐,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의 노투르노 G장조 호보켄번호 II:30 중 2악장 안단테를? 더불어 복장은 슬리퍼에, 노트북으로 도표나 보며 이해득실을 따진다?」
「허허. 좀 이상한가? 하긴 다 그래. 카지노 사장실이나 여기나. 다르다면 뭐랄까, 장르가 약간 달라. 걔네들은 1 뒤에 0이 여러개 붙는 장사고, 나는 푼돈 장사고. 응? 그 차이지. 그럼.」
「그럼 이참에 형이... 어... 여기 취직하면 어떨까?」
「뭐 취직? 뭔 취직! 형 그냥 여기서 놀아. 맘대루!」
「그래? 내가 뭐 놀라면 못 놀 줄 아니! 라면서 진짜 놀면 안된다는 거. 모를 나이도 아니다.」
「아 정말이야. 애들 불러줘?」
「무슨 애들? 덩치 큰 깎뚜기들? 걔들을 왜? 내가 걔들과 무슨 할 얘기가 있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언니들 말이야. (몸짓)! 캬~! (얼굴 연기)! 으아~! (다시 몸짓)! 캬~! 응? 에잇~ 그러지 말자. 재미없어. 걔들도 피곤하다고. 천상의 인연 같은 여급을 만난다면 몰라도 아니라면 그냥 그렇다는 거. 형도 잘 알잖아. 안 그래?」
뭐야 이거? 좋다 말았자나! 이런, 젠장.
뭐 한다는 소리, 안 그래? 아니지. 전혀 아니지! 아닌 게 아닌가?
아무튼 바로 그때 나는 롭의 책상 한쪽에 배치된 감시 카메라 화면을 보게 됐다.
그냥 사람들 춤추는 모습이 보이고 그랬는데... 뭐야 이거!
내가 아는 사람? 와우~! 나는 그렇게 화면으로 아는 친구들을 보게 된 것이다.
10
뭐야 쟤네들...!
엔야, 로즈마리. 브렌따노 사장, 피타고라스 바텐더. 그 넷이 함께? 심지어, 나만 빼고!
나는 사장실을 나와서 당장 녀석들에게 갔다. NC사장실을 나와서 녀석들이 놀고 있는 테이블까지 곧바로 직행했다.
그런데!
그렇게 A에서 B까지 도달하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왜냐, 북적대는 나이트클럽의 사람들을 보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그들에게 꼬리가 달렸다는 점!
뭐야 이거? 변장 뭐 그건 아닐 테고, 아하! 드레스코드? 난 또 뭐라고!
그렇게 나는 그 의리 없는 네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나를 보는 걔네들 표정이 왜 이렇지?
「야 너네들 어떻게 나만 빼고! 내가 꼭, 어? '내가 너냐!'라는 말을 듣고자 하는 게 아니라구. 응?」
「어! 여기 어떻게...」
「그게 말이야... 어떻게 된 거지?」
「쟤 연락 안된다며?」
「내 전화기 3일째 조용해. 아니 1주일 내내 감감무소식이라고. 알어?」
「뭔가 착오가 있었을 꺼야.」
「하긴 같이 가자고 했더라도 내가 거절했을 걸.」
「그래~ 여기 시끄럽고 별로 재미도 없어.」
「나도 그렇게 썩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
「누가 너한테 꽉 막힌 남자라고 하던? 누구야? 그 인간 누구야? 어? 내 그 인간 가만두나 봐라. 이 작자를 내 그냥...」
「야! 늬가 더 나뻐. 늬가 더 밉다고. 어? 그 말은 곧 날 이미 꽉 막힌 남자쯤으로 상정하고 하는 소리 아니야? 왜 나머지 말까지 마저 하시지. 응?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라고. 어?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라고!」
「아니~ 그게 있잖아.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거 왜 사람이 살다보면, 어?」
나는 확 그냥 녀석의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늬가 여... 뭐? 난 말이야, 응? 발에 채이는 게 여자야. 어? 알어? 내가 있지, 발에 채이는 게 여자라고. 어?」
「당신은 정말 거침이 없군요.」
「거침이 없기는 뭐가 거침이 없어? 야 너! 나랑 말 놓기로 했잖아. 그리고 너! 우리 이미 친구 먹었잖아. 그런데 너 지금 영화 찍냐! 어?」
「진짜 더럽고 치사해서 아 나 정말.」 ~라는 말까지는 못한 채 나는 롭의 사장실로 돌아갔다.
나는 나이트클럽 사장실에 도착했다.
「너 알고 있었니?」
「뭐, 꼬리 달린 사람들?」
「응. 제발 말해줘. 이거 드레스코드라고!」
「아니야. 그거 진짜야. 고양이의 발톱 같은 거. 쟤네들은 자유자재로 감췄다가 드러냈다가. 무엇을? 꼬리를! 형. 있잖아. 응? 여기가 왜 장사가 잘될까? 왜긴 왜겠어, 쟤네들만 모인다는 불문율이 지켜지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 응? 대체로 같은 인종이랄지 비슷한 형편, 적합한 조건, 적당한 호감에 따라 결혼을 하잖아, 응? 사람들은 그래. 그처럼 쟤네들도 쟤네들끼리만 사랑한다고. 근친혼에 따라 옛날에 의학적 문제가 많았다고 하듯이, 쟤네들도 일종의 부족처럼 합리적인 문화가 형성됐나봐.」
「그걸 나보고, 지금, 믿으라고? 너 사람 너무 진지하게 웃기는 거 아니니?」
「믿으란 말이 아니야. 그걸 어떻게 믿나. 나도 아직까지 못믿는데. 그러나!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응?」
밍밍한 기분과 신묘한 분위기의 부조화. 이건 대체 뭘까!
「하여간 하나 분명한 건 그거야. 쟤네들은 천하에 둘도 없는 괴짜라는 거.」
「간담이 서늘해지게 너 자꾸 왜 그래?」
「괜찮아. 형도 곧 적응돼. 알고 보니 SF 영화들 그거 아예 다 뻥은 아니더라고. 형도 보다시피!」
「나는 마성의 해몽가가 아니야.」
「나도 애가 타는 떠버리가 아니라고.」
「그런데, 응? 저주스럽지만 감미로운 악마와의 친밀감을 나보고 모른 체 하라고?」
「사실인데 뭘! 요정은 모르시기를? 어른이 되면 이처럼 볼 거 보고 할 거 하기 마련이라구. 순진하게 왜 그래? 형답지 않아!」
「나다워? 나다운... 거?」
「그래. 일단 형이 환상의 종결자라는 걸 부인하진 않아. 내가 어찌 사랑의 구원자를 트집 잡겠나. 그렇지만 형은 지금 입회인 자격이야. 뿐만 아니라 못 볼 걸 이미 봐버렸어. 벌써 드라마 주인공이라고. 이제 우린 달릴 수 밖에 없다구. 알겠어? 그런다고 내가 떡하니, 내 꼬리를 보여줄 줄 알았어? 난 아니야. 난 아니라고. 형과 나는 정상이고, 쟤네들은 돌연변이고. 알겠어?」
나는 롭의 긴가민가 농담 반 진담 반인 듯한 말장난 때문에 엄청 헷갈렸다. 종잡을 수 없는 신비함과 예측할 수 없는 기묘함이 함께 했다.
육신에서 마음이 해방되어 심신분리가 되었다. 아니다. 뻥이다. 영혼이 공중부양하니 몸도 따라서 붕 떴다. 진짜로? 아니다, 뻥이다. 신부들러리의 관심에 병풍의 환호가 아닌 진심 어린 반짝반짝, 새콤달콤, 아기자기, 뿌잉뿌잉, 딸랑딸랑! 라는 효과음이 들려왔다. 진짜로 들려왔다. 그런데, 정말로 그랬겠나. 뻥이다. 다 뻥이다. 이런, 젠장! 나는 쥐뿔도 없는 주제에 너무 허황된 꿈만 꾸는 듯 하다. 아무래도 그런 공상은 무자비하게 버리는 게 좋겠다. 어떤 공상이냐면, 새침하고 깜직하며 도도한 그녀와 열렬한 사랑에 빠지기. 별의 별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상상은 도저히 재미없어서 못할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내가 말이야, 젊음이들이 춤 추고 노는 롭의 사업장에서 대체 뭐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에 오늘은 이만 철수하기로 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꼬리 달린 인간? 여우의 통통한 꼬리인지 치타의 길다란 꼬리인지 몰라도, 뭔 말이 되야 믿든가 말든가 하지. 흥!
11
지독한 권태는 그런 것. 아름다운 환상에 빠져들어 시작된 사랑 때문에 다정한 추억에 쫓기고, 달콤한 행복을 꾸밀려고 고민하지 않아도 좋다는 점. 따라서 나는 공포나 증오가 아닌 3번 재미있는 쾌락마를 타지 않으면 안되었다. 제7의 비밀은 내게 공손하지 않는데 그럴 수 밖에. 번호표 뽑는 기계는 진즉 쓸모 없게 되어 내다버렸거든. 그러니까 떨리는 신비와 영원히 절교할 수는 없고, 무작정 새로운 호박마를 기다릴 수도 없으니 3번마에 하는 수 없이 올라타는 수 밖에.
그러나 3번마는 어리둥절한 황금이라는 홍당무가 부족했기 때문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자식이...! 넉살이니 어리광이니? 그렇다고 유난 떠는 허영기를 100퍼센트 충족시키는 당근만 제공하는 건 불가능했다. 짜증 섞인 채찍질에 대한 충동이 이렇게 억제하기 힘들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 결코? 완전 뻥은 아니다. 그렇다고 충동도 말이 안된다. 그 역시 뻥이다. 때문에 나는 참지 못했다. 일단 채찍질을 하는 데 까지 하는 수 밖에. 그런데 문제는 그 채찍질이라는 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러므로 나는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3번마에 나도 모르게 애무라는 카드를 불쑥 들이밀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랬더니 이렇게 무안할 수가! 아이 참 민망하여라. 꺄악~!
그런데 이거 뭐야! 보아하니 3번마가 살짝만 꿈틀대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네? 동화 같은 회전목마는 급기야 제대로 발동이 걸려서 신나는 광마가 되고야 말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딱히 이렇다 할 계획을 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딩~동!
밖에 나가보니 사람은 없고 역시나 상자만 덩그러니 있네.
삶이 드라마구만 그래.
곧바로 나는 소포를 뜯어봤다. 누가 보낸 건지도 모른 채.
그렇게 마지막 포장을 푸르기 직전.
나는 내용물을 추측하는 재미를 좀 더 연장시키기로 했다.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 누가, 어떡하다, 내게! 그런데 왜 하필 지금?
혹시 내가 저번에 원고료 대신 받은 VIP 초대권이 그럼...?
에이~ 설마! 아니지 아니지. 또 몰라. 진짜로?
그럼 내가 저번에 원고료 대신 받은 VIP 초대권......
설마 VIP 초대권을 들고서 초대 장소에 가면 거긴 모두 꼬리 달린 인간들의 집합 장소라고?
에이~ 아니야 아니야. 너무 갔다. 내가 상태가 너무 안좋아졌구만 그래.
그래서 나는 냉큼 소포 박스를 개봉했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웬 선그래스가 들어있었다.
뭐야 이거? 보낸 사람 정보도 없고, 나는 그걸 왜 받았는지도 모르잖아?
뭐냐고 이건!
설마...? 아니야 아니야. 에잇, 말도 안돼!
그렇게 10여분 경과 후.
일단 검색을 해봤다. 나는 인터넷창을 띄우고 입력창에 글씨를 썼다.
"꼬리 달린 사람들"
아니나 다를까 말도 안되는 얘기들과 별 이상한 페이지들이 주로 검색되었다. 그럼 몇 페이지까지 살펴본다? 가만 있자. 3. 7. 12. 13. 24. 32. 34. 40. 95. 105. 125. 140. 212. 400. 401. 418. 419. 440. 521. 666. 999. 1226. 1234. 1977. 1979. 2000. 3000. 3141. 4779. 7371. 8264. 10000. 40000?
아니다 아니다. 그걸 믿은 내가 바보지!
12
행복은 아마도 퇴색됐다. 열정은 주춤하다. 나는 아는 동생들로부터는 응원─애정─총애를 잃었다. 하지만 변덕스런 마음과 싫증에 약한 심정 때문에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열망마에 올라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광마의 고삐를 풀겠나 어쩌겠나. 그래서 나는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서 다짜고짜 별장 루벤스 루벤스로 떠났다. 회심의 역작을 완성하겠다는 목적보다 마음을 비우고서 나는 그렇게 루벤스루벤스로 향했다.
아, 루벤스 루벤스? 그건 칼럼 원고료 대신 받은 초대권 후보군 중 하나로 특별 휴양소 이름이었다. 저번에 웬 다큐멘터리 잡지에 칼럼을 기고해서 품위 유지비 좀 챙길까 했는데, 맙소사 이게 뭔 일이야? 아 글쎄 원고료를 무슨 추첨 티켓으로 퉁 치다니! 살다 살다 별의별, 아니다. 아니야. 노병 앞에서 나이 얘기를 하겠나, 뻔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겠나. 살다보면 내가 가지 가지 유난 떠는 주인공일 수도 있고, 일이 안 풀리면 하다 하다 말도 안되는 기벽에 빠지는 위인이 나이지 말란 법도 없다.
아무튼 이와 같은 썩 신통치 못한 사연 때문에 나는 별장 루벤스-루벤스로 떠난 것이다.
루벤스-루벤스는 VIP 초대권 목록에 떡하니 등재된 후보였기 때문이다.
원고료 대신 받은 VIP 초대권. 왜 VVVIP가 아니고 VIP냐를 따지고자시고 할 것도 없이, 생긴 거는 일단 쓰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별장 루벤스 루벤스에 도착했다.
루벤스 루벤스는, 에잇 되게 기네. 그냥 루벤스 루벤스라고 하지 말고 루루라고 약칭하자. 루루는 별장 단지였다. 그 가운데 배정된 방에서 할 일 없이 인터넷이나 뒤적거리며 쉬었다. 이런 글을 구경하면서.
"하나를 가지면 축하를 받고, 열을 가지면 시기를 받고, 백을 가지면 아부를 받는다."
그러다 나는 멀리까지 와서 실내에만 있기 뭐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일단 산책부터!
그런데 어떻게 이런 우연이! 여기까지 와서 샐리를 우연히 만나다니.
오, 샐리!
「샐리. 예뻐졌네?」
「감사 감사. 오빠 고마워. 그런데 있잖아, 오빠 공부 안해?」
「공부? 내가 공부를 왜 해?」
「아 맞다. 오빠 학생 아니구나.」
「응. 난 학생이 아니야. 그렇지만 너의 잔소리는 언제나 환영.」
「오빠 설마 나 미행한 건 아니지? 그런데 어떻게 여기서 다 보네! 와 반갑다.」
샐리와 샐리의 친구가 고기를 먹고 싶다길래, 그렇게 우리는 고기를 먹으로 갔다.
음식점에 도착했다.
고기를 먹고 어쩌고는 건너뛰고.
그렇게 우리는 고기를 먹고 음식점에서 나왔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카페에 갔다.
「오빠. 나 하나 고백할 게 있어. 실은 있잖아. 나 자꾸 환청이 보이네? 환청? 아 그건 들리는 거고, 이건 보이니까 환시구나. 아님 환각인가. 어쨌든 그게 말이지, 오빠 다리가 대리석으로 보여. 내가 살짝 만져보면 안될까?」
「뭐? 야릇한 친밀감이야 아니면 짖꿎은 장난기니?」
「둘 다 아니야. 그렇고 그런 농담이 아니라, 나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정말?」
「어. 진짜.」
「나도 전에 딱 그런 증상이 한동안 지속된 적이 있거든.」
「와. 정말?」
「응. 좀 심했어. 그렇지만 아직 완치된 건 아니야.」
「어머. 그래?」
「그런데 우리가 꼭 이런 주제로 대화를 길게 해야 하니? 거 어째 영 이상하군 그래.」
「그러게 말이야.」
「그럼 이제 남자친구들 올 시간 됐겠네?」
「어머머머머! 오빠. 와, 대박! 어떻게 알았어? 와, 소름!」
뭐, 진짜라고? 이런, 젠장!
바로 이런 걸 죽 쑤어 개 줬다고 할까? 농담이고.
바로 그때 그녀들은 핸드폰으로 이러쿵저러쿵 대화했고, 다음으로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임을 그만 인정했다.
그렇게 안녕 하며 그녀들은 나를 떠나갔다.
뭐야 이거?
실낱 같은 희망이 일렁이기만 해도 열정이 새롭게 꿈틀거려야 하는데, 뭐 내가 하는 일이 매번 이런 식이지.
환상적인 광희에 흠뻑 젖을 거라는 기대감, 이미 포기했다. 가상의 연적을 향한 아기자기한 질투심, 있을 턱이 있나. 생생한 공포심에 따른 심술궂은 쾌감마저 바닥났다.
그래서 나는 저번의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난하지 말고 나 심각하다며, 롭을 낮에 맞나서 따지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짐을 싸서 롭을 만나러 갔다.
13
칙칙한 여건에 따른 불쾌한 삶. 그리고 달갑지 않은 불행. ~에서 아름다운 애인과 축복 받은 가정 그리고 쾌적하고 기쁜 인생으로! 저주를 깨고 환희에 젖어 전무후무한 행운아로 환생하기.
~라는 공상이 실현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으면 그 얼마나 뛸듯이 행복할까!
하지만 결코 평탄치 않은 세상살이. 슬럼프를 탈출하는 묘미라는 게 있는 법. 그 재미에 제대로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는 것. 하늘은 누굴 돕고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는다고도 하지 않나. 그래서 우리는 천운을 읽고, 길일을 택하며, 은인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개구쟁이이자 심술꾼에 능청꾸러기로써, 넉살을 남발하고 허풍을 일삼던지 어쩌던지. 그렇게 활기는 온 데 간 데 없이 그 종적이 묘연하네? 고로 나는 깜빡하면 상심하고 여차하면 깊이 절망할 뻔 했다. 자칫 잘못했으면 말이다. 곧 특별한 숙명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복은 날 잊지 않았고, 낭만마저 날 믿었던 것이다. 그럼 난 쾌활한 여복에게 든든한 신뢰를 얻었을까? 그러든 어쩌든 지금 내게 새로움을 안겨줄 전주곡 객관식 보기는 딱 5개였다.
첫째, 베토벤 운명 교향곡 제5번 시작부. 빰빰빰빠~ 빰빰빰빠~!
둘째, 폴 모리아 악단의 달콤한 경음악 멜로디. 샤라라라라라~ 샤라라라라라라~ 샤라라라라라~ 라라~ 라라~...
셋째, 후보군이 너무너무 많은 추억의 유행가들.
넷째, 마술피리 가운데 밤의 여왕의 아리아랄지 명-소프라노가 부르는 클라이막스.
다섯째, 애스턴 마틴과 007. 징지리징징 징징징 징지리징징 징징징...!
그런데 묘한 운명의 장난이었던 것일까? 하필 내가 가상으로 들은 환청은 딱 그랬다. 띠리리리리리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그 광고용 음악을 뭐라 그러지? 딱 생각이 안 나는데, 어쨌든 뽑힌 불길한 주인공은 트럭 후진할 때 CM송! 캐롤송도 아니고 테이프 늘어진 듯... 그만 그만.
마침내 담판을 짓기로 한 결전의 장소에 도착했다.
롭 대 나!
나 : 롭!
세기의 승부.
회심의 대결.
(벌써부터) 추억의 명승부.
꼬리 달린 인간. 아예 속시원히 녀석이 이렇게 말해주기를 바랬다.
형! 그거 다 뻥이야.
그럼 나는 정말로 후련할 것만 같았다. 그래야지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듯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마음 놓고 VIP 초대권을 남발하면 놀러다닐 수 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그거 다 뻥이야! 형. 설마 믿은 건 아니지? 그렇지?」
「내가 바보냐! 얘가 얘가 형을 뭘로 보고..., 어? 너 자꾸 그렇게 형을 띄엄띄엄 볼래? 어?」
「에이 형. 농담이야 농담. 왜 그래? 그렇게 정색하니까 오히려 더 이상하잖아. 마치 미신을 진짜로 철썩같이 믿었던 사람처럼 말이야. 안 그래?」
「응? 그건... 형이 다 너 심심할까봐, 응? 형이 그런 사람이야. 어? 알어? 늬 말마따나 만에 하나 정말 인간한테 꼬리가 달렸다고 치자. 그럼 그걸 누가 믿냐! 일찌감치 극장에서 잠이나 자는 게 낫지. 안 그래?」
「이 형이 이제야 나랑 말이 통하네. 다시 예전의 형으로 돌아와서 축하해!」
「롭. 취미 삼아 여기나 가봐.」
그러면서 나는 환상극 코스프레 대회 VIP 초대권을 녀석한테 내밀었다.
「뭐야 이거? 여기 재미없다고 소문난 덴데. 형! 다시 옛날로 돌아가면 어떡해? 정신 차려! 아 쫌!」
14
아아 VIP 초대권이 몇 장 남았더라? 한 장, 두 장, 세 장...... 에잇. 세기도 귀찮네. 아직도 많이 남았다는 걸 확인했다.
오늘은 살롱에 가는 날이다. 남은 VIP 초대권 중에서 무작위로 고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초대권에 안내된 약도를 보고서 살롱으로 갔다. 도착했다.
뭐야 그냥 그런 술집이랑 비슷한데. 조그만 무대가 있고, 손님들이 간혹 나가서 노래 부르고. 끝.
그런데 바로 그때.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 숙녀네? 그런데 초면이 아니네? 그녀는 바로 릴리였다.
「오빠. 여긴 어쩐 일이야?」
시시콜콜한 얘기는 건너뛰자. 재미 하나도 없으니까.
그 다음으로 릴리가 드디어 이제야 그 마술을 숙달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즉시 내게 시연했다.
그녀의 손은 내 가슴을 통과했고,
그녀는 준비했던 수갑으로 자기의 양손을 결박했다.
이때 스르르르 나는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살롱에는 나 혼자만.
마담의 독촉. 가게 문 닫아야 한다나 뭐라나.
그래서 나는 그날도 꽝이라면서 집에 갔다.
그렇지만 그날의 절정은 아마도 간밤에 꾼 꿈인 듯 했다.
왜냐하면 꿈의 내용이 그야말로 부인할 수 없는 개꿈이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퇴근하는데 거리에서 분홍색 밧줄을 보게 됨. 그 밧줄을 따라감. 계속 계속. 골목으로, 거리로. 그러다 어느 대형 광고판 앞에서 멈춤. 분홍색 밧줄은 광고판에 부착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대형 광고판 그림이 무엇이냐? 하면 꼬리 달린 요염한 숙녀 사진. 당연히 자세는... 이렇게... 흐흐흐... 딱 돌아보면서... 허허허... 호호호호호! 그렇게 나는 그림을 감상하다 깨달았다. 왜 내가 여기까지 따라왔는지를. 그래서 나는 분홍색 밧줄을 잡고서 그걸 힘껏 잡아당겼다. 그랬더니 글쎄...? 그녀가 대형 광고판에서 빠져나오면서 내 얼굴에 자기 엉덩이를!
바로 그때 꿈에서 깨어남. 깨어나 보니 곰인형의 엉덩이에 나는 얼굴을 쳐박고 있었던 것이다.
저런!
15
최근 내가 했던 일은 이랬다.
만화영화 신밧드의 모험 관람. 오페라 마농레스코 보기. 어떤 묵시록 읽기. 드라마를 보며 마키아벨리를 떠올리기. 야바위꾼과 삼류 허풍쟁이들이 몰린다길래 자랑대회 출전 포기 결심. 아침에는 칸타타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모처럼 기도 드리기. 낮에는 천사에게 데이트 신청, 저녁에는 약속이 빵꾸나서 요정들과 놀기. 밤에 유명 추리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길래 일행과 극장에 가기. 그러다 깨어보니 새벽 4시. 영화관에 홀로 갖힘.
진짜로? 뻥이다. 싹 다 뻥이다.
실은 내 근황은 이랬다.
사랑은 운명. 쫓겨나지 않은 것만도 기적. 망하지 않았으니 다행. 근근히 품위 유지비 간당간당하니까 행복. 뜬금없이 VIP 초대권이 왕창 생겼으니 감동.
여기까지가 내 솔직한 근황이었다. 도대체가 말이야, 이게 뭐지! 근데 말입니다, 이게 뭐냐고! 이러니 내가 정말 공상을 하고 또 하지 않게 생겼냐고. 이제 그마저도 (딱) 소리를 내고 마음만 먹으면 즉각 됐다. 정말로 그래 볼까? 자, (딱)!
설마 나는 타락을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럼 나는 방탕을 친애하느냐, 하면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탕진을 사랑한다? 응, 그렇다. 뭐? 아니다. 뻥이다. 내게 야비한 탐욕은 당치도 않다. 밤의 제왕이란 타이틀이 내게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나는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지도, 환상의 주인공으로 낙찰되기를 간구하지도 않는다. 심심하지만 그럭저럭 열심히 사는 일상에 특별히 염증을 느낀 것도 아니다. 사치에 대한 유혹, 복종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왜? (몸짓)! 그런데 왜! 왜, 뭐?
아마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는 욕구와 마음대로 뭔가를 해도 된다는 자유의지에 문제가 생긴 것만 같다. 우선 놀기만 봐도 너무 막연했고, 감미로운 휴가에도 단호히 시간을 할당하지 못했다. 그럼 혹시 나의 젊음은 끝난 것일까? 아닌데, 그럼 곤란한데 그러면 안되는데! 너무너무 섭섭한 말씀임에 분명하다. (소곤소곤 소심하게 조용조용) 이런, 젠장! (다시 웅크렸던 꾸부정한 자세를 슥~) 그러고 보니 어느새 주요 수치는 모두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자존감, 자존심, 자신감, 긍지, 허영심, 허세, 허풍, 허언증. 거기다 리셋 증후군까지. 어쩌면 이건 모두 내가 너무 접속사에 지나친 애착을 느껴서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끊고 맺기를 못하고서, 계속 챗바퀴만 굴리고 있는 거다. 자, 보자! 나는 옛날에 런닝 머신을 팔았고, 지금은 환상머신을 가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어느 세월에 완성을? 이러다 구경꾼들이 밑도 끝도 없이 타임머신을 들고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변화가 필요했다. 새로움은 필수였다. 그런데, '그런데'도 필요없다. 그래서 나는 따라하기 카드를 즉각 꺼내들었다. 영화 주인공이 TV를 보다, 쟤, 하고 찍어서 지목된 당사자가 집에 초청되어 납시는 일. 나도 TV나 인터넷을 보며 뭔가 하나 찍기로 했다.
그러나! 찍으면 뭐할 텐가. 더군다나 이제는 따라하기도 잘 하지 않는데 찍기는 무슨 찍기.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VIP 초대권을 꺼내들었다. 다 쓸 때까지는 이것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감독과의 만남이었다. 에로영화의 거장, 이 아니라 공포영화의 신성으로 떠오르는 명감독과의 만남이었다.
그렇게 나는 행사장으로 행했다.
룰루랄라~ 라는 콧노래를 흥얼거리지는 않았다. 기분이 그냥 그랬으니까.
그렇게 나는 행사장에 도착했다.
떡하니 걸려있는 글씨는,
감독 누구와의 만남!
그렇게 나는 조명이 약간 어두운 실내에서 감독과의 만남에서 오고 가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딱 제일 뒷자리에서!
그러다 나는 슬그머니 선그래스를 끼었다. 저번에 소포로 받은 선그래스를 말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어라~! 보이네? 진짜로 보이네!
선그래스를 꼈더니 진짜로 보였다. 와우~!
선그래스를 끼면 꼬리가 보이고, 선그래스를 벗으면 꼬리가 안 보이고!
(딱) OK~! 걸렸다 딱 걸렸다. 새로운 발견. 신-인류는 내게 완전 딱 걸린 거지.
이때부터 나는 엉덩이가 근질근질한 게 아니라 바로 입이 근질근질할 수 밖에 없었다. 양치기 소년은 하루 아침에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어버린 거다.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아!
이런 날은 지글지글~ 고기를 구워서 먹으며 술 한 잔 해야 하는데! 그런데 1잔을 누구랑 하지? 아 나 이거 정말, 입이 근질근질 이거 대체 어쩌면 좋냐고. 미치겠네 미치겠어.
이건 가히 저번의 통조림 환상을 훌쩍 뛰어넘는 대성과였다. 이 정도면 가히 중증이 아니라고 부인하기는 퍽이나 어려울 듯. 물론 본인은 새까맣게 모르겠지만서두. 드디여 걷다가 땅바닥에서 깃털 하나를 보고서 나무의 나뭇잎으로 인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 축하해야할지 따끔히 혼내야할지 심하게 헷갈리기 때문에 잠깐 1인칭 주인공 시점이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뀔 뻔 했다. 다시 돌아와서. 일단 감독과의 대화라는 행사는 그저 그렇게 별 내용은 없는 듯 했다. 말은 엄청 많은데 모두가 다 잡지와 인터넷에 나오는 얘기들 뿐이었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얘네들이 모두 꼬리가 달린 족속이라고? 아니 아니 희귀한 신-인류라고? 음하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나는 도저히 말하고 싶어 미칠듯이 근질근질한 충동을 잠재울 수 없어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그나마 상상력이 0점은 아닌 존티를 불러냈다.
16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니?」
「너가 믿기 싫으면 믿지 않아도 돼. 그렇지만 그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거든.」
「그래서. 사진은?」
「현장감을 원하기만 한다면 항상 느낄 수 있는데. 그런데 그게 왜 필요해?」
「동영상은?」
「없어.」
「그럼 뭘 가지고 나보고 믿으라는 거니?」
「상상력!」
「상상력?」
「(끄덕끄덕)」
「(검지를 펴서 귀 옆에 붙이고 빙글빙글)」
한 번 더! (검지를 펴서 귀 옆에 붙이고 빙글빙글). 뭐야 재밌자나? 한 번 더... 이런 젠장!
「진짜야. 진짜라고. 아 진짜라니까.」
「무슨 근거로?」
「왜냐하면 진짜니까.」
「너 어쩌다 이렇게 상태가 안 좋아졌니? 아 나 정말, 얘 전에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약은 먹었니?」
「뭔 약?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는데! 그래서 못 먹었지. 내가 약을 왜 먹어?」
「아 참 나, 이 친구야! 정신 차려. 어? 정신 좀 차리라구. 제발!」
바로 그때 비상벨이 울렸다. 건물 비상벨이 아니라 내 핸드폰에서.
기막힌 순간에 레이저 시스템 가동이라니. 환상의 서곡! 발동은 이제 버릇이 되었다.
「친구. 나 바쁜 일 있어. 먼저 가야겠네. 레이저 시스템이 내게 알려왔어. 침입자가 있다고. 장난이 아니야. 어? 장난이 아니라고.」
「늬가 더 장난이 아니다. 정말 가지 가지 한다. 어?」
그렇게 나는 존티와 헤어진 다음 곧바로 사무실로 갔다.
가면서 생각했다. 침입자라니? 혹시 꼬리 달린 인류의 대장격이 내게 용무가 있나? 아니면 사신단! 아니지 아니지. 몰래 정체만 파악할려다가 딱 걸렸을 테니까 설마, 요원? 어쩜 좋니 어쩜 좋아!
나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도착 완료.
그런데 뭐야, 아무도 없잖아! 이런...!
그렇지만 꼭 나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닐 것이다.
이건 아마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마침내 전문가 중의 전문가가 붙었다고. 그 분야의 1인자. 딱 1명. 정체를 그 누구도 모른다는 바로 그 그림자. 007은 정보가 많이 노출됐지만 그래서 제임스 본드는 제이슨 본을 탄생시킨 것일까? 짜잔~! 아무튼 이제는 내 차례가 됐군. 허허허허허!
그렇게 1주일이 지났다.
다시 반복해서 알림.
1주일 경과.
1주일 경과.
1주일 경과.
반복해서 말했다 뿐이지 딱 1주일만 경과했다.
그래서 결과는? VIP 초대권은 모두 바닥났다. 그럼 이제 꼬리 달린 사람들을 볼 수 없다는 건가? 초대권을 보낸 소포에... 주소는 없고 이름만 써있었는데...! 거기가 원고를 청탁한 중간 브로커? 그럼 난 중간 보스야 뭐야!
검색하고 어쩌고저쩌고 해서 나는 처음에 내게 원고를 청탁했던 여성잡지1.5의 정보를 알아냈다.
이제 여성잡지1.5는 내게 혼쭐 나는 일만 남은 것이다.
17
나는 고집불통에 상스럽고, 파렴치하며, 방자한 놈일까? 그 죗값 때문인지 멍청해진 듯 아닌 듯 하여, 어딘가에 명함을 내밀어도 될지 어쩔지 잘 모르겠다. 치졸한 눈썰미와 몹쓸 허영심 때문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면 설마 나는 없어-증이 아니라 '모른다'병에 걸린 건가? 그야 어쨌든 저주 받은 타락마에 올라타 값싼 쾌락만을 추구하며 파멸을 권장하지 않으면 그만이겠지. 이제는, 이 아니라 원래 그런 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금지된 욕망, 하늘만이 허락했을지도 모를 우연이 연속되는 행운마 타기.
때문에 그걸 모르지 않으니까 나는 애초에 야망이란 걸 키우지 않았다. 바로 말하자면 나는 재능마를 안탄 게 아니라 못탄 거였다. 그러니까 나는 잘난 척이 자기 비하를 월등히 압도한 적이...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닌가? 아니었으면 좋을까! 좌우지간 이제 그만 개 짓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나는 당면한 문제에 집중해야 했다.
곧 자랑 대회, 허풍 대회, 허세 대회의 출전 자격 얻기. 왜냐, 행복한 일하기에 직결되는 사안이니까. 그런데 어쩌면 좋아? 자, 봐봐! 나는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며, 잘난 척 못해서 한이 맺힐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왜일까? 왜냐하면 내가 탄 명마는 하필 비리비리한 나태마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귀찮고 못하며 꺼벙하면 일단 때를 기다릴 수 밖에. 고로 나는 또 다시 달콤한 놀기에 대한 명분을 어렵싸리 획득한 셈이다. 예술가라는 직업이 이래서 좋을까? 배우도 그렇다. 놀아도 노는 게 아닌 것이다. 단지 통장 잔고는 줄어들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마땅한 황금,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합리적인 인기, 핸드폰은 너무너무 얌전하다 못해 공포 영화의 주인공감이다. 자길 건드려서 좋을 거 없다, 자기가 바빠지면 속설이 화자되고, 자기가 시끄러우면 미신이 기세를 얻는다나 뭐라나! 마치 그처럼 녀석은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앵그리 버드나 그럼피캣 같다.
그러나! 내게는 바로 초대권이 있었다. 두둥~! 그거 아직 안 떨어졌냐고요? 나도 원고료 대신 받은 무료 초대권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초대권이 진작 떨어졌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우주를 다 가진 기분까지는 아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라고 해도 어차피 뻥인 걸 누가 모르겠나. 뻥이든 아니든, 긴말 필요없고 나는 곧바로 떠나기 위해 서랍을 열어봤다.
그랬더니 글쎄, 없네?
초대권이 없네?
바닥났네!
진짜로 바닥났네.
1장도 없잖아?
초대권은 0!
뭐야!
저런!
(조용조용) 이런, 젠장.
바로 이렇게 해서 나는 잊혀진 기억을 되살려냈다. 초대권 탕진 & 여성잡지 1.5의 정보 파악 완료. 그래서 이제 여성잡지 1.5 본사에 따지러 찾아가는 일만 남은 것이다.
나는 곧바로 출발했다.
가보니 멀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여성잡지 1.5 본사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한 장소는 이미 다른 매장으로 바껴 있었다.
그래서 딱 돌아설려던 그때! 저 깊숙한 구석지에서 브랜드마크 SPAFINALE를 발견. 뭐야 여긴 그럼 데이빗 커퍼필드의 은거지란 말이야? 아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또 엮이면 안돼. 실체는 없어. 말려봐야 허황됨. 감겨도 감길 때뿐. 그래서 나는 과감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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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의 희망은 행복한 탐욕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것일까? 그렇든 아니든 하찮은 몽상일 뿐이다. 그러면 뭐가 중요할까? 그저, 일상은 가련하고 인생은 한심하지 않기를! 그래서 그분들께서 쉬지 않고서 형편없는 우기기를? 그러거나 말거나! 달콤한 사랑과 아름다운 행복이니 그건 너무 뜬구름 잡는 공상 같으니, 나도 차라리 하이에나의 가면을 써볼까? 파블로 피카소의 인물화처럼 난 원래 늑대의 야성미를 간직했을 테니, 그러니까 이미 옛날에 늑대 세계에서 1.5인자로 업혀갔던 것 아닌가. 고로 나도 벌써 절반은 참새니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겠다. 하지만 삶은 유쾌하기보다 심심함을 편애하니 한번쯤 중간 점검을 해볼 필요는 있다.
즉, 촌닭&뱁새 명콤비가 꺼려하는 4대 요소. 인정─부럽다─자조 개그─병풍!
참고로 부럽다를 저분들은 이렇게 대체한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또는 늬들은 좋겠다 라고!
인정. 넌 늙었음을 과감히 인정해라? 헛기침 소리가 즉각 들린다. 그럼 불행함을 인정할까? 그건 묘비명처럼 과거형이 어울리니 현재형으로 말하자면 흔쾌히 인정한다. 곧 재미없음을! 언제는 뭐 안 그랬나. 다음으로 부럽다? 어복─여복─재물복,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 아니라 부러워하지 않는 게 지는 거다. 부러워해도 변하는 건 없으므로, 따라서 내 부인...... 어쩌고저쩌고 하등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족과 선망은 전혀 다른 얘기다. 이마에 '난 뱁새요'라고 쓴 채 광고할 일 있나. 얘기가 살짝 인문교양쪽으로 흐를 뻔했다만,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자조 개그는 생활이고, 신부들러리에 대해서도 할 말 있다. 일단 어디서 병풍 설 일 자체가 없다. 예전처럼 신랑 하객 도우미라도 다시 하고 싶다. 신부들러리 전담 요원 1.5와 2.0의 통쾌한 심정. 벤치멤버가 어찌 알겠나. 그렇다고 그분들 트집은 멈출 수 없다. 어떻게? 젊지 않음을 그만 상쾌하게 인정하시오 라고! 장난하나, 장난해? 명문대 과티를 이미 사지 않았나! 뭔 말이 더 필요한가. 뭔 설명이 더 구구절절히 요구되냐고, 참 나! 동네 형의 누나들과, 내 친구의 누나들이 선정한 어떤 순위는 그분들 마음이었거든. 그거 다 병풍 덕분에, 응? 단지 그 때문이라고!
아하! 두서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다보니 이제 알겠다. 나도 몰랐는데, 하고 싶은 말과 발동하는 욕구가 무엇인지가 선명해졌다. 그 망설여지는 충동은 곧 이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뱁새와 참새 근처에만 있으면 귀찮고, 뭔가가 꼬이며, 아웅다웅 티격태격 짠할 수 밖에 없다. 하향 평준화도 모자라 모든 것이 불쌍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할 수 밖에. 적당한 게 좋을 때가 있고, 열광해야 할 때가 있다. TV만 보면 멍청해지고, NC에 수시로 들락거리면 문란해질 여지가 있다. 하수와만 바둑을 두다 보면 눈높이가 비슷해진다. 그냥 허당들과 자꾸 어울리다보면 은근 허당도 푼수 되는 건 시간 문제다.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바보 대회가 따로 없다. 때문에 어설픈 허세로 인해 귀에서 피가 나고, 허풍 대회는 점점 멀어져만 가기 마련. 그러니 기분은 내내 꿀꿀하고, 분위기는 커피포트를 연상시킬 수 밖에.
따라서 결론은 명확해졌다. 제비 친구들을 만나야 한다. 파랑새와 사귀면 좋겠네. 고급 사교계에서 마담 뚜쟁이, 아니 아니 큐피트로 활약하자고! 자, 떠나자. 그런데 어디로?
어디가 됐든! ~라는 배짱, (응)배짱은 이미 바닥나버렸다.
그래서 나는 친구 조지를 만났다. 왜냐, 남성잡지를 운영하니까. 소식에 민감할 듯 해서. 내게는 뭐든 특종일 테니까.
「야. 짹! 들었어?」
「뭘 들어? 듣긴 뭘 들어!」
「왜 그렇게 퉁명스러워? 새똥이라도 맞았니? 바나나 껍질을 어쩌다 놓쳤는데, 마침 뒤따라오는 사람이 제대로 밟아서 미안한 거냐고!」
「아니야. 그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지, 뭐.」
「아무튼. 들었어?」
「듣다니!」
「공개됐데. 아 공개됐다고.」
「뭐가 공개됐는데?」
「꼬리 달린 신-인류가. 와, 놀라워. 난쟁이 말고 난쟁이보다 훨씬 작은, 난쟁이 10분의 1보다 더 작은 소인이 있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증명된 게 없어. 그렇지만 어떻게 쟤네들은 정체를 드러낼 생각을 했을까?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딱 전면에 나선다는 건, 어떤 의도가 있다는 뜻 아닐까? 오락산업 아주 난리 났다니까 그러네.」
「뭐 진짜로?」
「아니. 뻥이야! 당연히 뻥이지. 어떻게 뻥이 아닐 수 있겠니!」
「뭐-뭐? 뭐가 어쩌고 어째?」
「야 한번 생각을 해봐. 아직도 그런 말도 안되는 얘기에 속는 사람이 다 있다니, 것 참 (쩔레쩔레)!」
이로써 나는 롭에게 엮여서, 녀석의 허풍에 놀아난 일은 깨끗이 잊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말려도 그렇게 말리지? 무슨 뭐 꼬리 달린 인간? 하긴 롭의 사장실에서 실시간 영상으로 친구들을 볼 때는 좋았어. 딱 거기까지는 괜찮았다고. 그런데 그 뒤로 이건 뭐냐고. 괜히 이상한 원고 청탁 하나 잘못 받아가지고, 느닷없이 VIP 초대권만 쑤두룩하니 생겨서 뜬구름 잡는 방황만 한 게 다 잖아? 이제 그만 나는 평정심을 찾기로 했다.
19
결론적으로 간추려보자면 인생 희극의 두 마리 토끼는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첫째 바보의 사랑, 둘째 젊음의 행진.
첫째는 더티러브가 전부는 아니기를 바라고, 둘째는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라는 성과만 따지기엔 너무 매몰차다. 그렇지만 지금 세상에 누가 뜬구름 잡는 이상만 추구하겠나. 파란 하늘, 사과나무, 칵테일과 병풍, 본드걸과 영화, 2층 연인의 방을 바라보며 부르는 세레나데. 그리고 소원과 기도. 그렇든 어쩌든 세상의 숫자는 비정할 정도로 빈틈없다. 행운마도 구경하기 힘들다. 우리는 오락산업과 핸드폰-인터넷이 장악하는 가상현실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대부분 현실은 냉엄할 정도로 신부들러리 일색이다. 심지어 미래의 희망은 멀리 있고, 어제의 대망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휴가라고 해 봐야 방구석에서 배달 음식 시켜 먹기고, 주말에도 빈둥빈둥 재미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귀족적인 낭만이니 다정한 환상이니, 아마도 마지막 찐한 사랑이 그 언제였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 사람이 쑤두룩할 걸!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 남 걱정만 하고, 무턱대고 밤의 세계만 동경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또 다시 초대권을 꺼내들었다. 또 초대권? 아 맞다, 초대권은 바닥났지. 내 정신 좀 봐. 어쩌다 난 그 좋은 VIP 초대권을 모두 탕진한 것일까. 그렇지만 한동안 꿀 같은 접대를 받았으니, 그동안 품위 유지비가 좀 굳었다. 그 생활비를 모아서 이번에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서 합당한 대우를 받기로 했다. 예전부터 시간 나면 한번 들려서 쉬고 올까 해서 즐겨찾기에 등록해뒀던 사이트. 나는 그 호텔 사이트로 들어갔다.
괜찮네. 음 별달리 흠 잡을 데 없구만. 안 나빠. 흐흠. 정말 가도 될까? 즐거웠던 마지막 크리스마스와 짜릿했던 마지막 밀애가 있었나, 없었나를 회상해보는 일을 거기서? 딱히 불합리한 일은 아니네. 고로 나는 고민없이 초대장에 안내된 호텔로 떠나기로 했다.
홈페이지 내용을 봐서는 푸르른 해변, 야자수, 비키니, 공포 이벤트, 칵테일 대회등 광고는 일단 속을 만 했다. 지인들은 연락하기엔 다 바쁘고, 친구들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고.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히 알던 여동생을 만나기. 솔직히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작품 구상일 뿐.
그렇게 나는 호텔 다이애나 다이애나로 떠났다.
20
나는 호텔 다이애나 다이애나에 도착했다.
첫째 날.
다이애나 다이애나 호텔 내 미술관 구경. 아는 작가도 있고 모르는 작가도 있고. 내가 알 정도의 미술가 작품들이 많다니! 그런데 어느 그림 앞에 서는 순간 나는 찌릿찌릿 정신이 즉각 혼미해졌다. 당시는 그럴 정신도 뭐도 없었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그건 바로 A가 B의 가슴에 손을 넣어 자신의 양손을 수갑으로 결박한 그림이었다.
그렇게 나는 졸도했다.
미술관에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때마침 날 뒤치다꺼리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나 보다. 아닌가? 아니지. 나야 잠시 정신을 잃고서 꿈꾸다 일어나면 그뿐이지만, 그쪽 역할은 또 다를 테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나는 갑자기 졸도한 것일까? 나도 모르겠다. 의학적으로 면밀히 따져보자면 원인이 있긴 있을 텐데, 거기까지는 알 수 없고. 설마 나의 잠잠한 바람기를 건드린 것일까?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잠잠하든 떠들썩하든 바람기 자체가 없기 때문에. 진짜로? 아마도! 건성건성 하는 둥 마는 둥 놀러다니면서 일하기라고 핑계 대느라 바쁜데? 변명이야 만들어내자면 밤새 만들어낼 테니까. 예를 들면 이런 식. 철들기 전에는 놀기에 전력. 행복하게 사랑할 땐 그 사랑에 전념. 그리고 천직을 찾았다면 재밌게 일하기에 전심을.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졸도했냐? 몰라 모른다고. 그럼 넘어가고. 그걸 가지고 달콤한 행복을 예감하는 황홀감이라고 소문 낼 수도 없고, 제법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를 찾아나설 수도 없고. OK! 통과.
그렇게 첫째 날은 마무리됐다.
그리고 둘째 날.
첫째 날의 깊은 잠은 둘째 날까지 이어졌다.
나는 귀빈실 침대에서 깨어났다. 그러자 내 앞에는 아리따운 처녀...는 아니지만 고운 여사장님이 계시네?
「깨어나셨군요. 손님처럼 꼭 그 그림을 보면 잠시 정신을 잃는 손님이 꼭 한 분 계셨죠.」
그런데 어째 그윽한 대사를 너무 일찍 구사한 느낌, 나만 느끼는 감정일까?
차근차근 알려주셔도 될 사연인데, 내가 거쳐야 할 과정이 꽤 방대하다는 건가?
그럼 뭐 나도 기꺼이 흐름에 맞춰 응대할 수 밖에. 그렇다고 역정을 내겠나 쾌차했다며 노래를 부르겠나. 괜스레 폐 끼쳤다며 결례를 범했다는 인사치레도 딱 생략. 중요한 대사 위주로만. 순진한 관중의 수줍은 물개박수 따윈 필요없다 라는 자세, 이런 건가. 언짢은 가난쯤이야 신경 쓰지 말자 라는 호쾌한 태도, 얼마나 좋아. 아이고야 참 나, 이거 정말 너스레만 늘고 또 느니 큰일이다 큰일이야.
「실례지만, 아닙니다. 그렇지만, 아니죠. 그런데 말입니다. 음, 아니에요. 그래도 그게 있죠 이런 말씀 드려도 될려나 모르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듯이 사연이라는 게 또 들으면 궁금해지는 것 아닐까요? 심지어 제가 주인공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크나큰 실례가 아니라면 슬쩍 여쭙고 싶군요. 저보다 앞서 큰 충격인지 감동인지 그 때문에 아기가 됐던 분은 어느 귀인이신지를! (깜빡 하면 나는 이 말을 덧붙일 뻔 했다. 그 양반 싸움 잘하요?) 그분이 누구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라고 조심스레 물어본다는 건 이미 물어봤다는 거라서 좀 경황스럽군요. 허허허.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다면 말씀하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렇게 물어본 그 자체가 일단 결례일 테니까요. 꼭 묘한 우연을 빙자해 일부러 사심이 동한 건 아니란 것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런데 호텔 사장님은 진짜로 그때부터 딱 입을 다무셨다. 뭐야? 그럴 꺼면 아예 말을 말든가. 어? 난 뭐냐고! 사람 달아오르게 해놓고, 뭐, '안달나지 않으셨죠'야 뭐야! 혹시 성격 테스트는 아닐 테고. 여기서는 친해지는 정형이 혹시 이런 식인가? 그야 유감스럽지만 더 이상 캐물을 수도 없고 해서 나는 얼른 일어나서 자리를 뜰 뻔 하던 바로 그때!
바로 그때.
「우리 호텔 스카이라운지의 전속 도박사예요.」
여사장님은 연애술사야 뭐야, 왜 내 마음을 쥐락펴락 하는데?
AVANTE─BACK─AVANTE─BACK! 내가 뛰노는 말이야 일하는 기계야! 지금 리모콘 가지고 장난해?
나는 그렇게 반나절을 그럭저럭 보낸 다음 저녁이 되어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왜냐하면 스카이라운지에 올라가서 거기 전속 도박사라는 루시양과 세기의 대결을 펼친다는 기대감 때문에.
그렇게 나는 곧장 그곳으로 갔다.
그렇지만 가는 날이 장날? 그녀는 없네. 하물며 언제 올지 모른다고 하네? 뭐라고!
나는 호텔 다이애나 다이애나 생활 셋째 날이 되어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러나 또 바람 맞았다.
그러다 넷째 날. 나는 마침내 그녀와 조우할 수 있었다.
21
「손님. 혹시 블랙잭 할줄 아시나요?」
「내가 블랙잴을 할줄 알게요, 모르게요?」
「어머. 짖꿎은 오빠네.」
「루시양. 우리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그 정도는 꿰뚫어보는 심미안... 아하! 저는 낭만파가 아닌가 보군요. 그렇다고 기분파로도 보이지 않을 테고. 곧 전문가임을 스스로 자랑하긴 싫고.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는 행운. 그걸 제게 양보하시겠다?」
「손님 얘기 참 어렵게 하시네. 대체 할 말을 몇 번 꼬신 거에요? 그 비꼼 속에 도사린 적의는 따로 없는 듯 하오만. 오빠. 으흥?」
「내가 그랬나?」
「사장님에게 말씀 들었어요. 어떻게... 아니네요.」
「뭐 그건 그렇고. 가르쳐 주신다면 배울 용의는 있습니다만 이제와서 배워도 될런지요. 그게 살짝 의문스럽군요. 포커라면 좀 하긴 하지만서두요. 저도 한가지 묻고 싶군요.」
「어머나. 뭔데요? 저에게요? 어서 질문하시죠. 아니면 뭐 어떻게, 오빠라고 불러드리는 게 순서일까요? 뭐가 알고 싶으신 건데요?」
「혹시... 그 여우 꼬리.」
「이거요?」
「그거 진짜인가요?」
「그럼요!」
「에이~! 그게 어떻게?」
「만져보세요. 자요. 어서요. 정말요.」
「허허. 그걸 만져서 어떻게 진짜인 줄 알 수 있나요. 저는 동물학자가 아닌 걸요. 동물학자도 아마 꼬리만 만져서 그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로는 저랑 썩 비슷하지 않을까요?」
「어머머! 못믿으시네. 속고만 사셨나. 그럼 제 집까지 따라오시는 건 어때요. 꼭 제 알몸을 보셔야지 믿으실 건가요?」
「어머머머머! 어쩜 그렇게 당돌할 수가. 우리. 포커로 내기를 하는 게 좋겠군요. 싫진, 않죠?」
「포커, 좀 하시나봐요?」
「못하진 않죠. 어떻게, 포커페이스는 읽을 줄 아시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내 별명은 7끝이요. 7원페어도 아니고 7끝. 응? 포커 정도면 몰라도 어설프게 애매한 거 뜨면 결론만 말하자면 나한테 다 뺐겨요. 응? 싹 다! (몸짓) (깐족) (몸짓) (깐죽) 내가 너무 오바했나? 그런데 이러다 지면 어떡하지! 아 뭐하시오? 날 진즉 말려주셨어야지.」
「재밌는 분이시네요. 저도 승부가 기대되는데요. 네, 오빠.」
「방금 속으로 그랬죠? 어련하실까! 라고. 아니면 뭐 '늬 뜻이 정 그러하다면?' 오오오! 웃었어 웃었어. 완전 빵끗 웃었어. 웃었어 웃었어.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구만~. 어? 딱 걸렸어 딱 걸렸어. 봐-줄려고 했는데 봐주면 안되겠네.」
「아이 참. 아니랍니다.」
그렇게 루시와 나는 친해졌다. 우리는 만나면 금방 친해진다. 그래서 만나기만 하면 된다. 아니면 말고, 는 애초에 키우지를 않는단 말이다.
그렇게,
호텔 다이애나 다이애나 생활 다섯째 날이 되었다.
호텔 다이애나 다이애나 생활 다섯째 날.
나는 루시의 초대로 그녀 친구들 파티에 초대 받았고, 여기는 그 파티장이다.
그곳은 어디겠나, 클럽이다. 그렇게 루시와 놀다가, 돌아다니다가, 춤을 출려는데 흉할 꺼 같아서 그건 간신히 참았다. 많이, 많이 흉할 테니까.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라고 제지당할지도 모를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여기서까지 롭을 다 만나다니!
「롭. 얘네들 다 진짜래.」
「뭐가?」
「꼬리 달린 거. 그거 가짜 아니래.」
「누가 그래? 아니야 다 가짜야. 저걸 어떻게 매번 붙이고 다녀? 아니야. 아니라고. 오늘처럼 특별한 날에만 저 특수 복장을 입은 거라고. 형. 정신 차려. 어? 순진하게 아직도 이러기야?」
바로 그때. 클럽의 전기가 나갔다.
웅성웅성 웅성웅성.
웅성웅성 웅성웅성.
웅성웅성 웅성웅성.
그러다 3분 후 다시 원상 복귀되었다.
다시 5분 전의 분위기를 되찾았다.
그런데! 아뿔사! 뭐야 이거!
다들 달려있던 꼬리가 사라졌다.
게다가 루시는 인사도 없이 가버렸는지 만날 수 없었다.
그 후!
호텔 다이애나 다이애나 생활 6일째 날. 그녀는 소식이 없었다.
호텔 다이애나 다이애나 생활 7일째 날. 사장님에게 들었다. 그녀가 그만뒀다고.
나는 그녀를 만나고 싶어서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왜냐하면 이대로 헤어지면, 이대로 돌아가면 뭔가 찜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근처 어딘가에서 언뜻 봤던 가게를 떠올렸다. 가게 이름은 루시 루시! 아마도 사설 게임장인 듯 했다.
나는 그곳으로 갔다. 나는 과연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22
나는 사설 게임장 루시 루시에 도착했다. 여기서 나는 루시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재회하면 좋고 아니면 그녀가 행복하기를.
나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내 정면에 바로 루시가 있었다. 카운터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10미터. 12미터?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녀에게 접근하여 딱 인사를 했다.
그렇게 안녕 하며 인사를 건넸는데 그녀의 차가운 분위기라니.
「누구...시죠? 혹시 절 아시나요?」
「아... 그게 제가 잠시 착각을 한 것 같군요. 실례했습니다.」
난 느꼈다. 이분은 그녀의 동생이란 걸. 아닐 수도 있고.
그렇게 게임장 내부를 구경하던 중 하나의 벽보에 눈길이 갔다.
바로 그녀의 실종 안내문이었다. 뭐라고? 실종 당시 웬 수상쩍은 남자와 친했고, 그와 함께 돌아다니는 모습이 주변인에게, 카메라에 많이 포착됐다는 내용. 그런데 가만 보니 그 수상쩍은 남자가... 바로 나? 저런!
그 다음.
다음 날 나는 그녀 찾기를 포기했다. 경마와 골프와 여행과 일하기를 거듭하며 1주일 더 쉴 계획이었는데, 서둘러 계획을 변경했다. 그렇게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레이저 시스템 긴급 알림.
「분명히 뭣이 있어. 응?」
침입자 발견? 또? 이번엔 또 누굴까!
앱을 켜보니 화면은 연기 때문에 통 칩입자의 인상착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곧바로 사무실로 갔다.
「주인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는 레이저 시스템의 말을 듣고 싶었다. 사무실 레이저 시스템의 인공지능이 슈퍼 컴퓨터로 발전했으니 이제는 내가 녀석한테 말로든 뭐로든 안될 테니 더욱 뿌듯했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라고 녀석이 말하면
「이 나이 쳐먹고, 라는 서늘한 회한은 사양하겠네. 고민하지 마셔. 내가 있지 않나.」 ~라고 내가 대답하고.
뭐, 잘들 논다?
그렇게 나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딱 내 사무실로 들어갈려는던 바로 그때!
나를 바라보는 애절한 눈빛의 주인공은 허허허, 역시나 루시였다.
「오빠!」
샤라라라라라~ 샤라라라라라라~ 샤라라라라라~ 라라~ 라라~ 라라~
우리는 근처 카페 브렌따노로 자리를 옮겼다.
「오빠. 어떻게 지냈어? 언제 온 거야?」
「너야말로 여긴 웬일인데?」 반가운 대사치곤 좀 촌스럽나?
「나? 근처 미술관에 친구 만나러. 겸사겸사 어디 좀 들렀다가 어딘가 모르게 이 근방을 둘러보고 싶었는데. 그런데 우연히 다 만나네?」
「너 혹시 말이야. 동생... 있니?」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니 그냥. 난 단지. 뭐랄까. 그냥 그럴 꺼 같아서. 그게 다야.」
「있긴 있는데. 걔랑 사이가 안 좋아. 지금은. 그러다 또 친해지겠지. 그렇게 지금은 연락이 끊긴 상태야. 어딨는지 나도 몰라. 집안일 때문에 만나긴 할 텐데, 그때 되면 다시 친해지겠지 뭐.」
뭐야 이거!
「그런데 있잖아. 너 저번에 나한테 그렇게 말했잖아. 그 꼬리. 진짜인지 가짜인지 보여준다고. 그 말 기억해?」
「오빠도 참! 당연히 농담이지. 오빠 그 말 믿었어? 아님 속은 거야? 아니지? 에이~ 아닐 꺼야. 요즘 그렇게 순수한 남자가 어딨어! 혹시 오빠가 꼬리 달린 거 아니야?」
「나?」
나는 잠시 후 나도 모르게 내 꼬리뼈를 만져봤다. 왠지 모르게 그곳이 살짝 가려웠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내친김에 내 엉덩이까지 슥슥 만져보지는 않았다. 혼자 있다면 몰라도 지금 그럴 수 있나. 내 엉덩이를 내가 만지겠다는데, 그건 혼자 있을 때!
거 왜 있지 않나! 찰스 로버트 다윈이 쓴 종의 기원. 나는 읽지 않은 한 명저를 떠올렸다. 내 주위에서 뿐만 아니라 그 책을 읽은 사람을 만나기는 아마도 이럴 것이다.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을 만한 바보&푼수의 우정을 관망하는 끔찍한 행운 누리기. 그렇다면 언감생심 어찌 나까지 그 희소한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하리요! 그보다는 차라리 뒷모습 집착증과 거북목 증후군을 치료하는 게 백번 나을 것. 물론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고. 그야 어쨌든, 나는 루시와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헛생각은 그만 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지금은 이런 때였다. 지독한 슬럼프에서 탈출한 자존감. 지루함을 이겨내고야만 기발한 허영심. 겨울잠에서 깨어난 자존심까지. 모두 그녀에게 집중해야만 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아무튼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내 성년기를 칭찬한 건가? 그걸 염두에 둔 채 그녀를 어디로 데려 갈까! 가식적인 발림 말보다 그녀를 은근히 감동시켜야 할 텐데.
그래서 우리는 우리 둘 모두가 아는 딱 한 사람. 바로 롭을 만나기 위해 롭의 나이트클럽으로 갔다.
영차영차 나이트클럽으로.
영차영차 나이트클럽이 거의 보인다.
영차영차 나이트클럽에 도착.
휴~!
그 다음.
롭의 나이트클럽 사장실.
나, 롭, 루시. 그렇게 셋이서 감시 카메라 화면을 멀뚱멀뚱 구경하고 있었다.
「형.」
「응?」
「시 발표회 간다고 하지 않았어?」
「내가 언제! 나 시인 아니야.」
「그래?」
「그럼.」
「형. 신차 발표회장 초대 받았다며. 이번에 새로 나온 디자인 꽤 괜찮던데. 어때 그걸로 바꿀 꺼야 말 꺼야?」
「내가 신차 발표회장에 초대를 받았다구? 금시초문인데. 걔네들이 바보니, 나 같은 가난뱅이를 다 초대하게! 너도 참 눈치가 없다 눈치가.」
「형. 글은 잘 써져? 형 혹시 감 떨어진 거 아니야? 아니면 어디서 기 빨렸나?」
「내가 기를 빨렸냐고? 내가 기를 왜 빨려! 조증녀를 만난 것도 아닌데. (멈칫) 흐흠. 어디서 기 받을 데 없나...」 두리번두리번!
나는 그렇게 일찍도 깨달았다. 내가 눈치가 없다는 걸. 난 그렇게 약속이 있다면서 먼저 일어섰다. 내가 원래 눈치가 빠른 걸로도 모자라, 전설적인 이방이랄지 약삭빠른 간신처럼 눈치가 빨랐거늘! 나도 한물갔다 한물갔어. 뭐? 그럼 언제는 잘나가기라도 했단 말인가 뭔가. 거 원 무슨 헛 참 나!
그렇게 나는 쓸쓸히 NC에서 퇴장했고 집으로 갔다.
23
세상사란 노골적으로 성공을 강요한다. 그러면서 은근히 실패를 부추긴다. 왜냐하면 많이 또 잘 실패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그래서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해야 한다는 적극성에 충분히 타당한 이유가 부여된다. OK! 여기까지는 좋다. 아주 좋다. 다만 전망을 살피는 눈 깜짝할 찰나의 직관력에 대해서 이왕이면 침착하기를! 상대가 상대였을 때 웬만하면 신중 그리고 전망! 곧, 될 수 있으면 소극적이어야 할 상황에서까지 적극적인 관성이 차분해지기는 쉽지 않다는 것. 하나 얻고 하나 잃는 지점이다. 그렇지만 적극적인 태도로 손해볼 텐가, 소극적인 자세로 (개)이득을 취할 텐가! 라는 최적의 방법론을 깨우치도록 인생은 우리에게 충분히 우호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아름답도록 기막히게 깨닫고 나면 대게는 이미 어른이라는 점. (딱)! 여기서 베팅은 쉽지 않게 된다는 일리는 설득력을 얻는다. 옛말에 이르기를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느니, 준치는 썩어도 준치라느니. 또 있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대마불사! 그렇지만 지금과 과거는 사정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 정승처럼 버는 건 고사하고 개처럼 벌어도 벗겨먹을려고 하는 바로 <꾼>들! 그분들도 조심해야 한다. 그야 뭐 김칫국 먼저 마시기지만 말이다. 버는 건 어렵고 힘들며 더디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탕진하기는 너무나 쉽다. 그렇지만 그건 이미 어느 층위에 이른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 일단은 부자가 되야 부자가 되어도 별거 없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딱 부자가 되고 싶은데, 아니 벌써 어른이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정 때문에 현대인은 처음부터 온정이 그쪽으로 기우는 것이다. 과연 거긴 어디일까? 즉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타율왕, 이길 때 확실히 이기고 질 때도 확실히 지는 승부사의 쇼맨쉽. ~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일단 타석주의로 어떻게 하면 다채로운 꽃과 사귀고, 다양한 과일을 맛보며, 다종한 더티러브라는 멜로드라마까지 섭렵할 것인가! 응? 화사한 꽃밭에서 뛰어놀며 어떻게 하면 벌꿀의 향기라도 맡아볼까, 쟤를 어떻게 한 번 해 볼까 라는 응큼한 공상이나 마음껏 하자? ~라는 까닭 때문에 바로 그 어딘지 모르는 <묻지 마 랜드>의 포지셔닝은 바로 그것이다. (두둥~) 아니면 말고!
바로 그래서 플레이보이 뿐만 아니라 여러 동물들의 인생은 그렇게나 눈치 작전이 극심한 것이다. 어른들끼리 터놓고 하는 말에 따르든, 그냥 단순히 생각하든 사실이 그렇다. 보아하니 첫눈과 크리스마스는 매년 돌아온다지만 신인왕은 결코 그렇지 않거든. 신인왕의 기회는 1부 리그에 진입이 가능했을 때나 딱 1번. 그래서 숙녀의 마음은 언제나 처녀 같고, 마초의 사랑은 항상 첫사랑인 것이다. 그녀의 유도심문에 넘어가는 건 시간 문제겠지만. 그런데 다 차려진 잔칫상에 숟가락만 슥 올리려면 일단 숟가락이 있어야 하는 법. 곧 아무나 1부 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따라서 손에 진땀 나는 그 대망의 명승부에서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싶다면 일찍부터 경험할 건 경험하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예선탈락, 패자부활전, 난 나중 챔피언이 되서 유명해질 꺼야 라고 말했던 친구와 미리미리 친분을 돈독히 유지해서 나중 녀석이 마천루 몇 개를 소유할 때 나는 딱 그림자로써 녀석의 책상 먼지만 터는 일이라도 하기. ~라는 애초의 목표 설정.
그러나 바이런처럼 눈 떠보니 유명해진 게 아니라, 난 어느새 팔 짧아지고 목도 짧아져버린 어른이다? 둘 중 하나다. 반틈이나 남았는데 남은 밭은 언제 갈지, 반틈 했으니 나머지 반틈만 하면 되겠네. 물 반잔! 늦었을 때가 제일 빠를 때일 것인가, 아니면 늦었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시기일 것인가. 우리가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뒤적거리건 TV 채널을 돌리건 어디를 가나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 오늘은 인생에서 남은 날의 제1일이다!
그래서 아직 늦지 않았다 라는 마음으로 나는 희망찬 긍지와 밝은 자신감을 되찾은 채 집에 도착했다.
24
나는 딱 차에서 내렸다.
걸어서 집으로 들어갈려고 했다.
그런데 저쪽에서 차량 전조등. 일명 쌍-라이트가 깜박깜박. 깜박깜박. 뭐지? 뭐야!
알고 봤더니 녀석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엔야와 로즈마리. 그리고 브렌따노 사장과 피타고라스 바텐더. 그렇게 4명.
그 멤버는 저번에 나만 쏙 빼놓고서 자기들끼리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롭 사장실의 감시 화면으로 나한테 딱 걸린 친구들이다.
숙녀들의 마음에 새로움을 선사하고, 상남자들의 심정을 깜짝 놀래켜주고자 하는 욕망. 그 도발적인 욕구는 원래 보통 은근하지도 은밀하지도 않다. 단지 그저 멍청하지 않으면 다행일 뿐! 그런데 녀석들이 날 챙겨준답시고 뭐 깜짝 이벤트야 뭐야? 그러니까 자기들의 흥분한 상상력으로 감격스러운 사교계의 호응을 너도 경험해보아라? 아이고야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구나. 어쩐지 뜸하다 했다. 그래도 의리는 있다 이거구만. 하는 일 없이 방황하는 이 멍텅구리까지 챙기시겠다니. 가상하네. 조금은 감격이야. 나도 감동 받은 흉내라도 내야 할 거 아니냐고. 녀석들의 다독임에 넌더리를 내겠어 어쩌겠어.
「날 기다렸어?」
「응.」
「와 모두 모였다. 짝짝짝!」
「아니 왜?」
「저번에 너 삐진 거 같아서 기분 풀어줄려고.」
「내가? 나 안 삐졌어. 나 그렇게 속 좁은 남자 아니야 얘. 뭐, 그래. 내가 큰맘 먹고, 응? 뺀질하고 옹졸한 남자역, 할께. 이번만. 딱 이번만. 이번 딱 한 번만. 못할 건 또 뭐야. 그래. 얼마나 기다렸는데?」
「3일!」
「진짜?」
「아니. 뻥이야.」
「뭐?」
「3시간.」
「진짜?」
「아니. 뻥이야.」
「뭐?」
「2시간 반! 진짜야. 완전 진짜라고.」
「그래. 뭐. 흐흠.」
「어. 진짜. 완전 진짜.」
「그러니까. 매복? 얘네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네 많이 봤어, 거 원!」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다면 그렇게 하고.」
「어쭈. 세게 나오는데.」
「같이 갈 데가 있어.」
「어디? 누구? 나랑?」
「너랑 우리랑.」
「어디? 똑같은 데? 또? 나 방금 거기서 오는 길이야. 마침 저번처럼 또 사장실에서 감시 카메라 화면 들여다 보다 왔어. 내 기분 별로야. 그냥 그래. 아 진짜로!」
「거기 아니야.」
「그럼 어딘데?」
「가보면 알아.」
「멋진 척할 줄도 아네. 오오 분위기 있어 분위기 있어. 뭔가 있는 것 같잖아? 느낌 세한데!」
「자, 그럼 같이 가줘야겠어.」
「뭐야! 그럼 날 납치하시겠다?」
「아니. 임의동행.」
「얘네들이 전문용어도 아네. 허허. 내가 무슨 중간 보스도 아니고 말이야. 순순히 따라가는 수 밖에.」
「자, 가자.」
「그분이 대체 누구야? 일단 그거나 알자. 나중 내가 가만 두나 봐라. 아 진짜로 궁금하게 이러기야? 힌트 좀 줘봐. 응?」
「두고 보면 알아.」
「너네 그거 아니? 너네들 꼭 로보트처럼 말한다는 거. 꼭 뭐에 씌인 거 같다니까 글쎄. 얘네들 어설픈 듯 하면서도 나름 뭔가 있는 듯 하네 정말. 살다 살다 이렇게 사람을 모셔가는 일에 내가 주인공이 될 줄이야. 오 마이 갓~!」
「가시죠. 말씀은 그쯤 하시고. 입 안 아프세요?」
「그런데 이거 방탄차야? 어쭈~!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그렇게 우리는 출발했다.
장렬한 공포심은 딱히 없었다. 그러니까 고독한 쾌감도 별로였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모험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기분 이상했다.
대체 얘네들이 날 어디로 데려갈려는 거지? 기대하지 않는 만큼 예감이 뭔가 기묘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갈 데로 가자 라는 심정이었다. 오냐, 거기가 어디든 일단 가보자 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그곳으로 가는 중간에 내가
「이봐요...」
라고 말해도 모두 다 꿀 먹은 벙어리였다. 그래서 난 또 이렇게 말했다.
「모르겄다, 나도.」
그러다 나는 잠깐 골아떨어졌고, 잠시 후 도착했다.
그곳은 롭이 저번에 소개시켜줬던 별장 인근에 있는 체육관. 아니 환상관 블루블루였다. 아직도 저 안에 다비드가 있는지, 타임머신 연구실도 있는지 이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날 왜 또 이곳으로 데려온 거야? 얘네들 참 괴상한 친구들이구만 그래.
「여기였어? 아 그럼 말을 하지 그랬어. 싱거운 친구들 같으니라고.」
「열어줘.」
「응? 나보고 이곳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잠금 장치를 풀어주란 말이지?」
「잘 아시네.」
「알았어. 까짓껏.」
나는 출입구에서 레이저 시스템 입력단에다 내 핸드폰 앱을 켜서 레이저 시스템을 해제시켰다. 그리고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나는비밀번호)」
「(삐)」
「뭐야?」
「(난비밀번호)」
「(삐)」
「뭐? 뭐지?」
「(IMPASSWORD)」
「(딩동댕~) 출입을 허가합니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그럼 그렇지. 내가 독학한 외국어가 몇 개고, 다닌 외국어 학원의 종류는 또 어떻고, 하다 하다 에스페란토어도... 그렇지만 숙달한 외국어는... 통과.
바로 그때 네 친구들은 내 앞에서 돌출 행동을 선보였다. 즉 얼굴을 벗어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얘네들은 네 친구들의 초정밀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뭐야! 얼굴을 안 보여주던가 보여주던가, 보여준다는 건...? 실수로 알게 된 거도 아니고, 일부러? 그럼 내게 음모의 전모를 노출하고 날 볼모로 삼겠다는 것 아니겠냐고. 밀정에 두더쥐에 정보책에다, 때로는 바람잡이요 이따금 포섭책까지! 급하면 현장 요원으로? 얘네들 머리 좋네. 탐욕의 앞잡이를, 그것도 내가? 왜 하필 엑스트라야! 그럼 너네만 설계자고 나는 뭐 삐리한 말단 허접쓰레기야 뭐야? 아 당근이 있어야 할 거 아니냐고 당근이~! 어?
바로 그때.
「(007가방을 내게 건넴)」
「(내 눈빛 똘망똘망)」
「잠김 장치는 위치 기반에 따라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장소로 가시면 자동 해제됩니다.」
「이제 장난 그만하면 안되니...에요? 이거 정말 너무 가는 거 아니...닐까요? 사람 겁나게 왜...들...그러세요?」
「참고로 가방에 든 건 전액 현찰 고액권입니다.」
뭐라고?
우리는 안으로 함께 들어갔다.
25
내부는 다비드 실사 크기로...... 보이는 인물은, 다름 아니라 구면이네?
그는 바로 내 친구 딘딘이었다. 내 친구 딘딘이 떡하니 서 있었다.
뭐야 저건 또! 야 너 거기서 뭐해? 이 자식이...!
딘딘이 왜? 누가 아니래!
판타지에 대한 신앙심이 유별났기 때문인가?
하여간 적어도 남다른 열정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바로 그때 다비드상 실사 크기의 딘딘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찜. 많이 놀랐지? 미안 미안! 미리 말을 못했네. 어쩌다 그렇게 됐어. 내가 저번에 그랬잖아. 생각 안 나? 널 깜짝 놀라게 만들고 싶다고. 나 약속 지켰다. 그리고 겁 먹지 마. 응? 쟤네들 내 후배가 교수로 있는 연극영화학과 학생들이니까. 연기 잘하는 노안을 선정하느라 골머리 좀 앓았지. 허허. 정말 많이 힘들었다구. 응?」
그러면서 공중으로 X맨 영화처럼 저 건너편 상단에서 막대가 주르륵 나와서 다비드상 실사 크기, 아니 그보다 훨신 큰 친구 딘딘의 머리 꼭대기로 그 뭐라 불러야 하나? 그 늘어나는 막대가 쭉 튀어나왔다. 막 부드럽게 말이다. 물론 그 막대 위에는 의자가 있었다. 전동인지 뭔지는 모르겠고. 의자에는 친구 딘딘이 앉아있었다. 그렇게 녀석은 자기 딴에 어떤 기념식이 끝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그렇게 녀석은 지상으로 내려왔다.
오, 딘딘! 어쭈~!
괴물로 태어나느냐, 팔색조로 만들어지느냐. 녀석은 둘 다 아니었다. 동물로는 늑대. 조류로는 기러기. 식물로는 들국화쯤. 인생 경험으로는 잡초. 그리고 남자니까 화병. 그럼 오늘 난 녀석에게 네잎 클로버야 뭐야? 방금 전 퍼포먼스를 스페이스라고 치면 남은 건 다이아몬드랑 하트 뿐이잖아? 그럼 설마......? 아니야 아니야. 난 아니다 난 아니야.
「놀고 있네. 나 원 참. 쇼를 한다 쇼를 해. 애 썼다 딘딘. 허허. 대단해. (짝짝짝)」
「그렇지만 아마 너도 고생한 보람이 있을 걸! 어때 괜찮았어?」
「내가 속을 뻔 했으니까 아마도 괜찮았다고 해야겠지?」
「아직 마음을 놓긴 일러 이 친구야. 한 번 더 할까?」
「엥?」
「농담이야. 허허허.」
중간은 생략하고.
그렇게 언사를 나누고어쩌고 그런 다음 우린 헤어졌다.
그분들은 날 집까지 정중히 모셔다줬고. 물론 007 가방은 내가 꼭 쥐고 있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
무사히 도착.
그분들은 떠남.
나는 집에 들어가서 씻고 어쩌고 그런 다음 침대에 걸터앉아서 007 가방을 열어봤다.
그런데 아뿔사!
이런, 젠장!
진짜 돈이잖아? 그것도 맨 위 1장만 진짜가 아니라 전부다!
뭐야 이거? 왜 나야!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응?
나는 친구 딘딘에게 전화를 걸었다. 녀석은 받지 않았다.
작전인가? 그러든가 말든가!
에잇~ 잠이나 자자. 그러면서 나는 꿈나라로 떠날려고 했다.
나는 잠이 오지 않길래 꼼지락꼼지락 인터넷을 뒤지며 소셜 네트워크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어느 친구들 소식을 보던 중 알게 됐다.
바로, 친구 딘딘이 사업 실패를 거듭하다 급기야 어둠의 세계에서 중간 보스가 됐다고. 뭐? 아찔했다~!
그렇지만 뻥이 심한 친구의 말은 그랬고, 뻥이 덜 심한 친구의 말은 딘딘이 영화감독이 됐다나 뭐라나!
이거 정말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럼 저건 혹시 선수금?
내가 해줄 게 뭐 있다고?
설마 보스의 전기를 대필? 그럴 리가 있나.
이거 진짜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안절부절하지 못한 채 나는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26
다음 날.
잠에서 깨자마자 나는 007 가방을 찾아봤다.
그런데, 007 가방이, 없어졌다.
뭐?
이 자식이...!
그럼 이제 난 어떡하지?
0에서 새로 출발하냐, 아니면 0이된 원인과 사연을 캐고 또 캐야 하느냐. 후자? 너무 복잡하고 어렵고 힘에 벅차다. 잘할 수도 없다. 그럴 것이다. 따라서 나는 전자, 0에서 새로 출발하기로 했다. 응? 변한 건 없다.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평소처럼 살면 되는 것이다. 어젯밤 꿈을 꾼 것일 뿐. 모든 것은 그대로일 따름.
예외라는 건 이런 걸 말한다. 손님의 황량한 미래가 예견돼도 점쟁이는 절대로 솔직해선 안되는 것. 단, 점쟁이 일생에 딱 1번 만날까 말까 하는 소름 돋는 운명의 상대가 건너편에 앉아 있을 때만은 예외. 그 순간 만큼은 솔직하지 않으면 점쟁이의 운명이 어떻게, 대관절 어찌 신묘해질지는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불문율이므로. 그때가 되면 어떤 점쟁이라도 살짝 소름이 돋으면서 손님이 듣기 싫어하실 얘기를 직설적으로 주르륵~ 읊으실 수 밖에 없다. 그건 점쟁이 일생을 통틀어 거의 1번도 만나지 못하는 기막힌 만남이니까. 그걸 경험한 점쟁이? 확률로 치면... 거의 0에 수렴된다.
바로 그런 예외 같은 일이 내게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청소를 했다. 땀을 흘리며 운동도 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다.
그랬더니 정말 나는 은둔자나 고행자라도 된 것 마냥 잡념이 사라졌다.
「이제 그만 날 내버려둬!」 ~라는 혼잣말도 하지 않게 됐다.
「아 이거 정말 미치겠네.」 ~라는 절규도 언제 했었나 잊어버렸다.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서 나는 다음과 같은 몽상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됐다.
(딱) 하면 됐다. 자, (딱)!
이를 테면 이런 식으로.
나는 짝사랑 받기를 언제나 요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한 속마음을 들여다보자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구나 행복을 희망하지 단 1번 뿐인 인생을 신부들러리 인생으로 전전하기를 바라지는 않으니까. 당연한 이치다. 그럼 그 말은 곧 누구나 아부 받고, 찬미의 대상이고 싶어한다는 말 아닌가!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한다는데 딸랑딸랑-반짝반짝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 그러므로 여자는 모든 장르에서 주인공이기를 원하고, 남자의 궁극적 소망은 그거 아닌가. 조르쥬 심농 뛰어넘기! 뭐라고?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양반이 말이야, 듣자 듣자 하니 뭔 개 짓는 소리야 뭐야! 멍멍 멍멍멍 멍멍멍멍멍. 그 말은 곧 이렇게 한 번 꼬아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즉 아부의 신, 천하의 간신배! 패자는 전자와 후자를 어쩜 종이 한 장 두께 차이로 볼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승자는? 승자야 뭐 괴물 여왕벌 투수의 공이 수박 만하게 보이겠죠! 거 무슨, 탐관오리의 꽥꽥이야 뭐야?
농담이고. 뭐 농담이 아니라고? 특이한 심경이 강변하는 비몽사몽 요상한 궤변은 이쯤 각설하고. 속된 말로, 헛소리를 신나게 떠벌이다보니 이제야 알겠다. 나는 그동안 뻔트는 신물나게 댔으니, 이번에는 화끈하고 호탕하며 통쾌한 장외홈런을 날리고 싶은 거라고!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얻어걸리기를 애정하며 밑밥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나는 당장 풍운아의 4대 요소를 모조리 일망타진하기로 마음먹었다. 풍운아의 4대 요소? 자유, 사랑, 행복, 인기!
으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그러나 바로 이런 걸 숙명이라고 하는 것일까? 회심의 걸작을 딱 집필할려던 이 시절! 나는 바야흐로 음모꾼의 허접하디 허접한 작전에 딱, 찰칵~ 하며 걸려들고야 말았던 것이다.
바닥난 VIP 초대권. 소파 밑에서 우연잖게 1장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뜬금없이 발견한 VIP 초대권으로 재미삼아 방문한 투자설명회였다. 머리에 꽃을 꼽고 핀을 다는 것처럼 엑세서리만 달면 된다고 했다. 운동 에너지 측정기라는 조그만 장치를 각종 기계에 부착하기만 하면 거기서 발생하는 2차 운동 에너지를 일종의 TV 같은 수신기에 무선으로 보낼 수 있다는 사업 내용이었다. 손톱 만한 크기부터, 머리핀, 스피커 크기까지. 부착만 하면 된다. 헤어드라이어, 커피포트, 진공청소기, 세탁기, 제습기, 난방기, 에어콘등. 현대 과학 기술은 거기까지 발전했다. 정말로! 이미 옛날 옛날에. 달 기지에서 전기 에너지를 지구로, 또는 지구에서 태양계 내 어디까지. 바로 그렇게 무선으로 에너지를 보내고 받는 기술. 그게 허구가 아니라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과학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러니까 난 쓸데없는 잔지식 때문에 또 속아넘어간 것이다. 벌써 2장이나 물려버렸다. 가뜩이나 지독히도 옹삭한 형편인데, 맥이 탁 풀리는 느낌. 그게 딱 내 기분이었다. 회사명은 그랬다.
PM. 즉 팝콘 머신!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진짜로 솔직히 혹시 모르니까, 팝콘 머신 회사의 투자설명회에 잠깐만 가보기로 했다.
그냥 재미로만 말이다.
27
나는 팝콘 머신 투자설명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보아하니 뜨내기. 유혹자. 간혹 신비의 지배자. 또 환상 중의 환상에 중독된 자. 그 환상이 대체 뭔 환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예스러운 인생의 인도자. 허둥지둥 들어서는 지각생. 그리고 어설픈 3대 사랑의 안내자까지.
그와 더불어 참석자 대부분은 007 가방을 들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행사의 서론은 지나갔고, 본론은 뻔했다. 그래서 나는 중간 중간 졸았다. 그렇게 내가 비몽사몽하다가 행사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행사가 끝나자 출구에서 참가자분들께 봉투를 나눠줬다. 그런데 나는 가방을 들고 있지 않다니? 그래서 그분들은 내게 봉투 대신 007 가방을 선물함. 집에 가서 열어보라나 뭐라나!
나는 집으로 갔다.
나는 집에 도착했다.
집에서 007 가방을 열어봤다.
뭐가 들어있었을까? 그때쯤 나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실의하기 싫었으니까.
결과만 말하자면 이랬다. 내용물은 VIP 초대권 가득. 오직 VIP 초대권만!
차라리 천만다행이었다. 몽땅 현금이라면 덜컥 겁이 났을 것 아니겠나.
만약 그랬다면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오히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가 나았다.
하지만 서운한 감정이라고 실망감이 왜 없었겠나. 무슨 VIP 초대권 인생도 아니고 말이다.
28
무정한 기쁨, 무섭다. 절대적인 즐거움, 겁난다. 무언의 환희, 진짜일까? 상사병, 상상만 해도 떨린다. 향수병, 생각하면 아련하다. 허언증, 완치된지가 언젠데 도졌다. 또!
그런데 이상한 행복감은 알고 봤더니 꿈이었다. 나는 스치듯 거울을 봤다. 얼굴이 파랗게 질렸는 줄 알았는데 노랗게, 아니 누렇게 떴다. 이래서 어떻게 연분홍색 카네이션과 교감하며, 노랑 튤립과 새빨간 장미의 호감을 동요하게 한단 말인가. 됐고! 악마의 채찍질이니 천사의 당근이니 다 좋다지만, 쉴 때는 쉬어야 한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던 케익을 사던, 또는 미용실에 방문하던지 나는 집과 사무실 이외의 장소에 가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유치한 사랑이니 추접한 우정이니 그거 다 농담이고, 그렇지만 나는 이번에 나이트클럽에서 나오는 패자의 처량함은 반복하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삶의 전환점' 같은 신선한 계기를 찾기 위해 분주했다. 맹렬히 동분서주했다. 동네를 돌아다니는 똥개에 주목하고, 길고양이들을 응시했다.
「너도 (키높이) 깔창 좀 넣고 다녀! 명색이 연예인인데 그게 뭐니? 자신감 떨어졌으면, 어? 내 꺼! 나 나오는 동기 부여 비디오라도 찾아보든가. 응? 힘내!」
무슨 운동화와 구두가 하이힐도 아닌데 1년 365일 생활이었는데... 그래서 그분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너도 (속칭 뽕브라) 좀 넣고 다녀. (몸짓) 응? 나 봐봐 얘! 아 굴곡이 다르다니까!」
1년 내내 코르셋에 보형물에 짙디진한 화장에. 하기 싫어도 잘난 척, 귀찮아도 예쁜 척. 장3도쯤 높여서 애교에 교태에 아양까지! 그러다 어느 날 지치다 지쳐서 이윽고 다시 본래의 고유한 저음 목소리를 되찾는 여자. 체형과 목소리 음조는 정비례는 아니지만 딱 비례하니까, 아마 그동안 힘들었을 것이 확실하다. 아님 독한 건가? 그렇다면 독한 여자가 지독한 사랑에 빠지면! 넘어가고.
그런 색다른 계기랄지 뭐 재미난 일 없을까? 라며 나는 또 다시 사색가로 돌변했다. 그러고 보니 관찰자! 한동안 소홀히 했던 직분이었다.
그런 결과 나는 결국 여성잡지2를 비정기 구독하기 시작했다. 즉, 얼떨결에! 딱히 애호가도 아니고 청강생쯤으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여성잡지2를 들고 환상문학잡지 사무실로 놀러갔다.
그렇게 환상문학잡지 사무실에 도착해서 나는 마라와 향긋한 차를 마시며 다정한 대화를 나누었다.
「너 영화 시사회 다녀왔다며?」
「누가 그래?」
「누가 그러긴.」
그러면서 그녀는 어느 잡지를 펼쳐서 내게 보여줬다.
감독은 딘딘.
제목은. 어디 갔어, 내 팝콘 머신!
인터뷰가 실려있었고 사진도 있었다. 사진을 보니 뒤편으로 시사회 참석자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 사진에는 글쎄...!
엔야, 로즈마리, 브렌따노 사장, 피타고라스 사장이?
뭐, 또!
진짜로, 또?
「얘. 얘. 너도 있어. 잘 봐봐. 구석지에서 너 뭐하고 있었니? 너 얼굴이 왜 그래?」
「」
「말을 해봐봐. 응? 아 말을 해야 알 꺼 아니야!」
「」
「그리고 너 그런데 가고 싶으면 가고 싶다고 나한테 미리 말을 하라고. 응? 우리한테 들어오는 카드가 몇 갠데! 너도 (VIP 카드) 좀 넣고 다녀! 응?」
머리 위로 수증기 모락모락~ 수증기 부글부글~!
저번에는 코치와 선수단이 얼렁뚱땅 함께 했다. 그럼,
이번에는 코치와 선수단이 함께 했다는 사실조차 뒤늦게 알게 된 건가?
그런데 왜 나는 선수가 아니고 코치란 말인가. 나는 영원한 현역도, YB도, NB도 아니란 말인가? 어떻게 SB라도 (불쌍한 몸짓) 안될까!
나는 상심했다. 이건 정녕 체념이란 상태였다. 아아, 절망이란 바로 이런 걸 뜻하는구나 라고 느꼈다. 한마디로 내 기분은 꽝이었다.
완전 꽝!
29
미완의 환상머신은 불시의 행운에 힘입어 마침내 완성될 것인가?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설마 설마 하다가 진짜로 완성될지도 모른다. 바로 가상이라면 SF 영화에서, 실제라면 꿈과 희망의 놀이공원에서. 그럼 결국 우리네 삶은 비운의 발단으로 시작하는 드라마도, 불의의 전개부터 출발하는 추리소설이 아닌 것일까? 아마도 그렇다. 왜냐하면 생애는 보통 먹고 살기가 중대사일 테니까. 고로 만약 우리 모두가 벼락부자가 된다면 사랑이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그건 또 그때 되면 즉흥적인 변명은 수없이 발생할 것이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시시각각 바뀌는 유행에, 잠룡을 예측하기 힘든 시류 하며, 변덕스런 마음까지. 그래서 인생은 지금인 것이다.
인생 = 지금!
흡사 사랑은 대체로(?) 변심이듯이. 곧 우리는 자유주의자고, 사회는 자본주의다. 도시의 고독한 사냥꾼일 땐 탐미주의자. 사랑을 하면 낭만파 배우. 으쌰으쌰에 임하면 내일은 없다? 오늘을 살자, 또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꿈은 수시로 바뀌고 여자의 마음은 여자도 모른다. 그렇다고 어느 상남자의 대망이 평생 놀고 먹기일 거라는 추문을 어떻게 믿겠나. 누가 웃겠나. 지나가는 똥개도 관심 없을 것이다. 우리도 바이런과 랭보, 보들레르쯤은 알거든. 인생은 어차피 둘 중 하나다. 밀턴의 실낙원, 아니면 플레이보이의 인생찬가. 농담이고, 일단은 쓸쓸한 양치기의 연가. 전환점의 평균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야 어쨌든 우리에게 잔재주는 든든하고 뻔트는 다망하니, 불행 중 다행!
때문에 생활 패턴을 분석컨대 우리는 매번 바뀐다. 어떻게 바뀔지는 형편에 따라 다르다. 그대는 수시로 변한다. (그리고 나는 늙었다? 수증기 푸쉭푸쉭!) 너 저번에 평생 피자만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피자를 제일 좋아한다며? 그건 그때 얘기고! 예술가는 변화의 바람에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테지만, 우리는 새로움을 추구하면 그뿐. 말상의 광마를 타고서 신나게 놀고, 유리구두를 신은 채 즐겁게 춤추면 그만. 노래 부를 땐 나도 가수고, 사색에 잠기면 누구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된다. 사극에 보면 광대들은 천시 받는 인생이니 이 한세상 재밌게 놀다 가면 그뿐이라고 한다. 작가도 행복한 소풍 마치고 하늘나라로 돌아갈 거라고 한다. 시각에 따라 이승은 홈그라운드일 수도 원정경기일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심심하지 않을 이유를 찾고, 놀 궁리에 골똘히 골몰하기를!
사실이 그렇다. 일하기는 놀기를 질투한다. 놀기는 젊기를 소망한다. 젊음은 사랑스럽기를 애원한다. 사랑은 간혹 애원이다. 애원은 다정하기를 간청한다. 다정함은 행복이다. 행복은 혹시 안중에도 없었던 쾌락 아닐까? 뭐라고!
시끄럽고 듣기 싫은 궤변은 이쯤 하고. 그러므로 나는 무엇으로 변신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광견, 하이에나, 팔색조! 무엇을 고르지, 늑대? 흔해 너무 흔해.
그럼 뭐야, 남은 건 넷 중 하나네. 변적쟁이─개구장이─장난꾸러기─엉뚱이!